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세 가지 방식 중의 하나로 - 자연발생적으로 부모 중 한쪽으로부터, 부모 양쪽으로부터 - 가능하다. 그가 자연발생을 믿었다는 것은 그의 수중에 있었던 관찰 방식들로 보건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부모 중 한쪽에 의한 무성생식은 식물들에서, 그리고 식물들처럼 고착된 동물들에서 발생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방식이 부모 중 수컷의 기여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암컷이 제공한 물질에 일정한 형상을 각인하는 것이라는 결론 쪽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_ W.D. 로스, <아리스토텔레스>, p160


 자연발생설은 고대는 물론 중세 말기까지도 널리 신봉되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건조를 시켜도 습해지는 것이나 습하게 해도 건조해지는 것은 모두 동물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잘못된 학설은 16 ~ 17세기에 유럽을 풍미한 탐구 정신에 밀려 그다지 오래 버티지 못했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p15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 ~ 1895)는 실험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5 ~ BC 322)의 자연발생설을 비판한다. 근대 과학의 합리주의 영향으로 실험조건을 통제하고, 조건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는 실험은 논리적으로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 파스퇴르의 실험 또한 과학적 합리성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랜 이론을 폐기시키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지구상의 어떤 장소에서 채취하든 소량의 공기는 임의의 침출액 속에서 미생물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우선 완전히 투명한 유기물의 침출액을 선택합니다. 이 침출액은 온도가 15 ~ 25도로 유지되면 그 다음날에 완전히 흐려질 만큼 변질되기 쉬운 것입니다. 이 대단히 변질되기 쉬운 침출액을 플라스크에 일정량 담고 플라스크의 목을 길게 늘여뜨린 다음 액체를 끓입니다.... 지금 이 플라스크의 목을 깨뜨립니다. '슈'하는 소리를 들으셨겠지요. 공기가 세차게 들어가고 있는 소리입니다. 플라스크 안이 진공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 플라스크를 봉합니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p168


 만약 자연발생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액체는 변질할 것이고, 변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변질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결과를 말씀드리면 이 플라스크들 가운데 몇 개에서는 미세동물이나 곰팡이가 결코 발생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본래 상태를 유지하였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자연발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p169


 도대체 어떤 경우에 변질하지 않은 플라스크가 제일 많이 나옵니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먼지가 많은 플라스크가 제일 많이 나옵니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먼지가 많은 거주지역이나 습기가 많은 저지대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든지, 또는 지하 깊숙이 내려가는 경우 입니다.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p170


 그렇지만, 단순히 과학적 합리성 또는 실험이라는 방법만으로 성과를 이룰 수 있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당대 학자들의 기준에서는 누구보다도 관찰과 사례를 중시했던 학자임을 생각해 본다면, 이를 과학적 합리주의라는 사상의 성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파스퇴르에게 프라스크와 가열시킬 수 있는 도구, 미생물을 발견할 수 있는 현미경 등이 없었다면, 그는 자연발생설을 과연 그처럼 비판할 수 있었을까? 반면, 같은 도구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주어졌더라도 그는 같은 주장을 했을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역사의 발전 단계에서 강조되어온 사상의 변화 만큼 도구의 변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도구의 발전이 가져온 적절한 때(時)와 사상이 만났을 때 비로소 역사가 이루어짐을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비판>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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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을 다루다 보면 자주 겪는 일이 시작과 끝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식물은 반으로 갈라놔도 뿌리는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 위를 모두 잘라낸 나무의 둥치는 다시 온전한 나무로 자라기 위한 시도를 매년 하고 또 한다... 전체가 하나로 기능을 하는 동물들과 달리 식물은 모듈로 만들어져서 전체는 모든 부분의 합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무는 전체를 모두 벗어던진 후 대체할 수 있고, 몇 백 년에 걸쳐 나무들은 평생 그 일을 되풀이해왔다. 결국 나무는 살아 있는 것이 너무 값비싸질 때 죽는다. _ 호프 자런, <랩 걸>, p216


 호프 자런(Hope Jahren, 1969 ~ )의 <랩 걸 Lab Girl>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의 삶을 다룬 에세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전공인 식물학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또한, 과학계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여성으로 느끼는 어려움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사회 문제를 다룬 책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여러 관점을 담고 있으면서도 책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작가가 주제의 무게 중심을 잘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랩 걸>안에는 어떤 모습이 담겨있을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함께 읽을 책들과 함께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먼저, 교양 과학서로서의 <랩 걸>은 우리에게 식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소개하는 책이다. 식물학자인 저자는 동물과 다른 생명체로서 식물을 바라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당연하게도 동물과는 달리 식물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식물을 진화가 덜 된 생명체로 단정짓지만, 저자는 다르다. 저자는 동물과 다른 식물의 '다름'을 말한다. 동물들은 움직임(動)을 통해 공간(Space)을 살아가지만, 식물들은 정(靜)적으로 시간(Time)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식물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이 보인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실험을 위해 우리는 식물과 동물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즉, 식물 조직의 대부분이 대체 가능하고 융통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필요하면 뿌리가 줄기가 되고, 그 반대 현상도 일어난다. 하나의 배아를 조각 내도 같은 식물을 여럿 얻을 수 있기도 하다. 그것들은 유전자 청사진이 완전히 동일하다. _ 호프 자런, <랩 걸>, p154


 <랩 걸>에서 말하는 이와 같은 '다름'은 다음 주제와도 연결되지만, 그 전에 보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짚고 넘어가자. <랩 걸>에서는 동물과 식물의 차이부터 시작해 식물의 특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만, 글자로만 설명되어 독자들이 이를 받아들이는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점을 <DK 식물 대백과 사전>에 나오는 상세한 사진과 설명을 통해 보완한다면, 내용이 보다 명확하게 다가온다.


 눈 속에서 사는 식물들에게 겨울은 여행이다. 식물은 우리처럼 공간을 이동하면서 여행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건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견뎌내면서 시간을 통한 여행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은 특히 긴 여행이다. _ 호프 자런, <랩 걸>, p154


[사진] <DK 식물 대백과 사전> 中

 

 히아신스와 대부분의 밑뿌리 식물들은 계절적으로 건기가 있는 지역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지역은 비가 많이 내리는 봄이 지나면 긴 여름 가뭄이 찾아온다. 수축근은 온도가 더 서늘하고, 건조에 덜 취약한 땅속으로 알뿌리를 더 깊이 끌어당긴다. 봄에 꽃이 피는 알뿌리는 여름 동안 건조하게 유지되면서 뿌리가 완전히 쪼그라들기도 한다. 겨울 우기가 찾아오면 다시 뿌리가 자라고 식물은 이듬해 봄에 꽃 피을 준비를 마친다.  _ DK <식물> 편집위원회, <DK 식물 대백과 사전>, p37


  다른 한 편으로 <랩 걸>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 곳곳에는 과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인 '여성' 과학자로서 겪어야 하는 차별과 어려움이 담겼다. 식물과의 차이를 인정해야 연구가 가능한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계 주류와의 갈등이 담긴 내용은 일종의 모순상황이다. 그리고, 저자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한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로잘리드 플랭클린(Rosalind Elsie Franklin, 1920 ~ 1958). DNA 발견에 거의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은폐된 그녀의 삶은 과학자 집단의 폐쇄성과 모순을 잘 드러낸다. 그리고,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는 잊혀진 과학자 프랭클린의 삶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려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연장선상에서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모두 받은 유명한 마리 퀴리(Maria Sklodowska-Curie, 1867 ~  1934)와 영국 중심의 물리학계의 중심 뉴턴(Sir Isaac Newton, 1643 ~ 1727)의 물리학의 종말을 고한 독일계 유태인 출신 과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 평전도 비주류 과학자들의 어려움을 알게 해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가볍게 읽고자 한다면, 지식인 마을의 <퀴리 & 마이트너 : 마녀들의 연금술 이야기> <나가오카 & 유카와 : 아시아에서 과학하기>가 관련 주제를 생각하기에 좋을 책이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보낸 4년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듯했다. 남자 등료들보다 두 배는 더 능동적이고 전략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나는 박사학위 3년차부터 교수 자리에 지원했고, 빠른 속도로 성정하는 주립대학인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채용 제의를 받았다. _ 호프 자런, <랩 걸>, p68


 내 사무실과 종잇장처럼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휴게실에서 매일 아침 10시에서 10시 30분 사이에 내 성적 취향이나 어릴 때 겪었을지 모르는 트라우마에 관해 벌어지는 토론을 듣게 되는 영광을 누린 결과, 나는 여자 교수들과 과에서 일하는 여성 비서들은 학계의 천적과 같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_ 호프 자런, <랩 걸>, p105


  마지막으로 <랩 걸>안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저자는 자신의 삶과 자신의 연구를 분리시키지 않는기에, 독자들은 <랩 걸> 안의 과학이 우리 삶과 멀리 떨어진 지식이 아닌 우리 삶의 지혜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책이 주는 이러한 다양한 매력이 <랩 걸>이 인기를 끌게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랩 걸>안의 여러 모습을 정리하다보니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 ~ 1996)이 떠오르게 된다. 과학을 통해 생명에 대한 사랑과 인류 평화를 말하던 과학자이자 작가. 비록 전달하는 메세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과학이 딱딱한 학문이 아니라 사람의 숨결이 담긴 학문이라는 것을 알려준 칼 세이건 처럼 호프 자런도 <랩 걸>을 통해 과학과 사람을 함께 보여주려 했음을 정리하면서 깨닫게 된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여러 내용을 알차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랩 걸>은 미니 쿠퍼와 같은 느낌의 책이라 평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내게 제공해 준 것이 과학이었다. _ 호프 자런, <랩 걸>, p18


 현재의 모든 설정을 고려하면, 우주는 영원히 확장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태양계와 그 너머 곳곳의 여러 세계들에 안전하게 흩어져 있을 우리의 먼 후손들은, 그들이 공유한 유산, 그들의 고향 행성에 대한 관심, 그리고 우주를 통틀어 다른 생물은 몰라도 인류만은 지구로부터 유래했다는 인식으로 한 가족이 될 것이다. _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p423


 상호 불신의 망령은 우리로 하여금 지구도 하나의 행성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케 하여, 모든 국가를 죽음을 향해 서둘러 행진케 할 뿐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저지르고 있는 일들은 너무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짓거리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초래될 문제의 심각성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p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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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9-14 0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꼼하고 정성 가득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미니 쿠퍼 느낌이라고 비유해놓은신 것이 재미있어요.

겨울호랑이 2020-09-14 07:23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nine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페크(pek0501) 2020-09-14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랩 걸, 4백쪽이 넘네요. 그만큼 풍성한 내용이 담겨 있을 것 같아요. 이 리뷰를 읽으니 알 수 있어요.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0-09-14 12:44   좋아요 0 | URL
네. 400 페이지 정도 되지만, 어렵지 않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라 생각 됩니다. 페크님 감사합니다!^^:)

비연 2020-11-04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책 읽고 있는데, 겨울호랑이님 글을 이제야 봤네요. 저와 비슷한 느낌이신 듯.

겨울호랑이 2020-11-04 17:12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랩 걸」안의 여러 이야기 속에서 비연님도 저와 같은 인상을 받으셨다니 반가운 마음이 드네요. 비연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
 

'우리는 인간의 모든 지식에 계산의 과학을 더욱 일반적이고 철학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이 지식의 전체 체계의 범위와 정확성과 통합성을 반드시 증가시키게 된다는 것을 지적할 것이다.'(p87)  - 마르퀴 드 콩도르세 Marquis de Condorcet(1743 ~ 1794) -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中


<통섭 統攝 Consilience>은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 1929 ~ )의 철학인 '지식의 대통합 the unity of knowlede'의 내용이 담긴 책이다. '통섭'이라는 개념은 얼마전 우리 사회에 불었던 인문학 열풍과 더불어 널리 사용된 개념이기에 별도의 설명은 필요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제목이 유명한 책 중 다수가 실제 읽히지 않는다는 말처럼 출간된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통섭>이라는 용어를 저자는 어떤 의미에서 사용하게 되었는지 이번 페이퍼를 통해 살펴보자. 먼저,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이 '통섭'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오니아의 마법(Ionian Enchantment)에 걸린 것이다. 이 표현은 물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제럴드 홀턴(Gerald Holton)이 처음으로 쓴 말로서 통합 과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믿음을 뜻한다. 즉 세계는 질서 정연하며 몇몇 자연법칙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p34)


  '과학은 기존 종교와 달리 수많은 시험들을 견뎌낸 탄탄한 근거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해방되고 확장된 종교이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이오니아 마법의 원천이라고 믿는다. 계시보다 객관적 실재에 대한 탐구를 선호하는 것은 종교적 갈망을 만족시켜 주는 또다른 방식이다.'(p37)


 그럼 윌슨과 함께 '통섭'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사진] 윌슨 (출처 : 영화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2001))



1. 통섭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학문의 세분화는 학자들의 인위적인 구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을 주장며, 통섭은 바로 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을 의미한다. 통섭을 통해 물리 법칙을 근간으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통합될 것이며, 사회 과학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인간 지성의 가장 위대한 과업은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해 보려는 노력이다. 지식의 계속적인 파편화와 그것으로 인한 철학의 혼란은 실제 세계의 반영이라기보다는 학자들이 만든 인공물일 뿐이다...통섭(統攝, consilience)은 통일(統一, unification)의 열쇠이다... 통섭을 입증하거나 반박하는 일은 자연과학에서 개발된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자들의 노력이나 수학적 추상화에 고정되어 있기보다는 물질 우주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잘 작동해 온 사고의 습관을 충실히 따르려는 것이다.'(p40)


 '통섭에 대한 믿음은 자연과학의 근간이다. 적어도 물질세계에 대해서만큼은 개념적 통일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자연과학 분과 사이의 경계들은 혼성 영역들이 계속 생겨나면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으며 그 영역들에서 조용하게 통섭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영역들은 물리화학에서부터 분자유전학, 화학생태학 그리고 생태유전학에 이르기가지 다양한 수준의 복잡성을 가로지르며 형성된다... 인간이 물리적 인과 관계에 따른 사건들에 따라 생동하는 존재라면 사회과학과 인문학은 왜 자연과학의 통섭에서 면제되어야 하는가?'(p43)


 '그렇다면 통섭 세계관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현상들 - 예컨대, 별의 탄생에서 사회 조직의 작동에 이르기까지 -이 비록 길게 비비 꼬인 연쇄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물리 법칙들로 환원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이 공통 유래를 통해 모든 다른 생명들과 친척 관계에 있다는 생물학적 결론은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p460)


2. 통섭은 어떻게 가능한가?


  <통섭>의 본문에서는 자연 과학 내에서의 통섭부터 시작하여, 과학과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윤리와 종교 등이 어떻게 통섭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 중에서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연결고리를 살펴보자.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meme)의 개념을 만든 것처럼, 윌슨은 '모방자'의 개념을 사용한다. 모방자의 '반응 양태(알려진 모든 생존 환경 내에서 유전자들의 표현형)'를 통해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상호 작용이 발생한다. 그리고, 인간의 사회적 행동도 '모방자', '반응양태'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인문학 / 사회과학 역시 과학의 탐구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가 제시한 모방자의 정의는 좀 더 제한되어 있으며 도킨스의 정의와 다소 다르다. 그것은 이론 생물학자 찰스 럼스든(Charles J. Lumsden)과 내가 1981년에 유전자, 문화 공진화에 관한 최초의 완전한 이론을 주창하면서 제시한 정의이다. 우리는 문화의 단위(지금은 모방자라고 불리는)가 의미 기억의 연결점과 그것의 뇌 활동 상응물이라고 주장했다. 연결점은 개념, 명제, 도식의 여러 수준들에서 존재할 수 있으며 아이디어나 행동, 인공물의 복잡성을 경정한다. 그리고 문화 속에서 이런 복잡성들이 유지되는 것을 돕는다.'(p247)


 '나는 과학과 인문학 사이에 놓인 다리의 개념적 종석(宗石)을 "유전자에서 문화까지"라는 문구로 표현했다... 우리는 유전자, 문화 공진화를 포괄하기 위해서 상호 작용에 관해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상호 작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반응 양태(norm of reaction) 개념을 알아야 한다. 이 개념은 다음과 같이 쉽게 이해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아니면 미생물이든 한 종을 선택하라. 그리고 그것의 특정 형질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 혹은 유전자 집단을 고르라. 그런 후에 그 종이 생존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열거해라. 이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선택된 유전자나 유전자 집단에 따라 규정된 그 형질이 변이를 일으킬 수도 있다. 생존 가능한 모든 환경에서 그 형질의 전체 변이가 그 종의 그 유전자 혹은 그 유전자 집단의 반응 양태이다.(p249)..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이러한 상호작용은 인간 생물학의 모든 범주 내에서 일어난다. 즉 인간의 사회적 행동도 이런 상호 작용의 산물이다.'(p250)


3. 왜 통섭이어야 하는가?


 환경 문제 등 우리가 직면한 여러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내야 하며, 이를 위해 지금 우리는 학문의 통섭을 이루어 내야 한다.


 '우리는 인류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인지를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 다른 생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 길을 개척해 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곳에 있다. 아무도 이러한 상황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았으며 아무도 우리를 지켜봐 주지 않았다. 우리의 미래는 순전히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을 밝혀야 한다.'(p506) 


4. 통섭의 결과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학문간의 통섭의 결과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통합될 것이며, 사회과학은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통섭은 과학을 중심으로 한 통합의 과정이다.


 '지식의 통섭을 장려하게끔 작동한다면 나는 문화의 영역도 결국에는 과학, 즉 자연과학과 인문학 특히 창조적 예술로 전환될 것이라고 믿는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21세기 학문의 거대한 두 가지가 될 것이다. 반면 사회과학은 계속해서 세분화되면서 그중 어떤 부분은 생물학으로 편입되거나 생물학의 연장선 위에 있게 될 것이며 그 밖의 부분들은 인문학과 융합될 것이다. 사회과학의 분과들은 계속해서 존재하겠지만 결국 그 형태는 극단적으로 변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철학, 역사학, 윤리학, 비교종교학, 미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은 과학에 접근할 것이고 부분적으로 과학과 융합할 것이다. 나는 다음 장들에서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 자세히 논의할 것이다.'(p45)


 '학자들은 행동과 문화를 다룰 때 개별 분과들에 적절한 여러 유형의 설명들, 예컨대 인류학적 설명, 심리학적 설명, 생물학적 설명 등을 언급하는 습관이 있다. 나는 본래 단 한 가지 부류의 설명만이 있다고 논증했다. 그 설명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수준의 시공간과 복잡성을 넘나들어 결국에 통섭이라는 방법으로 여러 분과들의 흩어진 사실들을 통일한다. 통섭은 봉합선이 없는 인과 관계의 망이다.'(p459)


 결국, 저자인 윌슨은 <통섭>을 통해 학문간의 구분은 학자들의 임의적인 구분에 불과하며, 과학을 중심으로 학문간 통합을 통해 현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한 윌슨의 통합 이론은 한편으로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 성격을 가진 과학의 '제국주의(帝國主義)'적인 면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 Sapiens>에서 주장한 '과학 - 제국주의 - 종교 - 자본'간의  관계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 같기도 하다.


 '한마디로,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그 대신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과학의 발견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특히 두 가지 힘이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하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다.'(p389)




[그림] 로마 제국의 팽창 ( 출처 : 위키백과) 

 

  윌슨의 이런 통합이론에 대해 반론(反論) 역시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소 이른 시기에 과학의 분화(分化)'를 언급한 리케르트의 저술 중 일부를 살펴보면, 학문의 성격을 고려한 학문의 구분은 불필요한 경계만은 아니라는 생각 또한 충분한 논리가 있다.  

 

'문화라는 개념은 일반화하는 문화관학에서도 객체의 선택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이 객체의 개념 구성이나 서술을 가치 연관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문화과학에서 개념의 보편성은 한계를 가지고 있고, 이 한계는 문화 가치에 의존적이다. 그러므로 문화과학에서 보편 개념적 관계의 확정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만약 이 연구가 문화과학적 의의를 상실하지 않으려면 역시 언제나 비교적 보편성이 적은 개념을 사용해야만 할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도 자연과학과 문화과학 간에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것이다.'(p193) -하인리히 리케르트 Heinrich Richert(1863 ~ 1936) - <문화과학과 자연과학> 中


 2010년대 스마트폰 (Smart Phone)으로 대표되는 21세기 IT 혁명 속에서 많은 기능이 통합되어 왔다. 전화기 안으로 컴퓨터, CD player, 리모콘, TV, 비디오가 들어왔고, 조만간 5G가 활성화된다면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주변의 많은 것들이 통합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식의 통합이 언급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된다.(형이하학적 形而下學 변화가 형이상학 形而上學적인 요소를 변화시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통합에 대한 부작용 역시 우리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통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지만, 학문의 미래와 우리의 미래를 생각할 계기를 준다는 면에서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사진] 스마트폰 (출처 : 지디넷)


[그림] 사물인터넷 (IoT) (출처 : 삼성전자 블로그)


PS. <통섭>에서는 윌슨이 제시한 신인류(新人柳)의 모습이 제시되고 있다. '호모 프로테우스(Homo proteus)'라 불리우는 이 신인류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 ~)의 <호모 데우스 Homo Deus>에서 언급된 신인류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작은 결론 : 윌슨은 같이 차를 마실만한 분이라 생각한다... (<호모 데우스> 페이퍼 참고)


 '면제주의자(exemptionalist)적 관점이다. 이 자아상에서 우리 종은 자연 세계와 떨어져서 존재하며 그에 대한 지배력을 갖는다. 우리는 다른 종을 규제하는 엄격한 생태학 법칙에서 면제되낟. 인류가 성장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특별한 지위와 독창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는 거의 없다.... 면제주의자로 자처한 이상 호모 사피엔스는 사실상 새로운 종이 되었다. 나는 이런 '변신자 인간(shapechanger man)'을 '호모 프로테우스(Homo proteus, 프로테우스(Prote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신으로 자유자래로 변신하는 능력과 예언의 힘을 가졌다.)'라고 명명하려고 한다.'(p478)


  '생명의 연약함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면제주의는 반드시 실패한다. 과학적이고 기발한 천재가 나타나 계속되는 위기를 해결할 것을 기대하고 계속 밀어붙이는 것은 지구 생물계의 쇠퇴 위기 또한 유사하게 취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것이 있다고 믿는다면 지구는 쓰레기장이 되어 버리고 인류가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이 되어 버릴 것이다.'(p481)



'신인류 新人類, New Type'가 말 나온 김에 아주 오래 전 노래(1994)를 하나 올린다. 또한,신인류가 나오는 대표적 애니메이션으로는 <기동전사 건담 機動戦士ガンダム>(1979)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페이퍼가 너무 늘어져서, 이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별도의 페이퍼로 쓸 계획이다...


[그림] 기동전사 건담 ( 출처 : http://monsterdesign.tistory.com/180)

 

'지금까지 우리는 점점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 고대의 신들과 경쟁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도구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능력에서도 고대의 신들을 능가하는 초인간을 창조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신성(神性)은 사이버 공간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이 되어 그 경이롭고 경이로운 발명품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p76)... 건강, 행복, 힘을 추구하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될 때까지 자신들의 모습을 한 번에 하나씩 점진적으로 바꿔나갈 것이다.'(p77)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Homo Deus>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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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1211 2017-07-08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겨울호랑이 님의 가늠이 불가능한 깊이있는 글을 통해 저의 가벼움을 반성하고 있습니다..재미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8 20:49   좋아요 1 | URL
^^: 과찬이세요. 제가 사상가도 아니고 다른 깊이있는 글을 옮겼을 뿐인걸요. 그저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ys1211님 행복한 저녁 되세요^^:

2017-07-09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9 0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7-07-10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항상 겨울호랑이 님의 글은 안구정화가 돼서 좋습니다^^ 알라딘 서재 콘텐츠의 질을 격상해 주는 서재 중 하나라서 무척 고맙게 생각하는 1인입니다. 이런 페이퍼 많이 발행해 주세요!

겨울호랑이 2017-07-10 22:35   좋아요 0 | URL
^^: yamoo님의 격려 말씀에 큰 힘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역시 yamoo님의 철학 페이퍼와 리뷰 가이드로 큰 힘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