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화의 제국 - 자본주의의 새로운 역사
스벤 베커트 지음, 김지혜 옮김, 주경철 감수 / 휴머니스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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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까지 자본이 국민국가에 보호되는 형태가 더 일반적이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1970년대가 되어서야 산업가들이 특정 국가의 보호라는 오랜 그늘에서 벗어나 해방되기 시작했다. 그때에야 비로소 자본가들은 산업자본주의 기획을 추구하기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강력한 국가에 의존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자본의 영토화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면화의 제국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_ 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627

면화(cotton)이라는 상품이 북반구를 면화의 가공지로, 남반구를 면화의 공급지이자 소비지로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면화의 제국>은 살펴본다. 잉글랜드 지역에서 1차 인클로저 운동으로 풍부해진 노동력과 지주(地主)에게 넘어간 경제 권력이, 2차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산업 자본가에게 넘어간 과정, 세계 무역 네트워크에서 정점에 서 있던 잉글랜드의 위상, 최근에는 신자유주의를 통해 국가를 넘어선 권력의 주체로서 자본(資本)의 역사가 '면화'라는 하나의 상품으로 상세하게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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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3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3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1-13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굽시니스트 작가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를 읽으면서 면화 산업 그리고 더 나아가 면직물
산업이 어떻게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게 되었는
지에 대해 알게 되었답니다.

<면화의 제국>은 좀 더 고차원적인 측면에서
면화 산업의 이모저모를 파헤친 그런 역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1-13 23:34   좋아요 1 | URL
<본격 한중일 세계사>를 안 읽어 봤습니다만, 폭넓은 주제를 다룬 책이라 여겨지네요. 요즘은 거시적으로 세계사를 바라보는 책들도, 미시적으로 세계사를 바라보는 책들도 많이 나와 그야말로 세계적인 관점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요즘입니다.^^:)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 - 19세기 영국
영국사학회 엮음 / 혜안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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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적 지배의 효과는 피지배자들에게 균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제국주의는 원주민 사회에서 이득을 얻는 소수 집단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이 반드시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 제국주의 세력에 협력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들의 상당수는 제국의 힘을 빌어서라도 조국의 근대화를 추구하고자 한 근대화론자들이었다._ 박지향, <관료제를 통해 본 영제국 통치의 매커니즘>,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 p199

19세기 영국사를 다룬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은 영국사학회 소속 교수들의 논문들을 모은 소논문집이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변화를 여러 측면에서 조명했다는 점에서 유익한 책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한 리뷰는 아마 페이퍼 형태로 정리될 듯 하다. 다만, 책에서 위의 구절에 눈이 머무르는 것만은 피할 수 없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영국 제국주의 시대의 역사에서 발견하는 느낌은 그다지 상쾌하지만은 않다. 참고로 박지향 교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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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07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자체만으로 볼때는 틀린말은 아니죠. 하지만 저 근대화론자들 대다수는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개인의 영달 이상 아무것도 하지ㅜ않았다는 것이 문제고, 그 영달이 같은 민족과 주변인들에 대한 처절한 착취에 기반했다는 게 진정한 문제인데 왜 저 근대화론자들은 애초에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는 말만 반복하는걸까요? 가끔은 저들이 다 가족인가싶습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21-01-07 20:40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조국의 근대화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명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들은 조국의 근대화라는 명분을 주장하지만, 이를 위해 식민지 지배 하에서 다수가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결국 그들만을 위한 근대화가 아니었는지 되묻게 됩니다...

기억의집 2021-01-07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역사쪽으론 그다지 지식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아프리카 식민지를 두고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네요. 자원 착취와 노동력 착취가 주였는데.. 아프리카 근대화에 현지인들이 무슨 일을 했을까요? 인도도 아프리카도 동남아도 다 콩고물 먹기 바뻤을 것 같은데..

겨울호랑이 2021-01-07 20:43   좋아요 0 | URL
식민지의 주민들은 본국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이며 같은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20세기 초기 만국박람회에서 흑인들이 전시되었다는 기록을 본다면, 야생동물 수준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을까요...
 
산업혁명 1760-1830
T. S. 애슈턴 지음, 김택현 옮김 / 삼천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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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경제학자인 T.S.애슈턴(1889 ~ 1986)의 입장은 다소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부피가 얇은 이 책에서 1차 산업혁명 시기에 이루어진 기술혁신과 경제적 변화들을 실증적으로 검토한 애슈턴은, 1차 산업혁명은 비관론자들의 주장처럼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들고 가는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영국 사회와 영국인을 기아와 질병의 공포에서 구해내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산업혁명이 '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며 '지적'인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애슈턴이 1차 산업혁명 연구에 공헌한 바는, 이전의 연구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않았던 영국의 비국교도 집단과 스코틀랜드인들의 역할을 중요하게 취급하고 적극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이다._T. S. 애슈턴, <산업혁명>, p7, 옮긴이 서문 中

역사에서 '산업혁명기'이라 부르는 시기에 대해 T.S 애슈턴은 <산업혁명 1760 ~ 1830>에서 산업혁명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경제성장 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낙관론의 입장을, 그 발전의 단속적인 측면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비관론을 취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 같은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그는 중도적 입장에 선 학자라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책 안 곳곳에 자리잡은 동양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실증에 기초한 분석은 취하되, 동양을 주변부로 인식하는 저자의 관점은 분명 감안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인도와 중국의 평원에는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남녀들이 낮에는 함께 일하고 밤에는 따로 잠자는 가축들보다 외견상 거의 나을 게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같은 아시아의 생활수준과 기계화되지 않은 그런 공포는 산업혁명을 거치지 않고 인구수만 늘리고 있는 사람들의 운명인 것이다.._T. S. 애슈턴, <산업혁명>, p214

애슈턴은 중국인과 인도인들에 대해 나태하다고 독설을 퍼붓지만, 산업혁명을 통해 생산된 면화의 소비자, 저렴한 노동력의 공급자로 역할하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가 산업혁명이라 부를 사건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드러나기나 했을런지... 경제사 고전인 <산업혁명 1760 ~ 1830>은 우리에게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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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7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7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1-07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제 읽은 강준만 선생의 책에 나오는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주장이 아닐까 싶습
니다.

산업혁명의 후과로 혜택을 본 사람들도
있지만, 진짜 산업혁명의 역군이었던 노동자
들이 역설적으로 노동에서 소외되고, 산업
혁명의 과실을 자본가들이 독식해 버린
상황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년 말에 잠깐 맛을 본 에릭 홉스봄의 혁명
의 시대에서 느꼈던 것처럼, 저자의 관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역사에 대한 해석도
천양지차로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1-07 14:42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산업혁명‘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긍정적 영향을 강조하기에 사회에 가져온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 정도로 인식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합리화 하는 이론이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겠지요... 생각해보면, 다윈의 진화론이 가지는 의의는 생물학에서보다 사회학에서 더 크게 느껴집니다. 다윈 자신이 이를 원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제 생각에 애슈턴은 산업혁명을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인식하는 편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에 대해서는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에 자세히 소개되었는데, 기회가 되면 정리해 보겠습니다..
 

 아방가르드의 의도적인 전통 도덕 무시나 새로운 산업자본가들의 부의 과시뿐 아니라 인상주의나 상징주의 같은 모든 새로운 것이 문제였으니, 자신들의 오래된 세계와 가치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불안한 영혼들은 그 모든 것에 대해 퇴폐적이라고 아우성쳤다. 급속히  사라져가는 세계, 향수 어린 회고 속에서 안전했다고 기억되는 세계 대신, 무정부주의자들의 폭탄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빈곤의 늑대가 문 앞에서 울부짖는 세계가도래한 것이었다. 이처럼 불안한 시대는 희생양을 필요로 했으니, 세기말 프랑스에서는 급증하는 유대인 인구가 필요한 표적을 제공했다. - P409

프랑스대혁명을 경축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달가운일이 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래서 애초부터 그 계획의 초점은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많은 사람에게 가능한 한 호소력 있는 박람회가 되게 하자는 데 모아졌다. 거기에 뭔가 진짜 볼만한 것을 내놓자는 자연스러운 바람이 더해져, 일찍이 지어진 어떤 것보다도 높은 (300미터짜리) 거대한 탑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었다.- P243

국채의 대대적인 성공 덕분에 일종의 황홀경이 프랑스를 휩쓸었다. 애국주의와 상당한 수익률이 합쳐져 독일로서는 거의 예상치 못했던 전국적인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의 국가 재건이 국고를 말려버리고 군사력을 한층 더 약화시켜 독일군이 몇 년 더 프랑스 땅에 주둔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은 이 첫 번째 장애물을 깃발 날리며 뛰어넘었다. 물론 프랑스가 그 독일군 정복자들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려면 아직도 30억 프랑을 더 치러야 했지만 말이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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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6년 7월 17일 모로코에서, 그리고 스페인 본토에서는 18일에 스페인 군대의 주요 병력이 공화정 정부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3년간의 내전으로 발전될 전형적인 군사 쿠데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반란군 주위에 전통적인 스페인을 수호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는데, 이들은 카를리스트, 군주제 지지자, 대농장 소유주, 대 자본가, 다양한 부류의 가톨릭 신도들, 팔랑헤 당원 그리고 파시스트들이 뒤죽박죽 얽혀 있는 형국이었다. 마르크스주의 노동자, 농민들과 급진적이고 리버럴한 부르주아, 소지주, 카탈루냐와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은 공화정을 수호하기 위해 일어섰다. 이 두 파벌의 어느 하나도, 진정으로 동질적이지는 않은 집단이었다. _ 카를로스 블랑코 아기나가 외 2인, <스페인 문학의 사회사 4>, p169


 제1차 세계대전(1914 ~ 1918)과 경제대공황(Great Depression, 1929 ~ 1939) 이후 일어난 스페인 내전(The Spanish Civil War, 1936 ~ 1939)은 단순한 내전이 아니었다. 스페인 내부의 종교와 경제문제, 여기에 국제 세력의 개입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이후 일어날 제2차 세계대전(1939 ~ 1945)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을 전쟁을 앤터니 비버(Antony Beevor, 1946 ~ )는 <스페인 내전 The Battle for Spain>를 통해 상세하게 전쟁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드리드의 지배라는 엄격한 전통이 있었던 스페인에서는 농촌과 대도시 모두에서 갈수록 혼란이 심해지고 있었다... 내전은 그때까지 스페인 역사를 지배해 온 여러 세력 사이에 일어난 갈등 가운데 가장 큰 충돌이었다. 전쟁 때문에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른 적대감이 분출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두 가지 갈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하나는 권위주의적 지배와 자유주의적 본능 간의 갈등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앙집권적 정부와 지역주의적 열망 간의 갈등이었다. _ 앤터니 비버, <스페인 내전>, p26


 16세기 대항해 시대 직후 거대한 제국(帝國)을 형성하며 대제국을 만들었지만, 사실 1492년 그라나다를 함락시키기 전까지 국토의 많은 지역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었기에 스페인은 피레네 산맥 이북의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상업제국으로 번영했지만 국내 산업 기반은 약했고, 가톨릭 세력이 강한 종교국가가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의 이러한 특징은 스페인을 오랜 기간 중세 속에 묶어놓았고, 스페인은 오랜 침체 끝에 20세기 초 겨우 재도약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러한 스페인에 닥친 큰 타격은 1918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Spanish flu)과 뒤이은 경제대공황이었다. 


 스페인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중립을 지켰다. 이 기간 동안에 농산물과 원료 수출, 산업 생산이 늘어나면서 수많은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고 경제 기적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번영과 더불어 출생율이 급격히 늘어났는데, 그 효과는 20년 후인 1930년대 중반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경제 기적은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당시 정부는 보호주의에 의존하고 있었다. 국민들의 기대치는 높아졌고, 이어진 실업의 증가는 실망과 분노를 촉발했다. _ 앤터니 비버, <스페인 내전>, p39


 경제대공황과 이 시기 집권한 공화정부의 적절한 대안 제시 실패는 1936년 국민 진영의 쿠데타를 불러왔다. 스페인 경제 문제와 공화 정부의 개혁 정책 실패가 보수 세력들의 반발을 오면서 내전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지만, 국제 상황은 이를 스페인 국내 문제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세계 경제 공황으로 각국의 유효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 벌어진 전쟁은 다른 나라들에게는 경제 회생의 좋은 기회가 되면서 전쟁의 양상은 서서히 바뀌었다. 주변의 다른 나라들은 불간섭 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공화 정부와 국민 진영 모두에게 무기를 판매하면서 전쟁 특수를 누리면서 직접/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전쟁은 이제 단순한 내전이 아니었다. 스페인의 전략적 중요성과, 내전이 일어난 시점과 추축국들이 은밀하게 개발해 온 무기를 유럽에서 시험해보려고 한 시기가 맞아떨어지면서 내전에서 아마추어적 성격을 탈색시켰다. 국민 진영에는 외국인 고문, 참관인, 기술 전문가, 전투요원이 넘쳐났다. _ 앤터니 비버, <스페인 내전>, p259


 세계는 진보와 반동 간의, 혹은 문명과 붉은 야만 간의 '결정적인 한판 대결'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지 각자의 관점에 따라 예의주시했다. 모든 지역의 자유주의자들과 좌파 세력은 유럽이 전체주의 빙하 시대로 전락하기 전에 국제 파시즘을 마드리드에서 격퇴해야 한다고 믿었다. 반면에 보수주의자들은 마드리드에서 벌이는 일전을 공산주의의 거센 파도를 저지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 _ 앤터니 비버, <스페인 내전>, p322


 이처럼 스페인 내전은 국내적으로 또는 국제적으로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대립한 또다른 의미에서의 30년 전쟁이었다. 표면상으로는 신/구교의 갈등인 종교 전쟁이었지만, 이면에는 국가와 용병대의 이해관계가 얽힌 30년 전쟁처럼 스페인 내전 또한 이데올로기의 깃발 아래 치뤄진 국제전이었음을 우리는 <스페인 내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전쟁은 국제적인 여론 조성이 전쟁의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친 새로운 전쟁 양상을 보여주었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공화 정부가 국제 사회의 여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을지 몰라도, 국민 진영은 영국과 미국의 소수 유력 인사들에게 힘을 집중함으로써 결정적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국민 진영은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정서에 호소하면서 동시에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최대한 이용했다. 영국과 미국의 유력 인사들이 공화 정부에 품은 의심은 소련이 공화 정부에 군사 지원을 함으로써 사실로 확인되곤 했다. _ 앤터니 비버, <스페인 내전>, p426


 공화 정부가 맞닥뜨린 어려운 문제는 사건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버전을 동시에 제공해야 했다는 것이다. 대외용 보고서는 프랑스, 영국, 미국 정부에게 공화 정부가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라는 점을 납득시키려고 한 반면에, 국내에서 발표하는 성명서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이 여전히 사회 혁명을 수호하고 있음을 설득하려고 했다. _ 앤터니 비버, <스페인 내전>, p437


 3년간의 내전 결과, 승리는 결국 세계 여론을 자신들에게 우호적으로 돌리는데 성공하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은 국민 진영에게 주어지면서 스페인 내전은 막을 내린다.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된 스페인 내전. 이 전쟁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스페인 내전>은 이 전쟁이 프란시스코 프랑코 바아몬데(Francisco Franco Bahamonde, 1892 ~ 1975)라는 극우주의자에 저항한 공화주의자들의 전쟁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반(反) 파시즘(fascism)이라는 명분 아래 공산주의자 뿐 아니라 자유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이 공화정부 밑에 집결했다는 사실과 파시즘 세력에 기득권 세력이 결탁했다는 사실은 전쟁을 바라보는 기준이 선악(善惡), 좌우(左右)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에서뿐만 아니라, 직후에 일어난 한국전쟁에서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여태까지의 기준은 '공산주의 vs 민주주의'라는 단일한 기준이지만, 우리는 이 전쟁을 좌우 이념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끝나지 않은 파시즘(또는 일본제국주의)과의 전쟁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겠지만, 일반 대중들 또한 기존의 편견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관점에서 한국 전쟁을 내려다볼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른 한 편으로, 스페인 내전은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격변기를 살아간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1338 ~ 1392)를 떠올리게 한다. 고려말 기득권이었던 불교기반의 권문세족에 반대하는 신진사대부였던 포은은 조선의 개국에는 반대하면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이러한 포은의 삶 또한 다른 의미에서의 이데올로기 갈등이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포은의 삶을 단순히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라고 규정짓기보다 여기에 더해 '성리학'을 받아들인 혁명가로서의 모습을 더했을 때 그에 대한 평가가 보다 입체적이고 정확해지지 않을까. 스페인 내전 당시 이질적인 세력의 규합을 통해 우리는 입체적인 평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게 머나먼 이국의 스페인. 그들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통해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이 역사의 매력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3월 31일 프랑코 군대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교황 비오 12세는 프랑코에게 보낸 축하 메시지에서 "우리의 온 마음을 하느님께 올리면서, 가톨릭 스페인의 승리를 위해 애쓰신 각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라고 말했다. 치아노는 일기에서 "마드리드는 함락되었고, 수도와 함께 적색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도 모두 함락되었다. 이는 파시즘의 새롭고 위대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지금껏 거둔 가장 큰 승리일 것이다."라고 썼다. _ 앤터니 비버, <스페인 내전>, p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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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0-25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은 오래
전에 사두고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겨울호랑이님의 포스팅을 읽고 나니
우선 스페인 내전부터 읽어야 하나 싶
어집니다.

포스팅은 정말 끝장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분단의 기원도
스페인 내전에까지 가닿을 수도 있겠
구나 싶어졌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10-25 09:31   좋아요 0 | URL
아마도 레삭매냐님께서 스페인 내전에 관심을 가지시면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 헤밍웨이의「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등이 줄줄이 이어져 나올 듯 합니다. 레삭매냐님의 리뷰를 은근히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