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태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곧 미국이 결정하고 독일이 과감하게 승인한 러시아 제재는, 결국 유럽을 압박할 것이다. 미국 재무 장관 재닛 옐런은 "유럽이 러시아 석유에 금수조치를 내려도 러시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이 조치로 러시아 원유가는 상승할 것이고, 결국 러시아는 이득을 볼 것이다. 좀 더 넓게 보면, LNG를 중심으로 한 유럽 가스 시장 재편은 경제-안보-생태라는 3중의 문제를 야기한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2022.6>, 에너지 전쟁, 최종 승자는 누구인가?, p9
지난 2월 24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4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러시아의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예상외로 우크라이나가 잘 견디어내며 단기전에서 장기전으로 전망이 바뀌었다. 이와 함께, 러시아 경제 붕괴, 푸틴 치매설 등이 나오면서 러시아가 대위기가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이후 러시아 경제는 루블화 강세로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면서 이 역시 틀리고 말았다. 러시아 대공황 대신 급등한 원자재 가격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충격으로 정작 큰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세계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월호에서 가장 눈에 가는 기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간 결산이 아닐까 싶다. 전쟁을 쉽게 끝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각국의 치열한 합종연횡 속에서 국제정치의 비정함과 함께 COVID-19로 이후 경기회복을 위해 유효수요의 창출과 무기재고처분을 위해 전쟁이라는 수단이 사용되는 현실을 깊이 실감한다.
이렇게 속는 자와 속이는 자, 승자들이 있다. 러시아 침공이 시작되고 4개월이 지난 지금 미국은 허세를 부리고 있고, 러시아는 곤경에 처해 있으며, 한쪽에서는 유럽이 다른 쪽에서는 중국과 인도가 상반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럽은 사회에 악영향을 주는 인플레와 산업 생산 비용 상승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시급히 탄화수소 공급을 재조정하고 있다. 반면 전 세계 에너지 소비 1위와 3위를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의 유럽 고객이 기피하는 러시아산 연료를 통해 연료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2022.6>, , 에너지 전쟁, 최종 승자는 누구인가?, p13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파티 게이트'에서 비틀거리다가 겨우 당내 신임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을 득표하며 정치적 위기를 벗어났지만, 브렉시트(Brexit)이후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독립이 새로운 쟁점이 되면서 시끄러운 상황이다. EU의 양 축인 독일과 프랑스 역시 상황은 만만치 않다. 선거에서 이기며 새로운 임기를 시작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외교전에서 존재감을 잃었고, 독일은 친환경에너지 정책 추진 이후 러시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에너지 공급구조 속에서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월 5일에 시행된 북아일랜드 총선은 신페인당(Sinn Fein)의 2년에 걸친 승리를 대대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중도우파인 통일아일랜드당(Fine Gael)과 아일랜드공화당(Fianna Fail)이 구축해왔던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면서, 2020년 2월 선거에서 아일랜드의 다수당이 된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당은 이제 북아일랜드에서도 주요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신페인당은 역사적 적수였던 민주연합당(DUP)을 물리쳤다.
친아일랜드 성향의 민족주의자들이 친영국 성향의 연합 주의자들에게 승리를 거둔 것은 1921년 북아일랜드가 영국령이 된 이래로 이번이 처음이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2022.6>, 신페인당의 승리,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까지, p67
EU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을 점차 확대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27개 EU 회원국이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석유에 40% 이상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 금지 조치에는 반대한다. 며칠 전 EU 집행위원장인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이 자신의 권한을 넘어 제안했듯, 우크라이나를 긴급히 EU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도 반대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2022.6>,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고립되는 프랑스, p65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정치적으로 더 가까워진 러시아와 중국이지만, 원전시장을 둘러싼 이들의 라이벌 관계는 한층 더 치열해지고 있다. 원자로 건설과 우라늄 광산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이들의 관계 속에서 정치 질서와 별개로 움직이는 경제 질서를 확인할 수 있다.
급부상한 중국과 러시아는 우라늄 광산 개발을 놓고 경합을 벌인다. 러시아에는 우라늄 매장량이 풍부하지만, 지형의 특성상 추출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개발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자체 소비와 수출에 필요한 우라늄 광석의 10분의 1만을 생산한다. 중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중국 정부는 자국 생산량을 늘리고 해외 채굴 역량을 높이면서 세계 시장에서 수출을 확대하는 '삼중 구조 전략'을 도입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후쿠시마 참사 이후 매우 낮아진 우라늄 가격을 이용해 다른 국가의 광산을 적극적으로 인수하고 있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2022.6>, 긴장 모드의 세계 원전 시장, p44
우라늄 외에도 연료 생산 부문에서 양국의 긴장이 고조됐다. 원전에는 다양한 원자로 기술이 적용되며 제 각각 특정한 유형의 연료를 사용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압경수로(PWR)는 전 세계 원자로의 83%에서 사용된다. 새로운 모델이 개발되더라도 원전 시장에서 가압경수로의 패권은 중기적으로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2022.6>, 긴장 모드의 세계 원전 시장, p45
당초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지적된 원자력은 '방사선 폐기물의 처리'가 안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렇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고준위 폐기물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공간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원전에 대한 경쟁에 대해 걱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우라늄 핵분열에서 발생한 폐기물들의 방사능 감쇠는 매우 더디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해롭거나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이온화 방사선(물질을 통과할 때 이온화를 일으키는 방사선. 생물조직의 구성성분을 이온화해,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미생물을 죽인다-역주)이 수천 년 동안 방출된다. 원자력 발전을 이용하는 모든 국가에서는 방사성 폐기물들을 냉각수조에 보관 중이고, 고준위 폐기물들은 대부분 프랑스 라아그의 공장 등에서 재처리 후 분리보관된다. 이런 저장방법은 100년 동안은 원상복구가 가능한데, 더욱 확실한 폐기물 처리 방법을 발견할 경우에 대비해 폐기물들을 꺼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2022.6>, 원자력 재도약에 가려진 방사성 폐기물, p48
이와 함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져온 식량 위기는 식량 안보 문제와 녹색 혁명의 실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최근 급증한 아프리카의 농업생산성은 수치상으로 희망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결국 몬산토(Monsanto)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의 돈잔치였음을 깨닫게 된다.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AGRA) 내부 기준으로만 봐도 실패한 것이 명백하다. 핵심 목표였던 생산성 향상은 18%에 그쳤다. 가장 성과가 나았던 동아프리카 사례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은 밀 생산의 경우 2006~2018년 에티오피아에서 71%, 르완다에서 66%, 우간다에서 64% 각각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영양실조는 30% 증가했다. 아프리카 대륙 인구의 25%가 영양실조 상태였는데, '녹색 혁명' 이후 절반 이상이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사실 이 '녹색 혁명'은 집약적·단작 영농에 기반한 것으로 다양한 곡물을 제공하기보다 칼로리 공급량만 늘리는 식이다. 유엔 식량 정상회의 특임 대사이자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AGRA) 회장인 아녜스 칼리바타의 말을 빌리면, "식량 다양화는 사치"로 치부된다.일례로, 르완다에서는 옥수수밭과 벼밭이 영양가 높고 기후변화에 강한 수수밭과 조밭으로 바뀌고 있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2022.6>, 빌게이츠 재단의 수상한 농사법, p36
이제 4개월에 들어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불확실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경제적 이익과 정지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각국의 움직임은 단순히 미국-EU를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와 러시아-중국-인도를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세계의 대결 구도 안에서도 서로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이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