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래가 그랬어 264호 

내내 불편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동생이 구독해주는 거라, 한 번쯤 이제 끊어도 된다,라고 말했는데도 계속 오길래 내버려 뒀던 건데, 이번 호에는 좌파 할머니의 듣는 삶, 쓰는 삶 '자위의 꿀맛(1)'이라는 기사와 사랑해! 나를, 너를. '성기에 대한 궁금한 것들, 참지 말고 알아보자!'라는 기사가 있다.  읽고 동생에게 한 번 더 강경하게 끊어달라고 했다. 


아이들과 범죄도시( 3였다. )는 볼 수 있지만, 30일 은 못 보겠는 엄마인 나는, 아이들에게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하고도 손만 잡고 자서 아이가 안 생겼다는 중국의 엘리트 부부 기사를 보면 필요한가 싶다가도, 그건 부모가 해야 하는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기적 섹스를 읽고도 , 이런 질문, 해도 될까요,를 읽고도 이런 나의 마음을 썼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만을 가르칠 수 있다. 그 관계가 어떤 방법의 관계던지 간에, 인간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만을 가르칠 수 있다. 쾌락은, 본능은 권장하거나 가르치는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는 거다. 


2. 구의 증명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했다. 궁금해서, 다 늦게 이북으로 읽었다. 시작하고 한참동안은 근미래 디스토피아 물인 줄 알았다. 아직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체인쏘맨의 세계처럼 사채업자들이 죽을 때까지 삥을 뜯는 세계의 묘사는 여전히 시대를 보여줘,라는 질문을 하지만, 소설은 시처럼 설명이 너무 없다. 

세계가 좁은 두 명의 화자, 남자와 여자만 등장하고, 주변의 상황들은 그 좁은 세계 안에 좁은 화자가 이해하는 만큼만 묘사되는 지라 알 수가 없는 '그래서 시라고들 하나'싶은 이야기다. 

왜 이렇게까지 고립되지, 싶은 젊은 애들의 이야기를 읽는다. 균형추는 묘하게 깨진 이 사랑이야기가 나는 너무 꾸민 이야기같았다. 

내가 중학생이면 이 책을 뭐라고 읽었을까. 

결벽적이고 단호한 젊은이라면 이 사랑을 사랑이라고 생각할까. 

내가 중학생이면 이 책을 포르노를 읽는 기분으로, 나의 부모가 모르길 바라면서 읽었을 거다. 물고 빨고, 퍼즐처럼 서로를 끼워넣는 묘사에 더하여 종국에는 뜯어먹는 이야기고, 그것도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뭐 설득은 안 된다. 그러라지, 그런 사람 만나면 도망가야 한다,라고 딸에게 말하겠지. 여자의 소유욕이 응축된 병든 사랑이다. 

개인적으로 구는 군대에 말뚝을 박았어야 한다. 아니면 그 누나랑 살던지. 그 누나였으면, 우선 불법채권추심에 대응하는 방법을 좀 알았을 거 같다. 경찰서에 뛰어들어간 에피가 그냥 넘어갔지만,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도 한 명쯤은 죽였는데, 구는 왜 그렇게까지 무력했는지, 역시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야기다. 여자가 스스로의 절대성을 환상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만드나 싶기도 하다.  

뭐, 먹을 수 있지. 그렇지만, 나는 그런 사랑 안 하고 싶네. 


이 책이 고그 264호랑 묶인 이유는,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이런 책들을 통해서도 알게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절대적인 사랑을 꿈꾸면서 읽는 로맨스들에서도, 느와르를 보면서도 알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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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업중 EP.25


방학인 초딩졸업백수와 점심을 먹으면서 봤다. 

재밌었다. 


나는 T지만 나의 입장은 반, 인 거 같다고. 그렇지만 이 반은, 말하는 나의 입장이다. 

고민 자체의 총량은 그대로고, 기본적으로 나는 질량보존의 법칙,인 거다. 

고민이 반이 된다는 사람들이 두 배가 된다는 사람들보다 따뜻하다고 생각하면서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열심히 듣다 보니, 두 배가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더 뜨거운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의 고민을 들을 때, 내가 그 고민을 해소해주겠다고 생각을 전혀 안 한다. 나는, 그저 내 자신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저 들어만 준다. 상대가 나에게 바라는 것도 그것 뿐일 거라고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다. 내가 나의 고민을 남에게 말할 때, 상대가 내가 가진 무거움을 그대로 같이 지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나의 무거움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생각으로 말하는 거라서, 상대도 그런 식으로 나에게 말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조금은 가볍게 듣고다. 

나는 이렇게 가볍게 듣는데, 두 배가 되서 고민을 말하지조차 않는 누군가는 나의 고민을 그렇게 무겁게 듣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자신의 짐을 전혀 내비치지도 않는 사람들은 나를 서운하게 하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참으로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쓰럽다. 

나는 나의 짐을 잘도 다른 사람에게 버리면서 다른 사람을 서운하게 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을 때 참으로 냉정하게 듣고 있는 거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해 보이지만 실상은 냉정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실상은 뜨겁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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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답답이들, 소리가 자꾸 자꾸, 자꾸 나온다. 

용우,는 답답이는 아닌데,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일을 그르친다. 차무희는 캐나다에서 한국가는 비행기를 그냥 탔어야 했다고! 

차무희,는 그냥 답답이. 오죽했으면 도라미가 튀어나왔나 싶은 답답이. 

주호진,은 또 답답이. 혼자 있는 게 너무 편해서 상상 속의 짝사랑을 혼자 만들어 모든 사랑을 피하는 한심이. 

오래도록 자라지 못하는 답답한 어른들의 연애를, 음, 나는 좀 더 남자나 여자가 연령대가 낮았으면 좋겠네,라고 착취적인 늙은 여자의 태도로 봤다. 

내 딸이 그렇게 늦게까지 답답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고, 시간 가운데 나는 시간의 흐름을 모르니 그 사람들이 그렇게 늦게까지 답답이인 건 그 사람 탓은 아니라는 생각은 든다. 

어린 딸,을 사로잡은 엄마의 말은, 엄마라는 존재의 잔혹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엄마란 무서운 존재다. 차무희를 사로잡은 그 말, 사랑을 파탄내는 그 말.  

'세상에 널 사랑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라는 말은 함께 죽기를 요구하는 엄마가 딸에게 하는 말이다. 엄마가 할 법한 말이다. 자식의 삶을 분리하지 못한 오만한 부모가 자신의 두려움을 자식에게 전가하는 말이다. 

여행홍보책자같은 예쁜 배경에, 상표가 잘 보이게 모자를 쓴 사람들이 등장하는, 공중파?에서는 방영불가한 그래서 전 세계인을 상대해야 가능했던 이야기다. 시장이 커졌고, 취향은 좀 덜 빡빡해진 것도 같다. 나는 좀 더 공중파, 취향.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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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론대회,를 웃기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반대인데, 찬성 표를 받아들고, 찬성입장을 발언해야 한다면, 그게 의미있는 토론이냐,고 생각했다. 거짓을 연기하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2회의 더 로직을 보면서, 그게 생각을 더 넓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회차에서 참가자는 찬성과 반대,를 자신의 의사로 고르지 않았다. 백명의 참가자는 열명씩 조를 짜고, 리더를 뽑았다. 주제는 '외국인 밀집지역을 치안특별구역으로 지정하는 건'이었다. 찬성깃발 다섯 개, 반대 깃발 다섯 개를 각 조별로 골라서 해당 입장으로 1대 1 조장 논쟁을 했다. 그건 차별이라서 찬성하기 어려운데요,라고 인터뷰하던 사람들이, 깃발을 놓쳐서 찬성 입장에서 의견을 단련해야 했다. 다섯명의 고등학생이 토론을 보고, 자신이 더 설득당한 입장으로 스케치북을 들었다. 그건 차별이라 반대,야 라면서 번개같이 달려들어 깃발을 선점한 조는 쉽게 반대논리를 상상해내지 못했다. 

차별이고 차별이 아닌 것,이 그렇게 분명해지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안특별구역,이 어떻게 운영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우리는 파출소가 가깝고, 인구수 대비 치안인력이 더 많은 지역을 살기 좋고 안전하다고 느끼니까, 만약 치안 특별구역이 그런 곳이라면 좋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안특별구역이 낙인효과를 일으키고, 집값을 떨어뜨릴 거라는 반대논리가 수긍이 되지 않았다. 내가 찬성하고 있었던 걸까. 

어떤 상황에서 살더라도, 그 상황이나 세상을 차별이나 억압으로 인식하거나 인식하지 않는 것은 살아가는 사람에 달린 게 아닌가 싶다. 

가끔, 행정편의주의적인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그래서 편리해지는 부분도 있는 게 아닌가. 우리가 말이나 의미에 깊게 매몰되서 현실의 장점을 못 본다면 것도 참 곤란해지지 않는가 싶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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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처음 시작한 방송이다. 늦게 시작했는데, 끝까지 봤다. 

토론을 게임으로 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말하고 싶어하는 걸 듣고 있는 게 좋았다. 논리는 부족할 지 몰라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게 좋았다. 

싸움구경을 좋아해서 그런가,

참가번호가 적힌 흰 티셔츠를 입은 백명의 사람들이 처음 가진 토론의 주제는 '주 4.5일제'였다. 찬성과 반대가 50대 50으로 갈리고, 토론을 한다. 구한말 공원에 벌어졌다던 만민공동회?와는 단상이 두 개라는 게 다를까, 찬성과 반대가 번갈아 이야기하고 나는 화면 밖에서 듣는다. 

나의 입장은 반대,인데 그렇게 짧은 시간에는 말할 자신이 없다. 나의 입장을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아. 찬성의 입장은 내가 모르지 않는 것들이라-우리는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하는 겁니다- 시큰둥한데, 반대의 입장은 다종다양해서 재밌기는 하지만, 멋지게는 들리지 않는 것도 같았다. 반대가 레드카드를 두 개나 받아서 결국 게임으로서의 토론은 반대가 졌다. 

나의 반대는 어쩌면 반대파의 '그럼 교육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와 조금 통하는데, 찬성파에 등장한 현직 선생님이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로 반박당했다. 그렇지,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서, 학원이 생겼지. 우리는 세상과 경쟁하고 있는 거니까. 

주 5.5일제였던 게 주 5일제로 바뀔 때 나는 사람들이 좀 더 느긋해지고 행복해질 줄 알았지. 그런데, 상황은 어땠냐면, 관광 여행업이 붐업되고, 사람들은 서로를 비교하면서 삶에 더 많은 돈을 원했다. 주 5일제는 시간을 돈으로 사는 문제라 물가는 올랐고, 박탈감이나 편중은 더 심해졌다. 주 5일제,를 적용받는 정규직 일자리는 공무원과 공기업과 대기업, 학교 정도가 남고 점점 프리랜서가 대세,가 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 스스로를 경영하는 프리랜서,들. 

나는 주4.5일제를 새벽배송을 금지하자,는 말처럼도 듣는 것 같다. 

국가가 정해주는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주장에는 누구나 주 4.5일은 일할 수 있게 하자,여야 하는는 거잖아?싶기도 하고 말이다. 지금은 누구도 주 4.5일 이상은 일하지 말아라,가 아닌가도 싶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일이란 무엇인가, 부터 정의해야 하는 게 아닌가. 주 4.5일 일하는 걸로 생활이 될 것인가? 도 질문해야 하는 게 아닌가. 

주4.5일제는 돈을 받고 하는 노동의 고용과 피고용관계를 정의하는 말이고, 이게 가능한가,는 역시 모르겠다. 사람들은 주40시간 노동을 10시간씩 나흘 일하는 식으로 선택하려고 한다. 주30시간이라니 여섯시간씩 5일을 일하는 방식보다 9시간씩 사흘 일하고, 나머지 세시간을 하는 방식으로 일 할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지 원하는 게 뭔지 나도 나를 모르는데, 그걸 제도로 정의할 때 어떻게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재밌었다. 나는 게임이 끝난 다음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겠고, 더 말하게 하고 싶었다. 게임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하고 싶어하는 거니까. 폭력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말하는 걸 듣고 싶었다. 마이크를 빼앗은 게 센스인가, 싶었지. 더 말하고 더 듣고 다시 찬 반을 나눠도 좋았겠다고, 그게 설득이 아닌가,고도 생각했다. 

여러 날 하는 토론의 대주제는 이민,이다. 크게 관심있는 주제는 아닌데, 재밌을 거 같다. 너무 늦게 해서 아쉽지만 목요일이니 다음에도 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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