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갖고 있던 믿음을 내려놓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뻔한 속임수를 알기 쉽게 설명해줬을 때도 그러하니,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닐까? 나는 이제 내가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대신 내 논리를 최대한 명확하게 밝히고, 상대방이 앞으로도 계속 충분한 정보와 대안적인 설명을 접한다면 언젠가는 훌륭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설명을 받아들일 거라고 바랄 뿐이다.

나는 교육과 인내 그리고 정직함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그중 무엇도 빠른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

요약하자면 항성처럼 살아 있지 않은 물질은 자연 법칙 외에 과학이 감지할 수 있는 그 어떤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단기적 목적을 실제로 가지고 있다. 바로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적은 특정 물리적 분자와 세포 복합체 그리고 신체에 한정되어 있으며, 장기적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 유기체의 진화가 가져온 결과다. 한 유기체의 생존과 번식은 수천 세대 앞의 미래를 내다보며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형이상학적 목표, 목적, 운명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실재한다는 경험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은 소설 《모비 딕Moby Dick》의 에이햅Ahab 선장을 통해 운명이란 개념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에이햅 선장은 자신의 인생이 운명에 의해 통제되며, 흰 고래 모비 딕을 잡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 고래를 사냥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믿는 듯 보인다.

목적론적 믿음을 갖는 사람들 중에는 종교를 통해 그렇게 된 사람이 많지만, 일부 사람들은 우주 그 자체가 어떤 신비로운 방식을 통해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미리 예정되어 있는 어떤 최종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기도 한다. 초기의 일부 진화론자들은 진화를 미리 운명 지워진 경로를 따라 펼쳐지는 과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믿음의 핵심적인 요소는 이렇게 진화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결국 인간이 무대에 등장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목적론은 본질적으로 목적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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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덕성도 그렇지만 용맹에도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넘는 순간 우리는 어느덧 악덕의 길 위에 서 있게 된다. 이 한계를 잘 알지 못하면 용맹에서 무모함, 고집불통, 어리석음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연약함에서 비롯된 과오와 악의에서 비롯된 과오를 엄격히 구별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자연이 우리 내면에 새겨 놓은 이성의 법칙을 의식적으로 거스르는 것이지만, 전자의 경우라면 바로 그 자연을 우리 쪽 증인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게 그 같은 결핍과 결함을 넣어 준 장본인으로 말이다.

공포는 참으로 기이한 정념이다. 의사들은 어떤 정념도 공포만큼 빠르게 우리의 판단력을 평정 상태에서 몰아내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공포 때문에 분별을 잃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아무리 침착한 사람이라도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끔찍한 혼란을 겪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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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9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0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원자력발전소는 '심층방어'의 개념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심층방어의 예로는 다중방호를 들 수 있습니다. 다중방호란 여러 겹의 방호벽을 설치하여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누출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국내 원전은 핵연료 펠릿, 피복관, 원자로 용기, 원자로건물 등의 방호벽을 갖추고 있지요. 아울러 심층방어와 관련하여 원전은 다중성, 다양성, 독립성의 기본적인 설계 특성을 가지고 사고 예방을 위한 각종 안전설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147


 에너지 그리드를 서로 쉽게 적용시킬 수 있는 유럽과 달리 전력망이 고립된 우리나라는 무탄소 에너지인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함께 하는 에너지믹스 추진을 고민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양 날개로 하되,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비한 전력 인프라 개선 및 청정발전 신기술 개발 병행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엄격한 안전성 평가를 전제로 가동원전 계속운전, 대형 원전 신규 건설 및 소형모듈언자로(SMR) 개발하고 건설하는 것을 모두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184


 어근선의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은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과 미래 에너지로서의 원자력을 말하는 책이다. 현재 가동중인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장치와 원자력 발전의 경제성과 현재 보유중인 기술수준, 안보적인 측면 등 여러 각도에서 바라봤을 때 원자력은 미래 에너지원이라는 것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 더해 해외 원자력 운영 현황 등 세계적인 흐름을 알기 쉽게 소개한 점은 교양과학서로서 책이 가진 장점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가볍게 지나가는 설명 안에는 문제에 담긴 심각성의 정도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대중 교양서로서의 한계점도 분명 함께 자리한다. 


 설계 시 당연히 고려해야 할 규모의 쓰나미를 무시하여 촉발된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원자로 외부건물이 두께가 얇아 내부에서 발생한 수소 폭발을 감당하지 못하고 훼손되었고요.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바다로 대량 유출되어 큰 피해를 일으켰습니다. 반면 TMI-2 원전 사고는 기기 고장 후 계측 미흡 등으로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면서 내부에서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려 원자로가 훼손되었습니다. 그러나 두께 1미터에 달하는 격납건물은 훼손되지 않아 대부분의 방사성 물질이 외부환경으로 누출되지 않았습니다.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84


 본문에서 저자는 원자력 발전소의 여러 사고에 대해 언급한다. 그중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에 대한 설명을 통해 원전사고가 원자력 발전소의 고유문제가 아닌 실행과정에서의 불가피성 - 정책의 오류 또는 자연재해 -을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원래 원자력발전소는 큰 문제가 없는데, 재난상황을 고려치 못한 현실이 사고원인이었다는 저자의 설명은 처음에는 그럴듯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의문을 갖게한다.  그렇지만, 모든 정책 결정의 문제가 결국 유한자원이라는 제약조건 하에서 BCA(Benefit- Cost Analysis)의 결과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과연 자연에 의한 위험을 원전의 위험과 분리할 수 있을 것인가. 발생확률이 낮더라도 그 결과가 치명적이라면, 이에 대한 고려가 설계단계부터 반영되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또한, 오염수 문제는 '하나의 과제' 수준이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 간접적인 '방사능 피폭'과도 같은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정리하자면, 일본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일본 정부의 표현으로는 '상정하지 못한') 대형 지진에 의한 쓰나미(지진해일)로 인해 원전의 냉각기기들에 전력을 공급하는 장치가 피해를 입어 작동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p94)... 도쿄 전력 자료에 근거하면 2호기에서 누출되는 고농도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물질의 양은 2011년 4월 18일 당시 330경 베크렐이라고 했고요. 누출된 방사성물질이 해양과 지하수에 더 이상 퍼지지 않게 하고 정화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입니다.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98


 후쿠시마 원전에서도 대량의 방사성 폐기물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 처분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에는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와는 달리,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는 대량의 오염수도 나왔다. 그 정화를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오염수를 정화한다고 해도 방사성 물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염수의 처리에는 필터나 방사성 물질의 흡착체 등을 사용한다. 오염수 중의 방사성 물질은 그들에게 옮겨갈 뿐이다. 오염수는 핵연료에서 녹아 나온 방사성 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그 처리가 진행되면 필터나 흡착제에 방사성 물질이 고농도로 축적된다. 그러한 매우 높은 방사능을 가진 폐기물을 어떻게 처분하느냐 하는 것도 이제부터의 큰 과제이다. _뉴턴코리아 편집부, <원자력 발전과 방사능> , p94


 2022년 7월 일본정부가 발생한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가 현실화된 우리에게 접하면서 이것을 일본정부의 부도덕함이나 일본원전 발전소의 불안정한 위치에서 발생한 위험과 원자력 발전의 고유한 위험의 구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과연 이러한 일이 반복될 것인가.   


[관련기사] 일본정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최종 결정. https://www.greenpeace.org/korea/report/23304/fukushima_wasted_international_law/


 우리나라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은 포화가 임박했으나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정책/제도적 준비에 아쉬움이 있는 것 같네요. 국내 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은 월성원전부터 시작하여 순차적으로 포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오게 된 것은 사용후핵연료 안전한 관리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162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회적인 사건이라면 방사성 폐기물 문제는 보다 장기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보다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다.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다루는데 저자는 본문에서 1978년 고리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처음으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부족했던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사실,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적절한 처리를 하고 있는 곳은 전세계적으로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시에,  원자력 발전이 가진 장기적이고 세계적인 위험요소이기도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의 입장은 어떠한가.


 핀란드는 1983년부터 부지 선정에 착수하여 2001년에 올킬로오토 부지를 최정 선정하였습니다. 현재 지하 450m 암반에 위치하는 심지층 최종처분장 건설 완료 단계이며, 2025년 경에 운영 개시가 예상된다고 합니다. 스웨덴의 경우는 1992년 부지 선정에 착수하여 2009년 포스마크 부지를 최종 선정하였고요, 현재 건설허가 심사 단계라고 하네요.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162


 우리나라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방폐물 관리법 제6조에 따라 고준위 방폐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5년마다 수립하는 법정 계획입니다. 제1차 기본계획은 제6차 원자력진흥위원회가 수립하여 2016년 7월 의결하였습니다.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164


  준비부족을 비판하면서도 저자는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그 전에 안전을 담보하는 운영프로그램과 파이로 처리기술(Pyro-processing)과 같은 기술분야에서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핵(核)의 안전성과 비확산성을 동시에 담기위한 연구개발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시간이 요구되고, 이러는 사이에도 방사성 폐기물은 꾸준히 생겨나 포화상태에 가까워진다는 점 등을 생각한다면 방사성 위험을 쉽게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사용후핵연료가 정말로 위험하고 후손들에 항구적인 멍에가 될까요? 만일 그렇다면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부지 확보에 대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관한 저의 생각은 원자력 안전 전문기관의 객관적이고 철저한 심사 및 검사 하에 사용자가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노화 관리 프로그램 등을 갖추면 미국의 원자력규제기간인 NRC가 발표했듯이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하는 방사성 폐기물은 습식 및 건식 저장으로 안전하게 저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_ 어근선, <다시 생각하는 원자력> , p161


 만약 파이로 처리기술이 성공하여, 경수로 사용후핵연료를 파이로 처리하면 폐기물 발생량이 약 1/20로 감소하며 사용후핵연료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라늄 및 초우라늄원소를 회수하여 고속로에서 연료로 재활용하고, 파이로 공정에서 발생하는 핵분열생성물만을 처분하면 된다. 그러면, 처분면적은 1/60~1/100 축소 가능하고, 고준위폐기물의 방사능 독성도 감소기간을 1/1,000으로 단축가능하다. 즉, 악티늄 핵종들을 회수하여 고속로에서 연소시킴으로써 처분대상 고준위 폐기물의 독성이 천연우라늄 수준으로 감소하는 기간을 30만 년에서 약 300년으로 단축 가능하다. _ 박정균, <원자력과 방사성폐기물> , p260/308


 만약, 성공적인 관리 프로그램과 폐기물 처리 기술이 우리가 그리던 시나리오대로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방사성 폐기물 뿐 아니라 수명을 다한 원자력 발전소 처리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위험은 절감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0으로 수렴할 뿐, 0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세대가 지불해야 할 비용을 결정하는 시점에 정작 그들의 의사는 결정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세대간 전가 비용과 위험이 높은 원자력을 미래 기술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기본적으로 문제는 위험성을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지질학적으로 안전한 곳에 위치시키고 현재의 공학적 최고 기술과 방법으로 건설된 지하처분장으로부터 허용 가능치를 넘는 방사성핵종이 빠져나올 가능성은 매우 작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매우 쉽다. 그렇지만 그러한 가능성은 존재한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분명한 것은,  그 대답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위험과 혜택간의 균형에 대해 그리고 다른 것과 상대적으로 비교되어 느껴지는 위험성의 크기에 대한 어떤 합의 같은 것에 결국 달려 있다. 이러한 정책의 문제 외에도 세대간 형평성과 관련된 문제도 있다. 이는 '이 세대의 우리가 값싼 전력의 혜택을 누리고 있고 그로 인해 다가올 세대에게 위험과 재앙을 만들어 준다'는 간단한 사실로 귀결된다. 이삼십년 동안 폐기물 처분을 연기한다고 결정하게되면, 우리는 심각한 위험뿐 아니라 난처한 기술적 문제까지도 후세에게 물려주게 될 것이다. _ 콘라드 크루우스코프, <방사성폐기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 p223 


 원자력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성과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원자력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이 있다. 어느 정도 이유가 있는 설명이다. 대체에너지로 언급되는 태양력, 풍력, 수력 등은 발전 장소, 저장 등의 이유로 완전한 대안이 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산업용 발전이 아닌 가정용 발전 등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에너지 대체는 대기업 중심의 에너지 산업을 해체하고 小國寡民(소국과민)이라는 보다 생태적인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중소 수력 발전은 개별 발전 시설의 발전량은 많지 않지만, 설치할 수 있는 장소가 많기 때문에 발전 가능한 자원량으로는 상당한 양이 된다. 일본 환경성의 '재생 가능 에너지 잠재력 조사'에 의하면, 일본의 중소 수력 발전의 자원량은 하천 부분에서 1,650만 KW, 농업 용수로에서 32만 KW에 이른다. 표준적인 원자력 발전소의 10기가 넘는 발전 능력이 여러 곳에 감추어져 있는 셈이다. _뉴턴코리아 편집부, <전력과 미래의 에너지> , p94


 새로운 녹색 에너지는 중앙 집중식이 아닌 분산 방식을 요구한다. 태양은 모든 곳에서 빛나고 바람은 모든 곳에서 분다. 즉 건물 옥상이나 지형을 따라 수백만 개의 마이크로 발전소를 설치하면 어디에서나 수확할 수 있는 것이다. 화석연료에서 녹색 에너지로의 전환은 비유적으로든 문자 그대로든 "파워를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과 같다(p55)... 태양광 및 풍력 에너지 수확 기술의 비용 하락으로 인한 에너지의 민주화는 전기 협동조합의 조기 채택과 더불어 화석연료 분야의 인력을 붕괴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발전 및 전기 유틸리티 산업을 뒤흔들며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하고 있다. 전 세계의 거대 전력/전기 유틸리티 회사 중 다수가 화석연료 산업에서 빠르게 분리되어 수백만의 협동조합에서 생산되는 녹색 에너지를 관리하는 한편 고객을 위한 에너지 서비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있다. _ 제러미 리프킨, <글로벌 그린 뉴딜> , p57/226


 이에 대해, 원자력 발전의 저렴한 발전단가를 이유로 대체에너지의 경제성 없음을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대해서는 현재 원자력 발전단가에 포함되지 앟는 방사성폐기물 산정 비용, 원자력 발전소 폐쇄 비용도 함께 고려한다면 쉽게 원자력발전을 경제성있는 생산방식이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비용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어 발전단가에 직접 넣기 어렵다면, 현재까지 산정가능한 금액이라도 충당금 항목으로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고리1호기가 2017년 6월 영구 정지함에 따라 5년 정도 냉각기간과 단반감기 핵종들이 소멸하기를 기다린다. 이후 원자로 해체 준비를 완료하면, 사용후핵연료를 인출하여 다른 부지에 격리 저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소만 있을 뿐, 원전해체 시 이를 보관할 중앙저장시설 등의 대안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제 202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원전해체 사업에 돌입할 시점이 된다. 격납용기, 열전달계통 등 발전소 장비는 전부 꺼내 폐기하거나 제염작업을 해야 한다. 각종 펌프류, 터빈 등 장비들을 모두 제거하게 되면, 본격적인 원전 구조물 해체 철거를 하게 된다. 발생할 폐기물량도 엄청난데, 약 6,000톤 규모 폐기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사업기간도 10년 이상 소요될 것이다. 투자금액도 약 1조 원 수준이 소요될 것이다. _ 박정균, <원자력과 방사성폐기물> , p259/308


 이와 함께 아래 기사는  '친환경 에너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국내 보유 원자력 기술의 활용의 길이 쉽지 않음도 보여준다. 방사성 폐기물까지 완전히 처리할 수 있는 완벽한 계획과 기술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친환경 기술로 인정치 않겠다는 유럽의회의 결정은 향후 변경될 수 있겠으나, 적어도 현재까지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관련기사] 까다로운 조건 붙은 유럽 '친환경 원전'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86030_35744.html


 에너지 안보와 관련한 원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상황에 대한 대비도 좋지만, 동북아에 평화가 정착되어 국제적인 협력을 통한 대체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이 가능하다면 원전에의 지나친 의존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에게 알려진 원자력 발전의 이면에는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음도 함께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원자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더불어 검토해 볼 것이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제안한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이다. 한국-북한-중국-몽골 4국 합작 재생에너지건설 프로젝트로, 4국이 합자해 드넓은 몽골사막에 거대한 태양광, 풍력 발전시설을 하고, 생산한 전기를 4국이 나누어 쓰는 안이다. 문제는 송전선이 북한을 통과해야 하고, 먼 거리를 전송하느라 전력 손실이 크다는 것이 단점이다. 정치적 해결만 가능하다면 한국에게 매력적인 프로젝트다. _ 박정균, <원자력과 방사성폐기물> , p278/308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한국경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한국경제재건계획(네이산 보고 Nathan Report)'는 당시의 여건을 고려해서 교통에서는 철도 중심, 에너지 발전에서는 수력 중심의 정책을 조언했다. 한국경제발전은 이같은 경로를 따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매우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현재 시점의 최적화'가 반드시 미래의 최적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점은 현재 우리의 원자력 발전에 있어서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다소 앞뒤 없었지만, 원자력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페이퍼를 이 정도로 갈무리한다...


 한국이 장래 최대한의 외화를 유지하여야 할 장기적 필요성에 비추어보아 화력발전보다도 경비의 이점이 없어질 한계까지 수력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발전의 요구에 대비하면 하류(河流)의 특징으로 인하여 전적으로 수력에 의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고정 설비 건설의 한계 내에서 최대한의 수력 발전과 최소한의 화력 발전을 도모하는 데 일반적 목표를 두어야 한다. _ 조영준 외,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진단과 처방 : 네이산보고(1954)의 재발견> , p433


 도로 복구 계획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남한에 상당한 인구를 가진 도시 중심지의 수가 얼마 안 되고, 극히 단거리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로 수송에 의하는 것보다 철도나 수로로 수송하는 것이 더욱 경제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여서는 안 된다. 극소의 도시 지역은 철도나 수로의 편익이 없다. 이러한 경우에도 도로 교통량은 그리 크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후에 있어서도 사용할 수 있는 서구 표준에 달하는 도로망의 발전과 유지는 현재 또는 장래에 예견되는 교통량에 비추어 그리 정당화되지 않는다. _ 조영준 외,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진단과 처방 : 네이산보고(1954)의 재발견> , 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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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겨울호랑이님-미래에너지~를 읽고]이런 저런 생각들
    from 뒤죽박죽 뒹굴뒹굴 2022-08-23 06:32 
    원자력을 전공했다.90년에 안면도사태가 있었다. 90년 11월 부터 93년 3월까지 안면도 핵폐기물처분장 반대가 있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길을 막고 무언가 불태우는 화면도 뉴스에 나왔던 거 같다. 94년에는 굴업도에 처분장을 지으려다가 무산되었다. 지반이 위치가 좋지 않다고 주민이 아홉명이라고 처분장을 만든다니 말이 되냐는 반대여론에 선배 언니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좋은 입지는 아니지만, 기술로 보강할 수 있어. 돈이
 
 
거리의화가 2022-09-08 0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2관왕 축하드려요^^
늘 현재 중요한 문제를 끌고 와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9-08 11:48   좋아요 2 | URL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항상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

mini74 2022-09-08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 2관왕 !당선 축하드려요.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22-09-08 11:49   좋아요 1 | URL
미니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세요! 작년 추석 즈음에 미니님 글을 읽고 이상 시 논문을 봤던 것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난 듯합니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

서니데이 2022-09-08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9-08 22:5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거듭 감사드립니다. 하루 마무리 잘 지으세요! ^^:)
 

인공지능이 문자 그대로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지는 경우와(이 경우 인공지능은 자아인식이 가능하다.) 인간과 동일해 보이지만 의식이 없는 경우, 인공지능 특이점의 본성은 완전하게 다를 것이다. 만약 인간과 같은 내적 인식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에 비추어볼 때 어떤 종류의 ‘본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의식을 가진 존재와 의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존재는 보다 근본적인 면에서 차이를 가지게 될 것이다.

나는 초인공지능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 내적 인식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과 실제로 내적 의식을 가지는 대상을 원리적으로 구분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대상이든 비생물학적 대상이든) 어떤 존재자가 실제로 의식적 경험을 가지는지를 원리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질문 자체를 무효화할 수 있다는 결론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질문은 전적으로 유효하다. 로봇이 모든 우주를 개척하더라도 그 개척자가 문자 그대로의 ‘의식’을 가지지 않는 한 내적 경험의 부재는 본질적 가치의 축소를 의미할 뿐이다.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의 우생학eugenics은 이런 욕망을 과학의 지위에 올려놓으려는 기획이었다. 그는 문명으로 인해 자연선택이 사라진 상황에서 인위선택을 통해 인간의 자질을 개선하고 사회적 진보를 이루려 했다. 그의 기본적 전제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 특성은 유전되는데 이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인간의 사회적 성공 능력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전적 요인을 통제하여 인간의 타고난 질을 개선해야만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생학적 주장들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에 관여하는 어떠한 생물학적 본성도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이념과 가치를 탑재한 과학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편견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우생학적 사상은 20세기에 미국과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구체화되었고 독일 나치에 이르러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가장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형태인 우생학적 조치로 귀결되었다. 이제는 국가 주도의 극단적인 우생학은 폐기되어 사라졌다.

사회는 개량될 필요가 있다는 믿음과 유전학의 잘못된 만남은 개인의 책임의식을 훼손하고 은밀한 형태의 우생학을 부추길 수 있다. 언론을 통해 유전자에 의해 지능이나 행동이 결정된다는 연구결과에 많이 노출될수록 유전자형을 개선하고 싶은 욕구가 커질 것이다. 그래서 본성과 양육에 대한 논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스포츠 소비의 결정에 외부집단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외부집단은 문화나 민족의 경우처럼 미묘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고, 친구 손에 이끌려 지역 스포츠 행사에 참여하는 경우처럼 노골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한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는 대다수의 사람들(하지만 모든 사람은 아니다!)은 생활방식을 결정할 때 그 집단의 선호도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어느 스포츠를 선택해서, 그것을 얼마나 즐기고 훈련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 역시 예외가 아니다.

"사회문화적 요소는 전문성의 발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데도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 한 사회가 특정 스포츠 종목에 얼마나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가에 따라 성공 달성 여부가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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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 - 평등을 잉태한 자유의 원년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2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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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사가 조르주 르페르브 Georges Lefebvre는 두려운 심리가 ‘방어의지‘와 ‘처벌의지‘를 불러일으킨다고 보았다. 그래서 혁명기 사람들은 공권력이 저지를 ‘폭력‘에 스스로 방어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무장하게 되었으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을 직접 처벌하고 싶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혁명기 민중의 무장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무장한 민중 때문에 무질서 상태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왕이 동원하는 무력에 온전히 대응하려고 민병대를 조직한 부르주아 계층의 대응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_ 주명철, <1789> , p79/300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2권 <1789-평등을 잉태한 자유의 원년 Liberte>의 주제는 앙시앵레짐(Ancien Regime)의 붕괴(崩壞)다. 우리는 2권을 통해서 ‘문화적 앙시앵레짐‘의 파괴로 혁명의 배경이 만들어졌다면, 1789년에 일어난 2개의 사건 - 바스티유 함락, 인권선언 - 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바스티유 함락은 ‘정치적 앙시앵레짐‘의 끝장을, 인권선언의 승인은 ‘사회적 앙시앵레짐‘의 종언을 알리며 이제 구체제는 부활하기 어려울 정도로 몰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0월 5일과 6일에 혁명이 다시 한번 폭발했다. 그리고 파리가 100여 년 전에 잃었던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되찾았다. 파리 아낙네들이 베르사유로 행진해 가지 않았다면 왕은 헌법과 인권선언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10월 5일까지 거부권으로 버티던 왕은 마침내 국민의 의지에 굴복하게 되었다. 이로써 왕과 국민 또는 왕과 국회 사이의 무게중심이 국민 편으로 더 많이 이동했다. 국회 안에서도 좌파가 점점 두드러진 세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양원제 의회, 절대적 거부권을 주장하는 파는 혁명을 세 달 만에 끝내고 싶어했지만 혁명이 다시 한번 폭발해 누구 하나 앞날을 계획대로 만들어가기 어렵게 되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일이 있다. 앙시앵레짐이 죽어가면서 이제 더는 회생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_ 주명철, <1789> , p289/300

그렇지만, 앙시앵레짐의 붕괴까지 단계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누구보다도 반(反)혁명의 선두에 서 있던 것이 루이16세였고, 그를 둘러싸고 특권을 놓치 않으려는 1,2신분의 저항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실제로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제3신분의 요구를 짓밟으려는 반혁명 세력의 시도가 있었기에 이 시점에서 혁명은 분명 위태로워 보였다.

왕은 종교인과 귀족이 제3신분(‘평민‘)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에게 충성해준다면 ‘평민‘을 고립시키고 원래 목적대로 전국신분회의 기능을 되살려 체제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계산했다. 그리하여 그는 6월 23일에 군대를 집결시켜 힘을 과시하고 회의실에 일반일을 들이지 않은 채, 다시 말해 평민 대표들을 고립시킨 채, 그날을 위해 준비한 각본을 국무대신으로 하여금 대표들에게 읽도록 했다. _ 주명철, <1789> , p51/300

그러한 위기상황에서 결국 절대군주와 특권층의 반격을 좌절시킨 것은 국회로 표현되는 제3신분의 일반의지였다. 절대군주로부터 입법권을 국회로 가져오면서 역사의 흐름은 바뀌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불온한 기운의 반란‘이 ‘새로운 시대의 혁명‘으로 명분을 얻으면서 제3신분의 행동은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혁명은 점차 가속화되었다.

루이 16세는 브로이 원수가 지휘하는 병력 2만 명을 베르사유에 집결시켰음에도 그들에게 명령하여 국회를 해산시키지 않았다. 브로이 원수는 기꺼이 무력을 동원할 준비를 갖추고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루이 16세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까?(p60)... 제3신분이 국회를 선포하고 주도하면서 왕의 의지를 꺾은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더욱이 그들은 ˝루이, 당신만 신성한가? 우리도 신성하다˝라는 듯이 의원의 면책특권을 결의했다. 이로써 국회가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높였고 왕은 즉각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혁명‘은 수많은 사건과 함께 흘러간다. 전국신분회의 제3신분이 국회의 ‘평민‘이 되었고, 왕처럼 ‘신성한 존재‘가 되면서 혁명의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로써 정치적 앙시앵레짐은 6월 23일로 죽었다. _ 주명철, <1789> , p61/300

‘프랑스 혁명=바스티유 함락‘이라는 공식을 떠올릴 정도로 바스티유 함락이 프랑스 혁명에서 갖는 의미는 상징적이다. 그것의 실상이 생각만큼 큰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14세의 절대정으로의 회귀를 원했던 루이16세에게 입헌군주라는 현실을 알려주었다는 점과 혁명의 소식을 지방으로 널리 전파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대혁명의 과정에서 이는 하나의 분기점이었음이 분명해진다.

왕은 충성스러운 의원들을 보면서 ˝국회는 왕의 의도와 바름을 충분히 알았을 테니 언제라도 왕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확인해주었다. 이 말을 들은 의장은 ˝국회는 오래전부터 국왕과 국민의 대표 사이에 아무런 중개자가 끼어들지 않고 직접 소통하기 바랐다˝고 강조했다. 왕이 베르사유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기뻐했다. 왕이 제대로 걸음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여인은 무릎을 꿇고 왕의 발을 껴안으려 했다. 사방에서 ˝왕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베르사유 궁의 마당으로 들어설 때까지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들었다(p131)... 바스티유가 정복된 결과 왕이 의도했던 일은 물거품이 되었다._ 주명철, <1789> , p132/300

대공포의 물결이 프랑스를 휩쓸고 지나가는 기간을 7월 20일부터 8월 6일로 인식한다고 해서 그 기간의 앞뒤로 도시나 농민이 조용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대공포의 원인이 모든 곳에서 한결같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세 가지 원인 가운데 하나 이상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영주권에 대한 농민의 반발, 도적떼에 대한 두려움, 귀족과 그 하수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농민은 소문을 듣고 약탈자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무장하고 자신들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직접 처벌하려고 찾아다녔다. _ 주명철, <1789> , p168/300

본문에서는 바스티유 함락과 함께 인권선언의 승인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여러 의원들의 치열한 논쟁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이를 감상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리도록 하자. 다만, 여기서는 인권선언에 영향을 준 계몽사상과 관련하여 <프랑스 대혁명의 철학> 리뷰 URL을 표시하는 것으로 넘기도록 하자.
<프랑스 대혁명의 철학> 리뷰 : https://blog.aladin.co.kr/winter_tiger/13794501

먼저 정치적인 앙시앵레짐을 무너뜨리고 나서 사회적 앙시앵레짐을 무너뜨린 지 보름 뒤에 나온 인권 선언은 계몽사상을 반영했다. 그러나 계몽사상을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계몽사상가들이 똑같은 관념을 똑같이 주장하지도 않았으며 평생 서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각각 다른 시기에 주장한 내용까지 18세기에 나온 것이라고 해서 계몽사상으로 지징하는 것은 분명 무리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계몽주의자들이 앙시앵레짐의 시대의 자유(일종의 특권)와 다른 종류의 자유(모든 구성원의 자유)를 주장하고, 게다가 앙시앵레짐 시대의 신분사회에서 부정하는 사회적 평등을 주장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_ 주명철, <1789> , p203/300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2권 <1789-평등을 잉태한 자유의 원년>은 이처럼 앙시앵레짐의 붕괴를 다룬다. 정치적 앙시앵레짐의 붕괴로 국회의 권위를 높이고, 이어서 사회적 앙시앵레짐의 붕괴를 통해 특권을 소멸하여 인권선언을 채택하는 일련의 과정안에서 우리는 프랑스 대혁명의 큰 흐름과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 혁명이 채 끝난 것은 아니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8권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반혁명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직 절대왕권의 꿈을 못버린 루이16세와 특권층의 불만이 아직 채 사라지지 않았던 시기, 같은 시점 국회는 이미 이런 절대정과 ‘헤어질 결심‘을 굳힌 상태에서 이들의 불안한 동거는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인권선언에서 기요틴(guillotine)으로 가는 제2의, 제3의 혁명은 어쩌면 이때부터 예정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호한 상황을 피하고 시간을 지체시키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만일 당신이 우리를 여기서 내보낼 임무를 띠고 왔다면, 당신은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왜나하면 오직 총칼의 힘을 빌려야만 우리를 이 자리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모든 의원이 미라보의 말을 따라 외쳤다. ˝이것이 국회의 결심이다.˝ _ 주명철, <1789> , p5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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