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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연방은 "자기 본래의 목적이나 정치적 본질로 볼 때에 실질적인 국가연합이다.... 하지만 자신의 내적, 외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특정한.... 관계 속에서 전체와 상황 속에 개입되었고, 이 상황 속에서 하나의 연방국가가 되었다." 즉 연방국가와 국가연합은 서로에게 수단과 목적의 관계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8 : 동맹>, P136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8번째 주제는 동맹(Bund)다. 본문에서는 '동맹'이 역사 안에서 '연맹(Bundnis)', '연방주의(Foderalismus)', '연방국가(Bundesstaat)'라는 변주로 나타났는가를 다룬다.  


 이 시기의 역사를 거칠게나마 '동맹'을 중심으로 요약해 보자.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800~1806)이라는 이름뿐인 제국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 크고 작은 영주들의 '동맹'이었다는 사실과 30년 전쟁을 마무리하는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phalia, 1648)의 결과 독일 영주들의 자치권이 강화되었고, 프로이센이 등장하였으며, '라인 동맹'을 통해서 독일 서부가 프랑스의 위성국으로 전락했고, 이후 '관세 동맹'으로 독일 제2제국으로 나아가는 기초가 마련되었다는 것이 큰 흐름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서 '동맹'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변화되었다.


 같은 신분 계급 내에서 형성된 동맹 관계가 점차적으로 계급 간 동맹으로 확대되는 시기가 중세 이전의 '동맹'의 의미였다면, 종교 개혁과 30년 전쟁은 '종교'라는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성격이 보다 강화되었다. 이후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에 의한 라인동맹의 결성(1806), 프로이센 중심의 관세동맹(1834) 체결, 소(小)독일주의를 기초로 한 독일제국의 성립의 긴박한 역사 흐름 속에서 '동맹'이라는 의미는 다르게 받아들여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바라봤을 때, 우리는 다른 개념어들과는 달리 '동맹 bund'이라는 단어는 독일의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가 독일어 'bund'에서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과 연계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계획했던 동맹 제도들이 마련되지 않았고, 따라서 조약에서 약속한 것보다 라인동맹국들의 통치권이 더 강력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였지만 나폴레옹이 라인동맹을 이용해서 제멋대로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에 체제의 법과 현실 사이에는 구舊 제국에서 관습법을 통해 통제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은 모순이 발생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8 : 동맹>, P128


 결정적인 사실은 이제(라인동맹 성립 이후)부터는 공동의 상위 권력이 소멸되고(강대국의 보호를 받는 동맹 foedus clientelare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독일은 더 이상 국가들의 국가 Staatenstaat가 아니라 국가들의 동맹(국가연합) Staatenbund라는 사실이었다... "라인동맹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영토를 갖고 있지 않고, 동맹 제후들만 통치 지역을 보유하고 있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8 : 동맹>, P129


  강한 이웃을 두고 싶어하지 않았던 재상 리슐리외 추기경(cardinal-duc de Richelieu et de Fronsac, 1585~1642) 이래의 프랑스 외교정책에 좌우되며 끝없이 분열을 거듭하던 독일 제후국들. 나폴레옹에 의해 '라인연방' 강제 가입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진지 불과 30년 뒤에 관세동맹으로부터 시작되어 성취한 독일 통일은 분단 체제에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만, 독일 통일이 프로이센의 군사력에 의존한 바가 컸다는 사실은 우리가 걸러서 받아들여야겠지만, 관세동맹이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은 평화 통일 이전에 자유로운 경제 교류가 선행되어야한다는 좋은 교훈을 안겨준다. 이에 대해서는 독일 역사와 관련된 <30년 전쟁> <강철왕국 프로이센> <몽유병자들>의 리뷰로 넘기기로 하고, '동맹'의 개념어에 대한 페이퍼는 이만 줄이자...


 프로이센의 주도권에 거는 희망(그리고 우려)은 더 큰 경제 단위가 형성되고서야 비로소 실용적인 기반을 획득했다. 1833년에 북독일과 남독일이 관세동맹 Zollverein을 통합하면서 스스로를 "총연맹 Gesamtverein"이라고 칭했다... 새로운 관세동맹은 구성 국가들의 연방제적 평등을 엄격하게 지켰는데 - 결정은 만장일치로만 내려졌고, 그 기간은 8년으로 연장 기간이 12년으로만 제한되었다 - 그 뒤에는 프로이센의 사실상 패권이 독일연방에서 메테르니히 Metternich의 패권보다 더 효율적으로 숨겨져 있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8 : 동맹>, P140


 관세동맹은 이제 그야말로 실제로 통일 사상의 고향이 되었고, 그 가운데에서 이 사상은 점점 큰 힘으로 발전할 것이다. 정치 산업 국가로서 최적의 통일을 이루라는 경제적 요청이 프로이센의 지휘 아래에서 충족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만한 일이었다... 언제부터 독일에서 통일에 대한 요구와 인식이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는가? 공동체적 국가 이익이 독일의 상당 부분을 하나로 묶고 이렇게 결합된 국가에서 개별 정치를 행하는 가능성을 배제시켰을 때부터, 관세동맹이 시작되고 발전할 때부터였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8 : 동맹>, P141


새로운 정당성으로서 국가적이고 민주주의적인 토대가 1815년에 형성된 독일연방에 침투해 1848년에는 국가연합을 잠정적으로 폭파시켰고, 1867/71년에는 최종적으로 (협의의) 연방국가로 전환시켰다. 모든 기준에 공통된 사항은 연방이 점점 더 국가화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연방국가 Bundes-Staat라는 개념으로 표현되었다. 프로이센이 패권을 잡는 "군주제 연방국가 monarchischer Bundesstaat"가 프로이센-오스트리아의 이원주의가 해체되는 방법을 통해서만 이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단 한번뿐이었던(그래서 독일어로도 한 가지 용어로만 불리는) 국가회 Nationalisierung와 산업화 Industrialisierung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준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8: 동맹>,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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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5-11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분트, 분데스리가...

겨울호랑이 2021-05-11 16:12   좋아요 3 | URL
^^:) 그레이스님께서 말씀하신 단어의 어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19세기 이후에 정치적 입장의 스펙트럼이 "왼쪽"으로 확장됨으로써 한때 진보적이고 해방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입장이 점차 중앙으로 밀려나 혁신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또한, 자유주의가 그 비판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부르주아 계급의 세계관이나 정치적 목표와 동일시됨으로써 하나의 계급 이데올로기로 축소되었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7 : 자유주의>, p14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의 7 번째 주제는 '자유주의 Liberalismus'다. 자유주의의 의미 변천은 다른 개념어들의 역사와는 조금 다르게 흘러왔다. 처음부터 분명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진보', '개혁', '해방' 등의 단어와는 달리 '자유'라는 단어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상태이며, 단어가 주는 여유롭고 긍정적인 이미지는 이 단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도록 막아왔다.다만, 그 안에 정치용어로서의 싹은 분명히 자라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자유주의'는 급격한 의미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 분화에 결정적 역할은 한 이들이 바로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다.


  '리버랄리태드', 즉 탁월하며 신중하고, 편견이 없으며 관대한 사람의 태도를 의미할 뿐 아니라 종교적, 세계관적, 도덕적 규범 체계와 가치 체계에 대한 개방성과 관용, 자유로운 관계를 의미하기도 하는 '리버랄리태트'는 계속해서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소통적 덕성이었다. 이 덕성은 일정한 교육 수준과 물질적 조건을 전제로 삼는다. 그것은 독립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버랄리태트는 또한 당파성의 반대말로서 언제나 정치적 자유주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였다. 그러나 반계몽주의적이고 반혁명론적인 생각과 주장의 맥락 속에서는 이 덕성의 효과들이 비판적으로 평가될 수 있었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7 : 자유주의>, p31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눈 자유주의를 부르주아 계급과 연계하면서,  '자유주의'는 급속하게 정치 사상 용어로 분화되기 시작한다. 정리하자면,  마르크스 이전의 '자유'가 유한의 육체에 대한 무한한 정신 상태로 구속받지 않은 형이상학적 의미를 가졌다면, 마르크스 이후의 '자유'는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가진 자들의 여유'로 의미가 세속화되었다.


 1840년대 중반에 마르크스 Marx와 엥겔스 Engels는 정치적 자유주의, 곧 "리버럴한 운동"을 전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에 귀속시켰다. 그들이 특히 영국과 프랑스를 염두에 두고 사용한 '리버럴한 부르주아'라는 개념은 어떤 정치적 지향을 대변하는 자들의 계급적 상태를 표현했으며, 사회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입장의 결합을 이데올로기 비판적으로 밝히려는 것이었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7 : 자유주의>, p91


 1852년판 <마이어 백과사전> 속의 자유주의에 대한 글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드러난다. "고대인의 리버럴한 정신"은 "자유로운 사람 그 자체의 표식"이었다. 이와는 다르게 "현대의 자유주의"는 "오늘날의 국가 생활 속에서 억압받는 자유롭지 못한 시민에 의해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제약받지 않는 그들의 지배자에 대해" 수행된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7 : 자유주의>, p108


 이러한 의미 분화 속에서 '자유주의'는 좌,우 양 극단과 결합된다. 어떻게 보면, 서로 대척점에 위치한 두 사상과 자유주의가 결합되었다는 사실이 모순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자유주의 안에 담고 있는 두 핵심요소가 다른 방향으로 자란 결과물임을 우리는 본문을 읽으며 확인할 수 있다.


 "우파"리버럴, 곧 민족적 리버럴들이 19세기의 마지막 30여 년 동안에 보수주의 세력들과 가까워진 반면에, 20세기 초에 일부 "좌파" 리버럴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과의 정치적 협력이라는 생각에 자신들을 개방했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7 : 자유주의>, p124


 자유주의를 꿰뚫어 보는 사람이라면 자유주의가 "뻔하고 단순하게 두 개의 분명하면서도 단순한 원칙들, 첫째로 정신의 세속화, 즉 정신의 비종교성과 천박함을 북돋는 것, 둘째로 정당한 소유자의 손에서 부당한 소유자의 손으로 재산을 이동시키는 것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7 : 자유주의>, p62


 우리는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7 : 자유주의>에서 그려낸 역사 속에서 '자유주의' 안에 담겨진 모순된 의미가 큰 충돌없이 사용되어왔으나, 마르크스/엥겔스에 의해 계급용어로 정의되면서 뜻이 갈라지고,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하는 정치세력에 의해 사용되면서 오늘날에는 다른 단어 못지 않은 강력한 정치용어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처음부터 정치적 자유주의는 그것이 세속화와 사회적 원자화의 부수적 현상이며, 물질주의와 상업 정신의 정치적 표현이고, 민주주의와 대중의 전제적 지배로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직면해 있었다. 그리하여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났는데, '리버랄'이라는 말이 한편으로는 종종 비성찰적으로, 비정치적으로, 특정 정당과 무관하게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행동 양식과 목표를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결단력 없고, 소속감 없으며, 경솔하고 이기적인 정치적 태도를 비방하는 표현으로서 부정적으로 사용된 것이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7 : 자유주의>, p13 


 오늘날의 정치사상 중 '자유주의'사상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사상이 '자유지선주의 Libertarianism'다. 대표적인 자유지선주의 사상가 머리 로스바드 (Murray N. Rothbard, 1926~1995)의 <자유지선주의선언 For a New Liberty: The Libertarian Manifesto>은 자유지선주의의 관점에서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룬 책이다. 현대 자유주의의 흐름에 대해서는 이 책의 리뷰를 통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는 것으로 하고, 이번 페이퍼에서는 자유지선주의 강령의 개략적인 성격을 소개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갈무리하자...  

 

 자유지선주의 강령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약속과 함께 가장 좋았던 시절의 미국을 실현하겠다고 제안한다. 자유지선주의자들은 이제 다행히도 한물간 지난 시대 유럽의 군주정 전통에 집착하는 보수주의자보다도 더욱 공고하게 미국을 건국한 위대한 고전적 자유주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이 전통은 우리에게 개인의 자유에 대한 미국의 전통과 평화로운 외교정책, 최소 정부와 자유시장 경제를 물려줬다. 우리는 보수주의자들보다도 더 진정으로 전통적이고 더 뿌리 깊게 미국적이지만,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급진주의자보다도 더욱 급진적이다._머리 N.로스바드, <새로운 자유를 찾아서 : 자유지선주의선언>, p510


19세기 이후에 정치적 입장의 스펙트럼이 "왼쪽"으로 확장됨으로써 한때 진보적이고 해방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입장이 점차 중앙으로 밀려나 혁신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또한, 자유주의가 그 비판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부르주아 계급의 세계관이나 정치적 목표와 동일시됨으로써 하나의 계급 이데올로기로 축소되었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7 : 자유주의>-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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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4-28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점이 좋은 거 같습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핵심을 다르게 보는 것 같습니다. ㅎㅎ
제가 이 책을 읽을 때 자유 개념이 바뀐 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아니라 ‘소유’에 대한 자유를 인정한 시기라고 보았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4-28 22:25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저는 미처 생각치 못했는데,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신 지점을 다시 짚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4-28 21:34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제가 잘 못 읽었을 수 있습니다. 제가 미쳐 몰랐던 말씀이라서 드린 얘기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1-04-28 21:59   좋아요 0 | URL
역사의 흐름을 규정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중요한 것임에도 놓치는 부분이 없지 않음을 느낍니다. 다만, 그게 무엇인지를 모르는게 제 자신의 한계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면에서 다른 관점에서 말씀해 주시는 부분은 큰 도움이 됩니다. 제 생각 안에 갖혀 있는 것은 마치 아침에 면도할 때 한 방향으로만 깎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다른 방향에서 면도를 하면 훨씬 깔끔해진다는 면에서 감사드립니다.(물론, 7중날 면도기를 사면 제일 좋겠지만, 제 지식은 그 정도가 되지 못하네요..ㅋㅋ)
 


 중세의 전쟁 개념의 이해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또 다른 사실은, 라틴어에서 기존에 사용되던 'bellum'이라는 단어가 게르만어에서 차용된 'guerra'라는 단어에게 자리를 비켜 줘야 했다는 것이다. 'guerra'의 원래 의미는 "침해된 (권리)질서"로 가정할 수 있다... 결국 'kriec'는 이런 식의 해석 보조수단에 이끌려 최정적인 의미가 '전쟁'="무력에 의한 권리중재"로 축소되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 전쟁>, p16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4번째 주제는 전쟁(krieg)이다. 개념사 사전은 원래 '분쟁'을 뜻하던 독일어 '전쟁 krieg'이 '무력으로 인한 권리 중재'로 의미가 축소되었고, 전쟁의 목적이 '평화'에서 '무조건적인 자기 주장'으로 바뀌었으며, 군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추상적인 전쟁'에서 국민 단위의 '총력전'으로 변화된 역사를 보여준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전쟁>에서는 전쟁의 의미가 무력에 의한 권리 중재로 축소되는 것은 중세(中世)의 봉건 질서 내에서 무력에 의한 내적 투쟁의 결과였음이 서술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전쟁의 목적은 이성과 신앙이 합일된 '신의 질서로의 회귀'였다면, 이에 대한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토마스 홉스 Thomas Hobbes는 인간의 발명을 통해 피할 수 있는 모든 단점들과 온갖 불행의 뿌리는 말하자면 전쟁이라는, 무엇보다도 내전이라는 동일한 확신에서 출발하면서 그리고 보장된 절대적인 평화를 위한 조건들을 이론적으로 제시하겠다는 일념으로 가장 날카롭게 전통적인 독트린과 단절했다... 홉스의 경우에는 인간의 본능적인 사회성 socialitas을 거부함으로써 인간의 "자연적 상태 status naturalis"와 관련하여 평화와 전쟁의 관계를 뒤집었다. 그에게는 평화 pax가 아니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bellum omnium in omnes이 자연 상태를 특징짓는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 전쟁>, p36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리바이어던에게로 권력 이양. 그 결과 이전에는 전쟁의 성격이 '대내 對內'와 '대외 對外'로 나뉘어지게 되면서, 전쟁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사회의 안정을 지키는 합법적 행위. 이로부터 무력(武力)은 개인으로부터 국가로 넘어가고, 전쟁은 정치행위가 된다. 내부의 불안을 외부로 돌리려는 일련의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웰즈(Herbert George Wells, 1866~1946)의 <우주전쟁 War of the Words>에는 이러한 전쟁의 성격이 잘 표현된다.


 오로지 이런 외적인 전쟁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것은 어떤 혐의를 불러일으킨다. 즉 국가 간 전쟁을 찬양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발설되지는 않은 어떤 동기가 있는데, 그것은 세기 전체를 관통하는 내전에 대한 공포, 즉 혁명에 대한 고백되지 않은 공포였다는 혐의 말이다. 이미 헤겔은 "행복한 전쟁은 내적인 불안을 막아주고 국가의 내적 힘을 확고하게 했다"고 확증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 전쟁>, p74




19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근대 국민 국가의 형성은 상비군의 조직과 함께 모든 국가 구성원을 공동 운명체로 묶었고, 그 결과 근대 국가에서의 전쟁은 총력전(總力戰)의 양상을 보인다. 그 결과 19세기 남북전쟁까지만 해도 전장(戰場) 옆에서 전쟁을 구경하던 이들의 모습도, 전투 후 패잔병을 약탈하던 농부들의 모습도 이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애국(愛國)'이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욕망이 강제로 통합된 하나의 예가 아닐까 생각된다...


 추상적인 전쟁은  단지 그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진 군사적인 영역 내에서만 절대적이었다... 총력전의 특징은 경계를 해체하고 전 국민을 직접 - 군대라는 수단으로뿐만 아니라 - 전쟁에 관여하도록 한다는 데 있다. 이 개념의 근본에는 현재의 전쟁에서는 "작은 정치적 목적이나 커다란 국민적 이해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 자체의 생존과 정체성이 문제가 된다는 견해가 놓여 있다. 여기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은 국가 속에 근거하는 국민이 자신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하거나 또는 확신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총력전'은 단지 이데올로기적으로 합법화된 전쟁으로서 일종의 "이념 전쟁(이념의 유혈적 교체)"으로 생각할 수 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 전쟁>, p90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 전쟁>에서 우리는 '전쟁'이 '평화'로 가는 '과정'에서, '자기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바뀌어 온 것을 확인하게 된다. 전쟁이 수단으로 가장 극적으로 활용된 예가 '제국주의'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다음으로 읽어야 할 주제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다음 주제는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3 : 제국주의>,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5 :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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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14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기 내부의 불안을 외부로 돌리려는 행위로서의 전쟁이라는 말이 콕 와닿네요.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전 우리 사회 내부에서 타자에 대한 증오나 혐오가 늘어나는 것을 볼때마다 좀 섬뜩해져요.

겨울호랑이 2021-04-15 07:15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전쟁을 원하는 이들의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기에 외부로부터의 위협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는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주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여겨집니다...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1번째 주제는 위기(krisis)다. 한자로 위기(危機)가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합쳐진 의미라면, krisis 역시 이 안에 위험과 기회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다만, 이것은  krisis의 세 가지 해석 중 하나인 신학적 해석에 따른 것이다. 신학적 해석에 따르면 '위기'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위험'을 통해서 얻어진 '영원한 생명'을 향한 길이 된다.


 다가오는 위기 Krisis가 우주적인 사건으로 남아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삶으로의 해방을 보장하는 은혜의 확신 속에서 선취된다. 신의 심판이 예수의 고지 告知를 통해 이미 저기에 있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긴장 속에서 기대 지평이, 즉 다가올 역사적인 순간을 신학적으로 특징짓는 기대지평이 그려진다. 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18


 이러한 신학적 해석 외에도 위기 krisis를 상황에 따라 내려지는 올바름과 통치질서를 조율하는 개념으로 바라보는 법률적 해석, 환자의 완치에 따라 위기 krisis의 성격을 규정하는 의학적 해석등이 역사 안에서 교차하고 있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병의 진행에서 규칙성을 진단하려면, 발병일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위기 Krise가 완치로 귀결되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사람들은 완전한 위기와 재발을 배제할 수 없는 불완전한 위기를 구분했다. 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19 


 이처럼 '위기'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들 중 시선이 머무르는 곳은 단연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1729 ~ 1797)과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 ~ 1809)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논쟁이다. 각각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과 <상식, 인권 Common Sense, Rights of Man>을 통해 혁명에 대한 논쟁의 전형을 코젤렉은 '위기 crisis'에서 찾는다.


 '위기' 개념의 사용에 있어서, 진단과 예측적 기능은 페인과 버크에 있어서 동일하다. 그러나 진단 내용과 기대와 관련해서 그 둘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버크는 의학적 기원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로, 페인은 신학적 기원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로, 세계사적인 대안들을 해석 내지 제시할 수 있는 '위기'의 새로운 의미론적 특성을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그 개념은 공통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그러나 서로 대립적으로 적용된 투쟁 개념 Kampfbegriff이 된다.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46


 최후의 심판 이후 얻어질 구원에 대한 희망이 '신학적 해석'이라고 했을 때, 혁명(革命) 이후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의 붕괴와 새질서의 도래를 전망한 것이 페인의 예측이라면, 혁명 이후 정립되는 새로운 질서가 안정궤도에 들어선 후 혁명을 평가하는 '의학적 해석'은 버크의 것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페인은 진보적 입장에, 버크는 보수적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코젤렉은 '위기'라는 단어를 통해 이들의 사상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토마스 페인 Thomas Paine은 '위기 The Crisis'라는 표현을 자신의 잡지의 제목으로 선택했다. 그는 이 잡지에서 1776년부터 1783년에 일어난 사건들에 도덕을 강제하는 도덕을, 즉 덕과 부덕, 자연법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부패한 전제정치 사이에 필요한 도전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평했다. "이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시험하는 추세들이다."... 식민지의 붕괴는 그에게 있어서 단순히 정치/군사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사적인 심판이 실현된 것이었다. 독재의 몰락, 생지옥에 대한 승리... 위기는 더 이상 혁명의 전조가 아니다. 페인에 있어서 그것은 미국혁명을 통해 실현됐으며, 미국혁명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전무후무한 특징을 획득한다. 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43


 버크 역시 같은 표현을 사용했지만, 페인이 주문 呪文한 동일한 현상들을 분석적으로 기술하는 데 사용했다... 간단히 말해서 버크는 종교의례처럼 물려받은 모든 사회 조건들과 정치 규칙들을 파괴하는 유럽 내전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45


 코젤렉의 개념사에서 '위기'라는 단어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비로소 자리잡혔음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12권은 <혁명 Revolution>이다. 코젤렉의 개념사를 읽다보면, 개념어가 의미를 확장하면서 최초의 의미 뿐 아니라 이와 반대되는 의미마저도 흡수하며 의미를 확장시켜 나가는 경우를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상충되는 의미가 한 단어 안에 담여 있는 모순된 상황. 마치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언어 안에 녹아든 것과 같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근대사의 극심한 혼란을 간접적으로 나마 실감하게 된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12권에서 논의되는 '혁명'은 '반혁명'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서, 11권을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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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3-10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위기는 선택 (받는)을 통해 기회이군요
상평형에서 상전이의 그 때로도 볼 수 있고요

겨울호랑이 2021-03-10 00:25   좋아요 1 | URL
이번에 개념어 사전을 통해 crisis를 위기로 번역한 것에 몇 번을 감탄했습니다. 정말 의미를 잘 살린 것 같아요.^^:)

초딩 2021-03-10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또한, 신 중심에서 인본으로 가면서 그 선택당함이 선택함으로 태가 바뀌어 해석해서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3-10 00:26   좋아요 1 | URL
^^:) 초딩님 말씀처럼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겠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질서란 무엇을 뜻하는가? 진보라는 것은 한눈에도 그 뜻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우리가 인간 사회의 부족한 것 중의 하나로 진보를 말할 때 이는 개선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그 뜻이 어느 정도 분명하다. 그러나 질서라는 말은 경우가 다르다... 질서를 가장 좁게 정의하자면 복종이라는 말과 통한다... 진보만이 가진 독특한 정신 요소, 그 진보를 절정에 이르게 해주는 본질적인 요소는 바로 독창성이나 창의력이다. _존 스튜어트 밀, <대의정부론> 中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의 표현 처럼 진보(進步, progess)를  개선(改善, frformation)으로 바라보는 것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사전에 나오는 같은 의미를 갖는 독일어 Fortschritt 역시 동일하다고 볼 것인가?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얻은 점은 이에 답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같은 뿌리를 갖는 언어권 내에서도 미묘하지만 분명한 의미 차이를 알게 되면서, 특히 '개념어'에 해당하는 언어 사용과 번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보다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일부 개념어(예를 들면, 문화 kultur / 문명 civilisation)들은 다른 유럽어권 언어와 다른 의미를 갖지만, 다행히 '진보'라는 단어에는 심하게 다른 요소는 없어 보인다. '진보'가 문화권의 영향보다는 서구 사상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단어이기 때문일까.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von Aquin의 이론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긴 해도 진보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비슷한 틀 안에서 움직였다. "자연의 완성은 사실 세상의 시작에 내재해 있었다. 진정한 영광의 완성은 세상의 종말에 있을 것이다. 또한 영광의 완성은 시작과 끝을 매개하는 중간자다. 그래서 예수는 세상의 한 가운데로 온 것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39

 

 중세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 ~ 1274)의 말 속에서 우리는 신에 의한 창조된 세계, 피조물로서 자연과 인간의 법칙이 하나이며 순환적 세계관  -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요한 묵시록 22:13)" - 을 발견한다. 중세의 진보가 신의 절대적/영속적 시간 속에서 이뤄진 발전을 의마한다면, 근대 이후 '이성 理性'을 가진 존재로서 역사의 주체인 인간의 진보는 방향성과 영속성 면에서 차이가 있다.


 진보 개념의 관철에서 척도가 된 것은 이성과 현세적 시간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의 지양이었다. 이성의 사용이나 이성을 통한 발견과 새로운 고안들은 시간과 함께 증가되었다. 결국은 이성 자체가 시간성을 띠게 되었다. 노화가 이전에는 노쇠의 진행 현상에 비유되었다면 이제는 이성의 사용의 확장으로 이해되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52


 신의 시간이 영원(永遠)이라면 그 자체로 완성(完成)을 의미하기에 중세의 진보는 신이 만든 세계 내에서의 순환을 의미하겠지만, 시간의 한계를 갖는 인간에게 진보는 보다 직선적이고 상향(上向)의 의미를 갖는다. 이런 면에서 '진보'는 시대에 따라 다른 방향성을 갖는다는 사실과 함께, 순환적인 자연의 법칙과 비순환적인 인간의 법칙의 차이를 발견한다.


 홉스 Thomas Hobbes는 자연과학에서의 진보와 이를 좇지 못하는 도덕 간에 벌어진 괴리를 정확하게 묘사했다. 그는 도덕론에서 기하학적 정리처럼 규칙성과 예측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학문적 발전과 이에 상응하지 못하는 도덕적 수준의 비대칭에서 생겨난 이러한 요구는 이후에 진보에 대한 논의에서 단골 주제가 되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91


  비순환적인 인간의 법칙에서도 '진보'에 대한 문제는 계속된다. 홉스(Thomas Hobbes,1588 ~ 1679)의 지적처럼 과학으로 대표되는 학문의 진보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윤리의 문제는 일반적인 '진보'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다. 또한, 개별 사건에서 발견되는 역사의 퇴보는 또한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진보'를 바라보자는 시각이 새롭게 제시된다. 개별 사건으로는 퇴보가 되었을지라도, 보다 큰 흐름 속에서 개선된다는 역사의 법칙은 여전히 유용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진보는 이중의 역사 해석을 필요로 했다. 개별 사건이나 역사적 사실은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일 수 있다. 하지만 진보의 관점에서는 위기와 혁명 자체도 크게 봤을 때 개선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쉽게 얘기 하자면 현재에 나쁜 일로 타격을 받는 운명을 겪더라도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p102)... 역사의 이중 해석이 개선과 합리적 발전이라는 가설을 성립하게 했다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 과정에서 시간 경험의 차이가 또 다른 명제를 이끌어냈다. 가속화의 명제가 그것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103 


 이로써 모두에게 공통적이었던 진보의 경험은 이제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어야 했다. 종종 내걸던 진보의 법칙은 경험적으로는 결코 공통분모를 가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진보의 행위자나 관련자는 시간상 서로 다른 단계에 있다고 평가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개인을 초월한 경험적 명제는 부분적으로만 확인될 수 있었고 보편적 증거라는 것도 그때그때 다양한 관점에서 본 것이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123 


 아마도, 이러한 보편적 역사의 법칙으로서 '진보'는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 ~ 1903)의 <진보의 법칙과 원인 Progress : Its Law and Cause>에 잘 나타난 듯하다. 그는 자연법칙의 진화(進化 evolution)를 인간 사회로 가져오면서 보편 법칙으로서 사회적 진화를 말한다. 엔트로피(entropy 무질서도) 증가 속에서도 일어나는 진화, 그리고 진보. 20세기 대부분의 시기를 지배한 사회적 진화론의 논리를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한다.

 

 현재의 모든 사건에서 그러한 것처럼 태초로부터 모든 작용력들이 여러 힘으로 분해되어 영속적으로 더욱 복잡성을 창출한다는 것도 예상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복잡성의 증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이 틀림없다. 진보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인간이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유익한 필수과정이다._ 허버트 스펜서, <진보의 법칙과 원인>, p90


 코젤렉은 책의 마지막에서 '진보'라는 개념에는 언제나 정치적인 논리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A보다 B가 더 나은 상태이니, 이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진보의 가치판단이라면, 그 근거는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런 면에서 '진보'라는 단어의 정의는 간단하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코젤렉이 서두에서 말한 진보의 포괄적 개념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과거에 있었던 진보를 통해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새 시대를 향해 질문을 던지게 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어떤 관점이든 관계없이 진보의 개념에는 예측의 잠재력이 내재하고 이것은 언제나 정치적 입장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144


ps. 밀은 <대의정부론>에서 '질서 = 복종' 이라고 했는데, 스펜서의 복잡성 증가는 복종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진보가 일어난다는 답도 포함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진보는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된 보편적 인류와 관련된 개념이 되었고, 때로는 개별적인 영역 혹은 구체적 행위 일체와 관련되었다... 진보 자체는 주체적 개념으로 가끔 더 나빠지는 것을 표현할 때도 있지만 보통 개선을 향한 움직임을 뜻한다. 또한, 진보는 비순환적 진행을 가리키며, 종종 가속화 Beschleunigung 를 의미한다. 진보의 목표는 유한한 범위 내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과 그 목표를 무한하게 연기하는 사이에서 동요한다.(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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