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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이 분석하는 20세기, 그리고 그 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열정적이다. 그 태도는 홉스봄이 선호하는 다른 화제를 꺼내며 개입하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롤링스톤스와 동시대에 살지 않았다면, 그들이 1960년대 중반 지핀 열기에 동참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명예의 전당 제일 위에 인민전선과 스페인 내전이 자리한다. 홉스봄은 스페인 내전을 언급하며, "이 내전이 자유주의자들과 좌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진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합친 성향에 가까웠고, 이는 그의 20세기 분석 전반에 잘 배어있다. 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5> - 홉스봄, 역사 조작에 맞서다(上) - , p32


 

지난달과 이번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기사는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CH, 1917 ~ 2012)의 <극단의 시대 The Age of Extremes: A History of the World, 1914-1991>를 다룬 세르주 알리미(프랑스어판 발행인)의 서문이다. <시대 The Age>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 대한 서문 을 통해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거칠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20세기 마지막을 승리로 끝낸 자본주의의 승리가 사실은 불완전한 승리였다는 홉스봄의 중심에는 '소련'이 자리한다. 홉스봄은 공산주의 국가 '소련'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주장을 펴면서 '소련'의 역할을 강조했다면, 도널드 서순(Donald Sassoon, 1946 ~ )이 <불안한 승리 The Anxious Triumph: A Global History of Capitalism 1860-1914> 속에서 자본주의 승리의 원인을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에서 찾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마침 깊은 인연있는 두 역사가가 '자본주의의 승리와 위기'에 대한 다른 분석을 비교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 되리라 여겨진다. 사실, 제대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서순의 <유럽문화사>와 <사회주의 100년>,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까지 한꺼번에 정리해야겠지만. 한 걸음 나아가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과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 ~ 2019)까지 들어오면 판이 너무 커지겠지만, 충분히 판을 키울 가치가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조만간 순차적으로 정리하기로 하자.


 "소련이 없었다면 서방 세계는 아마 자유주의나 의회 정치 대신 다양한 독재와 파시즘의 아류로 이뤄졌을 것이다. 이는 기이한 20세기가 지닌 역설 중 하나다. 10월 혁명의 결과 중 가장 여파가 오래 간 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 세계를 전복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일어난 10월 혁명이 오히려 적을 구했다는 사실이다. 소련은 전시에도, 종전 후 평화의 시기에도, 상대국에게 공포감을 줌으로써 개혁을 촉구했다." ...  그런데, 정말 자본주의는 끝나가는가? 모든 것이 경쟁과 이윤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시장경제 사회를 전 세계 국민이 지지한다면, "소련식 유토피아의 대척점에 있는 반유토피아 또한 완전한 실패작이었다"라고 결론 내린 홉스봄이 과연 옳은 것일까? 섣불리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다. 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홉스봄, 역사 조작에 맞서다(下) - , p42

 

여기에 더해 이번 호에서는 이탈리아 정치문제가 다뤄졌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으로 대표되는 극우정당의 움직임에 대해 다뤄진 이번 기사에서는 이탈리아 남북문제가 언급된다. 일찍이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 ~ 1937)가 지적한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마피아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때문에 이번달 이탈리아 기사는 그람시의 저작과 기사들을 연결해서 읽으면 좋을 듯 싶다. 물론, 영화 <대부 The Godfather>도 시간이 되면 함께 보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1990년대 초 이후 이탈리아의 정치사는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 건설 시도의 역사다. 이 역사는 실패로 기록된다. 우파를 지지한 사회적 동맹은 시작부터 분열됐다. 한편에서는 이탈리아 북부의 중소기업들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찬성하며 유럽 통합 과정에 동참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주로 중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서민층과 빈곤층이 EU의 조약들이 강요한 긴축정책으로 고통받았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유럽연합과 화해한 이탈리아 극우의 본심은? - , p25


 

모든 것은 통일 이탈리아의 건국과 함께 시작됐다.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탄생하면서 매우 민간한 사안인 '남부 문제'가 대두됐다. 낙후된 남부지역이 통일 이탈리아 내에서 다른 지역보다 뒤처지게 된 것이다.(p29)... 경제와 사회기반시설이 열악한 남이탈리아에서 '지주', 지배계층은 반란과 농민폭동으로 자신들의 권력이 위협당할까 우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지와 지배권 유지를 위해 자연스럽게 여러 무장 결사단체의 연합체인 마피아와 손을 잡았다. 가리발디 장군은 농민들에게 토지분배를 약속했는데, 마피아는 대지주의 행동대장으로 활약하며 토지개혁을 무산시켰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이탈리아 마피아의 존재 이유 - , p30


  더 나아가 경제 민주주의, 정치적 평등에 대해서도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서구 여러나라들은 주35시간에서 나아가 주 28시간 근무를 논의하고 있는 현 시점에, 우리나라는 주52시간 근무를 확대시행이 이르다는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제는 우리 국민들도 국격에 맞는 대우를 받을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노동시간 감축은 노동비용 상승, 생산성 하락, 노동가치 폄하 등 부작용을 동반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 때 겪었던 혼란과 실패 경험은 트라우마와 분열을 남겼다. 그리고 우파와 경연진들은 노동시간 감축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 19팬더믹은, 미흡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줬다.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의 피해를 예방하려면, 최대한 다수가 수혜를 누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 28시간 근무제를 논의하면, 노동의 조직과 분배를 새로운 관점에서 생산하고 생산 의존도를 낮추며 성장우선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덜 일하고, 덜 오염시키기 -, p11


 마지막으로, 최근 이뤄진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간 휴전 협정과 15년간 장기 집권을 끝낸 네타냐후 총리 실각을 보면서, <유대 국가>를 통해 헤르츨(Theodor Herzl, 1860 ~ 1904)이 제안한 탄압받는 유대인들에 의한 사회주의 국가와 구현된 시오니즘 국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당초 헤르츨은 '히브리 노예들'을 위한 평등한 사회를 생각했지만, 그의 구상과는 달리 자본가들은 희생하려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국가이며, 유럽 출신의 아슈케나짐(Aschkenasim) 주도의 불평등 국가가 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시오니즘을 만약 헤르츨이 본다면 무엇이라 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보다 넓을 세계를 보고, 다른 책들을 통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임을 느끼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헤르츨은 동화정책이 해결책이 아닌 위협이며, 유대인을 물리적으로 말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정 러시아에서 일어난,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과 학살이 그 직접적인 사례였다. 유럽 사회에 통합되려는 의지는, 종교와의 분리와 공동체의 와해로 이어질 것이 자명해 보였다. 또한 유럽 통합주의 전략은 반유대주의가 확산해 유대인들이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 따라서 헤르츨은 유대인이 중심이 돼 안전하게 살아갈 정치적 집합체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 즉 유대인 국가의 건설이었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막을 수 없는 좌파 시온주의의 쇠락 - , p98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수십 년에 걸쳐, 세속주의와 유대 노동자 간의 연대라는 원칙으로 건설한 노동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서구 자본주의에 완전히 통합돼 신생 디지털 기술 기업들의 '황금의 땅'이 됐다.(p99)... 이스라엘 정부가 '유대민족'은 하나라고 강조하지만, 다양한 유대인 집단(아슈케나짐, 팔라샤, 미즈라힘, 스파라드, 러시아어권 유대인 등)이 국가의 주요 요직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민족 갈등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막을 수 없는 좌파 시온주의의 쇠락 -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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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6-20 22: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은책 소개와 함께 언제나 겨울호랑이님의 명품페이퍼에 감동합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6-20 22:06   좋아요 5 | URL
에고 아닙니다. 저는 이미 있는 좋은 책들 중 극히 일부만 알고 있고, 아는 것만 페이퍼에 옮긴 걸요. 항상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하루 잘 마무리 하세요! ^^:)

mini74 2021-06-20 22: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단하세요 좋은 책을 소개해 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읽고 고민하셨다는거.*^^* 좋은 책 소개글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6-20 22:25   좋아요 4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저도 이웃분들로부터 배워가는데, 부족하지만 이웃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신다니 다행입니다. mini74님 하루 잘 마무리 하세요! 감사합니다.^^:)

scott 2021-07-07 15: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올려주신 책들 몇권 땡튜 ^.~

겨울호랑이 2021-07-07 16:3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1-07-07 16: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7 16:3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

서니데이 2021-07-07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7 16:3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좋은 하루 되세요! ^^:)

mini74 2021-07-07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되실줄 알았습니다 당근! ㅎㅎ 축하드립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07 16:4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mini74님 좋은 하루 되세요! ^^:)

초딩 2021-07-07 2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1-07-08 05:25   좋아요 1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이하라 2021-07-08 0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08 10:07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항상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모나리자 2021-07-08 1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21-07-08 10:25   좋아요 1 | URL
모나리자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독서괭 2021-07-08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8 12:47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왕망은 또 고구려(高句驪) 병사를 발동하여 흉노를 공격하려는데, 고구려에서 가려고 하지 아니 하니 군(郡, 요서군)에서 억지로 압박하자 모두 도망하여 요새를 나가고 이어서 법을 범하면서 침구(侵寇)하였다. 요서(遼西)의 대윤(大尹)인 전담(田譚)이 이들을 추격하다가 살해되었다. 주군(州郡)에서는 그 허물을 고구려후(高句驪候) 추(騶)에게 돌렸는데, 엄무(嚴尤)가 상주하였다. "맥인(貊人)이 범법하는 것은 추(騶)를 좇은 것이 아니어서 바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마땅히 주군(州郡)으로 하여금 또 그들을 안위하게 하여야 합니다. 지금 그들에게 큰 죄가 두텁게 덮어씌운다면 아마 그들은 끝내 배반할까 걱정이고, 부여(夫餘)족속들에게는 반드시 화합함이 있을 것입니다. 흉노를 아직 이기지 못하였는데 부여(夫餘)와 예맥(濊貊)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는 큰 우환입니다." 왕망이 안위하지 아니하자 예맥(濊貊)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는데, 엄우(嚴尤)에게 조서를 내려 이들을 공격하게 하였다. 엄우가 고구려후 추(騶)를 유인하고, 오자 머리를 베어 장안으로 보냈다. 왕망은 크게 기뻐하며 고구려를 하구려(下句驪)라고 이름을 고쳤다._사마광, <자치통감 37> 中


 아침마다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의 <자치통감 資治通鑑>를 읽는다. 전국시대로부터 오대십국 시대를 편년체로 서술한 <자치통감>. 겨우 왕망(王莽, BC45~AD23)의 신(新)나라 부분을 읽고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는 전체 294권 중에서 37권에 해당한다.)  중국의 역사를 읽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주변국과의 관계도 역사의 일부분이기에 우리나라 역사도 다루어진다. 그리고, 당연히 그 부분을 더 주의 깊게 읽게 된다. 마침 오늘은 왕망이 부하장수를 시켜 흉노(匈奴) 원정을 거부하는 고구려를 침략하는 부분이 서술된다.  그 중에서도 고구려왕이 죽음을 당했다는 부분에 눈이 멎는다. 고구려왕 중 외적에게 죽임을 당한 왕이 고국원왕 외에 또 있었을까. 동천왕 시기 아버지 미천왕의 시체가 중국쪽으로 끌려갔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그런 기억은 언뜻 나지 않아 같은 시기를 다룬 <삼국사기>도 함께 펼쳐본다. 기록에<자치통감>에서 죽임을 당한 고구려 왕은 추(騶)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발음에 따라 '추모(鄒牟)'로 불리는 1대 동명성왕(東明聖王, BC 58~BC 19)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시기적으로는  <삼국사기 三國史記>를 따라  2대 유리명왕(瑠璃明王, BC38~AD18)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여겨진다. 다만, 여기서 문제는 시기가 아니라, 죽음을 당한 인물의 기록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유리왕 31년(서기12) 한(漢)나라의 왕망(王莾)이 우리 군사를 징발하여 호(胡)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려고 하지 않자 왕망이 강제로 보내었더니 모두 새외(塞外)로 도망쳤다. 그래서 법을 어겨 도적이 되었다. 요서(遼西) 대윤(大尹) 전담(田譚)이 추격하였으나 죽임을 당하자 [한나라]주군(州郡)에서는 허물을 우리에게 돌렸다. 엄무(嚴尤)가 아뢰었다. "맥인(貊人)이 법을 어겼으나 마땅히 주군에 명해서 위로하여 안심시켜야 합니다. 지금 함부로 큰 죄를 씌우면 마침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렵습니다. 부여의 무리 중에 반드시 따라 응하는 자들이 있을 것인데, 흉노(匈奴)를 아직 누르지 못한 터에 부여(夫餘)와 예맥(濊貊)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것은 큰 걱정거리입니다." 왕망이 듣지 않고 엄우에게 명하여 공격하였다. 엄우가 우리 장수 연비(延丕)를 유인하여 머리를 베어서 수도로 보냈다. 왕망이 기뻐하고 우리 왕을 하구려후(下句驪侯)라고 고쳐 부르고, 천하에 포고하여 모두 알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한나라 변경 지방을 더욱 심하게 침범하였다.... 37년(서기18) 겨울 10월에 왕이 두곡의 별궁에서 죽었다. 왕을 두곡의 동쪽 들판에서 장사지내고 왕호를 유리명왕이라고 하였다._김부식,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p323


  전반적인 상황은 비슷하지만, <자치통감>에서 고구려에서 죽임을 당한 이는 왕으로 , <삼국사기>에서는 부하장수로 기록되어 있어 이들의 기록이 서로 충돌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기록을 참고해야 하겠지만, 우리 고대사의 경우 많은 기록이 중국 쪽 자료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중국쪽의 기록이 정설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록의 양이 워낙 차이가 나니 이러한 현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 기록의 객관성이다.  중국의 기록들이 모두 객관적으로 남아있다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중국의 기록 역시 공자(孔子, BC551~BC479)의 <춘추 春秋>이래 중국/유교 중심의 포폄(褒貶)사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자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자료의 많은 부분을 중국의 <자치통감>에 의존한 <삼국사기>에서도 이 부분의 기록은 다르게 나타난 것을 보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라 여겨진다.


 두 개의 내용을 보면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몇 군데 글자를 바꾸거나 추가했을 뿐이다.... 이것들을 검토하여 보건대 의도적으로 고쳤다고 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필사과정에서 당시에 일반적으로 쓰는 용어로 적은 것이거나,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자치통감>과 <삼국사기>가 그 이후 내려오면서 착간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부분도 <신,구당서>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쓰면서 필법(筆法)에 대한 철저한 고려를 하지 않은 것 같고, <자치통감>에서 필법이 엄정하여 글자 하나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신주하게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라 하겠다. 따라서 김수식은 <자치통감>을 자료로 본 것이고, 필법은 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만큼 역사학 이론에서 아직은 <자치통감>의 수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_권중달, <자치통감전> 中


 한 예(例)지만, 우리나라 고대사의 경전인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삼국사기>와 다른 중국 사서들 간의 서로 충돌하는 파편의 기억들은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역사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를 넘어서 지역적으로 떨어진 ,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시간의 흐름을 오늘날 세계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우리가 역사를 바라봐야 하는 관점이라면 우리는 과거로부터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물음을 안고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역사>을 시작한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면서 '역사'는 이미 경험된 것과 아직도 경험되고 있는 모든 것을 규율하는 개념 ein regulativer Begriff이 되었다. 그 이후로 이 개념은 단순항 이야기나 역사학의 영역을 훨씬 초월한다.(p12)... '즉자와 대자로서의 역사 Geschichte an und fur sich' 개념 속에는 예전부터 수많은 의미의 결이 유입되었다. 근대적 역사 개념은 모든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예전의 의미 영역들 가운데 많은 부분을 자기 안에서 결합하였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13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면서 ‘역사‘는 이미 경험된 것과 아직도 경험되고 있는 모든 것을 규율하는 개념 ein regulativer Begriff이 되었다. 그 이후로 이 개념은 단순항 이야기나 역사학의 영역을 훨씬 초월한다.(p12)... ‘즉자와 대자로서의 역사 Geschichte an und fur sich‘ 개념 속에는 예전부터 수많은 의미의 결이 유입되었다. 근대적 역사 개념은 모든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예전의 의미 영역들 가운데 많은 부분을 자기 안에서 결합하였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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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1-06-10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아있는 사기에 불신만 가졌었는데, 당대의 중국 역사관을 함께 보는 것도 방법이 되겠네요. 양적으로 방대하나... 객관성이 문제. 그 역시 공감합니다.
짧게 짧게 올려주신 덕에 재밌게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1-06-11 07:03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역사‘는 과거의 사건 중에서 일부에 현재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학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객관적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면에서 역사가의 방대한 해석보다는 짧은 사실의 나열이 후대 역사가들에게는 오히려 도움되는 면이 있을 듯 합니다. 갱지님, 감사합니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기 구독으로 받은 <비판 인문학 100년사>. 1900년 니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20세기를 지나 2000년 이후 21세기 초반까지 인문 사상사의 주요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서구 근대화의 꽃이 활짝 피었던 시기이자 동시에 극심한 정치/경제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였던 20세기. <비판 인문학 100년사>는 각 시대를 풍미한 사상가들의 주요 사상과 저서들을 훑어 준다는 면에서 장점을 갖는다.


 이미 책을 읽었던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과 의견 등에 더해 책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의의를 알려준다는 점이 책이 가진 장점이라 여겨진다. 지도에서 위도와 경도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반면, 이는 해당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하는 독자들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약 250페이지에 20세기의 주요 사상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빠듯하기에, 깊이 있는 사상 설명은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때문에, 인문학 입문자들에게는 입문 안내서의 의의를 갖지 않을까 여겨진다. 


 책에는 어떻게 사상들이 소개되어 있을까. 마침 얼마 전 읽은 <수용소 군도>에 대한 내용이 책에 담겨 있어 해당 내용을 옮겨본다. 

 

 1974년 프랑스에서는 러시아 체제에 저항했던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솔제니친은 소비에트연방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 책은 서구세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프랑스에서 굉장히 큰 방향을 일으킨 것은 몇십 년 전부터 대다수 프랑스 지식인층이 마르크스주의에 동조해왔으며, 역사적으로 구현된 형태인 소비에트연방을 어느 정도 인정해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이 책의 성공은 정치참여 및 사상 면에서, 즉 전체주의라는 정치체제와 마르크스주의라는 사회학 이론에 대한 급격한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전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현상은 서로 연결됐지만, 그 본질은 달랐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부르주아들의 위선으로 치부됐던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주제가 제일선으로 되돌아왔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189


 위의 내용처럼 서술되기에 책을 읽은 이들은 책의 영향과 역사적 의의에 대해 알게 되어 깊이를 더할 수 있겠지만, 읽지 않은 이들은 책을 통해 내용적으로는 크게 얻는 바가 없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대신 좋은 책 안내서로서 기능하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로 <비평 인문학 100년사>는 독자별로 다른 느낌을 줄 책이라 생각된다.


 소련 체제의 베일 속 진실이 밝혀지면서 지식인들의 공산당 편향은 점차 종말을 맞이한다. 1956년에 발표된 흐루쇼프의 '20세기 소련 공산당 대회' 보고서는 과거에는 파시즘과 제국주의 간의 갈등이라고 회피했던 사건들에 비판적 시각을 부여하면서 스탈린의 전횡을 만천하에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6년 사르트르는 프랑스 공산당에 더는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51년에 탈당한 에드가 모랭은 1959년에 <자기비판>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같은 지식인들의 공산당 외면은 프라하의 봄 이후 솔제니친 효과로 더욱 심화됐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120


  개인적으로 <비평 인문학 100년사>를 통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사상가가 있다면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1952 ~ )다. <역사의 종언>을 통해 자본주의와 미국 민주주의의 최종 승리를 선언한 것으로 알고 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최근에는 종래의 입장을 번복하고 미국의 쇠퇴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마치 전기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이 다르듯, 후쿠야마의 사상도 달라졌기에 그의 최근 저서를 담아둔다.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보고, "역사는 종언했다"고 말했다.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1992)>. 그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에 승리하고 인류사회의 궁극적인 체제로서 정착하는 최후의 이데올로기라고 단정했다. 1990년대 이후 세계는 빠른 속도로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어 갔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223


 심지어 냉전 붕괴 후, "역사가 미국식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승리로 귀결된다"고 주장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마저 이번엔 중국을 편들고 있다. 그는 2011년과 2014년 잇따라 펴낸 <정치 질서의 기원 The Origins of Political Order>과 <정치질서와 정치쇠퇴 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라는 두 권의 책에서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밝힌다. 일찍이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강대국의 흥망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에서 1980년대 미국의 쇠퇴 대신 1990년대 일본의 부상을 예상했지만, IT혁명으로 미국의 쇠퇴가 연기되면서 일본의 자리를 중국이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 정치 질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는 국가와 법치, 민주 책임제다. 이상적인 경우는 이 삼자가 평형을 이룰 때다. 그리고 정치질서 건설에서 우선순위는 강력한 정부를 구성하는 게 첫 번째고 이어 법치, 그리고 마지막이 민주 책임제다. 법치와 민주 책임제가 정부 권력을 견제헤야 하지만 국가각 능력을 상실하면 이는 재앙이다. 시리아/이라크에서처럼 사회는 대혼란에 빠지고 만다. 중국의 성공은 강한 정부 구축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반면 정부 권력이 약화된 미국은 현재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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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my 2021-02-26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후에 자신의 이론을 철회하는 솔직함도 보여 주었지요.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그 점은 대단한거 같아요. 그건 비트겐슈타인도 마찬가지고요. 언급하신 책 <비판 인문학 100년사> 목차를 보니 흥미롭네요.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2-26 13:02   좋아요 0 | URL
자신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알려준 주장이나 책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런 면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 비트겐슈타인 모두 대단한 석학이라 생각됩니다. noomy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

scott 2021-03-05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오늘 태어난 개굴군 🐸 놓고 가여 ㅋㅋ

겨울호랑이 2021-03-05 21: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코로나19로 예년같이 않은 요즘이라 이번 해에는 경칩이 더 반갑습니다.^^:)
 

농경이 일으킨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농경을 통해  (수렵·채집에 비해 훨씬 많은 노력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훨씬 많은 식량을, 즉 농부를 비롯해 그의 가까운 가족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을 충분히 생산해 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잉여분의 식량이 이후 일어나는 그 모든 사회적·정치적 변화의 토대였다. 그 덕에 일부는 농사를 짓지 않고도 생계를 부양받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여기서 핵심 질문은 농부가 가지고 있던 그 잉여분을 어떤 방식으로 누가 가져갔는가 하는 점이다._클라이브 폰팅,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 p128

굳이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류의 역사가 진보해오지 않았음을, 그리고 리프킨의 「엔트로피」가 주장하는 바처럼 우리의 기술은 발전되었다기보다 ‘차선‘을 이용하기 위해 변용되었음을 인정한다면, ‘신석기 혁명‘을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수렵 경제에 비해 필요노동량은 증대된 상황에서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해 생겨난 형이상학적 설명이 종교,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생겨난 이래 오늘날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 인류는 우리가 길들인 가축과 곡물들의 존속을 위해 이들에게 이용당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쉽게 떨치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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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9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9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 1500년까지 그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류의 거주지는 분립되어 있었고, 각각의 지역은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었으며 孤立과 분립이 交流와 同化에 우위하고 있었던 시기이다. 지역 문명은 合體되는 일 없이 공존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것은 역사 기술에서 꼭 반영되어야만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역사 기술자는 동시에 일어나는 6개의 일련의 사건을 기록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나는 요술사와 같이 여러 개의 공을 동시에 공중에 띄우는 재주를  배웠으며  각각의 역사의 공을 차례로 띄워서는 다시 차례로 받아 다시 띄우는  재주를  부렸다.  나는  각각의  특정  지역을  취급함에 있어서 그 연속성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면서 세계 전체의 역사를 거의 연대순에 맞추어 제시해 갈 수가 있었다. 서술이라는 역사제시 형식과 분석 및 비교라는 역사제시 형식은 제각기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서술의 형식으로 인류사의  포괄적  조감도를  제시하는 것이 본서에서 내가 의도하고 있는 목적이었다.
1974年 아놀드 J. 토인비 _ 아놀드 J. 토인비,「세계사 : 인류와 어머니되는 지구」p7, 머리말

Arnold J. Toynbee, CH(1889 ~ 1975)의 책 중 일반에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은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접한 토인비의 책은 「세계사 : 인류와 어머니되는 지구」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서점에 꽂혀있던 두꺼운 책에서 중학생이었던 나는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지만 어려워 보이는 책에 몇 번을 돌아서야 했다. 그러다 결국 부모님을 졸라 생일 선물로 겨우 이 책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중학생이 이 책을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결국 중도에서 포기하고 서가 한구석에 책을 놓아두고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글과 한자가 함께 씌여져 있었기에,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옥편으로 한자를 찾다가 그만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언젠가는 읽겠다는 다짐을 하고 아쉬움과 함께 책을 덮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이번 추석 연휴. 본가에서 먼지쌓인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난날 중학생이었던 학생은 이제 아빠가 되어 지난날 못다 이룬 꿈을 겨우 이룰 수 있었다... 늦었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토인비의 「세계사」에 대한 상세 내용은 별도의 리뷰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하고,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 책의 의의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도럭 하자. 머리말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지구라는 환경 안에서 같은 시기를 살아간 문명의 서술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반면, 「역사의 연구」는 자연과 인간의 도전과 응전을 주제로 서로 다른 문명들의 생존과 멸망을 다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자연 안에서의 공존과 자연과의 대립.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중국 고대의 보검 ‘간장‘과 ‘막야‘처럼 한 쌍이 되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토인비가 바라본 세계 문명사의 서술과 비교는 리뷰로 미루고, 약속인증 페이퍼는 이만 줄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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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0-05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학생 시절 저 한자를 옥편을 찾아가며 읽기를 시도한 흔적이 감동입니다. 그 때부터 학구적이셨군요.

겨울호랑이 2020-10-06 00:05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수준에 맞는 책을 읽어야하는데, 욕심이 너무 과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면이 많습니다만... 당시에 책을 읽지 못해서 억울해 했던 경험 덕분에 배경지식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작은 성과라 여겨집니다.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

나와같다면 2020-10-08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0년 어린 시절의 꿈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루신 거 아닐까요?

꿈을 이루어내신 것도 대단하신데
저는 그보다 그 꿈을 간직하신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페이퍼 기다리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10-08 05:37   좋아요 1 | URL
^^:) 오래된 숙제를 겨우 끝냈네요. 늦은 감이 있지만, 더 늦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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