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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쉬나메(Kush Nama)는 페르시아의 서사시로 501년~504년, 1108년과 1111년 사이에 이란의 하킴 이란샨 아불 카이에 의해 쓰여진 신화 역사의 일부이다.' (출처 : 위키백과)


'쿠쉬나메는 7세기 중엽 통일신라 전후의 신라를 다룬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이다. 이슬람 이전 시기 영웅 서사시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오랫동안 구전으로 내려오던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서사시이다... 일반적으로 페르시아 서사시의 제목으로 선(善)과 정의(正義)의 화신인 영웅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쿠쉬나메의 쿠쉬는 폭압자이고 기이한 용모를 지닌 악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 점이 쿠쉬나메의 독특한 설정이다.(p19)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이 바실라(Basilla) 왕 태후르와 함께 중국과 싸움을 벌려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바실라의 공주 프라랑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의 <쿠쉬나메>는 1998년 발굴된 페르시아 서사시다. <쿠쉬나메>가 페르시아 서사시임에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가 작품 속의 '바실라' 또는 '마친 Machin'이 '신라'일 개연성이 높다는 내용을 밝힌 이후일 것이다. 이희수 교수에 따르면 <쿠쉬나메>의 의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페르시아 문헌으로 된 신라 관련 자료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아랍 사료들이 대부분 통일신라 시대 한반도와 아랍 세계 간의 해상 교역 관계를 주로 다루는 데 비해, 쿠쉬나메는 삼국 시대 후반인 7세기 중엽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쿠쉬나메의 발굴과 해제는 신라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정치적 관계는 물론, 한반도와 이슬람 초기 서아시아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유용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 고대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 교류, 나아가 신라의 대외 관계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p21)'


 이슬람 문헌 여러 곳에서 신라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어, 고대 실크로드를 통한 문명 교류사에 신라가 역할을 하였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유적을 통해서도 페르시아 문화를 신라 유적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석조 유물(입수쌍조문석조유물)도 원의 중앙 아래서 나무 한 줄기가 수직으로 올라가고 위에는 잎이 무성하며 수간(樹幹) 밑에는 수간 앞뒤에서 긴 목이 교차되어 있는 두 마리 새가 마주 보고 있는데, 머리 위에는 벼슬이 있고 굵고 긴 꼬리는 반원을 그리면서 위로 올라가 위의 나뭇잎에까지 이르고 있다.(p457)... 경주 지방에서 출토된 이 두 유물의 문양은 페르시아계 문양에 그 원류를 두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페르시아계 문양은 대체로 평면은 원형이고, 중앙에 나무가 수직으로 서 있으며, 나무 좌우에 동물을 배치하고 있고, 연주문대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p458)' <고대문명교류사>


[사진] 입수쌍조문석조유물(立樹雙鳥文石造遺物) 문양 (출처 : http://m.blog.daum.net/yns7070314/8014209)


 문화적인 교류이외에도 여러 형태의 인적 교류가 있음을 문헌산으로로 확인되는데, 잘 알려져 있듯 '처용' 설화에서 처용 역시 아랍계라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경주 곳곳에 있는 무인상을 비롯한 석조상을 통해서 이국적인 면모를 풍기는 인물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사진] 경주 괘능에 있는 석조상( 출처 : http://yellow.kr/blog/?p=1277)

 

'동해 용(龍)이 기뻐하여 곧 일곱 아들을 데리고 임금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고 춤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중 한 아들이 왕의 행차를 따라 서울에 들어와 왕의 정치를 보좌했는데, 그 이름을 처용(處容)이라 했다... 그의 아내가 몹시 아름다웠으므로 역신(疫神)이 그를 흠모해 사람으로 변신해서 밤중에 그의 집으로 갔다. 남몰래 그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했다. 처용이 밖에서 집에 돌아왔다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났다.(p170)' <삼국유사 三國遺事> 처용랑(處容郞)과 망해사(望海寺) 중


 <쿠쉬나메>는 앞서 말한대로 발굴이 1998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과연 '바실라'가 '신라'인가에 대한 반론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신라'가 '바실라'라는 섬나라(<쿠쉬나메>에서 바실라는 섬이다)라는 공간 설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서사시에는 다분히 작가의 창작이 들어가 있으므로, 이러한 작가의 상상에 당시 아랍세계에 알려져있던 '신라'라는 실크로드 끝에 있는 국가는 매력적인 소재로 작용되지 않았을까. 더구나, 작품 내용이 12세기까지 꾸준히 바뀌어 지금 전해온다면, 8세기 아랍세계와 중국(唐)과의 대립 역시 작품의 세계관 안에 녹아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지도] 탈라스 전투(The Battle of Talas, AD 751) (출처 : http://yellow.kr/blog/?p=1277)


 우리에게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高仙芝, ? ~ AD 756) 장군이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탈라스 전투 등으로 아랍세계와 중국이 충돌이 본격화되었다면, 아랍인들에게 중국보다 더 멀리에 있는 어떤 나라가 자신들을 도와 중국을 물리친다는 상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상상의 예로 기독교 유럽 세계의 '사제왕 요한'전설이 있다. 이슬람 세계에 포위된 유럽은 사제왕 요한이 세웠다는 아시아에 있는 기독교 국가가 있다는 희망 속에서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를 열어가게 된다. 그처럼, 중국과 부딪히게 된 이슬람 사람들 역시 중국 건너에 자신들의 형제 나라가 있다는 희망 속에서 이런 서사시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사제왕 요한(Presbyter Johannes) 전설은 중세 시대에 동방(東方) 어딘가에 거대하고 풍요로운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제왕 요한의 이야기는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 유럽에서 유행했다. 동방의 무슬림과 온갖 이교도들의 나라 너머에 있다는 이 기독교 왕국에 대한 이야기는 기록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중세 시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여러 판타지가 섞여있다. 전설에 따르면 사제왕 요한은 세 명의 동방 박사 중 한 명의 후손이며, 관대한 군주이며 덕을 갖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유한 왕국은 청춘의 샘 같은 온갖 신기한 것들로 가득하며 에덴 동산에 맞닿아 있었다고 한다.


 사제왕 요한 신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제왕 요한과 가톨릭 세계가 힘을 합해 이슬람을 협공하자는 것이었다. 에티오피아의 대패로 사제왕 요한의 신화는 사라졌다.'(출처 : 위키백과)


[사진] 사제왕 요한 전설 (출처 : 위키백과)


 <쿠쉬나메>는 페르시아 서사시이고, 수록된 작품은 신라와 관련된 부분만 추려서 옮긴 번역본이기에, 아쉬움이 많은 책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 남아있는 '신라의 향기'를 찾으려 읽다보면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쿠쉬나메>와 유사하게, 페르시아 왕자와 중국 공주의 사랑을 다룬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 ~ 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 Turandot> 중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공주는 잠못 이루고'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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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6: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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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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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1-27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래되어서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는 없겠지만, 이야기가 맞다면 처용은 정말 멀리서 왔네요.
어느 날 집에 잠깐 다녀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겠어요.^^;
겨울호랑이님,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1-27 17:05   좋아요 2 | URL
^^: 아마 동남아시아에서 시집온 신부들과 같은 느낌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네요.. 비행기도 없었던 옛날 멀리까지 교역을 하러 다니던 이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니데이님도 따뜻한 저녁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11-27 1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통일신라 때 페르시아와 교류가 많았단 이야기는 알았는데, 이런 얘기들까지 있었네요. ^^

겨울호랑이 2017-11-27 19:56   좋아요 1 | URL
^^: 네 저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우리 고대사에는 우리가 잘 몰랐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2017-11-28 07: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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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0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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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0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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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0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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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0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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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08: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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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11-29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유익한 글이라뉘!!^^
감사하게 잘 읽고 갑니다. 알라딘 측에서 보면 겨울호랑이 님같은 유저를 만난 건 큰 행운일 듯해요. 이런 유용하고 좋은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으니, 알라딘은 참으로 복을 넝굴째 받아 먹는 거 같습니다.ㅎ

겨울호랑이 2017-11-29 22:27   좋아요 0 | URL
^^: 저야말로 제 글을 즐겁게 읽어주시는 yamoo님과 같은 이웃분들을 만날 수 있어 진심 행복합니다. yamoo님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7-11-30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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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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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4: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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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4: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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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4: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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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8: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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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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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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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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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개혁이라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만 부르짖거나 실천하는 공산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사회 개혁은 얼마든지 부르짖을 수 있고 실천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더욱 사회개혁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가 봉건사회나 전제군주체제에 반동으로 생겨났다는 데는 동일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경제구조의 이질성으로부터 두 주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봉건사회나 전제군주사회가 무너지고 민주주의 사회가 형성되려면 인간 본위적 사회개혁은 필수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p31)'


  <태백산맥> 제3권에서는 사회개혁과 관련한 대화가 이뤄진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남(南)과 북(北). 서로 다른 길을 택했지만, 이들은 모두 '사회개혁(社會改革)'을 당면 과제로 떠안게 되었다. 비록, 체제가 다른 국가지만, 이들이 공통된 과제를 맞이하게 된 것은 '국가'라는 체제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국가는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을 위한 씨족들과 마을들의 공동체다. 그리고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이란 행복하고 훌륭하게 사는 것(to zen eudaimonos kai kalos)을 뜻한다. 따라서 국가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모여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따라서 그런 공동체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자가 자유와 신분에서는 같거나 더 우월하지만 정치적 탁월함에서는 더 열등한 자들보다, 또는 부(富)에서는 더 우월하지만 탁월함에서는 뒤처지는 자들보다 국가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 )<정치학> (1281a2)


 <정치학>에서 말하는 내용에 따르면, 체제와 관계없이 공동체에 더 많이 기여하는 자가 더 큰 몫을 가져가게 된다. 전통농업사회에서는 지주(地主)계급이, 산업자본시대에서는 자본가(資本家)계급이, 공산당이 지배하는 공산국가에서는 당(黨)이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된다. 많이 기여한 자가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의 문제는 이러한 많은 몫이 재분배되지 않고, 후대에 계승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민중들은 40여년 전 조선왕조의 백성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의식은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우리나라 공산당 역사는 중국보다 앞서 있었고, 자유주의다, 농촌계몽주의다 하는 것들이 의식변화를 촉진했습니다. 결국 지주계급의 몰락은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의 기운이고 역사의 필연인 것입니다.... 지금 이남이 내걸고 있는 민주주의는 링컨이 정의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정당한 사회 개혁의 절차를 거쳐 지주계급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주계급을 보호하고 있는 이남의 체제는 민주주의라는 허울뿐 봉건사회의 답습이고 연장일 뿐입니다. 과감한 사회개혁 없이 이런 식으로 계속되게 되면 사회혼란은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p32)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는 전남 벌교 지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남한 지역에 속한다. 당시 남한이 당면한(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는 기득권의 상속, 유지 문제였고, 이러한 사회적 모순은 과감한 사회개혁 또는 혁명의 필요성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남한의 현실은 미국의 민주주의와는 차이가 있었다. 남한에서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일뿐,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었다. 반면, 남한 민주주의의 롤모델인 미국 시민 혁명은 어떻게 파급되었는가. 이를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 ~ 1859)의 <미국의 민주주의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메리카 혁명이 일어나면서 주권재민의 원칙은 타운들로부터 나와서 전국을 석권했다. 모든 계급이 이 원칙을 지지했다. 이 원칙을 쟁취하기 위해서 전투가 벌어졌고 승리를 거뒀다. 이 원칙은 법 중의 법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태발전에 걸맞는 빠른 변화가 사회 내부에서도 일어났는데 상속법은 국지적인 영향력들을 완벽하게 말살시키고 있었다. 법률의 이런 영향과 독립혁명의 결과가 누구의 눈에나 분명해지자 민주주의 쪽의 승리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선포되었다. 사실상 이 원칙의 수중에 모든 승리가 돌아갔으며 이에 대한 더이상의 저항은 있을 수 없었다. 상류계층들도 불평 한마디 없이, 저항 한번 없이, 이 원칙으로부터 불가피하게 파생되는 악에 대해서까지 복종했다.(p116)'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1>


 미국시민 혁명은 대내적으로는 상속법을 통한 법률개혁과 대외적으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실현하면서 반대세력의 저항을 무력화 시키고 받아들여지게 된다. 아마도, <태백산맥>에서 남학의 사회개혁가들은 아마도 이와 같은 사회 개혁을 꿈꾸었을 것이고, 거슬러 올라가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역시 이러한 사회개혁의 선구라 하겠다. 


 '1893년 11월에 지방관들의 수탈행위로 전라도 고부, 전주, 익산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동학사>에는 "계사(癸巳) 11월 15일에 전라도 고부, 전주, 익산 등 각 군에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민란이 한꺼번에 일어난 일이 있었다. 횡포, 탐학, 강압으로 가결전(加結錢), 가호전(家戶錢), 무명잡세며, 국결환롱(國結幻弄)과 백지징세(白地徵稅)며 유망(流亡), 진결(陳結), 은결(隱結), 허복(虛卜)이며 불효(不孝), 불목(不睦), 불경(不敬), 독신(瀆神), 상피(相避) 등 죄목으로 옭아매어 백성들을 들들볶아 먹는 까닭이라" 하였다.(p374)' 삼암 표영삼 <동학2>


 탐관오리들의 수탈로 일어난 동학혁명은 대내적으로 당시 제도적 모순에 대한 개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미국 시민 혁명과는 달리 외세(일본(日本)과 청(淸)나라)의 개입으로 인해 좌절된다. <태백산맥>4권에서는 동학혁명 당시의 참상이 잘 묘사되고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 대장이 인내천(人乃天) 깃발 펄럭임스로 전주감영을 빼은 담에 나라가 불러딜인 청국군 일본군이 밀려들고, 종당에는 일본군이 독판침서 동학군이 패허든 대목을 이약허겄구만. 다 이긴 쌈에 일본눔덜이 훼방얼 놓고 뎀베들었는디, 그눔덜언 각단지게 총질얼 허는디다가 대포할라 펑펑 쏴질러뿐께로 지아무리 용맹시러운 동학군이라 혀도 당헐 방도가 웂었제. 우리 동학군이 지닌 무기라는 것은 창뿐이고 칼뿐인디, 맞부어 싸우겄다고 쫓아가다 보면 총에 맞어 수도 웂이 죽어갔제.(p54)'


 동학농민혁명군은 우금치 전투(牛禁峙戰鬪), 1894)에서 일본군의 신식무기와 개틀링기관총 앞에 무수히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패퇴하게 된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주인공 탐크루즈와 동료 무사들이 개틀링 기관총 앞으로 돌격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로 등장하지만, 실제 일본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군의 기관총 앞에 쓰러져간 이들의 모델은 우리 선조들이었다.) 


[사진]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출처 : http://egloos.zum.com/leesunggil/v/2993445)


 만일 동학농민혁명이 외세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혁명의 성과를 내고 우리는 왕정(王政)에서 민주정(民主政)으로 이행할 수 있었을까. 그럴수도 있었겠지만, 다시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 ~ 1527)는 <로마사론>에서 이러한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모든 혁명적 변화는 다른 계기를 통해 원상태로 돌아가려는 내재적 동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모든 정부는 초창기에는 어느 정도 존경을 받기 때문에 이 민주 정부는 어느 정도 존속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기껏해야 그 민주정부를 수립한 세대가 살아 있을 동안만 버티는 것이다. 그 세대 이후에 민주 정부는 곧바로 아무 규율 없는 방종한 자유의 상태로 추락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시민 개인이든 정부 관리든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 결과  각 개인은 제 멋대로 살아가며 날마다 무수한 피해 사례들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사태의 필요에 의하여 또는 어떤 선량한 사람의 제안에 의하여, 이런 방종한 상태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은 다시 한 번 군주제로 돌아간다.(p69)'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태백산맥> 제3권에서 나오는 짧은 대화 속에서 우리는 해방이후 극심한 혼란기 속에서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 의식 속에서 '혁명' 또는 '급진적인 개혁'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급진 개혁 움직임이 정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변화방안이었는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한국 전쟁 이후에도 우리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고, 많은 혁명을 거쳤지만, 제대로 진전된 해결책을 찾은 문제는 드물었다. 적시에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는 이제는 후대의 짐이 된 채 쌓여만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혁명적 변화'가 아닌 '작은 변화'가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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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0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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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08: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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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1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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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1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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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1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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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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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2권에 가장 큰 반전(?)은 정하섭과 소화의 관계설정이라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한국 현대사와 관련되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 이번 <태백산맥>2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이번 페이퍼를 정리해본다.


 1. 근친상간 문제 : 천륜(天倫)인가 아니면 인륜(人倫)인가


<택백산맥> 에서 소화는 정하섭을 사랑하고 있으나, 이들은 사실 이복남매 관계다. 그리고, 본인들은 이러한 사이를 알지 못한다. 이들의 관계를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는 소화의 어머니 월녀. 그렇지만, 어머니 월녀는 병에 걸려 이러한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이 사실을 딸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은 그녀를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끈다.


 '어머니의 표정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부릅뜬 눈에 이상한 빛이 서렸다. 그녀는 몸이 달고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안 뒤여, 안 뒤여, 술도가 집 아들허고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 짓 혀서는 안 뒤여. 월녀는 목이 찢어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년아, 머시가 신령님 뜻이냐. 신령님이 천벌 내릴 죄럴 니년이 저질러뿌린겨. 이년아, 넋 나간 년아. 이 일얼 워째야 쓸 것이다냐. 월녀는 정신이 아찔아찔해지기 시작했다. 딸의 얼굴이 대중없이 흔들렸다. 숨길이 막혀왔다.(p67)'

 

가족간의 근친상간을 다룬 작품으로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왕>을 살펴보면,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결혼하여 자녀를 두고 있다. 테바이를 휩쓴 재난의 원인이 그들의 근친상간임을 지목했을 때, 이오카스테 역시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자살하셨어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 광경을 보지 못하셨으니, 그 참상은 알지 못하실 거에요. 하지만 저 불쌍하신 마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내가 기억나는 대로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겠어요. 마님께서는 미친 듯 현관에 들어서시더니 두 손 끝으로 머리털을 쥐어뜯으시며 곧장 결혼침대로 달려가셨어요... 그분께서는 누가 신호라도 하는 양 무섭게 고함을 지르며 이중의 문으로 달려가시더니 걸쇠에서 빗장을 뜯어내며 방안으로 뛰어드셨어요. 그리고 방안에서 우리는 흔들리는 밧줄의 꼬인 고에 마님께서 목을 매달고 계신 것을 보았어요.(1236 ~ 1264)' <오이디푸스 왕>


[그림] 오이디푸스왕(르누아르) (출처 : http://www.bhgoo.com/2011/56460)

 

 '소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소화가 혼자서 장례를 치렀다...... 앞으로 외롭겠다...... 무당 노릇은 할래나.......(p216)'


 <태백산맥>에서 소화는 자신이 근친상간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에, 어머지의 장례를 자신의 손으로 치룰 수 있었다. 


 '그분께서 마님의 옷에 꽂혀 있던 황금 브로치를 뽑아 드시더니 자신의 두 눈알을 푹 찌르시며 대략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말예요. "이제 너희들은 내가 겪고 있고, 내가 저지른 끔찍한 일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너희들은 보아서는 안 된 사람들을 충분히 오랫동안 보았으면서도 내가 알고자 했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어둠 속에서 지내도록 하라!"(1265 ~ 1274)'


 반면,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르게 된다. 이처럼 같은 근친상간이 원인이 되었음에도, 다르게 처신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을 알았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자녀를 둔 오이디푸스와는 달리 소화는 후에 아이를 유산하게 되어 자식이라는 끈을 도중에 놓치기도 하지만. 우리가 천륜(天倫)이라고 부르는 도덕적 질서가 절대적인 것인가, 상대적인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2. 사회주의에 대한 상반된 시선


 작품 중 염상진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로의 길이 우리 민족이 이루는 진정한 해방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염상진의 생각일 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공산주의자들의 투쟁 이념이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공산주의는 우리가 가야할 유일한 길이었다.


 '반도땅의 역사의 길이가 반만년(半萬年)이라고 했다. 그 장구한 세월을 무턱대고 자랑 삼으려 한다. 세월의 길이가 왜 자랑감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건 배부른자, 인민대중의 생혈을 빨고 살아온 자들의 타령이고 최면술인 것이다. 그 긴 세월이 진정 자알이 되려면 계급 없는 사회로 나아갔어야 한다... 끝도 없는 착취의 역사일 뿐이었는데 그 세월을 무엇으로 자랑 삼는다는 것인가. 단군이 최초에 나라를 세울 때 그 건국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었다고 한다. 그 말은 누가 만들어낸 뻔뻔스런 잠꼬대인가... 해방은 반도땅의 역사 위에서 단순한 의미일 수가 없다. 자멸한 조선 봉건 왕조 위에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할 중차대한 기점이 바로 해방인 것이다... 남쪽 땅에는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지주계급과 친일 세력이 합세하여 남쪽만의 나라를 세우고 만 것이다. 사회주의의 건설, 그것만이 최선의 길이고 유일한 길일 뿐이다.(p144)'


 반면,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 역시 <태백산맥>에서 소개되고 있다. 유물론(唯物論)을 내세우는 이념(理念)으로 '종교를 부정하는 종교'를 바라보는 스님의 소리를 통해 공산주의의 한계 역시 제시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타도의 대상이 된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공포스러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공포가 다른 편 역시 극단으로 모는 것은 아닌지. 이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지주'에 불과했다.


 '불심 없는 인간, 아니 불심 없는 남자의 집단이 얼마나 무서운 동물의 집단인가를 생생하게 목격했던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그들의 집단이 내세우는 유물사상(唯物思想)이란 애당초 불심 같은 것은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다. 오로지 물질만을 좇는 그들은 앞뒤를 분간하지 않는 살인집단이었다... 그들 집단을 혐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을 위한 새 세상을 만든다는 사람들이 살인을 너무나도 쉽게 저질렀기 때문이다. 물질을 탐한 지주들이 야수만도 못하다면 그 물질을 빼앗기 위해서 살인을 서슴지 않는 그 집단도 결국은 지주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p275)'


3. 분단의 이유


 <태백산맥>에서는 곳곳에서 김범우, 염상진, 서민영의 목소리를 통해 당대의 현실인식이 제시되고 있다. 마치 영화에서 정면 클로즈업 샷으로 관객들을 향해 말을 하듯, 독자들에게 상황설명을 하는 대목이 여러 곳에서 표현되고 있고, 이는 우리의 현대사 인식을 새롭게 한다. 


[사진] 정면 클로즈 업 샷 :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中


 '연합국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미국은 특히 일본 문제에 있어서는 발언권이 절대적이었지요. 일본을 도맡다시피 해서 싸운 것이 바로 미국이니까요. 그래서 미국은 일본 열도를 독일식으로 나눠먹지 않고 독식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건 태평양으로 뻗치는 소련의 힘을 견제하는 동시에 태평양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당연히 한반도 분할이 필요했고, 독일에서와는 달리 일본 쪽에 전적이 미미한 소련은 한반도의 반이나마 차지하는 데 동의한 것입니다.(p303)'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일본 대신 우리가 분단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아직도 '종북', '빨갱이' 등의 문제에 좌우되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답답함 역시 느끼게 된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일제 식민지 시대 이후 모든 문제가 지금도 진행형이라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해방은 식민지 시대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식민지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전 시대에는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민족적 명제나 자존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백인들이 만들어낸 "이즘"이라는 것에 최면이 걸리고 마취되어 우리끼리 적을 삼아 살육을 자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즘을 일단 정치도구화한 이상 상호 양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정치적 실현을 위한 상호 상승작용만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정치생리이며 힘의 역학입니다. 벌써 서로를 괴뢰라고 공공연하게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유치하고 졸렬하고 파렴치한 짓들입니까. 그러나 그 뻔뻔스러움과 무모함과 이율배반이 곧 우리의 정치현실입니다. 비판이나 선택이 용납되지 않는 획일적 모순의 질서에 줄을 맞춰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우리의 길입니다.(p304)'


'최익승은 "빨갱이"란 말을 무수히 되풀이했다. 그 말은 지칭(指稱)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호칭(呼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건 말이 아니었다. 공격의 무기였다. 지칭이든 호칭이든 그 말이 되풀이될때마다 기묘한 마력으로 육박해왔다... "빨갱이"라는 말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는 말과는 그 색깔이나 냄새나 느낌이 판이하게 달랐다. 그건 극악한 범죄자의 대명사였고 극형의 죄목이었다. 그 말은 해방 이후 수삼 년에 걸쳐 그 어떤 말보다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그 말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선택의 자유권을 상실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생존권까지 좌우하게 된 상황임을 새삼스럽게 확인해야 했다.(p20)


3. 소화(素花)와 소화(小花) : 흰 꽃과 작은 꽃


 '정 참봉은 월녀를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월녀는 그 품에서 비로소 쏟아지기 시작하는 눈물을 흘렸다. 정 참봉이 조끼주머니에서 꺼낸 한지에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소화 素花"였다.(p83)'


 <태백산맥>을 읽다보니 '소화'라는 여주인공의 이름에 관심이 가게 된다. '흰 꽃'이라는 뜻을 가진 '소화'라는 이름을 통해 내가 가진 종교적 배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톨릭 성녀(聖女) '소화 데레사'를 연상하게 된다.


 '리지외의 테레스(데레사)(Therese of Lisieux, 1873년 1월 2일 ~ 1897년 9월 30일)는 프랑스 맨발의 카르멜회 수녀로, 오늘날 널리 존경받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본명은 마리 프랑수아즈 테레스 마르탱(Marie Francoise-Therese Martin)이며, 리지외의 성 테레스(Saint Therese of Lisieux)라고도 한다. 예수의 작은 꽃, 단순히 작은 꽃(소화, 小花)이라고도 불린다. 테레스는 1873년 1월 2일 프랑스 알랑송 루 세인트 블레이즈(Rue Saint-Blaise)[1]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가르멜회 수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14세 때 가르멜회 입회를 바랐지만, 나이를 이유로 허락되지 않았다. 1889년 4월 가르멜회에 입회하여 "아기예수의 데레사"라는 이름을 받는다. 1894년 7월 28일 아버지 루이가 사망하였다. 테레스는 1897년 9월 30일, 결핵으로 2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신령님을 모시는 무녀(巫女) 소화(素花) 와 예수님을 따랐던 소화(小花)의 삶은 그들의 종교, 나라가 달랐던 것만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각자의 위치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신(神)에게 전적으로 의탁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종교적 인간의 원형(原形)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성녀 소화 데레사(출처 : http://www.carmel.kr/Theresa)


<태백산맥>에는 한국 현대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를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당대의 세계사적인 흐름과 개인사적인 내용, 개인의 내면이 서로 잘 조화되면서 현실을 그려내고 있기에 <태백산맥>이 우리시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닐까.


ps. <태백산맥>의 향토성은 전라도 사투리에서 배어나오는데, <태백산맥>을 표준영어로 번역한다면 그 맛이 상당히 반감될 듯하다. <태백산맥>의 번역본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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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5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5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7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09-25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백산맥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뻗어내시다니..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김범우, 염상진 넘 멋져..!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오.. 영어라니 그 구수함을 번역하는 게 어찌 가능할까요. 그 감칠맛나는 욕설은 또.. 전혀 상상이 안 되네요;;

겨울호랑이 2017-09-25 22:03   좋아요 1 | URL
^^: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제가 여러가지를 썼습니다만,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맥을 남쪽에 있는 벌교까지 끌어내린 작가만 하겠습니까 ㅋ 대하소설이다보니 이런저런 감상거리가 떠오른 것 같습니다. 언어에 혼이 실렸다는 것을 「태백산맥」을 통해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외국어교육도 우리 정서를 외국인들에게 공감시킬 수 있는 능력향상으로 초점을 두어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cyrus 2017-09-25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복남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막장 드라마의 기본 요소는 간혹 문학작품에서도 나오는군요. ^^;;

겨울호랑이 2017-09-26 06:47   좋아요 0 | URL
^^: 저도 많은 문학을 접하지 못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도저히 의지만으로 넘을 수 없는 장벽 중 하나가 우리가 ‘인륜‘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AgalmA 2017-09-26 0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화론을 알면 알수록 재밌는 것이 근친상간이 진화생물학적으로 돌연변이를 많이 만들어내죠. 결국 자멸로 향하는 길. 현실 속 근친상간은 윤리적 터부로 굳어졌지만 생물학적으로도 나쁜 결과란 말이죠. 프로이트는 근친상간의 금지는 사회학적 과정이었다고 봤지만서도.
현재의 국가 대 국가도 이데올로기적 대결로 볼 것만도 아닌 것이 생존을 위해 무리 생활을 하던 동물적 생활방식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라고 봐요. 근대 사회, 도시의 탄생 등 거창하게 말해도 어쩐지 그 본질은 원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차원적으로 보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착각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6 08:05   좋아요 1 | URL
^^: AgalmA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물학적으로 근친상간을 통한 종족의 번식은 나쁜 형질의 유전자가 도태되지 않고, 계승/강화되면서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생물들은 근친교배를 피하게 되고, 이는 결국 교류의 확장 또는 영역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 같네요. 이러한 부분이 인간의 집단인 국가로도 확대된다고 말씀하신 의견에 공감합니다. 아울러, 이렇게 극단적으로 확장되어 보편성=특수성인 되버린 시점, 더이상 확장될 수 없는 시점이 되면 그때부터 쇠퇴가 시작된다고도 생각되네요.^^:
 

  <태백산맥 >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대로 '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이 발생한 1948년 벌교 지역을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뛰어난 몰입감을 주는 소설 속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몇몇 부분을 옮겨본다.


1. 선(善)과 악(惡)

 

'전혀 다른 두 모습의 문서방. 그 어느 쪽이 진짜인가.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표변할 수 있는가. 그 어느 쪽이 진실인가.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이중적일 수 있는가... 그렇다, 인간은 복합적 사고와 다양한 감정의 줄기를 소유한 동물이다. 문서방의 전혀 다른 두 모습은 그런 인간의 속성이 표출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 모습은 다 문 서방의 참모습인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선(善)과 악(惡)이 공존하면서 외부의 영향과 상황에 따라 그것은 반응하는 것이다. 문 서방은 아버지에게는 선한 인간으로 반응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악한 인간으로 반응한 것뿐이다. 만약 아버지가 악한 지주였다면 문 서방은 여지없이 악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 서방의 악은 악이 아니라 선인 것이었다.'(p68)


 <태백산맥>에서 묘사된 인간 본성(本性)의 문제는 여러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이러한 오래된 철학적 질문에 대해 주인공 범우는 인간 내부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답하고 있다. 이러한 김범우의 생각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주(註)를 단 왕필(王弼, 226 ~ 249)의 의견과 많은 공통점을 보이는 것 같다.

 

'왕필이 선(善)과 불선(不善)을 '시(是)'와 '비(非)'에 상응시킨 것은 바로 잘 되는 경우가 "그렇다"고 할 수 있고,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런데 핵심적인 것은 즐거움과 성남이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고, 옳음과 그름이 한곳에서 나온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불이(不二)"의 사고입니다. 일반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양자가 심층적으로는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통념적으로 대립시키는 것들을 같은 뿌리로 소급시키는 것은 곧 현실세계에서 통용되는 선(善)과 악(惡)의 구별의 피안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para-doxa"의 사유이기도 합니다.'<개념-뿌리들>(p558)


  절대적인 선과 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상황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는 범우의 말속에서 전통적인 동양사상을 확인하게 된다. 동양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유입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을 수용하면서 생긴 사상대립. 한국전쟁과 이념 대립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사상을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 사상이 극단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2. 남로당과 칼 마르크스


 <태백산맥>1에서는 남로당(南勞黨)과 군정(軍政)간의 대립이 잘 묘사되고 있다. 남로당은 어려운 경제 현실로부터 탈피하고자하는 민중의 열망을 정치투쟁으로 확산시키려했던 반면 군정은 이를 좌절시키려 한 것이다. 


 '남로당은 어쩌면 남쪽 전역에 걸친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열렬한 지지였지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미군정의 경제정책에 대한 생존보호와 불만표현이 먼저였다. 그러니까 남로당은 군정과 정치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고, 민중들은 군정과 경제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로당은 민중들의 경제투쟁을 조직화하여 정치투쟁으로 확산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교활할 만큼 영리한 군정이 그것을 좌시할 리 없었다. 미리 준비해 둔 무력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박살을 내고는 한 것이다.'(p238)


이러한 남로당의 투쟁 노선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기반한 것임을 우리는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3rd Earl Russell, 1872 ~ 1970의 <서양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 ~1883)의 변증법은 법칙의 불가피성을 제외하면 앞서 말한 헤겔 변증법의 특성을 전혀 나타내지 않는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추진력이다. 그러나 물질은 인간적 요소가 완전히 말살된 원자론자들의 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고찰해온 독특한 의미를 갖는 물질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에게 추진력은 실제로 인간이 물질과 맺는 관계이며, 그러한 관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생산 양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실질상 경제학이 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 역사의 어느 시기이든 정치, 종교, 철학, 예술은 속한 시대의 생산 방법과 비중은 조금 낮지만 분배 방법의 산물이다.' <러셀 서양철학사> (p990)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인간의 삶과 관련된 하부구조가 보다 형이상학적인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던 일제(日帝) 하에서 토지의 균등한 분배등 경제적 평등을 약속한 남로당의 약속은 가난했던 많은 민중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로당의 투쟁이 현실의 삶과 다소 거리가 있는 정치 투쟁으로 이어졌을 때도 먹고사는데만 관심있는 민중들의 지지를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혁명이론으로 현실적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3. 문화와 제국주의


 <태백산맥>속에서는 제국주의(帝國主義)에 대한 비판이 한때 사회주의에 심취했었던 손승호라는 인물을 통해 가해진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1616)가 과연 인도(印度)와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가? 라는 물음에 대한 손승호의 비판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지는 몰라도 그런 비유법을 쓴 영국인들은 한심한 종자들이야. 그 과장의 정도야 아무래도 상관할 게 없지만, 비유의 대상을 한 나라로 잡았다는 건 용서할 수가 없는 일이야. 셰익스피어가 제아무리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한들 어찌 인도보다 더 위대할 수가 있느냔 말야. 인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는 차치하고라도 거기엔 4억을 헤아리는 인간들이 엄연히 생존하고 있어. 그 생명들의 존엄성보다 셰익스피어가 더 위대하다니. 그따위 발상법을 가진 영국인들은 일본놈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식민주의자들이야.'(p240)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思想)이라고 한다면 셰익스피어의 중요성은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제국주의 종주국들에게는. 이에 대한 내용을 에드워드 W. 사이드(Edward W. Said, 1935 ~ 2003)의 작품 <문화와 제국주의 Culture and Imperialism>을 통해 살펴보자. 

 

'만일 중요한 종주국 문화의 몇 가지 -가령 영국, 프랑스, 미국의 문화-를 제국을 추구하는(그리고 제국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지리적 배경 속에서 연구한다면, 명확한 문화 지형도가 선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가령 영국 문화에서 스펜서, 셰익스피어, 디포, 오스틴이 집요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먼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권력의 거점을 종주국인 영국 또는 유럽에 설정하고, 이어 작품의 구상, 동기, 전개에 의해 그러한 권력 거점을 원격의 "주변"세계,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열등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세계(아일랜드, 베네치아, 아프리카, 자메이카)에 접속하는 것이다.'<문화와 제국주의>(p132)


 셰익스피어가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적 배경을 제공한다면, 셰익스피어가 존재하는 한  지금 당장 인도를 잃는다하더라도 회복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4.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그외에도 <태백산맥> 속에는 민족주의의 입장과 공산주의의 입장이 각각 김범우와 염상진의 말과 생각을 통해 나타나 우리는 당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체감할 수 있다. 


 '어떤 주의를 따르든 그건 개인의 자유지요. 그러나, 그것이 곧 민족 전체를 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성급한 판단은 금물입니다. 미국이다, 소련이다, 민주주의다, 공산주의다,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생활의 방편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민족의 발견입니다. 그 단합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해요.'(p85)


  '힘은 조직화될수록 강해지고, 그 힘은 공격을 감행할 때 더 강해지고, 그리고 승리를 쟁취했을 때 그 힘은 절정의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그건 힘의 법칙이고, 힘의 미학이었다. 북조선의 일사불란하게 조직화된 힘은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면 남조선의 오합지졸인 비조직화된 힘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한반도 전역에 공산혁명의 깃발을 나부끼게 할 것임을 굳게 믿어왔다. 그런데, 하늘처럼 믿었던 북조선의 조직화된 힘은 뻗쳐오지 않았고, 오합지졸인 줄만 알았던 남조선의 힘에 쫓기게 된 것이다. 왜 북조선은 힘을 쓰지 않은 것인가. 남조선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었는가. 그럼 북조선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일까.'(p125)


 한국 현대사의 이념대립을 다룬 <태백산맥>은 이처럼 인물과 사건을 통해 선과 악,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민족주의, 제국주의 등 대립적 요소가 잘 제시된다. <태백산맥>이 현대사를 다룬 뛰어난 문학작품인 이유는 작품이 주는 몰입감과 더불어 당대의 이념들간의 대립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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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3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09-04 0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창시절 통학시간이 길었던 덕에 태백산맥을 빌려 지하철에서 읽었었는데...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구매해 두었으나 읽을 엄두를 못 내고 방치 중입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7-09-04 04:09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께서는 일찍 태백산맥을 읽으셨군요^^: 저도 좀 더 일찍 읽었다면 현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까하는 뒤늦은 아쉬움이 생깁니다^^:

2017-09-04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4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모임이 있어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소 피곤함을 느끼던 중 우연히 책 한권에 눈길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많은 이웃분들께서 알고 계시겠지만, 이웃분이신 유레카님의 포토에세이 <소리 없는 빛의 노래>였습니다. 어제는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책이 손짓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와 닿는 사진과 에세이를 작가의 허락없이 무단으로 옮겨 봅니다...


바다가 보내준 기별


넓은 마당이 있는 집 한켠에 우체통 하나. 이른 아침,

집배원 아저씨 모이 뿌리듯 엽서 한 장 툭 밀어 넣고 이내 사라진 자취따라

게워내듯이 열었다.

오래 전 잊혀졌던 이가 가을 바닷가에서 보내준 낙엽처럼 날아온 조개엽서.

바다는 오늘도 잘 있다며 안부의 기별은 보낸다. 얼핏 파도 내음 스며 나와 그리움이 스쳤다. 

바다가 전해준 기별 당은 기포 한 방울 차마 못다꺼진 채로 남아 있었기에.




당시 유레카님 포토에세이와 함께 시(詩)를 잘 모르는 저를 위해 한 권을 책을 더 보내주셨습니다. 여태껏 고이 모셔두었지만, 어제는 <소리 없는 빛의 노래>와 같이 손짓하는 느낌이 들어 마찬가지로 펼쳐 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와닿는 송광순 시인의 시(詩)가 있어 옮겨봅니다.



밤바다


한 해가 저무는 밤

물끄러미 쳐다보는 내 눈을 보고

밤바다 파도가 말을 건다

처 얼 썩

'너 많이 아프구나?'


속으로 들이키는 한 숨 소리 듣고

또 말을 건넨다.

처 얼 썩

'그래. 오래 동안 아팠구나?'


금세 붉어지는 내 눈을 보고

속삭인다

처 얼 썩

'다 내뱉지 못한 말이 많았구나'


가슴 속 검은 덩어리 하나.

끝내, 새벽 파도 위로 왈칵 쏟고나니 

하얀 포말로 떠나며 다독인다.

쏴 아 아

'그래, 그래 잘 했어. 힘들면 또 와'


다른 좋은 시(詩)도 있지만, 어제는 시(詩)가 마음에 스며든다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아직 시인의 입장에서 시를 바라보지는 못하지만, 제 마음을 잘 표현한 시를 만나면서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난 느낌이 듭니다. 많은 분들이 시(詩)를 가슴으로 읽는다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느껴본 어제였습니다.

 

 책을 받은 지 벌써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앞으로 포토 에세이에 담긴 많은 내용을 얼마나 가슴으로 깊게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책이 손짓하며 부를 때 그때마다 찾아간다면 언젠가는 많이 이해할 수 있겠지요. 



 책 앞 편에는 유레카님께서 적어 주셨던 글이 있어 사진으로 올립니다. 이웃분들과 함께 자신이 조금씩 성장해감을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유레카님, 덕분에 시(詩)에 대해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 저 역시 기쁩니다. 새로운 시(詩)의 맛을 알려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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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1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11 17: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을 알지 못했으면 지금만큼 사진과 시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제 독서에 커다란 영향을 줬던 분이 많지 않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유레카님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8-11 18:18   좋아요 3 | URL
^^: 아 그렇군요. 유레카님께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이 저만이 아니었군요^^:

dys1211 2017-08-11 17: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또 놀라운 사실과 따뜻함이....^*

겨울호랑이 2017-08-11 18:19   좋아요 3 | URL
^^ 네. 저 역시 유레카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리제 2017-08-14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시도, 유레카님의 마음도, 또 그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시는 겨울호랑이님도 어쩜 이렇게 고울까요.^^

겨울호랑이 2017-08-14 22:44   좋아요 0 | URL
리제님 감사합니다^^: 알라딘 이웃분들로부터 책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우고, 리제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함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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