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행위, 즉 에크리튀르ecriture의 원초적인 형태가 여기에 잘 표현되어 있다. 처음에 선의 형태가 있었다. 어느 순간 아마도 감수성도 풍부하고 지적 호기심도 왕성한 어떤 사람이 그 형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거기에서 의미를 찾아낸다.
의미는 형태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문자를 새긴 사람들이 반드시 그 의미를 알았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거울문자라고 하는 좌우가 뒤바뀐 문자가 이따금 발견되는 것으로도 알 수가 있다. 그 문자는 의미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선 그 ‘구불구불한’ 난해한 형태로 사람들을 끌었고, 사람들은 점차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독점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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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밀이 생각한 liberty에 대한 최대의 대립자는 society였다. 정치 권력이 liberty의 대립자였던 시대는 선진국 영국에서는 몇 차례의 정치 혁명을 거친 후 일단 지나갔다. liberty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society를 생각해낸 것은 밀의 독창적인 발견이며 시대를 앞서 가는 선각자로서의 업적이기도 했다.

요컨대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본 고유어로 번역하겠다는 것이 후쿠자와 유키치가 세운 번역의 대원칙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평이한 일본어’로 번역해서 완성되는 번역문이 제대로 된 일본어 문장이며, 번역자의 사고도 그런 일본어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번역 대상인 원서가 새롭고 이질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경우에는 종래의 일본어 문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술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번역자는 ‘평이한 일본어’를 소재로 단어의 조합을 궁리하고, 문맥상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근대’의 이른바 이면적 의미에 있는 셈이다. 이면적 의미란 전문가의 정의나 사전적 의미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이런 표면적인 의미가 확립되기 이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번역어 ‘근대’가 본질적으로 떠맡고 있는 의미에 해당한다. 그것은 단어의 의미라기보다도 단어의 ‘효과’라고 하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단어의 의미는 ‘철학자와 심미학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어가 먼저 있고, ‘철학자와 심미학자’는 그 단어의 일상적 의미를 토대로 하여 그것을 상황에 맞춰 추상화하고 한정하여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 한정된 의미를 번역어로 받아들인 다음 결국 그것이 완성된 의미로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그 순서를 반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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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가 중세와 진정으로 공유하는 것은 결국 탐욕스러운 백과사전적 다원주의다.  - P147

무엇보다도 다양한 반복의 유형이 예술적인 전개 방식의 일정한 특징을 만들어 낸다는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바로 그러한 유형에서 출발하여 가치 기준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반복의 미학은 반복하는 텍스트의 전개 방식에서 보이는 기호학을 전제한다.  - P223

백과사전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론적으로 중요한 두 가지 구별을 하게 된다. 우선 자연 언어와 모델 언어 사이의 구별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의미론의 이론적인 메타언어와 대상 언어 사이의 구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 P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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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광고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3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효정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기호란 무엇인가.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 1932 ~ 2016)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른 무엇을 대신하기 위해 제기되는 또 다른 관계와 조건들. 대상과 기호 사이의 관계가 기호의 개념이라면, 대상과 기호의 관계 속에서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의미는 관계 속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기호가 다른 무엇을 대신하여 무엇인가를 제기하기 위해 사용되는 인간의 책략이란 사실을 이용할 것이다. 이 책략은 다양한 기능으로, 이를테면 세상의 사물과 상태를 지시하기 위해, 질서를 세우기 위해, 희망을 표현하기 위해,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른 기호에 대해 말하기 위해 그리고 때로는 미학적 혹은 예술적, 시적인 쾌락이라 다양하게 불리는 기쁨에 대한 일종의 혼합된 지식을 자극하기 위해 이용된다. _ 움베르트 에코, <예술과 광고> , p386

기호의 개념은 말이든 구름이든 단추든 그것들을 정의하기 위해 철학적으로 제기된다. 일반 기호학이 몰두하는 것은 자연의 속도, 인공의 속도, 기능적인 속도가 아니다. 그것이 몰두하는 것은 바로 매개관계이며, 조건들이다. 이 조건들을 토대로 한 해석 활동은 어떤 대상이라도 기호학적 실체로 인지할 수 있다. 기호를 설정하는 기호학 담론 이전에 기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_ 움베르트 에코, <예술과 광고> , p486

에코는 본문에서 기호를 거울과 비교한다. 원본(대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가상성과 축소의 세계가 기호의 세계라면, 기호의 세계는 허상의 세계다. 그렇지만, 동시에 기호의 세계는 허상의 세계이기 때문에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진실의 파편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기호는 다른 의미에서 대상과 다르지만, 비슷한 조금은 다른 독자적인 생명을 가진 것처럼 생각된다.

거울은 원본보다 더 진실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기호 작용은 광학 반사를 보급시키고, 양식과 체계, 개념과 순수한 내용으로 축소할 수 있을 뿐이다. 두 개의 영역에는 첫 번째 영역은 두 번째 영역에서 문턱이 된다. 통과 지점이 없으면, 변형된 거울의 제한된 경우는 이쪽에 있어야 할지 혹은 저쪽에 있어야 할지 결정해야 할 순간에 파멸의 지점이 된다. 반사의 세계는 가상성에 대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현실이다. 기호 작용의 세계는 현실에 대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가상성인 것이다. _ 움베르트 에코, <예술과 광고> , p55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언어와 글쓰기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진리의 유일한 보증인이며, 기호들은 서로를 해석한다... 허깨비 유령 같은 기호 덕분에 우리는 피와 살을 가진 파라오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호는 눈의 모험과 오늘날 부서지기 쉬운 미라를 만지는 손의 모험을 굳건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_ 움베르트 에코, <예술과 광고> , p115

그리고, 이러한 기호들이 문장과 문단, 단원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가면서 각기 공명(共鳴)작용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기호들은 또 다시 새롭게 관계를 맺어가는 것은 아닐까. 움베르트 에코의 <예술과 광고>안의 짧은 여러 텍스트 중에서 기호학과 관련한 내용만을 추려본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전문적이고, 학술서라고 하기에는 여러 주제가 한데 모여 있는 본문 속에서 에코와 함께 기호학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퍼스로 돌아가면, 기호(혹은 표상 representamen)와 즉자적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 관계의 모델은 해석소가 단지 동의어일 경우에만 순수한 등가성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정의들이 연결된 연쇄 고리인데, 이때 각각의 정의는 또 다른 정의를 수정하고 확대한다. 기호는 늘 더 많은 무엇인가를, 다양한 환경과 맥락에서 다른 무엇인 것이다. 하나의 용어는 하나의 명제도 들어 있지 않은 비어 있는 형식이며, 퍼스가 말하는 의미론은 그의 상관 관계의 논리학의 지배를 받고 있다. _ 움베르트 에코, <예술과 광고> , p498

특수한 기호학들은 인문학의 고유한 특징을 늘 지니고 있다. 특수한 기호학은 상호 해석 체계를 기술하는데, 이 체계가 바로 기호의 다양한 체계인 것이다. 그러나 일반 기호학은 철학적인 제스처를 통해 기호의 일반적인 개념 자체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 볼 때 왜곡된 현상에 대해 표준화된 방식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_ 움베르트 에코, <예술과 광고> , p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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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4-26 1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열린책들 에코 전집을 3권 빠지게 갖고 있고, 여타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이란 책은 모조리 갖고 있습니다만...읽은 책이라곤 엔날 새물결 출판사에서 움베르토에코 라이브러리로 출간된 5권과 예전에 열린책들 및 타 출판사에에서 중구난방으로 출간된 에세이집 10권 그리고 장미의이름-전날의 섬-푸코의진자 소설이 전부입니다. 물론 열린책들 에코 라이브러리가 열린책들에서 이전에 출간했던 에세이류를 모아 전집을 냈지만 일부 책들은 전집에 새로이 부가된 것들인데 전혀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열린책들 에코 라이브러리는 엔날 새물결에서 나온 시리즈를 포함하지 못한 듯합니다. 어쨌거나 에코를 전에 어느 정도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리뷰도 쓴 게 없고 지금은 예전에 읽은 것들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아 다시 읽어야 하는데, 이 전집을 언제 읽을지..ㅎㅎ 프로이트 전집도 못읽고 있는데요..ㅎㅎ 에휴~~
호랑이 님...정말 읽는 편수와 리뷰...대단하십니다! 책만 읽으시나욤??ㅎㅎ 전 드라마 보고 그림 그리고...전시회 좀 보고...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어요...ㅎㅎㅎ

겨울호랑이 2023-04-26 21:25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yamoo님께서 예전에 이미 많은 독서를 하시고 이제는 영역을 넓혀서 미술을 지금 하시니 책 읽는 시간이 당연히 부족하신 것이고, 저는 아직 독서가 많이 부족해서 아직 읽고만 있습니다... ㅜㅜ 어느 정도 책을 읽으면 일정 수준에 오를 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보니 그보다는 미진한 부분이 더 많이 느껴지고 그래서 더 읽게 되네요... 책 읽는 것도 좋지만, 책만이 사람의 내면을 채우는 방편은 아니기에 yamoo님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게 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저도 음악, 미술 등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yamoo님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비록 플라톤이 도덕적인 것das Sittliche이라는 특정한 개념과 유리적인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경험과 교육을 통해 습득되는 에토스로서의 덕에 대한 그의 이론은 그의학파의 경계를 넘어 멀리 후대의 모든 성찰들을 규정했고, 철학의한 분과 학문으로서의 "윤리학Ethik"이라는 개념이 정착되도록 만들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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