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갖고 있던 믿음을 내려놓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뻔한 속임수를 알기 쉽게 설명해줬을 때도 그러하니,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닐까? 나는 이제 내가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대신 내 논리를 최대한 명확하게 밝히고, 상대방이 앞으로도 계속 충분한 정보와 대안적인 설명을 접한다면 언젠가는 훌륭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설명을 받아들일 거라고 바랄 뿐이다.

나는 교육과 인내 그리고 정직함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그중 무엇도 빠른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

요약하자면 항성처럼 살아 있지 않은 물질은 자연 법칙 외에 과학이 감지할 수 있는 그 어떤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단기적 목적을 실제로 가지고 있다. 바로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적은 특정 물리적 분자와 세포 복합체 그리고 신체에 한정되어 있으며, 장기적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 유기체의 진화가 가져온 결과다. 한 유기체의 생존과 번식은 수천 세대 앞의 미래를 내다보며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형이상학적 목표, 목적, 운명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실재한다는 경험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은 소설 《모비 딕Moby Dick》의 에이햅Ahab 선장을 통해 운명이란 개념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에이햅 선장은 자신의 인생이 운명에 의해 통제되며, 흰 고래 모비 딕을 잡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 고래를 사냥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믿는 듯 보인다.

목적론적 믿음을 갖는 사람들 중에는 종교를 통해 그렇게 된 사람이 많지만, 일부 사람들은 우주 그 자체가 어떤 신비로운 방식을 통해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미리 예정되어 있는 어떤 최종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기도 한다. 초기의 일부 진화론자들은 진화를 미리 운명 지워진 경로를 따라 펼쳐지는 과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믿음의 핵심적인 요소는 이렇게 진화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결국 인간이 무대에 등장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목적론은 본질적으로 목적에 관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