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발전기 교과서>, <풍력 발전기 교과서>는 가정에서 발전기를 직접 제조하는 방법이 담긴 DIY 매뉴얼이다. 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회사원인 저자가 전문 업체에 의뢰하지 않고 직접 부품을 사서 만든 소용량 발전기. 전문 업체에 의뢰할 때보다 평균 1/10정도 가격으로 발전기를 만들 수 있는 방법과 기재자 구입방법 등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기에 평소 환경과 기계 제작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관심을 가질만 한 책이라 여겨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들을 보면서 신재생에너지원에 대한 발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독자들은 책을 접하면서 화석연료와 결별한 자연친화적인 발전에 의한 에너지 독립에 대한 기대를 갖고 읽어갈 것이겠지만, 책을 덮으면서는 신재생에너지원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신재생에너지원만으로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는 없음을 자가발전을 통해 얻어진 전력량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가정에서 효율적인 전력 이용을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의 활용을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필요한 전력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에 결국 보조적인 전력공급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 가정용 발전의 현실이다. 물론, 향후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얻어지는 전력량이 상승할 수도 있을 것이며,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가 활성화되면 획기적인 변화가 가능하겠지만, 지금 당장 에너지 발전원의 급격한 변화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임을 생각하게 된다.

최근 AI혁명으로 불리우는 여러 변화는 막대한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전제 위에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앞으로도 전력 수요는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각국은 이러한 시대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고려한다면, 신재생에너지가 주류가 되는 시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신재생에너지, 2차 전지 산업을 선점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서방의 견제까지 고려한다면 그 시기는 더 미뤄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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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괴물> (사진출처 : 동아일보)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 裕和, 1962 ~ ) 감독의 <괴물>을 봤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여러 클리셰들을 파괴하며 관람객에게 반전을 선사한다. 그런 반전 중 하나가 악인 또는 빌런(villain)찾기다. 선-악 구도 설정 후 영화를 관람하는데 익숙한 관객들에게 감독이 선사하는 반전으로 자신의 구도를 무너뜨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진정한 악(惡)이 있는 것일까. 어쩌면 개인이 악이 아니라, 사회의 구도 속에서 악은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닐까. 영화에 담긴 여러 주제 중 이 부분에 시선이 머문다. 


  

 희생제의의 진정한 기능은 실제로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물과 그 희생물이 대체하는 인간 존재 사이의 연속성을 요구한다. 이 두 가지 요구는 아주 섬세한 균형을 취하고 있는 인접상태에 의해서만 동시에 충족될 수 있다. _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p61 


 사회라는 유기체는 체제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희생양은 축제라는 제의(祭儀) 속에서 사라져간다. 사람들은 성스럽고 반복적인 의식(儀式)을 통해 인간과 공동체의 연속성을 보장받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희생양에 대한 죄(罪)의식은 어떻게 소멸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희생양은 죽어야만 한다는, 악이라는 단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조금은 다른 지점에서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정체 속에서 '선거'라는 축제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정치적인 연속성을 보장받기 위해 반대편의 희생양이 요구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희생을 강요하는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각자의 이념 편향이 생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의 요구와 시스템은 개인을 악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자신이 속했던 공동체의 요구에 순응했다 이유로 처형을 받은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 속에서 우리 모두는 축제의 일원으로 동참한 것으로 면죄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논증을 위해서 피고(아이히만)가 대량학살의 조직체에서 기꺼이 움직인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은 단지 불운이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피고가 대량학살 정책을 수행했고, 따라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즉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읃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_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p382


 공동체 내의 구성원 모두가 희생양이 되어 악으로 지정될 수도, 행위로 악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가운데에서 우리는 광란의 축제에 휩싸이지 않고 깨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편향에 의해 제한된 시선으로 사회를 해석하는 이데올로기 대신 자신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와 왜곡될 가능성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부분 최적화가 전체 최적화가 아님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열린 결말과 통하고 있음을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다원주의가 지상의 낙원을 이룩할 처방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인류를 괴롭히는 최악의 정치 상황을 피하게 해주는 사상이라고 생각된다. 다원주의는 오늘날 각국의 사회가 달성한, 대단히 수준 높은 정치적 성과에 속한다(p75)... 다원적 사회에서는 정치적 지배를 위한 끝없는 싸움을 줄여 줄' 중첩적인 정치적 합의' overlapping political consensus가 필요하다. 이런 합의는 일종의 기본적 합의, 즉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측이 나머지 사람들에게 자신의 특정한 도덕성을 강요할 수 없다는 원칙에 근거해 있어야 한다. _폴 슈메이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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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4-01-07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인에 대한 과도한 악마화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이번 테러로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론과 정치계의 반응이 참담한 수준이네요.

겨울호랑이님<괴물>보셨군요! 저도 궁금했던 영화인데 서둘러 보고싶어지네요.^^

겨울호랑이 2024-01-07 12:11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괴물>은 지난 <헤어질 결심> 이후 가장 인상깊게 봤던 영화였습니다. 미미님께서도 좋게 보실 것 같네요. 오후부터 날이 추워지고 있네요. 미미님 건강하게 휴일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yamoo 2024-01-07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슈메이커의 책이네요. 몇 년 전에 이 책으로 새마나 했던 적이 있었는데 .교과서류의 책이라 공부하긴 좋았었죠. 다시보니 반갑네요..^^

겨울호랑이 2024-01-07 21:45   좋아요 1 | URL
교과서류의 책이라 말씀하신 것처럼 책이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너무 광범위한 범위를 다루는 탓에 단편적인 암기사항을 전달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모든 것을 다 가져가기보다 큰 틀에서 차이점을 이해하는데 중심을 두면 좋은 정치철학 개론서로 독자에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 책의 논제는 광기와 패닉의 순환이, 경기순환 파동과 함께 오르내리는 신용 공급의 변동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즉, 호경기 시절에는 신용공급이 상대적으로 빨리 증가하고, 경제성장이 둔화할 때는 신용 공급의 증가율이 종종 급격하게 떨어진다. 광기는 현재 및 가까운 미래 시점의 부동산가격, 주가, 상품가격, 혹은 특정 국가의 통화가치가 먼 미래 시점에서의 동일한 부동산가격이나 주가, 상품가격, 통화가치와 일관되지 않을 정도로 상승하는 현상을 동반한다. _ 찰스 P. 킨들버거 외,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39


 찰스 P. 킨들버거(Charles Poor Kindleberger, 1910~2003)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Manias, Panics and Crashes: A History of Financial Crisis>에서 자산의 미래 가치에 대한 개인이 소박한 기대가 자산가치 상승에 대한 열망으로, 개인의 열망이 대중의 군중심리로 변모되어 결국에는 극심한 공포와 절망 속에 무너져 내려가는 금융공황의 역사를 그려낸다. 


 광기 현상들의 특징은 전부 똑같지는 않지만, 한 가지 유사한 유형을 갖는다. 경제적 풍요감에 동반해 부동산과 주식, 상품가격의 상승이 나타난다. 가계의 부가 증가하고, 따라서 지출도 늘어난다. "이보다 더 좋았던 적이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는다. 그러는 사이 자산가격이 그 정점으로 치솟고, 곧 이어 하락이 시작된다. 거품의 파열은 부동산가격, 주가, 상품가격의 하락과 동반해 나타났으며, 이런 가격 하락은 종종 붕괴나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_ 찰스 P. 킨들버거 외,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38


 저명한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Irving Fisher, 1867~1947)마저 대공황 2주 전 "주가가 영원히 하락하지 않을 고원에 다다랐다. Stock prices have reached what looks like a permanently high plateau" 고 예측했을 정도로 예단하기 힘든 갑작스러운 붕괴는  순식간에 금융시장을 흔들고 전세계로 전파되며 공황상태로 이끌게 된다. 이러한 흐름에서 시장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가? 그것은 차입으로 인한 과다한 신용 공급 때문이다. 


 이상적인 교과서의 세계에서는, 금의 유입에 따라 금화의 유통 물량이 한 나라에서 증가하면 다른 나라에서 이에 상응하는 금의 공급 감소가 발생하고, 첫 번째 나라의 통화 공급량 증가와 신용 팽창은 두 번째 나라의 통화 공급량 감소와 신용 위축에 의해 상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두 번째 나라의 투자자들이 해외의 물가 상승과 이에 동반하는 이익 증가에 대응해 자국의 자산과 유가증권의 가격 상승을 예상하고, 이 자산들을 매수하기 위해 신용 수요를 확대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첫 번째 나라의 신용 팽창이 두 번째 나라의 신용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_ 찰스 P. 킨들버거 외,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67


 자산의 미래 가치에 대한 투자자의 과도한 기대 또는 투기는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선 차입거래를 일으킨다. 이러한 차입거래가 개인을 넘어 시장 전체로 확산되었을 때 시장에서는 과도한 유동성 공급이 일어나고, 이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는 순간 뱅크런(bank run)을 우려한 금융기관과 현금을 확보하려는 개인들도 시장의 유동성은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다. 시장 유동성의 다수를 차지하는 신용(credit)이 한 순간에 사라지면서 거품은 꺼진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을 수단은 없는가?


 붕괴란 자산가격의 폭락이며, 중요한 기업이나 은행의 파산을 의미할 수도 있다. 패닉, 즉 "이유 없이 엄습하는 공포"가 자산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유동성이 낮은 유가증권에서 빠져나와 현금이나 정부채권으로 달려가는 쇄도 사태를 동반할 수 있다. 금융위기는 붕괴와 패닉 중 어느 하나 혹은 둘 다를 포함할 수 있고, 붕괴가 패닉을 뒤따를 수도 있고 반대 순서로 진행될 수도 있다. _ 찰스 P. 킨들버거 외,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187

 

 저자 킨들버거는 광기, 패닉, 붕괴에 이르는 금융불안의 흐름 속에서 궁극적 대여자(the lender of last resort)의 역할을 강조한다. 궁극적 대여자는 국내 차원에서는 유동성 부족이라는 불안감을 차단하기 위한 신용공여자로, 국제 차원에서는 유동성 공급이 가져오는 환율, 국제수지 등으로의 파생을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킨들버거의 다른 책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 World Economic Primacy: 1950 to 1990>에서는 공공재를 공급하는 궁극적 대여자가 헤게모니(Hegemony)국가임을 말한다. 


 금융 불안의 본질은 신뢰의 상실이다. 불안 국면이 시작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사태가 올 것인가? 다시 말해 경제의 여러 측면들이 교정되면서 신뢰가 완만하게 회복될 것인가,  아니면 가격이 폭락하고 패닉이 발생하면서 예금을 인출하려는 인파와 함께 비유동성 자산을 처분하고 현금으로 전환하려는 쇄도가 벌어질 것인가? _ 찰스 P. 킨들버거 외,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169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에서는 금융위기 속에서 경제적 헤게모니를 갖는 유동성 공급자, 궁극적 대여자에 대해 말한다. 그렇지만, 실물과 화폐의 직접적인 가치 연계 수단이 닉슨 독트린 이후 사라진 오늘날, 무제한적인 신용공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연 불안정한 경제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백마를 탄 초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유동성공급책이나 금리 인하를 기다리기보다 근본적인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궁극적 대여자는 대중들이 실물자산과 비유동성 금융자산을 처분하고 현금으로 전환하려는 쇄도 사태를 중지시키는 데 필요한 만큼의 통화를 공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이 개념은 패닉이 발생할 때 화폐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량을 늘려주는 '탄력적인 통화 공급'이라는 개념이다. _ 찰스 P. 킨들버거 외,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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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1-29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독을 유혹하는 리뷰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23-11-29 20: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통화 10년(993) 12월 경진일에 유주(儒州 : 하북 延慶縣) 동천(東川)에서 사냥을 하고, 배천례(拜天禮)를 행하였다. 이 달에 동경유수 소항덕(蕭恒德 : 고려사에서는 蕭遜寧)  등이 고려를 정벌하였다. 

 통화 11년(993) 봄 정월에 임인일에 회골에서 조공하였다. 병오일에 내탕전(內帑錢)을 내서 남경의 통군사군(統軍司軍)에 하사하였다. 고려 왕 왕치(王治 : 고려 成宗)가 박양유(朴良柔)를 보내 표문(表文)을 올리고 죄를 청하니, 조서를 내려 여진에게서 취한 압록강(鴨淥江) 동쪽 수 백리 땅을 하사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_ 김위현 외, <국역 요사 상>, p242


 

얼마전부터 KBS에서 모처럼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을 시작하면서 원작소설인 <고려거란전쟁>와 역사서인 <고려사 高麗史> 등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진 듯하다. 성리학적 질서에 의존한 조선(朝鮮)과는 달리 동북아에서 세력균형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고려와 발해를 멸망시키고, 연운16주(燕雲十六州)를 통해 송(宋)을 직접 위협하고, 서하(西夏)를 아울렀던 요(療)와의 30년간의 전쟁과 승리는 역사의 통쾌한 순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고려와 거란의 30년 전쟁을 그들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통화 28년(1010) 5월 병오일에 고려의 서경유수(西京留守) 강조(康肇)가 그 임금 왕송을 시해하고, 왕송의 종형 왕순(王詢 : 고려 현종)을 맘대로 세우자, 각 도에 조서를 내려 '갑병을 잘 정비하여 동정[고려 정벌]을 준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가을 8월 무신일에 평주의 굶주리는 백성들을 진휼하였다. 정묘일에 황제가 스스로 군대를 거느리고 고려를 정벌한다는 사실을 사신을 보내 송나라에 알렸다. 

겨울 10월 초하루 병오일에 여진에서 좋은 말 1만 필을 진상하고, 고려를 정벌할 때 참전한 것을 간청하니 허락하였다. [고려] 왕순이 사신을 보내 군대의 출정을 멈추어 줄 것을 간청하는 표문을 올렸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11월 을유일에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니 강조가 맞서 대항하였으나 패배시키자, [강조]는 동주(銅州)로 물러나 주둔하였다. 병술일에 강조는 다시 출병하였으나, 우피실상온 야율적로가 강조와 부장(副將) 이립(李立)을 사로 잡았고, [달아나는 군사들을] 수십 리를 추격하여 죽였으며, 버린 군량미, 갑옷, 무기들을 노획하였다. 무자일에 동주(銅州), 곽주(霍州), 귀주(貴州), 영주(寧州) 등이 모두 항복하였다... 신묘일에 왕순이 사신을 보내 조근을 요청하는 표문을 올리니 허락하였다. 서경(西京)을 5일 동안 포위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성의 서쪽에 머물렀다. 고려의 예부낭중(禮部郎中) 발해 타실(陀失)이 항복하였다. 경자일에 소배압과 야율분노 등을 보내 개경을 공격하게 하여 고려 병사들을 패배시켰다. 왕순이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가자 마침내 개경을 불태웠으며 청강(淸江)까지 추격하였다고 돌아왔다.

 통화 29년(1011) 봄 정월 초하루 을해일에 회군하였는데, 항복한 여러 성이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귀주(貴州) 남쪽의 험한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 여러 날 동안 큰 비가 내려 말과 낙타가 모두 지쳐서 갑옷과 무기를 대부분 버리고, 날이 개자 겨우 강을 건넜다. 기축일에 압록강에 머물렀다. 경인일에 황후와 황제(皇弟) 초국왕 야율용우가 내원성에서 황제를 맞았다. 임진일에 조서를 내려 '각 군을 해산케 하라.'고 하였다. _ 김위현 외, <국역 요사 상>, p277


 <요사 療史>에서 고려거란전쟁 30년을 다룬 기록 중 가장 상세한 것은 요나라 성종(聖宗, 982~1031)이 직접 참전하고 강조가 이끄는 고려군을 참패시킨 통주전투(通州戰鬪)가 벌어진 제2차 고려거란전쟁이다. 대신 서희(徐熙, 942~998)와의 담판으로 인한 강동6주 할양과 강감찬(姜邯贊, 948~1031)의 귀주대첩 등은 간략하게 기록된 것을 보면 자국의 승리를 강조하고, 패배는 축소하는 경향은 어느 나라 역사서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상영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고려시대를 다뤘다는 점에서 반갑기도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국정기조와 맞물려 나온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아 조금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반되는 감정을 갖게 되는 드라마를 보며, 다른 한 편으로 서로 다른 두 당사자들의 시각을 비교해보는 것도 나름의미있는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개태 7년(1018) 12월에 소배압 등이 다하(茶河 : 삽교천)과 타하(陀河 : 청천강)에서 고려와 싸웠는데, 요나라 군대의 전세가 불리하였다. 천운군(天雲軍)과 우피실군에서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많았고, 요련장산온((遙輦帳詳穩) 아과달(阿果達), 객성사(客省使) 작고(酌古), 발해상온(渤海詳穩) 고청명(高淸明), 천운군상온(天雲軍詳穩) 해리(海里) 등이 모두 죽었다. _ 김위현 외, <국역 요사 상>, p300


 개태 9년(1020) 5월 경오일에 고려에 사신으로 갔던 야율자충이 돌아왔는데, 왕순(顯宗)이 표문을 올려 요청하기를 '번국이 되어 조공하고, 고려에 머물러 있는 왕인(王人) 야율지랄리(耶律只剌里)를 돌려보내겠다.'고 하였다. 야율지랄리는 고려에 6년 동안이나 잡혀 있으면서도 굽히지 않았으므로 임아로 삼았다. 신미일에 사신을 보내 왕순의 죄를 용서하고 아울러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_ 김위현 외, <국역 요사 상>,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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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11-28 0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 글이 참 반갑네요^^ 저도 덕분에 요사를 읽어보며 고려사를 좀 더 풍부하게 읽어가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양규 장군을 비롯하여 주변 장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제법 다루어지는 것이 기대가 됩니다. 요사를 읽으며 고려가 승리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역시 소략하다 싶었어요. 이 기회에 고려와 거란과 관련한 역사에 관심을 갖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3-11-28 09:51   좋아요 0 | URL
역사를 돌아보며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슬픈 역사보다는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사건들에 눈과 마음이 더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합니다.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그는 어떤 어부보다도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울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어두운 해류의 층마다 정확히 그가 바라는 수심에다 미끼를 놓고 그곳을 헤엄쳐 가는 고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난 정확하게 미끼를 드리울 수 있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단지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_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p38/228 


 주가 Price = 주당순이익 EPS * 주가수익비율 PER.


 주당순이익이 기업이 갖고 있는 실력이라면, 주가수익비율은 이러한 실력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말한다. 전자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점수라면, 이 점수에 등급(degree)을 부여하는 것이 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유명한 가치투자들인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1894~1976)과 필립 피셔(Philip Fisher, 1907~2004). 그레이엄이 <증권분석 Security Analysis>을 통해 정량적 가치에 초점을 맞췄다면, 피셔는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 Common Stocks and Uncommon Profits>를 통해 정성적 가치에 주목한다.


 보수적인 투자자는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어떤 업종이나 산업에 대해 현재 증권가에서 내리고 있는 평가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보수적인 투자자는 이런 평가가 해당 산업의 펀더멘털이 보장하는 것에 비해 더 긍정적인지, 혹은 더 부정적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사해야 한다. _ 필립 피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p76


  거칠게 요약하면, 그레이엄은 주당순이익에, 필립 피셔는 주가수익비율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레이엄이 기업의 절대가치를 파악해서 잔여자산의 유무를 파악해서 지지 않는 투자를 추구한다면, 피셔는 기업의 상대가치를 끊임없이 높일 수 있는 활동에 주목한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차이는 절대성과 상대성의 차이이기도 하다.

 

 보수적인 투자의 첫 번째 영역을 간단히 말하자면 생산과 마케팅, 연구개발, 재무 관리라는 기본적인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탁월한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첫 번째 영역은 결국 결과의 문제다. 반면 두 번째 영역은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이런 결과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인 필요한가에 관한 것이다. _ 필립 피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p24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수치를 해석하는 지성(知性)과 기업에 열광하는 감성(感性)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지향점을 찾아가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할 이성(理性)을 파악하는 문제는 바로 자신의 투자철학이 될 것이다. 필립 피셔의 장기투자라는 철학은 끊임없이 PER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기에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주당순이익은 저평가될 것이고, 주당순이익 없이 과열된 주가수익비율은 광기에 빠지기 십상이기에 이들 모두가 중요한 것은 물론이겠지만.


 

리스크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장기적인 투자가 훨씬 유리하다. 종합하면 단순히 수학적으로 생각하더라도 확률은 물론 리스크 대비 보상을 고려햘 때 보유하는 편이 더 낫다. 위대한 기업의 주식이라면 장기적으로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보다 단기적으로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게 틀릴 확률이 훨씬 더 높다. _ 필립 피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p149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의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에서 노인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바다에 대해 많은 경험을 갖고 바다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을 운(運)이라 여기지만, 반드시 그럴까. 어쩌면 그는 자신이 가진 미끼를 물고기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마케팅 활동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실력(EPS)는 우수했을지 모르지만, 고기와의 교감(PER)에는 부족함이 그의 실적(Price)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감 넘친 노인에게 피셔 3부작을 추천한다...


PS.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의 초판이 1958년이고, <노인과 바다>가 1952년 출판되었으니, 노인이 마음먹을 수 있다면 읽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도 아닌듯하다..


 주가의 결정적인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은 매우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다 : 어떤 개별 종목의 주가가 전체 주식시장의 움직임과 비교해 현저할 정도로 변동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주식에 대한 증권가의 평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p59)... 증권사의 "재평가" 문제는 주가수익 비율의 변덕스러움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다. 그러나 재평가가 결코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재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지금 기업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 것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_ 필립 피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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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11-13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가 주식 투자를 했으면 무척 잘했을 거 같습니다. ㅋ 그의 꼼꼼함과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을 봐서는요. ^^
헤밍웨이가 주식투자를 해 본적이 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ㅋ

겨울호랑이 2023-11-13 20:41   좋아요 2 | URL
아, 저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습니다. 지금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같은 궁금증이 드네요. 그렇지만, 만약 제가 헤밍웨이의 지인이라면 그와 주식에 관래서는 별로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식이 폭락하기라도 하면 라이플 세례를 받지 않을까 생각만해도 좀 무섭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