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지식인마을 32
하상복 지음 / 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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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리성과 일관성을 통해 사물의 내적 원리를 인식하는 능력인 이성(理性, logos)는 본래 개인의 정신적 자질이었다. 하지만 이성이 특정 역사적 시기에 지배적 정신의 위치에 오르면서 그것은 개인이 아닌 집단적 차원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서구의 근대라는 역사적 시간 속에서 이성은 지배적 집단 정신이 되어 정치/사회적으로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p29)... 계몽의 힘,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성의 힘은 단순히 자연과 사회에 대한 관조가 아니라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을 통해 새로운 질서의 형성을 이끈 실천력으로 이해해야 한다.(p76)


 <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의 주제는 이성(理性)이다. 그리고, 책에서는 이성의 역할을 둘러싼 푸코(Paul-Michel Foucault, 1926 ~ 1984)와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 )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근대 이성의 어두운 측면을 바라본 푸코와 근대 이성의 밝은 면을 바라본 하버마스. 푸코가 중세의 신을 부정한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의 뒤를 이어 근대의 이성을 부정했다면, 하버마스는 공론장에서 이성을 통한 문제해결 능력을 강조한다. 


 푸코에게 서구의 근대 이성은 과학적 진리의 이름으로 비이성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타자화하는 폭력이었다. 그 폭력은 물리력이 아니라 지식을 매개로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졌다. 푸코는 서구 근대 사회가 정신병과 미친 사람을 다루는 방식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파헤쳤다. 지식의 정치적 힘은 '지식=진리'라는 등식에 기초한다. 푸코는 고고학적 방법을 통해 서구 근대의 지식이 진리와 얼머나 거리가 먼가를, 그리고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그 지식이 비이성적인 사람들을 얼마나 정교하게 통제하는가를 제시해주었다.(p208)


 하버마스는 서구 근대 이성이 본래 해방적 힘을 발휘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18세기 서유럽 부르주아 공론장을 그에 대한 적절한 역사적 사례로 본다. 문제는 그 해방적 힘이 특정한 역사적 국면 속에서 가라앉아 있다는데 있다. 따라서 해방적 힘이 간직되어 있는 영역 속에서 이성의 잠재력을 현실화해야 한다.(p209)

 

  그렇다면, 이들의 다른 상황인식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푸코 & 하버마스>안 에서 우리는 언어에 대한 이들의 서로 다른 관점을 확인하게 된다. 통제 규칙의 전달자로서의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의 언어. 언어에 대한 이들의 입장차이는 이성에 대한 이들의 차이로까지 이어진다.


 <담론의 질서>에서 인간의 언어 행위는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통제 규칙에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식의 고고학>에서 지식은 역사적 연속성 위에서가 아니라 역사적 단절과 불연속 위에서 성립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그는 인간의 주체성 subjectivity을 부정하는 구조주의적 사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푸코는 이러한 시각을 '고고학'으로 명명했다.(p98)


 하버마스에게 언어는 사물을 표상하는 도구가 아니라 열린 공간에서 타인과 관계 맺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매개물이었다.(p153)... 하버마스는 서구 근대 사회를 이끈 이성이 과연 부정적인 모습만을 지니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 사회를 관통하는 원리로서 이성의 폭력적, 지배적 속성을 폭로하는 반근대주의, 반이성주의 사상가들에 맞서 하버마스는 서구의 근대가 간직하고 있는 만주주의적 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p165)


 사실, 푸코와 하버마스 모두 일가를 이룬 철학자이기에 그 방대한 사상을 요약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번 리뷰에서는 <푸코 & 하버마스>가 입문서라는 점을 감안하고, 또 이들 사상가의 차이에 한정해서 살펴보자. 푸코는 담론과 언표라는 두 개념을 언어 영역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사회적 공간에 위치시킨다. 푸코에게 문제는 이러한 언어가 자리한 공간이 우리에게 통제와 감시를 하는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것에 있으며, 푸코에게 판옵티콘은 바로 이성으로 대표되는 근대라 할 수 있다. 


  푸코에게 근대는 진보의 증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근대 서구인들이 얼마나 간교하고 모순적인 정치적 욕망의 덩어리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징표였다. 근대는 정신병을 제조해내고, 사체를 난도질하고, 성적 욕망의 도덕적 표준을 정립하고, 육체의 감시 장치를 발명해냈다.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찬미해 마지않던 근대는 통제와 억압과 폭력 위에 설립된 건축물이라는 것이 푸코의 생각이었다.(p90)


 <지식의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념은 지식을 구체적인 계기들인 담론 談論 dscours과 언표 言表 enonce다. 언어학적 차원에서 언표는 말이나 글로 표현된 진술을 의미하고, 담론은 그러한 언표들의 집합이다. 그러나 푸코는 담론과 언표를 언어학적 영역 바깥으로 끌어내서 사회적 공간 속에 위치시키고자 한다.(p134)


 여기에 덧붙이자면, 언표가 언어 바깥에서 이해할 때만 제대로 규명될 수 있다는 푸코의 말은 괴델(Kurt Godel, 1906 ~ 1978)의 불완전성 정리로 뒷받침될 수 있을 것다. 근대를 부정하는 푸코의 이론을 근대의 산물인 수학이 뒷받침하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괴델의 두 번째 불완전성 정리는 "이론은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모순인 공리계 T가 존재한다고 하자. 이것이 무모순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괴델은 T가 무모순이면, "T가 무모순이다"라는 문장은 (수론의 문장으로 부호화했을 때) T로부터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였다. 따라서 "T가 무모순이다"라는 문장은 참이면서도 증명불가능한 문장이다.(p259) <Mathematics 2> 中


 반면,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서 언어의 기능을 한정시켜 놓는다면, 언어는 사회구조의 강압수단이 아닌 수평 관계를 다지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버마스는 근대 부르주아(bourgeois) 계급 형성과정에서 일어난 정치혁명의 과정에서 일어난 한 단면에 주목한다. 개인들의 친목모임에서 공론의 장으로, 예술에서 정치의 장으로 확장되는 역사 속의 공론장 모습을 통해 다른 의미의 미메시스가 발견된다.


 하버마스는 아도르노가 제시한 '미메시스 mimesis'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아도르노의 미메시스는 개념적 사유에 대비되는 일종의 충동적 체험을 뜻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주변 세계 속으로 몰입시켜 자신과 주변의 경계와 구분이 해체되는 상태, 즉 물아일체 物我一體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아도르노는 미메시스적 행위들을 통해 서구 근대 사회에서 초래된 주체와 객체 사이에 가로놓인 거대한 갈등적 심연을 해소하기를 소망했다. 하버마스는 주체/객체 관계를 '주체/주체' 관계로 전환시키기보다는 그 둘의 관계를 원초적으로 해체하는 힘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p182) 


 부르주아 공론장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국가적 사안들을 논의하는 부르주아 사회의 토론 공간을 뜻한다. 애초에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공간으로 시작된 부르주아 공론장은 점차 국가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여론이 조성되는 정치적 공간으로 진화해나갔다.(p186)... 부르주아 공론장은 공권력 영역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 속한다. 그것은 곧 부르주아 공론장이 사적인 삶이라는 이해관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공론장은 사적 영역 내의 경계가 보여주고 있듯이 단순히 가족적 삶과 경제적 삶으로 매몰되지 않는다. 부르주아 사회의 사적 개인들은 공론장을 통해 공권력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여론을 주조해내는 '공중'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부르주아는 사적 개인임과 동시에 공중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매우 독특한 정치적 위상을 지닌 부르주아 공론장에는 사실상 근대 민주주의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p196)


 영화 <스타워즈 Starwars>에서 포스의 어두운 면(Darkside of the Force)과 밝은 면(Lightside of the Force)이 나온다. 다스 베이더(Darth Vader)와 아나킨 스카이워커(Anakin Skywalker)로 표현되는 포스의 양면에서 우리는 어느 쪽을 진정한 포스의 본질(本質)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성의 어두운 면을 바라본 푸코와 밝은 면을 바라본 하버마스 중 누구의 시각이 옳은 것일까. 


[그림] Darth Vader/Anakin Skywalker(출처 : https://www.planetminecraft.com/skin/darth-vader-anakin-skywalker-4358471/)


 섣부르게 답을 하기전, 우리가 근대와 이성을 바로 보는 것은 이들 양면을 종합해서 이해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종합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다음을 위해 이정도로 틀만 잡아놓고 입문서는 이만 덮도록 하자...


PS.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의 다른 예. 오늘 아침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 시동을 걸고 나서 실을 짐이 있어 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른쪽 라이트가 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자동차 안 운전석에 있을 때는 자동차에 있는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자동차 밖에 있어서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론(자동차)은 자신의 무모순성(라이트가 꺼졌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불완전성 정리를 대강 이렇게 받아들이면 무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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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 니체 :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 지식인마을 37
김선희 지음 / 김영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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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펜하우어를 괴롭혔던 중심 물음은 삶의 고통, 즉 '삶은 왜 이다지도 고통스러운가?'였다. 그리고 이 물음에 천착한 끝에 그가 발견한 고통의 근원은 의지로 대변되는 의욕과 성욕이었다. 반면에 니체를 괴롭혔던 물음은 '우리 삶의 데카당스 decadence나 허무주의는 어디서 왔는가?'로 대변될 수 있는데, 이는 우리 존재와 고통의 발생에 대한 물음과 더불어 인류가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던 순간에 사용한 다양한 삶의 기예에 대한 물음이었다.(p17)


 <쇼펜하우어 & 니체 :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 ~ 1860)와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 입문서로서 '존재'와 '고통'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 사상의 차이점을 살펴본다. 


 쇼펜하우어에 있어서 직관적 표상은 세계의 근거나 고통의 근거에 대한 물음의 답을 표상에서 의지로 이행시키는 열쇠 개념이다. 쇼펜하우어가 표상의 근거를 직관에서 빼앗고 직관의 근거를 육체 Leibd에서 찾고, 육체를 의지와 불가분의 것으로 보는 까닭에 고통의 해석학의 중심축을 표상론에서 의지론으로 이행한다... 모든 표상은 의지의 객관화에 불과하기에 이 세상의 모든 현상들, 즉 표상들의 배후에는 바로 의지가 존재한다. 세계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한 충족 이유율의 탐구는 바로 의지에 대한 탐구로 집중된다.(p63)... 삶에 대한 의지의 긍정은 바로 성욕을 충족시키는 생식에 의하여 가장 잘 강화된다.(p68)


 쇼펜하우어에게 현상계와 본체계는 다른 세계가 아닌 다르게 경혐되는 같은 세계이며, '의지'와 '표상'이라는 두 측면을 갖춘 하나의 세계다. 표상은 외부에서 관찰되고, 의지는 내부에서 경험된다. 때문에 고통의 원인 역시 외부에서 내부로 이행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의지는 기본적인 욕구(성욕) 뒤에 숨어 있다.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욕구를 해소하려 하지만 탄타로스(Tantalos)의 형벌처럼 기아와 갈증을 해소할 수는 없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예술과 이념에 대한 인식이다.


[그림] 탄타로스의 형벌(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426434658452495973/)


 동물 세계의 의지는 인식적이다. 그러나 이때 인식은 의지에 의해서 지배되는 의지의 노예인 인식과 의지로부터 자유로운 인식으로 구분된다. 후자는 인간이 의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즉 인과율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한 수단을 쇼펜하우어는 바로 예술 Kunst과 이념 idee에 대한 인식에서 찾는다.(p65)... 의지가 강할수록 노/병/사와 같은 실존의 결여적 속성은 더 강한 고통을 야기한다.(p83)... 예술과 이념에 대한 인식을 통한 치료적 해석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부각된다. 이 지점이 바로 표상과 의지의 노예인 인간이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곳이다.(p89) 


 의지와 인식의 접목 지점은 의지의 사실적 긍정에서 의지의 당위적 부정으로 이행하는 지점이다. 의지의 노예에 불과했던 오성이 인식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성을 넘어서는 예술과 정관에 의한 이념의 인식이라는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이 차원에서 표상과 의지에 의한 염세주의적 해석이 예술과 이념에 대한 인식을 통한 낙관주의적 해석으로 바뀌는 것이다.(p79)


 쇼펜하우어의 예술과 이념에 대한 인식이 낙관적인 해석으로 이어진다는 그 지점에서 니체의 사상은 출발한다. <비극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odie>에서 말한 디오니소스과 아폴론의 대립은 감성(感性)과 이성(理性)의 대립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아폴론적인 요소의 승리가 그리스 문화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을 초기 니체는 주장한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광기가 그리스 땅에 가져다준 풍요로움의 산물로 본다. 반면에 우리가 찬양해 마지않는 그리스의 심미적 명랑함이나 학문적 낙천주의를 그리스의 해체와 약화의 시기에 등장한 병적인 증후라고 여긴다.(p139)...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예술의 발전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적인 결합 속에서 찾는다.(p140)... 예술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를 지배하던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대립 대신에 디오니소스와 소크라테스의 대립이 새로이 등장하고 마침내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이르러서 소크라테스의 유령이 승리함으로써 그리스 비극의 디오니소스적 요소는 소멸된다. 이와 같은 역전은 바로 그리스인들의 삶의 몰락을 의미한다.(p152)


 이러한 문화 예술적인 측면에 니체는 '계보학 系譜學'의 측면이 더해지면서, 문화/예술의 가치전환을 확장시켜 나간다. <도덕의 계보학 Zur Genealogie der Moral: Eine Streitschrift>으로 대표되는 니체 사상은 이제 플라톤/소크라테스 비판에서 기독교 비판으로 방향을 전환된다. 


 니체는 학문 그리고 예술과 관련하여 그것이 예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중심으로 하는 윤리적 문제 설정임을 명시한다... 따라서 비판의 대상도 더 이상 소크라테스적 주지주의의 인식론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기독교의 도덕으로 이행한다.(p178)...  니체의 가치 전환은 계보학적 수단을 통하여 순간적인 가능성에 한정되어 있는 음악이나 직관과 같은 비역사적인 수단을 통한 가치 전환에 비하여, 지속적인 가치 전환의 길을 제시한다. 즉 계보학적 성찰은 시간적/공간적으로 각인된 물질화된 과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p181)

 그리고, 니체는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유령과 기독교의 도덕을 넘어선 초인(超人)을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에서 말한다. 강인한 낙타에서 자유로운 사자로, 다시 창의적인 어린이가 되면서 제약을 넘어선 인간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모습을 가진다. 


 디오니소스적 예술가라는 개념은 니체의 예술론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 개념을 통하여 니체는 더 이상 망각을 재촉하는 도취나 꿈 그리고 기존의 도덕에 반기만을 드는 파괴적인 사자를 내세우는 대신에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조하려는 자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기예를 제시한다.(p160)... 정신은 사자의 단계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사자는 단지 자유를 쟁취하는 자이다. 자유는 단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이 준비 작업이 끝날 때 정신은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변화한다.(p235)

 요약하면,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자신의 시야를 한계로 세계를 인식하며, 표상과 의지를 통해 이를 경험한다. 또한 인간의 의지는 본성 뒤에 숨어 있으나, 이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에 의지를 벗어날 필요가 있고, 예술과 이념에 대한 인식이 고통을 벗어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반면, 니체는 인간은 디오니소스적 요소의 상실을 통해 고대에는 소크라테스 유령이, 중세에는 기독교의 도덕으로 대표되는 이성이 승리해왔으나, 인간이 이러한 제약으로부터 극복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감성과 현재의 회복일 강조했다는 것으로 거칠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깊이 있는 정리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겠지만, 입문서로서는 이정도로 일단 넘기자. 


 <쇼펜하우어 & 니체 :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는 입문서적인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에서도 꽤 읽기 어려운 책이다. 이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외에도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 )와 푸코(Paul-Michel Foucault, 1926 ~ 1984),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 1905 ~ 1997)의 사상까지 다루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알려주고 싶은 저자의 배려 깊음은 입문자들에게는 못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하버마스와 푸코의 이야기는 같은 지식인 마을의 <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쪽으로 돌리도록 하자. 엄밀하게 말해서, 두 책의 주제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짐은 되도록 가볍게 갈 필요가 있다 생각된다. 큰 사상가의 사상을 대강 정리한 이번 리뷰를 서둘러 마무리 하자...


PS. 그래도, 하버마스와 푸코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이들은 <쇼펜하우어 & 니체>에서 언급한 하버마스의 비판은 '신은 죽었다'를 통해 기존 질서를 부정하지만, 이에 대해 윤리적 대안을 니체가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이에 대한 푸코의 반박은 '파르헤지아' 문제 설정에서 발생하는 변형이 상이한 진리 놀이의 형태를 가져온다는 정도로 대강 정리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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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 - 지질학적 시간의 발견에서 신화와 은유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06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이철우 옮김 / 아카넷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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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화살이라 부르는 시간의 이분법의 한 극단에서 보면 역사는 반드시 반복될 수 없는 사건의 불가역적인 연속이다.(p34)... 시간의 이분법의 또 다른 극단인 시간의 순환에서 보면 사건은 우발적인 역사에 인과적인 영향을 끼치는 주목할 만한 계기라는 의미가 전혀 없다. 시간 속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모습은 항상 현재 속에 존재하며 절대 변화하지 않는다. 외면적인 변화는 반복되는 순환의 한 부분이며 과거의 차이들이 바로 미래의 현실이 될 것이다. 이 경우 시간에는 방향성이 없다.(p35)

시간의 화살과 시간의 순환. 년도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르겠지만, 매일은 일상의 모습으로 반복됩니다. 이제 2019년을 보내고 몇 시간 뒤 2020년을 맞이합니다. 아마 새해에도 우리 모두는 반복되는 일상을 보낼 것입니다. 변함없이. 그렇지만, 2020년에는 하루하루가 다른 빛깔로 채색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2020년 끝자락에서 우리 모두 한층 자란 모습으로 처음을 돌아보기를 바라봅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계통적인 연관이나 시간의 화살에 의한 유사성과 내재적인 동일한 법칙의 개별적인 반영이나 시간의 순환에 의한 유사성이라는 두 종류의 유사성을 함께 고려하면 자연의 복잡성을 해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p280)

시간의 화살 개념으로 설명되는 상동 관계와 시간의 순환 개념으로 설명되는 상사 관계는 한 유기체 내에서 주도권을 다투는 적대적인 개념들이 아니다. 이들은 갈등(긴장) 속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각 피조물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서로 얽혀 있으면서 서로 의지한다. 이것은 시간의 순환이라는 법칙이 역사라는 실체를 형성하는 것과 같다.(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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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19-12-31 2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한시간 후면 2020년이군요~~
올해 겨울호랑이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리뷰만 읽고 정작 책은 아직^^
언젠가는 읽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겠죠~~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십시요^^

겨울호랑이 2019-12-31 23:45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의 진솔한 이야기와 리뷰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 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한 해 여세요!^^:)

서니데이 2019-12-31 2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정에 평안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에는 소원하는 것을 이루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19-12-31 23:46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께서도 항상 건강하시고 원하시는 바 이루시는 한 해 되세요!^^:)

초딩 2019-12-31 2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여~~~😍😍😍

겨울호랑이 2019-12-31 23:47   좋아요 2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초딩님께서도 행복한 2020년 되세요!^^:)

2020-01-02 0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2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한길그레이트북스 77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지음, 강대석 옮김 / 한길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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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제는 여러분을 신의 친구에서 인간의 친구로, 신앙인에서 사유하는 자로, 기도하는 자에서 노동자로, 내세의 후보자에서 현세의 학생으로, 기독교인 자신의 고백과 자백에 따르면 ‘반은 동물이고 반은 천사인‘ 기독교인에서 인간으로 만들려는 과제이다.(p401)

나는 불멸성에서 비로소 신성의 의미와 목적이 발견되고 달성되며, 신성과 불멸성은 하나이고, 처음에는 독자적인 본질로서 존재하던 신성이 끝에 가서는 불멸성으로서 인간의 특성이 된다는 증명과 함께 내 과제의 목표에 도달했다. 그리고 나는 자연종교의 신이 자연이고 정신종교인 기독교의 신이 정신 또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그것은 물론 인간이 이교도처럼 인간 밖에서가 아니라, 기독교인처럼 인간을 초월해서가 아니라 인간 자체 속에서 행위의 규정근거, 사유의 목적, 해악과 고통의 치료 원천을 찾고 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했다.(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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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2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2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덕의 상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지음 / 문예출판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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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은 하나의 습득한 인간의 성질로서, 그것의 소유와 실천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실천에 내재하고 있는 선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며 또 그것의 결여는 결과적으로 그러한 선들의 성취를 방해하는 그러한 성질이다.(p282)

선의를 갖고 있는 남자와 여자들이 로마 제국을 지지하는 과제로부터 등을 돌리고 또 문명과 도덕적 공동체의 지속을 이 제국의 유지와 동일시하는 것을 중단했을 때, 그것은 고대 역사에 있어서 결정적 전환점을 이루었다... 만약 현대의 도덕적 상황에 관한 나의 설명이 옳다면, 우리 역시 얼마전부터 이 전환점에 도달하였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새로운 암흑시대를 거쳐 문명과 지성적, 도덕적 삶이 보존될 수 있는 공동체의 지역적 형식들을 건립하는 것이다.(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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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6 08: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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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6 0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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