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이 된 사람은 백성을 기초로 삼고, 백성은 재물을 근본으로 삼으니 재물이 고갈되면 아래에서는 배반을 하며 아래에서 반란을 일으키면 위는 망합니다. 이리하여서 밝은 제왕은 기초와 근본을 사랑하고 아끼며 감히 끝으로 몰아가지 않는 것은 백성을 시키는 것이 마치 큰 제사처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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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때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때는 상감과 더불어 조정과 백성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싸웠다는 점이고, 이번에는 상감과 조정은 왜놈들 편에 서서 의병을 역적시하며 해산령을 내리거나 매도하는 가운데 백성들이 자발로 나서서 싸운 것이 크게 다른 점입니다._ 조정래, <아리랑 2> 中


 조정래(趙廷來, 1943 ~ )의 <아리랑>에서는 일본편에 서서 의병을 탄압하는 양반과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이 양반 출신 의병장 송수익의 입을 빌려 나온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당시 임금 선조(宣祖, 1552 ~ 1608)는 빠른 속도로 의주까지 도망간 후 여차하면 명나라로 들어갈 생각을 했으니, 당시 상감이 백성과 함께 했다는 송수익의 말은 무리가 있다. 다만, 광해군(光海君, 1575 ~ 1623)이 분조(分朝)해서 백성을 위무했다는 점에서 조정과 백성들이 혼연일체가 되었다는 말은 무리가 없겠지만. 아마도 송수익의 마음은 힘이 없더라도 최소 포로로 끌려갔다 도망간 이들을 변호하는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 ~ 1645)의 역할도 하지 않은 당시 조정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싶었으리라.


 

 17일 오후 아문통사 한보룡(韓甫龍)이 관소에 와서 말하기를, "봄이 온 후로 도망간 사람이 무려 천여명이나 되어 잡아보내라는 뜻을 전후로 거듭 당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이 반드시 마음을 다하여 시행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보낸 숫자를 보니 매우 엉성합니다.. 그 도망간 사람은 또한 의당 알려서 잡아보내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저희들이 대답하기를, "조선이 받들어 행함에 있어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목숨을 걸고 도망하여 숨은 사람을 잡기란 쉽지 않으며 만일 잡는다 하더라도 하나하나 들여보내니 그 수가 많지 않은 것은 일의 형편이 그래서입니다. 신사년 인조 19년"_ 소현세자, <심양장계 瀋陽狀啓>, p579


 그렇지만, 송수익의 바람과는 달리 당시 조선의 관리들은 빠르게 힘의 이동을 깨닫고, 친일파로 변신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권세와 부를 지킬 수 있었다. 반면, 가진 것 없고 이 땅의 주인이었던 적이 없는 백성들은 의병(義兵)이라는 이름으로 이들과 맞섰다. 


 

 조선관리들은 궁장토며 역토 둔토 같은 것들이 전부가 국유가 아니고 태반이 사유지라는 내력을 환히 아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들은 사유지들까지 다 몰아 왜놈들에게 넘겨 주는 짓을 저질렀던 것이다._ 조정래, <아리랑 3> 中


 그들은 용맹스러웠다. 보잘 것없는 무기로 신식무기를 갖춘 적들과 맞서 싸웠다. 모두가 혼신의 힘으로 다해 싸우다가 죽어갔다. 누가 강제로 끌어낸 것도 아니었고, 싸움에 이긴다고 무슨 보장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싸우다가 죽어갔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은 사람대접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하층민이었다. 대대로 빼앗기고 무시당하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을 내걸고 나섰던 것이다. 결국 나라의 참된 주인은 왜적과 맞서 싸우다 죽어간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뒤에서 도운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_ 조정래, <아리랑 2> 中


 이들은 무엇을 지키려고 했을까. 자신들을 업신여기고 수탈했던 조선(朝鮮)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누구보다 더 컸을 이들이, 선장마저 떠난 배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이유는 무엇일까. 마을마다 전해지는 소년장수, 총각장수 전설 속에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부당하게 탄압받던 백성의 아픔이 담겨있는데, 이러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것이 나라뿐이었을까.


 백성들이 무식한 것은 그들이 글배우기를 싫어했거나 아둔을 타고나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글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가 없었다. 상것들은 절대 글을 익힐 수 없는 것이 수백 년에 걸친 규범이었다. 그건 양반층이 자행한 횡포고 억압이었다. 양반층은 권력을 독점한 상태에서 일체의 세금만 안 낸 것이 아니었다. 그 권세를 세세만년 누리기 위해서 백성들을 무식한 바보로 만들어 마음대로 부려왔던 것이다... 결국 양반층은 송수익의 말대로 위로는 왕족을 업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짓밟아가며 권세와 부의 감미만 빠는 그릇된 부류일지도 몰랐다. 사실 그들이 올바르게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면 백성들을 모두 강압적으로 우민을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고, 반란을 두려워해 사람을 그렇게도 잔인하게 병신을 만들 까닭도 없는 것이었다._ 조정래, <아리랑 4> 中


  만약,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이 나라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함께 한 마을 공동체였을까. 그렇다면, 마을 공동체가 갖고 있는 억압구조에 부당함을 느낀 이들은 없었을까. 같은 사안에 대해 여자에게 더 엄격한 사회규율에 대한 불만이 있었음에도 많은 이들이 일제 지배에 저항한 이유는 무엇일까.


 몸을 섞었다고 소문을 내버리면 그건 마지막이었다.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변명이 통하지 않았다. 남자가 발설한 이상 모두 남자의 말을 믿어버릴 것이었다. 샛서방질한 년은 남편도 손을 대지 못했다. 그건 여자가 저지른 죄 중에 대죄라서 동네사람들 모두가 나서서 다스렸다. 그 벌은 끔찍스러웠다. 새끼줄에 목이 끌려 동네돌림을 당하며 돌질에 얻어맞거나 물벼락을 뒤집어써야 했다. 또는, 속곳을 벗긴 채 홑치마만 걸치고 배꼽 높이로 팽팽하게 맨 새끼줄을 가랑이 사이에 넣고 타야 했다. 그 둘 중에 어느 것도 견뎌낼 수 있는 벌이 아니었다. 그 벌을 받지 않으려면 동네사람들이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하기 전에 목을 매는 수밖에 없었다._ 조정래, <아리랑 4> 中


 <아리랑 4>까지 읽으면서 식민지 시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조선의 관리들이 앞장서 친일을 하게 되는 주된 이유가 과연 개인의 영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성리학적 세계관을 대신한 근대 사상의 도입 때문이었을까.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것은 과연 자신들을 탄압한 국가였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일까. 또는,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이 오늘날 관점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거슬리는 반동(反動)은 아니었을까, 등등... 어쩌면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 안에서 이에 대한 답(答)을 구한다는 자체가 매트릭스(Matrix)안에 스스로를 던져 놓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리랑>을 읽으며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만큼, 역사의 뼈대 위에  살을 잘 붙였기 때문이 아닐까...


보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그때 실기를 했으면 그 다음 강제 양위를 당했을 때 상감은 만백성을 향해서 외쳤어야 하네. 백성들이여, 나와 더불어 왜적들과 싸우자 하고 말이네. 그러고 군대를 이끌고 앞장섰어야 했네. 그러면 왜놈들이 곧 죽이고 말았을 거라고? 죽이면 죽어야지. 그게 나라를 뺏긴 상감이 책무를 다하는 길이네. 상감이 해산령을 내려도 의병으로 나서서 수만 명씩 죽어가는 백성들인데 만약 상감이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가 왜놈들의 총칼에 죽었다면 백성들은 어찌했겠나. 이 땅에 합병이란 없었네._ 조정래, <아리랑 2>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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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31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본 아리랑을 요즘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다시 되새기는거 같아요. 추억돋다라고 말할까요? ㅎㅎ

조선의 관리들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적 세계관에 통달한 사람들이었고, 따라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발전과 도덕성을 같이 가는것으로 생각했던 것을 그들의 글을 보면 발견하게 되더라구요. 서구나 일본이 발전한 것은 그들의 도덕성이 높기 때문이다같은....
하여튼 이 시기의 여러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제가 그 시대에 살았어도 딱 뭐라고 분명하기 얘기하기 힘들었겠구나 싶어요.

겨울호랑이 2021-03-31 07:4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성리학이 학자들의 학문 뿐 아니라, 조선의 헌법이라 할 <경국대전>의 주요 사상이 되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조선시대 관리들이 사회 발전과 도덕성을 ‘이(理)‘와 ‘기(氣)‘ 관점에서 파악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기존에 중국을 ‘이‘로 생각했는데, 청나라가 무너지고 서구와 일본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이들을 ‘기‘로 받아들여야할 것인지, 새로운 ‘이‘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했을 듯 하구요... 아직은 공부가 미치지 못해 짐작으로만 넘겨짚어 봅니다. <아리랑>에 묘사된 당대의 상세한 묘사가 부족한 제 이해에 도움이 될 지 기대가 됩니다.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사회개혁이라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만 부르짖거나 실천하는 공산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사회 개혁은 얼마든지 부르짖을 수 있고 실천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더욱 사회개혁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가 봉건사회나 전제군주체제에 반동으로 생겨났다는 데는 동일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경제구조의 이질성으로부터 두 주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봉건사회나 전제군주사회가 무너지고 민주주의 사회가 형성되려면 인간 본위적 사회개혁은 필수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p31)'


  <태백산맥> 제3권에서는 사회개혁과 관련한 대화가 이뤄진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남(南)과 북(北). 서로 다른 길을 택했지만, 이들은 모두 '사회개혁(社會改革)'을 당면 과제로 떠안게 되었다. 비록, 체제가 다른 국가지만, 이들이 공통된 과제를 맞이하게 된 것은 '국가'라는 체제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국가는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을 위한 씨족들과 마을들의 공동체다. 그리고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이란 행복하고 훌륭하게 사는 것(to zen eudaimonos kai kalos)을 뜻한다. 따라서 국가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모여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따라서 그런 공동체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자가 자유와 신분에서는 같거나 더 우월하지만 정치적 탁월함에서는 더 열등한 자들보다, 또는 부(富)에서는 더 우월하지만 탁월함에서는 뒤처지는 자들보다 국가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 )<정치학> (1281a2)


 <정치학>에서 말하는 내용에 따르면, 체제와 관계없이 공동체에 더 많이 기여하는 자가 더 큰 몫을 가져가게 된다. 전통농업사회에서는 지주(地主)계급이, 산업자본시대에서는 자본가(資本家)계급이, 공산당이 지배하는 공산국가에서는 당(黨)이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된다. 많이 기여한 자가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의 문제는 이러한 많은 몫이 재분배되지 않고, 후대에 계승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민중들은 40여년 전 조선왕조의 백성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의식은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우리나라 공산당 역사는 중국보다 앞서 있었고, 자유주의다, 농촌계몽주의다 하는 것들이 의식변화를 촉진했습니다. 결국 지주계급의 몰락은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의 기운이고 역사의 필연인 것입니다.... 지금 이남이 내걸고 있는 민주주의는 링컨이 정의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정당한 사회 개혁의 절차를 거쳐 지주계급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주계급을 보호하고 있는 이남의 체제는 민주주의라는 허울뿐 봉건사회의 답습이고 연장일 뿐입니다. 과감한 사회개혁 없이 이런 식으로 계속되게 되면 사회혼란은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p32)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는 전남 벌교 지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남한 지역에 속한다. 당시 남한이 당면한(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는 기득권의 상속, 유지 문제였고, 이러한 사회적 모순은 과감한 사회개혁 또는 혁명의 필요성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남한의 현실은 미국의 민주주의와는 차이가 있었다. 남한에서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일뿐,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었다. 반면, 남한 민주주의의 롤모델인 미국 시민 혁명은 어떻게 파급되었는가. 이를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 ~ 1859)의 <미국의 민주주의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메리카 혁명이 일어나면서 주권재민의 원칙은 타운들로부터 나와서 전국을 석권했다. 모든 계급이 이 원칙을 지지했다. 이 원칙을 쟁취하기 위해서 전투가 벌어졌고 승리를 거뒀다. 이 원칙은 법 중의 법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태발전에 걸맞는 빠른 변화가 사회 내부에서도 일어났는데 상속법은 국지적인 영향력들을 완벽하게 말살시키고 있었다. 법률의 이런 영향과 독립혁명의 결과가 누구의 눈에나 분명해지자 민주주의 쪽의 승리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선포되었다. 사실상 이 원칙의 수중에 모든 승리가 돌아갔으며 이에 대한 더이상의 저항은 있을 수 없었다. 상류계층들도 불평 한마디 없이, 저항 한번 없이, 이 원칙으로부터 불가피하게 파생되는 악에 대해서까지 복종했다.(p116)'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1>


 미국시민 혁명은 대내적으로는 상속법을 통한 법률개혁과 대외적으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실현하면서 반대세력의 저항을 무력화 시키고 받아들여지게 된다. 아마도, <태백산맥>에서 남학의 사회개혁가들은 아마도 이와 같은 사회 개혁을 꿈꾸었을 것이고, 거슬러 올라가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역시 이러한 사회개혁의 선구라 하겠다. 


 '1893년 11월에 지방관들의 수탈행위로 전라도 고부, 전주, 익산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동학사>에는 "계사(癸巳) 11월 15일에 전라도 고부, 전주, 익산 등 각 군에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민란이 한꺼번에 일어난 일이 있었다. 횡포, 탐학, 강압으로 가결전(加結錢), 가호전(家戶錢), 무명잡세며, 국결환롱(國結幻弄)과 백지징세(白地徵稅)며 유망(流亡), 진결(陳結), 은결(隱結), 허복(虛卜)이며 불효(不孝), 불목(不睦), 불경(不敬), 독신(瀆神), 상피(相避) 등 죄목으로 옭아매어 백성들을 들들볶아 먹는 까닭이라" 하였다.(p374)' 삼암 표영삼 <동학2>


 탐관오리들의 수탈로 일어난 동학혁명은 대내적으로 당시 제도적 모순에 대한 개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미국 시민 혁명과는 달리 외세(일본(日本)과 청(淸)나라)의 개입으로 인해 좌절된다. <태백산맥>4권에서는 동학혁명 당시의 참상이 잘 묘사되고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 대장이 인내천(人乃天) 깃발 펄럭임스로 전주감영을 빼은 담에 나라가 불러딜인 청국군 일본군이 밀려들고, 종당에는 일본군이 독판침서 동학군이 패허든 대목을 이약허겄구만. 다 이긴 쌈에 일본눔덜이 훼방얼 놓고 뎀베들었는디, 그눔덜언 각단지게 총질얼 허는디다가 대포할라 펑펑 쏴질러뿐께로 지아무리 용맹시러운 동학군이라 혀도 당헐 방도가 웂었제. 우리 동학군이 지닌 무기라는 것은 창뿐이고 칼뿐인디, 맞부어 싸우겄다고 쫓아가다 보면 총에 맞어 수도 웂이 죽어갔제.(p54)'


 동학농민혁명군은 우금치 전투(牛禁峙戰鬪), 1894)에서 일본군의 신식무기와 개틀링기관총 앞에 무수히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패퇴하게 된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주인공 탐크루즈와 동료 무사들이 개틀링 기관총 앞으로 돌격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로 등장하지만, 실제 일본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군의 기관총 앞에 쓰러져간 이들의 모델은 우리 선조들이었다.) 


[사진]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출처 : http://egloos.zum.com/leesunggil/v/2993445)


 만일 동학농민혁명이 외세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혁명의 성과를 내고 우리는 왕정(王政)에서 민주정(民主政)으로 이행할 수 있었을까. 그럴수도 있었겠지만, 다시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 ~ 1527)는 <로마사론>에서 이러한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모든 혁명적 변화는 다른 계기를 통해 원상태로 돌아가려는 내재적 동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모든 정부는 초창기에는 어느 정도 존경을 받기 때문에 이 민주 정부는 어느 정도 존속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기껏해야 그 민주정부를 수립한 세대가 살아 있을 동안만 버티는 것이다. 그 세대 이후에 민주 정부는 곧바로 아무 규율 없는 방종한 자유의 상태로 추락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시민 개인이든 정부 관리든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 결과  각 개인은 제 멋대로 살아가며 날마다 무수한 피해 사례들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사태의 필요에 의하여 또는 어떤 선량한 사람의 제안에 의하여, 이런 방종한 상태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은 다시 한 번 군주제로 돌아간다.(p69)'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태백산맥> 제3권에서 나오는 짧은 대화 속에서 우리는 해방이후 극심한 혼란기 속에서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 의식 속에서 '혁명' 또는 '급진적인 개혁'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급진 개혁 움직임이 정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변화방안이었는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한국 전쟁 이후에도 우리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고, 많은 혁명을 거쳤지만, 제대로 진전된 해결책을 찾은 문제는 드물었다. 적시에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는 이제는 후대의 짐이 된 채 쌓여만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혁명적 변화'가 아닌 '작은 변화'가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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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0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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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08: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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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1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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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1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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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1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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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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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맥 >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대로 '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이 발생한 1948년 벌교 지역을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뛰어난 몰입감을 주는 소설 속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몇몇 부분을 옮겨본다.


1. 선(善)과 악(惡)

 

'전혀 다른 두 모습의 문서방. 그 어느 쪽이 진짜인가.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표변할 수 있는가. 그 어느 쪽이 진실인가.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이중적일 수 있는가... 그렇다, 인간은 복합적 사고와 다양한 감정의 줄기를 소유한 동물이다. 문서방의 전혀 다른 두 모습은 그런 인간의 속성이 표출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 모습은 다 문 서방의 참모습인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선(善)과 악(惡)이 공존하면서 외부의 영향과 상황에 따라 그것은 반응하는 것이다. 문 서방은 아버지에게는 선한 인간으로 반응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악한 인간으로 반응한 것뿐이다. 만약 아버지가 악한 지주였다면 문 서방은 여지없이 악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 서방의 악은 악이 아니라 선인 것이었다.'(p68)


 <태백산맥>에서 묘사된 인간 본성(本性)의 문제는 여러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이러한 오래된 철학적 질문에 대해 주인공 범우는 인간 내부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답하고 있다. 이러한 김범우의 생각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주(註)를 단 왕필(王弼, 226 ~ 249)의 의견과 많은 공통점을 보이는 것 같다.

 

'왕필이 선(善)과 불선(不善)을 '시(是)'와 '비(非)'에 상응시킨 것은 바로 잘 되는 경우가 "그렇다"고 할 수 있고,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런데 핵심적인 것은 즐거움과 성남이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고, 옳음과 그름이 한곳에서 나온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불이(不二)"의 사고입니다. 일반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양자가 심층적으로는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통념적으로 대립시키는 것들을 같은 뿌리로 소급시키는 것은 곧 현실세계에서 통용되는 선(善)과 악(惡)의 구별의 피안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para-doxa"의 사유이기도 합니다.'<개념-뿌리들>(p558)


  절대적인 선과 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상황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는 범우의 말속에서 전통적인 동양사상을 확인하게 된다. 동양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유입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을 수용하면서 생긴 사상대립. 한국전쟁과 이념 대립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사상을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 사상이 극단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2. 남로당과 칼 마르크스


 <태백산맥>1에서는 남로당(南勞黨)과 군정(軍政)간의 대립이 잘 묘사되고 있다. 남로당은 어려운 경제 현실로부터 탈피하고자하는 민중의 열망을 정치투쟁으로 확산시키려했던 반면 군정은 이를 좌절시키려 한 것이다. 


 '남로당은 어쩌면 남쪽 전역에 걸친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열렬한 지지였지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미군정의 경제정책에 대한 생존보호와 불만표현이 먼저였다. 그러니까 남로당은 군정과 정치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고, 민중들은 군정과 경제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로당은 민중들의 경제투쟁을 조직화하여 정치투쟁으로 확산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교활할 만큼 영리한 군정이 그것을 좌시할 리 없었다. 미리 준비해 둔 무력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박살을 내고는 한 것이다.'(p238)


이러한 남로당의 투쟁 노선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기반한 것임을 우리는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3rd Earl Russell, 1872 ~ 1970의 <서양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 ~1883)의 변증법은 법칙의 불가피성을 제외하면 앞서 말한 헤겔 변증법의 특성을 전혀 나타내지 않는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추진력이다. 그러나 물질은 인간적 요소가 완전히 말살된 원자론자들의 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고찰해온 독특한 의미를 갖는 물질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에게 추진력은 실제로 인간이 물질과 맺는 관계이며, 그러한 관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생산 양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실질상 경제학이 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 역사의 어느 시기이든 정치, 종교, 철학, 예술은 속한 시대의 생산 방법과 비중은 조금 낮지만 분배 방법의 산물이다.' <러셀 서양철학사> (p990)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인간의 삶과 관련된 하부구조가 보다 형이상학적인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던 일제(日帝) 하에서 토지의 균등한 분배등 경제적 평등을 약속한 남로당의 약속은 가난했던 많은 민중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로당의 투쟁이 현실의 삶과 다소 거리가 있는 정치 투쟁으로 이어졌을 때도 먹고사는데만 관심있는 민중들의 지지를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혁명이론으로 현실적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3. 문화와 제국주의


 <태백산맥>속에서는 제국주의(帝國主義)에 대한 비판이 한때 사회주의에 심취했었던 손승호라는 인물을 통해 가해진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1616)가 과연 인도(印度)와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가? 라는 물음에 대한 손승호의 비판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지는 몰라도 그런 비유법을 쓴 영국인들은 한심한 종자들이야. 그 과장의 정도야 아무래도 상관할 게 없지만, 비유의 대상을 한 나라로 잡았다는 건 용서할 수가 없는 일이야. 셰익스피어가 제아무리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한들 어찌 인도보다 더 위대할 수가 있느냔 말야. 인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는 차치하고라도 거기엔 4억을 헤아리는 인간들이 엄연히 생존하고 있어. 그 생명들의 존엄성보다 셰익스피어가 더 위대하다니. 그따위 발상법을 가진 영국인들은 일본놈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식민주의자들이야.'(p240)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思想)이라고 한다면 셰익스피어의 중요성은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제국주의 종주국들에게는. 이에 대한 내용을 에드워드 W. 사이드(Edward W. Said, 1935 ~ 2003)의 작품 <문화와 제국주의 Culture and Imperialism>을 통해 살펴보자. 

 

'만일 중요한 종주국 문화의 몇 가지 -가령 영국, 프랑스, 미국의 문화-를 제국을 추구하는(그리고 제국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지리적 배경 속에서 연구한다면, 명확한 문화 지형도가 선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가령 영국 문화에서 스펜서, 셰익스피어, 디포, 오스틴이 집요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먼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권력의 거점을 종주국인 영국 또는 유럽에 설정하고, 이어 작품의 구상, 동기, 전개에 의해 그러한 권력 거점을 원격의 "주변"세계,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열등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세계(아일랜드, 베네치아, 아프리카, 자메이카)에 접속하는 것이다.'<문화와 제국주의>(p132)


 셰익스피어가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적 배경을 제공한다면, 셰익스피어가 존재하는 한  지금 당장 인도를 잃는다하더라도 회복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4.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그외에도 <태백산맥> 속에는 민족주의의 입장과 공산주의의 입장이 각각 김범우와 염상진의 말과 생각을 통해 나타나 우리는 당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체감할 수 있다. 


 '어떤 주의를 따르든 그건 개인의 자유지요. 그러나, 그것이 곧 민족 전체를 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성급한 판단은 금물입니다. 미국이다, 소련이다, 민주주의다, 공산주의다,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생활의 방편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민족의 발견입니다. 그 단합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해요.'(p85)


  '힘은 조직화될수록 강해지고, 그 힘은 공격을 감행할 때 더 강해지고, 그리고 승리를 쟁취했을 때 그 힘은 절정의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그건 힘의 법칙이고, 힘의 미학이었다. 북조선의 일사불란하게 조직화된 힘은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면 남조선의 오합지졸인 비조직화된 힘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한반도 전역에 공산혁명의 깃발을 나부끼게 할 것임을 굳게 믿어왔다. 그런데, 하늘처럼 믿었던 북조선의 조직화된 힘은 뻗쳐오지 않았고, 오합지졸인 줄만 알았던 남조선의 힘에 쫓기게 된 것이다. 왜 북조선은 힘을 쓰지 않은 것인가. 남조선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었는가. 그럼 북조선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일까.'(p125)


 한국 현대사의 이념대립을 다룬 <태백산맥>은 이처럼 인물과 사건을 통해 선과 악,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민족주의, 제국주의 등 대립적 요소가 잘 제시된다. <태백산맥>이 현대사를 다룬 뛰어난 문학작품인 이유는 작품이 주는 몰입감과 더불어 당대의 이념들간의 대립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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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3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09-04 0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창시절 통학시간이 길었던 덕에 태백산맥을 빌려 지하철에서 읽었었는데...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구매해 두었으나 읽을 엄두를 못 내고 방치 중입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7-09-04 04:09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께서는 일찍 태백산맥을 읽으셨군요^^: 저도 좀 더 일찍 읽었다면 현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까하는 뒤늦은 아쉬움이 생깁니다^^:

2017-09-04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4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