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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포스 Topos - 장소의 철학 철학의 정원 11
나카무라 유지로 지음, 박철은 옮김 / 그린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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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과 과학의 구조를 ‘주어(주체) - 술어‘의 관계로 정의하고, 주체 중심의 서양 철학 대신 일본어의 특징인 ‘술어(장소)‘ 중심의 철학을 강조한다. 여러 주체가 어울어지는 장소, 배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분법(dualism)대신 포용과 상생을 니시다의 철학을 중심으로 풀어간다. 언어면에서 일본어와 동일한 통사구조를 가진 우리에게도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도식적으로 말하면 역사나 전통이 무거운 짐이 되어 공동체가 붕괴해 가는 추세 속에서 결국은 토포스(장소, 기억의 집적)가 부정되어 상실되어 가는 동안 고전 레토릭적인 기억술은 룰루스의 ‘결합술‘(Ars combinatoria)을 거쳐 데카르트적인 ‘방법‘으로 전화되어 갔다.(p33)


대우주가 뉴턴적인 절대공간에서 유기적 코스모스로 회귀한 것은 ‘장소‘ 문제의 일환으로서 자연과학적 공간관의 변천을 보아온 우리들에게 실로 의미 깊은 사건이다. 본래 그것과 결부된 새로운 진공관쪽은 그러한 내용이므로 진공이라고 말하기보다 오히려 ‘무의 장‘이라고 말하는 쪽이 좋을 것이다.(p56)

마투라나와 바렐라에 의하면 생물학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의 독자성은 전면적으로 ‘언어 사용‘을 통해 일어나는 사회적/구조적인 결합에 있다는 것이다.(p70)

신체는 의식적 자아 혹은 정신의 기체이자 장소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것은 마음과 몸, 혹은 정신과 신체를 실체적으로 구별해서 전자가 후자 속에 머물거나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의식 혹은 정신이란 ‘신체의 변양의 관념‘(스피노자)이다.(p87)

프레게에 의하면 명제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은 ‘불포화‘ 즉, 술어적인 것이다. 불포화(Ungesattigtheit)란 비완결성 혹은 보완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명제는 주어적 실체본위가 아닌 술어적 관계성에 있어서, 술어는 채워야 할 공백을 포함한 일종의 장소로서 파악되고 있는 것이다.(p104)

우리들 인간의 지식 체계 그 자체가 이러한 구체적 일반자의 무한한 층의 중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으로 주어적 판단의 극한에 무한히 깊은 직각적인 일반자가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술어적 방향의 극한에 거기에 있는 전부를 포함한 무한히 큰 일반자가 보인다.(p108)

왜 니시다는 이렇게 술어면을 중시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그가 ˝의식의 범주는 술어성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에 주목했기 때문이다.(p109)

언어에 의해 사물을 생각하려고 할 때 우리는 누구든지 어떤 자연언어가 형태짓는 체계, 즉 어떤 국어(랑그)속에서, 또 그것에 의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p112)... 이러한 견지에서 유럽인의 언어활동을 재파악해 보면, 그것은 강한 실체화의 경향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상을 ‘S - P‘, 즉 ‘S is P‘(주어 - 술어) 에 의해 파악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p113)... 미카미 아키라는 영어에 비해 일본어는 ‘주제 - 술어(T - P)‘로 표현된다고 했다.(p115)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의 전통 논리학, 이른바 형식 논리학은 주어적인 논리, 주어 본위의 논리였다. 그것에 비해 일반적으로 술어적인 논리는 그 역전으로서 술어 본위의 논리가 된다.(p120)

장소 혹은 장이 추상적인 공간과 다른 것은 시간성의 유무이전에 균질적이지 않고 방향성을 가졌다는, 즉 의미를 띄고 있다는 것에 있다.(p126)... 실체적으로 생각하면 의미는 존재에 의해, 의미정보는 에네르기의 중개로 물질에 의해 지탱되지만, 장소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존재는 의미에 의해, 물질은 에네르기를 매개로 해서 의미정보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다.(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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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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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2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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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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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2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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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2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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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0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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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1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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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19: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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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쇼 라즈니쉬가 전하는 삶의 연금술
오쇼 라즈니쉬 지음, 나혜목 옮김 / 큰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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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른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만 고집하면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 상대적인 세상에서 상대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p45)

존재계 하나하나는 변화하지만, 거기에는 그 모든 것들을 뒤에서 관장하는 불변의 우주법칙이 있다. 그리고 그 우주법칙을 궁극의 신, 무한의 신, 불변의 신이라고 부른다.(p66)

뒤로 물러서는 것이 두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니다.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라. 만일 어두운 밤이 무서우면 어두운 밤으로 나가라. 이것만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이다.(p80)

자유와 두려움 없는 용기가 주는 기쁨을 맛본 사람들은 지식이 결여된 삶을 결코 아쉬워하지 않는다.(p107)

만일 그대가 상대에게 진정으로 화를 표현할 수 있다몀, 그 가운데 깊은 사랑과 연민이 싹튼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형제애, 자매애다.(p167)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돌고 또 돈다. 인간은 사랑과 자유 사이에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인생의 수레바퀴에서 해방될 수 있다. 역설을 선택하라.(p227)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정반대이다. 그들은 하나로 맞출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이 하나 되는 것은 아름다운 기적과 다름없다... 기적은 매일 같이 일어날 수 없다. 기다려야 한다.(p243)

중심에 머무르고자 애쓴다면 일탈은 죄악이 된다. 일탈을 받아들여라. 거기에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p265)

진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 속에 있다. 보물은 우리가 찾는 그 가운데 있다. 구도자라면 바로 이 한 가지 사실을 터득해야 한다... 그냥 있어라. 그러면 놀랍게도 찾을 것이다.(p289)

그대를 한 점 남김없이 태우는 강렬한 욕망, 즉 열망을 가져라.(p311)

ps. 진리를 찾고자 노력하지 말라는 p289의 문장과 열망을 가지라는 말은 서로 어긋나는 말이 아닐까. 이것은 p227 역설을 선택하라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언어의 한계일까. 물음을 던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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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15: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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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2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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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 리쩌허우와의 담화록
리쩌허우 지음, 류쉬위안 엮음, 이유진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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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데거 이후 이제 중국 철학이 등장해서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비록, 하이데거가 노자 老子를 좋아하긴 했으나 노자를 억지로 갖다 붙여서 비교하며 논의해서는 안 됩니다. 공자, 그러니까 중국의 전통으로 하이데거를 소화해야 해요.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지 않나요?(p21)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리쩌허우(李澤厚, 1930 ~ )는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該中國哲學登場了>에서 기존의 서양 철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를 대신한 새로운 중국 철학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 본체 情 本體'가 자리한다.


 인성, 정감, 우연은, 내가 기대하는 철학의 운명이라는 주제다. 이것은 장차 21세기에 시적으로 전개될 것이다.(p112)... 어떻게 과거를 슬퍼하고 현재를 아낄 것인가, 어떻게 욕 慾을 정 情으로 이끌어 들여서 욕을 정으로 만들 것인가, 그건 바로 포스트모던에서 중국 철학으로 전환하여 운명을 선택하고 내일을 결단하는 최적의 경로에요. 그건 바로 제가 인류학 역사 본체론에서 말한 '정감 - 이성 구조(문화 - 심리 구조)' 이며 '정 본체'입니다.(p114)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저자는 도구의 사용을 통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류만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파악한다. 도구의 사용이 인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역사(歷史)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문자(文字)를 통해 역사의 교훈이 후대에 남게 된다. 이러한 역사 또는 경험의 결과로 철학이 만들어졌다고 바라보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중국 문자란 대체 어떤 개념일까요? 그건 바로 역사에요. 문자는 역사와 경험을 대표합니다. 문자는 역사 경험을 총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요.(p141)... 하이데거가 강조했던 건데 바로 명명 命名이에요. 제 생각에 이름 있음과 명명은 일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 근원을 찾자면, 매듭을 지어 일을 기록하던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최조의 역사이지요.(p142)... 명명은 중요합니다. 그건 역사의 근원이에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중국식 사유를 총괄해낸다면 바로, 역사로 나아가고 경험을 중시하는 겁니다.(p143)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정본체 - 정감은 운명, 인성, 우연과 함께 제기한 것이지요. 일단 그 셋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p50)... 우연 - 역사는 우연으로 가득합니다... 각종 사건에 있어서 우연과 필연의 관계와 비중을 연구하는 것이 역사학의 중심점이라고 했답니다.(p51)... 인성 - 저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인류가 '보편 필연'적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하는 데 관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역점을 두고 연구한 것은, 도구의 사용과 도구의 제작이 인류의 심리 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구의 사용과 제작으로 인해 형성된 문화-심리 구조, 즉 인성 문제이자 '누적 - 침전 沈澱'에 대한 연구에요. 누적 - 침전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주는 심리 형식이지요.(p53)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철학이 경험의 결과라면, 중국의 철학은 다른 지역의 철학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저자는 중국 철학의 특징으로 반(反) 이분법(二分法) 요소가 그 안에 있음을 강조한다.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을 구분한 서양 사유와는 달리 중국은 이(理)와 정(情)이 어울어져 도(道)와 예(禮)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서양 철학이 맞닥뜨린 철학의 위기 상황을 겪지 않을 수 있으며 때문에 철학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된다.


 중국의 '무사 巫史 전통'으로 인해 중국 문화 속의 정감과 이성, 종교와 과학은 뚜렷이 나뉘지 않았던 겁니다. 중국에서는 공자든 맹자든, 한대 漢代의 천일합일이든, 송명이학 宋明理學의 심성 수양이든, 일종의 신앙이고 감성적인 거에요. 동시에 이성적 추리와 논증이기도 하고요. 신앙과 정감이 이성적 사변과 한데 섞여 있는 거죠.(p23)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중국 전통은 이 理와 욕 慾의 관계를 조정하고 구축하기 위한 것이지요. 즉 정이 욕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정을 욕과는 다르게 만드는 것이랍니다. 정에는 이가 있긴 하지만 이와 같은 건 아니지요. 최대한으로 이를 정과 아울러서, 정으로 욕을 변화시켜 '도'와 '예'가 되도록 하는 거랍니다.(p56)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도 道'는 지극히 커다란 보편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도'가 바로 역사 본체론의 제1조 條랍니다. '도'는 인류의 생존과 관계가 있지요... '도'는 사실 '미 美'이기도 하답니다. '도'가 각종 형식감을 창조하거든요. 이런 '감 感'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활동 자체가 외재하는 천지자연과 하나로 일치되는 느낌, 체험, 파악, 인식이랍니다. 그 뒤에야 그것이 비로소 대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외부세계를 규범에 맞도록 만드는, 인간의 물질적 힘과 기예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생활의 각 방면으로 확장되는 거에요.(p146)... '도'는 경험의 척도이고, 경험은 실천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것은 경험의 산물이죠. 역사의 긴 강을 지나면서 실천을 통해 세워진 겁니다.(p147)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가장 근본적인 광의의 형이상학이 아직 남아 있지요. 광의의 형이상학은 인류의 마음이 영원히 추구하는 것이자 인생의 의이, 삶의 가치, 우주의 근원에 대한 이해이며 질문이에요. 또한 정감의 추구이기도 하지요. 하이데거가 '철학의 종말'을 제기하면서 말한 것은 그리스 철학을 표본으로 삼은 거였어요. 저는 그것을 '협의'의 형이상학의 종결이라고 부르겠습니다.(p17)... 협의의 형이상학은 중국에 없어요. 하지만 중국에는 광의의 형이상학이 있답니다.(p24)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이와 같은 역사와 사상이 만들어지는 흐름과 함께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저자는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를 통해 푸코(Michel Foucault, 1926 ~ 1984)와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 ~ 2004)의 해체주의를 이을 새로운 철학이 바로 중국 철학임을 말한다. 본문에서 데리다가 중국에는 철학이 없다고 말한 사실이 언급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참으로 짓궂은 반론이라 생각된다.


 제가 지금 제기하는 정 본체, 다른 말로 인류학 역사 본체론은 세계의 시각이고 인류의 시각이라는 겁니다. 중국의 전통을 기초로 세계를 보는 것이지요. "인류의 시각, 중국의 관점."(p138)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그리움, 아낌, 감상 感傷, 깨달음으로 공허하고도 해결할 수 없는 '두려움'과 '번민'을 대체하고, 두려움과 번민에서 야기된 포스트모던의 '파편'과 '순간'을 대체하자는 거죠. 인간 자신의 실존이 우주와 협동하고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이 존재하는 곳이에요. 하이데거의 디자인 Dasein 은  '현존재'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해석학에 따른다면 바로 '살아감'이지요. 그리고 제가 말하는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고요.(p22)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에서 저자가 그려내는 새로운 시대 철학의 모습은 중국 철학의 바탕 위에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이 결합된 모습이다. 이러한 분석도구를 사용하여 역사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철학을 풍부히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새로운 시대의 중국 철학 모습이다.


 "심리가 본체가 된다." 나는 이것이 하이데거 철학의 주요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본체론'에서 두 개의 본체를 제기했는데, 앞의 본체(도구 본체)는 마르크스를 계승하고 뒤의 본체(심리 본체)는 하이데거를 계승했다. 그런데 이것 모두 수정과 '발전'을 더했다. 중국 전통과 결합하여(p164)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대담 형식으로 구성된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는 이처럼 중국 철학 대가인 리쩌허우의 사상을 정리하여 제시한다. 또한, 저자의 대표작인 <미의 역정><중국고대사상사론> <중국근대사상사론> <중국현대사상사론> 등에 담긴 자신의 의도와 생각도 다뤄지기에, 리쩌허우 저서의 입문서로서의 기능도 갖는 부분은 책이 가진 뚜렷한 장점이다.


 반면, 중국의 역사 경험에서 비롯된 중국 사상을 인류 보편적인 사상으로 해석하는 저자의 주장에는 쉽게 찬성하기 어렵다. 중국과 다른 문명권에 속하는 이들에게도 같은 역사 인식과 철학이 공유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유럽 문명에 속하는 이들은 중국 철학보다는 오히려 불교(佛敎) 사상에 더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실제로, E. F. 슈마허 (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 ~ 1977)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을 통해 '불교 경제학'을 주장했으며, 이러한 사상은 환경 생태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 등으로 뒷받침된다. 또한,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이들은 저자의 사상에서 대국굴기(大國崛起)를 꿈꾸는 중국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여겨진다. 이런 면에서 저자의 사상은 인류 보편 사상이라기 보다 현대 중국 사회 사상이라 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엄밀하게는 중국 내부이 변화하는 정치 흐름은 담아내지 못한다는 면에서는 이마저도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은 다소 아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얇은 대담집을 통해 대학자의 사상 전반을 훑어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책만이 가진 큰 장점이라 생각하며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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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 - 유가.묵가.도가.법가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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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제가의 백가쟁명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크게 세 가지 큰 논쟁으로 개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는 유가와 묵가의 논쟁이다. 그 논쟁의 초점은 '인애'인가 아닌가 '겸애'인가로 모아진다. 두 번째는 유가와 도가의 논쟁으로, 그 초점은 '유위'와 '무위'의 구별이다. 세 번째는 유가와 법가의 논쟁인데, 논쟁의 초점은 '덕치'와 '법치'의 문제다.(p128) <백가쟁명> 中


 이중톈(易中天, 1947 ~ ) 은 <백가쟁명 百家爭鳴>에서 유가 儒家, 묵가 墨家, 도가 道家, 법가 法家 사상을 비교, 대조하고 있다. 저자는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유가를 중심으로 이들의 사상이 어떻게 대립하고, 영향받았는지를 위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백가쟁명>에서는 여러 각도에서 이들 사상들의 영향관계와 차이점들을 제시하면서, 선진 先秦 시대 중국 사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를 다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리뷰에서는 짧게나마 핵심 쟁점을 '정명 正名'의 관점에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유가와 묵가의 논쟁이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언어가 순통하지 못하고, 말이 이치에 순통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합하지 못하며, 형벌이 적합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공자의 말은 아주 분명하다. '정명 正名'이 어찌 쉬운 일이겠느냐?(p53)  <백가쟁명> 中


 1. 유가와 묵가의 논쟁 : 인애 VS 겸애


 저자는 <백가쟁명>에서 유가와 묵가의 논쟁을 인애와 겸애로 요약한다. <백가쟁명>의 본문을 통해 인애는 가까운 것으로부터 먼 곳으로 나가는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겸애는 차별없는 사랑으로 대비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애 仁愛인가? 친정 親情, 즉 자신에게 가까운 신변에서 시작하여 점차 타인까지 미루어나가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먼저 자신과 자신 주변의 사람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친척과 마을 사람들까지 사랑하라는 것이다.(p182) <백가쟁명> 中 


 이른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마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를 자신의 나라처럼 보거나 다른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자신을 보는 것처럼 대하는 것이다. 이런 사랑이 바로 '겸상애 兼相愛' 또는 '겸애'이다.(p174) <백가쟁명> 中


 '사랑'에 대한 유가와 묵가의의 입장차이는 '정명론'에서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에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사랑을 가까운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유가의 입장은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종의 차선책인 반면, 묵가는 이를 '명분이 바르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차별없는 사랑을 주장한 것에 이들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어느 사상이 보다 현실적인지, 아니면 보다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답은 독자 자신들이 내려야 할 것이다.


2. 유가와 도가의 논쟁 : 유위 VS 무위


 공자에게 인간됨의 가장 높은 경계는 '인 仁'이고, 치학 治學에서 가장 높은 경계는 '락 樂'이다.(p100) <백가쟁명> 中


 "도 道를 잃은 후에 덕 德이 있게 되고, 덕을 잃은 후에 인 仁이 있게 되며, 인을 잃은 후에 의 義가 있게 되고, 의를 잃은 후에 예 禮가 있게 된다. 예는 충신이 부족한 것이며 어지러움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인이나 의를 강조하다 끝내 예를 말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면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다는 뜻이다.(p329)... 노자의 주장은 아득하게 먼 옛날 여전히 도가 존재했던 씨족사회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원시 씨족사회는 계급이나 모순, 투쟁은 물론이고 지혜나 도덕도 없고, 정부도 없는 '무'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도가가 말하는 '도', 즉 무 無 또는 무위 無爲이다.(p331)<백가쟁명> 中


  유가와 도가의 논쟁은 '유위'와 '무위'에 대한 논쟁이다. 이를 도가의 입장에서 치환 한다면, '하덕'과 '상덕'의 형태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덕과 상덕은 무엇일까? 유가에서 강조하는 '인', '의' 그리고 '예'는 도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하덕'에 속한다. 반면,  도가는 '상덕'에 속하는 '도'와 '덕'을 강조하는데, 이들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도덕경> 제 38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상덕 上德을 지닌 이는 스스로 덕이 있다고 여기지 않으니, 이로써 덕이 있고, 하덕 下德을 지닌 이는 스스로 덕을 잃지 않았다고 여기니, 이로 인해 덕이 없게 된다." 의미는 분명하다. 최고의 도덕은 도덕이 필요 없다. 필요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덕이 있게 된다.(p320) <백가쟁명> 中


 상덕을 지녔다면 생기지 않았을 혼란을  하덕의 강조를 통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주장을 통해 유가를 비판하는 도가의 사상은 '정명'에서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에 대한 다른 답이라 여겨진다. 문명 文明 이전으로 돌아가 도와 덕의 시대를 지향한 도가와 문명 이후 인간됨을 강조한 유가의 입장 중 어느 편을 더 중하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우리가 생각할 문제다. 


3. 유가와 법가의 논쟁 : 덕치 VS 법치


 저자는 <백가쟁명>을 통해 성현 聖賢의 질서를 강조한 유가 사상과 일반인들의 질서를 강조한 법가 사상을 비교하면서, 이상적인 면에서는 유가의 손을, 현실적인 면에서는 법가의 손을 들어준다. 그리고, 법가의 현실적인 면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바로 '양면삼도'다. 


 세 勢를 통해 위신을 세우고, 술 術을 통해 신하를 부릴 수 있으며, 법을 통해 백성을 제어할 수 있다. 이것들이 바로 군주의 수중에 있는 지휘도 指揮刀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법가의 '양면삼도 兩面三道'이다. 양면은 '이병 二柄', 즉 상과 벌, 포상과 징벌이고, 삼도는 세와 술, 법이니 권세를 통한 장악과 음모와 계략, 그리고 엄격한 형법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한비가 군주에게 바치고자 했던 핵심 내용이다.(p448)<백가쟁명> 中


 저자가 보다 현실적이라 말한 법가와 유가의 논쟁은 '정명'에서 어디에 해당할 것인가. 아마도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합하지 못하며' 대목이 아닐까. 전국 시대 戰國時代 말기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예악이 무너진 상황에서 법가는 형벌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손발이 향할 곳을 제시했기에 보다 현실성을 가졌음을 생각하게 된다. 개인들이 성현의 모습을 본받으면서 수양할 것을 강조한 유가와 현실의 제약조건을 인정하고 '제약조건 하의 최선'을 강조한 법가 중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과제다.


 이처럼 <백가쟁명>에서는 유가를 중심으로 다른 사상들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면에서 좋은 입문서라 여겨진다. 첫 번째는 이러한 사상의 차이와 더불어 현실적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저자가 이끌어준다는 점에서다. 두 번째는 균형잡힌 시각이다. 시기적으로 먼저 성립한 사상이 후대 사상들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반론할 수도 없기에 불리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유가의 불리함에 대해서는 저자 이중텐이 직접 나서서 설명하면서 균형을 잡아준다는 점은 쉬운 해설과 더불어 이 책의 다른 장점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볼 때, <백가쟁명>은 고대 중국 사상의 좋은 입문서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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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11-24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도 동양철학에 손이 많이 가네요.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님.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겨울호랑이 2018-11-24 10:37   좋아요 1 | URL
북프리쿠키님 감사합니다. 북프키쿠키님께서는 워낙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시니 어디 동양철학뿐이겠습니까? ^^:) 오늘도 즐거운 독서, 행복한 하루 되세요!

서니데이 2018-11-24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정명에 대한 설명을 읽었을 때, 의미를 알 것 같은데도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시대의 이론들이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것에서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11-24 21:18   좋아요 1 | URL
^^:) 정말 그렇네요. 당시 사상이 지금도 전해지는 것은 그 사상의 내용도 깊이가 있어서겠지만 동시에 기록했기에 기능했겠지요.. 매일 기록을 남기시는 서니데이님의 꾸준함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서니데이 2018-11-30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오늘은 11월 마지막 날입니다.
11월에는 좋은 일들 많으셨나요. 겨울호랑이님 댁에는 예쁜 고양이 귀요미가 찾아와서 더 좋은 11월이었을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12월에는 더 좋은 일들 가득한 연말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기분 좋은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11-30 21: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벌써 2018년도 마지막 달이네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즐거운 주말과 함께 행복한 12월을 여시기 바랍니다.!^^:)

2018-11-30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30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26‘이라고 하면 국민들 다수가 1976년‘박정희 전대통령 사망일‘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10.26은 의미있는 날이었다. 많은 이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1909년 10월 26일은 하얼빈 역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조선통감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날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독재자 박정희가 쓰러졌어도 이 땅의 민주주의가 돌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한국 근대사의 끝자락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지만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은 막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1909년의 10.26의거는 캄캄한 일제 치하에 떠올랐던 찬란한 별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안중근과 동양평화론」은 1909년의 10.26이 단순한 테러가 아닌 평화로 가기 위한 구한말 한 지식인의 고뇌에 찬 결단임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이제 우리는 10.26을 독재자 사망일로 기억하기보다 더 큰 평화의 길을 가기위한 의거일로 기억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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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7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7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10-27 1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억하겠습니다. ~
겨울호랑이님 주말 잘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10-27 11: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님께서도 가을 주말을 책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2018-10-28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9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10-29 1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10-29 13:31   좋아요 1 | URL
페크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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