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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경제학자들이 볼 때에는 시장가격과 독점가격이 따로 있다. 즉 독점영역과 "경쟁영역(secteur concurrentiel)"이라는 두 개의 층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사람들이 경쟁영역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시장경제라고 부를 수는 없을까? 제일 상층에는 독점이 있고 그 아래에 중소기업들에게 맡겨진 경쟁이 있는 것이다. 이 구분은 아직 우리의 논의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점차 상층의 것을 가리켜 자본주의라 부르는 관례가 퍼져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갈수록 최상급이 되어간다. 다름 아닌 트러스트, 다국적 기업 등 상층의 영역이다. 소규모 제조업 작업장이나 독립적인 소기업들도 자본주의와 관련을 가지지 않는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865


 18세기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광범위한 지상층(1층)의 영역이 존재하는데 최근의 경제학자들의 추산에 의하면 오늘날 가장 산업화된 국가에서도 이런 층이 전체 경제활동의 30-4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와 같은 영역은 시장과 국가통제의 바깥에 놓여 있는 밀수, 재화와 서비스의 물물교환, "암거래 노동", 가구의 활동 등을 합친 것이다. "삼분할(tripartition)" 체제, 여러 층을 가진 경제라는 개념은 과거에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 모델이며 다양한 관찰의 틀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지상층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는 불완전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상층에서 하층까지 모두 아우르는 자본주의 "체제(systeme)"라고 하는 관점은 여러 면에서 수정되어야만 한다. 그와 반대로 자본주의와 그 아래층인 비(非)자본주의 사이에 생동하는 변증법이 작동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867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3권의 전체 결론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경제규칙이 적용되는 다른 세계지만, 동시에 이 세상 경제계를 구성하는 3층 구조의 일부로서 이들을 바라봐야 한다는 전체 결론을 내리기 위해 저자는 어떤 길을 따라왔는가. 각 권의 리뷰를 통해 내용을 정리했지만, 전체적인 맥락 파악을 위해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La Dynamique du Capitalism>라는 저자 직강보다 더 잘 요약하기는 힘들 것 같다.


 책의 1권의 목적은 심층의 물질생활을 탐색하는 것입니다. 책의 차례에 나와 있는 장들 자체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러한 힘들을 열거한 것입니다. 즉 물질생활 전반을 만들어내고 밀고 가는 힘이자, 물질생활 너머의 상위 영역까지 포괄해 인간의 역사 전체를 밀고가는 힘이기도 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8


 물질문명은 경제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층(層)이다. 오랜 기간 동안 인류의 삶이 이뤄진 배경인 물질생활은 큰 변화없이 일정한 크기만큼의 팽창과 수축을 반복해왔다. 어느 분야에서 이루어진 작은 혁신은 인구과 생산성의 한계로 지속적인 발전으로 이어지기 힘들었기 때문인데, 오랜 물질 생활의 층에서 변화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인구의 증가, 경작방법의 혁신에 따른 농업생산성의 증가, 과학과 기술의 접목 등으로 브로델은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꾸준한 변화가 있었음을 말한다. 


 15세기, 특히 1450년부터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 추세를 보입니다. 이 시기에 농산물 가격은 정체되거나 내려가는 반면, '공산품' 가격은 올라가는 덕분에 도시가 농촌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합니다(p34)... 회복세에 돌입한 경제는 16세기에 들어서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복잡해집니다. 결론적으로 16세기의 활발한 상승세는 경제의 최상층인 상부구조가 번창한 덕분입니다. 또한 때마침 아메리카에서 귀금속이 유입된 데다가 엄청난 규모의 어음과 신용을 빠르게 회전시키는 어음 교환 및 재교환 시스템이 이 상부구조를 더욱 부풀렸습니다. 17세기로 들어서면 경제생활의 활력이 지중해에서 광활한 대서양으로 이동합니다. 또한, 경제 활동이 금융 거래에서 다시 상품 거래, 즉 기초적인 교환으로 대거 복귀함으로써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p36)... 18세기는 경제 전반이 가속적으로 팽창하던 세기였습니다. 시장의 교환도구들이 총동원되어 논리적으로 작동하게 됩니다(p37)... 이처럼 소비와 교환이 팽창하던 시기에 도시의 기초적 시장과 소매상점들이 예전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습니다. 마침내 영국의 역사 기록에서 사적 시장 private market이라고 부르는 것이 발달하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38


 내 생각에 인류의 삶은 절반 이상이 일상생활에 묻어서 굴러갑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수없이 많은 행동이 뒤죽박죽 누적되고 무수히 되풀이되면서 우리시대까지 이어집니다. 이러한 습관적 행동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옥죄기도 하면서, 우리가 사는 내내 우리를 대신해 결정을 합니다. 이 같은 행동을 유도하는 유인과 충동, 그러한 행동의 전형과 방식, 또 그리 행동해야 할 책임을 살펴보면,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수백 년 전의 과거는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현재로 흘러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물질생활 vie materielle'이라는 편리한 용어로 파악하려고 했던 내용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6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그동안 넘을 수 없었던 인구의 상한선을 넘게 됩니다. 그때부터 인구는 증가 추세의 정지나 반전 없이 끊임없이 늘어납니다. 18세기까지는 인구가 거의 근접할 수 없는 원 안에 갇혀 있는 양상이었습니다. 만약 인구가 늘어나 그 원둘레에 닿기라도 하면, 인구는 거의 즉각적으로 성장을 멈추고 다시 줄어듭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9


  설탕, 커피, 차 그리고 알코올 같은 식품들은 각각의 역사의 흐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인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곡물은 예로부터 주된 먹을거리였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밀, 쌀, 옥수수는 인류가 아주 오래 전에 선택한 곡물입니다. 이러한 곡물은 각 문명이 수 세기에 걸쳐 수없이 많은 실험을 통해서 선택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1


 기술의 역사는 인간이 일해온 역사와 맥을 같이 합니다. 인간이 하루하루 바깥세상에 맞서 자기자신과 싸우는 과정은 매우 더디게 진보합니다. 기술은 그 더딘 발걸음에 맞춰 진화합니다. 이러한 기술이야말로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활동이고,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며 천천히 변화합니다. 과학은 한발 늦게 기술을 따라가는 상부구조여서 기술과 조응하더라도 그 과정은 아주 느리게 진행됩니다. 옛날부터 온갖 기술과 과학의 모든 요소는 항상 섞이고 전 세계로 퍼지면서 끊임없이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잘 확산되지 않는 것은 기술의 결합과 조합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3


 

나는 1권의 마지막 두 장에서 화폐와 도시를 다뤘습니다. 이는 화폐와 도시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일상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최근에 등장한 근대성의 뿌리 깊은 요소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화폐와 도시는 수백 년에 걸쳐 가장 일상적인 생활의 뼈대를 이루게 된 구조물입니다. 도시와 화폐는 변화를 촉발하는 동력이면서 동시에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러한 변화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4


 1권과 2권을 연결하는 매개는 '도시'와 '화폐'다. 농촌보다 앞선 도시의 생산성과 화폐로 대표되는 교환경제로부터 오랜 물질생활의 균형은 파괴되기 시작한다. 물질생활에서 사용가치만 가지던 재화는 시장을 통해 교환가치도 함께 부여받는데, 사용가치와는 달리 교환가치는 시간적, 공간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유인이 있었다. 여기에 눈을 돌린 일부 상인들은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시장을 발전시켜 나간다.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1941)의 사치품과 전쟁무기, 카를로 M. 치폴라(Carlo M. Cipolla, 1922~2000) 의 대포, 범선, 시계가 여기에 해당하는 품목이 될 것이다. 이들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관료, 상인들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도 이즈음이다.


수많은 거점을 통해서, 한쪽에 광활하게 퍼져 있는 생산활동과 다른 쪽에 역시 광활하게 퍼져 있는 소비활동을 연결하는 이른바 교환경제 economie d'echage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교환경제는 분명 태곳적부터 이어져 왔겠지만, 생산 활동 전체를 소비 활동 전체와 결합하는 지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교환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더라도 시장경제 economie de marche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다가 생산을 조직하고 소비의 방향을 유도하고 통제하게 될 만큼 시장경제가 많은 읍 bourg(邑)과 도시를 연결해가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6


 시장으로부터 갖가지 유인과 활력, 혁신이 일어났고, 사람들의 주도적 행동과 다각적 인식이 생겼습니다. 또 시장을 통해서 경제 활동이 성장하기도 했고, 나아가 진보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시장의 바깥에 머무는 것들은 모두 사용가치밖에 없습니다. 시장이라는 좁은 문의 경계를 건너는 것들은 전부 교환가치를 획득하게 됩니다. 이 교환 영역을 나는 경제생활 vie economique이라고 칭하여 물질생황 vie materielle과 대조하고자 했습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7



 시장과 초보적인 교환 행위자들 위에는 좀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정기시 foire(定期市)와 거래소 Bourse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기시는 소규모 판매자와 중소 규모 상인들을 대상으로 열렸는데, 정기시 또한 거래소처럼 큰 규모로 거래하는 거상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조만간 도매상 negociant으로 불리게 되는 이 거상들은 소매 거래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게 됩니다. '교환의 세계 Les Jeux de l'echange'로 이름 지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제2권의 앞부분 장들에서는 시장경제의 다채로운 요소들을 기술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9


 영국의 역사가들은 전통적 시장인 공적 시장과 병행하여 그들이 사적 시장이라고 명명한 시장이 15세기부터 점점 성장하는 현상을 지적합니다. 나는 이 시장을, 기존의 전통적 시장과 다른 차이점을 강조하기 위한 반反시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 출현한 이 시장은 과도한 교란을 유발할 만큼 전통적 시장의 규칙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도 애쓰지 않았습니까?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64


 브로델은 이러한 자본주의적 독점의 형태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원거리 무역'임을 강조한다. 원거리 무역이라는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s)를 구축하고, 무역을 독점(monopoly)해서 한계비용 수준에서 책정되는 시장가격(P=MC)을 시장에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 결국 Price maker(setter)와 Price taker의 차이를 브로델은 발견한다. 이들의 투자행태는 워런 버핏(Warren Edward Buffett, 1930 ~ )과 피터 린치(Peter Lynch, 1944 ~ )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보면 무리가 있을까.


 요약하면, 세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볼 때 유럽 경제가 다른 곳보다 앞섰던 것은 거래소와 다양한 신용 형태 같은 우월한 장치와 제도 덕분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교환 메커니즘과 기법 들 모두 유럽 이외의 지역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다만 지역마다 얼마나 발달했고 어느 정도로 활용됐는가는 많이 달랐습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45


 사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18세기까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이 두 유형의 활동은 작은 부분에 불과했습니다. 그 무렵까지 인류가 영위하는 생활의 대부분은 여전히 거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물질생활'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p51)... 시장가격이 물질생활이라는 표면에 닿기는 하지만, 항상 뚫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며 깊이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 점을 두고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흐름을 보면, 시장경제로 구성되는 활발한 생활공간이 지속적으로 확대됩니다. 이를 보여주고 또 입증해주는 지표는 세계를 가로지르는 연쇄적인 가격변동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53


 자본주의적 과정은 원거리 무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원거리 무역이란 말은 독일어 'Fernhandel'에서 비롯되었지만 이 최상층의 상거래 활동을 눈여겨본 것은 독일 역사가들만이 아닙니다. 원거리 무역은 원하는 대로 활동할 수 있는 자유 공간 그 자체였습니다. 통상적 감독을 막아주거나 적어도 우회할 수 있을 만큼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p66)... 높은 이익을 거두는 것은 거래하는 지역과 품목을 갈아타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처럼 두둑한 이익에서 상당한 규모의 자본이 축적됩니다. 특히 원거리 무역은 소수의 사람들만 참여했으니 자본 축적이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이런 사업에는 아무나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면 지역 내 상거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67


 결국, 자본가들은 그들이 축적한 자본의 크기 덕분에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시대의 굵직한 국제 사업을 장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에는 운송이 아주 느려서 큰 거래를 하려면 자본의 회전이 오래 지연되는 것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p70)... 시장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전문화와 분업이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상품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렇지만 꼭대기에 있는 상인 자본가들은 이러한 전문화와 분업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기능에 세분화되는 과정, 그렇게 진행된 근대화 과정은 애초부터 수직적 위계의 밑바닥에서만 나타났습니다. 수직적 위계의 꼭대기에는 전문화라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19세기까지 최상위 상인들은 어느 하나의 활동에 국한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71


 이제 요약을 좀 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교환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낮은 곳에 자리하는 교환이고, 이러한 교환은 투명하기 때문에 경쟁의 힘이 항상 작용합니다. 다른 하나는, 높은 곳에 위치하는 교환이고 섬세하며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이 두 가지 활동은 지배하는 메커니즘도 다르고 행위자도 다릅니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자리하는 영역은 첫 번째 교환이 아니라, 두 번째 교환입니다(p74)... 자본주의의 밑바탕을 이루는 불평등한 힘의 관계는 사회생활의 모든 수준에서 생겨나고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최초의 자본주의가 자기 모습을 펼치고 세력을 형성하며 우리 눈앞에 등장한 것은 사회의 최상층에서였습니다.... 실제로는 모든 것이 물질생황의 거대한 등판을 딛고 서 있습니다. 물질생활이 팽창하면 모든 것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시장경제는 물질생활을 희생시키면서 그 자신은 빨리 팽창하고 또 자신의 관계망을 확장합니다. 이렇게 시장경제가 팽창할 때 자본주의는 항상 이득을 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76


 마지막 3권에서 브로델은 경제계(economie-monde)라는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의 속성을 보다 깊숙하게 드러낸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전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책을 고르라면 단연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2019)의 <근대세계체제 The Modern World-system>일 것이다. 경제적 헤게모니(Hegemony)를 통해 중심부-주변부의 관계를 살핀 월러스틴의 관점과 브로델의 관점은 경제권을 '중심부(core)- 주변부(periphery)'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경제권을 단극(單極)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다극(多極)으로 볼 것인가, 헤게모니의 이동을 이전 패권세력의 이동으로 파악하는가, 아니면 붕괴-생성으로 볼 것인가의 차이로 정리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경제계는 지구의 어느 한 부분에 국한된 경제를 가리키는데,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경제 단위를 이루는 경제권을 말합니다. 경제계는 세 가지 특징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일정한 지리적 공간을 차지합니다. 둘째, 하나의 경제계에는 언제나 하나의 핵, 혹은 중심이 있습니다. 셋째, 모든 경제계는 계층적인 경제권으로 나뉩니다. 우선, 중심 주위로 '중심부 coeur'가 자리잡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97


 월러스틴과 나는 이러저러한 논점이나 한두 가지 일반적 명제에서 의견을 달리하지만 이 정도의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월러스틴은 16세기 들어서야 유럽 경제계가 구축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유일한 경제계였다고 봅니다. 이와 달리, 나의 생각은 유럽인들이 세계의 전체상을 인식하기 오래전부터 세계는 여러 개의 경제권들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이 경제권들이 그 중심의 구심력과 응집력을 어느 정도 갖춘 것들이어서 복수의 경제계로서 공존했다고 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98


 경제계는 하나의 핵, 즉 무게 중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 양 기존의 중심이 해체될 때마다 새로운 중심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심의 해체와 재형성은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어서, 그만큼 더 중요합니다(p101)... 유럽에서 숙명의 시계는 다섯 번에 걸쳐 종을 울렸던 셈입니다. 그때마다 싸움과 충돌이 일어나고 심각한 경제적 위기가 발생하면서 중심이 이동했습니다. 대개 중심이 이동하기 전에 벌써 예전의 중심은 위협을 받게 되고, 몰아닥치는 경제적 악조건이 옛 중심을 무너뜨리고 새 중심의 출현을 확정하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02


 서유럽은 신대륙에 고대의 노예제를 이전했고, 자신의 경제적 필요 대문에 동유럽에서 재판 농노제 성립을 유도했습니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임마누엘 월러스틴의 주장에 무게가 실립니다. 자본주의는 세계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국제 경제 차원의 공모가 필요하다고 임마누엘은 주장힙니다. 자본주의는 매우 드넓은 공간을 권위주의적으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만약 제한된 경제 공간에 갇혀 있었다면 자본주의가 그렇게 드세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지역의 종속적 노동을 이용할 수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전혀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09


 국민 경제 economie nationale는 물질생활의 필요와 혁신을 반영하여 국가가 정치적으로 만들어낸 통일되고 응집된 경제 공간입니다. 그래서 그 공간의 활동이 한꺼번에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영국만이 일찌감치 이 위업을 달성하게 됩니다(p116)... 프랑스에 대한 영국의 승리는 매우 느리기는 했지만 일찌감치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부터 시작되었고, 1786넌 에덴 조약에서 크게 앞선 데 이어, 1815년 승리를 확정하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19


 생산이 급격하게 팽창함에 따른 갖가지 요구사항을 영국 경제의 모든 부문이 해결한 셈입니다. 막히는 병목도 없었고 고장 난 부분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국민 경제 전체가 아닐까요? 더욱이 영국의 면직물 혁명은 밑바닥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촉발되고 나서 등장하는 산업 자본주의라는 것의 실체를 시장경제와 기초적 경제의 힘과 활력이 받쳐주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산업 자본주의는 그 밑에서 받쳐주는 경제의 활력이 없었다면 성장할 수도 없었고 자기 자리를 잡고 힘을 갖출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영국의 산업혁명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29


 자본주의란 것은 본질적으로 가장 높은 곳의 경제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적어도 그처럼 높은 곳에 올라서려는 경제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같은 자본주의는 그 밑에 두터운 층 두 개 - 물질생활과 촘촘한 시장경제 - 를 겹으로 깔고 앉아, 높은 수익이 나는 영역에서 서식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자본주의를 최상층의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31


 자본주의는 언제나 독점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상품과 자본은 늘 같이 돌아다녔고, 자본과 신용은 항상 외부 시장을 공략하고 통제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습니다(p132)... 자본주의의 특징과 강점은 이 술수에서 저 술수로, 이러한 행태에서 저러한 행태로 변화하는 능력입니다. 또 변화하는 국면에 따라 수도 없이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자본주의의 특징이자 강점이고, 그러한 변화무쌍함의 와중에도 비교적 자본주의에 고유한 본질에 충실하고 유사한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 또한 자본주의의 특징이자 강점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33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이 정도로 일단 마무리짓도록 하고, 자본주의와 관련된 다른 내용이 있을 때 추가적으로 다루도록 하자. 예를 들면, <어둠의 세계 The Shadow World>와 같은.


 공식적 무기산업과 어둠의 무기산업은 이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정기적으로 교류하며 교차한다. 이들의 상호의존은 매우 뿌리 깊으며, 사실상 어둠의 세계를 구성하는 두 날개에 해당한다. 공식적 무기산업이 런던증권거래소라면 비공식적 무기산업은 규모가 작고 규제가 약한 '대체거래소'라고 할 수있다. 또한 그레이마켓과 블랙마켓은 제품의 실질적 수명을 연장하고, 이를 통해 제품의 초기 가치를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공식적 무기산업에서 취급되기에는 품질이 낮은 제품이나 불량품을 거래할 시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이러한 시장에서는 대형 방산업체나 국가가 법적/정치적/외교적 이유로 무기를 판매할 수 없는 개인, 집단, 국가가 고객이 된다.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공식적 무기업체의 에이전트, 브로커, 중개인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어둠의 세계는 공식적 무기산업에 비해 작은 규모이지만, 어둠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공식적 무기산업에서 무기 가격이 높게 유지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어둠의 세계가 분쟁을 부추기고, 확대하고, 장기화함에 따라 공식적 무기산업의 새로운 시장이 창출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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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독특한 인지 능력을 갖춘 지혜로운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다. 유창한 언어 능력, 미리 예상하고 추론하는 성향, 복잡한 감정 반응은 그 밖의 생명체와는 확연히 다르다.(p16)... 독특한 인지 능력을 갖춘 호모 사피엔스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월한 사냥 능력과 더 정교해진 새로운 무기도 있었지만, 사냥감과 인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무엇보다도 이성적인 사고였다... 관계는 실체가 없으며, 몸짓이나 말, 눈썹과 손끝의 작은 움직임이나 어루만짐으로 드러나는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이 결합된 것이다. 관계는 화려한 건물이나 걸작 예술품보다도 역사적으로는 더 중요한 본질이다. 이런 관계는 과거가 흐릿하게 투영되는 탁한 거울을 통해, 기록과 예술적 표현을 통해, 동물의 뼈와 인공물을 통해 포착된다. 바로 이 점이 고고학의 가장 큰 한계다. 고고학은 주로 인간의 행동이 남긴 물건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_ 브라이언 페이건, <위대한 공존> , p18/678


 브라이언 페이건(Brian M. Fagan, 1936 ~ )의 <위대한 공존 The Intimate Bond: How Animals Shaped Human History>은 인류와 그리고 인류와 함께 한 여덟 동물 - 개, 염소, 양, 돼지, 소, 당나귀, 말, 낙타 - 의 관계를 다룬다. 저자는 본문을 통해 수렵시대 사냥감을 나누던 관계에서, 문명화 과정의 동반자로, 사업의 파트너로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한다. 저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인류와 동물들의 관계를 쉽고도 재밌게 서술한다.


 농경과 동물의 가축화는 혁명적인 발명품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특히 도시와 문명의 등장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소는 곧 고기와 뿔과 가죽의 공급원 이상의 존재였다. 살아 있는 재산이었고, 귀한 선물이자 축제의 중요한 요소였다... 기원전 2500년이 되자, 동물은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서서히 세계화가 진행되던 세상에서 짐 운반 동물의 혁명이었을 수도 있다. 동물과 인간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 개체 사이의 관계다.... 말과 기수가 하나가 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고, 말은 명성과 왕권의 상징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_ 브라이언 페이건, <위대한 공존> , p24/678


 이와 관련해서 <최초의 가축, 그러나 개는 늑대다 The First Domestication: How Wolves and Humans Coevolved> 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류와 늑대의 협력을 다룬다. 서로에게 득을 가져온 이들의 관계는 오늘날 반려견이 인간과 맺는 관계와는 분명 달랐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협력적인 먹이 찾기를 한다는 것은 두 종이 서로의 생태학적 적소(ecological niche : 한 생명체가 생태계 안에서 차지한 위치)에서 중요한 측면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생물체 집단이 수천 세대에 걸쳐 지속되는 생태학적 유산을 구축할 때, 이 집단은 뒤따르는 세대에 작용하는 선택압을 수정한다. 이렇게 수정된 선택압은 영향력이 큰 특징 쪽으로 작용하며 그 특징이 미래 세대로 퍼져나가도록 한다. 적소구축(niche construction : 생명체가 환경을 적극적으로 변형해 자신에게 유리한 생태환경을 구축하는 것) 과정에서 생태학적 유산이 영원히 전해지는 진화적인 결과가 나타날 때, 이를 생태학적 유전(ecological inheritance)라 할 수 있다. _ 레이먼드 피에로티 외, <최초의 가축, 그러나 개는 늑대다> , p98 


 데이비드 W. 앤서니 (David W. Anthony)의 <말, 바퀴, 언어 The Horse, the Wheel, and Language: How Bronze-Age Riders from the Eurasian>는 언어와 말(소)등 가축과 청동기 문화를 연결한다. 언어와 가축의 확산의 관계를 찾아가는 내용 역시 다른 관점에서 동물들을 바라보게 한다. 에밀 뱅베니스트 (Emile Benveniste, 1902 ~ 1976)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인도/유럽 문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 연구 Le Vocabulaire des Institutions indo-europeennes>도 함께 읽으면 좋을 듯 싶다.


 새로운 가축 경제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회는 이를 받아들인 사회와 갈수록 달라졌다. 북부 살림 지대 사람들은 우랄 산맥 동쪽 초원에 살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채집민으로 남았다.  그 지속성과 선명성을 감안하면 이런 변경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언어적인 것으로 보인다. 선 인도/유럽 공통조어족은 동석기 초기 서부의 초원에서 새로운 경제 형태, 즉 목축과 함께 확산했을 것이다. 자매 언어 간 연결(sister-to-sister linguistic linkage)이 가축 사육 경제와 여기에 동반한 신념의 확산을 촉진했을 것이다. 흑해-카스피 해 지역의 초기 동석기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식단과 장례 상징 두 측면에서 말의 중요성이다. 말고기는 육류 식단의 주요 부분을 차지했다. 바르폴로미예프카와 스예제에서는 뼈 판에 말을 조각했다. _데이비드 W. 앤서니, <말, 바퀴, 언어> , p283 


 그러나, 인류와 공진화를 통해 함께 문명을 만든 이들과의 관계는 산업화(industrialization)과정을 통해 새롭게 바뀌게 된다. 인간의 노동(labour)만이 자본(capital)에 의해 대체된 것이 아니다. 산업화를 통해 말이 재갈로부터 풀려나고, 소가  코뚜레로부터 벗어나게 되지만 이것이 그들에게 진정한 해방이 되지는 못했다. 전자는 경마 등 스포츠 산업의 상품으로, 후자는 식품으로 파트너에서 사물화되기에 이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피터 싱어 (Peter Singer, 1946 ~ )의 <동물 해방 Animal Liberation>, <죽음의 밥상 The Ethics of What We Eat> 등이 함께 읽을 만한 책이라 여겨진다. 


 중세의 농민은 가축과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 각각의 동물을 다 아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과 동물의 관계는 진정한 동반자 관계였다. 말하자면,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었고 수천 년 동안 역사의 흐름을 결정했다. 그러나 도시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마침내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친밀한 유대 관계는 극단적으로 양분되었다. 어떤 동물은 존중받으며 소유자의 자부심이 되었고, 어떤 동물은 상품으로 취급받았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관심이 가축 사육장과 실험실까지 확장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현재 인간은 대부분의 동물을 종처럼 부리거나 먹거나 착취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 과정을 계속해야 할까? 아니면 변화를 모색해야 할까? _ 브라이언 페이건, <위대한 공존> , p28/678


 개인적으로 <위대한 공존>은 도시 문명과 관련하여 고고학 권위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의 이름만으로 펼쳤던 책이라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청소년에게는 물론 재레드 다이아몬드 (Jared Diamond, 1937 ~ )의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마빈 해리스 (Marvin Harris, 1927 ~ 2001)의 문화인류학 3부작을 읽기 전 참고한다면 보다 깊이 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페이건의 인류사와 관련해서 <인류의 마지막 항해>, <피싱>,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는 별도의 리뷰에서 다루도록 하며 간략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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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08 18: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 호랑이님 서재를 두 번 방문하네요 ㅎㅎ 축하드립니다 *^**

겨울호랑이 2022-07-08 23:25   좋아요 2 | URL
미니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얄라알라 2022-07-08 18: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7-08 23:25   좋아요 2 | URL
얄라얄라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그레이스 2022-07-08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22-07-08 23:26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홉스봄이 분석하는 20세기, 그리고 그 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열정적이다. 그 태도는 홉스봄이 선호하는 다른 화제를 꺼내며 개입하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롤링스톤스와 동시대에 살지 않았다면, 그들이 1960년대 중반 지핀 열기에 동참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명예의 전당 제일 위에 인민전선과 스페인 내전이 자리한다. 홉스봄은 스페인 내전을 언급하며, "이 내전이 자유주의자들과 좌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진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합친 성향에 가까웠고, 이는 그의 20세기 분석 전반에 잘 배어있다. 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5> - 홉스봄, 역사 조작에 맞서다(上) - , p32


 

지난달과 이번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기사는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CH, 1917 ~ 2012)의 <극단의 시대 The Age of Extremes: A History of the World, 1914-1991>를 다룬 세르주 알리미(프랑스어판 발행인)의 서문이다. <시대 The Age>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 대한 서문 을 통해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거칠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20세기 마지막을 승리로 끝낸 자본주의의 승리가 사실은 불완전한 승리였다는 홉스봄의 중심에는 '소련'이 자리한다. 홉스봄은 공산주의 국가 '소련'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주장을 펴면서 '소련'의 역할을 강조했다면, 도널드 서순(Donald Sassoon, 1946 ~ )이 <불안한 승리 The Anxious Triumph: A Global History of Capitalism 1860-1914> 속에서 자본주의 승리의 원인을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에서 찾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마침 깊은 인연있는 두 역사가가 '자본주의의 승리와 위기'에 대한 다른 분석을 비교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 되리라 여겨진다. 사실, 제대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서순의 <유럽문화사>와 <사회주의 100년>,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까지 한꺼번에 정리해야겠지만. 한 걸음 나아가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과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 ~ 2019)까지 들어오면 판이 너무 커지겠지만, 충분히 판을 키울 가치가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조만간 순차적으로 정리하기로 하자.


 "소련이 없었다면 서방 세계는 아마 자유주의나 의회 정치 대신 다양한 독재와 파시즘의 아류로 이뤄졌을 것이다. 이는 기이한 20세기가 지닌 역설 중 하나다. 10월 혁명의 결과 중 가장 여파가 오래 간 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 세계를 전복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일어난 10월 혁명이 오히려 적을 구했다는 사실이다. 소련은 전시에도, 종전 후 평화의 시기에도, 상대국에게 공포감을 줌으로써 개혁을 촉구했다." ...  그런데, 정말 자본주의는 끝나가는가? 모든 것이 경쟁과 이윤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시장경제 사회를 전 세계 국민이 지지한다면, "소련식 유토피아의 대척점에 있는 반유토피아 또한 완전한 실패작이었다"라고 결론 내린 홉스봄이 과연 옳은 것일까? 섣불리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다. 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홉스봄, 역사 조작에 맞서다(下) - , p42

 

여기에 더해 이번 호에서는 이탈리아 정치문제가 다뤄졌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으로 대표되는 극우정당의 움직임에 대해 다뤄진 이번 기사에서는 이탈리아 남북문제가 언급된다. 일찍이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 ~ 1937)가 지적한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마피아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때문에 이번달 이탈리아 기사는 그람시의 저작과 기사들을 연결해서 읽으면 좋을 듯 싶다. 물론, 영화 <대부 The Godfather>도 시간이 되면 함께 보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1990년대 초 이후 이탈리아의 정치사는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 건설 시도의 역사다. 이 역사는 실패로 기록된다. 우파를 지지한 사회적 동맹은 시작부터 분열됐다. 한편에서는 이탈리아 북부의 중소기업들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찬성하며 유럽 통합 과정에 동참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주로 중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서민층과 빈곤층이 EU의 조약들이 강요한 긴축정책으로 고통받았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유럽연합과 화해한 이탈리아 극우의 본심은? - , p25


 

모든 것은 통일 이탈리아의 건국과 함께 시작됐다.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탄생하면서 매우 민간한 사안인 '남부 문제'가 대두됐다. 낙후된 남부지역이 통일 이탈리아 내에서 다른 지역보다 뒤처지게 된 것이다.(p29)... 경제와 사회기반시설이 열악한 남이탈리아에서 '지주', 지배계층은 반란과 농민폭동으로 자신들의 권력이 위협당할까 우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지와 지배권 유지를 위해 자연스럽게 여러 무장 결사단체의 연합체인 마피아와 손을 잡았다. 가리발디 장군은 농민들에게 토지분배를 약속했는데, 마피아는 대지주의 행동대장으로 활약하며 토지개혁을 무산시켰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이탈리아 마피아의 존재 이유 - , p30


  더 나아가 경제 민주주의, 정치적 평등에 대해서도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서구 여러나라들은 주35시간에서 나아가 주 28시간 근무를 논의하고 있는 현 시점에, 우리나라는 주52시간 근무를 확대시행이 이르다는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제는 우리 국민들도 국격에 맞는 대우를 받을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노동시간 감축은 노동비용 상승, 생산성 하락, 노동가치 폄하 등 부작용을 동반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 때 겪었던 혼란과 실패 경험은 트라우마와 분열을 남겼다. 그리고 우파와 경연진들은 노동시간 감축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 19팬더믹은, 미흡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줬다.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의 피해를 예방하려면, 최대한 다수가 수혜를 누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 28시간 근무제를 논의하면, 노동의 조직과 분배를 새로운 관점에서 생산하고 생산 의존도를 낮추며 성장우선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덜 일하고, 덜 오염시키기 -, p11


 마지막으로, 최근 이뤄진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간 휴전 협정과 15년간 장기 집권을 끝낸 네타냐후 총리 실각을 보면서, <유대 국가>를 통해 헤르츨(Theodor Herzl, 1860 ~ 1904)이 제안한 탄압받는 유대인들에 의한 사회주의 국가와 구현된 시오니즘 국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당초 헤르츨은 '히브리 노예들'을 위한 평등한 사회를 생각했지만, 그의 구상과는 달리 자본가들은 희생하려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국가이며, 유럽 출신의 아슈케나짐(Aschkenasim) 주도의 불평등 국가가 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시오니즘을 만약 헤르츨이 본다면 무엇이라 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보다 넓을 세계를 보고, 다른 책들을 통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임을 느끼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헤르츨은 동화정책이 해결책이 아닌 위협이며, 유대인을 물리적으로 말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정 러시아에서 일어난,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과 학살이 그 직접적인 사례였다. 유럽 사회에 통합되려는 의지는, 종교와의 분리와 공동체의 와해로 이어질 것이 자명해 보였다. 또한 유럽 통합주의 전략은 반유대주의가 확산해 유대인들이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 따라서 헤르츨은 유대인이 중심이 돼 안전하게 살아갈 정치적 집합체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 즉 유대인 국가의 건설이었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막을 수 없는 좌파 시온주의의 쇠락 - , p98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수십 년에 걸쳐, 세속주의와 유대 노동자 간의 연대라는 원칙으로 건설한 노동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서구 자본주의에 완전히 통합돼 신생 디지털 기술 기업들의 '황금의 땅'이 됐다.(p99)... 이스라엘 정부가 '유대민족'은 하나라고 강조하지만, 다양한 유대인 집단(아슈케나짐, 팔라샤, 미즈라힘, 스파라드, 러시아어권 유대인 등)이 국가의 주요 요직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민족 갈등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막을 수 없는 좌파 시온주의의 쇠락 -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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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6-20 22: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은책 소개와 함께 언제나 겨울호랑이님의 명품페이퍼에 감동합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6-20 22:06   좋아요 5 | URL
에고 아닙니다. 저는 이미 있는 좋은 책들 중 극히 일부만 알고 있고, 아는 것만 페이퍼에 옮긴 걸요. 항상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하루 잘 마무리 하세요! ^^:)

mini74 2021-06-20 22: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단하세요 좋은 책을 소개해 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읽고 고민하셨다는거.*^^* 좋은 책 소개글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6-20 22:25   좋아요 4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저도 이웃분들로부터 배워가는데, 부족하지만 이웃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신다니 다행입니다. mini74님 하루 잘 마무리 하세요! 감사합니다.^^:)

scott 2021-07-07 15: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올려주신 책들 몇권 땡튜 ^.~

겨울호랑이 2021-07-07 16:3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1-07-07 16: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7 16:3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

서니데이 2021-07-07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7 16:3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좋은 하루 되세요! ^^:)

mini74 2021-07-07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되실줄 알았습니다 당근! ㅎㅎ 축하드립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07 16:4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mini74님 좋은 하루 되세요! ^^:)

초딩 2021-07-07 2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1-07-08 05:25   좋아요 1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이하라 2021-07-08 0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08 10:07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항상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모나리자 2021-07-08 1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21-07-08 10:25   좋아요 1 | URL
모나리자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독서괭 2021-07-08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8 12:47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왕망은 또 고구려(高句驪) 병사를 발동하여 흉노를 공격하려는데, 고구려에서 가려고 하지 아니 하니 군(郡, 요서군)에서 억지로 압박하자 모두 도망하여 요새를 나가고 이어서 법을 범하면서 침구(侵寇)하였다. 요서(遼西)의 대윤(大尹)인 전담(田譚)이 이들을 추격하다가 살해되었다. 주군(州郡)에서는 그 허물을 고구려후(高句驪候) 추(騶)에게 돌렸는데, 엄무(嚴尤)가 상주하였다. "맥인(貊人)이 범법하는 것은 추(騶)를 좇은 것이 아니어서 바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마땅히 주군(州郡)으로 하여금 또 그들을 안위하게 하여야 합니다. 지금 그들에게 큰 죄가 두텁게 덮어씌운다면 아마 그들은 끝내 배반할까 걱정이고, 부여(夫餘)족속들에게는 반드시 화합함이 있을 것입니다. 흉노를 아직 이기지 못하였는데 부여(夫餘)와 예맥(濊貊)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는 큰 우환입니다." 왕망이 안위하지 아니하자 예맥(濊貊)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는데, 엄우(嚴尤)에게 조서를 내려 이들을 공격하게 하였다. 엄우가 고구려후 추(騶)를 유인하고, 오자 머리를 베어 장안으로 보냈다. 왕망은 크게 기뻐하며 고구려를 하구려(下句驪)라고 이름을 고쳤다._사마광, <자치통감 37> 中


 아침마다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의 <자치통감 資治通鑑>를 읽는다. 전국시대로부터 오대십국 시대를 편년체로 서술한 <자치통감>. 겨우 왕망(王莽, BC45~AD23)의 신(新)나라 부분을 읽고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는 전체 294권 중에서 37권에 해당한다.)  중국의 역사를 읽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주변국과의 관계도 역사의 일부분이기에 우리나라 역사도 다루어진다. 그리고, 당연히 그 부분을 더 주의 깊게 읽게 된다. 마침 오늘은 왕망이 부하장수를 시켜 흉노(匈奴) 원정을 거부하는 고구려를 침략하는 부분이 서술된다.  그 중에서도 고구려왕이 죽음을 당했다는 부분에 눈이 멎는다. 고구려왕 중 외적에게 죽임을 당한 왕이 고국원왕 외에 또 있었을까. 동천왕 시기 아버지 미천왕의 시체가 중국쪽으로 끌려갔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그런 기억은 언뜻 나지 않아 같은 시기를 다룬 <삼국사기>도 함께 펼쳐본다. 기록에<자치통감>에서 죽임을 당한 고구려 왕은 추(騶)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발음에 따라 '추모(鄒牟)'로 불리는 1대 동명성왕(東明聖王, BC 58~BC 19)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시기적으로는  <삼국사기 三國史記>를 따라  2대 유리명왕(瑠璃明王, BC38~AD18)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여겨진다. 다만, 여기서 문제는 시기가 아니라, 죽음을 당한 인물의 기록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유리왕 31년(서기12) 한(漢)나라의 왕망(王莾)이 우리 군사를 징발하여 호(胡)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려고 하지 않자 왕망이 강제로 보내었더니 모두 새외(塞外)로 도망쳤다. 그래서 법을 어겨 도적이 되었다. 요서(遼西) 대윤(大尹) 전담(田譚)이 추격하였으나 죽임을 당하자 [한나라]주군(州郡)에서는 허물을 우리에게 돌렸다. 엄무(嚴尤)가 아뢰었다. "맥인(貊人)이 법을 어겼으나 마땅히 주군에 명해서 위로하여 안심시켜야 합니다. 지금 함부로 큰 죄를 씌우면 마침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렵습니다. 부여의 무리 중에 반드시 따라 응하는 자들이 있을 것인데, 흉노(匈奴)를 아직 누르지 못한 터에 부여(夫餘)와 예맥(濊貊)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것은 큰 걱정거리입니다." 왕망이 듣지 않고 엄우에게 명하여 공격하였다. 엄우가 우리 장수 연비(延丕)를 유인하여 머리를 베어서 수도로 보냈다. 왕망이 기뻐하고 우리 왕을 하구려후(下句驪侯)라고 고쳐 부르고, 천하에 포고하여 모두 알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한나라 변경 지방을 더욱 심하게 침범하였다.... 37년(서기18) 겨울 10월에 왕이 두곡의 별궁에서 죽었다. 왕을 두곡의 동쪽 들판에서 장사지내고 왕호를 유리명왕이라고 하였다._김부식,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p323


  전반적인 상황은 비슷하지만, <자치통감>에서 고구려에서 죽임을 당한 이는 왕으로 , <삼국사기>에서는 부하장수로 기록되어 있어 이들의 기록이 서로 충돌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기록을 참고해야 하겠지만, 우리 고대사의 경우 많은 기록이 중국 쪽 자료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중국쪽의 기록이 정설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록의 양이 워낙 차이가 나니 이러한 현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 기록의 객관성이다.  중국의 기록들이 모두 객관적으로 남아있다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중국의 기록 역시 공자(孔子, BC551~BC479)의 <춘추 春秋>이래 중국/유교 중심의 포폄(褒貶)사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자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자료의 많은 부분을 중국의 <자치통감>에 의존한 <삼국사기>에서도 이 부분의 기록은 다르게 나타난 것을 보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라 여겨진다.


 두 개의 내용을 보면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몇 군데 글자를 바꾸거나 추가했을 뿐이다.... 이것들을 검토하여 보건대 의도적으로 고쳤다고 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필사과정에서 당시에 일반적으로 쓰는 용어로 적은 것이거나,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자치통감>과 <삼국사기>가 그 이후 내려오면서 착간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부분도 <신,구당서>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쓰면서 필법(筆法)에 대한 철저한 고려를 하지 않은 것 같고, <자치통감>에서 필법이 엄정하여 글자 하나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신주하게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라 하겠다. 따라서 김수식은 <자치통감>을 자료로 본 것이고, 필법은 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만큼 역사학 이론에서 아직은 <자치통감>의 수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_권중달, <자치통감전> 中


 한 예(例)지만, 우리나라 고대사의 경전인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삼국사기>와 다른 중국 사서들 간의 서로 충돌하는 파편의 기억들은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역사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를 넘어서 지역적으로 떨어진 ,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시간의 흐름을 오늘날 세계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우리가 역사를 바라봐야 하는 관점이라면 우리는 과거로부터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물음을 안고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역사>을 시작한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면서 '역사'는 이미 경험된 것과 아직도 경험되고 있는 모든 것을 규율하는 개념 ein regulativer Begriff이 되었다. 그 이후로 이 개념은 단순항 이야기나 역사학의 영역을 훨씬 초월한다.(p12)... '즉자와 대자로서의 역사 Geschichte an und fur sich' 개념 속에는 예전부터 수많은 의미의 결이 유입되었다. 근대적 역사 개념은 모든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예전의 의미 영역들 가운데 많은 부분을 자기 안에서 결합하였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13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면서 ‘역사‘는 이미 경험된 것과 아직도 경험되고 있는 모든 것을 규율하는 개념 ein regulativer Begriff이 되었다. 그 이후로 이 개념은 단순항 이야기나 역사학의 영역을 훨씬 초월한다.(p12)... ‘즉자와 대자로서의 역사 Geschichte an und fur sich‘ 개념 속에는 예전부터 수많은 의미의 결이 유입되었다. 근대적 역사 개념은 모든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예전의 의미 영역들 가운데 많은 부분을 자기 안에서 결합하였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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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1-06-10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아있는 사기에 불신만 가졌었는데, 당대의 중국 역사관을 함께 보는 것도 방법이 되겠네요. 양적으로 방대하나... 객관성이 문제. 그 역시 공감합니다.
짧게 짧게 올려주신 덕에 재밌게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1-06-11 07:03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역사‘는 과거의 사건 중에서 일부에 현재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학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객관적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면에서 역사가의 방대한 해석보다는 짧은 사실의 나열이 후대 역사가들에게는 오히려 도움되는 면이 있을 듯 합니다. 갱지님, 감사합니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기 구독으로 받은 <비판 인문학 100년사>. 1900년 니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20세기를 지나 2000년 이후 21세기 초반까지 인문 사상사의 주요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서구 근대화의 꽃이 활짝 피었던 시기이자 동시에 극심한 정치/경제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였던 20세기. <비판 인문학 100년사>는 각 시대를 풍미한 사상가들의 주요 사상과 저서들을 훑어 준다는 면에서 장점을 갖는다.


 이미 책을 읽었던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과 의견 등에 더해 책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의의를 알려준다는 점이 책이 가진 장점이라 여겨진다. 지도에서 위도와 경도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반면, 이는 해당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하는 독자들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약 250페이지에 20세기의 주요 사상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빠듯하기에, 깊이 있는 사상 설명은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때문에, 인문학 입문자들에게는 입문 안내서의 의의를 갖지 않을까 여겨진다. 


 책에는 어떻게 사상들이 소개되어 있을까. 마침 얼마 전 읽은 <수용소 군도>에 대한 내용이 책에 담겨 있어 해당 내용을 옮겨본다. 

 

 1974년 프랑스에서는 러시아 체제에 저항했던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솔제니친은 소비에트연방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 책은 서구세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프랑스에서 굉장히 큰 방향을 일으킨 것은 몇십 년 전부터 대다수 프랑스 지식인층이 마르크스주의에 동조해왔으며, 역사적으로 구현된 형태인 소비에트연방을 어느 정도 인정해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이 책의 성공은 정치참여 및 사상 면에서, 즉 전체주의라는 정치체제와 마르크스주의라는 사회학 이론에 대한 급격한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전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현상은 서로 연결됐지만, 그 본질은 달랐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부르주아들의 위선으로 치부됐던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주제가 제일선으로 되돌아왔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189


 위의 내용처럼 서술되기에 책을 읽은 이들은 책의 영향과 역사적 의의에 대해 알게 되어 깊이를 더할 수 있겠지만, 읽지 않은 이들은 책을 통해 내용적으로는 크게 얻는 바가 없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대신 좋은 책 안내서로서 기능하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로 <비평 인문학 100년사>는 독자별로 다른 느낌을 줄 책이라 생각된다.


 소련 체제의 베일 속 진실이 밝혀지면서 지식인들의 공산당 편향은 점차 종말을 맞이한다. 1956년에 발표된 흐루쇼프의 '20세기 소련 공산당 대회' 보고서는 과거에는 파시즘과 제국주의 간의 갈등이라고 회피했던 사건들에 비판적 시각을 부여하면서 스탈린의 전횡을 만천하에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6년 사르트르는 프랑스 공산당에 더는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51년에 탈당한 에드가 모랭은 1959년에 <자기비판>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같은 지식인들의 공산당 외면은 프라하의 봄 이후 솔제니친 효과로 더욱 심화됐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120


  개인적으로 <비평 인문학 100년사>를 통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사상가가 있다면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1952 ~ )다. <역사의 종언>을 통해 자본주의와 미국 민주주의의 최종 승리를 선언한 것으로 알고 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최근에는 종래의 입장을 번복하고 미국의 쇠퇴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마치 전기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이 다르듯, 후쿠야마의 사상도 달라졌기에 그의 최근 저서를 담아둔다.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보고, "역사는 종언했다"고 말했다.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1992)>. 그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에 승리하고 인류사회의 궁극적인 체제로서 정착하는 최후의 이데올로기라고 단정했다. 1990년대 이후 세계는 빠른 속도로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어 갔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223


 심지어 냉전 붕괴 후, "역사가 미국식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승리로 귀결된다"고 주장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마저 이번엔 중국을 편들고 있다. 그는 2011년과 2014년 잇따라 펴낸 <정치 질서의 기원 The Origins of Political Order>과 <정치질서와 정치쇠퇴 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라는 두 권의 책에서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밝힌다. 일찍이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강대국의 흥망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에서 1980년대 미국의 쇠퇴 대신 1990년대 일본의 부상을 예상했지만, IT혁명으로 미국의 쇠퇴가 연기되면서 일본의 자리를 중국이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 정치 질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는 국가와 법치, 민주 책임제다. 이상적인 경우는 이 삼자가 평형을 이룰 때다. 그리고 정치질서 건설에서 우선순위는 강력한 정부를 구성하는 게 첫 번째고 이어 법치, 그리고 마지막이 민주 책임제다. 법치와 민주 책임제가 정부 권력을 견제헤야 하지만 국가각 능력을 상실하면 이는 재앙이다. 시리아/이라크에서처럼 사회는 대혼란에 빠지고 만다. 중국의 성공은 강한 정부 구축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반면 정부 권력이 약화된 미국은 현재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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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my 2021-02-26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후에 자신의 이론을 철회하는 솔직함도 보여 주었지요.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그 점은 대단한거 같아요. 그건 비트겐슈타인도 마찬가지고요. 언급하신 책 <비판 인문학 100년사> 목차를 보니 흥미롭네요.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2-26 13:02   좋아요 0 | URL
자신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알려준 주장이나 책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런 면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 비트겐슈타인 모두 대단한 석학이라 생각됩니다. noomy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

scott 2021-03-05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오늘 태어난 개굴군 🐸 놓고 가여 ㅋㅋ

겨울호랑이 2021-03-05 21: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코로나19로 예년같이 않은 요즘이라 이번 해에는 경칩이 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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