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텔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책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암스텔담 국립 미술관(Rijksmuseum Amsterdam)을 보고 싶었다. 17세기 전성기를 이뤘던 네덜란드 미술사를 읽기 위해 찾아본 책들 중에 시선을 끌었던 책이었다. 표지 그림이 램브란트의 〈유대인 신부〉여서 눈길이 갔고 17세기 네덜란드 미술 읽기라는 부제도 당시 내가 알고자 했던 주제와 딱 맞아떨어졌었다.
『내밀한 미술사』의 첫 번째 장은 브뤼헐의 풍경화로 시작하고 있다. 얼어붙은 운하 위 사람들의 풍경은 한겨울에 그 많은 사람이 활동하는 것도 놀랍지만, 썰매를 타고, 놀이를 즐기고, 손을 잡고 스케이트를 타는 연인 등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활력을 보여주고 있어 경이롭다. 그 속에 세심하게 그려진 죽음과 상실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인물을 발견하는 순간 탄식한다. “아! 여기……!”하고 말을 멈춘 채 오랜 응시를 하게 된다. 브뤼헐이라는 이름과 함께 얼어붙은 운하 위 사람들의 풍경은 그렇게 각인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 미술품에 대한 수요 급증의 원인과 그에 따른 화가들과 그들의 작업실과 작품 시장에 미친 영향과 미술론 등에 대해 서술하면서 저자는 램브란트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페이메이르도 소개하고 있다. 램브란트에 비해 남긴 작품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페이메이르를 서로 견준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BBC에서 사이먼 샤마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이 위대한 두 명의 화가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청중들이 모의투표를 벌였다는 기이한 장면은 급부상한 페이메이르의 위상을 시사한다. 저자는 페이메이르의 작품 수가 많지 않은 이유를 그의 작업 스타일에서 찾고 있다.
마지막은 램브란트의 초상화의 주인공 얀 식스와 그 가문의 이야기로 마치고 있다. <얀 식스의 초상화의 주인공이고, 램브란트의 친구인 얀 식스는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었다. 정치적 역량과 예술적 소양을 갖춘 엘리트였다. 그는 램브란트가 파산한 뒤 돈을 빌려주고 그의 작품을 사주었다고 한다. 그가 소유했던 미술작품을 유산으로 이어받은 그의 자손들은 그 작품들을 보존해왔고, 현재 11대 식스가 관리하고 있다.



암스텔담 국립 미술관에서 단연 관심을 갖고 본 것은 램브란트와 페이메이르의 작품이었다. 고흐 미술관에서도 기대하던 그림들을 보게 되어서 국내 전시회에서 볼 수 없어 느끼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항상 겪는 경험이지만 미술관에 직접 가서 보면, 처음 목적과 달리, 다른 작품들이 새롭게 다가온다는 사실! 이번에는 프란스 할스(Frans Hals)였다. 그의 초상화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은 초상화 속 인물들 눈이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네덜란드 화가들도 그렇지만 특히 프란스 할스의 작품 속 인물들의 눈동자는 성격과 말을 담고 있다. 그 눈동자를 오래 동안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면 목과 손목에 둘러져 있는 주름 잡힌 얇은 레이스가 들어온다. 하얗고 투명하게 비치는 레이스의 디테일 묘사에 감탄하는 관람자들을 여럿 보게 된다.


하를렘 골목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프란스 할스 뮤지엄(Frans Hals Museum)의 정경과 잘 가꾸어진 중정의 모습은 그가 17세기 미술에 중요한 화가였음을 알게 해준다. 민병대 집단 초상화와 어느 기사의 초상화 등 주인공들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들의 눈은 한시도 말을 멈추고 있지 않고 있다. 수다스럽다. 그 앞에 서면 그들이 저마다 외치는 큰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램브란트의 야간경비대는 유리로 막아놓은 방 안에 복원 중인 상태로 전시되어있었다. 가까이서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복원 작업 과정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기대했던 페이메이르의 여성들! 첫 번째 인상은 생각보다 작품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눈이 시릴 정도로 옷의 푸른색이 작품 전체를 압도한다. 디테일한 화가의 붓질에 몸은 점점 앞으로 기울이게 되고 감탄하며 그 앞에서 떠날 수가 없다. 내가 시간에 쫓기는 여행자가 아니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스키폴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맡기고, 트램을 타고 아침을 맞는 암스텔담을 통과해 중앙역까지 갔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청소하는 사람들, 가을빛이 든 나무들, 유럽식 테라스로 장식된 낮은 높이의 공동주택과 빌딩들이 운하와 다리들과 어우러지는 풍경에 감탄하게 된다. 8월 중순의 암스텔담의 인상은 가을이었다. 카메라는 예쁜 건물들과 운하와 다리와 오가는 배들을 향했지만 앵글은 그 실루엣을 만드는 파란 하늘에 초점이 맞춰졌다. 짙푸른 하늘빛은 페이메이르의 그림 속 여인의 치마 빛을 떠올리게 했다. 그가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를 고집한 이유를 해지기 전 더욱 짙푸른 하늘에서 찾게 된다.


짧은 일정 때문에 브뤼셀에 갈지, 쾰른엘 갈지 동생과 아이들과 고민하다 이번에 안가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쾰른을 선택했다. 도이치 반을 타고 다녀오는 하루 일정이라 아침 일찍 출발해 밤늦게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기차역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쾰른 성당이 웅장한 몸체를 드러낸다. 구름 낀 하늘을 배경으로 높이 솟은 첨탑과 짙은 색의 건물이 내뿜는 아우라에 압도되어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이 무장한 ‘창 기사’의 이미를 떠올린 것을 실감하게 된다. 고딕의 전성기 3대 고딕 성당에 포함되는 건물이라고 한다. 고딕식 성당의 외부에 초기나 중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벽이 잘 보이지 않고, 프랑스처럼 장미창이 보이지 않았다. 내부로 들어가면 높은 기둥과 천정의 ‘첨두아치’와 ‘리브볼트’가 돋보인다.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월’도 시선을 끈다. 아미앵의 높이와 생 샤펠의 장식을 들여와 더 발전시켰다고 한다. 호엔촐레른 다리에서 바라본 성당은 잊지 못할 풍경이다. 쾰른을 선택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다.
돌아와 고딕 성당의 역사와 구조 지역마다의 특징들을 다룬 『고딕 성당, 거룩한 신비의 빛』을 읽고 다시 복기했다. 책으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경험이란 생각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매일 숙소 앞에 있는 ‘암스텔 파크’에서 산책했다. 6시가 지나면 달리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요트와 카누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 자체가 풍경을 이루어 평화로움을 느낀다. 우리는 도대체 이 여행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왔을까 생각했다. 소매치기, 마약 등을 떠올리며 출발했던 것을 떠올리며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은 여기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공기도 너무 좋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하며 이유를 댄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본 암스텔담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생활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음엔 어디를 어느 미술관엘 갈까? 갈 수 있을까? 하는 궁리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