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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 게르망트 쪽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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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로 게르망트 부인을 사랑했다. 내가 신에게 바랄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은, 그녀에게 온갖 중상모략을 퍼부어 그녀를 파산하게 하고 실추시킨 뒤 나로부터 그녀를 갈라놓은 모든 특권을 빼앗아 살 집도, 인사를 허락하는 이도 하나 없게 된 그녀가 스스로 내 도움을 간청하러 오는 것이었다.( p109)

첫날 나는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했으며, 나의 열렬한 주의력은 게라망트라는 이름에서 뭔가를 포착하기 위해 내가 받아들인 지극히 적은 인상마저 즉시 증발시켜 버렸다.(p323)

만일 내가 그녀(게르망트 공작 부인)를 이처럼 후작 부인의 ‘방문일‘이나 오후 차 모임이 아닌, 후작 부인이 베푸는 저녁 파티에서 만났다면 이토록 깊은 감동은 느끼지 못했는지 모른다.(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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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9-06-23 2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완역 되기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1,2권은 미리 준비해두긴 했습니다만 )

겨울호랑이 2019-06-24 06:53   좋아요 1 | URL
8권까지 나왔는데 이제 중반 조금 넘은 정도 출간된 것을 보면 여러 면에서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완역까지 기다리면 읽어야할 분량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아 밀리기 전에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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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나는 시모네 양이 아틀리에에 없다고 생각했다. 실크 원피스를 입고 모자를 쓰지 않은 한 소녀가 분명 앉아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머릿결이나 코, 피부 빗깔을 알아보지 못했고, 또 거기서 폴로 모자를 쓰고 해안을 따라 산책하던 그 자전거 타는 소녀에게서 추측했던 실체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알베르틴이었다.(p37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프루스트(Valentin Louis Georges Eugene Marcel Proust, 1871 ~ 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A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에서 화자(話者)는 두 번째 사랑인 알베르틴을 만나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 


 자건거 타는 소녀의 두 눈에 담긴 것을 소유하지 않고는 그녀 역시 소유할 수 없음을 나는 깨달았다. 따라서 그녀 삶 전체가 내게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실현될 수 없다고 느껴졌기에 고통스러운 욕망이었으며, 그러나 이제껏 내 삶이었던 것이 돌연 내 삶이기를 그치고 내가 채워 주기를 열망하는, 내 앞에 펼쳐진 작은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졌기에 활홀한 욕망이었다.(p26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처음 보는 순간 강렬하게 느꼈던 욕망만큼 알베르틴은 화자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이러한 강렬한 이미지는 알베르틴과 함께 있던 소녀들에 대한 화자의 부정적인 첫인상을 지워버릴 정도였지만, 화자는 자신을 알베르틴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작품 후반부에서야 비로소 인정하는데, 이는 화자 자신의 철학(哲學)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나는 케이프를 걸친 그녀 친구를 보며 세웠던 가설을 파기하고, 이 소녀들이 모두 경륜장을 드나들며, 아마도 자건거 선수들의 나이 어린 정부가 틀림없을 거라고 결론지었다. 어쨌든 그녀들의 품행이 단정하리라는 추측은 나의 어떤 가설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p25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화자는 시각으로 느낀 욕망을 사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화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관념'을 통해 인식될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 속에서 화자는 매번 새로운 모습의 알베르틴을 발견하고, 이와 함께 변화하는 자신의 관념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현상과 관념 그리고 믿음으로 표현되는 화자의 인식 틀로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을 해석하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진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랑과 관념을 통해 '사랑'이라는 상태(state)를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내가 이르고 싶었던 것은 단지 소녀의 몸만이 아닌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이었으며, 그 인간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그녀의 주의를 끌어야 했고, 그 인간 속으로 꿰뚫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마음속에 있는 어떤 관념을 일깨워야 했다.(p13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각각의 존재는 일단 우리가 보기를 멈추면 소멸된다. 그러다가 다음에 다시 나타나면 그것은 새로운 창조로서, 모든 창조와 다르지는 않지만 적어도 바로 그 직전의 것과는 구별된다. 왜냐하면 이런 창조를 지배하는 최소한의 변화는 이원적이기 때문이다.(p45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나는 그날 알베르틴이 이전 날들과 같이 보이지 않으며 그녀를 볼 때마다 매번 다르게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한 존재의 외모나 중요성, 체격에서의 몇몇 변화는 그 존재와 우리 사이에 놓인 몇몇 상태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걸 느꼈다. 이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믿음이다.(p357)... 믿음의 변화는 또한 사랑의 소멸이다.(p35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이제 난 알베르틴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난 그녀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샹젤리제에서의 놀이 이후로 내가 전념하는 대상은 언제나 거의 같았지만, 내 사랑의 관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p46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그렇지만, 알베르틴에 대한 감정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우리는 화자의 감정이 사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은 과거 소녀들에 대해 가졌던 기억마저 왜곡시킬 정도로 강렬했다는 이야기와 작은 위로를 통해 응어리진 마음이 풀어지는 화자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알베르틴에 대한 감정이 사랑임을 확신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다른 의문 하나를 던지게 된다.


 최근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이런 솔직한 말들로 나는 알베르틴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아주 따뜻한 인상도 받았다. 어쩌면 이런 인상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내게 아주 중대하고도 난처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도 모른다. 알베르틴에 대한 내 사랑의 한가운데 언제나 존속하게 될 거의 가족 같은 감정, 그 도덕적인 중심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인상을 통해서였다.(p49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나는 이 소녀들의 머릿속에 든 순결에 대한 경멸과 일상적인 바람기의 추억을 대신 정숙함의 원칙들로 바꾸었다. 소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부르주아 환경에서 물려받은 이 원칙은 잠시 흔들릴 수는 있었겠지만 이제껏 모든 탈선으로부터 그녀들을 보호해 주었다.(p50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개인적으로 이러한 화자의 강렬한 사랑이 실제로 존재한 것일까하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끊임없이 덧칠되는 색처럼 시간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망각 - 기억'은 이 작업이 이루어지는 '현재'의 작업이다. 소녀들에 대한 '경멸'이라는 감정 마저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꿀 수 있다면,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을 비롯한 다른 이야기들도 사실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의 이야기들 모두가 윤색된 사건일 수 있다는 의심을 던져 본다.


 무언가를 새로 만난다는 것은 실제로 매번 이전에 보았던 것 쪽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일종의 복원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한 존재를 회상한단 건 실은 그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한, 망각했던 모습이 다시 나타나면, 우리는 그 모습을 알아보고 그 빗나간 선을 수정한다.(p45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인간의 얼굴은 우리가 바라보는 동안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눈으로 지각하기에는 얼굴 변화가 너무도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들 곁에서는 소녀들의 어머니나 아주머니만 보아도 그들 모습이 관통한 거리를 충분히 측정할 수 있으며, 내면의 인력 작용에 따라 대개는 끔찍한 형태로 바뀌는 그 모습은, 삼십 년도 안 되는 사이에 눈매가 처지고 얼굴이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 더 이상 빛을 받지 못한다.(p41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에서 우리는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을 통해 '현상'과 이를 해석하는 '관념'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믿음'과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도식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 화자의 믿음이 만약 깨진다면, 어떻게 될까. 알 수는 없지만, 다음 문장이 앞으로 진행될 사건의 복선이 되지 않을까 짐작해보면서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과는 교제를 계속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한 번 한 짓은 끊임없이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처음 약속한 장소에 오지 않거나, 감기에 걸렸다는 친구를 해마다 다시 찾아 보면, 우리는 그때에도 여전히 감기에 걸렸거나 다른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친구를 본다. 친구는 상황에 따라 여러 다른 이유를 댄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대는 핑계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p40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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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4 1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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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4 1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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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1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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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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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들의 힘 (천줄읽기) - 지만지 고전선집 314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 314
안나 제거스 지음, 장희창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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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 제거스가 보기에 이들 모두는 약자이면서도 또한 역사 발전의 주체다. 이 작품에서 아나 제거스는 말없이 행동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어떠한 역사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민중들의 소리없는 저항을 기록하고 있다... 사회 변혁을 예술의 본질적 기능으로 규정하는 사회주의의 리얼리즘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문자 그대로 ‘현실‘과 마주치게 하며, 더 나아가 우리의 현실을 직시토록 한다.(p9) - 해설 중-

모든 것이 헛되었다. 교회와 회교 성당에서의 기도는 헛되었다. 오래전에 잊혀 이제 아무도 숭배하지 않는 신들에게 간청하고 애원해도 헛되었다. 칼과 분노의 마지막 저항도 또한 헛되었다... 미래가 없었으므로 과거는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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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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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마르셀)가 문학의 스승 그리고 사랑을 만나다. 그는 인상파 화가 엘스티르에게 인식을, 작가 베르고트에게 표현을, 알베르틴에게 사랑을 배우고 느끼며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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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순전히 주관적인 성격을 이해하며, 또 세상에서 이름이 동일한 자와 구별되는 추가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창조 유형과, 이 추가적인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대부분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임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도 극소수인 듯하다.(p8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프루스트(Valentin Louis Georges Eugene Marcel Proust, 1871 ~ 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A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에서는 화자와 스완과 스완 부인 오데트의 딸인 질베르트의 사랑이야기가 이어진다. 대부분의 첫사랑 이야기가 그렇듯 작품에서의 사랑 역시 이별로 끝나게 된다. 화자의 구애(求愛)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질베르트. 그 과정에서 식어가는 사랑을 작품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롤랑 바르트(Roland Gerard Barthes, 1915 ~ 1980)의 <사랑의 단상 :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속의 짧은 글을 따라 첫사랑에 담긴 사랑의 요소를 살펴보려 한다.


1. 마술 Magie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문화권에 속해 있던 점치는 일이나 조그만 비밀 의식, 기도 행위는 그의 삶의 일부를 이룬다.(p238) <사랑의 단상> 中


 우리의 여러 대조적인 삶과 상황에서 사랑과 관계되는 사건에 대한 최선의 태도는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건들은 피할 수 없는 뜻밖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합리적인 법칙이 아니라 오히려 마법의 법칙에 지배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p13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2. 욕망 : 당신의 욕망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것을 조금 금지하기만 하면 된다(금지 없이는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라면)....내가 금지로서는 현존하지만(금지 없이는 좋은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또 그 욕망이 형성되면 내가 그를 방해할지도 모르므로 멀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p200) <사랑의 단상> 中


 아마도 이런 완벽한 일치감 속에,  현실이 우리가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것에 덧붙고 겹쳐질 때, 마치 동등한 두 형상이 포개져 하나를 이루듯이, 그 현실은 우리가 꿈꾸던 것을 완전히 가리고 그 꿈과 혼동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 욕망의 모든 지점에 우리 손이 가 닿는 바로 그 순간, 우리가 느끼는 기쁨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오히려 우리는 손댈 수 없는 것의 매력을 간직하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 상념은 과거 상태를 새로운 상태와 대조하기 위해 재구성조차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상념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잃어버렸으니까.(p19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3.  기다림 Attente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동안 대수롭지 않은 늦어짐으로 인해 야기되는 고뇌의 소용돌이(p64) <사랑의 단상> 中


 사랑하는 여인을 절대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면,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말 또한 진심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견딜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사랑하는 이의 부재가 짧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어느 날엔가는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p33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4. 고뇌 Angoisse 이런저런 우발적인 일로 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위험, 상처, 버려짐, 돌변 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격해지는 것. 고뇌라는 이름으로 그가 표현하는 감정.(p53) <사랑의 단상> 中


 내게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은 이미 지나갔을 것이다. 그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이미 지나갔을 것이다. 그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며, 그러므로 그녀와 나를 다시 만나 그토록 줄어든 고통을 위로해 준들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며, 이 순간에는 아직 존재하지만 그때는 이미 없어졌을 그 고통, 따라서 그 고통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일련의 타협이나 화해, 재회의 동기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녀에게 알리고 싶었다.(p28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5. 파국 Catastrophe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의 상황을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결정적인 막다른 골목이나 함정으로 느껴 자신이 완전한 파멸 상태에 이르렀다고 여기는 격렬한 위기(p79) <사랑의 단상> 中


 친구인 질베르트가 내게 그토록 많은 고통을 안겨 준 그날부터 새해가 오면 보내기로 결심했던 그 편지에서 나는 우리의 오랜 우정은 끝나는 해와 더불어 사라졌으며, 이제 원한과 실망도 다 잊었고, 1월 1일부터 우리가 쌓으려는 것은 새로운 우정, 그 무엇으로도 깨지지 않을 견고하고도 경이로운 우정으로서, 질베르트가 이런 우정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라며, 우리 우정을 손상하는 어떤 작은 위험이라도 생길 경우에는 나 자신이 그렇게 할 것을 맹세하지만, 그녀 쪽에서도 그 즉시 제때 내게 알려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p11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6. 페이딩 Fading 사랑하는 이의 수수께끼 같은 무관심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것도, 또는 세상 사람이나 그의 적수, 다른 누구를 위해 말해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가 온갖 접촉에서 물러난 것처럼 보이는 고통스런 시련.(p162) <사랑의 단상> 中


 현재 내가 하는 것뿐 아니라 그에 따른 미래의 결과까지 명철히 성찰해 본 끝에 내가 계속해서 열중했던 것은 내 마음속에서 질베르트를 사랑하던 자아를 오래도록 잔인하게 죽이는 일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더 이상 질베르트를 사랑하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도 그 점을 후회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때는 그녀가 나를 만나려고 시도해도 그녀가 오늘 하는 시도와 마찬가지로 헛된 일이 될 거 라는 걸 난 잘 알고 있었다.(p32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7. 부재 Absence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무대화하는 언어의 에피소드는, 그 부재의 이유나 기간은 어떠하든 부재를 모두 버려짐의 시련으로 변형시키려는 경향이 있다.(p30) <사랑의 단상> 中


 우리는 이런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미 사랑은 우리 마음을 떠나고 없다. 사실 사랑에는 지속적인 고통이 따르는 법이라 기쁨이 이 고통을 완화하고 잠재적인 것으로 만들며 유예하기도 하지만, 매 순간 언제라도 우리가 바랐던 것을 얻지 못하면 이 기쁨은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끔찍한 고통으로 바뀐다.(p27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8. 이 망각으로부터 나는 아주 빨리 깨어난다. 서둘러서 어떤 기억을, 혼란을 재구성해 본다. 하나의 단어가 육체로부터 나와 부재의 감동을 말해 준다. 즉 갈망하다(soupirer)란 단어가, 그런데 그것은 '육체의 현존을 갈망하는' 것을 뜻한다... 사랑의 부재에서의 나는 서글프게도 누렇게 메마르고 오그라든, 떨어진 이미지이다.(p33)<사랑의 단상> 中


 우리의 기억이란 상대적으로 우리가 듣는 동안 마주치는 인상들의 복잡성에 비하면 아주 미미해서, 잠을 자며 수많은 걸 생각하고는 즉시 잊어버리는 인간의 기억만큼이나, 또는 이제 막 들은 것을 조금 후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반쯤은 어린애로 돌아간 사람의 기억만큼이나 짧기 때문이다.(p18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9. 소유의 의지 Vouloir-Saisir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관계의 어려움이, 사랑하는 이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전유(專有)하려는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이후부터는 그에 대한 모든 '소유의 의지'를 포기하기로 결심한다.(p331) <사랑의 단상> 中


 인간은 불행해지면 도덕적인 존재가 된다.(p353)... 우리 마음이 지속적으로 다른 존재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한, 끊임없이 파괴될 위험에 처한 것은 단지 우리 행복만이 아니며, 그 행복이 사라지고 우리가 괴로워하고 그 괴로움을 잠재웠을 때, 그때 행복과 마찬가지로 우리 평온함 역시 기만적이며 덧없기 때문이다. 나는 마침내 이런 평온함을 되찾았다.(p35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10. 기호 Signes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려거나, 혹은 그 사람이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을 때면, 어떤 확실한 기호 체계도 수중에 갖지 못한다.(p305) <사랑의 단상> 中


 사랑하지 않을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의 움직임을 고정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에겐 언제나 실패한 사진만이 있다. 나는 질베르트가 내 눈앞에 자신의 모습들을 펼쳐 보였던 그 성스러운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그녀 모습이 정말로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았다.(p117)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의 이야기에 대칭되는 <사랑의 단상> 용어들을 묶어 보았으나 사실 정확하게 맞물리지는 않는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의 사랑이야기가 진행형이 아닌 완료형이기 때문이며, 이미 이별로 끝난 질베르트와의 사랑 이야기안에 화자의 여러 감정이 녹아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화자는 이처럼 힘들게 사랑을 지키려 했으나 결국은 잊기로 결심하고, 첫사랑 질베르트를 잊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한다. 양쪽 저울에 욕망을 달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애쓰는 모습과 다른 사랑으로 첫사랑을 덮으려 하는 모습안에서 우리는 지난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성격이나 기질은 변하지 않지만, 우리는 나이에 따라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 삶은 나뉘며, 또 저울에 배분되듯 양쪽 접시에 고스란히 놓인다. 한쪽 접시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욕망, 사랑하지만 아직은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 그러나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자만심을 품으면 우리를 지겨워할지도 모르므로 약간은 혼자 내버려 두는 편이 보다 현명한 처신이라고 생각되어 지나치게 겸손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욕망이 놓여있다.(p27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우리는 질베르트와 전혀 관계없는 이런 상념들을 부양하고 키워야 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 감정이 약해지고 그저 하나의 추억이 되고 나면, 새로운 요소가 우리 마음에 들어와 그 감정과 싸워서 점점 더 영혼의 자리를 빼앗고 드디어는 영혼의 모든 자리를 차지한다. 난 이것이 사랑을 죽이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았다.(p35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에서. 첫사랑의 아픔에 힘들어하는 화자의 모습은 우리에게 지나간 첫사랑의 설레임과 아픔을 동시에 전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화자가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있기에 더 생생하게 전달된다. 오래 전 그날 너무도 설레었고 많이 아팠던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며 책을 덮었다.


PS.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작품 속에서 감각(感覺)의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냄새와 맛이 불러오는 기쁨과 희망의 감정은 '잃어버린 시간' 이 아닌 화자의 '현재라는 시간'에서 피어나는 시간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내가 프랑수아즈를 기다리던 입구의 눅눅하고 오래된 벽에서 서늘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질베르트를 통해 전해 들은 스완의 말들이 이제 막 내 마음속에 생기게 한 걱정들을 이내 가볍게 해 주면서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웠는데, 붙잡거나 소유할 수 없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그런 기쁨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내가 기댈 수 있는 단단한 기쁨, 감미롭고도 평온한 기쁨, 지속적이며 설명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진리로 가득한 기쁨으로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p12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中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 그것이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아주머니의 방이 있던, 길 쪽으로 난 오래된 회색 집이 무대장치처럼 다가와서는 우리 부모님을 위해 뒤편에 지은 정원 쪽 작은 별채로 이어졌다.(p9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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