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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From Ideologies to Public Philosophies>에서 폴 슈메이커 (Paul Schumaker)는 다양한 정치사상을 12가지로 구분하여 존재론, 인간론, 사회론, 인식론 등의 철학적 가정과 정치 공동체, 시민권, 사회구조, 권력의 보유자, 정부의 권위, 정의, 변화 등 정치적 원리에 대해 살펴본다. 4가지 철학적 가정과 7가지의 정치적 원리를 더해 11가지 주제에 대해 12개 사상의 입장을 제시되기에 도합 132개의 항목으로 구분된다. 때문에, 페이지 수는 많지만 내용의 깊이는 깊지 않아 이 책은 방대한 양의 입문서(入門書)라 볼 수 있다. 단적으로 '정치사상의 애니어그램(Enneagram)'이라고 느껴지는 책이다.


 책의 서두에서 이 책은 19세기의 주요 정치 이념인 고전적 자유주의, 전통적 보수주의, 아나키즘, 마르크스 주의가 제시되는데, 이들은 20세기 이후 다른 사상들의 원류(原流)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고전적 자유주의와 전통적 보수주의는 우리에게 프랑스 혁명을 둘러싼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 ~ 1809)과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 ~ 1797)의 논쟁으로 특히 주목을 받는다. 이들의 논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페인의 <인권 Rights of Man>과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의 리뷰에서 살펴볼 예정이지만,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들의 논쟁과 관련하여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폴 슈메이커에 의하면 전통적 보수주의는 종교(宗敎 religion)에 기원을 둔다. 특히 기독교 신(神)의 절대성에 의존한 사상으로, 절대선이며 완전한 신의 질서가 사회에서 구현되는 것을 우선에 두는 사상이다. 때문에, 전통적 보수주의에서는 강력한 종교(교회)제도와 정치제도의 권위, 사회 안정 추구를 강조한다.


 전통적 보수주의자 Conservatism들은 이성과 과학만으로는 신, 영혼, 도덕의식, 정치 공동체의 여러 미묘한 측면과 같은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궁극적 실재(존재)나 인간 본성 그리고 사회 등의 문제에 대해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제시한 이른바 과학적 구성 방식보다 전통적 이해 방식이 나라를 다스리는 좀 더 훌륭한 방법이라고 보았다... 보수주의자들은 사회를 공익을 위한 방향으로 인도하려면 강력한 정치/종교적 권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가장 일반론적으로 말해, 전통과 사회 관습을 존중하는 풍토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p104)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中


 이에 반해, 고전적 자유주의는 이성(理性 reason)에 기반한 정치사상으로 권위보다는 민주 자본주의를 강조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그 결과 전통적인 교회 등의 전통적 권위보다 추상적인 개념인 자유, 평등, 형제애 등의 이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전적 자유주의 classical Liberalism는 '정치의 과학'을 개척하려 했던 계몽주의의 산물이었다. 당시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전통이나 종교적 신앙에 기댄 채 정치사상을 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p97)... 고전적 자유주의자는 신이 존재한다거나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신이 이 세상을 완전히 좌지우지한다고는 보지 않았다.(p97)... 자유주의 사상은 17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그 당시 유럽이 직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되었다. 특히 사업가와 상인, 정치적 권리와 자유의 옹호자, 계몽주의 지성인들이 진보적이고 과학적이며 산업화된 유럽 사회를 지향했다.(p97)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中


 페인과 버크의 논쟁은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1790년 버크의 비판 이후 1791년과 1792년 페인의 두 차례 반박으로 진행되었다. 보수주의자인 버크는 신의 뜻에 따라 영국의 입헌군주제는 잘 작동하는데 반해, 프랑스 혁명과 이들이 추구하는 (국민회의의) 민주정이 잘못된 정체임을 비판한다. 이에 반해, 페인은 세습군주제야 말로 자연의 법칙에 들어맞지 않은 제도이며, 프랑스 혁명은 공화정을 추구하는 자연법칙에 맞는 사건임을 말하며 버크의 주장에 반박한다. 이들의 대립의 단면을 살펴보자.


 이들의 대립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버크는 헌법(constitution)이 종교의 기반 위에 만들어진 것이며, 종교는 신의 권위를 대변하는 것이니만큼 이 권위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왕/귀족/성직자에 의한 지배를 거부하는 프랑스 혁명은 말 그대로 하늘의 뜻(天命)에 거역하는 사건이다. 역성혁명(易姓革命) 불가. 버크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해본다.


  우리 헌법 전체가 종교와 신앙심의 후원 아래 만들어졌으며, 그 재가를 얻어 확실해졌다. 그 전체가 우리 국민성의 단순성에서 연유했으며, 우리의 분별력에서 보이는 일종의 태생적인 담백함과 솔직함에서 연유했다. 오랫동안 그러한 성격이 우리 사이에서 연속해서 권위를 얻은 인물들의 특성이 되어왔다. 우리는 종교가 문명 사회 civil society의 기반이며 모든 선과 모든 안락의 근원임을 알고 있다.(p162)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中


 이에 반해, 페인의 입장은 다르다. 과거 사건의 결과 만들어진 제도와 정체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다른 시대에 맞는 제도를 선책할 권리가 각자에게 있다는 것을 페인은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 위에서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을 극복한 프랑스 혁명은 이성의 승리로 추앙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페인은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후손을 영원히 구속하고 제약할 수 있거나, 세계를 누가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를 영원히 주관할 수 있는 권리와 권력을 갖는 의회나 인간이나 세대는 지금껏 어느 나라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런 존재는 있을 수 없다.(p94)... 세상의 상황은 계속해서 변하고, 인간의 생각도 변한다. 그리고 국가는 산 자를 위한 것이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므로 오직 산 자 만이 그 안에서 권리를 가진다.(p99) <인권> 中


 이들의 의견은 이외에도 곳곳에서 부딪히지만, 최근(2019년) 우리의 경우, 사법부와 관련된 내용이 정치현안으로 뜨겁기에 이에 해당하는 내용을 추려본다. 먼저 보수주의자 버크의 사법부에 대한 의견을 살펴보자. 버크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행정권인 왕권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함을 말한다. 이를 위해 비록 사법부의 세습제가 일정 부분 부작용이 있을지라도 전통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고등법원의 구조는 하나의 근본적인 탁월성을 지녔는데, 독립성이 그것이다. 그 기관에서 가장 불신되는 사안인 관직매매도 독립성에 기여했는데, 그 직책은 종신제였다. 실상 세습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국왕이 임명하지만, 거의 국왕 권한 밖에 있다고 여겨졌다. 고등법원들은 자의적 변혁에 저항하는 구조를 지녀 항구적 정치조직을 구성했다... 국가에서 최고권력은 사법권을 가능한 한 그 권력에 의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형태든 그와 균형을 이루도록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최고 권력은 사법부에 대해, 자신의 권력에 의해서 침해되지 않을 보증을 제공해야 한다. 사법부를 마치 국가 외부에 있는 것처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p323)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中


 그렇지만, 페인의 입장은 명확하다. 세습제는 자연 법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습제가 전통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수용할 것인가? 세습제는 인민을 개, 돼지와 같이 재산으로 간주하는 개념이기에 철폐해야 할 것으로 페인은 해석한다.


 모든 세습적 국가는 그 본질이 전제에 있다. 세습 왕관, 세습 왕위, 또는 그 밖의 어떤 허황된 이름으로 불려지든, 인류를 세습할 수 있는 재산으로 간주한다는 것 외의 다른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국가를 세습한다는 것은 마치 가축을 세습하는 것처럼 인민을 세습하는 것이다.(p250)... 만일 미덕과 지혜가 변함없이 세습적 계승의 특성이 되는 것이 자연법칙이 되고 하늘의 명령으로 등록되어 사람들이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세습제에 대한 반대도 없어지리라. 그러나 자연은 세습제를 용납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우롱하는 듯 작용한다.(p251) <상식, 인권> 中


 이외에도 많으 논의가 두 권의 책에서 이루어지지만, 페이퍼에 옮기기에는 한계가 있어 여기에서 그친다. 조금 들어간 내용은 각각의 리뷰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리나라 사법기관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오늘날 사법개혁이 요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 역시 세습제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 대표적 사법기관인 사법부와 검찰은 선출되지 않는 권력임에도 견제없이 자신들의 권한을 행사해오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보이지 않는 권력을 유지하고, 교체없이 그 권력을 자신의 후계자들에게 물려준다는 점에서 세습권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습권력의 문제점은 오늘날 사법부의 문제로 고스란히 나타나 사법개혁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현실문제를 우리는 각자의 정치사상의 기반 위에서 바라본다. 사회가 과거보다 복잡해지면서 보다 다양한 사상 기반이 등장했고, 이 사안을 보는 우리의 입장도 단순하지는 않지만, 사법개혁과 관련하여 큰 틀에서는 페인과 버크의 입장 중 어느 한 편에 속하리라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페인과 버크의 논쟁을 지금 다시 살펴보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으며, 이들의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의 재생산 문제에서, 즉 사회통합과 체계통합 사이의 협정 문제에서, 다른 모든 사회들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사회에 해당하는 이 근본문제를 논리적으로 서로 배제하는 두 가지 해결방식을 동시에 취하는 식으로, 즉 생산의 분화 내지 사유화를 통하여 그리고 동시에 생산의 사회화 내지 정치화를 통하여 처리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두 전략은 서로를 방해하고 마비시킨다... 노동, 생산, 분배 영역의 정치적 중립화는 강화되면서 동시에 철회된다... 두 명령은 특히 정치적 공론장에서 서로 충돌한다.(p533) <의사소통행위이론 2> 中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 )는 <의사소통행위이론 Theories des kommunikativen Handelns>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해소될 수 없는 긴장관계가 공론장(public sphere)에서 충돌함을 말하고 있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은 공론장에서 사회적 합의(social consensus)를 도출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만약, 자신이 보수주의자라면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할 것이다. 만약, 자신이 자유주의자라면 자신이 바꾸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 토론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슈마커가 말한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을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도달해야하는 사법 개혁 뿐 아니라 정치를 바라보는 공동체 의식이라 생각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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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4 14: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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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4 16: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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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p110) <데미안> 中


 지난 주말 많은 촛불시민들이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검찰 개혁' '조국 수호'를 외치며 모여들었다. 과연 무엇이 100만명 넘는 시민들을 이곳으로 한데 모이게 했을까.  개인의 정도 차는 있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형평성있는 법집행'에 대한 요구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조국 발 검찰 사태'에서 이러한 요구가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존 롤스(John Rawls, 1921 ~ 2002)의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의 내용으로 살펴보자.


내가 고찰하고자 하는 것은 법의 지배 rule of law라는 원칙에 의해 보호되는 인간의 권리들 rights of the person이다. 형식적 정의관, 즉 공공 규칙의 일관되고 공평한 운용이 법적 체계에 적용될 경우 법의 지배가 된다... 일관되고 공평한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공정한 법 운용을 우리는 "규칙성으로서의 정의 justice as regularity"라 부를 수 있다. (p318) <정의론> 中

 

 법적 체계는 합리적 인간들에게 제시되어 그들의 행위를 규제하고 사회적 협동의 구조를 제공해주기 위한 공공 규치의 강제 질서이다. 이러한 규칙이 정의로울 경우 그것은 합당한 기대의 기반을 확립해준다... 만일 이러한 요구들의 기초가 불안정하면 인간의 자유의 영역도 불안정하게 된다... 법적 체계에 있어 특징적인 것은 다른 조직과 대조해볼 때 그것이 갖는 적용 범위와 규제력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규정하고 있는 헌법상의 기관들은 일반적으로 보다 강력한 형태의 강제를 할 수 있는 합법적 전유권을 갖는다.(p319) <정의론> 中


 우리 모두는 정의가 구현되는 법(法)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를 원하며, 특히 최고 권력 기관인 국가 기관에서 정의로운 법 구현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요구다. 그렇지만, 최근 검찰이 보여준 모습은 이러한 요구에 부합했는가. 과연 공정한 기준으로 압수수색과 기소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기소를 위한 수사, 기소권의 독점 폐헤가 무엇인지 빠짐없이 보여준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법질서와 우리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법과 명령은 그것이 지켜질 수 있고 실행될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경우에만 법과 명령으로 받아들여진다.(p320)... 법의 지배는 일정 형식의 합당한 과정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서 재판관은 독립적이고 공평해야 하며 어떤 사람도 그 자신의 문제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심문은 공정하고 공개적이어야 하고, 공중의 불평에 편승해서도 안 된다. 자연적 정의의 신조는 법질서가 공평하고 규칙적으로 유지될 것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p323) <정의론> 中 


  이러한 법 질서가 무너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시민의 저항은 루돌프 폰 예림(Rudolf von Jhering, 1818 ~ 1892)의 <권리를 위한 투쟁 Der Kampf ums Recht >이 잘 보여준다. 예링에 따르면 법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권리를 위한 투쟁의 결과이며, 투쟁은 권리 침해에 대한 의무다. 이러한 예링의 이론을 우리의 경우에 적용시켜 본다면, 검찰의 부당한 권력 남용에 대해 우리는 권리 침해를 당해왔으며,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로 해석된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법이 부당하게 침해되고 있는 한 법은 이러한 투쟁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 즉 민족과 국가 권력, 계층과 개인의 투쟁이다. 이 세상의 모든 권리는 투쟁에 의해 쟁취되며, 중요한 모든 법규 Rechtssatz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법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쟁취된 것이다.... 법은 끊임없는 노동이다. 더욱이 이것은 국가 권력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요구되는 노동이다.(p37)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인격 그 자체에 도전하는 굴욕적 불법에 대한 저항, 즉 권리에 대한 경시와 인격적 모욕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형태로서의 권리 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의무다. 이것은 권리자 자신에 대한 의무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권리자 자신에 대한 의무다.(p57)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예링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이성보다는 감성을 강조한다. 진화의 단계에서 후기에 발달한 대뇌피질이 아닌 생명의 초창기부터 생존과 직결된 간뇌로 문제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촛불을 든 시민들은 이러한 마음으로 '검찰 개혁'을 외치며 모여들었다. 검찰에 의한 법질서 유린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뜨거운 투쟁. 이상이 촛불시민들을 나서게 된 원인이며 경과다.


 인간이 자기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고통은 그 권리가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즉 그것이 일차적으로는 해당 개인에게, 그 다음에는 인간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아주 강압적이고도 본증적인 자기 고백을 내포하고 있다.(p77)... 오성(悟性)이 아니라 오직 감정만이 이 문제에 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권리의 심리적 원천을 법감정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다. 법의 힘은 사랑의 힘과 마찬가지로 감정 속에 깃들어 있다.(p78) <권리를 위한 투쟁> 中


 그렇지만, 촛불 시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결같을 수는 없다. 반대편에서는 이들을 '집단 지성'으로 생각하지 않는 집단도 존재한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들은 무지한 대중이며 변덕스러운 존재에 불과하다.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1841 ~ 1931)의 <군중심리 Psychologie des Foules>의 군중이 이들의 관점을 잘 드러낸다고 여겨지기에 옮겨본다.


  군중이 이렇게 변덕스럽기 때문에 그들을 다스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는데, 그들이 공권력 일부를 장악했을 때 특히 그렇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일종의 눈에 안 보이는 조절장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여간해서는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군중은 무엇인가를 열렬히 원한다. 그렇지만 그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원하지는 않는다. 끈질긴 의지를 발휘하지도 못하고, 지속해서 사고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p47) <군중심리> 中


 변덕스러운 군중과 이들이 지배하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대표인물이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 이후 몰락한 아테네의 재건을 위해서는 현명한 소수의 철인(哲人)들에 의한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의 이론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나라의 재건을 위해 국가재건최고회의(國家再建最高會議)가 필요하다는 5.16 군사 정변의 주장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런 면에서 박정희 향수를 가진 이들에게서 '닫힌사회'를 꿈꿨던 플라톤식 전체주의를 느끼게 된다. 열린사회와 닫힌사회. 이것이 2016년 박근혜 탄핵 이후 우리 사회의 대립을 잘 설명해주는 용어들이 아닐까.


 이러한 플라톤식 전체주의에 대해 칼 포퍼(Karl Riamund Popper, 1902 ~1994)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volume I: The Spell of Plato>을 통해 비판한다.

 

 플라톤의 생각으로는, 원로과두정치 지배자의 강령은 다른 신념, 즉 열린사회의 신념과는 대치되는 부족주의의 옛 가치를 재확인하는 확신에 근거하지 않고는 재생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정의가 불평등이라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Men must be taught that justice is inequality.(p323)... 플라톤의 사회학적 진단이 우수했을지라도, 그 자신의 발전은 그가 대항해서 싸우고자 했던 악보다도 그가 추천했던 치료법이 더 나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정치적 변화를 억제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다. 그것은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 우리는 결코 닫힌사회의 순진함과 아름다움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p330)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中


 다소 글이 난잡해졌지만, 내용을 정리해보자.


 우리 모두는 공평하게 법이 시행되기를 원하지만,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하여 우리 사법 체계(특히 검찰)가 문제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불공정에 대해 우리는 촛불을 들고 집회를 통해 투쟁에 나선 것이다. 더이상 자의적인 법해석과 적용에 피해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이런 촛불 시민들을 선동(프로파간다 propaganda)당한 군중집단으로 부르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닫힌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나가려는 아프락사스를 보고 욕하는 '과거'의 쇠사슬에 묶인 동굴 안의 죄수의 모습에 다름아니다. 아직도 깨야 할 껍질은 두텁고, 높은 하늘을 보기에는 어두운 밤이지만, 우리의 아이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 동이 틀 때까지. 이것이 우리가 계속 앞으로 가야할 이유라 생각하며, 페이퍼를 정리하자.

 

 보이지 않는 정부는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대중의 의식과 습관을 지배하는 사회 기구를 조종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전의 기능이 소수의 선전 전문가 손에 점점 집중되고 있는 추세다. 이 선전 전문가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갈수록 중요한 위치와 기능을 차지하고 있다.(p102) <프로파간다> 中


PS. 롤스는 <정의론>에서 시민의 불복종에 대해 한계를 긋는다. 시민의 불복종은 사회 체제의 안정을 해치는 선을 넘어선 안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은 그 사회의 정체(政體)가 차선(次善)의 상태에 있을 때에나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나타났을 때, 이에 대한 시민의 불복종은 오히려 더 거세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번 페이퍼에서는 법 정의와 관련한 문제 제기는 롤스의 <정의론>을 따르되, 방법론은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따랐다...


 [사진] 2019년 9월 28일 서초동 검찰청 촛불 집회( 출처 : 고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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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2 0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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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2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0-02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국이라는 드라마에서 관객이 기대했던 것은 장르로 치자면 교양 드라마‘ 였을 겁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시작하고 보니 통속드라마였던 거죠. 부모가 자녀의 스펙 쌓기에 두팔 걷었으니 말이죠. 교양 드라마‘를 기대했던 관객은 통속드라마였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드러냈는데, 이 드라마는 검찰이 개입하면서부터 한국조폭드라마로 변모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10-02 11:58   좋아요 1 | URL
^^:) 곰곰발님께서 사안을 명쾌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조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터라 별로 기대했던 바도 없었습니다만, ‘합법‘이라는 이름 아래 공공연하게 이루어져왔던 일에 검찰과 언론이 보인 민낯에 조국지지로 가게 되었습니다... 곰곰발님 말씀처럼 조폭드라마로 변모하는 순간 피해자에게 감정이입된 자신을 확인하게 됩니다.
 

 "중세가 남긴 유산 대부분을 우리는 아직도 사용한다... 우리가 우리 시대의 것인 것처럼 아직도 사용하는 중세의 발명품은 끝이 없다." - 움베르트 에코 -


 <중세 Il Medioevo > 시리즈의 기획자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 1932 ~ 2016)는 우리가 중세을 알아야하는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밝히고 있다. 먼 유럽의 오래전 중세가 과연 현재의 우리 삶과 얼마나 연관되어있을까. 연관되어 있다. 아주 밀접하게.


 세 후반기의 문명은 증거에 기초하는 공적 재판 형태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p238)... 로마 - 교회 재판과 같은 유형의 근본적 함의는 증거 심사의 비밀, 피고의 사전적 구금, 증거요인들의 사전 등급, 고발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방어의 입장, 검찰 조직과 사법 조직의 혼란이었다. 이단 심문관은 재판을 진행하고 심문을 하고 판결을 내렸다. 자유를 상실한 피고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고발(밀고 indicia),  증거 documenta, 그리고 증언 문서의 작성과 수집이 이루어지는 예심 단계가 모두 종료된 다음에야 비로소 고발 사유와 자신에 관련된 증거를 통보받았다.(p241) <중세3 : 성, 상인, 시인의 시대> 中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부터 시작된 언론의 무차별적 보도, 청문회 개최 즈음부터 시작된 검찰의 전방위 압수수색 및 증거 없는 기소 등의 모습은 우리가 중세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시감(旣視感, Déjà Vu) 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지는 이들의 추태(醜態)는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각인시킬 뿐이다.


 재판권이 입법권과 집행권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도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재판권이 입법권에 결합되어 있다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력은 자의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관이 곧 입법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재판권이 집행권에 결합되어 있다면 재판관은 압제자의 힘을 갖게 될 것이다.(p133) < 법의 정신> 


 몽테스키외(Charles-Louis de Secondat, Baron de La Brède et de Montesquieu, 1689 ~ 1755)가 <법의 정신 De l'esprit des lois>에서 말한 말을 살짝 바꾼다면,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이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도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언론의 보도와 검찰의 수사와 기소는 그들의 본모습을 유감없이 보이면서 왜 개혁이 필요한 것인지를 철저하게 알려주었을 뿐이다. 또한, 이 대목에서 중세 유럽에서 행해진 종교재판의 부당함이 가져온 근대 사법 제도의 개혁은 역사의 교훈임이 분명하다.


 심문 수단으로서의 고문을 거부하고 고백의 증거적 가치를 비판하는 것은 이단심문에 대한 논쟁의 주된 주제였다. 논쟁은 로마-교회의 전형에 대치되는 처벌 절차에 대한 계몽주의적 관점을 통해 최고조에 이르게 될 것이었다. 즉 결백을 추정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양측의 형평성과 대립 구도, 재판의 공개성과 구두 진행, 재판관의 제3자적 입장과 공평성에 근거하는 보장성 유형이었다. 이 유형은 잉글랜드의 형사 재판에서도 중요한 경험주의적 관점을 가지게 될 것이었으며, 이후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 사법 개혁을 가져왔다.(p241) <중세3 : 성, 상인, 시인의 시대> 中


 법무부 장관 지명으로부터 4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된 혐의, 의혹만 날리는 검찰과 이를 받아쓰는 언론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지치지만, 이들의 이러한 치졸한 모습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이들의 작태에 분노를 거둘 수 없다. 만약에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얻는다면, 얼마나 기고만장해질 것인가. 사법개혁과 언론개혁, 이제 더는 미룰 수 없고, 참을 수 없는 시대의 과제임이 분명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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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5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5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6 0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6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바이블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지음, 박정훈 옮김, 정태인 감수 /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협동조합(KPIA)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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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하층 계급과 노동계급, 한마디로 민중의 자유를 향한 열망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감정은 자유라고 불리는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런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면 아무리 좋은 상황에서도 이들의 열망은 안타깝게도 실현될 수 없다. 지식에 불가결의 정보와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민중, 자기 권리를 인식하고 있는 민중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자유를 행사할 줄 모른 채 언제나 미성년자처럼 살아간다면 자유를 보유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따라서 민중은 늘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문맹과 무지의 길을 따라가면 오직 노예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우리가 아는 형태가 아닌 새로운 형태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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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3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3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9-23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민중은 늘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가장 아깝지 않은 투자가 교육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9-23 13:43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동시에 아무리 해도 부족한, 끝없는 투자가 교육투자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농협 계통조직, 집권여당, 정부가 농정을 둘러싸고 맺은 삼위일체적 결탁구조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장기간에 걸쳐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저번에 농가조합원을 독점적으로 조직한 계통농협은 국정선거 등에서 자민당을 지지함으로써 안정적인 정권재생산에 기여했다. 집권당은 그 대가로 쌀값을 위시한 주요 농산물의 가격인상이나 각종 농업 보조금 배분 등을 통해 계통농협을 경유하여 농업/농촌부문으로 물질적 이익을 유도했다. 농정 당국도 여기에 공조하여 농업 관련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각종 인허가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영향력을 확대했다.(p12)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에서 저자 이향철은 '농헙 계통 조직 - 정부(농림수산성) - 자민당'의 철의 트라이앵글 구조를 통해 서로에게 이익을 주었는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일본 농촌사회와 정치권의 결탁은 인클로우저(Enclosure)를 통한 농업의 피폐화를 통한 도시화/산업화를 이룬 유럽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기져왔고, 일본 농촌은 급속한 붕괴를 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 농촌사회가 보여준 양상이 유럽과 달랐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마을에서 인클로우저는 가능한 모든 것을 이용해서 겨우 먹고 살던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를 파괴하였다... 인클로우저는 재산소유자들과 법률가들의 의회가 제정한 재산에 관한 공정한 규칙과 법에 따라 행해진 계급적 강탈행위에 다름아닌 것이었다.(p301)... 실로, 인클로우저는 농업적 생산수단에 대한 인간의 관습적인 관례들을 파괴한 수백년에 걸친 긴 과정의 정점이었다. 그것은 그 앞 시대를 보거나 혹은 뒤의 시대와 비교하더라도 잉글랜드 농민사회에 있는 전통적인 요소들의 파괴를 뜻하기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결과를 초래한 것이었다.(p303)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上> 中

 

17세기 말에서 시작되어 18세기까지 진행된 토지 통합은 중세 말의 통합과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도 농촌 인구의 감소로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원인은 공통적이었다해도 사회적 양상은 매우 달랐다. 중세의 에피소드는 토지로의 황급한 후퇴를 동반했다. 근대의 에피소드는 토지로의 황급한 후퇴를 동반했다. 근대의 에피소드는 도시 귀족들의 행복한 상승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이들의 정복은 확고한 것이었다.(p397) <랑그도크의 농민들 Les Paysans de Languedoc 2> 中


  그것은 일본 농촌사회가 정치세력과 협상을 할만큼 협상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1905년 러일전쟁 전후 지주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농촌조직은 세계 공황 직후에는 보다 조직화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후에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농회를 매개로 지주의 지역적 연합체인 '지주회'를 만들고, 그 지도하에 전통사회의 주민통제조적인 오인조(五人組)의 계보를 잇는 농가소조합(農家小組合)을 마을마다 조직하여 연대책임 아래 품종개량, 시비(施肥)/재배관리, 포장 개선 등을 상호 감시하에 추진하게 했다..(p36)... 세계공황이 일본농촌을 휩쓸고 지나간 뒤 농촌사회를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산업조합-농가소조합은 당시 '파시즘'으로 불렸던 농촌사회경제의 통제/재편을 위한 말단기관으로 자리매김되었다.(p87)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1947년 농업협동조합법의 제정으로 새로이 출범한 일본농업협동조합은 조직과 사업에서 세계 협동조합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00%에 가까운 농가조직률, 조합원의 생산활동 및 경제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에 관련된 사업의 종합적인 경영, 시정촌(市町村) - 현 - 전국 단계로 쌓아올린 정연한 피라미드형 계통조직, 그리고 체제 내 압력단체로서의 정치력 등과 같은 특징이 그러하다.(p88)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일찍이 카를 카우츠키(Karl Kautsky, 1854 ~ 1938)는 <농촌문제 Die Agrarfrage>에서 농촌에서 협동조합이 성장하기 어려움을 지적한 바 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협동조합(농협 農協)은 아래에서부터가 아닌 위로부터 만들어졌고, 결과로 정치협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러한 협상력의 차이가 결과적으로 일본 농촌 사회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주는 힘의 원천이 된다.


 농민보다 협동조합적 조직의 전제조건이 약하게 발달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농민의 노동 및 생활 조건이 그를 고립시키고 좁은 지평에 한정하며, 협동조합적 자치가 요구하는 여가를 앗아간다.  무지와 아울러 정치적 부자유가 농민 복지의 사악한 침해 요인으로 나타난다. 농민이 협동조합을 결속하기 위해 움직이기에는, 가부장 체제의 전통이 아직 불식되지 않고 '권좌와 제단'의 버팀목이 아직 건재한 곳만큼 어려운 곳은 없다. <농촌문제> 中


 그리고, 이렇게 조직화된 조직은 미군정기와 연합국 지배가 끝날 때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같은 시기 본격적으로 진행된 일본의 공업화는 일본 농업의 생산성 증대에 기여했다. 농업에 필요한 비료와 농약을 공급받았던 농촌은 급속한 붕괴를 피하는 대신 도시지역에 주식인 쌀을 반대급부로 제공하는데, 이렇게 벼(쌀)농사로의 특화된 농촌의 모습 역시 유럽의 농촌 발전과는 사뭇 달랐다.


 1960년대 일본농업은 중화학공업화에 힘입어 화학비료와 농약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농업기계를 도입하여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등 명실 공히 '근대화'의 단계에 들어섰다.... 이 시기에 고도성장에 의한 생활수준 개선으로 쌀 소비량이 증가했지만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고 다른 농산물 생산에 비해 쌀 생산이 유리했던 탓도 있어 전국적으로 벼농사로의 특화와 집약화가 이루어졌다.(p242)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운송이 저렴해지고 무역정책적 장애가 폐지되면서 이미 16세기에서도 관찰될 수 있었던 유럽 내부의 지역적 분화가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농업적 분업으로 확장되었다... 유럽 대륙의 북서쪽 귀퉁이는 이제 '세계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이 '도시권역'의 주위에 집약적 농업지(가공 및 원예농업지)와 인전한 동부 유럽의 농업 권역이, 끝으로 더욱 조방적으로 경영되는 해외 농업지대의 띠가 둘러쳐지게 되었다. 마지막 두 지대 사이에 유럽의 주변적 농업지역이 놓여있었다... 집약적 농업지대는 공업중심지에 축산물과 원예작물을 공급했고, 조방적 농업지대는 공업지역에 대해서 곡물, 농업에서 산출되는 공업원료, 그리고 스텝농업의 생산물을 공급하게 되었다.(p564) <농업위기와 농업경기 Eine Geschichte der Land und Emahrungswirtschaft Mitteleuropas seit dem hohen Mittelalter> 中


 발달된 도시를 중심으로 주변 농촌 지역의 업종분화가 이루어진 유럽과는 달리 일본 농촌은 벼농사로의 집중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작물의 집중화는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도시의 수요를 충족함과 동시에 정치권의 제도적 뒷받침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당시 집권세력인 일본 자민당(自民黨)은 이러한 필요와 자신의 요구를 잘 알고 있었다. 


 1958년 농민조합은 전국조직인 전일본농민조합연합회(全日農)을 결성하고 농협 계통조직이 주도하는 농정운동으로부터 이탈했다. 이를 전후해 자민당은 미가심의회 자문안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고 추곡수매가 결정에서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다. 나아가 농협 계통조직을 통해 각종 농업보조금을 배분함으로써 농업/농촌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입지를 굳혔다.(p270)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농업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전통적인 보수 지지기반을 급격히 붕괴시킬 것이라는 보수층의 일반적인 우려와는 달리, 농가 수가 그다지 감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들어 농협 계통조직은 "농가조합원의 강력한 집표력"을 바탕으로 집권보수당에 추곡수매가로 대표되는 농업보호/농협육성정책을 요구했다. 자민당도 여기에 호응하여 농산물 가격 지지를 통해 농가소득을 보장하고 각종 공공정책을 통해 농촌지역 선거구에 물질적 이익을 유도했다. 농협 계통조직과 집권자민당 사이에 이른바 이익교환관계가 형성된 것이다.(p283)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1960년대와 70년대의 농촌과 자민당의 밀월관계는 추곡수매권을 통한 농촌이익 보장과 농촌 유권자의 지지를 맞교환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었다. 일본이 내각제국가임과 자민당이 55년 독재정당임을 고려한다면, 저자가 말한 철의 트라이앵글의 주체는 농촌과 자민당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이들의 이러한 밀월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1980년대에 일본농정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것은 단순히 통상마찰과 농산물 무역자유화 요구와 같은 외압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고도성장 파탄에 의한 일본 자본주의의 성격 변화, 도농/농공 간 인구대이동에 따른 농촌의 정치적 위상 저하, 농업이익의 분열 등 농업보호의 존립기반이 붕괴되었다는 사회구조적 문제도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자민당은 각종 이익유도정책의 대상을 기존의 농업/농촌 부문에서 공업/도시 부문으로 돌려 도시지역의 전문직/관리직/판매직 등 이른바 '신중간 대중계층'을 적극적으로 파고들면서 포괄정당(catch-all pay)으로 면모를 일신해갔다.(p308)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 농협 계통조직과 집권보수당 모두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온 유력한 수단을 동시에 상실했다. 그에 따라 자민당은 추곡수매가 인상이나 각종 공공정책을 통해 농업/농촌 부문에 물질적 이익을 유도하기 어렵게 되었다. 농협 계통기관 역시 농가구성원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하여 집권보수당을 지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익유도 내지 이익교환정치의 지속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하나로 결집시켜주던 추곡수매가 인상운동이 쌀 생산 과잉 및 재고 누적으로 기능부전에 빠졌기 때문이었다.(p324)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대외적으로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체제 아래에서 농업시장 개방에 관한 압력을 거세게 받고 있었으며, 집권 자민당은 과거와 같이 농촌을 지켜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여기에, 소선거구제로의 제도 개편은 농촌 유권자의 중요성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면서, 결국 농촌 유권자들과 자민당의 유대는 끝나게 된다. 이러한 정치연결의 파탄은 1993년 처음으로 자민당 정권이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렇지만, 몇 차례 다른 정당에게 정권을 넘겨줬지만, 대부분의 기간을 거대지배정당의 자리를 놓지 않은 자민당은 이미 전국정당으로 변신을 한 상태다. 최근 미국과 무역협상에서 옥수수를 대량으로 수입해서 일본 농촌의 부담을 늘리는 일본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자민당의 농촌 우위는 옛날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본인들의 정치의식을 고려한다면......



 농가조합원의 이해 대립에 따른 자민당 농림의원의 이해 대립 및 분열, 선거구제 개편에 따른 자민당의 농협 의존도 감소, 그리고 정치원의 정책 주도에 따른 관료기구(농림수산성)의 발언권 약화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기존의 농업정치구조를 와해시키는 데 일조했다... 농헙 계통 조직 - 농림수산성 - 자민당의 농정 트라이앵글 구조가 급격한 사회변동에도 불구하고 장기에 걸쳐 유지되고 작동되어 온 것은 중선거구제라는 일본 특유의 선거구제에 힘입은 바가 컸다.. 중선거구제 하에서는 어떤 정당이든 집권당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선 각 선거구에 평균 2명 이상의 후보자를 옹립하여 의원정수의 과반수 당선자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p389)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은 이처럼 농촌사회를 지배하기 위한 일본 농촌과 일본 보수정당인 자민당의 긴밀한 관계와 결별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 안에서 일본인의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고 카이젠(改善)을 추구하는 일본사회의 특징이 그것이다. 농촌 사회의 급격한 붕괴 대신 지속 유지를 택한 일본의 모습은 전면적인 개편 대신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했던 그들의 산업 역사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우리 경제발전사는 보다 극적인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BPR의 특징을 잘 담고 있다 여겨진다.  개인적으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본과의 경제전쟁 안에서 은 '카이젠 VS BPR'의 경영이론간 대리전 성격도 발견하게 된다.

 

 일본에서 가이젠은 문화의 일부로 정착된 아주 오래된 개념이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이 용어는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 또는 향상을 의미한다. 경영의 관점에서 가이젠이란 일종의 철학에 가깝다. 가이젠 사고방식에 따르면, 기업은 지속적인 개선 과정을 통해 효율성을 증대하고자 노력해야 한다.(p304) <경영의 책> 中


 가이젠과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 BPR)'이 있다. BPR은 자주 있지는 않지만 상당한 거액이 소요되는 투자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생산성 제고, 단가 감소, 제품 품질 개선 등의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 실시된다. BPR을 택한 기업의 목표는 수시로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 5년 정도마다 전사적 생산 프로세스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여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다.(p308) <경영의 책> 中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는데,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에서 짚고 있는 문제는 우리문제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우리 역시 일본의 농협과 같은 조직(이름마저 같은)을 가지고 있다. 일본 농협의 문제. 이것은 우리나라 농업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일본 농촌 문제는 남의 문제로 치부할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농업이 망하면 농협이 흥한다."는 냉소적 표현이 상징하듯이, 농촌협동조합은 1980년대까지 농업단체직원 연금제도 실현, 쌀값 인상 및 식량관리제도 유지, 비료수습 안정 및 식물방역법, 세금감면, 농업보조금 확충, 농산물시장개방저지 등 오로지 계통조직과 사업을 방어하는 과제에만 집중한 데서도 그대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농협 계통조직의 존재형태는 농가경제가 영세 규모의 소상품 생산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가운데 그대로 독과점기업이 지배하는 고도로 발달된 시장기구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의 반영이었다.(p253)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中


 다른 한편으로 우리 보수 정치의 역사는 일본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온듯한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며 이상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PS. 근현대시기에 일본은 우리보다 산업화면에서 분명 앞서왔고, 현재도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강국(强國)임은 분명하다. 비록, 일본이 앞으로도 강국의 자리를 계속 유지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서간 일본의 모습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가 따라붙는다. 우리에게 일본의 존재는 전위와 전초에 한정되어야 한다. 앞에 경계부대가 후속 주력부대에게 교훈을 주듯, 일본은 우리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이어야 하지, 우리의 형님국가가 될 수는 없다. 우리의 주력은 우리 자신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군(軍)의 유일한 목적은 자기 보존이며 결국 군의 안전일 것이다. 따라서 군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하며 특별한 어려움 없이 하나의 통일체로 통합하여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전위와 전초는 전술과 전략의 실이 섞여 짜여진 방책의 범주에 속한다. 한편으로 전위와 전초는 전투를 구체화하고 전술적 계획의 실현을 보장하며 주력부대로부터 다소 먼 거리에 배치되어 있다.(p240)... 이 추진부대의 임무는 적을 관측하고 적 접근을 지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추진부대의 전방에서 적이 전체 전투력을 조기에 전개하도록 강요해야 하고 동시에 공격 계획을 보다 분명하게 노출시키도록 강요해야 할 것이다.(p241) <전쟁론 Vom Kriege>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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