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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며 -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
이연식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1월
평점 :
여러 번 이곳에서 언급했듯 나는 해방 전후 조선의 역사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동안 관련 책들을 읽어오면서 느끼는 것은 ‘이런 일이 있었다니(고?).’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새롭게 알게 되는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매번 놀라움을 느낀다. 동시에 여전히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느끼게도 한다.
저자는 해방 전후 한반도에 있다가 일본으로 귀환한 자, 해외에 동원되었거나 해외에 거류하다가 한반도로 돌아온 자들에 대하여 주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현재 일본 소피아 대학에서 일본인이나 외국인(유럽인)을 상대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우연히 어떤 계기로 작년에 저자의 또 다른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일을 알게 되었다. 최근 출간된 저작은 이번에 내가 읽은 이 책의 후속 시리즈 성격을 지닌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해에 나온 책은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두고 전 시리즈인 이 책부터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해방 후의 역사는 주로 한반도의 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에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해외에 있던 독립운동가의 귀환(임정 등), 일제의 시스템을 답습한 미군정(쌀 파동 등), 미소대립, 이후 국내 정치 세력의 분열, 남한 단독 정부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흘러간다. 다양한 저작이 나오면서 이를 보충해주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국내 공간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해방 후 일본인들이 조선 땅을 떠날 때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일본에 정착해서는 어떠했는지를 통해 한일 양 민족의 ‘헤어짐’의 방식과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일본인들의 회고를 통해 재구성한다(P5).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일본인들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사건과 다양한 계급의 일본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에피소드는 해방 정국의 혼란을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일본이 패전하자 조선총독부는 본토에 긴급 타전을 했으나 일본인들의 귀환을 가능한 최대한 미루라 지시받는다. 이는 일본 국내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꺼번에 밀려들 귀환자들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조선인 정치 세력과 타협을 통해 일본인을 보호하려는 고육책을 펼친다. 일본인들은 은행이 파산할 것을 우려하였고 이에 전국적으로 외화를 반출하려 하면서 대량인출사태가 벌어진다. 이 와중에 이를 이용한 환전상들이 수혜자가 되었다. 일본인들은 갖고 있던 물건을 처분하기 위해 각 지역에 있던 세화회를 통했다. 세화회는 조선총독부가 식민기구와 조선군이 무력화될 경우에 대비하여 미군 진주 후에도 귀환 원호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간 조직으로 1945년 8~9월에 걸쳐 전국에 37개의 세화회가 결성되었다고 한다.
이중 경성일본인세화회는 남한의 일본인들이 1946년 초 대부분 돌아간 뒤에도 미군정의 허가를 받아 체류하며 북한 지역에서 남하한 일본인들의 원호까지 담당한 곳이었다. 이곳의 임원진은 거의 구 총독부 관료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 세화회는 조선에 잔류하는 일본인과 본토로 돌아가는 일본인 중 잔류를 희망하는 쪽에 있던 일본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일본인들은 송환선을 타고 본토로 귀환해야 했다. 미군정은 1945년 9월 23일 민간인 송환 업무 창구를 외사과로 통일하고, 일본인 송환 원호를 위해 설치한 종전사무처리본부와 일본인세화회를 통해 이를 관할, 감독하게 하였다. 송환 순서는 현역 일본군->휴가 중이거나 제대한 군인과 가족->구 일본 경찰 등 바람직하지 않은 자->신관->일본인 광산노동자->일반 민간인 중 원호 대상자->일반 민간인->고위 공직자와 회사 간부->교통 및 통신 요원 순으로 발표했다. 미군정은 이처럼 차등을 두어 귀환 절차를 진행한데다가 일본인 재산 반출에 제한 조치까지 더하면서 혼란을 키운다. 떠나려는 사람들은 많은데 배 공급이 부족해지자 밀수배가 성행할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조선의 수산왕으로 유명했던 기시이 겐타로는 밀수선을 타고 도망치려다 붙잡히기도 했다. 일부 기업가들은 회사 자금을 횡령한 뒤 미군정의 허술한 관리를 이용해 조선인 브로커를 끼고 몰래 반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은 남한과는 다른 형태가 전개되었다. 주택 매수 조치로 북한의 일본인과 민간인은 사실상 연금 상태에 놓인다. 그리고 이미 일본인들에 의해 산업 시설이 파괴된 상태에서 소련군이 자원을 반출하면서 북한 지역 사람들은 이중고를 겪었다고 한다. 소련군은 일본인을 고급 노동력으로 보아 이들을 귀환시키려하지 않았다. 살던 집에서 강제로 쫓겨난 일본인들은 귀환 전까지 집단공동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와중에도 북한에 살던 일본인의 사정은 그나마 나았으나 만주에서 온 피난민, 전란을 피해 이동해온 일본인은 환경이 훨씬 열악했다(여기에서도 계급이 나뉘어진 것이다). 1946년 봄이 되면 일본에 귀환하지 못한 이들의 상당수가 집단 남하를 한다(소련의 묵인, 조선인 사회의 요구 등에 의해).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일본인들은 본토로 돌아갔으나 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귀환한 일본인 남성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무력감에 빠졌고 여성은 순결을 의심받으며 색안경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이들은 귀환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일부는 범죄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귀환자들과 전재민과 소개민 등 본토의 전쟁 피해자들을 넓은 범위의 피해자로 뭉뚱그리며 이들의 요구를 적당히 무마하는 선에서 전후 보상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이들은 엄연히 다른 집단이었던만큼 각기 다른 처우가 필요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지원 금액도 턱없이 작았다. 시간을 끌면서 해외 귀환자들의 교부금은 사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일본 정부가 구 식민지 출신의 피해자가 제기하는 소송에 대해서 ‘개인 청구권의 부인’, ‘시효 지남’ 등의 이유를 들게 되는 나쁜 선례가 되었다.
<요코 이야기>가 이 책에서도 언급된다. 한국에서 이 책이 알려지고 난 뒤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고 여러 권의 책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1940년대 말부터 <요코 이야기>의 저자와 같은 개인 체험이나 수기가 많았다고 전해준다(하긴 왜 아니 그랬겠는가.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따름이다). 대표작으로 후지와라 데이의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를 언급한다. 그 책은 북한 지역에서 돌아간 여성의 체험을 다루고 있다. 이후 이를 대표하는 저작들은 대개 이 책과 비슷한 귀환 여정을 담으며 선례가 된다.
문제는 수기가 일본인들을 피해의 맥락으로만 파악하게 하면서 역사적 진실과 함의는 놓치게 하고 식민지 지배 시기 가한 행위에 대한 문제는 등한시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는 <요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체험 수기가 있는 반면 또 다른 유형의 체험 수기가 있었다. 주인공인 이소가야는 1907년 일본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1928년 함경남도 나남의 보병연대에 보충병으로 입대한 뒤 1930년대 조선의 노동운동가들을 만나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1945년 이후에는 일본인 문제에 대해서 적극 나섰고 일본에 돌아간 뒤에도 조선의 사정에 대해 계속 궁금해했으며 이것이 한반도의 동향에 관한 책을 집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패전과 해방 국면에서 북한 당국과 소련 점령군, 재류 일본인 사이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는 어떠한 체험을 하느냐가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북한의 역사적 비극(한국전쟁)을 지켜보면서 대다수의 일본인은 자신들이 입은 고난을 군국주의 일본의 무모한 전쟁 행위에 따른 결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조선 민족에 대한 일본의 반세기에 걸친 박해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일본인은 얼마나 반성했을까. 그저 자신들이 조우했던 고난에만 매몰되거나, 혹은 조선 민족을 가해자로 생각하고 이들을 미워하며 조선을 떠나지는 않았는지… - P265
양국간 잠재해 있으면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가해와 피해 의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곱씹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이런 책들이 더욱 많이 나와주면 좋겠다. 이제라도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도서관에 희망도서가 도착하는 대로 후속 책을 읽어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