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파괴, 접속 2 - 정치와 세계의 지역 질서 케임브리지 세계사 16
존 로버트 맥닐.케네스 포메란츠 엮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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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국가 체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정통성을 강화하려면 민족 정체성을 구현해야 하며, 이를 통해 민중의 에너지를 흡수해야 한다는 사상이 확산되었다. 근대 국가(민족)의 개념은 군사 및 경제적 경쟁의 역학관계를 통해 확산되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2>, p76


 기원 후 1750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를 대상으로 국제 정치와 세계의 지역 질서를 다루는 <생산, 파괴, 접속 2>는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확산하려는 '제국주의'라는 운동(運動)에 대한 '반(反)식민주의'라는 반작용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동과 반작용의 충돌을 통해 빚어진 갈등이 세계대전이라는 현상으로 드러났다면, 그러한 현상 배후에 있는 다른 두 양태 - 파시즘과 공산주의 - 는 반작용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그렇다면, 근대화 이후 제국주의는 이전 제국과 무엇이 달랐는가? 본문에서 이는 '영향력의 크기와 파급'으로 설명된다.


 지난 300년간의 제국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제국 활동의 규모가 커지고, 그 속도가 빨라졌으며,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이 확대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변화의 가속화와 세계적 통합을 일반적으로 농업, 산업, 금융, 노동, 소비 문화, 통신, 관료제, 군사 조직, 신념, 그리고 물론 정치에서 일어난 여러 혁명의 결과로 설명하며, 이러한 혁명들이 세계를 근대로 이끌었다고 본다. _ <생산, 파괴, 접속 2>, p149


 중앙집권화된 국가 권력의 유지를 위해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민족국가라는 '상상된 공동체'를 만들어 냈고, 상상된 공동체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여기에 결부시켰고,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은 제국주의를 통해 외부로 팽창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생산, 파괴, 접속 2>에서의 시작은 다음의 문장이라 할 수 있겠다.


 민주주의의 이상형과 민족주의의 이상형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_ <생산, 파괴, 접속 2>, p70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좌파적 반동이 공산주의였고, 우파적 반동이 파시즘이었다고 본다면, 결국 현대정치사는 제국주의와 이에 대한 반식민주의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대사의 비극을 정리할 수 있겠다. 반식민주의의 대응이 결국 '서구에 대한 빠른 모방'이었다는 사실은 뼈아프다. 인류는 고유한 문명의 다양성 대신 강력한 '서구 근대 문명'을 선택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가 동일한 현대 사회의 문제(비극)를 공유하게 된 근원적인 이유다.


 <생산, 파괴, 접속 2>에서 독자들은 저렴한 에너지원을 통해 만들어진 생산품들의 원료 공급처, 시장을 위해 다양한 이념들로 포장된 폭력의 양태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식민 본국과 식민지의 관계에 한정되지 않았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일단 점령하고 보는 '선점적 식민지화'의 광기처럼, 생산된 힘은 맹목적인 파괴와 팽창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과거 전통과의 단절, 식민 사회의 변질 등 커다란 간극을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 '파괴를 위한 생산'. 2권의 주제어를 이렇게 잡을 수 있다면, 생산의 결과는 현대 사회의 동질화라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국력의 강화와 경제의 산업화, 이 두 가지 변혁이 19세기 서구 세력의 세계적 확산을 가능케 한 원인이었다. 유럽 안팎을 막론하고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는 서유럽과 미국에서 자리 잡았던 이념적 및 제도적 혁신을 모방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정치적 자각을 통해 정치, 군사적 힘을 강화하고 산업화를 통해 경제를 변화시켜 부와 권력을 동시에 창출하려 했던 노력. _ <생산, 파괴, 접속 2>, p181 

무너진 제국의 잔해로부터 민족국가가 등장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승리는 현실적으로 강렬한 트라우마로 이어졌고 더욱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국민주권과 민족자결을 기반으로 세계 정치 질서가 재편되면서 소수 민족의 지위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게 되었다... 민족의 서열이 갑자기 뒤바뀔 수 있다는 전망 혹은 경험은 격렬한 분노와 공포,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종종 집단 폭력, 인종 청소, 혹은 노골적인 학살의 끔찍한 패턴을 초래하기도 했다. - P89

"선점적 식민지화"라는 개념은 아프리카 쟁탈전이 왜 그렇게 격렬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같은 이유로, 일단 식민지화를 성공한 뒤에는 점령한 영토에서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광대한 공간, 언어적/민족적 다양성, 그리고 깊이 뿌리박힌 친족 집단, 상업적/종교적 네트워크를 고려하면, 행정 관리보다는 정복이 훨씬 더 쉬운 일이었다. -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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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파괴, 접속 1 - 세계 경제와 질병 케임브리지 세계사 15
J. R. 맥닐.케네스 포메란츠 엮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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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을 위한 파괴, 파괴를 위한 생산


 인류세에 접어들기까지 몇 가지 큰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1750년 이후 화석연료의 도입과 에너지 사용량의 비약적 증가였다. 인류의 조상은 불과 언어의 사용을 통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농업의 도입은 도시, 문명, 국가 건설의 기반이 되었다. 화석 연료의 도입은 우리에게 근대를 가져다주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1>, p108


 기원후 1750년부터 현재까지를 다루는 케임브리지 세계사의 제목은 <생산, 파괴, 접속>이다. 독자들은 제목으로부터 직관적으로 산업화로 인한 대량 생산과 이로 인한 대규모 자연 환경의 파괴 그리고 연결되는 세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며, 책의 주요 내용은 이러한 이미지를 잘 담아낸다. 이런 면에서 1권을 요약할 수 있는 문장은 '생산을 위한 파괴'로 정했다. 미리 앞서가자면, 현대 국제 정치를 주로 다룬 다음 권의 문장은 '파괴를 위한 생산'이 적정한 듯싶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리뷰에서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고 먼저 생산을 위한 파괴를 들여다보자.


 1750년부터 2015년 사이, 전체 세계 에너지 사용은 90~100배가 증가했다. 이는 농경의 출현 이후 가장 혁명적인 과정이었다. (p112) ... 풍부하고 값싼 에너지는 인간의 환경영향을 넓혔다. 채굴, 운송, 연소의 명백한 환경영향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는 전례 없이 산업화를 촉진시켰다. 산업경제는 수공업 생산에 필요한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원자재를 필요로 했고, 그 대부분은 전 세계에 산재한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생산되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1>, p115


 <생산, 파괴, 접속 1>에서는 이전 시대 전체를 합친 것보다, 현재 인류를 제외한 다른 생태계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인류의 역사를 조명한다. 다른 조건이 동등할 경우 집중적인 에너지의 흐름은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물리학적 시스템의 뒷받침을 요구했고,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과학과 사회제도의 급속한 변화가 뒤따랐다. 빠른 시일 내 대규모 생산, 지원이 가능하도록 변화는 자본집약적으로 일어났고, 도시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 제한된 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이러한 발전방향은 노동 수요의 감소와 인구의 증가라는 이중의 문제를 낳게 되었다. 늘어난 인구의 부양을 위해 인류는 다시 자본집약적으로 산업을 발전시켜야 했고, 이는 더 많은 에너지의 사용이라는 악순환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러한 인구의 밀집은 필연적으로 전염병의 위기를 불러왔으나, 인류는 이 또한 기술과 국제적 공조를 통해 '관리 가능한 변수'로 만들어버렸다.


 천연두를 세계적으로 퇴치하려면 대규모 백신 제조 기술도입이 필요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백신의 냉장 보관 및 운송이 가능한 동결 건조 기술의 등장이었다. 또한 천연두 퇴치에서 기술의 문제 못지않게 중요했던 부분은 바로 당시에 등장했던 국제 정치의 이론과 관행이었다. 무엇보다 질병 통제가 지역 혹은 개별 국가의 과제가 아닌 전 지구적 과제라는 개념이 폭넓게 인정될 필요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거대 사업을 추진할 플랫폼, 즉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직과 운영이 필요했다.  _ <생산, 파괴, 접속 1>, p438 


  이처럼 <생산, 파괴, 접속 1>에서는 도시화로 인해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하려는 산업화가 가져온 여러 부작용들을 잘 보여준다. 모든 지역에서 산업화가 자본집약적으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지만, 산업화의 결과로 인해 출산율이 증가하고, 사망률이 감소하면서 생겨난 많은 인구의 부양 문제와 에너지 사용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이다. 이러한 생산을 위한 파괴가 1권의 주제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한 생산'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생산의 결과 우리는 과연 파괴된 것의 가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였는가? 이 물음이 중요한 이유는 생산을 위한 파괴가 이미 인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친화적인 개는 반려동물로 사랑받지만, 야생의 늑대는 멸종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이 질문의 무게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대한 진지한 답을 위해 남은 3권의 <생산, 파괴, 접속>을 만날 필요가 있다...


 1950년부터 1990년 사이, 세계적으로 출산율과 생존율이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인구 성장률이 매년 1.75퍼센트를 초과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었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현대의 이와 같은 성장 속도는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시기에 나타났던 성장률에 비해 50배 내지는 200배에 달하는 빠른 성장세였다. _ <생산, 파괴, 접속 1>, p124


 인류세는 육지와 바다를 막론하고 모든 생물학적 종의 진화 규칙을 바꾸어 놓았다. 생존과 재생산의 성공을 결정하는 생물학적 접합성은, 인간의 기획과 공존할 수 있는 생물의 역량에 점점 더 크게 좌우되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1>, p144

모든 성공적인 혁신은 단위별로 투입되는 생산요소를 줄여서 생산비를 낮추는 것이지만, 그 효과는 생산요소에 따라 다르다. 경우에 따라 모든 요소를 동일한 비율로 축소하거나, 혹은 한 가지 생산요소만 축소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생산요소를 줄임으로써 다른 생산요소의 수요가 늘어나기도 한다. 윤작의 경우를 제외하면 농업혁신은 모두 자본집약, 다시 말해 종자, 기계, 비료 등을 추가로 투입하는 방식이었다. - P171

일본이나 중국, 기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산업화는 서유럽보다 한 세기 남짓 늦게 시작되었다. 처음 산업화를 시작했을 때 아시아에서는 지역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노동집약형 경로(labor-intensive path)를 만들어냈다. 여기서는 산업화 과정에서 서유럽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바이오매스에 의존했다... 에너지 절감 기술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 기술 혁신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면서, 자본집약형 산업화와 노동집약형 산업화의 전통적 구분은 의미를 잃기 시작했다. - P235

도시화는 광대하고 시끄럽고 무질서한 주택, 지나친 인구 밀집, 쓰레기, 배설물과 함께 쌓이는 산업 폐기물, 원활하지 못한 물 공급을 의미했다. 도시에서는 발진티푸스를 비록하여 수인성 질병이 자주 유행하여 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보건당국에서는 상하수도를 보급하고, 청결하고 안전한 공공 주택을 건설했다 - P265

에너지와 역사 사이에는 분명 양면적인 관계가 있다. 에너지 자원과 동력은 역사상 인류의 선택을 제한하며, 생활의 속도를 결정한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등할 경우, 열역학적 차원에서 사회경제적으로 복잡한 구조의 사회에는 더 집중적인 에너지의 흐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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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세계사 히스토리아 문디 5
윌리엄 맥닐 지음, 신미원 옮김, 이내주 감수 / 이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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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주제인 '전쟁의 상업화'와 그에 뒤따르게 마련인 '전쟁의 산업화'가 더욱 중요한 의미에서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000년 이후의 일이다. 그 변용은 처음에는 완만하게 이루어졌고, 최근 1~2세기 동안 걷잡을 수 없이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_<전쟁의 세계사>, p44


 전쟁의 상업화와 전쟁의 산업화.




 <전쟁의 세계사>를 통해 저자는 전쟁이 인류사에 미친 영향이 특히 상업화와 산업화를 통해 더 커졌음을 밝힌다. 서기 1000년 이전 유목-농경 민족 사이의 전쟁이 대부분 무역에서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전쟁의 성격은 보다 유리한 조건의 확보를 위한 수단의 성격이 강했다. 이에 반해, 12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변화는 전쟁의 성격을 수단에서 상품으로 변모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전쟁의 세계사>는 이런 상품으로서 '전쟁'에 초점을 맞춘다.


 12세기 이탈리아의 전장에 말을 탄 기사에 대항할 수 있는 보병군이 등장하면서 변화는 시작되었다. 14세기에는 도시 민병대가 고용된 직업군인으로 대체되었고, 15세기 전반에는 이탈리아에서 도시국가들이 대두하면서 시민 주도의 상비군 경영 패턴이 급속하게 발달해갔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그 후 알프스 이북의 유럽 국가들에서 훨씬 넓은 영토를 배경으로 재현되었다. 그리하여 17세기 중반에 이르면 프랑스, 네덜란드 공화국, 영국 같은 나라는 예전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군사 경영과 유사한 패턴을 이룩했고, 국가의 세수와 육해군의 지출 사이에 어느 정도 안정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 _<전쟁의 세계사>, p193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도시에 고용된 용병제도가 30년 전쟁을 거치며 그 규모를 확대되었고, 전쟁이라는 상품이 '용병대장 단위의 가내수공업'에서 '국가 단위의 매뉴팩처'로 변모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자본을 통한 상비군 유지, 과학을 이용한 보급 및 운송 혁신, 중앙집권적 관료제 등 근대 국가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반복적인 군사 훈련(Drill)을 통해 병사들을 규격화하고, 개인의 영웅심보다 집단의 규율을 앞세워 전쟁 수행 능력을 극대화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종교적 헌신 못지않게 병사들을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게 만든 강력한 기제가 되었다.


 1840~1880년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가 잠시 행사했던 세계지배는 정말 특별한 성격을 가졌다. 기계로 제조된 값싼 물품, 기계를 기초로 한 저비용의 군사적 우위는 둘 다 해외로 수출될 수 있었고 실제로 수출되었다. 그리하여 세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무수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단일한 전체로 통합되었다. _<전쟁의 세계사>, p348


 <전쟁의 세계사>는 저자의 전작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제시된 '거시 기생(Macro-parasitism)'의 개념을 심화시킨 책으로도 읽힌다. 과거의 전쟁이 단순히 약탈을 통한 기생이었다면, 근대의 전쟁은 거대한 산업 구조와 결합하여 국가 간의 수탈을 합리화하고 체계화한 고도화된 기생 방식임을 보여준다. <전쟁의 세계사>를 통해 독자들은 자본, 국가, 관료제, 과학, 민족주의 등의 이데올로기 등 여러 요소들이 전쟁이라는 현상을 통해 '전쟁 기계'라는 터미네이터가 되었음을 확인한다.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터미네이터의 폭주를 막기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가. 이는 저자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어려운 과제다.


 행정명령에 의한 복지후생을 통해 각 교전국은 자국의 노동력에 가능한 한 최선의 노동조건을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복지후생의 반대쪽에는 독일의 '노예노동' 캠프나 수백만의 유대인과 나치 정권의 적이 굶주리고 학살당한 수용소가 있었다. 이것은 극도의 비인간성이 전쟁 노력의 다른 측면을 경영하는 데 사용된 것과 똑같은 방법을 통해 관료화되고 효율화된 모습이었다. _<전쟁의 세계사>, p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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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11-29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 볼 만한 책 같아요.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5-11-29 13:08   좋아요 0 | URL
페크님, 즐거운 독서와 행복한 하루 되세요!
 
전염병의 세계사 히스토리아 문디 4
윌리엄 맥닐 지음, 김우영 옮김 / 이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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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적된 기술과 지식 덕분에 대부분의 인간집단이 겪어야 했던 질병의 양상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게 인간을 공격하는 미시기생체와 특정 인간집단이 다른 집단 위에 군림하는 거시기생현상의 틈바구니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럴수밖에 없을 것이다. _ <전염병의 세계사>, p308


 '미시기생'과 '거시기생'. 맥닐은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미시기생체와 그들의 숙주인 인간들의 상호연관을 통해 세계사를 읽어낸다. 일반적으로 과거 에스파냐군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 시기에 천연두에 의해 다수의 원주민들이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 또는 14세기 흑사병의 유행이 가져온 중세 유럽의 변화 등 전염병이 가져온 큰 변화가 있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저자는 단순한 현상이 아닌, 거시기생과 미시기생의 합작품으로 해석한다. 즉, 에스파냐군(거시기생)이 아메리카 대륙을 쉽게 정복한 데에는 천연두(미시기생)가 원주민 사회의 저항력을 미리 파괴한 것이 결정적이었고, 14세기 흑사병(미시기생)이 유럽 인구를 급감시키자, 영주(거시기생)들이 농민을 통제할 힘이 약화되었고, 이는 결국 중세 봉건제라는 거시기생 구조의 붕괴를 앞당긴 역사적 결과다.


 이처럼 저자의 <전염병의 세계사>는 전염병과 인간과의 상호관계를 진화라는 세포차원으로부터 자연과의 관계 측면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의 동력으로 파악한다는 면에서 독창성을 갖는다.


 병원성 기생생물은 인류가 자연생태의 동식물 분포형태를 왜곡시켜 새로운 생태적 적소를 만들어내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점거했고, 그 점에서 인류와 똑같은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인류의 성공이란 한정된 종류의 동식물을 대량으로 기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일종에 침입해서 번식하는 기생생물에게 그것은 그들의 먹이장소가 매우 좋은 상태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_ <전염병의 세계사>, p74  


 전염병과 인간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그들은 때로는 적대했고, 때로는 협력했다. 그들의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활동이 가져온 적대적 공생관계를 통해 인류는 문명을 일구었고, 다른 문명을 파괴했다. 


 유럽의 질병양상과 문화적/정치적 발전단계는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유럽인은 1494~1648년 사이에 바다를 통한 인간, 재화, 사상, 질병의 교류가 초래한 최초의 충격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에, 오랜 문화적 전통에 대단한 압력이 가해졌다.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이라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폭풍은 그러한 압력이 표출된 결과였다. _ <전염병의 세계사>, p277   


  이처럼 맥닐은 종교개혁과 같은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폭풍조차 질병의 교류가 가져온 문명 간의 충격과 적응 과정이라는 '생태학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 한다. 책 전반에 흐르는 저자의 이 같은 노력의 산물인 <전염병의 세계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잊혀진 힘을 끌어올려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들 중 하나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는 점에서 역사의 고전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의의와 함께 독자들은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와 동력은 결코 간단치 않으며, 수많은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역사는 무수히 재해석될 수 있음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맥닐이 역사의 동력으로 주목한 이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관계는 오늘날에도 끝나지 않았다. 과거 인류가 전염병에 속수무책이었다면, 이제는 역으로 미생물을 이용해 바이오 항체를 만들면서 그 관계를 역전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맥닐의 시각은 이처럼 미생물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오늘날의 현대 생명공학 시대에도 여전히 강력한 분석틀을 제공한다. 만약 맥닐이 <전염병의 세계사> 개정판을 낸다면 오늘날 바이오 기술의 발달에 별도의 장을 추가해야 할 것이라는 상상을 마지막으로 글을 갈무리한다.

오늘날 유기체의 진화는 인간이 자연생태계를 교란시킨 탓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인간이 감염성 질병에 노출되는 양상도 급변하고 있는데, 이는 생태적 관계가 폭넓게 조정/재조정되는 과정의 일부이며, 미래의 궤적은 여전히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결국 생물학적 진화는 인간이 자연의 섭리에 개입함에 따라 역사상 유례없이 가속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 P14

이러한 질문에 잠정적으로나마 답하려고 궁리하다 보니, 역사가들이 지금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역사의 숨겨진 차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인류가 감염증과 상호 작용해온 역사로서, 질병의 지배영역을 뛰어넘는 접촉을 통해 미지의 전염병이 전혀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집단을 침범했을 때마다 나타났던 가공할 만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 P21

인간숙주와 전염성 생물체의 상호작용이 몇 세대를 거치며 장기간 지속되면서 양방이 적정 수준의 개체수를 유지한다면, 둘 다 생존할 수 있는 상호적응 패턴이 창출된다. 숙주를 빨리 죽여버리는 병원체는 그 자신도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와 반대로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생물이 기생할 수 없을 정도로 감염에 완벽한 저항력을 가진 인체도 병원생물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다 - P29

사람이 다른 생물에게 미치는 생태학적 역할을 질병에 비유하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닌 듯하다. 언어의 발달로 인해 인류의 문화적 진화가 오래된 생물적 진화와 충돌해온 이래, 인류는 질병이 인체의 자연적인 균형을 파괴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오랫동안 유지되던 자연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게 되었다... 다른 생물의 입장에서 볼 때 인류는 때때로 독성이 약화되기 하지만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관계를 스스로 학립하는 법이 없는 악성 전염병과 같은 존재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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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 2
윌리엄 맥닐 지음, 김우영 옮김 / 이산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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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0년은 세계사에서도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유럽인이 시도한 각종 항해는 지구상의 바다를 그들의 통상과 정복을 위한 공도(公道)로 바꿔놓았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모든 해안지방에 새로운 문화적 전선을 구축했는데, 그 전선은 과거 수세기 동안 아시아의 문명이 스텝지대의 유목민과 대치하던 육상 경계선에 필적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고, 결국에는 그것을 능가하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_ <세계의 역사 2>, p453


 맥닐의 세계사에서 1500년은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전까지는 대등하거나 오히려 뒤쳐진 유럽문명이 이를 기점으로 세계의 중심지로 도약했다는 점에서 이는 중요한 변환점이 된다. 1500년 전 문명 간 영향을 미치던 상호연관성은 이 시기 이후 '중심부-주변부'의 관계로 파악되며,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세계사의 부정합'을 말하는 다음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맥닐에게 비서양 세계의 역사는 서양에서 울렸던 소리에 대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세계의 역사2> 또한 서구중심주의적인 세계사임을 실감하게 된다. 


 1500년 이후 유럽사의 시대구분은 세계사의 기준과 잘 맞지 않는데, 이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근대사의 주제가 서양이 발흥하여 전세계를 지배하는 과정이라면, 유럽 자체의 단계적 발전이 다른 민족과 멀리 떨어져 있는 대륙에 그 충격을 미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시차를 감안하여 1700년까지의 비서양세계의 역사와 1648년까지의 유럽 내부의 역사를 함께 묶어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_ <세계의 역사 2>, p456


 저자는 1500년 직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통해 유럽세계의 자기변용이 일어났고, 이를 바탕으로 촉발된 다원성이 새로운 변화를 가능케 한 것으로 파악한다. 교황과 황제, 군주와 제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종교와 과학 등등. 수많은 분야에서 촉발된 다양한 종류의 갈등이 미봉합된 상태에서 힘을 축적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힘이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을 이루었으며, 결과적으로 제국주의(Imperialism)시대를 열었음을 말한다.


 1870년 무렵까지 산업혁명의 중심지는 영국이었다. 그 후 동쪽의 독일과 서쪽의 미국이 영국의 산업기술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1789년 이후 민주혁명의 중심지는 프랑스였다. 군주제 관료정부의 결함이 드러나고 공중(公衆)의 비판적 기질이 분출된 결과, 이성과 국민의 의지에 따라 전통적인 정치제도를 개조하려는 장기적이고 정열적이며 신중한 노력이 개시되었다. 이 두 가지 거대한 운동은 최초의 중심지로부터 서양세계 전체로 퍼져 나갔고, 오래지 않아 서양문명의 경계를 넘어서 확대되었다. _ <세계의 역사 2>, p593


 <세계의 역사 2> 에서 저자는 1500년을 전환점으로 새로운 변화의 싹이 움트고 있었으며,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이라는 두 개의 큰 줄기에서 피어난 제국주의라는 결과를 낳았고, 이를 20세기 전반을 규정하는 핵심 특징으로 파악한다. 저자는 제국주의 시대의 정점에서 일어난 세계대전과 식민지들의 독립이 20세기 세계사의 주요 사건이라는 틀에서 바라본다. 이 같은 관점에서 여전히 중심부-주변부 이론은 유효하다. 헤게모니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졌을 뿐.


 과학과 기술, 그리고 부강한 나라로부터 힘의 비결을 배우려는 약소국과 약소 민족의 자연스러운 욕망이 세계를 통합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지리적 차이와 언어의 장벽, 그리고 자국의 문화전통을 보존하길 원하는 바람은 그 반대방향으로 작용했다.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과거와의 문화적 연속성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왔다. _ <세계의 역사 2>, p591


 위에서 보듯, 맥닐의 <세계의 역사 2>는 서구 중심적인 세계사다. 유럽문명은 중심부인 반면, 비유럽문명은 미개문명으로 유럽문명이 이룬 성과를 빠르게 받아들였을 때 진정한 문명으로 거듭난다는 저자의 논리는 책이 쓰인 1990년으로부터 35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유럽사=세계사'라는 서구중심적인 세계관을 알게 되고, 그 한계를 체감한다면 나름의 독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일본인처럼 유럽 문명과의 접촉이 제공한 기회를 십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던 민족은 아시아에 없었다. 다른 민족은 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에 만연해 있던 것 같은 문화의 이원성과 대립적인 이념 간의 긴장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_ <세계의 역사 2>, p585

1500년과 1648년 사이 유럽에서는 지적 다원성이 유럽의 토양에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중세에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으나 이론상으로는 정연하게 공식화된 지식이 세계를 이해하는 완전한 구도를 제공해주었다. 그런 종류의 지식이 사라지자, 교회/국가/직업이 저마다 자기 나름의 입장에 따라 진리를 추구했다. 이런 다양성으로 인해, 유럽의 사상은 오늘날까지 지속적이고 아주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 P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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