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과 환경보존 둘 다 가능할 수는 없는가 지속가능성 시리즈 4
베른트 마이어 지음, 김홍옥 옮김 / 길(도서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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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성장과 환경보존, 둘 다 가능할 수는 없는가>는 독일 경제학자인 베른트 마이어(Bernd Meyer)가 2007년 저술한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심각해지고 있는 환경 오염에 대한 대책인 '환경보존'과 늘어가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경제성장'이 '두 마리 토끼'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지속가능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저자가 생각하는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살펴보자.


 '지속가능성은 인류 중심 개념이다. 인간과 그들의 욕구가 핵심인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에는 생태적, 경제적, 사회적 차원이 있다. 지속가능성의 생태적, 경제적 차원은 다음 세대에게 일정한 자연 자본과 경제 자본 따위의 자본을 넘겨주는 것과 관련이 있다... 경제 자본에는 무엇보다 건물과 기계류, 그리고 지식과 경험 같은 인적 자본이 포함된다.'(p36)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위해서는 자본을 다음 세대에 일정 자본을 넘겨줄 수 있어야한다. 이를 위한 공급 측면에서의 선결 과제는 '자원 생산성의 향상'이다. 그리고, 자원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우리는 '충분성'과 '효율성' 전략을 추구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행동 변화는 다름 아닌 자원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자원 생산성이란 단위 자원당 생산되는 상품의 총량을 말한다. 자원 생산성을 높여야, 경제성장이 곧 자원 소비라는 등식을 깨뜨릴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이른바 "충분성"전략은 소비자 행동의 변화를 추구한다... "효율성" 전략은 기술혁신을 지지한다.'(p39)


  * 자원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 : 충분성 전략과 효율성 전략


 '충분성 전략이 강조하는 것은 총 소비량이 아니라 소비자의 행동 유형이다. 우리가 원하는 상품은 어떤 것인가? 충분성은 절제를 통한 보존을 뜻한다. 이 전략은 소비를 포기하란 말이 전혀 아니며, 오로지 자원 사용에만 해당된다.(p120)


 '프리드리히 슈미트 블레크는 어떻게 하면 자원 사용을 대폭 줄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수많은 예를 상세히 제시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국가의 여러 겅제 과정에서 사용되는 기술이다(p126)...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르민 그룬발트 Armin Grunwald의 지도 아래 독일 연구센터의 헤르만폰헬름홀츠 협회는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무엇보다 좀 더 지속가능한 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특히 네 가지 핵심 기술이 유망하다고 밝혔다. 네 가지 핵심 기술이란 나노 기술, 생명공학, 재생에너지 기술, 그리고 정보와 의사소통 기술이다. 이들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모든 경제 부문의 근본적 생산 조건을 설계하는데 더없이 중요하다.'(p134) 


 공급면에서의 생산성 향상과 함께 수요측면에서는 '소비의 절감'이 요구된다. 소비의 절감은 자연적으로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경제 제도(세금, 배출권, 보조금 )를 통한 직접적인 규제가 요청된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오로지 인간의 자원 소비를 세계적으로 절반가량 줄여야만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경제성장은 제3세계의 경제와 사회 조건을 개선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결국 우리는 경제성장과 자원 소비를 철저히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p71)


 '생태학자들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부심하는 기업과 제지받지 않는 소비자의 소비가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생태학자들은 이제 환경에 가격표를 붙이는 식으로 환경을 "경제화"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p75)


  * 경제 제도 : 세금 제도, 배출권 거래제, 정부 보조금 제도

 

 '이른바 "생태세 eco-tax"는 경제학자 피구 Pigou가 내놓은 안이다. 피해를 입히는 이들에게 과세하면 그같은 행동을 줄일 수 있고, 피해를 입은 이들은 가외의 수입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p76)... 한편 경제학자 로널드 해리 코스 Ronald Hatty Coase는 50년 전 그와 정반대 해법을 내놓았다. 바로 정부가 환경 사용에 한계를 지워, 그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게 만드는 정책이다.'(p77)


 또한, 위의 제도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필요한 보완 조치가 있는데 이는 정보 및 의사소통 정책, 그리고 공조적 해법 제시 등으로 달성할 수 있다. 


  '정부가 시장 참가자들이 더욱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거나,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p84)... 서로 공조하도록 기업들을 격려하는 것은 특히나 기술 향상과 관련해 중요하다. 기후 문제는 자원을 절감하는 새로운 생산 방법, 혹은 자원 소비를 줄여주는 새로운 소비재 개발 같은 기술 향상을 통해 가장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다.'(p85)


  자본주의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대한 위와 같은 조절을 통해 우리는 재화의 생산량과 소비량을 일치시키고, 생산비용과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부문에 있어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특히 노동시장의 문제가 그러하다. 이를 위해 노동시장과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관심 역시 추가적으로 요청된다. 


 * 노동시장과 사회보장제도


 '서비스 부문이 체계적인 혁신 전략을 추진하노라면 특히 연구 개발이나 기업 밀착형 컨설팅 서비스에 지출하는 비용은 늘어날 것이다. 소비구조가 서비스 부문에 유리하게 바뀌면서 상위 집단 고용인의 수가 증가할 것이다. 양질의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현재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혁신 전략과 더불어 노동력 공급량 전체를 늘릴 필요도 있다. 자발적으로 노동 생산성을 높이려는 의지도 놓아야 하지만, 그와 함께 주당 노동시간 차원에서나, 평생 노동시간 차원에서 현재의 여성 노동력 예비군에도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p188)


  <경제성장과 환경보존, 둘 다 가능할 수는 없는가>에서는 그 외에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발전문제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여러 주장을 종합하면 결국 다음과 같은 최종 결론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어떻게 하면 실제로 우리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나는 경제 제도가 분명 중요하지만, 현재 시장에 결함이 많기 때문에 좀 더 합리적인 규제 정책, 정보와 의사소통 제도 등으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은 현행 경제 제도 덕택에 혁신 전략을 따르기에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교육 운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양질의 노동자를 충분하게 확보할 수 없다. 한편 수많은 개인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노동 환경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를테면, 역소득세처럼 효율적으로 저소득층을 보호하는 방안이 필요하다.'(p238)


 <경제성장과 환경보존, 둘 다 가능할 수는 없는가>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문제에 대해 세계적인 관점으로 접근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토마 피게티(Thomas Piketty)가 그의 저서인 <21세기 자본>에서 소득불균형 해소를 위한 국제적인 공조를 강조했다면, 베른트 마이어 역시 환경오염 해소와 국제경제성장을 위한 세계적인 협력을 주장한다. 환경문제와 관련한 국제협력의 중요성은 최근 (2017년 6월)  발생한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탈퇴 문제를 바라보면서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림] 파리 기후 협약 탈퇴를 발표하는 트럼프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_oVFJsLfDj8)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고려하지 않은 문제로 인한 오류가 존재한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다. 책이 쓰여진 시점인 2007년 당시에는 인구 고령화의 문제가 아직 절실하게 다가오지 못했고,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subPrime mortgage) 영향으로 글로벌 외환 위기가 발생하기 전으로 소비자들의 소비 능력은 충분했다. 이러한 가정에서 출발한 이 책은 방정식을 통해 논의를 진행시킨다.  


 'E(배출량)=(E/R) * (R/Y) * (Y/B) * B / R : 자원 사용, Y : 국내총생산, B : 인구 크기

 E/R : 자원 사용 단위당 배출량, R/Y : 국내총생산 단위당 자원 사용, Y/B : 일인당 국내총생산


 세계적으로 인구(B)와 일인당 소득(Y/B)이 늘고 있음에도 E를 줄이려면, 자원 사용 단위당 배출량(E/R)과 국내총생산 단위당 자원 사용(R/Y)을 파격적으로 줄여야 한다. 어쨌거나 배출량을 줄이는 한편 경제성장과 인구 증가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p114)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인구(B)는 감소했고, 경제 위기로 소비능력의 저하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또한, 세계 각국은 지속가능한 발전보다 당장의 위기 해결을 위한 경제 성장을 이루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책에서는 환경의 주요한 문제로 제기하는 지구온난화 문제 역시 이산화탄소(CO2)문제로 한정짓는 한계를 보여준다. 2010년 당시 친환경차량으로 주목받던 디젤(경유)차량의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에 이산화탄소 배출량 문제에만 집중하여 가솔린 차량보다 '친환경' 이라고 인증을 받았지만, 늘어난 경유차량 덕분에 우리는 질소산화물(NOx)과 미세먼지(PM)문제를 새롭게 짊어지게 되었다. 환경오염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바라본 것 또한 이 책의 한계라 생각된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서 <경제성장과 환경보존, 둘 다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이 책은 '경제성장'과 '환경보존'이라는 두 이상적인 목표가 서로 배타(排他)적이지 않다는 희망적인 내용을 제시했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가정으로 인해 그 내용이 별로 유용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닌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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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2 1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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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2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다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마음에 드는 일만큼이나 많이 생긴다. 특히 내 마음에 상처를 줄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느낀다. 화 anger다. 그럴때 되도록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는 편인데, 오늘따라 '화'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화에 대하여>와 관련 책들을 를 펼쳐들고 화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다. 오늘 페이퍼는 <화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다른 현인 賢人들의 '화'에 대한 단상 短想 들이다.


 <화에 대하여 on anger>는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 4 ~ AD 65)가 저술한 '화'에 대한 책이다. 세네카는 이 책에서 먼저 화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다. 세네카에게 있어 화는 '이성 理性'의 적이다. 그리고, 플루타르코스(Ploutarchos, AD 50? ~ 120?) 에 따르면 화는 '고통'과 '쾌락'과 '오만'의 씨앗이다.


 '화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우리 스토아 철학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화는 "고통을 고통으로 갚아주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라고 그는 말한다... 화는 이성의 적이지만, 오직 이성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생겨난다.'(p35) 

'제논은 씨앗이 혼의 모든 능력에서 추출한 혼합물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분노는 모든 감정에서 추출한 씨앗의 혼합물인 것 같네. 분노는 고통과 쾌락과 오만에서 추출되었기 때문일세.'(p93)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플루타르코스 中 


 다른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322)는 '온유'를 '성마름'과  '성깔 없음'의 중용이라고 파악하고, 어느 정도의 분노는 우리 삶에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적당한 화는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세네카에 의해 논파된다.

 

  '온유함은 분노 憤怒 와 관련된 중용 中庸 이다... 분노가 지나침은 성마름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원인은 많고 다양하지만 여기서 느끼는 감정은 분노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화낼 일로, 당연히 화내야 할 사람들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만큼, 적당할 때에, 적당한 기간 동안 분노하는 사람은 칭찬받는다. 그런 사람은 온유한 사람일 것이다.'(p161)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中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를 적당하게 표현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세네카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화를 내는 것이 유리하지 않음을 주장하면서 신중하게 살피고 자제심을 발휘할 것을 요청한다. 세네카에게 진중함은 선 善인 반면, 화는 악 惡이다.


'우리는 전투와 전쟁에서조차 화가 유리한 수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화는  조급함을 부르고, 적을 위험에 빠뜨리고자 하는 욕망은 경솔함을 불러들여 오히려 우리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 가장 믿을 만한 지혜는 상황을 오랫동안 신중하게 살피고, 끝까지 자제심을 발휘하고, 정해진 목표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다.'(p54)


 <화에 대하여>에서 세네카는 화를 내는 대상에 따라 화의 종류를 구분하고 있다. 먼저,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놓은 이들(부하 직원, 어린 자녀 등)의 잘못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세네카의 조언은  '꾸짖되, 화내지 말라' 는 말로 요약된다.


  '잘못을 저지른 자는 훈계를 통해서든 강제력을 동원해서든 부드럽게 때로는 엄격하게 그 행동을 교정해주어야 한다. 남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는 그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꾸짖되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치유의 대상인 환자에게 화를 내는 의사가 어디 있는가?'(p60)


 '우리는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대상에게 화를 내지만, 심지어 그런 능력이 없는 대상에게도 화를 낸다.(p127)... 아이들에게 혹은 분별력에서 아이보다 나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공정한 심판관의 눈으로 보면, 그런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무지함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무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p128)


 어린아이들에 대한 체벌 문제에 대해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 ~ 1592) 역시 세네카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어째서 부친들과 교사들이 분노해 어린아이들을 때리고 벌 주는 것이 허용된단 말인가? 그것은 이미 징계가 아니다. 그것은 보복이다. 징계는 어린아이에게는 약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의사가 그의 환자에게 흥분해서 화를 낸다면, 그대로 참고 볼 일인가? 우리 자신도 올바르게 처신하려면, 분노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동안 결코 하인들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될 일이다.'(p785) <몽테뉴 수상록> 몽테뉴 中


  또한 자연 재해 등 어쩔 수 없는 재난에 대해 우리는 애써 의미를 부여하거나 화를 낼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이런 불가항력적인 것에 대해 우리는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다의 야만성에 대해, 가혹한 홍수에 대해, 좀처럼 물러가지 않는 동장군에 대해 신들을 탓하며 화를 내는 것은 미치거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의 행동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고 혜택을 주기도 하는 이런 자연 현상들은 특별히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자신의 법칙대로 움직일 뿐이며, 그것을 통해서 신의 의지가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런 엄청난 일들을 불러일으킬 만큼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들은 우리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이런 일들은 우리의 행복에 이바지한다.'(p129)


  이처럼 우리는 여하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지금 당장 화가 났을 때 우리는 화에 대한 반응을 최대한 늦추거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을 통해 보다 신중하게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면서, 화의 폐해를 직접 깨닫는 것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줄 것이다. 


  '화에 대한 최고의 대책은 그것을 늦추는 것이다. 처음부터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사숙고하기 위해 화의 유예를 요구하라. 화가 처음에 맹렬한 기세로 습격할 때는 타격이 크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뒤로 물러선다. 한꺼번에 화의 뿌리를 뽑으려고 애쓰지 마라. 하나씩 하나씩 조금씩 뽑아서 버리면 언젠가는 화를 전부 없앨 수 있을 것이다.'(p134)


 '섹스티우스가 말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화가 날 때 화난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데에 충격을 받았다... 화보다 빨리 우리를 광기로 이끄는 길은 없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화의 발작을 수습하지 못하고 한 번 놓아버린 정신을 다시는 되찾지 못하기도 한다. 광란이 아이아스를 자살로 내몰았고 화가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p153)


 [그림] 오딧세우스(왼편)과 절망하는 아이아스(오른편) (출처 : 중앙시사매거진)


 그리고, 매일 자신의 성찰 省察하면서 자신의 감각을 강하게 단련시킬 것을 권고한다. 분노의 원인에 대해서 플루타르코스 역시 세네카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플루타르코스와 몽테뉴는 자신의 조절을 통해 화를 억제할 것을 제안한다. 

마치 은나라를 세운 탕왕 湯王이 세숫대야에 '구일신일일신우일신(苟日新日日新又日新)' 아홉 글자를 새겨 세수할 때마다 스스로를 반성하고 새롭게 변화하려는 다짐을 늘 일깨웠던 것처럼 매일 새롭게 변화하려는 노력은 보다 우리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수행하고 있는 일들 중에 심각하거나 중요한 일은 하나도 없다. 이는 화가 광기의 한 형태이며, 네가 하찮은 일에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네가탐하는 것이 하찮은 것이기에, 남에게서 빼앗지 못하면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네가 추구하는 것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내분과 증오가 일어난다.(p233)... 네 감각 또한 강해져야 한다. 마음이 감각을 타락시키는 일을 그만두기만 하면 감각이란 원래 참을성이 있고 무던하다. 그러므로 너는 매일 마음을 점검하고 다스려야 한다.'(p235)


 '마치 살이 심하게 가격당하면 부어오르듯, 허약한 혼일수록 남에게 고통주기를 좋아한다네. 그래서 그들은 혼이 허약한 만큼 더 심한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이지... 이렇듯 분노는 무엇보다도 허약함 탓에 혼의 괴로움과 고통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네.'(p75)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플루타르코스 中


 '분노를 조절하려면 잔혹하게 자기를 억제해야만 한다. 나로서는 격정치고, 그것을 덮어가며 버티어 나가는 데 이렇게 힘든 것을 알지 못한다.(p789)... 분노라는 무기가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이 무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p792)  <몽테뉴 수상록> 몽테뉴 中


 '그러니까 친구여, 분노의 폭정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방법은, 분노가 우리더러 고함을 지르고 노려보고 가슴을 치라고 명령을 하더라도, 말을 듣지 않거나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네. 오히려 우리는 평정을 유지하고 마치 정염이 질병인 양 격렬한 동작과 고함 소리로 정염을 악화시켜서는 안 되네.'(p68)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플루타르코스 中


 <화에 대하여>,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수상록>에서 저자들은 화에 대해서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수천 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현인들의 화에 대한 관점이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화에 대한 이들의 말이 진리라는 반증이라 생각된다. 


  요즘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 화를 가슴에 쌓아두면 병이 된다고 하면서 이를 밖으로 표출시키라는 말이 참으라는 말보다 많이 들린다. 홧병이 생길수 있기에, 이 역시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화를 밖으로 버리고 나면 내 마음은 평화로울 수 있을까? 내 마음이 화가 생기기 쉬운 상태라면 결국 나는 자주 화를 내서 평안을 얻을 수 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화를 내는 주기는 조금씩 더 짧아지고, 나중에는 내 자신이 화 그자체가 될 것이다.  그전에 자신을 스스로 단련해가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옛 현인들은 말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분노 대신 선인 善人들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세네카의 조언을 마지막으로 '화'에 대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반론 : "선한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아들이 칼에 찔리는 것을 보고도 울거나 실신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선한 사람은 흔들리거나 주저함 없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것이며 선한 사람으로서 합당히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만일 나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는 순간이라면, 나는 그를 지킬 것이다.'(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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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구석시골총각 2017-06-16 22: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같은 저자의 화 다스리기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당시 원했던 부분보다는 학문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실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은 어떨지 또 궁금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17-06-16 22:26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저는 촌구석시골총각님과 반대로 「화 다스리기」를 읽지 못했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네요^^: 촌구석시골총각님 감사합니다.

oren 2017-06-17 0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노‘만큼 흥미로운 격정도 드문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소개해 주셨듯이,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플루타르코스, 몽테뉴 등 숱한 철학자들이 이 주제로 수많은 이야기들을 쏟아 놓았고, 나중에 애덤 스미스도 <도덕감정론>을 통해 ‘분노의 감정 연구‘에 한몫 단단히 거들었던 듯합니다.

철학과는 별도로 이름난 문학작품에서 자주 다뤘던 주제 또한 ‘분노‘였던 건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듯싶은데, 따져 보니 희랍 고전들 가운데서도 ‘분노‘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정말 많네요.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휩폴리토스>, <엘렉트라>, <오레스테스> 등이 모두 분노와 복수를 다루고 있고,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나 <코리올라누스>도 마찬가지고요.(<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50명의 인물 가운데 ‘분노‘로 가장 명성을 떨친 인물이 아마도 코리올라누스가 아닐까 싶은데, 셰익스피어도 ‘그의 분노‘에 깊은 감명(?)을 받은 끝에 기어이 자신의 ‘마지막 사극 작품‘으로 연극무대에 올렸더군요.) 2,800년 전에 쓰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도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핵심 주제였으니 달리 무슨 긴 말이 더 필요할까 싶기도 합니다. 저도 한때 ‘분노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글을 끄적거리다 (머리에 떠오르는 작품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만 둔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겨울호랑이 님의 글 덕분에 그 흥미로운 주제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어 새삼 반갑네요. 제게 낯익은 책들도 반갑고요^^

겨울호랑이 2017-06-17 07:23   좋아요 2 | URL
^^: 분노를 다룬 작품이 정말 많군요. 특히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평소에도 관심있었는데 oren님께서 말씀하시니 더욱 관심이 갑니다... 분노라는 소재는 특히 고대 그리스에서 주목받던 소재였던 것 같습니다. 아직 oren님께서 언급하신 작품 다수를 읽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야겠습니다. 항상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님 행복한 주말 되세요^^:

서니데이 2017-06-17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를 참는 것도 좋지 않지만 화를 내는 것도 좋지 않다는, 전에 읽었던 내용이 생각났어요. 어느 쪽도 쉽진 않지만 화를 많이 내면서 사는 것도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밤이 되어도 덥네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좋은밤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06-17 07:25   좋아요 2 | URL
어느 정도는 여유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길이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겠지만요.ㅜㅜ 서니데이님 더운 날 오늘도 건강하게 보내세요^^:

2017-06-17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7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7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를 분출하여 해소할 수 있는 취미가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없으면 세상 사는 재미가 느껴지지 않아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여러가지 불만이 생길 겁니다. 그래서 안 좋은 방향으로 화를 표출하는 일이 생겨요.

겨울호랑이 2017-06-17 08:41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그래서 ‘놀이하는 인간‘ 이 되어야할 것 같네요. cyrus님께서 요즘 작성하고 계신 ‘셜록 홈즈‘ 페이퍼도 진중한 놀이라 생각됩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33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tory?>는 E.H. 카(Edward Hallett Carr 1892 ~ 1982)가 1960년에 저술한 책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우리에게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역사에 대한 정의 定義로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내용은 일반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이외에 중요한 내용은 없는 것일까? 이번 리뷰에서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본문 내용을  통해 이 점을 살펴보려 한다.


1. 역사가와 그의 사실


 E.H.카에게 있어서 '사실'의 정확성만으로는 '역사 歷史'가 되기에 부족하다. 정확성은 '역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사실'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가의 선택'이 필요하다. 역사가들은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종합적으로 '사유 思惟'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역사'로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사실은 역사로서 생명을 얻게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문제들이 제기될 때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라는 하우스먼(Housman, Alfred Edward, 1859 ~ 1939, 영국의 시인이자 고전학자)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역사가를 정확하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은 어떤 건축가를 잘 말린 목재나 적절하게 혼합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집을 짓는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의 작업의 필요조건이지만 그의 본질적인 기능은 아니다.'(p21)


 '역사가는 필연적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딱딱한 속알맹이가 객관적으로 그리고 역사가의 해석과는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믿음은 어리석은 오류이지만, 그러나 뿌리 뽑기는 매우 어려운 오류이다.(p23)... 배러 클러프 (G. Barraclough, 1908 ~ 1984, 영국의 역사가) 교수 자신도 중세사 연구자로서 소양을 쌓은 사람이지만, 그는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비록 사실에 기초하고는 있다고 해도, 엄격히 말하면 결코 사실 그것이 아니라 널리 승인된 일련의 판단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p26)... 그는 소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여 그것들을 역사의 사실로 전환시켜야 하고 이와 동시에 수많은 하찮은 사실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추려내야 하는 이중의 임무를 가지고 있다.'(p27)


 '"모든 역사는 사유의 역사"이며, "역사란 사유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유를 자신의 정신 속에 재현하는 것"이다. 역사가의 정신 속에서의 과거의 재구성은 경험적인 증거에 의존한다... 그 재구성의 과정이 사실들의 선택과 해석을 지배한다. : 사실들이 역사적 사실들로 바뀌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p38)


 역사는 과거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을 통해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에,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에 상호관계로 의해 형성되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 일차적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우리가 추가적으로 고려해야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역사가가 현재에 속하는 개인이라는 점이다. (아래 문단은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문단이지만, 전체 약 200페이지 중 약 25%에 해당하는 부분에 등장한다.)


 '역사가는 사실의 잠정적인 선택과 그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인 해석에서 출발한다. 그가 연구하는 동안 사실의 해석 그리고 사실의 선택 및 정돈 그 두 가지는 이러저러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미묘한 그리고 아마도 얼마간 의식되지 못하는 변화들을 겪는다. 그리고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도 역시 포함되는데, 왜냐하면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며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a contin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는 것이다.'(p50)


2. 사회와 개인


 역사가는 한 사회에 속하는 개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추가적으로 '역사가'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현상(사회적 힘)에 대한 추가적인 고려를 해야한다. 역사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가지 사회적 요소 중 우리는 다음에서  '과학 科學'과 '도덕 道德'에 주목할 수 있다.


 '역사가는 알다시피 한 사람의 개인이다. 다른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사회적 현상으로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대변자이다.'(p57)


 '첫번째 강연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 여러분은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라. 이제 나는 이렇게 덧붙이려고 한다 : 여러분은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p71))


 '역사는 이 말의 두 가지 의미에서 -역사가가 수행하는 연구와 그가 연구하는 과거의 사실이라는 두 가지 뜻에서 - 하나의 사회적인 과정이며, 개인은 그 과정에 사회적인 존재로서 참여한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 이것이 역사의 이중적인 기능이다.'(p87)


3.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과학은 정적 靜的인 것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 동적 動的인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역사학 또한 변화를 다루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 가설을 세우고, 사실을 분석하여 자신의 가설을 검증한다는 측면에서 역사와 과학은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다윈의 혁명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다윈이 이미 라이엘(1787 ~ 1875 영국의 지질학자)에 의해 지질학에서 시작된 것을 완성시키는 가운데 역사를 과학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과학은 더이상 정적이고 초시간적인 어떤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다루는 것이 되었다.'(p90)


 '(과학적 방법)의 결과는 동일한 장소로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니라, 원리와 사실 사이의, 이론과 실천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을 거쳐 새로운 발견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유는 관찰에 기초하는 일정한 전제를 받아들이게 마련인데, 그 전제는 과학적 사유를 가능케 하지만 그 사유에 비추어 수정되지 않으면 안된다.'(p94)


  '오늘날 과학자나 역사가 모두 보다 겸손한 희망, 즉 자신의 해석을 매개로 하여 사실을 분리하고 그 사실로써 자신의 해석을 검증하는 가운데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로부터 또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로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 그러므로 나에게는 그들이 일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는다.'(p97)


 반면, 역사는 특수한 것을 다루고, 교훈을 주지 않으며, 예견할 수 없고, 주관적이며, 도덕적인 사항을 포함한다는 면에서는 과학과는 다른 점이 있다. 역사가는 역사 연구에 있어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되 이러한 차이점을 유념해야 한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강조되는 '도덕'이라는 덕목은 역사적 의미가 있을 때에만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역사는 역사가 자신이 탐구 대상으로 객관화 될 수 없다는 점(역사의 주관성)에서 과학과 다르다. 그렇지만, 역사는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환경 상호관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는 과학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수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또는 수학과 자연과학 영역 내의 상이한 학문분야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는 논의들을 고찰하고 싶다. 그 반론들은 이렇게 요약된다. (1) 역사는 오로지 특수한 것만을 다루며, 과학인 일반적인 것을 다룬다 ; (2) 역사는 교훈을 가르치지 않는다 ; (3) 역사는 예견할 수 없다 ; (4) 역사는 인간이 인간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므로 필연적이고 주관적이다 ; (5)역사는 과학과는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포함한다.'(p98)


 '역사가와 도덕가의 입장은 똑같은 것이 아니다. 헨리 8세는 나쁜 남편이면서도 훌륭한 왕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가는 그의 남편으로서의 자격이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미친 한에서만 남편으로서의 헨리 8세에게 관심을 가진다.'(p116)


 '역사가 과학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해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을 요약해 보자. 이미 과학이란 용어에는 수많은 다양한 방법과 기술을 이용하는 다양한 지식 분야들이 포관되어 있으므로, 역사를 과학에 포함시키려고 하는 사람들보다는 역사를 배제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p129)... 내가 제안하려는 하나의 해결책은 우리 역사학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 역사학을 더욱 과학적으로 만드는 것,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요구사항을 더 엄격하게 제시하는 것이다.(p130) ... 과학자, 사회과학자, 역사가는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가 동일한 연구를 하고 있다 : 그것은 인간과 환경에 관한, 다시 말하여 환경에 대한 인간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환경의 영향에 관한 연구이다.'(p131)


4. 역사에서의 연관관계


 역사가가 역사의 원인을 단순하게 밝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역사가라면 역사적 결과에 대한 원인의 중요성(重要性), 관계성(關係性)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전통의 계승에서 시작되고, 전통은 과거와 미래의 연결을 의미한다. 이제 역사의 의미는 '과거-현재'에서 '과거-미래'로 확장된다.


  '원인의 문제에 대한 역사가의 연구방법의 첫번째 특징은 대체로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원인들을 제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왜 1917년에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발생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오로지 하나의 원인만을 제시한 수험생은 운이 좋아야 C학점을 받을 것이다.(p136)... 이 질문에 대하여 한 다스나 되는 러시아 혁명의 원인들을 차례로 열거하고 나서 그것으로 그만두는데에 만족하는 수험생은 B학점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A 학점을 받기란 어려울 것이다... 진정한 역사가라면 자신이 수집한 원인들의 목록을 앞에다 놓고서는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든가, 일정한 위계질서를 수립해야한다든가, 궁극적인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는 직업적인 강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p137)


 '역사는 전통의 계승에서 시작된다 ; 그리고 전통은 과거의 관습과 교훈을 미래로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기록은 미래의 세대를 위해서 보존되기 시작한다.'(p165)


5. 진보로서의 역사


  역사는 기본적으로 '진보 進步'한다. 생물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회적 진보는 '획득형질'에 의해 시작된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면을 생각한다면 이제 역사의 정의는 다르게 내려질  수 있다.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과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이며, 이러한 대화를 통해 역사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나는 진보(progress)와 진화(evolution)에 관한 혼란스런 생각부터 제거하고 싶다... 다윈의 혁명은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함으로써 모든 혼란을 제거하는 것처럼 보였다 ; 자연도 역사와 마찬가지로 결국 진보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진화의 원천인 생물학적인 유전(biological inheritance)을 역사에서의 진보의 원천인 사회적인 획득(social acquisition)과 혼동함으로써 훨씬 더 심각한 오해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p171)


 '5,000년 전의 조상보다 현대인의 두뇌가 더 크지도 않으며 타고난 사고능력이 더 큰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그동안의 여러 세대의 경험을 습득하여 그것을 자신의 경험에 합체시킴으로써 사고의 유효성을 몇 배나 증가시켜왔다. 생물학자들이 거부하고 있는 획득형질(獲得形質, acquired characteristics)의 전승이야말로 사회적 진보의 바로 그 기초인 것이다.'(p172)


 '그러므로, 내가 지난번 강연에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오히려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라고 말했어야 했을 것이다. 역사가의 과거에 대한 해석, 중요한 것과 적절한 것에 대한 선택은 새로운 목표들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라고 말했어야 했을 것이다. 역사가의 과거에 대한 해석, 중용한 것과 적절한 것에 대한 선택은 새로운 목표들이 서서히 출현함에 따라서 발전하게 된다.'(p186)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나는 진보를 "역사서술의 기초가 되어야할 과학적인 가설"이라고 본 액턴의 설명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우리가 어딘가로부터 왔다는 믿음은 우리가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믿음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미래의 진보능력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의 진보에 대한 관심도 이내 포기할 것이다.'(p198)


 6. 지평선의 확대


  역사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의미있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들은 대담한 인간들의 자발적 도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시간의 경과를 자연적 과정 -계절의 순환이라든가 사람의 일생과 같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의식적으로 연루되고 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정한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역사는 시작된다.'(p200)


 '학문에서든 역사에서든 사회에서든, 인간사에서의 진보는 기존질서의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일에 스스로를 제한시키지 않고 현존질서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의지하고 있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전제들에 대하여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인간들의 그 대담한 자발성을 통해서 주로 이루어진 것이다.'(p229)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E.H.카는 역사는 '과거의 사실'에 대한 '현재의 역사가'의 해석에 의해 의미가 부여된다고 말한다. 또한, 역사가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역사는 당대의 사회와 관계를 맺게 된다는 점에서 다른 과학과 차이점을 가진다.  역사학자는 '역사'와 '과학'과의 몇 가지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연구 자세를 통해 '새로운 미래의 목적'에 맞는 '과거 사실의 해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미래의 목적을 향해 '진보'한다는 E.H카 자신의 역사관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로 정의한 것은 E.H.카 역사관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본문 전체 내용을 고려했을 때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역사가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역사 해석, 미래에 대한 낙관과 여기에 근거한 끊임없는 해석이라 생각된다. '역사의 진보'를 가정한 E.H.카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과 반론이 있겠지만, 이번 리뷰의 범위를 넘어선다 생각되기에, 이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다만, 이번 리뷰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가 단순한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명제를 넘어서, '어떤' 내용의 대화가 '무엇을 위해' 이루어졌으며, '언제'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우리 스스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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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6-11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어요.

겨울호랑이 2017-06-11 14:45   좋아요 1 | URL
^^: mussun09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일요일 보내세요^^:

초딩 2017-06-11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ㅜ 첫 부분만 읽고 물어봅니다
‘정확성‘ 과 ‘역사‘에서
정확성은 역사의 요소 중 하나라는 뜻인지요?
그렇다면
정확성은 역사의 충분 조건이지만 팔요조건은 아니다
라고 하는게 맞는거 같은데요...
북풀을 하는 사람은 (모두 책을 읽는 다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충분 조건이고
책일 읽는 사람은 북플을 하는 사람의 팔요 조건이니...

초딩 2017-06-11 15:27   좋아요 1 | URL
제가 필요와 충분을 잘 못 알고 있을 수도 ㅜㅜ

겨울호랑이 2017-06-11 15:55   좋아요 0 | URL
^^: E.H .카는 ‘역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서 ‘정확성‘은 기본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정확성‘은 ‘역사‘의 부분이 되겠지요. 예를 들면, ‘역사‘의 여러 요소를 정확성, 타당성, 신뢰성 등등으로 본다면요. 그래서,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정확성‘은 ‘필요‘한 조건이 되는 반면, ‘정확성‘만으로는 ‘역사‘를 ‘충분‘하게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제 리뷰에서는 그 부분을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으로, 초딩님께서 말씀하신 조건에서는 ‘북플을 하는 사람들‘은 ‘책을 읽는 사람들‘보다 조건을 하나 더 가지게 있겠네요. ‘책 읽다‘와 ‘북플을 하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북플을 하는 사람들‘이 되기에 필요하지만, 충족하는 조건이 1가지(북플을 하다) 부족한 것같습나다. 바꿔말씀드리면 충분하지는 않겠지요. 그렇게 본다면, 초딩님께서 말씀하신 명제에서는 내용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06-11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자 발자 쓰시는 분의 원통한 죽음을 두고, 호랑님의 문중만이 아니라 저희집안(아버지 말고)도 계속 원한을 가지고 있더군요. 500년 전 일이라도 그 후예들까지 마음에 두는 점에서 역사는 진짜 과거에 지나간 것들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거나 혹은 새로이 해석되는 것이겠죠. 정개청의 죽음 역시 그렇고요

겨울호랑이 2017-06-11 15:53   좋아요 0 | URL
^^: 만화애니비평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500년 전의 사건이 오늘에도 회자되는 것은 기축옥사가 집안에 미친 영향이 컸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기축옥사가 ‘원인‘과 집안에 타격이 되었다는 ‘결과‘가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겠지요. 다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원인의 영향력은 점차 낮아지겠지만, 감정의 상처는 쉽게 나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화애니비평님 문중과 제가 속한 집한 후손들에게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와같다면 2017-06-11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4년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날, 5.18 광주민주화 운동. 87년 6월 항쟁.. 이런 역사들이 부정당하는 느낌에 힘들어 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작년 늦가을 부터 혹한의 시간까지
광화문 찬 바닥에 앉아서 ‘과연 역사는 진보하는가?‘ 라는 의문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그때 제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거는
˝ 역사는 진보한다. 이것이 나의 신념이다.˝ 라는 노무현대통령의 말씀이였어요

겨울호랑이 2017-06-11 18:10   좋아요 2 | URL
^^: <역사는 무엇인가>를 읽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역사가 진보하는가?‘하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명박-박근혜의 10년이 대다수에겐 퇴보였다면, 10년이라는 시간이 방향성을 이야기하기에 충분한 시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그 시간이 다수에겐 퇴보였다면, 일부 친일파에겐 발전이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참 어렵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6-11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인생의 책... 넘 좋지 않으세요? ㅎㅎ

겨울호랑이 2017-06-11 18:46   좋아요 0 | URL
아, 북다이제스터님의 인생의 책이군요.^^: 충분히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책입니다.

yamoo 2017-06-11 2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카의 이 책을 다른 판본으로 각기 5번 읽었더랬습니다. 한 가지 안 건 만족할만한 번역본이 없다는 거에요..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총은 든 사람인가...그 사진이 수록되지 않은 번역본도 있었지요..ㅎ 그나마 까치본이 읽을만했던 거 같습니다.

이 책의 몇 가지 화두 중 하나가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것과, 역사는 과학인가...라는 건데...저 역시 역사의 진보관에는 매우 회의적이라 이 책에다 메모를 해뒀던 기억이 있습니다. 역사가 과학이라는 거에는 가차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적어넣었었죠. 엔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ㅎ



겨울호랑이 님의 리뷰로 보는 <역사란 무엇인가>는 신선하네요. 언제나 책 한권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리뷰입니다. 잘 봤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6-11 22:53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yamoo님. yamoo님께서는 다양한 판본으로 여러 번 읽으셨군요. 보다 깊이있는 독서를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많이 읽지 못해서 큰 틀에서 대강의 내용을 이해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다 알지 못했습니다. <역사는 무엇인가>에 소개된 다른 사학자인 토인비. 랑케, 부르크하르트 등의 역사서를 읽은 후 다시 재독하면 또 다른 의미를 주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yamoo님 편한 밤 되세요^^-

비로그인 2017-06-17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인상깊네요.

겨울호랑이 2017-06-17 13:47   좋아요 1 | URL
단잠님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연의와 연의 엄마가 인형뽑기에서 ‘건담‘레고 블럭을 뽑아왔습니다. 뽑는 것은 엄마 몫이고, 만드는 것은 아빠 몫이네요.

덕분에 오랫만에 프라모델(?) 조립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본드를 사용해서 접착을 하고, 에나멜 페인트로 칠하기도 했었는데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듯 싶네요.

블럭 크기도 작고, 익숙치 않아서 많이 어려웠네요. 마음을 비우고(^^)낑낑 대면서 2시간만에 겨우 조립을 완료 했습니다.

조립 후 모델을 보니 ‘건담 Mark2‘로 추정되는 로봇이 만들어졌습니다. 건담 Mark2는 1986년에 Academy 과학에서 1/100 비율로 2,500원의 가격에 출시되었던 종류이기도 합니다. 당시 남자 아이들은 한 번씩 만들었던 추억의 모델이기도 하지요.

딸 덕분에 30년 전의 추억을 되살려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과학자를 꿈꾸던 아이는 아저씨가 되버렸지만 오랜 친구인 ‘건담‘을 만나니 다시 어린 시절로 강제 소환되 버렸네요.^^:

이웃분들 모두 각자만의 추억이 있으시겠지요. 벌써 금요일입니다. 추억과 함께 행복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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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9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록을 가지고 놀았을 때 제일 불편했던 점이 있었어요. 아무리 손에 힘을 줘도 작은 블록을 한 번에 떼어내지 못할 때가 있어요. 어린 마음에 너무 화가 나서 블록을 집어던기도 했어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6-09 18:57   좋아요 0 | URL
^^: 저도 건담 만들 때 집어던지고 도망가고 싶었어요 ㅋ 블럭 앞에서는 아이도 어른도 똑 같아지는 것 같네요

. 2017-06-09 1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추억의 건담과 블럭..ㅎㅎㅎㅎ 건담 애니도 정말 의미 있게 봤고.. 블럭도 정말 의미있게 가지고 놀았습니다.. 모두 감동 그 자체였죠....

겨울호랑이 2017-06-09 19:41   좋아요 2 | URL
^^: 김영성님은 어린 시절 생각 깊은 어린이였던 것 같네요. 전 별 생각없이 그저 재밌게 봤었습니다 ㅋ

. 2017-06-09 19:43   좋아요 2 | URL
아고,,그렇지 않습니다..ㅎㅎ 저도 아주 어렸을 때는 그냥 별 생각없이 봤을겁니다..ㅎㅎ 건담 시리즈가 워낙 많고 최근에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으니까요..ㅎㅎ 블럭에 관해서는 같이 가져놀던 아이들과의 추억이 짙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ㅎㅎ

2017-06-09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9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6-10 0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비우고 2시간 ㅋ
왜 이렇게 웃기면서도 짠하죠..?ㅋ

근데, 그런 사소한 기쁨과 경험들이 연의의 마음깊은 곳에 남아 추억이 될거예요

저도 학교가기전 아빠 출근길 따라가서 종이인형 사가지고 온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데요..

겨울호랑이 2017-06-10 08:30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이런 작은 기억들이 모여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겠지요... 파랑새는 먼 곳에 있지 않음을 나와같다면님 말씀을 통해 생각하게 되네요^^:
 
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사피엔스 Sapiens>는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저술한 인문과학 교양서다. <사피엔스>에서 하라리는 인류의 역사를 '3대 혁명'의 틀을 통해 분석한다. 첫 번째 혁명인 '인지 認知 혁명', 두 번째 혁명인 '농업 農業  혁명', 세 번째 혁명인 '과학 科學 혁명' 속에서 7만 년 전 인류의 한 개 종(種)에 불과한 사피엔스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바꿔왔는지 서술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진화의 법칙에 따르는 사피엔스에서 '설계자'로 변화되는 인류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러한 <사피엔스>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수렵채집인의 확산과 함께 벌어졌던 멸종의 제1의 물결 다음에는 농부들의 확산과 함께 벌어졌던 멸종의 제2의 물결이 왔고, 이 사실은 오늘날 산업활동이 일으키고 있는 멸종의 제3의 물결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p117)


 1. 첫 번째 혁명 : 인지혁명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들, 심지어 인류의 다른 종(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과도 다른 점은 유전자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경험을 후세에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전자에 의한 변화는 수십만 년, 수백만 년의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인지 혁명을 통한 사피엔스의 인지 능력 향상은 빠른 적응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 ~  )가 '밈 meme'이라고 이름지은 사피엔스만의 독특한 문화 전승 방법은 빠른 시간 내에 자연을 정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른 사회적 동물들의 행태는 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대조적으로, 사피엔스는 인지혁명 이래 행태를 신속하게 바꾸고 새로운 행태를 유전자나 환경의 변화가 없이도 미래 세대에 전달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원시인류의 행동 패턴이 수십만 년간 고정되어 있던 데 비해 사피엔스는 불과 10년 내지 20년 만에도 사회구조, 인간관계의 속성, 경제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행태들을 바꿀 수 있었다... 이것이 사피엔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요인이다.'(p62)

  

2. 두 번째 혁명 : 농업혁명  


  농업혁명을 통해 사피엔스는 수렵채집생활에서 벗어나 농경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농업혁명은 사피엔스의 삶을 행복하게 이끌 수 없었다. 수렵채집생활보다 더 열악한 농경생활 속에서 사피엔스는 결코 승자가 아니었다.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수렵채집인들은 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헙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p124)


농업혁명의 수혜자가 사피엔스가 아니라 그들이 키우던 작물이었다는 말은 성경의 다음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It was not you who chose me, but I who chose you and appointed you to go and bear fruit that will remain, ...'(요한 15 :16)


 사피엔스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러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을 통해 얻게 된 '신화 神話'라는 상상력은 과학 혁명을 통해 더 광대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인류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종이 집단적으로 힘을 키우고 외견상 성공을 구가한 것이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P147)


3. 세 번째 혁명 : 과학혁명


  농업혁명이 사피엔스가 선택한 것이든, 선택받은 것이든 이 시기를 통해 사피엔스는 중요한 개념을 배웠다. 그것은  '미래 未來'와  '상상 想像의 질서'였다. 확장된 시간 속에서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대해 대비하게 된 사피엔스는 상상을 통해 '역사 歷史를 움직이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지리적으로 유럽에서,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농경시대에는 공간이 축소되는 동안 시간은 확장되었다... 수렵채집인들은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데다 먹을거리나 소유물을 저장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농업혁명 덕에 미래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농업경제의 생산 사이클은 계절을 기반으로 했다.'(P151)


 '생물학적 협력본능이 부족함에도 수렵채집기에 서로 모르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었던 것은 공통의 신화 덕분이었다... 신화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리자, 사람들은 위대한 신(神)들, 조상의 땅, 주식회사 등등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인간의 본능이 늘 그렇듯 달팽이처럼 서서히 진화하고 있는 동안, 인간의 상상력은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갔다.'(P155)


4. 과학이 종교, 제국주의, 자본주의를 만났을 때


 과학혁명은 과학과 종교(이데올로기), 제국주의, 자본주의가 결합된 형태에서 보다 극적으로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 나타났다. 종교, 제국주의, 자본주의는 과학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한마디로,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그 대신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과학의 발견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특히 두 가지 힘이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하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다.'(p389)


 가. 종교 宗敎


 <사피엔스>에서 종교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믿음', '신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이데올로기도 현대적 의미에서 '종교'를 의미한다. 과학혁명 시대에 종교는 과학연구 동기 動機 를 부여한다. 


 '지난 3백 년은 흔히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가 점차 중요성을 잃어가며 세속화가 진행된 시기로 묘사된다. 유신론적 종교에 대해서라면 대체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자연법칙 종교를 고려한다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 수많은 자연법칙 종교가 근대에 새로이 등장했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 국가사회주의가 그런 예다. 만일 종교를 초자연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 시스템이고 정의한다면, 공산주의는 이슬람교에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종교다.'(p324)



[그림] 세계의 종교 (출처 : 위키피디아)


 나. 제국주의 帝國主義


 근대 유럽은 유럽만의 '탐험과 정복'의 야망 때문에 이전 어떤 시대, 어느 지역과도 다르게 독특한 제국주의가 발전하게 되었다. 20세기를 지나 많은 식민지들이 독립한 지금도 이러한 유럽의 제국주의는 '문화 제국주의' 형태로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였다. 이런 것들은 빠르게 복사하거나 내면화할 수 없었다... 근대 초기에 유럽은 어떤 잠재력을 개발했기에 근대 후반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는 서로 보완적인 두 가지 답이 존재하는데, 바로 현대 과학과 자본주의다.'(p399)


 '정화 제독은 대양을 탐험하고 각국으로 하여금 중국에게 조공을 바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방문한 나라를 정복하거나 식민지로 삼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유럽인들이 이례적인 점은 탐험과 정복의 야망이 어느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이 탐욕스러웠다는 데 있었다.'(p411)


 '유럽의 방패 아래 새로운 세계 질서와 세계 문화가 등장했다. 요즘 사람들은 당사자들이 통상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수준으로 유럽식 복장을 하고, 유럽식 사고방식과 취향을 지니고 있다.'(p396) 


[그림] 제국주의 (출처 : 조인스 스파이더)



 다. 자본주의 資本主義


  '종교'를 통해서 과학을 발달시키고, 자신의 야망을 '제국주의'를 통해 실현시키려고 해도,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거대 자본의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이를 가능케 만들었다. '자본주의'를 통해 비로소 과학혁명의 '순환 循環'을 완성하게 된다. '종교'를 통한 연구 활동은 '자본'의 집중을 통해 탐험을 지속할 수 있었고, 이렇게 완성된 '제국'은 다시 '과학'으로의 재투자를 가능케 하였다.


 '근대 이전 세계에서 대출을 받기는 힘들었고, 만일 빌리더라도 소액으로 단기간에 높은 이자를 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때 과학혁명과 진보라는 개념이 도래했다. 진보는 우리가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연구에 자원을 투자한다면 나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이 아이디어는 곧 경제용어로 번역되었다... 신뢰는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 더 많은 신용을 향한 길을 열었다.'(p439)


[그림] 자본주의(출처 : 오마이뉴스)


5.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그리고 신인류의 출현


 저자인 하라리는 현재 사피엔스는 과학혁명에서도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진단한다. 여태까지 사피엔스는 '진화의 법칙'에 따르고 있다면, 이제는  스스로 '지적 설계자'가 되어가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생명공학의 힘을 빌려 신(神)이 되어가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하는 중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 선택의 법칙을 깨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지적 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 40억 년에 걸쳐 이어져온 자연선택이라는 구체제는 오늘날 완전히 다른 종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전 세계의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은 살아 있는 개체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원래 해당 종에게 없던 특성을 부여하는 정도까지 자연선택의 법칙을 위반하는 중이다.'(p563)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일 것이다.'(p586)


 <사피엔스>는 과학혁명과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결합이 어떠한 역사를 만들어왔는지와 현재 우리의 위치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우리의 미래를 어렴풋하게 제시한다. (구체적인 제시가 없는 것은 차기작인 <호모 데우스>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사피엔스>는 교양 입문서로서 가지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계 역시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러한 문제는 하라리의 역사관 歷史觀에서 나타난다. 하라리의 역사관은 <사피엔스> 내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먼저, 하라리는 역사가 통일 統一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역사의 방향을 인식하는 일은 사실상 시점의 문제다. 역사를 조감도처럼 보면, 역사가 통일의 방향으로 향하는지 다양성의 방향으로 향하는지 판정하기 어렵다... 수천년이라는 단위를 스캔하는 시점을 취하는 게 낫다. 이 시각에서 보면 역사가 통일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P240)


 과연 그럴까? 개인적으로 인류의 역사를 그렇게 단순하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적으로는 중국 中國의 '분열과 통일'이 반복되는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가 표방하는 '세계화 globalization'와 이에 대항하는 '반 세계화'( 반 反 FTA, 브렉시트 Brexit 등) 운동 등을 살펴보더라도 우리는 역사가 결코 일방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 <사피엔스> 내에는 하라리의 역사관에 대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타난다.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다. 역사는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들 간의 상호작용은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에는 막대한 차이가 생긴다. 역사는 이른바 "2단계 level two" 카오스계다. 카오스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다. 가령 날씨는 1단계 카오스계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요인을 고려하는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 점점 더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다.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 그러므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p341)


 <사피엔스>의 다른 페이지에서는 역사의 방향성에 대해 알 수 없다는 하라리의 또 다른 역사관. 이 주장은 '역사의 방향성'을 제기한 저자의 다른 주장과 서로 모순 矛盾된다. 이처럼 통일이 되지 않은 저자의 주장은 <사피엔스>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게 한다. 여기에 이스라엘인 저자의 유대교에 대한 우호적인 관점은 <사피엔스>에 대한 공감을 어렵게 만든다.


 '유대교는 우주의 최고 권력은 사심과 편견을 지니는데, 그분의 주된 관심은 조그만 유대국가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모를 땅에 있다고 주장했다. 유대교는 다른 나라에게는 이 믿음을 권하지 않았고, 그 존속기간 대부분 동안 선교를 하지도 않았다.'(p309)


 '이신론자들의 (선과 악의) 대립은 결국 기독교와 무슬림 사상의 초석이 되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믿음 역시 그 기원은 이신론에 있었다. 구약에는 이런 믿음의 흔적조차 없다. 사람들의 영혼이 육체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산다는 주장 또한 전혀 나오지 않는다.'(p317)


  종교적으로 유대교가 기독교와 이슬람교 성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자본주의에서 유대자본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최근의 과학혁명에서 유대인의 역할은 결코 무시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은폐하는 듯한 하라리의 입장은 공감하기 어렵고, 저자의 주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사를 조망하는 좋은 관점을 일반인에게 제시한다는 면에서 <사피엔스>는 한 번은 읽어볼만한 유익한 인문/과학교양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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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7 16: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은 분들이 유발 하라리의 역사관을 ‘진보로 향하는 진화’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독자가 이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저자의 생각을 여러 가지 관점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어요. ‘진보로 향하는 진화’라는 단어 자체가 다윈이 말한 진화의 의미로 볼 수 없어요. 진화와 ‘발전’은 다른 겁니다. 진화는 진보와 발전 향상을 위해 이루어지는 단계가 아닙니다. 역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다가 어떠한 변수를 만나 급격히 쇠퇴하는 경우가 있어요. 유발 하리리가 주장한 긍정적인 미래상을 회의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6-07 16:26   좋아요 1 | URL
네^^: cyrus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공감합니다. 역사에서 자연의 법칙과 같은 일반화된 법칙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cyrus님 말씀처럼 ‘진화‘는 방향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하라리의 관점은 성급하다는 생각과 함께 역사법칙의 지나친 단순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경계해야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hnine 2017-06-07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막상 읽었지만 어떻게 정리를 해야할지 (요점 정리 위주로 리뷰를 써야할지, 소감 위주로 써야할지) 몰라 리뷰를 못올리고 있는 중인데 겨울호랑이님 일목요연하게 정리 잘 해서 올려주셨네요. 저에게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저 같은 문외한으로는 그저 감탄, 경탄 하며 읽었지만 분명 저자의 주관도 작용했으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7-06-07 16:23   좋아요 0 | URL
^^: 부족하나마 내용을 정리했는데 hnine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기쁩니다. hnine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자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06-07 1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책을 읽으며 서평을 적을 때 너무 난잡하게 적을수밖에 없었습니다. 책내용이 겉으로 목차를 보면 상당히 순차적이나, 책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너무나 요동부절이었습니다.
다른 분이 잘 말한 것처럼 진보와 진화는 다르고, 게다가 모든 과학과 종교 정치적 사상조차 하나의 만들어진 산물이라면
하라리 자신도 그 산물의 하나인데, 그의 책에서 본인이 그런 공간속에 점이란 상실을 너무 망각한 게 아닌가 하는
심정입니다. 다이아몬드의 총균쇠가 서구 백일우월주의가 깔려있고, 기독교문화가 서양문화 토대라면
그 서양문화의 시초, 기독교의 발생지인 예수살렘의 학자가 가닌 전지적 관점은 한계라고 봤습니다.

마빈해리스의 책과 같이 서양의 합리주의로 파괴당한 원시 및 제3세계의 민족과 국가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어도
해리스처럼 애정은 없었습니다. 이 책은 인류학 서적이나 인류의 애정이 없는 책인듯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6-07 16:31   좋아요 0 | URL
^^: 아직 마빈 해리스의 문화 인류학 3부작은 깊이 있게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만화애니비평님의 말씀과 다른 이웃분인 북다이제스터님의 추천을 생각하면, 필독서라 생각됩니다. 만화애니비평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피엔스>에 영향을 준 <총, 균, 쇠>의 관점과 유대인 특유의 선민사상이 알게모르게 책에 배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부분을 다음에 마빈 해리스의 저작을 읽을 때 염두에 두면 의미있는 독서가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6-07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분들의 말씀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책이라 생각됩니다. 그 점이 누군가에게 장점이 혹은 단점일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6-07 16:49   좋아요 1 | URL
^^: 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래서 더 화제가 되었던 것 같아요.

북다이제스터 2017-06-07 17:04   좋아요 1 | URL
참, <호모 데우스> 읽어보시면 선민사상과 인권 등이 사피엔스 멸망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전 이해했습니다. 그 만큼 읽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게 저자는 책을 쓰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6-07 17:09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북다이제스터님의 해석도 유념해서 <호모 데우스>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6-07 23:31   좋아요 2 | URL
저자의 역사관에 대해서도 저와 해석이 다르세요. 저자의 역사관이 모순된 듯 보일 수 있지만 역사의 통일성은 상대적 개념으로 보입니다. 세계화를 반대하는 반세계화 주장도 있지만 고대 등 과거에 비해 현재가 세계화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반면 역사가 카오스적이란 말은 우연과 필연에서 우연에 힘을둔 역사관련 흔한 일반적 서술이라고 전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쟁점을 떠나 이책이 정말 대단한 점은 저를 포함하여 이 책을 읽을 때면 뭔가 틀린 점을 찾고 싶고 흠을 잡고 싶고 뭔가 부정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는 것 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자 책들은 참 흥미롭습니다. ^^ <호모 데우스>는 제게 더 했습니다. ^^ 하지만 결국 승복하게 만드는 정말 이상한 책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7-06-08 07:52   좋아요 0 | URL
^^: 그렇군요.. 북다이제스터님께서는 역사 진행 방향 중 ‘통일성‘에 더 중점을 두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통일성- 분열‘ 에 대해 어느 방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통일성이, 때로는 분열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재는 그렇지만, 공부가 깊어지면, 북다이제스터님 의견과 같은 의견을 가질 수 있을것 같습니다. <사피엔스>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2017-06-07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7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6-08 1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던 겨울호랑이님의 사피엔스 리뷰를 읽네요..

읽는 중이라..
이동진 빨간책방 ‘사피엔스‘ 편 오프닝글을 대신 올립니다

희도록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먼 길을 가야 할 때,
그 빗속에 발을 내딛는 사람의 마음.
수억 광년을 달려 지구에 도착한 오늘 저녁의 별빛.
그 빛이 지나온 우주와 그 긴 시간은 얼마나 막막할까요.
그 막막함은 외로움이었을까요.

흰 종이 앞에 마주한 작가의 마음도 그럴 겁니다.
그렇다면 막막한 것은 흴까요, 검을까요.
혹은 우주처럼 심연처럼, 암청색에 가까울까요.

쌀을 쏟아놓고 주저앉아 우는 아이.
많음이 기가 막혀서, 그 많은 걸 담을 길을 몰라서 웁니다.
그때의 막막함이란 두려움에 가깝겠죠.

어쩌면 우리가 이 세상에 처음 던져졌을 때 그 최초의 울음은 살아갈 세계가 막막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처럼 울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문득 있습니다.

살아갈 날들의 막막함, 아득한 수평선의 막막함,
먼 눈빛의 막막함.

그때의 막막함은 너무 막연하고 쓸쓸한 쪽이라서 잘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막막’이란 글자는 ‘사막’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사막을 건너는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건
역시 또 수억 광년을 막막히 건너온 별빛이네요.

겨울호랑이 2017-06-07 19:04   좋아요 2 | URL
^^: 나와같다면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두려움이겠지요. 불안감에 스스로 흔들릴 때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또는 처음 난 길을 갈 때겠지요. 한 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해봅니다. 새벽눈이 쌓인 길 발자국이 없는 하얀 눈길 속에 ‘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가는 것은 막막함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설레임을 느끼게 됩니다.

AgalmA 2017-06-07 19: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겨울호랑이님! 정리 잘 하셨네요^^
헌데 저는 유발 하라리의 통일적 역사관과 카오스적 역사관이 섞일 수밖에 없는 걸 이해합니다. 제가 이 책 읽을 때 제임스 글릭 <카오스>를 읽고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제임스 글릭도 수많은 역사가들처럼 고민하는 대목이 있는데요. ˝많은 관련된 힘 가운데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이 무시되어도 별문제 없는가를 결정하는 일˝에 대해서요.
역사적으로 열역학 제2법칙은 사회의 와해, 경제의 쇠퇴, 도덕의 붕괴, 퇴폐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하나의 관점일 뿐입니다. 엔트로피는 열이나 온도와 관련한 열역학적 목적에 부합하나 무질서의 측도로 쓰기에는 매우 막연하다고 제임스 글릭은 밝히고 있지요.
카오스 이론에서 중요한 ‘초기조건의 민감성‘을 종잡을 수 없는 파괴성으로 인식하면 답은 무용지물이죠. 그러나 제임스 글릭은 ‘초기 조건의 민감성‘이 창조성에 기여한다고 말하죠. 조지프 포드 ˝진화란 피드백을 가진 카오스다˝란 말처럼 이 우주가 무작위적이고 소산적일 수 있지만 방향성을 가진 무작위성입니다. 카오스 이론은 그 복잡성 속에서 패턴과 질서를 본 거죠.
즉 유발 하라리의 통일성은 카오스 이론을 바탕으로 한 상태로서의 통일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기존의 환원주의적 통일과는 좀 다르죠.
사람들은 과학을 진리를 말해주는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싶어하지만 과학도 우리 상상 질서의 체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이론의 엇갈림이 있는 것이고요.

겨울호랑이 2017-06-07 19:28   좋아요 2 | URL
^^: 감사합니다. AgalmA님의 말씀 중에서 ‘방향성을 가진 무작위성‘이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설명한 역사와 관련한 관점을 잘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AgalmA님 덕분에 이해했습니다. 다만, 저는 방향성의 방향이 ‘통일‘로 간다는 하라리의 의견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통일‘과 ‘분열‘을 일종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면 어느 한 쪽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 성격이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통일‘의 역사보다 인류사를 더 잘 설명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사피엔스>내의 하라리 역사관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ㅋ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07 2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리의 달인이자, 꼼곰함의 달인이신 분이십니다. 워낙 성실하시니 댓글도 다들 성실한 댓글을 다시네요.. 책 안 읽어도 겨호 님 요약본만 읽으면 읽은 척할 수 있어 좋습니다. 어디 가서 읽은 척해야 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6-08 07:54   좋아요 0 | URL
^^: 곰곰발님 감사합니다. 제가 <사피엔스>를 요약했습니다만, 제대로 되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곰곰발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께서 직접 읽어보시면 더 많은 것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바쁜 이웃분들께 조그만 도움이 되어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06-07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범 대신 곰인가요? ㅎㅎ

messenger 2017-06-08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
http://cafe.naver.com/loveliberty

. 2017-06-08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글을 읽고 책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네요.

겨울호랑이 2017-06-08 19:14   좋아요 1 | URL
^^: 김영성님께서 직접 읽으시면 제 리뷰에서 놓친 부분을 많이 찾으시리라 생각합니다

2017-06-08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8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7-06-08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발하라리의 저 두꺼운 책을 이리 쌈박하게 요약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럭 벽돌책은 안 읽는 주의라서욤..ㅎ
이거 보고 <사피엔스>는 읽었다고 자위해야 겠습니다~ㅎ

겨울호랑이 2017-06-08 22:24   좋아요 1 | URL
^^: 막상 읽어보시면 yamoo님께서도 재밌게 읽으실 책이라 생각되네요^^: 감사합니다

jackie 2017-06-12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막연히 정리해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꼼꼼하면서도
마지막 신인류 부분에서도 비평을 잃지 않으시는 냉철한 정리 감사히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6-12 17:56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초란공 2018-09-08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부러운 마음으로 호랑이님의 글을 읽곤합니다. <사피엔스>도 스스로 뭔지 모르게 공감하기 힘든 부분들은 있다 정도로만 정리된 상태였어요. <반기업 인문학>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유발 하라리의 저작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은반면 <반기업 인문학>에서 비판한 부분은 제가 공감을 많이 하게 되었구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09-08 12:46   좋아요 0 | URL
Nykino님 감사합니다. 유발 하라리의 통찰이 뛰어난 부분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전체 생각에 동의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그런 부분도 많겠지만요.^^:) 다만, 이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