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온 글, 한글 - 훈민정음의 글자 짓기에 따른 새 한글 지도안
박규현 지음 / 수신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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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유튜브를 보다가, 외국인이 한글을 배우면서 본다는 동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K53oCDZPPiw)을 보았다. 대개 모음이 천지인,을 의미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머지 자음들까지 여러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건 모르겠어서 이 책을 샀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샀지만, 그래도 처음 한글을 익히는 사람을 위해 쓴 책이니, 이해할 만한 대목도 있을 것이다, 기대했는데, 그걸 모두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의심이 너무 많다.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기로 결심한 우리의 위대한 왕은 자신의 세계관에 비추어 자신의 글자에 역할을 부여하셨다. 세계의 무늬가 이 글자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오행을 각각의 자음에 부여한다. 각각의 자음이 가지는, 음양 오행과 모음이 가지는 하늘과 인간과 땅 사이의 조화 가운데, 표음적이고 표의적이기도 한 한글이 생긴다고 말한다. 잠재된 태극(ㅇ)에 사람이 개입하여(ㅣ) 운동이 일어나는(ㄹ) 게 '일'이라고 풀어준다. 그래서 한글은 자질문자라는 새로운 분류에 있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이미 말은 있었잖아?라고 의심한다. ㄱ이 나무의 기운이 있다고 ㄱ을 만들기 이미 전부터 말을 하고 있었잖아. ㄴ이 불의 기운이 있다고 ㄴ을 만들기 전부터 이미 ㄴ을 소리내고 있었잖아. 부여한 글자의 뜻과 부여한 의미의 값의 연결에 의심을 품는다. 

하늘이라는 대상을 하늘,이라고 쓸 때, 그리고 말할 때, 말과 글은 결국 자연의 무늬라고 말한다. 나는, 그럼 하늘을 스카이라고 하는 것은요? 하늘을 티옌(天)이라고 하는 것은요? 라고 의심한다.  한글이 있기 전부터 하늘,이라고 소리내어 말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파자해가 갖는 것은 결국은 사후적이고, 내가 이걸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무언가 굉장한 특별함을 믿어 의심치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왕의 깊은 사랑까지만, 자신의 글에 부여한 자신의 세계관이라는 데 까지만, 각각의 자음에도 모음의 천, 지, 인 처럼 세상을 부여했다고 받아들이고 덮는다. 한글이 좋은 글자인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늘에서 왔다'고는 이 글자가 '천지 만물의 무늬'라고는 못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 마음을 그 좋은 뜻을 통해서 자신의 백성이 어질기를 바랬던 왕의 마음은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 때와 지금, 한자의 훈음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얼마나 다른 말, 글을 쓰고 있는지도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대로, 아이들에게 가르치지는 못할 것 같다.  

서구와 달리 동양의 진리 개념은 어떤 실재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유교의 중(中), 불교의 공(空), 도교의 무(無)는 하나같이 이도 저도 아닌 상태라는 부정어법으로 진리를 말합니다. 실체가 아니며 고정되지 않으면서도 작용은 뚜렷하고 우주, 자연, 만물을 싸안고 있는 어떤 장(場)처럼 진리를 정의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찾는 방법도 인위적으로 어떤 애를 쓰기보다 통념, 패러다임, 카르마, 트라우마 등 무엇이라 부르든 감정과 사고에 집착 내지 고착되는 상태에서 벗어나 초연한 관찰자의 입장에 서는 것을 제시합니다. ‘있는 그대로‘가 도라는 것은 이런 태도에 충실할 때 얻어지는 어떤 안목, 관점에 인식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동양에서 진리란 고정된 데이터 값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언제나 새롭게 보는 태도에서 일어나는 세계와의 동기감응의 체험입니다.-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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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
백승주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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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MD의 통곡리스트(http://www.kyobobook.co.kr/eventRenewal/eventViewByPid.laf?eventPid=38372&classGb=KOR&orderClick=42d )를 보고, 교보에서 산 책이다. 회사의 단체구매 아이디가 있어서 샀는데, 이사한 주소도 전화번호도 옛날 거였고, 심지어 수신인 이름조차 회사이름이었어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 이미 다른 사람이 사는 집을 노크해서 받았다. 일주일도 더 지난 다음이었다. 붙박이 같은 나처럼 어디든 가려하지 않는 사람이, 어쩌다보니 상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어 쓴 글들이다. 재미있다.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인 자신이 자신의 학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자처하여 택한 문맹의 삶이다. 중국어를 모르는 채로 간 상해에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삶의 이야기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고장나는 빌려사는 집의 물건들에 대하여, 혁명의 작은 집이 커다란 쇼핑몰로 둘러싸이고, 도살장이 신혼부부의 촬영지가 되는 도시에 남은 기억의 아이러니에 대하여 들려준다. 상하이,라는 영어동사가 사기치다,라는 의미라는 걸, 자신의 경험과 함께 들려주기도 하고, 하루라도 먼저 도착해서 가족들을 안내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고,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밖에 말하지 못한 전화통화에 대해 들려준다. 

말을 하지 못하고 나를 둘러싼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은 바짝 긴장하고 나서야 하는 일이고, 어리숙해서 말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을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다. 바보같았는데, 숨기고 싶었을 텐데, 숨기지 않는 글들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참 흠결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행했던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행동들을 떠올리면, 나는 나도 모르게 식은땀은 흘리기도 한다. 이제 나는 세상이 내게 준 상처보다는 나의 흠결을 더 부끄러워하는 남자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흠결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구로 제멋대로 위안을 받는 남자.

자기의 흠결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나의 흠결을 받아주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위악을 떨 때는 몰랐던 고마움 또한 생겨난다.
‘defaut‘라는 단어를 ‘상처‘에서 ‘흠결‘로 읽어내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아직도 위악을 떨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이 흠결 많은 나를 어떻게 받아줬는지 떠올린다. 그 많은 흠에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준 아내, 친구들, 동료들. 그래서 조금 더 웃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의 흠결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아니,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이 흠결없는 영혼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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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공부를 한다. 미리 한 학기씩 두 학기씩 앞서서 문제집을 풀고 내년에 겨우 중 2인데, 스톱워치를 책상에 올려놓고 시간을 재면서 공부를 한다. 방학을 하고는 밤 열두시까지도 잠도 안 자고, 아침에 깨지도 않고 점심무렵에나 깬다. 그러지 말라고 건강하고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자꾸 자꾸 말하는데, 내가 혹시 행동으로는 그러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칭찬을 한 적도 야단을 친 적도 없는데, 그래서 그러는가도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시험도 성적표도 보내주지 않는데, 학원에서는 벼라별 말을 듣고 현대의 또래집단 학생이 된다. 과학공부를 앞서 하려니 지난 학원 방학 중에는 나에게 가져와서 뭘 물어본다. 원자핵에 양전하가 핵의 주위를 도는 전자에게 음전하가 있다는 설명을 하면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화시켜서 가르치는 각 단계에 대해 의구심이 생긴다. 처음 핵과 전자에 대해 배울 때는 이렇게 배웠지.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양성자와 중성자와 전자의 모습들을, 이러면서 보았다. 그러다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처럼 묘사되던 핵과 전자가, 구름처럼 묘사되고, 결국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되기까지 결국 이해하지 못 했던 현대물리의 어떤 순간까지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저 가르침은 옳은가, 이런 생각도 했나 보다. 

지난 블랙독,에서 학생은 자신이 틀렸다는 시험 문제가 현대 물리의 관점에서 오답이 아니라고, 학교 내에서 문제제기 하는 대신 학교 밖에서 문제제기해서 결국 정정을 받는다. 교과과정을 통해서는 오답이고, 교과과정을 벗어나 학문적으로는 오답이 아닌 그 상황에 내가 딸의 과학 요약집을 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서양의 학문이 나아가는 방식과 동양의 학문이 나아가는 방식이 이렇게 다른 건가, 싶기도 했다. 내가 교사고, 그 다음을 알고 있는데, 이해하기 쉬우라고 단순화시켜 가르치는 것은 어떤 불편한 느낌을 주지는 않을까, 같은 생각도. 동양의 학문이 그래서 신기한 말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계속 읽도록 한다면, 서양의 학문이 온갖 것들로 쪼개놓은 온갖 학문을 초보적인 형상화부터 시작해서 점점 점점 기존의 관념을 부정하면서 나아간 게 아닐까도 생각한다. 서양의 학문을 배우는 방식의 지금 학교는, 그러니까 초등학교의 어떤 배움이 중학교에서 부정되고, 중학교의 어떤 배움이 고등학교에서 부정되고, 고등학교의 어떤 배움이 대학교에서 부정될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라고도. 동양의 배움이 결국 알 수 없는 상태를 인정하게 되는 그래서 기이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라고도 생각했다.

가르치는 것이 어렵구나, 배우는 것도 역시 어렵다. 점점 모르는 것이 늘어나는 그 각각의 단계에서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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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시동 1~4 - 전4권 (완결)
조금산 글.그림 / 더오리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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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정말 재밌게 본 웹툰이 영화화된다고 보고 싶다고 해서, 아이들은 두고 둘이 보러 갔다. 나는 실망스러웠고, 남편도 실망스러웠던지 원작만화를 사야겠어, 라면서 샀더라. 남편이 커버를 벗겨 보고 내려놓으면 읽었다. 어, 영화가 딱히 못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운데, 가 나의 인상. 한 번 더 영화를 본 남편은 기대가 줄어서 두 번째는 괜찮았다고도 했지.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남편과 나의 눈은 이렇게 다르구나, 생각했다. 

예전에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를 읽고 쓴 서평(https://blog.aladin.co.kr/hahayo/5509650)에 달렸던 '가령 사회에서 경쟁에 더 많이 노출되는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편리하게-안이하게-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좀 미워하는 게 아닐까 싶더군요' 라는 댓글 생각이 났다. 그 때, 그런가, 싶었던 그 기억이 다시 난 거지. 세상이 나에게는 그렇게까지 불친절하지 않은데, 남편에게는 그렇게까지 불친절했던 걸까. 

무인도,라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 반의 학예발표회를 보면서도, 엄마랑 둘이서 무인도에 가고 싶다는 택일이 생각이 나는 것은 십대 남자애들이 세상에 느끼는 관계에 느끼는 어려움에 대한 것일까,라고도 생각한다. 

시동을 웹툰으로 보면서 정말 좋아서 영화를 기대한 남편과 영화에도 만화에도 역시 시큰둥한 나 사이에 간극은 그것인가,라고도 생각한다. 

세상은 무섭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피와 살이 튀지만 사정이 있겠지, 라는 나의 태도는 물러서서 등 떠미는 사람인 건가. 함께 살지만, 얼마나 알 수 없는지,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새삼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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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노혜숙.유영일 옮김 / 양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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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라는 말처럼 오해하기 쉬운 말이 있을까.

욜로, 가운데, 저 말은 '인생, 뭐 있어, 지금 놀자'처럼도 들리고, 꾸준하고 한결같고 심심해 보이는 사람을 한심해하는 태도처럼도 보인다. 

어제의 내가 그랬는지, 미래의 내가 그럴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는 자아,라는 말, 신,이라는 말도 그런 오해들 가운데 있다는 생각을 한다. 

WWW 검색어를 입력하세요,에서 권력에 결탁하여, 여론을 좌지우지하려는 예수정(극 중 전혜진의 시어머니였다)이 그래도 자신의 회사에서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 항의하는 전혜진에게 묘한 톤으로 '너는 아직 자아가 있니?'라고 묻는 장면이 남아 있다. 그 때의 내가 자아는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서, 그 말을 계속 생각했다. 자아는 없어야 하는데, 저기 왜 자아가 있냐,고 조롱당하는 사람의 편에 나는 왜 심정적으로 서게 되는 될까. 내 안의 신성, 보편적인 도덕심은, 때로는 '자아'라고도 표현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아는 아니지만, 자아로 표현할 수 밖에 없고, 신은 아니지만 신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순간 뿐이라서 영성을 깨우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책은 초보적이라고 하고, 가끔은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서처럼 포장도 했지만, 오해 가운데 그런 말은 아니다. 

깨달음으로 건너가는 말의 배가 오해를 가득 싣고 떠다닌다. 그 가운데 반짝이는 무언가를 오해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조금이나마, 삶이 살만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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