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나게 봤는데, 남편이 혼자서 고군분투, 아내를 구한 다음부터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

거기까지 참 재밌었는데.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가 애틋한 순애의 남편이 되서, 읭 싶었다가, 

낙태한 태아의 줄기세포를 쓰는 게 꽤나 심각한 불법,으로 묘사될 때는 또 읭.

낙태한 태아의 줄기세포,를 채취하는 게 문제일까, 그걸 사용하는 게 문제일까, 낙태가 문제일까. 

줄기세포를 채취하려고 낙태를 한 것도 아닐 텐데. 

그래도 끝까지 따라갔지만, 무언가 이상한 이야기였다. 

수술 중인데, 아이가 다쳤다고, 나와서 내 아이를 수술하라고, 할 수가 있나? 

지금의 도덕률이 내가 생각하는 도덕률과 다른가. 

납치와 살인을 일삼는 커플의 처음이 어이없고, 그런 커플이 세상 순하게 의사들에게 생명을 애걸할 때 뭐지, 싶고. 그게 정말 죽을 병들이었던가 싶어 이해를 못한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오고도 헤어지는 커플은 또 뭔가. 

이상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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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이는 학교에, 나는 출근하는 길이다. 

아이는 학교의 방과 후 오케스트라를 이제 그만 하고 싶은데, 안 된다고 했다고 투덜거린다. 

선생님이 안 된다는데, 어떡한다니, 싫어도 해야 하는 것도 있는 거지,라고 말은 해놨는데. 

아침에도 또 그러네, 싶다. 


"너무 그러지마. 네가 그렇게 투덜거리면 오케스트라 인기가 더 떨어지고, 그러면 올 애들도 안 오고, 선생님은 네가 그만 두고 싶어도 그만 못 두게 하는 거잖아."

"?"

"아이구, 네 친구나 네 후배가 들어와야 너도 나가지. 그렇게 투덜거려서는 그만 못 둔다고. 회사에서도 불만을 자꾸 크게 말하기만 하면, 오는 사람이 없어서 나도 못 간다고."


뭐, 그런 거지. 

인사철이라 이런 말들이. 


자기가 사는 곳, 자기가 하는 일, 을 좋아하는 건 쉽지 않지만, 마음을 바꾸면 달라지는 것들이 있고, 가끔은 보이는 모습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달라지기도 하는 거지.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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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8-22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이제 애들이 다 커서 그런지 이런 대화를 듣는것만으로도 좀 힐링되는 기분입니다.
 
[전자책] 나의 어린 어둠
조승리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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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작가를 궁금해한다. 

PC주의가 창궐한 작금의 문학에서, 노골적인 묘사는 검열당한다. 

작가가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고, 아마도 그래서, 찬사가 붙었나, 생각한다. 

말 자체는 누구한테 나오던지 독립적,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말이 누구에게는 가능하고, 누구에게는 가능하지 않다,라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조차도, 검열한다. 

어, 위험한 묘사다. 

아, 작가가 그렇구나. 

당사자만이 발언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면, 세상은 얼마나 편협할 것인가. 

그런데, 소설 한 편을 읽으면서도, 가능한 말과 가능하지 않은 말을 검열한다. 

간접체험으로 소설을 읽고, 그걸 통해서 다른 면을 조금은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런 검열들이 이해의 폭을 좁힌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몸에 갇혀서, 타인의 마음은 모른다. 똑같은 몸에 갇혔대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른 해석을 한다. 다른 문화라면, 다른 종교라면, 다른 가정이라면, 내가 겪는 그 좁은 한계를 벗어나는 경험은 타인을 보고, 타인과 말하는 가운데 겨우 가능하다. 


작가는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자신의 경험을 깔고, 선택의 순간에 했을 이런 조승리, 저런 조승리,를 소설적으로 그렸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경험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시력을 잃는다는 절망감 가운데,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고민하는 어린 어둠의 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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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사실은 불안하기 때문이야 특서 청소년문학 46
임지형 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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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의 불안에 대한 단편소설을 묶었다. 

네 명의 소설가가 네 편의 단편소설을 같은 주제로 썼다. 


임지형은 자해하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손목 위의 별]를

장강명은 아주 먼 미래를 가상한 SF[졸업식]를 썼다. 

정명섭은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소년의 분노[축하공연]에 대해 썼다. 

김민성은 좀비물의 형식으로 불안한 또래집단의 모험기[안전지대]를 썼다. 


자신을 상처입히거나, 멀리 떠나거나, 타인을 죽이려 들거나,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하거나, 청소년기의 마음을 작가들은 상상하고 그려낸다. 그 마음들은 함께 하는 또래집단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위로받는다. 

나는, 정명섭과 김민성의 소설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작가 이름으로 책을 찾아 읽었다. (성균관 불량유생전(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1018766),이랑 다시피는 오월(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924282) )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만, 불안을 내가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살,은 정말이지 갑갑하다. (https://blog.aladin.co.kr/hahayo/8192500

백은별의 시한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2493692 )나 한로로의 '자몽살구클럽'(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083714 )을 읽으면서 지금의 아이들이 얼마나 죽음에 끌리는지 본다. 무섭다. 아이들이 얼마나 결벅적인지, 그래서 세상을 얼마나 불편부당하다고 느끼는지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어서, 안전하고, 몸으로 경험하기 보다 눈이나 귀로 보고 듣고 읽는 게 더 많은 지금의 세상이 얼마나 버거울 지 가늠도 안 된다. 


인생의 한 시기, 위태롭고 불안한 시기를 지나는 아이들이, 지금 이 세상이 이미 완전하다는 생각따위 집어치우고(졸업식,은 그래서 좀 별로다), 차라리 망해버린 세상을 살아가는 기분으로 용맹하게(안전지대), 작은 마음들에 크게 의지하면서(손목위의 별), 즐기면서(축하공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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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다시 피는 오월 - 5·18 앤솔러지
정명섭 외 지음 / 올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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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광주 이야기를 묻는 청소년에게 권할 만한 단편집이다. 

총 네 편의 단편소설이 있는데, 세 편은 5월 광주의 앞 뒤로 불안한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스케치같은 단편이다. 

전국체전을 앞두고 전지훈련을 떠난 축구부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어찌어찌 광주를 빠져나오는 이야기, <5월 17일>

경찰서 앞의 탱크를 목격한 소년이 광주의 외삼촌 소식을 기다리는 이야기. <양치기 소년>

경찰인 오빠와 의지하며 지내는 여고생이 친구들과 부상자들을 돌보고, 시위자들을 지원하기로 결심하는 이야기. <봄날, 송곳을 쥐다>

오월의 전과 중의 이야기는 훌쩍 뛰어서, 현재이거나 조금 가까운 시점 교실에서 오월을 조롱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화만 낼 뿐 할 말을 찾지 못하던 학생,에 대한 이야기.<투사의 탄생>


5월17일이나, 양치기 소년이 어쩌면 당사자성이 없는 서사라서 조금은 부담없이 읽다가, 봄날, 송곳을 쥐다,에서 마음으로 말리는 나를 본다. 전단지를 필사하고, 주먹밥을 만들고, 송곳을 쥐고 길로 나서기를 결심하며 마치는 이야기에서 나는 소녀들의 치마끝을 쥐고 그러지,말라고 하고 싶었다. 예정된 비극을 아는 심정으로, 말렸다. 깨진 계란이 다른 사람을 각성시킬 수 있다는 그 선생님의 믿음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내 자신은 언제나 살아남기로 선택한다. 


투사의 탄생,은 지금 교실에서 벌어지는 혐오표현에 대한 이야기라서 작금의 사건들이 떠올랐다.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안다고 해도 진지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알면서도 할까봐 가르치는 게 두렵다. 


역사를 보면, 가끔은, 너무 가까운 일들은 아직 '우리'의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은, 6.25 때 총부리를 서로 겨눴던 가문, 조선시대 사화에서 서로를 밀고했던 가문일 수도 있고, 수양대군이 나설 때 수양대군 편에 서서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거나 단종 편에 서서 가문이 몰살당하는 와중에 겨우 살아남은 사람의 자손일 수도 있는 거니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수는 있고, 그 시간에 필요한 건 그저 단순한 도덕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일이 있었고, 죽은 사람들이 있고, 여전히 우리 가운데, 가까운 이를 잃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조심하는 마음. 투사이거나, 정의일 필요는 없이, 그저 버거운 일을 좀 더 가까이 겪은 사람 앞에서 조심하는 마음 정도로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너무 가까워서 아직 '우리'의 역사가 되지 못한 상황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가 제일 중요한 덕목인 정권에서는 그 가치가 좀 더 높게 여겨지다가, 국가가 더 중요한 정권에서는 좀 덜 존중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세월이 흘러서 그 모든 적대와 대립 가운데서 그래도 건전하게 '우리'를 유지하면서 그런 일도 있었지,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것만이 정의라면, 서로가 상대를 용납할 수 없지만, 우리가 겪은 아픈 역사라는 인식이라면,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같이 살아갈 수는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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