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파운데이션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3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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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파운데이션이 단일한 정치 조직이라는 물리적인 틀을 제공한다면 제2파운데이션은 준비된 지배 계급이라는 정신적인 틀을 제공하는 거지요. _ 아이작 아지모프, <제2파운데이션>, p154

 

 아이작 아지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은하 제국의 멸망 후 혼란 속에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려는 인류의 장대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2파운데이션>은 해리 셀던의 숨겨진 계획의 마지막 퍼즐 조각인 제2파운데이션의 등장과 함께, 인류의 미래를 둘러싼 더욱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제1파운데이션이 과학 기술과 사회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려 했다면, 제2파운데이션은 정신과학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조정'하려 한다.


 제2파운데이션의 정신과학은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작품 속에서 우리는 개인의 자유 의지를 침해될 수 있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오용 될 경우 매우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과 소통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인간적인 감정과 공감을 결여하는 제2파운데이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말이란 원래 인간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불안전하게 습득한 수단이다.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소리를 조합하고 추상적인 소리를 짜 맞추는 방법으로 의사를 소통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마음에 담긴 미묘한 감정을 목구멍에서 거칠게 흘러나온 신호로 타락시키는, 둔감하고 부적절하고 꼴사나운 수단이기도 했다. _ 아이작 아지모프, <제2파운데이션>, p143


 말과 의사소통에 대한 부정적 인식. 우리는 현실 속에서 언어의 한계와 모호성을 체감하며 살아간다. 언어의 한계는 때때로 우리에게 답답하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상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연 이러한 언어적 한계만으로 언어와 소통을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은 일상적인 대화라는 감옥 창살을 본능적으로 우회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했다. 의미론, 기호논리학, 정신분석 등 역시 대화를 정확하게 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심리역사학은 정신과학의 정수를 결국엔 수학화하는 데 성공한 결과였다...  수학의 발전은 이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심리학의 진정한 발전을 일으킨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개인에 대한 심리학적 지식을 집단에 일반화하면서 사회학 역시 계량화되었다. _ 아이작 아지모프, <제2파운데이션>, p145


 제2파운데이션은 소통 대신 직접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향해 나간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개인보다 전체를 우선하는 전체주의적 사고와 소수에 의해 결정되는 비밀주의에서 제1파운데이션의 기술관료주의적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제2파운데이션의 엘리트주의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셀던은 제2파운데이션을 하나의 보완책으로 설계했다.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성격의 엘리트 중심의 공화주의. 그렇지만, 제2파운데이션의 정신과학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개인이 제어를 받았는데도 그것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란 대체 어떤 때일까? 그건 제거시켜야 할 이전의 감정 상태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야. 바꾸어 말하면 그 개인이 백지의 마음을 가진 신생아일 경우지. _ 아이작 아지모프, <제2파운데이션>, p339


 과연 완벽한 통제는 가능할 것인가? 제2파운데이션의 능력은 개인의 자유 의지를 침해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통제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또한, 소수의 엘리트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엘리트주의적인 통치 방식은 전체주의적인 위험성을 내포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신과학은 인간적인 감정과 공감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소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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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과 제국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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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근본적인 실수입니다. 지금 우리는 완전히 깨져 나간 과거를 살고 있습니다. 지난 80년 동안 우리 조직은 올바른 역사적 순간이 오기만 기다렸습니다. 셀던의 심리역사학에 눈이 멀었던 겁니다. 그 대전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개인은 역사를 만들 수 없고 오로지 복잡한 사회적, 경제적 요인에 압도되어 꼭두각시 노릇만 한다는 겁니다. _ 아이작 아지모프, <파운데이션과 제국>, p269

<파운데이션> 시리즈 제2권에서 파운데이션은 두 차례의 위기를 맞이한다. 하나는 제국 최고의 명장 벨 라이오즈를 통해, 다른 하나는 역사심리학의 계획에 없던 돌연변이 뮬을 통해. 두 차례의 위기는 심리역사학이라는 절대법칙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집단의 행동을 예측하며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에는 더없이 탁월한 심리역사학은 미시적인 개인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두 개인에 의해 하마터면 시스템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 짧은 기간에 심리역사학이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예견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란 사실이 입증되었소. 인간 개인의 반응을 무시한 채 수학적 분석과 외삽법을 이용해서 인간 집단 전체의 반응을 분석하고 예측해 아주 구체적인 법칙을 만들어냈다오. 해리 셀던과 그 동료들은 바로 그 법칙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파운데이션을 만들었소. _ 아이작 아지모프, <파운데이션과 제국>, p45

역사의 흐름에서 개인은 어떠한 존재인가. <파운데이션과 제국>은 이러한 물음을 던진다. 개인이 시대를 만드는가 아니면 시대정신이 역사 속의 개인을 통해 드러나는가. 결국 셀던이 기획했던 심리역사학의 법칙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보완될 필요를 보였고, 이는 제2파운데이션을 통해 형상화된다. 이성과 과학기술 중심의 제1파운데이션에서 고려되지 않았던 미시적 환경과 개인에 대한 고려는 정신능력 중심의 제2파운데이션을 통해 실현된다.

제2파운데이션의 골조! 우리 파운데이션은 단순한 거야. 하지만 제2파운데이션은 이름만 있어... 제1파운데이션은 물리학자의 세계였어. 쇠퇴하는 은하계의 과학을 다시 살려 내는 데 필요한 조건을 모두 집약시킨 과학의 집결지. 심리학자는 한 사람도 없었어. 이건 아주 독특한 왜곡인데, 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야. 가장 쉬운 해석은 개개의 노동 단위가(즉 인간이) 앞으로 다가올 사건을 모르는 것이, 그래서 모든 환경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이 셀던의 심리역사학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거야. _ 아이작 아지모프, <파운데이션과 제국>, p343

제1파운데이션과 제2파운데이션은 서로 보완하는 존재다. 과학과 정신의 융합과 조화를 통해 비로소 문명(文明)이 완성되는 <파운데이션과 제국>의 내용 안에서 음(陰)과 양(陽)이 어울어져 태극(太極)을 형상화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지나치게 나가는 것일까. 이처럼 <파운데이션과 제국>에서 셀던의 역사법칙은 한계를 보이는 듯하다. 그렇지만, 파운데이션의 한계 또한 역사과정의 일부일수도 있겠다는 의문을 갖게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의문은 다음권 <파운데이션 3 : 제2파운데이션>에서 풀릴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역사법칙은 물리법칙만큼이나 절대적이에요. 오류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물리에서 다루는 원자만큼 많은 사람을 역사가 검토하지 않았고 그래서 다양한 개인차가 나타났기 때문이에요. 셀던은 1000년의 성장기 전반에 걸쳐서 위기가 여러 차례 나타날 것이며 각각의 위기는 우리 역사를 예정된 방향으로 이끄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거라고 예언했어요. _ 아이작 아지모프, <파운데이션과 제국>,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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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1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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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문명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막연한 미래 때문에 현재를 담보로 도박을 한대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_ 아이작 아지모프, <파운데이션>, p130

SF 작품인 <파운데이션>에서 '역사의 흐름'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거대한 시대적 흐름과 그 흐름에 맞서는 인간의 선택. 문명이 직면하는 도전과 이에 대한 창조적 소수에 의한 응전을 통해 문명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는 토인비의 역사관 안에서 거대은하제국의 붕괴라는 물리적 죽음(엔트로피)에 대한 살보 하딘의 응전은 베르크송의 생명의 약동(엘랑비탈)을 떠올리게 된다. 과연 이러한 문명의 붕괴라는 순환법칙을 파운데이션은 벗어날 수 있을까. 심리역사학이 내린 과학적 예측에 과연 인간의 의지는 상수인가, 아니면 변수일까. 이는 신이 예정한 길에 인간의 뜻은 어느정도까지 허용되는가에 대한 또다른 물음은 아닐런지.

과연, 파운데이션이란 무엇일까.

파운데이션은 그(해리 셀던)의 말대로, 과학 대피소로 설립되어 쇠퇴하는 제국의 과학과 문화를 보존하여 이미 시작되고 있는 야만 시대를 통과할 수 있도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제2제국 건설의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계획된 걸세. _ 아이작 아지모프, <파운데이션>, p130

많은 이들은 파운데이션 설립이 쇠퇴하는 제국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저장소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낡은 제국 대신 새로운 체제(공화정)을 수립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체제는 낡은 체제의 연속선 상에 있는 제2제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정작 셀던 본인이 말하는 파운데이션에 대한 설명은 이와 다르다. 허상과 환상. 과연 셀던은 자신의 의도가 잘못 이해될 것이라는 것마저도 심리역사학을 통해 예상했을까.

백과사전 파운데이션은 속임수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속임수였던 것입니다. 백과사전 같은 것이 한 권도 출간되지 않더라도 본인이나 본인의 동료들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속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과사전 계획 자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봅니다... 이 기만적인 계획을 위해 일해 온 50년이란 세월은 여러분들이 되돌아갈 길을 차단해 버렸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보다 중요한 임무를 계속 수행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_ 아이작 아지모프, <파운데이션>, p103

자신의 추종자들, 후손들의 오해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셀던은 심리역사학은 매우 허술한 이데올로기가 될 것이고, 오해를 계산에 넣고 자신의 계획을 수행했다면 셀던은 매우 비정한 군주가 아닐까. 중세 기독교를 대체하는 현대 과학이라는 종교에 대한 SF 작품인 <파운데이션>에 대한 여러 의문을 안고 2권으로 넘어간다...

이건 돈이나 시장 같은 걸 뛰어넘는 이야기야. 우리한테는 위대한 해리 셀던의 과학이 있어. 그건 미래의 은하 제국이 우리 어깨에 달려있음을 입증하고 있네. 우리는 최고로 지배적인 위치에 이르는 코스에서 벗어날 수 없어. 우리 종교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수단이야. 이 종교로 우리는 네 왕국이 우리를 무너뜨리려 했을 때조차 그들을 우리 아래로 끌어들였지. 그것은 인간과 세계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네... _ 아이작 아지모프, <파운데이션>,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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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모든 칸트적 모순을 내포하지만, 사랑은 우리 인생을 중독되게 하는 첫 번째 모순이지요.(Love contains all Kant's antinomies, but it is the frist that posions our lives.) 정, 시작이 없다. 반, 시작이 있다. 반, 끝이 없다.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외침에 지쳐서, 나의 사랑은 끝난다. 그 외침이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일 따름이다. 즉, 욕망은 끝이 없다는 것이지요. 탄생과 죽음의 고통은 동시에 외치지요. 인생이란 신비주의자들이 상상하는 것과 같은 신성한 이성적 소산물은 아니지요, 그것은 비이성적 쓰라림이지 단계적이고 질서정연한 하강도 아니지요. 그리고 폭포가 아니라, 여울이거나 소용돌이지요.  _ W.B. 예이츠, <환상록> , p44


 이 페이퍼의 시작은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 ~ 1939) 의 <환상록 A Vision>에 있는 '칸트적 모순 Kant's antinomies'과 관련된 서재 이웃분이신 북다이제스터님과의 문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제 작성한 답글을 고쳐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아 먼 댓글로 작성해 본다. 예이츠가 <환상록>에서 언급한 '칸트적 모순'은 무엇일까?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는 <순수이성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ft >에서 순수이성비판  중 초월적 변증학에서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을 말한다. 우주론적 이념 체계 안에서 초월적 이념으로 순수 이성에 대해 정립(定立)과 반정립(反定立)이 넷째 이율배반에 이르기까지 펼쳐진다. 이 중에서 예이츠의 <환상록>과 관련해서는 첫째 상충이 내용상 관련있어 여기에 옮긴다.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초월적 이념들의 첫째 상충

 

A426 B454 정립 : 세계는 시간상 시초를 가지고 있으며, 공간적으로도 한계에 둘러싸여 있다.


 증명 : 왜 그러한가. 세계가 시간상 아무런 시초도 갖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라. 그러면 모든 주어진 시점에 이르기까지 영원이 경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에서 사물들의 연이어 잇따른 상태들의 무한 계열이 흐른 것이다. 그러나 계열의 무한성은 계열이 순차적으로 연이은 종합에 의해서 결코 완결될 수 없는 데에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한히 흐른 세계 계열은 불가능하며, 그러니까 세계의 시초는 세계 현존의 필연적 조건이다. 이것이 우선 증명되었다.


 첫째 상충에서 칸트는 정립에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세계가 한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시간이 '기준 시점으로부터 이어진다'는 특성에 기초해 증명한다. 이어지는 반정립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한계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시간은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가 불가능하다는 것으로부터, 옮기지는 않았지만 공간은 '무공간'과의 관계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으로부터 도출된다. 이로부터 '정, 시작이 없다. 반, 시작이 있다. 반, 끝이 없다.'는 예이츠의 말이 칸트의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구조와 관련있음이 확인된다. 


A427 B455 반정립 : 세계는 시초나 공간상의 한계를 갖지 않으며, 오히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무한하다.


증명 : 왜 그러한가. 세계가 시초를 갖는다고 가정해보라. 시초란 사물이 있지 않은 시간이 그에 선행한 현존이므로, 세계가 있지 않았던 시간, 다시 말해 빈 시간이 선행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릇 빈 시간에서는 어떠한 사물의 발생도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시간의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에 앞서 비존재의 조건에 우선해 현존을 구별하는 조건을 그 자체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_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2>, p641


 이러한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으로부터 칸트는 무엇을 끌어냈을까. 칸트는 넷째 이율배반까지 정립-반정립을 통해 우리의 이념이 초월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우리의 이념이 경험외적인 영역에서 사용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것으로부터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순수이성비판> 에서의 소결론이다. 


 A565 B593 우리가 우리의 이성개념들을 가지고서 순전히 감성세계에서의 조건들의 전체성과 이와 관련해 이성이 쓰일 수 있는 것만을 대상으로 삼는한, 우리의 이념들은 초월적이되, 그럼에도 우주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조건자를 전적으로 감성세계의 밖에, 그러니까 모든 가능한 경험 바깥에 있는 것에다 세우자마자, 이념들은 초월적인 것이 된다.(p748)...  A566 B594 우리는 우연적인 것을 다름아니라 경험을 통해서만 알게 되는데, 여기서는 전혀 경험의 대상일 리가 없는 사물들이 화젯거리이므로, 그것들에 대한 지식을 그 자체로 필연적인 것으로부터, 즉 사물들 일반의 순수한 개념들로부터 도출해야만 할 것이다. _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2>, p750


 다시, 예이츠의 <환상록>으로 돌아오면 칸트의 구조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칸트의 첫번 째 이율배반에 따르면 '정(正)'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성이, '반(反)'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무한성이 이야기 되는데, <환상록>의 '정'과 '반'은 순서가 반대이며, 칸트에 따르면 '정'의 위치에 들어가야 할 '끝이 없다(공간적 한계)는 '반'에 위치에 놓인다. '끝이 있다'와 공간에 대한 '정'은 이 구조에서 보이지 않는다. '끝이 있다'를 부정하고, 논증을 '끝이 없다'로 마치는 이 구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정, 시작이 없다. 반, 시작이 있다. 반, 끝이 없다.


 이는 '끝이 있다'는 존재에 대한 강한 부정이 아닐까. '끝이 있다'를 생략하면서 논증을 끝내지만, 논증에서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언어적 표현)만으로 '끝이 있다'는 사실이 부정되지는 않기에, '칸트적 모순'이 담긴 외침과 함께 '나의 사랑'은 끝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절절한 영원함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사랑이 아닌 욕망이고, 이로부터 욕망이 무한하다는 결론이 <환상록>에서 내려진다.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외침에 지쳐서, 나의 사랑은 끝난다. 그 외침이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일 따름이다. 즉, 욕망은 끝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로써 칸트적 모순으로부터 도출된 사랑의 유한성과 욕망의 무한성이 <환상록>에서 어떻게 증명되는가를 알 수 있지만, 이에 대해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은 분명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사랑이 유한하다는 사실이 사랑이 아닌 욕망이 무한하다는 것을 말할 수는 없다는.


 배중률(排中律, Der Satz des ausgeschlossenen Dritten)은 모순을 제거하려고 하는 명제다. 그러나 배중률은 모순을 배제함으로써 모순을 범한다. 이 명제에 의하면 +A는 A거나 불연이면 반드시 -A라고 한다. 그러나 그리함으로써 배중률은 벌써 제3자 즉 +A도 아니요 또 그렇다고 -A도 아닌 A. 그리고 +A도 되고 또 -A도 되는 A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모순개념에 관한 학설에 의하면 예컨대 한 개념은 청(靑)이고 다른 한 개념은 비청(非靑)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다른 한 개념을 긍정적인 것, 예를 들면 황(黃)과 같은 것이 아니라 다만 추상적, 부정적인 것이라고 고집한다. - 그러나 부정적인 것은 그 자체가 또한 긍정적인 것이다. 이 점은 벌써 한 타자에 대립하는 자는 이 타자의 타자라는 규정에서도 볼 수 있다. - 이른바 모순개념의 대립이란 것은 공허한 것이다. _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논리학> , p338


 모순을 배제함으로써 생겨나는 배중률의 문제점은 헤겔의 체계 내에서는 '부정적인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통해 보다 나은 상태로 나갈 수 있는 있는 '정(正) - 반(反) - 합(合)'이라는 변증법적 구조를 통해 극복되지만, '정립-반정립'의 칸트 체계 내에서는 화합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칸트 체계의 한계이자 모순 문제로 볼 수 있다.  결국, 예이츠가 말한 '칸트적 모순'은 한 문장을 통해 본다면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을, 한 문단을 놓고 본다면 배중율을 기초로 한 칸트 체계의 모순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을까. 이상이 어제 북다이제스터님과 문답을 통해 정리한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항상 좋은 지적 자극으로 독서를 함께 해주신 북다이제스터님께 감사드리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PS. <환상록>의 한 문단과 관련한 긴 페이퍼를 쓰고 보니, 원래 <환상록>을 인용한 토지 챌린지 페이퍼보다 더 길어진 면이 있지만 지적인 도전도 다른 의미에서 챌린지라고 나름 의미를 붙여본다. 다만, 토지 독서챌린지 담당자분께서 이 글들을 보신다면, '겨울호랑이는 독서챌린지를 하는게 아니라, 혼자 무한도전 하고 있네.'라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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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8-28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ㅠ
역시 칸트는 넘 어려운 것 같습니다. ㅠㅠ
제 소양 부족으로 거의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ㅠ
언젠가 칸트를 이해할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하여튼, 긴 시간 내어 긴 답변 주신 겨울호랑이 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욕심이긴 하지만 두세 번에 걸쳐 반복해서 이해하도록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혹시 여름 휴가는 다녀 오셨어요?
전 좀 느즈막히 이제 떠나보려고 합니다. ㅎ
즐건 주말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21-08-28 19:08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저 역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추측할 따름입니다. 이번에 페이퍼를 작성하면서 개인적으로 더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부족한 글을 다시 읽어주신다니 감사하면서도 바쁘신데 번거롭게 해드린 듯도 합니다. 코로나로 여름 휴가는 그냥 집에서 보냈습니다. 늦은 여름 휴가 여유있게 보내세요!^^:)
 

 

 <지성론>의 저자가 내가 박수갈채를 보낸 수백 가지 훌륭한 것을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우리의 체계는 매우 다르다. 우리 각자의 의견이 많은 점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두 고대인들 각각의 이론과 거리가 있기도 하지만 그의 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더 가깝고 나의 체계는 플라톤에 더 가깝다. 그는 더 대중적이고 나는 어떤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약간 더 난해하고(acroamatique) 더 추상적이다._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신인간지성론 1 >, p20


 존 로크 (John Locke, 1632 ~ 1704)의 <인간지성론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과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의 <신인간지성론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이 두 권의 책의 관계는 이란성 쌍둥이와 같다. 본유관념으로부터 시작해서 학문의 분류에까지 같은 목차를 공유했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일치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각각 경험론과 합리론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내용상으로는 대척점에 있다.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 BC 384 ~ 322)와 플라톤(Platon, BC 428/427 ~ BC 348/347),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 ~ 1274)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354 ~ 430)가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갖는다면, 근세에서는  로크와 라이프니츠의 체계가 이들을 대신한다. 여러 주제 중에서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본유관념(innate idea)과 관련한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개인적으로 '경험'과 '관념'을 강조한 이 대목이 <인간지성론>과 <신인간지성론>의 가장 큰 차이를 나타낸다고 생각된다. 


 이제 마음이 이른바 백지(white paper)라고 가정해보자. 이 백지에는 어떤 글자도 적혀 있지 않으며 어떤 관념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하여 이 백지에 어떤 글자나 관념이 있게 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나는 한 마디로 경험(experience)에서라고 대답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궁극적으로 경험에서 유래한다._존 로크, <인간지성론 1>, p150


 필라레테스  : "영혼이 처음에는 빈 서판(Table Rase)이고 어떠한 기호들도 없으며 어떤 관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정하는 우리 쪽 사람들은 영혼이 어떻게 관념을 얻게 되는지, 그리고 무엇을 통해서 그렇게 많은 양의 관념을 획득하는지 묻습니다. 이에 대해서 그들은 한 마디로 대답합니다. 경험을 통해서!"


 테오필루스 : 제 생각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이야기하는 이 빈 서판은 자연이 허락하지 않은, 그리고 단지 철학자들의 불완전한 개념에 기초한 허구(fiction)일 뿐입니다.... 제가 한 증명에 따르며, 영혼이든 물체든 모든 실체적인 것은 각각의 다른 실체들과 고유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실체는 내재적 명명들(denominations intrinseques)에 의해서 다른 실체와 다릅니다. 저 빈 서판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 빈 서판에서 관념들을 제거하고 난 후에는 거기에 무엇이 남는지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_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신인간지성론 1 >, p118


 세상에는 여러 라이벌들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저서에서 상대방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비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인간지성론>과 <신인간지성론>과 같이 책 내용 전반에 걸쳐 첨예하게 대립하는 책들은 찾기 어렵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과 '관념'에서 출발한 생각의 차이가 계속 이어지기에, 독자들은 경험론과 합리론의 만날 수 없는 차이를 실감하게 되고, 마치 눈 앞에서 불꽃튀는 두 사상가들의 대결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리뷰에서 다루기로 하자. 


 그동안 정리를 미뤄두었던 <인간지성론>부터 먼저 정리를 시작해서 <신인간지성론>, 코플스턴의 <합리론> <영국경험론>으로 나아가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듯하다. 물론, 마무리는 <칸트>가 되어야 근대철학 마무리가 된다 하겠지만.


 상황을 봐서 번외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 1954 ~ )의 <빈 서판 Blank State>까지 다룰 수 있다면, 인간 지성과 관련한 고대부터 현대까지 내용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약간 다른 주제지만, 인공지능(AI)과 관련해서는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 ~ 1954)부터 시작해서 다시 정리할 계획을 세워본다. 정말, 독서의 길은 끝이 없는 듯하다. 예전에 이럴 줄 알았더라면... 달라졌을까?...


[출처] 만화 슬램덩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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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7-05 23: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이렇게 엄청나게 읽고 소화하시는 겨울호랑이님도요?!! 마지막 슬램덩크 대사 저는 더 격하게 공감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5 23:39   좋아요 4 | URL
에고 아니에요... 예전에 어찌나 놀았던지 요즘은 놀다 지쳐서 책을 봅니다... ㅜㅜ

독서괭 2021-07-06 13:12   좋아요 4 | URL
미미님 글이 제마음이네요ㅋㅋ

오거서 2021-07-06 19:40   좋아요 4 | URL
저 컷에 요즘 제 모습이 담긴 것 같아요…

붕붕툐툐 2021-07-06 2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너무 멋지셔~ 읽는 책 수준 봐... 하.... 짱짱!!👍👍

겨울호랑이 2021-07-06 21:37   좋아요 3 | URL
에고 아닙니다... 부족함이 많아 책을 읽긴 합니다만... 제것으로 만들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