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한편에는 지금까지 전개되었던 바와 같은 인간의 발전과정에 대한 비관적 이해 방식이 있고 또 다른 한편에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와 이성이 명하는 새로운 사물들의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병존한다. 이후 이성은 열정을, 17세기가 이해한 바와 같은 위대한 열정을 새로운 시대를 향해 이끌어 나갈 것이다. 이성은열정에게 인류의 행복을 위해 행동할 것을 목표로 제시할 것이다. 열정이 이성이 되고, 이성의 열정은 프랑스 대혁명기의 사람들, 예를 들면 미라보 같은 사람을  사로잡게 될 것이다. 인간의 철학은 야만적 미신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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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인터넷에서 멍청한 욕쟁이 악플러 때문에 분노하게 되거든 그냥 내버려둬라. 그 트롤들은 어느 날 심장병으로 쓰러지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러셀 베이커가 남긴 교훈을 따라 아름답고 교양 있는 댓글을 추구하면 될 일이다.

프로이트와 카타르시스 가설 추종자에게는 안됐지만 이유 없는 분노의 배출은, 특히나 화난 상태에서 공격적인 형태로 이루어질 때 사람을 더 분노하게 만든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분노의 배출은 논쟁을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과열시키며 불평을 없애기보다는 반복되고 더 오래가게 만든다는 점도 드러났다

카타르시스 가설 연구결과는 인터넷 공간에 트롤(악플러)b이 잡초처럼 무성하게 번성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말해준다. 댓글을 다는 행위에 대해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으면 사람은 비열하고 우둔해지며 앙심을 품기 쉽고 마음대로 상대방을 모욕하게 된다.

휴대폰 전자기파가 암을 유발한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주장하는 역학적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연구는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휴대폰이 암을 야기할 수 있는 타당한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력파는 시공간의 미세한 변화를 의미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간과 공간의 간격이 진동하면서 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검출기의 크기는 중력파의 파장에 비해 훨씬 작기 때문에 실제 효과는 고정된 두 점 사이의 거리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중력파는 원칙적으로 어떤 물체든지 가속을 겪을 때 만들어내지만 그 강도가 워낙 약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가장 강력한 방출 천체에서 오는 것을 검출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중력파도 다른 파동과 마찬가지로 파원으로부터 거리에 반비례해서 진폭이 줄어든다. 우주에는 다양한 종류의 중력파원이 있으나 가장 흔하게 검출할 수 있는 중력파는 블랙홀이나 중성자별로 이루어진 쌍성이 마지막 충돌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은 대개 짧은 시간 동안 강력한 중력파를 발생시키고 그 중력파의 파형도 비교적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 검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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셧다운 - 코로나19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나
애덤 투즈 지음, 김부민 옮김, 정승일 감수 / 아카넷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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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화된 무책임은 2017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예측 가능한 역품에 맞서기에 충분한 자금을 글로벌 공중보건 기관에 지원하지 않은 채로, 새로운 위협이 태어나고 생물학적 부하가 심화되는, 위험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미래를 향해 돌진해왔다. 기능 장애는 트럼프만 일으킨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기능 장애가 곧 정산 상태다. 우리는 모두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실제로 준비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_ 애덤 투즈, <셧다운> , p51/389

애덤 투즈 (Adam Tooze)의 <셧다운 Shutdown>은 코로나19가 가져온 국제적인 변화를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전세계적인 전염병은 세계를 공포와 무질서로 밀어넣었고, 수요 급감이 가져온 공급 충격 속에서 실물경제의 위축과 함께 안정자산을 확보하려는 프로그래밍된 금융거래는 공황 직전의 상황으로 세계경제를 밀어붙였다는 것을 독자들은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로 인해 사회공동체는 활동을 멈춘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드러난 것은 미국의 약한 고리와 중국의 부상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적인 금융, 기술, 군사 강국이었지만, 그 국내 기반은 불완전했다. 코로나19가 고통스럽게 드러냈듯이, 미국의 보건 시스템은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며, 미국의 사회안전망은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빈곤의 위험에 빠뜨렸다. 시진핑의 '중국몽 中國夢'은 2020년을 거치면서도 온전히 살아남았지만,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 American Dream'은 그렇지 못했다. 2020년에 신자유주의가 겪은 전반적인 위기는 미국과 미국 정치 스펙트럼의 한 부분에 구체적이고 충격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_ 애덤 투즈, <셧다운> , p26/389

미국의 트럼프가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는 시점에, 탄소중립화를 선언한 중국. '기후'라는 아젠다를 선점하면서 미국의 리더십을 자국의 리더십으로 대체하려는 중국. 중국의 이러한 자신감은 코로나19에 대한 안정적인 대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며 이 시기를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분기점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전환점의 배경은 무엇일까?

중국은 (탄소중립이라는) 의제를 선점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아시아와 유럽의 대중 상당수는 중국의 행동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거나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중국 중앙정부의 점점 커져만 가는 적극성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고, 반대 의견은 그 형태가 무엇이든 무자비하게 억압하는 중국의 방식은 우려스러웠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공산당의 통치 적법성을 뒤흔들 것이라는 의견은 터무니없이 빗나갔음이 증명되었다. 중국 경제는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_ 애덤 투즈, <셧다운> , p185/389

저자는 이러한 문제점을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끊임없이 확장되어온 금융자본주의로부터 찾는다. 필요한 곳(공공보건과 같은)에 대한 지출 대신,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곳으로 몰리는 자본. 덕분에 가상화폐, 부동산, 증시 등으로 많은 유동자금이 흘러들어갔지만, 정작 실물거래에는 돈이 부족한 이중시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미국 국채에 기반한 파생상품으로 엮어진 금융자본은 알고리즘에 기반한 차익거래에 의해 주도되었기에, 작은 변화에 많은 자금이 몰려가면서 큰 흐름을 만들어내며 유지되었다. 그 결과 예상할 수 있었던 '회색 코뿔소'와 같은 위협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현재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금융자본주의는 계속해서 확장하고 진화한다. 이 모든 것은 시장 기반 금융 market-based finance에 해당하는 사례다. 즉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기반을 둔 금융 관계가 아니라, 대출과 채권, 그리고 대출과 채권을 기초 자산으로 삼은 파생상품을 사고, 팔고, 되시고, 되파는 방식으로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금융관계다. 시장 기반 금융의 주요 중심지는 이른바 레포시장 repo market이다(p111)... 이러한 시장 기반 금융 시스템이 계속해서 기능하고 확장하려면,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안전자산이었으며, 안전자산 가운데 가장 안전한 자산은 바로 미국 국채였다. _ 애덤 투즈, <셧다운> , p112/389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서 각국 정부가 케인즈적 개입주의에 대해 이전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제로금리 통화정책 등에 대한 시장의 반감이 많이 누그러졌기에, 금융위기보다 더 적은 충격으로 시장 안정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은 10년 전 위기가 남긴 교훈덕택이었다.

2020년에는 경제 활동이 자연환경의 안정성에 얼마나 의존하는지가 드러났다. 미생물 안에서 일어난 작은 바이러스 변이가 전 세계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 또한 2020년은 큰 곤경에 처해 있던 전제 통화 시스템과 금융 시스템이 어떻게 시장과 민생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드러났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누가 어떻게 지원을 받았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두 충격은 모두 지난 반세기 동안 정치와 경제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했던 칸막이를 허물었다. 경제를 자연으로부터 분리하고, 경제학을 사회정치학으로부터, 나아가 정치 그 자체로부터 분리했던 칸막이들을 말이다. 게다가 2020년에 신자유주의 시대의 바탕을 이루던 가정들을 해체하는 세 번째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의 부상이었다. _ 애덤 투즈, <셧다운> , p23/389

코로나19로 인해 국가의 개입이 보다 정당화되고, 보다 정치적으로 국가의 강제력이 강한 중국이 더 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결과를 세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민주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재난에 취약한 열등한 체제인 것일까. 그러한 비관적인 물음에 대한 서구 진영의 반론이 '한국'이었다. 한국은 이 기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민주주의의 선진국이었다.

전 세계에서는 엄청난 불확실성이 다양한 수준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불확실성 아래에서는 강요된 선택이 이루어진다. 이 책의 목표는 이렇게 강요된 선택들이 경제 측면에서 어떤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지 추적하는 것이다. '셧다운 shutdowm(폐쇄)'이라는 용어를 쓰는 목적은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슨 결정을 내렷으며,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부과했는지에 관한 열린 질문을 하기 위해서다. '록다운'이라는 용어를 거부하는 것은, 그 과정이 자발적이었다거나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었음을 드러내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다. 이는 분명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_ 애덤 투즈, <셧다운> , p16/389

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과학방역을 통해 안정적으로 코로나19를 관리한 한국이 있었기에,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점은 부각되었을지라도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잠재울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분명 한국은 유럽과 미국에 앞선 방역 선진 민주주의 국가였다. 책에서는 이 부분까지 언급된다. 그렇지만, 한국도 분명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는 바로 재정정책 부분에 있었다.

한국은 단호한 조기 대응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였다. 한국인들은 2015년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 위기 당시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국에 코로나 확진자가 단 4명밖에 없었던 1월 27일에 이미 공중보건 당국은 서울역의 어느 회의실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정부는 한국의 생명공학 회사에 치료제나 백신이 아닌 진단 검사 기기를 요구했다. 진단 검사 기기만 있으면, 코로나 19감염이 일어나자마자 추적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p74)... 한국 생명공학 기업의 우선순위는 진단 검사 기기의 절대적인 신뢰성이 아니라 속도였다. 2월 4일, 코젠 Kogene의 진단 기기가 최초로 승인되었다. 두 번째 진단 기기는 2월 12일에 승인되었다. 진단에 실패할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 진단 기기들은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2월 중순 유행병이 진짜로 강타한 바로 그 순간에 한국이 이미 유행병을 추적할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조기 대응의 의의를 잘 보여준다. _ 애덤 투즈, <셧다운> , p75/389

앞선 방역정책과 선제조치로 과학방역을 달성한 한국 문재인 정부지만, 재정정책부분에 있어서는 선진국의 수준에 턱없이 부족했다.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 속에서 재정정책을 펼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여유가 있었음에도, 정부 부채 수준을 관리한다는 명목하에 세계각국 정부가 떠안은 정부부담을 가계부담으로 기꺼이 넘겨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2020년 코로나 19 발병 초기 치뤄진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은 2022년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사멸해가는 시점에 대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다른 선진국들이 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치는가에 대한 고민과 적극적인 행동 부족은 여러 면에서 안타깝게 느껴진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민주단의 다른 패인인 부동산 문제도 수요 억제외에 추가적인 공공주택 확대는 하지 않았다는 점을 연관지어 본다면 문재인 정부는 '채찍'의 사용만 능했고, '당근'의 사용에는 서툴렀다고 생각된다. 사람마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출이 급증하고 세수가 줄어듦에 따라 세계 각국의 정부는 막대한 부채를 발행했다. OECD는 2020년 1월부터 5월까지 경제 선진국의 정부 부채 총 발행액이 1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연말에는 이 금액이 총 18조 달러에 달할 것이다. 2020년 첫 5개월 동안 급증한 엄청난 부채 가운데 67.5%는 미국이, 10%는 일본이, 나머지는 유럽 국가들이 차지했다. 이것은 평시에 기록된 부채 급증 가운데 가장 극적인 수준이었다. _ 애덤 투즈, <셧다운> , p136/389

2020년이 극단적이긴 했지만, 부채 급증으로 이자율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 새로운 추세가 아니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공공 부채가 장기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금리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래리 서머스 Larry Summers는 만약 자금의 가격인 금리가 하락한다면 그것은 불균형이 있기 때문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저축이 너무 많거나 투자가 너무 적다는 의미였다. 어느 쪽이든, 이는 정부 투자로 균형을 맞추기에 적절한 시점이다. 부채 수준에 대해서 걱정할 만한 이유는 거의 없었다. IMF의 전 수석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 Olivier Blanchard는 이자율이 성장률보다 낮게 유지되는 한 채무부담은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_ 애덤 투즈, <셧다운> , p137/389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도 잠잠해지고, 대신 켄타우로스 변이가 우세종으로 등장한 재유행이 우려되는 시점이다. 현 윤석열 정부의 무능함으로 전 정부의 부족한 부분인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물론 과학방역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려 여러 면에서 걱정되는 시점이이도 하다. 한때는 모범방역국으로 인정받던 한국이지만, 이제는 검찰공화국이었던 브라질의 경우로 전락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성공적으로 방역을 한 후에도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도 벌써부터 걱정된다. 이런 내 생각이 기우(杞憂)로 끝나길 진심으로 바라며 글을 갈무리한다...

브라질의 범유행은 거의 전적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이 실패한 탓이었다. 질병이 제트기를 타고 상파울루로부터 브라질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음에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계속해서 부정했다. 코로나 대응은 유럽의 나라 하나 크기만 한 지역을 관할하는 주정부들에 맡겨졌다. 주정부들이 채택할 수 있었던 부분적 봉쇄조치는 질병의 확산 속도를 늦췄다. 그러나 이 조치는 동시에 경제적 대혼란을 일으켰다. _ 애덤 투즈, <셧다운> , p165/389

한국 정부는 2015년 메르스 확산 방지에 실패하면서 우려스러울 정도의 무능력을 드러냈다. 유행병 확산 방지 실패는 현대적 국정 운영에 전념하는 민주당계 정부가 선거에서 승리하고, 한국의 생명공학 분야가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 생명공학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중공업의 후계자가 될 것이다. _ 애덤 투즈, <셧다운> , p50/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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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2022-07-22 0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브라질ㅠㅠ 에휴 진짜 한숨만 나오는 나날이네요 이 상황에서 뭘 어찌해야할지ㅠ

겨울호랑이 2022-07-22 08:29   좋아요 1 | URL
ㅜㅜ 불과 몇 달 전과 전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 같아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그레이스 2022-07-23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겨울호랑이 2022-07-23 23: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그람시가 묘사하는 위기 국면은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이 아니라 ‘병적 징후’들로 가득한 ‘공백기’였다. 그람시는 낡은 것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지성의 비관주의’와 반대되는 ‘의지의 낙관주의’를 품은 채 이런 병적 징후들이 진보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기를 기대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놓인 공백기의 주요한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오래된 강둑이 뒤에 있지만, 반대편은 아직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물살 때문에 뒤로 밀려서 빠져 죽을 위험도 있다. 어떤 일이 생길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 공포에 짓눌린다.

1945년 이전의 유럽은 우파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감옥에서 그람시는 모름지기 지식인 혁명가라면 언제나 해야 하는 일을 했다. 패배의 원인을 고찰한 것이다. 그람시는 또한 당시에 자본주의의 심각한 좌절이라고 여겨진 사태, 즉 1929년 대공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가운데 글을 썼다. 어떤 이들에게 대공황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오래전부터 예측된 자본주의의 위기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좌파는 재기하지 못했다. 노동계급이 처한 상황은 참담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3년 전인 1930년, 이탈리아 남부 투리에 있는 파시스트 감옥에서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 유명한 고찰을 글로 남겼다.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위기는 생겨난다. 이 공백기에 다양한 병적 징후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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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는 『사회계약론Le Contrat social』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공적인 신체personne publique를 옛날에는 도시국가cité라 불렀으며, 이제는 공화국république또는 정치체corps politique(국가)라 부른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은 국가를 세 가지로 구별해서 부른다.
수동적인 경우état, 능동적인 경우souverain(주권자), 그리고 다른 나라와 비교할 경우puissance를 구별하는 것이다. 게다가 국가와 결합한 사람associés을 집단적으로 인민peuple이라 부르며, 주권을 행사하는 경우 시민citoyens, 국가의 법률에 복종하는 경우 신민sujets(국민)이라 부른다."
이것이 프랑스 혁명을 왕이 만든 법률에 수동적으로 복종하던 ‘신민‘이 국회를 만들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으로 탄생하는 과정이었다고 이해하는 근거다.

헌법문제, 재정문제, 농업·상업·상업재판소 문제, 종교·성직자·교육·병원·풍속 문제, 입법문제,
그리고 파리에 한정된 문제를 6개 부문으로 나누어 차례로 다루었다.
"프랑스 군주정에서 입법권은 국민에게 속하며 왕과 함께 나눈다. 왕만이 법을 집행할 수 있다. 국민만이 세금을 신설할 수 있고 전국신분회는 3년마다 열리며 해산하기 전에 반드시 다음에 모일 날짜와 장소를정한다. 신분회 대표를 선출하는 기초의회도 자동적으로 모인다. 군주는 신성하고 침해할 수 없는 존재다. 왕위는 왕실의 장자상속법을 지켜 세습한다."

왕은 왕국의 조화와 행복을 언급하고 번영을 얘기했지만 이미 왕과 제3신분 대표 사이의 거리만큼 귀족이나 성직자의 특권층과 평민 사이의 거리도 좁힐 수 없는 것임을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예복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00명 정도의 참관인은 중앙홀에서 일어나는 연극 같은 장면이 앙시앵레짐의 모습을그대로 담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 모습 속에서 이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참관인은 연극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정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처럼 앙시앙레짐 시대에는 전혀 불가능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날 이후 프랑스의 정치는 대중에게 공개될 것이다.

시에예스 신부는 계속해서 말했다.
"비록 가끔 먹구름이 낀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이끌어줄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권한을 행사하고 무슨 임무를 수행하려고 프랑스 방방곡곡에서 여기 모였는지 스스로 물어봅시다. 우리는 단지 명령을 받은 사람입니까, 왕의 관리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복종하고 물러나야겠지요. 그러나우리는 인민이 보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기를 내서 자유롭게 우리의 임무를 수행합시다. (.....)우리는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맹세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 인민의 권리를 되찾아주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인민은 우리에게 헌법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없으면 누가 헌법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니면 누가 헌법을 만들겠습니까? 여러분의 선거인들을 대표할 권리를 그 어떤 힘으로 빼앗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시에예스 신부의 말이 끝나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고 국회는 이미 결의한 내용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수구세력은 어떠한 개혁도 싫어한다. 이 같은 사람은 기득권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개혁세력을 증오하게된다. 개혁도 바라지 않는데 하물며 혁명까지야. 그런 사람은 진정한 반혁명anti-révolution의 성향을 보여준다.  1789년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자신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도저히 참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7월부터 보따리를 싸들고 외국으로 나갔다. 왕의 작은 동생 아르투아 백작이 대표적인 사례다. 엄밀히 말해 이러한 수구세력은 혁명을 증오한다.
그러나 혁명세력이 ‘애국자‘라는 이름을 얻고 반대세력을 억압하는 상태에서 외국으로 가지 못하는 사람은 혁명의 흐름에 억지로 끌려간다.

장 조레스의 말대로 파리 시민이 바스티유 요새와 감옥을 정복했다면 농민은 그 나름의 ‘봉건적 바스티유‘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케케묵은 문서를 뒤져가면서 세금을 걷어가는 영주들의 저택이었다. 모든 농촌 지역이 들고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많은 지역이 무질서를 경험했다. 노르망디의관목숲 지역(캉과 알랑송의 초원지대 서쪽)과 에노, 오트 알자스에서 농민은 성관(군주나 귀족의 별장)과 수도원으로 쳐들어가  문서를 불태우고 영주권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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