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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스커넥트 - 자본주의는 어떻게 인터넷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만들고 있는가
로버트 맥체스니 지음, 전규찬 옮김 / 삼천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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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점 상업주의 뉴스 미디어와 정치적 민주주의 저널리즘, 이 두 가지 요구 조건을 절충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_ 로버트 W.맥체스니, <디지털 디스커넥트> , p157


 로버트 맥체스니 (Robert W. McChesney, 1952 ~ )는 <디지털 디스커넥트 Digital Disconnect: How Capitalism Is Turning The Internet Against Democracy>을 통해 인터넷(Internet)의 출현이 뉴스 미디어 시장의 두 측면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중 어느 편에 힘을 실어 줄 것인가에 대해 분석한다.


 자본주의는 무엇보다 불평등과 독점, 지나친 상업주의, 불황을 조장하며, 이 모든 것들은 정치적인 민주주의를 좀먹는다. 특히 불평등과 독점, 지나친 상업주의는 대중의 탈정치화를 부추긴다. 수단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정치과정으로부터 소외되기 십상이다. 인터넷의 출현이 자본주의 경제가 불러온 이런 반민주적인 요인들을 누그러뜨릴지 따져 보아야 한다. _ 로버트 W.맥체스니, <디지털 디스커넥트> , p61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우리는 이들을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을 통해 혼합해서 사용하지만, 경제 체제인 자본주의와 정치 체제인 민주주의는 사실 배타적인 측면이 강하다. 시장경제의 발달로 인해 독점(獨占), 과점(寡占)화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구심력(求心力)으로 작동한다면, 정치권력의 분권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체제는 원심력(遠心力)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지향점이 다른 두 체제를 유지하는 힘에 인터넷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자본주의 이전에 (민주주의는) 늘 이런 식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민주주의란 재산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도 힘을 부여하는 체제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불평등한 재산 소유는 민주주의 운명에 반하는 적수로 간주되었다. 뒷날 민주주의가 미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출현했을 때, 사실 부유한 자산 소유자들이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투쟁을 이끈 경우는 드물었다. _ 로버트 W.맥체스니, <디지털 디스커넥트> , p106


 저자는 본문을 통해 사람들이 기대하는 투명한 정보의 공유를 통한 민주주의의 수단으로서 인터넷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공공재로서 투명한 정보 대신 지적재산권으로 사유화된 콘텐츠와 소수 대자본에 의해 점유된 플랫폼 등은 기존 저널리즘의 한계를 오히려 증폭시켰다는 것이 저자의 현실진단이다. 


 광대한 정보의 바다, 인터넷. 기존의 아날로그 시대의 불평등이 디지털 시대에는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로 21세기가 열렸지만, 2000년대 초반 IT 버블이 꺼지듯 우리의 기대도 사라져 버렸다. 예전에는 같은 공중파 뉴스를 통해 같은 정보에 대한 다른 해석이 주요 쟁점이었다면, 이제는 서로 다른 원천에서 취득한 정보의 사실성이 주요 쟁점이 되버렸다는 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과거보다 퇴보한 듯하다. 디지털 자본주의가 디지털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현 상황에서 이러한 불균형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 것인가. 책이 던진 물음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디지털 혁명의 엄청난 약속들은 인터넷의 발전을 자본주의가 전유해 버리면서 상당 부분 상쇄되어 버렸다. 인터넷이 지닌 개방성과 기업 수익성이라는 폐쇄적인 시스템 사이의 상당한 모순에 관해, 힘을 가진 자본은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항상 승리를 거두었다. 그 자체의 명료한 논리를 갖춘 인터넷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민주적인 잠재성과 상당 부분 대치되는 자본 축적의 과정에 종속되어 버렸다. _ 로버트 W.맥체스니, <디지털 디스커넥트> , p176

집중화는 디지털의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수익률이 너무 낮고 새로이 이용자를 추가시키는 한계비용이 제로인 탓에, 수익은 오직 규모가 커지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인터넷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한때 다양성과 선택권 그리고 경쟁의 대리자로 간주되던 게 어느덧 독점의 엔진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 P332

디지털 기술은, 한 사회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과 자본주의 아래에서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 사이의 격차라는 문제를 최종적으로 한 번 더 부각시킬 수 있다. 인터넷은 궁극적인 공공재이며 폭넓은 사회 발전에 더없이 적합하다. 희소성을 없애 버릴 뿐 아니라 민주주의 쪽으로 상당한 경향성을 갖고 있다. 인터넷은 또한 그 이상의 것이다. 그렇지만 실재하는 자본주의에서, 이처럼 예상 가능한 혜택 가운데 널리 전파될 뿐 아니라 제대로 실현될 수 잇는 것은 거의 없다. 기업 시스템은 기술을 자신의 목적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만 제한하고자 할 것이다. - P393

오늘날 저작권은 그 자체가 엄청나게 큰 시장으로 변모했다. 저작권은 어느덧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문화에 대한 기업들의 독점권을 보장해 주며, 미디어 복합기업들에게 더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주는 장치로 전락했다. 요컨대 저작권은 우리들의 공통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사유화를 조장하는 주된 정책으로 전락했다. - P147

정부 규제의 핵심은 한마디로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도움 주는 게 되어 버렸다. 이게 바로 새로운 공익 개념이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탈규제란 사실상 "가장 규모가 큰 기업들의 이익에 기여하기 위한 재규제"에 다름 아니다. - P192

경제에서 군사비 지출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민간 부문에서 만들어진 것들과 경쟁을 펼쳐야 하는 시장에 그 어떤 제품도 내놓지 않으면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제공하는 게 바로 이 군사비이다. 군사비 지출은 생산의 분명한 자극제이자 불황의 해독제가 된다. 특히 예산의 더 많은 부분이 점차 아웃소싱되면서, 군비 지출은 군수 관련 계약을 얻어 낸 기업들에게는 예기치 않은 횡재가 된다. 아울러 군비 지출은 미국 내 고급 기술 연구개발 지출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왔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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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s president-elect starts with an unpopular personal project

Yoon Suk-yeol wants to move the presidential office. Citizens would rather he focus on the economy


 한국 대통령 당선자, 인기없는 개인 프로젝트 시작. 윤석열은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고 싶어하지만, 국민들은 대통령이 경제에 집중하길 원한다


 The Economist의 이번주(2022.3.16)에는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과 관련한 기사를 위와 같은 제목으로 내보냈다. 기사의 상세내용은 원주민인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내용이니 별도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기사의 마지막에 담긴 The Economist의 관점은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세계적인, 그리고 객관적인 시선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여겨져 옮겨본다.  


With his popularity already at a historic low for an incoming president, Mr Yoon may find that his attempt to bring the people closer actually drives them farther away.

 윤 대통령 당선자는 차기 대통령 지지도가  이미 기록적으로 낮은  현상황에서, 국민들과 가까워지려는 그의 노력이 실제로는 그들을 더 멀리 쫒아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안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 보도와 함께 냉정한 평가는 언론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가 현재 우리의 언론에는 없기에, 우리는 우리나라의 문제를 바라볼 때마저 외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서글픈 현실에 서 있음도 함께 깨닫게 된다. 179년 전통의 <The Economist>와 한국 중앙일보에서 발간하는 <이코노미스트>. 각각의 발음은 큰 차이없지만, <이코노미스트>가 표제에서 던진 '윤석열 시대 개막, 살림살이 좀 나아질까'에 대한 답(答)을 <The Economist>의 소기사 제목에서 발견하면서 현재 시점에서 결코 넘을 수 없는 언론권위의 차이를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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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3-27 22: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귤이 회하를 건너면 낑깡이 된다는
말을 J일보에서 만드는 이름만 비
슷한 잡지에서 그대로 보여주네요.

이름이 아깝네요.

겨울호랑이 2022-03-27 22:28   좋아요 6 | URL
<이코노미스트>를 <The Economist>의 번역본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이외로 꽤 많더군요... 차라리 기사를 그대로 번역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얄라알라 2022-03-28 11: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둥지를 틀지 않은 다른 많은 분들도 겨울 호랑이님 글 구독할 채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3-28 11:27   좋아요 2 | URL
에고 제겐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제 이웃분들께서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글에 비해 넘치는 걸요... 얄라얄라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갱지 2022-03-28 14: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그나마 국민들 마음을(영어로라도) 알아주는 데가 있어 좀 위로가 되는 듯은 한데, 낯은 뜨겁네요.

겨울호랑이 2022-03-28 14:56   좋아요 2 | URL
네... 더 큰 문제는 아직 임기 시작도 전이라는 점이겠지요...

초란공 2022-03-28 18: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두 잡지가 같은 것이 아니었군요^^;; 다음 정부 수장이 다시 청와대로 오려면 또 다 뜯어 고치고 이동하고 이중으로 문제가 보입니다. 단순히 ‘재배치‘라고 말하는 인간이 있다는게 놀랍기도 하고요. 하지만 당장 앞으로 벌어질 일에 비하면 이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몸풀기 수준인가 싶기도 하구요... 상당히 두렵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3-28 18:50   좋아요 3 | URL
사안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고, 언론사(또는 사주)의 배경에 따라 어느 부분에 방점을 두는가에 따라 언론의 논조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 상황과 중대성, 긴급성의 측면에서 봤을 때 어느 것도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는 ‘용산 이전‘ 문제는 답답하게 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눈에 뻔히 보이는 문제에 힘을 소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정말 소중한 우리의 가치가 무속과 돈문제와 연관되지 않는다면 5년이라는 시간동안 보존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함께 가져봅니다...^^:)

초란공 2022-03-28 19:04   좋아요 3 | URL
대통령 후보 경선할 때였던가요... 당사자의 입에서 자신있게 ‘밀턴 프리드만‘이란 이름이 나왔을 때부터 식겁하기 시작했던 것 같네요. 여기에 박정희를 존경한다는 당대표까지... 종합세트지요. 그래도 희망을...!!

겨울호랑이 2022-03-28 19:12   좋아요 3 | URL
그렇지요... 단순히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을 이해하고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되기를 고민하기 보다 자신이 뱉어놓은 말을 덮기 위한 인용구로 유명학자의 사상 일부를 가져다 쓴 것에 대해 저 또한 걱정하게 됩니다... 사실, 당선자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모호했을 때 걱정하고 우려하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그저 로또에 당첨된 졸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네요...
 

 만보산 사건은 어떤 것이었는가. 동북지방, 길림성의 장춘(長春)에서 서북방 삼십 킬로 지점에 있는 만보산 부근에서 중국 농민과 조선 농민의 충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일 관헌(中日官憲)의 무력충돌이라 해야 옳고, 더 정확하게는 무력충돌이기보다 쌍방간의 시위로 보아야 옳은 것이다.(p245)... 애당초 문제가 있었던 공작으로 보아야 옳고 지주와 중간에 땅을 빌린 자와 또다시 조선인이 빌리는 이 과정에서 계약상의 하자도 있었으며, 그러나 무엇보다 수로 개설로 인근의 다른 농토에 침수위험이 있다는 것이 분쟁 발단의 가장 큰 이유였다.(p247)... 문제는 7월 2일 <조선일보> 호외로 만보산사건은 조선 국내로 비화되었다. 일본 기관에서 흘린 허위자료를 받은 장춘 주재의 기자가 본사에 타전했던 것이다. 남의 땅에서 가난한 내 동포가 생명에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강조한 그 보도는 순식간에 민족감정을 자극했던 것이다. 7월 3일에 벌써 인천에서는 중국인 습격이 시작되었고 서울, 가장 격렬했던 곳은 평양이었다... 물론 만보산사건이 파급되어 국내에서 일어났던 폭풍은 일본이 면밀하게 짜낸 각본 때문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5> , p248/720


  토지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토지독서챌린지. <토지15>를 읽고 있는 지금 시대적 배경은 어느새 1930년대인 것을 보면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구나 싶다. 물론 소설속의 등장인물에게는 소설 밖의 독자에게 몇 문장이 그들의 시간 속에서는 수 개월 또는 수 년의 흐름으로 나타나겠지만. 그 중에서도 만보산 사건과 조선일보의 내용은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듯 싶다.  


 만보산사건의 진상은 몰랐다 하더라도 그곳에 있던 놈이면 그곳 실정쯤 파악하고 있어야지. 일본 기관에서 고의적으로 흘린 오보를 판단 없이 송고해? 의도적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조선일보>는 어용지 <경성일보>와 함께 일본의 계략을 도운 셈이야. 함정에 빠진 것이라 해도 좋고. _ 박경리, <토지 15> , p236/720


 지난 칠월 초순의 일이다. 조선에서 일어난 배화폭동(排華暴動)이 날로 확대되고 격렬해진다는 신문기사를 찬하는 읽고 있었다. 만주 길림성(吉林省)에 있는 만보산 부근에서 중국인 농민과 조선 농민 사이에 벌어진 충돌사건이 <조선일보> 호외로 시작하여, 연이어 선동적인 기사로 사건이 보도되면서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인 습격학살이라는 엄청난 참극이 각처에서 자행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조선인의 어리석음과 일본의 사악함이 교묘히 맞아떨어지면서 저질러진 어처구니없는 만행이었으며 대만의 무사사건(霧社事件)을 연상케 하였다. _ 박경리, <토지 15> , p85/594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대표없는 곳에 과세가 없다면서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영국 식민지들은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미국 독립 전쟁으로 이어졌다. 또한, '투표할 수 있는 능력만이 시민이기 위한 자격을 부여한다'는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의 명제를 함께 생각했을 때 우리는 거칠게나마 시민의 권리는 투표로, 의무는 세금으로 부여되는 것으로 이들을 묶어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회사법에 의해 인격(人格)을 부여 받은 법인(法人 Corporation)은 왜 세금만 내면서 이를 부당하게 여기지 않는 것일까. 영업활동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이 의무만 수행하면서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이들은 전체 세금 중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만큼의 권리를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1774년 4월 22일, 뉴요커들 또한 알렉산더 맥두걸 Alexander McDougall의 주도에 따라 모호크 족의 의복을 차려입고 '런던'이라는 이름의 영국 선박으로 몰려 들어가 차 궤짝을 바닷속으로 던져버렸던 것이다. 보스턴 차 사건 이후 분노한 영국은 자신들의 미국 동포들을 더 이상 참아주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보복 조치들을 시행했다.(p114)... 자유로운 분위기의 해안 도시 보스턴에 이러한 조치들이 내려진 것은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식민지인들 간의 통합은 거의 미미했었다. 하지만 영국의 조치들을 계기로 상황이 바뀌어, 이제 이들은 한목소리로 자신들의 동의 없이는 의회가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_ 론 처노, <알렉산더 해밀턴> , p115


 이런 의문에 대해 요즘은 그 답을 어느 정도 찾는 듯하다. 법인들은 투표권 대신 추천권(right of recommendation)을 통해 우리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함께 매트릭스 Matrix 안에서 살아가기보다 아키텍처 Architecture로서 시스템을 통제하는 것은 아닐지. 이에 대해서는 낸시 매클린 (Nancy MacLean)의 <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 Democracy In Chains>에서 상세하게 설명된다.


 몹시 가차 없고 영민한 프로파간다 전문가였던 [나치의] 요제프 괴벨스 Joseph  Goebbels는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거짓말도 충분히 반복해서 하면 사람들은 곧 그것을 믿게 된다." 오늘날 코크가 돈을 대는 급진우파가 하는 엄청난 거짓말은 우리 사회가 '생산자'와 '탈취자'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것을 믿으면, 생산자가 자신의 것을 빼앗아가는 탈취자에 대해 선악 이분법적인 투쟁을 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_  낸시 매클린, <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 p538/888


 과거 1930년대에 일본 제국의 사주를 받아 여론을 호도한 조선일보의 모습에서 오늘날 검언유착, 광고주에 의해 좌우되는 언론의 모습을 본다. 동시에, 이처럼 왜곡된 언론의 역사가 오래된 것이라면 언론 개혁이 쉬운 일이 아님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일본의 만주 침략 의지와 조선일보의 오보가 빚어낸 1931년 7월의 만보산 사건.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9월 만주사변(滿洲事變)에 이르러서야 알게된다. 언론에 의해 좌우되는 민심. 그리고, 이로 인한 행동의 결과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미리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대중이란 끝없이 인내하면서 변화에 대하여 성급하고 가슴에 맺혀 있으면서도 쉬이 체념하며 망각한다. 신출귀몰이라는 말이 한참 유행했고 인심이 소용돌이치던 도시에 여름이 찾아왔을 때 신출귀몰이라는 말은 퇴색해가고 있었으며 인심의 소용돌이도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몸조심 말조심을 하면서 마음의 문을 닫고 주판을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5> , p52/594


 1931년(쇼와6)년 9월 18일 밤 10시 20분, 중국 동북부(만주), 요녕성(遼寧省)의 심양(봉천)에서 가까운 류조호(柳條湖)에서 남만주철도의 노선 일부가 폭파되었다. 관동군 참모 이시하라 칸지(石原莞爾) 등에 의해 1929년부터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온 작전이 여기서 실행된 것이다... 만주사변은 1) 상대국 지도자의 부재를 틈타 일으켰다는 점, 2) 본래는 정치 간섭이 금지된 군인에 의해 주도된 점, 3) 국제법에 저촉된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난을 피하도록 계획된 점, 4) 징역 개념으로서의 만몽의 의미를 끊임없이 확장시키고 있었다는 점, 이 4가지 특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_ 가토 요코,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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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2-09 0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는 하여튼 일본식민지시대에도 현재와 다를 바 없네요. 저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조선 동아를 통해 폭동으로 알고 있던 시대라… 조선 동아는 광주 민주화 운동때 오보내고 선동 한 거 진짜 사과 해야합니다!!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안 하고 있는데…조선 동아 꼭 해야한다고 봅니다.

겨울호랑이 2022-02-09 08:17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조선일보는 1930년대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한 후 1938년부터 급격하게 친일성향을 보이면서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역사를 생각하면 사과가 쉬워보이진 않지만, 분명 꾸준하게 문제제기를 해야할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거리의화가 2022-02-09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대한 탄생부터 성장까지 다룬 책이 있습니다. 조선 동아일보의 탄생. 매체 자체에서 낸 역사에서 미화한 것과 달리 왜곡되고 포장된 부분이 많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2-09 09:29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조선일보의 경우 1920년대 조만식 선생 등에 의해 운영되던 초기 항일 시기의 역사를 자신들의 100년사에 포함시키면서 민족정간지 행세를 하며, 동아일보는 인촌 김성수의 행적을 고려대학교 설립으로 덮고,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이바지한 해직기자들의 항쟁을 자신들이 가져와 역시 정론지 행세를 합니다만.... 그들의 부끄러운 행적이 그들이 발행한 과거 신문 안에 박제되어 있음에도 부끄러우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면 할 말이 없습니다...
 

 

 언론이 그 자체로서 이미 권력의 실체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은 그 이후에도 한국 언론의 독특한 성격으로 규정된다._민주언론시민연합,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31

 

  뉴스타파에서 제작한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언론 권력의 두 핵심인 <동아일보 東亞日報>와 <조선일보 朝鮮日報>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영화는 1988년 5공 청산 청문회에 출석한 두 언론 사주(社主)들의 증언의 진실을 찾는 구성을 갖는데, 그 과정에서 이른바 '민족정간지'라 주장하는 이들의 허위가 낱낱이 벗겨진다. 일본언론보다 더 일왕을 추종한 두 언론들. 일왕 생일 때마다 일장기를 게재한 이들 신문의 경쟁적 행태를 보노라면 과연 1936년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을 했던 동아일보가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한결같이 일장기를 신문 1면에 올린 조선일보는 신뢰성은 없지만, 황국신민일보로서 일관성은 있다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다소 내용이 길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두 신문 사주들의 친일 행적을 옮겨 본다.


김성수(金性洙, 1891 ~ 1955) 보성전문학교 교장, 동아일보 사장.


 1891년 10월 11일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호는 인촌(仁村)이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10월 조선총독부로부터 경성방직 설립 인가를 받았고, 동아일보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20년 7월부터 동아일보 사장으로 일했다... 1937년 7월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의미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된 경성방송국의 라디오 시국강좌를 7월 30일과 8월 2일 이틀동안 담당했다. 같은 해 8월 경성군사후원연맹에 국방헌금 1,000원을 헌납했다... 조선에서 징병제 실시가 결정되자 1943년 8월 5일자 <매일신보>에 "문약(文弱)의 고질(痼疾)을 버리고 상무기풍을 조장하라"는 징병격려문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징병제 실시로 비로소 조선인이 명실상부한 황국신민이 되었다면서 지난 오백년 동안 문약했던 조선의 분위기를 일신할 기회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_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p426


 방응모(方應謨, 1884 ~ ?) 조광 발행인. 조선일보 사장.


 1884년 1월 3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호는 춘해(春海)이며, 뒤에 계초(啓礎)로 고쳤다... 1922년 <동아일보> 정주분국을 인수한 뒤 지국으로 승격되자 정주지국장에 임명되었다... 금광개발에 뛰어들어 1924년 평안북도 삭주의 교동광업소를 인수하고 경영을 확대하여 굴지의 광산업자로 성장했다... 1932년 6월부터 <조선일보> 영업국장으로 활동하다가 1933년 3월 <조선일보>의 경영권을 인수하여 부사장에 취임했다. 같은 달 조선군사령부 애국부에 고사기관총(제16호) 구입비로 1,000원을 헌납했다. 같은 해 7월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해 1940년 8월 폐간 때까지 재직했다... 1936년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가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정간과 강제휴간을 당하자, 경쟁관계에 있던 <조선일보>는 전국적으로 발전자축회를 개최하는 등 이를 사세 확장의 기회로 이용했다... 1937년 2월 원산의 순회 강연에서는 "우리 조선일보는 다른 어떤 신문도 따라오지 못하는 확고한 신념에서 비국민적 행위를 단연 배격하여 종국까지 조선일보사가 이미 정해 놓은 방침에 한뜻으로 매진한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아 참석자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증일전쟁 개전 직후인 1937년 7월 11일에 열린 <조선일보> 간부회의에서 주필 서춘이 '일본군, 중국군, 장개석 씨' 등으로 쓰던 용어를 '아군, 황군, 지나 장개석'으로 고치고 일본 국민의 입장에서 논설을 쓸 것을 주장했다. 방응모는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이미 몇 십만원의 손해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3.1운동 때처럼 신문이 민중을 지도할 수 없다면서 서춘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후 <조선일보> 지면은 '국민적 입장'으로 변했다는 조선총독부의 평가를 받았고, <조선일보> 안팎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편집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지면 변화와 함께 방응모도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활동에 나섰다._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p173


  <족벌, 두 신문 이야기>에서는 1940년에 이루어진 강제 폐간 마저도 저항이 아닌 비즈니스 였음을 밝히고 있지만, 더 이상의 상세 내용 소개는 영화를 보는 이들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기에 이만 줄인다. 해방 이후 슬그머니 복간한 두 신문들은 미군정(美軍政)하에서, 박정희(朴正熙, 1917 ~ 1979)의 군사정부 하에서 사실상 기관지 역할을 하면서 권력화되었다. 해방 전후 이들 신문들의 행적은 <보도 지침>에서 옮겨본다.


 제도 언론을 대표하는 <동아일보> 나 <조선일보>는 유난히 민족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다. 이것은 그러나 그들이 해방 전부터 줄곧 권력의 토양 한가운데 뿌리박고, 언론이기 때문에 언론이라는 수단을 통해 철저하게 자신을 위장해서 민중 위에 군림해 온 증거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 일제하 한국 언론은 일제의 이른바 문화통치의 소산으로 태어나 식민지 백성과 침략자 사이를 제도적으로나 사실상으로나 완충시키고 일본식 식민통치 방식의 일부로 기능하면서 자기를 유지해왔다. 해방 후 그들은 미군의 '우호 점령'이라는 우호적 상황 아래서 사실상 유일한 토착 실질 권력으로 인정받아 그 물적, 인적 영향력을 십분 활용하여 이니셔티브를 잡았다. 언론이 좌익세력과 민족세력을 배제하는 한편,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을 끌어들여 그들의 반민족적 본질을 다시 은폐하고, 그들이 만든 체제 안에서 <동아일보>를 주축으로 그 왼편에 자리 잡은 것이다. _민주언론시민연합,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31


 언론 매체와 언론인. 두 족벌 언론들은 1971년 언론자유수호운동(言論自由守護運動)을 통해 참다운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언론인들에게 해직으로 응답하는 대신, 그들이 벌인 투쟁의 명예는 자신들이 가져가며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이라고 자부해왔음도 우리는 영화에서 지켜보게 된다. 정의와 진리 대신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이들이 1980년대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을 충실하게 따랐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는 계속 진행형이다. 


 재직 당시 본인(신홍범)은 기자로서의 직업적 사명을 충실하게 해내기 위해 양심에 따라 훌륭한 신문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던 평범한 기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평범한 기자들은 그 후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언론에 대한 권력의 압력과 탄압에 맞부딪히게 된 것이다. 기관원들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신문사에 출입하면서 언론을 통제하는가 하면 보도기사와 관련하여 기자들과 신문사의 간부들이 연행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숨 막힐 것만 같은 억압적인 공포 분위기가 신문사의 편집국을 지배하게 되었다.(p421)... 국민 앞에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자책 속에서 드디어 기자들은 언론자유운동을 벌이게 되었고 그러고는 마침내 무참하게 대량해직되었다. 이같이 언론자유를 외치는 기자들을 언론기업주라는 사람이 언론 현장으로부터 내몰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 피 묻은 손으로 권력과 손을 잡고 1975년 3월 이후부터 이 땅에 제도언론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_민주언론시민연합,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422 


  <족벌, 두 신문 이야기> 속에서 여러 생각을 해본다. 이른바 정론지라고 하는 언론사들의 부끄러운 민낯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역사의 문제라는 사실, 그리고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두 신문사들의 오랜 역사 동안 우리가 알지 못한 진정한 언론인들의 숨은 노력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 속에서 짙은 배신감과 희망 또한 발견한다. 이 땅에 썩은 언론 매체는 분명 있지만, 또한 진정한 언론인들도 있다는 사실. 기업으로서 언론 매체와 진실을 좇는 언론인을 우리는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를 또한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높은 지금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 많은 것을 말해주는 영화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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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25 0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분석기사를 보니,
일등 신문이라고 떠드는 신문사 매출
의 70%가 광고매출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언론은 철저하게 기업이 주
는 단물, 광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뜻대로 움직이는 기관지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자고로 물주
에게 저항하는 언론은 없었으니 말이죠.

겨울호랑이 2021-01-25 19:29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족벌, 두 신문 이야기>에서도 그들의 기사형 광고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낚시형 광고를 통해 기업의 상품에는 신뢰성을 부여하고 대가로 돈을 받아 챙기는 그들의 관행을 지켜보노라면, 얼마전 유튜버들의 뒷광고 논란은 오히려 귀여운 수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공공재에 관한 문제는 분명 우리가 깊이 고민할 문제라 여겨집니다. ^^:)

samadhi(眞我) 2021-02-08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민족정론지가 ˝굿모닝 충청˝으로 바뀌었지요. ㅋㅋ

겨울호랑이 2021-02-08 16:06   좋아요 0 | URL
보편적인 상식과 객관적인 진실을 전하는 언론 매체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찾기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자본이 없으면 기반이 약해서 오래 뿌리내리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자본을 따라가면 변질되는 것을 보면서 자본주의 세계에서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만....

samadhi(眞我) 2021-02-08 16:1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도 자본에 굴하기 쉬운데 하물며 큰 권력(?)은 오죽할까요. 그 돈 없으면 망하는 단체, 조직들이 돈 앞에 권력 앞에 당당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숱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임은 어쩌려는지. 갈수록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이 드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우린 그걸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마는 듯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2-08 16:16   좋아요 1 | URL
어쩌면 어렸을 때 배워왔던 것처럼 큰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는 작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어렵고 행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가 바뀐 것인지, 개인의 가치가 바뀐 것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samadhi(眞我) 2021-02-08 16:1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요즘 들어 아무것도 되지 말자. 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그냥 삶을 살아가며 한없이 열린 상태로 깨어나자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를 구분하는 라캉의 "방법론적 구분"은 분화의 이론(혹은 단지 그 역사적 효과)이다. 이제 상징계는 물질성과 기술성을 지니고 있는 언어기호를 포괄한다. 다시 말해, 언어기호는 철자와 숫자로서 유한한 집합을 형성하며, 철학적으로 꿈꾸어왔던 의미의 무한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상상계는 유아의 본래 신체보다 더 완전한 운동성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체의 거울상에서 생겨난다. 왜냐하면 실재계 속에서는 모든 것이 호흡 곤란, 추위, 현기증과 더불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상계는 영화의 요람기에 탐구되어온 바로 그 광학적 환영을 실행한다... 마지막으로 실재계로부터는 라캉이 전제했던 것 말고는 아무것도 드러날 수 없다. 즉, 아무것도 없다. 실재계는 상상계의 거울로도 상징계의 격자로도 포착할 수 없는 잔여물 또는 폐기물이다. 현대 정신분석학의 이러한 방법론적 구분은 매체의 기술적 구분에 명백하게 일치한다. 모든 이론은 각자의 역사적 선험성을 가진다.(p38) <축음기, 영화, 타자기> 中


 프리드리히 키틀러 (Friedrich Kittler, 1943 ~ 2011) <축음기, 영화, 타자기 Grammophon, Film, Typewriter>는 20세기 아날로그 기술 매체들인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라캉(Jacques-Marie-Emile Lacan, 1901 ~ 1981)의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로 대응시켜 이들을 해석한다. 따라서,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읽기 전 라캉의 용어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순서라 여겨지며, 이번 페이퍼에서는 브루스 핑크(Bruce Fink)의 <라캉의 주체 The Lacanian Subject: Between Language and Jouissance> 를 통해 내용을 비교해보고, 21세기 매체 전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른 사람들의 견해나 욕망은 담화를 통해서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무의식은 다른 사람들의 말, 다른 사람들의 대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목표, 열망,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p35) <라캉의 주체> 中


 언어로서의 타자는 대부분의 아이들에 의해 동화된다. 타자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소망들을 불손하고도 부적절하게 변형하는 음험한 불청객 침입자로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우리의 욕망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면서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엇이기도 하다.(p29)... 우리 자신과의 혹은 다른 사람과의 일상적 대화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해 말하는 저 담화가 우리 자신을 진실하게 반영하는 것과는 생각보다 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았다. 실로 그것은 언어로서의 이 다른 현존에 의해 침투되어 있는 것이다. 라캉은 이를 분명한 용어로 표현한다. 자기는 타자이다. 자아는 타자이다.(p31) <라캉의 주체> 中


  라캉에 따르면 우리의 무의식은 다른 사람(타자)들의 생각들이 흘러들어와 수용되는 곳이다. 그리고 이러한 타자의 생각은 언어에 의해 전해지는데, 이때  우리는 우리의 언어가 아닌 타자의 언어로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어린아이가 말을 배울 때를 생각해보자). 그런 면에서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談論)이며, 자아와 타자는 다르지 않다. 자아와 타자를 맺어주는 언어. 그렇다면 언어는 어떤 기능을 하는가. 라캉은 언어의 기능을 상징계와 실재와의 관계에서 찾는다.


  라캉의 실재에는 지대들도, 하위구분들도, 국부화된 높낮이도, 혹은 틈새와 충만도 없다. 실재는 갈라짐 없고 분화되지 않은 일종의 직물이며, 모든 곳이 충만한 그런 방식으로 짜여 있다. 실재가 별도의 지대들로, 구분되는 지형들로, 대비되는 구조들로 나뉘는 것은 상징적 질서의 결과인데, 상징적  질서는 실재의 매끄러운 겉면을 자르고 들어가서 구분들과 틈새들과 구별가능한 존재자들을 만들어내며 실재를 안장安葬시킨다. 실재를 폐기하면서 상징적 질서는 '현실"을 창조한다.(p62) <라캉의 주체> 中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은 그것의 현실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실존하지 않는다. 라캉의 용어법에서 실존 existence은 언어의 산물이다. 따라서 실재는 언어를 앞서므로, 실존하지 않는다.(p63)... 라캉적 관점에서 볼 때 정신분석의 전제는, 언제나 상징계가 - 실재계를 암호화하고, 그로써 그것을 변형하거나 환원하는 가운데 - 실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식적으로 그려보자면, 상징계는 실재 위에 덧쓰기를 하고 실재를 지움으로써 실재를 빗금친다.(p65) <라캉의 주체> 中


 라캉에 의한면 '말할 수 없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언어 이전에 사태(事態)는 없는 것이다. 실재는 어린아이가 주위의 환경(타자)으로부터 언어를 배울 때 형성되는 것이며, 외부의 암호화된 언어와 의미를 받아들여 해석함으로써 비로소 실존한다. 이러한 외부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구분되며, 이들은 거칠게 표현해서 상상계는 우리가 유사함을 느끼는 세계인 반면, 상징적 관계는 암호화된, 보다 추상적인 세계라 할 수 있다.


 "상상적" 관계는 환영적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아들간의 관계인데,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단 하나의 대립 - 동일한과 상이한의 대립-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상상적 관계는 당신이 다양한 이유로 당신 자신 같다고 간주하는 다른 사람들을 내포한다.(p160)... 우리가 우리 자신 같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타자에 대해서, 우리가 타자와 맺는 것과 유사한 관계에 있다.(p162)... 상징적 관계는 언어, 지식, 법, 경력, 학계, 권위, 도덕 이상 등등으로서의 타자에 대한 관계이다, 타자에 의해 지칭된 대상들과의 관계이다.(p164) <라캉의 주체> 中


 그럼, <축음기, 영화, 타자기>안에서 라캉의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가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살펴보자. 저자 카틀러는 암호화된다는 면에서 '타자기'를 상징계에, 유사함을 저장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영화'를 상상계에 마지막으로 '축음기'를 실재계에 배치한다. 


 타자기는 처음으로, 자판이라는 계산되고 정돈된 저장고에서 선택된 문자를 제공한다. 손글씨의 흐름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서는 자간과 행간에 의해 분리되고 구분된 요소들이 서로 나란히 등장한다. 따라서 상징계는 인쇄 활자의 지위를 가진다... 영화는 움직이는 도플갱어를 최초로 저장할 수 있었고, 다른 영장류와는 달리 인간은 그 안에서 자신의 신체를 인지(혹은 오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상상계는 영화의 지위를 갖는다... 축음기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모든 기호의 질서와 단어의 의미들 이전에 후두에서 내지르는 모든 소음을 고정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실재계는 축음기의 지위를 갖는다.(p39) <축음기, 영화, 타자기> 中


 여기에서 우리는 추가적으로 상징계와 실재계와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재은 외부로부터 암호화된 언어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래의 자기는 점점 작아지고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밀려나게 된 '잔여물'들은 무의식으로 밀려나 의식의 다른 원인이 된다. 언어를 통한 상징계와 실재계의 교류를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


 우리는 될 수 없으며, 단순한 잔존물이나 찌꺼기에 해당한다. 매 단계에서 적어도 실재가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상징화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저 "최초의", "본래적" 실재는 점점 더 적게 남겨지게 된다. 그리하여 상징계와 나란히 존속하는 잔여물은 언제나 존재한다.(p66)... 중첩되는 상징 적용의 단순화된 모델에서 우리는 1 다음에 곧바로 3이 올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1 바로 다음에 오는 위치에서 우리는 3을 일종의 잔여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회로에서 사용 하나의 수는 배제되거나 옆으로 밀려나게 된다... 라캉은 이 배제된 수나 상징들을 그 과정의 카푸트 모르툼(caput mortuum)이라고 부른다.(p67)... 카푸트 모르툼은 사슬이 포함하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슬의 타자이다... 사슬 바깥에 필연적으로 남게 되는 그 무엇은 내부에 있는 것의 원인이다. 내부가 있기라도 하려면, 구조적으로 말해서 무언가가 밖으로 밀려나야 한다.(p68) <라캉의 주체> 中


 여기서 매체들이 위치하게 된 세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축음기와 영상기록기는 각각 청각, 청각+시각적으로 '시간'을 저장하는 매체다. 둘 다 시간을 저장하는 매체지만, 영화는 보다 종합적으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상상계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이에 반해, '타자기'는 언어(문자)를 통해 정보를 암호화한다는 면에서 '상징계'의 자리에 놓인다.


 축음기 Phonograph와 영상기록기 Kinematograph에 이르러 비로소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시간은 청각적인 것에서는 소음의 주파수 혼합체로, 광학적인 것에서는 연속되는 단일 이미지들의 운동으로 저장되었다. 모든 예술은 시간에서 그 한계를 갖는다.(p17) <축음기, 영화, 타자기> 中


 레코드판의 홈이 끔찍한 폐기물들, 즉 육체의 실재를 저장하는 동안에, 극영화는 한 세기 동안 문학이라고 불렸던 모든 환상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을 넘겨받는다... 이때부터 신낭만주의 작가들은 사랑을 쉽게 성취할 수 있었다.(p284) <축음기, 영화, 타자기> 中


  문자는 자신이 권력을 획득했다는 사실만을 저장한다. 문자는 자신을 만들어낸 신의 저장 독점권을 찬미한다. 이 신은 문자를 이해하는 독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기호의 제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책들은 이집트의 <사자 死者의 서>와 같은  죽은 이들의 책이라 하겠다. 책은 모든 감각들이, 그 감각의 저편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망자의 제국과 같다.(p24) <축음기, 영화, 타자기> 中


 이와 같은 이유로 20세기 영상 매체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라캉의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에 대응하여 논리를 풀어가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한 후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읽는다면, 더 좋은 독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외에도 라캉 이론의 여러 부분이 책 본문에 담겨있는데, 예를 들면 상징계의 불완전성을 설명하는 라캉의 이론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 ~ 1954)의 에니그마(Enigma) 암호 체계 해독에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내용이 좋은 예라 여겨진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미테이션 게임 Alan Turing: The Enigma>을 참고하면 좋겠다. 괴델의 불가능성 정리에 대해서는 일전에 정리한 페이퍼 주소를 알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모든 기표들의 집합이라고 가정된 집합은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영원히 집합 바깥에 남아 있는, 집합의 바로 그 이름이 언제나 있는 것이다... 그 집합은 그 자신을 자기 자신의 원소 가운데 하나로 포함한다. 이는 역설적 결과이다.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말이다. 이 논증은 대수의 불완전성에 과한 괴델의 정리와 연결할 수 있는데, 이 정리는 모든 공리적 체계들로 일반화할 수 있다.(p72) <라캉의 주체> 中


애니그마는 실용적으로는 장점이지만 이론적으로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애니그마의 암호가 자기 반전反轉적 그룹을 지니고 있었다. 같은 기계에서 암호화와 그 암호에 대한 해독이 이루어지려면, 철자 조합들이 서로 교환 가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고사령부 OKW가 O를 K로 암호화했다면, 역으로 K는 O의 암호여야 한는 것이다. 이로부터 두번째로 "어떤 철자도 자기 자신을 통해서는 암호화될 수 없다는 특성"이 도출된다. 다시 말해 OKW도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튜링은 이 작지만 중요한 비밀을 폭로하는 함축을 순차적인 분석에 적용하여 해법의 개연성을 조정할 수 있었다.(p451) <축음기, 영화, 타자기> 中


 괴델의 증명과 관련 페이퍼  : https://blog.aladin.co.kr/winter_tiger/10195327


 키틀러가 <축음기, 영화, 타자기> 안에서 20세기 매체를 통해 분석을 수행했다면, 21세기에는 어떤 방향으로 정보 기술 매체들이 발전할 것인가? 1985년에 씌여진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는다. 대신 키틀러의 다른 저작 <광학적 미디어 : 1999년 베를린 강의>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실재는 외부로부터 타자의 언어를 받아들임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라캉의 이론을 생각해본다면, 암호화된 상징계가 실재계이전에 존재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 면에서, 암호화 또는 압축은 현실 존재에 선행되는 작업일 것이며 컴퓨터는 이전의 그 어느 매체보다 혁명적으로 이러한 압축을 수행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환이 그것이다.

 

 모든 압축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n-1 차원이 기표가 n차원을 은폐하고 숨기고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신神의 살과 피를 두고 논쟁을 벌였던 것도 그 때문이고, 성상파괴를 주장하는 종교개혁자들이 교회에 그려진 이미지에 맞서 싸웠던 것도 그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근대의 자연과학과 기술이 텍스트 기반의 현실 개념에 맞서 전쟁을 벌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플루서는 이 마지막 전쟁에서 일차원적 텍스트가 영차원의 숫자나 비트로 대체됐다고 보고, 이제는 차원이 없기 때문에 무언가 은폐될 위험도 없음을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컴퓨터는 모든 차원을 영차원으로 완전히 압축하는 기술이다.(p346) <광학적 미디어 : 1999년 베를린 강의> 中


 그리고, 그 결과 21세기 우리는 빛의 속도로 전송되고, 저장되는 시대에 살게 된다는 것이 키틀러의 예언이다. 이 예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더이상 고전 역학의 시대가 아닌 양자역학(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의 시대를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고전 역학과 전혀 다른 가정에서 출발하는 양자 역학과 의미와 과거와 전혀 다른 패러다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 때, 물리학적으로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양자혁명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디지털 이미지 처리 방식은 관습적 예술과는 달리 이미지를 본뜨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실재계에 호응한다.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실리콘 칩과 데이터를 전송하는 금/구리선으로 이뤄진 현재의 시스템이 광학적 회로와 광섬유 케이블로 이뤄진 새로운 시스템으로 대체된다면, 디지털 이미지의 계산 속도도 더 빨라지겠지만 만델브로트가 발견한 자기 유사성의 수학적 구조도 더 강력해질 것이다... 이제 광학적 미디어가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수립될 것이다. 그러므로 광학적 미디어에 관한 내 강의도 그 시스템에 관한 예언으로 마무리하겠다. 그것은 빛을 빛으로 전송할 뿐만 아니라 빛으로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정보로서의 빛 또는 빛으로서의 정보의 최대 전송 속도는 광자 에너지를 플랑크 상수로 나눈 몫의 제곱근에 경험적 계수를 곱한 값과 같을 것이다.(p349) <광학적 미디어 : 1999년 베를린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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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9-10-16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벤야민이 기술 매체로 사진, 영화에서 그친 게 아쉽듯 키틀러도 21세기 매체로까지 진전되지 못하고 아날로그 기술 매체 분석에서 그친 게 아쉬운 지점입니다. 시기적으로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지금처럼 디지털화가 빠른 시대에서는 더욱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하잖아요.
휴대폰 하나로도 쓰나미를 일으키기 충분하니까요.
역사 이해는 늘 사후적이니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매체의 저변을 더 쪼개어서 분석 제시해주는 건 멋지더군요👍 비싸서 벼르고만 있었는데 얼른 사서 읽었으면 좋았을 걸 싶더군요.

겨울호랑이 2019-10-16 00:33   좋아요 1 | URL
저 또한 마찬가지로 매체 안의 속성을 라캉의 심리학에 대응해서 분석한 부분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매체가 당대 사람들의 요구 또는 욕구의 산물임을 통찰한 키틀러의 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AglmA님 말씀처럼 21세기에는 다양한 매체가 스마트폰으로 수렴해가는 현상을 키틀러는 어떻게 분석했을지 궁금해 집니다. 그의 후기작을 통해 유추한다면, 스마트폰 등의 매체와 빛을 연결시켜서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가 그 안에 어떤 방식으로 담겼는지 또는 수렴해갔는지를 설명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만. 그건 본인만이 알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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