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76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지음, 김도현 옮김 / 책세상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어떤 사회에서든 종교족 제재에 의해서만 지지되기에는 너무 실용적이고, 단순히 호의에만 맡겨버리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고, 추상적 정부 기관에 의해서만 강제되기에는 개인적으로 너무 긴요한 일군의 규칙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법 규칙의 영역이야말로 감히 예견하건대 호혜성, 체계적 영향력, 전시성, 야망 따위가 원시법의 구속력의 핵심 인자를 이루는 영역인 것이다. _ 브로니스라브 말리노프스키,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 , p76/224


 브로니스라브 말리노프스키 (Bronislaw Malinowski, 1884 ~ 1942) 의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 Crime and Custom in Savage Society>는 서구와는 다른 법 질서가 아닌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를 보여준다. 서구의 법이 '처벌을 통한 강제'의 원리라면, 트로브리엔드의 사회는 '이익을 위한 호혜'의 원리가 작용하기에 서구의 틀로는 그들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다. 말리노브스키는 책에서 바로 이 점을 짚어낸다.


 그동안 멜라네시아인의 속성이라 여겨져온 의무 이행의 '자동적 원활함 automatic smoothness'을 보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거래에는 항상 장애가 있고 불만과 비난이 많으며 자기 파트너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파트너 관계가 유지되고 대체로 각자 자기 의무를 이행하려 노력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해관계 self-interest를 잘 알고 있어 이에 얽매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야망 ambition과 감정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_ 브로니스라브 말리노프스키,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 , p44/224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에서 저자는 서구 사회보다 복잡한 생활양식이 공존하는 미개한(?) 트로브리엔드의 실상을 말한다. 모계제를 기본으로 하되, 부성애(父性愛)를 인정하며 사회 내에서 서로 다른 제도가 공존할 수 있게끔 유지하는 트로브리엔드 사회는 강제된 법으로 유지되는 서구 사회보다 다양성을 보존하고 있다.


 트로브리엔드의 사회관계는 다양한 법적 원리들에 의해 규율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모권제 Mother-right 로서 이에 따르면 자식은 육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어머니 편 친족에, 오직 어머니 편 친족에만 속하게 된다. 이 원리는 신분/권력/ 위신의 세습, 경제적 상속, 전지(田地)에 대한 권리, 지역적 시민권 local citizenship, 그리고 토템 씨족의 구성원 자격 따위를 규율한다. (p82)... 하지만, 모권 체계와 나란히, 말하자면 그 그림자 속에 다른 소외된 법 규칙의 체계들이 존재하고 있다. 혼인법, 마을 공동체의 헌법, 즉 마을에서 촌장의 지위, 지방에서 추장의 지위, 그리고 공적 주술사의 특권과 책임 따위는 모두 독립된 법체계를 이룬다. _ 브로니스라브 말리노프스키,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 , p83/224


 이처럼 서로 다른 형태의 제도가 공존함에도 트로브리엔드 사회가 정(靜)적인 것만은 아니다. '교차사촌혼'을 통한 근친혼의 예외는 모계제 사회와 부계제 사회 사이의 갈등의 씨앗을 보여주기도 하며, 마법(주술)의 보수주의적 사용 등을 통해 체제의 안정, 계급의 분화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기에, 이 사회는 다른 어느 사회보다 불안정한  동(動)적인 면을 갖는다.


 부계 혈통이 일시적으로 모권제를 잠식해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장치는 교차사촌혼 cross-cousin marriage 제도에서 발견된다. 트로브리앤드에서 아들이 있는 남자는 만약 누이가 딸을 출산한다면, 아들과 누이의 딸(생질녀)을 혼인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리하여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손자는 자신의 친족이 되고, 자신의 아들은 추장직 상속자의 매부가 된다. 그러므로 추장직 상속자는 추장 아들 가족에게 식량을 공급해야 하고 추장 아들에게 협력해야 하는 일반적인 의무를 부담하며, 자기 누이 가족의 보호자가 된다. 아들에 의해 이익을 잠식당할 수 있는 바로 그자가 그것에 분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_ 브로니스라브 말리노프스키,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 , p117/224


 요컨대 마법은 사법(司法)을 행하는 방법인 동시에 범죄를 저지르는 형식이기도 하다. 마법은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쪽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권력자가 약자를 해코지하는 데 마법을 사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법에 정면으로 대항하기 위해 마법이 사용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어느 쪽으로 사용되든, 마법은 현상 유지를 강조하고 뿌리 깊은 불평등을 표현하며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보수주의는 원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성질이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마법은 유익한 제도이며 초기 문화에 있어 막대한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_ 브로니스라브 말리노프스키,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 , p100/224


 이처럼 말리노프스키의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은 서구중심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미개 사회 역시 다른 형태의 문명으로 결코 미개하지 않은 구조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의 제목은 미개 사회지만, 내용은 매우 역설적이다.


 '처벌을 받지 않을 하한'을 규정한 서구의 법질서가 '처벌을 받지 않을' 구성원들의 회피 행동을 낳는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한 호혜성'은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보다 시장경제적인 윤리(倫理)가 아닐런지. 또한, 구성원들의 회피가 결국 힘없는 자들의 강탈로 이어지는 반면, 자발적인 참여는 자긍심 증대와 함께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결코 트로브리엔드 사회는 미개 사회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인류 문명은 예전보다 퇴보해 온 것은 아닐런지를 생각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사회관계의 법적 성격으로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호혜성 - 주고받기의 원리 - 이 씨족 내에서도, 아니, 가장 가까운 친족 집단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_ 브로니스라브 말리노프스키,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 , p59/2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리노프스키의 법 이해의 핵심은 법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호혜성이나 전시성 따위의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법은 사회 속에 내재하는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 있다. 이러한 사회의 내적 운동을 무시한 채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외부에서 강제되는 법은 인간과 사회를 소외시키고 나아가 법 자제를 소외시킨다. 법원과 경찰 따위의 강제 기구가 행사하는 폭력은 법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법의 외피일 뿐이고, 근대적 국민 국가의 주먹이자 이빨일 뿐이다.(p174/224)
- P1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유라시아 견문> 시리즈를 덮으며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을 나누며 이번 페이퍼에서는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처음 <유라시아 견문>을 읽으면서, 책의 구성이 낯설게 다가왔다. 보통 여행기의 경우, 저자의 여행 경로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면, 시간에 따라 공간이 묶이는 구성이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지역 별로 구분해서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중해' 등으로 묶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권마다 '동 東 - 서 西'의 도시들이 서술되는 기준일까에 관심이 미친다. 그러다가, <유라시아 견문 2>의 도시들을 훑으며, 이들이 해안 도시라는 공통점을 찾게 되었고 대체적으로 '바다의 길'에 해당하는 경로임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유라시아 견문 1>에서는 중국이, <유라시아 견문 3>에서는 러시아, 몽골이 배치된 이유가 보다 분명해진다. 각 권은 '비단길', '바닷길', '초원의 길'에 대응하고, 이를 의식한 편집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견문록이면서도 문명사(文明史)의 관점에서 현대를 조망한 책이라 할 것이다. 때문에, 관련있는 책들을 고르자면, 정말 차고 넘치지만 그 중에서도 먼저 떠오르는 것들을 올려본다.

 











 먼저,  정수일 박사의 <실크로드 도록>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해당 경로의 도시와 과거 역사, 유물을 소개한 도록을 통해서 우리는 생각보다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를 깨닫게 된다. 추가적으로 실크로드 사전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여기에 저자의 여행기도 있지만, 아직 읽지 않아 리스트에 포함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더해 세계 4대 여행기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오도릭의 동방기행>,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들이 곁들여 진다면, <유라시아 견문>에서 소개된 국가, 도시의 옛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들은 <유라시아 견문>을 시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고전들이다.















  다소 아쉬움에 느껴진다면 여기에 더해 라시드 앗 딘의 <집사>까지 읽으면 어떨까. 이를 통해 낯선 중앙아시아 몽골 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서진>과, <신장의 역사>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인도와 관련해서는  문학작품이지만 <마하바라따>를 추천한다. 물론 양이 방대하지만, 노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중국 문화에 대해 '대륙은 스케일이 다르다'고 하지만, <마하바라따>는 양(量)이 아닌 차원(次元)이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다.


























































 












 



 저자는 <유라시아 견문3>에서 서양 사상이 공자의 영향을 짙게 받았음을 말하면서,문명교류의 재개를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황태연 교수의 책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분량도 제법 되니 쌓아놓고만 있어도 마음이 채워지는 책들이다. 만약, 양이 부담스럽다면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읽어도 대강의 내용을 잡는데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최근 저자는 서구 계몽주의의 영향을 국가별로 나눈 책들도 냈지만, 아직 읽지 않아서 지금은 이에 대해 평가하기 어렵다. 기회가 되면 후에 다루도록 하고 일단은 넘기자.


 또한, 저자는 문명 교류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곳에서 주장한다. 이는 문명의 성격이 지역적이고 고립적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변화와 생성에서 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느다. 이런 역사관의 측면에서 아놀드 토인비의 책들과 듀런트의 책들을 비교해서 읽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서양 고대 철학에서 '변화'를 강조한 헤라클레이토스와 '정지'를 강조한 파르메니데스의 관점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


























































































 물론, <유라시아 견문>에는 실크로드의 경로를 담고 있는 국가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간략하게나마 담고 있기에 이들에 해당하는 책들을 넣는다면 분명 더 많은 책들을 담을 수 있겠지만, 개략적으로 읽거나 알고 있는 책들을 중심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이 정도면 한 1년 동안은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해당되는 책들의 리뷰는 정리가 되는 책들부터 차례로 올리기로 하고 <유라시아 견문>시리즈를 덮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darkan 2021-02-21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리뷰와 소개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2-21 17:32   좋아요 0 | URL
ddarkan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유라시아 견문 2 -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유라시아 견문 2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세와 시류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서세동점의 말기이다. 서구적 근대의 말세이며, 미국적 세계화의 끝물이다. 그러나 탈근대도 아니요, 반세계화도 아니다. 구미적 근대에서 지구적 근대로 이행하고 있다. 미국적 세계화에서 세계적 세계화로 진입하고 있다. 지구적 근대화와 세계적 세계화의 최전선에 유라시아가 자리한다. 구 舊 제국들은 귀환하고, 옛 문명들은 복원된다. 동서고금이 사통팔달 회통한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338

<유라시아 견문> 시리즈 전체 주제를 요약한다면, 아마도 위 문단으로 정리될 것이다. <유라시아 견문 2>에서는 미얀마의 양곤부터 그리스의 아테네까지 여정을 다루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 동부 유럽에 이르는 이 여정에서 저자는 제국주의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는 이들의 모습을 제시한다.

아웅산과 수치 사이에 네읜 Ne Win(1911 ~ 2002)이 있었다. 아버지의 옛 동료이자, 딸의 정적이었다. 그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접수한 것이 1962년이다. 1988년까지 장장 26년을 집권했다. 유별난 일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박정희가 등장한 것이 1961년이다.(p30)... ‘아웅산 수치‘라는 이름, 혈통이야말로 최대의 정치 자산이었다.(p59)... 다시 출발하는 미얀마 또한 ‘다른 백 년‘의 든든한 동반자이기를 바란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따져봐도 그녀의 삶과 사상은 영국산이다. 새 시대를 여는 맏딸이기보다는 구시대의 막내이지 십상이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67

제국주의 시대를 마치고 독립을 쟁취했지만, 지배계급은 새시대를 준비하는 이들이 아니라, 지난 세대를 마무리하는 이들이었다. 미얀마의 수치 가문, 인도의 간디 - 네루 가문 모두 제국주의 모국에서 교육받은 최후의 지배세력이었고, 최근까지도 제국주의 지배의 연장선상에서 나라를 운영하고 있었다. 저자는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 세력 교체라는 변화의 움직임을 발견했다. 2016년 당시는 우리에게도 역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던 시기였기에, 유라시아 대륙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지적한 저자의 혜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독립인도의 주역은 단연 네루였다. 펀자브주의 브라만 출신인 그의 사회주의 또한 영국의 페이비언 사회주의를 계승한 것이었다. 네루 본인도 말년에 스스로를 ‘인도를 다스린 마지막 영국인‘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p99)... 영국 독립 이후 인도에서 민주주의를 자연스럽게 실시할 수 있었던 것도 식민지 제도를 크게 변경치 않고 계승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급진적 개혁 또한 실행하지 않았다. 국민회의의 주요 구성원들이 식민지 시대부터 대두한 중앙의 중간층 또는 지방의 농총 지주 및 부농층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에는 의회제 민주주의가 안성맞춤이었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102

이와 함께, 저자는 우리가 유라시아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한다. 우리가 동남아시아와 무슬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서구에 의해 번역되고, 왜곡된 사실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기억의 왜곡이 과거 역사에만 한정되지 미디어에 의해 진행중에 있기에, 현실과 인식의 괴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도 함께 알려준다.

1988년부터 카슈미르의 무장투쟁도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인도는 총력전으로 응징했다. 1989년 한 해에만 8만 명이 학살되었다. 700만 카슈미르 인구의 1 퍼센트가 죽은 것이다. 같은 해 텐안먼 사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폭압이었다. 실제로 북쪽으로 이웃한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견주어도 억압의 강도가 훨씬 높고 가혹하다. 국가폭력도 만연하다. 무슬림에 대한 고문과 강간이 숱하게 자행된다. 그럼에도 잘 부각되지 않는다. 프레임 탓이다. ‘민주주의 인도‘와 ‘이슬람 파키스탄‘ 구도로 접근한다. 카슈미르에 내재하지 못하고 대분할체제의 균열을 투영하는 것이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232

여론조사의 신빙성 또한 갈수록 의심받고 있습니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도, 미국의 대선 결과도 주류 언론의 여론조사는 줄곧 잘못된 정보를 발신해왔습니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573

대표적인 왜곡된 인식 사례로 저자는 무슬림의 ‘히잡‘ 문화를 든다. 흔히 여성 억압의 도구로 알고 있는 히잡이지만, 무슬림들에게 히잡은 여성들의 적극적 투쟁 문화의 소산임을 저자는 밝힌다. ‘자신의 몸을 보여주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며, 외부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는 무슬림 문화를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를 비판하는 저자의 지적이 자못 날카롭게 느껴진다.

무슬림 문화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 켜켜이 쌓여 있다. 히잡도 그 가운데 하나다. 흔히 여성 억압의 상징처럼 간주된다. 그러나 사정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20세기 내내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썼던 것이 아니다. 이란과 터키 같은 개발독재형 우파 국가에서도,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나 나세르의 이집트 같은 좌파 독재국가에서도 히잡 착용은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국가가 국책으로 히잡을 벗겨냈던 것이다. 그 독재권력에 맞서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열혈 여성들로부터 히잡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억압은 커녕 저항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의상을 통한 인정투쟁은 민주주의가 착근하면서 남성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갈수록 남성들도 전통적 복장으로 갈아입고 있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559

<유라시아 견문 2>에서 저자는 궁극적으로 유라시아가 새로운 시대의 무대가 될 것임을 말하면서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한다. 유라시아 각국들이 과거 암울한 제국주의 시대의 굴레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거나, 힘겹게 빠져 나왔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부터 먼저 이웃을 바르게 보자는 저자의 울림이 간절하게 느껴진다.

PS. 이제서야 겨우 눈치챘지만, 지금 저자의 <유라시아 견문> 3권은 그냥 씌여진 것이 아니다. 각각 ‘비단길‘(1권) , ‘바닷길‘(2권), ‘초원의 길(3권)‘에 대응하는 것임을 책을 다 읽은 후에야 간신히 깨닫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라비아의 감각으로, 유라시아의 시각으로 서구사를 다시 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변방사를 보편사로 추켰던 ‘가짜 사관 Fake History‘을 거두고, 서양사와 유라비아사의 지평으로 서구사를 재조망해야 할 것이다. 유럽을 지방화하고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적폐 청산의 일환이다.(p38)

「유라시아 견문 3」은 포르투갈의 리스본부터 중국 심양까지 아우르는 「유라시아 견문」시리즈의 마지막이다. 저자는 유라시아 대륙을 다룬 이번 시리즈 중 아시아에서는 새로운 가능성 발견, 유럽에 대해서는 지난 시대에 반성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길을 주문한다. 그래서, 주로 유럽을 배경으로 한 이 책에서는 새로운 역사 해석과 새로운 사상이 유난히 강조된다.

교황은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엘리트 프로젝트라고 여겼다. 한쪽은 ‘깨어 있는 시민‘을 양성하고, 다른 쪽은 ‘각성된 노동계급‘을 배양코자 한다. 어느 쪽도 민초들의 삶에 면면히 계승되고 있는 오래된 지혜를 신뢰하지 않는다. 유물론에 바탕하고 있음도 공통적이다. 그래서 인간을 물질적으로만 이해한다.(p67)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진단에 확증을 갖게 된 것이 EU 활동을 통해서 입니다. 만약 유럽의회가 자유민주주의가 도달한 현시점 최고의 기구라고 한다면, 자유민주주의는 바람직한 이념도 아니고 아름다운 체제도 아닙니다. 불행히도, 그리고 매우 불쾌하게도 공산주의와 너무너무 닮아 있습니다.(p291)

저자는 교황 프란치시코와 크로아티아의 스레츠코 호르바트의 입을 빌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한계를 에둘러 비판한다. 서로 대립하는 두 사상의 근본에는 물질주의가 자리잡기에 현대의 문제를 타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을까. 저자는 독일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의 보수주의 속에서 일단의 가능성을 본다.

(독일의 자부심) 근저에는 기독교 민주주의가 있다.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의 독일을 일군 정당,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당은 기독교민주연합이다. 기민당은 그저 보수정당이 아니다. 20세기의 잣대, 좌/우로 단정 지을 수가 없다.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결합, 고전 문명과 현대 정치의 융합이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저자가 말하는 바는 한 문명 내에서의 개혁이 아니다. 제약된 공간에서 시간의 융합이 아닌 ‘유라시아‘와 ‘과거 - 현재 - 미래‘의 시공간의 융합을 통해서만 새로운 시대의 정신이 태어남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미 유라시아는 이런 공동작업의 역사가 있다.

유럽의 계몽주의 또한 자가발전, 내재적으로 발전했던 것이 아니다. 동/서 문물 교류, 융복합과 통섭의 소산이었다. 마치 뉴턴이 이슬람 문명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근대 과학의 법칙을 세운 것처럼, 칸트와 헤겔은 중화문명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근대 철학의 원칙을 이룬 것이다. 유라비아와 유라시아가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교학상장의 빛나는 결정체였다.(p102)

그러나, 저자가 말한 융합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양 극단에서 배척받는 제3의 길은 과거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길을 가야하는가. 가야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음은 저자를 통해 던져졌으니, 이에 대한 대답은 각자 찾아야할 것이다. 저자의 주장이 생소하기는 하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알지못했던 신세계를 믿고 싶다. 그렇지만, ‘확신‘ 전에 ‘확인‘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공부하려는 노력이 따라야할 것이고, 이는 온전히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유고 공습‘의 본질이 무엇이었던가. 애초 질문에 답이 담겨 있었다. 세르비아는 방편이었을 뿐이다. 밀로셰비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목적은 ‘유고‘에 있었다. 서구식 자본주의도 아니요, 소련식 국가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실험을 추진했던 유고를 지워버리려고 했다.(p2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