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두드러지는
‘배경변수‘가 있었다. 지지 정당, 이념적 차이만큼이나 뚜렷한 지표였다. 그것은
‘경제 상황‘ 평가였다. 한국 경제 상황이 나쁘거나 앞으로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층에서 중국 이슈 전반에 대해 반감이 깊었다.  - P12

이번 조사에서 중국에 대한 전반적 호감도는 바닥을 찍고 올라가는 추세였다. 다만 그럼에도 건강보험처럼, ‘중국인만 제한하는 조치‘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이 높았던 대목은 놀라웠다.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의 주된 이유가 ‘중국인은 민도가 낮다‘이다. ‘일본인은 예절을 잘 지킨다‘와 대비되는, 일종의 인종적 편견이 있다.  - P16

시작은 윤석열이 중국을 이념의 장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중국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이야기를 한 순간부터 정치적 이념적 문제가 되었다. 이전에는 이념과 진영을 가리지 않고 중국에 대해 호감도가 낮았다. 이제는 양극화되고 있다. 윤석열은 반중이라는 우물에 혐중이라는 독을 풀었다. 내란 국면에서 ‘중국간첩‘ 이야기를 꺼내면서 모든 문제가 혐중으로 집중되었다.  - P17

막강한 ‘권능‘을 가지게 된 특수부를통제하는 역할은 ‘사람‘, 즉 ‘우리 편 검사‘에게 맡겼다. 특수통 칼잡이 중에서도 슈퍼스타로 통해온 윤석열이었다. 그리고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가려는 순간, 검찰 특수부에 풀어둔 힘은 전 정부의 적폐청산을 넘어 정권을 향했다. 역사적으로 살아 있는 권력을 겨냥해서 탄압받는 모습으로 자신을 연출하는 건 특수부가 즐겨 쓰던 방식이었다. 당황한 권력이 대응에 나서면 검찰이 말을 안 들어서 보복하는 모양새가 되어도리어 역풍에 휩쓸렸다. 문재인 정부와 당시 민주당도 그랬다. - P25

"취소위원회는 원(原) 중재판정이 대한민국이 당사자로 참여하지도 않은 하나금융과 론스타 간 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주요 증거로 채택한 뒤, 이에 의존하여 금융위의 위법행위와 국가책임을 섣불리 인정한 것은 국제법상 근본적인 절차 규칙인 적법절차의 원칙(due process)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ICSID 판정부가 ICC 판정문을 주요증거로 채택한 것 자체가 ‘원 중재판정을 취소하는 근거로 사용된 것이다. - P38

기후위기는 매우 강력한 위협 요인이고 실존하는 위험이지만, 또 한쪽에는 이에 맞먹는 강력한 자연적 변동 역시 존재한다. 공간 규모도 열대에서 극지를 한꺼번에 아우르고, 시간 스케일은 수십 년에이른다.  - P49

요컨대 공자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특이한 성인이었던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에 부유하던 공통언어 자원을 활용해 자기 생각을 청중에게 개진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개진된 그의 생각은 <논어>라는 텍스트에 고정된 이후에 오늘날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완전히 낯설지도 않다. 동시에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 전승되어왔으므로 각별히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섬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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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창조적인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자신이 행한 것 가운데 가장 나쁜 행위가 아니다. 가면 뒤에는 단지 교활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간계에는 교활함 못지않게 호의(好意)가 존재한다. - P-1

고귀한 품성과 풍요로운 영혼을 지닌 사람은 낭비하듯이 자기 자신을 거의 돌보지 않고 관용의 덕을 악덕에 가깝게 베푸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보존할 줄 알아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통과해야만 하는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 P-1

위대한 것은 위대한 인간을 위해, 심연은 깊이 있는 인간을 위해, 미묘함과 전율은 섬세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모든 귀한 것은 귀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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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사 결과가 말하는 바는 뚜렷하다. 중국을 둘러싼 모든 이슈에 정치가 깊숙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쿠데타 이후 윤석열과 극우세력이 들고나온 혐중 선동의 결과 혹은 ‘반작용‘이라고 풀이할 수있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 사회의 대(對)중국 정책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해석되고 좌우될 가능성이 높게 됐다. 이것이 공동체에 이로운 일일까? - P13

조사팀이 규정한 ‘혐중 집단‘의 규모는 전체의약 7%였다. 규모가 작은 만큼 전체 평균값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혐중 집단과 ‘비중 집단‘의 차이가 뚜렷해지는 결과가 나왔다.  - P13

반중 정서는 어쩌면 그 자체로 자연스럽다. 여러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해 시시각각 경제적·군사적으로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중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문제는 반중을 기치로 혐오 정서를 자양분 삼아 세력을 키우고, 공동체에 해가 되는 정책을 지지하는 집단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 선두에 선 이가 윤석열이다.  - P14

(2030 세대) 나름의 세계관에 밑바탕을 두며, 일관된 논리 구조가 있다. ‘중국은 부국이지만 정치적 수준이 낮은 독재국가다. 한국은 중국과 중국인들에게 직간접적 손해를 입고 있다. 중국이 한국의동맹국인 미국을 꺾을 가능성은 사실상없다. 중국에 반대하는 집회는 표현의 자유영역이다‘ 등이다. - P18

대장동 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 취지와 주요 혐의에서 무죄가 나온 이번 대장동 일당 1심 판결 결과를 종합하면, 항소는 당연한 수순으로 통했다. 실제 검찰은 일찌감치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항소 기한 마감직전에 지휘부가 돌연 결정을 번복하면서 항소장은 제출되지 않았다. 무죄로 선고된 내용들을 다시 다뤄볼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 P21

<시사IN>이 입수한 ‘택배분야 사회적 대화기구 1차 실무회의 논의 결과‘ 자료를 보면, 쿠팡 CLS는 밤 12시에서 새벽5시까지 배송을 중단하자는 택배노조의 제안에 대해 "배송 시간 부족으로 인한기사 과로 위험 증가"를 이유로 "수용 불가"하다고 답했다. 새벽배송 품목 제한도
"소비자의 수요가 다양하여 수용 불가"하다고 했다. - P27

구본창 소장은 "학령인구가 매년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사교육 시장이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물리적 시간을 트는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까지 와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사안은 정말 중요한 ‘선택‘이 맞다.
"경쟁에 용이한 구조를 청소년에게 만들어줄 것인지, 과열된 경쟁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후자에 방점을 찍는다면, 이번 조례 개정안은 ‘입시 경쟁을 줄이고 아동청소년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에서 퇴행한 결정이다." - P29

대통령실은 서울 내 주택공급을 ‘국가적 사안으로 여기고, 야당은 주택공급을 명분으로 정부를 비판한다. 부동산을 두고 펼쳐지는 정치권의 기묘한 대치 국면은 대중의 수요, 즉 ‘자산가치가 보전되는 서울 주택을 보유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 P33

이미 인공지능에 의한 혁명이 진행중이라면, 가장 시급한 일은 인공지능에게 어떤 윤리를 학습시킬 것인가를 정하는 데 있다. 그러지 못하면 인공지능이 바꿀 우리 모든 삶의 영역이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 P41

한반도 상황은 과거와 180도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 북한의 통일 전략 변화다. 북한은 남과 북을 ‘교전 중인 두 개의 적대국가라고 규정했다. 분단 이후 천명해온 통일 지향성을 포기한 것이다. 남북 사이에 직접 대화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둘째, 미국의 대북 접근 태도 변화이다. 한반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에 대해 "호감을 갖고 만나보고 싶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기존 미국 지도자들과 완전히 다른 행보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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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합본 2) -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합본) 2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정재곤 옮김 / 열화당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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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시구가 낭송되기 전에 이미 모든 주의력을 기울여 대기하면서, 단어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고, 마치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최대한 깊숙이 파고들듯이 임하려 애썼다. 하지만 간격이 어찌나 짧던지! 음절 하나가 내 귀에 닿자마자 이내 다른 음절로 바뀌었다. 여배우는 이미 장소를 옮겼고, 내가 탐구하고 싶었던 장면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생생한 현실과 마주하기를 기대한다면, 인공적인 도구를 통해 보는 방법은 실제로 그러한 현실에 근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본 것은 라 베르마가 아니라, 그저 확대경을 통해서 본 그녀의 이미지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 작아진 가운데 맨눈으로 포착하는 이미지가 더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라 베르마의 두 이미지 중 어느 쪽이 진짜일까? _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 p15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 화자는 연극 <페드르>에서 라 베르마의 연기를 지켜보며, 라 베르마의 진정한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연극의 재현 시간은 매우 짧기에 화자는 여배우의 이미지를 뒤쫓을 수밖에 없고, 여기에 무대와 객석과의 공간적 거리는 화자를 더 어렵게 한다.


 화자는 오페라글라스로 라 베르마를 바라보지만, 이내 의문에 빠지고 만다. 과연 확대경을 통한 인공적 이미지가 진정한 이미지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화자의 고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만약 공간적 배경과 분리된 여배우의 이미지가 진실이 아니라면, 카메라로 연속된 시간의 흐름을 절단하여 포착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또한 진실된 이미지라 할 수 있을까? 시간과 공간 속에서 드러나는 찰나의 부분적 이미지가 과연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가? 화자는 이 난해한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연극이 끝난 후 관객들의 반응에서 발견한다.


 흥미로운 건 관객들이 열정적으로 반응했던 순간이 라 베르마가 최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바로 그 순간이란 점을 내가 깨달았다는 점이다. _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 p16


 배우의 연기가 관객들이 <페드르>에 대해 품고 있던 이해와 기대에 부합할 때, 관객들은 열광한다. 그것은 자신들이 머릿속에 그리던 이상이 현실에서 완벽하게 재현된 것에 대한 찬사다. 대다수 관객이 감동하는 공연이 곧 성공적인 공연이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결국 관객이 무대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새로운 실재'가 아니라 자신들이 이미 '원하고 있던 이미지', 즉 일종의 '기억(혹은 선입견)'의 확인일 것이다. 이는 뱅퇴유 소나타의 인상이 반복을 통해 기억으로 강화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음악을 듣는 동안 복잡한 인상들에 직면한 우리의 기억은 미미할 뿐더러, 어린 시절의 추억에 절반쯤 젖어 있어 방금 들은 말도 일 분 후에 잊어버리는 사람의 기억처럼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기억은 다양한 인상을 대번에 제공하질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작품을 두세 차례 듣게 되면 그것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조금씩 형성된다. _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 p48


 화자가 라 베르마의 공연을 통해 그토록 잡고 싶어했던 진정한 이미지는 짧은 재현 시간으로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 화자는 뱅퇴유 소나타를 계속해 들으며 반복된 재생을 통해 이미지와 기억을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시간적 순서에 따른 재생이라는 음악적 한계로 인해 그것을 소유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이것은 화자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뵝퇴유 소나타의 가장 깊숙이 감춰진 부분을 간파해냈건만, 앞서 분간해낸 것은 내게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소나타가 나에게 가져다준 모든 것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사랑할 수밖에 없었기에, 나는 뵝퇴유의 소나타 전체를 소유할 순 없었다. 그것은 우리네 삶을 닮았다. _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 p49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를 통해 작품의 뮤즈는 질베르트에서 알베르틴으로 서서히 그리고 분명하게 옮겨간다. 지금은 '사랑하지만 언젠가는 무덤덤해질' 질베르트가 '오늘은 무덤덤하지만 내일은 사랑하게 될' 알베르틴으로 대체되는 순간이다. 먼 훗날 이 시기를 회상하는 화자에게, 알베르틴 역시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이미 완성된 결론이다. 하지만 질베르트가 떠난 빈자리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리치던 '그 순간의 화자'에게, 알베르틴은 고통을 잊게 해 줄 유일한 '상상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에서 시간은 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때로는 관객들이 박수와 환호를 지르는 순간과 라 베르마의 연기 순간이 일치하지 않고, 뵝퇴유 소나타의 이미지가 한 번에 형성되지 않듯이, 반복되는 예술처럼 시간은 반복 재생된다. 재생되는 시간 속에서 인식은 기억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이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영원'하다고 믿었던 사랑이 실은 스쳐 지나가는 것일 수도 있고, '희망'과 '절망'이 서로 상반된 가지를 뻗어가며 뒤덮이는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찰나의 순간 속에서는 결코 바라볼 수 없다. 긴 시간이 흐른 뒤 멀리서 조망했을 때, 즉 순간에 매몰되었던 자아와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자아가 서로 동의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사랑과 예술의 진정한 의미가 발견되는 것은 아닐까.


 동일한 사건은 서로 상반되는 방향으로 뻗은 가지를 가지고 있어서, 불행의 가지가 행복의 가지를 덮어 버리는 경우가 생겨난다. 나에게 자주 발생하곤 하는 일과 상반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즉, 기쁨을 욕망했는데, 욕망을 충족할 물리적 방도가 존재하질 않는 경우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나에게, 물질적 방도는 마련돼 있지만, 동시에 기쁨은 잃어버렸다. _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 p88


 우리네 삶의 다양한 시기는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우리는 지금은 사랑하지만 언젠가는 무덤덤해질 사람 때문에, 오늘은 무덤덤하지만 내일은 사랑하게 될 사람을 거만하게 내친다. 행여 그 사람을 만나기로 했더라면 더 빨리 사랑에 빠졌을지 모르고, 하여 그렇게 다른 사람으로 대체함으로써 지금의 고통을 실로 단축했을지도 모를텐데 말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지속되는 우리의 기다림은 앞서 보았듯이, 우리가 겪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상상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결정된다. _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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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과다야말로 힘에 대한 증거이다. ?모든 가치의 전도. 이것을 내세우는 사람에게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암담하고도 끔찍한 이 의문부호?이런 운명을 지닌 과제는 매 순간 태양에게 달려가라고 강요하고, 무거운 너무나도 무겁게 되어버린 진지함을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버리라고 강요한다. - P-1

‘문화-국가’란 단지 근대적 이념일 뿐이다. 이 중 하나는 다른 것에 의존해 살아간다. 다른 것의 희생에 의거해 번성한다. 문화가 융성했던 시대는 전부 정치적으로는 하강기였다:문화적인 의미에서 중요했던 것은 비정치적이었고, 심지어는 반정치적이기도 하다. - P-1

<어떻게 ‘참된’ 세계가 결국 우화가 되어버렸는지. 어떤 오류의 역사>는 《우상의 황혼》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다. 이 대목은 아주 간결한 몇 단어와 형식으로 형이상학의 역사를 오류의 역사로서 개괄하고 있다. 플라톤에서부터 그리스도교를 거쳐 칸트에 이르는 참된 세계와 가상 세계라는 이분법의 변천사가 제시되고, 실증주의를 거치고 니체에 이르러서 이분법 자체가 파괴되어버리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오류의 역사의 종말은 곧 형이상학적 사유의 종말이고, 이 종말은 니체에게서 가능해진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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