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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의 속도 자체가 우리의 안전에 더욱더 심각한 도전이 된다. 우리는 중대한 변화 사이에 수백만 년의 기간을 두고 한가하게 진화한다. 기계는 수십 년 사이에 이와 유사한 진보를 이룬다... 생산된 기계의 후속 세대는 더 똑똑해지고, 비용은 더 저렴해질 것이다. 인간 등가물이 어떻게든 우위를 점하리라 믿을 이유는 전혀 없다... 만일 인간의 노동보다 자동기계가 더 효율적이라면, 그것을 환영하는 조직과 사회의 환경이 어려울수록 생존에 유리하여 점점 우호적인 분위기가 확대되면서 번영할 것이다. _ 한스 모라벡, <마음의 아이들>, p178


 한스 모라벡(Hans Moravec, 1948 ~ )이 바라보는 인류의 미래는 어둡다. 오랜 시간 생물학적 진화(進化)의 산물인 인간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지는 기술적 진화를 거듭하는 로봇(robot)에게 결국 세상의 주도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마음의 아이들 Mind Children: The Future of Robot and Human Intelligence>에서 저자는 이에 대해 '마음 업로딩 mind uploading'으로 답한다.


 사람과 로봇이 맺을 수 있는 세 번째 관계는 서로 돕고 사는 공생이다. 대표적인 시나리오는 <마음의 아이들>에 제시된 마음 이전 mind transfer이다. 사람의 마음을 로봇으로 옮기는 과정은 '마음 업로딩 mind uploading'이라 한다. 사람의 마음이 로봇으로 이식되면 사람이 말 그대로 기계로 바뀌게 된다. 로봇 안에서 사람의 마음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마음이 사멸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모라벡은 마음의 아이들은 인류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_ 한스 모라벡, <마음의 아이들>, p15 해제 中


 구체적으로 유한한 인간의 신체(身體) 대신 기계의 몸으로, 인간의 사고(思考)를 담당하는 뇌를 컴퓨터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이미 2세대 로봇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학습능력으로 로봇(인공지능 AI)은 2040년에 이르면 인간을 멀리 따돌리고, 인간은 이들 로봇에 바이러스(viurs)처럼 녹아 들어 살면서 영생(永生)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1988년에 저자가 예상한 인류의 미래다.


  미래에 두뇌의 기능이 충분히 이해되었을 때 당신의 뇌들보가 절단되고 외부의 컴퓨터로 이어진 케이블이 절단된 끝에 연결된다고 가정하자. 컴퓨터는 처음에 두 반구체 사이의 고통을 돕고, 엿듣기 위해 프로그램되었다. 엿듣기로 배운 바에 의해 컴퓨터는 당신의 마음 활동의 모델을 구조화한다. 시간이 흐르면 컴퓨터는 자신의 메시지를 그 흐름 안으로 삽입하기 시작하고 점차 자신을 당신의 사고 안으로 은근히 심어주며 당신에게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부여한다. 머지않아 당신의 원래 두뇌가 나이 들어 사라짐에 따라 컴퓨터가 부드럽게 상실된 기능을 감당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당신의 두뇌는 죽고, 당신의 마음은 전적으로 컴퓨터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_ 한스 모라벡, <마음의 아이들>, p197


 마치 영화 <코드명 J Johnny Mnemonic>와 같은 이러한 설정이 저자가 책을 쓴 1980년대 말에는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명 공학과 컴퓨터 공학의 발달은 이러한 것들을 '실현가능태'로 만들었다. 아래 <마음의 아이들>의 문단에 이어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호모 데우스 Homo Deus>를 연결지어도 매끄럽게 연결되는 논리 구조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실현될 디스토피아(dystopia)의 한 면을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당신이 대부분 다른 사람의 경험을 기억할 것인 반면에 당신이 일으킨 기억은 다른 마음 안으로 혼합될 것이다. 삶, 죽음, 동일성의 개념은 당신의 마음의 조각과 다른 이들의 조각이 결합되고, 뒤섞이고, 때로는 크고, 때로는 작고, 때로는 길게 고립되어 고도로 개인적이며, 다른 때에는 덧없고, 문명의 도도한 지식의 여울 위의 단순한 잔물결인 일시적 연상으로 재결합됨에 따라 현재의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_ 한스 모라벡, <마음의 아이들>, p200


  경험하는 자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경험하는 자아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참조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기억을 끄집어내고 이야기를 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매우 다른 실체인 "이야기하는 자아"의 독단이다.(p405)... 사실을 말하면, 경헌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경험을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재료로 이용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다시 경험하는 자아가 실제로 느끼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 _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p410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영생'이라는 가치를 선택하는 대신 오랜 진화의 역사와 함께 이루어진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권(人權)을 포기하고, '데이터교'라는 이름의 레비아탄(leviathan)에 권리를 다시 넘겨 줄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피조물을 보았을 때 좋았을 조물주의 마음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바뀌게 되었다면, 이러한 마음이었을까.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컴퓨터를 검증하는 튜링 테스트(Turing test). 머지 않은 미래에는 인공지능(AI)에 녹아든 인간의 마음을 테스트하는 역튜링 테스트(Adverse Turing Test)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을 다룬 <마음의 아이들>을 통해서 인간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은 처음부터 이들이 우리의 '거울'로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방향이 우리를 주체(主體)라는 하나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우리는 자유주의가 직면한 세 가지 실질적 위협을 살펴보았다. 첫째는 인간이 가치를 완전히 잃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이 집단으로서의 가치는 유지하더라도 개인은 권위를 잃고 외부 알고리즘의 관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위협은, 일부 사람들은 업그레이드되어 필수불가결한 동시에 해독 불가능한 존재로 남아 소규모 특권집단을 이룰 거라는 점이다. 이런 초인간들은 전대미문의 능력과 전례 없는 창의성을 지닐 것이고, 그런 힘을 이용해 세계적으로 중요한 대다수의 결정들을 계속 내일 수 있을 것이다. _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p474


 설계상 기계는 순종적이고 유능한 우리의 실존을 위협한다. 왜냐하면 기계는 우리에게 생태적으로 환경에 더 적합한 대안적 거주자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각해도 경쟁적 상황에서 인간만큼 영리한 기계가 훨씬 더 유리하다. 그것의 생산과 유지에는 비용이 적게 들어서 주어진 자원에 따라 투입되는 것보다 일을 최적화해서 지칠 줄 모르고 일하도록 프로그램될 수 있다. _ 한스 모라벡, <마음의 아이들>,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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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8-12 1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앨런 튜링이 쓴 논문을 모은 책이 있군요! <리바이어던>도 언젠가 꼭 읽고 싶은데..겨울 호랑님의 페이퍼 속 책들 오늘도 침만 흘려봅니다ㅎㅎㅎ

겨울호랑이 2021-08-12 18:39   좋아요 2 | URL
미미님께서 이미 읽으신 책들이 적지 않은데 이리 책욕심을 내시면 제 글 쓸 자리가 없어질까 걱정됩니다. ^^:)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직접 시물레이션 만의 어떤 몸에 다운로드 하고, 우리의 임무가 완수되었을 때 업로드하여 나의 현실 세계로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리는 그 과정을 역전시켜 그 사람을 시뮬레이션 밖으로 데려올 수도 있을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외부의 로봇 몸에 연결하거나 그 안에 업로드하는 모든 경우에 우리는 과거를 다시 참조하고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 P214

내가 방금 기술한 유형의 불멸성은 개인의 죽음에 있어서 최악의 측면인 지식과 기능의 완전한 상실에 대한 일시적 방어에 불과하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생존은 우리자신의 선택이 아닌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우리의 부분은 변화하는 조건과 진화하는 경쟁자에 발맞추어 폐기되고 새로운 부분에 의해 대치되어야만 할 것이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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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메타버스 1
김상균 지음 / 플랜비디자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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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메타버스.

증강현실, 라이플로깅, 거울 세계, 가상 세계로 크게 나뉘는 메타버스의 세계는 현실을 떠난 또다른 세계에서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게임 등은 물론 보다 실감나는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제공하기에 비용절감 차원에서 기업들도 관심을 보일만하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화 「매트릭스 (Matrix)」에서 가상세계를 살던 네오는 진실을 알기 위해 빨간약을 선택했는데, 현실세계를 사는 우리에게 파란약을 권하는지... 아무리 현대가 기술 복제 시대여서 삶마저도 복제할 수 있다지만, 그림자가 멀리 뻗어나가더라도 결국은 발끝에서 만나듯 결국은 지금 이 순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메타버스가 제공할 재미, 즐거움 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의 스마트폰이 혁명적이었다고 해도 처음 전화가 개설되었을 때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며, 자율주행차가 등장해도 자전거가 인류사에 미친 영향에는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메타버스 역시 얼마전까지 경영, IT 계의 화두였던 인공지능, 빅데이터, IoT처럼 일반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기업에 의해 어느 순간 상용화되는 것이 아닐까. 삶을 바꾸는 기술이 아닌 현실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메타버스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산업의 판도가 바뀌기도 하겠지만, 결국 그 중심에는 ‘현실 속의 사람‘이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존재해던 이런 언택트 세계를 메타버스 metaverse라 부릅니다.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등 디지털 미디어에 담긴 새로운 세상, 디지털화지구를 뜻합니다. 인간이 디지털 기술로 현실 세계를 초월해서 만들어낸 여러 세계를 메타버스라 합니다._김성균, <메타버스>, p16/428

그리고 이 물음표에 해당하는 물건을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1위 냉장고, 4위 세탁기의 역할까지 대체가 가능합니다. 많은 분들이 눈치 채셨으리라 짐작합니다. 바로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물건, 내 몸에서 절대 멀리두지 않는 물건, 명품 제외하고는 내가 외출할 때 소지하는 가장 비싼 물건인 스마트폰입니다._김성균, <메타버스>, p 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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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앨런 튜링 지음, 노승영 옮김, 곽재식 해제 / 에이치비프레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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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튜링 테스트에서는 지능이 과연 무엇이냐에 대한 문제는 잠시 젖혀 놓는다. 대신에 기계가 하는 말이 사람이 하는 말과 얼마나 구분하기 쉬운지 어려운지만 따진다. 그리고 만약 기계와 대화할 때 기계가 하는 말이 사람의 말과 아주 비슷해서 구분되지 않는 정도라면 기계가 마치 사람 같다고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자명하므로, 마치 사람 같아 보이는 이 기계도 지능 같은 것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바로 튜링 테스트의 핵심이다.(p15)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해제 中


[그림] Turing Test(출처 : https://medium.com/thinkmobiles/evaluating-artificial-intelligence-from-turing-test-to-now-b64a8fced070)


 <앨런 튜닝, 지능에 관하여>에는 튜링 테스트(Turing Test)로 유명한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 ~ 1954)의 논문 중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관련한 5편을 옮긴 책이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기계가 과연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로 정리되는데 이에 대해 튜링은 가능하다고 본다.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을 만한 확실한 이유는 사람의 어떤 부위에 대해서든 이를 흉내 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p42)... 우리는 인간이 (만일 기계라면) 막대한 개입을 겪는 기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개입은 예외라기보다는 규칙이다.(p46)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中


  그렇다면, 어떤 근거로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을까? 먼저 튜링은  비(非)정형기계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유아(乳兒)와 같은 상태의 비정형 기계가 학습을 통해 정형화될 수 있다면 - 어른이 될 수 있다면 - 우리는 기계가 '자란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지능을 가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튜링의 설명이다. 


  비정형 기계로 하여금 한정적(definite) 유형의 개입을 받아들이도록 하여 정형화를 시도하는 - 이를테면 만능 기계로 바꾸는 - 실험은 흥미롭다. 기계를 만능 기계로 정형화하는 것이 가장 인상적인 경우는 매우 적은 입력만 가지고 개입할 때다... 기계의 구성은 두 가지 표현으로 서술되는데, 이것을 성격 표현(aharacter-expression)과 환경 표현(situation - expression)으로 부를 것이다.(p51)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지능을 가진 기계 Intelligent Machinery 中


 훈련 받지 않은 유아의 마음이 지능을 가지려면 훈육(discipline)과 창의(initiative)가 둘 다 필요하다... 한 번에 하나씩 기계가 점점 많은 '선택'이나 '결정'을 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비교적 소수의 일반 원칙을 적용한 논리적 결과로서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원칙이 충분히 일반적으로 바뀌면 더는 개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기계는 이른바 '어른'이 된다. 이것을 '직접적 방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p60)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지능을 가진 기계 Intelligent Machinery  中


 우리가 사회화를 이루기 위해 교육과정에서 시험을 보고 이를 통해 정답과 오답을 배우는 것과 같이 튜링은 비정형 기계가 적절한 프로그래밍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표준 튜링 기계(Standard Turing Machine) 수준의 초기에는 유한한 개수의 기초적 지시문으로 프로그래밍되겠지만, 기계가 학습을 통해 범용 튜링 기계(Universal Turing Machine) 수준으로 진화한다면, 이때는 스스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계의 학습이 고도화된다면, 인류의 지성보다 뛰어난 기술적 특이점(技術的特異點, 영어: technological singularity, TS)에 이를 것을 튜링은 예측한다.


 인간의 마음은 대부분 '아임계적(sub-critical)'이다. 즉, 비유에서 임계 크기 이하의 원자 덩어리에 해당한다. 이런 부분에 제시된 관념이 일으키는 반응은 평균적으로 하나의 관념에 미달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에서 극히 일부분은 초임계적(super - critical)이다. 이런 부분에서 제시된 관념은 2차 관념, 3차 관념, 그 이상의 관념으로 이루어진 '이론' 전체를 발생시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초임계적인 기계를 만들 수 있을까?... 관건은 프로그래밍이다.(p102)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계산 기계와 지능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中


 기계가 생각하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우리의 하찮은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죽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기계는 서로 대화하면서 지혜를 닦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단계가 되면 우리는 새뮤얼 버틀러의 <에레혼>에서 묘사하듯 기계가 주도권을 쥐는 상황을 예상해야 합니다.(p121)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지능을 가진 기계라는 이단적 이론 Intelligent Machinery a Heretical Theory 中


 결론적으로, 마치 지구 상의 초기 생명체가 진화(evoltion)를 통해 단세포에서 다세포 생물체로 발전해 온 것처럼, 간단한 기계가 학습을 통해 '두뇌'가 수행하는 복잡한 연산을 처리할 능력을 획득한다면 기계 또한 두뇌처럼 지능을 갖는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튜링의 주장이다. 


 제가 가장 중점을 둘 것은 저 자신의 견해입니다. 그것은 디지털 컴퓨터를 두뇌라고 부르는 것이 전적으로 비합리적이지는 않다는 것입니다.(p125)... 저는 디지털 컴퓨터가 어떻게 쓰일 수 있느냐보다는 실제로 어떻게 쓰이고 있느냐라고 생각합니다. 두뇌라고 부를 수 있는 기계가 하나라도 있다면 디지털 컴퓨터도 두뇌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은 디지털 컴퓨터의 한 가지 특징에서 비롯하는데, 저는 이 특징은 '만능성(universality)'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디지털 컴퓨터가 '만능'이라는 말은 매우 다양한 부류의 기계를 무엇이든 대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p126)... 어떤 기계를 두뇌라고 부를 수 있을 경우, 디지털 컴퓨터가 그 기계를 모방하도록 프로그래밍 할 수만 있다면 디지털 컴퓨터 또한 두뇌라고 불릴 것입니다.(p127)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디지털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을까? Can Digital Computers Think? 中 


 그렇지만, 기계가 사람과 구별되지 않는 답을 낼 수 있을 정도로 프로그래밍되었다는 사실만으로(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것만으로) 지능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실제로, 존 설(John Searle, 1932 ~ )은 '중국어 방(Chinese room)'이라는 사고 실험을 통해, 많은 경우의 수가 준비되고 주어진 표에 따라 응답하는 것만으로 지능을 가졌다고 예단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의 결과값만으로 지능유무를 판별할 수 없다는 존 설의 논증은 날카롭지만, 이는 인공지능에게만 따끔한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이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다른 동물에 비해 빠른 학습 능력을 가진다는 결과값을 통해 답한다면, 우리 역시 '먼저 등장한 지능'에 불과한 것은 아닐런지.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지능만이 가진 고유의 특질은 무엇일까. 어쩌면 지능(知能)이란 '새로운 사물 현상에 부딪쳐 그 의미를 이해하고 처리 방법을 알아내는 지적 활동의 능력'이라는 명사적 의미가 아니라, '시행착오 - 피드백'의 속도(velocity)라는 동사적 의미가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식물, 동물, 인간, 기계 모두 각자가 가진 뇌(또는 CPU)에서 빠르게 연산하고, 망각곡선에 따라 연산결과가 소멸되기 전 또 다른 연결을 통해 이를 저장, 축적할 수 있다면 지능은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지능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일 수도 아니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제 주장은 인간 정신의 행동을 매우 비슷하게 흉내 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계는 이따금 실수를 저지를 것이며 이따금 새롭고 매우 흥미로운 진술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 가치는 참인 진술의 빈도가 더 클 것으로 기대된다는 사실에 있으며 진술이 정확한지 여부와는 무관할 것입니다.(p116)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지능을 가진 기계라는 이단적 이론 Intelligent Machinery a Heretical Theory 中


 튜링 테스트는 다음과 같은 두 명제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1) 사람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2) 기계가 사람과 같은 결과를 계속 보일 수 있다면 기계는 지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앨런 튜링은 이로부터 기계 역시 사람과 같은 능력을 보일 수 있음을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에서 밝힌다. 앨런 튜링의 논문은 오늘날의 인공지능 연구에 선구적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 인간의 지능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는 점이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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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7-24 2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팔자에도 없는 인공지능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얇은 지식으로 보면 인공지능은 아직 허구라고 보입니다.
단편적인 예로 알파고에 이식된 알고리즘과 학습은 다른 인공지능에 전의되지 않습니다. 다른 인공지능에 이식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요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0-07-25 04:4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나니 어쩌면 우리 모두는 과학이 광고하는 무한한 발전과 결과를 낙관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앨런 튜링 지음, 노승영 옮김, 곽재식 해제 / 에이치비프레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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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링 테스트에서는 지능이 과연 무엇이냐에 대한 문제는 잠시 젖혀 놓는다. 대신에 기계가 하는 말이 사람이 하는 말과 얼마나 구분하기 쉬운지 어려운지만 따진다. 그리고 만약 기계와 대화할 때 기계가 하는 말이 사람의 말과 아주 비슷해서 구분되지 않는 정도라면 기계가 마치 사람 같다고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자명하므로, 마치 사람 같아 보이는 이 기계도 지능 같은 것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바로 튜링 테스트의 핵심이다.(p15) <앨런 튜링 - 지능에 관하여> 해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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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찐 2020-07-07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겨울호랑이 2020-07-07 17: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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