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텔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책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암스텔담 국립 미술관(Rijksmuseum Amsterdam)을 보고 싶었다. 17세기 전성기를 이뤘던 네덜란드 미술사를 읽기 위해 찾아본 책들 중에 시선을 끌었던 책이었다. 표지 그림이 램브란트의 유대인 신부여서 눈길이 갔고 17세기 네덜란드 미술 읽기라는 부제도 당시 내가 알고자 했던 주제와 딱 맞아떨어졌었다.

 

내밀한 미술사의 첫 번째 장은 브뤼헐의 풍경화로 시작하고 있다. 얼어붙은 운하 위 사람들의 풍경은 한겨울에 그 많은 사람이 활동하는 것도 놀랍지만, 썰매를 타고, 놀이를 즐기고, 손을 잡고 스케이트를 타는 연인 등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활력을 보여주고 있어 경이롭다. 그 속에 세심하게 그려진 죽음과 상실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인물을 발견하는 순간 탄식한다. “! 여기……!”하고 말을 멈춘 채 오랜 응시를 하게 된다. 브뤼헐이라는 이름과 함께 얼어붙은 운하 위 사람들의 풍경은 그렇게 각인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 미술품에 대한 수요 급증의 원인과 그에 따른 화가들과 그들의 작업실과 작품 시장에 미친 영향과 미술론 등에 대해 서술하면서 저자는 램브란트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페이메이르도 소개하고 있다. 램브란트에 비해 남긴 작품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페이메이르를 서로 견준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BBC에서 사이먼 샤마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이 위대한 두 명의 화가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청중들이 모의투표를 벌였다는 기이한 장면은 급부상한 페이메이르의 위상을 시사한다. 저자는 페이메이르의 작품 수가 많지 않은 이유를 그의 작업 스타일에서 찾고 있다.

 

마지막은 램브란트의 초상화의 주인공 얀 식스와 그 가문의 이야기로 마치고 있다. <얀 식스의 초상화의 주인공이고, 램브란트의 친구인 얀 식스는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었다. 정치적 역량과 예술적 소양을 갖춘 엘리트였다. 그는 램브란트가 파산한 뒤 돈을 빌려주고 그의 작품을 사주었다고 한다. 그가 소유했던 미술작품을 유산으로 이어받은 그의 자손들은 그 작품들을 보존해왔고, 현재 11대 식스가 관리하고 있다.


 암스텔담 국립 미술관에서 단연 관심을 갖고 본 것은 램브란트와 페이메이르의 작품이었다. 고흐 미술관에서도 기대하던 그림들을 보게 되어서 국내 전시회에서 볼 수 없어 느끼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항상 겪는 경험이지만 미술관에 직접 가서 보면, 처음 목적과 달리, 다른 작품들이 새롭게 다가온다는 사실! 이번에는 프란스 할스(Frans Hals)였다. 그의 초상화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은 초상화 속 인물들 눈이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네덜란드 화가들도 그렇지만 특히 프란스 할스의 작품 속 인물들의 눈동자는 성격과 말을 담고 있다. 그 눈동자를 오래 동안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면 목과 손목에 둘러져 있는 주름 잡힌 얇은 레이스가 들어온다. 하얗고 투명하게 비치는 레이스의 디테일 묘사에 감탄하는 관람자들을 여럿 보게 된다.

하를렘 골목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프란스 할스 뮤지엄(Frans Hals Museum)의 정경과 잘 가꾸어진 중정의 모습은 그가 17세기 미술에 중요한 화가였음을 알게 해준다. 민병대 집단 초상화와 어느 기사의 초상화 등 주인공들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들의 눈은 한시도 말을 멈추고 있지 않고 있다. 수다스럽다. 그 앞에 서면 그들이 저마다 외치는 큰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램브란트의 야간경비대는 유리로 막아놓은 방 안에 복원 중인 상태로 전시되어있었다. 가까이서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복원 작업 과정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기대했던 페이메이르의 여성들! 첫 번째 인상은 생각보다 작품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눈이 시릴 정도로 옷의 푸른색이 작품 전체를 압도한다. 디테일한 화가의 붓질에 몸은 점점 앞으로 기울이게 되고 감탄하며 그 앞에서 떠날 수가 없다. 내가 시간에 쫓기는 여행자가 아니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스키폴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맡기고, 트램을 타고 아침을 맞는 암스텔담을 통과해 중앙역까지 갔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청소하는 사람들, 가을빛이 든 나무들, 유럽식 테라스로 장식된 낮은 높이의 공동주택과 빌딩들이 운하와 다리들과 어우러지는 풍경에 감탄하게 된다. 8월 중순의 암스텔담의 인상은 가을이었다. 카메라는 예쁜 건물들과 운하와 다리와 오가는 배들을 향했지만 앵글은 그 실루엣을 만드는 파란 하늘에 초점이 맞춰졌다. 짙푸른 하늘빛은 페이메이르의 그림 속 여인의 치마 빛을 떠올리게 했다. 그가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를 고집한 이유를 해지기 전 더욱 짙푸른 하늘에서 찾게 된다.

 짧은 일정 때문에 브뤼셀에 갈지, 쾰른엘 갈지 동생과 아이들과 고민하다 이번에 안가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쾰른을 선택했다. 도이치 반을 타고 다녀오는 하루 일정이라 아침 일찍 출발해 밤늦게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기차역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쾰른 성당이 웅장한 몸체를 드러낸다. 구름 낀 하늘을 배경으로 높이 솟은 첨탑과 짙은 색의 건물이 내뿜는 아우라에 압도되어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이 무장한 창 기사의 이미를 떠올린 것을 실감하게 된다. 고딕의 전성기 3대 고딕 성당에 포함되는 건물이라고 한다. 고딕식 성당의 외부에 초기나 중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벽이 잘 보이지 않고, 프랑스처럼 장미창이 보이지 않았다. 내부로 들어가면 높은 기둥과 천정의 첨두아치리브볼트가 돋보인다.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월도 시선을 끈다. 아미앵의 높이와 생 샤펠의 장식을 들여와 더 발전시켰다고 한다. 호엔촐레른 다리에서 바라본 성당은 잊지 못할 풍경이다. 쾰른을 선택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다.

 돌아와 고딕 성당의 역사와 구조 지역마다의 특징들을 다룬 고딕 성당, 거룩한 신비의 빛을 읽고 다시 복기했다. 책으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경험이란 생각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매일 숙소 앞에 있는 암스텔 파크에서 산책했다. 6시가 지나면 달리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요트와 카누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 자체가 풍경을 이루어 평화로움을 느낀다. 우리는 도대체 이 여행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왔을까 생각했다. 소매치기, 마약 등을 떠올리며 출발했던 것을 떠올리며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은 여기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공기도 너무 좋고, 깨끗하고 친절하고하며 이유를 댄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본 암스텔담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생활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음엔 어디를 어느 미술관엘 갈까? 갈 수 있을까? 하는 궁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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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감금광기 그리고 독립된 주체, 이 소설의 플롯을 짜나가고 담론을 형성하는 주제들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희생과 억압에 순응하지 않고 분노로 저항할 때, 감금당하고 감금은 광기를 일으킨다.

 

제인은 사촌 존 리드의 폭력에 저항하다 붉은 방에 갇히고, 공포로 인해 정신을 잃는다. 제인이 갇혔던 붉은 방은 로우드 기숙학교를 거쳐 버사 메이슨이 감금된 손필드 저택 다락방으로 연결된다. 제인은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고분고분하지 않다. 다른 여성들처럼 시대가 요구하는 태도를 거부한다. 강압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는 말로든 침묵으로든 분노를 표시한다. 그녀가 붉은 방에 감금당하고, 수용소와 다름없는 기숙학교에 보내지는 까닭이다.

 

기숙학교 교장 브로클허스트와 세인트 존은 그녀를 억압하는 초자아의 화신이다. 그것은 그녀를 둘러싼 여성에 대한 편견, 관습, 관념 등이다. 그들의 말이나 요구는 그녀에게 분노를 일으킨다. 샌드라 길버트는 제인 에어가 발표되었을 때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경악한 것은 제인의 분노였다고 말한다. “억압된 분노를 신화화하는 것과 억압된 섹슈얼리티를 신화화하는 것은 유사할지라도 억압된 분노를 신화하는 것이 훨씬 더 위험(다락방의 미친여자601p)”하기 때문이다. 분노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샬럿 브론테의 분노에 대해 거론한다. “개인적인 비탄에 신경은 쓰느라 마땅히 자신이 전념했어야 할 이야기를 그만 내버렸다(자기만의 방4. 버지니아 울프)”고 말한다. 제인이 지붕 위로 올라가 멀리 바라보며 자유를 꿈꾸는 아름다운 장면에 이어 작가의 감정을 개입시킨 문장들이다.

 

여성들이란 집안에 처박혀서 푸딩이나 만들고 양말이나 짜고 피아노나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들의 소견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관습에 의해서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선고된 일 이상의 것을 하고 또 배우려고 하는 여성을 탓하거나 비웃는 것은 소갈머리 없는 짓이다. (제인 에어1199p 12)”

 

버지니아 울프는 샬럿이 자신에게 적합하고 응당 누려야 할 경험에 굶주렸다는 사실을 기억했고. 세상을 자유로이 방랑하고 싶을 때, 목사관에서 양말을 키우며 침체되어야만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로 인해 상상력이 빗나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여주인공의 자유에 대한 동경과 갈망을 탁월한 상상력으로 그리는 글 속에서 잠시 멈춘 작가의 그 덜그럭거림에 마음이 움직인다. 이내 작가는 곧 길을 찾는다. 홀로 생각을 이어가던 제인의 귀에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중얼거림을 배치함으로 다락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대한 심리적 층위를 쌓는다.

 

샌드라 길버트는 이 중얼거림은 버사의 것인지 제인의 것인지 모호하고, 다락방에 감금된 것은 제인의 잠재의식이라고 해석한다. 그렇게 보자면 버사가 로체스터의 침대에 불태우려 한 것도 제인의 웨딩드레스를 훼손한 것도 제인의 불안함이나 로체스터에 대한 양가 감정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로체스터는 오만하고 제인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당시 남성들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에게 끌리지만 자신을 지배하려는 태도에 제인은 분노를 느끼는 양가감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락방에 숨겨진 버사가 그의 아내임이 밝혀진 날, 진실을 듣고 그를 용서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도망을 친다. 이 도망은 너무나 필사적이어서 의문이 생긴다. 다음날 짐을 챙겨서 마차를 부르고 이별을 고하고 조용히 떠나도 되는 것 아닐까? 그녀를 멀리 서둘러 떠나게 했던 원인은 아마도 로체스터의 그녀를 장악하려는 힘이 아니었을까? 그녀를 붙잡으려 하는 그의 태도에서 강압적인 힘을 느낀다. 그의 곁에 머물면 구속되는 것이고 자유는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로체스터를 사랑하는 정도도 저항할 수 없이 크기에 그녀의 도망은 필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소설은 그날은 산보가 가당치 않은 날씨였다로 시작된다. 그것이 기뻤다고 하는 제인에게 일상의 산보가 즐겁지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자신을 통제하는 하녀들과 유쾌하지 않은 사촌들과 추운날씨에 걷다가 다시 답답한 집으로 돌아오는 산책은 그녀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산책은 로체스터를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걷다가 예기치 않은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고, 멀리 가보지 않은 세계로까지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다.

 

손필드를 떠나 마시엔드에 다다르기까지 폭풍우를 만나고 기아 상태에 놓이며 여행한 것처럼 그녀의 욕망은 대가를 치른다. 그녀가 살던 빅토리아 시대가 여성들에게 이러했으리라 짐작한다. 뛰어난 학업적 성취를 이루어도 그녀들이 구할 수 있는 직장은 가정교사 자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제인이 마시엔드에서 생존을 위해 직장을 구할 때 가게 점원과 나눈 대화에서 여성들의 처지를 가늠하게 한다.

 

혹시 이 근처에서 식모를 구하는 댁이 있는지 모르시나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여기서는 주로 무슨 직업들을 갖고 있나요? 사람들은 대개 무슨 일을 하나요?”

농부도 있고, 올리버 씨의 바늘 공장과 주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죠.”

올리버 씨는 여자 일꾼도 쓰나요?”

아뇨, 남자의 일인걸요.”

그러면 여자들은 무슨 일을 하나요?”

모르겠어요.”

(제인 에어2178p 28)

 

샬럿이 굳이 이 대화를 넣는 의도를 읽게 된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얼마나 제한적이며, 결혼이나 유산을 받는 것 외에는 그녀들의 경제적 여건을 향상시킬 수 없는 상황을 고발하고 있다. 손필드를 떠났던 제인은 친척의 유산을 받고 부자가 된다. 그녀는 저택을 잃고 장애를 입은 로체스터에게 저는 부자일 뿐만 아니라 독립해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저의 주인은 제 자신이에요.(제인 에어2393p 37)”라고 말한다. 제인이 그리고 그 시대 여성들이 독립된 존재로 살기엔 경제적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보여준다. 오늘날 역시 주체적 삶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긴 하다. 더욱 주목되는 지점은 제인의 욕망이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주인인 삶이다. 로체스터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존재로서 사랑하기를 원한 것이다.

 

제인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로체스터의 반응도 인상적이다. 그의 외모가 어떻게 변했든지 그는 제인의 사랑과 도움을 당당히 요구하고 받아들인다. 사실 이것이 현실적이면서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사랑은 어리기만 하다는 반성을 한 지점이었다.

 

제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려 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고난들-게이츠헤드에서의 억압과 감금, 로우드에서의 굶주림, 손필드에서의 광기, 마시엔드에서의 추위-가부장적 사회에서 모든 여성이 직면하고 극복해야 하는 곤경의 징후(다락방의 미친 여자602p)”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분노하고 그녀는 감금되고 그녀는 광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한편, 손필드 저택에 초대된 로체스터의 지인들이 벌이는 놀이에서 유럽 중심의 왜곡된 시선이 포착된다. 로체스터와 잉그램이 연기한 엘리자와 리브가는 족장시대 근동지역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이 재현한 이 이미지는 당시 사람들의 관념 속에 자리 잡은 동양에 대한 왜곡된 모습이다. 제국주의 시대 오리엔탈리스트 학자들은 식민지에 대한 언어, 문화, 종교, 풍습에 대해 연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것은 유럽인들에게 참고서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 문헌은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본 것이기에 왜곡과 폄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1차 문헌들은 또 다른 텍스트가 재생산 되는 근거 자료가 되었다. 이 텍스트는 다시 문학이나 예술에서 재현되었고 이런 왜곡된 이미지는 사람들의 관념 속에 동양의 전형으로 표상되었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그런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주로 이슬람권 동양에 대한 이런 시각은 그들이 식민지로 삼는 유럽 바깥의 모든 곳을 향했다. 버사 메이슨이 서인도 제도 태생의 크리올’-유럽인과 식민지인 사이의 혼혈 또는 식민지 태생의 유럽인-인 것도 맥을 같이 한다. 광기를 가진 여인이 유럽인이 아닌 크리올이고 어두운 피부와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에 오리엔탈리즘이 묻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비판하는 문학에는 제인 오스틴, 까뮈, 조셉 콘라드, 플로베르 등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샬럿 브론테 역시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여러 번 읽고 깊이 들어갈수록 많은 담론과 변주를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참고할 책이 한 권 두 권 늘어났고, 그만큼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읽기 전까지 생각도 못했던 많은 심리적 철학적 역사적 주제들을 얻었다. 그 중 다락방의 미친 여자란 제목은 이 제인 에어와 관련 있다. 소개된 더 많은 작품을 읽고픈 욕구를 일으키는 탁월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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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8-24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인에어를 그냥 재미있게만 읽었었는데 그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나 봅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 연관 책도 더 찾아 읽게 되더라구요~!!

그레이스 2025-08-24 14:24   좋아요 1 | URL
^^
저도 첫번째 읽기에는 그랬어요,,, 너무 오래전 일이네요. 안보이던 것이 보인건 나이때문이기도, 읽어온 책들 덕분이기도 한 듯 해요~♡

젤소민아 2025-08-25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인 에어, 제 인생소설입니다~. 가장 좋아해요. 그레이스님 후기 읽고 또 읽고 싶어졌어요

그레이스 2025-08-25 21:27   좋아요 0 | URL
인생소설이라고 하시니,,, 후기가 기대됩니다.~~

단발머리 2025-09-07 0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이에요~~ 저도 젤소민아님처럼 인생소설이라고 부르는 책 중의 하나입니다ㅎㅎㅎ
재독할수록 더 깊고 두터운 면면을 보여주는 소설인데, 그레이스님 리뷰 따라 읽는 이 시간이 참 좋네요. 제인이 마시엔드에서 나눈 대화나 로체스터 집 근처에서 벌어진 놀이에 대한 부분은 기억이 잘 안 나서 따로 찾아봐야겠다, 생각했어요.
<브론테 자매 평전>도 제목만 듣던 책인데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5-09-09 20: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들 인생소설이라 하시니,,, 다시 기억을 소환해봅니다.
전 지금 빌레뜨 읽는 중이고, 셜리도 읽을 예정이예요. 계속 좋았으면 좋겠네요.^^
 
개구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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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고향의 체험, 고향의 풍경, 고향의 전설을 벗어나기 어렵고그것을 소설로 바꾸려면 그것들에 사상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가오미 둥베이 향으로 소설 안의 환상적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자신이 겪은 역사와 인물들, 고향의 삶을 사실과 환상으로 엮어 넣었다. 천재지변과 같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역사의 비극과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 존재 앞에서 나는 분노와 헛웃음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작가의 통렬한 비판과 마지막까지 붙잡는 가치를 읽는다.

 

환각적 리얼리즘 공간 가오미 둥베이 향에서 대약진 운동반우파 투쟁문화 대혁명과 민담습속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술된다. 그 중 화자의 고모 완신의 일생은 이 공간과 시간을 담아낸 표본적 인물이다. ‘베이비 붐계획 생육사업이 전통 관습과 지배 정신, 개인의 욕망과 대립하고 그 대립으로 인한 갈등과 사건의 중심에 고모가 있다.

 

고모의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고 소설이나 시, 극본 같은 작품을 써보라고 격려했던 스기타니 요시토 선생에게 쓰는 편지글이 담겨 있다. 소설의 5개의 부() 앞에 5개의 편지가 달려있다. 시대별로 나뉘어져 있는 이야기 앞에 회상에 대한 소회를 담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글을 썼음을 편지를 쓴 날짜를 통해 알게 된다. 이방인에겐 고모 완신이 자전거를 타고 꽁꽁 언 강을 달려가는 여의사”, “약 상자를 등에 메고, 우산을 들고, 바짓가랑이를 접어 올리고 개구리 떼와 씨름하며 바삐 길을 서두르는 여의사, 소매가 온통 피로 얼룩진 채 한 손에 갓난아기를 받쳐 들고 큰 소리로 환하게 웃고 있는 여의사, 구깃구깃한 옷에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담배를 물고 있는 여의사(1)”의 감동적인 형상으로 그려지겠지만, 시대를 관통한 그녀의 여러 개의 형상은 치열한 내면의 갈등을 숨긴 채 생존을 위해 투쟁했던, 죄의식만 남은 존재로 합쳐진다.

 

1937년생 완신은 위생학교를 졸업하고 신식 조산 훈련을 받은 조산사다. 195344, 난생 처음으로 아이를 받은 후 글을 시작하는 시점까지 약 1만 명을 받았다.

봉건적 부계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지워진 짐 중 하나는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 하는 의무다. 사회적 관계도 그렇지만, 일차적으로 여성 개인에게 일어나는 문제는 많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질환과 높은 사망률이다. 완신도 이런 여성들에게 그 위험을 경고하지만, 그녀들은 남자 아이를 낳기 위해 계속해서 임신한다. ‘베이비 붐시기가 지난 뒤, 정부는 계획 생육사업을 시작한다. 이 사업을 홍보하고 시행하는 완신과 사람들은 갈등을 일으킨다. 완신은 남성들에게 불임시술을 하고, 임신한 여성들에게 억지로 중절 수술을 시킨다. 이 과정에서 태아 뿐 아니라 여성들까지 희생되는 위험을 맞기도 한다.

 

개인은 그가 속한 국가나 사회의 격변의 시기, 자유를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산둥성의 한 현에서 삶 역시 긴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베이비 붐계획 생육사업은 전통 관습과 지배 정신, 개인의 욕망과 대립한다. 국가사업 계획생육에 평생을 받쳤던 공무원 완신의 선택과 행동에는 인간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당연히 존재한다.

 

편지가 거듭되면서 그의 생각이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사관은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고모 완신이 한 일에 대하여 그건 역사였다고 말한다. 중국의 계획 생육을 옹호한다. 그러나 그는 아내와 아이가 이 계획생육에 희생된 후에는 개인의 재난이 되고 죄의식을 엿보게 된다. 타인이 아닌 나의 비극은 삶을 뒤바꿔 버린다. 그 뒤 화자의 삶은 나약하고 비겁할 정도로 추락한다. 고모가 점토인형을 만들며 자신이 죽인 아이들에 대한 죄의식을 달래는 것과 화자가 키워준 천메이를 통해 얻는 것은 다를 바 없는 자기위안이다. 화자의 고모와의 동일시, 그것은 그가 고모를 주인공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심리적 배경이다.

 

그는 개구리라는 희곡을 쓴다. 화자의 개구리에 대한 거부감, 고모의 개구리에 대한 공포와 연관되어 있다. 시간이 흘러 현대 가오미 둥베이 현에는 대리모 중개 업체가 등장한다. 식용 개구리 양식장이 사실은 대리모 중개를 음성적으로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화자는 거부감을 갖는다. 고모는 역시 환각적인 현상을 통해 개구리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된다. 개구리가 다산의 상징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이 아이러니가 화자와 고모의 심리를 극대화시킨다.

 

중국의 계획생육처럼 강한 통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산아제한정책이 있었다.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욕망이 부딪치는 지점과 담론은 많다. 국가의 이익을 위한 개인에 대한 통제, 개인의 국가에 대한 희생은 어디까지일까? 인간 존재를 인구라는 숫자로 표시하고 그 숫자를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 폭력은 아닐까? 인구 감소, 인구 절벽이란 단어가 익숙한 우리 사회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정책들에도 생명을 숫자화한 폭력을 엿보게 된다. 그 저변에 깔린 사유 역시 환원주의다. ‘계획생육’, 미개하고 어이없는 단어로 읽혀지지만, 현대 사회의 생명을 돈으로 평가하는 현상에도 폭력성과 야만성은 노골적이어서,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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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5-08-13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옌의 <개구리> 읽어보고 싶어서 관심 두던 중이었는데 그레이스님 리뷰가 반갑게도 올라왔네요. :)

그레이스 2025-08-13 11:38   좋아요 1 | URL
저도 반가워요
꼭 읽어보시고 리뷰 올려주세요~
읽어볼께요

페크pek0501 2025-08-13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옌 작가에 관심이 있어 찾아 보았는데 6백 쪽이 넘는 책이네요.
소설인 줄 알았더니 희곡인가요?

그레이스 2025-08-13 18:45   좋아요 1 | URL
소설 중 화자가 작가예요. 그 화자가 쓴 희곡이 5부에 등장해요.
6백쪽이 넘어도 읽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두번째 읽는 건데,,, 다시 생각해본 지점들이 많았습니다

젤소민아 2025-08-25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옌, 참 대단한 작가 같아요. 저도 두께에서 좌절했는데, 겁내지 말고 읽을게요~그레이스님 후기에 용기가! 희곡이 개입된다니 굉장히 독특하기도 하네요, 형식이.

그레이스 2025-08-25 21:26   좋아요 0 | URL
강추, 응원합니다~~
네,, 희곡이 전하는 메시지도 인상적이예요!
 

처음 읽을 때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과 그녀가 남편이 아닌 사람을 사랑하게 된 이유들로부터 생각이 출발한다. 작가는 결혼이상주의자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의 사랑과 결혼을 병치시킨다. 레빈와 키티의 결혼이 이상적이거나 행복의 나날의 연속은 아니라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그리고 그 원인이 레빈 자신의 성격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 서두의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113p.11)” 은 중요한 주제임이 분명하다.

 

친구 스테판 아르카지치의 생각을 통해 알려주는 것처럼, 레빈은 자존심 강하고 쉽게 격분하는 내성적인 성격(147p,15)”을 지니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레빈에게서 많은 모순과 허점을 발견한다. 형과의 논쟁에서 자기모순을 발견하고, 질투심 때문에 이성을 잃고, 무례를 범하고, 취약한 성품을 노출시킨다. 그 레빈에게서 작가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다시 읽으면서,  다른 주제들이 보였다. 사실 처음에도 작가가 안나 카레니나 보다는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에게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것에 의문을 가졌었다. 레빈의 농촌 생활과 농민들에 대한 관심과 귀족들에 대한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19세기 러시아 사회, 문화, 정치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 소설 뿐 아니라 부활이나 전쟁과 평화와 같은 톨스토이의 작품들에서 농민에 관한 주제는 동일하게 반복된다. 


농노해방과 농촌운동문화와 예술정치와 경제농민이나 귀족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다른 책들에서 참고했다.


19세기 후반 도시와 강의실을 떠나 러시아 농촌으로 떠난 학생들은 자신을 인민주의자라 칭하며, 농촌의 민중들의 삶을 살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이것이 19세기 러시아 지식인 인텔리겐챠의 민중 속으로(브나로드 В Народ)운동이다. 이것은 일종의 순례 여행이었다.


이 젊은 선전자들은 특권을 누렸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자기 가족의 귀족적 저택에서 자신들의 양육을 도왔던 농노 계급유모와 종복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나타샤 댄스올랜도 파이지스 334)”


톨스토이에게서도 보이는 죄책감이다. 부활이 그 예다. 이들은 귀족과 국가의 억압으로부터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던 농민들의 해방을 위해 헌신한다. 그리고 형제애로 농민들과 연결된 공동체를 꿈꾸었다. 이런 희망을 증폭시킨 계기는 1861년의 농노해방령이었다. 그러나 농노해방과 젊은 지식인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귀족들과 농민들은 변하지 않는다.

 

작가들은 작품을 썼다. 1852년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일기를 기점으로 농민에 대한 묘사가 달라졌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이는 농노에 대한 프레임과 달리 합리적 사고를 하는 인간으로서의 농민들을 등장시킴으로 뒤에 오는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부닌 등에서 그 변화를 읽게 된다.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 농부, 화가, 음악가, 학자, 작가로서 농촌에서 살려고 시도했다. 농민들에게 소작료를 경감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하지만 그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거절당한다. 귀족과 농노의 사이의 간극에 대한 현실자각과 실망으로, 톨스토이는 모스크바 상류사회 생활을 하다가 군 입대를 한다. 이 경험이 그의 소설에도 담겨 있다.


카드게임으로 영지 내(內) 집을 날리기도 했던 톨스토이는 다시 영지로 돌아와 당시 조성된 개혁적 분위기와 차르의 농노해방 계획에 힘입어 농민들과 함께 하는 삶에 투신한다. 인민주의자들처럼 민중 속으로의 삶을 산다. 1859년 그는 야스나야 폴라냐에 농촌 어린이들을 위한 최초의 학교를 설립한다.


그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농민들과 함께 하고자 했지만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귀족적 사고에서 완전히 멀어지지도 못한 듯 보인다. “다른 한 편으로 그의 전 생애는 부끄러운 특권을 가진 엘리트 세계를 버리고 자신의 땀으로살기 위한 투쟁이었다.(나타샤 댄스올랜도 파이지스)이에 대한 질문들은 그의 작품들에 쓰여진 일관된 주제였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양면성을 알고 있었고 수년 간 괴로워했다. 작가로서 그리고 당시의 러시아인으로서 그는 민중에게 지도력과 계몽을 제공해야 할 예술가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농민 학교들을 설립하고 시골 이야기를 쓰며 힘을 쏟고 시골의 늘어나는 독자를 위해 고전(푸쉬킨, 고골리, 레스코프와 체홉)을 출판하는 출판업(‘중개자’)을 시작한 이유였다.”

(나타샤 댄스올랜도 파이지스 367p)

 

톨스토이의 생애를 알고 나서 새롭게 주목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안나 카레니나611장에서, 사냥 후 베슬로프스키와 오블론스키와 레빈은 헛간에 머무른다. 들려오는 농장 하녀들을 목소리를 듣고 베슬로프스키와 오블론스키는 밖으로 나갔다 돌아옵니다. 키티와 결혼한 지 얼마 안되는 레빈은 함께 하지 않는다. 여기서 오블론스키의 말이 흥미롭다. 레빈이 자신들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은 키티가 신경쓰이기 때문이라고 오히려 비난한다. 하녀와 즐기는 것이 레빈에게도 도덕적 문제가 되지는 않음을 내포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다른 지주들처럼 농민(혹은 농노) 여성을 가지는 것에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소냐가 낳은 13명의 아이 이외에도 자기 영지의 마을들에 적어도 12명의 어머니 다른 자식들이 있었다.”고 한다. 농민 여인들 중 그가 정말 사랑했던 유일한 여자는 악시니아 바지키나였다. 소냐와의 결혼 후에도 그는 악시니아와 관계를 지속했고, 그 사이에 아들을 낳았다. 오블론스키의 행동과 레빈의 소극적 반론은 톨스토이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부활에서도 귀족들에게 유린당한 농민 여성들과 태어난 아이들의 비참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톨스토이의 남성 귀족 주인공들에게는 이러한 욕망과 죄의식이 뒤섞여 있음을 보게 된다.

 

 민중 속으로운동은 예술계에서도 한 흐름을 만들었다. 예술가이자 후원자였던 블라디미르 스타소프는 이런 예술가들을 후원했고, 미술에서 이동 전람회파, 음악에서 쿠치키스트의 주장을 지지했다. 스타소프는 민중적이고 러시아적인 예술을 주도했다. “1860년대와 1970년대의 모든 미술가들과 작곡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화가 레핀, 음악가 무소르그스키, 조각가 안토콜스키는 그가 후원한 예술가들이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미술사에 이동파라는 독특한 화파가 등장한다. 반체제적 미술운동이다. '이동파'의 전신은 페테르부르크 예술가 조직이다크람스코이를 포함한 14명은 1861년 발표된 반쪽자리 농노해방법을 찬양하라는 예술아카데미의 요구(1863)를 거부하여, 예술아카데미를 자퇴하고 생활 공동체를 만든. 이들은 전시 공동체 이동파를 조직하고, 기득권에 정면도전하는 반체제적 미술운동을 한다. 이들은 여기저기 이동하며 민중들 속으로 들어가 전시회를 열었다.

크람스코이 <미지의 여인>

이동파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 바로 이반 크람스코이(1837~1887). 그를 잇는 제자들은 레핀과 야로센코다. “크람스코이의 자화상은 ‘1860년대 전형적인 지식인 상이라는 평가를 바도 있다”. “인텔리겐치아는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무에 충실하기 위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헌신적으로 만연한 사회악과의 고독한 싸움을 수행해 나갔다.(러시아 미술사이진숙 149-150p)” 그가 크람스코이가 러시아의 지식인 인텔리겐치아인 화가로서 러시아 미술계에 러시아 미술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크람스코이의 <미지의 여인>은 민음사 안나 카레니나의 표지그림이다. 실제로 크람스코이와 톨스토이는 만남이 있었다고 한다.

일리야 레핀-<볼가강의 배 끄는 사람들>

크람스코이의 제자 레핀의 그림 중 유명한 작품은 <볼가강의 배 끄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표정은 감상자로 하여금 비애를 느끼게 한다. 이 레핀이 1887년 톨스토이 초상화를 그리기위해 그를 방문해서 만나고 관찰했던 감상은 당황스럽게도 역겨움이다. 진짜 비천한 출신인 레핀은 농민들과 이해하지 못하고 섞이지 못하는 톨스토이가 그들을 위하는 양, 자신이 농민의 삶을 사는 양 하는 태도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톨스토이를 대하는 순박한 농민들의 얼굴에서 그토록 빈정대는 빛이 역력한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나타샤 댄스올랜도 파이지스)“고 회상하고 있다.

 

안나 까레니나에서 레빈의 모습은 농민도 귀족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다. 그가 지방 귀족회의에서 보여준 태도는 이런 상황을 잘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다. 지주 농민 공동체, 도시민의 대표들이 구성된 러시아의 지방 자치 기관이 젬스트보 [zemstvo]. 이 젬스트보를 콘트롤하는 게 귀족이어서, 귀족회장은 중요한 자리인 듯 보인다. 기존의 귀족회장을 불신임하고 새롭게 회장을 뽑는 자리에서 레빈은 당황스러운 태도를 취한다. 그는 이따위 회의가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의 논의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다툼과 소란을 피해 회의장을 빠져 나온다.  막상 투표가 시작되자 공을 어느 함에다 넣어야할지 모른 상태가 되어 버린다. 모두가 바라보는 상황에서 어디에 넣지?”라고 형에게 묻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도록 공을 넣는다. 신임투표에 이어 새로운 회장을 뽑는데도 마찬가지의 일을 벌인다.

 

한 표가 모든 문제를 결정할 수도 있다고, 진지하고 일관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하는 정치적 인간 세르게이 이바노비치가 이 곳에서는 보다 지혜롭다. 형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이런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에게 너는 다 하찮다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구나.(안나 카레니나3232p)”라고 한다. 레빈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정치적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는 정치적 무관심 층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유아(乳兒)에 해당한다.

 

레빈은 이상주의자인 듯 보이나 성품이 그 실현의 과정을 방해할 때가 많다. 작가는 자신의 취약한 성품을 인물들에게 전치함으로 스스로를 성찰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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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29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시의 시대적 한계나 귀족출신인 본인의 계급적 한계가 톨스토이의 한계였을거예요. 그래도 러시아같은 사회에서 자신의 인본주의를 실천하려 노력한것만으로도 위대한 영혼인것만은 틀림없는듯요. 부활이나 동화류만 본 톨스토이가 저는 취향이 아니라서 항상 미루기만 하네요. 일단 책장에 꽂혀서 저릋 노려보는 전쟁과 평화부터 봐야 되는데... ㅎㅎ 톨스토이를 정말 읽어야겠다 생각하게 하는 멋진 글입니다.

그레이스 2025-07-29 18:25   좋아요 1 | URL
^^
저는 작가가 자기성찰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위대한 것이겠죠.^^
작가들은 글보다는 정직해서 위대한듯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5-07-29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안나 카레니나> 읽었을
적의 충격이 생각나네요.

브나로드 운동이니 하는 것들
교과서 배울 적에 고저 외워라고
만 들었는데, 문학작품으로 만나
게 되니 바로 이해가 되더군요.

역시나 고전은 다시 읽는 거라는
이탈로 칼비노의 말이 이제야
와 닿습니다.

그레이스 2025-07-29 20:35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읽을때마다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있어요~^^

젤소민아 2025-08-25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뒤늦게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5-08-25 21:25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
 
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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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짧고 간결한 글에는 드러난 사실보다 감춰져 있는 의미들이 더 많다. 그래서 그의 글은 빙산에 비유된다. 설터의 글은 일상의 행위, 풍경, 대화, 생각을 아름답게 서술한다. 독자는 그 문장의 일각 밑에 가라앉아 있는 의미들을 탐사하고 건져올린다. 헤밍웨이의 글이 다시 읽고 싶어진다.

 

설터의 이 소설 서두는 말미를 읽고 나면 두 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빠르게 검은 강에 다가간다. 강변은 돌처럼 평평하고 매끄럽다. …… 강물은 우리 밑에서 시야를 흔들며 흐르고, 물새들은 그 위를 날아 빙그르르 돌다가, 사라진다. 우리는 이 넓은 강을 흘끗 본다. 과거가 흘린 꿈, 강의 깊은 곳을 지나니 강바닥이 수면을 흐렸다. 얕은 물을 따라, 겨우내 보트를 묶어두는 황량한 부두를 따라 우리는 빠르게 나아간다. 그러곤 갈매기처럼 휙 솟아올라,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본다.(23p)”

 

그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강 쪽으로 걷는다. 그의 양복은 너무 덥고 꼭 꼈다. 강가에 닿았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부두가 있다. 칠이 벗겨지고, 판자는 썩었고, 받침대는 이끼가 끼었다. 그 넓고 어두운 강, 그 둑에 온 것이다.(437p)”

 

강가로 나간 사람, 그가 갈매기처럼 솟아올라 몸을 돌려 뒤를 돌아 본 것은 과거가 흘린 꿈이다. 그가 지나온 시간의 이야기들이 그 사이에 담겨 있다. 이 서두와 말미 사이에 지나온 시간의 이야기들이 담겨있기도 하고, 같은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적 표현이다. 이 시적 표현에서 주목하게 되는 구()과거가 흘린 꿈이다.

 

비리(Viri)약간의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의 삶의 기준은 사그리다 파밀리아와 같은 위대한 건축물이다. 유명해지는 것을 꿈꾸었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고 강변에 집을 짓고 부러워할 만한 아내와 가정을 이뤘다. 그렇지만 자존감은 낮았다.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높았고 아내 네드라(Nedra)의 인정에 의존적이었다. 항상 그는 그녀로부터, 그녀의 인정, 그녀의 종잡을 수 없는 기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321p)” 이혼 후에도 그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울증까지 앓는다.

 

미국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두 사람

사르가소그것이 집을 상징하는 단어다. 외도를 하고 돌아온 비리에게 뱀장어에 대한 글을 읽어주는 장면은 암시와 중첩된 의미들을 전한다.

 

암컷은 강어귀에서 평생을 보낸 수컷을 만나 함께, 다른 수백, 수천 마리와 함께 그들이 태어난 곳으로 간다. 해초가 많은 바다 사르가소 해. 깊이조차 알 수 없는 깊은 바다 속에서 그들은 교배하고 죽는다.91p”

 

사르가소 해(Sargasso Sea)는 북대서양 해류에 둘러싸여 흐름이 없는 바다다. ‘마의 바다’, ‘죽음의 바다라고 불린다. 그러나 해조류로 덮여 있는 이 바다 속에서 유럽뱀장어와 아메리카뱀장어 이곳에 알을 낳는다. 광막한 사르가소! 아득하고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이 바다 속에서 생명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뱀장어는 성적인 의미를 암시하고 있어서 네드라가 비리의 외도를 알고 있지만 묵인하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다른 사람에게서 채우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한 그녀에게 사르가소는 집에 대한 은유이다.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괴로운 그에게는 집이 적막하고 해초로 뒤덮인 흐르지 않는 바다다. 한편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생명이 탄생하는 바다 속이다. 아이들이 주는 기쁨은 네드라를 그곳에 머물게 한다. 사르가소 해인 것이다!

 

삶은 날씨고 삶은 식사다(52p)”라고 작가는 가벼운 날들의 의미를 전한다. 그래 그게 삶일지 모르지! 그러나 순간순간 그게 다일까, 그것만으로 만족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타인의 눈에 비리와 네드라의 생황은 행복한 것으로 보인다. 친구와 이웃들을 초대하며 식사를 즐기며 이것이 삶이고 행복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그러나 비리와 네드라는 서로에게서 채울 수 없는 욕망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만족을 얻고 있다. 심지어 비리가 성적욕망을 채우는 것은 상사로서 위압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은밀하게 폭로한다. “만족감 없이 살아가는 행복한 삶이라는 모순은 네드라 내면의 갈등을 점점 키워간다.

 

부친의 죽음을 앞둔 임종과 장례를 기점으로 네드라는 집을 떠나는 결정을 하게 된다. 죽음은 언제나 인간에게 삶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오고가는 길 위에서 목격한 풍경들 속에서 그 영감이 있었다. 홀로 집을 떠나 아버지에게로 갔다가 돌아오는 자동차 여행은 예기치 못한 고독감을 선물한다. 그 며칠의 시간은 홀로됨과 자유에 대한 필요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이후 유럽 여행은 네드라에게 연습과 같았다.

 

네드라는 욕망을 따라 집을 떠나지만 과연 그녀가 원한 자유를 얻었을까? 이혼 전 네드라는 자주 쇼핑을 하고 돈을 썼다. “소비주의는 정서적 공허감을 먹고 번성한다는 캐럴라인 냅의 말을 기억하게 한다. 혼자 여행하고 사랑하고 욕망대로 살아가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징후를 이 소비에서 본다. 그녀는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돈을 쓰는지 모르겠어.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386p)”라고 의문을 갖는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본주의적 습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미국의 중산층 삶은 전적으로 자본에 의존하고 있음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네드라와의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혼 후에도 그녀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리, 돈을 쓰던 습관에서 자유롭지 못한 스스로를 발견하는 네드라, 두 사람 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에 그들이 바라는 욕망은 모두 돈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출발자체가 성공과 유명이었던 비리는 사랑하는 여성도 네드라처럼 예쁘고 멋있고 거실과 식탁을 멋지고 세련되게 가꿀 줄 아는 여자여야 하는 것이었을까? 그는 그녀를 사랑했을까? 사랑했을 것이다. 자본으로 환원되는 욕망이 그 사랑을 왜곡시켰을 것이다. 이제는 칠이 벗겨지고, 판자는 썩었고, 받침대는 이끼낀(437p)” 그 넓고 어두운 강둑에 돌아와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그는 여전히 그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일까?

 

우리가 꿈꾸는 나날은 무엇일까? 타인이 욕망하는 그런 일상인가? 산뜻한 날씨 아래 멋진 집에서 세련된 가구와 잘 차려진 식탁 앞에서 가벼운 대화를 즐기는 일상일까? 자본으로 환원되는 욕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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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7-19 1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설터에 아직 입문을 못하고 있어요. ㅠㅠ
‘삶은 날씨고 삶은 식사다‘,
너무 좋은 비유네요^^

그레이스 2025-07-19 19:24   좋아요 2 | URL
딱 꽂히는 말인데!
자꾸 고쳐 생각하게 돼요

레삭매냐 2025-07-19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설터, 작가들의
작가라는 말이 꼭 들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단편선에 빠져서 정말
죽어라 읽던 기억이
나네요. 어떤 책은 번역
을 기다리지 못하고 원
서로도 사서 쟁여둔 기
억이...

그레이스 2025-07-20 17: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문장이 넘 좋더라구요
저도 원서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단편도 읽어봐야겠네요.

자목련 2025-07-21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터의 단편소설 <어젯밤>을 처음 만났을 때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요. 이 소설도 좋았고요!

그레이스 2025-07-21 08:44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단편을 읽어봐야겠네요^^
전 이 책이 세권째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