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최근 삼성전자의 HBM3E 퀄 승인 관련 기사를 읽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아온 '발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https://www.thelec.kr/news/articleView.html?idxno=34339

 삼성전자, "HBM3E 퀄 승인, 발열문제와 관계 없어"


 삼성전자의 HBM 승인 퀄 관련 기사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벌써 1년 넘게 이어져 온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지나갈 만한데. 이번에도 언론들의 설레발 기사와 엔비디아의 침묵 그리고 삼성의 부인이 이어지겠지. 그렇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기사의 "발열"이라는 단어에 눈이 머무는 것은 삼성전자의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을 발열에서 찾은 본문의 내용 때문이다. 저자는 삼성의 기술적 한계를 '발열'로부터 찾아 논지를 전개해간다.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에 대해 걱정을 끼쳐서 사과한다, 앞으로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다." ... 사과로는 달라지지 않는 본질적 문제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삼성전자 기술력의 본원적인 한계였습니다. 고작 앱 하나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요? 네, 있습니다. 그 앱이 감추려고 했던 ‘발열’이라는 현상의 중대한 의미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는 사건은 늘 발열입니다. _ 서영민, <삼성전자 시그널>, p17/254


 <삼성전자 시그널>에서 저자는 2021년 GOS 문제의 근원인 '발열'로부터 삼성전자의 기술 격차, 성능 격차를 발견하고 이를 파악한다.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가 앞선 주자들을 따라잡으며 2010년대 중반 반도체 메모리 사업의 중심에서 이제는 쇠락하기까지의 과정안에는 히타치와 도시바, 미쓰비시를 비롯한 일본 반도체 기업을 딛고 일어나 이제는 TSMC에게 무너져 가는 영광과 안타까움이 함께 담겨있다.


  책에서 우리는 무엇을 확인할 수 있을까. 삼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게임의 법칙이 달라졌을 뿐이다. 삼성전자가 진출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이 일어나는 시장으로, 이 시장은 경쟁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폐쇄적인 시장이었다. 마치 갈라파고스와 같은 곳에서 치킨게임의 승자로 살아남은 승자 삼성전자가 폐쇄적인 기업풍토를 강화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D램은 기술 개발을 위해 먼저 투자하는 쪽이 성공합니다. 불황의 골이 무서워도 투자를 멈추면 안 됩니다. 그 순간 낙오됩니다. 그리고 한 번 더 거대하게 투자해 가능한 거대한 공장을 지어야 합니다. 수요가 따라오지 못할까, 경쟁자도 그런 공장을 지을까, 두려워 망설이는 순간 끝입니다. 조금 작은 공장은 결국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이 시장의 법칙은 공존이 아닙니다. 공존을 꿈꾸고 적당히 투자하고, 적당히 타협했다가는 곧바로 파산과 퇴출의 골짜기로 떨어집니다. 적자생존, 약자소멸입니다. _ 서영민, <삼성전자 시그널>, p73/254


 삼성전자의 전성기 '삼성공화국'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시기에 씌여진 <삼성을 생각한다>는 D램의 승자 삼성전자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지배했는가를 보여준다.그룹의 역량을 모아 반도체 부문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 생산해서 경쟁자를 무너뜨리고, 확보된 가격통제력을 바탕으로 쌓은 막대한 이익을 근간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한 삼성 그룹. 2010년대까지 한국사회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삼성 승리의) 선순환 구조는 2020년대 들어 깨지게 된다. 왜 그럴까?   

 

 현재의 재벌은 중소기업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재벌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중소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였다는 뜻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할 여력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납품단가를 정해 왔다. 중소기업을 갑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곳 정도로만 활용하는 셈이다. _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p433


 이건희가 한때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해외 유명 대학에서 수학한 인재들을 영입하도록 수립하기 위한 팀을 만들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영입 인재들의 실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삼성 문화가 이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었다. 외국 선진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스카우트한 인재들이 삼성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_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p437


 본질적으로 삼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 다만, 게임의 법칙이 달라졌을 뿐이다. 변화된 시장은 단순히 엔비디아의 GPU가 인텔의 CPU를 대체했다는 것, 삼성 파운드리의 몰락과 TSMC의 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막대한 투자로 경쟁자를 압살하는 삼성의 전략은 10나노 이하의 첨단 선단 공정에서 더 이상 유용하지 않았다. 대신, 고객의 요구에 따라 막대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공생의 길을 찾고 학습 곡선을 통해 성장을 택한 TSMC의 부상은 ;패러다임의 변환' 자체가 아닐까. 어쩌면 오늘의 TSMC를 결정한 것은 모리스 창의 말처럼 삼성 파운드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 사람의 실적은 대체로 경쟁자가 결정한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


 위탁 생산 자체보다 TSMC의 이런 전략이 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고객을 위해 고객 대신 극단적으로 거대한 자본을 투자해, 극단의 생산 유연성을 준비해줍니다. 고객에게 성장의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100% 살려줍니다. 게다가 거래를 하면 할수록 완성도는 더 높아지니, 관계는 장기 지속될 수밖에 없고요. 모리스 창은 화답하듯 "우린 고객을 위해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는다"고 웃으며 말합니다. _ 서영민, <삼성전자 시그널>, p119/254


 Reverse Engineering. 삼성전자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경쟁사 또는 협력사의 제품과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서 성장하고 1위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주위를 폐허로 만들고 그 위에 우뚝 선 제국이 주위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며 자신만의 생태계를 갖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 현재 삼성의 모습이라면 삼성전자가 풀어야 할 문제의 난이도가 생각보다 상당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 삼성은 4G LTE 칩 발주라는 미끼를 던져 TSMC가 이를 생산하기를 희망했다. 이를 이용해 TSMC 제조 공정기술의 허와 실을 탐색해보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TSMC는 삼성을 직접적 고객으로 삼기를 꺼렸다. 공장 내부에 진입하여 기밀이 누설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_ 상업주간, <TSMC 반도체 제국>, p51/274


 삼성은 1983년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고,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신경영 선언을 통해 도약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꾸라는 결단으로 세계 정상에 선 삼성전자가 최근 마누라를 바꿔버린 SK하이닉스에게 순위를 빼앗긴 장면은, <맥베스>에서 '어머니 배를 가르고 나온 맥더프를 떠올리게 헤서, 다소 웃픈 감이 있지만. 과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했던 삼성전자가 이번 위기를 발판 삼아 폐쇄적인 문화를 극복하고 고객 중심의 개방적인 혁신 시스템 구축과 장기적인 기술 경쟁력 확보에 매진하여 다시 한번 영광을 재현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5-04-18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성의 기업 마인드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엔비디아에서 왜 삼성은 고객에게
갑질을 하냐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죠.

다른 건 몰라도 파운드리 분야에서
이제 삼성은 TSMC의 경쟁 상대가
아닙니다.

한 때 세계 반도체산업을 주름잡
던 일본 기업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 같습니다.

기업 전체의 조직 문화를 뜯어 고
쳐야 하는데, 불가능해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25-04-18 22:22   좋아요 1 | URL
동감입니다. 나아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삼성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 과거의 성공 공식이었기 때문에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려워 보입니다. 기업이 처한 환경, 최고경영자, 소비자, 사회 등 모든 것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해온 대기업의 체질과 DNA가 바뀌지는 않겠지요. 공룡의 자리를 설치류가 대신한 것처럼 새로운 기업 리더십이 등장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yamoo 2025-04-18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재용이 있는한 삼성은 휴헷패커드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립니다. 재무이사를 내치던가 해야하는데 쉽지 않고 망하는 태크를 탈듯..^^ 주주들은 아니 일반인들은 다 아는데 이재용만 모르는듯..ㅎㅎ

겨울호랑이 2025-04-18 22:28   좋아요 0 | URL
yamoo님 말씀처럼 삼성은 재무통들이 다 망친다고 하더군요. 현장보다는 분기, 반기 단위의 이익과 연동된 PS,PI에만 열광하는 조직 문화에서 장기적인 비전을 발견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최고경영자의 몫이라면, 이러한 관점에서 동양사학과 출신의 이재용은 좋은 학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거친 싸움을 하기에는 적합한 인물이 못되는 듯 합니다...
 


 위험이 없다는 트리플A등급의 보험을 구매하고 싶을 경우에는 20베이시스포인트(0.20퍼센트)를 지불한다. 그보다 위험이 높은 A등급의 보험은 50베이시스포인트(0.50 퍼센트)를 구매한다. 안정성이 훨씬 더 떨어지는 B등급의 보험을 구매할 때는 200베이시스포인트, 즉 2퍼센트를 지불한다. 마이클이 찾는 것은 기초 모기지 풀의 15퍼센트만 무너져도 가치가 0달러까지 떨어지는 트리플B등급이었다. _ 마이클 루이스, <빅 숏>, p91


 <빅 숏 Big short>은 세계 금융 위기 당시 숏(매도)포지션을 통해 큰 돈을 벌어들인 마이클 버리 등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버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담보부증권(MBS)이 '부동산 불패'라는 신화에 근거한 약한 고리임을 간파하고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 신용부도스왑(CDS)을 구매하는 포지션을 취한다. 이와 함께 향후 닥칠 금융 위기 상황에 대비한 금 등 안전자산에 대한 롱(매입)포지션을 취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한다.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했죠. 그들은 지난 60년 간의 부동산 추세를 증거로 내세워 주택가격이 전국적으로 일시에 떨어질 리가 없다고 말했어요... 서브프라임모기지 거래는 주택가격이 일시에 하락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가정에 기초한 것이었다.  _ 마이클 루이스, <빅 숏>, p147


  금융시장의 탐욕을 소재로 한 책이나 영화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한 <겜블>은 파생상품 매매로 인해 결국 파산을 맞이한 베어링스 은행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이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주가조작을 소재로 한 영화다. <빅 숏>과 <겜블>이 파생상품의 레버리지의 위력을 보여준다면,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주식시장에 자리한 인간의 욕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조금 결이 다르다. 그렇지만, 이들 모두는 시장에서 자신의 예측을 실현시키는 과정을 통해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점에서는 하나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100여 명만이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에 대한 신용부도스왑을 거래하는 신규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들 대부분은 서브프라임모기지의 붕괴에 베팅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부동산 관련 주식이나 채권으로 구성된 자신들의 포트폴리오 위험을 회피하려고 서브프라임모기지에 대한 보험을 구매했다. 이보다 규모가 작은 소수의 집단은 신용부도스왑을 이용해 서브프라임모기지채권 하나를 구매하는 동시에 다른 하나를 판매하면서 서브프라임모기지채권의 상대가치 relative value에 베팅했다. _ 마이클 루이스, <빅 숏>, p170


 한국시간으로 29일 오전 6시에 예정된 엔비디아(NVIDIA)의 실적 발표에 세계 금융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지난 7월 세콰이어 캐피탈(Sequoia Capital)에서 제기한 AI 거품론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을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의 실적을 통해 찾으려 하기에 내일의 발표는 AI 거품론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어쩌면 태풍 전야와 같은 고요함 속에서 투자자들은 저마다의 계산에 따라 롱(매수)과 숏(매도) 또는 롱-숏 포지션을 취하며 부지런히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시장의 관심은 이내 다른 이벤트로 옮겨가고 또 다른 욕망의 장(場)이 서겠지만, AI, 친환경 에너지, 반도체 등 시장 관심을 받는 주제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궁극적 대여자는 대중들이 실물자산과 비유동성 금융자산을 처분하고 현금으로 전환하려는 쇄도 사태를 중지시키는 데 필요한 만큼의 통화를 공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이 개념은 패닉이 발생할 때 화폐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량을 늘려주는 '탄력적인 통화 공급'이라는 개념이다. 얼마만큼의 화폐를 공급해야 하는가?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공급해야 하는가? 어느 시점에 공급해야 하는가? _ 찰스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364


  궁극적 대여자(lender of last resort). 찰스 킨들버거가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 한단어에 요약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가 정부 또는 중앙은행이라면, 국제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는 세계체제 안에서의 패권국이다. 자신의 패권과 세계체제를 지키기 위한 노력. 이러한 노력을 최근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에서 발견한다. 


 정부가 재무부증권을 발행해 패닉을 완화시켜야 할 것인지, 아니면 1844년 은행법이 규정해 놓은 한도를 일시 철폐하더라도 영란은행이 벌금 수준의 금리로 무제한의 할인을 해주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영국에서 분명한 합의가 없었다. _ 찰스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371


  세계체제의 일부로서 우리가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 실업률, 금리보다 미국의 지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국가 내에서의 '지방소멸' 문제 만큼이나, 세계체제 내에서의 '한국경제 종속' 문제가 심각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의 유럽'을 표방한 유럽연합(EU)이 겪고 있는 불안의 근원이 서로 다른 정치, 경제 상황에 놓인 각국들의 독립성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과연 우리나라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정부나 중앙은행의 유연한 대처 대신 부동산PF를 살리기 위한 인위적인 금리동결 정책과 원화가치평가 절하가 결과적으로 국민소득의 실질적 감소를 가져왔기에, 요즘 우리는 신용공여자 또는 리더십의 부재를 체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광복은 되었지만, 더욱 은밀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종속된 우리의 상황이 암울하게 느껴지는 제79주년 광복절이다...


 투기적 확장 국면이 벌어진 이후에는 궁극적 대여자의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억제 조치가 붕괴를 촉발하지 않고 확장 속도를 적정하게 둔화시킬 확률이 낮다고 판단될 경우, 궁극적 대여자는 개입 규모와 시점선택의 딜레마에 직면한다. 딜레마는 할인 방식보다 공개시장조작이 더욱 심각하다. _ 찰스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392


PS. 오늘 아침에 일어나 어제와는 다르게 바람도 불고 순간이나마 가을이 서성이고 있음을 느꼈다. 아직은 무더위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사뭇 다른 공기를 맡으며 선선한 가을에 대한 기대를 가지듯, 끝나지 않은 폭정 안에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어쩌면 해방 이후 시간이 지나버려 청산할 수 없었던 친일부역자 문제를 이제는 매국의 명분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의 논제는 광기와 패닉의 순환이, 경기순환 파동과 함께 오르내리는 신용 공급의 변동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즉, 호경기 시절에는 신용공급이 상대적으로 빨리 증가하고, 경제성장이 둔화할 때는 신용 공급의 증가율이 종종 급격하게 떨어진다. 광기는 현재 및 가까운 미래 시점의 부동산가격, 주가, 상품가격, 혹은 특정 국가의 통화가치가 먼 미래 시점에서의 동일한 부동산가격이나 주가, 상품가격, 통화가치와 일관되지 않을 정도로 상승하는 현상을 동반한다. _ 찰스 P. 킨들버거 외,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39


 찰스 P. 킨들버거(Charles Poor Kindleberger, 1910~2003)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Manias, Panics and Crashes: A History of Financial Crisis>에서 자산의 미래 가치에 대한 개인이 소박한 기대가 자산가치 상승에 대한 열망으로, 개인의 열망이 대중의 군중심리로 변모되어 결국에는 극심한 공포와 절망 속에 무너져 내려가는 금융공황의 역사를 그려낸다. 


 광기 현상들의 특징은 전부 똑같지는 않지만, 한 가지 유사한 유형을 갖는다. 경제적 풍요감에 동반해 부동산과 주식, 상품가격의 상승이 나타난다. 가계의 부가 증가하고, 따라서 지출도 늘어난다. "이보다 더 좋았던 적이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는다. 그러는 사이 자산가격이 그 정점으로 치솟고, 곧 이어 하락이 시작된다. 거품의 파열은 부동산가격, 주가, 상품가격의 하락과 동반해 나타났으며, 이런 가격 하락은 종종 붕괴나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_ 찰스 P. 킨들버거 외,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38


 저명한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Irving Fisher, 1867~1947)마저 대공황 2주 전 "주가가 영원히 하락하지 않을 고원에 다다랐다. Stock prices have reached what looks like a permanently high plateau" 고 예측했을 정도로 예단하기 힘든 갑작스러운 붕괴는  순식간에 금융시장을 흔들고 전세계로 전파되며 공황상태로 이끌게 된다. 이러한 흐름에서 시장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가? 그것은 차입으로 인한 과다한 신용 공급 때문이다. 


 이상적인 교과서의 세계에서는, 금의 유입에 따라 금화의 유통 물량이 한 나라에서 증가하면 다른 나라에서 이에 상응하는 금의 공급 감소가 발생하고, 첫 번째 나라의 통화 공급량 증가와 신용 팽창은 두 번째 나라의 통화 공급량 감소와 신용 위축에 의해 상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두 번째 나라의 투자자들이 해외의 물가 상승과 이에 동반하는 이익 증가에 대응해 자국의 자산과 유가증권의 가격 상승을 예상하고, 이 자산들을 매수하기 위해 신용 수요를 확대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첫 번째 나라의 신용 팽창이 두 번째 나라의 신용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_ 찰스 P. 킨들버거 외,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67


 자산의 미래 가치에 대한 투자자의 과도한 기대 또는 투기는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선 차입거래를 일으킨다. 이러한 차입거래가 개인을 넘어 시장 전체로 확산되었을 때 시장에서는 과도한 유동성 공급이 일어나고, 이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는 순간 뱅크런(bank run)을 우려한 금융기관과 현금을 확보하려는 개인들도 시장의 유동성은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다. 시장 유동성의 다수를 차지하는 신용(credit)이 한 순간에 사라지면서 거품은 꺼진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을 수단은 없는가?


 붕괴란 자산가격의 폭락이며, 중요한 기업이나 은행의 파산을 의미할 수도 있다. 패닉, 즉 "이유 없이 엄습하는 공포"가 자산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유동성이 낮은 유가증권에서 빠져나와 현금이나 정부채권으로 달려가는 쇄도 사태를 동반할 수 있다. 금융위기는 붕괴와 패닉 중 어느 하나 혹은 둘 다를 포함할 수 있고, 붕괴가 패닉을 뒤따를 수도 있고 반대 순서로 진행될 수도 있다. _ 찰스 P. 킨들버거 외,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187

 

 저자 킨들버거는 광기, 패닉, 붕괴에 이르는 금융불안의 흐름 속에서 궁극적 대여자(the lender of last resort)의 역할을 강조한다. 궁극적 대여자는 국내 차원에서는 유동성 부족이라는 불안감을 차단하기 위한 신용공여자로, 국제 차원에서는 유동성 공급이 가져오는 환율, 국제수지 등으로의 파생을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킨들버거의 다른 책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 World Economic Primacy: 1950 to 1990>에서는 공공재를 공급하는 궁극적 대여자가 헤게모니(Hegemony)국가임을 말한다. 


 금융 불안의 본질은 신뢰의 상실이다. 불안 국면이 시작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사태가 올 것인가? 다시 말해 경제의 여러 측면들이 교정되면서 신뢰가 완만하게 회복될 것인가,  아니면 가격이 폭락하고 패닉이 발생하면서 예금을 인출하려는 인파와 함께 비유동성 자산을 처분하고 현금으로 전환하려는 쇄도가 벌어질 것인가? _ 찰스 P. 킨들버거 외,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169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에서는 금융위기 속에서 경제적 헤게모니를 갖는 유동성 공급자, 궁극적 대여자에 대해 말한다. 그렇지만, 실물과 화폐의 직접적인 가치 연계 수단이 닉슨 독트린 이후 사라진 오늘날, 무제한적인 신용공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연 불안정한 경제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백마를 탄 초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유동성공급책이나 금리 인하를 기다리기보다 근본적인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궁극적 대여자는 대중들이 실물자산과 비유동성 금융자산을 처분하고 현금으로 전환하려는 쇄도 사태를 중지시키는 데 필요한 만큼의 통화를 공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이 개념은 패닉이 발생할 때 화폐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량을 늘려주는 '탄력적인 통화 공급'이라는 개념이다. _ 찰스 P. 킨들버거 외,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36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3-11-29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독을 유혹하는 리뷰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23-11-29 20: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그는 어떤 어부보다도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울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어두운 해류의 층마다 정확히 그가 바라는 수심에다 미끼를 놓고 그곳을 헤엄쳐 가는 고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난 정확하게 미끼를 드리울 수 있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단지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_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p38/228 


 주가 Price = 주당순이익 EPS * 주가수익비율 PER.


 주당순이익이 기업이 갖고 있는 실력이라면, 주가수익비율은 이러한 실력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말한다. 전자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점수라면, 이 점수에 등급(degree)을 부여하는 것이 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유명한 가치투자들인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1894~1976)과 필립 피셔(Philip Fisher, 1907~2004). 그레이엄이 <증권분석 Security Analysis>을 통해 정량적 가치에 초점을 맞췄다면, 피셔는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 Common Stocks and Uncommon Profits>를 통해 정성적 가치에 주목한다.


 보수적인 투자자는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어떤 업종이나 산업에 대해 현재 증권가에서 내리고 있는 평가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보수적인 투자자는 이런 평가가 해당 산업의 펀더멘털이 보장하는 것에 비해 더 긍정적인지, 혹은 더 부정적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사해야 한다. _ 필립 피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p76


  거칠게 요약하면, 그레이엄은 주당순이익에, 필립 피셔는 주가수익비율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레이엄이 기업의 절대가치를 파악해서 잔여자산의 유무를 파악해서 지지 않는 투자를 추구한다면, 피셔는 기업의 상대가치를 끊임없이 높일 수 있는 활동에 주목한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차이는 절대성과 상대성의 차이이기도 하다.

 

 보수적인 투자의 첫 번째 영역을 간단히 말하자면 생산과 마케팅, 연구개발, 재무 관리라는 기본적인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탁월한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첫 번째 영역은 결국 결과의 문제다. 반면 두 번째 영역은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이런 결과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인 필요한가에 관한 것이다. _ 필립 피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p24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수치를 해석하는 지성(知性)과 기업에 열광하는 감성(感性)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지향점을 찾아가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할 이성(理性)을 파악하는 문제는 바로 자신의 투자철학이 될 것이다. 필립 피셔의 장기투자라는 철학은 끊임없이 PER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기에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주당순이익은 저평가될 것이고, 주당순이익 없이 과열된 주가수익비율은 광기에 빠지기 십상이기에 이들 모두가 중요한 것은 물론이겠지만.


 

리스크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장기적인 투자가 훨씬 유리하다. 종합하면 단순히 수학적으로 생각하더라도 확률은 물론 리스크 대비 보상을 고려햘 때 보유하는 편이 더 낫다. 위대한 기업의 주식이라면 장기적으로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보다 단기적으로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게 틀릴 확률이 훨씬 더 높다. _ 필립 피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p149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의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에서 노인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바다에 대해 많은 경험을 갖고 바다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을 운(運)이라 여기지만, 반드시 그럴까. 어쩌면 그는 자신이 가진 미끼를 물고기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마케팅 활동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실력(EPS)는 우수했을지 모르지만, 고기와의 교감(PER)에는 부족함이 그의 실적(Price)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감 넘친 노인에게 피셔 3부작을 추천한다...


PS.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의 초판이 1958년이고, <노인과 바다>가 1952년 출판되었으니, 노인이 마음먹을 수 있다면 읽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도 아닌듯하다..


 주가의 결정적인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은 매우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다 : 어떤 개별 종목의 주가가 전체 주식시장의 움직임과 비교해 현저할 정도로 변동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주식에 대한 증권가의 평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p59)... 증권사의 "재평가" 문제는 주가수익 비율의 변덕스러움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다. 그러나 재평가가 결코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재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지금 기업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 것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_ 필립 피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p6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23-11-13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가 주식 투자를 했으면 무척 잘했을 거 같습니다. ㅋ 그의 꼼꼼함과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을 봐서는요. ^^
헤밍웨이가 주식투자를 해 본적이 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ㅋ

겨울호랑이 2023-11-13 20:41   좋아요 2 | URL
아, 저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습니다. 지금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같은 궁금증이 드네요. 그렇지만, 만약 제가 헤밍웨이의 지인이라면 그와 주식에 관래서는 별로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식이 폭락하기라도 하면 라이플 세례를 받지 않을까 생각만해도 좀 무섭네요...ㅋㅋㅋ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