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 랭보는 세 번의 커다란 환경의 변화를 겪었다. 도심의 어느 길에서 태어나 3~4개월을 살았고, 그렇게 사는 게 힘들어 집으로 왔으며, 자발적으로 따라온 집에서 시골로 이사를 했다가 다시 한번 더 이사를 해 새로운 곳에서 살고 있다. 녀석이 선택한 삶이 행복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와의 동거가 아닌 길 위의 삶을 선택했다면 진즉에 녀석은 길에서 생을 다했을 것이다.  - P388

대부분의 고양이는 생후 4~5개월 이후 독립을하거나 영역을 떠나는 게 일반적이다. 이보다 더 혹독한 현실은아깽이가 태어나 무사히 성묘가 될 확률이 채 30퍼센트가 되지않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어렵게 성묘가 된 그들의 수명조차 3년 안팎에 불과하다. 열악한 환경과 먹이 부족, 질병과 사고, 인간의 폭력과 학대까지 고양이를 위협하는 요소는 한둘이 아니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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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 FIKA(피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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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는 오직 바다만 경험해야 한다. 바다를 보고 바다의 향을 맡고 바닷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닷물을 만지면서 온몸으로 황홀감을 맛봐야 한다. 바다만큼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즐거움을 주는 것은 드물다. 이처럼 바다가 주는 기쁨을 온전히 느끼려면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야 한다. _ 로랑스 드빌레르, <모든 삶은 흐른다>, p143/228

바다는 여러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끝없는 수평선 너머의 미지에 대한 동경을 주기도, 높은 파도와 폭우로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여름에는 뜨거운 열을 식히는 시원함을 주는 곳으로, 겨울에는 쓸쓸한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바다가 보여주는 서로 다른 모습들은 모두 바다의 얼굴이지만, 우리는 한 순간 바다의 한 면만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어느 하나를 바다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동시에 모두가 바다일 수 있는 것은 바다와 내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바다와 내가 다르지 않고, 내가 바다라는 것을 온전하게 깨달을 수 있다면 바다 너머에 있는 새로움에 대한 동경 대신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세계를 진지하게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도 그때 우리는 삶의 여러 순간에 대한 의미를 매순간 바다에 묻는 대신, 인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도 바람과 해안이 없는 사르가소의 바다처럼 에너지와 희망을 잃어버린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다. 마치 바람이 없어서 움직일 수 없는 배처럼 말이다. 사르가소의 바다는 우리의 삶에 비유하자면 ‘후회’와 같은 것이다. 후회에 사로잡히는 순간, 머리는 복잡해지고 행동은 느려진다. _ 로랑스 드빌레르, <모든 삶은 흐른다>, p158/228

우리는 살면서 성공을 기뻐하기도 하고, 바람이 불어도 묵묵히 가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움직일 수 없거나 역경이 닥쳐도 끝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행동을 이해하기도 한다. 만약 지금 삶에서 커다란 빙하가 가로막고 있다면 당신은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이다. 혹독한 겨울이든, 더운 여름이든 마찬가지다. _ 로랑스 드빌레르, <모든 삶은 흐른다>, p19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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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레드케이스 포함) - 이동진이 사랑한 모든 시간의 기록
이동진 지음, 김흥구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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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아키아의 실내 건축 설계는 그렇게 특정한 규칙으로 수렴되지 않고 뻗어나가는 무한공간의 모티브를 어느 정도 가져왔다. 수집품도 파이와 관련한 것들이 적지 않다.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매달려 있는 파이 시계는 3시 14분에 멈춰있다. 초침 역시 영원히 60에 도달할 수 없는 59에 놓이도록 했다. 소수점 이하로 반복되지 않은 채 무한대로 뻗어가는 파이 숫자의 행렬을 최대한 많이 담아놓은 포스터도 구하고 싶었다... _ 이동진,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中

파이아키아, Pi + architecture+ia. 파이와 건축물 또는 파이가 있는 건축물.

영화평론가이자 애서가, 장서가, 수집가인 이동진의 수집품과 개인 작업실이 소개된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개인적으로 책이나 음반 등을 소장하거나 수집하는 편이 아니기에 2만여 권의 책과 1만여 장의 앨범, 저자의 친필 사인이 담긴 사연있는 수집품 등을 보면서 별로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대신 원주율 파이(Pi)처럼 하나하나의 작품에 얽힌 무한히 풀려나오는 작가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작가의 작업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단순한 수집품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대상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열정임을 깨닫게 된다. 3만여 수집품이 저마다 무한한 원주율을 가진 서로 다른 원(圓)이라면, 그 수집품들이 조금은 부러울 듯하다. 아니, 하나의 파이로도 충분할 것 같다.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무한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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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8-01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동진 평론가님 글만 잘쓰시는 게 아니라 말씀도 넘 잘하시고
Plus 이렇게 자본을 쌓아가시는 기획력도 좋으시고^^ 부럽네요

겨울호랑이 2023-08-01 13:21   좋아요 1 | URL
네, 이렇게 탄탄하게 쌓아온 자본이 밑바탕이 되어 좋은 평론이 가능케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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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朴景利)씨의 <토지>는 근원적으로 '대지(大地)'를 소유하고 사유한다는 근대적인 토지소유의 관념 그 자체에 대한 의의를 머금고 있다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국유지라는 개념의 확대 부연하면 경작자로서의 조선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빼앗은 일본제국주의에의 비판이기도 하지만 그 기층에 있는 것은 토지란 누구의 것이냐 하는 근대적인 경제사회 그 자체를 흔들어대는 물음인 것이다. _ 박경리, <일본산고>, p68

박경리(朴景利, 1926 ~ 2008)의 <일본산고 日本散考>는 저자의 대작 <토지 土地>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이 설명된다. 이는 최치수-최서희-최환국/윤국 으로 이어지는 3대와 백명 남짓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쉽게 찾을 수 없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시대상과 그 안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너무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일까. 작품을 읽고 나서 왜 이 작품의 이름이 <토지>인가를 찾아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러한 주제의식이 작품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서희네가 간도 용정에서 돌아오고 나서 일어난 1919년 3.1운동과 이후 사건을 다룬 3부 이후 시점이다. 특히 일본인 사회주의자 오가타 지로와 주변 인물들 사이의 긴 대화 속에서 작가는 반(反)제국주의, 반일(反日)의식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반제국주의 정신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이러한 제국주의 침략 이전 이른바 근대화 시기에 행해진 토지로부터의 인간 소외를 1,2 부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음을 <일본산고>를 통해 돌아보게 된다.

일본의 팽창주의는 과거와 다를 것이 없다. 그 해악도 다를 것이 없다.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혹은 무관심을 나타내는 일부 지식층의 이상주의 혹은 지성을 나는 지적 허영으로 본다. 토지의 일본인 오가타 지로[緖方次郞]는 코스모폴리탄이다. 그는 강자 편에서, 가해자 편에서 양심을 지켜 비판하는 세계주의자다. 그러나 피해자가 불이익을 안고 과연 평등의 세계주의로 갈 수 있는 걸까? _ 박경리, <일본산고>, p70

<일본산고>에서 저자는 자신을 반일(反日)작가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일본(日本)이라는 나라를 미워하지 일본인(日本人)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함께 한다. 얼핏 들으면 말장난과도 같은 말이지만, <일본산고>를 통해 저자는 자신이 맹목적인 민족주의자도 아니며, 자신이 미워하고 경계하는 것은 '천황(天皇)'이라는 신적인 존재로서 일왕(日王)과 그를 정점으로 하는 사회 체계를 폭력적으로 확장시키려는 의도임을 분명히 한다.

일본은 거짓의 두 기둥을 박아놓고 국민을 가두어왔다. 하나는 천조의 상속권 주장인 만세일계요, 다른 하나는 현인신으로 왕을 치장한 신도(神道)다. 각일각 변화하는 생명과 만상의 원리를 어기고 어찌하여 일문이 만세에 걸쳐 군림할 수 있을까. 나고 죽는 우주 질서에서 일왕도 예외가 아니거늘 어찌하여 신으로 칭하는 걸까. _ 박경리, <일본산고>, p77

국민들은 모두 "천황의 세키시[赤子]"라는 것은 공공연한 그들의 인식이었습니다. 천황의 소유물이라는 뜻이지요. 인류에게 일본은 어떠한 존재인가. 핵무기를 가질 때 그들은 그것으로 어떤 짓을 할 것인가. 세계 정복의 청사진은 일본 체제의 확대를 의미합니다. 전 인류가 모두 현인신의 세키시가 되는 거고 소유물이 되는 거지요. 신국사상을 청산 안 하는 이유가 거기 있을 겁니다. _ 박경리, <일본산고>, p143

저자가 반대하는 일본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무력으로 강요하는 화(和)의 일본이다. 사회를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것은 미화(美化)하고 이를 추앙하는 그들의 문화를 우리에게 강요하고, 그들의 체제 안에서 2등 민족으로 1등 민족인 내지(內地)인을 위해 살아가기를 강요했던 것이 그들이 저지린 식민시대의 만행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일본에 대한 감정의 근원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 한일 관계가 정립되는 것은 이러한 아픈 역사에 대한 치유가 먼저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통곡이 없는 민족, 울지 않는 민족, 왜 울지 않을까? 슬픔도 마치 실루엣같이 소리가 없다. 너무나 정적이다. 본시부터 그러했을까? 그들이라고 울지 않을 리 없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칼로 상징되는 그들의 역사 탓일 것이다(p49)...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혹은 강자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그것은 한 개인의 고통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_ 박경리, <일본산고>, p50

전쟁에서 패한 장수는 패배를 인정하고 할복(腹切り 하라키리)하는 것이 일본 무사도의 아름다움이라 스스로 말하지만, 일본 군국주의 패배 이후 그들은 할복 보다 쉬운 반성을 보이지 않았다. 일왕제를 유지하면서 오히려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결속하고, 때마침 일어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특수로 이뤄낸 경제번영으로 자신들의 죄(罪)를 슬그머니 감춘 일본. 군국시대의 유산을 청산하지 않고 계승한 현재의 일본을 우리가 우려를 지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3년 3월 5일. 정부는 일본 기업이 빠진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가해자는 빠진 채 국내 기업과 민간의 참여로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이 안은 외교적으로 '일본의 완승'이라며 국내의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안이 왜 문제가 되는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기에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일본의 완승이 과연 일본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정신나간 퍼주기에 두 손들고 환영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과거사에 대한 그들의 혼네(本音)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반성없는 가해자들과의 진정한 동반은 이제 물 건너 간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모욕감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이웃으로서 같이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며, 끊임없이 묻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행동을 전과 같이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사과 요구가 자신들의 변함없음으로부터 나온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면, 민족성의 차이인지 수준차이인지는 모를 일이겠지만.

3.1절 기념사 이후 연일 계속되는 정부의 망언에 박경리의 <일본산고>를 읽으며 지금 이 시기 우리가 가져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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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3-07 14: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배상은 고사하고 과거사에
일체의 사과와 반성도 없이
어떻게 미래를 논의하겠다
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
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도 일본의
태도에도 변화가 없는데
고작 G7 초청장과 성과도
없는 정상회담 하겠다고
굴욕적인 외교를 하는 모습
이 정말 치욕스럽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3-07 18:47   좋아요 3 | URL
그렇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신을 둘러싼 소수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행태를 보면 울분이 터져나옵니다...

단발머리 2023-03-07 14: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국빈 방문 때문인거 같기는 합니다. 너무 일본을 사랑해서 일본의 입장이 곧 내 입장인 우리나라 대통령... 어쩌면 좋을까요. (한숨)

겨울호랑이 2023-03-07 18:52   좋아요 3 | URL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그동안 생각나는 것은 잘못을 저지르고 전정부 탓을 돌리는 것밖에 없긴 합니다만, 그의 이런 행동 덕분에 검찰 문제와 친일파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와 이슈가 되는 것은 긍정적인 부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정부에 의의를 부여한다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건수하 2023-03-07 16: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3.1절 기념사부터 작정했구나 생각은 했지만 어제 일은 충격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네요.

겨울호랑이 2023-03-07 18:55   좋아요 2 | URL
윤석열 정부는 행동을 보면서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를 덮는데 더 힘을 쓰는 듯 합니다. 과연 법기술자들의 세상이라 할 만합니다만. 의식에서 억압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무의식으로 미끄러져 내려가 더 큰 문제를 낳는다는 이치를 그들이 알아도 이런 한심한 행동을 할까 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3-07 17: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군요. 지금 읽고 있는 토지 내용에 사상과 이념, 민족의식의 대결이 점점 심화되간다고 느끼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솔직히 이번 협상은 협상이라는 이름 붙이기도 아깝습니다. 한일 외교와 경제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인지하겠지만 그럴수록 꼬인 매듭을 현명하게 잘 풀어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죠. 앞으로도 이렇게 울화통 터지는 일들이 많을 것 같으니 진짜 도를 닦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겨울호랑이 2023-03-07 18:58   좋아요 3 | URL
개인적으로 굴욕적인 발표를 한 정부도 문제지만, 이런 무능한 정부의 발표를 두 손 들어 환영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진심을 알게 되어 다른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박경리 선생께서 말하셨듯이 강자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것이 저들 민족의 본성이라면, 그들에게 공감을 호소할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려서 찍어 누르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을 듯 합니다...

기억의집 2023-03-07 19: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불쇼에서 김준현교수 이야기 들으니 진짜 정신 나간.. 이 책 구매해 읽어보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3-07 19:47   좋아요 1 | URL
일제의 만행을 직접 체험한 저자의 일본관이 단순히 감정의 배설이 아닌, 진정한 인류 차원의 관점에서 형성되었음을 <일본산고>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기억의집님 좋은 시간 되세요!
 

철학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이다. 인간 정신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적개심에서건 경쟁심에서건 다른 사람들에게 인간 정신이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견해를 갖게 했다. 한쪽에서 앎에 대해 극단으로 갈 때, 다른 쪽에서는 무지에 대해 극단으로 가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만사에 절제를 모른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지점이 아니면 멈추기를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게끔 말이다.



그토록 무심하고 고요하게 자기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는 확실히 후세가 그를 그만큼 더 평가하게 할 만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정의 가운데 운명의 여신이 그의 죽음을 위해 마련한 영광만큼 정의로운 것도 없다. 왜냐하면 아테네인들은 그의 죽음을 야기한 자들을 너무 혐오한 나머지 마치 파문당한 자들을 대하듯 그들을 피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래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겠지만, 죽음을 죽음 자체 때문에 두려워할 것은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죽음은 삶 못지않게 우리 존재의 본질적인 일부분이다. 죽음은 대자연의 작업이 다채로이 펼쳐져 가는 것을 보장해 주며, 이 세계라고 하는 공동체 안에서 상실과 파멸보다 생성과 증식에 더 기여하는 것을 볼 때, 대자연이 무엇을 위해 우리 안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심어 놓았겠는가?

자연이 준 앎을 넘어서는 저 모든 학문이란 다소 공허하고 군더더기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 소용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짐이 되거나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셈이다. C "건강한 정신은 대단한 학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세네카) B 그것은 칠칠맞지 못한 하인이 공연한 흥분 상태인 듯, 우리를 섬겨야 할 정신이 과도하게 열에 들떠 있는 상태이다.

마음을 모아 보라. 당신은 당신 안에서 대자연의 논거를 보게 되리니, 그것이야말로 필요한 때가 되면 당신에게 가장 적절하게 소용이 될 진실한 것이다. 바로 이 논거를 빌려 농부도, 또 어떤 민족들은 그 전체가 철학자처럼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다.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강력하고 유리한 자질을 내가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는 아무리 되풀이 말해도 부족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을 짧은 폭정이라 했고, 플라톤은 자연의 특혜라고 불렀다. 신뢰도에 있어서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자질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들의 사귐에 있어서 그것은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아름다움은 앞으로 치고 나서며, 대단한 권위와 경이로운 인상으로써 우리의 판단력을 유혹하고 점령해 버린다.

우리 용기를 북돋기 위해 학문이 주는 가르침은 대부분 굳건함보다는 겉치레이며 내실이기보다는 과시용이다. 우리는 대자연을 버렸으며, 그에게 선생 노릇을 하려 드는데, 우리를 그토록 운 좋게 또 안전하게 이끌어 온 것은 대자연이 아니던가.

어떤 학문이건 간에 그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들만이 그 어려움과 모호함을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으려면 일정 수준의 지력이 필요하며, 문을 밀어 봐야 비로소 그 문이 닫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아픈 것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병의 도움 없이도 죽음은 너를 능히 처분한다. 어떤 이들은 병이 죽음을 멀리 떼어 놓기도 하는데, 자기들은 이제 다 끝나 죽어 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더 오래 살았던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상처들이 그렇듯, 치료해 주고 건강을 돌려 주는 병들도 있다.

젊은이들에게 충고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움직일 것, 그리고 조심할 것, 두 가지이다. 우리의 삶이란 그저 움직임일 뿐이다. 나는 어렵사리 몸을 일으키며 무슨 일에나 꾸물거린다. 일어나는 것도 잠자리에 드는 것도 식사하는 것도 다 그렇다. 7시는 내게 너무 이르며, 내 뜻대로 일과를 정하는 곳에서는 11시 전에 아침을 드는 일도 없고, 6시가 넘어야만 저녁을 먹는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다고 해서 불평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너 한 사람에게만 불의한 법을 적용하려 들면 그때는 투덜대라."(세네카)321) 어떤 노인이 완벽하고 힘찬 건강을 계속 누릴 수 있게 해 달라고, 다시 말해 청춘으로 돌려 달라고 신에게 빌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보라.

피할 수 없는 것은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삶이란 이 세상의 조화로움이 그렇듯이 서로 모순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감미로운 소리와 거친 소리, 날카로운 소리와 나지막한 소리, 여릿한 소리, 장엄한 소리 같은 갖가지 음조들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그중 한 가지 방향으로만 좋아하는 음악가가 있다면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되겠는가? 그는 마땅히 양쪽 모두를 함께 쓸 줄 알고 또 섞어서 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역시 우리 삶과 떨어질 수 없이 함께 있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함께 쓸 줄 알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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