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다,는 말은 감정적인 인상이 있다.
죽을 때까지 칼로 찌르는 것,과 죽을 때까지 때리는 것, 무엇이 더 잔인한가?라는 이야기를 하릴없을 때 하릴없이 한 적이 있다.
잔인하다,라는 한자어는 역시 칼,이지만(殘忍 죽을사변에 남을잔(창(戈:창과)이 두 개나 겹쳐있다), 심장에 칼을 꽂았다.), 그 말이 가지는 감정적인 느낌은 저런 질문을 만든다.
잔인하다,라는 말의 사전적 풀이에 보이는 인정머리 없다,라는 건 인간이 당연히 가지고 있을 어떤 마음이 뭘까,라는 무얼 더 보기 힘들어 하는가,란 질문도 만든다.
어떤 걸 더 보기 힘들어하나, 인간이라면 응당, 무엇을 더 못 참는가.
책들을 읽고, 영화를 보고, 같지만 다른 잔인함에 대해 생각한다.
1.상나라 정벌
이 책을 읽을 때, 인간은 잔인하다,라고 생각했다.
모든 초기 문명에서 나타난다는 인신공양, 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초보적인 문명의 단계, 인간이 상상하는 어떤 것, 지금은 '잔인하다'나, '인간답지 못하다'고 말하지만, 인간은 그럴 수 있는 존재,라고도 생각한다. 잔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했다.
내버려 두면, 잔인해지기 때문에 악착같이 가리고 숨기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고대의 이야기라서, 너는 그렇지만, 나는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인정머리 없다,와 잔인하다,는 말에서 인정머리,라는 것이 얼마나 문화적인 것인가,도 생각한다.
신께 드릴 게 없어서, 귀한 사람의 절박한 비명이 하늘에 닿게 하는 종교적 묘사들 가운데, 인간의 잔인함을 보는 거다. 제사는 그런 것이었지만, 그런 게 아닌 척, 이제 인간은 그걸 감추고 숨겨서 그럴 듯하게 인정머리를 연기하고 있다.
2. 원청
제국이 사라진 광대한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본다.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무시무시한 세계에서, 칼 뿐 아니라 총을 들고도 사람들은 서로를 도륙한다.
묘사가 일상적이라, 충격을 받는다.
밥을 먹는 일처럼, 귀를 자르는 비적의 묘사가 있다. 도시의 사람을 납치해서, 돈을 요구한다. 귀를 잘라 협박하는 비적의 무리는 다시 자리잡는 문명이나 제도 아래서, 사람들 사이로 흩어져 섞인다.
내 옆에 선량한 누구라도, 복수와 원한 가운데, 칼을 들고 일어서서 그 대상만큼 혹은 그 대상을 넘어서는 잔인함을 또 보여줄 수 있다. 피로 갚는 피, 가운데, 인간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위태롭고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다.
3. 인어사냥
잔인함을 묘사하고 있지만, 좀 결벽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봤자 인간은 아니다, 라고.
잔인무도한 나는, 이입하는 대신 물러선다.
그런 약은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인 나는 아마도 그래서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하지만, 그런 종류의 잔인함도 용납하지 못하는 선량함에는 의구심을 가진다.
인간은 잔인하지만, 어떤 종류의 인간은 그게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 죽여 먹을 수 없을 만큼 예민하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만들었다.
4. 영화들 : 귀멸의 칼날:무한성편1, 체인소맨레제, 주술회전:회옥,옥절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그림으로 표현된 잔인함은 너무 과해서 보기 어렵다.
머리가 터지고, 사지가 잘리고,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인간이 아니라고, 다른 존재라고, 악마거나 귀신이거나, 악귀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럴 수 있는 잔인함이 눈 앞에 전시된다.
나는, 그걸 구분할 수 없다고, 인간은 잔인하고, 알 수 없는 게 아니냐고 질문한다.
잔인하고, 잔인한 동아시아에서, 잔인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들을 본다.
신께 바치는 고귀한 자의 비명을 위해 잔인할 수도 있고, 팽배한 자본주의 하에서 돈을 위해서도 잔인해질 수 있고,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목숨이나 안위를 위해서도 잔인해질 수 있다.
혹은 그 잔인함을 상대에 대한 재정의로도 행할 수도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
잔인함이란 어디까지 그 범주를 늘릴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얼마나 잔인한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