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자신의 생각이 뒤집히는 혼란에 빠졌다. 그까짓 사탕을 얻어먹기 위해서 말 노릇을 하는 아이들의 비굴을 미워했고, 얻어맞고도 아무런 대항을 하지 못하는 비겁을 쥐어박고 싶었었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모두 소작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은 너무나 단순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끼어든 것이 아이들을 도운 게 아니라 오히려 나쁘게 만든 것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재난을 묻다 - 반복된 참사 꺼내온 기억, 대한민국 재난연대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서해문집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기 일 년 전인 2013년에 일어난 태안해병대캠프 참사. 모든 것을 덮기에만 급급했기에 결국 일년 뒤 대재난을 맞이했음을 확인한다. 기출문제도 풀지 못한다면, 새로운 문제도 풀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원한다면, 세월호를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7주기에...

태안해병대캠프 참사의 고을 새기기 위해 7월 18일로 지정해정부가 추진해모던 학생안전의 날‘은 슬그머니 폐기됐고 4월 15일이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했다. 유족들은 청소년 대상 체험활동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탐욕과 자본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요청했다. 재판이 중요했던 건 우리 아이 목슴값에 대한 복수가 아닌 재발방지를위한 일벌백계였다. 사고현장에서 대규모 모래채취가 이뤄져 바다 밑바닥이 고르지 않고 갯골(웅덩이)이 이 형성돼 참사가 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자연적인 갯골이라면 사고를 예측하기 어렵고 불가항력적인 면이 많지만, 인위적인 것이고 캠프 관계자가 모래채취를 인지하고 있었다면 사건은 정반대로 진행될 공산이 컸다. 또한 캠프 참가비가 전년 대비 50퍼센트나 인상돼 학교 관계자와 캠프 간 거래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확대되지 않았다. 경기도의 한 섬유업체가 사고업체의 실질적 소유주라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수사대상에도 모르지 않았다. 해병대캠프에 공유수면 사용허가를 내주고 1년간 점검조차 하지 않은 태안군과, 수상 안전시설인 보트 계류장이 필요 없다며 철거를 용인한 태만해경 담당자들은 형사처분 대상에서 제회됐다. 감사와 관련해 책임을 진 공무원은 단 한 명도없었다. 관리감독기관인 태안군과 해경이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 사고업체는 직접적인 책임성을 부인하며 사업을 계속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대책의 특단의 카드로 시작한 동토차수벽에 대해 2016년 여름 완전히 동결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발표했다. 전국지는 그다지 크게 다루지 않았지만 후쿠시마민보(7월 20일)는 1면 톱으로 도쿄전력의 배신을 보도했다. 그리고 녹아내린 핵연료의 상태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완전히 '속수무책'인 것이다._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 기술 총력전>, p387


  지난 13일 일본은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충격적인 결정이기는 하지만, 사실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降)의 글에서 보듯 오염수의 완전 동결이 어렵다면, 다음 수순이 방류가 될 것이기에 이는 몇 년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책이 세워질 수 없었던 것은 원자력이 갖는 타고난 '통제불능'의 위험이기 때문이리라. 


 본래 원전은 민생용 상품으로는 치명적인 중대 결함을 몇 가지나 갖고 있다. 경수로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연료인 우라늄 채굴에서 정기 점검에 이르는 과정에서 노동자 피폭이 불가피하다는 점, 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오염과 방사선오염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 사용 후 리사이클은 커녕 사람이 접근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폐로가 남고, 수십만 년에 걸쳐 위험한 방사선을 방출하는 사용 후 핵연료의 처분방법 미해결이 그것이다. 보통의 상품이라면 이 중 어느 것 하나만 있어도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_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 기술 총력전>, p379


  원자력 발전이 가져오는 위험은 이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1986),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2011)를 통해서 입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이 계속 사용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군사력 때문이다. 이는 일본이 원전 사고 이후에도 핵탄두 6,000개를 만들 수 있을만큼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단순한 천재지변으로 볼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무책임한 모습을 보노라면,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을 말하는 그들의 모습과 다른 이중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일본식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과학 기술 총력전>에는 후쿠시마와 관련된 이야기가 간단하게 다루어지지만,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은 이 주제에 대해 상세하게 다룬다. 이와 관련해서도 내용 정리를 해야겠다...


 원자력의 '군사 이용'과 '평화 이용'이라는 이분법은 전후 널리 언급돼왔다. 그러나 본래 군사기술과 비군사기술의 경계는 애매한 것이고, 전후 세계에서 최첨단 기술이 군산복합체에서 다뤄지고 있는 한 양자를 말끔히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나카소네의 발언은 핵기술이 원폭 제조로 시작했고, 비군사적/산업적 이용이라고 해도 기술 보유 자체가 대국주의 내셔널리즘을 불러일으키고 국제 사회에서 발언력 강화를 가져온다는 극히 정치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_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 기술 총력전>, p363


 1988년에 체결돼 2017년까지 유효한 신미일원자력협정에는 지정된 시설에서의 재처리 실시를 사전에 승인하는 '포괄적 사전 합의'가 삽입됐다. 미국의 양해가 사실상 불필요해진 것으로, 그 결과 플루토늄 사용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일본의 재처리와 증식로 건설 노선이 연명됐다. 이는 비핵 보유국에서는 일본에만 허용된 '특권'이다. 도카이무라의 시설과 해외 위탁으로 생성된 일본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이미 48t에 달한다. 국자원자력기구(IAEA) 지침에서는 핵무기 1개 만들 수 있는 플로토늄의 양은  8kg으로 돼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무려 6,000발의 플루토늄 폭탄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재료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된다._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 기술 총력전>, p3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llowe‘en 만성절. 만성절은 겨울의 돌아옴, 혼돈, 산 자 들의 세계와 죽은 자들의 세계의 경계가 무너짐을 의미하며 죽은 자들의 축제인 삼후인 samhuinn(11월 1일에 벌어지는 켈트의 축제인데 이 축제의 전야에는 저승 시드헤스의 문이 열려서 죽은 자들이 날뛰게 됨)을 뜻하고, 켈트에서는 새해의 시작을 뜻한다._ 진 쿠퍼,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p155

아파트 단지 끝에 있는 분리수거장에 다녀오다보니,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러 개의 야광봉이 번쩍여서 지세히 보니 할로윈 복장을 한 초등학교 학생들 7~8명과 학부모 두세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10월 31일 할로윈 데이다. 몇 년 전부터 할로윈 데이가 우리나라 명절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만성절의 유래를 아는 아이들은 얼마나 되며, 그 의미를 자녀에게 설명할 수 있는 부모는 과연 몇이나 될까.

속설에 따르면 섣달그믐에 잠을 자면 두 눈썹이 모두 하얗게 된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속아서 잠을 자지 않고, 행여 잠을 자는 아이가 있으년 다른 아이가 가루를 눈썹에 바른다. 잠에서 깨면 거울을 보게 하여 놀리고 웃는다._ 홍석모, 「동국세시기」, p233

우리나라에도 역귀를 물리치기 위해 동짓날에 팥죽을 끓여 먹는다든가, 섣달그믐날 묵은 세배를 하거나, 함께 밤을 새는 고유의 풍속이 있다. 그렇지만, 정작 우리의 풍속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상관도 없는 켈트 명절은 기업의 마케팅에 넘어가 챙기는 모습이 요즘의 세태인 것인지 씁쓸함을 느낀다. 이러한 씁쓸함은 아마 10일 후에 빼빼로 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느끼겠지만... 할로윈 데이에 하나의 유령, 공산주의라는 유령 대신 자본주의 유령이 활개치고 있음을 실감하는 밤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0-11-01 0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최고네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0-11-01 05: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람돌이님 평안한 일요일 보내세요! ^^:)
 

 보내주신 설계 의뢰 편지를 기쁜 마음으로 읽어보았어요. 오랜만에 직접 손으로 쓴 의뢰 편지를 받아서 그런지 가슴속에 등불이 켜진 듯이 따뜻한 기분을 느끼면서 여러 번 되풀이해 읽어보았습니다(p33)... 손으로 쓴 편지에서는 글쓴이의 체온과 숨결이 분명하게 전달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점을 느끼는 것이 설계할 때 중요한 단서가 될 듯싶고요.(p34)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中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パン屋の手紙: 往復書簡でたどる設計依賴から建物完成まで >에서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 (中村 好文)는 빵집 주인 진 도모노리 (神 幸紀)로부터 빵 가게의 설계를 수락하면서, 그의 손 편지에 깊은 감동을 받았음을 밝힌다. 주택 건축가인 나카무라에게 주택의 의미는 단순한 생산품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신뢰의 축적물이기에, 정성어린 의뢰인의 손 편지는 더욱 남달랐을 것이다. 또한, 의뢰인 진에게도 자신의 집 옆에 있는 빵 가게는 소중한 곳이기에, 그 역시 간절하게 자신과 뜻이 맞는 이를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진의 마음은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 1887 ~ 1965)가 잘 표현한 듯하다. 


 설계 의뢰자와 건축가 사이에는 무엇보다도 서로의 마음이나 입장을 존중하고 경의를 표하는 신뢰관계가 쌓여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손으로 쓴 편지가 큰 도움이 되었다.... 담백한 마음으로 편지를 주고받은 행위를, 하나하나 돌을 쌓아올리는 석조건축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돌이지만 그것들이 쌓이고 나면 견고하고 존재감이 있는 건물이 된다.(p6)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 머리말 - 中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소유의 안전하고 영구적인 집에서 안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꿈이 도저히 실현 불가능할 때, 사람들은 감정적 히스테리를 일으키기도 한다.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마치 유언을 남기는 것과 흡사하다(p235)... 내 집을 짓는 때가 왔을 때, 그것은 석공이나 기술자의 시간이 아니라 자기의 인생에서 최소한 하나의 시 詩를 짓는 시간이다... 왜냐하면 집은 경력의 완성이며... 생활로 인해 많이 늙고 지쳐 류머티즘과 죽음... 그리고 가당치 않은 생각에 사로잡혀 버리는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p237) <건축을 향하여> 中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더라도 좋은 시절이 없는 것처럼, 이들의 작업기간에도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한 번뿐이었지만, 이들의 작은 어긋남은 건축 철학과 관련된 부분이었기에 큰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처음의 만남처럼 편지를 통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그동안에 주고받은 편지를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설계나 공사 내용에 대해서 의견이 대립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딱 한 번 사소한 갈등이 있었던 것 외에는 대체로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점차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신뢰관계가 착실하게 구축되어갔다.(p5)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 머리말 - 中


 저는 건축가이니 역시 구조, 성능, 사용하기 편리한 정도나 내구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요.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기능성이나 합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이와 같은 기능성이나 합리성이 뒷받침된 건축이야말로 '아름답다'는 신념이 제 속에 있고요... 여기서 잠시 멈춰서서 생각해보면, 혹시 도모노리 씨와 마리 씨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분위기의 건축' '화장의 건축'이 아닐까 하는 점이에요. 이런 관계로 저는 '오래된 느낌' '소박한 느낌' '작은 집다운 모습'을 내기 위해 연출하는 것 역시 본말전도가 아닐까 생각해요. 이것도 일종의 '화장'이기 때문이죠. 이 점을 확실하게 이해해주었으면 해요.(p132)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中


 건축가의 건축철학과 의뢰인의 방향이 맞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충분히 내보이며, 이해를 구한다. 오해를 풀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더 신뢰관계를 다져가는 모습 속에서, 짧은 건축기간이 인생의 축소판임을 깨닫게 된다. 결혼을 통해 부부가 되어 각자의 삶을 지어내는 것도 긴 건축작업이기에, 각자의 삶의 철학을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완성해 가는 것이 부부에게 주어진 미션(mission)이 아닐까.


 '분위기의 건축' '화장의 건축'이란 말을 들으니 가슴 한구석이 찔립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의 질문은 깊은 의미가 담긴 말이 아니라 나카무라 선생님이 설계한 건물의 그 부분이 좋다는, 결국 표충적인 질문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엄하게 지적해주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나카무라 선생님과의 사이에 틈이 생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오히려 나카무라 선생님의 감각에 가까워지고 싶고 더욱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지요.(p135)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中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를 통해서 결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면, 다른 한 편으로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시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맞게 된 비대면(Un Contact)의 시대. 이 사태 이후에 분명 사회는 5G를 기반으로 자율주행, 드론을 활용한 무인택배, 사물인터넷(IoT), 로봇을 활용한 제조업, 의료제도 개편 등의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가 우리에게 긍정적일까? 현재까지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이 언택트 사회에서 유일하게 이득을 보는 존재는, 매년 베르사유궁에 초대되는 IT 스타트 기업과 대기업인 셈이다. 아직 인터넷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인구도 수백만 명이나 되지만, 전 세계가 '초연결 사회'로 진입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에릭 슈미트 전 구글 회장은 지난 5월 10일, 그는 미국 CBS 뉴스 방송에서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가격리 기간 동안 우리는 10년을 앞서 성장했다. 이제 인터넷을 쓰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중요해졌다. 인터넷 없이는 일도, 일상생활도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만약, 그러한 삶이 우리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면, 우린 다른 길을 살펴봐야할 것이다.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에서는 자신의 꿈을 혼자 힘으로는 이룰 수 없기에, 건축가의 힘을 빌려 함께 만들어가는 의뢰인과 건축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건축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분업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가 작업을 수행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닌, 감정(sentiment)의 발로라는 사실은 자본주의의 기원을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 ~ 1790) 의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보다 먼저 쓰여진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으로 올라가야함을 일깨운다. 이들 두 권의 책을 종합해서 보면, 애덤 스미스에게 이기심은 타인의 동감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인간이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행/불행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요인, 원리가 인간의 본성 속에 명백히 내재하여 있다... 타인의 슬픔을 보고 슬픔을 함께 느끼는 감정의 존재는 증명을 요하지 않는 하나의 명백한 사실이고, 그 사람이 얼마나 선하냐 유덕하냐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본원적 감정의 하나이다.(p672) <도덕감정론> 中


 인간은 항상 다른 동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단지 그들의 선심에만 기대해서는 그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가 만약 그들의 자애심(自愛心, self-love)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발휘되도록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자기가 그들에게 해주기를 요구하는 일을 그들이 자기에게 해주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들의 도움을 얻으려는 그의 목적은 더 효과적으로 달성될 것이다.(p18) <국부론 (상)> 中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고려에서 그는 활과 화살의 제조를 그의 주된 업무로 삼게되며, 그리하여 그는 일종의 무기 제조자가 된다. 그는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자기에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노동생산물 중 자기 자신의 소비를 초과하는 잉여부분 모두를 타인의 노동생산물 중 자기가 필요로 하는 부분과 확실히 교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각자로 하여금 특정 직업에 종사하여 그 특정 직업에 적합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능과 자질을 개발하고 완벽하게 만들도록 장려한다.(p19) <국부론 (상)> 中


 아직도 코로나 19의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가져온 변화가 우리에게 더 큰 위협이 된다면, 우리는 인간과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국부론>의 빵집 주인의 이기심에서 발현된 사회적 분업이 산업화, 자동화라는 극단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우리는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동감(同感)과 우리의 공동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코로나 19가 던져준 이러한 물음에 대해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에 담긴 삶의 모습은 이에 대한 답을 넌지시 던져주는 듯하다.

 

 가장 개인적인 것은 한 사람이 간직한 자신만의 비밀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개인이라는 테두리를 부수고 나눔을 요구하며, 나아가 나눔 자체로 긍정되기 때문이다. 그 나눔에서 공동체가 비롯되고, 그 나눔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p40) <밝힐 수 없는 공동체> 中


PS.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속에서 <도덕감정론>, <국부론>의 내용을 떠올릴 수 있다면, 빵집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田舍のパン屋が見つけた「腐る經濟」>는 주제면에서 좋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하겠다... <자본론> 리뷰를 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페이퍼를 갈무리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6-06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6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