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사람들의 견해에 따르면 요정 '쉬'와 유령을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저승의 지도가 있다는 것이다... 요정과 유령의 중요한 차이는 망자는 땅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이전의 존재인 유령이 되는 반면에 쉬는 근원적이어서 인간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령들은 인간에 근원이 있고, 산 사람의 영혼이나 영으로 죽음을 통해 정화되어 이승 근처를 떠돈다. 한편 요정들은 초자연적 근원을 지니고 있다. 요정과 유령은 구별되지만 망자는 요정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을 가장 주목해야 한다. 망자들이 거처하는 곳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이고, 요정의 나라 역시 영혼들의 일시적 거처이다. 영혼들이 죽은 뒤에 가는 장소로서 요정의 나라는 사후의 나라로 조금씩 변해 간다. _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켈트의 여명> , p346/356


 해신 마난난은 인간이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쌓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난족은 인간 세상과 자기네 영역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 다난족의 일원인 모리간은 전사들 - 특히 쿠쿨린 - 의 운명을 내려다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자신의 '시'를 떠났다. 삼하인 축제(10월 31일 ~ 11월 1일) 때는 저승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졌고, 저승 주민들은 자신의 '시'를 떠나 인간들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마법으로 혼란을 일으킬 때가 많았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삼하인 축제 때는 집 안에 틀어박혀 문과 창을 꽁꽁 닫아 걸었지만, 그래도 항상 말썽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저승의 남신과 여신들은 민간신앙에 등장하는 요정이 되었고, 켈트족의 삼하인 축제는 할로윈으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_ <여명기의 영웅들 : 켙트신화> , p29


 켈트족 신화에 따르면 저승의 문이 열린다는 10월 31일. 이로 인해 저승의 망자(亡者)들이 세상으로 쏟아져나온다는 이 때, 망자들에게 육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유령 복장을 하며 밤을 지샜다는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할로윈(Halloween).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명절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 새 할로윈 복장으로 돌아다니며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서양에서는 켈트 문화권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11월을 위령성월로 보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10월 31일은 사순시기 직전의 사육제(謝肉祭)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지만, 이러한 서구 문화권과 다른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할로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러 면에서 낯선 할로윈보다 액운을 쫓기 위해 팥죽을 먹거나 부럼을 깨는 행위, 처용(處容)과 관련된 여러 풍속들이 있음에도 이들은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할로윈'이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잡는 모습은 유령의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유령이 마케팅(marketing)의 이라는 이름으로 행해는 장난.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장난과 이어지는 'trick or treat'이라는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것은 아닐런지.


 근대 소비사회에서는 인간의 행위나 존립이 물질처럼 취급되는 '물화 物化, Rification'를 겪게 되며, 인간은 '구매력을 지닌 소비자'로 전화 轉化하게 된다.(p637)...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 W. Adorno, 1903~1969와 막스 호르크하이머 Max Horkheimer, 1895~1973는 소비자 비평에 관한 한 가장 염세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들은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그 자체를 재생산하기 위한 소비 문화를 만들어내며, 그 결과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그것을 주입받는 수동적인 시민이 양산된다고 주장했다. 장 보드리야르 또한 "소비자란 결국 19세기 초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이고 비조직적인 개인들로, 칭찬받으며 아첨에 속아 넘어가는 얼갈이 같은 존재"라고 조소했다. _ 설혜심, <소비의 역사> , p639/798


 소비는 하나의 신화이다. 현대사회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는 말(parole), 우리 사회가 스스로를 말하는 방식, 그것이 소비이다. 말하자면 소비에 관한 유일한 객관적 현실은 소비라고 하는 관념 뿐이다. 이 반성적, 언설적 배치구조가 일상적 언설과 지적 언설에 의해 무한히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상식으로서의 힘을 갖게 되었다. 우리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소비사회로 간주하며, 또 그러한 것으로서 말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들의 사회가 소비를 행하는 경우에는 소비사회로서의 자기규정에 기초를 두고 자신을 그만큼 관념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광고는 이 소비의 관념에 바쳐진 승리의 노래인 것이다. _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p301


 이미 우리가 대량소비의 시대에 살기에 별로 새로울 것은 없지만 시기적으로 한정해 본다면, 최근 몇 년 전부터 자본주의 유령이 10월말부터 출몰하기 시작해서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를 지나 11월 26일 블랙 프라이데이에 이르기까지 크리스마스 직전 매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활개치고 다닌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 함께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 뭐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죽음을 생각하는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의미를 찾거나, 할로윈과 함께 우리 풍속도 생각하고 지키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홍석모는 섣달그믐에 밤을 새는 수세의 풍속이 수경신(守庚申)에서 유래하였다고 보았다. 수경신은 경신일에 밤을 새는 풍속으로, 도교에서 유래하였다. 사람의 몸에 있는 삼시충(三尸蟲)이 경신일에 하늘에 올라가 그 사람의 잘잘못을 일러바치므로, 이날 잠을 자지 않으면 하늘로 올라깆 못해 액운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경신은 <고려사>에 보이며, 조선 초기에도 유행하였다. _ 홍석모, <동국세시기> , p236  해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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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10-31 06: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으 정말 할로윈을 왜 챙겨야 하나 싶은데, 애들이 초콜릿사탕 먹는 날이라고 좋아라 하니 점점 일반화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에서도 할로윈파티를 하더라구요;;

겨울호랑이 2021-10-31 08:44   좋아요 4 | URL
그렇습니다... 어린이집, 학원, 놀이공원, 제과점 등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마케팅 열풍에 어린이들이 혹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같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아이들의 요구를 부모들이 거절하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이구요...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그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의미를 알고, 한계를 정할 수 있다면 생각없는 소비가 아닌 삶의 풍성함을 더하는 소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거서 2021-10-31 10: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 최근 유행처럼 즐긴다는 할로윈을 죽음과 관련해서 생각하는 것 같지 않고 10대 20대가 기괴한 복장과 함께 흥청망청 무분별한 행동이 용납되는 날처럼 여기는 같아요. 의미를 되새기지 않는 향락과 소비만 부추기는 것 같아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요.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지식이 (plus)1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0-31 11:14   좋아요 3 | URL
네 저 역시 오거서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외국의 문화라고 무조건 배척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요... 우리 것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뜻을 새길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받아들이되 그것이 가진 뜻을 생각하고 가치가 있을 때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오거서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

페크pek0501 2021-10-31 12: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비의 사회는 필독서라고 생각해요.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이런저런 책에서 많이 소개된 걸 봤어요. 그래서 읽은 책 같죠. ㅋ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제가 완독한 책이에요. 완독한 책을 보면 기뻐요.

겨울호랑이 2021-10-31 12:58   좋아요 3 | URL
<소비와 사회>는 보드리야르의 다소 냉소적인 비판이 날카롭게 느껴지지만, 그만큼 예리한 분석이 빛나는 책이라 여겨집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죽음을 소재로 했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노교수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책으로 오래 기억에 남네요. 페크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

얄라알라 2021-11-17 00:24   좋아요 1 | URL
페크님말씀처럼, 마치 ˝읽은 책 같은˝ <소비의 사회>!

저는 설혜심 교수님 책들은 많이 읽진 않았지만 한국 학계에서 소비사 위상 높이시는 데 큰 기여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길가메쉬, 내가 너에게 숨겨진 사실을 말해주리라. 신들의 비밀을 네게 말해주리라! 너도 분명히 알고 있는 슈루파크라는 도시가 유프라테스 강둑에 있었지. 정말로 오래된 도시였고, 그곳에서 신들이 살고 있었다네. 위대한 신들이 사람에게 홍수로 벌을 주기로 마음을 굳혔는데, 그들의 아버지 아누가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했지. 용감한 엘릴은 그들의 고문관이었으며, 닌우르타는 그들의 의전관이었고, 엔누기는 그들의 운화감독관이었는데, 지혜의 왕자 에아가 그들과 함께 맹세했네." _ 김산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p293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쉬 서사시 Epic of Gilgamesh>에는 대홍수(大洪水)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노아의 홍수'의 원전으로도 널리 알려진 <길가메쉬 서사시>이지만, 사실 세계 여러 지역에는 서로 다른 전승의 대홍수 신화가 전해진다. <길가메쉬 서사시>가 수메르 문명에 전승되는 이야기라면, 중국 문명에는 우왕(禹王) 이야기가 있다. 이들 지역의 대홍수 신화를 문명(文明)사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관개 농업과 중앙권력이 핵심어가 될 듯하다. 수로(水路)를 활용한 농업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구 밀집과 이 과정에서 탄생한 거대 권력(종교적, 정치적)에의 복종이 이들 신화 안에 담긴 메세지는 아닐까.

 

 초기 수메르 도시국가들의 핵심 경제활동은 관개와 농업이었다. 도시국가들마다 수백 명의 농부 집단이 있었는데 이들은 신들의 이름으로 소유하거나 임대하거나 물려받은 광대한 땅에서 일했다... 관개시설과 도시 전체를 파괴하는 격렬하고 예측하기 힘든 홍수는 도처에서 맞닥뜨리는 가공할 위험이었다. 메소포타피아 신화에 나타나는 반쯤 신적인 왕의 지위와 국가의 정치적 정당성은 신들이 대홍수를 일으켜서 인간세계가 모두 파괴되고 물에 덮인 카오스 상태에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데서 비롯했다. 이 지역의 홍수 신화는 유일하게 사전 경고를 받은 가문이 방주를 만들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_스티븐 솔로몬, <물의 세계사>, p59


 전통적으로 중국 황허 문명의 선조는 우왕(禹王)으로 알려져 있다. '치수(治水) 기술자'인 우왕은 역사 기록 이전 시대에 황허 강 유역 거준민들을 괴롭히던 홍수를 잘 다스린 공로로 권력을 잡았다. "물을 다스려서 대수로 속으로 흘러가도록 만들어서" 이 세상을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에 대한 답례로 부족 연합은 그에게 지휘권을 양도했다... 치수는 인간의 수기(修己)와 자연 질서와의 관계의 올바른 원칙에 대한 철학적 논쟁의 틀이 되었다. _스티븐 솔로몬, <물의 세계사>, p128


 다만, 이들 신화에서 차이점이 있다면,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는 노여움으로 발생한 대홍수를 피하지만, <산해경> 속에서는 적극적으로 둑을 쌓아 막으려는 노력을 한다는 점이 아닐까. 이를 소극적 대처에서 적극적 대처로의 전환, 문명화(文明化)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권력층을 제사장 계층으로, 황하 문명의 권력층을 기술관료 계층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먼 옛날 우트 - 나트슈팀이 슈루파그라는 도시에서 살고 있을 때, 인구를 줄이려고 애쓰던 신들은 지구에 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쓸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엔키 신은 그 계획을 인류에게 발설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갈대집 벽에 대고 말하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계획을 폭로했다. "갈대집아, 갈대집아! 벽아, 벽아! 잘 들어라. 갈대집아! 귀를 기울여라. 벽아."...  지시는 그대로 실행되었다. 우트 - 나피슈팀의 방주는 둘레가 엄청나고, 내부가 6층으로 되어 있는 정육면체였다. 마침맞게 배가 완성되어 우트 - 나피슈팀의 일가친척과 모든 생물의 씨가 배에 실렸다.... 바다도 고요해지고, 호수도 잔잔해졌다. 인간은 모두 진흙으로 돌아갔다. _<초창기 문명의 서사시 : 메소포타피아 신화>, p88

 

 그때 갑자기 기주의 동도(東都)에서 큰 물난리가 나서 곤이 쌓았던 둑이 대부분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하여 넘쳐난 물 탓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요임금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애통해하며 순에게 말했다. "짐이 직접 순수를 해야 할 일이나 나이가 들어 위험하니 어쩔 수가 없소. 지금 그대에게 명하노니 대사농과 함께 그곳으로 가서 상황을 살피고, 정말로 곤이 처리를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천재지변에 의한 것인지를 명백하게 밝히도록 힘쓰시오."(p396)... 요임금 때 홍수가 하늘까지 차고 넘쳤다. 곤은 요임금의 식양(파종하지 않아도 저절로 곡물과 채소, 과일이 자라나는 흙)을 훔쳐 둑을 쌓아 홍수를 막고 요임금의 명을 듣지 않았다. 훗날 우가 요임금의 명을 받들어 최종적으로 영토를 구주로 나누고는 물난리를 가라앉혔다._예태일/전발평, <산해경>, p428


  자연재해를 신에 의탁하거나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막으려는 노력은 중앙집권 고대왕국으로 성장한 문명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안데스 문명에서도 이러한 대홍수 신화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당시의 재난이 일부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지구적 재난 속에서 많은 이가 희생당한 사건들은 인류 문명에 치명상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은 약 2억 5천만년 전 페름기 - 트라이아스 기 사이의 대량절멸(Permian?Triassic extinction event)을 떠올리게 된다. 


 에콰도르의 안데스 지역에 사는 카나리족 인디오들에 따르면, 마법의 산이 개입한 덕분에 인류가 절멸을 면했다고 한다. 대홍수가 땅을 휩쓸자 두 형제는 서둘러 식량을 모아 저지대를 탈출하여 우아카이난 산봉우리로 피난했다... 물이 올라오면 우아카이난 산이 그보다 더 높아져서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p34)... 페루의 해안평야와 칠레 북부에 사는 치무족 인디오들의 신화에서는 한 줌밖에 안 되는 남녀가 대홍수에서 살아남았다. 그들은 가축을 데리고 식량을 짊어지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산꼭대기 바로 밑에 있는 춥고 눅눅한 동굴 속에 숨었다. _토니 앨런 외, <사라진 황금왕국 : 잉카 신화>, p36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種)의 80 ~ 95%가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페름기 말의 대멸종. 마이클 J. 벤턴 (Micheal J. Benton)의 <대멸종 When Life Nearly Died: The Greatest Mass Extinction of All Time>에서는 이 사건의 원인으로 시베리아 트랩 분출 설을 채택한다. 이 설(說)에 따르면시베리아 트랩 분출과 이로 인한 이산화탄소 증가가 가져온 지구온난화가 이 참상의 직적접인 원인이 된다. 이산화탄소 증가와 지구온난화. 오늘날 우리 문명에서 사용되는 화석 연료의 부정적 효과와 페름기 말 대멸종의 원인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한층 심각하게 다가온다.

 

 폴 위그널은 중심이 되는 위기를 시베리아 트랩 분출인 것으로 보았다. 세계적인 파괴현상은 시베리아 트랩 분출 동안에 발생한 각기 다른 기체들 때문이었다. 분출이 지속된 전체 기간 동안 이 기체들은 산발적으로 대기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수없이 분출이 거듭되면서, 물리적 세계와 생명 사이의 모든 정상적인 상호작용이 총체적으로 붕괴되는 참담한 사태로 이어졌을 것이다. 시베리아 트랩 분출 때 뿜어져 나온 네 가지 기체가 주범일 것이다. 이산화탄소 증가효과는 장기간에 걸쳐서 미쳤다. 곧,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서 곧바로 지구온난화와 무산소화로 이어졌고, 이것이 수십만 년 동안 지속되었다. 매번 분출 때마다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유입되었을 테고, 결국 어떤 정상적인 되먹임 체계도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기체수화물의 배출은 그 참상에 기름을 부었을 것이다. 이산화황도 배출되었다._마이클 J. 벤턴, <대멸종>, p384


 2020년 여름. 유난히 계속되는 여름 장마철로 8월 무더위도 거의 경험하지 않고 입추(入秋)를 맞이했지만, 대신 심각한 물난리를 겪고 있다. 며칠 사이 수백 mm씩 기록되는 폭우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내리면서 저절로 과거 대홍수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오랜 역사를 가진 대홍수의 역사 속에서도 인류 문명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그렇지만,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빚어진 기후변화로부터 대홍수가 시작된다면, 우리 역시 페름기 말의 대멸종과 같은 사태를 피할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페름기 말 대멸종 이후에도 살아남은 종들은 꾸준히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트리아스 기 이후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들이 계속 번성했다는 사실을 통해 기후변화가 발생해서 현세 이후 대멸종이 일어나도 지구상에 다른 생명체가 다시 번성할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다만, 인류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일 뿐, 가이아(Gaia)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차별하지 않을까.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비를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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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08-09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후 변화 기후 변화 말만 들었지 정작 한반도에서 이렇게 직격탄을 맞고 보니 무섭단 생각이 듭니다. 저도 이런 집중호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의 핵심은 자동차, 비행기 매연보다도 거의 대부분은 가축 , 특히 소의 방귀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육식을 줄이는 것이 기후 변화를 지연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겨울호랑이 2020-08-09 22:40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몇 년 전 겨울에 영하 십 도 아래의 추운 날이 며칠씩 이어지거나, 봄/가을이 짧아지는 변화를 직접 체감할 정도로 변화된 것을 보면, 환경오염이 주범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곰곰발님 말씀처럼 우리 생활의 변화, 그 중에서도 식습관의 변화가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70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육식으로 살아간다면, 균형이 파괴되지 않는 것이 더 부자연스러울 지경이니 말입니다...

나와같다면 2020-08-10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은 사회에 대한 촉수가 예민하신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글에서는 예민함과 섬세함 그리고 타자에 대한 sympathy 그리고 더 좋은 공동체에 대한 깊은 믿음이 느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0-08-11 06:45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 딸아이가 있어서인지,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주고 싶고, 부족하나마 그쪽으로 힘을 보태는 것이 제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모자란 글이 나와같다면님께 그처럼 다가갔다면 참 다행입니다. 오늘 하루 잘 마무리 지으세요!
 


 14세기 말 이후 도시의 부유층 사이에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어린이들의 생명을 지키려는 단호한 의지였다.(p404)... 순환적인 생명 주기에 대한 인식은 서서히 인간 존재에 대한 직선적이고 다면적인 사고로 대체되었다.(p407) <사생활의 역사 3> 中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es, 1914 ~ 1984)는 <아동의 탄생 L'enfant et la vie familiale sous l'ancien regime>과 <사생활의 역사 3 Histoire de la vie prive'e: de la Renaissance aux Lumie'res>을 통해 이전과는 달리 서양에서의 '어린이'라는 개념이 근대에서 태어났음을 밝혔다. 그렇다면 중세(中世 Middle age) 이전까지 아이들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을까.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자기 삶을 실제로 살 수 없는 생명의 전달자에 불과했다. 삶의 유일한 의무란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삶과 인간의 몸에 대한 이런 사고 체계에 의하면, 어린이는 가계도를 이루는 새 가지이자 시간을 초월하여 세세대대 이어진 거대한 집단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어린이는 적어도 부모에게 속하는 것만큼이나 가계에도 속했다. 이런 면에서 어린이는 '공적' 존재였다.(p401) <사생활의 역사 3> 中


 중세까지 개인 삶의 목적이 후손을 얻는데 있었기에, 어린이는 '성인 이전의 미숙한 존재'였다. 때문에,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교육(敎育 education)'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다. 중세 이전의 교육이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졌다면, 근대의 교육은 학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가족과 학교는 함께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아이들을 분리시켰다. 학교는 이제까지는 방만했던 아동기를 점점 더 엄격해진 규율 체제 속에 가두었다. 이 규율 체제는 18 ~ 19세기에 아동기를 완전히 기숙사에 감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p648)... 근대의 가족은 공동체 생활로부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대부분의 시간과 관심사를 박탈했다. 그것은 사생활과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주었다. 가족 구성원들은 감성, 습관 그리고 생활양식에 의해 결합되었다.(p649) <아동의 탄생> 中


 아리에스는 <아동의 탄생>에서 근대에 어린이의 개념이 태어나게 된 이유를 건강과 위생 그리고 교육에 대한 관심 증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들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비어트리스 웹과 시드니 웹(Beatrice Webb, Sidney Webb)은 <산업민주주의 Industrial Democracy>에서 공교육이 강조된 이유를 경제 측면에서 보다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제조 공정은, 가능한 한 그 대부분이, 오로지 하나의 특수한 업무만을 할 수 있는 소년의 능력으로도 할 수 있도록 세분된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일은 하나의 새로운 불만이다... 그들의 불평은, 그러한 자녀가 어떤 숙련 직업을 배우지 않고, 매년 지극히 단순한 업무만을 계속하고, 그들이 성인 노동자의 보통 임금을 요구하기 시작하자마자 그들의 더욱 젋은 형제들에게 이롭게 해고되는 것을 볼 때, 더욱 커지게 된다. 이러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교육적 봉사 연합의 요구를 포기한 노동 조합은, 단순한 소년 노동의 제한을 강제하고자 시도해왔다.(p244) <산업민주주의 2> 中


 웹 부부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 투입의 증가로 낮은 숙련도의 노동자 투입이 가능하면서, 산업화 시대에 성인남자의 노동을 여성의 노동으로, 여성의 노동을 보다 어린 자녀의 노동이 대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투입되는 노동의 가격, 임금(賃金 wage)이 낮아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자녀들이 자신의 노동을 대체하며 단순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을 지켜보던 노동자들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려는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 노동조합 운동은 노동자의 임금수준 유지와 함께 다음 세대의 노동 질(質) 향상 수단으로 아동 노동의 금지와 아동 의무 교육를 추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공교육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면서 근대 사회의 특징이 더 명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사진] 공장에서 노동하는 어린이들(출처 :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img_pg.aspx?CNTN_CD=IE001293115&atcd=A0001546930)



 부모들이 새로운 교육 제도를 지지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다. 새로운 교육의 성공 비결은 꾸준히 성장하던 개인주의적 욕구에 전적으로 부합하면서 정신을 연마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가족의 범주 내에서 어린이의 '개인화'는 어린이에게 부과되었던 공적인 교육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었다.(p415) <사생활의 역사 3> 中


 산업화 또는 근대화를 통해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분화되는 과정에서 세대 구성원들은 가족의 일부가 아닌 개인(個人)으로서 자신을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근대사회에서 개인주의(individualism)의 등장과 함께 어린이 역시 개인으로서 자리잡게 되면서, 이른바 '아동'의 개념이 태어났다는 것이 아리에스의 설명이다. 다만, 이 부분에서 마을 공동체의 붕괴와 함께 여성의 지위 약화가 뒤따라온 것은 또다른 근대화의 비극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교육 체제의 성공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교육 체제와 교육 개념,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근대 초의 가장 커다란 사건은 다시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었다.(p646)... 교육에 대한 이처럼 새로운 관심은 점점 사회 중심부에 자리잡아 갔고, 교육을 완전히 변모시켰다. 가족은 단순히 재산과 이름을 전하기 위한 사적 기능만을 하지는 않게 되었다.(p647) <아동의 탄생> 中


 사실상 아기의 출산과 양육이 서로 분리되면서 순환적 생명 주기 속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여성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그때까지는 매우 긴밀하게 결합했던 상호 보완적인 이 두 기능의 분리로 말미암아 여성은 단순한 재생산의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여성에게서 단지 수태와 임신 그리고 출산의 역할만을 기대했다.(p412) <사생활의 역사 3> 中


 이처럼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 <사생활의 역사>는 어린이의 개념이 사회의 변화에서 나온 부산물이었음을 밝힌다. 그렇지만, 급속한 사회 변화에 따라 19세기에는 어린이는 가족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받았으며, 20세기에 이르러서는 가족의 중심으로 그 중요도가 급속하게 바뀌게 되었다. 그 결과 사회화의 수단으로 활용되던 교육 역시 가정의 중심이 된 어린이들의 능력을 일깨우기 위한 목적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엘렌 케이(Ellen K.S. Key, 1849 ~ 1926)의 <어린이의 세기 Das Jahrhundert des Kindes>와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 1870 ~ 1952)의 <어린이의 비밀 Il Segreto dell'infanzi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학교가 공통으로 지향하는 유일한 목적은 다음과 같다. 즉 '붉은 피와 맑은 눈, 넓은 가슴을 지닌 신체적/정신적으로 강하고 기민한 존재, 자신감과 온유함으로 채워진 존재, 미적 형상들에 대한 깨어 있는 시각과 신비스러운 것이 스며들도록 갈망하는 영혼, 이런 경이로운 세상의 즐거움과 고통을 감싸 안은 심장을 지닌 존재'를 양성하는 것이다.(p164) <어린이의 세기> 中


 개성적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창조한다. 태아와 어린이가 인간의 창조자, 즉 인간의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린이의 창조자라는 말은 완전히 옳은 말이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건축가는 어린이다. 어린이가 인간의 아버지다.(p55) <어린이의 비밀> 中


 근대화와 산업화가 가져온 변화를 통해 태어난 '어린이'. 어른의 예비 단계가 아닌 그 자체로 가정과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지만, 사회 약자인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 여겨진다. 어린이 날을 맞아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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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9-05-07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대 교육이 단순히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사회조직에 순응하는 존재로 만든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족과 학교는 함께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아이들을 분리시켰다. 학교는 이제까지는 방만했던 아동기를 점점 더 엄격해진 규율 체제 속에 가두었다.‘
‘ 부모들이 새로운 교육 제도를 지지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다. 새로운 교육의 성공 비결은 꾸준히 성장하던 개인주의적 욕구에 전적으로 부합하면서 정신을 연마시켰기 때문이다.‘


겨울호랑이 2019-05-07 08:35   좋아요 1 | URL
저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제가 단편적으로 생각해왔던 사건의 배경에는 여러 사정들이 한데 어울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이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위험성도 함께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회의하고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우향님 감사합니다!

2019-05-07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원 2020-09-30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만약 아이들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바란다면 캠퍼스를 바꿔야 한다고 떠들면서 다니던 시절이 생각나는 글입니다. 예전에 살던 곳 근처에 대학교가 있었습니다. 광장을 지나 작은 야산을 품고 있어서 고즈넉하고, 개미들이 바스락 대면서 열을 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차근히 바라보다, 적어도 다섯 가지의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캠퍼스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보이는 곳이 아이들이 자라는 학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과 초중등학교의 배움터가 바뀌면, 별과 바람과 죽음과 삶이 고스란히 보이는 장소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될 쯤에는 뭔가 다른 시도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상상하곤 했습니다. 문득 감사의 시절 기운에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9-30 22:16   좋아요 0 | URL
어쩌면 시대에 따라 아이들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지위가 바뀌는 상황이 비극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의 필요에 따라 바뀌는 일시적인 정책이 아닌 모두가 동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대 위에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초원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