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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9 ~ 08.13 SNS 미션 (8월 15일 자정까지)

'토지박경리' 5행시로 감상평을 아래의 조건을 충족하여

신청서에 적어주셨던 개인 SNS에 남겨주세요.


 이번 주 토지독서챌린지 미션은 5행시다. 여태까지 미션이 한 주동안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이 주제였다면, 이번 미션은 연휴를 맞아 쉬어가자는 운영자님의 배려로 읽혀진다. 그렇지만, 뜻하지 않은(?) 이 미션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시(詩) 감각이 없는 내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ㅜㅜ  결국 어찌어찌 만들었지만,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참 공개하기가 꺼려진다. 부족한 5행시는 페이퍼 끝에서 확인하는 것으로 하고, 한 주 독서를 페이퍼로 간단하게 마무리 짓는다.

 

 콜레라는 인간이 유일한 숙주이지만, 동물 숙주 없이도 인간의 몸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바실루스에 감염될 때 발생한다. 오염된 식수를 통해 전염되며 내장 기관에 문제를 일으키고 탈수 증세를 초래한다. 초기의 콜레라는 건강한 성인의 치사율이 50퍼센트 정도였는데, 어린이와 노인은 더 높았다. 이 질병은 갠지스강의 하류 지역에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고, 19세기 초에 전 세계로 퍼졌다. _ 클라이브 폰팅,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 , p274/534


 "그 뱅은 걸리기만 하믄 죽는다!" 빙 둘러싸고 있던 사람의 울타리는 무너진다. 불거져 나온 두 눈, 관골과 코만 댕그랗게 솟아오른 해골, 김서방의 그런 모습은 순간 이들에게 다른 뜻으로 비쳤다. 암담하고 침울하고 슬펐던 눈빛은 일제히 공포로 변했다... 집안의 일상은 무너졌다. 마을의 일상은 무너졌다. 불안과 공포는 시시각각 검은 구름같이 마을을, 최참판댁을 엄습해오고 있었다. _ 박경리, <토지 3>, p260/518


 <토지 3>에서 갑작스럽게 닥친 호열자(콜레라)는 평산리를 덮치고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면서 사신(死神)의 불길한 기운이 온 마을에 퍼져 나갔다. 성별, 나이, 신분고하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호열자의 파도에 쓸려가면서 마을의 분위기는 바뀌게 된다. 파국이 시작되었다.


 병이 그런 방어를 겁낼 리는 없다. 보이지 않는 무서운 형상으로 들리지 않는 함성을 지르면서 골목을 점령하고 마을을 점령하고 방방곡곡을 바람같이 휩쓸며 지나가는 병균. 그들의 습격대상에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 없었다. 부자와 빈자의 구별이 없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도 않았다. 인심은 흉년의 유가 아니었다. 난리가 났다면 피난이나 가지 하고 사람들은 절망했으며 희망을 미신에 걸어보는 것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3>, p296/518 


 질병으로 인해 생기는 절망, 그리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뀌려는 노력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 ~ 1960)의 <페스트 La Peste>에도 잘 표현된다. 천형(天刑)과도 같은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에 좌절 후 희망을 품어보지만, 결국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 마치 죽음을 선고받은 환자의 모습처럼 페스트가 퍼져가는 오랑의 시민들은 변해간다.


 그때에 그들의 용기와 의지, 그리고 인내의 붕괴는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그들 스스로 영원히 그 수렁에서 다시 기어 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가 자유로워질 시기를 결코 생각지 않고, 이제는 더는 미래를 바라보지도 않으며, 말하자면 늘 두 눈을 내리깔려고 무척 애쓰고 있었다.(p134)... 이와 같이 그들은 아무 소용도 없는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모든 유형수의 깊은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그들이 끊임없이 되새기곤 하는 그 과거조차도 후회의 쓴맛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_ 알베르 카뮈, <페스트> , p135/574


 그들은 까닭 없이 괴로워하기도 하고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러한 극도의 고독 속에서 결국 아무도 이웃의 도움은 바랄 수 없어서 각자가 혼자서 근심해야만 했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우연히 자기 속내를 털어놓거나 모종의 감정을 말해도, 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대답은 어떤 종류건 대개 불쾌감을 주는 것이었다. _ 알베르 카뮈, <페스트> , p140/574


 <페스트>의 오랑 시민들은 외부로부터 차단된 고립된 곳에서 죽음의 공포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 ~ 1375)의 <데카메론 Decameron> 속 주인공들은 사뭇 다른 처지에 있다. 피렌체에 흑사병이 닥쳤을 때 이들은 질병을 피해 멀리 시골로 떠나 다른 세계에서 죽음의 위협을 피할 수 있었다. 마치 영화 <엘리시움 Elysium> 속의 피난처와 같은 곳으로 떠난 7명의 귀부인과 3명의 청년은 올림푸스 산에서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는 불멸의 신과 같이 필멸의 인간들의 사회를 마음껏 비웃으며 즐겁게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어갔다.


 집착인지 오만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원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앞서 그랬고 그러듯이 이 지역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p23)... 그곳에서 이성의 경계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 쾌락을 맛보자는 것이지요. _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1> , p24/335


 유쾌한 10일간의 이야기와 함께 하면서 그들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그들을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여유를 주었지만, 이러한 여유의 끝이 어땠는가는 분명치 않다. 개인적으로 <페스트>와 같은 지옥도와 같은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진다면, 10일간의 천상생활이 가져다 준 여유는 하룻만에 날라가지 않았을까. 그들의 여유는 언제까지나 죽음의 파도로부터 자유로운 곳에서 나온 것이었을테니까.


 인간의 지혜란 단순히 지나간 것들을 기억하거나 현재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지혜로 평가되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앎으로써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라고 현자들은 말합니다. 아시다시피 그 무서운 흑사병의 계절이 시작된 뒤로 우리는 음울하고 고통과 불안으로 가득 찬 거리를 피해 피렌체에서 도망쳐 나왔고, 우리의 건강과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피난처를 구해야 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이에서 정숙함과 화합 그리고 친밀함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저는 보고 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여러분과 저의 참으로 소중한 명예이자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_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3> , p280/318


 카뮈의 <페스트>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페스트(흑사병)이 가져다 준 공포와 이로 인해 고립된 인간이 느껴야 하는 절망과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희망의 끈을 잡으려 하지만, 계속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암울한 상황을 잊을 때 뿐이고, 이를 정면으로 맞아야할 때 인간과 공동체는 과거와는 다르게 변화할 수 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점을 생각해본다면, 어머니와의 이별로부터 연속적으로 닥친 불행에 고스란히 몸을 맡겨야 했던 <토지>의 어린 서희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슬픔과 함께 자신 또한 느꼈을 호열자에 대한 공포, 그리고 자신을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등  복잡한 감정을 어린 서희가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마음 깊이 자리잡은 이러한 마음이 이후 최씨 문중의 증흥을 위해 친일(親日)까지도 꺼리지 않았던 그의 행보를 이끌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몇 해 동안 연이어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바우 내외만은 명대로 살다 갔다 할 수 있었으나 최치수의 죽음, 귀녀의 죽음, 집안 식구는 아니었지만 불에 타죽은 또출네 하며, 죽음치고도 비참한 그들 비명을 보았건만 새로이 직면하는 죽음은 여전히 하인들 가슴에 전율을 일게 한다. _ 박경리, <토지 3>, p260/518


앞서 말한 독서챌린지 미션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 <토지>를 읽으며

: 지나간 우리네 삶과 수난을 씁쓸하게 맛본다

: 박경리 작가는 작품 안에 이들을 잘 녹여냈구나

: 경건한 마음으로 책을 다시 꺼내든다

: 리해(이해)를 하려면  아직 멀었지. 가다보면 가까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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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14 2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행시 훌륭하십니다 ㅎㅎ 데카메론. 짠돌이 오빠가 돈 주고 사와서 몰래 읽던 책이 데카메론과 즐거운 사라? 였지요 ~ 민음사에서 데카메론이 나왔군요. 휴일 즐겁게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21-08-14 22:5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mini님. 그런데 정말 미션 아니었으면 공개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다른 분들 삼행시 등을 보면 바로 잘도 짓던데... 저도 예전에 동서문화사 판으로 읽었는데, 민음사에서 나온 것으로 읽으니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mini님께서도 즐거운 연휴 되세요! ^^:)

붕붕툐툐 2021-08-14 22: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행시 정말 너무 좋은데요?😍
저도 페스트 읽어서 리뷰 남기려고 했는데 괜히 너무 반가워요~헤헤~
(데카메론은 넘사벽!ㅋ)
저도 토지에서 호열자로 사람들 죽어나갈 때 너무 안타까웠어용~~ 그걸 또 이렇게 엮어 읽으시다니~👍
한 수 배워갑니다~

겨울호랑이 2021-08-14 23: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붕붕툐툐님. 이번 미션은 저도 5행시만으로 넘기려 했는데, 읽은 부분이 또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주인공 서희에게 매우 결정적인 장면인지라 페이퍼를 쓸 수밖에 없었네요. 또 전염병하면 빠질 수 없는 두 작품을 함께 펼쳐봤습니다. 이런 기회 아니면 또 언제 해볼까 싶기도 합니다. 붕붕툐툐님께서도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

잠자냥 2021-08-14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해가 아주 잘 되는 5행시였습니다! ㅋㅋㅋ

겨울호랑이 2021-08-15 00:16   좋아요 1 | URL
제가 봐도 마지막 글자는 상당히 억지스러웠습니다... 두음법칙 피해서 ‘리본으로 책을 잘 묶어야지‘ 도 생각했습니다만 더 이상하더라구요... ㅜㅜ
 


 달구지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길상은 생각에 빠져서 자신이 달구지를 타고 있다는 것을, 읍에 심부름 가고 있는 길이라는 것을 거의 잊었다. 꾸불꾸불 밀려오는 물굽이가 바닷가의 방죽을 치고 또 치는 것처럼 잇닿아 밀려오는 공상은 그에게 다시없이 감미로운 것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수많은 생각들은 마치 만화경같이 찬란하고 다양했다. 갖가지 빛깔이 있는가 하면 갖가지 소리가 들려오고 과거에서 미래까지 추억과 꿈은 마음대로 끝도 시작도 없이 그의 생각 속 넓은 공간을 비상하는 것이다. 추억의 창문에서는 어느 길모퉁이에서 들었던 소슬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고 장님이 불고 가던 피리 소리가 들려왔고 범패(梵唄)소리, 새벽 산사에 울리던 장엄한 인경 소리가 들려왔고 강물을 건너오는 뱃사공의 노랫소리, 추억의 창문에서 명주 수건으로 감싼 월선아지매의 얼굴이 보였다. 월선아지매의 모습은 별당아씨의 뒷모습으로 변해갔고 산을 바라보던 슬픈 그 구천이의 옆얼굴이 나타났다. (p114/518) _ 박경리, <토지 3>


 어느새 토지 독서챌린지에서 <토지 3>를 읽고 있다. 아버지 치수의 죽음과 조준구 일가의 등장으로 긴장감이 서서히 생기는 도중에 달구지를 타고 가는 길상의 상상에 눈이 멎는다. 수많은 생각들이 이어지면서 만들어 내는 시각(視覺), 청각(聽覺)의 이미지. 절에서 자란 길상의 과거와 현재 최참판 댁 몰락의 전조인 별당아씨와 구천의 도피까지 현재에 이르는 이미지들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 ~ 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쪽으로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Du cote de chez Swann>의 유명한 마들렌 과자를 먹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그 추억이 왜 나를 그렇게 행복하게 했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아내는 일은 훨씬 후로 미루어야 했다.) 아주머니의 방이 있던, 길 쪽으로 난 오래된 회색 집이 무대장치처럼 다가와서는 우리 부모님을 위해 뒤편에 지은 정원 쪽 작은 별채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집과 더불어 온갖 날씨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마을 모습이 떠올랐다. 점심 식사 전에 나를 보내던 광장이며, 심부름 하러 가던 거리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지나가곤 하던 오솔길들이 떠올랐다. 일본사람들의 놀이에서처럼 물을 가득 담은 도자기 그릇에 작은 종잇조각들을 적시면, 그때까지 형체가 없던 종이들이 물속에 잠기자마자 곧 펴지고 뒤틀리고 채색되고 구별되면서 꽃이 되고, 집이 되고, 단단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_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p54/226


 마들렌 과자의 미각(味覺)이 불러온 수많은 추억과 이미지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 ~ 1995)는  이 장면을 '기호'로 받아들인다. 들뢰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기호'안에 숨겨진 의미(진리)를 찾는 과정으로 인식하는데, 미래를 향한 '찾기'의 과정에서 이러한 기호들은 필연적인 관계를 맺는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이 장면들은 아름다운 몽환적 이미지의 표현이 아닌 작품 전체에 대한 과제 부여의 성격이 강하다.


 세번 째 세계는 인상 혹은 감각적 성질 qualites sensibles의 세계이다. 어떤 감각적 성질은 우리에게 야릇한 기쁨을 주는 동시에 일종의 <명령>을 전해 준다. 이런 식으로 체험된 성질은 더 이상 그 성질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대상의 속성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가 해독하려고 시도해야만 하는 <완전히 다른> 대상의 기호로 나타난다.(p34)... 우리는 이 성질, 이 감각적 인상을 마치 물 속에 넣으면 열려져서 갇혀 있던 형태가 드러나는 일본 종이처럼 펼쳐 낸다. 이들은 모두 동일한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 우선 특별한 기쁨이 찾아오고, 그 결과 이 기호들은 그 직접적인 효과로 인해 이전 상태[기쁨을 주기 이전의 사물들'과 구별된다. 다른 한편 이 기호의 의미를 찾기 위한 사유 작업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느껴진다. 그러고 나서 우리에게 숨겨진 대상을 건네주면서 기호의 의미가 나타난다 (마들렌이 콩브레를, 종탑들이 소녀들을, 포석들이 베니스를 건네 주는 식으로 말이다.) _ 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 p36


 그렇지만, 이에 대한 온전한 해석은 작품 끝에 <되찾은 시간> 전까지 미뤄진다. 그 전까지 독자들은 마들렌 과자로부터 시작된 기호들의 의미를 '사교계', '사랑의 그룹', '기호의 세계' 라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잃어버리는 시간', '잃어버린 시간', '되찾는 시간', '되찾은 시간'이라는 다른 시간선들의 교차에서 끊임없는 미로를 헤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 모든 여행의 끝은 '되찾은 시간'에서 비로소 풀려나간다.

 


 마들렌 과자의 도취 상태가 마지막의 현시를 미리 암시하는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것은 추억의 문을 열어준다는 장점, 그리고 콩브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되찾은 시간>의 첫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되찾은 시간>을 모르고 이 작품을 읽어가는 독자의 눈에는, 콩브레 이야기로 옮겨가는  것은, 인위적으로 수사학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가장 단순한 서술적 관례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번째 독서에 이르러 내용을 보다 잘 알게 되면, 서재에서의 사색이 마침내 깨닫게 된 소명을 검증하는 시기의 되찾은 시간을 열어주는 것처럼, 마들렌 과자의 도취 상태는 유년기의 되찾은 시간을 열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작과 끝의 이러한 균형은 작품 구성을 주도하는 원칙임이 드러난다. _ 폴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 2>, p284 


 해석자는 마들렌이나 종탑의 경우에서 자신의 이해가 미치지 못했었던 것에 대해 "찾기"의 끝 부분에 와서 비로소 이해한다. 즉 물질적 의미는 그것이 구현하는 관념적 본질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_ 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 p37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토지 3>의 길상의 생각 장면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사실, 별 관련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논의를 진행시켰으니 조금 더 나가보자. 이어지는 생각 속에서 길상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과거 절에 있었던 시기를 생각하면서 부처님도 자신을 공포로부터 구원하지 못했음을 두려워하며 달구지 위에서 잠을 깨어난다.

 

 이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영상을 내버려두고 길상의 생각은 별안간 달음박질쳐서 엉뚱한 곳으로 간다. 어느 한낮에 꾼 꿈으로 날아갔다. 다시 뛰어서 우뚝 멈춘 곳은 숲 속이며 개울가였다. 쭈그리고 앉아서 물맴이가 도는 것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무서워졌다.... 길상은 자신이 달구지 위에 있음을 깨달았다.(p115/518) _ 박경리, <토지 3>


 그리고,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길상은 평사리가 아닌 간도에서 자신의 생각 속에서 스쳐갔던 인물 김환(구천)을 다시 만난다. 그 전에 자신이 알지 못했던 구천 출생의 비밀과 서희와의 관계가 이 만남을 통해 밝혀지게 되고, 이를 통해 과거 구천에 대한 경외(敬畏)감이 재생되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진리 찾기'와 '되찾은 시간'이 완성되었다고 본다면 무리가 있을까. 구천은 달구지 위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통해 '별당아씨 - 구천'의 관계라는 '기호'를 무의식 중에 부여받았다면, 객줏집에서 만남을 통해 '되찾은 시간' 속에서 출생의 비밀이라는 진리와 '기호'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십 년 세월만 무서운가? 이 무서운 인연들. 목구멍으로 술이 타고 내려가는데, 뜨거운 빼주가 넘어가는데 머릿속이 차츰 맑아온다. 선명하게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지난 일들이 새롭게 눈앞을 지나가고 있다. 소년 길상이는 구천이를 두려워했다. 쥐어박히며 탱화 그리기를 가르치는 혜관보다 남몰래 손짓하여 데려가서는 글을 가르쳐주던, 말이 적고 엄격해 보이던 사람.(p447)...  "별당아씨가 어떤 여자던고? 어떤 여자였던고...... 버릴래야 버릴 수 없었던, 현세와 하늘에 순명할 수 없었던 사람, 땅을 끊을 수 없었던 초나라의 굴원(屈原)은, 그 굴원은 돌을 안고 멱라(汨羅)에 빠졌건만, 그 기나긴 방류(放流)도 끝이 났건만 어찌 나는 살아 있는가." 한 사나이가 어둠 속에서 통곡하고 있었다.(p360/518)... 꿈도 멀어져갔다. 빛깔과 빛깔이 난무했다. 우관스님이 거기 서 있는 듯했으나 그 모습도 사라졌다. 길상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객줏집 안방에 누워 있는 것을 알았다._ 박경리, <토지 8>, p457/656 


 구천과의 만남을 통해 '기호'의 의미로부터 해방된 길상의 모습은 이후 길서상회를 정리하고 간도에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려는 서희와의 이별 장면에서 잘 표현된다.  구천과의 만남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별당아씨 - 구천'의 사랑을 인정하는 길상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서희. 서희는 남편 길상과 함께 돌아가려 하지만, 길상은 이런 서희 곁을 떠나고 만다. 마치, <갇힌 여인>의 알베르틴이 화자의 곁을 떠나듯. 상처입은 아름다운 나비 서희의 여행은 그래서 <토지> 이후에도 계속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보복을 하기 위해서...... 별당의 그 여자를 유인해 갔다 그 말씀이시오?" 목에 잠겨 몸부림치듯 서희는 말을 밀어내었다. "그것은 사랑이었소." 서희는 절을 향해 갈 때마다 그 일을 생각한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후에 길상은 떠났고,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으며 용정촌에는 풍문이 돌았다. 법당으로 들어가는 모시옷의 최서희, 그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상처입은 나비같이, 그래도 그는 아름다웠다._ 박경리, <토지 8>, p618/656


 사실 갇힌 사람은 알베르틴이 아니라, 자신의 질투와 의혹에 갇힌 화자이다. "질투는 상상력의 실패이며(......) 질투를 이야기로 구성하는 것은 사랑의 아픔에 맞서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라는 크리스테바의 말처럼, 어쩌면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알고 싶은 그 미친 듯한 욕망인 질투를 통해, 비록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관계되는 지극히 내밀한 몸짓과 시선이라 할지라도 끝도 한계도 없는 탐색 작업을 통해 그 미세한 내면의 사건을 이야기로 재구성하려는 고통스러운 여행을 감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_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p279/336 작품 해설 中


ps. 스스로 생각해도 논리 전개가 상당히 무리하고 관련없는 두 작품을 끌어다가 페이퍼를 작성한 듯 하지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재미로라도 두 대작(大作)과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되었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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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07 1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토지>와 <일.시.찾>의 콜라보라닛~ 생각도 못한 조합에 그저 입이 쩍벌어집니다.
아니 내가 떠올랐음 그런거죠~ 논리 따윈 필요 없습니다.(논리가 부족하단 말은 절대 아님~ㅋ)
토지문화재단에서 겨울호랑이님이 챌린지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할 듯하네요~👍

겨울호랑이 2021-08-07 13:1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붕붕툐툐님 덕분에 좋은 프로그램 알게 되었고, 쏟아지는 과제(?)를 하다보니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어 좋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바람돌이 2021-08-08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지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고 들뢰즈까지...
우와 대단한 연결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1-08-08 06:55   좋아요 0 | URL
사실 들뢰즈의 「프루스트와 기호」에서두 작품의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연결이 기발했다면 공은 들뢰즈 몫이고, 무리했다면 제 부족함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야망 때문이 아니었다. 보복 때문이다. 서희가 얼굴에 침을 뱉었을 적에 귀녀는 보복의 칼을 갈았다. 이제는 그 칼을 내려침에 주저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미 죽이기로 작정하였고 죽일 것을 주저했던 귀녀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귀녀는 만석꾼 살림보다, 아니 백만석의 살림보다 여자로서 물리침을 당한 원한이 더 강하였다. _ 박경리, <토지 2>, p556/688


 개인적으로  <토지 2>에서 가장 긴박감이 넘치는 부분은 최치수의 죽음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도망간 구천이를 잡기 위해 신식총도 구입하고, 수동이와 강포수를 데리고 근처로 인간사냥을 나가기도 한 그였으나, 정작 덫에 걸린 것이 그 자신이었다는 것은 비극이자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치수를 직접 목졸라 죽인 사람은 평산이었으나, 평산을 조종한 이는 귀녀요, 귀녀에게 보복감을 심어주어 결행하게 만든 이는 서희였다는 인과관계를 따지고 보면, 서희가 치수의 죽음의 방아쇠를 당겼다고 봐야할 것인가. 그런 면이 없진 않겠지만, 아버지 죽음의 계기를 어린 서희에게 묻는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게도 느껴진다. 서희의 거친 행동이 방아쇠를 당기긴 했을 지언정 자신을 '욕망'이라는 화약창고로 만든 것은 귀녀 자신일테니까.


 비단과 누더기를 구별하는 따위의 자존심, 야수 같은 강포수에의 허신과 인간쓰레기 같은 칠성이와의 동침을 거치면서 마지막까지 최치수에게 여자 대접을 받고자 하는 희망은 애정일까 허영일까 또는 집념일까. 악업(惡業)을 쌓기 위해 목욕재계하고 동자불 앞에서 도움의 기도를 올리던 귀녀, 모든 것은 밖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고귀함도 염원도 사랑도 밖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2>, p556/688


 만석꾼 집의 대를 잇는 아이를 낳겠다는 귀녀의 욕심은 제프리 버튼 러셀 (Jeffrey Burton Russell)의 <메피스토펠레스 mephistopheles>에서 소개된 조르주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 1888 ~ 1948)의 작품 세계관을 떠올리게 한다. 치수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규정할 수 없는 귀녀의 욕망의 끝은 시작부터 이미 어둠으로 향한 것은 아니었는지.


 악은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낸 범주만이 아니라 그 궁극적인 특성이 무와 부동성인 실재하는 것이다. 악은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근본적으로 이해 불가능하다. 악의 중심은 공허이다. 이러한 무는 우리들의 정신에 침투해서 지옥에 동참할 것을 유혹하면서 덩굴 같은 손을 뻗치는 무한한 차가움이다. 인간의 악이 비밀스런 원천으로서 무는 신에 대한 증오와 죽음에 대한 사랑이 스며나오는 의식의 가장 깊은 부분에 숨어 있다... 무에 대한 욕망은 우리 안 깊은 곳에 심어져 있고, 그러한 영향 하에서, 우리는 시선을 빛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돌려서 어둠만을 볼 수 있게 되고 그 자체를 위해 어둠을 택할 수 있다. _ 제프리 버튼 러셀, <메피스토펠레스>, p447


 그리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탄 귀녀는 멈추지 못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의 형식을 만들어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처음에는 치수에 대한 동경과 사랑으로부터 출발했을지도 모를 감정이 자신의 욕망과 결합하면서 작가는 '악마'의 모습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로부터 악마를 보았다.


 한 개인은 살면서 수없이 악을 지각하게 된다. 그 각각의 경험은 이전에 축적된 지각들(Pn)에 의해 부분적으로 형성된 새로운 P를 하나하나 추가하면서 사건과 구조가 이전과 같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생겨난다. 각각의 새로운 지각은 이미 가지고 있는 축적된 지각을 수정하거나 강화한다. 정신 속에 일반적인 악의 형식(F)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 개인의 지각은 여러 해 동안 결합되어 하나의 집합이나 저장소가 된다. Pn -> F. 사람은 이러한 일반적인 개념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심리학적인 지식이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 환경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들 - 신화, 시, 그림, 도덕 신학, 사회적인 용어 등 - 로 형식화한다. 악에 대한 지각은 종종 악에 어떤 패턴이나 통일설이 있다는 생각을 초래하기도 하면서, 악의 인격화라는 생각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_ 제프리 버튼 러셀, <데블>, p55


 "귀녀를 강포수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하는 날에는 만사는 휴다. 야망은 모래무덤같이 허물어지고 말 것이며 배속의 아이는 쓸모없는 핏덩이, 숲 속에나 내다 버릴 물건밖에는 되지 못한다. 수동이를 나귀 등에 싣고 돌아오던 날, 그 황망한 중에 돌아왔다는 인사를 올린 후 아직 한 번도 최치수 모자는 상면한 일이 없다. 그러니까 강포수에게 귀녀를 주겠다는 말을 했을 리 없고 그렇다면 때는 늦지 않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귀녀의 이빨 사이에서 무서운 소리가 새나왔다. 악마의 얼굴이요 악마의 미소요 악마의 희열, 복수의 화신. _ 박경리, <토지 2>, p432/540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향한 귀녀의 의식(儀式) 속에서 경건함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일시적인 속된 행동을 통해 남은 여생이라는 영원의 평안함을 위한 귀녀의 행동. 속(俗)에서 성(聖)을 향한 경건함이 '목욕재계'라는 의식으로 나타났다면, 그러한 성(聖)의 속성이 선(善)일수도 때로는 악(惡)일수도 있겠다...


 악마는 신들만큼이나 종교적인 의미를 상당히 드러낸다. 사실, 악마를 경험해서 생긴 감정은 선한 신을 경험하고 얻어진 감정만큼이나 엄청난 것이다. _ 제프리 버튼 러셀, <데블>, p37


 지난 주에 읽은 부분 중에서 귀녀의 욕망만큼이나 시선이 머물렀던 부분은 김평산의 부인 함안댁의 죽음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함안댁의 죽음 직후 보인 사람들의 행동에 의식이 멈춘다. 이웃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에서 빠르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모습 속에서 자신 이외의 죽음에는 무감각한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과 함께 민간신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함안댁이 목을 매고 죽은 것이다... 어느새 나무 밑으로 몰려들었다. 바우랑 붙들이, 마을의 젊은 치들도 덤비듯이 쫓아왔다. 모두 엉겨붙어 나뭇가지를 꺾어 간수하기에 바쁘다. 순식간에 나무는 한 개의 기둥이 되고 말았다... "이기이 만병에 다 좋다 카지마는 그 중에서도 하늘병(간질)에는 떨어지게 듣는다 카더마."... 죽은 사람의 정기를 받아 약물(藥物)이 된다는 믿음에서 모두들 덤벼들어 꺾은 것인데 죽은 나무여서 과연 정기가 통하겠느냐는 아낙의 의심이다. 병에 효험이 있기로는 목을 매단 끈이나 새끼줄이 제일이라는 것이 예부터 전해져 내려온 말이었다._ 박경리, <토지 2>, p652/688


 목매달아 죽은 이가 사용한 나무가 간질에 효험이 있다는 민간신앙(民間信仰). 이를 우리는 일제 식민시대 학자 무라야마 지쥰(村山 智順, 1891 ~ 1968)의 <조선의 귀신 朝鮮の鬼神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간질과 관련한 여러 민간 치료법에는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치료법들이다. 


 간질에는 지진동이 있을 때 문창호지를 잘라두었다가 발생 당시 그 종이를 태워서 물에 복용하면 발병하지 않는다.(p384)... 간질에는 남자에게는 여음을, 여자에게는 남근을 잘라서 먹인다. 목매어 죽는 데 쓰인 적이 있는 나무껍질을 벗겨서 달여 마신다. 매장된 시체를 파내서 먹는다. (사람이 알게 되면 죽는다.) 인육을 먹는다. 인분을 건조시켜 달여서 마신다. 인골을 분말하여 음용한다. 사람의 정액을 마신다. 열흘에 한 마리씩 잡은 모기 세 마리를 말린 후 분말하여 복용한다. 어린아이가 이 병에 걸렸을 때는 닭의 볏에서 나오는 피를 마시게 한다. _  무라야마 지쥰, <조선의 귀신 > , p391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위와 같은 방법이 만약 효능이 있었다면 위약(僞藥, placebo)효과 정도나 있었을까. 같은 상황에서 민간요법의 치료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것이 과학(科學)덕분이라는 생각까지는 쉽게 미치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는 과학이 우리에게 던져준 다른 과제 때문일 것이다. 과학, 자본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환경문제, 인간소외 문제에 대한 답을 이제는 동양사상에서 찾고 있는 현실 때문이 아닐까.. 앞서 조르주 베르나노는 무(無)에서 허무, 악을 발견했지만, 노자(老子, BC 604 ? ~ ?) 는 무에서 유(有)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찹은 것처럼 분명 '달의 뒷면'을 보여주는 통찰이 동양사상에는 있으니까 말이다.


 고묘 顧墓는 불안한 상태에 놓인 유해의 영혼이 직접 그 자손에게 재액을 준다는 신앙이다. 바꾸어 발하면 각종의 재액과 질병의 원인이 좋지 못한 곳에 매장한 유해 때문이라 생각하고 이 불량상태를 개량함으로써 그 병원을 근절시키려는 것이다... 이는 받아야할 것을 받지 못하여 생기는 재액/질병이다. 이 양자에게 공통되는 받아야 할 것은 생기이다. 만물은 생기 生氣에서 생겨나고 이 생기를 받는다는 것은 번영을 뜻하며, 이것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망한다는 의미다. 이는 중국에서 전래된 생기신앙으로서, 고묘법은 이 생기신앙와 귀신신앙이 연결되어 나타난 예이다. _  무라야마 지쥰, <조선의 귀신> , p412


 우리는 치료를 위해 인육(人肉)을 먹는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있어 조선 시대를 야만의 시대로 생각하게 되지만, 루신(魯迅, 1881 ~ 1936)의 소설 <광인일기 狂人日記> <약  藥>에서 보듯 식인 풍속이 우리 문화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라는 점과 굶어죽을 위기에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어느 문화권에서도 전승되는 소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를 반드시 미신(迷信)이나 후진 문화로 치부할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그렇다고 비극의 깊이가 얉아지는 것은 아니겠고, 이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오늘날의 의학(醫學) 역시 완전한 것은 아닌만큼 보다 나아지려는 문명(文明)화 과정 중 일부로 여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생각할 수 없네. 4 천 년 동안 수시로 사람을 잡아먹던 곳, 나도 여러 해 동안 그 속에서 함께 살아왔다는 것을 오늘에야 비로소 명백히 알았다. 큰형님이 바로 집안일을 관리하고 있을 때에 마침 누이동생이 죽었으니, 큰형님이 밥이나 반찬 속에 섞어 우리에게 몰래 먹였음에 틀림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이동생의 고기 몇 점을 먹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는 내 자신의 차례다... _ 루쉰, <루쉰 소설 전집> <광인일기>, p48/1006


 "이봐! 돈 내고 물건 받아요!"

 온몸이 시커먼 사람이 라오수안 앞에 불쑥 나타났다. 두 자루 칼날 같은 눈초리에 라오수안은 질겁을 하여 몸이 반으로 오그라드는 듯했다. 그 사람은 커다란 한쪽 손은 그를 향해 벌리고, 한쪽 손에는 시뻘건 만두를 움켜쥐고 있었다. 시뻘건 것에서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으로 누구의 병을 고치려는 거요? _ 루쉰, <루쉰 소설 전집> <약>, p68/1006


 요약하자면, 지난 주에 읽은 <토지>독서 내용은 악(惡)과 무지(無知)로 정리될 듯하다. 우리가 자각하는 악(惡)과 마찬가지로 무지(無知) 역시 절대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으로부터 인지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실체 속에서 '절대선' 또는 '절대진리'가 아니라 '보다 선함'과 '보다 참됨'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 삶의 과정이고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를 <토지 2>의 치수와 함안댁의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악마란 호전적인 힘이 인간적으로 또는 신적으로 구체화된 것이고, 이러한 호전적인 힘이 우리 의식의 밖에서 지각된 것이다. 이러한 힘 - 우리 스스로는 이러한 힘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듯하다 - 은 외경, 불안, 두려움, 공포와 같은 종교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_ 제프리 버튼 러셀, <데블>,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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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구월 동학군은 남접과 북접이 호응 합세, 항일구국의 대전선을 결성하여 또다시 일어섰으나 십이월에 들어 연이은 패전으로 동학군이 완전 붕괴되고 농민전쟁이자 민족전쟁인 갑오 동학란의 비극의 막이 내려졌을 때 살아남았던 환이는 추적의 눈을 피하여 방랑하다가 백부인 우관선사를 찾지 아니하고 최참판댁 문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윤씨는 김개주가 전주 감영에서 효수되었다는 말을 문의원으로부터 들었을 때, 무쇠 같은 이 여인의 눈에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_박경리, <토지 2>, p100/540


 <토지 2>에는 여러 인물들의 죽음이 나온다. 최치수, 윤씨 부인 등등 대하소설의 초반부에 서희를 둘러싼 여러 어른들이 빠르게 퇴장하면서 서희가 독립적인 인물로 성장했겠지만, 개인적으로 인물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 중 서희의 할머니 윤씨 부인은 여러 면에서 비극적인 인물이다. 집안인 윤씨 가문은 서학(西學) 천주교로 인해 풍비박산나고, 자신은 동학(東學) 군 장수 김개주에게 겁탈을 당해 죄의식 속에 살아야 했다는 점에서 윤씨 부인은 근대시기 조선시대의 비극을 한몸에 진 인물이라 할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진 윤지충(尹持忠, 1759 ~ 1791)의 본관이 해남(海南)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윤씨 부인의 본관이 해남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잠시 해보지만, 별 근거는 없다. 해남 윤씨 가문과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형제들 그리고 한국 천주교회사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살펴보도록 하고([토지독서챌린지]는 장기 프로젝트이니만큼 조기에 소재를 고갈시켜서는 안된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윤씨 부인에게 개인적인 불행을 안겨 준 김개주라는 인물에 집중해 보자.


[사진] 김개남(출처 : 위키백과)


 사실, 김개주는 김개남(金開南, 1853 ~ 1894)이라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다. 전봉준(全琫準, 1855 ~ 1895), 손화중(孫華仲, 1861~1895)과 함께 동학농민혁명 당시 3대 지도자로 꼽힐만큼 뛰어난 인물인 김개남은 매우 과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남원(南原)을 주로 거점으로 한 그의 행동은 <토지>에서도 냉혹한 농민군 장수의 모습으로 잘 재현되었다. 과감한 농민군 장수였던 김개주는 분명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역사 속 인물 김개남은 이상적인 지도자는 아니었다.

 

김개남은 김학진의 화약 제의가 미지근하다고 여겨 거절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왕 노릇을 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임금처럼 받들게 하면서 왕의 제복을 입고 왕에 걸맞은 호칭을 썼다 한다. 김개남은 남원부사를 죽여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p241)...  전라도 김개남포에서 지휘하는 집강소의 경우 이런 폭력적 방법이 자주 동원되었다. 그들은 부호들에게 동의나 협조를 구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군수품을 모아들였다. 남원은 양반 부호의 수난이 가장 심했던 곳으로 말을 듣지 않으면 서슴없이 죽일 정도였다. 김개남은 남원부사 이용헌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그를 죽여버렸다._이이화,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p283


 뒤늦게 삼례로 나온 김개남은 전봉준의 후원이 되어 뒤따라 은진으로 올라왔고 청주병영 공격에도 나섰다. 하지만 김개남의 독자적이고 과격한 태도는 연합전선 형성에 차질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_이이화,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2>, p101

 

 야마구치 대대장은 문 안으로 들어가서 국왕 고종과 대면하고, 다음과 같이 구두로 전했다... 국왕은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다. 일본군은 조선병 일소와 무장해제를 완료하고, 궁전 주위에 초병을 세웠다. 이렇게 오전 9시가 지났을 즈음 국왕과 왕비는 확보되었고, 경복궁은 일본군이 완전히 제압했다. 통상적으로 청일전쟁(淸日戰爭)이라 부르는 전쟁은 바로 이때 시작되었다._와다 하루키, <러일전쟁 1>, p218


 갑작스럽게 모인 농민군에게 과감하고 결단력있는 지도자가 요구되었을 것이고, 김개남은 이러한 농민군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왕을 참칭(僭稱)하는 오만한 모습은 다소나마 동학농민군에 대해 긍정적이었던 중도/지배층에게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지 않았을까. 실제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에는 동학농민군에는 농민뿐 아니라 중간 계층의 지주, 일본의 경복궁 점령에 분노한 유생, 관리들도 일부 합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개남의 과격하고 오만한 행동이 요즘말로 중도층의 이탈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을까. 보다 폭넓게 외연 확장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그는 분명 한계가 있는 인물이었다. 


 "동학은 이 나라의 마지막 힘이었소." "오합지졸이었지요." "식자들은 그 이유를 왜 깨닫지 못했을꼬?" "살생과 약탈이었지요. 왜적에게 대항하겠다는 기특한 생각 말고는."_박경리, <토지 2>, p163/540


 다른 한 편으로, 과감함을 넘어서 오만함까지 느끼게 하는 김개남의 행동은 태평천국(太平天國, 1851~1864)의 동왕 양슈칭(東王 楊秀淸, 1821~1856)을, 젊은 나이에 죽어 민가에 영웅이 된 익왕 스다카이(翼王 石達開, 1831 ~ 1863)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김개남 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두 혁명 사이에 유사점과 차이점을 찾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가까운 시일에 조너선 스펜스 (Jonathan D. Spence)의 <신의 아들 洪秀全과 太平天國>로 정리할 예정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로 넘기겠지만, 두 혁명 사이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간략하게 짚고만 넘기자. coming soon. 


 봉건 모순에는 불평등한 신분제도와 불균형한 토지제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신분 차별과 일부 특권층의 토지 소유 및 농업생산의 독점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였다. 이런 불평등하고 불균형한 제도를 타파하려는 민중 봉기는 역사의 추진 동력이 되었다. 여기에는 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이를 개혁하지 않고는 평등과 인권을 추구하는 근대를 지향할 수 없었다._이이화,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 p7


 김개남은 이후 동학농민혁명 말기에 친구의 배반으로 붙잡혀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처형당하게 되면서 삶을 마감한다. 다른 주장에 따르면 '새야 새야'의 녹두장군이 전봉준이 아닌 김개주라는 의견도 있지만, 진위 여부는 알기 힘들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가 사랑받았던 농민군 지도자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때문에, <토지>에서 그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흘렸던 윤씨 부인의 눈물은 반드시 한 남자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을 것이고, 윤씨 부인만의 눈물도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개남은 이 마을에 사는 친구 임병찬의 밀고로 체포되어 전라감영으로 압송되었다. 한 사람은 옛부하, 한 사람은 옛친구의 밀고로 12월 2일 한날에 잡혔다. 묘한 인연이요, 운명이었다.(p316)... 개남이 잡혀갈 때 백성들은 "개남아 개남아 진개남아(호남에서는 김을 진으로 발음한다. 이는 김제를 진개라 부르는 것과 같다). 그 많던 군대 어데 두고 짚동우리가 웬 말이냐?" 또는 "개남아 개남아 진개남아, 수많은 군사 어데 두고 전주야 숲에는 유시(遺屍)했노"라는 노래를 부르며 안타까워했다. 지금 그의 무덤은 남아 있지 않고 다만 효수된 사진만이 전해진다._이이화,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2>, p317


  <토지>에서 김개남이라는 인물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윤씨 부인, 아들 환이를 통해 회상되거나 언급되는 지난 시대의 인물이지만, 그가 남긴 핏줄과 정신은 주인공 서희를 보이지 않은 곳에서 도와주는 힘으로, 일본에 저항하는 투쟁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김개남, 아니 김개주를 살펴보는 것은 <토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물소개]에 담긴 김개주의 설명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김개주 : 중인출신이며 우관스님의 동생. 우관선사가 있는 연곡사에 휴양차 와 있는 동안, 그곳에 불공드리러 온 윤씨부인을 겁탈하여 아들 김환을 얻는다. 동학혁명이 한창일 무렵 무리를 이끌고 최참판가에 와서 윤씨부인에게 은밀히 환이의 성장소식을 전하며, 환이에게 생모의 존재를 알려주고 떠난다. 후에 혁명의 허무감과 상민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음이 아들인 김환의 회상을 통해 드러난다. 동학농민운동이 진압된 후 전주 감영에서 효수당한다._박경리, <토지 2>, p531/540  [인물소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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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7-25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김개주 실존 인물이 있는지 몰랐어요~ 이렇게 깊이 있게 엮어 읽으시다니, 같은 토지 다른 느낌이네요~ㅋ
김개남에 대해 알게 되어서 좋았어요. 우리나라 동학농민혁명은 여러모로 더 알려지고 연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7-25 16:44   좋아요 1 | URL
저도 잘 몰랐다가 인물의 이름이 비슷해 찾아보니, 다행히 실존인물에서 빌려온 캐릭터였네요. 붕븡툐툐 말씀처럼 동학혁명의 의의를 저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제게 여러모로 의미있는 챌린지가 될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병원 대기실에 꽂힌 「미중전쟁」을 꺼내들었다. 책이 나온 시점이 2017년 12월이니, 다음해 4월 판문점 회담 등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급격한 국제 정세 변화를 겪은 후 2021년에 이 책을 보니 선뜻 ‘미-중 군사충돌‘이 현실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중국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거요.˝

2권 띠지에 적힌 자극적인 문구를 보면서, 세계 최대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의 농산품 수입국이 중국이라는 사실과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에 세계 공장인 중국의 생산품이 대량 수출되는 현실이 대비된다. ‘중국 때리기‘를 통해 인기를 올릴 수 있지만, 중국이 정작 죽어 버리거나 매입한 미국채를 대량 환매할 경우 미국 역시 큰 타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칸트의 ‘영원한 평화‘의 전제 조건 중 하나가 ‘자유로운 교역‘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미-중 전쟁‘이 아닌 ‘미-중 경쟁‘이 더 적절한 소재가 아니었을까. 또는, 문정인 교수의 지적처럼 동아시아에서의 국지전을 했으면 다소 흥미는 떨어지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다만, 이러한 평가는 2021년에 내리는 사후적인 평가이기에 2017년에 책을 쓴 작가에게 이러한 통찰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도 무리가 있다 여겨진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미중전쟁」은 한반도에 배치된 전략무기체계 등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읽는다면 나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무협지와 같은 작품으로 다가온다.

ps.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작계 5027, 작계5015 등 군사 전략과 제원을 고려한 접근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장비의 개별 성능과 실제 운용은 분명 다른 문제지만, 아쉽게도 이런 부분까지 깊이있게 들어가지는 못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록 20여년 전 군사령부 지휘통제훈련으로 경험한 워게임이었지만, 기상조건 등 전장의 돌발 변수가 승패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매우 크다. 때문에 여러 요건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지휘관의 의지와 성능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진행은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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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2 1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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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2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1-06-13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글을 쓰는 데 필요해서 전쟁에 관한 책을 찾고 있어요. 검색해 보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6-13 10:01   좋아요 0 | URL
제 글이 페크님께 도움이 될 지 잘 모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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