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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망은 또 고구려(高句驪) 병사를 발동하여 흉노를 공격하려는데, 고구려에서 가려고 하지 아니 하니 군(郡, 요서군)에서 억지로 압박하자 모두 도망하여 요새를 나가고 이어서 법을 범하면서 침구(侵寇)하였다. 요서(遼西)의 대윤(大尹)인 전담(田譚)이 이들을 추격하다가 살해되었다. 주군(州郡)에서는 그 허물을 고구려후(高句驪候) 추(騶)에게 돌렸는데, 엄무(嚴尤)가 상주하였다. "맥인(貊人)이 범법하는 것은 추(騶)를 좇은 것이 아니어서 바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마땅히 주군(州郡)으로 하여금 또 그들을 안위하게 하여야 합니다. 지금 그들에게 큰 죄가 두텁게 덮어씌운다면 아마 그들은 끝내 배반할까 걱정이고, 부여(夫餘)족속들에게는 반드시 화합함이 있을 것입니다. 흉노를 아직 이기지 못하였는데 부여(夫餘)와 예맥(濊貊)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는 큰 우환입니다." 왕망이 안위하지 아니하자 예맥(濊貊)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는데, 엄우(嚴尤)에게 조서를 내려 이들을 공격하게 하였다. 엄우가 고구려후 추(騶)를 유인하고, 오자 머리를 베어 장안으로 보냈다. 왕망은 크게 기뻐하며 고구려를 하구려(下句驪)라고 이름을 고쳤다._사마광, <자치통감 37> 中


 아침마다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의 <자치통감 資治通鑑>를 읽는다. 전국시대로부터 오대십국 시대를 편년체로 서술한 <자치통감>. 겨우 왕망(王莽, BC45~AD23)의 신(新)나라 부분을 읽고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는 전체 294권 중에서 37권에 해당한다.)  중국의 역사를 읽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주변국과의 관계도 역사의 일부분이기에 우리나라 역사도 다루어진다. 그리고, 당연히 그 부분을 더 주의 깊게 읽게 된다. 마침 오늘은 왕망이 부하장수를 시켜 흉노(匈奴) 원정을 거부하는 고구려를 침략하는 부분이 서술된다.  그 중에서도 고구려왕이 죽음을 당했다는 부분에 눈이 멎는다. 고구려왕 중 외적에게 죽임을 당한 왕이 고국원왕 외에 또 있었을까. 동천왕 시기 아버지 미천왕의 시체가 중국쪽으로 끌려갔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그런 기억은 언뜻 나지 않아 같은 시기를 다룬 <삼국사기>도 함께 펼쳐본다. 기록에<자치통감>에서 죽임을 당한 고구려 왕은 추(騶)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발음에 따라 '추모(鄒牟)'로 불리는 1대 동명성왕(東明聖王, BC 58~BC 19)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시기적으로는  <삼국사기 三國史記>를 따라  2대 유리명왕(瑠璃明王, BC38~AD18)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여겨진다. 다만, 여기서 문제는 시기가 아니라, 죽음을 당한 인물의 기록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유리왕 31년(서기12) 한(漢)나라의 왕망(王莾)이 우리 군사를 징발하여 호(胡)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려고 하지 않자 왕망이 강제로 보내었더니 모두 새외(塞外)로 도망쳤다. 그래서 법을 어겨 도적이 되었다. 요서(遼西) 대윤(大尹) 전담(田譚)이 추격하였으나 죽임을 당하자 [한나라]주군(州郡)에서는 허물을 우리에게 돌렸다. 엄무(嚴尤)가 아뢰었다. "맥인(貊人)이 법을 어겼으나 마땅히 주군에 명해서 위로하여 안심시켜야 합니다. 지금 함부로 큰 죄를 씌우면 마침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렵습니다. 부여의 무리 중에 반드시 따라 응하는 자들이 있을 것인데, 흉노(匈奴)를 아직 누르지 못한 터에 부여(夫餘)와 예맥(濊貊)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것은 큰 걱정거리입니다." 왕망이 듣지 않고 엄우에게 명하여 공격하였다. 엄우가 우리 장수 연비(延丕)를 유인하여 머리를 베어서 수도로 보냈다. 왕망이 기뻐하고 우리 왕을 하구려후(下句驪侯)라고 고쳐 부르고, 천하에 포고하여 모두 알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한나라 변경 지방을 더욱 심하게 침범하였다.... 37년(서기18) 겨울 10월에 왕이 두곡의 별궁에서 죽었다. 왕을 두곡의 동쪽 들판에서 장사지내고 왕호를 유리명왕이라고 하였다._김부식,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p323


  전반적인 상황은 비슷하지만, <자치통감>에서 고구려에서 죽임을 당한 이는 왕으로 , <삼국사기>에서는 부하장수로 기록되어 있어 이들의 기록이 서로 충돌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기록을 참고해야 하겠지만, 우리 고대사의 경우 많은 기록이 중국 쪽 자료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중국쪽의 기록이 정설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록의 양이 워낙 차이가 나니 이러한 현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 기록의 객관성이다.  중국의 기록들이 모두 객관적으로 남아있다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중국의 기록 역시 공자(孔子, BC551~BC479)의 <춘추 春秋>이래 중국/유교 중심의 포폄(褒貶)사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자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자료의 많은 부분을 중국의 <자치통감>에 의존한 <삼국사기>에서도 이 부분의 기록은 다르게 나타난 것을 보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라 여겨진다.


 두 개의 내용을 보면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몇 군데 글자를 바꾸거나 추가했을 뿐이다.... 이것들을 검토하여 보건대 의도적으로 고쳤다고 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필사과정에서 당시에 일반적으로 쓰는 용어로 적은 것이거나,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자치통감>과 <삼국사기>가 그 이후 내려오면서 착간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부분도 <신,구당서>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쓰면서 필법(筆法)에 대한 철저한 고려를 하지 않은 것 같고, <자치통감>에서 필법이 엄정하여 글자 하나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신주하게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라 하겠다. 따라서 김수식은 <자치통감>을 자료로 본 것이고, 필법은 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만큼 역사학 이론에서 아직은 <자치통감>의 수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_권중달, <자치통감전> 中


 한 예(例)지만, 우리나라 고대사의 경전인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삼국사기>와 다른 중국 사서들 간의 서로 충돌하는 파편의 기억들은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역사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를 넘어서 지역적으로 떨어진 ,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시간의 흐름을 오늘날 세계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우리가 역사를 바라봐야 하는 관점이라면 우리는 과거로부터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물음을 안고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역사>을 시작한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면서 '역사'는 이미 경험된 것과 아직도 경험되고 있는 모든 것을 규율하는 개념 ein regulativer Begriff이 되었다. 그 이후로 이 개념은 단순항 이야기나 역사학의 영역을 훨씬 초월한다.(p12)... '즉자와 대자로서의 역사 Geschichte an und fur sich' 개념 속에는 예전부터 수많은 의미의 결이 유입되었다. 근대적 역사 개념은 모든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예전의 의미 영역들 가운데 많은 부분을 자기 안에서 결합하였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13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면서 ‘역사‘는 이미 경험된 것과 아직도 경험되고 있는 모든 것을 규율하는 개념 ein regulativer Begriff이 되었다. 그 이후로 이 개념은 단순항 이야기나 역사학의 영역을 훨씬 초월한다.(p12)... ‘즉자와 대자로서의 역사 Geschichte an und fur sich‘ 개념 속에는 예전부터 수많은 의미의 결이 유입되었다. 근대적 역사 개념은 모든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예전의 의미 영역들 가운데 많은 부분을 자기 안에서 결합하였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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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기 구독으로 받은 <비판 인문학 100년사>. 1900년 니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20세기를 지나 2000년 이후 21세기 초반까지 인문 사상사의 주요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서구 근대화의 꽃이 활짝 피었던 시기이자 동시에 극심한 정치/경제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였던 20세기. <비판 인문학 100년사>는 각 시대를 풍미한 사상가들의 주요 사상과 저서들을 훑어 준다는 면에서 장점을 갖는다.


 이미 책을 읽었던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과 의견 등에 더해 책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의의를 알려준다는 점이 책이 가진 장점이라 여겨진다. 지도에서 위도와 경도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반면, 이는 해당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하는 독자들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약 250페이지에 20세기의 주요 사상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빠듯하기에, 깊이 있는 사상 설명은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때문에, 인문학 입문자들에게는 입문 안내서의 의의를 갖지 않을까 여겨진다. 


 책에는 어떻게 사상들이 소개되어 있을까. 마침 얼마 전 읽은 <수용소 군도>에 대한 내용이 책에 담겨 있어 해당 내용을 옮겨본다. 

 

 1974년 프랑스에서는 러시아 체제에 저항했던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솔제니친은 소비에트연방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 책은 서구세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프랑스에서 굉장히 큰 방향을 일으킨 것은 몇십 년 전부터 대다수 프랑스 지식인층이 마르크스주의에 동조해왔으며, 역사적으로 구현된 형태인 소비에트연방을 어느 정도 인정해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이 책의 성공은 정치참여 및 사상 면에서, 즉 전체주의라는 정치체제와 마르크스주의라는 사회학 이론에 대한 급격한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전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현상은 서로 연결됐지만, 그 본질은 달랐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부르주아들의 위선으로 치부됐던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주제가 제일선으로 되돌아왔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189


 위의 내용처럼 서술되기에 책을 읽은 이들은 책의 영향과 역사적 의의에 대해 알게 되어 깊이를 더할 수 있겠지만, 읽지 않은 이들은 책을 통해 내용적으로는 크게 얻는 바가 없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대신 좋은 책 안내서로서 기능하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로 <비평 인문학 100년사>는 독자별로 다른 느낌을 줄 책이라 생각된다.


 소련 체제의 베일 속 진실이 밝혀지면서 지식인들의 공산당 편향은 점차 종말을 맞이한다. 1956년에 발표된 흐루쇼프의 '20세기 소련 공산당 대회' 보고서는 과거에는 파시즘과 제국주의 간의 갈등이라고 회피했던 사건들에 비판적 시각을 부여하면서 스탈린의 전횡을 만천하에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6년 사르트르는 프랑스 공산당에 더는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51년에 탈당한 에드가 모랭은 1959년에 <자기비판>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같은 지식인들의 공산당 외면은 프라하의 봄 이후 솔제니친 효과로 더욱 심화됐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120


  개인적으로 <비평 인문학 100년사>를 통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사상가가 있다면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1952 ~ )다. <역사의 종언>을 통해 자본주의와 미국 민주주의의 최종 승리를 선언한 것으로 알고 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최근에는 종래의 입장을 번복하고 미국의 쇠퇴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마치 전기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이 다르듯, 후쿠야마의 사상도 달라졌기에 그의 최근 저서를 담아둔다.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보고, "역사는 종언했다"고 말했다.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1992)>. 그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에 승리하고 인류사회의 궁극적인 체제로서 정착하는 최후의 이데올로기라고 단정했다. 1990년대 이후 세계는 빠른 속도로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어 갔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223


 심지어 냉전 붕괴 후, "역사가 미국식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승리로 귀결된다"고 주장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마저 이번엔 중국을 편들고 있다. 그는 2011년과 2014년 잇따라 펴낸 <정치 질서의 기원 The Origins of Political Order>과 <정치질서와 정치쇠퇴 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라는 두 권의 책에서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밝힌다. 일찍이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강대국의 흥망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에서 1980년대 미국의 쇠퇴 대신 1990년대 일본의 부상을 예상했지만, IT혁명으로 미국의 쇠퇴가 연기되면서 일본의 자리를 중국이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 정치 질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는 국가와 법치, 민주 책임제다. 이상적인 경우는 이 삼자가 평형을 이룰 때다. 그리고 정치질서 건설에서 우선순위는 강력한 정부를 구성하는 게 첫 번째고 이어 법치, 그리고 마지막이 민주 책임제다. 법치와 민주 책임제가 정부 권력을 견제헤야 하지만 국가각 능력을 상실하면 이는 재앙이다. 시리아/이라크에서처럼 사회는 대혼란에 빠지고 만다. 중국의 성공은 강한 정부 구축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반면 정부 권력이 약화된 미국은 현재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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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my 2021-02-26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후에 자신의 이론을 철회하는 솔직함도 보여 주었지요.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그 점은 대단한거 같아요. 그건 비트겐슈타인도 마찬가지고요. 언급하신 책 <비판 인문학 100년사> 목차를 보니 흥미롭네요.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2-26 13:02   좋아요 0 | URL
자신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알려준 주장이나 책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런 면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 비트겐슈타인 모두 대단한 석학이라 생각됩니다. noomy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

scott 2021-03-05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오늘 태어난 개굴군 🐸 놓고 가여 ㅋㅋ

겨울호랑이 2021-03-05 21: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코로나19로 예년같이 않은 요즘이라 이번 해에는 경칩이 더 반갑습니다.^^:)
 

농경이 일으킨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농경을 통해  (수렵·채집에 비해 훨씬 많은 노력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훨씬 많은 식량을, 즉 농부를 비롯해 그의 가까운 가족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을 충분히 생산해 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잉여분의 식량이 이후 일어나는 그 모든 사회적·정치적 변화의 토대였다. 그 덕에 일부는 농사를 짓지 않고도 생계를 부양받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여기서 핵심 질문은 농부가 가지고 있던 그 잉여분을 어떤 방식으로 누가 가져갔는가 하는 점이다._클라이브 폰팅,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 p128

굳이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류의 역사가 진보해오지 않았음을, 그리고 리프킨의 「엔트로피」가 주장하는 바처럼 우리의 기술은 발전되었다기보다 ‘차선‘을 이용하기 위해 변용되었음을 인정한다면, ‘신석기 혁명‘을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수렵 경제에 비해 필요노동량은 증대된 상황에서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해 생겨난 형이상학적 설명이 종교,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생겨난 이래 오늘날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 인류는 우리가 길들인 가축과 곡물들의 존속을 위해 이들에게 이용당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쉽게 떨치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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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9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9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 1500년까지 그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류의 거주지는 분립되어 있었고, 각각의 지역은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었으며 孤立과 분립이 交流와 同化에 우위하고 있었던 시기이다. 지역 문명은 合體되는 일 없이 공존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것은 역사 기술에서 꼭 반영되어야만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역사 기술자는 동시에 일어나는 6개의 일련의 사건을 기록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나는 요술사와 같이 여러 개의 공을 동시에 공중에 띄우는 재주를  배웠으며  각각의 역사의 공을 차례로 띄워서는 다시 차례로 받아 다시 띄우는  재주를  부렸다.  나는  각각의  특정  지역을  취급함에 있어서 그 연속성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면서 세계 전체의 역사를 거의 연대순에 맞추어 제시해 갈 수가 있었다. 서술이라는 역사제시 형식과 분석 및 비교라는 역사제시 형식은 제각기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서술의 형식으로 인류사의  포괄적  조감도를  제시하는 것이 본서에서 내가 의도하고 있는 목적이었다.
1974年 아놀드 J. 토인비 _ 아놀드 J. 토인비,「세계사 : 인류와 어머니되는 지구」p7, 머리말

Arnold J. Toynbee, CH(1889 ~ 1975)의 책 중 일반에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은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접한 토인비의 책은 「세계사 : 인류와 어머니되는 지구」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서점에 꽂혀있던 두꺼운 책에서 중학생이었던 나는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지만 어려워 보이는 책에 몇 번을 돌아서야 했다. 그러다 결국 부모님을 졸라 생일 선물로 겨우 이 책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중학생이 이 책을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결국 중도에서 포기하고 서가 한구석에 책을 놓아두고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글과 한자가 함께 씌여져 있었기에,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옥편으로 한자를 찾다가 그만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언젠가는 읽겠다는 다짐을 하고 아쉬움과 함께 책을 덮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이번 추석 연휴. 본가에서 먼지쌓인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난날 중학생이었던 학생은 이제 아빠가 되어 지난날 못다 이룬 꿈을 겨우 이룰 수 있었다... 늦었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토인비의 「세계사」에 대한 상세 내용은 별도의 리뷰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하고,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 책의 의의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도럭 하자. 머리말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지구라는 환경 안에서 같은 시기를 살아간 문명의 서술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반면, 「역사의 연구」는 자연과 인간의 도전과 응전을 주제로 서로 다른 문명들의 생존과 멸망을 다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자연 안에서의 공존과 자연과의 대립.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중국 고대의 보검 ‘간장‘과 ‘막야‘처럼 한 쌍이 되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토인비가 바라본 세계 문명사의 서술과 비교는 리뷰로 미루고, 약속인증 페이퍼는 이만 줄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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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0-05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학생 시절 저 한자를 옥편을 찾아가며 읽기를 시도한 흔적이 감동입니다. 그 때부터 학구적이셨군요.

겨울호랑이 2020-10-06 00:05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수준에 맞는 책을 읽어야하는데, 욕심이 너무 과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면이 많습니다만... 당시에 책을 읽지 못해서 억울해 했던 경험 덕분에 배경지식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작은 성과라 여겨집니다.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

나와같다면 2020-10-08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0년 어린 시절의 꿈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루신 거 아닐까요?

꿈을 이루어내신 것도 대단하신데
저는 그보다 그 꿈을 간직하신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페이퍼 기다리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10-08 05:37   좋아요 1 | URL
^^:) 오래된 숙제를 겨우 끝냈네요. 늦은 감이 있지만, 더 늦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지음, 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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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기술은 사람들의 협동 형태를 바꾸었다. 예컨대, 쟁기를 사용하면서 성별 분업이 강화됐다. 쟁기를 사용하는 노동은 임신했거나 아이를 기르는 여성에게는 벅찬 중노동이었기 때문이다. 상설적인 관개 시설을 건축하고 보수하려면 수십 가구나 수백 가구의 협동이 필요했다. 이것은 직접 노동하는 사람과 노동을 감독하는 사람의 분업을 부추겼다. 먹을 것을 저장하게 되면서 저장한 음식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잉여가 생겨나자 처음으로 일부 사람들이 농사에서 해방돼 수공업, 전쟁 준비, 아니면 한 지역의 생산물을 다른 지역의 생산물과 교환하는 일 등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p48)... 잉여를 창출한 생산방식의 도입과 계급 분화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매우 비옥한 토양이 있는 지역들에서 출현한 최초의 농경 사회는 계급 분화를 수반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경 사회가 확대되면서 이들을 훨씬 더 열악한 조건에 처하게 됐고, 그런 상황에서 생존하려면 사회 관계를 재편해야 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56


 크리스 하먼(Chris Harman)의 <민중의 세계사 A People's Story of the World>는 지배계층 중심의 정치, 경제사라는 기존의 관점 대신 인류의 다수를 차지하지만 주인공은 되지 못했던 이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 다소 생소한 관점에 선 저자는 책에서 신석기 혁명과 도시 혁명의 산물인 문명(文明)의 어두운 측면에 집중한다. 이 어두운 측면으로부터 모든 문제는 시작된다. 


 계급 분화, 상근 관료와 무장 집단에 기반을 둔 영구적 국가 기구의 확립, 여성의 종속 등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요소들 대부분은 여전히 출현하지 않았다. 그런 요소들은 고든 차일드가 '도시혁명'이라고 부른 변화, 즉 사람들의 생계방식에 일어난 두 번째 중대한 변화가 '신석기 혁명'에 바탕을 두고 일어난 다음에 출현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45


 저자는 수렵 - 채집 문화에서 농경 문화로의 이행이 반드시 좋은 선택만은 아니었음을 말한다. 농경 사회로 인해 사회는 안정화될 수 있었지만, 잉여 산출물로 인해 빚어지는 부작용은 다른 종류의 불안을 가져왔고, 이는 강력한 권력 기관이 출현의 배경이 된다. 강력한 권력 기관은 소수의 지배계급과 다수의 피지배계급의 분화를 가져왔으며, 민중은 피지배계급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민중의 세계사>에서 고대와 중세에 걸쳐 민중들의 경제 기여에 비해 자신의 권익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빵과 서커스 제공에 만족해야 했던 고대 로마 시대는 그렇다 하더라도, 중세 후반에 나타난 농민들의 적극적인 반항이 사회 변혁 움직임으로 이어지지 못한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제국은 안정을 찾았을지 모르지만 사회의 밑바탕에 있는 주요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지배 계급과 지배 계급의 문명은 도시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지만 경제는 압도적으로 농촌에 기반을 두었다. "경제에서 무역과 제조업은 매우 한정된 구실만 했다... 기본 산업은 농업이었고, 제국 주민의 압도 다수는 농민이었으며, 상층 계급의 부는 주로 지대에서 나왔다." 농업 생산에서 나온 수익은 무역과 공업의 20배에 달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125


 (유럽 봉건 사회에서) 농민 봉기는 사회를 뒤흔들었지만 농민은 문맹인데다가 시골 곳곳에 흩어져서 각자의 촌락과 토지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현실적인 사회 재편 강령을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아직 경제가 충분하게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에서든 농촌에서든 혼란스럽게나마 그런 강령을 제시할 수 있는 계급은 아직 형성되지 못했다. 언젠가는 그런 계급으로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은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은 유망한 씨앗이었지만 사회 전체를 파괴하고 있던 위기를 끝낼 수 있는 계급은 아직 아니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213


 그것은 변혁의 주체가 될 중핵(中核)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싸우는 방법을 이해하고 동료들에게 그 방법을 납득시킬 수 있는 충분한 '중핵 계층이 싹트기까지는 아직 수백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18세기 유럽에서 근대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부르주아 bourgeois'로 대표되는 계층의 역할이 컸던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 혁명이 실패했음도 우리는 찾을 수 있다. 


 20세기는 단지 공포의 세기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살펴봤듯이, 그것은 공포의 주범들에 맞서 노동 계급이 이끈 거대한 반란들이 아래로부터 분출해 나온 세기이기도 했다.(p775)... 거대한 사회 갈등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미리 알 수는 없다. 그 결말은 단지 한 계급의 객관적 발전 수준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처럼 거대해진 '보편적' 노동 계급 중에서 싸우는 방법을 이해하고 동료들에게도 그 방법을 납득시킬 수 있는 중핵이 얼마만큼 존재하느냐에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역사가 보여 주듯, 그런 반체제 세력들은 오직 체제의 모든 측면에 맞서 싸울 태세가 돼 있는 혁명적 조직이라는 결정체로 응고되어야만 진정으로 효과적일 수 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784


  이러한 저자의 '중핵'의 역할에 대한 근거를 우리는 18세기 인도의 마라타족 반란과  19세기 중국의 태평천국운동을 통해 찾을 수 있다. 동양에서의 실패는 사회 불평등에 대한 반발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계층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고 동양의 두 제국은 유럽 제국주의의 제물로 전락하면서, 저자 주장의 논거가 된다.


 (마라타족의 반란)에서 농민들의 반감은 곧 반란군의 전투력이었다. 그러나 반란의 지도부는 보통 자민다르나 지방의 다른 착취 계급에서 나왔는데, 그들은 잉여의 더 큰 부분을 무굴 제국의 지배 계급이 가져가는 것이 불만이었다... 상인과 장인은 반란에서 핵심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무굴 제국 지배자들의 사치품 시장에 의존했고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도시 계급들이 농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해 준 지역 시장들의 연결망이 없었다. 낡은 사회는 위기에 빠졌지만, '부르주아지'는 그 사회를 변화시키는 투쟁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결국 사회는 진보할 수 없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303


 태평천국 운동의 지도부가 이상을 포기하는 과정은 과거에 중국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들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었다. 광대한 지역에 흩어진 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무지한 농민들은 운동의 지도부와 그 군대를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응집력이 강한 세력이 아니었다. 또한 태평천국 운동의 지도자들은 "모든 사람을 위한 풍요"라는 이상을 구현하기에는 물질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이에 대한 손쉬운 대응은 전통적 지배 방식과 그에 수반되는 전통적 특권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뿐이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465


 그렇다고 해도, 근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의 변화가 민중들을 역사의 주체로 바로 끌어올린 것은 아니었다. 유럽과 북미에서 민중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대표자들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억압받는 계층으로 존재하게 된다.  <민중의 세계사>에서 민중은 고대의 억압받는 노예에서, 중세의 억압받는 농민, 근대의 억압받는 노동자로. 자본주의 사회인 현대에서는 3S로 억압받는 소비자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저자는 비관하지 않는다.


 도시의 종교개혁은 독일 남부와 스위스의 도시들을 휩쓸었다. 이들은 여러 세대 동안 지방 의회를 지배하고 있었고, 심지어 일부 형식적인 민주적 구조가 갖추어진 곳에서도 그랬다. 많은 과두 지배자는 나름대로  교회에 불만이 있었고 지방 제후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의 사회, 종교 질서와 수없이 많은 연계를 맺고 있기도 했다... 대체로 그들은 커다란 격변을 겪지 않고서도 자신들이 도시의 종교 생활을 더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고 교회 기금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줄 점진적 변화를 추구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251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부르주아 점령군이었기 때문에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토지를 몰수한 뒤 해방된 노예들에게 재분배함으로써 그들이 옛 주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대다수 흑인들은 과거의 노예 수유주들 밑에서 소작농이 되거나 노동자로 일해야 했다. 과거에는 억압받는 노예 계급이었다가 이제는 억압받는 농민, 노동자 계급이 된 것이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455


 저자 크리스 하먼은 책의 결론부에서 과거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롭게 거듭나려는 움직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민중들의 각성과 움직임을 강조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역사 속에서 중핵들이 끊임없이 확장되어 왔음을 밝힌다. 이러한 움직임이 역사 속에서 1215년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에 의해 영국에서 왕권에 귀족들에게 넘어가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귀족 계급에서 자본가 계급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의식은 확장되었고, 그 기반은 넓혀져 왔음을 <민중의 세계사>는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계속될 때 과거 신석기 혁명과 도시 혁명 이전의 평등 사회로 우리는 회귀(回歸)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사회 계급들은 결코 서로 완전히 분리돼 있지 않다. 상층 계급의 정서는 중간 계급의 정서에 영향을 주며, 중간 계급의 정서는 하층 계급의 정서에 영향을 준다.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유럽 지배 계급들의 의지는 수많은 방식으로 중간 계급과 노동 계급의 일부에게 전염됐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521


 21세기에 인류가 멸망하지 않으려면 어마어마한 규모로 확대된 오늘날의 노동 계급에게도 그런 결정체가 끊임없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필요는 오직 사람들이 그 과업에 몸소 뛰어들어야만 충족될 수 있다...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미래를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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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09-10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중의 세계사를 보다 간소화 한 책을 찾는다면 아마 ‘좌파세계사‘겠죠.

겨울호랑이 2020-09-10 19:42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역시 NamGiKim님 이시네요.

NamGiKim 2020-09-10 19:49   좋아요 1 | URL
그책도 분량은 많은 편이지만 중간중간 사진과 그림이 많이 있어 읽기 수월했죠.^^

겨울호랑이 2020-09-10 20:05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대중적으로 민중의 역사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좋은 「The Left」, 「미국 민중사」 , 「민중의 세계사」입문서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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