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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내주신 설계 의뢰 편지를 기쁜 마음으로 읽어보았어요. 오랜만에 직접 손으로 쓴 의뢰 편지를 받아서 그런지 가슴속에 등불이 켜진 듯이 따뜻한 기분을 느끼면서 여러 번 되풀이해 읽어보았습니다(p33)... 손으로 쓴 편지에서는 글쓴이의 체온과 숨결이 분명하게 전달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점을 느끼는 것이 설계할 때 중요한 단서가 될 듯싶고요.(p34)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中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パン屋の手紙: 往復書簡でたどる設計依賴から建物完成まで >에서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 (中村 好文)는 빵집 주인 진 도모노리 (神 幸紀)로부터 빵 가게의 설계를 수락하면서, 그의 손 편지에 깊은 감동을 받았음을 밝힌다. 주택 건축가인 나카무라에게 주택의 의미는 단순한 생산품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신뢰의 축적물이기에, 정성어린 의뢰인의 손 편지는 더욱 남달랐을 것이다. 또한, 의뢰인 진에게도 자신의 집 옆에 있는 빵 가게는 소중한 곳이기에, 그 역시 간절하게 자신과 뜻이 맞는 이를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진의 마음은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 1887 ~ 1965)가 잘 표현한 듯하다. 


 설계 의뢰자와 건축가 사이에는 무엇보다도 서로의 마음이나 입장을 존중하고 경의를 표하는 신뢰관계가 쌓여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손으로 쓴 편지가 큰 도움이 되었다.... 담백한 마음으로 편지를 주고받은 행위를, 하나하나 돌을 쌓아올리는 석조건축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돌이지만 그것들이 쌓이고 나면 견고하고 존재감이 있는 건물이 된다.(p6)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 머리말 - 中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소유의 안전하고 영구적인 집에서 안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꿈이 도저히 실현 불가능할 때, 사람들은 감정적 히스테리를 일으키기도 한다.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마치 유언을 남기는 것과 흡사하다(p235)... 내 집을 짓는 때가 왔을 때, 그것은 석공이나 기술자의 시간이 아니라 자기의 인생에서 최소한 하나의 시 詩를 짓는 시간이다... 왜냐하면 집은 경력의 완성이며... 생활로 인해 많이 늙고 지쳐 류머티즘과 죽음... 그리고 가당치 않은 생각에 사로잡혀 버리는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p237) <건축을 향하여> 中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더라도 좋은 시절이 없는 것처럼, 이들의 작업기간에도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한 번뿐이었지만, 이들의 작은 어긋남은 건축 철학과 관련된 부분이었기에 큰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처음의 만남처럼 편지를 통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그동안에 주고받은 편지를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설계나 공사 내용에 대해서 의견이 대립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딱 한 번 사소한 갈등이 있었던 것 외에는 대체로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점차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신뢰관계가 착실하게 구축되어갔다.(p5)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 머리말 - 中


 저는 건축가이니 역시 구조, 성능, 사용하기 편리한 정도나 내구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요.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기능성이나 합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이와 같은 기능성이나 합리성이 뒷받침된 건축이야말로 '아름답다'는 신념이 제 속에 있고요... 여기서 잠시 멈춰서서 생각해보면, 혹시 도모노리 씨와 마리 씨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분위기의 건축' '화장의 건축'이 아닐까 하는 점이에요. 이런 관계로 저는 '오래된 느낌' '소박한 느낌' '작은 집다운 모습'을 내기 위해 연출하는 것 역시 본말전도가 아닐까 생각해요. 이것도 일종의 '화장'이기 때문이죠. 이 점을 확실하게 이해해주었으면 해요.(p132)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中


 건축가의 건축철학과 의뢰인의 방향이 맞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충분히 내보이며, 이해를 구한다. 오해를 풀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더 신뢰관계를 다져가는 모습 속에서, 짧은 건축기간이 인생의 축소판임을 깨닫게 된다. 결혼을 통해 부부가 되어 각자의 삶을 지어내는 것도 긴 건축작업이기에, 각자의 삶의 철학을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완성해 가는 것이 부부에게 주어진 미션(mission)이 아닐까.


 '분위기의 건축' '화장의 건축'이란 말을 들으니 가슴 한구석이 찔립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의 질문은 깊은 의미가 담긴 말이 아니라 나카무라 선생님이 설계한 건물의 그 부분이 좋다는, 결국 표충적인 질문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엄하게 지적해주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나카무라 선생님과의 사이에 틈이 생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오히려 나카무라 선생님의 감각에 가까워지고 싶고 더욱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지요.(p135)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中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를 통해서 결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면, 다른 한 편으로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시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맞게 된 비대면(Un Contact)의 시대. 이 사태 이후에 분명 사회는 5G를 기반으로 자율주행, 드론을 활용한 무인택배, 사물인터넷(IoT), 로봇을 활용한 제조업, 의료제도 개편 등의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가 우리에게 긍정적일까? 현재까지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이 언택트 사회에서 유일하게 이득을 보는 존재는, 매년 베르사유궁에 초대되는 IT 스타트 기업과 대기업인 셈이다. 아직 인터넷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인구도 수백만 명이나 되지만, 전 세계가 '초연결 사회'로 진입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에릭 슈미트 전 구글 회장은 지난 5월 10일, 그는 미국 CBS 뉴스 방송에서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가격리 기간 동안 우리는 10년을 앞서 성장했다. 이제 인터넷을 쓰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중요해졌다. 인터넷 없이는 일도, 일상생활도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만약, 그러한 삶이 우리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면, 우린 다른 길을 살펴봐야할 것이다.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에서는 자신의 꿈을 혼자 힘으로는 이룰 수 없기에, 건축가의 힘을 빌려 함께 만들어가는 의뢰인과 건축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건축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분업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가 작업을 수행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닌, 감정(sentiment)의 발로라는 사실은 자본주의의 기원을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 ~ 1790) 의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보다 먼저 쓰여진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으로 올라가야함을 일깨운다. 이들 두 권의 책을 종합해서 보면, 애덤 스미스에게 이기심은 타인의 동감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인간이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행/불행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요인, 원리가 인간의 본성 속에 명백히 내재하여 있다... 타인의 슬픔을 보고 슬픔을 함께 느끼는 감정의 존재는 증명을 요하지 않는 하나의 명백한 사실이고, 그 사람이 얼마나 선하냐 유덕하냐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본원적 감정의 하나이다.(p672) <도덕감정론> 中


 인간은 항상 다른 동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단지 그들의 선심에만 기대해서는 그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가 만약 그들의 자애심(自愛心, self-love)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발휘되도록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자기가 그들에게 해주기를 요구하는 일을 그들이 자기에게 해주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들의 도움을 얻으려는 그의 목적은 더 효과적으로 달성될 것이다.(p18) <국부론 (상)> 中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고려에서 그는 활과 화살의 제조를 그의 주된 업무로 삼게되며, 그리하여 그는 일종의 무기 제조자가 된다. 그는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자기에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노동생산물 중 자기 자신의 소비를 초과하는 잉여부분 모두를 타인의 노동생산물 중 자기가 필요로 하는 부분과 확실히 교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각자로 하여금 특정 직업에 종사하여 그 특정 직업에 적합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능과 자질을 개발하고 완벽하게 만들도록 장려한다.(p19) <국부론 (상)> 中


 아직도 코로나 19의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가져온 변화가 우리에게 더 큰 위협이 된다면, 우리는 인간과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국부론>의 빵집 주인의 이기심에서 발현된 사회적 분업이 산업화, 자동화라는 극단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우리는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동감(同感)과 우리의 공동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코로나 19가 던져준 이러한 물음에 대해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에 담긴 삶의 모습은 이에 대한 답을 넌지시 던져주는 듯하다.

 

 가장 개인적인 것은 한 사람이 간직한 자신만의 비밀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개인이라는 테두리를 부수고 나눔을 요구하며, 나아가 나눔 자체로 긍정되기 때문이다. 그 나눔에서 공동체가 비롯되고, 그 나눔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p40) <밝힐 수 없는 공동체> 中


PS.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속에서 <도덕감정론>, <국부론>의 내용을 떠올릴 수 있다면, 빵집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田舍のパン屋が見つけた「腐る經濟」>는 주제면에서 좋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하겠다... <자본론> 리뷰를 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페이퍼를 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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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6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6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 세계사 속의 어린이
피터 N. 스턴스 지음, 김한종 옮김 / 삼천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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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는 아동의 지위에 대한 세 가지 주요 해석을 강조했다. 수렵채집 사회, 농업 사회, 그리고 근대적 아동 지위이다. 이 논의에서 아동의 지위는 무엇보다 경제 시스템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는 학교교육과 소비 지상주의에 휩싸여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다. 소비자로 훈련받은 어린이들은 이런 특별한 시스템을 지탱하는 데 필수적이다. 문화와 가족 구조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이는 하나의 전통적인 농업적 아동 지위가 없고 경제적 변수를 제외한다면 어떤 단일한 근대적 아동 지위도 없기 때문이다.(P336)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中


  피터 N. 스턴스 (Peter N. Stearns, 1936 ~ )는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Childhood in World History >에서 경제시스템이 아동의 사회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을 수행한다. 분쟁지역에서 소년병으로 죽어가거나, 개발도상국에서 성노예로 팔려가는 소녀들, 선진국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죽도록 공부를 강요당하는 학생들. 저자는 경제시스템의 발전 정도에 따라 아이들이 직면한 위험의 양상도 다르지만, 이들이 느끼는 위협의 정도는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현재의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미래 소비자로 길들이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한, 어린이들의 행복은 멀리 있어 보인다. 더 암울한 것은 아동의 지위가 과거보다 향상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아주 최근에 전문가들은 경제적 기준과 정치적 불안정 사이의 거대한 격차가 근대적 아동 지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사망률 감소를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아동의 지위는 가치, 풍요나 빈곤, 정치적 혼란이나 상대적 안정에 따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P338)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中


 아동의 지위와 관련하여 식민지 아메리카를 연구하는 한 역사가는 더 근대적인 시대와 비교할 때 그 시절 뉴잉글랜드에서 아동학대가 훨씬 드물었다고 말했다. 다른 말로 하면 학대는 더 악화되었을 수도 있다. 확실히 학대는 끝나지 않았다.(p346)... 근대적 아동 지위의 단점은 멀리 떨어진 지역들에서 독특하게 일어나는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집에서 가까울수록 긴밀한 형제자매 관계가 줄어드는 것은 확실히 어린이를 외롭게 만들기 더 쉽다... 주의력 결핍은 새로 늘어나는 또 하나의 병폐이다.(p347)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中


 5월 5일 어린이 날은 맞이해서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 느끼는 보호받는다는 안도감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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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5-05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5-05 13:12   좋아요 0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최근 20여년 중 가장 덥다는 요즘입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밀어 닥친 폭염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시에 다른 생각도 해봅니다. 제가 아직 40대 한창때임에도 이처럼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 한다면, 나이 드신 분들 특히 에어컨을 갖추지 못한 분들에게 이 더위는 어떤 의미일런지 생각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 ~ 2002)의  <세계의 비참 La Misere du Monde> 속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할머니의 말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생각해 봅니다.


 

[사진] 쪽방촌의 무더위(출처 : 뉴스1)


 내가 또 한 번 넘어졌지 뭐요. 6월에 팔을 다친 이후로 몇 번씩이나 깁스를 할 일이 생겼는지 모른다오. 그 상태에서 어느 날 또 넘어졌으니까.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야. 그때가 8월 15일이지. 그런 식으로 자꾸 넘어지고 다치고 한거라오.... (웃는다) 하기야 웃을 일도 아니지. 그때가 8월 바캉스철이니 누구 부를 사람이 있어야지, 모두들 휴가를 떠나고 없으니...(p1455)... 내 일을 하는 동안 서로를 귀찮게 하는 일이란 게 어떤 건지를 너무나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오. 다 늙은 노인네를 도대체 어떻게 도와 줄 수 있겠수? 이것 보우, 우릴 살려 두려고 하는데... 하기야 이걸 산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웃음) (p1459) <세계의 비참 3> 中

 


 '고독'이라는 주제의 인터뷰를 하신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혼자서 어려움을 겪었을 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버티는 독거노인의 슬픔을 느끼면서,  무더운 여름날에는 더위를, 추운 겨울날에는 추위를 혼자서 견뎌야 하는 이분들의 어려움 또한  인터뷰 뒷면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 속에 이분들을 방치하고 있는 현실이 우리나라 노인문제의 현주소가 아닌지도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최선의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는 최선의 정체가 추구하는 목표와 같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차 말했듯이, 전쟁의 목표는 평화이고 노동의 목표는 여가이므로, 개인이나 국가나 여가 선용에 필요한 탁월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여가 선용과 마음의 계발에 필요한 탁월함 중 어떤 것은 여가를 선용할 때 작동하고, 다른 것은 노동할 때 작동한다.... 용기와 끈기는 노동에, 철학(philosophia)은 여가에, 절제와 정의감은 노동과 여가 모두에 필요한데, 여가를 즐기며 평화롭게 사는 자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특히 철학과 절제와 정의감이 필요한데, 축복이 넘치는 가운데 여가를 많이 즐길수록 이 세 가지에 대한 필요도 그만큼 커진다. (1334a11) <정치학> 제7권 15장 中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는 <정치학 Politika>을 통해 여가의 중요성을 위와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가 선용은 단순히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탁월한 인간이 되기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속에서 휴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습니다. 무더위를 피하면서 재충전하는 이 시간 속에서 나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이웃분들 모두 즐거운 휴가보내시고 건강하게 재충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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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자나 2018-08-02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도 취약층인 노인과 아이들이 걱정되더군요. 없는 사람은 여름 나기가 낫다더니 그것도 옛말이 되려나봐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8-08-02 23:15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습니다. 짧은 생각입니다만,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이 더 큰 문제인것과 맞닿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에어컨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이 더위보다 그분들을 더 힘겹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2018-08-03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3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8-03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동의 궁극적 목적이 여가이고,
그 여가 활용을 통한 탁월한 인간이 되는 것

독서야말로 가장 근사치에 도달한 여가를
위한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8-03 11:25   좋아요 0 | URL
어렸을 때에는 휴가를 보낼 때 빠듯한 일정으로 채우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모든 것을 내려 놓는 것이 가장 좋은 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숨을 내쉰 후에야 다시 들이쉴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을 비우고 독서를 통해 다시 채운다면 그보다 더 좋은 여가 선용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레삭매냐님께서는 이번 여름을 로맹 가리를 통해 의미있게 채우고 계신 것 같아 많이 부럽습니다. 더운 날 건강하게 보내세요!^^:)

2018-08-04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4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류 역사에는 여러 차례의 대기근(大飢饉, Great Famine)이 있어 왔으며, 이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가 있어왔다. 그렇다면, 대기근과 이로 인한 피해는 자연으로부터 온 것인가? 이번 페이퍼에서는 역사상 아일랜드 대기근(Great Famine, 1845 ~ 1852)을 배경으로 한  <검은 감자 Black Potatoes>와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1958 ~ 1962) 시기를 다룬  <인민3부작 2. 마오의 대기근, 중국 참극의 역사 1958 ~ 1962 Mao's Great Famine, The History of China's Most Devastating Catastrophe 1958 ~ 1962>를 통해 대기근의 전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자본주의 대기근 : 아일랜드 대기근

 

 감자 대기근은 아일랜드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온 마을 모든 집을 빠짐없이 휩쓸었다. 아일랜드어와 몇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전통과 민간 신앙은 거의 사라졌다.... 역사가 대부분이 아일랜드 대기근 시기에 사망자는 100만 명이 넘고 이주민은 200만 명을 웃돈다고 추정한다. 정확한 수치는 영영 알 길이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p238) <검은 감자> 中


 전체 인구의 1/8이 아사(餓死)한 아일랜드 대기근은 1845년 감자 흉년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듬해인 1846년 흉년으로 인해 아일랜드에 큰 타격을 주게 되었다. 1845년에는 부족한 식량은 미국으로부터 옥수수 수입을 통해 해결하고, 영국으로부터 경제적 원조도 받을 수 있어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위기가 극복된 것으로 보였던 1846년에는 이러한 조치가 늦었으며, 무엇보다도 1845년 재난을 통해 경제적 기반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대재앙(大災殃)으로 치닫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그해 감자 흉년의 원인이 '피토프라토라 인페스탄스(Phytophthora infestans)'라는 감자 역병균이며, 이 병균은 몇 시간 만에 감자밭 전체로 퍼질만큼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안다... 1845년에 필 총리가 파견한 과학 위원단은 감자 역병균에 관해 몰랐다. 당연히 진단도 처방도 잘못 내렸다.(p57)... 감자 역병이 또다시 덮친 것은 1846년 8월 첫 주였다. 게다가 지난 해보다 훨씬 심했다. 하룻밤 사이에 전체 수확량의 4분의 3이나 되는 감자가 썩어버렸다.(p78)... 감자 역병이 2년 내리 발생하리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지난 겨울을 나면서, 노동자 대부분이 돈 될 만한 것은 다 팔거나 저당 잡혔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식량과 씨감자를 샀다. 그런데 감자 농사는 쫄딱 망쳤고, 팔 것도 하나 남지 않았다.(p79) <검은 감자> 中


 주식인 감자 흉년으로 인해 많은 아일랜드인들은 영양실조와 질병 등으로 쓰러지는 것도 비극(悲劇)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한 처참한 결과는 사회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영양가 높은 감자를 먹지 못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양실조에 걸렸다. 따라서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저항력도 떨어졌다. 아일랜드 대기근 시기에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 굶주려서 죽은 사람보다 어림잡아 열 배나 더 많다.... 비위생적인 음식과 오염된 물을 먹고 생활환경마저 불결한 탓에 질병은 널리 퍼졌다.(p131) <검은 감자> 中

 

 여기에서 대기근의 아주 커다란 모순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아일랜드 백성이 주식으로 삼는 감자 농사를 망쳐 굶주림에 시달리는 동안, 다른 한 편에서 노동자들은 입에 댈 수도 없는 곡식들이 영글고 있었다. 그것은 지주와 농민의 것이었다. 굶주린 노동자들은 그저 곡식을 베고 털고 빻아 수레에 싣고 시장으로 내가는 것만 지켜보았다. 그 곡식은 영국과 다른 나라에 팔 것들이었다.(p79) <검은 감자> 中


 아일랜드 대기근 동안 '감자'만 흉년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가 속한 계급에 따라 달라지게 되었다. 가진 것이 없는 소작농들에게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지주, 상인 등 여유있는 이들에게 이 사건은 '기회'였다. 감자 역병균에서 시작된 기근은 사회적 문제와 결합되면서 역사에 '아일랜드 대기근' 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나라에서 식량을 수출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가장 가혹한 현실 한 가지는 기근은 식량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근 문제는 식량 이용권을 누가 갖느냐에 달려있다. 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아일랜드인을 굶주리게 한 것은 아니었다. 지주, 농민, 도매상, 소매상의 생업에 간섭할 법률을 제정할 뜻이 없었을 따름이다. 그런 법률을 만든다는 것은 자유방임주의 원칙을 어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지주와 농민도 곡물을 영국과 외국 시장에 수출했다. 자신들이 영리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p81) <검은 감자> 中


 2. 공산주의 대기근 : 대약진 운동


 "올해 우리나라는 강철 520만 톤을 생산했고, 5년 뒤에는 1000만 ~ 1500만 톤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5년이 더 지나면 2000만 ~ 2500만 톤을, 다시 5년 뒤에는 3000만 ~ 4000만 톤을 달성할 것이다... 흐루쇼프 동지는 소련이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마오저뚱)는 15년 안으로 우리 또한 영국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약진 운동이 시작되었다.(p49) <마오의 대기근> 中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1958 ~ 1962)은 마오쩌둥이 단기간 내에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대약진 운동 역시 또하나의 대기근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총 당원 수는 1559년에 1396만 명에서 1961년 1738만 명으로 급증했지만 1959 ~ 1960년에 360만 명의 당원이 우파로 낙인찍히거나 숙청되었다... 수천만 명이 혹사와 질병, 고문, 굶주림으로 죽어 가게 되면서 중국은 파국으로 빠져든다.(p167) <마오의 대기근> 中


 대약진운동은 아일랜드 경우와는 달리 자연재해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대기근을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집권(中央集權) 계획경제(計劃經濟) 체제 하에서, 자신의 실적을 채우기 위한 과도한 목표 설정과 허위 보고, 그리고 허위 보고에 기초한 생산물 조달은 농촌 지역에서의 대규모 기근을 가져왔으며, 이로 인해 중국 경제는 1962년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곡물 생산량 달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압력은 대약진 운동 기간 동안 절정에 달했다. 경쟁적으로 더 높은 목표량을 약속하는 광풍 속에서 마을 단위부터 성에 일으기까지 당 관리들은 서로를 능가하고자 갖은 애를 썼고 선전 기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록을 발표하면서 더 조심스러운 간부들까지 숫자를 부풀렸다.(p201)... 수확량이 부풀려지면서 과도한 조달 할당량이 내려왔고, 이는 부족 사태와 대대적인 기근으로 이어졌다.(p202)... 당(黨)은 농촌의 필요를 무시하는 일단의 정치적 우선순위를 발전시켰다. 지도부는 외국과의 계약 사항을 준수하고 국제적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곡물 수출을 늘리기로 결정했고 1960년에는 "수출 제일" 정책이 채택될 정도였다.(p207) <마오의 대기근> 中


3. 대기근의 결과들 


 이러한 대기근은 이후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대기근을 통해 아일랜드는 뜻하지 않은 디아스포라(Diaspora)와 이로 인한 막대한 인구 유출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아일랜드 민족의식이 고취되어 결국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당시의 충격으로 아일랜드가 입은 손실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오래도록 씻기지 않을 적대감과 원한을 남겼다... 대기근 때문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영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감자 대기근 이후 60년 동안 대규모 이주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청년층이 이주민의 절반을 차지했다... 1910년까지 조국을 영원히 떠난 아일랜드인은 500만 명에 달했다. 오늘날 아일랜드 인구는 약 400만 명으로 1845년 인구수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현재 미국에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4,000만 명을 웃돈다.(p241) <검은 감자> 中


 한편, 중국 역시 대약진운동을 통해 사회 각층의 불만이 쌓여가고, 대약진 운동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었다. 당시 총책임자였던 마오쩌둥은 이러한 목소리에 답(答)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답은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 1966 ~ 1976)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저우런라이는 과도한 곡물 징발, 생산량 부풀리기, 각 성에서의 곡물 유출과 해외로의 식량 수출 증대에 관해 개인적 책임을 지는 식으로 지금까지 잘못되어 왔던 상황의 원인을 상당 부분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마오쩌둥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마오쩌둥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당과 나라를 산산조각 낼 문화 대혁명을 개시하기 위한 참을성 있는 기초 작업은 이미 시작되었다.(p492) <마오의 대기근> 中


  'Laissez faire(자유 방임주의)'를 표방한 자본주의와 노동자 중심의 'Communism' 을 주장한 공산주의 사회 모두에서 대기근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두 체제 모두가 전체 구성원의 행복보다는 소수(少數)를 위해 작동했으며 이로 인해 대규모 재앙을 가져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다운 삶의 전제조건인 의(衣), 식(食), 주(住)보다 사유 재산권, 혁명 사상 등 부차적인 내용을 강조했을 때 큰 비극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PS. <검은 감자> <마오의 대기근>은...


 <검은 감자>의 작가인 수전 캠벨 바톨레티(Susan Campbell Bartoletti)가 딸에게 이야기 해주듯이 쓰여진 책이기에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참상을 잘 서술하고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인민3부작 2. 마오의 대기근, 중국 참극의 역사 1958 ~ 1962 Mao's Great Famine, The History of China's Most Devastating Catastrophe 1958 ~ 1962>는 프랑크 디쾨터(Frank Dikotter>가 '대약진운동' 시기를 다룬 역사책으로, 당대의 참상을 사례와 통계자료를 통해 잘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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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9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9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5-09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천재인줄 알았습니다. ㅠ

겨울호랑이 2018-05-09 22:11   좋아요 0 | URL
네... 저 역시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정말 대단한 것은 사람의 끝없는 재물욕, 명예욕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8-05-11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1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2 0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John Ernst Hobbsbawm, 1917 ~ 2012)이 혁명의 시대(The age of Revolution)로 규정한 1789 ~ 1848 에 해당하는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시민혁명이,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이 발생한 시기였다. 이전과는 다른 급진적인 변화가 발생한 이 시기에 여성(女性)에 대한 문제 역시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 여성 문제를 다룬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 ~ 1797)과  존 스튜어트 밀(Jojn Stuart Mill, 1806 ~ 1873)다. 


기록된 역사의 대부분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나왔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이런 서열의 정당성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시 탁월한 반대 목소리를 낸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영국의 급진주의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였다.... 남녀는 뇌와 정신이 근본적으로 비슷하므로 같은 교육을 받을 경우 똑같이 훌륭한 성품과 합리적 사고 방식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주장한다. <철학의 책> (p175)


 아내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그(밀)는 영국 국회의원 중 처음으로 정부개혁의 일환으로 여성참정권 인정을 주장했다. <철학의 책> (p193)

 

 <여성의 종속 The subjection of Women>은 존 스튜어트 밀(Jojn Stuart Mill, 1806 ~ 1873)에 의해서, <여성의 권리 옹호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 ~ 1797)에 의해 쓰여진 여성 문제에 관한 책들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여성의 종속>과 <여성의 권리 옹호>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19세기 지식인들의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과 이들이 제기한 해결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한쪽은 지배하는 위치에 있고 다른 한쪽은 지배받는 상황이라면 완전한 상호 신뢰는 불가능하다.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많은 부분이 가려지는 것이다. <여성의 종속>(p53)


1. 19세기 여성 불평등 문제의 원인은 잘못된 교육에 있다.


 <여성의 권리 옹호> 에서 저자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존재임에도 적절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성의 종속>의 저자인 밀 역시 여성들이 그들에게 강요되는 도덕률에 의해 잘못된 인생을 살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적절한 교육,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잘 갈무리된 정신은 한 여성이 존엄성을 가지고 독신 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성의 권리 옹호>(p57)


  이성이 여성에게 분별력 있는 빛을 보내줄 때 만일 여성들이 진정 합리적인 존재로 행동할 수 있다면, 그들을 노예처럼 대하지 말라. 혹은 여성들이 남성과 교유할 때, 그들을 남성의 이성에 종속된 짐승들처럼 대하지 말라. 그들의 정신을 함양하고, 그들에게 건전하고 숭고한 원칙의 틀을 부여하고, 그들로 하여금 신에게만 종속되어 있다고 느낌으로써 의식적인 존엄에 도달하게 하라... 이것은 유토피아적인 꿈이라고 불릴지도 모른다. <여성의 권리 옹호>(p64)


  

여성은 하나같이 아주 어려서부터, 여성의 이상적인 성격은 남성의 그것과 아주 다르다고 듣고 배운다. 자유의지나 자율적인 삶이 아니라 복종하고 남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이상으로 삼게 된다. 그들을 둘러싼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이 여성의 의무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여성에게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널리 유포되고 있다. 그 결과, 여성은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버리고, 오직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에 인생을 걸어야 한다. <여성의 종속>(p37)


2. 잘못된 교육에 의해 여성들은 남성들의 억압을 견뎌왔다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는 남성들의 보호를 얻기 위한 덕목을 미덕(美德)이라는 이름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무지했음을 지적하였고, <여성의 종속>에서는 이렇게 교육받은 여성들이 사회적 요인에 의해 남성들의 억압에 대항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저자들은 '사회화(社會化)'라는 교육에 의해 여성의 종속성이 심화(深化)되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여성들이 하루살이 무리가 아닐진대 왜 순수라는 특수한 이름 하에 무지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는가?... 여성들은 적절하게도 교활함이라고 이름 붙여진, 인간의 약점에 대한 약간의 지식, 기질적 부드러움, 표면적인 복종을 익히고, 어리석은 종류의 예절을 용의주도하게 지킬 줄만 알면 그로써 남성의 보호를 얻게 될 것이며, 그들이 아름답다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적어도 그들 생애의 20년 동안은 불필요하다고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고, 그들 어머니들의 선례를 통해 배웠다. <여성의 권리 옹호>(p32)


  사회적, 자연적인 원인들이 합쳐져서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남성들의 폭압에 대항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여성은 한 가지 점에서 종속 상태에 있는 다른 계급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그들의 지배자가 단순히 복종하고 떠받드는 것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이 복종하는 것 그 자체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여성의 마음까지도 지배하고 싶어 한다.... 여성의 지배자는 단순한 복종에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교육의 힘을 통째로 빌려 그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여성의 종속>(p37)


3.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회에 의해 잘못된 교육의 폐해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것인가? <여성의 권리 옹호>인 저자는 남여 공학을 통해 공통된 교육을 실시를 주장한 반면, <여성의 종속>의 저자는 남성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받고 있는 특혜가 무엇인지 고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밀은 여성참정권의 실현을 주장하지만,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의 실현은 1918년에 이르러서야 30세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부여되었다.)  


 여성의 지성을 확대함으로써 여성의 정신을 강화하라. 그러면 맹목적인 복종은 종식될 것이다.(p42)... 나는 남녀 모두가 이성에 기초한 미덕을 갖추고 남녀 모두가 의무를 다함으로써 서로 간의 애정이 견고해지기 전에는, 결코 미덕이 지배하는 사회가 도래하지 못할 것이라고 감히 예언하고자 한다. 남녀 공학을 실시한다면, 정신을 오염시키는 성별 구분들 없이 신중함을 야기하는 우아한 품위들이 일찌감치 길러질지도 모른다. <여성의 권리 옹호>(p154)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자기 본성에 따라 행동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여성이 그 본성에 어긋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도 여성 편에 서서 그들에게 특별 대우를 해줄 것을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저 오늘날 남성들이 어떤 특혜를 누리고 있는지 되돌아보기만 하면 된다. 만일 여성이 천성적으로 어떤 일에 대해 남성에 비해 특별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면 법이나 사회적인 교육을 통해 일부러 여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할 필요는 없다. <여성의 종속>(p57)


4. 남녀평등이 실현된다면...


 교육을 통해 여성들의 이성(理性)이 새롭게 눈을 뜨고 보다 합리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다면, <여성의 권리 옹호> 저자는 여성들이 더 이상 남성들에게 종속되지 않을 것임을 주장하고 있고, <여성의 종속> 저자는 남녀평등의 실현이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좋은 것임을 강조한다.

 

 여성들이 보다 합리적으로 교육받고 사물에 대해서 좀 더 폭넓은 관점을 가질 수 있다면, 그들은 일생 단 한 번의 사랑에 만족할 것이며, 결혼 후에는 그 열정을 우정, 즉 근심으로부터의 가장 좋은 피난처인 친밀함 속으로 조용히 침잠시킬 것이다. <여성의 권리 옹호>(p113)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인류의 어떤 부류가 결코 진리로부터 추론할 수 없는 원칙들에 따라 반드시 교육받도록 창조되었다면 미덕은 일종의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언급하는데 만족하고자 한다... 남성들은 육체적 힘에서 우월하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이 없다면, 여성들도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며, 정신을 강화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육체적인 불편과 수고로움을 충분히 견디게 될 것이다. <여성의 권리 옹호>(p86)


 남녀평등이 실현되면, 오늘날 여성의 이상적인 성격이라고 인위적으로 각인되고 있는 그 과장된 자기 부정이 누그러질 것이고, 훌륭한 여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최선의 남성보다 더 자기희생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도 않을 것이다. 반면에, 남성들은 현재보다 훨씬 덜 이기적이고 보다 희생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의지가 또 다른 합리적 존재를 위한 법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라고 숭배하는 교육을 더 이상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종속>(p87)


 여성에게 사회 활동의 기회를 봉쇄함으로써 반이나 되는 인류 지성이 창조해낼 막대한 이익도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여성에게 보다 완벽한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 인간 사회의 여러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크게 유익한 여성의 위대한 지적 능력을 부분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성의 능력도 그에 비례해서 향상될 것이다.(p162)... 이렇게 여성의 교육 수준을 남성과 똑같은 수준으로 올리고 평등한 참여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여성의 활동 범위가 대폭 늘어날 것이다. <여성의 종속>(p163)


 19세기 이성(理性, reason)이 강조된 혁명의 시대를 살아간 두 지식인들은 여성의 문제를 계몽(啓蒙, Enlightenment)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잘못된 교육에 의해 여성의 이성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올바른 교육의 제공을 통해 합리적인 교육이 제공된다면 여성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이들은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처방한다.


 시간이 흘러 여성들에게 공공교육의 기회가 점차 확대되었고, 여성들의 정치참여 기회도 과거보다 늘게 되었지만 아직 사회 곳곳에 있는 유리천장(Glass Ceiling)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19세기에 제기된 <여성의 권리 옹호>와 <여성의 종속>에서 주장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19세기를 배경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저자들의 관점을 현대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한계점이 있는 것도 내용에 대한 비판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도는 변화되었으나, 현재까지도 크게 변화되지 않은 사회 전반의 인식을 생각한다면, 약 200년 전의 책 속에 담겨진 저자들의 생각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남성들이 그렇게도 열렬히 고집해온 성별 구분이 자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주제에 대해 함께 논한 몇몇 이성적인 남성들이 논거가 충분하다고 인정한 하나의 관찰 결과를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남성 집단에서는 순결이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인 정숙함에 대한 필연적인 경시는 남녀 모두를 타락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남성의 압제로부터 여성들의 더 많은 어리석은 짓들이 파생된다는 것, 그리고 현재 여성들의 성경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교태는 억압에 의해서 양산된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 또한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여성의 권리 옹호>(p193)


PS. 깊이 읽기


문고판인 <여성의 권리 옹호>를 읽은 후에는 완역판인 <여권의 옹호>를 읽는다면 보다 깊은 독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보다 넓게 읽기를 원한다면 본문에서 비판하고 있는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의 <에밀 Émile, ou De l'éducation>을 미리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밀의 <여성의 종속>의 기반은 그의 자유주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론 On Liberty>과 연결해서 읽는다면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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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6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6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17 0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릭 홉스봄이 규정한 ‘혁명의 시대’ 안에서 페미니즘을 살펴본다면 자유주의 페미니즘만 언급해선 안 됩니다. 1848년 혁명 이후에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이 시작된 시기를 1848년 이전으로 볼 수 있어요. 겨울호랑이님도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를 언급했지만, 울스턴크래프트와 밀의 고전적 자유주의 페미니즘 시각으로 요즘 여성 문제를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사회적 신분 또는 사회 계급에서 비롯된 여성 차별 문제를 보지 못했어요. 오늘날 사회는 갈수록 복잡해져만 가고,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여성 운동과 페미니즘도 변화해야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3-16 19:0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다른 여러 문제와 마찬가지로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데 여러 관점이 있을 것이고, 그 중 하나가 cyrus님께서 말씀하신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되겠군요. 말씀하신대로 한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편향된 결론에 이르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cyrus님께서 말씀하신 여성 문제와 관련한 다른 견해가 담긴 책을 읽는 것도 의미있겠군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8-03-18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읽는 책과 같은 주제의 책 읽으셨는데, 결론은 정반대 입니다.
제 책에는 밀이 여성 문제에 최대 악 이란 뉘앙스를 계속 제시하고 있어, 엄청 당황하고 있는 중 입니다. ^^

앗, 위에서 싸이러스 님이 비슷한 말씀 이미 하셨네요.

겨울호랑이 2018-03-18 19:19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북다이제스터님께서 지금 읽고 계신 책이 cyrus님께서 말씀하신 비자유주의 페미니즘 책이 아닌가 싶네요. 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궁금하던 차에 북다이제스터님의 리뷰를 기다리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3-18 19:38   좋아요 1 | URL
근데 논리가 넘 어려운건지 아니면 제가 자유주의에 넘 빠져 경도되어 있는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정리가 잘 안 됩니다. 하지만 한 번 힘써 리뷰 정리 해 보고픈 욕심은 좀 납니다. ㅎ
어려운 주제인 건 맞는 거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3-18 22:33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이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니 많이 어려운 책을 보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북다이제스터님의 좋은 리뷰에 숟가락만 올릴 것 같네요... 북다이제스터님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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