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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텅 비우고 고요함으로써 하늘과 땅에까지 미루어 만물에 통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늘의 즐거움[天樂]’이라고 말하니, 하늘의 즐거움은 성인의 마음으로 천하를 기르는 것이다.
16) - P-1

옛날에 대도에 밝은 자는 먼저 하늘을 밝히고 도덕을 다음으로 했다. 도덕이 밝아지자 인의를 다음으로 했다. 인의가 밝아지자 분수를 다음으로 했다. 분수가 밝아지자 형체와 명칭을 다음으로 했다. 형체와 명칭이 밝아지자 맡는 일
23)
을 다음으로 했다. 맡는 일이 밝아지자 근원을 살피는 것을 다음으로 했다. 근원을 살피는 것이 밝아지자 시비를 다음으로 했다. 시비가 밝아지자 상벌을 다음으로 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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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편은 치밀하고 장자 특유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고 한다면, 외편은 내편의 사상을 부연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많고, 인의를 주장하는 유가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며, 내편에 비해 풍자하는 논조도 신랄하다. 외편과 더불어 잡편은 장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후학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만물이 타고난 능력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발휘할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균등의 원리가 바로 제물론의 요지다.

외편 〈재유在宥〉 편에서 장자는 정치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하지 다스리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더 어지럽게 된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도덕이나 법에 의해 백성을 구속하고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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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주역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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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복 괘에 대한 정이천의 해설.

아직 (지뢰)복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산지)박이 끝나지 않은 듯하다. 더 내려갈 곳이 없는 듯한데 극에 이르지 않았다면 과연 어디까지 가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극점이 변곡점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사물에 박진(박탈되어 사라진다)의 이치는 없다. 박이 극에 달하면 복이 오고, 음이 지극하면 양이 생겨나게 되어있다. 양이 위에서 극한까지 견디다 박탈당하게 되면 그것은 다시 아래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서괘전」에서 위에서 궁하면 아래로 돌아온다(반하)라고 말한 바의 것이다. 그래서 복괘가 박괘 다음에 오게 된것이다. 괘의 모양을 한번 살펴보자! 일양이 오음의 아래에서 생겨나고 있으니 이것은 음이 극하면 양이 되돌아온다는 이치이다. 10월에 음이 성하여 극한에 달했다가, 다음 달 11월 동지冬至가 되면 일양이 땅속에서 다시 생겨나기 때문에 복이라고 한 것이다. 양은 군자의 도이다. 양의 사라짐이 극한에 달하다가 다시 양이 돌아오는 것은, 군자의 도는 사라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괘는 선으로 돌아온다는 뜻이 된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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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03-31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위로가 되는 말씀이네요

겨울호랑이 2023-03-31 16:19   좋아요 1 | URL
네 어려울 때는 위로가, 잘될 때는 경계가 되는 경구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위로가 되네요...

2023-03-31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생각키에 민주란 뭐 대단한 이상이 아니라, 한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정당성 (legitimacy)이 보다 더 많은 다수의 합의(consent)를 지향하는 모든 정치형태를 추상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민주(民主)보다는 민본(民本)이 보다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정직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_ 도올 김용옥, <도올심득 동경대전 1> , P43


서학이 조선민중의 샤마니즘적 파토스와 결합되면  매우 폭발적인 대중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것은 사상의 공동을 전염병처럼 메꾸어 나갔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성리학과 서학이 제시하는 내재와 초월의 모든 패러다임을 만족시키면서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려는 운동이 19세기 중엽에 조선에 잉태하게 된다. 그 이론적 표현이 기학이었고, 그 실천적 표현이 동학이었다. 동학에 이르러 조선역사에 내재해온 플레타르키아의 열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게 된다. 그것이 "개벽" 이었다._ 도올 김용옥, <도올심득 동경대전 1> , P140

 최근 출판된 「동경대전1」의 구판. 2004년에 초판이 출판된 후 17년이 지난 후에서야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을 읽기 전에 마침 <토지>를 읽으며 가볍게 동학농민혁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꺼내든 책이다.


  비록「동경대전 1, 2」편에 비해 얇은 책이고, 오래전 출판된 책이지만 이 책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그간의 저자의 학문 여정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 시간 동안 혜강 최한기의 <기학 氣學>, 「맹자 孟子」, 「노자 老子」, 수운의 「동경대전 東經大全」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자칫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 저작들이 최종적으로 <동경대전>으로 향하는 과정이었음을 지난 2004년에 출판된 책에서 발견하게 된다.


 <노자>에서 말하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과 같이, 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은 민중. 이러한 민중의 의식 구조를 형성하는 기학(氣學)과 실천으로서의 동학(東學)이 하나가 되어 비로소 21세기 혁명 플레타르키아(pletharchia)를 이룬다는 저자의 철학. 이것이 저자가 평생 강조한 정치철학으로서의 몸철학의 얼개가 아닐까. 이 얼개를 완성하고 대중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까지 거의 2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2004년에 출간된 얇은 책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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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四端)은 <맹자 孟子>에 나오는 말로,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한다... '단'이란 실마리(緖)란 뜻과 시작(始)이란 뜻,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는 실마리로 해석한다. 실마리를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실패를 찾듯이 사단을 궁구하다 보면 네 가지를 미루어서 타고난 본성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p42)... 칠정(七情)은 <예기 禮記>에 나오는 것으로, 기쁨(喜), 분노(怒), 슬픔(哀), 즐거움(樂), 사랑(愛), 미움(憎), 욕망(慾) 등을 말한다. 사단이 도덕적인 감정이라면 칠정은 일반적인 감정을 뜻한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43


 리(理)는 선진시대에는 옥에 난 무늬, 결 등을 의미하다가 점차로 발전해 개별적 법칙을 의미하고, 나아가서는 법칙을 포괄하는 원리로 확정되었다. 그것이 송대에 들어와서는 마땅히 있어야 할 본래의 모습을 의미하는데, 주로 도덕적인 원리나 법칙을 뜻하게 되었다. 기(氣)는 매우 포괄적인 것으로 처음에는 숨(호흡)을 뜻하다가 점차로 생명으로 발전했다. 생명은 숨과 관련을 맺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송 대 이전에는 기가 중심이고 리는 그에 부속되었는데, 송대 이후에는 리와 기가 함께 논의되고, 리가 중심적인 역할로 바뀌었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45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2 ~ 1571)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7 ~ 1584)로 대표되는 조선 성리학(性理學)의 입문서다. 조선 성리학의 두 거목들의 사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에서 퇴계 이황의 심성론(心性論)은 '리기호발(理氣互發)'로 요약되는데, 사단을 리(理)의 발현으로, 칠정을 기(氣)의 발현으로 보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다.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병행(혹은 대립) 관계로 보았다. 그래서 "사단은 리가 발동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동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사단은 리가 드러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드러난 것이라는 의미다...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나누어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사단은 순수하고 칠정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에 기인한다. 사단은 도덕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순선무악한 것이고, 칠정은 감정 일반을 가리키기 때문에 선한 경우도 있고 악한 경우도 있다. 사단은 완전한 것이고, 칠정은 불완전한 것이다. 그래서 이황은 리와 기에 분속시켰던 것이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48


 반면,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 1527 ~ 1572)과 율곡 이이는 리와 기를 구분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며, 퇴계의 사상과 대립한다. 특히 율곡은 기발이승일도(氣發理昇一道)를 통해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주장하며, 고봉보다 더 큰 대립각을 세운다.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을 서로 무관한 병행관계로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단과 칠정은 대립관계가 아니라 사단이 칠정의 일부분인 포함관계라는 것이다. 사단이 칠정의 일부분이지만 둘이 서로 평등한 감정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리와 기는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현상 사물에는 리와 기가 함께 있는 것이지, 리 따로 기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50


 이이는 이황을 비판하면서 기대승을 옹호한다. 사단과 칠정의 관계는 대립관계가 아니라 포함관계라는 것이다. 칠정 가운데 리가 발동한 것이 사단이라고 한다. 이는 절도에 맞는 것이 사단이라는 것이지, 칠정 이외에 달리 사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이는 기대승의 원칙을 고수했다. 사단이나 칠정 모두 기가 발동한 것이라고 하는 원칙을 주장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황의 사단은 리를 주로 한 것이고, 칠정은 기를 주로 한 것이라는 주장도 폐기된다. 사단이나 칠정 모두 기가 발동해 리가 탄 것이 되기 때문이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55


 현재의 시각에서는 이러한 논쟁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보여질 수도 있지만, 당대에는 리와 기의 문제가 유교의 조선(朝鮮)이 불교의 고려(高麗)를 대신해야하는 명분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를 간단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예송논쟁(禮訟論爭)을 바라봐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이황의 '사단 - 리', '칠정 - 기' 라고 하는 도식은 사단과 칠정, 리와 기의 관계 설정에서 나온 것이다. 사단과 칠정을 구분하지 않으면 리와 기를 하나로 보는 것이고, 그것은 기에 대한 리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고려 시기의 불교적인 사고는 기를 중심으로 삼는 마음(心)에 기초한 사고이고, 그 때문에 고려가 망했다는 것이 성리학의 관점이다. 따라서 리를 우위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53


 


성리학의 국가이념에 대해서 섣부르게 정리하기는 조심스럽기에 이 정도만 옮기도록 하자. 그렇지만, 유교에 형이상학(形而上學)의 개념을 도입한 성리학의 틀 속에서 우리는 보다 폭넓게 사고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에서는 이와 같은 퇴계와 율곡의 사상 차이를 사단과 일반감정과의 관계로 정리한다. 사단이 본성에서 발현된다는 퇴계의 사상과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마음이 발현되다는 율곡의 사상 속에서 본유 관념( 本有觀念, innate idea)라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와 이에 반대하는 경험주의자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의 사상을 떠올린다면 무리한 연상일까. 


 이황이 사단과 칠정의 분리를 주장한다면 이이는 사단을 칠정이 절도에 맞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황과 이이 모두 칠정이 아니라 사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사단이라고 하는 도덕적인 감정이 일반적인 감정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논지가 결정된다... 이황은 사단이 나의 본성에서 발현한다고 주장하고, 이이는 외적인 대상에 대해 나의 마음이 발현한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내적인 발동을, 후자는 외적인 발동을 주장한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61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에서는 리에 대한 퇴계와 율곡의 사상을 비교한다. 퇴계 사상에서는 리를 천(天, 하늘)의 위치까지 높이는데, 이는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는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의 <실천이성비판>과 도덕이 필연적으로 종교에 이른다는 <이성의 한계안에서의 종교>를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율곡의 리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와 비교한다면 어떨까.


 이황은 리의 자발성이 있다고 하고, 이이는 리의 자발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리의 운동성 여부가 두 사람을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p63)... 리의 발동이 창조적인 힘이고 그것은 인간의 자율적인 도덕 실천과 연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의 창조적 성격을 강조하다 보면 리의 종교적 성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황의 리동설은 때로는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황은 리를 천의 지위에까지 높이고 있다. 리는 절대적 존재로서 사물에 명령하는 주체이고, 사물의 명령을 받지 않는 주재적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리의 자발적인 운동은 인간 개체의 적극적인 자기 수양을 통한 리의 실현에 논점이 있지, 리가 신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66


 개인의 수신원리로부터 시작하여 국가의 통치이념에 이르는 방대한 철학체계를 구축한 조선 성리학을 정리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에서 언급된 내용을 바탕으로 큰 줄기를 잡고 간다면 어느 정도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물론, 페이퍼에서 소개한 서양철학자들의 사상이 완벽하게 퇴계와 율곡의 사상과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비교해서 본다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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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20-10-05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지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10월 되시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20-10-05 16:11   좋아요 0 | URL
추석을 지내니 늦가을이 느껴지네요. 후애님 쌀쌀한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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