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가득히 뿌려진 별은, 별 하나하나에서 뿜어낸 여광(餘光)들은 서로 녹아 흘러서, 그야말로 은하(銀河)인가, 지상에도 천상에도 견사 같은 엷고 맑은 어둠이 부유(浮遊)하고 있는 아름다운 밤이다. 밤바람이 한랭하여 더욱 맑은 느낌인지, 멀리 있는 성당의 첨탑이 뚜렷하게 솟아올라 있다. _  박경리, <토지 7> , p400/514


 이번 주 토지독서챌린지 미션 :  '2부 3권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 소개'를 포함한 감상평 작성하기. 


 2부 3권에서 극적인 장면은 길상, 서희와 봉선의 반갑고도 어색한 재회지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맞닿은 지평선 끝의 성당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별이 뜨기 얼마 전에 울렸을 성당 종(鐘)소리가 사라지면서 이를 대신해서 떴을 별들의 모습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 ~ 1922 )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A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편에서 '성당'의 이미지는 마들렌 과자의 환상 이후 조금씩 다르지만 반복적으로 제시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이 '청각'과 '시각'의 이미지를 잘 살리는 듯하다.


 혼자 남은 내가 앞에 있는 녹색 덩어리에서 성당을 발견하려면, '성당'에 대한 관념을 보다 깊이 파헤쳐 보는 노력을 해야했다. 실제로 라틴어에서 모국어로 번역하거나, 모국어에서 라틴어로 옮겨야 할 때, 평소에 익숙한 형태를 벗어던져야만 문장의 의미를 더 잘 깨닫게 되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여느 때는 종탑만 보아도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어 그다지 생각해볼 필요가 없었던 그 성당이라는 관념에, 여기 담쟁이덩굴의 아치는 고딕식 채색 유리의 아치이며, 저기 나뭇잎들의 돌출부는 기둥의 돋을새김에 해당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환기해야 했다. 그러나 약간의 바람이 불어와 움직이는 성당 정문을 흔들자 빛의 소용돌이와도 같은 것이 일면서 전율하듯 번져 나갔고, 나뭇잎들은 파도처럼 부서졌고, 식물로 뒤덮인 정면은 파르르 떨면서 물결치듯 애무하며 사라지는 기둥을 함께 휩쓸어 갔다. _ 마르셸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p85/419 


 <토지 7>에서 이 아름다운 광경은 임역관과 공노인이 조준구를 만나기 전에 그려진다. 탐욕스러운 조준구에게 금광(金鑛)관련 정보를 흘리면서 접근하는데 성공한 두 사람. 이로써 서희의 조준구에 대한 복수는 은밀하게 성공적으로 시작되었다. 성공을 거둔 두 사람은 돌아오는 길에 같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조준구를 만나기 전 밤하늘은 아름다운 풍경에 불과했다면, 악인(惡人) 조준구를 만나고 다시 올려다 본 하늘은 하나의 깨우침을 주는 천지질서로 두 사람에게 보였을까. 


 밤하늘이 그 수많은 별들 운행같이 삼라만상이 이치에서 벗어나는 거란 없는 게야. 돌아갈 자리에 돌아가고 돌아올 자리에 돌아오고, 우리가 다만 못 믿는 것은 이르고 더디 오는 그 차이 때문이고 마음이 바쁜 때문이지. 뉘우침 말고는 악이란 결코 용서받을 순 없는 게야. _  박경리, <토지 7> , p581/614


 밤하늘을 보며 공감(共感)하는 두 사람. '성당'을 매개로 한 두 사람의 공감을 소재로 한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의 <대성당 Cathedral>을 떠올리게 된다. '대성당'에서도 두 인물이 등장한다. 볼 수 없지만, 느끼려고 했던 맹인과 그에게 '대성당'을 보여주려 했던 장교. 서로 넘어설 수 없는 '시각'과 '청각'의 한계를 인정하고 대신 '촉각'을 통해 교감했던 그들처럼, 임역관과 공노인이 악(惡)인 조준구에게 선(善)을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려 했다면 조준구의 결말은 달라졌을까. 아마도 모를 일이다. 이번 주 읽은 내용 중에는 실존인물 한 명이 지나가듯 나온다. 이인직(李人稙, 1862 ~ 1916)이다. 최초의 신소설을 쓴 작가이자 이완용(李完用, 1858 ~ 1926)의 비서로 활약한 친일행적으로 생을 마감한 그에 대한 내용 일부를 옮겨본다.


 1906년 2월 일진회(一進會) 기관지 <국민신보>의 주필을, 같은 해 6월 손병희, 오세창 등이 일진회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천도교 기관지 <만세보>의 주필을 맡았다. <만세보> 주필로 활동하면서 1906년 7월부터 10월까지 <혈의 누>를, 1906년 10월부터 1907년 5월까지 <귀의 성>을 연재했다. 1907년 7월 <만세보>가 재정적 이유로 폐간되고 친일 이완용 내각의 기관지 <대한신문>으로 바뀐 뒤 대한신문사 사장에 취임했고, 이후 이완용의 후원을 받으면서 그의 비서 역할을 수행했다... 1913년 11월 경학원이 전라북도 강사의 순회강연을 시찰할 때, 금산군에서 조선왕조의 통치를 비판하고 일제의 식민지배를 찬양하는 강연을 했다. 1914년 총독 데라우치의 조선합병을 칭송하고 일제의 무단통치를 덕치(德治)에 비유하면서 모든 분야가 발전하는 은택을 입었다고 식민통치를 미화했다... <친일인명사전> 中


  <토지 7>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로 평가되는 <혈의 누>를 쓴 이인직 이름과 함께 문학과 번역에 관한 대화가 이어지는데, 이러한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각은 근대문학(近代文學)과 근대화(近代化)로 이어진다. 뒤이어 생각은 네이션(nation)=근대국가(state)의 출현을 국민문학과 연결시킨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에 이른다.


 몇몇 식자들이 새로운 문명을 두고 왈가왈부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 일반대중이 짧은 시일에 눈을 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 얘기라구. 우물 안 속에서도 한 권의 소설을 통해서 그 나라의 풍물이며 새로운 사상, 그네들의 생활방도 종교 윤리관을 싹 훑을 수 있다면은 그런 작품의 소개란 상당히 시급한 일일 게고 몇 사람은 선구자가 있어야잖겠어? 물론 지금까지의 얘기는 번역하는 일인데 그런 다음." _ 박경리, <토지 7> , p435/514


 근대의 네이션이 성립하기까지의 '세계제국'에서는 라틴어나 한자나 아라비아문자라는 공통의 문자언어가 사용되었고, 또 각 민족이나 각 공동체의 종교를 넘어선 '세계종교'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입니다. 그런 '제국'이라는 것은 지배관계에 저촉되지만 않는다면, 각 부족의 습관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운데서 근대적 의미의 네이션(민족)이 출현했습니다. 그러나 네이션이 네이션이 되는 데에는 언어의 변혁, 즉 그런 '보편적'인 개념을 토착적이랄까 신체적/감정적 기반에 의거하는 것이 되도록 하는 언어를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언어란 음성언어 또는 속어입니다. _ 가라타니 고진, <문자와 국가> , p138  


  '언문 言文일치' 운동의 본질은 문자개혁이다... '언문일치' 운동은 무엇보다도 '문자'에 관한 새로운 관념에서 비롯되었다. 막부의 통역 마에지마 히소카를 사로잡은 것은 음성 문자가 갖는 경제성, 직접성, 민주성이었다. 그는 서구의 우월성은 음성 문자에 있다고 생각했고, 음성 문자를 일본어에서 실현시키는 일이 긴급한 과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 , p58


 가라타니 고진은 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국가 출현 이전에 민족의식을 보편화할 수 있는 언어의 출현이 필수적이었다고 바라본다. 이러한 관점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시대의 일본 지식인에게도 공통된 것이어서 이들은 기존의 '한자가나혼용' 대신 '가나'혼용을 주장하게 된다. 이론적-도덕적인 내용을 담는 '한자'와 , 감정과 기분 등 느낌을 담는 '가나'. 이들이 '언문일치'를 통해 한자 사용을 금하고자 했던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기존의 추상적 표현을 서구문화를 번역한 새로운 용어로 대체함으로써 그들은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그들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자에서는 형상이 직접 의미로 존재한다. 그것은 형상으로서의 얼굴이 직접 의미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표음주의에서는, 설사 한자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문자가 음성에 종속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얼굴'은 이미 맨 얼굴이라는 일종의 음성문자가 된다. 그것은 거기에 표현되어야 할 '내적인 음성=의미'를 존재하도록 만든다. '언문일치'로서의 표음주의는 '사실'이나 '내면의 발견과 근원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 , p62


 과거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새롭게 유럽의 제국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일본의 지식인들과 이들을 따라 근대화를 이루려 했던 구한말의 지식인들. 이인직처럼 이들중 다수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 속에서 언어와 문자 그리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글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글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분명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임을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근대문학을 다루는 문학사가들은 '근대적 자아'가 그냥 머릿속에서 성립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자기 self가 자기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추상적 사고 언어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언어 표상의 감각적 잔재가 내적인 것과 연결되며, 그에 따라 내적인 것 그 자체가 점차 지각되게 된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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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조해두고 싶은 또 다른 논점은 전 세계 금융자산의 상당 부분이 이미 여러 곳의 조세피난처(tax haven)에 은닉되어 있으며, 이런 사실이 전 세계 자산의 지리적 분포를 분석하는 우리의 능력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오직 공식적인 통계자료만을 근거로 파악하건데, 부유한 국가들의 순자산 포지션 수준은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과 비교해 마이너스인 것으로 보인다.(p555)... 가브리엘 주크먼이 계산한 추정치에 따르면 은닉 자산의 총액은 전 세계 GDP의 약 10퍼센트에 달한다.... 현재의 모든 증거 자료에 따르면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대부분의 금융자산(최소한 4분의 3)은 부유한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_ 토마 피게티, <21세기 자본>, p558


  토마 피게티(Thomas Piketty, 1971 ~ )는 <21세기 자본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전세계적인 부의 불균형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글로벌 자본세 Global tax on wealth'를 제안한다. 이는 매우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금융 투명성을 기반으로 누진적인 세계적인 자본세를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제안이 나온 배경에는 조세 피난처로 빠져나간 은닉 자금이 있다. 피게티는 2014년 <21세기 자본>에서는 전세계 GDP의 10%에 달하는 조세회피처의 은닉 자금 등과 같은 불평등을 낳는 자산 불평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2019년 <자본과 이데올로기 Capital et ideologie>에서는 이러한 자산 불평등의 역사적 기원을 찾아간다. 

 

 이론상 일국의 국제수지는 금융 흐름을, 특히 자본소득(배당금, 이자, 각종 이윤)의 유출과 유입을 측정할 수 있게 한다. 원칙적으로 유입과 유출의 총량은 매년 세계적 차원에서 균형을 이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통계 작업의 복잡함은 물론 소소한 편차들을 초래할 수 있지만, 이는 쌍방향으로 진행되어 시간이 흐르면서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1980 ~ 1990년부터는 자본소득의 유출이 유입을 초과하는 체계적 경향이 존재한다. 이러한 비정상을 통해 추산할 수 있게 되는 다른 나라들에 신고하지 않고 조세피난처에 보유한 금융자산이 2010년대 초에는 세계 금융자산 전체의 거의 10%에 달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모든 것이 그때부터 계속 증가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_ 토마 피게티, <자본과 이데올로기> , p566/1134


 조세 회피처에 숨겨진 자산은 전세계 평균 GDO의 10%로 추산되지만, 지역별로 이 비율은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 금융자산의 약 4%, 유럽의 10%, 러시아의 약 50%가 케이맨 군도(Cayman Islands) 등조세피난처에 은닉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조세 피난처 문제가 선진국 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게는 특히 심각한 문제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근 뉴스타파에서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주관으로 탐사보도 <판도라 페이퍼스 : 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 2021>를 내놓았다. 삼성그룹 회장 이재용, SM 엔터테이먼트 이수만, 전두환 씨 동생 전경환, 전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 등이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고 자금을 운영한 정황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전체 규모를 알기 어렵지만,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돈 역시 해외로 빼돌려지고 있음을 보도를 통해 실감하게 된다. 거칠게 계산했을 때, 2020년 우리나라 GDP가 1조6천240억 달러임을 생각해본다면, 평균 은닉률 10%로 계산했을 때 1,624억 달러의 돈이 국가 계정에서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보도를 언론에서 찾기 힘들다. 대신 이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한 '대장동 투기 의혹'만 과대포장되어 모든 언론에 보도되는 현실 속에서 '불평등이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피게티의 말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불평등은 경제적인 것도 기술공학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다. 이것이 분명 이 책에 제시된 역사 연구의 뚜렷한 결론이다. 달리 말해 시장과 경쟁, 이윤과 임금, 자본과 부채, 숙련노동자와 비숙련노동자, 내국인과 외국인, 조세피난처와 경쟁력, 이런 것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사람들이 배치하고자 선택한 법, 조세, 제정, 교육, 정치 관련 체계와 사람들이 스스로 속하고자 하는 범주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회역사적 구성물이다. _ 토마 피게티, <자본과 이데올로기> , p18/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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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기는 그리기에서 발달해 나왔다. 아마도 모든 민족은 색칠하기나 그리기, 긁기, 깎기 등의 수단을 동원해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다른 효용성을 일단 제쳐두면, 이들 그림은 메시지나 메모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유형의 기록과 메시지는 흔히 '그림문자'라고 불리지만, 이 용어에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기록과 메시지에는 표기처럼 항구적이고 이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확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들은 언어형식과 어떤 고정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따라서 언어형태의 미묘한 조절 기제를 공유하지 못한다. _ 레너드 블룸필드 , <언어 2>, p12


 레너드 블룸필드(Leonard Bloomfield)의 언어학 입문서인 <언어 Language>에서는 그림에서 시작된 문자가 어떻게 변천되었는가에 대한 과정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사물, 현상에 대한 사용된 그림이 보다 널리 사용되면서 '표준화'되고 점차 일반적인 표현방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자(漢字)의 상형(象形)은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점차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문자 표현을 요구했고, 이른바 육서(六書) - 상형(象形), 회의(會意), 지사(指事), 형성(形聲), 가차(假借), 전주(轉注) - 라는 원리로 발전되었음은 익히 아는 바다.  


 그림에서 실제 문자로 넘어가는 전이과정에 나타나는 또 다른 중요한 국면은 서자와 언어형식과의 연상관계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상황에는 그림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자질이 담겨 있다.... 그림의 사용자가 이런 문제를 만났을 때, 그는 실제로 자기 자신한테 말을 하면서 고민스러운 메시지를 이런저런 방식으로 언어화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언어는 결국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사물을 전달하는 의사소통의 한 방식이다. 이런 전제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림의 사용자가 차라 말을 하는 순서대로 일련의 서자를 배열하다가, 구어 발화의 각 부분(각각의 단어)을 모종의 서자로 표시하는 관습을 개발해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적인 문자표기는 이러한 단계를 전제로 한다.  _ 레너드 블룸필드 , <언어 2>, p15


 레너드가 말한 중요한 국면 - 서자(書字)와 언어 형식과의 연상관계- '그림이 표현할 수 있는 고비'를 만났을 때, 중국어는 개선(改善)을 통해 이를 극복했다면, 우리 글인 한글은 '그림 - 문자'라는 전통적인 관계를 끊고, '소리 - 문자'라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뛰어난 혁신(革新)의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의 결과 일부에게만 열려있던 정보(情報)의 독점 체제가 무너졌기에 3.1운동을 비롯한 조선 후기와 근대의 여러 투쟁에 민중의 참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쓰기는 비교적 최근의 발명품이다. 쓰기는 소수의 언어공동체에서만 어느 정도 오랜 시간 동안 사용되었으며, 이들 소수의 언어공동체 안에서도 아주 최근까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활동이었다.  _ 레너드 블룸필드 , <언어 2>, p11

 

 허웅 선생의 국어 운동은 국민의 글자생활은 한글만으로, 언어생활은 쉽고, 바르고, 고운 말로,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말글의 가치를 높이 받드는, 국어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활동이었다. 선생이 주창한 '한글은 우리 겨레와 민중을 위한 글자로 태어난 것이다'라는 생각은 글자생활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한 정신이다. 한글만 쓰면 모든 국민들이 모두 편하게 글자생활을 하며 모두가 문화와 정보를 누릴 수 있게 되지만, 한글-한자를 섞어 글자생활을 하면, 일정한 교육을 받은 지식층만이 문화와 정보를 누리게 된다는 점에서 한글만 쓰기를 주창한 것이다._ 허웅, <우리 옛말본> 서문 ,p16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1468)의 인쇄기가 없었다면, 종교개혁(宗敎改革)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역사의 평가를 볼 때, '인쇄기'라는 하드웨어가 아닌 '문자'라는 소프트웨어가 후대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설명할 수 없을만큼 클 것이다. 아마도 그 영향력은 개인적으로 청동기 시대의 '철기 혁명'에 버금가지 않을까. 한글날은 맞아 우리글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독일 전역에서 하급 사제들과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승들에 의해 루터의 주장이 널리 알려졌다. 이들이 개신교의 핵심 인물이었다... 이들에 의한 모든 것은 70여년 전에 발명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종교 개혁은 서적 출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518년에 독일에서는 단지 200여 권의 책이 출판되었으나 1519년에는 무려 900권이 출판되었던 것이다. 1521년 제국 회의에서 루터의 저서를 모두 불태우라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는 이미 50만 부 정도가 팔려나간 후였다. _ 마틴 키친, <케임브리지 독일사>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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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말아놓았던 지나간 세월은 풀어지고 연못가 그 자리로 돌아온 서희와 봉순이는 한 사내를 의식 밖으로 몰아내 버린다. 공동의 기억이란 순수한 것이다. 특히 어린 날의 그 공동의 기억 때문에 형제 자매 부모 자식이라는 의식의 유대가 지속되는지도 모를 일이라면, 이들이 비록 혈육이 아니요 신분의 도랑이 깊다 하여도, 서희가 남다른 아집의 여자라 하여도 이들의 해후가 슬프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7> , p153/514


 토지 독서챌린지 13주차. <토지 7>의 처음에서 간도로 떠나올 때 서희네와 헤어지게 된 봉순은 다시 이들과 만나게 된다. 혜관 스님과 함께 나타난 봉순. 오랫만에 만난 이들이지만, 흐른 시간이 적지 않았던 만큼 이들 사이에 놓여진 간격 또한 너무도 멀었다. 예전에 아기씨 서희를 지키기 위해 호위무사로 의기투합한 길상과 봉순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기녀(妓女) 기화(紀花)가 된 봉순. 서희의 남편이 된 길상. 애기씨에서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의 아내가 된 서희. 봉순은 이들과의 만남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봉순이...... 하인하고 혼인을 했다 해서 최서희가 아닌 거는 아니야. 나는 최서희다! 최참판댁 유일무이한 핏줄이야. 이곳 사람들은 호기심에 차서 나를 바라본다. 고향 사람들은 힐난의 표정으로 내 얼굴을 외면한다. 모두들 나를 격하하려 들고 있다. 봉순이 그 아이는 더욱더 그러하겠구나. 최참판네 가문이 시궁창에 던져졌다 생각할 게 아니냐? 시녀였던 그 아이가 사모하던 하인이 지금은 내 남편이야.' _ 박경리, <토지 7> , p173/614


 봉순의 생각을 서희도 모를리가 없기에 서희 역시 봉순을 편하게 대할 수가 없다. 은연중에 가졌을 봉순에 대한 미안함, 과거 자신을 돌봐주었던 사실에 대한 고마움을 애써 뭉개며 자존심을 세우는 서희. 이러한 서희의 모습에서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1775 ~ 1817)의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된다. 


 샬럿이 말했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으니까. 가문이며 재산,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렇게 훌륭한 젊은이가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잖아. 이런 표현을 써도 좋다면, 그분은 오만할 권리가 있어."... "오만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흔한 결함이야." 메리가 자신의 깊은 사고력을 뽐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_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 p22/438


 모든 것을 다 갖춘 이가 자신의 자질에 대해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오만. 샬럿의 말에 따르면 여러 면에서 서희는 오만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거기에 더해 메리의 말처럼 오만한 것이 일반적인 성향이라고 한다면, 봉순과 대면하는 서희가 가졌을 오만함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거의 모든 것을 잃고 도망치다시피 간도로 건너온 서희. 이제는 재산을 쌓아 과거 최참판댁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지게 된 그는 누구보다도 오만할만한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그것이 권리가 되어 남들에게 '허영'으로 보여졌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길상은 고독했다. 고독한 결혼이었다. 한 사나이로서의 자유는 날개죽지가 부러졌다. 사랑하면서, 살을 저미듯 짙은 애정이면서, 그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던 애기씨, 최서희가 지금 길상에게는 쓸쓸한 아내다. 피차가 다 쓸쓸하고 공허한가. 역설이며 이율배반이다. 인간이란 습관을 뛰어넘기 어려운 조물인지 모른다. 그 콧대 센 최서희는 어느 부인네 이상으로 공손했고, 지순하기만 하던 길상은 다분히 거칠어졌는데.  _ 박경리, <토지 7> , p171/514


 물론, 부부간의 문제가 어느 한 편의 문제인 경우는 극히 드물기에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문제가 있겠지만, 한때 '아씨- 하인' 관계가 이들 부부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면에서 오만한 서희와 '콧대 센 아기씨'라는 편견을 가진 길상 내외는 다른 면에서 한국판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들이 아닐까 한다. 다만, <오만과 편견>에서는 오만한 피츠윌리엄 다아시와 그에게 편견을 가진 엘리자베스 베넷이 결혼을 하면서 신데렐라와 같은 동화같은 결말로 나아가지만, 후자는 극적인 결혼 이후 점차 식어가는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판이 보다 현실적이라 하겠다. 


 이와 함께 <토지>의 또다른 커플 '윤이병 - 금녀'는 다른 의미에서 이루어지지 못한다. 어린 시절 서로 좋아했고, 그 결과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으나 현실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깨진 사랑의 전형을 이들 사이에서 떠올리게 된다.


 아무튼 금녀는 이제 윤이병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핀 꽃이었다. 손에 닿지 않기 때문에 한층 요염하게 핀 꽃이었고, 욕망으로써도 꺾을 수 없는 꽃을 방편으로 어찌 꺾을 수 있을 것인가.(p202)... 금녀를 좋아한 건 사실이야. 금녀의 집안이 망하지 않았다면 결혼을 했을지 몰라. 처가의 후원을 받아서 일본으로 유학하고, 결국 금녀도 나도 불운했던 거야. 교회당에 나오는 처녀 중에 금녀가 젤 예뻤지. 감히 김두수 같은 놈, 언감생심이지. 찬송가를 부를 때 금녀는 천사 같았어. 그런 금녀가 점박이 병신을 좋아해? 아닐 거야. _ 박경리, <토지 7> , p207/514


 이처럼 이번 주에 읽은 <토지 7>에서는 과거와는 달라진 이들의 사랑 이야기들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과 같이 여러 사연을 가진 이들의 사랑이 모두 같은 밝기를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 어둡고 힘든 시기에 이들이 겪는 사랑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진다...


 시기와 조롱을 면전에서는 교묘히 감추는 뭇시선 속에 상처받기론 마찬가지다. 그 상처를 서로 감추고 못 본 척한다. 왜 드러내 보이고 만져주고 하질 못하는가. _ 박경리, <토지 7> , p17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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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0-10 03: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젊은 시절 읽었던 토지에서는 길상과 서희의 관계가 식어가는게 이해가 어려웠었는데 지금은 너무 잘 이해돼서 좀 슬퍼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1-10-10 08:14   좋아요 0 | URL
저는 뒤늦게 읽어서 그들의 관계가 잘 이해되었지만, 만약 저도 결혼 전에 읽었다면 안타깝게만 느꼈을 듯 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것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왜 멸종했으며 어떻게 해서 해부학적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 대신 그의 성공 역사를 전세계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p66)... 모든 생활의 중심은 사냥, 도살, 도축이었다. 동물은 생존에 필수적인 고기, 지방, 골수를 제공했고 거기에 더해 가공해 사용할 수 있는 털, 힘줄, 뼈, 뿔도 제공했다. 요컨대 동물은 식량으로, 또 도구로, 의복으로, 나아가 집을 짓는 자재로 남김없이 이용되었다. _ 헤르만 파르칭거,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 p78/962

 얼마 전 대통령의 지시로 '개 식용 금지 검토'가 보도되면서 오랜 한국 사회의 논쟁 중 하나인 '개를 먹어도 좋은가'가 잠시나마 이슈가 되었다. 찬반의 여러 논리가 있지만, 크게 묶어본다면 '개는 다른 가축과 다른가?'에 대한 물음으로 돌릴 수 있을 듯하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얇게나마 이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공존했던 시기로 약 3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헤르만 파르칭거(Hermann Parzinger, 1959 ~ )는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Die Kinder des Prometheus: Eine Geschichte der Menschheit vor der Erfindung der Schrift>에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저자는 기후, 종족의 특성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기에 특정하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책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말하듯 이 시기의 중심이 '수렵(狩獵)'이었다는 사실은 독자들에게 사피엔스의 생존과 관련된 어떤 관련성을 추측케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사실은 유럽의 후기구석기시대 현생인류는 그 이전의 인류종과는 달리 투창가속기라는, 사냥 성공률을 확실히 높일 수 있는 일종의 기계를 발명했다는 것이다. 즉 당시 인류는 자연환경에 일방적으로 적응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활이 그때그때 사냥 운과 같은 우연적 요소에 덜 좌우되도록 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위해 계획적으로 목표의식을 갖고 사냥 도구와 기술을 개선시켰다. _ 헤르만 파르칭거,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 p126/962


 후기구석기시대를 공존하던 인류의 두 종(種)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개발된 여러 개발된 사냥도구들은 이러한 노력의 성과물로. 두뇌의 용량도 비슷하고 같은 수준의 문화를 누리던 이들의 결과물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본다면, 이러한 새로운 도구의 개발이 생존의 견인차가 되지는 못할 듯하다. 그렇다면, 사피엔스가 해냈고, 네안데르탈인이 하지 못했던 일 - 가축화 -가 수렵 생산성에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었을까.  


 당시 인간이 개를 길렀던 것은 시간이 더 지난 후 다른 가축을 기르게 됐을 때 가졌던 목적과는 아주 다른 이유에서였다. 다른 가축들의 경우 고기와 젖 그리고 털을 공급받기 위한 목적이 주였다. 이에 반해 갯과 동물은 가장 환영받는 사냥 조력자였다. 추정컨대 갯과 동물은 처음에는 인간이 사냥하고 남은 것을 주워 먹기 위해 야영지 근처에 머물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과 더욱 친밀하고 지속적인 공동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었을 것이다. _ 헤르만 파르칭거,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 p74/962


 파르칭거가 인간과 개의 공생을 '사냥 조력-음식 제공'이라는 경제적 교환관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면, <최초의 가축, 그러나 개는 늑대다 The First Domestication: How Wolves and Humans Coevolved>에서 저자들이 보여준 관점은 한 단계 나아간다. 늑대 중 일부가 자신들의 무리 대신 인간을 동료로 택하고, 인간(호모 사피엔스) 역시 늑대집단의 특성을 받아들이면서 생존을 위한 보다 나은 결과를 얻었다는 것으로 이들은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를 통해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렌시스를, 개는 늑대보다 생존에 우위에 서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생인류와 조우한 최초의 늑대들은 사자와는 매우 다른 방법으로 인간과 상호작용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이 늑대들은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심지어 호모 에렉투스 같은 호모 속의 다른 구성원들 옆에서 수천수만 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들과 친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늑대는 이들과 사회적 유대를 맺거나 장기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늑대 표현형의 분명한 변화를 이끈 유대조차 없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더 몸집이 크고 더 육체적으로 강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를 유럽과 아시아 전체에서 밀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사피엔스가 늑대를 파트너로 가졌던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Coren 2006 ; Shipman 2015) _ 레이먼드 피에로티외 , <최초의 가축, 그러나 개는 늑대다> , p119


 인류가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퍼져나가면서, 인간 집단의 사회성은 영장류 모델을 더 이상 닯지 않고 갯과 동물 모델의 요소를 반영하기 시작했다.(Schleidt and Shalter 2003)...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는 순록, 말, 들소 같은 유제류처럼 떼를 지어 이주하는 동물을 먹고 산 '최초의 목축업자'이기도 하다. 마지막 빙하기 동안 인간 집단은 늑대의 목축 생활과 집단행동방식을 받아들였다.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아마도 아시아 동부의 호모 에렉투스 같은 시간적으로 더 앞선 다양한 호모 속이 현생인류에게 일을 내주고 개가 늑대로부터 분리되면서, 두 종 모두 종안과 종 사이에서 더 협력적으로 상호작용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때다. _ 레이먼드 피에로티외 , <최초의 가축, 그러나 개는 늑대다> , p123


 이런 관점들을 종합해 본다면, 수렵시대부터 시작된 '개'는 다른 가축과는 분명 다르다. 고기와 젖을 얻기 위해 기르기 시작한 소, 양과 같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동물이 아니었으며, 인류와 비즈니스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는 고양이와 같지만, 농경시대 이후로 가축화된 고양이보다 이른 시기에 손잡은 혈맹(血盟)이라고 본다면 지나치게 나간 것일까. 이런 역사적인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개는 다른 동물과 다르다'는 주장이 단순히 반려견을 집안에서 키우기 때문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런 면에서 '개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인류와 개와의 전통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문제가 아닐까를 생각하게 된다. 다만, 법을 통해 관계 회복을 강제하는 것보다는 우리들 스스로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바람직할 것은 물론일 것이다. 서유구 徐有榘, 1764 ~ 1845)의  <임원경제지 林園經濟志> <정조지 鼎俎志>에는 '개'고기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위장의 기운을 보하고,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기력을 북돋는다는 효능도 소개되지만, 이와 함께 해(害)로운 점도 많은 것을 보면 전통적으로도 평소 즐겨 먹는 음식은 아닌 듯하다. 


 <본초강목 本草綱目> 개고기는 그 성질이 상륙(商陸, 자리공뿌리)과 상반되고, 살구속씨를 꺼린다. 마늘과 함께 먹으면 몸을 해친다. 마름과 함께 먹으면 전간(癲癎)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개는 구워 먹어서는 안 되는데, 구워 먹으면 소갈병에 걸리게 한다. 임산부가 먹으면 아이가 말을 못하게 된다. 열병이 있은 후에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 야윈 개는 병이 있고, 미친개는 발광하고, 저절로 죽은 개는 독이 있고, 발굽 뒤에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 개는 몸을 해친다. 넓적다리가 붉고 부산스러운 개와 누린내가 나면서 눈이 붉은 개는 모두 먹어서는 안 된다. _ 서유구, <임원경제지> <정조지1>, p302 


 이번 페이퍼를 쓰면서 가축화된 동물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냥 친구 개, 창고 지킴이 고양이, 경작 도움이 소 등등. 이들 모두 인류 문화가 바뀌면서 전통적이 역할에서 벗어나 귀염받거나 아니면 고기를 제공하는 관계로 변화되었음을 역사 안에서 바라본다. 이와 같이 사회, 문화가 바뀌면서 관계가 다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우리 가치의 중심을 인간에 두지 않는다면 우리 인류는 사회를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물음으로 돌아오면서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다음주제는 '노동가치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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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10-08 1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담번 주제도 몹시 기대됩니다. ^^

겨울호랑이 2021-10-08 11:55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마침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을 읽고 있습니다만, 그 전에 먼저 토지 독서 챌린지 페이퍼를 올려야 할 것 같아요. 참 한 주가 빠르게 지나갑니다. 북다이제스터님 점심 맛있게 드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

북다이제스터 2021-10-13 08:59   좋아요 1 | URL
존 로크가 처음 제시하고 애덤 스미스와 리카르도가 자신들 경제이론의 바탕으로 삼은 노동가치론은 자체의 모순을 가진 듯 보입니다. 마르크스도 노동가치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듯 합니다. 그들은 노동가치를 주장했으나 결국 왜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10-13 09:05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도 이미 아시겠지만, 마르크스는 <자본>과 <잉여가치론>에서 기존의 경제학자들이 가졌던 노동가치론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자신의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당시에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이 제시한 사상은 분명 기존 경제학자들보다는 앞서 나간 것이겠습니다만,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1-10-14 19:27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 글 기다리고 기다리다 제가 먼저 정리해 봤습니다. 제 이해가 맞는지 한 번 봐주세요. ^^

노동은 가치 있을까?

 

인류의 모든 이론이 그렇듯 ‘노동가치론’도 역사에 따른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이론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탄생 배경과 전승 과정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할 듯싶다. 동양도 그렇지만 서양 경제사는 ‘땅 소유자(지주)와 화폐 소유자(상인)’ 간 다툼이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계급투쟁 역사는 농촌과 도시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지적했을 때, 염두에 둔 것이 바로 이러한 경제 역사였을 것이다. 동양에서는 토지를 보유한 귀족[士]이 상인[商]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사농공상(士農工商) 이념 지표를 2000년 동안 유지했던 것도 그렇고, 중세 유럽에서 상업이 유대인에게만 제한되었던 것도 그렇다. 또한 부르주아(상인)가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지주)을 상대로 세상을 바꿔보자고 일으킨 프랑스혁명도 그렇다. 땅 소유자가 지배하는 시스템을 ‘봉건주의’라 한다면, 상인이 지배하는 시스템을 ‘자본주의’라 할 수 있겠다.

 

잠시 예를 들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이념을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이라고 표현한다면, ‘자유’는 경제 관념을, ‘민주주의공화국’은 정치 관념을 의미한다. 이렇듯 경제와 정치 관념을 서로 때어내어 국가 체계를 설명할 수는 없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두 가지 정치경제 사상이 있었다. 땅 소유자가 내건 정치 슬로건이 ‘귀족정’이고 화폐 소유자가 내건 슬로건은 ‘민주정’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민주정은 자본주의와 잘 어울린다. 아무튼 고대 그리스 이후 귀족정과 민주정 다툼은 로마가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동지중해를 석권하여, 군사적인 토지 세력이 해상 상업 세력에 승리를 거두었고, 마침내 고대 세계는 로마의 토지 세력 아래 통일되었다. 이후 1500년 간 유럽에서는 토지 세력이 지배하는 봉건 시대가 지속되었다.

 

봉건 시대를 종결하고 자본주의 시대, 즉 상인이 지배하는 시대가 열리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정신이 새로운 이론을 요구했고 존 로크가 이에 응답했다. 칼 폴라니가 지적했듯이 화폐가 지배하는 상인 시대 특징은 “부(富)의 모든 형식 중에서 오직 돈만이 정해진 한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사용을 위해서 궁전 다섯 개를 짓기 원하는 상인도 궁전 5000개를 짓는 일에는 망설일 것이다. 하지만 상인은 궁전 5000개 가치를 돈으로 축적할 수 있고 또 그 돈을 보유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상인이 그 만큼 많은 자신 돈을 권력이 있는 왕이나 귀족, 반란 민중 등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고 안전하게 보유할 수 있는 ‘소유권,’ 즉 재산의 배타적 권리가 중요하게 된다. 당시 사람들을 지배하던 일반적인 생각은 ‘만일 지상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면 모든 인간들이 쓰도록 주어진 특정 자연물을 어떻게 몇몇 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가?’였기 때문이다.

 

존 로크는 ‘소유권이 당연하다’는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천부인권설’을 대전제(공리)로 끌어들인다. 천부인권이란 개인 신체는 자신 소유이며, 자신 몸을 소유할 권리는 천부적 권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직접 수행한 노동으로 획득한 대상도 자신 소유가 된다는 노동가치설을 만들어 낸다. 아래 자세한 이유를 언급하겠지만 토지나 생산 도구로 만든 가치는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로크가 모든 소유권을 정당화한 것은 아니다. 로크는 내가 소유하고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소유할 것이 남아 있는 한에서만 나의 소유는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바로 로크는 자연과 달리 화폐에 한계가 없기에 화폐를 근거로 자본의 부 축적과 소유를 정당화한다.

 

정치경제학에서 노동가치의 ‘가치’란 ‘의미있다’는 뜻으로 사용되지 않고 ‘어떤 상품 가격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와 관련 있다. 즉 가치가 서로 다른 물건이 교환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통의 척도 또는 매개가 있어야 한다는 가격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기 위해 생산 과정에 투입된 것은 생산 수단과 노동력이라는 두 요소다. 여기에 토지는 포함되지 않는다. 토지는 소유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고대 이스라엘 왕국은 신의 이름으로 토지소유를 불법화 했으며, 우리나라 경우 ‘왕토’라는 이름으로 대부분 토지는 국가 소유로 남았다. 왕토사상은 토지의 유일한 소유자가 왕이니 토지는 원칙적으로 누구에게 넘겨줄 수 없다. 물론 사고 팔 수도 없다. 그러므로 관리를 임용해도 급료로 토지 자체를 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급료는 줘야 한다. 절묘한 해결책이 있다. 관리에게 토지 생산물을 수취할 권리를 내주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18세기까지 대부분 땅은 매매 불가능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적어도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땅은 소수가 독점적으로 소유하거나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었다.

 

생산 수단은 일반 상품처럼 특정한 노동에 의해 이미 생산된 상품으로 구입되어, 그 가치가 생산 과정에 그대로 이전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남는 것은 노동력뿐이다. 노동력은 로크 말처럼 새로운 가치를 첨가하거나 생산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노동이 가치를 생산한다. 애덤 스미스는 처음에 로크 이론을 받아들였다. “모든 물품의 진정한 가격은 그것을 얻기 위한 노동과 수고다. 노동은 최초의 가격, 곧 모든 사물의 대가로 지불되는 최초의 구매 대금이다.” 즉 노동을 제외한 땅의 천연자원이나 생산 수단은 단지 인간 노동이 만들어낸 수많은 결과물로서, 최종적으로 사용 가능한 형태를 위해 변형된 자원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노동가치가 이윤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상품 가격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애덤 스미스는 가치 근원이 노동에 있다는 존 로크 출발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노동 가치설을 전개했지만, 나중에 노동에 의한 가치 결정은 자본가와 지주가 없는 세상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노동가치론을 포기했다. 자본주의 생산 방식에서는 상품 가격에 자본가 이윤과 토지 사용 대가인 지대, 노동자 임금이 포함된다고 보았다. 만일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하된 노동 시간에 따라 상품 가치가 결정된다면 상품 가치는 투하된 노동만큼, 즉 임금을 받고 일한 만큼 생산된 가치에 의해 결정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이윤은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가와 지주가 상품 가치 형성 과정에 이윤과 지대라는 가격 형태로 참여한다고 보았다. 이는 결국 자본가 이윤 획득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하지만 이점은 로크가 노동에 근거해 소유권을 정당화한 것과는 정반대 논리로 나아간 것이다. 스미스는 소유권을 근거로 이윤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로크 논리에 비추어 보면 스미스 주장은 명백하게 모순적이다. 소유가 노동에 의해 정당화되면서도, 노동하지 않고 거두어 들이는 이윤이 소유에 의해 정당화되는 자가 당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분명 알고 있었을 리카도도 자본 입장에서 이윤을 설명하기 위해 스미스 주장을 받아들여 상품 가격을 ‘고정 자본 임금(유동 자본) 평균 이윤’이라고 규정했다.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는 등가 교환의 법칙을 전제하기에 생산 가격의 구성 요소로서 기계류와 같은 고정 자본 뿐 아니라 임금과 평균 이윤을 미리 전제하는 논의를 전개했다. 하지만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다시 가치는 가격에 의해 설명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올바른 방법은 가치로부터 가격을 설명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가치 차원에서 이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해명하고자 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잉여가치율 개념을 만들었다. 잉여가치율은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잉여노동을 뽑아내는 데 얼마나 성공했는지 측정하는 공식이다. 만약 상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본 노동 시간이 4시간이고, 이익을 창출하는 추가 잉여노동이 4시간이라면, 잉여가치율은 4:4, 즉 1백 퍼센트다. 잉여가치란 한마디로 잉여노동인 것이다. 이는 자본이라는 개념 자체가 착취 사회에서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경우 문제가 생기는데 노동력 또한 상품이기에 등가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등가 교환이면서도 부등가 교환이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생산 체계가 문제다. 결국 노동가치론의 문제는 ‘등가 교환’을 전제로 삼은 데 있다.

 

그럼 상품 거래에서 ‘등가 교환’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이를 알기 위에서는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각자 자신이 응당 얻어야 마땅한 몫(due)을 얻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경제적 거래가 그러한 원칙하에서 이뤄질 때 비로소 경제 현상이 폴리스의 약화와 같은 사회 변동을 가져올 모든 가능성이 차단될 수 있으며, 성원들 간의 경제적 거래가 폴리스 결속과 화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응당 얻어야 할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중간’ 즉 적절한 수량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정의로운 거래는 정확한 등가(equivalency)로 이뤄져야지 어느 한쪽이 이익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근대의 프루동도 이를 뒷받침한다. “A가 B에게서 이익을 취한다면, 경제원리에 따라서 B는 C에게서, C는 D에게서 다시 그만큼의 몫을 회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이러한 일은 결국 Z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Z는 누구로부터 회수할 것인가? 만일 그가 최초 수혜자 A로부터 회수한다고 하면, 이미 누구에게도 이익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거대한 사회도 같은 것이니, 한 사람이 이윤으로 부자가 되려면 다른 한 사람이 가난해져야만 한다는 것이 입증된다. 왜냐하면 A에게 이익이 존중되기 위해서는 Z가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미스나 리카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가 상품 교환의 유통 과정이 아닌 생산 과정에서 ‘잉여가치’를 찾은 이유는 상호 평등한 존재로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는 유통에서 잉여가치가 생겨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상품의 등가성을 엄밀히 재기 때문이다. 단순한 상품유통이든 노동력을 포함한 확대된 상품유통이든, 유통에서는 잉여가치가 생길 수 없다고 믿었다. 상품교환의 기본 공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용가치가 다른 상품을 교환한다. 하지만 교환할 때의 가치는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상품유통에서는 가치 증식을 해명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마르크스는 갈리아니의 말을 인용했는데, ‘평등이 있는 곳에는 이익이 없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사회 전체로 보면 총가치는 총생산 가격과 일치하고 총잉여가치는 총이윤과 일치’한다는 점을 <자본론> 3권에서 입증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가치론이 개별 상품이 아니라 사회 전체 차원에서 적용되며 총가치의 분배 차원에서 적용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만일 교환 속에서 가치 증식이 이루어진다면 사회 전체 가치 총량은 일정하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더 이상의 가치 생산이 이루어질 수 없다. 여기서 노동가치론은 무너지게 된다. 노동가치론은 등가 교환이라는 법칙을 유지해야 하는데, 자본주의 생산에서 이것이 무너진다. 예를 들어 극단적인 경우로서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로봇에 의해 생산할 수 있는 그러한 기업을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여기서 가변 자본(노동력)은 제로이고 잉여가치도 제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이윤율이 확보된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총자본의 총잉여 가치가 생산 가격을 통해 배분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회사는 노동자를 직접 착취하지는 않지만,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간접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총잉여 가치가 개별 자본에 배분된다는 마르크스 생각은, 잉여 가치가 개별 자본에서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별 자본에서의 생산 과정에서 잉여 가치가 착취되는 것이 아니다. 유기적 구성이 높은 자본, 예를 들어 자동화가 진행되어 노동자가 거의 없는 기업, 노동자가 착취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이윤율이 얻어지는 것은 다른 자본 아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개별 자본의 생산 과정에서만 착취를 말하는 것은 곤란할 뿐 아니라 종종 유해하기까지 하다. 개별 자본이 얻는 이윤에는 다른 부문의 자본 노동자나 독립 소생산자로부터 얻어진 잉여 가치가, 또한 한 나라의 총자본이 얻는 이윤에는 해외 노동자로부터 얻어진 잉여 가치가 배분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꿰뚫어 볼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의 교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은 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다. 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인간 노동 일반으로 추상화된 가치가 사회적 관계 아래서 결정될 때, 즉 교환가치가 될 때 그 것은 더 이상 노동 시간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교환가치량은 투하된 노동 가치량과 같지 않고 ‘사회적으로 승인된 가치의 양’으로 결정된다. 교환 가치는 가치가 사회적으로 표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은 임금노동과의 교환 속에서 모든 노동자의 노동을 수량적인 단위로 환원한다. 하지만 노동자의 구체적인 노동은 양으로 환원될 수 없는 질을 갖고 있다. 자본 입장에서 자본과 임금노동의 교환은 등가 교환이다. 자본에게 임금노동은 또 하나의 상품이며 상품으로 환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 입장에서 자본과 임금노동의 교환은 부등가적이다. 노동자에게 임금노동은 자신의 생명을 재생산하는 것일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전개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노동력이 생명적 욕구를 갖고 자기 활동을 전개하는 한, 항상 양화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자본의 내적 논리, 즉 이윤 추구라는 체제 안에 온전하게 포섭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책상 1개 = 바지 2개’라는 표시에서 “좌변인 1개의 책상은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주어 내지 주체고, 바지는 그것의 가치를 표현하는 술어다. 따라서, ‘책상 1개 = 바지 2개’는 양적 동일함(등가성)을 표시하는 수학적 기호가 아니기에, 수학적 습관에 따라 양변을 바꿔놓으면 안 된다. ‘책상 1개 = 바지 2개’의 식에서 “애덤 스미스는 ‘기회비용’의 동등성을 찾아냈지만, 마르크스는 이 관계에서 양적인 등가관계를 끄집어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잘못되었다. 상이한 물건들의 크기는 동일한 단위로 환원된 뒤에야 비로소 양적으로 비교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가치형태는 양적 비교를 위한 동일한 단위가 없으며, 따라서 양적인 관계로서 가치를 정의할 수 없다.˝ 즉 단순한 가치형태는 양적 관계를 표시하는 수학적 도식이 아니라 ‘질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논리적 도식이다. 하지만 화폐의 탄생을 통해서 질적인 등가 가치가 양적인 등가 가치로 변화되었다. “사실 좌우변 교환 도식 사이에는 근본적인 심연이나 비약이 있으며, 그 심연 속에 경제학적 가치 개념과 연관된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다. 여러 생산물이 단 하나의 등가물(화폐)을 통해 비교된다고 할 때, 비교하는 방법은 그 등가물의 양을 비교하는 것이다. 등가물의 질이 무엇이든, 그것은 하나기에, 질의 차이를 통해 가치를 표현하고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적으로 ‘노동가치론’이 의미 없다면, 문화 차원에서 노동은 가치(의미)가 있고 ‘신성’할까? 노동이 중요하다고 여겨지게 된 계기는 18세기에 자본가가 노동을 통한 성과에 집중하면서, 자신 삶을 귀족들과 의도적으로 구분하면서 시작되었다. 기생적으로 남의 노동에 의지해 살고 있는 귀족에 비해 자본가 자신이 더 청렴하고 도덕적이며, 교양 있고 유용하며, 덜 부패하고 덜 극단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자본가 계층이 절약과 금욕, 부지런한 노동의 미덕을 실행한 것은 그들이 프로테스탄티즘이나 공리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쟁이라는 자본주의 체계가 이윤을 낭비하지 않고 투자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자본가가 자신에게 강요하는 규율은 타자에 대한 규율로 전환되어 완성된다. 자신에게 혹독함은 ‘비생산적이고 게을러터진’ 노동자를 가차 없이 대할 수 있는 권리나 의무로 자연스럽게 전이된다. 초창기 노동자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려고 했다. 그런 사람은 현재보다 더 잘살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자기가 생각했던 정도의 수당을 받는다면 더 일하려 하지 않고 그냥 일을 그만두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아직 자본주의 정신이 다수 사람을 지배하지 않은 곳에서는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임금을 몇 배 더 올려주더라도 노동자들을 더 많이 일하게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을 스스로 일하고 싶어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아이들은 학교에 보내어졌다.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노동의 미덕과 노동하는 태도였다. 학교에서의 사회화 리듬은 생산 리듬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시간을 작은 단위로 나누어 아이들이 종소리에 반응하도록 가르쳤으며, 시간에 늦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도록 강요했으며, 신체적 태도와 동작을 교정하고 모든 태도를 훈육시켰으며, 아주 작은 이탈이나 소홀함도 육체적 처벌과 모욕으로 벌을 주었다. 기능적 지식을 주입하여 머리를 식민화시켰고 육체를 노동 도구로 만듦으로써 육체마저 식민화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노동은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이 모든 과정들이 함께 작용해 결국 노동을 인간의 이차 본성으로 만들었다.

 

대부분 사람들의 사회화가 임금노동을 통해 이루어지고 본질적으로 노동하는 태도를 통해 매개되는 사회에서 일자리를 잃는 것은 다만 수입원을 잃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 장소와 사회적 실존, 사람들과 교제와 관계를 상실하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자아 유지 메커니즘을, 허약한 자아를 지탱하던 외적 지지대를 상실하는 것이다. ‘퇴직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소외되고 또한 소외시키는 노동에 종속된 삶을 지칭하는 급진적 표현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바람직한 노동은 “목적 합리성이 독립되어 따로 노는 것을 피하고 철저하게 가치 합리성 차원에서 복무하도록 묶어두는 것을 사상으로 하고 있다.” 이 점은 헤겔 사상과 다르며 오히려 마르크스 사상에 부합한다. “헤겔에게 노동이란 세계를 변화시키는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이다. 그는 노동을 목적성에 따라 자신 의지를 밖으로 드러내는 활동으로 일반화한다. 비를 막으려는 목적성이 지붕을 만들고, 바람을 피하려는 목적성이 벽을 만들듯이, 정신 안에서 형성된 목적성은 정신 외적인 존재로 변화된다. 이로써 노동은 정신의 활동방식인 ‘외화(外化)’가 된다.“

 

그렇지만 마르크스 생각은 다르다. “노동이란 일반적인 합목적 활동이 아니며, 정신 활동이 외화되는 것도 아니다. 노동이란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사용가치고 노동력의 사용이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하는 행동이 노동이라는 통념을 깬다. 자본가가 노동력을 상품으로 구매하여 사용하는 것이 노동이며, 그런 사용 때문에 노동력의 판매자는 비로소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노동이란 이처럼 노동력을 구매하여 사용하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구체적으로 정의되는 것이지, 정신 활동의 본성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노동의 가치 여부는 우리가 어떠한 것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 참고도서

<경제인류학 강의>

<노동가치>

<자본을 넘어선 자본>

<노동을 거부하라>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

<트랜스크리틱>

<자본은 어떻게 자본이 되는가>

<소유란 무엇인가>

겨울호랑이 2021-10-14 20:08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댓글로 쓰기에는 너무 좋은 글을 올려주셨네요. 제가 아직 정리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 제가 생각했던 범위보다 더 깊고 넓게 노동가치론을 정리해주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다만, 존 로크 이전에 이븐 할둔이 이미 <역사서설>에서 노동가치론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존 로크에 의해 새롭게 제시된 사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대상황에 따라 재발견된 사상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잉여가치론 1>에서 마르크스는 말씀하신 애덤 스미스, 리카도 이외에도 존 스튜어트 밀, 케네를 비롯한 중농주의 사상가들의 이론에 대해 평가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이들은 노동이 모든 가치의 원천임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논의를 중단한 실패한 사상가인 듯 합니다. 큰 틀에서 자본 역시 과거 노동의 결과물임을 깨닫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한계점을 말하고, 마르크스 자신은 이를 위해 가변자본과 불변자본으로 나누어 분석을 수행한다는 것이 그의 ‘가치론‘의 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러한 그의 분석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을 먼저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조만간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의 정리로 부담이 늘어났네요^^:)

북다이제스터 2021-10-14 20:17   좋아요 1 | URL
아 마르크스의 가변자본과 불변자본을 분리하여 한 분석의 의미를 전 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말씀해주시면 저도 제 글을 좀 더 수정보완 하고 싶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10-14 20:43   좋아요 1 | URL
제가 이해하기로 마르크스는 ‘불변자본‘을 ‘과거 노동의 결과로 이미 체현된 노동‘(즉 죽은 노동)으로, 현재의 생산 기간에 지출된 노동을 ‘산 노동‘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불변자본‘은 이미 노동이 체화된 부분이기에 새로운 가치를 낳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산과정 후 생겨난 상품의 잉여가치에 청구권을 내미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 듯 합니다. 이는 생산수단을 자본가가 독점하기에 생기는 현상으로 가변자본에게 지불해야 하는 필요노동에 대한 대가를 최소한으로 지급하면서 자신의 몫을 키우려는 의도가 착취의 형태로 나가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거칠게 이렇게 정리가 될 듯 합니다만.... 중간에 이빠진 부분이 많네요^^:)

북다이제스터 2021-10-14 20:49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백퍼 이해 되었습니다.
제 글에도 반영하여 다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10-14 20:51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 항상 감사합니다. 저도 곧 정리하겠습니다^^:)

mini74 2021-10-08 14: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초의 가축. 이거 우리 똘망이 역사수업 시간에 교재로 써야겠어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21-10-08 14:11   좋아요 2 | URL
^^:) 개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더 재밌게 읽을 책이라 여겨집니다. 미니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