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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딸아이가 방학을 맞아 수수께끼 책을 찾길래 점심시간 즈음 근처 알라딘 중고서점 가로수길점에 들렀습니다. 서점에는 마침 예쁜공주 시리즈로 수수께끼 책 뿐 아니라 의성어 & 의태어, 한자, 속담 등의 책이 있어 한꺼번에 장만했습니다. 여러 권의 책선물을 마련하고 나름 좋아할 아이의 모습을 그리던 중 때마침 문자가 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자기 책을 샀다는 말에 좋아서일까요. 빨리 들어오라는 딸아이 말에 웃음이 났지만, 오늘은 회사일이 있어 아쉽게도 늦게 들어가야 합니다... ㅜㅜ 회사일을 마무리하고 들어가니 선물이 좋아서일까요. 보자마자 아빠 손을 잡아끌고 편지와 안마쿠폰을 전해 줍니다^^:) 덕분에 야근의 피로를 바로 씻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에서 나오는 말처럼 작은 말 하나가 큰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아이의 편지를 통해 실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면 한동안 기쁘게(?) 야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통해 자신을 돌아봅니다.

오늘 딸아이가 제게 보여준 관심과 사랑을 저는 평소에 보여줬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학교생활을 마치고 늦은 시간까지 숙제 하는 아이에게 저는 얼마나 격려의 말을 했던가를 생각해 보면, 부족한 제 자신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밤은 기쁘면서도 반성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이 일방의 교육이 아닌 부모와 자녀가 함께 커간다는 사실도 더불어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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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07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행복할 때인 것 같아요. 아버지로서.
맘껏 즐기세요.
아이들은 빨리 커 버린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07 17:51   좋아요 0 | URL
페크님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지금 함께하는 이 시간에 미련이 없도록 보내려 합니다.^^:)
 

 나는 이 글을 아주 훌륭한 시라고 본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감동하는 어린이 시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순수한 직관(바로 보고 곧 느끼는 것)의 지혜로움이 아무런 장애도 입지 않고 잘 나타난 시라고 본다. 어린이가 가진 이런 '바로 봄'과 '바로 느낌'을 방해하지 않고, 그것을 불러일으키고 꾀어내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시 지도에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p49) <우리 글 바로쓰기 5> 中


 이오덕(李五德, 1925 ~ 2003)의 <우리 글 바로쓰기 5>에는 좋은 어린이 시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진다. 저자에 따르면 좋은 어린이 시의 조건을 어린이 생각(지혜로움)이 잘 표현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좋은 시의 조건을 수식으로 표현한다면, '생각 * 표현 =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과 표현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0'이라면) 작품이 되지 않을테니 이들을 곱셈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서, '좋은 생각' 또는 '잘된 표현'을 '+1'로 '좋지 않은 생각' 또는 '서툰 표현'을 '(-)1'로 바꿔보자. 간단히 '+1'을 긍정으로, '-1'을 부정으로 표현했을 때 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부호의 법칙이 성립할까?


(1) (+)1 * (+)1 = (+)1 -> 좋은 생각의 잘된 표현이 갖춰지면 좋은 작품이다.

(2) (+)1 * (-)1 =(-)1 -> 좋은 생각을 서툴게 표현하면 좋은 작품이 아니다.

(3) (-)1 * (+)1 = (-)1 -> 좋지 않은 생각을 잘 표현하면 좋은 작품이 아니다.

(4) (-)1 * (-)1 = (+)1 -> 좋지 않은 생각을 서툴게 표현하면 좋은 작품이다.


 부호의 법칙 (1) ~ (4) 번까지는 일반적으로 수학의 세계에서 공리(公理, axiom)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이번 명제에서는 내용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1)번의 예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속할 것이고, (1)과 (2)의 법칙은 받아들이는데 굳이 크게 무리가 없다 생각된다. 


 자연을 이렇게 따스한 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훌륭하다. 읽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는 좋은 시다. 여기서는 자연이 인간이고 인간이 자연이다. 자연과 인간이 아주 하나로 되어 있는 훌륭한 시다.(p33) <우리 글 바로쓰기 5> 中


 그렇지만, 문제는 (3)법칙에서부터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우리 글 바로쓰기 5>에서 여기에 해당되는 예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글에 대한 김 씨의 의견은 "아이가 어른의 눈치를 계산하지 않고 솔직한 자기 생각을 쓴 용기가 좋다. 그렇지만 이 글을 두고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썼기 때문에 좋은 글이라고 하며, 어른들의 잘못된 생활 태도를 지적하고 비판한 점을 칭찬할 수 있을까?" 하는 말로 시작하여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길게 적어놓았다.(p156) <우리 글 바로쓰기 5> 中


  김 씨의 의견에 따르면 '좋지 않은 생각(-1)'을 '숨기지 않고 잘 표현(+1)' 했기에, '좋은 글이 아니다(-1)'가 성립한다. 이는 수학의 부호의 법칙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은 수학과는 달리 논란의 소지가 있기에.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도 이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이다.


  나는 김 씨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사람이다.(p158)... 우리의 학교 교육은 자주성이고 자발성이고 창의성 같은 것은 철저하게 둘러막아버리고, 다만 지시와 명령만으로 아이들을 기계같이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기의 마음과 삶을 잃어버리고 어른들이나 그밖에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슬픈 버릇을 몸에 익혀버렸다.(p160)... 많은 아이들이 시키는대로 움직이기만 하지만 이 아이만은 행동만 하지 않고 생각을 했다. 자기를 움직이게 한 사람의 태도에 대한 생각이다. 어쩌면 이 생각은 이 아이뿐 아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 같이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생각을 이 아이는 확실히 붙잡았고 그래서 그것을 글로 밝혔다. 이것이 소중하다. 이것저것 다 살피고 계산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우러난 절실한 느낌과 생각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이것이 귀중하다.... 만약 교사가 참 교육자라면 학생의 이런 비판의 소리에 마땅히 반성해야 한다.(p163) <우리 글 바로쓰기 5> 中


 이 명제에서 부호의 법칙 (3), (4)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김씨의 생각을 요약하면,어린이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의견을 숨겨야 좋은 작품이라는 것으로 이는 수학의 법칙에는 들어맞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저자의 반대 입장처럼 다른 의견도 존재할 수 있기에, 부호법칙 (3)과 (4)에 대한 맞고 틀림은 각자의 몫으로 넘기도록 하자. 현실과 이론의 세계는 다르니까. 

 

 법칙(-1)(-1) = 1은 음수의 곱셈에서 성립하는 법칙인데 이와 같은 법칙은 분배법칙a(b + c) = ab + ac를 유지하고자 하는 바람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1) (-1) = -1이 성립한다면, 분배법칙에서 a = -1, b = 1, c = -1로 각각 잡았을 때, - 1(1 - 1) = -1-1=-2가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1(1 - 1) = -1.0 = 0을 얻기 때문이다. 음수와 분수에 적용되는모든 다른 정의가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과 ˝부호의 법칙˝ (3)을 수학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p73) <수학이란 무엇인가> 中


 수학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책으로 넘어가 보자. <우리 글 바로쓰기>의 저자 이오덕은 생각의 가치보다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가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글은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며,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 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때문에, 글의 내용에 무엇이 담겼는가에 대한 책임은 어른의 몫이고, 아이들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저자의 교육철학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이 시는 실제로 체험한 것을 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거짓스럽게 느껴진다. 자기의 마음과 삶을 정직하게 쓰려고 하지 않고 '이런 것을 써야 근사한 시가 되겠지'하고 썼으니 말이다. 실제로 겪지 않은 일을 상상으로 쓸 때는 바로 그것이 상상임을 읽는 이들이 알도록 써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른의 시와 어린이 시가 다른 점이다.(p37) <우리 글 바로쓰기 5> 中


 글쓰기는 인간교육의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저마다 쓰고 싶은 것을 정직하게 쓰게 하지 않고, 교육을 잘 한 것처럼 윗사람이나 학부모나 사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선전의 수단으로 이용이 될 때는, 이 글쓰기가 아이들을 아주 좋지 못한 사람 - 꾀부리고 거짓말 꾸며대고 사람답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게 한다.(p101) <우리 글 바로쓰기 5> 中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1940 ~ )의 <무지한 스승 Le Maitre Ignorant >에서 '보편적 가르침'과 맞닿아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강요가 아닌 해방이며, 이를 위해서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도와 교육의 조화로운 균형은 이중의 바보 만들기의 균형이다. 여기에 정확히 해방이 대립된다. 해방이란 모든 인간이 자기가 가진 지적 주체로서의 본성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데카르트의 정식을 거꾸로 뒤집은 평등의 정식이다. "나는 인간이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이 뒤집기는 인간 주체를 코기토(Cogito)의 평등 안에 포함시킨다. 생각은 사유 실체가 가진 한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속성이다.(p33)... 보편적 가르침의 모든 실천은 다음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너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p77) <무지한 스승> 中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주의깊게 들어야 한다. 우리(어른)들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무조건 따를 것을 강요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배에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에 따른 이들이 희생되었던 4.16 세월호 참사는 (비록 그것이 모든 원인은 아닐지라도) 어른들의 일방적인 강요가 비극적인 결과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라 생각한다. 가볍게 시작한 글이 무겁게 끝나게 되지만,  자신이 가진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 글 바로쓰기> <무지한 스승>을 통해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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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주제는 놀이와 문화의 관계이므로, 놀이의 모든 형태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놀이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그것을 주로 다루기로 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놀이는 자발적 행위이다. 명령에 의한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p41)... 놀이의 두 번째 특징은 '일상적인; 혹은 '실제' 생활에서 벗어난 행위라는 점이다. 놀이는 '실제' 생활에서 벗어나 그 나름의 성향을 가진 일시적 행위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p42)...  또한 놀이는 시간과 공간의 특정한 한계 속에서 "놀아진다(played out)". 놀이는 그 나름의 방향과 의미를 갖고 있다.(p45) <호모 루덴스> 中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 ~ 1945)는 <호모 루덴스 Homo Ludens>에서 인류 문화의 기원을 '놀이'에서 찾는다. 놀이가 단순한 심심풀이가 아니라 '문화 文化'  자체라는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의 특성을 위와 같이 자발성, 비일상성, 한계성으로 규정한다. 오랫만에 <호모 루덴스>를 꺼내든 것은 작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지난 한주 동안 외부 출장이 있어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한동안 아빠 얼굴을 못봐서였을까. 딸아이가 지난 주말 내내 함께 놀자고 졸랐다. 주말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출장 정리를 하려고 밤에 책상에 앉으니, 조용히 들어와 그림 한장을 내민다.


[그림] 아빠, 놀아주세요(by 연의)


 일요일 밤이라 할 일이 있어 내 마음도 울고 있었지만, 얼마나 함께 놀고 싶으면 이런 편지까지 쓸까 싶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밤늦게 놀고 일을 마무리 한 후 아이와 놀이, 그리고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가족과 놀이. 프랑스 역사 학자 필리프 아리에스(Philippe Aries, 1914 ~ 1984)는 <아동의 탄생 L'enfant et la vie familiale sous l'ancien regime> 에서 근대 유럽 교육제도의 발달이 가져온 가족 내 아이들과 어른들의 분화를 지적한다.

 

 가족과 학교는 함께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아이들을 분리시켰다. 학교는 이제까지는 방만했던 아동기를 점점 더 엄격해진 규율 체제속에 가두었다. 이 규율 체제는 18~19세기에 아동기를 완전히 기숙사에 감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p648)... 근대의 가족은 공동체 생활로부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대부분의 시간과 관심사를 박탈했다. 그것은 사생활과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주었다. 가족 구성원들은 감성, 습관, 그리고 생활양식에 의해 결합되었다.(p649)... 새로운 사회는 각자가 전용 공간 속에서 각자의 생활양식을 누리는 것을 보장했으며, 그 공간 속에서 주요한 특징들은 존중되어야 했다. 그리고 각자는 관습적인 모델, 이상적인 유형을 따라 했으며, 결코 축출이라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러한 모델에서 일탈하려 하지 않았다.(p651) <아동의 탄생> 中


  산업화와 민주화로 대표되는 근대세계는 개인에게 사생활(私生活)을 가져다 주었지만, 가족 내 구성원들을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가족 내 다른 사람들과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아리에스의 진단이다. 전문화된 '학교(學校)'에서 또래집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부모와는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자녀들의 현실이라면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도올 김용옥(檮杌 金容沃, 1948 ~) 의 <효경 孝經 한글역주>에서 찾아본다.

 

 어찌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만이 효가 될 수 있는가? 앞서 말했듯이 <예운> 편에서 말하는 십의(十義)는 어디까지나 쌍방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효의 원초적 본질을 아래로부터 위에로의 방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의 방향에 있는 것이다. 효의 가장 원초적인 사실은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과 관련된 것이다. (p156)... 그러나 그 효가 도덕적 차원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그 핵심에 있는 것은 부모의 자애이지 자식의 효도가 아니다. 부모의 자애 때문에 자식의 효도는 마땅한 당위로 인식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리적 코딩(coding)을 넘어서는 도덕적 "베품"이기 때문이다. 이 "베품"의 전제가 없이 아랫사람의 복종이나 희생,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강탈이요, 복종주의적 강압이다.(p157) <효경역주> 中


 <효경한글역주>에서는 효(孝)의 본질이 내리사랑임을 밝힌다. 갓난 아이가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손을 내밀 때, 이에 대한 대답이 '효'라면, 딸아이가 부모에게 함께 해달라고 조를 때 함께 해주는 것. 이것 역시 효의 실천이 아닐까. 한편으로 노는 것을 너무 진지하게 바라본 것은 아닐까 여겨지기도 하지만, 하위징아의 놀이해석에 따르면 아이들과의 놀이가 어떤 교육보다도 중요한 의식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종합하면 자녀와의 놀이는 효의 표현이자,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 수단이다.


 긴장의 요소는 놀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긴장은 불확실성과 우연성을 의미한다. 문제를 파악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노력을 가져온다. 그는 자신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 이들은 뭔가 어려운 일을 착수하고 성공하여 긴장을 끝내기를 바란다... 놀이 그 자체는 선과 악을 초월하지만, 놀이에 내재된 긴장의 요소는 놀이하는 사람의 심성 즉 용기, 지구력, 총명함, 정신력, 공정함 등을 시험하는 수단이 되므로 특정한 윤리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는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p47) <호모 루덴스> 中


 늦은 밤, 뒤늦게 일을 마무리 하느라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놀이가 시간적/공간적 한계성을 가지는 것처럼, 효 역시 시간적/공간적 한계성이 있음도 생각해 본다. 나이들어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려고 하나 기다려주실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자녀들 역시 우리가 여유를 가지고 함께 하려고 할 때에는 이미 우리 품안에 떠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작은 것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나중의 그 어느 순간보다 필요하고 중요함을 깨닫는다. 비록,  그것이 유치하게 보이는 놀이일지라도.


 아이의 작은 그림 편지를 보면서, 가족과 효, 그리고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양육(養育)은 부모와 자녀를 함께 성장시키는 상호작용임을 다시 생각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 한다. 

 

PS. 개인적으로 아이들과 놀이의 최고단계는 '역할놀이'라 생각한다. 아이의 생각과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5분을 넘기기 힘든 놀이가 역할놀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역할 놀이를 잘 해 주는 아빠들을 보면 마음 깊이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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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8 16: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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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8 18: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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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1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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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1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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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의 기술
벤자민 프랭클린 지음, 조지 L. 로저스 엮음, 정혜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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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움을 극복할 때 종이를 반으로 나눠 한쪽에는 찬성, 다른 쪽에는 반대라고 적습니다. 3~4일 정도 생각을 하면서 여러 가지 동기에 따라 짧은 생각을 적습니다. 그렇게 찬성과 반대의 이유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면 각각의 무게를 생각합니 다. 그리고 서로 무게가 같은 것끼리 지웁니다. 찬성하는 이유 하나와 반대하는 이유 두 가지의 무게가 같다면 이 세 가지를 지웁니다. 반대하는 이유 둘과 찬성하는 이유 셋의 무게가 같다면 다섯 가지를 모두 지웁니다. 이렇게 무게가 같은 것끼리 지우고 나서 하루 이틀 정도 더 생각합니다. 새로운 이유가 떠오르지 않으면 결정을 합니다. 비록 이유의 무게를 판단하는 게 어려울 수 있지만, 각각의 이유를 비교해서 생각하다 보면 모든것이 확실히 보여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급한 마음도 줄어듭니다. 실제로 나는 이런 등식에서 큰 장점을 발견했는데, 나는 이것을 ‘도덕의 대수학‘ 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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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는 평소에 말도 야무지게 하고 공부도 곧잘 하는 밝은 아이랍니다. 그런데 승부용이 강하고 예민한 편이라 조그만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고 툭하면 울고 삐치네요... 학기 초에 친했던 친구들마저도 멀어졌어요. 친구들은 벌써 끼리끼리 어울리는데 저희 아니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겉돕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은 교우 관계가 더욱 힘들어지고 학습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하네요.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고 속상합니다.(p285)


 아이가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할 때 부모 마음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특히, 저학년 때 친구들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된다면, 학교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에 친구들과의 관계에 더 신경쓰게 됩니다. 이럴 때, 아이가 제대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이는 부모에게 큰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딸 아이가 엄마를 따라 다른 동네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른 동네에 살아서 방과 후에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과 함께 억지로 학원을 보내지 말자는 저희 부부 생각때문에 학원을 다니지 않아서일까요. 가끔 학교에서 혼자 놀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A :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아이들은 교사와의 관계가 쭝요하고 아이들끼리 맺는 관계가 제한적이지만, 3학년이 되면 아이들끼리 맺는 관계가 중요해집니다. 이 무렵부터는 친구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경우 학교생활이 재미없어지고 왕따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p286)... 부모가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교육이 아닙니다.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죠. 그렇다고 잘못한 것을 옳다고 말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죠. 하지만 잘못한 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때 '같은 편'이 말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잘하지 못하는 분야의 일을 하느라 자신이 없을 때, 게다가 실패하기까지했을 때, 내 친구가 또는 내 배우자가 어떻게 내게 말해주면 좋을까요? 그 순간에 내가 바라는 조언의 방식처럼 나도 지금 내 아이에게 이야기해줘야 합니다.(p288) <우리 아이 괜찮아요> 中


 <우리 아이 괜찮아요>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학교에서 아이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부모가 채워야 할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데, 집에서마저 아이가 문제가 있다는 방향으로 몰아붙인다면, 아마도 그 아이는 양쪽에서 눌려 고립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한쪽에서 아무리 거세게 밀어 붙여도 다른 편에 더 잘 받아준다면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편하게 아이의 때를 기다려주는 것. 아마도 그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그리고 해야하는 최소한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와 함께 상의해서 이번 주부터는 주중에 아이와 엄마는 바이올린을 함께 배울 예정입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온 가족이 수영을 할 계획을 짜봅니다. 친구들과 학원가는 대신 부모와 함께 배우고 싶다는 말에 내려진 결정입니다.  저학년이라 아직은 부모가 친구들의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으니 함께 배우는 것은 모두에게 좋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부모가 재미없다고 느껴진다면, 알아서 친구를 찾아 놀러나가고, 미래의 배우자를 만나 독립하겠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대체로 이런 내용으로 인생이 진행되리라는 짐작을 해봅니다.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Supply creates its own demand)고 했으니, 친구가 필요해진다면 더 적극적으로 잘 해내리라 기대해봅니다.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가끔 혼자 질문을 던져 봅니다. '이럴 때 부모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제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기에, 같은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나이 어린 부모님(?)의 모습을 상상하면, 당시에는 서운하게 느껴졌던 부분들도 이해가 됩니다. 이렇게 육아 문제로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니, 자녀 교육 문제는 부모에게도 중요함을 느끼며, 두서없는 페이퍼를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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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19-09-24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 키우기^^
정말 쉽지 않죠.
아이와 함께 행복한 경험을 택한 계획과 결정을 응원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9-24 05:59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때로는 애가 저희를 키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커가는 과정이 육아, 양육일텐데 참 쉽지 않습니다^^:)

2019-09-24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4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4 14: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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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14: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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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15: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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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14: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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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14: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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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15: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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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14: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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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15: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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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15: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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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25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아이에게 원하는 바와
아이가 원하는 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수년간의 경험과 선이해가 상대방
을 이해하는 걸 방해하는 장애물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주 조금
들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9-25 10:27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부모의 것을 아이에게 담기보다 아이의 것을 부모가 담는 것이 진정한 양육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가 성장해서 살아갈 세상은 부모가 아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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