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 - 문명과 문화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
외르크 피쉬 지음,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엮음, 안삼환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 푸른역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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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의 경향들은 프랑스어의 경우와 같다. ‘문명‘은 ‘문화‘의 특히 고도로 발달된 형태로서 둘은 동의어로 사용되며, 이 용법은 모든 사회과학에서 그야말로 보편적으로 전파된다.(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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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글 바로 쓰기 1 우리 글 바로 쓰기 1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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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글이 말과는 다르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을 글자로 적어놓은 것이 글일 터인데, 글이 말에서 멀어져 말과는 아주 다른 질서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한 현상이다. 더구나 말을 소리 나는대로 적게 되어 있는 우리 글이 우리 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 있다면 아주 크게 잘못된 일이다.(p38) <우리 글 바로쓰기 1> 中


 이오덕(李五德, 1925 ~ 2003) 선생은 <우리글 바로쓰기 1>에서 우리의 말과 글이바르게 쓰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지적한다. 구술문화의 전달 수단인 '말'과 문자문화의 전달 수단인 '글'이 오늘날 서로 갈라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의 원인을 사회구조에서 찾는다.


 후미, 제국, 원위치 같은 말은 일반 사회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다. 이런 말을 쓰는 사회에서는 이런 말 대신에 쉬운 말을 쓰게 되면 곧 사람다운 분위기가 감돌게 되어 그 특수한 사회의 억압구조가 뒤흔들린다. 군대사회고 학교사회고 관료사회고 모든 비민주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특수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렇게 밖으로 위세를 보이는 중국글자말이나 서양말을 많이 써서 그 반인간체제와 체제의 꼭두각시로 움직이는 사람을 지키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특수사회의 말이 오랜 세월 쓰이는 동안 일반사회에 번져가는데 있다.(p258) <우리 글 바로쓰기 1> 中


 저자에 따르면 우리 말의 오염은 사회구조에서 비롯된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고, 특권층의 언어를 일반에서 받아들여가면서 점차 우리 말과 글이 오염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특수언어가 우리말이 아닌 외국에서 지식과 함께 전해진 외래어라는 점이다.


 우리의 입말에서는 다로 끝나는 말이 극히 드물며, 이런 문체는 20세기 초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일본에 가서 배워온 것이라 나는 알고 있다. 일본말과 일본소설 문장의 끝이 모조리 다(た)로 되어 있다. 글이 말에서 떠나 있는 것이 글의 비민주성이다.(p238) <우리 글 바로쓰기 1> 中


 저자는 외래어가 늘어가면서 우리 말과 글이 분리되는 문제점을 언어 영역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말과 글의 분리문제는 언어를 넘어 우리 사회의 문제로까지 확대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 우리 말과 글을 같이 바로 써야함을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강조한다. 그렇지만, 저자가 무조건 외국것을 배척하는 것만은 아니다. 책 속에서 외국것을 받아들이되 이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나갈 것을 강조한다. 


 어떤 사람의 어떤 말도 그 생각과 하나로 붙어 있는 것이고, 생각이 말로 나타난 것입니다. 지식인들의 말과 글이 백성들의 말이 아니고 남의 말글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이 남의 것, 즉 백성들 속에 살면서 그 삶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 책에서 얻은 지식이요 관념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관념이고 사상이고, 그런 것이 인간의 훌륭한 지혜와 노력으로 세우고 쌓아놓은 과학인 이상 그것을 배우고 참고하는 일은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지식이나 관념만으로 자기의 관점을 세워나갈 때 문제가 일어납니다. 책에서 얻은 사상은 자기의 삶에서 몸으로 가지게 된 생각과 하나로 될 때 비로소 그 사상은 제것으로 되지요. 제것은 없고 지식만 가지고 제것인 양 여긴다면 그것이 문젭니다.(p306) <우리 글 바로쓰기 1> 中


 요약하면, <우리글 바로쓰기 1>에서 저자가 바라본 우리 말의 문제는 외국으로부터 무분별하게 들어온 외국어와 일본어, 한자가 권력층에서 사용되고 일반 민중에게 널리 사용되면서 점차 말과 글의 사용이 분리되고 있는 현 상황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사회가 분열되고, 지식과 실천이 따로 움직이는 오늘날의 현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의 시작으로 저자는 우리 말과 글을 바로쓰기를 제안한다. 


 <우리글 바로쓰기 1>에서는 이러한 진단 위에서 우리 일상생활에서 잘못 쓰이고 있는 말의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많은 아름다운 우리 말 사용이 소개되지만, 그 중에서도 다음과 같이 '때'를 나타내는 표현 속에서 우리는 민족 전통의 시간관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말의 때매김은, 이적(현재), 지난적(과거), 올적(미래)에 다 나아감을 나타내는 때로서 '-고 있다' '-고 있었다' '-고 있겠다'가 있을 뿐이지, "지난적끝남때"(과거완료시)라고 하여 "먹었었다"고 쓰는 말법이 없다. 물론 "가고 있었었다"라는 "지난적나아가기끝남때"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p205)... '지난적' 때로 써야 할 말조차 이적 때로 나타내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들이 말하는 심리인데, 여기에 어찌 "머리를 주물렀었다" "기분이 근사하였었다"란 말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p208) <우리 글 바로쓰기 1> 中


 이미 지나간 과거나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구분하기 보다는 되도록 '현재'에 맞춰서 표현하는 특성 속에서 현재를 중요시했던 선조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말 안에 생각이 담겨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떤 사람이 하도하도 몬 살아서 자속(자식)은 많고 묵고 살 길이 없는 기라. 넘우(남의) 집을 살아 봐도 안 되고, 품팔이를 해봐도 안되고, 나(나이) 많은 부모 있제, 어린 자슥들은 많제. 묵고살 길이 없는 기라.(P208) <우리 글 바로쓰기 1> 中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論語 學而篇 > 中


 위의 글은 <우리글 바로쓰기 1> 속에 소개된 위의 전통설화 중 일부로, 정겹게 느껴지는 표현이다. 반면, 뜻 글자인 한자로 된 아래의 글 속에서는 표현된 기쁨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중국에서 성조(聲調)가 발달한 것은 이러한 표의문자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하나의 방편은 아니었을까. 또한, 이러한 차이를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한국음식과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중국음식의 차이에서도 떠올려본다. 


[그림] 중국 4성조(출처 : 위키백과)


 <우리글 바로쓰기 1> 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말과 글을 바르게 써야하는 이유와 함께 말 속에 담겨진 우리의 전통문화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이번 글을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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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5 2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20대 시절에 읽다가 말았는데~이오덕 선생님 생애를 만화로 본적이 있는데 삶자체가 감동이더군요!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18-10-05 21:46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카알벨루치님께서는 정말 많은 책을 읽으셨습니다.^^:) 태풍으로 많은 비가 내리지만, 카알벨루치님께서도 마음만은 평안한 주말 되세요!

북다이제스터 2018-10-05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쩜....ㅎㅎ

겨울호랑이 2018-10-05 21:24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 댓글이 참 시적입니다.ㅋㅋ

2018-10-05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6 0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18-10-06 0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고맙습니다. 저도 이오덕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10-06 08:05   좋아요 3 | URL
bookholic님께서 좋게 읽어주셔서 저도 기쁩니다. 말에 담긴 이오덕 선생님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접하고 보니, 진정한 교육자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8-10-06 1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두고 두고 봐야할 책이라 생각해요
저도 소장만! 하고 있습니다ㅎㅎ
겨호님께 선수를 뺏겼네요~ㅎ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18-10-06 12:12   좋아요 3 | URL
말씀처럼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제 글을 보면서도 계속 뒤적이게 되더군요. 혹시 잘못된 점은 없는지 마치 거울 같은 책이라 여겨집니다. 먼저 읽은 게 중요하겠습니까. 북프리쿠키님께서는 저보다 훨씬 활용을 잘 하실 분이라 생각합니다. 비가 많이 오네요. 북프리쿠키님 편안한 독서와 함께 주말 보내세요!^^:)

2018-10-08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8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8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 지식인마을 31
조숙환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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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 ~ 1940년대를 지배한 이론은 행동주의 behaviorism의 조건 형성 conditioning 이론이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학습된 것으로 파악하는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언어 또한 선천적인 것이 아닌 오직 환경에 주어진 경험적 자료에 의한 조건 반사적 행동 conditioning behavior으로 간주했다.(p21)... 그런데 1950 ~ 1960년대에 이르면, 이런 행동주의가 본성주의 nativism에 정면으로 도전을 받게 된다. 주변의 환경과 경험이 자극이 되어 인간의 지식 습득을 촉진한다고 주장한 행동주의자들에 반대해, 경험보다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다시 말해 선험적인 언어 지식의 역할을 강조하는 본성주의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20세기 중반의 이러한 행동주의와 본성주의 대립의 주인공은 버러스 스키너(Burthus Skinner, 1904 ~ 1990)와 노엄 촘스키(A. Noam Chomsky, 1928 ~ )였다. (p22)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 中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은 인간의 언어(言語 language) 습득에 관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두 학자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영국 경험론(經驗論, empiricism)의 입장을 계승한 스키너와 대륙 합리론(合理論, rationalism)의 입장을 계승한 촘스키의 논쟁은 현재 촘스키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촘스키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반론(反論)이 이 책의 다른 축을 구성하고 있다. 먼저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 형성과 이를 통해 설명한 스키너의 언어 학습 이론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1.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 형성과 언어행동론

 

  스키너는 굶주린 쥐를 상자 안에 넣어두고, 쥐의 행동을 통해 먹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우리에게 '스키너 상자'로 알려진 이 실험을 통해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 1849 ~ 1936)의 고전적 조건화 실험(개 실험)과는 달리, 실험 대상이 스스로  유인을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조작적 조건 형성은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스키너의 이론은 후대 경영학(經營學)에서도 영향을 미쳐 기업에서의 성과급(incentive) 도입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일차적으로 굶주린 쥐를 상사 속에 넣어두고 그 쥐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진행된다. 다른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굶주린 쥐는 '우연히' 어느 순간에 지렛대를 누를 수 있을 것이다. 지렛대를 누른 결과 음식물과 같은 강화인 reinforcer를 얻게 되면, 쥐는 지렛대를 누르는 행동을 반복해 음식을 얻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쥐는 지렛대를 누르는 행동(반응)을 '조건화'하게 된다.(p56)... 그러나 강화인인 음식물이 제공되지 않으면 그런 반응의 빈도는 점차적으로 줄어들다가 행동이 멈추게 되는데, 스키너는 이를 '행동의 소거'라고 했다. (p57)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 中

 

 스키너의 언어 학습 이론에 따르면 자신의 의사전달이 효과적으로 되는 것을 학습자가 확인하면서, 점차 언어를 습득하게 된다. 낮은 언어 수준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면서 원활한 의사소통, 사회적 인정 등의 강화요인을 통해 학습자는 언어를 습득하게 된다. 즉, 스키너에 따르면 '언어'는 환경에 의해 강화된 결과물이다.

 

  스키너의 언어행동론은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증심으로 발전된 이론이다. 언어 행위란 다른 사람(예. 청자)이 매개가 되어 강화되는 행동 또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의미한다... 스키너는 강화인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관심 attention, 인정 approval, 애정 affection, 복종 submissiveness 등을 꼽는다.(p60)... 스키너의 이론에 따르면 아동은 환경에서 우발적으로 접하게 되는 부모나 이웃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언어 행태를 거듭 모방함으로써 언어 지식이 형성된다. 즉, 환경에서 후천적으로 획득한 경험은 인간을 설명하는 근간이 되며, 대부분 환경적 우발성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p61)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 中

 

2. 촘스키의 내재 언어론

 

 촘스키는 스키너의 이론에 대해 플라톤(Platon, BC 424 ~ BC 347)의 <메논 Menon>의 내용을 예를 들며 반박하고 있다. <메논>에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 ~ BC 399)가 노예 소년과 문답을 통해 기하학적 증명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크라테스를 이를 통해 노예 소년이 이미 기하학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은 단지 그것을 끌어냈을 뿐이라는 말을 한다. 산파술(Socratic method)의 전형적인 모습을 확인하는 이 작품을 통해 촘스키는 인간의 내면에는 언어에 대한 지식이 있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 세계 언어에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문법(文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림] 유클리드 기하학(출처 : http://www.tmath.or.kr/FileData/bbs/3_829A.gif)

 

 촘스키는 특히 '강화', '조건화', '유추' 등을 망라해 <언어행동론>에서 제기된 기본 개념들이 불명확하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p63).. 스키너와 대조적으로 촘스키는 인간의 창의적 언어 능력과 인간 언어의 무한한 생산성 productivity, 복잡성 complexity을 역설했다.(p64)...촘스키는 '경험의 빈곤'문제를 '플라톤의 문제'로 풀이하면서 지식의 습득을 '내재화 internalization'의 관점에서 설명을 시도한다.(p66)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 中

 

 촘스키가 환경에서 발견되는 자극이 풍요롭지 못하다고 전제하는 두 번째 이유는 언어의 구조적 의존성 dependency에 있다.(p69)... 촘스키는 우리 마음에 내재 언어 I-language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내적 언어는 세계의 여러 언어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문법이라고 주장한다. 내적 언어가 보편성을 띤다는 것은 우리의 언어 지식은 스키너-블룸필드식의 경험주의적, 귀납적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p73)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 中

 

3. 촘스키 VS 피아제

 

  경험에 의해서 모든 언어를 학습할 수 없다는 촘스키의 주장은 스키너의 입장을 반박하고 있지만, 이후 촘스키 역시 다른 학자들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된다. 대표적인 학자가 피아제이다. 촘스키가 언어능력이 인간 본성(本性)에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 반면, 피아제는 언어 능력이 아닌 인지(認知)능력이 선천적인 요소임을 주장한다. 인지 능력이 선험적으로 주어진다는  피아제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 습득은 선천적인 인지 능력의 다른 결과물 중 하나일 뿐이다.

 

  촘스키학파의 습득 가설을 지지하지 않는 학자들은 인간의 기본 인지 책략을 근거로 설명을 시도한다... 장 피아제 (Jean Piaget, 1896 ~ 1980)와 같은 인지심리학자는 언어 능력의 생득성보다는 인지 기능의 선천적 능력을 인정했다. 피아제는 촘스키의 보편 문법과 같은 언어 지식의 생득성에는 반대했으며, 감각운동 지능을 비롯한 여러 인지 능력의 선천성으로 언어 지식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p103)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 中

 

 간략히 요약하면, 피아제와 촘스키는 근본적으로 아동의 언어 습득이 인지 구조의 기제의 기능적 형성의 문제인지, 아니면 보편 문법과 어떠한 매개 변항화를 통해 어떤 언어 특정적 문법이 어떻게 촉발되는지에 관한 지식 기반의 문제인지 등 두 갈래로 분리된 상이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p109)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 中

 

4.  촘스키 VS 포더

 

  촘스키는 언어를 다른 활동(미술, 음악, 체육 등)과는 달리 독립된 인간만의 활동이라고 규정했다. 때문에 이를 다른 활동의 인지와 같은 수준에서 바라볼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문장의 복잡한 구조가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부분이 있는 것을 통해 언어의 선험성을 주장한 촘스키에 대해, 제리 포터는 언어 구조를 세분화하면서 촘스키 주장을 반박한다.

 

 촘스키는 언어를 일반 인지 과정과는 독립된 하나의 단원(單元 module)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언어는 독립적인 단원으로 간주되어, 언어 구조나 현상은 기억이나 사고와 같은 일반 인지 과정의 관찰과 분석의 틀로 설명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p121)...  촘스키는 성분통어 구조가 인간 본성적인 보편지식으로서 오직 언어 능력에 특수적인 단원 language-domain specific module이어서 다른 일반 인지적 과정에 의해 삼투될 수 없는 법 지식 단원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p123)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 中

 

 제리 포더는 촘스키가 말한 문법 체계 뿐 아니라 언어에 담긴 내용과 구조를 보다 세분화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포더에 따르면 '언어'라는 분자는 '내용'과 '기능'이라는 원소로 분화(分化)될 수 있다.

 

 한편, 심리철학자 제리 포더(jerry Foder, 1935 ~ )는 언어 지식을 '언어 장기'와 같은 단원으로 비유한 촘스키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포더는 명제적 내용이 담긴 언어의 심성 세계를 오직 통사적 문법 구조로만 특정적으로 단원화하려는 촘스키의 접근 방법에 반대한다. 포더는 문법 구조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언어 행동을 야기하는 저변에는 문법 구조뿐만 아니라 지각 체계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체계가 어떻게 운용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p124) ... 포더의 단원 가설은 정보의 내용(content 지식)과 지각 체계의 기능(function) 구조를 각각 독립적인 단원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촘스키와 크게 대조적이다.(p125)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 中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은 이처럼 언어를 매개로 인간의 언어 능력이 학습된 것인가, 아니면 본성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이렇게까지 언어에 우리가 매달려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다른 문명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던지게 된다.  왜 서구문명은 언어에 이토록 매달리는 것일까? 이에 답하기 전 우리는 잠시 <요한복음 Gospel According to John>의 유명한 구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 로고스 찬가(출처: http://veritas.catholic.or.kr/f-letter/4/images/414-01.jpg)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John 1: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영어로 word로 번역되는 말씀의 그리스어 원문은 로고스 logos다. 우리에게 이성(理性)으로 번역되는 로고스가 기독교 문명권에서는 바로 '말씀'이며, '언어', '신(神)'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우리는 성경(Holy Bible)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즉, 언어가 학습되느냐, 본성에 내재하느냐의 문제는 이성(reason)이 학습될 수 있는가, 아니면 '본성'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논의를 확대시킨다면 최근 AI(人工知能, artificial intelligence) 문제 역시 언어의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를 남기게 된다. 이처럼 언어가 서양 문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일반 상식과는 달리 '언어'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은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를 언어학적 관점에서 조명한 의미있는 입문서(入門書)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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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5 0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5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텔게우스 2018-09-25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언어 능력, 즉 이성이 학습된 것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면 AI도 인간으로 볼 여지를 남기는 것이 되겠군요. 현대 사회의 새롭게 생겨난 것처럼 보이는 여러 문제들도 실은 그 밑바탕에 오랜 과거로부터 이어진 철학적 논의가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네요!

겨울호랑이 2018-09-25 10:49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베텔게우스님 말씀처럼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에도 역사가 있음을 이번 기회를 통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작은 독서의 기쁨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2018-09-25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5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5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6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7 0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7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30 0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30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30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침묵의 세계 - 개정3판
막스 피카르트 지음, 최승자 옮김 / 까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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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의 세계>는 혼란스러운 책이다. 책에서 침묵에 관한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적어도 '말'과 '침묵'과의 관계를 다룬 부분에 한해서는 그렇다.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는 <침묵의 세계 Die Welt des Schweigens>에서 침묵의 세계를 긍정하고 있다. 저자에 의해 그려진 침묵의 세계는 지구에 많은 생명(生命)을 탄생시킨 '바다'와 같은 어머니(母)의 이미지와 같이 그려진다. 이러한 이미지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도덕경 道德經>에서 무(無)에서 유(有)가, 그리고 다시 이들로 인해 만물(萬物)이 생겨난다는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이다. 침묵은 그야말로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위대하다. 침묵은 존재한다. 고로 침묵은 위대하다. 그 단순한 현존 속에 침묵의 위대함이 있다. 침묵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p17)


 말과 침묵은 서로 합하여 하나의 일체를 이룬다. 말은 자신이 솟아나온 침묵과의 연관 속에 계속해서 머물러야만 한다. 말이 다시 침묵으로 향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서 볼 때 당연하다... 말이 침묵에서 태어난 뒤에도 말에는 침묵이 깃들어 있다. 말의 세계는 침묵의 세계 위에 세워져 있다.(p36)


[사진] 바다와 생명(출처 : 한겨레 신문)


反也者 道動也 반야자 도동야 

弱也者 道用也 약야자 도용야  

天下之物生於有生於亡 천하지물생어유생어망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요,

유약한 것이 도의 쓰임이니,

세상의 만물은 유(有)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無)에서 생겨난다. 


<도덕경 道德經> 40장 章 임채우 譯


 저자에 따르면 '침묵'은 독자적으로도 존재가능하지만, '말'은 '침묵'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침묵' 역시 '말'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그 의미가 달랐을 것이기에 이들은 서로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마치, 혼란의 카오스(chaos) 상태가 말이 없는 침묵의 상태라면, 말(logos)이 생겨난 후 이제 질서 정연한 코스모스(cosmos)상태로 바뀐 것으로 인식하는 저자의 세계관 속에서 우리는 기독교(基督敎)적인 세계관을 발견하게 된다.


 일찍이 침묵이 모든 것을 장악했고, 지구는 침묵의 소유였다. 지구는 마치 침묵 위에 얹혀 있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지구는 침묵의 가장자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말이 생기자 악마적인 침묵은 붕괴되었다.(p5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 1) <신약성경>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2005

 

 침묵은 말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은 침묵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말에게 침묵이라는 배경이 없다면, 말은 아무런 깊이도 가지지 못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침묵이 언어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자기 자신만을 위한 침묵, 즉 말 없는 침묵의 세계란 다만 창조 이전의 것일 뿐이다.(p28)


  말은 질서인 로고스로부터 유래된 까닭에 인간적 바깥에 있는 많은 것들을 인간 세계 속으로 들여놓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말은 인간을 위한 방어물이다. 많은 악마적인 것들이 인간에게 침투하여 인간을 파괴시키려고 기다리지만, 인간은 그러한 악마적인 것에 접하지 않도록 보호되고 있다. 실로 인간이 그 악마적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그 악마적인 것이 말 속으로는 뚫고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p179)


 저자는 현대 문명의 문제점을 '침묵'-'말(言語)'의 균형 파괴에서 찾고 있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말과 점차 소멸되는 침묵 사이의 관계 파괴는 이제 자신의 파괴에까지 이른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그렇다면, 균형회복을 위한 길은 무엇일까? 


  침묵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세계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산산조각이 난 한 세계의 잔해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잔해는 그것이 잔해인 까닭에 사람들을 무섭게 만든다. 침묵은 이제 자명한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때때로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도 침묵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박물관에나 있는 것 혹은 유령 같은 인상을 준다.(p212)


 이에 대한 답은 저자의 기독교 사상을 근원인 <신약성경>속에서 우리는 침묵과 관련한 여러 구절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기적을 행한 후 청중들에게 함구령(啣口令)을 내리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진 <마르코 복음>에서 우리는 침묵과 결합된 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The girl, a child of twelve, arose immediately and walked around. (At that) they were utterly astounded. He gave strict orders that no one should know this and said that she should be given something to eat.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마르 5 : 42 ~ 43) <신약성경>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2005


 거대한 침묵과 결합되어 있는 말 속에는 거대한 자비가 들어 있다. 단지 다른 한 말에서 나온 것일 뿐인 말을 딱딱하고 공격적이다. 그러한 말은 또한 고독하다. 현대의 우울은 대부분 인간의 말을 침묵과 분리시킴으로써 말을 고독하게 만들었다는데 기인한다. 이러한 침묵의 제거는 인간의 내부에서 하나의 죄책감으로 존재하고, 그 죄책감이 우울로 나타난다.(p37)


 저자는 '말'과 '침묵'과의 관계가 분리되지 않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음을 통해서 우리의 우울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바라본다. 저자는 끊임없는 개발을 통해 자신을 계발(啓發)하고, 자연을 개발(開發)하는 현대 문명에 대해 경고하며 독자로 하여금 이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혼란을 느낄 수도 있다. 이제, 그 혼란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저자는 책 내용 전반에서 '침묵'에 대해 긍정하지만, 그가 긍정하는 '침묵'은 '말이 생겨난 이후의 침묵'이라는 느낌을 준다. 저자는 <침묵의 세계> 속에서 변증법(辯證法 dialectics) 구조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침묵'이라는 '정(正)'에 대해 '반(反)'으로서 생겨난 '말'. 그리고, 이에 대한 합(合)으로 만들어진 '말과 결합된 침묵' 으로 구성된 구조 속에서 저자가 긍정하는 내용은 합에 해당하는' 말과 결합된 침묵'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최조의 침묵 역시 그 자체로 긍정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 않을까. 이러한 중간 결론을 내린 후 다시, <침묵의 세계> 처음으로 돌아가면  다소 혼란을 느끼게 된다.


 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이다.(p17)


 책 서두에서는 침묵을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로 그리지만, 책을 읽다보면 침묵 자체가 완전한 세계라는 저자의 전제가 파괴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니면, 후반부의 침묵과 전반부의 침무기 같은 침묵이 아니거나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로고스(logos) 기독론(基督論)에 근거한 결합된 저자의 세계관은 분명 음(陰) 그 자체로 긍정한 <도덕경>의 세계관과 다른 부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말 이전의 세계를 절대악(絶對惡)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선악(善惡)구도 속에서 책을 바라보기도 어렵다. 이런 면에서 <침묵의 세계>는 이들과는 구별되는 지점에 서 있다고 생각되고,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침묵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면에서 분명 의미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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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18-04-02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1993년판과 2010년판 두 권을 갖고 있는데 번역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해요. 특히 까치 출판사 책 볼때면 교정교열에 조금 짜증이 납니다

겨울호랑이 2018-04-02 13:5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파란여우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가 느낀 혼란이 번역의 문제일수 있다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파란여우 2018-04-02 14: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승자는 저의 최애 시인이지만 번역가로서는 별로에요. 겨울호랑이님이 느끼신 혼란이 번역 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번역이 독해에서 중요한건 부정할수 없지요.

겨울호랑이 2018-04-02 15:28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어보진 못 했어요. 파란여우님의 최애 시인이라 하시니 만날 기회를 마련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cyrus 2018-04-02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파란여우님의 말씀을 보면서 전 이 책이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역자가 유명 시인이라서 그런 걸까요? 리뷰만 봐도 책의 주요 내용이 난해하게 느껴집니다. ^^;;

겨울호랑이 2018-04-02 16:33   좋아요 0 | URL
책에는 침묵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제가 큰 줄기만 가져와서 cyrus님께서 어렵게 느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본문에는 침묵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가 있어 직접 않으신다면 제 리뷰와는 다른 관점에서 보실 수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2018-04-02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2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4-03 0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말입니다. 침묵과 언어가 하나의 두 가지 모습이란 생각을 합니다. 말을 하지 않을 때 침묵이 들어차고 공백이 있어야 언어로 정리하고 말이 나올 공간이 나오니까 말입니다. 이 성질은 음악이랑도 비슷하죠. 언어나 음악이나 인간이 만든 거니 비슷한 게 당연한 것이겠습니다만.
저도 간밤에 언어에 대해 내내 고심했는데, 도움되는 글 많이 써주셨네요^^

겨울호랑이 2018-04-03 07:05   좋아요 2 | URL
^^:) 침묵과 언어를 하나로 생각하진 못했는데, AgalmA님 말씀을 듣고 보니 새로운 면이 보이는군요. 저 역시 새로운 것을 AgalmA님으로부터 배워갑니다^^:)

나와같다면 2018-04-03 1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한한 사랑. 안타까움. 슬픔. 분노. 고통. 정의.. 를 담고있는 신의 침묵 Silence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신은 왜 침묵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무엇이 우리의 귀를 막고 있는지..
침묵속의 음성은 무엇을 말하는지..

겨울호랑이 2018-04-03 14:53   좋아요 2 | URL
잘은 모르겠지만, 신의 뜻은 세상의 이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영원을 사는 것이 아닌 짧은 시간을 사는 우리는 거대한 흐름을 보기에 부족함이 많은 존재는 아닐런지요...

2018-04-03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4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4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5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5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5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5 1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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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1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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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1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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