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종에게만 세계 헤게모니를 쥐어 주고 다른 인종, 특히 니그로 인종은 백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데 만족하거나 모든 것을 정복하려고 행진하기 전에 죽어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암묵적인 그러나 명료한 현대 철학을 받아들인다. 이 철학은 바로 아프리카 노예 무역과 19세기의 유럽 확장이 낳은 산물이다.(p232)<니그로> 中 


  W. E. B. 듀보이스 (William Edward Burghardt Du Bois, 1868 ~ 1963)는 <니그로 The Negro>에서 흑인은 역사와 문화, 능력이 없다는 20세기 초반 미국사회의 편견이 잘못된 것임을 밝히면서 인종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저자인 듀보이스에 의하면 인종주의 편견의 기원은 제국주의 시대의 노예제도에서 비롯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아프리의 베냉 지역에 존재했던 다호메이(Dahomey) 왕국이다. 


[지도] 19세기 다호메이 왕국(출처 : https://www.britannica.com/place/Dahomey-historical-kingdom-Africa)


 흑인에 반하는 현대인의 이른바 '본능적인' 편견은 무엇이라 말인가? (p139)... 우리는 피부색에 대한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원인을 신체나 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을 현대 니그로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에서 찾아야 한다.(p141) <니그로> 中


  17세기 다호메이왕국의 번영은 노예무역의 활성화와 궤를 같이 한다.  다호메이 왕국은 지리적으로 베냉 협로라는 한계로 인해 국가 발전에 제약을 가지고 있었으나, 같은 시기 서인도 제도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은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1664년까지 후추, 금, 상아가 기니 지역의 주된 무역품으로 다호메이 왕국이 무역에서 소외되었다면, 1672년 이후에는 노예가 새로움 무역품으로 떠오르면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게 된다. 이러한 다호메이 왕국의 노예무역에 대해서는 칼 폴라니(Karl Polanyi, 1908 ~ 1964)의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 Dahomey and the Slave Trade: An Analysis of an Archaic Economy >의 내용을 따라가 보자.

 

 다호메이 사회를 커다란 긴장으로 몰아넣은 역사적 사건은 경제영역에서 벌어졌으며, 또 그 시작은 외부에서 비롯되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번창하기 시작하자 노예무역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이것이 다호메이에 바로 인접한 기니 해안을 강타하였던 것이다. 이 시간이 낳은 충격은 아주 독특하였다.(p61)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 中


 플랜테이션 농장은 엄청난 이윤을 낳아주었고, 서인도제도는 왕실과 최고위 귀족들의 사적 재산이 되었다. 이제 이를 위해 노예를 조달하는 것은 '절대적 필요'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농장에서 거두어들여야 할 작물의 양은 엄청났으며, 이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노예노동이 꼭 필요했다... 다시 말하자면 국제경제에서의 변화가 큰 물결을 일으켰고, 이 물결이 대서양을 건너서 불과 20마일 길이로 펼쳐진 아프리카의 어느 해안 지역에 몰아닥친 것이다.(p63)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 中


 칼 폴라니는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에서 지리적 어려움과 아프리카에 진출하기 시작한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다호메이 왕국이 노예제도를 통해 축적된 부를 활용하는가를 보여준다. 노예무역과 인신공양으로 악명높은 다호메이 왕국에 다소 우호적인 칼 폴라니의 시각에 대해 비판점도 많지만, 이에 대해서는 책의 리뷰로 넘기 여기서는 간략하게 내용만 취하자. 다시 <니그로>로 돌아가서, 듀보이스는 노예확보를 위한 인간사냥이 가족과 국가의 약화라는 참혹한 결과가 아프리카에 주어졌음을 지적한다.


 18세기 초 강력한 다호메이 왕국이 건설되었고, 지독한 전제 국가가 되어 19세기 초에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 비슷한 왕국인 아샨티는 1719년에 정복을 시작해서 노예무역과 함께 발전했다. 이렇듯 서아프리카에서 국가 건설이 도시 경제를 대신하기 시작했지만, 이런 국가는 전쟁을 기반으로 세워졌고 인간 상품을 사고팔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장려했다. 토착 산업은 변화하고 와해되었고 가족의 유대와 정부는 약해졌다.(p154) <니그로> 中


 아프리카 대륙에서 많은 이들이 서인도 제도로 끌려가 사탕수수 농장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은 칼 마르크스(Karl Marx , 1818 ~ 1883)가 <자본론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konomie>에서 설명한 시초축적의 역사적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 서인도로 갈 수 밖에 없다는 모습은 또다른 형태의 인클로저(Enclosure)운동으로도 비춰진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애서 '사탕수수가 사람들을 쫓아낸다' 로.


[그림]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인(출처 : https://www.africanexponent.com/post/10712-the-bitter-history-of-african-slaves-and-sugar-production)

 

 시초축적의 역사에서는, 자본가 계급의 형성에 지렛대로 기능한 모든 변혁들은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것은, 많은 인간이 갑자기 그리고 폭력적으로 그들의 생존수단에서 분리되어 무일푼의 자유롭고 '의지할 곳 없는' 프롤레타리아들로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순간이었다. 농업생산자인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빼앗는 것은 전체 과정의 토대를 이룬다.(p981) <자본론 1-(하)> 中


 <자본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럽 자본주의 발전 중 일정 부분은 아프리카 부의 강제이전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강제이주된 이들은 새로운 가족제도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들은 아프리카 전통의 제도 대신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 1895)가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Der Ursprung der Familie, des Privateigentums und des Staats>에서 설명한 노예제의 산물로서의 '일부다처제'를 강요받는다. 아프리카 대륙의 수탈과 가족제도의 붕괴는 이들을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로 안내한다.  


 일반적으로 아메리카 노예제도가 사회에 끼친 영향 가운데 가장 심각한 상황은 일부다처제의 니그로 가정을 새로운 형태의 일부다처제로 대체한 것이다. 니그로 가정은 이제 보호받지 못하고, 덜 효율적이며, 덜 문명화된 새로운 형태의 일부다처제로 대체되었다.(p187) <니그로> 中

 

 사실상 일부다처제는 명백히 노예제의 산물이었으며, 몇몇 예외적인 지위를 가진 자들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일부다처제는 부자와 귀한 신분의 특권이며 주로 여자 노예의 구입을 통해 충원된다. 인민 대중은 일부일처제의 생활을 한다.(p72)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6 -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 > 中


 이외에도 듀보이스는 <니그로>에서 노예제도로부터 시작된 아프리카와 흑인의 수탈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음을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듀보이스의 담담한 서술은 독자들에게 흑인이 무지한 존재라는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오해인지를 일깨운다.  <니그로>안에 담긴 메세지는 가볍지 않지만, 듀보이스는 무겁게 말하지 않는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하듯 편안하게 읽히는 짧은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아프리카, 빈곤, 인종 문제의 많은 부분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니그로>는 좋은 사회과학 입문서라 생각된다. 


PS. 개인적으로 <니그로>에서 언급된 시초자본 문제와 관련해서, 실비아 페데리치 (Silvia Federici)의 <캘리번과 마녀 Caliban and the Witch>를 떠올리게 된다. 수탈의 대상을 아프리카인이 아닌 여성으로 대치시켜 노예제도 이후의 자본주의 역사를 바라본 것이 <캘리번과 마녀>라 여겨진다. 이는 노동 문제, 인종 문제, 종교 문제, 성 문제 등 많은 문제가 '평등 平等'이라는 주제의 서로 다른  현상(現象 phenomenon)이라는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했던 것처럼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따라서 신체는 노동의 생산을 위한 기계로 전락하지 않게 막아 주던 모든 예방장치에서 ˝해방되었다˝(p272)... 노예제가 폐지된 상황에서도 부르주아의 레파토리에서는 마녀사냥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식민화와 기독교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확장으로 인해 식민화된 사회의 신체에 획실히 이식되어 피식민 공동체 스스로 자신들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박해를 실행하는 상황에 이르렀다.(p341) <캘리번과 마녀> 中


 그들은 오늘날 발전의 맨 앞자리에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뿐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더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이상을 위해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여성 해방, 세계 평화, 민주 정부, 부의 사회화, 인류애를 위하여.(p229) <니그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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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8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보충할 목적으로 조선인 약 70만명과 중국인 약 4만명을 일본 본토와 사할린 등지로 강제연행하여 광산 등지에서 혹사시켰기 때문에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다. 또 일본은 다수의 조선인 여성과 점령지 여성에게 군 관리하의 위안부생활을 강요했는데 그중에는 강제연행되거나 속임수로 끌려온 사람들도 많았다.(p528) <새로 쓴 일본사> 中


 중국인 포로들은 더욱 형편없는 보상을 받았고, 동남아시아로 끌려간 노무자들의 숫자는 추산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위험지역에는 '근로보국대'로 징발된 한국인들이 있었다. 이 끔찍한 이야기에다 '위안부'라는 기묘한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최근에 추가되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소에서 강제로 일했다. 제국군대는 풍기문란을 막고 성병을 줄이기 위해 공개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관리했다. 위안부의 모집은 보통 인신매매 중개인을 통해 이루어졌고, 규슈의 궁핍한 지역에서 가장 많은 여성이 차출되었다. 규정상 강제모집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군인의 수가 늘어나고 전선이 확대되자 정상적인 공급원에만 의존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직업적 매춘부보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지원했거나 강제로 끌려온 여성의 수가 많아졌다.(p972) <현대일본을 찾아서 2> 中 


 일본의 극우주의 역사책들은 과거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침략'을 '진출'로 정당화하고,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맡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러한 역사왜곡 안에는 이들이 저지른 참상은 은폐되고, 이러한 사관(史觀)으로 일본 중고등학교 역사가 집필되는 점은 우려할만한 지점이다. 그렇지만, 강제동원과 정신대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증언은 일본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참상을 역사의 수면 위로 올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역사 안에 포함하는 일본 역사서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일본 내에서 이를 부정하고 담지 않는 역사서가 아직은 훨씬 더 많지만. 

 

 백지에 쓴 문장을 소리 내 읽던 그녀는, 모든 걸 다 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말을 하고, 그리고 죽고 싶다."... "엄마가, 엄마가 가장 갖고 싶어.(p153)' <한 명> 中


 그녀는 울고 싶은데 울음이 안 나온다. 아귀처럼 입을 한껏 벌리고 목을 늘어뜨려도 눈물 한 방울 안 난다. 자매들이 죽었을 때도, 오빠가 죽었을 때도 그녀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니까, 친인척들은 흉을 보았다. 독해서 시집도 안 가고 평생 혼자 살더니만 울지도 않는다고. 그녀는 너무 지독하게 살아서 눈꺼풀을 쥐어뜯어도 눈물이 안 나는가 보다 했다. 평생에 걸쳐서 두고두고 울 걸 소싯적에 다 울어버려서 그런가 보다고.(p36) <한 명> 中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기가 막힌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안고 평생을 살아야했던 피해자들에게 이러한 현실은 2차 가해였으리라.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한 이들이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희(정의기억연대 전신)이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낸 이들의 공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 많은 위안부가 사망했고 살아남은 희생자들은 수치심을 느꼈기 때문에 이 문제는 1990년대 이전까지는 공론화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한국, 중국, 심지어 네덜란드 여성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위안부문제는 국제문제로 비화되었다. 일본정부가 (외양상으로는 비정부기구를 통해) 손해배상과 보상을 위한 기금마련에 나선 것을 보면 희생자들의 불만이 정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p973) <현대일본을 찾아서 2> 中


 최근 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윤미향 이사장과 정의기억연대와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한 의혹은 결국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30년 동안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 한 이들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기다렸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끌려간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 역사에 아픈 역사가 반복되었다면, 정의기억연대가 있어 공론화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공(功)을 생각한다면, 정의기억연대와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노력을 이제는 우리가 할 차례라 여겨진다.

 

 남자들은 걸핏하면 국가입네 민족입네 거창하게 얘기하지. 강제로 끌려가서 당한 우리만 죄인이고. 불문곡직하고 여자는 순결해야 한다는 게 남자들의 생각이야. 우리가 정신대로 끌려갈 때 조선 남자들은 뭘 했는고?(p99)... 왜정 때 위안부로 끌려갔던 조선 여자들이 십 수만 명이래. 위안부로 등록한 할머니 이백 몇 십 명을 뺀 수많은 할머니들은 한을 안고 소리 소문 없이 죽거나 외롭게 살아가것제. 그넘들이 끌어다가 쓰고 싶으면 쓰고 아프고 병들면 처분해 버리고... 정말 골병들었다.(p100) <나비의 노래> 中


PS. 이들이 저지른 회계부정이 있다면 엄중하게 판결해야 할 것이다. 다만, 회계부정이 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가족간 취업특혜가 있었다면 KT 채용비리와 비교하고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과 정도를 따져 형평성있는 판결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이런 판결이 나올 때까지 뒤늦게나마 정의기억연대 정기 후원을 시작한다...



 

 민주주의의 세 번째 차원은 민주적 담론이다. 진정한 집단적 행위는 상호작용을 요구한다... 만약 시민들이 그들이 말하는 좋은 생각들이 주의를 끌 수 있도록 하는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에게 말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진정한 형태의 자기-정부를 제공할 수 없다. 만일 공공의 담론이 검열 때문에 장애를 받는다면, 또는 각각의 편이 다른 편이 말하는 것을 단지 왜곡하거나 묵살하기 위해서 고함을 치거나 비방하는 시합으로 타락한다면 어떤 집단적 자기-정부도 없고, 어떤 종류의 집단적 사업이라는 것도 없으며 오직 수단만 다른 전쟁으로 간주되는 투표만 있게 된다.(p555) <자유주의적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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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0-05-20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의연에 대한 겨울호랑이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5-20 20: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 작은 실수 하나로 정의연의 성과와 노력 전체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많은 이들이 동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