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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의 철학
한스-게오르크 묄러 지음, 김경희 옮김 / 이학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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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영원성과 세속적 시간성의 구분은 다른 구분과 병행한다. 영원성은 "영원한 지리"와 함께 한다. 영원한 진리는 무상하지 않다. 영원한 진리와 비교해서 세속적이고 시간적인 모든 것은 잠재적으로 "오류"이다. 영원성/시간성의 구분은 진리/오류의 구분과 똑같은 것이기 때문에 "오류"로부터 진리로 이르는 길은 시간성으로부터 영원성으로, 다시 말해 "시작"으로서의 하느님에게로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p167)... <노자>의 지속되는 시간은 시간 속에 통합되어 있는 데 반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성한 시작은 시간 너머에 있다. <노자>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차이는 영속성과 영원성의 차이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원성은 시간-초월적인 데 반해 도가의 영속성은 시간-내재적이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168/275

한스-게오르크 묄러 (Hans-Georg Moeller, 1964 ~ )의 <도덕경의 철학>이 다른 <도덕경 道德經> 안내서와 다른 점은 독자를 동양사상을 잘 알지 못하는 서양인을 염두에 두고 풀어간다는 점일 것이다. 도(道) 안에서 통합되는 음양(陰陽)과 영속(永續)의 시간 개념은 이원론(二元論, dualism)과 절대적인 신(神)의 시간개념인 '영원(永遠)'에 익숙한 서양인들에게 분명 낯선 개념일 것이다. 이런 차이를 비교해서 설명하는 저자의 서술은 서양사상에 익숙한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는 한편, 동서양 철학을 개략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책이 가진 장점으로 느껴진다.

개략적으로 말해서 고대 중국철학은 참인 것과 단지 그렇게 보이기만 하는 것(또는 거짓인 것)을 구별하는 데 큰 관심이 없었다. 이것은 서양의 그리스철학자들과 크게 다른 점이다. 중국철학은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보다는 질서(治)와 혼란(亂)을 구별하는 데 관심이 컸으며, 특히 혼란이 아닌 질서를 세우는 방법에 큰 관심을 보였다. _ 한스-게오르크 뮐러, <도덕경의 철학> , p9/275

저자는 <도덕경>에서 서양철학이 풀지 못한 과제의 해법을 찾는다. 전면에 나서서 인류를 구원하는 영웅(英雄 hero)의 모습이 아닌, 스스로를 낮추고 감추면서 모든 것을 감싸는 성인(聖人)의 모습. 스스로 낮추면서 높은 것을 얻어내고, 비우면서 채워가는 성인의 모습은 음(陰)에서 양(陽)이 생성됨을 일깨워준다.

<노자>에서 내가 철학적으로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측면은 이 텍스트가 인간적 행위주체성 human agency에 도전한다는 점이다. 주체성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된 근대 서양철학의 전통은 자아 ego와 그 자아의 힘들에 너무 집중해왔다. 이런 전통에서 <노자>의 입장은 다소 거북스러운 것으로 감지될지도 모른다. <노자>의 격률인 "행위하지 않음(無爲)"은 인간 사회를 포함해서 세계 전체를 개별적 활동들에 기초하고 있다기보다는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또는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작용에 기초하고 있는 하나의 매커니즘으로 보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자기생산적 autopoietic" 대안이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12/275

골짜기의 효력은 생명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바로 이 효과, 즉 무궁무진한 유용성이라는 효과는 다양한 이미지와 구조 덕분에 확보되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이 이미지들과 구조들이 단순히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입증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것들은 동일한 교훈의 반복이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30/275


동일한 구조가 우주 전반에 적용된다. 하나는 텅비어 있고 없는 것이지만, 둘을 발생하게 한다. 하나(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없음)와 둘(있음, 음/양의 구분)이 합쳐져서 셋이 된다. 셋은 이처럼 하나와 둘의 통합이 "낳는" 것이다. 다수의 세계, 즉 만 가지 사물의 세계를 열어놓는 것은 바로 이 셋이다. 이 "적분의" 수학은 여기서 그려 보이고 잇는 것이 사실상 선형적 인과관계나 생성의 "역사적" 과정, 즉 통시적 발전이 아니라, 모든 요소가 결합하여 하나의 공시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다수는 순서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서로 함께 간다... 도의 하나는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도는 내적인 통일성인 동시에 외적인 통일성이다. 한편으로 하나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의 중심에 있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65/275

묄러는 <도덕경>에서 성(聖)과 속(俗)이 통합된 정치철학을 설명한다. 군주가 도(道)에 따라 물 흐르 듯 치세(治世)를 했을 때, 그는 '덕(德)'을 획득할 수 있다. 스스로 낮은 곳에 처함으로 군주는 권위를 획득할 것이며, 권위는 그의 자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얻어지는 '덕'이 '강(强)하게 만든다는 것'이 <도덕경>전체 맥락에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고, 덕을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행해지는 도(道)의 모습이 바람직할 것인가 하는 부분은 더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미두도록 하자. 다만, <도덕경의 철학>에서 이처럼 도(道)와 덕(德)의 관계를 보다 명쾌하게 설명되기에, 노자(老子, Bc571 ?~ ?)의 사상에서 제국주의의 위험함을 지적한 다른 글들을 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이 책이 갖는 장점 중 하나라 여겨진다.

도를 따름으로써 성인-군주는 이원성의 세계를 다스릴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뚜렷이 구분되는 측면들과 계기들은 서로를 해치려고 싸우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호 주고받음을 통해 협력한다. 이것은 유익한(그리고 리드미컬한) 효력의 교환으로 이어진다. 이 효력(德)은 군주에 의해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에서 펼쳐지고 공동체에 결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점점 커지는 "위신(德)"의 형태로 "그에게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조차도 그가 주었던 것을 얻는 것이다. 도와 그것의 효력인 덕은 가장 넓은 차원에서는 세상 전체에 "작용하고" 있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70/275

도덕은 위험스러운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쉽게 사회적 병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지나친 오만함과 개인적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집단적 차원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고도로 "도덕적인" 사회는 타자들을 자기들보다 도덕성이 떨어지고 가치가 떨어지며, 그렇기 때문에 적(敵)일지도 모른다고 보기가 쉽다. 도덕적 언어와 도덕적 자기 찬사가 전쟁과 분쟁의 시대에 특별히 인기가 높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157/275


묄러의 <도덕경의 철학>은 <도덕경>의 81장 전체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대신, <도덕경>이 쓰여진 당대의 언어와 사상을 낯선 현대의 서양인들에게 보다 쉽게 풀이한 책이다. 이렇게 설명하는 방식은 노자 사상이 낯설지 않은 우리에게도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서양인들이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노자를 통해 해결하려는 의도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좋은 입문서적이라 여겨진다.

<노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터넷의 소위 하이퍼텍스트 hypertext 같은 비전통적이고 비선형적인 텍스트들에 견주는 것이 더 용이할 수도 있다(p17)... 그 역사의 초창기에, 특히 기원전 5세기나 4세기에 <노자>는 한 권의 책으로 기능했다기보다는 일종의 고대의 하이퍼텍스트로, 또는 구성과 해체, 확대와 축소의 지속적 과정 속에 놓여 있었던 텍스트적 게슈탈트 gestalt로 기능했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19/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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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22-03-16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찌보면 인문학적 소향은 있되 동양 철학은 부족한 독자분이나, 도덕경을 읽었더라도 서양인이 설명하는 동양 철학적 개념으로 접하고 싶으신 분께 도움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3-16 17:39   좋아요 2 | URL
캐모마일님 말씀처럼 <도덕경의 철학>은 일반적으로 접한 <도덕경> 입문서와는 조금은 다른 관점을 보여줘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캐모마일 2022-03-16 17:42   좋아요 1 | URL
서양철학적 기반 위에서 도덕경을 설명하는 내용이 신선하네요. 뭔가 도덕경 해석,과 함께 도덕경으로 동서양 철학을 비교하고 통섭해보는 책 같아서 흥미롭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3-16 17:45   좋아요 1 | URL
캐모마일님께서 말씀하신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흥미롭게 읽힐 책이라 여겨집니다. 즐거운 독서 되세요! ^^:)

곰곰생각하는발 2022-03-16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독특하네요. 동양철학을 서양인의 관점에서 독해한 책이군요. 저도 이상하게 서양철학보다 동양철학이 어럽습니다. 동양철학이 보다 고차원적인 것 같기도 하고... 서양철학은 혼자서 계보학 따지고 들며 공부하면 대충 알겠는데 동양철학은 혼자서는 잘 이해를 못하겠더군요..

겨울호랑이 2022-03-16 18:22   좋아요 0 | URL
^^:) 곰곰발님 뿐 아니라 저 역시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번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번역에 사용된 언어 자체가 일본학자들에 의해 변용된 단어가 대부분이라 동양철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듯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도덕경>의 큰 흐름을 잡을 때에도 유용한 책으로 느껴졌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03-16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신선한 📖 책입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2-03-16 19:2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좋은 독서 되세요! ^^:)

라파엘 2022-03-16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석학적 전통 때문인지, 확실히 독일 출신 학자들이 서양인임에도 동양 경전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좋은 편이네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2-03-16 21:03   좋아요 1 | URL
^^:) 라파엘님 말씀을 듣고 보니 학문의 전통을 무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전통 사회를 연구하는 것은 거기에서 어떤 회귀의 길을 찾고자 함이다. 그러나 이 회귀는 탈주를 위해 매개되어야 할 회귀일 뿐 문자 그대로의 돌아감을 뜻하지는 않는다. 시간은 앞으로 흐르며 어떤 의미에서도 문자 그대로의 돌아감은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모든 탈주는 회귀에 의해 매개됨으로써만 그 적실한 방향과 속도를 얻을 수 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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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서 간의 철학 사상 문화교류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공자철학자체와 서양의 초창기 근대철학에 대한 심층적 독해와 새로운 정리, 중국문화예술론과 바로크 , 로코코, 고딕, 네오클래식의 발생론 등 동서양 문화 예술론과 동서양 정원이론 및 조원술, 영국 낭만주의의 중국적 기원, 중국•한국•일본의 정치 경제사 등도 세계사적 조감시각에서 포괄적으로 해명한다. - P10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에 이르는 150년 동안 서양을 휩쓴 계몽주의 사조는 유럽인들을 미신과 무지, 종교적 전통주의적 인습, 억압적 봉건성채와 교회체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세속적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인간본성을 회복하는 탈종교적•탈희랍적•탈봉건적 인간해방의 기획이었다. 중국적 모델은 "신적 계시 없이 어떤 도덕도 없다"는 유럽전통의 기독교윤리학과 봉건적 특권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이 계몽주의 운동에 의해 확립된 서양의 근대적 자유와  평등 이념,  계몽군주정, 중농주의와 근대적 자유시장론, 근대적관료제, 필기시험에 의한 공무원임용고시와 탈신분제적 공무담임제, 근대적 권력분립제, 내각제 혁명권 또는 저항권 이론, 세속적 정치문화와 정교분리,
보통교육과 3단계 학교제도, 근대적 관용 이념과 세계주의적 인도주의 및 인권사상, 복지국가론 등 수많은 사상적•제도적 근대성의 아이콘들은 모두 서구계몽사상가와 계몽군주•계몽주의적 치자들이 극동의 유교문화에서 받아들여 유럽적 견지에서 패치워크(짜집기•접붙이기)하고 ‘재창조‘해 근대적 형태로 다듬은 것들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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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6
가라타니 고진 지음, 윤인로.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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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국제관습법‘에 따라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한 법리(法理)를 가지고 말하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이겠지만, 판결문에도 언급되었다시피 한일 양국간의 노력이 피해자들의 고통에 미치지 못했다면, 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번 판결에 대해 ‘역사의 재검토‘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관습‘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피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이번 판결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법원의 퇴행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종군위안부 문제도 옛날부터 있었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나온 페미니스트 운동이 제기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무시되었기 때문에 직접 일본에 가져와서 일본의 페미니스트가 일거에 커다란 문제로 만든 것입니다. 주의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의 남성(가부장제)도 비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p187)... 종군위안부 문제는 기존에 문제가 되었던 한일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다루어졌지만, 거기에는 이질적인 물음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여성의 관점에서 전쟁을 재검토하는 것, 세계사를 재검토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역사의 재검토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배 하에 있었던 자의 눈에 비친 역사가 있고, 여성의 눈에 비친 역사가 있고, 동성애자의 눈에 비친 역사가 있습니다. 아직 그것들은 소리가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서서히 침투하는 것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_가라타니 고진, <윤리 21>,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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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22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여성과 인권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관점에 동의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가 계속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로만 기능하면서 그 안에 숨어있는 여성, 인권문제가 묻혀온 면이 많았어요.
어제의 판결을 보면서 착잡하긴 하네요. 한국도 일본도 갈길이 머네요.

겨울호랑이 2021-04-22 10:57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어제의 판결은 국내법과 국제법의 상충 문제,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대신할 수 있는가 등의 법리 문제 외에도 보편 가치의 면에서도 살펴야 할 여러 문제점이 담겨 있다 여겨집니다...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 - 다석 강의로 다시 읽는 중용 사상
박영호 풀이, 류영모 번역.강의 / 교양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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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종교는 겉으로는 다교(多敎)이지만 속으로는 일원(一元)인 것이다. 하느님은 온통(전체)이라 둘일 수가 없다._ 류영모,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 p 134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에서 류영모(柳永模, 1890 ~ 1981)는 <중용 中庸>의 문구를 여러 관점에서 해석한다. 가는 길(道), 가고자 하는 길은 다를 수 있지만,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하나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읆이(詩)에 이르되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고기는 깊은 물에 솟아 뛰논다." 하였으니
그 위아래로 살피어 이른(言)것이니라.

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시운 연비려천 어약우연 언기상하찰야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고기는 깊은 물에 솟아 뛰듯이, 하느님(道)은 나를 초월하여 계시면서 내 속에 내재(內在)하신다. 예수는 초월하여 계시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하고 내재하여 계시는 하느님(道)을 하느님 아들이라 하였다. 석가는 초월하여 계시는 얼을 니르나바(涅槃)라 하고 내재하여 계시는 하느님을 다르마(法)라고 하였다. <중용>에서는 초월하여 계시는 하느님을 천(天)이라 하고 내재하여 계시는 하느님을 성(性)이라 하였다. 초월하여 계시는 하느님으로부터 거룩이 내리고 내재하여 계시는 하느님으로부터 기쁨이 솟는다. _ 류영모,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 p 135


 공자의 인(仁)은 하느님의 생명인 얼씨이다. 얼씨가 말씀으로 사랑으로 나타난다. 충서의 충(忠)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고 서(恕)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으로 하느님께 뚫린 마음이고 서(恕)는 여(如)와 심(心)으로 하느님과 같은 어진 마음이다. _ 류영모,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 p 151


 '성(誠)'은 <중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글자이다. 중용(中庸)이란 두 글자가 합쳐진 것이 성(誠)이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로고스(logos)와 같다. 류영모는 '참'으로 옮겼다. 지성(至誠)을 류영모는 하느님으로 보았다. _ 류영모,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 p 196


 결국은 내가 나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래서 제나가 거짓나임을 알고 참나인 얼나를 깨달아야 한다. 밖을 살피다가 내 속을 살펴야 바로 살피는 것이다. 이를 <반야심경>에서는 '관자재(觀自在)'라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누구인가를 사무치게 물어야 한다. _ 류영모,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 p 317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인간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을 다른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연을 타자(他者)화 하고 이분법(二分法)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서양철학의 관점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그런 면에서,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에서 저자는 사람의 종교는 궁극적으로 하나지만, 사람과 자연은 다르다는 이분법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쥐, 사슴, 하마 같은 동물은 지나치게 번식하여 과밀 상태에 빠지면 집단으로 물에 빠져 죽는다. 이를 '레밍(Lemming)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법칙이다. 그것은 악하다 선하다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장애인, 늙은이, 병든 이, 약한 이, 어려운 이를 돌보아주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_ 류영모,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 p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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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20-08-31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석 선생 책을 찍어만 두고 읽을 엄두를 못내고 있어요. 게으른 저는 생각만 하고 겨울호랑이님은 움직이시는군요.

겨울호랑이 2020-08-31 11:50   좋아요 2 | URL
에고, 아닙니다. 저도 읽긴 합니다만,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제 것으로 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계속 새기도록 노력해야겠지요. samadhi님 감사합니다.^^:)

samadhi(眞我) 2020-08-31 11:56   좋아요 2 | URL
읽는 것만으로도 훌륭한데요.

겨울호랑이 2020-08-31 12: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amadhi님 건강한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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