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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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엔 설마 하던 일이 언제든지 일어난다.


아침에 출근한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감시 당하고, 생존 위협을 받고, 통행을 금지 당하고, 내전(內戰) 의 한복판에서 두 아들을 잃고, 필사의 탈출을 한다. 주인공 아일리시 스택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다. 그녀가 설마 하던 일이다. 설마 했기에 그 땅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이라면 난 내가 새처럼 자유롭다고 말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이런 기괴한 일에 휘말렸는데 어떻게 자유의지가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한 가지 일이 다른 일로 이어지고, 결국 그 빌어먹을 사태가 스스로의 동력을 찾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352p)”

 

아일랜드를 탈출하기 위해 바닷가 공장 건물에 머물 때 만난 모나가 한 말이다. 그녀 역시 아일리시와 다를 바 없는 고통을 겪고 떠나는 중이다. 일찌감치 떠나라고 권하는 말들을 무시한 것은 이렇게 생존의 탈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속히 떠나라는 예언자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복 경찰관이 집을 다녀갔을 때 아일리시는 무언가가 집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여기서 나는 숨을 멈추고 읽어 내려갔다. 무언가는 두 남자와 함께 서 있다가 현관으로 들어왔고, 살금살금 집안을 걸어 다닌다. 집 밖 어둠의 일부가 들어왔다. 두려움 혹은 불행일까? 아일리시가 겪는 현실과 마음은 서로 대비를 이루며 묘사된다. 사실적인 서술과 환상적 표현으로. 시를 읽는 것 같다.

 

교원 노조원인 남편 래리 스택이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는 그에게 해야 돼, 이제 당신이나 내 문제가 아니야, …… 교사가 규탄하지 않으면 우리의 헌법적 권리를 위해서 들고 일어날 사람이 달리 어디 있겠어?(41p)”라고 말할 때에도 그가 그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집을 나서는 래리에게 가서 해치워.”라고 말했던 그 시간에서 그녀는 떠나오지 못한다.

 

문 앞에서 주저하던 래리, 녹색 부츠에 발을 집어넣은 다음 비옷을 입으려 애쓰던 래리를 생각한다.(53p)”

 

아일리시는 네 아이를 돌보며, GNSB에 체포된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녀는 보안 위험인물로 간주되고, 직장을 잃고,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며,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정부군과 혁명군의 내전이 발발하고, 그녀의 삶은 급변한다.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작가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그러나 그것은 상상으로 보여준 실재이다. 그가 보여준 시적 표현들에 공감되어서 더욱 슬프다. 나의 공감은 이 세상엔 이런 비극이 실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므로.

 

작가는 아일랜드에 독재 정부가 집권하고, 감시와 통제와 폭력으로 통치하는 전제국가에서 저항, 체포, 죽음, 탈출의 연속적 사건을 겪어내는 아일리시의 삶을 그리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상의 허구지만, 시리아 내전이나, 우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의 실재성을 전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을 때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의 느낌은 다르다. 


불면의 밤을 지나고, 시간이 흐르며 드러나는 진실 앞에서, ‘설마만일사이에서 몸서리를 친다.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고 지속되었다면, 국지전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확대되었다면, 내란이 성공했다면…… 하는 가정들이 일으킨 각성들 때문에 나는 여전히 잠을 설친다. 지금은 시위대에 참여하기 위해 시간을 내지만, 만일 아일리시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불의와 압제에 저항할 용기도 내 남편과 아이들을 독려할 수 있는 순수함도 나에겐 없음을 발견하고 수치심의 바닥으로 추락한다. 아일리시가 그렇듯 헌신과 사랑의 세상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공포의 세상에 살도록 저주받는 것(354p)”을 본다. 차라리 내 아이들 나이 때 가졌던 무모함이라도 되갖는 게 마음 편할까?

 

실제일까 하는 의심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몇 분의 오차로, 몇 사람의 소극적 행동으로, 다수의 적극적 저항으로, 다행히 피해간 사악함들, 그것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예언들이 소리치고 있다. 꿈인가 싶은 시간들은 지나갔다. 추스르고 직시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이 일어 이 글을 쓴다.

 

세상은 꿈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달아날 방법이 없는 꿈일 뿐이고 그러한 삶의 대가는 고통이다,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355p)”

 

더 이상 이 글을 이어갈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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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2024-12-13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볼게요. 담담하게 억누르는 감정이 저에게도 전해집니다ㅠㅠ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4-12-14 08:37   좋아요 1 | URL
ㅠㅠ
감사합니다
이제 좀 감정이 정리되고 행동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드러나는 진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전야제님 혼란한 시기에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청명상하도 - 송나라의 하루
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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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돋보기로 들여다 보듯 세밀한 부분을 확대해서 해설한다. 그는 그 컷들에서 북송의 기술, 경제, 문화, 생활상 등과 함께 그날의 분위기, 사람들의 기분까지도 읽어내고 있다. 청명절 하루의 풍경은 이 긴 화폭에 담을 수밖에 없는 많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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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나 조형의 아름다움은 늘 사랑보다는 외로움이고, 젊음보다는 호젓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은 공감 앞에서 비로소 빛나며, 뛰어난 안목들은 서로 그 공감하는 반려를 아쉬워한다. 반려 없이 보는 아름다움은 때로는 아픔이며, 때로는 외로움과 호젓함이며, 때로는 그 의미를 잃는다. 사랑을 잃은 사람의 눈에 세상이 빛을 잃어 보이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공감하는 사람끼리 그처럼 아름답게 바라보던 자연과 조형 작품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허망해 보인다는 것은 아름다움이 그처럼 외로움을 잘 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최순우 18p)”

 

선생의 안목이나 사랑, 그 깊이에도 미치지 못하나 그 뜻이 무엇인지 안다. 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에 막내와 동행한다. 취향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감상을 바로 알아듣고, 때로 다른 의견으로 나에게 자극을 준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와 함께 가면 말이 많아진다.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본 월 텍스트(wall text)”가 마음을 울려서 셔터를 누르고 오랫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청자상감운학문매병(233p)에 있는 문장이다. 책에서는 무심히 지나간 문장이었으나, 큐레이터의 선택을 받고 벽에 새겨지고 조명을 받으니 새로운 의미로 살아온다. 가끔 경험하는 일이다. 최순우 선생의 우리 유산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이 전시된 자기들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에는 간송미술관 소장 청자, 분청사기와 신윤복, 김홍도, 김득신의 회화에 대한 소개와 감상이 많다. 또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에서는 간송 전형필과의 각별함을 보여주는 글이 담겨있기도 하다.

 

어제도 퇴근길에 어수선한 세모의 네거리에 서서 지금 내게 생각키는 것은 누구의 얼굴이냐고 자문자답을 해 보았고 그 자답이 옛 애인의 얼굴도, 가족을 얼굴도 아닌 한 선배의 얼굴이었다는 데 스스로 놀랐다.……내가 서울을 떠날 때 그분이 전송해 주었는데, 우리는 차 속에 나란히 앉아 서로 차고 있던 팔뚝시계를 바꾸어 차면서 오고 가는 마음속의 대화가 있었고 그 묵묵한 대화가 이승에서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간송 전형필과 벽오동 심은 뜻에서)”

 

회화 전시실은 그야말로 보고 싶었던 작품들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회화 전시 작품이 바뀔 때마다 몇 개의 작품을 보고 오는데 그쳐야 했던 아쉬움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시간이었다.

 

이번 개관기념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신윤복의 미인도와 화첩이고 그밖에도 김홍도의 풍속화첩, 정선의 산수화, 이정의 금니(金泥)로 그린 <삼청첩>, 김정희의 글씨도 너무 반가운 작품이었다. 1관에서 5관 그리고 간송의 방을 관람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만큼 한 작품 한 작품이 오래 머물고 보게 되는 것들이었다.

 

그 중 나를 흥분하게 했던 작품은 심사정의 <촉잔도권>이다. 횡권! 대략 8미터에 달하는 가로로 그려진 두루마리 그림이다. 오세창은 평문(評文)에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가 있지만 이 <촉잔도권>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 썼다.

심사정 필 <촉작도권>


오세창이 꼽은 3대 횡권(橫卷)<몽유도원도>, <강산무진도> <촉잔도권>이다. 아이랑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 회화실에서 <강산무진도>를 전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다녀왔다. 그 몇달 전에는 실감 영상실에서 미디어 작품도 감상했었다. 막내는 미디어 작품이 좋았다고 하지만, 나는 그 실물과 대작을 그린 화가에게 감동했다. 그리고 여기서 <촉잔도권>을 만났다. 이 그림 앞에서 나는 말이 많아졌다


촉잔도가 뭔지 알아?” 아이는 사천지방에 있는 거잖아.” “알고 있네?” “잔도는 산의 절벽에 놓인 길.” “유방이 관중을 떠나 서촉 지방으로 갈 때 항우를 안심시키려고 한신이 잔도를 불태웠대, 그리고 수리하는 척하면서 우회해서 진창으로 쳐들어갔어. 거기서 암도진창(暗渡陳倉)’이라는 말이 나왔어…… 너무 나갔다. 흐흐.

 

심사정은 그 지역의 산세를 보고 쓴 이백의 촉도난을 주제로 촉으로 가는 험난한 길을 표현했다. <몽유도원도><강산무진>도 보다 여백과 운무를 이용한 원근법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두루마리 그림은 8미터가 넘는 작품들이다. 심사정의 경우 자신의 삶을 빗대어 담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험난한 산봉우리들을 타고 돌며 아슬아슬하고 먼 길을 걷는 것이 인생이라는 철학적 해석도 가능하다. 감상자마다 다 다른 메시지를 발견할 것이다.

 

이인문 <강산무진도>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에는 360여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 배웅하는 가족들, 장터, 노는 아이들, 노동하는 사람들, 험준한 산 등 여행자의 눈에 비친 풍경들이 담겨 있다. 끝없이 펼쳐진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시간 속에 이어져 온 공동체의 생활 등. 이 그림에서도 감상자의 시선에 포착되는 풍경과 주제는 다양하다.


화가들은  왜 이런 작품들을 그렸을까화가라면 한번쯤 도전하고 남겨볼 만한 작업이라는 의미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도장깨기 하듯 보는 기쁨도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워낙 많이 알려져 있다. 조선 초기 작품이라 화풍 역시 차이가 있다. 아마도 횡권 전체 실물을 감상할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일본 톈리 대학까지 가 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혹시 국내에서 전시하게 되면 볼 마음이 생길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꺼림칙하다. 11미터에 달하는 그림과 찬문을 상·하 권으로 나눠놓았다는데 마음이 상한다.

 

<강산무진도>를 접하고 김훈의 강산무진을 사서 읽었다. 역시 나는 김훈의 소설과는 맞지 않는다. 그의 남한산성, 흑산등은 제목과 관련된 역사는 기록과 고증보다는 소설 속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강산무진 역시 불치병에 걸린 중년 남성이 우연히 들른 박물관에서 이 작품을 본 감상을 한국을 떠나며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풍경과 연결시킨 것이 전부이다. 모두 분주히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죽음을 앞둔 자신의 상황의 생경함, 존재의 외로움 등을 전하려는 의도인 듯 보인다. 그렇지만 강산무진이라는 제목은 너무 크고 연관성이 떨어진다. 스토리는 진부하고 맥 빠졌고, 그런 작품에 이런 제목을 갖다 붙인 의도가 의심스러웠다더구나 작가가 전시를 관람했는지 의심되는 지점이 있다.

 

전시실 안 소파에 앉아서 맞은편 벽에 걸린 그림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훑어보았다.(강산무진339p)”

 

8미터가 넘는 두루마리 그림을 벽에 걸었다고? 실제로 박물관 신문을 검색해봤다. 사진에는 작품이 유리관 안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올해 전시에서도 당연히 비스듬히 경사진 판 위에 눕혀져 있다. 2006년 이전 전시에서는 걸어 놓았을까? 아님 소설이니까...?


<청명상하도> 이 작품은 상하이 전시 때 벽에 수직으로 붙여져 있는 사진을 보았다. 이 책은 앞의 몇 장만 감상하다 말았는데, 5미터에 달하는 그림과 양쪽에 붙은 제발문이 붙어있는 중국에서 손에 꼽히는 두루마리 그림을 저자가 자세히 해설해 놓았다. 잊고 있었다. 다시 읽기 시작해야겠다.


 

중국에도 횡권 작품이 당연히 많이 있겠지. 올해 우연히 갖게 된 북경고궁박물관 기념품인 수첩과 만년필은 왕희맹의 <천리강산도>를 모티브로 한 굿즈다. 이 작품도 12미터에 달하는 대작이다. 북송시대 청록화법의 변모과정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중국의 회화사를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우연한 즐거움이다.

왕희맹 <천리강산도>


고속철도 출발시간 15분 전에도 커피를 사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나를 말없이 기다려 주는 딸을 보며, 문득 이러면 나중에 같이 다니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안!”이란 말을 던지듯 하고 서둘러 기차에 올라탄다. 막내를 향해 빨리해!”를 입에 달고 살았던 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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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11-27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녀오셨군요. 저도 다녀오긴 했는데 저는 평일 시간이 안되어서 주말에 갔더니 진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좀 힘들었어요. 저는 심사정의 촉잔도권 봤지만 딱히 마음에 들어오지는 않더라구요. 물론 멋지고 훌륭한 작품인건 당연하지만요.
이번에 저는 도자기 하나가 눈에 진짜 똬악 들어오더라구요. 저도 나중에 그레이스님처럼 멋진 관람기는 못써도 대충이라도 쓰야 할텐데 요즘은 진짜 책볼 시간도 없어서 시간 아껴 책보고 있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4-11-27 15:58   좋아요 0 | URL
ㅎㅎ
평일에도 사람이 적은 건 아니라서...
조금 기다리긴 했어요.
휴일에 안오길 잘했어. 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자기 중에 오리연적이 좋았고 최순우님도 그 연적에 글을 쓰셨는데 넘 좋았어요.
분청사기모란문병도 좋았죠
거기 전시된 작품 다 좋았어요.ㅎㅎ
간송에서 알짜만 남기고 팔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한번 다시 들려보고 싶었어요.

막시무스 2024-11-27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안에 꼭 다녀와야 할것 같아요!ㅎ

그레이스 2024-11-27 17:59   좋아요 1 | URL
미인도 전시는 기간이 얼마 안남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미인도 못보더라도 다른 좋은 작품들이 많아요.
기념품점 옆에서 설문조사 하시고 네컷 무료로 찍어보세요.^^

전야제 2024-11-27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촉잔도권에 흠뻑 빠지신 그레이스님의 감상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실제로 가서 감상하는게 최고일테지만, 못 가보는 저에게 그레이스님의 관람기는 정말 소중합니다. 덕분에 저도 간접적으로라도 감상하면서 촉잔도권의 아름다움을 느껴봅니다. ˝험난한 산봉우리들을 타고 돌며 아슬아슬하고 먼 길을 걷는 것이 인생이라는 철학적 해석도 가능하다.˝라는 해석이 너무 멋져요. 해석이 감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다시금 느낍니다. 덤으로 김훈 작가님의 소설에 대한 비평 부분도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촉잔도가 사천지방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는 그레이스님의 자녀분 정말 멋진데요! 부모님께서 신나게 말씀하시는 주제에 대해서 아이들도 알고 있을 때, 정말 뿌듯할 것 같아요ㅎㅎ 멋진 글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4-11-27 19:2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전야제님!
그냥 제 감상이 그렇다는 거죠!^^
가끔 신나서 얘기하다 보면 애들이 웃고 있어요!^^ 미술관에서는 벌써 다음 작품으로 애들 발걸음이 옮겨지고 있는걸 보게되요.
나중엔 아이들한테 배우는 시기가 오겠죠^^

페넬로페 2024-11-27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녀 오셨군요.
미술관에 가면 작품에 대한 감상이 달라 그것도 재미있어요.
다른 작품에 맘이 뺏겨 저는 촉잔도권이 있었나 아리까리 합니다 ㅎㅎ
그래도 저는 김훈의 문장을 좋아합니다^^

그레이스 2024-11-28 08:08   좋아요 1 | URL

어제,,, 벌써 그제네요 화요일에 다녀왔습니다. 비가 와서 좀 그랬는데 오늘처럼 눈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죠.
미술관 카페에서 보는 비오는 바깥 풍경이 운치있어 좋았습니다.
나중에 기회 있을때 다시 가봐야겠어요.
너무 멀긴 하네요.^^
저도 에세이는 좋아합니다.^^
 
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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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저항, 폭력, 내전, 실종, 죽음, 생존, 탈출... 주인공의 세계를 지시하는 단어들이다. 자유의지는 삭제되었다. 비참과 허무로 둘러쌓인 현실에서 그녀의 마음을 그리는 언어는 고통의 시어들이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을 비극에 대비되는 환상적 표현들이 분노와 슬픔을 상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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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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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면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게 된다.

발하임 풍경 곳곳 베르테르의 눈에 들어오는 보리수들, 그의 가슴 아픈 사랑 위로 슈베르트의 <보리수><세레나데>가 흐른다. 그리고 슈베르트의 슬프고 안타깝고 짧은 삶도 함께 떠오른다.

 

아무튼, 괴테를 다시 읽는 중이다. 파우스트에 이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 이번엔 문학동네로 읽었다. 어투가 어색해서 덜그럭거리며 읽었던 기억과 달리 문장이 매끄럽다. 번역에 의존해 읽기에 번역자의 단어선택, 문장구성, 직역과 의역에 의지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전 독서가 어려웠던 것은 편지글을 서간체와 서술체로 오락가락하며 쓴 때문이었다.

 

출간 순서로 읽는다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먼저다. 그렇게 읽어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파우스트를 읽는 데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초기 작품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슈트룸 운트 드랑, 파우스트는 바이마르 고전주의에 해당하며, 하나는 서간체이고 다른 하나는 극시다. 형식도, 소재도, 정서도, 주제도 다르다. 전혀 다른 작가의 것인 듯 느껴진다. 그런데 파우스트를 먼저 읽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파우스트를 연상하게 된다.

 

예를 든다면 이런 내용이다.

인생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이 수긍했지 않은가. 나 또한 어딜 가나 그런 감정에 사로잡힌다네. 활동하고 연구하는 인간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볼 때, 인간의 모든 노력이 욕구 충족을 위해 사용되며 그 욕구라는 것이 궁핍한 생활을 연장시키는 것 외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그리고 연구 성과에 만족한다는 것이 우리를 가둔 감옥의 벽에 온갖 형상과 밝은 풍경을 그려놓는 것 같은 몽상적 체념에 다름 아님을 알게 될 때, 빌헬름, 그럴 때면 나는 말문이 막힌다네. 그러면 나는 내면으로 되돌아와 또다른 세계를 발견하곤 하지! 그것 또한 사실적인 묘사나 생생한 에너지가 넘치는 세계는 아니라네. 어렴풋한 예감과 어두운 욕망의 세계지. 그곳에선 모든 것이 내 감각 앞에서 몽롱하게 떠돌고, 나는 꿈을 꾸듯 그 세계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인다네.(21p)”

 

파우스트의 방황을 본다.

 

발하임에서 베르테르는 그곳의 일상을 편지로 친구 빌헬름에게 전한다. 아마도 그는 마음의 병(조울증) 때문에 이곳으로 온 듯하다. “번민에서 방종으로, 감미로운 우울에 빠져 있다가도 이내 위험천만한 열정으로 변해버리는(16p)” 굴곡이 심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 때, 농촌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그들은 삶의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행복하고 평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지.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겨울이 온다는 사실 외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라네.(26p)”

 

과연 그들이 겉에서 보는 것처럼 행복하고 평안하기만 할까? 베르테르의 시각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우울함에 골몰해서 타인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시선이다.

 

1부의 베르테르의 편지에 기록된 그의 글만 읽게 되면, 로테를 향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그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그칠 수밖에 없다. 로테 역시 그를 사랑하지만 약혼자인 알베르트와 결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알베르트는 순수하고 훌륭한 사람이지만 베르테르가 편지에서 전해주듯 한편 편협한 사람인 듯 보인다. 베르테르의 편지에서는 로테, 알베르트, 그들이 처한 상황이 모호하게 전달된다.

그러나, 2부에서 편집자(빌헬름 혹은 괴테)가 그의 편지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전해주는 정보는, 모호했던 진실을 선명하게 한다. 특히 알베르트의 인물됨, 불행할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결혼 생활, 로테의 감정 등에 대해 베르테르가 오해했음을 독자는 알게 된다. 로테도 자신을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베르테르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베르테르는 그렇게 오해하고 슬퍼하며 매일같이 자신의 모든 활력을 소진시키고, 저녁에는 곤경에 처해 괴로워하는 인간(146p)”이었다.

 

베르테르의 점점 깊어지는 마음의 병은 전에 만났던 남자의 살인사건을 마주치면서 뒤흔들린다. 그 남자는 자신의 여주인을 사랑했었고 그 사랑이 지나쳐 살인을 저지른다. 베르테르는 그 남자를 구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투사전이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문제로 알베르트와 논쟁을 벌이던 중, 알베르트가 그건 안 되네. 그자를 구원할 방도는 없네!”라고 한 말에 베르테르는 상처를 입는다. 그 말은 각인되고 자신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사건은 트리거가 된다.

 

베르테르가 죽기 직전 로테에게 읽어준 오시안의 시는 애도시 또는 레퀴엠이다.

봄바람아! 나를 깨우는 까닭이 무엇인가? “내가 천상의 이슬로 당신을 적셔줄께요!”하고 위로의 말이라도 하려는지. 그러나 나의 생기가 다하는 순간이 왔고, 나의 잎들을 모조리 떨궈버릴 폭풍우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네. 내일이면 일찍이 내 아름답던 모습을 본 적 있는 방랑자가 올 것이네. 그의 두 눈은 들판을 둘러보며 나를 찾겠지만 끝내 발견하지는 못하리라.(177p)

그 오시안의 긴 시는 죽음을 가리키고 있다. 낭송을 듣고 눈물을 흘린 로테는 석연치 않은 예감을 했다. 그리고 몇 번의 대화를 통해 베르테르의 죽음 암시를 들었던 알베르트도 권총을 내준다. 인간의 죽음이란 참 덧없고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과 죽음을 가르기까지 하는 사랑, 이 모든 소란과 흥분, 조급함과 아우성, 고민과 격렬함, 당시 18세기 괴테 시대 사람들만 겪고 있는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사랑은 너무나 중요해서, 알랭 드 보통이 철학의 위안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아무리 심각해져도 지나치지 않다.”

 

삶에서 겪는 고통을 겪어내는 것의 한계는 각자마다 다 다르다. 사람마다 그 고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다르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자아라는 게 있다. 고통은 다음에 오는 또 다른 고통이나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갖게 해준다.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만들어진 흔적, 페이소스가 마음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은 괴테가 1772년 베츨러에서 알게 된 샤를로트 부프와의 실연을 극복하기 위하여 루소의 영향으로 쓴 편지체 소설이라고 한다. 그는 이 소설로 많은 젊은이들의 심연을 건드렸고,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굳이 18세기 사람들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이런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주인공의 이름과 배경만 바뀐 같은 이야기도 되풀이 된다.

 

왜 그럴까? 인간은 그만큼 연약하고, 비슷한 지점에서 무너지니까!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변주한다. 예술의 정수는 서로 통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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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11-18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겨울이 시작되니까(과연...? 🤔) <겨울 나그네>도 듣게 되겠네요. 🙂

그레이스 2024-11-18 06:40   좋아요 0 | URL
ㅎㅎ
겨울나그네 !
전곡 다 틀어놓고 들었습니다.
곡이 난해하지 않아서,,, 독서하기 좋습니다.
오늘 체감 온도는 롱패딩 입어야 할듯요.

2rjfnr 2024-11-18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들어봐야 겠어요.
겨울나그네!~~♡♡

그레이스 2024-11-18 11:08   좋아요 0 | URL
네~♡
이 날씨에 잘 어울립니다.^^
슈베르트의 생애를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깊어집니다.ㅠㅠ

레삭매냐 2024-11-21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하 고견이십니다.

역시 예술의 고갱이들 단계에서는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래 전에, 호주 배낭여행을 떠나
면서 가방에 집어 넣어 가져간
책이 베르테르였지요. 정말 오래
전의 일이네요.

그레이스 2024-11-21 18:34   좋아요 1 | URL
ㅎㅎ
출판사마다 다르기도 하고, 언제 읽는가도 감상이 다른듯 해요.
이번 독서가 제일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