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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후에는 무엇이 오는가?
안셀름 그륀 지음, 김선태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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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전래 초기, 동양 문화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가져 왔는지... 타인과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 존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예수회 회원은 1600년 무렵 조상을 공경하는 제사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취했으나, 도미니코회 회원과 프란치스코회 회원은 엄격함 태도를 취했다... 제사 금지는 수도자들과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선교사들의 경쟁 때문이기도 했다.(p137)

죽음의 한계를 넘어서는 성인들의 전구와 통공에 대한 가르침에서 우리는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흔히 보는 조상 공경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대답을 줄 수 있다.(p136)...우리 삶의 성공 여부는 우리가 죽은 이들과 화해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끼친 모욕을 용서하는 일에 달려 있다고 심리학은 말한다.(p139)

중국과 한국은 음력 새해 첫날을 가족 명절로 지내며, 친척들을 초대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죽은 이들을 기억한다. 이러한 행위는 그리스도인에게 죽은 이들과의 일치를 체험하게 한다. 죽은 이들은 우리의 일부이며, 우리는 그들을 잊지 않는다.(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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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8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수 평전 - ‘진리’라 불리던 사악한 사제가 예수였을까?
조철수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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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라쉬」와 「탈무드」를 통해 신약성서를 바라보고, 신약성서를 통해 ‘사제 예수‘의 삶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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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튼의 평화론
토마스 머튼 지음, 조효제 옮김 / 분도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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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또는 더 정확히 말해 "우리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훨씬 더 중요하다.(p44)... 공산주의자들이 핵무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라는 질문과 상관없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라. 우리는 핵무기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핵무기를 없앨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소련에게 사용할 것인가? 이 점에 대해 조금이라도 할 말이 남았는가? (p46) <머튼의 평화론> 中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 ~ 1968)은 저서 <머튼의 평화론 Peace in the Post Christian Era>에서 핵무기를 보유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상되는 답은  강력한 핵을 통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과 민주주의의 수호 정도겠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 머튼은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핵 억지력을 옹호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윤리 원칙을 악용하는 작태에 우리는 우려를 금치 못한다. 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핵 억지력에 수반된 역설은 그리스도교의 근본적 역설의 한 변형이다. 즉, 우리가 살기 위해서 기꺼이 남을 죽이고 나 자신도 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도저히 정상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오도된 관점이다.(p52) <머튼의 평화론> 中 


 오늘날 이 나라에서 전 세계가 공산주의의 수중에 떨어지느니 모두 함께 자멸하는 게 낫다고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이상을 모두 포기한 패배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히틀러와 똑같은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다.(p227) <머튼의 평화론> 中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은 민간인과 군인, 적과 나 자신을 구분하지 않고 해치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는 머튼의 이야기는 다른 반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대량살상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의 사용은 괜찮은가? 이에 대한 머튼의 반론 역시 명확하다. 전쟁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머튼은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진다. 전쟁을 통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설령 어떤 전쟁이 '정당한 전쟁'으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전쟁 도중 명백하게 정당하지 않은 수단에 의지하게 되거나 병사들과 전략가들이 한없이 비인도적인 잔혹성에 사로잡히게 될 경우 '불의의 전쟁'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p122) <머튼의 평화론> 中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게 무엇인가? 우리의 종교인가 우리의 물질적 부인가? 아니면 종교와 돈을 우리가 완전히 동일시하게 되어서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이제 도저히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p147) <머튼의 평화론> 中 


 머튼은 1960년대 냉전(冷戰)상황이 윤리(倫理)의 붕괴, 가치관의 상실에서 온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윤리와 가치가 붕괴된 현실에서 개인은 물질적 풍요에 빠지게 되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이러한 진단은 새로운 가치관의 확립이라는 처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내가 작금의 긴박한 전쟁 직전 상황 속에서 단 하나의 근본적 진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피상적이고 극단적인 종교적 신조를 반대하는 것이다. 모든 핵전쟁, 그리고 꼭 핵무기가 아니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도시와 인간과 국가와 문화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것은 극히 중대한 범죄행위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교 윤리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그 어떤 정상적인 도덕률에 의해서도 금지되는 행위다... 우리에게는 영성적이고 윤리적인 중심이 없다. 우리는 자신의 폭력성을 자제해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도록 도와주는 내적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p61) <머튼의 평화론> 中 


 머튼은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자가 최선(最善)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노력하고, 이를 공론화(公論化)시킬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군비감축 등 구체적인 평화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최선의 인간 가치를 옹호하고 북돋우어야 한다.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와 자신의 도덕성에 걸맞은 방식으로 자기 삶을 발전시킬 권리가 바로 그러한 최선의 인간 가치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인간이 보유한 거대한 파괴력이 범죄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인류를 지켜야 한다.(p48) <머튼의 평화론> 中 


 문제의 핵심은 점진적이고 합리적으로 협상된 군비 철폐안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잘 연구하여 희망의 분위기와 협상의 자신감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선결적인 과제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인 것이다.(p185) <머튼의 평화론> 中


 국가의 논리적 행동을 자극하기 위하여 여론의 압력이 반드시 한몫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바로 이 때문에 개명된 양심이라면 반드시 준수할 도덕정 한계를 명백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원칙을 공표하고 그 원칙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대외적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그런 원칙이 정책의 향방에 결정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p202)...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행동으로 발언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내적 의도와 외적 행위 간의 거리를 좁혀야 함을 의미한다.(p238)  <머튼의 평화론> 中


 이렇게 바라본다면, 머튼의 평화론은 다른 평화론자들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는 일반론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머튼의 평화론이 다른 이유는 행동의 주체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 주변이 사악(邪惡)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문제를 알려주기에,  독자들은 반성(反省)하게 된다. 


 전체주의와 관련해 우리 외부의 적인 공산주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파시즘적 경향 또는 집단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도 반대해야 한다.(p48) <머튼의 평화론> 中 


 그러므로 만일 평화의 복음이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더 이상 확신에 차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와 일치와 사랑의 생생한 모범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겠다.(p232)<머튼의 평화론> 中


 군비 철폐를 내걸고 회의를 개최하여 선전 목적의 제안을 내놓았다가 상대방이 그것을 진지하게 취급하려는 기색이 보이면 황급히 그 제안을 거두어들이는 식의 행태를 부릴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이런 점에 있어 공산주의자들이 부정직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서방 역시 허물이 있기는 마찬가지다.(p42) <머튼의 평화론> 中 


 많은 이들이 핵무기가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tic for tac strategy'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게임이론(game theory)에서 비롯된 듯하다. 대표적으로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 ~ )도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를 통해  TFT(Tic For Tac) 전략을 통해 유전자의 진화해 왔음을 밝히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보복전략이 우수한 전략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비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사진] 2017년 국가예산 중 국방비 비중 약 10%(출처 : http://hansang1006.tistory.com/146)


 이 책은 핵무기를 대규모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공격용이건 보복용이건 간에 그리스도교 윤리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취한다.(p39)... 제한된 전쟁을 추구하기보다 온전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더욱 그리스도교 정신에 맞고 더욱 인도적일 뿐만 아니라 더욱 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p40) <머튼의 평화론> 


[그림] 스티븐 코비의 시간관리 매트릭스(출처 : 국민일보)


 스티븐 코비(Stephen Richards Covey, 1932 ~ 2012) 박사에 의하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중요함 - 긴급함'의 Matrix를 잘 활용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중요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에 매여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데, 국방과 관련해서 우리는 '중요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우리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보다 진중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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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4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머튼이 이런 책도 썼군요! 우아

겨울호랑이 2018-07-24 14:19   좋아요 1 | URL
네, 토머스 머튼이 일반적으로 <칠층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토머스 머튼의 장자의 도>와 <머튼의 평화론>을 좋아합니다.^^:)

2018-07-24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4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7-24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칠층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읽히지 않아 버린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20대때 안 읽히니 평생 못 읽을 것 같았는데. 그 이름만 들어도 그 명성 그대로..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24 14:42   좋아요 1 | URL
저도 <칠층산>이 쉽게 안 읽혔습니다. 수도경험을 경험한 분들은 피부에 다가오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책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고백록에 해당하는 책들은 읽기 힘들어 피하게 됩니다. 카알벨루치님 감사합니다.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우리는 항상 어떤 성과를 쌓아야만 우리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 사실은 특히 성과를 더 낼 수 없을 때 분명해진다.

우리는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게 이익이 될 때만 가치가 있는 존재가 아니다... 혹 몸이 아파도 병을 받아들이면 의미가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서 가치가 생겨난다. 우리는 병으로 제한된 삶을 통해서 다른 가치, 사랑의 무한한 가치를 증명한다...

몸(또는 마음)이 아픈 사람은 그 약함으로 누구보다 훌륭한 인생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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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9-11 2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연약함과 상함을 내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을 좋아해요..

겨울호랑이 2017-09-12 06:45   좋아요 2 | URL
모든 것을 초월한 이보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 이가 더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네요..‘상처받은 치유자‘ 멋진 표현입니다^^:

五車書 2017-09-12 0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의 짧은 페이퍼에서도 감동을 얻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입니다. 농담입니다만, 제 입장에는 읽기 너무 편안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9-12 08:56   좋아요 2 | URL
^^: 오거서님 감사합니다. 글 자체가 좋아서 그대로 옮겼습니다. 상쾌한 가을입니다. 오거서님 하루 즐겁게 시작하세요^^:

페크(pek0501) 2017-09-13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미녀는 자신이 미녀임을 알아서 추하고 추녀는 자신이 추녀임을 알아서 아름답다는 것. ㅋ

겨울호랑이 2017-09-13 21:1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pek0501님 말씀처럼 정말 모든 일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 삶은 드러난 의미보다는 ‘숨겨진 뜻‘을 찾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2017-09-15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6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새길에큐메니칼문고 4
박승찬 지음 / 도서출판 새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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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는 13세기 중반 스콜라 철학 융성의 배경,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간략하게 다룬 요약서다. 저자인 박승찬 교수는 스콜라 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 자체가 120페이지 남짓의 요약서인 관계로 빠르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상세하게 설명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 다섯 가지 길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신 존재 증명 전에 중세 초기 기독교 철학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와 스콜라 철학 전성기 철학자 아퀴나스 철학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모든 진리는 신의 '은총의 빛'을 통해 조명될 때 비로소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세상 모든 것을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이데아'를 강조하는 플라톤의 사상, 특히 신플라톤주의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이에 반해,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을 시작하면서 철학(과 기타 인문과학)과 신학의 영역을 구분한다. (p51) 아퀴나스에게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은총의 빛'에 의존하지만, '철학'은 '이성의 빛'에 의존하는 것이며 경험적인 것과 통한다. 또한, 아퀴나스에 따르면 신학과 철학은 각각 고유의 영역이 있고 아퀴나스의 철학은 신학 내에서 양자의 조화를 지향한다.


"신이 주는 은총은 피조물들이 지니고 있는 본성을 말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는 것이다. (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 (p52)


 '신 존재 증명' - 다섯 가지 길- 은 <신학대전> 제1부, 제 2문제, 제3절에서 다루어진다. 


1) 첫 번째 길 : 운동들의 원인


(1) 이 세계 안에는 어떤 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확실하며 또 그 사실은 감각으로 확인된다. (2-A) 그런데 움직이는 모든 것은 다른 것한테서 움직여진다. (2-Ba) 그러므로 어떤 것이 그것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그것이 움직인다면 그것 또한 다른 것한테서 움직여져야 하며 그것은 또 다른 것한테서 움직여져야 한다. (2-Bb) 그런데 이렇게 무한히 소급해갈 수는 없다. (3) 우리는 다른 어떤 것한테도 움직여지지 않지만, 첫 움직이게 하는 자(제1동자)에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이를 '신(神)'이라고 이해한다.


박승찬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z-> Y -> X .....-> ....(무한히 갈 수 없기 때문에 A가 올 수 밖에없다.) A : 우리는 신이라고 이해하는 존재 (p56)라고 요약될 수 있다.


2) 두 번째 길 : 능동인의 질서


(1) 우리는 이 세계안에서 아버지가 아들의 원인이 되고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원인이 되는 것과 같은 수많은 능동인 질서를 경험한다. 그 아들이 자신이 존재하고 싶어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닌 것처럼 (2-A) 이런 세계에서 어떤 것이 자기 자신의 능동인으로 발견되지도 않으며 또 그런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2-B) 그런데 능동인들에 있어서 무한히 소급할 수는 없다. (3)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제1능동인을 인정해야 하며, (3') 이런 존재를 모든 사람들은 신이라 부른다. 


3) 세 번째 길 : 자체 필연유


(1) 우리가 사물 세계에서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생성소멸하는 것을 발견한다. (偶然有)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떤 때에는 사물계에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만일 이 세계가 모두 우연유로만 이루어졌다고 가정하면, 어떤 것도 존재하기를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자는 필연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2) 그런데 모든 필연적인 것들은 자기 필연성의 원인을 다른 데에 갖거나 갖지 않을 것이다. (2') 그런데 그 필연성의 원인을 다른 데에서 갖는 필연적인 것들의 계열에 있어서 무한히 소급될 수는 없는 것이다. (능동인의 경우에서 증명) (3) 따라서, 우리는 자기 필연성의 원인을 다른 데에 갖지 않고 다른 것들에게 필연성의 원인이 되는 어떤 것, 즉 '그 자체로 필연적인 어떤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자체 필연유를 우리는 신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길까지는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우주론적인 증명'이라고도 한다. 우주론적인 증명의 특징은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되, 이러한 사실의 원인을 찾아서 윗단계로 올라간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 무한히 계속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하나의 원인'을 만나게 되고, 사람들은 이 존재를 '신(神)'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첫 번째 길에서 세 번째 길까지 논의는 일종의 '무한급수'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일상 경험에서 출발하여 결국 '신(神)의 존재'에 수렴한다는 논리 구성으로, '신'의 존재가 이미 기반에 깔려 있는 증명이다. 우리의 인식 저편으로 무한히 넘어가는 영역에 신이 있다는 아퀴나스의 우주론적인 증명은 중세(中世)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논리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4) 네 번째 길 : 최고 완전자 존재(안셀무스 <모놀로기온>, 신플라톤주의)


(1) 우선 선함과 참함과 같은 (초월적) 속성들을 지니고 있는 사물들이 최고도로 있는 어떤 것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확정한다. 이것과의 멀거나 가까운 정도에 따라서 그 속성들이 지니는 단계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 최고의 것은 바로 그 속성들이 최고로 높은 단계로 그것에 속하는 존재자이고 그 자체로 가장 높은 존재로 존재하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 유출설) (2) 그 다음에 그 최고도의 것이 자기에게 연관을 맺고 있는 속성들, 그러므로 그 존재의 측면에서 그 사물의 원인이다. (3) 결론적으로 그 최고도의 것이 세상 사물들의 최고의 존재 원인으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고 부른다. 


네 번째 길은 아퀴나스가 비판한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의 방식을 빌려온 것이며, 신플라톤주의의 위계질서에 근거한 것이다.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상상될 수 없는 존재다.(가장 큰 존재다.)

2. 이런 신의 개념은 인간의 지성 속에 존재한다. (즉, 그런 개념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

3. 신이 실재가 아닌 마음 속에만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4. 그것은 마음 속에 한정된 신보다 더 큰 개념이므로, 그보다 더 큰 것이 상상될 수 없는 존재라는 신의 정의에 모순된다.

5. 따라서 신은 실제로 존재한다. (출처 : 위키피디아)


네 번째 길은 사물들에 내재되어 있는 특정 속성에서 출발한 논증이라고 하지만, 신플라톤주의의 영향과 안셀무스 증명방식을 활용하고, '신의 속성은 완전성을 포함한다'는 기독교의 신앙을 기반으로 한 증명이다.


5) 다섯 번쨰 길 : 우주 안에서의 질서


(1) 우리는 이성에 의해서 목적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에는 이성이 결여된 사물들이 목적에 알맞게 행동하고 있는 것을 경험한다. (2) 그런데 인식을 갖지 않는 것들은 인식하며 꺠닫는 어떤 존재에 의해 지휘되지 않으면 목적을 지향할 수가 없다. (3) 그러므로 모든 자연적 사물들을 목적에로 질서 지어주는 어떤 이성적 존재가 있다. (3') 이런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고 부른다. 


다섯 번째 길은 세상 만물이 '목적' 이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논증으로, 이 세상이 '우연의 결과'로 이루어졌다는 이들(리처드 도킨스 등 진화론자)에게 특히 공격받고 있는 논증이다. 아퀴나스의 증명 중 네 번째 길과 다섯 번째 길에서는 모든 것의 '원인'과 '목적'이 언급이 된다. 이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가지 원인 (질료인, 형상인, 운동인, 목적인)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논증으로 알려져 있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을 살펴보면 다섯 가지 길의 증명은 기본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중세에 받아들여진 기본 전제 중 하나는 '세계가 조화롭게 이루어져(창조되어) 있으며, [원인- 목적]의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는 전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전제 위에 '다섯 가지 길'은 유신론자에게는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무신론자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궤변으로 인식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참조) 

 개인적으로는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이 '신앙의 빛'과 '이성의 빛'의 조화를 추구한 아퀴나스의 노력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그 논리가 객관성이 부족하여 철학사적 의의는 거의 없는 논증으로 여겨진다. 이 논증의 의의를 찾자면 당대 스콜라 철학자들의 인식구조를 파악하는 정도가 적정하다고 판단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는 '다섯 가지 길'을 다른 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위와 같은 다섯 가지 길 이외에도 <신학대전>에 나타난 아퀴나스의 인간관과 윤리학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비잔틴제국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아카데미아 폐쇄 이후 유럽에서 사라졌던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신학대전>에서 사라졌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떻게 중세인들에게 받아들여졌는지 간략하게 알고 싶은 이들에게 <토마스 아퀴나스>는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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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0 15: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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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0 1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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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0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0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10-10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이 논리로 증명될 수 있다고 방향 잡은 중세인들 사고 방식과 계기가 더 궁금해집니다. ^^

겨울호랑이 2016-10-11 04:10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지금 우리들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한편으로는 그만큼 신의 존재를 확신한 것 같기도 하구요..여러 면에서 현대인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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