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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 : 1986 그리고 2016
민주언론시민연합 지음 / 두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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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도지침'(홍보조정지침)은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이 하루도 빠짐없이 각 신문사에 은밀하게 '시달'하는 보도통제하는 '가이드라인'이다. 홍보정책실은 이 '보도지침' 속에서 '가(可), 불가(不可), 절대(일체)불가''라는 전단적(專斷的) 지시 용어들을 구사하면서 사건이나 상황, 사태의 보도 여부는 물론, 보도방향과 보도의 내용 및 형식까지 구체적으로 결정, 시달한다.(p519) <보도지침 : 1986 그리고 2016> 中

제도언론에 의한 허위 의식 조작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 다름 아닌 '보도지침'이다. 다시 말하면 '보도지침'은 단순히 언론정책의 한 가지 사례가 아니라 바로 그 차원을 뛰어넘어 가장 중요한 통치수단의 하나인 것이다.(p56) <보도지침 : 1986 그리고 2016> 中

'보도지침'의 비인성적 행태에서 입증된 중요한 교훈은, 언론은 특정 세력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국민의 정보매개체이기 때문에 국민에 의해 그 존재가치가 부여된다는 점일 것이다. 알 권리, 알릴 권리가 확보될 때 언론은 정부에 대한 파수꾼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전체 사회의 총체적 생산성을 높여 줄 수 있다는 점은 교과서적 진실이라 하겠다.(p56) <보도지침 : 1986 그리고 2016>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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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 창비신서 4
리영희 지음 / 창비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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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전환의 시대는 언제일까. 저자는 전환의 시기를 1961 - 1966년으로 지정(p338)하는데, 이 시대는 유엔에서의 미국 지배력이 상실되고 다수의 중립국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 씌여진 이 책은 베트남 전쟁, 중공(현 중국)의 부상, 경제대국 일본의 정치대국 야심을 배경으로 하기에 여러 상황에서 현재의 정세와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 안에서 변함없는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언어 言語'다.


 '절대로 잘못 해석될 수 없으리라고 그들이 진지하게 믿었던 용어'로 분명히 씌어진 헌법조항을 견강부회하려는 세력에 의해서 국가의 비극이 초래된 사례들을 생각할 때 '용어 그대로 생각하자'는 헌법해석의 태도가 국가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규정하는 유일한 척도이어야 하겠다.(p16) <전환시대의 논리> 中



 일그러진 언어로 전달되는 사상은 일그러진 사상을 그 커뮤니케이션의 상대에게 재구성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사각형을 보고 삼각형이라는 표면의 언어로 전달된 사상이 상대방에게 삼각형의 형상을 재구성케 하는 절차이다. 사각형을 놓고 삼각형의, 또는 원을 놓고 직선의 관념을 국민에게 재구성케 하려는 의도는 현대 국가사회에서는 주로 통치자들의 정치적 목적에 있다.(p206)  <전환시대의 논리> 中


 저자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일그러진 언어로 표현된 비뚤어진 사상이 그릇된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사법부의 독립과 공정한 언론이 부족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시대의 표상(表象)은 분명히 변환되어 왔지만, 이 시대를 관통하는 '논리 論理'는 현재도 유효하다는 것을 <전환시대의 논리>는 잘 보여준다. 


 국가이익을 해치고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미국정부가 공개하기를 반대한 그 비밀문서를 숙독해보면 그것이 공개됨으로써 타격을 입는 것은 국가나 국민이 아니라 집권자와 정책에 참여한 인물들의 위신과 체면뿐임을 알 수 있다.(p28)  <전환시대의 논리> 中


 사법부의 독립성을 믿을 수 없는 나라 같았으면 신문은 처음부터 그와같은 대담한 폭로기사를 보도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법의 판단에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유언론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 같았으면 그와같은 행정권력의 페어플레이 정신과 사법부의 독립성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당연하다.(p15)  <전환시대의 논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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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0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축음기, 영화, 타자기 우리 시대의 고전 24
프리드리히 키틀러 지음, 유현주.김남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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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진행시킨 것은 ˝데이터 프로세싱 기술 Data Processing technologies˝였던 것이다. 그것이 기록 체계 1800이 기록 체계 1900으로 넘어가게 한 결정적인 동인이다.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듣고, 보고, 쓰게 되었다. 새로운 코드와 프로토콜이 발생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키틀러는 라캉의 심리학적 세계 구분을 차용하는 바, 20세기를 기점으로 전개된 매체의 발달사는 라캉의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에 각각 대응한다.(p556) 해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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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10-01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좋습니까 ? 저도 살까 말까 지금 고민 중입니다. 겨호 님이 리뷰를 다셨네요.

겨울호랑이 2019-10-01 13:53   좋아요 0 | URL
네^^:) 저는 라캉 철학이 어려워 놓친 부분이 많습니다만, 곰곰발님께서는 좋은 독서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AgalmA 2019-10-15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보고 있는데 기대대로 좋더군요^0^♡

겨울호랑이 2019-10-16 00:34   좋아요 1 | URL
은유를 좋아하시는 AglmA님 취향에 맞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여론
월터 리프먼 지음, 이충훈 옮김 / 까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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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가설은 뉴스와 진리가 동일한 것이 아니며, 이 둘은 분명하게 구분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뉴스의 기능은 어떤 사건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고, 진리의 기능은 숨겨진 사실을 규명하고 그 사실을 다른 사실들과 관련시키며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현실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오직 이 점에서, 사회적 조건들이 인식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모습을 띠는 곳에서만이 진리와 뉴스는 일치한다.(p349)

오늘날 사회적 진리는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신문은 여론에 관한 민주적 이론이 요구하는 지식의 양을 제공하도록 구성되지 않는다... 신문이 다루는 것은 바로 사회에서 통치하는 힘들이다. 신문은 제도들이 신문을 위해서 기록해놓은 것만을 기록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 이외의 모든 것은 주장이자 의견이고, 우여곡절과 자의식 그리고 인간의 용기에 따라서 변동한다.(p351)

신문은 직접 민주주의의 기관으로 간주되었고. 날마다 엄청난 규모로 국민발안과 국민투표 그리고 국민소환에 들어 있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불철주야 여론이라는 법정은 모든 것에 규칙의 준수를 요구할 것이다. 이는 실행될 수 없다. 그리고 뉴스의 본성을 고려할 때, 이는 심지어 상상조차 할 수 없다.(p352)

사람들은 세계에 관한 신뢰할 만한 이미지가 없는 상태에서 행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와 학교와 신문과 교회는 보다 분명한 민주주의의 결함과 폭력적인 편견, 무관심, 따분하지만 중요한 것보다는 특이하지만 하찮은 것에 대한 선호, 그리고 사이드쇼(sideshow)와 세발 달린 송아지에 대한 갈망에 맞서 조금씩 진보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주된 결함이자 그 전통에 내재된 결함이며, 나는 민주주의의 다른 모든 결함이 바로 이 결함에서 유래한다고 믿는다.(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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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만드는 언론 - 민주사회에서 언론은 어떻게 사고와 사상을 통제하나?
노암 촘스키 지음, 황의방 옮김 / 두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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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타당한 것으로 믿고 있는 또 다른 관점은 미디어가 '사회적 목적'에 봉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회적 목적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다. 제임스 밀(James Mill, 1773 ~ 1836)은 국가의 교육은 "정부에 대해 고결한 애정을 갖도록 국민의 정신을 훈련시키고" 더 보편적으로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질서를 조정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p38)...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좁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민은 소비자, 옵서버이며 참여자가 아닌 것이다.(p39)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1928 ~ )는 <환상을 만드는 언론 Necessary Illusions>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미디어가 어떻게 대중들을 통제하고 있는가(thought Control in Democratic Societies)를 분석한다. 선거에 의해 권력이 창출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미디어는 어떤 기능을 하는가. 촘스키는 책에서 권력의 편에서 언론의 모습을 낱낱이 고발하는데, 이를 위해 먼저 '언론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전제를 설정한다.


 많은 다른 요인들이 미디어로 하여금 국가 - 기업 연합체(state-corporate nexus)에 동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권력에 맞서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어려운 일이다. 높은 수준의 비용이 많이 드는 어려운 일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애국적인 어젠다(patriotic agenda)'에 동조하는 것은 그런 어려움을 수반하지 않는다. 공인된(official) 적들에 대한 공격은 입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공격은 사실이 아닐 경우에도 정정보도를 할 필요가 없다.(p29)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국가종교는 서구 민주국가들에서 공공 보조금을 담당하는 사람들과 자유기업이라고 불리는 민간 이윤 시스템의 주인들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독트린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민은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다는 이유로 계속 무지한 채로 남아 있어야  하며 호전적 애국주의의 마법 속으로 떨어져야만 한다.(p46)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디어(언론)은 두 가지 선택길에 놓인다. 권력에 맞설 것인가 아니면 권력에 순응할 것인가. 이러한 선택의 길에서 미디어 기업이 '비용과 위험의 최소화'를 선택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합리적인 선택이겠지만, 동시에 '불공정한 언론'이 되는 길이기도 한다.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정의과 공정이 통하기를 바라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을까. 자본(資本)의 논리에 따라 권력과 결탁을 선택한 미디어의 다음 수순은 '국가종교'를 위한 '국가이익'보호다. 다만, 저자가 말하는 국가이익이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國家)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유의해야할 지점이다.


 우익 쪽에 선 이들의 인식은 민주주의가 '특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special interests)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조직적인 노력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말이다. '특수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란 현대의 정치적 수사로 노동자, 농민, 여자, 젊은이, 노인, 장애인, 소수인종 등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이다. '국가이익'은 위의 특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리스트에서 제외된 부문, 즉 기업체, 금융기관, 그리고 기타 사업 엘리트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가정되어 있다.(p17)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여기에서 미디어는 사회 문제로부터 특수 이해 관계를 가진 이들을 소외시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들이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주변인, 소비자, 방관자로 남아 기득권들의 정치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미디어의 역할이다.


 보편적 "민주주의의 위기"는 전에는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그들의 요구를 밀어붙임으로써 일어나며 민주적 절차가 제대로 기능하는 것을 방해하는 부담이 된다고 위원회는 주장했다.(p16)... 쉬운 말로 한다면,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반 민중이 정치적 토론과 행동의 장(場)에서 축출되어 다시 전통적인 무관심과 복종의 자로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p17)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그렇다면, 미디어의 '특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배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저자에 의하면 미디어의 통제는 '의제(agenda) 설정'과 '선전(PR)'의 방법으로 실현된다. 구체적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 중 자신의 목적에 맞는 일부의 사건들을 편집하고, 이들에 대한 제한된 논의를 통해 여론을 형성한 후 이를 선전하는 방식으로 미디어는 민주사회에서 은밀한 통제를 가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기업의 과점 아래 있는 미디어 모델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연스런 시스템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는 경향으로는 점차 노동조합이나 기타 민간 권력(private power)에 간섭하는 민중의 조직들이 제거되는 현상과 함께 점점 더 선전(PR) 놀음으로 연출되는 선거제도, 특권층의 특권과 충돌하는 전국적인 건강보험 같은 복지정책의 회피 등을 들 수 있다.(p50)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는 필요한 환상이 힘으로 강요될 수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더 교묘한 방법으로 대중의 마음속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진실에 충실하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질서 속에서는 독립적인 사고(independent thought)가 언제나 정치적 행동으로 옮아갈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그 뿌리로부터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젠다(의제)를 설정하는 힘이다. 냉전에 관한 논쟁이 소련을 봉쇄하는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 무력과 외교와 기타 조치들의 적절한 혼합에 의한 - 그 결론이 어떻게 나든 프로파간다 시스템은 이미 승리를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전제가 이미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p99)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그렇지만, 국가 - 권력 연합체의 지배자들은 소수인데 반해, 이들의 지배를 받는 이들은 다수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이익이 침해되는 상황을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들의 지배는 선거에 의해 끝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자주 연출된다.  


 미디어는 이러한 상황에서 편집된 의제 설정과 은밀한 설득을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려 하지만, 언제나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사회구조에서 생겨나는 문제 모두를 감출 수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절대악(絶對惡)의 존재가 필요하다.


 [사진] The One Ring(출처 : https://goldandletters.com/products/the-one-ring) 


 20세기 초의 공산주의, 냉전 이후 악의 축(Axis of evil )으로 대표되는 테러국가들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절대악. 절대악이 국가종교신봉자들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해내는 절대반지(The One Ring)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현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수행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설득의 자유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는데, 우리는 그런 것이 자유사회의 본질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PR산업은 "삶의 경제적 사실들에 관해 민국민을 교육하여" 사업에 알맞은 풍토를 보장하기 위해서 방대한 자원을 소비한다. PR업계의 과업은 "국민들의 마음"을 통제하는 것이다.(p42)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해외에서의 그랜드 에어리어 설정 원칙과 국내에서의 필요한 환상(necessary illusion)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주기적인 군사적 간섭으로 보완되어야 했다. 국내에서 국가는 반대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자주 힘을 사용해  왔으며, 또한 업계는 암묵적인 통제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 '민중의 마음'을 통제하고 민간 권력에 대한 도전을 억압하기 위한 캠페인을 규칙적으로 또 아주 은밀하게 펴왔다. 간헐적인 예외가 있긴 했지만, '반공'이데올로기가 1차세계대전 이후 이 목적에 봉사해 왔다.(p63)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환상을 만드는 언론>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국가'의 연합체에 앞에 선  기업(企業 Corporate) 미디어를 고발한다. 그리고, 권력의 시종으로 전락한 미디어가 여론을 만들고, 여론의 힘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우리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이 쓰여진 1988년으로부터 30년이 흘렀으나, '가짜뉴스'를 거르는 필터의 역할 대신 '가짜뉴스' 생산공장으로 전락한 우리 언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지금도 이 책이 주는 울림은 크다 생각된다. 015B의 <제4부>를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는 민간 권력과 국가 권력 사이에 유착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기본적, 사회적 결정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이익에 봉사하고자 하는 제도적으로 결정된 요구가 있었다는 것을, 또한 탐욕이나 개인적 이득을 추구하지도 않고 권위에 종속되지도 않으면서 그 밖의 가치를 중시하려는 독립적인 문화를 기존 권력이 서서히 붕괴시켰고, 독립적인 사고와 행동을 유지시켜 주는 대중적 구조를 붕괴시키는 데도 성공했다는 사실 등을 여기에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p239)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제4부 第四府>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상류사회뿐이고 씨에프를 보면 항상 행복한 사람들

강한자에겐 무릎 굽히고 약한자에겐 고개를 세우고 그걸 공정하다고 하지

어제는 악인을 만들고 오늘은 영웅이라하고 아무런 생각도없이 잘도 얘기를 하지

모든 것을 비판해버리곤 그걸 자유라 부르지 녹슬 어진 펜을 놓고서

이젠 모든 말에 책임을 져 방향잃고 헤매는 가엾은 무관의 제왕 약속을

어긴 무책임 뒤엔 차가운 비웃음


Naration] 세상엔 오렌지족이니 뭐니 하는건 있지도 않아 신문과 사회와 어른들이

만들어낸 허상일뿐이지 우리나라 코메디를 보고 저질이라고 한탄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어 외국에서 꼬부랑 말을 하는 코메디를 보면 그렇게도 고상해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이는지를 하지만 그들을 탓하고 싶진 않아 그들도 비난하는 것만이

유식한 것처럼 인정되는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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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4 15: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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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4 16: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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