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후 본기에 보면 좌단(左袒)’이란 말이 나온다. 또는 유씨좌단(劉氏左袒)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왼쪽 어깨를 벗어 드러내다', 남의 의견에 찬성하거나 한쪽 편을 들 때를 비유한다. 여태후 죽음 직후 주발, 진평을 중심으로 봉기했다. 이들은 여씨들을 몰아내고 유씨정권을 회복시켰다. 이 정변 와중 병권을 위임받은 주발은 인수를 갖고 진영 문에 들어서 군영에 호소한다.

여씨를 위하려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유씨를 위하려면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여태후 본기401p)”

군영병사들은 전부 왼쪽 어깨를 드러내 유씨를 위할 것임을 나타내고, 유씨 황조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한다. 그렇게 성공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문제이다. 그의 아들 경제와 함께 성세를 이뤄 문경지치(문경지치 (文景之治 문제文帝와 경제景帝가 다스리던 시대의 훌륭한 정치.)’라는 성어를 전한다.

 

여태후는 고조 유방이 죽자 아들 효경제를 황위에 앉히고 후궁들과 황손들을 죽이는 청군측 (淸君側)’을 단행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친정 여가의 사람들을 앉힌다. 여태후는 효혜제가 죽은 후에 두 번이나 왕을 갈아치우며 황권을 행사했다. 이 여태후의 사후에 일어난 정변이다.

왼쪽 어깨를 드러낸다는 행위를 통해 유씨에게 충성할 것을 표하는 데서 오른쪽과 왼쪽을 상징하는 의미-()와 신(), 보수와 진보를 의미-가 동서고금이 같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좌파(좌익)이라는 말의 기원이 된 사건, 프랑스 혁명 직후 의회에도 진보적 공화파 및 혁명파(자코뱅파, 시민 대표 등)들이 의장석을 기준으로 왼쪽에 위치했었다. 시간을 거슬러 고대로 올라갈수록 오른 손, 오른 쪽 자리는 힘과 권력을 상징한다.

 

두 번째 사기읽기는 중국 지리-그 중 황하, 장강, 위수, 한수, 회하, 제수 등의 강과 항산,태산, 화산, 숭산, 형산의 오악과 산맥들, 관중 땅을 두르고 있는 관문들 한중에서 관중으로 들어가는 길, 강들이 만나는 지점의 요충지 등-를 자세하게 짚어가면서 읽었다. 또한 하, , 주로 이어지는 왕들의 계보와 정치제도, 행정구역, 직제, 전쟁들을 긴호흡으로 읽어왔다. 춘추 전국 시대 패자의 나라들과 전국 칠웅, 진나라의 군현제, 초한전쟁 시 유방과 항우의 관중행 경로, 한나라 고조 유방이 공신들과 제후들에게 분배한 봉지와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군현의 범위 등 자세히 볼수록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각 시대와 인물의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성어를 알아보고 가는 것이 즐거웠다. 한자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성어들이나 정치이념과 문화, 생활 속에 사용된 도량형의 단위까지 익숙한 것이 많아 회원들은 당황스러워 했다. 더구나 기자4과 같은 기록을 볼 때마다 혼란스런 그 맘을 잘 알기에 다른 해석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더 나아가 국가의 개념에 대해 다시 토론하고 진행했다.

이제 본기가 끝났으니 세가와 열전을 이 속도로 하게 되면 1년은 족히 걸릴 듯하다. 이렇게 자세하고 느린 진행이 나에겐 더욱 좋고 도움이 많이 된다. 처음 읽을 때 참고했던 다른 책들에 추가하여 보게 된 책들이 많다.

 

먼저 춘추 전국 이야기(1~11)이다. 삼황오제와 하주 시대도 다루고 있다. 특히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황하와 장강, 거기에 합쳐지는 강들과 이 강들 유역에 자리잡은 고대 국가들과 치수가 왕위계승과 밀접하게 관련있음을 알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융족에 기원을 둔 주나라의 봉건제도와 동천 춘추전국시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주나라 황실의 약화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권인 11권에서는 초한 쟁패를 다루고 있다. 사기를 읽기 전 쉽게 읽을 수 있고 아주 긴요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왕리췬의 사기 강의 시리즈진시황 강의, 항우 강의, 한무제편이 있다. 저자 소개에는 40여 년간의 연구와 오랜 기간의 강의를 한 사기전문가이다. 유튜브를 찾아봤더니 CCTV <백가강단>이란 프로그램에서 강의한 동영상이 있다. 우리말 더빙이 되어 있어서 오히려 낯설었다. 역시 나에겐 책이 더 좋다. 이 시리즈는 항우 강의편이 제일 인상 깊게 다가왔는데, 그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듯 보이나, 끈기 있게 배우지 못하는 그의 성품에 비해 배우지 않고도 싸움에 능한 장수로서의 천재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천하 제패를 하고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성품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25~30세라는 어린 나이도 유방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듯하다. ‘사면초가밤에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래에 절망해서 죽음을 택하는 그의 충동적 성품도 한 몫을 했다. 한마디로 제왕으로서는 자질이 부족했다. 정치적 인간은 아니었던 듯 보인다. 그의 강의 시리즈에 한무제 편은 있지만, ‘고조 유방 편이 따로 있지는 않다. 유방은 항우 강의에서 함께 다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상상해볼 수 있겠다.

하버드 중국사 진은 많은 지도 이미지 자료를 기대했었는데 그보다는 당시의 제도, 문화 생활상 같은 것들을 분야별로 다루고 있다. 참고 자료로 사용할 책으로는 좋다.

 

서경이나 자치통감』 『한서도 해당하는 부분만을 펼쳐 비교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들 중 최고는 만화책이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초한지12권으로 되어 있다. 이런 역사 만화는 생각 보다 자세하고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 있으면서 속도 내서 끊김 없이 읽을 수 있어 전체를 꿰는 데 도움이 된다. 일단 쉬고 싶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좋다.

 

177월에 모처럼 생긴 공휴일에 막내와 함께 cafe-hopping을 하며 이 만화를 읽었다. 백색 소음을 뚫고 들어오는 소리들에도 흔들림 없이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머리를 식히면서도 역사의 끊겨진 맥락을 잇는 두 가지 효과를 얻게 된다. 만약 선지식 없이 이 초한지 만화를 읽는다면 그런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머리가 더 아파질지도 모르겠다.^^ 사기를 읽는 배경지식을 얻는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나의 두 번째 사기읽기 그물망은 더욱 촘촘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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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rjfnr 2026-07-29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우 ᆢ 언제 다 읽나요,?
삼국지랑 사기만 전 겨우인데 ~~^^ ^^
‘초한지‘ 만화 탐나네요.

그레이스 2026-07-29 21:27   좋아요 0 | URL
ㅎㅎ
언젠간 다 읽더라구요^^
초한지 만화 잘 썼어요.
 
맨 끝줄 소년
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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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에서 <맨 끝줄 소년>이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가 원작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책을 주문해서 읽었다. 드라마의 문법이 극단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희곡을 먼저 읽어보라고 막내에게 건네주었다. 딸은 불친절한 희곡이라고, 지문이 없이 갑자기 끼어드는 대사 때문에 흐름이 끊겼다고 하면서 책을 돌려주었다. 지문이 없는 것은 무대 배치나 동선과 동작 같은 연출을 연출자의 해석에 맡기고 창작할 여지를 주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바로 직전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자크와 그의 주인역시 이런 여백이 많은 작품이다. 그 희곡을 읽어서 그런지, 나의 경우 형식에는 너그럽고 긍정적이었다.

 

내용은 조금 불편한 작품이다. 특별한 사건이 없음에도 긴장하고, 노골적인 악의가 없음에도 위험하고 불안한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을 해부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가 있다. 인간의 불행의 근원은 욕망일까? 나의 결핍과 타인이 가진 것에 대한 욕망이 자라나고 파괴적이 되어가는 과정과 그 힘에 대해 생각했다. 한편 욕망의 은밀함에도 불구하고 발각될 수밖에 없는 그 보편적 본질을 갖고 있다. 그 성질을 누군가 이용하려 한다면 거기서 자유롭기 쉽지 않다.

 

맨 끝줄은 익명성과 은밀함을 즐기는 자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자신을 감추고 타인을 관찰하고 감시할 수 있는 위치다. 맨 끝줄이 은닉성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클라우디오의 위치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독자로서의 헤르만의 위치를 지시하기도 한다. 클라우디오와 헤르만은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 계약이 덧붙여진다. 그리고 둘 사이에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헤르만이 클라우디오가 써오는 글을 읽고 지도해주는 행위는 마치 소년의 자위 행위를 보면서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탐욕스런 어른의 관음증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불쾌한 느낌을 갖게한다. 질문들이 생겨나서 멈춰서 질문의 본질을 생각해야 했다.

 

고등학교 문학교사 헤르만은 학생들에게 주말 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쓰는 숙제를 내 주고, 제출한 학생들의 작문을 읽다가 그의 관심을 끄는 글을 발견한다. 클라우디오 가르시아 의 지난 주말이라는 글이다. 그가 친구 라파엘의 집에 가서 그들을 바라본 일종의 관찰 글이다. 도덕적 문제가 있음을 느끼지만 클라우디오의 글쓰기에 끌리고, 그의 시선에 포착된 라파의 집과 가족에 대한 글에 호기심을 누르지 못한다.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에게 글쓰기 수업을 제안하고, 라파의 가정을 관찰한 글을 계속해서 써오게 하고 읽고 지도한다.

 

클라우디오는 하교 길에 라파를 기다리는 부모들을 보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다. 라파의 집이 보이는 건너편 벤치에 앉아서 종종 그들을 바라보았고, 라파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수학공부를 도와주겠다며 그의 집에 가게 되었다.

왜 라파지? 내가 왜 라파를 택했지? 왜냐하면 라파는 나와 정반대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저 집은 어떨까? 평범한 집은 어떨까?(18p)”,

클라우디오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의 시선으로 라파와 가족을 관찰했다. 자신이 갖지 못한 중산층의 향기를 풍기는 가족과 집, 안락함과 평화를 동경했다.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관음증적 시선은 모성과 성애의 경계를 넘는 시선으로, 그리고 통제하고 허구를 창조하는 권력의 시선으로 발전한다. 클라우디오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욕망과 그가 들여다본 가족의 은밀한 욕망은 허구로 창작해서 덧붙인다. 그렇게 그의 글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 그리고 윤리적 경계를 넘나든다.

 

클라우디오의 글을 지도하면서 헤르만은 자신의 관음증적 욕망을 채우고, 자신이 갖지 못한 작가로서의 재능에 대리만족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역시 욕망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교사로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다. 그의 욕망은 자신이 갖지 못한 재능을 가진 제자의 글을 보는 기쁨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는 쾌락을 향한 것인가? 은밀하게 커져가던 욕망은 이 모든 것이 혼재되어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발전한다.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의 글을 비평하고 글이 나아갈 방향, 윤리성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면서 지도한다. 행간에 담겨있는 의도와 주제를 묻고 가르치는 헤르만에게서 클라우디오의 글에 자신의 의도를 담고자하는 욕망을 엿보게 된다. 그렇게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의 글쓰기의 방향을 이끌고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클라우디오는 헤르만과 그의 부인 후아나의 갈등과 욕망을 꿰뚫어보고 글로서 그들을 조종하고 권력을 행사한다. 헤르만이 저질렀던 범죄은 클라우디오에 의해 폭로되고 헤르만은 모든 것을 상실한다. 헤르만이 한 것처럼 인간은 은밀하게 숨어있는 욕망에 작은 자극만 주어도 그것은 깨어나 그를 지배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읽어가면서 계속 생겨났던 질문들은 헤르만 선생이 아이들에게 빌려주는 마의산,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같은 소설들을 이 아이들은 이해할까? 헤르만은 문학에 대한 자만심이 지나친 사람일까? 클라우디오의 글이 픽션이라면 괜찮은데, 타인을 관찰해서 그대로 글로 옮긴 것이라면 불편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클라우디오의 글이 픽션으로서는 좋은 글인가?

 

그는 작가로서 책을 내고 등단했던 사람이다. 헤르만은 그 소설을 실패한 작품으로 받아들인다. 실패한 작가로서 고등학교 문학을 가르치는 헤르만은 재능을 가진 클라우디오에 대해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그를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감을 얻으려는 태도도 엿보인다. 여기에는 잠깐의 암시가 있었던 것처럼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를 떠올리게 하는 감정도 떠올리게 한다. 그가 어려운 소설들을 권하는 것은 가르치는 자의 권위를 세우려는지도 모르겠다. 클라우디오 앞에서 복잡한 심리 상태에 놓이는 헤르만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삶 혹은 타인의 삶에서 얻어지는 것들을 통해 글을 쓴다. 거기에는 현실과 허구가 서로 짜여져 독자에게는 창조된 세계로 다가간다. 그렇지만 독자가 글에서 작가와 작가 주변의 삶을 상상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그 글은 허구로서 읽혀진다. 만약 그것이 오로지 관찰된 사실적 묘사라면 독자인 나는 윤리성을 떠올리게 될 것이고 책을 덮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관찰하기 위해 문학을 읽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작가가 창조해낸 글의 행간에서 욕망고독불안을 읽고도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 열정쾌락을 읽고도 허무를 발견하는 것이 읽는 행위가 생성하는 의미이다. 픽션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줄 수 있는 글과 그렇지 못한 글이 있다.

 

원작을 영화나 드라마로 해석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질문과 답을 찾는 다양한 생각이 이어지도록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전형적인 문법으로 심지어 원작을 훼손하는 작품들도 있다. <맨 끝줄 소년>의 넷**스 드라마는 그런면에서 위험하다. 반면 프랑스 영화 <In The House>는 원작 그대로를 살리고 적절한 이미지로 의미들을 생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끝까지 감상한 영화다.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을 통제하는 권력, 작가의 윤리, 독자의 시선, 해석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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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6-07-23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오종의 영화는 봤고요 넷플릭스 드라마는 좀 엄두가 안 나서 시작하지 않고 있습니다 ㅎㅎㅎ 오랜만의 최민식 배우라서 언젠가 보긴 볼 것 같습니다만

그레이스 2026-07-23 15:14   좋아요 1 | URL
ㅎㅎ
각색이 좀 되어 있어서,,, 넷플릭스 전개 방식도 자극적이구요, 저도 2편 쯤에서 멈췄습니다.^^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6-07-30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읽고 드라마 보려고요.
근데 좀 실망할 것도 같아 망설여집니다.

그레이스 2026-07-30 13:32   좋아요 1 | URL
드라마보다는 영화 추천합니다. In the House. 왓차에 있어요.
영화는 이미 보셨을수도 있겠네요.
작가, 글쓰기에 대한 생각할 주제가 있습니다.
 


우연히 오래 된 밀란 쿤데라의 책 가운데서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라는 책을 뽑아 들었고, 첫 장에서 이 드니 디드로의 작품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해석과 감상을 읽게 되었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의 오마주인 듯 보이는 작품에 대한 궁금증으로 찾아 읽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해석을 소설의 기술에서도 접했다. 그리고 드니 디드로에 대한 오마주라고 했던 밀란 쿤데라의 자크와 그의 주인을 읽었다. 우연히 연결 독서를 하게 되었고 예기치 않은 기쁨을 맛보았다.

 

밀란 쿤데라가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처음 읽었을 때, “성찰이 일화와 나란히 펼쳐지고, 한 이야기가 다른 한 이야기를 감싸는, 대담하게 규칙을 벗어나는 그 풍요로움에 매료되어, 사건의 일치라는 규칙을 조소하는 작문의 그 자유에 매료되어그는 이렇게 자문해 보았다고 한다. “이 멋진 무질서는 정교하게 계산된, 훌륭한 구성 덕택일까, 아니면 순수한 즉흥의 도취 덕택일까?” 그리고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여기서 우세한 것은 즉흥이다.”라고 말한다. 완벽하게 계산되고, 헤아려지고 미리 계획되었을 어떤 구성의 가능성이 이 도취된 즉흥 속에 내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쟈크와 그의 주인돈 키호테의 변주다. 돈 키호테에서 주로 돈 키호테가 말을 많이 하고, 고난을 당하는 쪽은 산초 판사다. 기사 문학을 많이 읽은 돈 키호테는 현실과 문학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며 환상 속에 산다. 산초 판사는 어리숙하고 무식한 농부이며, 그가 목숨이 위험한 상황 가운데 빠지면서도 돈 키호테를 따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하게 만든다. 우스꽝스런 그들의 모험 이야기 배후에는 세르반테스의 비판의식이 담겨 있다.

 

16~~17세기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이 끝나고 종교재판소의 수도사들은 무슬림이나 이단을 적발하고 처벌했다. 더 나아가 민간의 풍속과 사상과 도덕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파밀리아레스(Familiares)'라 불리는 평신도 밀고자와 비밀 정보원들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했으며, 수도원은 이 거대한 감시망의 중심에 있었다. 돈 키호테가 소장하고 있던 책(기사문학)을 신부가 분류해 없애는 장면도 그런 현실을 풍자하는 것이다.

 

돈키호테의 방랑 중 만나는 베네딕토 수도사들은 당시 스페인 독자들에게 종교재판소를 떠올리게 했다. 그 수도사들에게 광기를 보이는 돈 키호테의 모습은 신랄한 풍자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편, 산초 판사가 돈키호테의 요구에 거부 없이 따라나서는 모습이나, 돈 키호테의 광기로 인해 고초를 겪는 모습에서 당시 신분 사회의 권력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미치광이 귀족이지만 산초는 그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 주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보호를 하려 하지만 주도적으로 무엇을 할 수는 없다. 그 대신 놀림감이 되고 부상을 당한다.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은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비틈이고 변주다. 자크의 믿는 바에 따르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운명이다. 자크의 표현대로 하자면 저기 높은 곳에 쓰인대로이다. 표면적으로 저기 높은 곳에 쓰인 대로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희곡 대본을 의미한다. 이 희곡의 많은 부분에서 작가의 말이 등장한다. 이 희곡에서 권력은 작가에게 있다. 작가의 글에 의해 그들의 운명이 정해진다. 자크는 어떤 사건의 단계(발단……결말)에서 저기 높은 곳에 쓰인대로된 일이라고 말한다.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병행되는데 자크와 주인의 방랑, 그들과 그들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회상 혹은 소문), 그리고 작가의 말이다. 돈 키호테에서와 달리 자크는 그의 주인보다 말을 많이 한다. 그리고 게으르고 어리석은 주인을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주인은 자크에게 감사를 표하지는 않는다. 자크는 자신이 주인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알고 있지만 어차피 그것도 저기 높은 곳에 쓰여진 대로된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크는 그렇게 운명, 작가의 권력에 순응하는 듯하지만, 많은 경우 주도적인 행동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주인과의 관계에서도 주인에게 제가 나리께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는 한, 또 나리께서 저 없이 지낼 수 없다는 걸 제가 알고 느끼는 한, 필요할 때는 언제나 이 이점을 남용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주인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이다. 그는 주인과 종이라는 불평등하고 억압적 관계임에도 결단하고 행동하는 데 자유롭다. 사회 구조와 달리 실천적 자유를 누림으로 그 구조(계급)를 전복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높은 곳에 있는 작가의 권력도 뛰어넘는다. 많은 분량을 할애하며 작가는 사이사이 말을 하며 개입한다. 자크에 대한 평을 하기도 하고, 인물들의 말과 행동, 감정을 설명한다. 말로는 작가의 권력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자크는 그 권력관계를 전복시킨다. 작가는 그의 글 역시 자크에게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다.

 

독자여, 내가 여기서 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크에게 들은 것이다.(259p)”

 

자크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작가는 말하기를 그와 같은 자들이 비천함에서 끌려나와 연단에 서기만 하면 갑자기 흥미로운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자크가 말한 것을 작가가 인용하며 전한다.

 

민중은 전혀 비인간적이지 않다. 민중은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이 모여든 사형대에서 그 불행한 사람을 법의 손아귀로부터 끄집어내려 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목격한 장면을 파리 교외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하려고 그레브 광장으로 가는 것이다. 그 장면이 어떤가는 별로 중요치 않다. 다만 그가 하나의 역할을 하기만 하면 된다. 즉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말을 듣게 하기만 하면 된다. 거리에 재미있는 축제를 열어 봐라. 그러면 당신은 처형 장소가 텅 빈 것을 볼 테니. 민중은 구경거리에 열광하며 몰려든다. 그들은 그걸 즐기는 동안 재미있어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하는 이야기에 더욱 재미있어 한다. 민중이 분노하면 무섭지만 그 분노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들의 비참한 생활이 그들을 관대하게 만든 것이다. 구경거리를 보러가서 끔찍한 장면이 나오면 눈을 돌리고 마음이 울적해져 집에 돌아올 때는 모두 눈물을 흘린다. 독자여, 내가 여기서 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크에게 들은 것이다.(258~259p)”

 

이렇게 보면, 자크는 철학자다. 자신을 지배하려고 하는 모든 권력을 거부하고 전복시키려 한다. 그의 자유로움은 자연스럽게 몸에 체화되어 있는 듯 보인다. 작가의 권력으로부터 등장인물과 독자를 해방시키려하는 시도를 한다. 작가와 인물들 간의 갈등은 플롯, 정해진 기법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당신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라티우스, 비다, 르 보쉬의 규칙을 위반했소.(230P)”

이들은 시학이나 서사시에 대한 글을 쓴 사람들이다. 희곡의 규칙을 벗어난 인물의 행동에 대해 논하는 두 인물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변주 자크와 그의 주인에 이르면 훨씬 간결해지고 말 수가 적어진다. 드니 디드로에게 바치는 3막짜리 오마주라고 부제가 달려 있다. 드니 디드로의 작품에서 나타난 구조는 3개의 무대로 그려진다. 작가와 자크 그리고 그의 주인과의 사회적 구조는 높은 무대와 중간 그리고 낮은 무대로 이루어지며, 이들의 대사와 연기는 교차로 병행하며 진행된다. 시각정으로 그려진 그들의 권력 관계는 대사에서는 이미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물들은 그 무대를 내려오기도 오르기도 한다. 대사나 이야기의 진행 역시 간결하고 명료한 것처럼 보인다. 드니 디드로의 작품에서 통쾌한 복수가 있는 여관 여주인의 후작의 사랑 이야기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서는 자크의 사랑이야기와 주인의 사랑이야기가 뒤섞여들어간다. 누가 선하고 누가 비난 받을 사람인지 판단 할 수 없게 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 위계, 옳음의 문제를 각자의 생각에 맡긴다. 메시지를 전하는 중요한 대화가 36장에 등장한다.

 

 주인: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

 자크: 누구도 알지 못하죠

 ……

 자크: 인류가 태곳적부터 알아 온 계략이죠. 어느 쪽으로 가도 앞입니다.(135P)

 

17세기에서 18세기로 그리고 20세기로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철학의 관심과 주제는 달라져 왔다. 스페인의 인문주의 시대로부터 계몽주의 시대로 이데올로기 시대의 허무주의로 변화했다. 주제는 개인의 존재 문제로 좁혀지고 판단과 선택의 옳음은 개인에게 맡겨진다. 문학도 형식과 내용의 변화와 함께 그 시대사조를 반영하는 메시지 역시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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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숲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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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로이스 로리의 『The Giver(기억전달자)』를 원서로 읽고 영어로 토론할 때의 일이다. 소설의 내용 중 각 가정에 잘 맞는 아기를 배정해주고, 재능에 따라 직업을 정해주는 것에 대해, 어떤 회원이 convenient라는 단어를 써가며 편리하고 이상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인생에서 선택의 순간마다 확신 없었던 때와 혈육이라 해도 항상 관계가 좋은 것은 아닌 경우를 예로 들며, 차라리 완벽한 시스템이 있다면 가족과 직업 같은 것들을 정해주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었다. 그때는 웃으면서 지나갔는데, 돌이켜 보면 동의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그렇게 정해진 것들이 나에게 완벽하게 잘 맞는다 하더라도 불완전한 인간이 거기에 만족하며 살까? 만족할 수 없기에 나쁜 기억이나 욕망을 잠재우는 약을 복용해야만 할 것이다. 그 소설에서 그려지는 사회는 결코 유토피아라고 말할 수 없음을 우리는 동의한다. 순간순간 스치듯, 희미한 수치심과 부러움을 느끼는 인물들과 강요당한 희생으로부터 도망치는 주인공에게서 잠재울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욕망을 발견한다. 충돌하는 공동체와 개인, 개인과 개인의 욕망은 그 어떤 사회에서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욕망은 원래 증식하고충돌하기에.

 

이끼숲을 읽으며 기억 전달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를 상상하며 디스토피아를 생각하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이끼숲은 막내가 올해 읽은 소설들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추천한 작품이다. 작가 천선란은 딸들이 좋아해서 소장하는데 나는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다. 그동안 엄마, 읽어봤어?”하고 물어보는 딸에게 아직!” 이라는 대답을 하곤 했었다. 지하철에서 문득 생각이 나서 폰을 열고 구독형 전자책으로 읽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는 기운을 느끼고 종이책으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주문했다. 마음이나 정서를 전하는 표현이 탁월하게 아름다웠다. 동시에 아포리즘처럼 가슴을 두드리는 문장들도 있었다. 작가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어둠이다. 현실을 Si-Fi로 표현했을 뿐, 현실과 소설이 다르지 않다.

 

지상의 식물들이 사라지고 미래의 지구인들은 지하에 도시를 건설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마르코, 은희, 의주, 유오, 소마, 치유키, 톨가 는 청년들이다. 그들의 직업은 학업 성적에 따라 선택의 범위가 정해져 있었다. 경비원, 기계실 정비공, 건설사 직원, 통신국 직원, 의사, 씨앗 저장고 지킴이. 그들의 욕망과 통증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지상의 풍경을 인공으로 조성해놓은 세계에서 지상에서 누릴 수 있던 즐거움이 모두에게 허락되지는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식은 관계없는 이야기다. 한때 인간이 지상에 살던 시절음식이 인간에게 최고의 사치품이었던 시절을 이야기할 뿐이다. 지하 도시에서 음식은 그들에게 생명 유지를 위한 연료일 뿐이다. ‘VA2X’는 빼먹지 않고 매일 먹어야 하는데, 복용을 중단하게 되면 환각, 정신분열, 우울증 따위의 정신질환과 뼈가 삭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마도 햇빛을 볼 수 없는 환경과 관련 있는 듯하다. 그런 증상을 앓는 자들은 정신재활원으로 실려 간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마르코는 클론제작실 건물 경비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은희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 때문이었다. 마르코는 우연히 아바타에게 목소리를 파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비싼 값에 목소리를 완전히 넘기고 발성기관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불안감과 긴장감을 전한다. 지문과 같은 목소리는 한 개인의 유일성을 나타낸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매매되는 장기(臟器)와 목소리 중 어떤 것이 더 존재에 타격을 줄까?

 

세상에 하나뿐인 아바타한테는 세상에 하나뿐인 목소리가 필요하니까, 목소리는 전부 다 다르잖아. 그러니까 원하는 목소리를 돈을 주고 빼는 거지.(32p)”

 

가상세계에서도 현실의 본인처럼, 목소리도, 외모도 세상에 하나뿐이기를 원하는(33p)” 사람들이 그 수요자다.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사람들과 목소리를 팔아야 할 만큼 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있다. 이 세계 역시 자본이 가르는 계급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경비원 일을 하면서 여가시간에 B45에 있는 재즈바에서 노래하는 은희의 삶은 녹녹치 않다. 그 재즈바에서 마르코에게 은희가 시켜준 음료의 이름은 바다눈이다. 바다에 눈이 내리는 것은 생물의 사체에서 나오는 미생물이 눈처럼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음료에 이런 이름을 붙이는 지하도시 사람들은 유미주의와 허무주의적 감수성을 갖고 있다. 내일이 없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다음에 올 시간을 기다리며 설레게 하는 것은 사랑뿐이다. 결말이 어떻든지 그 순간이 아름다운 것은 시대불문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주거 지역, 직업, 출입할 수 있는 장소 등의 규칙과 질서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인구 정책 때문에 존재가 없는 의조와 같은 사람들도 있다. 의조는 의주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의주가 선택되면서 유기되어 환기구 안쪽에서만 살아간다.

 

마르코, 의주, 치유키, 유오, 소마, 치유키, 톨가.

엇갈림과 상실의 어둠 속에서 이들의 사랑은 가슴 뻐근하게 아프고 벅차오르게 아름답다.

 

나는 그걸 먼발치에서 바라봤는데도 마치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 것처럼, 너와 나란히 서서 꽃이 쓰러지지 않길 빠랐던 것처럼 떠올라. 그럼 나는 기억을 주무르게 돼.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끌어안아.(138p)”

 

유오는 나무에 대한 특별한 관심 때문에 지상탐사대에 들어가길 원하지만 좌절되자 땅속으로 뻗은 뿌리라도 만나기 위해 위험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택한다. 지하에서 하는 작업이므로 폭발의 위험과 상해와 죽음의 위험이 있다. 혹시 사고로 잃어버릴지도 모를 신체부위를 대체하기 위해 클론을 생산한다. 아이러니 하다. 지상으로 오르려는 욕망을 대신해서 땅을 파내려가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신체 훼손, 절단, 괴사 등의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의 클론을 준비하는 것이. 클론은 예방할 수 없는 사고의 사후대책에 불과하다. 다른 몸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817131123초경 T7-033구역 지반 붕괴로 노동자 한 명 사망. 그 줄에는 그 애의 이름도, 그 애의 삶도, 그 애가 알고 있던 식물에 관한 지식도, 그 애의 그날 저녁 약속도 담기지 않는다. 그런 것의 집합이 그 애이지만 죽음은 간략하고 명료하다. 멀리서 보면, 별것 아닌 한 줄이 된다. 그 애를 사랑했던 사람만이 그 한 줄을 뜯어 먹고 살 것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 선과 선 사이에 촘촘히 박힌 삶을 그리워하면서.(230p)”

 

폭파사고로 인한 유오의 죽음, 몸의 상실은 소마에게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가져왔다. 유오의 클론이 폐기될 것이란 소식을 듣고 제작실에서 그것을 꺼내 업고 지상으로 도망간다. 소마(σμα, soma)(육체)’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소마)’(유오의 클론)’을 업고 있는 이미지에서 작가는 어떤 의미를 전하려 했을까? ‘몸은 어떻게 존재가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을까? “지금 우리의 삶은 예전 문명으로부터 떨어진 꽃처럼 느껴진다.(147p)”고 했던 소마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소마는 지하세계의 입구가 있는 유리돔(온실)까지 무사히 도착한다. 의외로 그 마지막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냥 손잡이만 돌려서 열고 나오면 된다. 소마에게는 문을 열고 나가면 죽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와 소마가 마주한 지상 세계는 이끼로 덮여 있었다. 이끼는 맑고 깨끗한 공기가 존재하는 것을 알리는 지표식물 아니었던가! 그 이끼가 끝나는 곳에 숲이 이어지고! 어쩌면 인간이 없는 지상의 세계에서는 식물 생태계의 천이가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클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끼가 묻은 그 몸에 대해 짧은 장면으로 결말을 보여주지만 내게는 열린 결말로 다가왔다.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권력과 시스템은 두려움과 자본이다. 그 세계를 벗어나 지상으로 나가면 죽음뿐이라는 두려움은 그들을 권력의 지시에 순응하게 한다.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은 정신개조를 받거나 지워진 존재가 된다. 그것이 그들이 아는 최후다. 그 세계를 벗어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는 오늘날 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스템과 권력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려지는 미래 세계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밖에 없다. 작가가 그리는 소설 속 세상은 현재의 세상에 존재하는 어두운 현실이 있다. 그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부조리와 비극을 미래의 판타지로 그렸을 뿐이다. 인공해변, 인조식물, 인공하늘인 스페이스 스카이가 있는, 실재의 모형에 불과한 것들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지상을 상상하지만 그곳으로 갈 꿈은 꾸지 않는다. 그들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은 죽음뿐이기에.

 

국가 시스템은 인식론적(epistemological)이다. 지식의 제도화, 정보의 독점과 검증, 과학기술 정책, 담론의 규제를 통해 국가는 지식을 구성하고 검증하고 통용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를 지배한다. 교육과 정보를 통해 개인은 그 지식을 수용하고 지배 시스템에 적응한다. 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지배의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는 두려움이다. 다른 시스템, 다른 세계로의 탈주를 상상하지 못한다. 혹시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여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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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書經』은 이제삼왕(二帝三王)의 시대를 통해 정치 철학을 논하고 있다. 이제는 요와 순임금을, 삼왕은 우문무(文武)를 가리킨다. 이 시대 사관들이 기록해놓은 것들 중 후세에 전할 만한 내용을 추려 담은 것이다. 원래는 상서尙書라고 불렀으나, 후대에 로 그리고 거기에 경()을 붙여 서경이라고 이름 붙였다. 삼경三經이라고 하면 시경서경역경을 부르는 말이다.

사마천은 사기 본기 중 오제 본기와 하 본기 은 본기 주 본기를 보면 이 서경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사기를 쓰기 위해 천하를 3번 주유했을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춘추, 좌전, 국어 등과 함께 이 서경도 읽었다. 그가 사기를 쓰는 데 이 책들이 자료가 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과문불입(過門不入)

순 임금 때 우는 아버지 곤에 이어 치수(治水)를 위해 등용된다. 그는 하나라의 우왕이다. 우는 이 일을 완수하기 위해 13년을 밖에서만 지냈다.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감히 들어가지 않았다.(居外十三年過家門不敢入.) 이것을 줄여서 과문불입이라고 말한다. 사기하 본기(夏本紀)에 담겨있다. ‘과문불입하며 우왕은 홍수로 인해 곤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물길을 내고 그 땅을 구주(九州)로 나누어 다스릴 수 있도록 했다. 그 땅을 아홉 등급으로 나누어 세금(공물, )을 거두었다. ‘구주九州안에 속한다는 것은 '왕의 교화가 미치는 문명 세계'임을 뜻했다. 이후 '구주(九州)'는 곧 '천하'이자 '중국'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이 내용은 서경書經대우모大禹謨우공禹貢등에 담겨있다.

 

안민즉혜 여민회지(安民則惠黎民懷之)

순 임금 앞에서 우, 백이, 고요가 의견을 나눈다. 고요는 그 자신이 수양하는 데 신중하고 길게 생각하며 구족(九族)의 질서를 돈독히 하면 많은 현명한 인재들이 보좌할 것이니 가까운 데에서 먼 곳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을 뿐”(83p)이라고 말한다. 우 왕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지혜()'이니, 능히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할 수 있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은혜()'이니, 뭇 백성들이 그를 마음으로 따를 것입니다.(知人則哲, 能官人. 安民則惠, 黎民懷之.지인즉철, 능관인. 안민즉혜, 여민회지)”라고 말한다.

 

이어 고요는 인재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덕을 말한다. 세 가지 덕을 갖춘 자와 여섯 가지 덕을 갖춘 자, 그리고 아홉 가지 덕을 갖춘 자를 차등을 두어 등용해야 한다고 한다. “관대하면서 준엄하고(寬而栗), 부드러우면서도 주관이 있고(柔而立), 성실하면서도 공손하고(愿而恭),

다스리는 재주가 뛰어나면서도 신중하고(亂而敬), 유순하면서도 의지가 강하고(擾而毅), 정직하면서도 온화하고(直而溫), 대범하면서도 청렴하고(簡而廉), 결단력이 있으면서도 착실하고(剛而塞), 용감하면서도 정의로워야(彊而義)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요는 직위의 적임자가 아닌데도 관직을 차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천하의 일을 어지럽힌다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 내용 역시 서경고요모皐陶謨의 내용을 사기』 「하 본기에 실었다.

 

이 대화에서 우는 온종일 부지런하게 일할 생각만 하고 있다(85p)”고 말한다. 무엇을 그렇게 하냐고 고요가 묻자 우는 치수와 백성들이 식량을 얻을 수 있도록 실제적인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육로는 수레를 타고 다니고 수로는 배를 타고 다니며, 진흙 길은 썰매를 타고 다니고, 산길은 바다에 징을 박은 신을 신고 다니며, 산을 다니며 나무를 베어 길을 열었. 고요는 그에게 그것이 우의 훌륭한 덕이라고 한다. 고요는 정치 철학을 담당한다면, 우는 행정가이며 실용주의적 인재다. 순은 이런 인재들을 얻었으므로 그의 치세 때 백성들이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요순시대의 격양가(擊壤歌)가 그것을 말해준다.

 

()나라의 탕()왕은 폭정을 일삼던 걸()왕을 치고 하나라를 멸망시켰다. 서경탕서편에는 걸왕이 폭정을 일삼고, "하늘에 태양이 있는 한 나의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태양이 죽는다면 모를까, 내 권력이 끝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교만하게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에 백성들은 이 태양은 언제쯤 사라질까? 나와 너와 함께 없어져 버리리라!”라고 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냥 나라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탕은 여러 제후들과 힘을 모아 명조전투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상 본기가 아닌 은 본기로 한 것은 주 나라에서 은()으로 낮춰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은은 상나라가 망할 당시 수도 이름이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상나라의 마지막 왕 주() 왕의 타락과 폭정은 극단적이었다. 주나라에서는 '은감불원(殷鑑不遠)': "()나라의 멸망을 거울로 삼아라"라고 교훈했다. 상나라를 폄하함으로서 주나라의 무왕이 새 왕조를 열 수밖에 없었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기도 하다. 오랫동안 상()이 은()으로 불린 이유다. 역사 시간에 가 아닌 로 외웠던 나는 익숙한 것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나라의 중흥기를 이끈 왕 무정(武丁)은 꿈에서 현몽한 열()을 찾고 등용한다. 그에게 부()라는 성을 주고 부열(傅說)으로 불렀다. 그를 전적으로 신임하여 그의 간언을 다 수용한다. 이들의 만남과 대화는 서경(書經)열명(說命)편에 기록되어 있으며, 후대에 수없이 인용되는 위대한 명구들이 담겨있다.

 

작주즙舟楫, 작림우

若金用汝作鑢. 若濟巨川用汝作舟楫. 若歲大旱用汝作.

"만약 내가 쇠()라면 너를 숫돌로 삼을 것이고, 만약 큰 강을 건너려 한다면 너를 배와 노로 삼을 것이며, 만약 해마다 큰 가뭄이 든다면 너를 단비로 삼을 것이다.“

왕이 인재(부열)를 얼마나 간절히 필요로 하는지 비유를 들어 고백한 구절이다. 자신을 숫돌처럼 벼리고, 배와 노, 단비와 같다고 고백한다. 그야말로 왕으로서 신하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요, 구애이다. 이후 훌륭한 재상을 일컬어 '주즙지신(舟楫之臣, 배와 노 같은 신하)'이라 부르고, 가뭄 끝에 내리는 반가운 비를 '임우(霖雨)'라고 부르는 유래가 되었다.

 

知之非艱行之惟艱(지지비간, 행지유간)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부열이 무정에게 한 이 말은 수많은 정치가들 사상가들의 화두가 된 명구이다. 쑨원(손문) 등의 혁명가들도 지행합일을 논하며 인용했다고 한다.

서경의 주된 사상은 첫째로 천명(天命)사상이다.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것은 천명에 의한 것이며, 천명이 새로워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덕 있는 왕에 의해 나라가 세워지더라도 그 왕위를 잇는 자가 덕이 없다면 천명은 다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워 진다. 따라서 왕은 덕을 닦고 정의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둘째로 왕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인민을 위한 정치가 서경에 나타나는 기본사상이다. 사기』 「은 본기사람이 물을 주시하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듯 백성들을 살펴보면 다스려지는 지 그러지 않는지를 알수 있다.(人視水見形視民知治不)”(은 본기98p)고 한 것은 바로 이 민본 정치를 말하는 예이다.

천명사상과 덕치와 민본정치와 함께,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것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중요한 덕목이다. 사기서경모두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잘 다스린 왕들은 인재를 찾고 등용하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을 볼 수 있다. 이윤고요부열과 같은 재상을 얻는 것은 그야말로 천명이기도 하고 왕의 덕이기도 하다.

 

현대의 정치에서 인재들이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방법론에 있어 다르지만 어쨌든 올바른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인재를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의 복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투표소를 나서니, 내가 누른 도장의 가벼움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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