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꺼내들었다. 책을 읽으며 화자는 자신의 길을 찾았지만, 내 자신은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게 만들었던 책이라, 손에서 놓은 지 꽤 되었던 차다. 만화로 나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의 길을 잃어버린 나에게 시각적 지도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막연한 기대로 펼쳐들었지만, 19세기말의 시대상을 현대 독자들에게 인상적으로 보여줘 한결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눈에 들어온 부분들이 있었다. 마들렌의 과자를 먹는 화자와 뱅퇴유의 소나타를 듣는 스완.


 이들은 모두 외부자극에 의해 자신의 기억을 찾는다는 점에서 '비자발적'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와 동시에 이들 간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화자는 마들렌 과자를 먹으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반면, 스완은 뱅퇴유 소나타를 들으며 오데트와의 사랑을 되새기며 고뇌한다. 전자가 '미각/후각'이라는 여운을 남기는 감각을 통해 '개인의 시간'을 찾는다면, 후자는 '청각'이라는 일시적 감각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추구한다. 여운을 남기는 미각은 자신에게 머물며 자신의 시간을 돌려준다. 소멸되는 청각은 시간을 돌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에 의해 재생(연주)되어야 한다. 자립과 외부 의존. 그것은 문학과 음악의 차이로 연결된다. 화가의 캔버스와 작가의 문학작품은 '영속성'을 가진 높은 단계의 예술로 승화되어 화자에게 내면적 기쁨을 가져다주지만, 소멸하는 음악은 스완을 수동적인 감각의 덫에 묶어둔다.  뱅퇴유의 소나타가 스완을 오데트에게 묶였듯, 후에 화자를 알베르틴에게 묶였듯. 이러한 차이는 훗날 화자가 문학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차이는 화자에게 되찾은 시간 속에서 '게르망트 쪽 길'과 '메제글리즈(스완네) 쪽 길' 사이의 차이일 것이다. 영속과 순간, 예술과 감각적 사랑 사이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떠올리게 된다. 신앙과 제롬 사이 선택의 갈림길에 선 알리사의 모습은 게르망트와 메제글리즈로 향한 두 갈래길에 선 화자를 연상케 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알리사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위해 제롬을 버렸고, 좁은 문에 들어가는 대신 현실에서의 사랑과 자신을 잃는다. 반면, 화자는 게르망트로 가기 전, 메제글리즈로도 가본다. 알베르틴을 통해. 오데트에 대한 스완의 사랑은 알베르틴에 대한 화자의 사랑으로 변주되지만, 이러한 변주와 경험은 화자를 파멸이 아닌 한 단계 높은 완성으로 이끌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신앙과 예술이라는 서로 다른 목표를 두고, 두 갈래 길에 선 두 주인공의 선택은 이렇게 같은 듯 다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텍스트로만 읽을 때는 떠오르지 않았던 많은 부분을 만화라는 시각자료를 통해 찾게 된다. 화자의 미각/후각 그리고 스완의 청각. 이들을 지켜보는 독자의 시각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감각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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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이 알고 있는 이 사랑의 병은 너무도 커져 버렸고, 그가 가진 모든 습관이며 그의 모든 행동,
생각, 건강, 수면, 삶, 심지어 자기가 죽고 난 후 바라는 바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깊숙이 개입돼 있고,
그 자신과 완전히 한 몸을 이루고 있어서, 그에게서 그 병을 끄집어내려면 거의 그 자신을 송두리째 파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외과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자면, 그의 사랑은 더 이상 수술할 수 없는 상태였다. - P22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고, 스완은 이미 시작된 음악이 끝나기 전까지는 빠져나갈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사람들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몹시도 괴로웠다.
게다가 그는 오데트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곳에 발이 묶여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데트가 살롱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완이 미처 알아차릴 새도 없이, 오데트가 그에게 연정을 품었던 시절의 모든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 P35

창백하고, 뺨이 너무나 여위고,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고, 눈가가 거무스름한 오데트의 모습뿐 아니라,
그녀를 처음 만난 이래 다시 마주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나쁜 기분이 가실 때 흔히 그러듯, 또 정신 상태가 한껏 고양돼 있지 않은 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간헐적으로 불평을 내뱉었다.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내 타입도 아닌 여자 때문에,
내가 몇 년을 허비하고, 또 죽으려 했다니!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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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이 다른 똑똑한 사람에게 어리석게 보일까 봐 두려워하지않는 것처럼, 품위있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품격이 이를테면 대영주가 아니라무식쟁이한테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법이다. - P6

그러자 물결치는 선율 위로 잠시 동안 떠오르는 바로 그 악절을뚜렷하게 분간할 수 있었다. 그 악절은 듣기 전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특별한 관능을 일깨워 주었고, 오로지 그 악절만이 그런 기쁨을 줄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마치 미지의 사랑을 만난 듯했다. - P19

사랑이 싹트는 여러 방식 중에서도, 이따금씩 우리에게 거센 동요의 물결이 밀려들 듯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는 또 없을 것이다. 그런 순간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지며, 우리는 곁에 둘 수 있어 좋은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하기에 이른다. 그 사람이 주는 쾌락은 느닷없이 우리 내면에서 바로 똑같은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불안한 욕구로 대체되기에 이르는데, 실상 이같은 욕구는 도저히 채울 수도 없고 또 벗어 버릴 수도 없는 부조리한 욕구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소유하고픈 엉뚱하면서도 고통스런 욕구이기도 하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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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 버린 우리들의 과거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수고이다. 우리가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도 되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는 우리의 의식이 닿지 않는 아주 먼 곳, 우리가 전혀 의심해 볼 수도 없는 물질적 대상 안에 숨어 있다. - P13

물이 담긴 사기 그릇에 형체 없는 종이 조각들을 넣자마자종이가 퍼지고, 윤곽이 생기고,
색깔이 나타나고, 또 제각기서로 다른 모양이 만들어져꽃이 되고, 집이 되고, 우리가 잘 아는 사람 모습이 되는일본 놀이에서처럼, - P16

이모네 정원에 핀 꽃,
스완 씨네 넓은 뜰의 온갖 꽃들,
또 비본느 강의 연꽃은 물론,
순박한 마을 사람들, 작은 집들,
그리고 마을 성당, 나아가 콩브레 전체와 그 근방, 이 모든 것,
마을과 정원들이 모두 내 홍차잔으로부터 고스란히 살아서 나왔다. - P17

성당의 모든 것들은 나로 하여금 성당이 마을 전체와는 전혀 다른 무엇인 것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성당은 이를테면 사차원으로 이루어져(네번째 차원은 시간이다),
수세기에 걸친 오랜 세월을 통과한 커다란 배와도 같았다. 이 배는 성당의 이 열에서 저 열까지,
제단에서 또 다른 제단까지,
단지 몇 미터에 불과한 거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러 시대의 질곡을 굳건히 통과한 듯했다.
성당은 시간과 싸워 승자가 된 것이다. - P21

하지만 가학적 성격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벵테이유 양과 같은 부류의 사람은 실상 아주 감상적이고 본성이 착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데,
그 까닭은 그런 사람은 본성이 악한 사람과는 달리, 비록 육체적 쾌락을 좇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내심 나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설사 잠시 불순한 쾌락에 빠져들 때에도 자기 자신이나 공모자에게 타고난 본성이 아닌 악한 사람의 탈을 쓰거나쓰도록 하는데, 그들은 그렇게 해서 잠시나마 자기 자신을 속임으로써 조심스럽고 다정다감한 자기의 영혼으로부터 일탈하 여 비인간적 쾌락에 탐닉할 수 있는 것이다. - P61

이렇듯, 나에게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은 우리가 복합적으로 영위할 수밖에 없는 삶의 다양한 국민들이 서로 얽혀 있는 공간・여러 우여곡절과 자잘한 사건들로 풍요로운 공간, 요컨대 나의 지적 삶을 이루는 공간이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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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두 가지의 함의를 추출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은 트럼프와 협상해서 일본보다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둘째, 트럼프는 동맹국인 한·일 양국 모두에게 찬물을 뒤집어씌웠다. 한국은 ‘덜 가혹한대접을 받은 것뿐이다. - P10

가장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은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교통안전공단(TS)이 운영하는 ‘차세대 자동차정보관리시스템(Car365)‘에서 발생했다. Car365 홈페이지(car365.go.kr)에서 특정 자동차 번호가 포함된 URL을 입력할 경우, 해당 차량소유주의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된다는사실을 확인했다.  - P19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국민 보호의 제2 저지선 내지 제2 방어선으로 작동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은,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으로 전락한 이유는 검찰청이 수사권을 남용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보완수사권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 보완수사권 남용에 대한 철저한 견제 장치 없이 보완수사권을 공소청에 그대로 존치한다면, 이번에도 ‘검찰개혁‘의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 P34

 <불안 세대>의 저자조너선 하이트는 한국 아이들이 이미 엄청난 학업 스트레스로 어린 시절을 잃어은 버린 상태여서 스마트폰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우리 청소년은 스마트폰으로 더 나빠지지조차 못할 만큼 안 좋은 상태라는 뜻일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슬픈 이야기다. - P38

사람은 연약한 존재다. 나의 분노가 이글거리면 타인의고통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의고통을 인정받아야 타인의 상처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들어주는 게 다큐감독으로서의 내 역할이다. - P54

정원이라고 하면 식물을 먼저떠올리기 쉽지만 핵심은 식물보다돌이다. 몇백 년이 지나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가치를 지켜주는 게 돌이기도 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원을 조성할 때 핵심 기술 중 하나가
‘돌을 어떻게 놓을 것인가‘이다. - P57

축구판에서 사제지간은 옛말이다. 권력은 늘 강자 편에 서고, 그 힘은 대부분 대중적 인기에서 나온다. 당신이 축구감독이라서 본인 입맛대로 팀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신속한 태세전환을 권고한다. 자기 자식도 말이 통하지 않는 판국에 2025년 백만장자 청년 스타들이 본인 뜻대로 움직여줄 리 없기 때문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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