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길 - 1990년대 이후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지음, 나애리.조성애 옮김 / 필로소픽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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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마치고도 정리할 마음이 안 생겼다. 

난데없이 정리할 마음이 생긴 건, 이 아침에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올린 카스피님의 글( https://blog.aladin.co.kr/caspi/15727549 )에 댓글을 달고 나서다.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세계인에게 전시하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프랑스는 파리는 무엇을 했는가. 

그저 이 책 속의 태도 정도만 견지했어도 저런 소리를 안 들었을 텐데, 싶었다. 

이제 나는 페미니즘 자체를 버렸기 때문에, 자유주의 페미니스트가 지금 '남녀 임금격차가 여전한 데도 페미니즘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책 속의 논조가 동의되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을 쓸 때에도 여전히 페미니스트이고 페미니즘에 대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운동가다. 자신의 일생을 바쳐 여성운동을 통한 성취를 이뤄냈고, 59세가 되던 해에 페미니즘의 새로운 사조에 경계하는 마음을 담아 쓴 책이다. 2003년에 나온 책이니, 프랑스에서 20년도 더 전에 드러났던 문제라는 거다. 


여성원자력인모임같은 게 있는데, 메일로 설문조사 요청을 했다. 세계 여성원자력인모임에서 업계의 성차별을 조사한다는 설문을 포워딩한 거였는데, 설문의 첫번째는 '나는 내 자신을 여성 또는 여성에 가깝다고 느낀다'였다. 설문하는 내 자신에 대한 그 질문을 받아들고, 나는 설문 자체를 닫았다. 원자력계에 여성인력이 적다,라는 말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는 건데, 질문의 시작이 그 시작을 흔든다. 이게 현대 성과 관련한 다양한 운동가들의 발언이 제도에 들어와 벌인 일들이다. 여성,에 대한 정의부터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서 파리의 링에서 XX염색체의 여성복서는 XY염색체의 여성?복서 주먹 한 방에 무릎을 꿇고 기권을 선언했다. 여성주의,라는 운동이 발 딛고 선 이분법의 세상이 흐려지고 있는데, 그래도 여성주의가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여성운동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나는, 남자 여자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으면 좋겠다. 성소수자를 위한다면서 만들어지는  공용화장실이 싫다. 누구에게나 아무런 불편이 없는 시스템,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여성주의는 극단적이고 모순적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상한 말들을 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서 가장 유리할 법한 말에 가져다 붙인다. 



이처럼 불운을 당한 '희생자로 자처하기'가 사회에 만연하게 되면서 이들 희생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정의 위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가해자들에게 어떤 형벌과 제재를 가할 것인가만을 화젯거리로 삼게 되었다. - 20p


모성애의 개념으로 여성을 정의하는 것은 사실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에서 성의 차이를 인정받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28p


이런 식으로 통계 수치를 부풀려 가면서 여성운동을 진행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드워킨이나 매키넌처럼 극단까지 가지 않더라도 결국 여성은 정치적으로 '아동'과 같은 사회 신분으로까지 떨어지게 된다. 연약하고 무력한 어린 아이의 신분 말이다. - 72p


아동이 부모에게 보호를 요청하듯이, 아동과 같은 신분을 갖게 된 여성은 법에 호소해야 한다. - 73p


생리학적 차이를 미덕과 역할 수행의 기본 요소로 보는 이런 접근 방식은 모성애를 알지 못하는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단죄하는 것이다. - 89p


(동성 또는 이성이) 함께 하는 삶은 심리적 억압이나 긴장을 피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을 침묵 속에 묻어 두거나 분노를 자아낼 수도 있는 극도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말로 표현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언어폭력을 육체적 폭력과 동일시하면서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산이다. 누가 뭐래도 말로 인한 상처는 육체에 가해진 상처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 폭력을 피할 수 없는, 남녀 모두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이다. 

언어폭력이 부당하다고 하면서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결국 분노의 표현을 금지하는 것이다. - 160p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권력 남용의 또 다른 예가 있다. 30년 전부터 여성들은 임신 출산의 권리를 독점하고 있다. 여성이 결정적으로 임신 여부를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 당연한 듯하지만, 만일 남자가 아이의 출산을 원하지 않는 경우 이는 남자의 정액을 이용하는 '권력 남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무관심해서, 혹은 여자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아서, 한 남자가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상당한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남성이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는데도, 여성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출산한 후 남성에게 부성애를 강요하는 것은 '정신적 침해'라고 할 수 있다. - 164p 


소비된 성[性]에 대한 비판에 이어, 성의 상품화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이 페미니즘의 어투는 오래된 유대 기독교의 권선징악적 어투를 닮아갔고, 그렇게도 힘들여 없애려 했던 성에 대한 상투적 개념을 되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 175p


성 정체성을 배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며, 이런 주장이 어떤 이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성 정체성은 대립적 개념과 희화화, 그리고 상투적 표현들을 통해 습득된다. 성 정체성이 남자아이들에게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습득된 성 정체성은 차후 이성과 맺게 될 관계에서 필요한 조건이 된다. 남성적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더 이상 문제 되지 않을 때 비로소 경계가 무너지고 합의가 태어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유사성은 도착점에 가서야 생기는 것이지 출발점에서 생기는 것은 분명 아니다. - 245p 


이슬람교도 다른 모든 종교와 똑같이 취급되어야 한다. (...) 학교에서는 머릿수건을 금지해야 한다. - 276p


상반되는 두 가지 페미니즘 이론이 잇따라 나타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삼사십 대의 요즘 남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첫 번째 페미니즘의 특혜를 누렸다. 그들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두 번째 페미니즘 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성생활의 자유, 평등이라는 이상, 역할 분담을 굳건히 지지하지만 이 세 가지를 요구할 때는 예전의 믿음과는 철저히 단절되어야 함을 깨닫지 못한다. 십여 년 전부터 생리학이 다시금 대두되고 있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진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가운데, 평등을 향한 행진은 어렵거나 불가능해지고 있다. 사랑이라고 말하는 대신 모성 본능을 내세우면서, 남자를 육아와 가사에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것은 동시에 할 수 없는 일이다. - 2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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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08-03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극단적 페미니즘의 지적 천박성이나 저열함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루왕(蓋婁王)은 도미의 아내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의리와 절행(節行)이 높다는 말을 듣고 이를 의심한다. 그러자 도미는 자신의 아내가 죽더라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였다. 이에 개루왕이 도미 처의 정절(貞節)을 시험하고자 도미를 궁에 머물게 하고, 도미 처에게 의복과 사람을 보내 “너의 아름다움을 듣고 도미와 내기를 하였다. 너를 불러 궁인을 삼을 것이니 이제 네 몸은 나의 소유다.”라는 말을 전하게 하였다. 개루왕이 도미의 처를 취하려 하자, 도미의 처는 “따르지 않을 수 없는 명령이라 옷을 고쳐 입고 뒤따라 들어갈 터이니 왕께서 먼저 방에 들어가 계시라.”라고 말하고, 계집종을 자신의 모습처럼 꾸민 후 자신 대신 개루왕의 수청(守廳)을 들게 하였다.

후에 개루왕은 속았음을 알고 화를 내며, 도미의 두 눈을 멀게 하고 사람을 시켜서 강에 배를 띄워 보냈다. 그리고 개루왕은 도미의 부인을 데려다 성관계를 강제로 맺으려 했다. 그러나 도미의 처는 월경(月經)을 핑계 삼아 다른 날 모시겠다고 말한 후 도망쳤다. 도미의 처는 도망치다가 강어귀에 이르렀는데, 강을 건너갈 수 없어 하늘을 부르며 통곡했다. 그때 홀연히 배 한 척이 도미의 처 앞으로 왔다. 도미의 처는 그 배를 타고 가 천성도(泉城島)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남편을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풀뿌리를 캐 먹다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고구려 산산(䔉山)으로 갔다. 고구려 사람들이 도미 부부에게 옷과 음식을 주었다. 도미 부부는 가난하게 살다가 객지(客地)에서 일생을 마쳤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7449 )


이 이야기를 나는 언제 읽었을까. 초등학교 도서관에 두꺼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같은 이야기들을 읽었던 거 같은데, 달 밝은 밤에 정분이 나는 신라시대 복색의 처녀총각 삽화가 있었던 것도 같다. 이런 이야기들로 어른의 세계를 엿보는 애였던 거다. 권력과 사랑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 


이 이야기를 계속 생각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도미부인이 나는 좋았다.  


그런데도, 도미부인 이야기를 좋아했다고 쓰는 건 망설여지는 일이다. 

검색하고, 이야기에 대해 다시 듣고, 더하여 '정조를 강조하기 위해' 이 이야기가 쓰였다는 것도 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 이야기를 정조에 대한 이야기,로 들었던 걸까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정조나 정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내 마음. 이익과 합리와 그게 무엇이든 설득할 수 없는 강경한 내 마음에 대한 이야기. 


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 추정되는 세계, 속에서 왕이 취하고자 하는 여자를 취하려 하는 걸 벌할 법은 없었겠지.

여자가 남자의 소유였다고 추정되는 세계, 속에서 아내를 걸고 내기를 하는 남편을 벌할 수는 없었겠지. 

남편이 내기를 했건, 안 했건, 왕이 폭력이었건, 설득이었건, 도미의 처가 고분고분했다면 이야기가 없었겠지. 남편이 눈을 뽑히지도 않았을 테고. 

도미 부인은 자기 마음을 지키기로 한 사람이니까, 이야기가 되어 남았다. 이름이 남은 도미는 형체를 잃었지만, 이름을 남기지 못한 부인은 천년 뒤의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지키겠어! 이유로 설득하지 못 해도 싫은 건 싫은 거야! '라고 마음을 단단히 하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는 거지.

이야기가 되어 남는 그 강경한 마음의 선택이 섬에 떠밀려 온 쪽배 위에 눈 먼 장님과 그 남자를 건사할 자신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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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 틱낫한 스님의 생애와 가장 심오하고 본질적인 삶의 가르침
틱낫한 지음, 이현주 옮김 / 불광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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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왜 발명되었을까. 사람들은 왜 종교가 필요했을까. 

신이 있다고 생각해?라는 질문에 이렇게까지 믿는다면 있는 거지,라고 대답한다. 믿음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존재로의 신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스스로 붓다가 되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나에게 적당하게 온다. 불교와 유교를 배경으로 가지는 동아시아의 믿음에 공감한다. 책 한 권이 하나의 주제로 달려드는 책들을 보던 때가 있었다. 그럴 듯하게 현학적인 글들에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읽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는 때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이 주의를 기울이면 그게 보일 것이다. - 8%(34p)


나에게 일어난 일을 다른 누구와 나눌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것을 내 가슴에 그냥 담아 두고 싶었다. - 13%(54p)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진 존재르는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그 때 우리 사이에 하모니가 이루어질 수 있다. - 16%(70p)


알아차림의 햇빛 안에서 하는 모든 생각, 모든 행동이 신성하다. 이 빛 안에서는 성 聖과 속 俗 사이에 경계가 없다. 설거지를 그렇게 하면 많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나는 매 순간을 충실히 살고 그래서 행복하다. -19%(83p)


누구를 사랑할 때 당신은 그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가 행복하지 않으면 당신은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참 사랑은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사랑은 이해의 다른 이름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 이해 없는 사랑은 다른 사람을 괴롭힐 따름이다. - 21%(89p)


젊은이라면 조국을 위해서 뭔가 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많은 청년 수도승들이 마르크시즘에 매료당하여 절 밖으로 나가서 그들의 운동에 가담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불의에 저항하는 행위,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우리는 행동이 마음챙김을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깨어서 알아차리지 않으면 행위가 더 많은 고통을 초래할 따름이다. 우리는 마음 챙겨 행동하기 위해서는 명상과 행동이 결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 21%(90p)


절로 돌아오면서 나는 울었다. 나중에 나는 스님들 가운데 한 분이 큰 쌀독 하나를 마당 구석에 몰래 묻어 두었다는 걸 알았다. - 23%(98p)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침묵이라 불리는 기적의 바다, 강력한 치유 능력이 있는 바다에 자기를 열어 놓는 순간이었다. - 26%(432p)


"친구들, 모든 것이 무상 無常 하다고 붓다께서 말씀하셨소. 언제고 전쟁은 끝나게 돼 있어요." 

문제는 그 무상함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현재 상황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행동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 23%(126p)


일단 해야 할 일이 보이면 행동을 취해야 한다. 보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함께 간다. 그러지 않으면 본다는 게 무슨 소용인가? - 30%(129p)


위험은 자주 안에서 온다. 미리 막을 수 없는 돌발 사태가 벌어져도 침착하게 깨어 있으면 잠재된 위험이나 치명적인 사태를 조용히 가라앉힐 수 있다.  - 31%(133p)


"네가 평화를 원하는 즉시 너에게 평화가 있다"는 뜻이다. 몇 년 세월이 흐른 1976년 싱가포르에서 그 말을 실천에 옮길 기회가 있었다. - 32%(139p)


이런 일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우리는 일을 계속할 수 없을 만큼 영적으로 기운이 소진되었다. 그래서 앉기 명상과 걷기 명상을 끊임없이 실천했고 식사시간이면 몸과 마음을 집중하여 말없이 밥을 먹었다. 이런 수련을 병행하지 않으면 지금 하는 일이 실패할 것임을 우리는 알았다. 숱한 사람들 목숨이 우리의 마음챙김에 달려 있었다. - 33%(143p)


곤경에 처하여 평화롭지 못하면 진정한 평화를 끝내 모를 것이다. - 34%(145p)


마음챙김 수련은 한 척의 보트와 같다. 마음챙김 수련을 하는 것은 당신에게 보트를 주는 것이다. 수련을 계속하면, 보트에 타고 있으면, 당신은 고통의 강물에 가라앉거나 빠져 죽지 않을 것이다. 

그 퇴역군인은 이 말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결국 아이들 돕는 일에 자기 삶을 바쳤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되었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를 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깊이 들어감으로써 당신은 과거를 치유할 수 있다. 다른 무엇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 45%(200p)


모든 것이 엉망일 때 당신이 닫아야 하는 여섯 문이 있다. 눈, 귀, 코, 혀, 몸 그리고 마음이다. 우리의 여섯 감각은 마음으로 통하는 문이다. 거센 바람이 들어와서 당신 방을 어지르지 못하도록 그것들을 모두 닫아라. - 40%(211p)


잠시 명상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우리도 맑아진다. 그 맑음이 우리를 신선하게 해 주고 힘과 명징明澄함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 55%(239p)


그들에게는 부모 말고도 몸을 숨겨 줄 사람들이 많았다. 

부모와 소수 자녀들로 이루어진 핵가족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발명품이다. 그 작은 가정에서 숨 쉴 곳이 없을 때가 있다. 부모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면 온 가족이 피해를 입는다. 집 안 공기가 무거워지고 어디 도망갈 곳이 없다. - 90%(432p)


밑줄을 치다가, 어디부터 칠 지 고민하게 만드는 쪽글들이다. 쪽글 하나하나가 밑줄 친 말의 상황들을 전한다. 베트남에서 태어나서 승려가 되고, 전쟁을 반대하면서 망명-엄밀히 말하자면 귀국할 수 없게 되었다-해서 살게 된 스님이 불교의 가르침을 전 세계인에게 전하는 글들이다. 프랑스와의 전쟁과 베트남전을 연달아 겪으면서 이념이 물결치는 시대를 가로지르면서도 불교의 가르침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이야기들이다. 사람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 병사가 겪는 어떤 침묵의 순간, 비행장에서 만난 군인과의 짧은 순간, 절망이 가득 차오르는 순간 자신을 달래는 말들. 각각의 이야기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품고 있고, 모든 가르침은 그 시대에 맞도록 다시 전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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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업고 튀어,가 종영하고도 유튜브로 영상을 보고 있다. 

대만 팬미팅에 선재 등신대를 업고 온 팬에게 웃으며 손하트를 만드는 변우석 영상도 보고, 팬미팅 사진이라는 사진들도 좀 본다. 김혜윤이 나온 틈만나면,도 본다. 

왁자지껄한 팬미팅과 선재에 대한 열광을 보면서 애초에 내가 드라마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생각했다. 

1,2회차 선재가 자살,했다고 생각한 나는 사랑에 대해 쓰려고 했었다. 오래 사랑한 사람이 나를 아예 기억하지 못할 때의 절망에 대해서 쓰려고 했었다. 심지어 팬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살아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때의 절망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안전하게 짝사랑만 하려는 세태에 대해서 쓰려고 했었다. 

수십,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의 열광적이랄 수 있는 사랑을 받는 류선재는 단 한 사람 임솔의 팬심에 절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란 참으로 이상하고 잔인한 감정이라서. 

류선재의 죄책감과 뒤엉킨 애달픈 짝사랑은 임솔의 뒤늦은 팬심이 오히려 슬프다. 

열아홉 솔이는 선재의 마음을 알 수 없고 알아도 받을 리 없고, 지금 선재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감정은 나란히 서서 마주 볼 수도 있는 독점적인 관계의 마음이 아니라, 먼발치에서 보내는 누군가와 나눠 가지는 팬의 마음이다.  

드라마의 도입에서 나는, 그 마음의 불균형이 가져오는 파국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강태성을 따라다니느라 선재를 보지도 못하는 열아홉 솔이처럼, 자기 주변의 꽤나 멋질 수도 있는 누군가를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팬심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 늦게 내가 처음 매혹당한 어떤 이야기의 의도가 떠오른 것은, 지금 세계를 열광시킨다는 선재에 대한 이슈 때문이다.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어떤 주제는 이야기가 보여주는 이미지 가운데 퇴색하고, 오히려 반대 쪽으로 현상을 강화시킨다. 

등신대를 업고 온 팬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이웃집 총각의 애달픈 사랑을 모르는 채로, 류선재의 팬미팅에 가 있을 수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두렵고 위험한 미지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사랑 대신, 안전하고 무해한 가짜 사랑으로 도피한다. 독점적이고 밀도높은 지속적인 관계를 찾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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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같이 보고 나와서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있으니, 아이들이 재밌다고 했다. 


나는 심심하고, 별 재미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반응이 신기했다. 

요즘 좀 진지한 문화비평을 읽고 있나 싶은 중딩 아들은 '어려운 질문을 쉽게 보여주는 영화'라는 감상을 남기고, 초딩 딸은 '재밌었다'는 짧은 감상이었지만 재밌었던 거 같다. 

폭력이 난무하는 오락영화들을 주로 같이 봐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 못한 나의 감상은 역시 범죄도시인가, 싶었는데 말이지. 이야기가 여러 갈래고, 복잡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단순한 이야기가 좋은데,라고 생각했다. 

어른들의 감상은 나중에 남편이랑 둘이서만 차에서 했다. 나는 개의 설계사,를 읽은 데다가, 지금 어떤 관계들은 물성이 없어서-전화통화로만 이루어진 관계들이 있다, ㅋ- 저런 이별을 상상하는 것, AI로 죽은 사람의 가상 시뮬을 만드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AI가 스스로를 엄마로 상상하면서 폭주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알려주지 않은 정보를 알은 채 하는 게 가능한가, 같은 생각을 했다. 플래너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남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을 했지. 나는 그 서비스가 보여주는 어떤 형태가 진실이 아니라, 내가 제공한 정보로 만든 허상이라고 생각하니까, 영화가 아닌 채 해도 그런 거니까 말이지. 남편은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에 불만이 있는 거 같았다. 원더랜드라는 가상공간에 자신의 삶이 있는 AI라는 설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거 같다. 

찾아 본 어떤 감상은 죽음을 슬퍼하지 않게 되는 사람들,에 대한 거였다. 

그렇지, 죽음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지, 라고 새삼 자각했다. 

어려운 질문을 쉬운 그림으로 보여주는 영화였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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