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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에서 음악을 재생하고 책을 읽는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되버린 요즘이다. 오늘도 유튜브 화면을 열자 여느 때처럼 추천 동영상이 여럿 뜬다. 무슨 근거로 내게 이런 자료들을 추천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쳐다 본 동영상 하나에 눈을 좀처럼 떼지 못하게 된다. 'UP - Ppuyo ppuyo, 유피 - 뿌요뿌요, MBC Top Music 19970614'. 20년도 더 지난 이 동영상에 마음이 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미처 의식할 사이도 없이 내 손은 동영상을 재생시켰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마들렌 과자를 맛보고 느꼈던 감정을 나 또한 맛보게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그 맛은 내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 방으로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면,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차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이었다.(p89)...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 그것이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아주머니의 방에 있던, 길 쪽으로 난 오래된 회색 집이 무대장치처럼 다가와서는 우리 부모님을 위해 뒤편에 지은 정원 쪽 작은 별채로 이어졌다.(p9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1997년 6월 14일 토요일.


 그날은 소속 대대로 배치된 첫 날이었다. 강원도 화천의 깊은 산중에 위치한 대대에도 내려 중대로 이동했을 때, 부대의 열악한 환경에 매우 실망했었다. 첩첩산중에 위치한 대대에서도 중대는 뒷편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 당시 중대 건물이 신축공사 중이었기에, 중대원들은 부대 내 창고를 막사로 수리해서 임시로 내무반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고문을 떼내어 임시로 만든 출입문, 유리창 대신 비닐로 막은 유리창, 야외에 간이로 설치된 재래식 화장실 등등. 건물 밖에서 중대 행정반으로 들어섰을 때는 마침 개인 정비 시간이었고, 모두들 내무반과 개인 정비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건물이 창고 건물이었기에 통풍은 잘 되지 않아 6월 장마철에 그 안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났다. 고참들로 보이는 병장 몇 명은 TV를 보고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음악이 바로 MBC <인기가요 50>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UP의 <뿌요뿌요>였다. 그리고, 이어 4시 25분 을 가르키는 벽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이 모든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의 냄새가 유튜브의 노래에 맞춰 되살아나는 느낌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를 떠올리게 된다.


  유튜브에서 재생되는 오래전 노래와 영상은 나를 23년 전 신임 소위시절의 나로 데려갔고, 이로 인해 당시 내가 느꼈던 모든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감정을 느낀다. 오래 전 시간이라 모든 것을 재생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어느 한 때와 지금의 내가 UP의 노래를 통해 연결되는 이 느낌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도 느꼈을까. 잠시나마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행복을 맛보면서, 다른 책을 꺼내든다. 과연 화자가 먹은 마들렌 과자는 <뿌요뿌요> 같은 맛이었을까는 물음과 함께.


 나는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상태가 무엇인지 아무런 논리적인 증거도 대지 못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이 그 앞에서 사라지는 그런 명백한 행복감과 현실감을 가져다주는 이 상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것을 다시 나타나게 하고 싶다. 생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차의 첫 모금을 마신 순간으로 되돌아가 본다. 똑같은 상태가 보이지만 새로운 빛은 없다.(p8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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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6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6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20-05-16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뿌요뿌요˝를 들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5-16 20: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 모처럼 옛 생각을 해 본 날이었습니다^^:)

책식주의 2020-05-27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마들렌과 뿌요뿌요라니요😍 아련하고도 귀여운 조합이네요💕 저 예전에 알라딘 굿즈로 받은 마들렌 모양이 수놓아져 있는 ˝프루스트 수면양말˝ 갖고 있는데🧦 마들렌 수면양말 신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으면 딱 좋겠네요ㅋㅋ

겨울호랑이 2020-05-27 14: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식주의님. 잘 몰랐는데, ˝프루스트 수면양말˝이 있었군요. 굿즈로 나왔으니 예쁘게 나왔을 것 같네요. 멋진 조합이라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저는 수면 양말을 신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 영영 잠들 것 같아 맨발로 읽어야겠어요. ^^;)
 

 여보세요? 예, 메가도도 출판삽니다. 알려진 우주 전체에서 전적으로 가장 훌륭한 책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본부죠.(p272)...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무한하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우주 속에서 인생을 이해해보고자 애쓰는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지침서다. 비록 이 책이 모든 문제에 대해 쓸모가 있고 정보를 줄 수 있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은 이런 든든한 주장은 한다. 즉, 이 책에 틀린 곳이 있을 때는, 적어도 '결정적으로' 틀렸다는 것이다. 중요한 오류가 있을 경우, 잘못된 쪽은 항상 현실이다(p273)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中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는 긴 제목만큼이나 두꺼운 책이며, 비(非)논리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렵고 진도나가기 어려운 책이다. SF소설이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여지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볼 같은 전개에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느낌은 나만이 받는 것일까? <문학으로의 모험 Literary Wonderlands>에 담겨진 편잡자의 해설을 보면 작품에 대한 혼란을 느끼는 것은 거의 모든 독자들에게 공통된 사항으로 여겨진다. 


 적응 능력이야말로 이 작품의 성공에서뿐만 아니라 그 내부의 논리에서도 핵심이 된다. 왜냐하면 시리즈가 늘어나면서 그 줄거리도 기발하고 부조리하고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늘어났기 때문인데, 그래도 그 핵심은 여전히 평범한 인간 아서 덴트의 '물 밖에 나온 물고기'이야기다.(p232)... <히치하이커>의 매력은 희극성 이상의 어떤 것에 의존한다. 애덤스가 상상한 세계는 흥미진진하고, 각양각색이고, 다른 무엇보다도 팬의 참여와 관련해서는 무척이나 호의적이다. 우주에는 무능함과 신랄함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순순한 악이나 잔인성은 찾아보기 힘들다(p235) <문학으로의 모험> 中


  개인적으로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몰입감을 주는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등장인물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은 맥락없이 책 진도를 끌어나간다. 그래서 1,0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짧은 시간 내에 벽돌책을 정복하는 성취감은 산만한 이 책이 주는 작은 선물이다.


 모험이 이어지면서 덴트와 포드는 지구가 실제로는 평범한 행성이 아니라 오히려 거대한 우주적인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무려 수백만 년 동안이나 가동하던 거대한 컴퓨터였음을 알게된다. 이 수수께끼는 '삶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삶의 의미의 의미'였다.(p234) <문학으로의 모험> 中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책에서 제기한 '삶의 의미의 의미'를 풀기 위한 '책 안의 책'이다. 작품 안에서 <안내서>는 거대한 수수께끼로 다가가는 과정을 해설한 백과사전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안내서 안에 담긴 내용은 딱딱하지 않고 우리의 상상 너머의 내용을 보여주기에, 우리는 책의 정신없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잃지 않고 나갈 수 있다. 이처럼 작은 미소를 작품 전반에 걸쳐 지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안내서>가 주는 큰 매력이다. (황당한 웃음도 포함해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폐 한가득 숨을 들이마시면 완전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 삼십 초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계속해서 말하길, 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우주 공간에서 그 삼십 초 안에 다른 우주선에 의해 구조될 수 있는 확률은 이십칠만 육천칠백구의 제곱분의 일이라고 한다. 어떤 엄청나게 경이로운 우연의 일치에 따르면, 그 숫자(276,709)는 또한 영국 이즐링턴에 있는 한 아파트의 전화번호이기도 했다.(p95)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中


[사진] Stars and galaxy space sky night background, Africa, Kenya(사진 출처 : https://www.123rf.com/photo_43201820_stars-and-galaxy-space-sky-night-background-africa-kenya.html)


  책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마치 우주선에 앉아 우주여행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예기치 못한 등장인물과 좌충우돌 벌어지는 사건은 독자들을 정신없게 만들고 이런 뜻밖의 상황이 독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히치하이커>의 유머 가운데 몇 가지 사례를 추출한다고 해도, 애덤스의 세계에서 유머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그 각각의 유머는 그것이 발생하는 광대하고도 기발한 문맥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유머를 문맥에 녹여 넣는 용해제는 바로 매력인데, 이것이야말로 문학에서는 진정으로 귀한 특성이며, 과학소설에서는 더더욱 귀한 특성이다.(p235) <문학으로의 모험> 中


 그렇지만, 저자 더글러스 애덤스 (Douglas Adams, 1952 ~ 2001)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웃음은 단순한 농담 따먹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은하계의 변방 '태양계'의 작은 행성에서 일어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은 미소 한 편에서 우리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저 멀리 시대에 뒤처진 은하계 서쪽 소용돌이의 긑,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그 변두리 지역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노란색 항성이 하나 있다. 이 항성에서 대략 구천팔백만 마일 떨어진곳에 시시하기 그지없는 작은 청록색 행성이 공전하고 있는데, 이 행성에 사는 원숭이 후손인 생명체들은 어찌나 원시적인지 아직도 전자 시계가 꽤나 대단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이 행성에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이 행성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불행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수많은 해결책이 제시되었는데, 이 해결책들은 대부분 주로 작은 녹색 종잇조각들의 움직임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냥 남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열했고, 그들 대다수는 비참하게 살았다.(p721)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中


 사람들을 통치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문제는 누구에게 통치하는 일을 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아니면, 누가 사람들이 그 일을 스스로 저지르도록 조종하고 있냐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을 통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사실상 그 일에 가장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요약을 다시 한 번 요약하자면, 스스로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일을 수행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 요약에 한 이 요약을 다시 요약하자면, 문제는 사람들이다.(p432)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中


 이러한 정치와 경제 비판 외에도, '주님'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우는 '우주의 통치자' 이야기와 '평행 우주(Parallel World)' 라는 난해한 물리학 용어를 간단하게 무시하고 넘어가는 안내서의 설명은 독자들에게 종교와 과학의 기존 권위를 부정하는 묘한 통쾌함을 안겨준다.


 우주의 통치자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 말을 시작했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나는 사람들하고 상관이 없어요. 내가 잔인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주님도 알아요." "아하! 당신 '주님'이라고 하셨죠! 당신 뭔가를 믿기는 하는군요!" 자니우프가 소리를 질렀다. "내 고양이지요. 난 이 녀석을 주님이라 부르죠. 난 이 녀석에게 정말 잘 해준답니다."... "전혀 몰라요. 고양이처럼 보이는 대상에게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했을 때 내 기분이 좋을 뿐이죠. 당신은 다르게 행동하나요?"(p441)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中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평행 우주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신 중에서도 상급 신 레벨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다. 게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신들이 자기네들이 주로 주장했듯이 우주 탄생 일주일 전이 아니라 탄생 후 백만분의 삼 초는 족히 지나고 나서야 등장했다는 것이 이제는 완전히 기정 사실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안 그래도 해명해야 할 것들이 무진장 많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복잡한 물리학 문제를 설명할 여유는 없는 것이다.(p990)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中


 개인적으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정신없게 빠져들게 만드는 몰입감있는 SF 작품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안에는 현실 풍자와 신비로운 여행은 마치 <걸리버 여행기>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13층 나무집>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는 매력있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PS. 이 작품에 대한 등급을 준다면, 나와는 맞지 않기에 애인은 되기 어렵지만, 나름 매력있는 '좋은 사람' 등급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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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에서 갑자기 친구가 된 나폴레옹과 프랑스인들에 대해 총사령부와 보리스가 보인 태도의 변화는, 로스토프와 그가 떠나온 군대 내에서는 아직 이루어질 겨를이 없는 것이었다. 일반 군대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보나파르트와 프랑스인들에게 증오와 경멸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p223) <전쟁과 평화 2> 中


 1809년이 되자 세계의 두 통치자라 불리던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의 친교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에도 건강, 질병, 노동, 휴식이라는 본질적 관심, 그리고 사상, 학문, 시, 음악, 사랑, 우정, 증오, 욕망이라는 관심을 지닌 사람들의 실제 생활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의 정치적 접근과 반목, 그 밖의 온갖 개혁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p244) <전쟁과 평화 2> 中


 <전쟁과 평화 2 war and Peace 2>에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과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대립에서 화해하며 1812년 러시아 원정 이전 잠시나마 평화로운 시기를 그린다. 정치적인 이유로 이루어진 화해는 처음에는 낯설게 받아들여지지만, 그것이 익숙해지면서 다시 일상의 주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덮게 된다. 


 <전쟁과 평화 2>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주인공 피예르가 프리메이슨(Freemason)에 가입하고, 프리메이슨의 사상에 빠져드는 대목이다. 인도주의/박애주의를 지향하는 친목단체라지만, 음모가들에게 어둠의 세력으로 지목받고 있는 프리메이슨. 이와 함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Eyes Wide Shut>과 연관성으로 알려진 일루미나티(바이에른 광명회 Illuminatenorden Bayern)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일루미나티에 대한 정보는 없었고, 프리메이슨에 대한 정보가 있어 이를 옮겨본다.


[사진] 프리메이슨(출처 : https://www.britannica.com/topic/order-of-Freemasons)

 

 프리메이슨 Freemason : 18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된 세계시민주의적(世界市民主義的)/인도주의적 우애(友愛) 단체. '로지(작은 집)'라는 집회를 단위로 구성되어 있던 중세의 석공(石工 : 메이슨) 길드를 모체로 한다. 1717년 런던에서 몇 개의 로지가 대(大)로지를 형성한 것이 그 시초이다. 그 후, 18세기 중엽 전영국에서 유럽 각국과 미국까지 퍼졌는데, 그것은 이미 석공들만의 조직이 아니라, 지식인/중산층을 많이 포함하였으며, 계몽주의 사조에 호응하여 세계시민주의적인 의식과 함께 자유주의/개인주의/합리주의의 입장을 취하였고, 종교적으로는 관용을 중시하였다. 그 때문에 특히 가톨릭교회와 가톨릭을 옹호하는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게 되어 비밀결사적인 단체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이나 19세기 여러 정치적 사건과 연루되기도 했지만 역할이 과장되어 전하는 경향이 있다. 20세기에는 정치와 연관성이 거의 없어졌고, 국가 또는 지역 단위의 대로지밑에 몇 개의 로지를 두는 식의 조직으로 회원 상호간의 우호와 정신함양 및 타인에 대한 자선/박애사업을 촉진하는 세계동포주의적/인도주의적인 단체가 되었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 中


 일루미나티에 대해서는 인터넷상의 정보밖에 찾을 수 없었지만, 작품 속의 내용을 통해 기독교인들에게 탄압을 받던 프리메이슨 회원들 사이에도 일루미나티는 위험한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루미나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살펴보도록 하고, 이번 페이퍼에서는 톨스토이 사상과 프리메이슨 사상에 대해 한정하여 비교해보자.


 이 연설에서 일루미나티의 위험한 사상을 발견한 대부분의 형제들은 피예르에게 놀랄 만큼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갖가지 당파가 형성되고, 일루미나티(각주 : Bavarian Illuminati, 바이에른 광명회라고도 부른다. 1776년 독일에서 결성된 급진적 비밀결사로, 절대왕정을 전복시키고 자유와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에 빠져 있다고 비난하며 피예르를 공격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다.(p276) <전쟁과 평화 2> 中


 <전쟁과 평화 2>에서는 피예르 또는 늙은 프리메이슨 회원의 입을 통해 프리메이슨의 사상이 많은 부분에 걸쳐 소개되고 있는데, 톨스토이(Lev Nicolayevich Tolstoy, 1828 ~ 1910)의 사상을 담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2> 안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몇몇 대목이 있어 이를 옮겨본다.


1. 내면에 존재하는 신(神)


 "당신은 하느님을 모릅니다.. 선생, 그렇기 때문에 몹시 불행합니다. 당신은 하느님을 모르지만, 하느님은 여기, 내 안에, 나의 말 속에, 또 당신 안에, 아니 당신이 지금 한 그 불경한 말 속에 계십니다." 엄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프리메이슨이 말했다.(p119) <전쟁과 평화 2> 中


 성서의 전설에 의하면, 노동을 하지 않는 것 - 무위 - 은 타락하기 전 최초의 인류에게는 행복의 조건이었다고 한다. 무위를 좋아하는 마음은 타락한 인간 속에 그대로 남았지만, 신의 저주가 끊임없이 인간에게 압박을 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스스로 빵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이유 때문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는 편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는 무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p377) <전쟁과 평화 2> 中


 우리가 나의 시작이라 인식하는 이 정신적인 '어떤 것'이야말로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인들이 신이라 이름했던 것이다. 나의 내부에서만 신을 인식할 수 있다. 내부에서 이것을 발견하기 전에는 어디에서도 신을 발견할 수 없으리라. 자기 내부에서 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p100) <인생이란 무엇인가 2> 中


 프리메이슨의 어느 회원은 신(神)이 자신의 내면과 말 안에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데, 이러한 회원의 말과 자신의 내부에서 신을 발견해야 한다는 톨스토이의 말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2. 형제애(兄弟愛)


 "혼자서는 누구도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며, 만인이 협력해 하나하나 돌을 쌓아올리면서 인류의 아버지 아담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백만의 세대를 거쳐야 비로소 위대한 하느님이 사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신전이 지어지는 것입니다.(p118) <전쟁과 평화 2> 中

 

 피예르는 어렸을 때 고해하면서 경험했던 것과 유사한 공포와 경건함을 느꼈고, 생활의 조건에서 보면 아무 인연이 없지만, 인류의 형제애라는 점에서는 지극히 친숙한 사람과 대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예르는 숨막히는 격렬한 심장의 고동을 트끼면서, 리토르(프리메이슨에 가입하려는 자를 준비시키는 형제를 이렇게 불렀다)쪽으로 다가갔다.(p129) <전쟁과 평화 2> 中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세상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의 가슴에 동일한 영적 본원이 깃들어 있다는 것, 그들이 모두 형제자매임을 가르치고, 그로써 그들을 하나로 결합하고 즐거운 공동체로 이끈다.(p123) <인생이란 무엇인가 2> 中


 <전쟁과 평화 2>에서는 프리메이슨의 형제애가 소개된다. 인류가 모두 형제이며, 진리에 이르기 위해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는 프리메이슨 회원과 피예르의 말과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형제자매임을 강조하는 톨스토이 말에서 초기 기독교 공통체의 분위기를 발견하게 된다.


3. 세상의 악(惡)


 당신도 잘 아시는 인류의 적은 인류의 적은 프로이센군을 공격하는 중입니다. 프로이센군은 삼 년 동안 겨우 세 번밖에 우리를 속이지 않았던 성실한 동맹군이죠 우리는 그들을 감싸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인류의 적은 우리의 풀륭한 제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무례하고 야만적인 방법으로 프로이센군에 덤벼들어, 모처럼 시작된 열병식을 끝낼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분쇄하고 포츠담 궁전을 점거해버렸습니다.(p159) <전쟁과 평화 2> 中


 <전쟁과 평화 2>에서는 나폴레옹은 세게를 위협하는 악(evil)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작품 속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묘사가 러시아 외교관에 이루어진 것임을 생각해본다면, 러시아 독자가 아닌 이들은 이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독자들에게도 '나폴레옹=인류의 적(敵)'이라는 공식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2> 에서 폭력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이 보완해 줄 것이다.


 불행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폭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잘못된 공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폭력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한 착각은 그들의 누군가를 기만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p232)... 폭력으로 사람들을 선량한 삶으로 이끌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폭력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사악한 삶의 본보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p233) <인생이란 무엇인가 2> 中


 4. 톨스토이의 정치철학


 이처럼 <전쟁과 평화 2>에서 묘사된 프리메이스 사상과 <인생이란 무엇인가 2>의 톨스토이 사상 속에서 우리는 내면에 존재하는 신, 형제애, 세상의 악에 대한 공통된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이를 근거로 톨스토이가 프리메이슨이다' 라고 말하기에는 무리함이 있지만, 적어도 프리메이슨 회원의 입에서 나온 사상이 톨스토이 사상과 관련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프리메이슨 회원 피예르의 입을 통해 톨스토이 사상의 지향점이 '형제애에 기반한 보편적인 정부 수립'을 향하고 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지 않을까.


 피예르는 프리메이슨의 세 가지 사명 중 도덕적 삶의 모범이 되라는 사명을 아직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일곱 가지 미덕 중 온후와 죽음에 대한 사랑, 이 두 가지가 자기 안에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대신 그는 다른 사명, 즉 자신이 인류의 교화를 실행하고 있으며, 또다른 미덕인 인류에 대한 사랑과 특히 관용을 가지고 있다고 자위했다.(p169) <전쟁과 평화 2> 中


 한마디로, 온 세계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정치 형태를 수립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은 시민적 연대를 파괴하는 일 없이 온 세계에 보급되어야 하고, 그때 모든 정치는 종전대로 계속 운영되고 우리 기사단의 위대한 목적, 즉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방해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목적이야말로 기독교의 가르침입니다.(p275) <전쟁과 평화 2> 中


 물론, 톨스토이에게 <전쟁과 평화>가 인생 최후의 작품도 아니고, 이후에도 <안나 카레니나>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썼기에 이러한 결론은 완성된 결론이 아니고, 하나의 가정에 불과할 것이겠지만,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들 안에서 이후 작가의 사상이 어떻게 움직여갔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작품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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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3-15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가 프리메이슨에 가입해서 활동한 증거는 없다고 알려졌지만, 그래도 톨스토이가 프리메이슨을 묘사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라고 생각해요. ^^

겨울호랑이 2020-03-15 19: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은 알고 있었지만, 고전 속에서 이들 조직의 이름을 접하니 친밀감(?)이 들었습니다. <전쟁과 평화>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그 안에서 당대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고전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키다리 아저씨께


 저는 지금 라틴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했지만 시험을 치를 때까지 더욱 열심히 할 거에요. 그리고 시험이 끝나도 라틴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을 거에요... 시험이 끝나면 제대로 된 편지를 쓰겠습니다. 저는 오늘밤 라틴어 공부와 긴박한 싸움을 벌여야 하거든요.  몹시 서두르고 있는 주디 애벗 올림(p64) <키다리 아저씨> 中



 아내의 서재에서 진 웹스터(Alice Jane Chandler Webster, 1876 ~ 1916)의 <키다리 아저씨 Daddy-Long-Legs>를 발견하고 오랫만에 펼쳐들었다. 어린 시절 세계문학전집에서 처음 접했던 <키다리 아저씨>는 <소공녀 A Little Princess>와 함께 인상깊었던 소설로 기억된다. 다만, 두 작품에 차이가 있다면 <키다리 아저씨>가 고아에서 부자의 후원을 받아 신분상승한 구조라면, <소공녀>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신분이 수직 하락한 주인공이 마지막에 다시 극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희망을 작품 속에서 발견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이제,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읽은 <키다리 아저씨>는 예전과는 달리 새로운 느낌을 전해주었다. 어빙 고프먼 (Erving Goffman, 1922 ~ 1982)의 <상호작용 의례 Interaction Ritual: Essays in Face-to-Face Behavior>은 사회구성원간 상호작용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그 중에서 '존대'에 대한 항목을 찾아보자.


 존대의례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존중의 감정은 일종의 호감과 소속감이다... 대체로  존대는 정중한 태도로 경의를 표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존대를 하는 사람은 실제 마음보다 더 상대를 높이 평가하는 양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가 유리하게 받아들일 여지를 주고 격식을 차려 자신이 상대를 낮춰보는 내심을 감추기도 한다.(p69)... 존대 행동은 존중하는 마음과 더불어 일종의 약속을 포함한다. 곧 이어질 활동에서 상대를 특정한 방식으로 대하겠다는 고백이나 서약을 압축한 표현이다.(p70) <상호작용의례> 中


 <키다리 아저씨>에서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쓴 초창기에는 후원을 받아 열심히 공부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려는 마음이 잘 나타난다. 비록 밝고 명랑한 주디지만, 낯선 아저씨의 존재는 고맙지만 어려운 상대였으리라. 그렇지만, 작품 후반으로 가면서 아저씨와의 관계는 점차 친밀하게 바뀌면서, 개인적인 고민까지 나누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은 고프먼이 말한 '친숙한 관계'로의 발전일 것이다.


 아저씨께 

 저한테 어려운 문제가 생겼어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아저씨의 충고가 필요해요. 아저씨를 찾아뵈면 안 될까요? 편지를 쓰는 것보다는 직접 말씀드리는 편이 훨썬 나을 것 같아요. 아저씨의 비서가 편지를 뜯어볼지도 모르니까요. 주디 올림(p254) <키다리 아저씨> 中


 행위자가 상대의 일상 영역에 예사롭게 드나들고 상대의 사생활을 침범할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사이라면 친숙한 관계라고 말한다. 행위자가 상대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면 어색한 관계 또는 정중한 관계라고 말한다. 두 개인 사이의 품행을 규정하는 규칙은 친숙한 관계인지 정중한 관계인지에 따라 대칭적일 수도 있고 비대칭적일 수도 있다... 신분이 대등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칭적이고 친밀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리라 예상할 수 있다.(p73) <상호작용의례> 中


 그리고, 친밀감의 표현은 작품에서 마지막 편지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스포일러라고 하면 스포일러겠지만, '고마운 후원자'에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이 마지막 편지는 작품 전체에서 가장 극(劇)적이자, 절정인 장편으로  다시 읽어도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사랑하는 저비, 당신이 너무 그리워요. 

 하지만 이것은 행복한 그리움이에요. 곧 함께 지내게 될 테니까요. 이제 우리는 진정으로 서로의 것이에요. 제가 드디어 누군가의 사람이 되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정말로 행복해요. 단 한 순간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에요. 언제까지나 당신의 주디(p268) <키다리 아저씨> 中


 오랫만에 다시 읽은 <키다리 아저씨>. 이제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같은 낭만적인 서사에서 주는 감동은 예전만 못했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미묘한 표현을 통해 어린 시절의 감동이 깨어남을 볼 때, 고전은 고전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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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0-14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프먼의 상호작용의례 관점에서 사회생활과 의사소통을 지켜보면 재미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걸 키다리 아저씨의 서신교환에도 적용해보시다니, 재미있습니다. 어릴 때 정말 좋아하던 책.

겨울호랑이 2019-10-14 10:32   좋아요 2 | URL
반유행열반인님 말씀처럼 고프먼은 구성원간 상호작용을 의미있게 분석했음을 느낍니다. 주로, 미국사회 중심의 분석이라 모든 부분이 우리 사회와 맞지는 않지만, 사람 사는 곳이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많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반유행열반인님 부족한 제 글을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2019-10-14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4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8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9 0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보내는 삶의 무의미함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 너머에는 절대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 선하고 접근하기 힘들며 전부를 소유하는 게 불가능한 보다 견고한 현실인 <페드르>와 '라 베르마가 말하는 방식'이 있었으니까.(p7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Le cote de Guermantes> 에서 주인공 '나'는 아버지가 준 오페라 입장권을 가지고 공연장에 간다. 오페라 극장에서 '나'는 <페드르 Phedre> 와 라 베르마의 연기를 통해 예술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이 부분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 게르망트 쪽1> 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오페라 공연 후 주인공은 예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그림] Phedre by Jean Racine(출처 : https://ticklemebrahms.wordpress.com/2013/06/01/phedre-by-jean-racine/)


 우리는 한 세계에서 느끼고 다른 세계에서는 생각하고 명명하며, 그리하여 이 두 세계 사이에 어떤 일치점을 설정할 수 있지만, 그 간격을 메울 수는 없다. 바로 이것이 내가 넘어서야 했던 거리감이자 균열이었다... 한 인간 또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과 아름다움의 관념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차이는, 그 인간이나 작품이 우리에게 느끼게 하는 것과 사랑이나 찬미의 관념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랑이나 찬미의 관념을 알아보지 못한다.(p8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中


 주인공이 느낀 거리감과 균열. 그것은 어디로부터 온 것이었을까.

 

 배역 자체에는 문학적 가치가 없었지만, 라 베르마는 이 배역에서도 페드르 역 못지않게 숭고했다. 나는 비극 배우에게서 작가의 작품이란 탁월한 연기 창조를 위해 그 자체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저 하나의 질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p84)... 하나의 운(韻)을 듣고, 다시 말해 앞의 운과 비슷하면서 다른 뭔가가 앞의 운에 의해 유발되어 새로운 관념의 변주를 끼워 넣을 때, 우리는 사상과 운율이라는 두 체계가 포개지는 걸 느끼는데, 바로 이것이 이미 조직화된 복잡성, 아름다움의 첫 요소가 아닐까?(p8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中 


 주인공 '나'는 라 베르마의 연기를 통해 오페라에서 배우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라신(Jean Baptiste Racine, 1639 ~ 1699)의 비극 <페드르>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비극이지만, 관객은 배우의 해석과 표현에 따라 감동(感動)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인공이 오페라를 통해 느꼈던 감정, 그것은 프세볼로트 에밀리예비치 메이예르홀트(Всеволод Эмильевич Мейерхольд, 1874 ~ 1940)의 <연극에 대해 О театре>에서 '연극 - 이것은 배우 예술이다.'에서 말한 '관객의 수동적 경험' 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관객은 오직 무대 곁에서 인지하고 수동적으로 경험할 뿐이다. 배우들과 관객 사이는 한쪽은 단지 행동하고 한쪽은 단지 받아들이는, 서로에게 낯선 두 개의 세계로 나누어 버리는 경계가 나타난 것이다.(p87) <연극에 대해> 中


 메이예르홀트가 말한 간극은 '배우 - 관객'의 다른 역할에서 온다. 때문에, 배우의 세계와 관객의 세계가 다르다는 주장을 한다. 반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나'는 연극에서 '배우 -> 관객'의 일방적 관계안에서 라 베르마의 연기에 큰 감동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세계'와 '배우의 세계'가 다르다는 생각 대신, '배우의 세계'와 '작가의 세계'가 다르다는 다른 간극을 생각해 낸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아가 '작품 = 질료(質料, hyle)'이며, '배우 = 형상(形相, eidos)'의 도식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찾는 것은 밑감(질료)의 원인이며, [이것은 꼴(형상)이다.] 이것 때문에 밑감은 어떤 (특정한) 것이 되고, 그리고 이것은 (그 사물의) 실체다. <형이상학 Metaphysica> (제7권, 1041b 8 ~ 10)(p351)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322)는 <형이상학>을 통해 세계는 위계질서로 모습을 드러내며,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것들은 비물질적인 실체들인 반면, 현실태로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은 형상안에 많은 질료가 복합되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W.D 로스) 다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로 돌아와 주인공에 따르면, '작품'은 '질료'가 되고, 배우는 '형상'이 된다.  연극(오페라)에서  작품은 배우를 통해 관객들에게 나타나기에 질료가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론과 주인공의 깨달음은 통하는 바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나'의 깨달음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미묘하게 다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저작에서 찾아야 한다. 사실, <페드르>와 같은 비극(悲劇)관련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시학 Peri poietikes>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을 철저하게 '모방(Mimesis)'의 관점에서 바라보는데, 해당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배우가 스토리를 실제로 연기하기 때문에, 첫째로 볼거리가 불가피하게 비극의 일부분이 될 것이고, 그다음에는 노래와 조사(措辭)가 필요하다. 이 둘이 모방 수단이기 때문이다. 조사란 바로 운율의 배열을 의미하며, 노래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비극은 행동의 모방이고 행동은 행동하는 인간에 의해 행해지는데, 행동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성격과 사상의 측면에서 특정한 성질을 지니기 마련이다.(6장 1449b 30 ~ 38)(p362)... 모든 비극은 여섯 가지 구성 요소를 갖기 마련이며, 이 여섯 요소에 의해 비극의 일반적인 성질도 결정되는데 플롯, 성격, 조사, 사상, 볼거리, 노래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둘은 모방 수단이고, 하나는 모방 양식이며, 셋은 모방 대상이다. 그 밖에 다른 것은 없다.(6장 1450a 8 ~ 11)(p363) <시학>  中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짜임새(플롯 plot)이며, 이는 비극이 인간 행동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반면, 주인공 '나'에게 중요한 요소는 형상으로 나타난 '배우'이며, 배우의 발성(發聲)과 음운(音韻)에서 감동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주인공 '나'에게 큰 감동을 준 라 베르마의 연기는 실체(substance)가 아니라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들의 견해는 이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겨진다. 짜임새가 결국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 조직된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라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감동의 근원은 작가일 것이다. 그리고, '모방'을 제목으로 한 <미메시스 Mimesis: The Representation of Reality in Western Literature >의 저자 에리히 아우어바흐 (Erich Auerbach, 1892 ~ 1957) 역시 <페드르>가 주는 감동의 근원을 작가 라신에게서 찾고 있다.

 

 프랑스 고전주의 문학이 대상으로 한 소수 계층의 성격을 통하여 특히 그 사회적 이상을 통하여, 우리는 비로소 바로크의 고양된 형식과 그것이 어떻게 예술 취미의 이성적인 개념과 결합되었던가를 이해하고 또는 적어도 그것을 공감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 비극의 인물을 치켜올려 보는 바로크 형식이 그 대표적 예가 되는 바, 비극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극단적인 분리를 설명할 수 있다.(p524)... 라신의 비극에 그려 있는 사랑의 정열은 관객을 압도한다. 결과가 비극적이라고 해도 비극에 그려 있는 거대하고 장엄한 운명을 찬양하고 모방하라고 관객을 유도한다. 이것은 특히 <페드르>의 경우에 그렇다. 페드르는 신의 은총을 거부했을 뿐 기독교적인 면을 가진 여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영향은 전혀 기독교적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p525) <미메시스> 中


 결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에서 주인공 '나'는 '분리된 세계'의 간극 측면에서는 메이예르홀트와 의견을 달리 하며, '감동의 근원' 측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나 아우어바흐의 입장과는 다르기에 독창적인 예술관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에서 주인공의 예술관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주인공이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는 두 세계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반의 '시간'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마들렌 과자 등의 어떤 기제(機制)를 통해서 현재와 구별되는 인식되지 않는 '잃어버린 시간'의 이야기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배우로 표현되는 '기억된 이미지'인지, 아니면, 나타나지 않은 숨겨진 '실체의 이미지'인지. 작품 전체를 통해 우리가 고민해야할 지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안의 <페드르> 공연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작품 전체의 축소판으로 생각된다.


 추억은, 내가 불완전하게만 소유하는 추억은 이따금 내게서 빠져나갔다. 추억은 그저 아름다운 여인의 이미지처럼 내 마음속에 몇 시간 떠돌다가, 그 이미지가 나타나기 전에 품었던 낭만적인 관념과 더불어 점차 하나의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연상 작용으로 발전했으며, 따라서 추억이 가장 잘 떠오르는 바로 이런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 추억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추억이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p98)... 추억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추억을 간직하는 행운을 가졌던 이런 짧은 시간 동안 추억은 정말로 매혹적이었으리라. 그러다 점점 이 관념이 추억을 보다 결정적인 형태로 고정하면서 추억은 보다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지만, 추억 자체는 보다 흐릿해졋다. 나는 더 이상 추억을 되찾을 수 없었다.(p9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中


 우리는 한 존재에 대한 감정에, 그 존재가 일깨우지만 그 존재와는 무관한, 이미 예전에 다른 여인에 대해 느꼈던 많은 감정들을 집어넣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런 특별한 감정을 뭔가 우리 마음속에서 보다 일반적인 진리에 이르게 하려고 애쓰며, 다시 말해 인류 전체에 공통된 보편적 감정에 포함시키려 한다. 이 보편적 감정과 더불어 개인과 개인이 우리에게 야기하는 아픔은 과거의 우리와 소통하게 하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p19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中


 그리고, 이러한 배경 위에서 주인공의 게르망트 부인에 대한 사랑, 독백 등의 의미가 작가의 관점에서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읽은 페이지가 이제는 제법 많아졌지만, 그 이상으로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짙은 어둠 속을 헤매는 마음을 뒤로 하고 일단 다음 권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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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07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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