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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류영모가 본 예수와 기독교 - 다석사상전집 3
박영호 지음 / 두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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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수의 말대로 우리가 얼나( the soul)를 깨달으면 시간과 공간에 담긴 천체의 대우주가 사라지고 비롯도 없고 마침도 없어 나지 않고 죽지 않는 얼생명의 하느님만이 계시는(존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이 하느님의 나라다.(p68)

영원한 얼생명인 하느님 아버지의 하늘나라를 본 이가 예수라면 영원한 얼생명의 니르바나(Nirvana)님의 니르바나의 나라를 본 이가 석가이다. 하느님과 니르바나님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실체를 다른 말로 표현하였을 뿐이다.(p69)

예수의 몸이 십자가 위에서 숨진 다음에 다시 살아났다고 하여도 그것은 소생이지 부활이 아닌 것이다. 예수가 말한 부활은 제나(the ego)에서 얼나로 솟나는 것을 말하였던 것이다. 소생은 생명의 차원이 같지만 부활은 생명의 차원이 달라진다.(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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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01-05 1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류영모의 호가 다석인데 왜 다석이냐면 이 분이 1일1식을 하십니다. 한 끼를 몰아서 많이 드신다고 하셔서 다석‘이라네요..ㅎㅎ

겨울호랑이 2020-01-05 17:40   좋아요 0 | URL
^^:) 그렇습니다. 마치 호랑이 식사법 같습니다. 마침 곰곰발님께서도 1일1식을 하시니 곰곰발님과 다석 선생님은 삶의 철학에서 통하는 바가 있가 여겨집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1-05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평일 1일1식한지 한 15년 되었는데요, 현대인에게 1일1식이 맞는 식사인듯 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0-01-05 17:58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도 1일1식을 하시는군요!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데 곰곰발님, 북다이제스터님 두 분 모두 대단하십니다!^^:)
 
정관정요 (양장) - 리더십의 영원한 고전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1
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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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관 9년, 민주도독 고증생은 장군 이정이 만든 법률을 위반하였고, 또 이정이 모반한다는 모함을 했지만, 사형에서 변방지역으로 추방되는 것으로 감면되었다. 어떤 사람이 아뢰었다. ˝증생은 진왕부 때의 공신이니 그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태종이 말했다. ˝나라를 다스리고 법률을 집행하는 일에는 반드시 획일적인 면이 있어야 하오. 만일 오늘 그의 죄를 사면해준다면 법률적 징벌을 요행히 피하는 길을 열게 될 것이오. 내가 사면하지 않으려는 까닭은 바로 이런 것이오.˝(p510)

조국 법무부 장관 청문회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극적인 상황이 전개되었다. 장제원 의원 아들 음주운전 사건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아들의 논문 제1저자 의혹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로 인해 추석연휴 직전 청문회를 열어 조국 후보자 자질 문제를 고향밥상에 올리려던 자유한국당 의도가 어긋나게 된 것은 둘째로 하고 보다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은 언론과 검찰의 태도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조국 후보자의 각종 의혹에 대해 반론의 기회를 주지도 않고 백만 건에 가까운 기사를 쏟아낸 언론. 청문회 개최 직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검찰의 압수수색. 같은 사안에 대해 대칭점에 위치한 나경원 원내대표와 장재원 의원의 사안에 있어 이들은 얼마나 관대한가.

사실, 조국 청문회가 있기 전까지 불거진 의혹으로 나 역시 그에 대한 판단은 비판적 보류 상태였다. 청문회를 통해 판단하겠다는 내 생각은 청문회 개최 의지를 보이지 않는 자유한국당, 의혹만 던지는 언론, 정치변수로 등장한 검찰로 방해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후보자 가족에게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폭력은 내가 마음을 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질문을 던져본다. 집안에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나로 인해 아내와 딸이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면 나는 견딜 수 있었을까. 딸의 성적까지 공개된 무차별적인 공격에 같은 처지에서 내 삶은 온전히 깨끗했다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더구나 내 이야기를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상황. 이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대체 얼마나 힘들 것인가. 사내 게시판에 나에 대한 비방의 글이 1,000개가 올라와도 상당히 충격을 받을텐데, 그보다 넓은 범위에서 1,000배의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이가지 않는다. 이런 처절한 상황에서도 후보자가 놓지 않으려 했던 가치가 무엇이 궁금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일어남일 것이다. 그토록 망신창이가 되면서까지 그가 가고자 했던 길. 나는 한 사람으로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조국 법무부장관을 지지하게 되었다.

사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기대에 부응할지, 아니면 전임자들의 길을 따라 걸을지는 그의 책 한 권 읽지않은 나로선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아픔을 눈 앞에서 보면서도 끝까지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남다른 결의가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다른 이들에게는 권력욕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이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가 가고자 하는 길. 그 꿈이 지향하는 끝을 보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그의 의지를 보여준 고마운 자유한국당, 언론과 검찰에게는 같은 기준으로 두 의원 사안에 대해 일관성있는 대처를 촉구한다.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당신들의 행태는.

빛(light)이 시공간에서 휘어진다면, 그 공간에는 큰 중력의 영향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휨의 정도가 극적으로 크고, 빛이 관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증명할 수 없는 그곳에 대해 블랙홀(black hole)이라고 부른다. 시공간에서 빛이 빠져나올 수 없는 그곳. 증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강력한 중력에너지.

이러한 추정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시대의 양심이 휘어지고 왜곡된 행태가 보여진다면 여기에 어둠의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전혀 비과학적이거나 한 편에 치우친 편견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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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9-13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국 포함해서 장재원, 나경원까지 별로 놀랄 일 아닌 것 같습니다. ㅎ
요소가 구조를 극복하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9-13 22:59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일전의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우리에게 상실감을 주었던 제도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벤자민 2019-09-14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9-14 00:28   좋아요 0 | URL
벤자민님 감사합니다. 남은 추석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2019-09-15 08: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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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5 0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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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포스 Topos - 장소의 철학 철학의 정원 11
나카무라 유지로 지음, 박철은 옮김 / 그린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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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과 과학의 구조를 ‘주어(주체) - 술어‘의 관계로 정의하고, 주체 중심의 서양 철학 대신 일본어의 특징인 ‘술어(장소)‘ 중심의 철학을 강조한다. 여러 주체가 어울어지는 장소, 배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분법(dualism)대신 포용과 상생을 니시다의 철학을 중심으로 풀어간다. 언어면에서 일본어와 동일한 통사구조를 가진 우리에게도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도식적으로 말하면 역사나 전통이 무거운 짐이 되어 공동체가 붕괴해 가는 추세 속에서 결국은 토포스(장소, 기억의 집적)가 부정되어 상실되어 가는 동안 고전 레토릭적인 기억술은 룰루스의 ‘결합술‘(Ars combinatoria)을 거쳐 데카르트적인 ‘방법‘으로 전화되어 갔다.(p33)


대우주가 뉴턴적인 절대공간에서 유기적 코스모스로 회귀한 것은 ‘장소‘ 문제의 일환으로서 자연과학적 공간관의 변천을 보아온 우리들에게 실로 의미 깊은 사건이다. 본래 그것과 결부된 새로운 진공관쪽은 그러한 내용이므로 진공이라고 말하기보다 오히려 ‘무의 장‘이라고 말하는 쪽이 좋을 것이다.(p56)

마투라나와 바렐라에 의하면 생물학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의 독자성은 전면적으로 ‘언어 사용‘을 통해 일어나는 사회적/구조적인 결합에 있다는 것이다.(p70)

신체는 의식적 자아 혹은 정신의 기체이자 장소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것은 마음과 몸, 혹은 정신과 신체를 실체적으로 구별해서 전자가 후자 속에 머물거나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의식 혹은 정신이란 ‘신체의 변양의 관념‘(스피노자)이다.(p87)

프레게에 의하면 명제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은 ‘불포화‘ 즉, 술어적인 것이다. 불포화(Ungesattigtheit)란 비완결성 혹은 보완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명제는 주어적 실체본위가 아닌 술어적 관계성에 있어서, 술어는 채워야 할 공백을 포함한 일종의 장소로서 파악되고 있는 것이다.(p104)

우리들 인간의 지식 체계 그 자체가 이러한 구체적 일반자의 무한한 층의 중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으로 주어적 판단의 극한에 무한히 깊은 직각적인 일반자가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술어적 방향의 극한에 거기에 있는 전부를 포함한 무한히 큰 일반자가 보인다.(p108)

왜 니시다는 이렇게 술어면을 중시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그가 ˝의식의 범주는 술어성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에 주목했기 때문이다.(p109)

언어에 의해 사물을 생각하려고 할 때 우리는 누구든지 어떤 자연언어가 형태짓는 체계, 즉 어떤 국어(랑그)속에서, 또 그것에 의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p112)... 이러한 견지에서 유럽인의 언어활동을 재파악해 보면, 그것은 강한 실체화의 경향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상을 ‘S - P‘, 즉 ‘S is P‘(주어 - 술어) 에 의해 파악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p113)... 미카미 아키라는 영어에 비해 일본어는 ‘주제 - 술어(T - P)‘로 표현된다고 했다.(p115)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의 전통 논리학, 이른바 형식 논리학은 주어적인 논리, 주어 본위의 논리였다. 그것에 비해 일반적으로 술어적인 논리는 그 역전으로서 술어 본위의 논리가 된다.(p120)

장소 혹은 장이 추상적인 공간과 다른 것은 시간성의 유무이전에 균질적이지 않고 방향성을 가졌다는, 즉 의미를 띄고 있다는 것에 있다.(p126)... 실체적으로 생각하면 의미는 존재에 의해, 의미정보는 에네르기의 중개로 물질에 의해 지탱되지만, 장소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존재는 의미에 의해, 물질은 에네르기를 매개로 해서 의미정보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다.(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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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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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2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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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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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2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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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2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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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0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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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1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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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19: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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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쇼 라즈니쉬가 전하는 삶의 연금술
오쇼 라즈니쉬 지음, 나혜목 옮김 / 큰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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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옳고 그른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만 고집하면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 상대적인 세상에서 상대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p45)

존재계 하나하나는 변화하지만, 거기에는 그 모든 것들을 뒤에서 관장하는 불변의 우주법칙이 있다. 그리고 그 우주법칙을 궁극의 신, 무한의 신, 불변의 신이라고 부른다.(p66)

뒤로 물러서는 것이 두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니다.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라. 만일 어두운 밤이 무서우면 어두운 밤으로 나가라. 이것만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이다.(p80)

자유와 두려움 없는 용기가 주는 기쁨을 맛본 사람들은 지식이 결여된 삶을 결코 아쉬워하지 않는다.(p107)

만일 그대가 상대에게 진정으로 화를 표현할 수 있다몀, 그 가운데 깊은 사랑과 연민이 싹튼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형제애, 자매애다.(p167)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돌고 또 돈다. 인간은 사랑과 자유 사이에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인생의 수레바퀴에서 해방될 수 있다. 역설을 선택하라.(p227)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정반대이다. 그들은 하나로 맞출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이 하나 되는 것은 아름다운 기적과 다름없다... 기적은 매일 같이 일어날 수 없다. 기다려야 한다.(p243)

중심에 머무르고자 애쓴다면 일탈은 죄악이 된다. 일탈을 받아들여라. 거기에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p265)

진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 속에 있다. 보물은 우리가 찾는 그 가운데 있다. 구도자라면 바로 이 한 가지 사실을 터득해야 한다... 그냥 있어라. 그러면 놀랍게도 찾을 것이다.(p289)

그대를 한 점 남김없이 태우는 강렬한 욕망, 즉 열망을 가져라.(p311)

ps. 진리를 찾고자 노력하지 말라는 p289의 문장과 열망을 가지라는 말은 서로 어긋나는 말이 아닐까. 이것은 p227 역설을 선택하라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언어의 한계일까. 물음을 던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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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15: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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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2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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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 리쩌허우와의 담화록
리쩌허우 지음, 류쉬위안 엮음, 이유진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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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데거 이후 이제 중국 철학이 등장해서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비록, 하이데거가 노자 老子를 좋아하긴 했으나 노자를 억지로 갖다 붙여서 비교하며 논의해서는 안 됩니다. 공자, 그러니까 중국의 전통으로 하이데거를 소화해야 해요.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지 않나요?(p21)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리쩌허우(李澤厚, 1930 ~ )는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該中國哲學登場了>에서 기존의 서양 철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를 대신한 새로운 중국 철학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 본체 情 本體'가 자리한다.


 인성, 정감, 우연은, 내가 기대하는 철학의 운명이라는 주제다. 이것은 장차 21세기에 시적으로 전개될 것이다.(p112)... 어떻게 과거를 슬퍼하고 현재를 아낄 것인가, 어떻게 욕 慾을 정 情으로 이끌어 들여서 욕을 정으로 만들 것인가, 그건 바로 포스트모던에서 중국 철학으로 전환하여 운명을 선택하고 내일을 결단하는 최적의 경로에요. 그건 바로 제가 인류학 역사 본체론에서 말한 '정감 - 이성 구조(문화 - 심리 구조)' 이며 '정 본체'입니다.(p114)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저자는 도구의 사용을 통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류만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파악한다. 도구의 사용이 인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역사(歷史)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문자(文字)를 통해 역사의 교훈이 후대에 남게 된다. 이러한 역사 또는 경험의 결과로 철학이 만들어졌다고 바라보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중국 문자란 대체 어떤 개념일까요? 그건 바로 역사에요. 문자는 역사와 경험을 대표합니다. 문자는 역사 경험을 총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요.(p141)... 하이데거가 강조했던 건데 바로 명명 命名이에요. 제 생각에 이름 있음과 명명은 일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 근원을 찾자면, 매듭을 지어 일을 기록하던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최조의 역사이지요.(p142)... 명명은 중요합니다. 그건 역사의 근원이에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중국식 사유를 총괄해낸다면 바로, 역사로 나아가고 경험을 중시하는 겁니다.(p143)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정본체 - 정감은 운명, 인성, 우연과 함께 제기한 것이지요. 일단 그 셋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p50)... 우연 - 역사는 우연으로 가득합니다... 각종 사건에 있어서 우연과 필연의 관계와 비중을 연구하는 것이 역사학의 중심점이라고 했답니다.(p51)... 인성 - 저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인류가 '보편 필연'적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하는 데 관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역점을 두고 연구한 것은, 도구의 사용과 도구의 제작이 인류의 심리 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구의 사용과 제작으로 인해 형성된 문화-심리 구조, 즉 인성 문제이자 '누적 - 침전 沈澱'에 대한 연구에요. 누적 - 침전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주는 심리 형식이지요.(p53)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철학이 경험의 결과라면, 중국의 철학은 다른 지역의 철학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저자는 중국 철학의 특징으로 반(反) 이분법(二分法) 요소가 그 안에 있음을 강조한다.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을 구분한 서양 사유와는 달리 중국은 이(理)와 정(情)이 어울어져 도(道)와 예(禮)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서양 철학이 맞닥뜨린 철학의 위기 상황을 겪지 않을 수 있으며 때문에 철학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된다.


 중국의 '무사 巫史 전통'으로 인해 중국 문화 속의 정감과 이성, 종교와 과학은 뚜렷이 나뉘지 않았던 겁니다. 중국에서는 공자든 맹자든, 한대 漢代의 천일합일이든, 송명이학 宋明理學의 심성 수양이든, 일종의 신앙이고 감성적인 거에요. 동시에 이성적 추리와 논증이기도 하고요. 신앙과 정감이 이성적 사변과 한데 섞여 있는 거죠.(p23)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중국 전통은 이 理와 욕 慾의 관계를 조정하고 구축하기 위한 것이지요. 즉 정이 욕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정을 욕과는 다르게 만드는 것이랍니다. 정에는 이가 있긴 하지만 이와 같은 건 아니지요. 최대한으로 이를 정과 아울러서, 정으로 욕을 변화시켜 '도'와 '예'가 되도록 하는 거랍니다.(p56)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도 道'는 지극히 커다란 보편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도'가 바로 역사 본체론의 제1조 條랍니다. '도'는 인류의 생존과 관계가 있지요... '도'는 사실 '미 美'이기도 하답니다. '도'가 각종 형식감을 창조하거든요. 이런 '감 感'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활동 자체가 외재하는 천지자연과 하나로 일치되는 느낌, 체험, 파악, 인식이랍니다. 그 뒤에야 그것이 비로소 대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외부세계를 규범에 맞도록 만드는, 인간의 물질적 힘과 기예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생활의 각 방면으로 확장되는 거에요.(p146)... '도'는 경험의 척도이고, 경험은 실천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것은 경험의 산물이죠. 역사의 긴 강을 지나면서 실천을 통해 세워진 겁니다.(p147)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가장 근본적인 광의의 형이상학이 아직 남아 있지요. 광의의 형이상학은 인류의 마음이 영원히 추구하는 것이자 인생의 의이, 삶의 가치, 우주의 근원에 대한 이해이며 질문이에요. 또한 정감의 추구이기도 하지요. 하이데거가 '철학의 종말'을 제기하면서 말한 것은 그리스 철학을 표본으로 삼은 거였어요. 저는 그것을 '협의'의 형이상학의 종결이라고 부르겠습니다.(p17)... 협의의 형이상학은 중국에 없어요. 하지만 중국에는 광의의 형이상학이 있답니다.(p24)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이와 같은 역사와 사상이 만들어지는 흐름과 함께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저자는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를 통해 푸코(Michel Foucault, 1926 ~ 1984)와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 ~ 2004)의 해체주의를 이을 새로운 철학이 바로 중국 철학임을 말한다. 본문에서 데리다가 중국에는 철학이 없다고 말한 사실이 언급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참으로 짓궂은 반론이라 생각된다.


 제가 지금 제기하는 정 본체, 다른 말로 인류학 역사 본체론은 세계의 시각이고 인류의 시각이라는 겁니다. 중국의 전통을 기초로 세계를 보는 것이지요. "인류의 시각, 중국의 관점."(p138)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그리움, 아낌, 감상 感傷, 깨달음으로 공허하고도 해결할 수 없는 '두려움'과 '번민'을 대체하고, 두려움과 번민에서 야기된 포스트모던의 '파편'과 '순간'을 대체하자는 거죠. 인간 자신의 실존이 우주와 협동하고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이 존재하는 곳이에요. 하이데거의 디자인 Dasein 은  '현존재'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해석학에 따른다면 바로 '살아감'이지요. 그리고 제가 말하는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고요.(p22)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에서 저자가 그려내는 새로운 시대 철학의 모습은 중국 철학의 바탕 위에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이 결합된 모습이다. 이러한 분석도구를 사용하여 역사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철학을 풍부히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새로운 시대의 중국 철학 모습이다.


 "심리가 본체가 된다." 나는 이것이 하이데거 철학의 주요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본체론'에서 두 개의 본체를 제기했는데, 앞의 본체(도구 본체)는 마르크스를 계승하고 뒤의 본체(심리 본체)는 하이데거를 계승했다. 그런데 이것 모두 수정과 '발전'을 더했다. 중국 전통과 결합하여(p164)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대담 형식으로 구성된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는 이처럼 중국 철학 대가인 리쩌허우의 사상을 정리하여 제시한다. 또한, 저자의 대표작인 <미의 역정><중국고대사상사론> <중국근대사상사론> <중국현대사상사론> 등에 담긴 자신의 의도와 생각도 다뤄지기에, 리쩌허우 저서의 입문서로서의 기능도 갖는 부분은 책이 가진 뚜렷한 장점이다.


 반면, 중국의 역사 경험에서 비롯된 중국 사상을 인류 보편적인 사상으로 해석하는 저자의 주장에는 쉽게 찬성하기 어렵다. 중국과 다른 문명권에 속하는 이들에게도 같은 역사 인식과 철학이 공유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유럽 문명에 속하는 이들은 중국 철학보다는 오히려 불교(佛敎) 사상에 더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실제로, E. F. 슈마허 (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 ~ 1977)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을 통해 '불교 경제학'을 주장했으며, 이러한 사상은 환경 생태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 등으로 뒷받침된다. 또한,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이들은 저자의 사상에서 대국굴기(大國崛起)를 꿈꾸는 중국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여겨진다. 이런 면에서 저자의 사상은 인류 보편 사상이라기 보다 현대 중국 사회 사상이라 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엄밀하게는 중국 내부이 변화하는 정치 흐름은 담아내지 못한다는 면에서는 이마저도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은 다소 아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얇은 대담집을 통해 대학자의 사상 전반을 훑어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책만이 가진 큰 장점이라 생각하며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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