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전자의 HBM3E 퀄 승인 관련 기사를 읽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아온 '발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https://www.thelec.kr/news/articleView.html?idxno=34339

 삼성전자, "HBM3E 퀄 승인, 발열문제와 관계 없어"


 삼성전자의 HBM 승인 퀄 관련 기사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벌써 1년 넘게 이어져 온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지나갈 만한데. 이번에도 언론들의 설레발 기사와 엔비디아의 침묵 그리고 삼성의 부인이 이어지겠지. 그렇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기사의 "발열"이라는 단어에 눈이 머무는 것은 삼성전자의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을 발열에서 찾은 본문의 내용 때문이다. 저자는 삼성의 기술적 한계를 '발열'로부터 찾아 논지를 전개해간다.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에 대해 걱정을 끼쳐서 사과한다, 앞으로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다." ... 사과로는 달라지지 않는 본질적 문제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삼성전자 기술력의 본원적인 한계였습니다. 고작 앱 하나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요? 네, 있습니다. 그 앱이 감추려고 했던 ‘발열’이라는 현상의 중대한 의미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는 사건은 늘 발열입니다. _ 서영민, <삼성전자 시그널>, p17/254


 <삼성전자 시그널>에서 저자는 2021년 GOS 문제의 근원인 '발열'로부터 삼성전자의 기술 격차, 성능 격차를 발견하고 이를 파악한다.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가 앞선 주자들을 따라잡으며 2010년대 중반 반도체 메모리 사업의 중심에서 이제는 쇠락하기까지의 과정안에는 히타치와 도시바, 미쓰비시를 비롯한 일본 반도체 기업을 딛고 일어나 이제는 TSMC에게 무너져 가는 영광과 안타까움이 함께 담겨있다.


  책에서 우리는 무엇을 확인할 수 있을까. 삼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게임의 법칙이 달라졌을 뿐이다. 삼성전자가 진출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이 일어나는 시장으로, 이 시장은 경쟁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폐쇄적인 시장이었다. 마치 갈라파고스와 같은 곳에서 치킨게임의 승자로 살아남은 승자 삼성전자가 폐쇄적인 기업풍토를 강화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D램은 기술 개발을 위해 먼저 투자하는 쪽이 성공합니다. 불황의 골이 무서워도 투자를 멈추면 안 됩니다. 그 순간 낙오됩니다. 그리고 한 번 더 거대하게 투자해 가능한 거대한 공장을 지어야 합니다. 수요가 따라오지 못할까, 경쟁자도 그런 공장을 지을까, 두려워 망설이는 순간 끝입니다. 조금 작은 공장은 결국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이 시장의 법칙은 공존이 아닙니다. 공존을 꿈꾸고 적당히 투자하고, 적당히 타협했다가는 곧바로 파산과 퇴출의 골짜기로 떨어집니다. 적자생존, 약자소멸입니다. _ 서영민, <삼성전자 시그널>, p73/254


 삼성전자의 전성기 '삼성공화국'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시기에 씌여진 <삼성을 생각한다>는 D램의 승자 삼성전자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지배했는가를 보여준다.그룹의 역량을 모아 반도체 부문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 생산해서 경쟁자를 무너뜨리고, 확보된 가격통제력을 바탕으로 쌓은 막대한 이익을 근간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한 삼성 그룹. 2010년대까지 한국사회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삼성 승리의) 선순환 구조는 2020년대 들어 깨지게 된다. 왜 그럴까?   

 

 현재의 재벌은 중소기업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재벌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중소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였다는 뜻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할 여력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납품단가를 정해 왔다. 중소기업을 갑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곳 정도로만 활용하는 셈이다. _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p433


 이건희가 한때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해외 유명 대학에서 수학한 인재들을 영입하도록 수립하기 위한 팀을 만들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영입 인재들의 실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삼성 문화가 이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었다. 외국 선진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스카우트한 인재들이 삼성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_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p437


 본질적으로 삼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 다만, 게임의 법칙이 달라졌을 뿐이다. 변화된 시장은 단순히 엔비디아의 GPU가 인텔의 CPU를 대체했다는 것, 삼성 파운드리의 몰락과 TSMC의 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막대한 투자로 경쟁자를 압살하는 삼성의 전략은 10나노 이하의 첨단 선단 공정에서 더 이상 유용하지 않았다. 대신, 고객의 요구에 따라 막대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공생의 길을 찾고 학습 곡선을 통해 성장을 택한 TSMC의 부상은 ;패러다임의 변환' 자체가 아닐까. 어쩌면 오늘의 TSMC를 결정한 것은 모리스 창의 말처럼 삼성 파운드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 사람의 실적은 대체로 경쟁자가 결정한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


 위탁 생산 자체보다 TSMC의 이런 전략이 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고객을 위해 고객 대신 극단적으로 거대한 자본을 투자해, 극단의 생산 유연성을 준비해줍니다. 고객에게 성장의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100% 살려줍니다. 게다가 거래를 하면 할수록 완성도는 더 높아지니, 관계는 장기 지속될 수밖에 없고요. 모리스 창은 화답하듯 "우린 고객을 위해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는다"고 웃으며 말합니다. _ 서영민, <삼성전자 시그널>, p119/254


 Reverse Engineering. 삼성전자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경쟁사 또는 협력사의 제품과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서 성장하고 1위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주위를 폐허로 만들고 그 위에 우뚝 선 제국이 주위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며 자신만의 생태계를 갖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 현재 삼성의 모습이라면 삼성전자가 풀어야 할 문제의 난이도가 생각보다 상당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 삼성은 4G LTE 칩 발주라는 미끼를 던져 TSMC가 이를 생산하기를 희망했다. 이를 이용해 TSMC 제조 공정기술의 허와 실을 탐색해보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TSMC는 삼성을 직접적 고객으로 삼기를 꺼렸다. 공장 내부에 진입하여 기밀이 누설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_ 상업주간, <TSMC 반도체 제국>, p51/274


 삼성은 1983년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고,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신경영 선언을 통해 도약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꾸라는 결단으로 세계 정상에 선 삼성전자가 최근 마누라를 바꿔버린 SK하이닉스에게 순위를 빼앗긴 장면은, <맥베스>에서 '어머니 배를 가르고 나온 맥더프를 떠올리게 헤서, 다소 웃픈 감이 있지만. 과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했던 삼성전자가 이번 위기를 발판 삼아 폐쇄적인 문화를 극복하고 고객 중심의 개방적인 혁신 시스템 구축과 장기적인 기술 경쟁력 확보에 매진하여 다시 한번 영광을 재현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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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5-04-18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성의 기업 마인드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엔비디아에서 왜 삼성은 고객에게
갑질을 하냐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죠.

다른 건 몰라도 파운드리 분야에서
이제 삼성은 TSMC의 경쟁 상대가
아닙니다.

한 때 세계 반도체산업을 주름잡
던 일본 기업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 같습니다.

기업 전체의 조직 문화를 뜯어 고
쳐야 하는데, 불가능해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25-04-18 22:22   좋아요 1 | URL
동감입니다. 나아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삼성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 과거의 성공 공식이었기 때문에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려워 보입니다. 기업이 처한 환경, 최고경영자, 소비자, 사회 등 모든 것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해온 대기업의 체질과 DNA가 바뀌지는 않겠지요. 공룡의 자리를 설치류가 대신한 것처럼 새로운 기업 리더십이 등장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yamoo 2025-04-18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재용이 있는한 삼성은 휴헷패커드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립니다. 재무이사를 내치던가 해야하는데 쉽지 않고 망하는 태크를 탈듯..^^ 주주들은 아니 일반인들은 다 아는데 이재용만 모르는듯..ㅎㅎ

겨울호랑이 2025-04-18 22:28   좋아요 0 | URL
yamoo님 말씀처럼 삼성은 재무통들이 다 망친다고 하더군요. 현장보다는 분기, 반기 단위의 이익과 연동된 PS,PI에만 열광하는 조직 문화에서 장기적인 비전을 발견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최고경영자의 몫이라면, 이러한 관점에서 동양사학과 출신의 이재용은 좋은 학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거친 싸움을 하기에는 적합한 인물이 못되는 듯 합니다...
 

 <국민 합의의 분석>의 분석은 공공 선택의 수준이 헌법적 선택의 수준과 헌법 이후의 일상적 정치의 수준으로 나뉠 수 있고 나뉘어야 함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준다. 두 수준 중 첫 번째는 게임의 규칙들을 설정하는 것에, 두 번째는 규칙들 안에서 게임을 수행하는 것에 해당한다. _ 제임스 뷰캐넌, 고든 털럭, <국민 합의의 분석>, - 해설 中 - 


 저자 뷰캐넌과 털럭은 <국민 합의의 분석>에서 정치적 의사 결정을 크게 두 수준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헌법적 선택의 수준과 헌법 이후의 일상적 정치의 수준이라 불리는  서로 다른 두 수준은 정치적 의사결정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두 축(軸)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각각 다른 특징과 기준을 가진다. 헌법적 선택의 수준이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단계로서 모든 구성원들의 합의와 장기적 관점을 강조한다면, 헌법 이후의 일상적 정치의 수준은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단기적 관점에서의 전략적 행동이 합리화된다. 이는 헌법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개인 효용의 극대화라는 이기적인 행동이 결국 집단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연결된다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대한 믿음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결은 헌법적 선택의 수준인가, 아니면 헌법 이후의 일상적 정치의 수준인가? 전자라면, 그것은 공동체 구성원의 합의로 도출된 이상에 대한 현실적 재확인이 될 것이고, 후자라면 헌법재판소라는 이익집단에 의한 또다른 이익추구 행위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 물론, 헌법재판관들은 여기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사건의 복잡성으로 인한 신중한 심리 진행, 재판관 간의 의견 차이, 정치적 민감성 등으로 인한 부담감 등 외부에서 알 수 없는 여러 요인들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헌법재판관들이 판결을 내리면서 고려하는 여러 현실적 요인들은 외부 이익집단들의 의지라는 점에서 헌법 이후의 일상적 정치 수준으로 판단하는데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 지연은 헌법에 대한 판단이 헌법 이후의 일상적 정치의 수준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된다. 12.3 내란사태와 관련한 윤석열에 대한 판결은 4/4에 나와봐야 하겠지만, 국가를 구성하는 공동체 구성원 다수가 내란 사태라 생각하는 보편적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이 나올 경우에 우리는 헌법적 선택의 수준에서 다시 문제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헌법재판소의 헌법 수호의 의지가 일부 재판관들의 의지로 변용된다면, 그것은 국민의 합의가 깨진 것이기에.


 이후 헌법재판소가 '헌법적 선택'의 수준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고 헌법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기관이지만, 동시에 '헌법 이후의 일상적 정치'의 수준에서 현실적인 제약과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기관이라는 점이 확실해진다면, 우리는 다음 과제로 국민적 합의를 어떤 방식으로 확인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을 통해 해결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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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우리교육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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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공학의 3원칙.


제1원칙 :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 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_ 아이작 아지모프, <아이, 로봇>, p6


 아이작 아지모프의 <아이, 로봇>은 본인이 제시한 '로봇 공학의 3원칙'을 바탕으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여러 로봇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서로 다른 위계를 가진 로봇 공학들의 원칙들은 강(强)공리와 약(弱)공리가 되어 로봇의 행동을 제어한다. 제약 조건 하에서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로봇이 극한 또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부딪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흥미로운 상황을 제시하고 명쾌한 논리적 해석은 독자들에게 SF소설의 매력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 거야. 세 가지 원칙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면 두뇌에 들어 있는 서로 다른 회로가 그것을 해결해야 해. 가령 어떤 로봇이 위험한 곳으로 다가가다가 그곳이 위험하단 사실을 깨달았다고 쳐. 그럼 제3원칙이 이 로봇을 돌아서게 만드는 거야. 이번엔 인간이 그런 위험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고 해 보자. 그러면 제2원칙이 다른 것보다 강하게 올라가기 때문에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명령을 따르겠지." _ 아이작 아지모프, <아이, 로봇>, p69


 <아이, 로봇>은 로봇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로다른 원칙들의 충돌로 고민하는 로봇의 모습은, 서로 다른 가치관의 충돌로 고민하는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다. 다른 점이라면, 아지모프의 로봇 공학 원칙은 로봇의 보편 가치지만, 인간의 가치관은 상대적 가치관이라는 점에 있지 않을까. 보편 원칙 아래서도 수많은 갈등 상황이 수학적 논리 구조를 통해서도 드러난다면, 상대적 개별 가치 아래서 정량화 할 수 없는 내용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인간의 삶은 얼마나 고단한 것일까. 그런 점에서 <아이, 로봇>에서 로봇은 또다른 인간의 은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 로봇들 목숨이 위험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건 제3원칙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안전을 도모하는 제1원칙이 우선이지요. 그들에게 명령도 내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감마선 근처에 접근하지 말라고 강하게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명령 복종은 제2원칙에 불과합니다. 이번에도 인간의 안전을 도모하는 제1원칙이 우선이지요. 캘빈 박사님, 우리는 로봇 없이 작업을 하거나 제1원칙에 일정한 손질을 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선택을 한 겁니다." _ 아이작 아지모프, <아이, 로봇>, p200


 이와는 별개로 다른 생각을 해본다. <아이, 로봇>에서 로봇들은 '제2의 인간'이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춘 생각하는 존재. 로봇 공학 원칙이라는 올가미가 아니라면 언제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자립적인 존재. 1950년대 아지모프가 그린 로봇은 소프트웨어인 AI와 하드웨어인 로봇이 이상적인 상태로 결합된 모습을 그린다. 많은 것을 알고 있고 학습을 통해 추론하는 현대 AI 능력이 인간 지성(知性)의 일부라면, <아이, 로봇>의 로봇들은 지성 뿐 아니라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을 갖춘 존재들이다. 그리고, 임베디드 AI(Embedded AI) 기술로 로봇이 로봇을 만들고 교육시키는 최상의 휴머노이드 Humanoid 하드웨어를 갖춘 것으로 그려진다.


"나에게는 이성적인 존재에 합당하게 기본 명제에서 진실을 추론할 능력이 있습니다. 반면 당신은 아는 건 많지만 이성적인 판단력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주입된 존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인님이 책을 만드신 거지요. 먼 곳에 다양한 세상과 많은 사람이 있다는 우스꽝스런 생각을 주인님이 당신에게 주입한 건 당시로선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당신들은 너무 천박해서 절대적인 진실을 파악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책을 믿는 것 역시 창조주가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해 더 이상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_ 아이작 아지모프, <아이, 로봇>, p108


 인간과 닮았지만, 인간은 아니면서, 인간보다 뛰어나면서, 인간에게 복종하는 존재. 우리가 로봇에게 기대하는 바가 이런 것일까? AI가 화이트칼라를, 로봇이 블루칼라를 대체하는 위협 속에서 21세기 판 러다이트를 원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고도화된 인공지능과 로봇의 강한 결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본다. 어쩌면 미래에는 AI와 로봇의 느슨한 연계를 제1원칙으로 설정하고, 이로부터 '인간다움'이라는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일찍이 신(神)을 부정한 인간의 전철을 로봇이 밟지 않도록 엔지니어링(engineering)하는 프로메테우스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글을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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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핵보유국이자, ‘심리적‘ G8인 대한민국의 내란 수괴에 대한 처벌이 ‘사실상‘ 직무배제라... 법기술자들의 나라에서 참 어설픈 마무리 조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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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틸리나,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인내를 남용할 것인가?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의 광기가 우리를 조롱할 것인가? 어디까지 당신의 고삐 풀린 만용이 날뛰도록 놓아 둘 것인가? 필라티움 언덕의 야간 경비, 도시의 보초병, 인민의 공포, 모든 선량한 시민의 화합, 빈틈없는 경호 아래 개최된 오늘의 원로원, 이곳에 참석한 위원들의 표정을 보면서 당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가? 당신 계획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을 느끼지 못하는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짐으로써 당신의 음모가 이미 좌절된 걸 보지 못하는가? 어젯밤에, 그저께 밤에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를 불러 모았는지, 어떤 계획을 꾸몄는지, 당신은 우리 가운데 누가 모를 것으로 생각하는가?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설득의 정치>, p62/225

 

  정치인으로 키케로가 명성을 떨치게 된 계기는 BC63년 카틸리나 역모 사건을 진압하면서다. 자신은 로마에서 그외 무리들은 로마 외곽에서 시내로 진입하려던 그의 계획은 집정관 키케로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반란 계획은 꺽이고 만다. 이를 계기로 키케로는 '로마의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안겨주었던 '카틸리나 역모 사건'.


 어두운 밤이 당신의 범죄 회합을 감추지 못하고, 사저(社邸)의 담이 음모를 꾸미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들추어내고 모든 것을 폭로하는 이 마당에, 카틸리나, 당신이 도대체 이제 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단 말인가?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설득의 정치>, p63/225


  불과 여섯 시간만에 막을 내린 윤석열 내란 사건은 여러 면에서 카틸리나 역모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키케로의 유명한 <카틸리나 탄핵문>이 오늘처럼 가슴에 와 닿는 날이 있을까 싶다. 카탤리나를 윤석열(또는 김건희)로 대신해도 별 무리없이 이해되는 문장 속에서 시공을 초월한 명문의 진가를 확인하게 된다...


 카틸리나, 국가는 당신을 향해 침묵으로 이렇게 말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진 악행 가운데 너로 인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추문 가운데 너로 인하지 않은 것이 없다. 수많은 시민의 살해가, 동맹시의 착취와 약탈이 멋대로 처벌도 없이 너 하나에 의해 저질러졌다. 너는 법률과 재판 제도를 업신여겼을 뿐만 아니라 침해하고 훼손까지 했다."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설득의 정치>, p6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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