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죽을 때에는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전의 마음의 준비가 무서운 것이다. 그는 이미 그 두려움, 괴로움, 가련함을 <지나서>, 이미 슬픔을 뛰어넘어, 자기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승복하고, 지금은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육체의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1918 ~ 2008)의 <수용소 군도 5>에서는 비참한 군도생활의 끝이 그려진다. 극한 상황에 몰린 이들의 탈주와 이들에 대한 엄한 처벌 그리고 반란. 죽음을 각오한 후에야 비로소 탈옥을 할 준비가 된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우리는 광산 갱도의 마지막 끝, 막장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밑바닥으로 내려가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공통된, 돌멩이가 많은 바닥에 단단하게 발을 디디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인격은 그 시기에 완성되어 갔으며, 그 이후에 내 인생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그때 익숙해진 시선과 습관에 충실했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그렇지만, <수용소 군도 5>에서 저자 솔제니친은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 뿐 아니라 이들을 감시하는 경비병들 역시 같은 밑바닥에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벗어날 희망을 갖지 못한 버림받은 땅에 놓여진 이들은 분명히 같은 처지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한다. 때문에, 이들은 반목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들이 각자의 사회적 기반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 계급이 '주인 계급'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면, 다른 계급은 '노예 계급'이라는 기반에 있어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


 우리를 가둔 자들도 우리처럼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특수 수용소의 규율은 완전한 격리를 시키는 것이다. 즉, 누군가에게 호소할 수도 없고, 아무도 여기서는 석방되지 않고, 아무도 여기서는 도망치지 못한다... 어찌하여 이렇게 순종하게 되었는가? 이런 수용소는 따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지배받는 측도, 지배하는 측도 교정 노동 수용소에서 와서, 전자는 몇십 년의 노예의 전통을 짊어지고, 후자는 몇십 년의 주인의 전통을 짋어지고 왔기 때문이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결국, 문제는 정치적 자유가 아니다. 그래, 바로 그렇다! 인류가 발전시키고 있는 것은 내용이 없는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또 기능이 충분히 발휘되는 정치 기구를 가진 사회를 만들려는 것도 아니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사회의 도덕적 기반에 있는 것이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이제 우리는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가 <도덕의 계보 Zur Genealogie der Moral>에서 말한 '노예 도덕'과 '주인 도덕'을 수용소 질서에 가져올 수 있겠다. 위력에 의해 강제로 수감된 이들이 갖는 '힘에의 열망'과 능동적인 힘에 의해 위협받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반동(Reaktion)에 의해 생겨난 르상티망(Ressentiment)의 모습은 니체의 도식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강자(경비병)=악인'으로 간주하지만, 강자인 경비병들에게 복종함으로서 겨우 살 수 있었던 노예(죄수)들이 여기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는 탈옥, 후에는 집단 항명 등을 통해 거부하는 모습은 글자그대로 '노예의 반란'이다. 그렇지만, 결국 진압된 항명과 구질서로의 회귀는 말 그대로 역사 속에서 '선과 악 Gut und Bose'의 반복의 전형으로 보여진다. 결국, 죄수들의 르상티망은 자신들을 선(善)으로 규정하고, 선이 악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절망하게 된다.


 인간이 정서나 감정 없이 사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것을 일단 악이라고 보게 되면, 그 속에 있는 선마저도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끝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작은 있는가? 우리의 인생에 광명이란 있을까? 아니면 없는 것일까? 억압받는 사람들은 <선으로 악을 근절할 수는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그렇다면, 세상에서 버려진 땅 수용소 군도에도 나타난 '주인 - 노예'계급의 갈등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주인에게는 스스로 '좋음'이라는 우월 의식을, 노예에게는 '아니다'라는 부정의 답을 끌어내는 이 힘을 솔제니친은 '체제'에서 발견한다. 체제로부터 '반동'으로 낙인 찍힌 이들은 말 그대로 노예(죄수)로 강등되니, 수용소에 있는 이들에게 체제는 말 그대로 하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수용소의 천명(天命)은 동양의 천명인 민본(民本)과는 분명히 다르다.


  만일 경비대의 <장교>가 죄수들에게 어떤 친절을 베풀려고 한다면, 그는 그 친절을 병사들 앞에서, 그리고 병사들을 통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죄수들에 대하여 적의를 품고 있는 가운데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또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를 밀고 했을 것이다. 이것이 체제라는 것이다!...  이 체제의 힘은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과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없고, 반드시 장교나 정치 지도원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데에 있다. 이 청년들의 힘은 그들의 무지에 있다. 수용소의 힘은 이 청년들에 있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수용소의 '체제'는 개인과 개인을 고립시키고, 새로운 정보를 차단하며, 명령을 주입함으로써 수용소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개인과 개인이, 개인과 집단이 의견을 나누며 교류를 하게 된다면, '여론'이 형성되고 꺾을 수 없는 힘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ebruary Revolution, 1917)으로 소련을 만든 이들 대부분이 시베리아 유형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 곳곳에서 제정 시대보다 열악한 수용소 생활에 대해 언급한다.   

 

 결국, 수용소 내에서 빚어진 '주인 계급'과 '노예 계급'의 갈등이 더 첨예해진 것은 '무지'를 주입받은 이들은 별다른 죄책감 없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 1975)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가지고 인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책무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런 면에서 히틀러의 극우와 스탈린의 극좌가 만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수용소 군도 5>를 통해 '선(善) - 악(惡)'의 문제를 잠시 생각하며, 이제 <수용소 군도 6>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자기의 양심을 남에게 맡긴 채 명령에 따라도 되는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20세기 최대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선악에 대해 스스로 가치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인쇄된 지령서나 상사의 구두 명령만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선서! 떨리는 음성으로 되풀이하는 이 엄숙한 맹세, 그 의미는 악당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이다 - 이런 선서를 통해 아주 간단히 그들은 악당의 편이 되어 국민들을 탄압하게 된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끄림반도 전쟁은 - 그것은 러시아에서 가장 행운의 전쟁이다 - 농노의 해방과 알렉산드로 황제의 여러 개혁을 가져오게 했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에는 가장 위대한 힘, 즉 <여론>이 탄생했다... 여론! 사회학자들이 여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나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은 정부와 당의 견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자유롭게 표명되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 견해로서만 구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질서>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배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도적질을 하여 남을 짓밟고 살아가며, 죄수들을 흩어지게 하는 것이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시무스 2021-02-15 22: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훌륭한 페이퍼로 니체와 아렌트를 다시 한번 복기합니다. 수용소군도가 엄청나군요! 글의 내용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요즘 고민해 보았던게 악의 평범성의 범위 내지 비난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답이 쉽지는 않더라구요!ㅎ 6권까지 힘차게 정진하시길 응원합니다!ㅎ

겨울호랑이 2021-02-15 23:01   좋아요 4 | URL
작가 솔제니친의 말처럼 삶의 밑바닥까지 다녀온 이들에 관한 이야기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처참한 삶의 기록을 넘어선 무엇인가가 분명 작품 안에 있음을 느낍니다. 때문에 <수용소 군도>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모든 철학은 죽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실증하는 대작이라 여겨집니다. 막시무스님 감사합니다! ^^:)

바람돌이 2021-02-16 0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수용소 군도의 사유의 깊이가 대단하네요. 저런 사유를 저렇게 엄청난 양의 페이지에 펼쳐놓는단 말입니까? 작가는 역시 위대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2-16 05:47   좋아요 2 | URL
분량도 많지만, 절박한 삶을 살아야 했던 서로 다른 이들의 인생은 하나하나가, 그리고 그들 전체가 철학의 실증으로 보입니다. 힘든 수용소 생활이었지만, 이로 인해 깊은 의미를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바람돌이님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scott 2021-02-16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예의 반란을 진압하며 권력에 위력과 정당성을 확립시킨 로마 제국 처럼 수용소 군도속 자리잡은 주인 계급과 노예계급 ,,,죽음의 끝자락에서도 글쓰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은 솔제니친 작가,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다시한번 더 역사를 상기 시켜보게 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은 겨울 동면을 안하쉼 ^ㅎ^

겨울호랑이 2021-02-16 10:35   좋아요 1 | URL
scott님 말씀처럼 지배계급에 대한 복종만이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대다수의 다른 이들처럼 소극적인 분노 표출에 그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글을 쓴 솔제니친은 이를 통해 진정한 초인으로 거듭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겨울잠을 자고 싶은데, 먹고 살다보니 봄이 가까이 와버렸네요.ㅋㅋ scott님께서 매일 들려주시는 음악 또한 봄이 왔음을 알려주니, 겨울잠 자기는 틀린 듯 합니다. scott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2-16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 졸업하고 읽었던 기억이 나요
고등학생이였던 남동생이 허락없이 친구에게 빌려주고 아직도 못돌려받은책예요 ㅠ
아저씨가 되서도 그 친구는 누나책 아직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왜 안돌려주는지...
책장이 누렇게 바랬을텐데...ㅋ

겨울호랑이 2021-02-16 12:38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옛말에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제 책을 가져간 이를 그렇게 생각되지는... ㅋ 저도 돈을 빌려줘서 못 받으면 그러려니 하는데, 책을 못 받으면 잊히질 않더군요. 오랜 억류 생활로 수용소 생활을 겪고 있을 <수용소 군도>가 하루 빨리 그레이스님 품 안으로 돌아오길 바라봅니다! ^^:)
 

 

 엄청난 대패배가 겹쳐진 결과, 두 수도(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와 볼가강에 이르는 광대한 농촌 지대와 몇백만이나 되는 농부들이 집단 농장 정권에서 떨어져 나가고, 모든 공화국들이 독립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농촌은 집단 농장에서 해방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농노제적 정령에서 해방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만일 침입자들이 이처럼 우둔하고 교만하지 않았더라면, 만일 독일 대제국한테 편리한 집단 농장 제도를 유지하지 않았더라면, 만일 러시아를 식민지화하겠다는 바보 같은 구상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민중의 애국심은 그것을 억누르기에 바빴던 자들을 위해서 사용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우리가 러시아 공산주의 25주년 기념일을 축하하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언젠가는 빨치산의 진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점령하의 농부들은 자기 위지로 빨치산이 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처음에는 빨치산에 빵이나 가축을 주지 않기 위해 무장했다.) 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1918 ~ 2008)의 <수용소 군도 5>를 읽던 중 한 구절에 시선이 머문다. 해당 구절에서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동부전선의 상황을 분석하면서 만일 독일의 침략이 영토를 병합하는 제국주의 침략이 아니었다면, 소련은 스스로 무너질 수 있었음을 지적한다. 만약, 소비에트 연방에 내재된 불만요소들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다면,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독일군의 비참한 패퇴는 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와 유전을 손에 넣지 않고는 전쟁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는 독일군의 분석도 현실적인 요청에 기반한 것이라 어느 편이 더 바람직한 전략이었을 것이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솔제니친의 생각처럼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이 적당히 물러났다고 해도, 미국이 가세한 서부전선에서 온전한 승기를 잡을수 있었을까. 


 역사에 '만약에' 라는 가정을 달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기에 독일군의 동부전선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접자. 다만, 이와 비슷한 사례가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도 있어 이를 옮겨본다. 역사는 언제나 반복되기 마련인 것일까.


 연 燕나라 신하가 왕을 해치고, 전횡을 앞세우던 시기 제 齊 선왕(宣王, BC 350 ~ BC 301)은 군대를 일으켜 신하를 죽이고, 연을 차지하였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는 <전국책 戰國策>, <사기열전 史記列傳> <맹자 孟子> 등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최근 읽고 있는 <자치통감 資治通鑑>에서 내용을 옮겨본다. 



 

제 齊나라 사람들이 그 북방에 있는 연 燕나라를 정벌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어떤 사람은 과인에게 연을 빼앗지 말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과인에게 이를 빼앗으라고 합니다. 만승 萬乘의 나라가 만승의 나라를 쳐서 50일에 이를 들어버렸으니 사람의 힘으로 여기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이어서 빼앗지 않으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이 있을 것이니, 이를 빼앗는 것이 어떻겠소?"... 맹자가 대답했다. "만승의 나라가 만승의 나라를 치는데, 단사호장 簞食壺漿으로 왕의 군대를 영접한다면, 어찌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물이나 불을 피하고자 합니다. 만약에 물은 더 깊어지고, 불은 더욱 뜨거워진다면 또한 돌아설 뿐입니다."_사마광, <자치통감 3> 中


 제 선왕은 맹자(孟子, BC 372 ~ BC 289)의 말을 듣지 않고 연나라를 합병하고 약탈하게 되었지만, 제나라가 커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다른 나라 연합군에 의해 결국 쫓겨 나게 된다. 제나라의 굴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아 그 후에는 오히려 연나라에게 국토의 거의 대부분을 잃는 수모를 당하면서, 전국시대 3강(强) - 진 秦, 초 楚, 제 齊 - 의 위상을 잃으면서 몰락하게 된다. 만약, 제나라의 정벌이 없었다면, 진나라의 통일 대신 삼국정립 三國鼎立이 이루어졌을까. 이 역시도 모를 일이겠다. 다만, 선왕의 연 정벌이 난왕(赧王) 원년(丁未, BC 314)에 이루어진 사건이었음을 생각한다면, 불과 40년도 안 된 시기에 뒤바뀌어진 제와 연의 운명은 참으로 얄궂다. 


 난왕 36년(壬午, BC 279), 연인 燕人들이 안평 安平(산동성 임치현의 동쪽)을 공격하였는데, 임치 臨淄의 시연 市掾으로 하여금 모두 쇠망으로 수레의 축을 싸도록 하였다. 성(安平城)이 무너지게 되자 사람들이 다투어 문으로 나가니 모두 수레의 축이 잘리고 수레가 부서져서 연에게 잡힌 바 되었지만 다만 전단의 종인들은 수레의 축을 쇠로 감싼 것 때문에 벗어나 드디어 즉묵 卽墨(산동성 즉묵현)으로 달아났다. 이때 제의 땅은 모두 연에 귀속하게 되었지만, 다만 거 莒, 즉묵만 아직 떨어지지 않았는데..._사마광, <자치통감 4> 中


 다시 시대를 바꾸어 보자.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의 동부전선이 전격적의 전형이었다면, 같은 추축국이었던 일본의 동남아시아 전선, 대중국 전선 또한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만약, 일본제국이 동남아 전선에서 제국주의의 해방군으로 만족하고, 돌아갔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이 역시 의미없는 가정일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극히 최근까지(그리고 지금도) 동남아시아 지역에 이어지고 있는 친일(親日)정서는 보다 더 깊어졌을 것이라는 사실.  


 2차 세계대전 중 약 3년8개월에 걸친 일본의 점령은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동남아시아 사회에 여러모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서구 식민지배를 일시에 종식하고, '대 大동아시아 공영권',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 같은 인종주의적 수사와 함께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백인불패 白人不敗 신화를 불식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이란 특수한 환경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일본군정에 동원되고, 전례 없는 혹독한 체험을 하는 동안 전반적으로 반식민주의 정서가 크게 고양되었다. 그결과 전후 강력한 재식민지화를 계획하던 서구 제국주의 세력은 예상치 못한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_소병국, <동남아시아사>, p441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는 <쇼와 육군>에서, 마리우스 B. 잰슨 (Marius B. Jansen, 1922 ~ 2000)은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들 저자들은 일본제국군의 문제를 실용주의적인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시대 정신의 상실에서 찾는다. 만약 일본이 직접적인 침략이 아닌 문화제국주의를 통한 간접지배를 펼쳤다면, 우리는 일본에 지금보다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더 종속된 관계로 묶여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른바 폭력을 반대한다는 일본 지식인들이 갑신정변(甲申政變, 1884) 이후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면 역사의 흐름이 꼭 그렇게 흘렀으리라는 보장은 없었겠지만....

 

 만주국이 건국되면서 쇼와 육군의 군인들은 군사력으로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고, 그 착각을 '이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이 메이지 시기의 군인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심리를 낳았다. 결국 군사는 국가의 위신과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국을 식민지화하는 유력한 무기라고 믿었던 셈이다._ 호사카 마사야스, <쇼와 육군>, p136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무르익어 가던 시절 활동가들이 얻은 괄목할 만한 지적, 정치적 경험은 다름 아닌 일본 사회가 서양의 위협에 제대로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자각한 점이라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p535)... 진정한 진보로 이어질 이성적인 계획에 눈을 뜨면서 폭력적인 수단을 버렸던 메이지 유신의 선각자들과, 입으로는 그들의 후계자를 자처하면서 실제로는 이성에 등을 돌리고 근거 없고 시대착오적인 미신의 불합리로 자신의 조국을 내모는 허망한 시도를 하면서 폭력에 호소한 후세의 아류들의 차이점을 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_ 마리우스 B. 잰슨,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 p575


 마지막으로, 정치 사상으로 가지는 공자(孔子, BC 551 ~ BC 479)의 인(仁), 맹자의  의(義)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도덕사상으로 진부하게 다가오는 사상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정명(正名)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 누가 그것을 쉽게 비판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큰 무력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점에서 <중용 中庸>에서 말한 강함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수용소 군도> 에서 묘사된 지옥도(地獄道)와 같은 삶 속에서 나온 작가의 작은 세상 이야기를 통해 여러 생각을 해본다. 이제 다시 <수용소 군도>안으로 들어가야겠다...


 10장 章. 故君子和而不流, 强哉矯! 中立而不倚, 强哉矯! 國有道, 不變塞焉, 强哉矯! 國無道, 至死不變, 强哉矯! 그러므로 군자는 화합하면서도 흐르지 않으니, 아~ 그러한 강 强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로다! 가운데 우뚝 서서 치우침이 없으니, 아~ 그러한 강 强함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로다! 나라에 도가 있어도 궁색한 시절에 품었던 지조를 변하지 아니하니, 아! 그러한 강 强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로다! 나라에 도가 없어도 평소에 지녔던 절개를 죽음이 이를지언정 변치 아니 하니, 아~ 그러한 강 强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로다! _도올 김용옥, <중용 한글 역주>, p326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5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1-02-09 16: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근에 읽은 이와나미 신서 <독소전쟁>
을 보니, 히틀러의 대소전쟁은 이미 시작부터
실패했다고 하더군요.

뚜렷한 전쟁의 목표가 없었다. 폰 클루게와
구데리안의 중부집단군이 개전과 동시에 그
야말로 동부전선을 휩쓸면서 적도 모스크바
를 함락시켰어야 했는데, 쓸데 없이 키예프
공략전을 시도하면서 소련을 초반에 압도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먹었지요.

다음해인 1942년에 모스크바 공략 대신 선택
한 우크라이나의 곡창과 카프카즈의 석유를
노리고 출발한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패배는
결국 독일 전쟁기계 베어마흐트의 몰락의 단초
를 제공했죠.

사실 독일 베어마흐트를 저지한 건 서유럽의
영미군이 주도한 제2전선이 아니라 스탈린이
이끄는 붉은군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솔제니친이 지적한 대로,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맞이한 우크라이나 민중들의 불만을 잘 활용했다면
소련이 붕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가정해 봅니다.

겨울호랑이 2021-02-09 21:36   좋아요 4 | URL
레삭매냐님의 말씀처럼 독일군이 전격적으로 모스크바로 진군을 했다면, 제2의 나폴레옹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서부전선에서 적을 대서양 너머로 확실히 격퇴한 후에 동부전선으로 전선을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러기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라는 변수가 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독일군은 제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동부전선과 서부전선 모두에서 적을 맞이하는 상황에 놓였고, 더 안 좋았던 것은 양쪽 전선이 독일본토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긴 병참선이 요구되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전쟁 초기 지나치게 큰 승리를 거둔 것이 독일의 발목을 잡았다는 아이러니도 있습니다만....대충 몇 가지만 추려도 역사 속에서 고려해야할 변수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처럼 많은 변수가 맞물려 만들어낸 역사의 흐름이 과연 몇 개의 가정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레삭매냐님, 감사합니다.^^:)

scott 2021-02-09 20: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말에 동감 우크라이나를 지켰어야 했어요 소련에 곡식 저장고, 흑해 요새를 지켰어야 했는데 ,,,문제는 교묘했던 소련이 우크라이나 곳곳에 비밀 경찰들을 심어놔서 ,,,,

겨울호랑이 2021-02-09 21:39   좋아요 3 | URL
1941년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인들은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여기고 실제로 환영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이러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타지 못했던 것은 독일 패착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만, 생각보다 동부전선이 빠르게 확대되었고, 동절기에 대한 독일군의 대비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생각해 본다면, 현지 민심까지 고려하지 못했던 독일군의 행태도 서툴렀다고 비판만 하기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참 어렵네요^^:)

미미 2021-02-09 17: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사 귀엽네요! (할 수 있는 얘기가 이것뿐ㅠ) 찜해놓고 몇번읽어봐야 이해될듯! 도올님 글은 기본지식이 없인 힘들던데 겨울호랑이님은 프루스트는 물론 어려운 책도 척척~♡♡항상 놀랍습니다.(계속 따라 읽다보면 저도 언젠가?^^;;) 위 두분도 대단하심👍👍🧐!!

겨울호랑이 2021-02-09 21:41   좋아요 4 | URL
아닙니다. 제게 어려운 책을 미미님께서는 쉽게 읽으시는 것을 보면 어려운 책은 배경지식의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인 것 같습니다. 또, 제가 읽은 책을 제가 온전하게 이해한 것도 아닌 것을 보면 우리 모두가 같이 배워가는 이웃이라는 생각입니다. 미미님 감사합니다.^^:)

파이버 2021-02-09 20: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로필 사진 보석십자수인가요? 너무 귀엽습니다!♡ 다가오는 설 명절 즐겁게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1-02-09 21:43   좋아요 4 | URL
아, 프로필 사진은 연의와 함께 만든 톡톡블럭 - 헬로키티편 - 입니다. 요즘 연의가 레고 프렌즈와 톡톡블럭에 빠져 있어서 부품을 찾아 세팅하는 업무 중입니다. 파이버님께서도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choimos 2021-02-17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틀러의 소비예트 침공은 역사적 필연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유태인 박멸을 외쳤던 히틀러와 나찌스트들이 유태인의 최대 거주지역인 우크라이나을 침공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독일 폴란드의 유태인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역의 아쉬케나지 포그롬 유태인이 박해를 피해서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생겨난 것이었습니다.유태인 최대거주 지역을 침공해서 유태인을 박멸한다는 것은 히틀러와 나찌스트에겐 필연이었습니다. 솔줴니쯴의 < 200년을 함꼐>이라는 유태인 문제를 다룬 두권의 큰 책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솔제니쯴은 상당한 극우적 입장을 가진 슬라브 민족주의자란 점을 안다면 그의 주장에서 편견과 극단적인 가정을 가려낼 수 있을 것입니다. https://www.ozon.ru/context/detail/id/223375496/

겨울호랑이 2021-02-17 18:40   좋아요 0 | URL
우크라이나에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군요. choimos님 말씀처럼 히틀러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략적 목적 이외에 정치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면, 더욱 그들의 승리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choimos님 감사합니다.
 

 

수용소 군도는 자기 혼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흐름에 맞추어 발전했다. 국내에 실업자가 많았을 때는, 구태여 죄수들의 노동력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체포 목적은 노동력 동원이 아니라, 방해자를 제거하는 데 있었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1918 ~ 2008)의 <수용소 군도 3>에서는 수용소의 성격 그리고 목적들이 표현된다.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적군(독일군)의 포로 수용소로서 기능한 수용소 군도가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체제 반대 세력의 숙청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고발한다. 이와 함께, 비록 수용소의 성격은 바뀌었지만, 죄수들의 강제 노동이라는 기능은 바뀌지 않았음도 독자들은 확인한다.


 전쟁 중인 상태와 전쟁 후의 상태에서 부족한 것은 생산이다. 전시에는 군수물자가, 전후에는 생활용품과 사회기반시설(SOC)이 부족하다는 차이가 있지만, 국가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안정되고 충분한 공급이 필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 지배계급에게 수용소 군도의 수감은 반체제 인사 제거와 노동력 공급이라는 두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반면, 이러한 사실은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에게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강요된 노동 속에 그들은 열렬한 의식적 창조의 최고 형태 중 하나를 찾아냈다. 스딸린에게는 '어딘가' 죄수들에 의한 대규모의 건설이 필요하고, 확실하게 다량의 노동력과 인명(꿀라끄 박멸 결과 발생한 잉여 인간)을 삼켜야하고, 살인용 독가스와 효과는 같으면서도 비용은 더 싸야 했다... 수용소 내의 경쟁과 돌격 작업 운동은 <보상의 모든 체계>와 결부되어, 그 보상이 돌격 작업 운동을 '촉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경쟁의 중요 기반은 이윤 원리에 있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모든 것은 생산 지수에 의존하게 된다. 식사도! 주거도! 의복도! 속옷과 목욕하는 날도! 기한 전의 석방도! 휴식도! 면회도! 예를 들면 돌격 작업반원의 배지를 주는 것은 -순수한 사회주의적 형태의 권장이라 하겠다.... 균형 잡힌 질서가 확립되고, 이윽고 죄수들 자신도 그것을 유일하게 적합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리고 우리도 이 책에서 그런 식으로 기술할 생각이다. - '재교육' 보다는 오히려 '노동'에 중점을 둔 질서를.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국가는 이렇게까지 잔인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이렇게 위선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죄수들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 - 뚜흐따(속임수)와 암모날(폭약)이 없었더라면 운하도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다 - 라고. 이 모든 것이 군도의 기반인 것이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수용소 군도>에서는 강제 수감된 이들의 처절한 생활과 한계 상황에 몰린 이들이 무너져 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극한 상황 속에서 정신은 붕괴되고, 자신의 연약한 몸 하나에 의지해 살아가는 죄수들의 모습은 독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들 죄수들을 동정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대신, 같은 아픔을 공감(共感)한다. 수용소를 국가 체제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어떨까. 다소 지나친 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수용소에 수감된 죄수들도 수용소를 원해서 간 것은 아니었고, 우리가 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도 우리의 희망과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한 걸음 나가서 이들 사회 내의 질서를 본다면 이러한 생각은 더 굳어진다.


 수용소에서 이루어지는 육체적 가혹행위는 우리가 국가(또는 사회)에 반대되는 행위를 했을 때 행해지는 다른 징벌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분명 같은 의도로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닐까. 또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사회, 가난과 배고픔으로 약자들을 억압하는 질서, 약자들을 분열시켜 지배층에 대항하지 못하게 하는 정치, 자본을 가진 이들의 예외 등은 수용소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지금 우리 현재의 모습과 수용소의 모습이 이처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때, 과연 누가 누구를 동정할 수 있을까?


 수용소에서는 약자를 잘 때린다. 작업 할당계들이나 반장들뿐만 아니라 일부 죄수들도 자기가 아직 약하지 않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납득시키기 위하여 약자를 괴롭힌다. 인간이 타인한테 잔혹한 짓을 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힘을 믿을 수 없는 동물이라면 하는 수 없지 않겠는가?... '기아' 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백년 전에 발견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기아'에 대해, 굶주린 자는 배부른 놈에 대해 반드시 반란을 일으킨다는 '진보적 이론' 전체가 성립된다.) 인간 자신이 의식적으로 죽으려고 결단하지 않는 한, 기아는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수용소 군도는 과거에 얻은 습성 중에서 단 한 가지만은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무뢰한과 파렴치범들을 고무시키는 일이었다. 파렴치범에게는 수용소에서 전보다 더 높은 '지도적인 지위'가 부여되었다... (스딸린의) 은사를 받은 것은 형사범이나 경범죄 죄수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수용소를 떠나고 있기 때문에 생산의 배가에 호응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범들이었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1백만 루블로 건강은 살 수 없겠지만, 자유는 살 수 있어, 권력도 살 수 있어. 인간도 살 수 있어. 그런 백만장자는 사회에 얼마든지 있어.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수용소 군도 3>을 통해 1940년대 소련의 강제 수용소를 읽지만, 동시에 202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공감하는 것. 수용소의 비극은 과거지만, 우리의 비극은 진행중이라는 점이 더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어쩌면, <수용소 군도>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 ~ 1950)의 <동물농장 Animal Farm>보다 더 직접적인 풍자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차이가 있다면, <동물 농장>이 동물 농장을 통해 소련을 풍자했다면, <수용소 군도>는 소련을 통해 우리 사회를 풍자한 것이 아닐까를 생각해 보며, <수용소 군도 3>을 덮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1-29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 사회구조 자체도 나름의 착취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권력>은 어떤 이데올로기에서든 약자를 핍박하고 착취하는것 같아요. 3권(저에겐 고비였어요;) 완독 수고하셨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1-29 12:31   좋아요 2 | URL
<수용소 군도 3>에서 그려지는 수용소 내의 질서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러한 모습이 공산주의 체제 내의 수용소였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갖는다기 보다는, 미미님 말씀처럼 체제와 관계없는 사회의 근본적인 질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생각이 발전하면 인간 사회 발전에 대한 회의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네요... 제겐 작가가 써내려간 수용소의 의의가 전체 내용의 중간 부분에 배치되어 적절했다고 보여집니다. 아직 갈 길이 머네요. 미미님 감사합니다.^^:)

scott 2021-01-29 1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백만 루블로 건강은 살 수 없겠지만, 자유는 살 수 있어, 권력도 살 수 있어. 인간도 살 수 있어. 그런 백만장자는 사회에 얼마든지 있어]밑줄 쫘악~👍👍👍

겨울호랑이 2021-01-29 12:34   좋아요 2 | URL
해당 구절과 관련해서, 저는 페르낭 브로델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말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구분이 떠올랐습니다.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의 체제와 관계없이 부족한 물건을 상대에게 주고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얻는 교환 경제의 모습은 인류가 오랜 사회 생활을 통해 이뤄온 삶의 모습이기에, 그 사이에서 생겨난 힘의 불균형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scott님 감사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왜 자기가 희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가에 대해서 항상 그럴듯한 여러 가지 이유를 가지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을 대량 체포하는 것을 볼 때는 역시 불합리하게 느껴지지만 애매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저 사람>은 유죄일지도?' 그러나 당신은, 당신만은 틀림없이 무죄일 것이다._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1> 中


 소련의 강제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Isayevich Solzhenitsyn, 1918 ~ 2008)의 <수용소 군도>. 강제 수용소를 체험한 저자가 자신의 체험을 저술했다는 점에서 빅터 플랭클(Viktor Emil Frankl, 1905 ~ 1997)의 <죽음의 수용소>와 공통점을 갖지만, 후자가 자신과 자신 주변의 인물 심리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면, <수용소 군도>는 1920 ~1930년대 소련의 사회상을 전반적으로 서술했다는 차이가 있다. 특히 1권에서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에 불어닥친 거대한 변화 속에서 사회와 개인이 무너지는가를 잘 그려낸다.


 혁명 후 첫 10년 동안만 해도 사람들은 아직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도덕이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단지 좁은 계급적 의미만을 지닌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정보원 노릇을 단호하게 거부했는데, 그 때문에 그들은 모조리 가차 없는 형벌을 받아야 했다._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1> 中


 <수용소 군도 1>에서 체포와 감금을 통해 사회로부터 고립된 개인은 서서히 무너지고, 엄한 법률에 의한 강제는 그렇지 않은 개인을 제거하거나, 교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무서운 처벌 앞에서 개인들은 자신 앞에 닥치지 않은 어려움에 대해 외면하면서 분열되고, 고립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분열과 공포. 우리는 <수용소 군도> 안에서 히틀러(Adolf Hitler, 1889 ~ 1945부터 스탈린(Joseph Vissarionovich Stalin, 1878 ~ 1953)에 이르는 일련의 정치가들이 소수의 세력으로 어떻게 다수를 통제하는가를 배운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양상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진다는 사실은 이 책을 고전으로, 우리의 현실이 '반복되는 역사'법칙 아래 있음도 함께 일깨운다.


 어디서나 사용하는 공통적인 방법이 있었다. 감방에 짠 음식만 들여보내고 물을 안 주는 방법이다. 금을 내놓는 자는 물을 마실 수 있다! 10루블 금화 한 닢에 맹물 한 잔! 사람들은 금속 때문에 멸망해 간다..._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1> 中


 7년 전만 해도 도시 사람들은 농촌이 무참하게 두들겨 맞는 꼴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었다. 이번에는 농촌이 도시가 당하는 그런 꼴을 그런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엔 농촌은 너무나 세상 소식에 어두웠다. 뿐만 아니라 농촌 자신도 지금 마지막 숨통이 눌리고 있는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_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1> 中


 도시와 농촌, 지식인과 노동자들로 분열된 소련 사회상은 우리에게 먼 남의 일만은 아니다. 1930년대 이루어진 고려인의 강제 이주 사건이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임을 생각한다면, 소련의 강제 수용소 문제는 우리 현대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미덕(美德)으로 받아들여지고, 5G, IoT, 드론으로 이어지는 <1984>의 빅브러더와 <멋진 신세계>의 계급화된 사회로 빠르게 변화되는 사회 변화 속에서 <수용소 군도>의 '고립'이라는 주제는 또한 우리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제에 대해 어떤 답(答)을 찾아야 할까. 


극동 지방의 한국인들은 까자흐스딴으로 추방당했다. 이것은 <민족적인 혈통에 따른 >체포의 첫 케이스였다._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1> 中

 이에 대해서는, <자치통감 資治通鑑>의 저자 사마광(司馬光, 1019 ~ 1086)의 말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진(秦)나라의 강력한 동진(東進)에 대해 별다른 반격을 하지 못하고 병합된 6국에 대한 사마광의 평(評)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눈 앞의 작은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었다면, 진의 통일도, 스탈린의 독재도 없었던 일이 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며, <수용소 군도 2>로 넘어간다...


 신(臣)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종횡(縱橫)의 설은 비록 반복되었고, 백 가지의 실마리가 있엇지만 그러나 대체적인 요점은 함종(合從)이란 것은 6국 - 제(齊), 초(楚),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에게 이익입니다... 가령 6국으로 하여금 능히 신의로써 서로 친하게 할 수 있었다면 진이 비록 강포하다고 하여도 어찌 그들을 망하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삼진(三晉)이 제와 초를 공격한 것은 스스로 그 뿌리를 자르는 것이었고, 제와 초가 삼진을 공격하는 것은 스스로 그 가려주는 울타리를 없애버리는 것이었습니다._사마광, <자치통감 7>中


PS. 겁박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이들의 종말에 대해서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화상을 입지 않고 물이 뜨겁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 아닐까...


 조고가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법을 엄격하게 하여 형벌을 혹족하게 시행하고, 죄지은 사람은 서로 연화하게 하여 대신과 종실 사람들을 주멸하고, 그런 다음에 유민을 거두어 임용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고 천한 사람들을 귀하게 하십시오. 돌아가신 황제의 옛 신하들을 모두 제거하시고 폐하꼐서 친하다고 여기고 믿는 사람들로 바꾸어 임용하는데, 이렇게 하면 음덕이 폐하에게 돌아올 것이며, 해로움이 제거되고 간사한 모의가 막히며, 여러 신하들이 윤택함을 입지 않는 사람이 없고 두터운 덕을 입을 것이니 폐하는 베개를 높이 하고 뜻 먹은 대로 마음대로 하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계책 가운데 이보다 뛰어넘는 것은 없습니다." 2세 황제가 그렇다고 여겼다._사마광, <자치통감 7>中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1-11 17: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퍼갑니다♡

겨울호랑이 2021-01-11 17:51   좋아요 3 | URL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미님. ^^:)

막시무스 2021-01-11 19: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께서도 수용소군도 시작하신건가요? 이 엄청난 대작을 보시는 알라디너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화이팅입니다! 추운날 즐독, 따독하십시요!ㅎ

겨울호랑이 2021-01-11 22:31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막시무스님, 오늘은 제법 날이 풀리는 것 같아요. 건강하고 여유있는 월요일 밤 되세요!^^:)

scott 2021-01-11 19: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드디어 솔제니친에 대작 펼쳐드셨군요 응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1-11 22:3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일단 펼쳐봤습니다. 도중에 새지 말아야겠지요...ㅋ

붕붕툐툐 2021-01-12 0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겨울호랑이님 왠지 겨울에 독서 더 많이 하실듯~ 어흥~ㅋㅋㅋ 수용소군도 어렸을 때 읽다 말았던 거 같은데...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뿜뿜!!^^

겨울호랑이 2021-01-12 08:0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붕붕툐툐님, 이름 따라 겨울에 독서를 더 많이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네요 ㅜㅜ 수용소군도는 인간적인 면이 잘 표현된 작품이라 언제든 읽어도 좋을 책 같아요. 붕붕툐툐님께서도 다시 읽으시면 새로운 감동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붕붕툐툐 2021-01-12 09:50   좋아요 1 | URL
ㅋㅋㅋ저도 겨울에 이불 속에서 책 안 읽고 뭐하는지 늘 겨울엔 독서량이 바닥을 치더라구요;;;; 새로운 감동 기대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1-12 11:53   좋아요 1 | URL
^^:) 추운 날 실내에 있으면 독서를 해야하는데, 추위에 독서에 대한 열의도 같이 얼어버리는 것 같아요. 붕붕툐툐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이 모든 인간 행위의 근원이라는 베르길리우스의 말은 개념적으로나 위치상으로 이 시의 중심을 차지한다. 일곱 가지 사형 죄(흔히 말하는 7대 죄악)는 사랑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잘못 이끌린 사랑, 너무 약하거나 너무 강한 사랑 등 잘못된 사랑이다. 사랑이 잘못 이끌릴 수 있는 경우는 세 가지이며, 너무 약한 경우가 한 가지, 너무 강한 경우가 세 가지다. 우리가 보게 되듯, 일곱 테라스가 있는 연옥의 지리학은 이런 분석을 보여준다. 이런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된 질문이 인간 행위에 대해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관한 철학적 근본 문제를 제기한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207


 프루 쇼(Prue Shaw, 1949 ~ )는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Reading Dante>에서 <신곡 神曲, La Divina Commedia>의 여정을 일곱 주제로 정리한다. 우정, 권력, 삶, 사랑, 시간, 수, 낱말. 그 중에서 주제의 중심은 사랑이다.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코린토 1서 13: 13> 中


 <신곡>의 중심에 사랑을 배치한 프루 쇼의 분석은 다분히 사도 바오로(Pahlus, AD 5 ~ AD 67 ?) 서간 중 유명한 사랑의 찬가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관점이 단테 알리기에리(Durante degli Alighieri, 1265 ~ 1321)의 의도와 일치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곡>의 선(善)과 악(惡)을 가르는 기준의 많은 부분이 사랑과 관련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프루 쇼의 해설은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연옥이 지옥과 다른 것은 바로 시간 때문이다. 연옥은 파도기의 영역, 변화의 영역, 진보의 영역,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나아가는 영역이다.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절박한 영역이다. 연옥의 영혼들은 단테처럼 여행 중이지만, 그 여행이 완견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걸리고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여행의 결과는 보장되어 있다. 회개하는 영혼들에게 보장된 목표는 천국이다. 지상에서의 삶을 여행으로, 또는 천국의 집을 향한 순례로 여길 수 있는 것처럼, 연옥의 산을 올라가는 것은 일종의 순례와 같다.(p270)... 우골리노의 정신 상태는 정확히 신을 부정, 거부하고 있으며, 이것이 지옥행의 본질이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285

 

<신곡>에 나오는 지옥, 연옥, 천국은 서로 다른 곳이면서도 공통점을 가지며, 통하는 공간들이다. 지옥과 천국은 유한한 시간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상극이면서도 공통점이 있으며, 연옥 영혼들은 천국으로 갈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통하는 바가 있다. 다만, 이러한 공통점과 통하는 바는 최후의 중세인 단테의 상식으로 설명되기에 우리가 이를 온전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프루 쇼는 <신곡>내에 단테의 경험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로 인해 우리는 보다 인간 단테와 그의 사상에 대해 깊이 있게 알 필요가 있다.  단테의 사상, 특히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Bonifacius PP. VIII, 1235 ~ 1303)와의 대립 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단테의 다른 작품 <제정론 De Manachia>도 먼저 읽을 필요가 있는데, 이는 별도의 리뷰로 넘기도록 하자.


 정치적 성숙기의 단테는 인류에게 적합한 정부는 인간의 세속 생활과 영적 생활을 각각 책임지는 황제와 교황 두 지도자를 두어야 한다고 믿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되지 않는다. 각각의 지도자는 신에게서 직접 권한을 받는다. 바로 이것이 순례자 단테가 여행에서 배운 역사의 교훈이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259

 실제 있었던 사건과 이 시가 말하는 사건의 관계는 모호하다. 예술은 바로 그 이유로 인해 훨씬 더 강력하다. 거듭해서 <신곡>을 읽을수록, 우리는 단테의 시가 지닌 힘은 강력한 자전적 요소 - 시대, 장소, 상황 속에 굳게 뿌리박은 실제 경험 - 에서 나오는 반면, 그 시인이 살아낸 경험이 상상력과 언어 구사력에 의해 바뀌고 변형된 까닭에, 그 어떤 것도 사실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하기가 종종 불가능해지는 그런 역설에 직면한다. 그 문제는 <새로운 삶>에서보다 <신곡>에서 더 복잡해지는데, 그 이유는 정확히 두 가지다. <신곡>의 이야기 틀은 나름의 독립적인 논리와 운동량을 가지며 개인적인 것보다 더 크고 포괄적인 목표에 맞춰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 틀은 알레고리의 형태를 띤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155

 

이러한 직접적인 단테의 정치사상외에도 <신곡>안에 담긴 중세의 우주관(宇宙觀)과 '시간(時間)'을 중심으로 읽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 ~ 430)가 <고백록 Confessiones>에서 말한 시간의 의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로 표현되는 중세 천제관을 작품 내에서 발견하며 현대 사상과 비교하며 읽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조금 더 욕심내어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중세에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장미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을 듯 하고...  프루 쇼의 7개 주제 중 '수'와 '낱말' 대한 중세의 알레고리는 움베르트 에코의 <중세의 미학>과  <중세의 사랑과 미술>를 통해 다시 정리하면, <신곡>이라는 거대한 성(城) 외곽의 해자(垓字)는 어느 정도 메워지지 않았을까.  이런 준비 후에 <신곡>을 읽는다면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신곡>을 다시 꺼내든다...


 지옥과 천국은 영원하며, 시간의 바깥에 있다. 즉 시간을 초월한다. 지옥과 천국에서 시간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있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16


 시간의 성격은 마침내 <천국>에서 설명된다. 그 설명은 철학적이면서도 시적이다. 시간은 우주의 창조와 함께 존재하게 되었는데, 그런 시간 개념이 유일하게 의미를 갖는 창조된 세계에서 단테가 막 나오고 있다. 일시성은 인간 경험이 펼쳐지는 창조된 세계의 한 차원이다... 원동천이란, 열 번째 하늘, 즉 움직이는 천구들 중 가장 밖에 있는 하늘을 말한다. 이 하늘은 가장 빨리 움직이며 그 안의 나머지 모든 천구에 움직임을 부여한다. 다시 말해 우리 우주의 가장 바깥을 에워싼 껍질이다. 그 너머에 신과 천국이 있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288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6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민우 2021-01-04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프루 쇼의 이 좋은 책이 벌써 품절이라니 ㅠ 읽어보려 했더니 안타깝군요.

*사랑을 인간 실존의 중심으로 보는 관점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과 유사하네요. ˝나의 중심은 나의 사랑입니다˝ (고백록 13.9.10, 성염)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겨울호랑이 2021-01-04 20:46   좋아요 0 | URL
김민우님 말씀처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는 2019년에 나와서 출판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아쉽게 되버렸습니다. 찾는 분들이 많은 것을 감안하여 전자책으로라도 나왔으면 좋겠네요.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에서 프루 쇼는 단테가 기독교 이전의 가톨릭 교도 임을 강조하고 있더군요. 이는 중세 당시 이교도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었기에 세례받지 못한 수많은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교황 보니파키우스8세와는 대척점에 서면서도 가톨릭 신앙 안에 머무는 단테의 입장을 표현한다고 여겨집니다. 세속화된 교황권 이전의 어부 베드로의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신곡>에 녹아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김민우님 말씀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 또한 분명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1-01-04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단테의 신곡까지...
진심 넘넘 부럽습니다. 제겐 평생 넘사벽이라고 생각되어 저승에서나 읽자고 한 책이라서요. 넘 부럽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1-04 21:01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제가 <신곡>을 쓴 것도 아니고, 읽기만 하는 것인걸요. <신곡>을 온전히 제 것으로 소화하는 것은 저 역시 먼 훗날로 기약해야 할 듯합니다...ㅜㅜ

2021-01-07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7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1-07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테의 신곡, 어디선가 신부님의 버전의
신곡이 좋다해서 상권 구해다가 읽기
시작했다가 그만 나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신곡은 꼭 읽어야 하는 책인데...
존경합니다 겨호님.

겨울호랑이 2021-01-07 14:28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누구나 읽을 수는 있잖아요,..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과는 다른. <미국사 산책>에 대한 압박을 이렇게 복수하시는군요..ㅋㅋ 분량은 17권에 달하는 <미국사 산책>보다 덜하다는 것을 위로로 삼아야 할까요.. 천천히 다른 책과 함께 읽는 중입니다. just reading...^^:)

scott 2021-02-10 15: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에 이 페이퍼 아껴가며 읽고 있었는데 ㅋㅋ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설연휴 가족 모두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  ★彡
☆彡。∴。。 ☆彡 ・
 ・゚*。・ 。*・゚
( )_( ) ・ 。・*・゚。  ・
(.•。 .•.)
o_(“)(“)
연의 선물 ^.~

겨울호랑이 2021-02-10 19:24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아껴가며 읽기에는 빈약한 내용이라 쑥스럽네요... scott님께서도 행복한 설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