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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이제야 너는 연옥에 다다랐으니

저어기 빙 둘러막은 벼랑을 보라.

저기 벌어진 듯한 들머리를 보라...


73 우리는 가까이 가서 한군데에 다다르니

먼저 보던 자리처럼 벽이

쩍 벌어진 듯 틈이 있는데, 거기


76 문 하나가 있어 그 아래엔 그리로

통하는 서로 색이 다른 세 층계와 아직껏 

한마디 말도 없는 문지기를 보았노라.


94 그리로 우리가 갔는데, 그 첫 층계의 

한 대리석은 어찌나 닦여져서 맑던지

그 안에 내가 있는 양 나를 바라보았노라.


97 어두운 자줏빛보다 진하게 물들여진 둘째 층은

껄끄럽고 구워진 돌로 되었는데 

가로 세로 금이 간 것이고, 


100 위에 얹힌 셋째 층은 활활 타는

반암 班岩인 양 핏줄에서 용솟음치는 피와 같이 보이더라... _ 단테 알레기에리, <신곡> <연옥편> (제9곡)  


[그림] Dante's Purgatory(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ederest/dantes-purgatory/)


 이승과 저승에서의 창조 체계의 연관을 단테 이상으로 잘 표현한 이는 없었다. 지옥을 벗어나 중간적이고 일시적인 세계, 즉 지상에 이르며, 거기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연옥산의 정상에 지상 낙원이 있다. 지상 낙원은 더 이상 세상 어딘가 잊혀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념적 차원, 즉 연옥에서의 정화를 마치고 천국에서의 영화(榮化)에 들어가기 전의 무오(無汚)의 차원에 위치한다._자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 , p636


 자크 르 고프 (Jacques Le Goff, 1924 ~ 2014)는 <연옥의 탄생 La Naissance du purgatoire> 에서 중세에 등장한 교리적으로는 스콜라 철학으로, 문학적으로는 단테(Durante degli Alighieri, 1265 ~ 1321)에 의해 완성된 '연옥'의 역사를 보여준다. 비록 성경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중세 가톨릭 철학에서 '연옥'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심판 전과 심판 후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음을 알게 된다.


  연옥 체계는 두 가지 매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우선, 연옥이 생겨남으로 인해 죽음 이전의 기간이 새로운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물론 이전부터도 죄인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경고와 늦기 전에 지옥을 면할 준비를 하라는 권고를 받아오긴 했지만, 그처럼 중한 저주를 면하기 위해서는 아주 일찍부터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이었고 추문스러운 생활을 하거나 과도한 죄악을 저질러서도 안 되며 죄를 지었다며 가능한 속히 모범적인 참회를 해야 할 것이었다.(p558)... 연옥 체계가 가져온 두번째 결과는 그것이 산 자들과 죽은 자들간의 관계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정의한다는 것이다. 연옥의 영혼들은 누구에게 구원을 청하러 나타나는가? 우선은 그들의 혈육지친이고, 그 다음이 배우자로서, 특히 13세기에는 연옥에 있는 망자들의 과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_자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 , p560


 오늘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평화방송(CPBC)을 듣고 있던 중, 묵주(로사리오)기도가 흘러나왔다. 기도문은 듣던 중 유난히 "구원송"의 한 구절이 걸린다.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해당 구절은 오랜 기간 '연옥 영혼을 돌보시되'로 번역되어 사용되다가, 약 10년 전부터 바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정확하지는 않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기도문을 음미하고 그 뜻을 새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으나, 신앙심이 부족한 나와 같은 이들은 습관적으로 기도문을 외우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자꾸 생각나게 된다. 해당 기도문의 영어 원문은 아래와 같다.


[Fatima Prayer] "O my Jesus, forgive us our sins. Save us from the fires of hell. Lead all souls to heaven, especially those in most need of Thy mercy."


 라틴어 원문도 있지만, 라틴어는 잘 모르기에 영어 구문을 들여다 보고 생각을 해본다. 한국어와 영어 기도문을 1:1로 대응시키면,  (A)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 forgive us our sins, (B)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Save us from the fires of hell, (C)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 Lead all souls to heaven (D)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 especially those in most need of Thy mercy 로 연결시킬 수 있겠다. 


 (C)와 (D)의 번역과 관련해서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용이 길어질 듯 하니여기서는 일단 넘기고, 내용상의 연결로만 생각해보자. 기도문에서 (C)와 (D)의 연결을 '돌보시며'가 아닌 '돌보시되'로 할 경우에는 (D)가 (C)에 종속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반면, 영어 원문에서는 (D)가 (A), (B), (C) 전체와 관련을 맺기에 구 번역에서 내용상의 차이가 생긴 것은 아니었을까.


 정리해보자면, 영어 원문에서는 (A), (B), C) 중에 (D)가 especially로 연결되는 반면, 이전 번역에서는 (A), (B), (C)가 대등하게 나열되고 (D)는 (C)에 종속되는 의미로 느껴져 기도문이 수정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연옥과 기도문에 관한 내용이다 보니, 종교가 다른 이들에게는 다소 껄끄러운 부분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럴 경우에는 이번 페이퍼를 그냥 구문론과 서양 문화의 한 부분 - 연옥 - 을 잠시 생각하는 수준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연옥은 그 모든 지옥적 이미지들에도 불구하고 천국 쪾으로 훨씬 더 가까이 쏠려 있다. 그러므로 카톨릭 기독교의 저승 신앙의 원동력은, 연옥의 영혼들이 <신곡>에 나오는 것과 같은 환희에 찬 지진음을 내면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그 중단 없는 행렬을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는 이 천국의 열망일 것이다._자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 , p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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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2021-07-04 16: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때마침 단테의 신곡을 읽고 있었는데, 겨울 호랑님 덕분에 좋은 정보 알게 되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4 18:58   좋아요 2 | URL
작은 나눔이 되어서 저도 기쁩니다. 김민우님 남은 일요일 저녁 행복한 시간 되세요! ^^:)
 

 크게 신비롭고, 크게 밝고, 더없는, 비견할 바 없는 이 주문은, 이 주문을 외우는 사람에게 위대한 선물을 가져다 주지요. 이 무등등주는 일체의 고를 제거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관세음보살의 경지를 나타냈지만, 마지막 구절은 모든 보살, 지혜의 완성을 추구하는 모든 보살들의 삶의 문제로 귀착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 般若心經>을 이해하고 주문을 독송하면 곧 일체의 고(苦)가 사라진다는 것이죠.(p237)...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아제아제 바라아제(揭諦揭諦 波羅揭諦) 바라승아제(波羅僧揭諦) 모지사바하(苦提娑婆訶)


 건너간 자여 건너간 자여! 피안에 건너간 자여!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자여! 깨달음이여! 평안하소서!(p238)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中


 이 가르침을 바르게 읽어 줌으로써 이해력이 뛰어난 구도자들은 죽음의 순간에 곧바로 의식체의 탈바꿈을 이룰 수가 있다. 그들은 사후 세계를 방황할 필요도 없이 공중으로 난 수직의 길을 통해 곧바로 영원한 자유에 이를 것이다.(p448)... 아,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만일 그대가 애착심과 혐오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면 앞에서 말한 어떤 환영이 나타나더라도 진리와 진리를 깨달은 자와 그를 따르는 구도자들에게 기도하라. 그리고 자비의 신에게 기도하라.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걸으라. 그대가 지금 사후세계에 있다는 것을 알라. 모든 나약함을 버리라. 그대의 아들과 딸들 또는 두고 온 친척들에 대한 애착을 끊으라. 그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 천상계에서 나오는 흰색 빛의 길과 인간 세상에서 나오는 노란색 빛의 길을 따라서 걸어가라. 보석들로 장식된 대저택과 아름다운 정원 속으로 들어가라.(p447) <티벳 사자의 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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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친척 어른 중 한 분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여수에서 3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3일장을 치르면서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과 함께 오랫만에 친지들을 만나는 반가움도 느낀 자리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죽은 이의 중재로 살아있는 이들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장례식임을 재삼 확인하게 됩니다.

이번 장례는 불교의식으로 진행된 장례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게는 조금은 특별한 자리였습니다. 가톨릭에서 진행되는 의식에 익숙한 제게 불교 의식은 생소했고,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빈소에서 ‘연도‘를 바치게 됩니다. 연도는 죽은 이에 대한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내용의 기도로 주로 신자들이 모여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블교에서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독송하는데, 스님들과 불자분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가톨릭의 미사는 제사의 의미로 제사장인 사제(신부)의 주관으로 이루어지며, 사제의 참여는 미사와 성사로 한정된 반면, 수행의 종교인 불교에서는 스님과 불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는 기도의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죽은 이의 안식을 청하는 「연도」와 ‘아녹다라삼먁삼보리‘를 추구하는 「금강경」의 독송은 구원의 종교와 깨달음의 종교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여겨집니다.

동시에, 두 종교에 공통된 면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입관의식에서 「반야심경」의 구절을 외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불교 의식에서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께 청하는 묵주기도(로사리오 기도)를 떠올려 봅니다. 성모 마리아와 관세음보살께 의지하는 마음은 아기가 무서운 일을 당했을 때 엄마의 치마 뒤로 숨는 마음과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자한 엄마에 대한 기대. 이것은 종교를 뛰어넘은 우리 모두의 같은 마음은 이닐까 생각해 봅니다...

3일동안 곁눈으로 불교의식을 지켜봤기에 제 생각은 거칠고 부족함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부족한 부분은 차차 다듬어가야할 부분이라 생각하면서 다음 과제로 넘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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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02-20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께서 장례를 치르면서 생각했을 수 많은 질문들과 의문이 이 글보다 훨씬 깊은 심연까지 였음을 압니다. 글 너머의 생각과 마음도 전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0-02-20 05:11   좋아요 1 | URL
죽음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을 임을 실감하게 장례에 참여할 때마다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장례는 죽은 이의 의식이라기 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라는 필립 아리에스의 말이 계속 떠오르네요...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共鳴)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신화는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인 것이지요.(p29) <신화의 힘> 中


 조셉 캠벨(Joseph Cambell, 1904 ~ 1987)과 빌 모이어스(Bill Moyers, 1934 ~ )는<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을 통해 '신화(神話, Myth)'가 현대 우리 삶에서 주는 의미에 대해 말한다. 단순한 옛날 이야기로 생각하기 쉬운 신화가 과연 '잠재력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 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 미혼 상태에서 기혼 상태가 되는 단계의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의례가 곧 신화적인 의례인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게 되는 새로운 역할, 옛것을 벗어던지고 새것, 책임 있는 새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p41) <신화의 힘> 中 


 자연은 곧 우리의 본성이고, 신화에 등장하는 멋진 시적 표현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반영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외부적인 이미지에 갇혀 있어서, 신화적 이미지를 읽으면서도 그것을 우리 자신과 관련시키지 못하면 제대로 읽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내면의 세계는, 외면의 세계와 접하는 우리의 요구와 희망과 에너지와 구조와 가능성이 반영된 세계입니다. 외계는 우리가 드러나는 세계입니다. 우리의 세계가 바로 이 외면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내면의 세계, 외면의 세계와 함께 발을 맞추어야 합니다.(p118) <신화의 힘> 中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신화의 역할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회에서 의례(儀禮)를 통해 사람들은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고, 내면 세계를 표현하게 되는데, 사회적으로 신화는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또한, 외면의 표상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 우리 내면을 바르게 표현하기 위해서도 신화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신화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이유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깨닫는 것이다. 우리의 허상(虛像)이 아닌 실상(實像)을 바로 보기 위해 우리는 삶의 근원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모험을 하는 이를 캠벨은 '영웅(英雄, hero)'라 부른다.


  우리는 신의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졌어요. 이것이 바로 인간의 궁극적인 원형이에요. 우리 삶의 시작에는 두려움도 없고 욕망도 없어요. 그냥 시작되는 것일 뿐이에요. 그러다 존재하게 되니까 여기에서 두려움과 욕망이 시작되는 겁니다. 두려움과 욕망을 버리고, 우리가 시작되었던 바로 그 한 점으로 돌아가보세요. 이 한 점이 바로 요체랍니다.(p394)... 이 발화점은 존재의 모습이 확정되기 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세상의 선악과는 무관하고, 공포도 없고 욕망도 없는 순수무구한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생성되는 삶의 모습입니다.(p395) <신화의 힘> 中


 우리 삶의 에너지는 바로 무의식의 심층에서 솟아오릅니다. 우리 삶은 어디에선가 쉴새없이 솟아오르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세상으로 끊임없이 생명을 내어보내는 곳, 이곳이 바로 무궁무진한 에너지의 근원인 것입니다.(p393)<신화의 힘> 中 

 

 캠벨에게 영웅은 세상을 구원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를 화해시키는 노력을 하는 이,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벗어나 초월하는 존재가 캠벨이 말하는 영웅이며, 영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저자의 다른 작품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련을 극복하고, 기왕에 해석되어 있는 경험에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용기, 이게 바로 영웅의 용기입니다.(p89)... 신화가 지니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마음과, 다른 생명을 죽여 그것을 먹이로 삼는 잔혹한 삶의 전제 조건을 화해시키는 것이지요.(p91)... 인간의 마음과 삶의 조건을 화해시키는 일, 이것은 창조 신화의 기본 구조를 이룹니다.(p92)<신화의 힘> 中


 영웅의 시련에서 핵심은, 자신을 버려서 자신을 더욱 높은 목적, 혹은 타인에게 준다는 겁니다. 이것만 알면 이 자체가 바로 궁극적인 시련이라는 걸 깨달아낼 수 있지요. ... 결국 모든 신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의식의 변모입니다... 시련과 계시, 이것이 바로 변모의 열쇠인 겁니다.(p234) <신화의 힘> 中


 시련과 이의 극복을 통해 영웅은 궁극적인 깨달음의 단계에 도달된다. 모든 시공간( Time- Space)을 넘어선 영원(永遠) 속에서 영웅의 모험은 외부가 아닌 내부를 지향한다. 그리고, 그의 모험은 자신안에서 서로 다른 두 세계(몸-마음, 필멸-불멸, 삶-죽음 등등)을 통합시키고 만물이 하나됨을 진정으로 알았을 때 끝나게 된다.


 속세의 근원은 영원입니다. 영원은 스스로 이 세상으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신에 관한 기본적인 신화적 관념이 바로 영원입니다. 신은 하나여도 속세에 내려와서는 여럿으로 나뉘어 우리 안에 거하게 되지요. 그런데 영원이라는 것은 모든 생각의 범주 너머에 있습니다.(p102)... 끝나지 않는 시간과 영원은 달라요. 영원은 시간 너머에 있어요.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미 영원을 나타낼 수 없어요.(p405)  <신화의 힘> 中


 '초월자'라는 말의 본뜻은 모든 개념을 초월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우리의 경험을 한정시키는 감각 능력을 형성시킵니다. 우리의 감각은 시공의 장에 갇히고, 우리의 마음은 생각의 범주라는 틀에 갇혀 있습니다.(p126)... 무엇이든 궁극적인 실재는 존재와 비존재의 모든 범주를 초월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있느냐, 없느냐는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p127) <신화의 힘> 中


 깨달음이란, 만물을 통해 영원성의 찬연함을 인식하는 일이지요. 이 만물이라는 것은 이승에서는 선한 것으로 판별될 수도 있고 악한 것으로 판별될 수도 있는 것인데, 바로 그 이면을 꿰뚫어보아 버리는 것이지요. 여기에 이르면 속세적 욕망이나,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놓여납니다.(p301)... 필멸(必滅)의 팔자와, 우리 안에 있는 초월적 영생불사의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p409)... 형이상학적 깨달음이란 '우리'라고 하는 존재가 사실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 '우리'라는 것은 한 생명의 두 측면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실재는 모든 생명을 동일시하고 통합하는 데서 비롯됩니다.(p211) <신화의 힘> 中

 

 <신화의 힘>에서 캠벨은 '신화'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며, 전통을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개인적으로는 삶의 근원을 깨닫고 자신을 변모(transformation)하는 도구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신화의 사회적 기능과 개인적 기능은 서로 보완적으로 작동하지만, 때로는 충돌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캠벨은 다음과 같은 말로 '깨달음'을 강조한다. 깨달음을 통해 우리 삶의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신화가 현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된다.


 중요한 것은 영적 수련입니다.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요. 사람은 사회를 섬겨야 하게 되어 있지가 않아요. 사회가 사람을 섬겨야 하지요. 사람이 사회를 섬기게 되면 우리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p34) <신화의 힘> 中


[사진] Darth Vader(출처 : www.starwars.com/databank/darth-vader)

 

 <스타워즈>의 등장인물들이 쓰고 있는 가면은 현대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진짜 괴물 같은 힘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우리 삶에 대한 위협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속한 시대의 역사를 사는 법을 익히는 일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p265) <신화의 힘> 中


 마지막으로, 가면(mask)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다스베이더(Darth Vader)가 쓰고 있는 '가면'은 이어지는 캠벨의 신화 4부작의 핵심어(key word)이기도 하다. '가면'을 통해 무형(無形)의 존재가 유형(有形)의 존재로, 영원의 존재가 현세에 임하면서 축제가 생명력을 얻는다는 <신의 가면> 속의 가면과 스타워즈(Star Wars)의 가면은 다른 의미를 지니겠지만, 캠벨의 저작에 흐르는 일련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축제에서 가면은 그것이 표현하는 신화적 존재의 참된 환영(幻影, apparition)으로 숭배되고 경험된다. 가면을 만든 것은 사람이며 그것을 쓰고 있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신의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은 의례가 행해지고 있는 동안 그 신과 동일시된다.... 그러한 신의 환영은 구경꾼과 행위자의 감정에 실제적인 힘을 미친다.(p35) <신의 가면 1 : 원시신화> 中


 

 위에서 보듯 <신화의 힘>은 캠벨의 신화학에 대한 개론적인 내용이 많이 담긴 책이기에, 신화학에 대한 좋은 입문서라 여겨진다. <신화의 힘>의 대담 내용은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경우 <The Power of Mtyh>은 좋은 대본집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PS. Episode 1,2 편은 조회가 되지 않기에 3편부터 시청해야 하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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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7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 후기에 씌여진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 는 우리의 세시풍속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 책입니다. 다만, 많은 풍속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고 있어 학계에서 논란이 없지는 않지만, 책에서는 당대의 풍속과 이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동국세시기>에서는 설날 조선의 풍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서울 풍속에 설날 가묘(家廟)에 인사드리고 제사지내는 것을 차례(茶禮)라고 한다. 남녀 아이들은 모두 새 옷을 입는데 세장(歲裝 : 설빔)이라고 한다. 친척 어른들을 찾아뵙는 것을 세배(歲拜)라고 한다. 제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술을 세주(歲酒)라고 한다... 사돈지간의 부녀자들은 서로 곱게 단장한 어린 계집종을 보내 새해 안부를 묻는데, 이런 어린 종을 문안비(問安婢)라고 한다. 조선 영조 때의 참봉 이광려(李匡呂)의 시에 "어느 집 문안비가 문안하러 어느 집에 가는가?"라는 구절이 있다.(p38) <동국세시기> 中


  저자 홍석모(洪錫謨, 1781 ~ 1857)가 묘사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모습에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이어져 오는 풍속이 담겨있어 전통(傳統) 명절인 설날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민간에서는 잘 아는 젊은이를 만나면 "과거 급제해라", "벼슬해라", "재물 얻어라" 따위의 말로 덕담을 하며 축하한다... 오행점(五行占)을 쳐서 새해의 신수를 점친다. 오행에 각기 점사(占辭)가 있는데, 나무에 장기알처럼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를 새겨 일시에 던지고, 바로 놓였는지 뒤집혔는지 보고서 점괘를 얻는다.(p43) <동국세시기> 中


 새해의 첫 날을 경사스러운 날로 보고 덕담을 건네고 점을 치는 모습은 우리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를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BC 43 ~ AD 17)의 <로마의 축제들 Fasti>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게르마니쿠스 공이시여, 야누스가 공에게 축복받은 한 해를 알리고 있습니다... 

축복받은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나쁜 것은 말하지도 생각지도 마시오. 오늘은 좋은 날이니 좋은 말만 해야할 것이오. 

소송에 귀 기울이지 말고 사악한 말다툼일랑 당장 멀리하시오. 

오늘은 그대들의 일을 뒤로 미루시오(제1권 63 ~ 73)...

시작에는 전조가 들어 있는 법이라오. 

그대들은 맨 처음 듣는 말에 조심스럽게 귀를 세우고 

복점관(卜占官)은 맨 처음 눈에 띄는 새를 풀이하지요. 

이때는 신들의 귀도 신전처럼 열려 있어서, 어떤 혀도 

헛된 기도를 올리지 않고 말하여진 것은 무게가 나가는 법이라오."(제1권 1월 178 ~ 182) <로마의 축제들> 中


[사진] 떡국(출처 : 위키백과)


 맵쌀가루를 쪄서 큰 판자 위에 놓고 자루가 달린 절굿공이(떡메)로 수없이 찧고 길게 늘여서 기다란 다리 모양의 떡을 만드는데, 흰떡이라고 한다. 동전처럼 잘게 썰어서 육수에 넣고 끓인다. 쇠고기, 꿩고기, 고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는데, 떡국(餠湯)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대접하니, 빠뜨릴 수 없는 세찬이다.(p38)<동국세시기> 中


 동시에, 지금과는 다른 설날의 모습 또한 확인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세뱃돈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전통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동국세시기> 역해자가 세뱃돈의 유래를 추측했듯, 저도 <로마의 축제들>안에서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퍼진 이유를 넘겨짚어 봅니다.


 세뱃돈에 대한 언급은 조선 말기의 <해동죽지 海東竹枝>를 제외한 여타 세시기 및 세시기속시에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도덕 관념상 친지에게 세배를 하고 돈을 받는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추측이지만, 문안비에게 주는 수고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p48) <동국세시기> 中


 지금은 돈이 제일이오. 재력이 관직도 가져다주고 

재력이 우정도 가져다주며 가난한 자는 어지서나 유린당하지요... 

옛날에는 구리를 선물했으나 지금은 금이 더 좋은 전조로 통하니까 

옛날 돈이 새 돈에게 져서 자리를 내둔 것이지요. (제1권 1월 217 ~ 223) <로마의 축제들> 中

 

설이 오기 전날인 2월 4일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入春)입니다. <로마의 축제일>에서도 음력 설날 즈음인 2월 9일을 봄의 시작을 알리는 때로 보고 있습니다.

 

 닷새 뒤에 샛별이 찬란한 빛과 함께 바닷물에서 떠오르면 

 그때는 봄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속지 마십시오. 아직도 추위가 남아 있습니다. 

 떠나는 겨울은 큰 흔적을 남기는 법입니다.(제2권 2월 149 ~ 152) <로마의 축제들> 中


[사진] 입춘대길 건양다경(출처 : 서울신문)


 이제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으로 유명한 춘련(春聯)을 예전처럼 문에 붙이지는 않지만, <동국세시기>에 있는 춘첩자에는 좋은 내용의 글이 담겨 있어 이를 그대로 옮겨 봅니다.


 대문과 방문의 신령이 불길한 것을 물리친다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평안하며 집안은 넉넉하고 사람은 풍족하다

 비바람이 순조로워 계절이 온화하고 풍년이 든다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하다

 모든 재앙 물러가고 온갖 복이 찾아온다

 입춘이니 대단히 길하고(入春大吉) 봄이 오니 경사가 많다

 요임금의 세월, 순임금의 세상

 임금 사랑하여 도가 태평하길 바라고 나라 걱정하여 농사가 풍년 들기 원한다

 부모는 천년 동안 장수하고 자손은 만대에 걸쳐 영화롭다

 천하는 태평한 봄날이요, 사방에 아무런 일도 없다

 나라에는 좋은 때 만나는 경사가 있고 집에는 먹고 살 걱정이 없다

 재앙은 봄눈 따라 녹고 복은 여름 구름처럼 일어난다

 북당의 훤초는 푸르고 남극성은 밝다

 하늘은 봄날에 가깝고 인간 세상에는 오복이 온다

 닭이 울어 새해의 덕을 알리고 개가 짖어 작년의 재앙을 쫓는다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여려 온갖 복이 온다

 봉황은 남산의 달을 보며 울고 기린은 북악의 바람을 맞으며 노닌다

 대문으로 춘하추동 복을 맞이하고 방문으로 동서남북 재물을 들인다

 여섯 마리의 자라가 절하며 남산같은 장수를 바치고 아홉 마리 용은 사해의 보배를 실어온다

 하늘은 세월을 더하고 사람은 수명을 더하며, 봄은 천지에 가득하고 복은 집에 가득하다(p61) <동국세시기> 中


 위의 글을 읽으니 올 한해 토정비결 괘가 위와 같다면 좋은 일만 가득한 한 해가 될 듯 합니다. (아마 힘들겠지요?) 입춘이 '작은 설날'로 들어온 올해, 이웃분들 모두 입춘을 통해 액운을 쫓고 설날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하며 이만 인사드립니다. 행복한 설 연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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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0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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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07: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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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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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1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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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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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1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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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19-02-05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떡국도 맛있게 드시고요~~^^

겨울호랑이 2019-02-05 08: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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