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오래 된 밀란 쿤데라의 책 가운데서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라는 책을 뽑아 들었고, 첫 장에서 이 드니 디드로의 작품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해석과 감상을 읽게 되었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의 오마주인 듯 보이는 작품에 대한 궁금증으로 찾아 읽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해석을 소설의 기술에서도 접했다. 그리고 드니 디드로에 대한 오마주라고 했던 밀란 쿤데라의 자크와 그의 주인을 읽었다. 우연히 연결 독서를 하게 되었고 예기치 않은 기쁨을 맛보았다.

 

밀란 쿤데라가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처음 읽었을 때, “성찰이 일화와 나란히 펼쳐지고, 한 이야기가 다른 한 이야기를 감싸는, 대담하게 규칙을 벗어나는 그 풍요로움에 매료되어, 사건의 일치라는 규칙을 조소하는 작문의 그 자유에 매료되어그는 이렇게 자문해 보았다고 한다. “이 멋진 무질서는 정교하게 계산된, 훌륭한 구성 덕택일까, 아니면 순수한 즉흥의 도취 덕택일까?” 그리고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여기서 우세한 것은 즉흥이다.”라고 말한다. 완벽하게 계산되고, 헤아려지고 미리 계획되었을 어떤 구성의 가능성이 이 도취된 즉흥 속에 내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쟈크와 그의 주인돈 키호테의 변주다. 돈 키호테에서 주로 돈 키호테가 말을 많이 하고, 고난을 당하는 쪽은 산초 판사다. 기사 문학을 많이 읽은 돈 키호테는 현실과 문학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며 환상 속에 산다. 산초 판사는 어리숙하고 무식한 농부이며, 그가 목숨이 위험한 상황 가운데 빠지면서도 돈 키호테를 따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하게 만든다. 우스꽝스런 그들의 모험 이야기 배후에는 세르반테스의 비판의식이 담겨 있다.

 

16~~17세기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이 끝나고 종교재판소의 수도사들은 무슬림이나 이단을 적발하고 처벌했다. 더 나아가 민간의 풍속과 사상과 도덕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파밀리아레스(Familiares)'라 불리는 평신도 밀고자와 비밀 정보원들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했으며, 수도원은 이 거대한 감시망의 중심에 있었다. 돈 키호테가 소장하고 있던 책(기사문학)을 신부가 분류해 없애는 장면도 그런 현실을 풍자하는 것이다.

 

돈키호테의 방랑 중 만나는 베네딕토 수도사들은 당시 스페인 독자들에게 종교재판소를 떠올리게 했다. 그 수도사들에게 광기를 보이는 돈 키호테의 모습은 신랄한 풍자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편, 산초 판사가 돈키호테의 요구에 거부 없이 따라나서는 모습이나, 돈 키호테의 광기로 인해 고초를 겪는 모습에서 당시 신분 사회의 권력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미치광이 귀족이지만 산초는 그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 주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보호를 하려 하지만 주도적으로 무엇을 할 수는 없다. 그 대신 놀림감이 되고 부상을 당한다.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은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비틈이고 변주다. 자크의 믿는 바에 따르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운명이다. 자크의 표현대로 하자면 저기 높은 곳에 쓰인대로이다. 표면적으로 저기 높은 곳에 쓰인 대로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희곡 대본을 의미한다. 이 희곡의 많은 부분에서 작가의 말이 등장한다. 이 희곡에서 권력은 작가에게 있다. 작가의 글에 의해 그들의 운명이 정해진다. 자크는 어떤 사건의 단계(발단……결말)에서 저기 높은 곳에 쓰인대로된 일이라고 말한다.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병행되는데 자크와 주인의 방랑, 그들과 그들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회상 혹은 소문), 그리고 작가의 말이다. 돈 키호테에서와 달리 자크는 그의 주인보다 말을 많이 한다. 그리고 게으르고 어리석은 주인을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주인은 자크에게 감사를 표하지는 않는다. 자크는 자신이 주인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알고 있지만 어차피 그것도 저기 높은 곳에 쓰여진 대로된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크는 그렇게 운명, 작가의 권력에 순응하는 듯하지만, 많은 경우 주도적인 행동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주인과의 관계에서도 주인에게 제가 나리께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는 한, 또 나리께서 저 없이 지낼 수 없다는 걸 제가 알고 느끼는 한, 필요할 때는 언제나 이 이점을 남용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주인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이다. 그는 주인과 종이라는 불평등하고 억압적 관계임에도 결단하고 행동하는 데 자유롭다. 사회 구조와 달리 실천적 자유를 누림으로 그 구조(계급)를 전복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높은 곳에 있는 작가의 권력도 뛰어넘는다. 많은 분량을 할애하며 작가는 사이사이 말을 하며 개입한다. 자크에 대한 평을 하기도 하고, 인물들의 말과 행동, 감정을 설명한다. 말로는 작가의 권력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자크는 그 권력관계를 전복시킨다. 작가는 그의 글 역시 자크에게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다.

 

독자여, 내가 여기서 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크에게 들은 것이다.(259p)”

 

자크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작가는 말하기를 그와 같은 자들이 비천함에서 끌려나와 연단에 서기만 하면 갑자기 흥미로운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자크가 말한 것을 작가가 인용하며 전한다.

 

민중은 전혀 비인간적이지 않다. 민중은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이 모여든 사형대에서 그 불행한 사람을 법의 손아귀로부터 끄집어내려 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목격한 장면을 파리 교외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하려고 그레브 광장으로 가는 것이다. 그 장면이 어떤가는 별로 중요치 않다. 다만 그가 하나의 역할을 하기만 하면 된다. 즉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말을 듣게 하기만 하면 된다. 거리에 재미있는 축제를 열어 봐라. 그러면 당신은 처형 장소가 텅 빈 것을 볼 테니. 민중은 구경거리에 열광하며 몰려든다. 그들은 그걸 즐기는 동안 재미있어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하는 이야기에 더욱 재미있어 한다. 민중이 분노하면 무섭지만 그 분노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들의 비참한 생활이 그들을 관대하게 만든 것이다. 구경거리를 보러가서 끔찍한 장면이 나오면 눈을 돌리고 마음이 울적해져 집에 돌아올 때는 모두 눈물을 흘린다. 독자여, 내가 여기서 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크에게 들은 것이다.(258~259p)”

 

이렇게 보면, 자크는 철학자다. 자신을 지배하려고 하는 모든 권력을 거부하고 전복시키려 한다. 그의 자유로움은 자연스럽게 몸에 체화되어 있는 듯 보인다. 작가의 권력으로부터 등장인물과 독자를 해방시키려하는 시도를 한다. 작가와 인물들 간의 갈등은 플롯, 정해진 기법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당신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라티우스, 비다, 르 보쉬의 규칙을 위반했소.(230P)”

이들은 시학이나 서사시에 대한 글을 쓴 사람들이다. 희곡의 규칙을 벗어난 인물의 행동에 대해 논하는 두 인물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변주 자크와 그의 주인에 이르면 훨씬 간결해지고 말 수가 적어진다. 드니 디드로에게 바치는 3막짜리 오마주라고 부제가 달려 있다. 드니 디드로의 작품에서 나타난 구조는 3개의 무대로 그려진다. 작가와 자크 그리고 그의 주인과의 사회적 구조는 높은 무대와 중간 그리고 낮은 무대로 이루어지며, 이들의 대사와 연기는 교차로 병행하며 진행된다. 시각정으로 그려진 그들의 권력 관계는 대사에서는 이미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물들은 그 무대를 내려오기도 오르기도 한다. 대사나 이야기의 진행 역시 간결하고 명료한 것처럼 보인다. 드니 디드로의 작품에서 통쾌한 복수가 있는 여관 여주인의 후작의 사랑 이야기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서는 자크의 사랑이야기와 주인의 사랑이야기가 뒤섞여들어간다. 누가 선하고 누가 비난 받을 사람인지 판단 할 수 없게 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 위계, 옳음의 문제를 각자의 생각에 맡긴다. 메시지를 전하는 중요한 대화가 36장에 등장한다.

 

 주인: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

 자크: 누구도 알지 못하죠

 ……

 자크: 인류가 태곳적부터 알아 온 계략이죠. 어느 쪽으로 가도 앞입니다.(135P)

 

17세기에서 18세기로 그리고 20세기로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철학의 관심과 주제는 달라져 왔다. 스페인의 인문주의 시대로부터 계몽주의 시대로 이데올로기 시대의 허무주의로 변화했다. 주제는 개인의 존재 문제로 좁혀지고 판단과 선택의 옳음은 개인에게 맡겨진다. 문학도 형식과 내용의 변화와 함께 그 시대사조를 반영하는 메시지 역시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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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숲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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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로이스 로리의 『The Giver(기억전달자)』를 원서로 읽고 영어로 토론할 때의 일이다. 소설의 내용 중 각 가정에 잘 맞는 아기를 배정해주고, 재능에 따라 직업을 정해주는 것에 대해, 어떤 회원이 convenient라는 단어를 써가며 편리하고 이상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인생에서 선택의 순간마다 확신 없었던 때와 혈육이라 해도 항상 관계가 좋은 것은 아닌 경우를 예로 들며, 차라리 완벽한 시스템이 있다면 가족과 직업 같은 것들을 정해주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었다. 그때는 웃으면서 지나갔는데, 돌이켜 보면 동의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그렇게 정해진 것들이 나에게 완벽하게 잘 맞는다 하더라도 불완전한 인간이 거기에 만족하며 살까? 만족할 수 없기에 나쁜 기억이나 욕망을 잠재우는 약을 복용해야만 할 것이다. 그 소설에서 그려지는 사회는 결코 유토피아라고 말할 수 없음을 우리는 동의한다. 순간순간 스치듯, 희미한 수치심과 부러움을 느끼는 인물들과 강요당한 희생으로부터 도망치는 주인공에게서 잠재울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욕망을 발견한다. 충돌하는 공동체와 개인, 개인과 개인의 욕망은 그 어떤 사회에서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욕망은 원래 증식하고충돌하기에.

 

이끼숲을 읽으며 기억 전달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를 상상하며 디스토피아를 생각하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이끼숲은 막내가 올해 읽은 소설들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추천한 작품이다. 작가 천선란은 딸들이 좋아해서 소장하는데 나는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다. 그동안 엄마, 읽어봤어?”하고 물어보는 딸에게 아직!” 이라는 대답을 하곤 했었다. 지하철에서 문득 생각이 나서 폰을 열고 구독형 전자책으로 읽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는 기운을 느끼고 종이책으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주문했다. 마음이나 정서를 전하는 표현이 탁월하게 아름다웠다. 동시에 아포리즘처럼 가슴을 두드리는 문장들도 있었다. 작가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어둠이다. 현실을 Si-Fi로 표현했을 뿐, 현실과 소설이 다르지 않다.

 

지상의 식물들이 사라지고 미래의 지구인들은 지하에 도시를 건설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마르코, 은희, 의주, 유오, 소마, 치유키, 톨가 는 청년들이다. 그들의 직업은 학업 성적에 따라 선택의 범위가 정해져 있었다. 경비원, 기계실 정비공, 건설사 직원, 통신국 직원, 의사, 씨앗 저장고 지킴이. 그들의 욕망과 통증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지상의 풍경을 인공으로 조성해놓은 세계에서 지상에서 누릴 수 있던 즐거움이 모두에게 허락되지는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식은 관계없는 이야기다. 한때 인간이 지상에 살던 시절음식이 인간에게 최고의 사치품이었던 시절을 이야기할 뿐이다. 지하 도시에서 음식은 그들에게 생명 유지를 위한 연료일 뿐이다. ‘VA2X’는 빼먹지 않고 매일 먹어야 하는데, 복용을 중단하게 되면 환각, 정신분열, 우울증 따위의 정신질환과 뼈가 삭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마도 햇빛을 볼 수 없는 환경과 관련 있는 듯하다. 그런 증상을 앓는 자들은 정신재활원으로 실려 간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마르코는 클론제작실 건물 경비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은희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 때문이었다. 마르코는 우연히 아바타에게 목소리를 파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비싼 값에 목소리를 완전히 넘기고 발성기관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불안감과 긴장감을 전한다. 지문과 같은 목소리는 한 개인의 유일성을 나타낸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매매되는 장기(臟器)와 목소리 중 어떤 것이 더 존재에 타격을 줄까?

 

세상에 하나뿐인 아바타한테는 세상에 하나뿐인 목소리가 필요하니까, 목소리는 전부 다 다르잖아. 그러니까 원하는 목소리를 돈을 주고 빼는 거지.(32p)”

 

가상세계에서도 현실의 본인처럼, 목소리도, 외모도 세상에 하나뿐이기를 원하는(33p)” 사람들이 그 수요자다.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사람들과 목소리를 팔아야 할 만큼 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있다. 이 세계 역시 자본이 가르는 계급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경비원 일을 하면서 여가시간에 B45에 있는 재즈바에서 노래하는 은희의 삶은 녹녹치 않다. 그 재즈바에서 마르코에게 은희가 시켜준 음료의 이름은 바다눈이다. 바다에 눈이 내리는 것은 생물의 사체에서 나오는 미생물이 눈처럼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음료에 이런 이름을 붙이는 지하도시 사람들은 유미주의와 허무주의적 감수성을 갖고 있다. 내일이 없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다음에 올 시간을 기다리며 설레게 하는 것은 사랑뿐이다. 결말이 어떻든지 그 순간이 아름다운 것은 시대불문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주거 지역, 직업, 출입할 수 있는 장소 등의 규칙과 질서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인구 정책 때문에 존재가 없는 의조와 같은 사람들도 있다. 의조는 의주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의주가 선택되면서 유기되어 환기구 안쪽에서만 살아간다.

 

마르코, 의주, 치유키, 유오, 소마, 치유키, 톨가.

엇갈림과 상실의 어둠 속에서 이들의 사랑은 가슴 뻐근하게 아프고 벅차오르게 아름답다.

 

나는 그걸 먼발치에서 바라봤는데도 마치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 것처럼, 너와 나란히 서서 꽃이 쓰러지지 않길 빠랐던 것처럼 떠올라. 그럼 나는 기억을 주무르게 돼.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끌어안아.(138p)”

 

유오는 나무에 대한 특별한 관심 때문에 지상탐사대에 들어가길 원하지만 좌절되자 땅속으로 뻗은 뿌리라도 만나기 위해 위험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택한다. 지하에서 하는 작업이므로 폭발의 위험과 상해와 죽음의 위험이 있다. 혹시 사고로 잃어버릴지도 모를 신체부위를 대체하기 위해 클론을 생산한다. 아이러니 하다. 지상으로 오르려는 욕망을 대신해서 땅을 파내려가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신체 훼손, 절단, 괴사 등의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의 클론을 준비하는 것이. 클론은 예방할 수 없는 사고의 사후대책에 불과하다. 다른 몸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817131123초경 T7-033구역 지반 붕괴로 노동자 한 명 사망. 그 줄에는 그 애의 이름도, 그 애의 삶도, 그 애가 알고 있던 식물에 관한 지식도, 그 애의 그날 저녁 약속도 담기지 않는다. 그런 것의 집합이 그 애이지만 죽음은 간략하고 명료하다. 멀리서 보면, 별것 아닌 한 줄이 된다. 그 애를 사랑했던 사람만이 그 한 줄을 뜯어 먹고 살 것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 선과 선 사이에 촘촘히 박힌 삶을 그리워하면서.(230p)”

 

폭파사고로 인한 유오의 죽음, 몸의 상실은 소마에게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가져왔다. 유오의 클론이 폐기될 것이란 소식을 듣고 제작실에서 그것을 꺼내 업고 지상으로 도망간다. 소마(σμα, soma)(육체)’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소마)’(유오의 클론)’을 업고 있는 이미지에서 작가는 어떤 의미를 전하려 했을까? ‘몸은 어떻게 존재가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을까? “지금 우리의 삶은 예전 문명으로부터 떨어진 꽃처럼 느껴진다.(147p)”고 했던 소마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소마는 지하세계의 입구가 있는 유리돔(온실)까지 무사히 도착한다. 의외로 그 마지막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냥 손잡이만 돌려서 열고 나오면 된다. 소마에게는 문을 열고 나가면 죽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와 소마가 마주한 지상 세계는 이끼로 덮여 있었다. 이끼는 맑고 깨끗한 공기가 존재하는 것을 알리는 지표식물 아니었던가! 그 이끼가 끝나는 곳에 숲이 이어지고! 어쩌면 인간이 없는 지상의 세계에서는 식물 생태계의 천이가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클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끼가 묻은 그 몸에 대해 짧은 장면으로 결말을 보여주지만 내게는 열린 결말로 다가왔다.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권력과 시스템은 두려움과 자본이다. 그 세계를 벗어나 지상으로 나가면 죽음뿐이라는 두려움은 그들을 권력의 지시에 순응하게 한다.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은 정신개조를 받거나 지워진 존재가 된다. 그것이 그들이 아는 최후다. 그 세계를 벗어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는 오늘날 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스템과 권력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려지는 미래 세계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밖에 없다. 작가가 그리는 소설 속 세상은 현재의 세상에 존재하는 어두운 현실이 있다. 그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부조리와 비극을 미래의 판타지로 그렸을 뿐이다. 인공해변, 인조식물, 인공하늘인 스페이스 스카이가 있는, 실재의 모형에 불과한 것들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지상을 상상하지만 그곳으로 갈 꿈은 꾸지 않는다. 그들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은 죽음뿐이기에.

 

국가 시스템은 인식론적(epistemological)이다. 지식의 제도화, 정보의 독점과 검증, 과학기술 정책, 담론의 규제를 통해 국가는 지식을 구성하고 검증하고 통용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를 지배한다. 교육과 정보를 통해 개인은 그 지식을 수용하고 지배 시스템에 적응한다. 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지배의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는 두려움이다. 다른 시스템, 다른 세계로의 탈주를 상상하지 못한다. 혹시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여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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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書經』은 이제삼왕(二帝三王)의 시대를 통해 정치 철학을 논하고 있다. 이제는 요와 순임금을, 삼왕은 우문무(文武)를 가리킨다. 이 시대 사관들이 기록해놓은 것들 중 후세에 전할 만한 내용을 추려 담은 것이다. 원래는 상서尙書라고 불렀으나, 후대에 로 그리고 거기에 경()을 붙여 서경이라고 이름 붙였다. 삼경三經이라고 하면 시경서경역경을 부르는 말이다.

사마천은 사기 본기 중 오제 본기와 하 본기 은 본기 주 본기를 보면 이 서경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사기를 쓰기 위해 천하를 3번 주유했을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춘추, 좌전, 국어 등과 함께 이 서경도 읽었다. 그가 사기를 쓰는 데 이 책들이 자료가 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과문불입(過門不入)

순 임금 때 우는 아버지 곤에 이어 치수(治水)를 위해 등용된다. 그는 하나라의 우왕이다. 우는 이 일을 완수하기 위해 13년을 밖에서만 지냈다.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감히 들어가지 않았다.(居外十三年過家門不敢入.) 이것을 줄여서 과문불입이라고 말한다. 사기하 본기(夏本紀)에 담겨있다. ‘과문불입하며 우왕은 홍수로 인해 곤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물길을 내고 그 땅을 구주(九州)로 나누어 다스릴 수 있도록 했다. 그 땅을 아홉 등급으로 나누어 세금(공물, )을 거두었다. ‘구주九州안에 속한다는 것은 '왕의 교화가 미치는 문명 세계'임을 뜻했다. 이후 '구주(九州)'는 곧 '천하'이자 '중국'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이 내용은 서경書經대우모大禹謨우공禹貢등에 담겨있다.

 

안민즉혜 여민회지(安民則惠黎民懷之)

순 임금 앞에서 우, 백이, 고요가 의견을 나눈다. 고요는 그 자신이 수양하는 데 신중하고 길게 생각하며 구족(九族)의 질서를 돈독히 하면 많은 현명한 인재들이 보좌할 것이니 가까운 데에서 먼 곳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을 뿐”(83p)이라고 말한다. 우 왕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지혜()'이니, 능히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할 수 있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은혜()'이니, 뭇 백성들이 그를 마음으로 따를 것입니다.(知人則哲, 能官人. 安民則惠, 黎民懷之.지인즉철, 능관인. 안민즉혜, 여민회지)”라고 말한다.

 

이어 고요는 인재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덕을 말한다. 세 가지 덕을 갖춘 자와 여섯 가지 덕을 갖춘 자, 그리고 아홉 가지 덕을 갖춘 자를 차등을 두어 등용해야 한다고 한다. “관대하면서 준엄하고(寬而栗), 부드러우면서도 주관이 있고(柔而立), 성실하면서도 공손하고(愿而恭),

다스리는 재주가 뛰어나면서도 신중하고(亂而敬), 유순하면서도 의지가 강하고(擾而毅), 정직하면서도 온화하고(直而溫), 대범하면서도 청렴하고(簡而廉), 결단력이 있으면서도 착실하고(剛而塞), 용감하면서도 정의로워야(彊而義)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요는 직위의 적임자가 아닌데도 관직을 차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천하의 일을 어지럽힌다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 내용 역시 서경고요모皐陶謨의 내용을 사기』 「하 본기에 실었다.

 

이 대화에서 우는 온종일 부지런하게 일할 생각만 하고 있다(85p)”고 말한다. 무엇을 그렇게 하냐고 고요가 묻자 우는 치수와 백성들이 식량을 얻을 수 있도록 실제적인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육로는 수레를 타고 다니고 수로는 배를 타고 다니며, 진흙 길은 썰매를 타고 다니고, 산길은 바다에 징을 박은 신을 신고 다니며, 산을 다니며 나무를 베어 길을 열었. 고요는 그에게 그것이 우의 훌륭한 덕이라고 한다. 고요는 정치 철학을 담당한다면, 우는 행정가이며 실용주의적 인재다. 순은 이런 인재들을 얻었으므로 그의 치세 때 백성들이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요순시대의 격양가(擊壤歌)가 그것을 말해준다.

 

()나라의 탕()왕은 폭정을 일삼던 걸()왕을 치고 하나라를 멸망시켰다. 서경탕서편에는 걸왕이 폭정을 일삼고, "하늘에 태양이 있는 한 나의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태양이 죽는다면 모를까, 내 권력이 끝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교만하게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에 백성들은 이 태양은 언제쯤 사라질까? 나와 너와 함께 없어져 버리리라!”라고 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냥 나라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탕은 여러 제후들과 힘을 모아 명조전투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상 본기가 아닌 은 본기로 한 것은 주 나라에서 은()으로 낮춰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은은 상나라가 망할 당시 수도 이름이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상나라의 마지막 왕 주() 왕의 타락과 폭정은 극단적이었다. 주나라에서는 '은감불원(殷鑑不遠)': "()나라의 멸망을 거울로 삼아라"라고 교훈했다. 상나라를 폄하함으로서 주나라의 무왕이 새 왕조를 열 수밖에 없었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기도 하다. 오랫동안 상()이 은()으로 불린 이유다. 역사 시간에 가 아닌 로 외웠던 나는 익숙한 것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나라의 중흥기를 이끈 왕 무정(武丁)은 꿈에서 현몽한 열()을 찾고 등용한다. 그에게 부()라는 성을 주고 부열(傅說)으로 불렀다. 그를 전적으로 신임하여 그의 간언을 다 수용한다. 이들의 만남과 대화는 서경(書經)열명(說命)편에 기록되어 있으며, 후대에 수없이 인용되는 위대한 명구들이 담겨있다.

 

작주즙舟楫, 작림우

若金用汝作鑢. 若濟巨川用汝作舟楫. 若歲大旱用汝作.

"만약 내가 쇠()라면 너를 숫돌로 삼을 것이고, 만약 큰 강을 건너려 한다면 너를 배와 노로 삼을 것이며, 만약 해마다 큰 가뭄이 든다면 너를 단비로 삼을 것이다.“

왕이 인재(부열)를 얼마나 간절히 필요로 하는지 비유를 들어 고백한 구절이다. 자신을 숫돌처럼 벼리고, 배와 노, 단비와 같다고 고백한다. 그야말로 왕으로서 신하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요, 구애이다. 이후 훌륭한 재상을 일컬어 '주즙지신(舟楫之臣, 배와 노 같은 신하)'이라 부르고, 가뭄 끝에 내리는 반가운 비를 '임우(霖雨)'라고 부르는 유래가 되었다.

 

知之非艱行之惟艱(지지비간, 행지유간)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부열이 무정에게 한 이 말은 수많은 정치가들 사상가들의 화두가 된 명구이다. 쑨원(손문) 등의 혁명가들도 지행합일을 논하며 인용했다고 한다.

서경의 주된 사상은 첫째로 천명(天命)사상이다.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것은 천명에 의한 것이며, 천명이 새로워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덕 있는 왕에 의해 나라가 세워지더라도 그 왕위를 잇는 자가 덕이 없다면 천명은 다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워 진다. 따라서 왕은 덕을 닦고 정의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둘째로 왕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인민을 위한 정치가 서경에 나타나는 기본사상이다. 사기』 「은 본기사람이 물을 주시하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듯 백성들을 살펴보면 다스려지는 지 그러지 않는지를 알수 있다.(人視水見形視民知治不)”(은 본기98p)고 한 것은 바로 이 민본 정치를 말하는 예이다.

천명사상과 덕치와 민본정치와 함께,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것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중요한 덕목이다. 사기서경모두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잘 다스린 왕들은 인재를 찾고 등용하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을 볼 수 있다. 이윤고요부열과 같은 재상을 얻는 것은 그야말로 천명이기도 하고 왕의 덕이기도 하다.

 

현대의 정치에서 인재들이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방법론에 있어 다르지만 어쨌든 올바른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인재를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의 복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투표소를 나서니, 내가 누른 도장의 가벼움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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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59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박혜경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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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생각에 의문을 갖게 하는 지점이 많았던 소설이다. 한편, 도스토옙스키가 페트라솁스키 서클에 연루되어서 겪은 극적 경험, 사형수와 유형수로 겪은 고통은 이 작품에도 역시 짙게 배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평생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생각된다.

 

1869년 네차예프가 자행한 살인사건으로부터 소재를 얻고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는 니힐리스트이며 유럽의 인터내셔널, 바쿠닌 등 무정부주의자들과 교류가 있었고, 모스크바에 비밀결사를 조직했던 인물이다. 1860년대 러시아에서 니힐리스트는 모든 사상, 의미, 권위 도덕 등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급진주의자이다. 그들 학생 운동은 폭력을 동반했다. 이들의 폭력적인 성향은 백치에서도 그려진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에서도 서구로부터 들어온 사상 뿐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다양한 사상’, ‘주의에 대해 부정적 입장에서 비판하는 태도를 취한다. 서구의 사상이 혼란스럽게 러시아 사회를 무질서하게 만들고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윗세대들(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시기)의 서구사상(자유주의)을 여과없이 들여오고 그들의 삶이 부조리하고 위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서구로부터 들어온 불온한 사상들에 대항해서 러시아의 정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학자이자 시인인 스쩨빤 뜨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끼와 같은 사람들이 구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페테르부르크 근처 지방 소도시 스쩨빤 뜨로피모비치의 개인 연구실(바르바라의 집)에 모여든 젊은이들은 독자에게 수상한 분위기를 전한다. 화자는 스쩨빤 뜨로피모비치의 집 모임은 소문과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소문은 그들 모임이 자유사상과 방종, 무신론의 온상이라고 굳어졌다. 그러나 화자는 소문과 같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모임은 매우 순수하고 온건하며, 순 러시아식의 유쾌하고 자유로운 잡담을 나누었을 뿐이다.”(1권 제19. 52p) 학자연하고 사상가인 양 하는 스쩨빤 뜨로피모비치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 때문에 모인 모임이었다. 소문은 스쩨빤 뜨로피모비치를 긴장하게 하고 극도의 흥분과 공포 속에 몰아넣는다. 이런 증상들은 도스토옙스키의 트라우마와 관계있다. 또한 국가, 계급, 개인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내포하는 경계와 폐쇄를 나타낸다.

 

소설 전체에서 중반이 지날 때까지 인물 탐색과 소도시의 사람들의 관계에 존재하는 갈등과 원망, 분노, 지배 같은 것들로 연결되어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스쩨빤 뜨로피로비치의 모임에 참석하던 리뿌찐, 비르긴스끼, 시갈료프, 키릴로프, 샤토프 등은 스따브로긴과 뾰뜨르 스쩨빠노비치 베르호벤스키의 귀환과 함께 그들이 이 소도시로 모여든 목적이 드러난다. 그들은 자유주의 관리, 건축가, 학생이고 슬라브주의자, 인신사상 신봉자, 무신론적 실존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다. 이들을 소개할 때 그들의 사상이 어떠한가를 먼저 언급하는 것은 사상이 범람하던 시기에 사상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풍조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자유주의나 계몽주의에 이어 공산주의가 유럽을 휩쓸던 시대였다.

 

당시는 특별한 시대였다. 무언가 새롭고 이전의 평온과 전혀 다른 아주 이상하지만 스끄보레시니끼에서조차 감지되는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러 가지 소문이 들려왔다. 구체적인 사실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 알려졌으나, 이 사실들 외에 어떤 사상들이,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사상들이 그에 수반되어 나타났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사상들은 뒤죽박죽이어서 어디에 적용시킬 수도 없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1권 제15. 32p)

 

리뿌찐, 비르긴스끼, 시갈료프, 럄쉰, 똘까첸꼬로 이루어진 5인조는 뾰뜨르 스쩨빠노비치 베르호벤스키가 조직한 비밀결사이다. 러시아 내 각 지방과 유럽 전역에도 이런 비밀결사들이 존재하고 배후에는 더 큰 조직이 있다고 알고 있지만 그들은 그 실체를 본적도 다른 조직을 만나본 적도 없다. 이들은 스따브로긴의 외국에서 만나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에게서 사상적 영향을 받은 자들에게 스따브로긴은 정신적 지주이고 우상이다. 그 영향력을 뾰뜨르 베르호벤스키가 이용하고 그들을 지배한다. 니콜라이 프세볼로도비치 스따브로긴(Nikolai Vsevolodovich Stavrogin)은 소설의 중심인물이고, 모든 관계의 한 가운데 있지만, 그런 그에게서 지독한 허무를 보게 된다.

 

천재적이지만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스따브로긴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말해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욕망과 쾌락을 쫓는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의지 선과 악의 팽팽한 대립을 느끼지만 그는 범죄와 쾌락을 선택한다. 첫 번째 범죄에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경험한 쾌락은 그에겐 놀라운 것이었고 이후 같은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여기서 스따브로긴은 그가 추구하듯 자유로운가를 질문해본다. 두 의지가 싸우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그가 자유롭지 않음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매번 같은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마찬가지 결론에 이른다. 습관이나 경향성은 이미 자유롭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구의 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그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폭력과 살인 그리고 믿는 바를 실행하기 위해 자살을 한다. 과연 그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자유의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질문한다면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그들은 스따브로긴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고, 뾰뜨르 베르호벤스키의 정신적 지배를 받고 있다. 그 끝에는 허무와 공허만 있다.

 

그들은 왜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을까? 그들은 결말은 왜 허무일까? 모든 사상이 다 그렇지는 않을텐데, 폭동과 살인, 자살, 공허가 두드러진다. 왜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그리고 있는 것일까? 나는 19세기 러시아에서 원인을 찾는다. 계급의 벽이 높은 사회다. 사상이 뿌리내리고 꽃피우기에는 그 경계가 장애가 된다. 그들에게는 프롤레타리아가 없다는 작중 인물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식인들의 모임 밖으로 나갈 개방된 출구가 없었다. 방화나 폭동이 사상을 그 방법이자 에너지로 여길 수밖에 없는 사회적 한계가 존재했다는 생각이다.

 

에필로그에 푸시킨의 시와 누가복음 832-37절을 인용하면서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밝히고 있다. 그는 푸시킨의 시로 성경을 풀어, 파괴적인 사상들이 바로 악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폰 렘쁘께는 자레치예의 화재 현장에서 "모든 것이 방화다! 이것은 허무주의다! 만약 무언가 타오르고 있다면, 그것은 허무주의다!"(3100p)라고 외친다. 허무주의라고 번역된 러시아어 Нигилизм(Nigilizm)은 라틴어 Nihil(, 아무것도 없음)에서 온 것이다. 19세기 러시아 급진 세대의 적극적이고 파괴적인 정치·사회 운동. 종교, 도덕, 국가 권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이를 철저히 파괴하려 한 유물론적 행동주의다. 허무주의는 폭력성을 띄는 무정부주의를 향한다. 렘쁘께의 외침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이며, 사상에 대한 작가의 주관이다.

 

살해 현장에서 소리를 지르며 광기를 보이는 비르긴스끼와 럄신이 뒤엉키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절정을 이룬다. 비르긴스끼의 절규와 럄신의 발작은 도스토옙스키가 묘사한 급진주의 사상의 민낯이다. 한편, 맡겨진 일(범죄)을 무심하게 해내는 에르껠의 모습은 극적 대비를 이룬다. 범죄와 인간의 본성을 소름끼치도록 그리는 도스토옙스키의 탁월함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이 살해에 연루된 인물들은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코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드미뜨리, 스메르자코프를 떠올리게 한다.

 

파괴와 혁명을 논하던 지식인과 소시민들은 살해 현장에서는 나약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살해, 자살, 도주로 그들의 조직은 와해된다. 그들의 사상이 실패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 사상이란 결국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욕망으로 연결된다. 인간의 욕망을 무시한 사상이란 공허한 말들에 불과하고, 그것을 무시한 사상의 실행은 폭력이다. 생명을 해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상은 공허하기만 하다. 도스토옙스키가 19세기 러시아에 들어온 급진적 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들의 신앙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도 모호하게 보일 뿐이다.

 

스쩨빤 뜨로피보비치 베르호벤스키는 죽기 전 유언과 같은 말에서 러시아에 위대한 사상과 위대한 의지가 필요하며, 그것이 악령과 모든 불결함, 혐오스러운 것들을 몰아낼 것”(3권 제72. 327p)이라고 한다. 그 자신 또한 책임에서 피할 수 없고 그 선두에 선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스쩨빤 베르호벤스키의 고백과 병행하며 대비를 이루는 것이 스따브로긴의 고백서이다. 그는 과거의 범죄와 이후 연속된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 글을 세상에 발표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참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파괴적인 행위일 뿐이다. 악령은 그의 내면에 있다. 스쩨빤 뜨로피모비치가 사상을 악령으로 보는 것과 비교된다.

 

이렇게 정치적인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소설은 경향소설로 끝을 맺는다. 모든 사상, 이념이 다 폭력적이고 한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것은 아니지만 거대한 사상의 물결이 큰 변혁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 앞에서 우리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불안하고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급변하고 있고, AI 시대를 맞아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정서가 우리를 엄습한다. 이런 세상을 어떤 사유로 바라보아야 하며, 인류가 새롭게 해야 할 사상과 끝까지 지켜야할 가치는 무엇인가를 질문 받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구세대의 이념은 증오와 혐오를 상속하고, 생명을 조롱하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양산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현재의 혼란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가치를 잃어버린 증상은 아닌지! 도스토옙스키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우리 시대의 악령은 무엇일까?

 

나는 자유의지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하는 생각, 선택, 행동들은 자유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인간은 전적인 자유의지 상태에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영역에서 자유롭지 못하는가? 무엇의 지배를 받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위해 자유로운 선택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런 질문들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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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5-25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도스도옙스키는 어려워요 ㅠ 그간 겁나서 못읽고 있다가 ‘죄와 벌‘ 부터 서서히 시동을 걸려고 하고 있거든요. 악령은 목록에서 뺄까 했는데 기승전결의 연속성을 갖는대서 고민하고 있었지 뭡니까요. 그나저나, 이걸 어찌 해내셨습니까 ㅠ 도스도옙스키 읽으셨거나 읽으시는 분들 존경하고 있습니다. 저만 그런건 아닐거에요. 리뷰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6-05-25 16: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함께 읽고 토론하는 분들이 계셔서 한권씩 해치우고? 있네요 ㅎㅎ
제 다음 책은 <미성년>이 될듯합니다

차트랑 2026-05-25 16:50   좋아요 1 | URL
오... 도스도옙스키를 싹 쓸고 가실 기세로군요!!!
그 깊은 산맥을 죄다 !!!!

도스도옙스키와 마주하니
참여하고 계신 독서팀이 부럽게 생각되기는 처음입니다.
전 아직 독서팀을 부러워해본 적은 없답니다!!

미성년도 대박 두껍던데,
미성년 리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악령의 리뷰는 저를 까마득하게하여 기운이 빠졌는데
미성년을 읽으신다니 그 기세가 다시 저의 전투력 게이지를 상승시키는군요!!!)



에로이카 2026-05-25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안녕하세요? 시간이 나시면 르 귄의 <빼앗긴 자들>을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요. <악령>의 영어판 제목이 Possessed이고,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르 귄이 쓴 책이 Dispossessed, 곧 <빼앗긴 자들>(로 제목이 잘못 번역된 책)이라고 해요. 그레이스님께서 두 책을 읽으시면 한층 더 풍부한 말씀을 하실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

그레이스 2026-05-25 16:04   좋아요 2 | URL
아!
감사합니다.
본 책인듯 하네요,,, 생각이 안나네요
악령을 생각하면서 보면 깊이가 다를듯요^^
감사합니다
 
알고 싶지 않은 마음 - 탈진실 시대 무지의 전략들
레나타 살레츨 지음, 정영목 옮김 / 후마니타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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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이나 제노사이드가 있었던 지역에서, 또는 이민자에 대한 편견에 작용하는 무지는 많은 경우 선택과 의지에 의한 것이다.처리하기 힘들정도로 너무나 많은 정보가 들어오거나, 새로운 정보나 아직은 대응할 능력이 없는 정보를 대할 때 무지로 반응한다. 모두 공감되나 평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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