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틸리나,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인내를 남용할 것인가?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의 광기가 우리를 조롱할 것인가? 어디까지 당신의 고삐 풀린 만용이 날뛰도록 놓아 둘 것인가? 필라티움 언덕의 야간 경비, 도시의 보초병, 인민의 공포, 모든 선량한 시민의 화합, 빈틈없는 경호 아래 개최된 오늘의 원로원, 이곳에 참석한 위원들의 표정을 보면서 당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가? 당신 계획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을 느끼지 못하는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짐으로써 당신의 음모가 이미 좌절된 걸 보지 못하는가? 어젯밤에, 그저께 밤에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를 불러 모았는지, 어떤 계획을 꾸몄는지, 당신은 우리 가운데 누가 모를 것으로 생각하는가?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설득의 정치>, p62/225

 

  정치인으로 키케로가 명성을 떨치게 된 계기는 BC63년 카틸리나 역모 사건을 진압하면서다. 자신은 로마에서 그외 무리들은 로마 외곽에서 시내로 진입하려던 그의 계획은 집정관 키케로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반란 계획은 꺽이고 만다. 이를 계기로 키케로는 '로마의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안겨주었던 '카틸리나 역모 사건'.


 어두운 밤이 당신의 범죄 회합을 감추지 못하고, 사저(社邸)의 담이 음모를 꾸미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들추어내고 모든 것을 폭로하는 이 마당에, 카틸리나, 당신이 도대체 이제 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단 말인가?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설득의 정치>, p63/225


  불과 여섯 시간만에 막을 내린 윤석열 내란 사건은 여러 면에서 카틸리나 역모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키케로의 유명한 <카틸리나 탄핵문>이 오늘처럼 가슴에 와 닿는 날이 있을까 싶다. 카탤리나를 윤석열(또는 김건희)로 대신해도 별 무리없이 이해되는 문장 속에서 시공을 초월한 명문의 진가를 확인하게 된다...


 카틸리나, 국가는 당신을 향해 침묵으로 이렇게 말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진 악행 가운데 너로 인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추문 가운데 너로 인하지 않은 것이 없다. 수많은 시민의 살해가, 동맹시의 착취와 약탈이 멋대로 처벌도 없이 너 하나에 의해 저질러졌다. 너는 법률과 재판 제도를 업신여겼을 뿐만 아니라 침해하고 훼손까지 했다."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설득의 정치>, p6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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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팔렌 체제의 비범한 부분이자 이 체제가 전 세계에 확산된 이유는 이 조약의 규정들이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절차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 기본 요건들을 받아들인 국가는 국제 체계 덕분에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보호받으면서 자신들만의 문화와 정치, 종교, 국내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국제 시민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p38)....  베스트팔렌 개념은 다양성을 체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각 사회를 현실로 인정하면서 다양한 다수의 사회들을 공동의 질서 추구 작업에 끌어들였다. 이 체제는 현재 국제 질서의 기반으로 남아 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39


 헨리 앨프리드 키신저 (Henry Kissinger, 1923 ~ )의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World Order>에서 30년 전쟁의 결과물인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phalia, 1648)에 기초하여 국제 정치를 바라보는 책이다. 본문에서 키신저는 근대 유럽의 출발점이기도 한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규칙'과 '세력균형'을 특징으로 집어낸다. 규칙이 국제질서의 출발을 의미한다면, 세력균형은 국제질서의 유지/존속을 의미한다. 


 질서의 두 측면인 힘과 정당성 사이에서 절충을 이루는 일은 정치가의 능력의 핵심이다. 도덕적 차원은 생각하지 않고 힘만 계산하면 모든 의견 충돌이 힘의 시험으로 바뀔 것이다. 야심은 쉴 줄을 모르고, 국가들은 변화하는 힘의 배치에 관한 힘든 계산을 하느라 고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편 균형 상태를 무시하는 도덕적 금지는 십자군이나 도전을 부추기는 무능한 정책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410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 유럽국가들 사이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정자가 필요하다. 유럽 중부에 대해서는 통일 독일제국 등장 이전의 프랑스, 유럽 대륙에 대해서는 영국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조정자로서 기능했고, 이 역할은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넘어갔다. 다만, 세력균형에도 불구하고 체제 내에서의 움직임이 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세력균형을 무너뜨리려는 신흥국(프로이센, 러시아)의 등장으로 새로운 균형점으로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이러한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베스트팔렌조약은 유럽 정치에서 하나의 체제로 작동했고,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통해 이는 세계질서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다만, 여기에는 걸림돌이 있었다.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은 동맹국들 간의 구체적인 협정이나 유럽의 영구적인 정치 구조를 지시하지 않았다. 정의에 따르면 세력 균형에는 이념 상의 중립과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적응이 필요하다. 19세기의 영국 정치가 파머스턴 경은 이 개념의 기본 원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할 뿐이며, 그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39


 키신저는 베스트팔렌 조약의 원칙이 세계 원칙으로 적용되기에는 체제의 걸림돌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한다. 힘과 도덕성이 국제질서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라 했을 때 중국 문명은 과도한 도덕성의 강조로 폐쇄적인 면을, 이슬람 문명은 지나친 힘의 강조로 지나친 팽창주의를 펼치는 등 차이가 있었기에 국제질서에 베스트팔렌 조약의 특성을 직접 이식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세계체제에 걸맞게 베스트팔렌 조약의 원칙은 적용될 필요가 있었다.


  유교는 중국문화에 가까운 정도에 따라 정한 위계질서 상의 속국들로 세계를 분류했다. 이슬람은 평화의 세계, 즉 이슬람의 세계와 이슬람의 세계와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전쟁의 세계로 세계를 나누었다. 따라서 중국은 자신들이 이미 질서 정연하다고 생각하거나 도덕성의 함양 정도에 따라 내부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정돈된 세계를 찾으러 해외에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반면, 이슬람은 이론적으로 정복이나 전 세계적인 개종을 통해서만 세계 질서를 수립할 수 있었다. 실제로 두 방법을 위한 객관적인 조건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406


 이러한 상황에서 전후 세계질서에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은 민주주의를 통해 힘과 도덕성을 함께 완비한 조정국으로서 1970년대 폐쇄된 중국을 개방으로 이끌고, 전쟁 직전의 중동을 세력균형의 상태로 만들었음을 키신저는 강조한다. 이처럼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는 세계 질서를 위해 희생하는 국제조정자로서 미국의 모습과 미국 정치인들이 인식하는 국제정치의 틀이 잘 담겨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지만, 그것이 과연 객관적 인식인가 하는 물음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세력 균형의 절차상의 측면, 즉 경합 중인 당사자들의 도덕성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방식은 위험할 뿐 아니라 비도덕적이었다. 민주주의는 가장 훌륭한 통치 방식인 동시에 영원한 평화를 보장해 주는 유일한 방식이기도 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293


 국제 사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맡기 시작한 미국은 세계 질서를 추구하는 과정에 새로운 차원을 보탰다. 대의제에 의한 자유로운 통치라는 개념 위에 설립된 미국은 자국의 발흥을 자유 및 민주주의의 확산과 동일시하면서 이 요인들이 이제껏 세계가 성취하지 못한 공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403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기본적으로 주위 국가들의 호의에 근거하여 외교 정책을 세움으로써 자신들의 운명을 저당 잡힐 거라고 기대할 수도 없었다. 기본 원칙은 모든 핵심 국가들이 그 질서를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힘과 정당성을 결부 짓는 국제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닉슨이 생각하는 국제 질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국에 대한 문호 개방을 자극한 것은 바로 그러한 국제 질서에 대한 비전이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342


 여기서 한 권의 책을 더해 보자. 찰스 킨들버거(Charles Poor "Charlie" Kindleberger, 1910 ~ 2003)는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를 통해 세계평화, 안정, 성장 등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를 공급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갖춘 '경제적 선두'를 말한다. 킨들버거는 같은 책에서 경제적 선두는 내외적 요인에 의해 주기적으로 끊임없이 교체되어 왔음을 말하지만, 미국 이후의 경제적 선두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한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자리를 이어받기를 원하는 국가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지만, 미국 또한 물러나길 원치 않을 것이다. 국제질서의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지만, 심판이자 동시에 선수로서 국제 질서에서 달러와 석유로 결합된 경제력과 무력을 바탕으로 미국 중심의 규칙과 현 상태의 세력균형을 강요하는 상황 속에서 국제적 리더십의 부재. 이것이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제외한 주변국들이 느끼는 세계질서의 공감대가 아닐까. 

 

 경제적 선두는 국민소득, 성장률, 기술혁신의 수와 그것이 장차 개화될 가능성, 생산성 증가율, 투자 수준,  원료 및 식량과 연료의 통제, 각종 수출시장 점유율, 금 보유고와 외환 보유고, 자국 화폐가 다른 나라에서 교환수단, 계산단위, 가치의 축적 수단으로 쓰이는가의 여부 같은 것 중 어느 하나로 어느 하나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것들과 함께 또 다른 경제적 기준들이 혼합되는 가운데 경제적 우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경제적 선두는 최상의 경우 지배나 헤게모니보다는 세계경제의 리더십에 따른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가 된다. 즉 지도자가 명령하듯이 타자에게 어떻게 처신할지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지시하고 또 그를 추종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설득하는 것이다. _ 찰스 킨들버거,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 , p28 


 킨들버거는 리더십의 공백, 부재 이후 움직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조정자의 무력을 가지고 베스트팔렌조약의 조약국 간 상호평등의 원칙 아래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경우, 극점체제는 단극(單極)에서, 양극(兩極)으로 다시 다극(多極)으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법칙은 아닐런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에서 보여지는 미국 정치인들의 인식과 주변국들이 느끼는 세계질서의 흐름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페이퍼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금본위제 시기 영국의 경우에서와 같은 강한 리더십, 최소한 1970년대 초까지의 IMF와 세계은행(미국), 또는 GATT의 보복 위협은 그러한 장애물들을 뚫거나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적절한 힘과 목적을 가진 효율적인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 체계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변형되어, 유용한 방향으로 처음 발을 내딛는 자가 무임승차하는 다른 이들에 의해서 희생된다. 자비로운 전제주의가 가장 효율적인 체계라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평등한 국가들 사이의 다원적 협력체계 혹은 세력균형에서와 마찬가지로 엔트로피에 종속된다. _ 찰스 킨들버거,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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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론 개략 후쿠자와 선집 1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성희엽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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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일본국 사람을 문명으로 나아가게 함은 이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일 따름. 나라의 독립은 목적이고, 지금의 우리 문명은 이 목적에 다다르기 위한 수단이다. 지금의 우리 문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명의 본지가 아니라, 우선 일의 첫걸음로서 자국의 독립을 도모하고 그 밖의 것은 두 번째 걸음으로 남겨서 다른 날에 이루려는 취지이다. 생각건대 이와 같이 논의를 한정하면 나라의 독립은 곧 문명이다. 문명이 아니면 독립을 지킬 수 없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535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 1835 ~ 1901)가 <문명론 개략 文明論之槪略>에서 말하는 문명(文明)은 일반적인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문명,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후쿠자와는 서두에서 문명을 우열(優劣)에 따라 구분하고, 앞선 문명인 서구 문명을 따라가는 것을 지식인의 과제로 정의한다. 


 지금 세계의 문명을 논하면, 유럽 국가들과 아메리카합중국을 최상의 문명국이라 하며, 투르크 土耳古, 지나, 일본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반개화국 半開國이라고 말하고, 아프리카 阿非利加 및 오스트레일리아 墺太利亞 등은 야만국이라고 일컫는다(p108)... 사물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아는 자는 그 이치를 더 깊이 앎에 따라 점점 더 자기 나라의 형국을 분명히 알게 되고, 더 분명히 알게 됨에 따라 서양 나라들에 미치지 못함을 점점 더 깨달아 이를 걱정하고 비관하며, 때로는 그들에게 배워 모방하려 하고 때로는 스스로 노력하려 이에 대립해보려고도 하는 등 아시아 나라들에서 식자 識者들의 평생 걱정은 오직 이 일 하나에 달려 있는 것 같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109


 이 책 전체에 걸쳐 논하고 있는 이해득실은 모두 다 유럽문명을 목적으로 정하여 이 문명을 위해서 이해가 있고 이 문명을 위해서 득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학자들은 그 큰 취지를 그르치지 말지어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117


 그렇다면, 반개화국이나 야만국의 지식인들은 왜 문명화 - 서구화 -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국체 國體 - 나라 - 를 지키기 위해서다. 보다 앞선 과학기술을 앞세워 무력을 갖추고 일본을 위협하는 외세 - 외부문명 - 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명론 개략>의 주된 내용이다. 


 일본 사람의 의무는 오직 이 국체를 지키는 일 한 가지뿐, 국체를 지킨다 함은 자기 나라의 정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정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인민의 지력 智力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항목은 매우 많지만, 지력을 계발 發生하는 길에서 첫 번째로 급한 일은 고습 古習에의 혹닉을 깨끗이 쓸어버리고 서양에 널리 퍼져있는 문명의 정신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150


 국체 國體. 체 體는 합체 合體라는 뜻이고, 또 체재 體裁라는 뜻이다. 사물 物을 모으고 이를 온전하게 하여 다른 사물과 구별할 수 있는 형체 形를 말한다. 따라서 국체란 한 종족 一種族의 인민이 서로 모여 고락 憂樂을 함께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보다 따뜻하며, 서로 상대방에게 힘을 쏟음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해 하는 것보다 열심이고, 한 정부 아래 살면서 스스로 지배하고 다른 정부로부터 제어받음을 달가워하지 않고, 화복을 함께 감재하며 스스로 독립함을 말한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136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론 개략>에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해야하는 이유를 국체를 보존하고 독립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지식인들은 반개화상태에서 벗어나 선진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러한 기풍을 전체 인민으로 학장시켜 마침내 문명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함을 강조한다. 


 전국 인민의 기풍을 일변 一變하는 것과 같은 일은 지극히 어려우며 하루아침 아루저녁의 우연으로 공을 세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 하나의 방법은 인간의 본성 天然에 따라 해 害를 없애고 장애를 멀리하며, 인민 전체가 스스로 지덕을 계발하도록 하여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고상한 영역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있을 뿐. 이와 같이 천하의 인심을 일변하는 실마리가 열리면 정령과 법률의 개혁도 차츰 이루어지고 장애도 사라질 것이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123


 천 번을 갈고 백 번을 단련하여 겨우 한 때의 이설 異說을 누르고 얻은 것을 국론 혹은 중설 衆說이라고 이름할 뿐, 이것이 바로 신문, 연설회가 성행하고 다중의 입 衆口이 떠들썩한 까닭이다. 인민은 분명 나라의 지덕에 의해 편달되기 때문에, 지덕이 방향을 바꾸면 인민 또한 방향을 바꾸고, 지덕이 파당으로 나뉘면 인민 또한 파당으로 나뉘고, 진퇴와 이합집산 모두 다 지덕을 따르지 않음이 없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236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론 개략>을 통해 단순히 피상적인 주장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정치, 종교, 과학의 역사와 일본 역사의 비교를 통해 나름 치밀하게 서구화를 해야 하는 당위성을 이끌어낸다. 그러한 저자의 논리를 일본이 근대화로 나아갔고, 후에 제국주의를 거쳐 군국주의로 나아갔음을 알고 있는 독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봤을 때 발견되는 위험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또한 서구 계몽주의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온 것과 같은 오리엔탈리즘 등의 요소는 책의 논리를 약화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문명은 서양문명보다 뒤처져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문명에 앞뒤가 있다면 앞선 자는 뒤처진 자를 다스리고 制 뒤처진 자는 앞선 자로부터 다스려지는 게 이치다(p485)... 무릇 문명이라는 것 物이야 지극히 광대해서 대개 인류의 정신이 도달하는 것은 모조리 그 이 범위 區域 안에 들지 않는 게 없다. 외국에 대하여 자국의 독립을 도모하는 것 따위는 본래 문명론 중에서도 아주 사소한 일개 항목에 지나지 않지만, 문명의 진보에는 여러 단계가 있으므로, 진보의 단계에 따라 그에 맞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486


 개인적으로 <문명론 개략>을 읽으며 개화기 일본 지식인들의 사상과 함께 일본 근대화의 한계 등을 함께 엿보게 된다. 생존을 위한 이른바 문명화. 서구화를 이루기 위해 전통을 야만으로 규정하고, 서구 문명을 닮아가기 위한 노력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을 빠르게 제국주의 열강으로 올라서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근대화는 과연 제국주의를 넘어선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는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몰락으로 끝난 일본의 문명화 노력은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영원히 거북이를 이기지 못하는 아킬레스, 제논의 역설을 떠올리게 한다...


 서양 인민의 권력은 쇠와 같아서 이를 팽창시키기도 아주 어렵고 이를 수축시키는 것도 또한 결코 쉽지 않다. 이에 반해 일본 무인의 권력은 고무와 같아서 그들이 서로 접하는 곳의 물질에 따라서 수축과 팽창의 형태가 다른데, 아래와 접하면 크게 팽창하고, 위와 접하면 갑자기 수축하는 성질이 있다. 이처럼 치우쳐서 수축하고 치우쳐서 팽창하는 권력을 한 덩어리 一體로 모아서 이를 무가의 위광 威光이라고 이름하며, 그 한 덩어리의 위광으로부터 억압을 받는 자가 무고한 소민 小民이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449

감히 한 마디 말을 내걸어 천하 사람들에게 묻겠다. 지금 이때를 맞아 앞으로 나아갈 進것인가 아니면 뒤로 물러설 退것인가, 나아가 문명을 좇을 것인가 아니면 물러서서 야만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오로지 진퇴 進退라는 두 글자가 있을 뿐이다. - P107

덕의의 도에 관해서는 마치 옛사람 古人에게 전매 권한을 빼앗겨 후세 사람은 그저 중매인 같은 일이나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예수와 공자 이후에 성인이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덕의에 관한 일은 후세에 이르러 진보할 수가 없다. 개벽한 처음 때의 덕 德이나 오늘날의 덕 德이나 그 성질 性質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지혜는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지혜의 항목이 날로 증가하여 그 발명의 수가 많음은 예로부터 일일이 거론할 겨를이 없으며 앞으로의 진보 또한 가늠할 수 없다. - P290

사람의 정신이 발달함에는 한계가 있을 수 없으며, 조물주 造化의 장치 仕掛에는 법칙 定則이 없을 리 없다. 무한한 정신으로 유한한 이치를 궁리하여 끝내는 유형, 무형의 구별 없이 천지 사이의 사물을 모조리 다 사람의 정신 안에 포괄 包羅하여 빠뜨리는 게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 P333

최종 목적을 자국의 독립으로 정하고 마침 지금의 인간만사를 모두 녹여 하나로 되게 하고 이 모든 것을 다 저 목적에 다다르기 위한 수단으로 삼을 때에는 그 수단의 다양함에 제한이 있을 수 없다. 제도든, 학문이든, 상업이든, 공업이든, 하나같이 이 수단이 아닌 것은 없다. - 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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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8. 葉公語孔子曰 : "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孔子曰 "吾黨之直者 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섭공이 공자에게 일러 말하였다. "우리 무리 중에 대단히 곧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양을 훔쳤는데, 아들인 그가 그것을 입증하여 유죄가 되었습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우리 무리 중의 곧은 자는 당신네 곧은 자와는 다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하여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숨겨줍니다. 곧음이란 그 속에 있는 것이외다." _ 도올 김용옥, <논어 한글역주 3> , p358


 용산 대통령실이 미국 CIA에 의해 기밀 문건이 도청되었다는 뉴욕타임스(NYT) 기사에 대해 정작 대통령실은 가짜뉴스이며, 국익을 해지는 거짓 선동과 정치 공세라고 맞서고 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많이 답답했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논어 論語>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미국 언론인 NYT가 같은 무리(미국)의 정부의 잘못을 비판한 것은 곧음(直)이 아니기에, 국익(國益)이 아닌 정치적 올바름을 선택했다는. 이제야 정부의 행태가 조금은 일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아무리 공자가 위대한 스승이라도 훔쳐간 양이 공자의 양이라도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안보면에서 미국이 전략적 동맹관계에 있다지만, 이와는 별개로 경제면에 있어서는 IRA법안 등을 구실로 국내 반도체, 자동차산업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훔쳐간 것이 우리 기밀이어도 한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손자병법 孫子兵法>의 <용간 用間>편에서 첩보 활동은 적에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술 중 하나다.


 현명한 군주와 어진 장수가 군대를 움직여 적을 이기고 적보다 공을 이룰 수 있는 까닭은 [그들보다] 먼저 [적진의 상황]을 알았기 때문이다. 먼저 안다는 것은 귀신에게 기댈 수도 없으며 일의 표면에 의지할 수도 없으며 추측에 시험해볼 수도 없으며, 반드시 사람에게서 취해서 적의 상황을 알아내는 것이다. _ 손자, <손자병법> , p313


 [관련기사] :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77 대통령실, "미국 도청 거짓... 민주당 국민 선동 급급"


 이미 상대는 우리에게 적(敵)을 대하듯 경제면에서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데 그들을 감싸면서 '불순한 세력' 탓을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미국에 대한 굴종은 사대(事大)고, 송양지인(宋襄之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마저도 인식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그들은 일광(日光)횟집 앞에서 도열하는 것을 의(義)로 아는 무리들에 다름 아니다...


 양공은 말했다. "군자는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그를 곤궁에 빠뜨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전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북을 두드리지 않는 법이다." 자어[司馬子魚]가 말했다. "전쟁이란 승리하는 것을 공으로 삼아야 하거늘, 어찌 일상적인 말을 하십니까? 당신 말처럼 하면 [틀림없이] 노예가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게 될 뿐이니, 또한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십니까?" _ 손자, <손자병법>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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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은 그런 ‘이익‘ 추구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모든 정치 이념들이 최소한의 토대적인 공공성에 대해서 동의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즉, 나의 직접적인 이익과 관계없이, 또는 나의 직접적인 이익이 단기적으로 침해받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회 공동체의 정상적인 구성원이라면 동의해야만 하는 합의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_ 폴 슈메이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p29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의 저자 폴 슈메이커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관점 차이를 철학적 가정과 정치적 원리의 측면에서 분석한다. 그는 결론에서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  pluralist public philosophy'이라는 진보와 보수의 합의점을 도출해 내지만, '보수와 진보의 합의점'이라는 결론이 한국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유권자 또는 정치인의 성향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이들은 거칠게나마  '우파=보수=민족주의자', vs '좌파=진보=계급주의자'라는 등식과 구도에 위치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 위에서 앞서 말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기본 전제와 우리의 현실은 차이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자는 현실을 중시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며 미래지향적 성향을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이 이념을 강조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이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모순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 중 상당수는 자신과 다른 세력을 '이념'으로 적대하며 '빨갱이'로 호칭하고,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하는 '계급주의'적인 투표를 한다는 점에서 좌파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은 계층보다 오히려 민족차원의 접근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서구적인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들이 체감하는 정치 피로감은 이론과 실제의 차이에도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애국을 외치는 이들이 오히려 외세 의존적인 모순은 한국정치만의 특성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한국정치의 특질은 어디로부터 생겨난 것일까. 그 원인을 찾는다면 한국만의 체제 '분단체제'로 부터 그 기원을 찾아야 할 것이며, 분단의 원인이 된 '일제 식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현재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의 기원이 일제 식민 시대에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부분 식민 시대에 기원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지금의 혼란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결국 식민시대와 분단 체제의 극복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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