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 고대 문명의 역사와 보물 세계 10대 문명 7
안나 반잔 지음, 송대범 옮김 / 생각의나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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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헤로도토스는 ˝어떤 나라들도 페르시아만큼 외국관습을 기꺼이 채택하지는 않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페르세폴리스에서는 다양한 인종요소들이 통합되어 아케메네스 양식을 구성하는 독창적인 종합양식을 형성했다. _ 안나 반잔, <페르시아>, p80

안나 반잔의 <페르시아>는 페르시아 문명의 유적, 유물들을 통해 이란-페르시아 문명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책에 담긴 사진들은 시간에 따라 정렬되어 독자들을 마치 박물관으로 인도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책의 핵심은 이 부분이지만, 리뷰로 옮기기에는 한계가 이어 아쉽게 느껴진다.

아케메네스 제국을 멸망시키기는 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어느 정도 제국의과업을 지속하려고 했다... 그 후 알렉산드로스는 실로 빠르게 ‘이란화‘되었다. 그는 사트라프피 체제를 토대로 아케메네스의 통치체제를 유지햇다. 그리고 그는 이란 고원의 지배자들을 부유하게 했던 교통망과 교역의 확장 노력을 모방했다. _ 안나 반잔, <페르시아>, p130

이란 고원에 형성된 중앙아시아의 제국(帝國)의 역사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글로벌-로컬 global-local‘의 순환이 아닐까 생각된다. 알렉산드로스의 대제국은 중앙집권화된 다리우스의 제국이 없었다면, 그토록 짧은 시기에 확장될 수 없었을 것이고, 이전 시기의 융합정책이 없었다면, 헬레니즘 시대의 코스모폴리탄 또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글로벌 global‘이라고 한다면, 이어지는 ‘파르티아-사산조‘의 역사는 ‘로컬 local‘이라는 반동(反動)의 움직임이다.

파르티아인들의 도래는 이란 고원의 헬레니즘을 종식시키고 ‘이란다움‘의 부활로 이어졌다(p132)... 사산 왕조는 이란의 심장부인 파르스 출신인 자신들이 아케메네스 왕조의 적통을 잇는 계승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대가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와는 달랐다. 서쪽으로는 강력한 로마 제국이 있었고, 동쪽으로는 박트리아에 정착해서 기원전 100년에 최종적으로 그리스인들을 몰아낸 쿠샨 왕국이 있었다. 또한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서쪽으로 밀고 나오는 헤프탈족, 즉 백인 훈족들의 위협도 있었다. _ 안나 반잔, <페르시아>, p144

이란-페르시아 문명의 ‘글로벌-로컬‘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은 이슬람화된 이후 역사 속에서도 이어진다. 세계종교인 이슬람교 내에서 소수파인 시아파가 다수인 아랍과는 다른 이란만이 갖는 독특함을 발견하게 된다.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가 결혼했다는 <쿠시나메>의 이야기에서 보여지듯 세계와 연결되었으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함을 간직한 이란-페르시아 문명의 성격을 생각하게 되는 도록이었다...

그 이후 사산 왕조의 문화는 일본에까지 건너갔다. 나라[奈良]에 있는 왕실 보물창고인 쇼소인[正倉院]에서 우리는 중국을 통해 전해진 각종 악기, 식기, 상자들과 특히 사산 왕조의 영향을 받은 직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_ 안나 반잔, <페르시아>,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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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루이스 멈포드 지음, 김종달 옮김 / 경북대학교출판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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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대 기술이 처음에 지리적 탐험에 진 많은 빚뿐만 아니라, 어떻게 이러한 탐험이 결국 변화를 위한 초석을 다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관념화, 구체화, 합리적 공식화의 초기 국면에서 새로운 생활양식을 광범위하게 조직하고 결합시키는 국면으로 지금 막 넘어가려 하고 있다... 지리적 탐험은, 짧게 말해 엄청난 혁명을 일으켰는데, 그것은 양적이면서 동시에 질적인 혁명이었다. 지리적 탐험은 지구 전체 사람들 간 교류를 성립시켰고, 전 지구적으로 에너지 자원의 증가, 재화, 식물, 사람, 사상의 교류를 가져왔다. 이것은 많은 적응들을 쇠퇴시켰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509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1895~1990)의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The Myth of the Machine: The Pentagon of Power>은 이른바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로 불리는 지리적 탐험 이후 가속화된 과학(科學 science)와 기술(機術 technology)의 결합 그리고 사회적으로 관료제(官僚制, bureaucracy)라는 제도를 통해 사회가 거대한 기계 그 자체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총체적 효과는 인간의 삶을 포함해 자연적 존재의 표현에 대한 외부적 통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공식적으로 결합되지 않았다면, 양자는 용해되기보다는 무시하기 쉬운 느슨한 관습법의 관계를 지속했을 것이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154


 경험적 사실로부터 귀납적으로 일반법칙을 도출하는 추상화가 과학이라면, 증명된 과학의 법칙을 일반화시켜 일상생활에 보편화시키는 연역화는 기술의 영역이다. 과학법칙에 의한 사고의 변화는 기술을 통해 생활을 변화시켰고, 변화된 생활로부터 얻어지는 잉여는 과학에 재투자되면서 일종의 순환구조를 형성한다. 순환구조를 통해 생성되는 힘은 점점 더 거대해지면서 사회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된다. 


 기술과 과학에 공통되는 주요 전제는 지식, 물질적 재화, 환경 통제의 증가에는 바람직한 한계가 없다는 관념, 즉 수량적 생산성 자체가 목적이고, 모든 수단은 계속적인 확장을 위해 사용됭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과학이 예견과 통제의 영역을 넓히면서, 지금까지 침입할 수 없었던 자연의 신화에 침투하고, 모든 측면에서 인간의 힘을 증진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우리는 풍요의 경제로부터 야기된 새로운 곤궁에 직면하고 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180


  과학과 기술의 결합은 새로운 시대, 사회를 통제하는 거대한 힘이 되었다. 이 거대한 힘의 원천은 플라톤(Platon, BC E427~ BCE 348)과 중세 스콜라 철학 이래의 추상적, 형이상학적 사고에 기초한 수학에 있었다. 추상적 사고와 수학이 충분히 성숙했을 때 그것은 중세의 복합문화를 깨고 단일화되고 경직된 근대화를 불러오게 된다. 


 과학과 과학에 바탕을 둔 기술은 상상의 실체와 가설적 관계를 논리적으로 다룰 수 있는 중세의 능력이 수학에 새로운 발전을 가져올 때까지는 번성하지 못했다. 중세 신학이 부족했던 점은 엄격한 추상성이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풍성함, 운명 그리고 고결함의 구체성을 이해하는 능력이었다. 여기에 심미적 자연주의는 많은 기여를 해왔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45


  복합기술의 장점 중 하나는 기술, 심미적 판단과 감상, 상징적 이해가 특정 계급이나 직업에 제한되어 있지 않고 전체 공동체에 확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복합기술은 그 특성상 단일하게 축소되고, 표준화되고, 획일적인 시스템, 중앙 집중적인 통제 아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복합기술의 많은 부분은 여자의 관심과 여성 방식의 작업이 많았던 신석기 문화로부터 도출된 예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197


 중세의 추상적 사고에 의해 대체된 것은 복합문화 뿐만이 아니다. 이 시기 지식의 소유계급 브라만(Brahman) 또한 신학(神學)의 과학(科學)으로의 이행과 함께 성직자로부터 과학자들로 대체되었다. 고대와 중세 시대 국가권력과 결탁을 통해 호국(護國)의 이데올로기로 성(聖)의 권력으로 생존해온 종교(宗敎)와 마찬가지로 과학 또한 정치적 중립 또는 기술관료로서 충성을 통해 새로운 기계 시스템의 정신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데 성공한다. 


 일단 과학자들이 신학, 정치학, 윤리학, 시사(時事)를 논의 영역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자, 그들은 국가 지배자에 의해 환영받았다. 보상으로 과학자들은 습관적으로 공적인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외견상 '충성'스러웠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정신적 고립은 새로운 거대기계의 톱니로 운명 지워졌다... 과학은 수도원의 구도자들이 자신의 규율을 위해 그러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바쳐 헌신하는 많은 '성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런 소외와 자기기만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64


 이러한 종교를 대신한 과학과 기술의 결합은 무엇을 의미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저자 멈포드는 복합기술에서 단일 기술로의 표준화가 인간 개인에게는 가치를 박탈하고 소외의식을 불러왔으며, 사회 전체적으로는 '진보(進步)'라는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 제시와 이의 실현을 위한 전체주의적 사회가 형성되었음을 비판한다. 


 모든 측면에서 노동은 인간의 마음을 넓히고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데 결정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했다. 사람이 단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은 사고력을 자극하고 신체의 능력을 확장해 온 많은 활동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의의 목적을 위해, 어떤 이는 인간의 기본 속성을 도구 이용과 도구 제조로 정의하는데, 이는 인류학적 정체성을 받아들인 결과다. 그러면 기계화와 자동화가 인간이 지닌 적응성 있는 사고력에 영향을 미칠 때 기계화와 자동화의 축적된 결과에 대해 인간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243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는 과거 부정과 파괴 후 재생산을 통해 사회 자체는 끊임없이 운동하지만, 운동을 통해 더 집중화되고 획일화되는 과정 속에서 발전을 통한 빈곤화가 가속화된다는 일종의 역설이 거대 기계화의 숨겨진 면이다.


 끝없는 기계적 진보의 전망, 전체주의적 유토피아, 과학적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현실적 외삽법 등은 모두 보통 실현되는 것보다 실제 일상의 변화에 더 활동적인 역할을 했다.이러한 예상되는 주관적 선동은 항상 실제 경험에 앞섰고, 끈질기게 유인하고, 다음 단계에 앞서 지적하고, 그리고 변화의 템포를 감소시키거나 방향을 바꾸려는 어떠한 시도는 우주의 속성상 당연히 예정된 것이라고 제시함으로써 저항을 깨부수고 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308


 거대기술은 결핍이라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해결하기 곤란한 새로운 형태로 제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사용할 수 없고 인내하지 못하는 풍요로움에서 직접 기인하는 삶의 심각한 결함이다. 그러나 결핍은 남는다. 명백히 기계가 만들어낸 물질적 상품과 기계적 서비스의 결핍이 아니라, 생산성, 속도, 힘, 위신, 금전적 이익 이외의 가치에 기초하는, 보다 풍요로운 개인적 발달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모든 것의 결핍이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448

 

  기계화란 무엇인가? 루이스 멈포드는 <기계의 신화>를 통해 현대 인류에게 평안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여겨지는 기계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로부터 저자는 기계화가 단순히 물질문명을 지탱하는 생산공정에 한정되지 않고, 보다 거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오랜 역사적 산물임을 주장한다. 리바이어던이 갖는 오랜 역사만큼 그 올가미는 단단하고 우리를 강하게 옭아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일문화에서 선사시대의 복합화를 위한 엘랑 비탈(Ellan Vital)을 해야 할 것이다.


 지리적인 미개척 영역은 이제 끝났지만, 덜 피상적인 탐험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의 탐험이며 객관적 현상뿐만 아니라 주관적 현상으로의 탐험이다. 이 새로운 탐험은 원인-결과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거의 탈출할 수 없고 묘사될 수 없는 복잡성의 패턴을 다루는데, 이 복잡성은 시간을 통해 흐르고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한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510


 글의 마지막은 본문에 언급된 핵(核)과 관련한 최근 두 주제를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자.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Edward Nolan) 감독의 <오펜하이머 Oppenheimer>와 24일부터 개시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서로 다른 두 주제를 거대한 기계의 신화를 통해 생각하면서 글을 갈무리한다...


 핵폭탄을 발명하면서, 신 거대기계의 핵심적인 인간 요소는 공간적으로 결합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며,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최고사령관이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353


  현재까지 핵분열이라는 위대한 과학적 업적의 부정적 결과가 어마어마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핵폭탄에 관한 한, 유일한 긍정적 이익은 일시적으로 새로운 거대기계를 만드는 산업의 관료적, 과학적 조직들이 생겨나는 것뿐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다음에 원자로 통제를 통해 성취한 가장 큰 이익은 순수하게 정신적인 측면이다. 우주 실재에 관해 풍부해진 인식, 즉 살아 있는 유기체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점유하게 된 우주와 공간의 본질에 대한 심화된 통찰력이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 권력의 펜타곤> , p402



(신세계의 발견과 이로 인한 19세기) 퇴보의 결과, 기계적 신세계가 인간 정신 내부의 ‘낭만적 신세계‘를 대체했다. 낭만적 신세계는 기존 질서의 진정한 대안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현실 도피자의 몽상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신과 새로운 종교의 결합으로부터 새로운 기계적 세계관이 생겨났다. 모든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모든 성공적인 새로운 발명과 더불어 새로운 기계적 세계관은 자연계와 인간 문화의 다양한 상징들을 단지 기계적 측정에 의해 재단된 환경으로 대체시켰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탈인간화된 환경을 우선시한다 - P43

인간의 첫 번째 정교한 기계는 주로 인간적 부분으로 구성되고, 마음에 의해 기계화, 조직된 것이었다. 기계체의 의식적 발전은 특히 인간적 특성인데, 나무와 금속 부품의 기계에서처럼 언어와 예절의 조직에서 볼 수 있다. 정신 자체는 유기체 고유의 기계를 창조, 이용, 초월하는 방법으로서 대부분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 P140

진보에 대한 최초의 사고는 아마 신성한 목적을 위한 자기 완벽이라는 기독교적 생각에서 배태되었을 것이다. 황금기로의 복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기 완벽의 이상적 완성은 천국에서 정적인 미래의 완성이었다. 이 진보의 관념은 천년왕국 즉, 먼 천국으로의 통로가 아니라 땅에 강림할 더 실체적인 천국에 대한 당시의 믿음에 뿌리내리고 있었다(p270)... 개선은 안정적이고, 지속적, 필연적으로 축적된다는 세계상은 계몽주의 지식인의 온화한 낙관주의뿐만 아니라 인류사에서 그들 자신의 자리라는 자기 아부적 관념까지 반영했다. - P271

국가 조세로부터 비롯된 엄청난 증여가 현대 경제의 경제적 역동성을 지탱하는 이윤동기를 대체해 왔다. 이윤과 손실, 비용과 편익이란 계산은 결코 거대기계의 작동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없다. 비용은 다시 편익으로 전환된다. 즉 군사적 노후와 노골적인 파괴를 통한 예기된 손실은 신선한 기업 이윤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또는 예상되는 전쟁을 통해 거대기계는 그 범위를 증대시켰고 권력을 확대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본주의가 작동을 규제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두었던 피드백 형태를 제거했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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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끝에서 두번째 세계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4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지음, 폴 오스카 크리스텔러 엮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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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나 상황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두 가지 시간 개념을 농축된 형태로 구현하는 이율배반적인 존재단위이다. 시대란, 서로 다른 시간표를 갖는 여러 배열체의 사건들로 이루어진 성좌 configuration로서, 시간의 균질적 흐름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고유한 시간을 정한다. 그러니 어느 한 시대가 시간성을 경험하는 방식은 그 시대 앞뒤의 다른 시대들이 시간성을 경험하는 방식과 다를 수 있다. 시대 사이에는 비약이 있다는 뜻이요, 이어진 시대들 사이의 이행은 문제적이라는 뜻이요, 역사적 과정에 단절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_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 끝에서 두번째 세계> , p171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Siegfried Kracauer,1889~1966)는 <역사 : 끝에서 두번째 세계 History: The Last Things Before The Last>에서 역사를 연대기적 시간과 고유한 시간을 갖는 이질적이면서 양 면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해석한다.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사이에서 과연 역사가는 개별 사태로부터 역사의 일반 법칙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역사의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역사가는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역사계의 구조의 문제가 나온다. 역사계는 역사가가 서로 다른 차원들 사이를 쉽게 오갈 수 있을 만큼 균질적인 세계인가? 거시사의 실체성과 타당성, 곧 거시사의 실재성 reality character은 막힘없는 양방향 교통에 달려 있다. _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 끝에서 두번째 세계> , p139


 저자 크라카우어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비균질적인 구조 속에서 역사가는 지극히 한정된 정보로 자신의 주관과 이해의 깊이에 따라 그것을 연결시킬 수 있을 따름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역사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술가에 의해서다. 크라카우어는 성공적인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이 융합을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1871~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예술작품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현실이 아닌 상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진 허구적 아름다움. 결국 완벽한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결합은 현실이 아닌 이데아의 세계에서만이 가능할 수 있을까.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이 교통하는 데는 극심한 제약이 따른다. '원근의 법칙'에 따라서, 증거의 일부는 자동 누락된다. '수위의 법칙'에 따라서, 누락되지 않은 증거의 일부는 손상된 상태로 목적지에 도달한다. 이것은 역사계가 비균질적 nonhomogeneous 구조임을 뜻한다. 역사계는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밀도를 가지는 여러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편으로는 불가해한 회오리에 싸여 있다. _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 끝에서 두번째 세계> , p144


 예술의 본질적 기능이 완수되는 때는, 예술이 역사가가 세운 목표일 때가 아니라 역사가가 이룬 결과일 때이다. 역사가가 어떤 사료를 다루느냐에 따라 미학적으로 훌륭한 언어가 요구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언어의 아름다움은 역사가의 이해의 깊이를 보여주는 데 그친다. 언어의 아름다움은 부산물이지 명시적 목표가 아니니 말이다. 역사가가 예술을 생산하는 때는 예술가일 때가 아니라 완벽한 역사가일 때이다. _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 끝에서 두번째 세계> , p194


 크라카우어에 의하면 <역사철학>에서 보여준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시대정신(Zeitgeist)은 연대기적 사건 속에서 역사의 법칙에 맞는 선택적 조합이다. 마치 회귀분석(regression analysis)에서 연속형 변수들 사이에 연구자의 주관에 맞는 모형을 구축한 뒤 실선 바깥의 수많은 표준편차들이 무시되는 것처럼 거시사의 역사법칙 위에 역사의 개별 사례들은 무시되어도 좋을 것인가. 크라카우어는 이 점에서 철저하게 개별사례에 집중할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top down식의 대륙철학보다는 bottom up 방식의 경험론철학에 가까운 셈이다. 


 역사가가 미시적 차원을 벗어나 보다 일반적 차원으로 올라갈 때, 그는 내가 '역사적 이념'이라고 명명한 지점에 도달한다. 그가 그 지점을 지나 '철학적' 이념의 차원 내지 극단적 추상화의 차원으로 올라가면, 그의 통찰의 의의는 계속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든다. 대규모 역사는 미시적 차원의 많은 사실들을 제외시킨다는 것에 주목하자. 아주 높은 추상화는 증거와의 연관성을 잃게 되며, 없었던 이념을 끼워넣게 된다. _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 끝에서 두번째 세계> , p147


 우리가 '상상적 구축'이라고 여기는 것들, 곧 인류의 운명에 대한 종교적 예언들, 신학적 추론들, 형이상학적 이념들이 오랜 세월동안 통사의 존재이유 raison d'etre였다. 역사의 행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바로 그런 것들에 기초한다. 모든 기본적인 여구는 '위'로부터의 접근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제국들과 민족들의 운명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접근이 '아래'로부터의 접근에 항복한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였다. _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 끝에서 두번째 세계> , p208


 역사는 한 편으로는 구체적인 일상생활과 다른 한 편으로는 추상세계와 접한다. 이러한 접점은 알타미라 동굴(Altamira)과 라스코(Lascaux) 동굴 벽화에 보여지는 생생한 동물 그림과 여기에 담겨진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의 결합처럼 예술에서는 성공적으로 작동하지만, 이러한 의미를 극단이 아닌 대기실에 있는 처지의 역사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컨대 헤겔의 시대정신은 그의 <미학강의>에서는 허용될 수 있겠지만, <역사철학>에서는 유용하지 않는, 미(美)의 경계를 넘어 진(眞)의 세계로 진입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볼 때 딜타이의 이런 흔들림은 근본적인 흔들림이다. 그의 흔들림의 한쪽 극단은 헤겔의 '세계정신'이고 다른 쪽 극단은 하이데거의 '존재가능 Seinkoennen'이다. 후자는 모든 객관성을 삼켜버리고 아울러 일련의 진실들 사이의 모든 관계를 삼켜버린다. 진보의 이념은 역사 전체에 적용되었을 때라야 비로소 온전하게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진보의 이념이 그렇게 전면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진보의 개념은 서로 대립하는 두 측면을 갖고 있으므로 이 개념에 대한 모든 정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진보의 이념은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런 시대들의 연속은 진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_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 끝에서 두번째 세계> , p220

  

 이처럼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의<역사 : 끝에서 두번째 세계>는 역사가 대상으로 삼는 시대와 역사가의 한계를 통해 미시사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그 과정에서 헤겔의 역사철학이 비판되는데, 크라카우어의 역사철학에 대한 비판과 칼 포퍼(Sir Karl Raimund Popper,1902~1994)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보여준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점의 같은 듯 살짝 다른 내용을 비교해 본다면 보다 의미있는 독서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현대 작가들과 현대 예술가들의 파괴적 의도는 종합을 노리며 '외적인 총체적 연속체'를 강조하는 내러티브에 대한 역사가들과 사상가들의 점증하는 의혹과 비슷한 데가 있다. 이런 유사성들 사이에서 하나의 원인을 찾아보고 싶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정신 Zeitgeist이란 신기루이다. 교차영향들을 상쇄하는 온갖 불일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_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 끝에서 두번째 세계> , p200

크로체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의 시대란 그 시대 특유의 정신 spirit을 소유하고 있는 통일체라기보다는 경향들, 목표들, 활동들의 덩어리이며, 이런 경향들, 목표들, 활동들은 많은 경우 서로 무관하게 발현된다. 물론 어느 한 순간을 놓고 보면 특정한 믿음들, 목적들, 태도들 등등이 널리 퍼져 있기도 하고 심지어 대세가 되어 있기도 하다. 이처럼 시대적 대세가 존재한다는 것은 형이상학적 "당위"라기보다는 경험적 사실일 뿐이다. - P81

프루스트는 연대순 시간을 실체적 시간으로 회복시키지만, 그것은 사후적 a posteriori 회복일 뿐이다. 프루스트가 자신의 파편화된 삶의 이야기를 하나의 통일적 과정으로 볼 수 있으려면,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났어야 한다. 또 그가 이렇게 맞서는 두 명제를 화해시킨 것, 곧 그의 승리는 그가 예술 차원으로 물러난 것, 곧 그의 후퇴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에는 적용될 수 없는 해결이다. 역사는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학적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P179

역사가가 예술가로 성공하면 역사 그 자체는 많은 경우 실패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역사가 과학인 동시에 예술이라는 말이 유의미할 때는 예술이 역사의 외적 요소가 아니라 역사의 내적 속성일 때, 예술이 일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역사가의 자기 삭제 및 자기확장 능력, 그리고 역사가의 진단과 탐구의 취지일 때, 다시 말해 예술이 익명성을 잃지 않았을 때로 한정된다. - P195

시간의 핵심은 이율배반이다. 시간은 한편으로는 관습적인 흐름 이미지에 부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이미지에 부응하지 않는 면도 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물줄기로 이루어진 폭포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 물줄기들 사이에는 왠지 간섭현상을 연상시키는 ‘구멍들‘이 있다. 이렇게 보자면 이와 같은 구멍에서 솟아나는 어떤 이념들의 상대성은, 잠정적으로는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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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Zeitgeist이란 신기루이다. 교차영향들을 상쇄하는 온갖 불일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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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신화 1 - 기술과 인류의 발달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49
루이스 멈포드 지음, 유명기 옮김 / 아카넷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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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신의 내적, 외적 요인을 어떻게 선택적으로 조직하여 의식적으로 지도하여 더욱 일관되고 더욱 이해하기 쉬운 전체로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기술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인류가 바로 자신의 몸을 재료로 삼아 만들어 낸, 신체 이외의 형태로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도구를 발명하는 데 성공하기까지, 돌이나 나무, 섬유로 만든 도구는 제 몫을 다할 수 없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 p78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1895 ~ 1990)의 <기계의 신화 1_기술과 인류의 발달 The Myth of the Machine: Technics and Human Development>은 초기 문명사에서 과도하게 평가된 '기계(machine)'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뗀석기에서 간석기로, 청동기에서 철기로의 도구 사용의 변화가 생산량의 변화로 이어지고, 이러한 생산량의 변화가 가져온 사회변동이 수렵채집경제에서 농업경제로, 도시문명으로 만들고 중앙집권적 제국을 만들었다는 일종의 상식을 저자는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초기 인류가 번성했던 것은 오로지 도구를 사용한 덕분이라기보다는 의례나 언어의 사회 활동에 의한 것이었다. 도구 제작과 도구 사용의 기술은 의례 표현과 말 만들기에 비하여 오랫동안 뒤쳐졌다. 애초에 인류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자신의 몸에서 끌어낸 형식화된 음과 이미지와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점들을 공유하려는 노력들이 사회적 결속을 촉진하였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 p111


 저자 루이스 멈포드는 초기 신석기 혁명이라고 불리는 초기 문명에서의 모든 기술적 도구의 변화는 이러한 변화가 수용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충분히 갖춰진 후에야 비로소 수용이 가능하다. 호모 사피엔스의 커진 뇌 용량으로 인간 정신은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상징(symbol) 체계의 사회적 확산이라는 인프라가 갖춰진 후에야 비로소 언어(言語)가 등장할 수 있었고 시간적 제약을 넘어선 지식의 축적 이후에야 잉여 생산물 축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루이스 멈포드에게 있어 상부구조는 하부구조를 결정짓는다. 


 인간의 정신은 뇌에 비해 특별한 이점을 갖고 있다. 즉, 일단 의미 깊은 상징을 창조하고 중요한 기억을 저장하게 되면, 정신은 그 특유의 활동을 뇌의 짧은 수명보다 훨씬 오래 남는 돌이나 종이 같은 물질에 옮길 수 있다. 유기체가 죽으면, 평생 축적한 모든 것과 함께 뇌도 죽는다. 그러나 정신은, 애초에 상징을 모으고 정리하는 개개의 뇌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적 매개물에게 상징을 전함으로써, 자기를 재생산한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 p53


 추상적 음성이 현실의 사람, 구체적 장소와 대상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말이 지닌 근원적인 마법적 특성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대단한 마법은, 이들 같거나 비슷한 음성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이미 지나간 일을 상기시키거나 전혀 새로운 일을 계획한다는 사실에 있었다. 이것은 동물세계의 폐쇄적 신호에서 인간의 열린 언어로 옮아가는 것이었다. 언어가 여기에 이르자, 과거와 미래는 모두 현재의 살아있는 일부가 되었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 p145


 루이스 멈포드가 기술적 발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술적 발전은 기껏해야 사회적 구조 변화를 따르거나 진폭을 확장시킬 수는 있지만, 결코 앞서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초기 문명에서 정신적/사회적 변화는 초격차를 유지하며 언제나 과학기술을 선도했다는 <기계의 신화 1>의 내용은 5G,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된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추상성과 상상으로 다른 생물과 차별화해온 인간에게 인공지능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계로 새로운 위협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새로운 종류의 기계에 불과할 것인가. 최근 사회 전반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문제와 함께 <기계의 신화>를 생각하며 읽는다면 보다 의미있는 독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모든 기술적 진보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뒤에는 간과되어 온 더 중요한 동력이 있었다. 곧,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존재의 모든 차원을 변화시킨 새로운 종류의 사회조직의 힘이었다. 그런 변화는 작고 현실에 밀착된 초기 신석기시대 규모의 공동체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선사시대의 가설적 재구축을 시도하면서 내가 보여주려는 것은, 모든 기술적 진보는 그 이전과 이후의 필연적인 심리적, 사회적 변환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_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 p314

내 해석이 맞다면, 의례가 언어를 통한 효과적인 표현과 의사 전달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던 것처럼, 터부는 도덕적 훈련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다. 이 둘이 없었다면, 인류의 발달 과정은, 수많은 강력한 통치자나 국가가 정신병적 폭거나 생명을 억압하는 타락 후에 만한 것처럼, 이미 예전에 끝났을지도 모른다. - P122

지적 담론의 전달 수단이라 할 수 있는 합리적 언어는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직접적인 구체적 표현과 연상에서 조직적인 정신유형에 이르는 기나긴 인류 성장의 여정에 마지막으로 뿌려진 씨앗이었다. 신화는 그 여정에서 이루어진 첫 개화(開花)였다. 통일된 음성 담론, 합리적 담화, 추상적 상징주의, 분석적 뜯어보기는 그 꽃이 지고 꽃잎이 떨어지기까지는 불가능하였다. - P157

왕권과 함께, 추상으로서의 힘,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힘이 ‘문명‘을 확인하는 중요한 표식이 되었다. 그것은 그 이전의 모든 문화의 규범과 형태에 반하는 것이었다(p349)... 역사를 통하여 그 비중은 가변적이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존재하는 ‘문명‘의 주된 특징은, 정치권력의 중앙 집중화, 계급 분리, 종신 분업, 생산의 기계화, 군사력 팽창, 약자에 대한 경제적 착취, 그리고 노예제의 보편적 도입 및 산업과 군사 목적의 강제 노동이다. - P350

인간기계의 위계 구조가 일단 확립되면, 그것이 통제할 일손의 수나 행사할 힘에는 이론적 한계가 없었다. 사실 인간적 차원과 생물학적 한계의 배제야말로 그런 권위주의적 기계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그 생산성의 일부는, 인간의 게으름과 신체 피로를 극복하기 위해 써먹은 무제한의 물리적 강제 덕분이다. 직업의 전문화는 인간기계의 조립에서 필수적인 걸음이었다. 공정의 모든 단계에 기능을 확실하게 집중함으로써만 초인간적으로 정밀하고 완벽한 생산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현대 산업사회 전반에 걸친 대규모 노동 분화와 세분화는 이때 시작되었다. - P374

자본주의가 번영한 곳에서는 성공적인 경제 기업을 위한 3개의 주된 규준이 확립되었다. 곧, 수량의 계산, 시간의 관측과 통제, 그리고 추상적인 금전적 보수에의 전심전력이다. 자본주의의 궁극적 가치 - 힘, 이윤, 위세 - 는 이들 원천에서 나왔고, 빤히 들여다 보이는 위장 아래의 그 모든 것은 피라미드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 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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