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웃음이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특징‘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대단한 학식인양 인용하는 사람이 있는지. 동물을 ‘영혼 없는 기계‘로 본 데카르트나 ‘얼빠진 상태‘로 본 하이데거도 대책없이 자기 도취적인 인간 중심주의 관점인 건 마찬가지였던 거 같다. 다윈도 수세에 몰릴 정도였으니 뭐.
행동 심리학자 스키너에게도 비우호적인 저자 프란스 드 발은 동물을 통해 우리 생물이 얼마나 유사한지 말하는데, 합리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이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특징이라고 생각했고, 많은 심리학자들은 아직도 즐거워서 혹은 무엇이 재미있어서 웃는 동물이 있다는 주장을 의심한다. 하지만 유인원이 슬랩스틱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아마도 가벼운 신체적 사고 장면 때문에 그럴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걸어오다가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면, 유인원은 처음에는 염려하여 긴장하는 반응을 보이지만, 그 사람이 멀쩡한 것으로 드러나면 분명한 안도감을 드러내며 웃는데,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가 보이는 반응과 같다. 흑표범 가면을 쓴 사람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마가 웃었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한 적이 있다. 보노보에게서도 비슷한 반응을 볼 수 있다.

만약 주변에 있는 남들이 비명을 지르고 낑낑거린다면, 그들은 위험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거기서 벗어나는 게 현명한 행동이다. 고통의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고음의 비명이 귀를 찢는다면, 논리적으로 당연한 행동은 귀를 막거나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동물들은 정반대 행동을 한다. 가까이 다가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고 하는데, 심지어 고통의 소리가 들릴락 말락 할 때조차도 그런 행동을 보인다. 이것은 남의 감정 상태에 관한 관심이다. 생쥐와 원숭이를 비롯해 많은 동물들이 곤경에 빠진 동물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행동은 이기적인 시나리오와 들어맞지 않으며, 1970년대와 190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사회생물학 이론들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음을 증명한다.
자연을 서로 먹고 먹히는 살벌한 장소로 묘사하는 사회생물학 이론들에서는 모든 행동을 이기적 유전자로 설명했고,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경향을 ‘약육강식의 법칙’ 탓으로 돌렸다. 진정한 친절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는데, 위험을 무시하면서까지 남을 도울 만큼 어리석은 동물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행동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신기루 아니면 ‘오작동’ 유전자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타주의자를 할퀴면, 피를 흘리는 위선자를 보게 될 것이다.”(Michael Ghiselin,1974)라는 표현은 그 시대의 정신을 잘 요약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면서 반복적으로 인용했다. 이 표현은 이타주의는 가짜가 분명하다는 뜻이다. 이 표현은 동정심 넘치는 낭만주의자와 희망에 부푼 사상가를 묵살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들은 순진하게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믿었다. 우연치 않게도 이 시대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과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뿐만 아니라 고든 게코Gordon Gekko의 시대이기도 했다. 영화 <월스트리트Wall Street>에 나오는 인물로,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탐욕이라고 믿었다. 사람을 포함한 사회적 동물들이 자연 선택을 통해 만들어진 방식과 명백하게 어긋나는데도 불구하고 이 단순한 개념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떠받들었다.
다행히도 이제는 ‘이기적 유전자’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들리지 않는다. 행동은 언제나 이기적이라는 개념은 새로 쏟아져나온 데이터에 파묻혀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과학은 협력이, 적어도 내집단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우리 종의 가장 중요한 성향임을 확인해주었다.

우리의 태도는 상황에 따라 변하여,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동물인 동시에 가장 잔인한 동물이라는 영예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데, 배려와 잔인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3세기에 카르타고의 초기 기독교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천국에 대해 아주 특이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지옥은 고문이 자행되는 장소인 반면, 천국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지옥을 구경할 수 있는 발코니이며, 그들은 그곳에서 저주받은 영혼들이 불 속에서 타는 모습을 보면서 즐긴다고 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생각인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고통받는 것보다 남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을 더 힘들어한다. 내게는 테르툴리아누스의 발코니가 지옥만큼이나 아주 불쾌한 곳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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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 새끼 쥐. 순수, 나는 그걸 이 단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삶에서 얻은 생태로 사람을 보자마자 달아나는 것보다 너는 낙엽들 속에서 장난을 한창 부리고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그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너를 보며 내게 잔뜩 배어있을 습속이 조금 서러웠다. 사람들이 벤치로 몰리자 그제야 너는 달아났다. 너의 소리가 남긴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설치류의 얼굴이 감정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지만, 자세한 연구를 통해 설치류도 양미간을 좁히고 귀를 낮추고 뺨을 부풀리는 행동을 통해 괴로움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설치류 동료는 이런 얼굴을 쉽게 알아보는데, 실험을 통해 고통을 나타내는 얼굴보다는 편안한 얼굴을 한 쥐 사진 옆에 앉기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스위스 과학자들은 실험실 쥐들을 매일 간질이고 함께 놀아주는 과정을 포함한 긍정적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회기가 끝날 때마다 조용한 순간에 쥐들의 얼굴을 분석했다. 그들은 단지 얼굴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어떤 쥐가 긍정적 치료를 받았는지 구별할 수 있었는데, 분홍색이 더 뚜렷해지고 더 편안해 보이는 귀가 그 단서였다. 이 연구들은 설치류의 얼굴이 정적이라는 개념(동일한 포커페이스를 한 쥐들이 서로 다른 감정을 가졌다고 표현함으로써 쥐들을 조롱한 만화도 있었다)에 종지부를 찍었다.

감정은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이기도 하다. 감정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실험을 통해 사람은 감정이 충만한 사진과 이야기를 중립적인 이야기보다 훨씬 잘 기억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는 자신이 하거나 하려고 하는 거의 모든 일을 감정적 용어로 묘사하길 좋아한다. 결혼식은 낭만적이거나 축제처럼 흥겨운 사건이고, 장례식은 눈물바다가 되는 상황이며, 스포츠 경기는 결과에 따라 아주 즐거운 사건이거나 실망스러운 사건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동물에 대해서도 동일한 편견을 갖고 있다. 야생 카푸친(꼬리감는원숭이)이 돌로 견과를 깨는 장면을 보여주는 인터넷 영상은 물소들이 새끼를 구하려고 사자를 내쫓는 영상보다 조회 수가 훨씬 적다. 물소들이 뿔로 사나운 포식 동물을 물리치는 동안 새끼는 포식 동물의 발톱에서 벗어난다. 두 영상 모두 인상적이고 흥미롭지만,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두 번째 영상이다. 우리는 새끼와 동질감을 느끼면서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어미와 다시 재회하는 장면을 보고 매우 기뻐한다. 사자에게는 이 결과가 전혀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편리하게도 눈을 감는다.
이것은 감정이 지닌 또 하나의 측면이다. 감정은 우리에게 어느 편을 들게 한다.
우리는 단지 감정에만 관심이 많은 게 아니다. 감정은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우리 사회를 조직화한다.

본질적으로 사람의 행동처럼 보이는 제스처가 영장류의 일반적인 패턴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그때 처음 알았다. 진화의 연결 관계는 작은 것들에서 가장 잘 드러날 때가 많다. 그런데 두려움을 느꼈을 때 얼마 없는 우리 몸의 털이 곤두서는 방식(소름)에서부터 남자들과 수컷 침팬지들이 기쁨에 넘쳤을 때 서로의 등을 찰싹 때리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나타내는 표현 중 약 90%가 이러한 연결 관계를 보여준다.

유인원을 바라볼 때, 우리만 공통의 역사를 보는 게 아니라, 우리를 쳐다보는 유인원도 그 역사를 본다. 만약 유인원이 우리에게 타임머신이라면, 우리 역시 유인원에게 타임머신이다.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감정은 별로 쓸모가 없다. 단순히 두려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그 동물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두려움이 동물에게 달아나거나 숨거나 반격하도록 자극한다면, 그 동물의 목숨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요컨대 감정은 위험과 경쟁, 짝짓기 기회 등에 적응적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다. 감정은 행동을 촉발하기 쉽다. 우리 종은 나머지 영장류와 많은 감정을 공유하는데, 모두 대체로 동일한 행동 목록에 의존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설계된 신체로 표현되는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우리와 나머지 영장류는 비언어적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다. 우리 몸은 그들의 몸과, 그리고 그들의 몸은 우리의 몸과 완벽하게 대응하기 때문에, 상호 이해의 길은 바로 눈앞에 있다. 얀과 마마가 사람과 짐승으로서가 아니라, 동등한 개체로 만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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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군! 도서관에서 빌려만 보기엔 아까운 책이다.






오늘날의 상황은 훨씬 더 어두워졌다. 그 이유는 첫째, 관련된 서류들은 아카이브에 들어가 있고, 서류와 실제 사실 간에, 그리고 계획된 목표와 실제 실행 들 간에 차이가 있는 한, 이것들은 수많은 세월 동안 기밀로 남아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제 기밀서류라는 것 자체가 아예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문자와 작성자들을 배제하는 사실적 데이터 흐름이 해독할 수 이자들의 연쇄로서 네트워크화된 컴퓨터들 사이에서 순환하고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자를 단순히 무력하게 만들 뿐 아니라 소위 인간들과 함께 문자를 흡수하고 획득한 기술들은 그러한 사실적 데이터들의 묘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전에는 책들에서, 그 후에는 레코드판이나 영화 들로부터 흘러나왔던 데이터의 흐름은 점점 더 블랙홀 혹은 블랙박스 속으로 사라진다. 이 박스들은 인공지능으로서 우리와는 이별을 고하며, 이름을 알 수 없는 최고사령부로 향하는 도상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은 것은 단지 회상들, 말하자면 이야기들뿐이다. 어떻게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인지를, 어떤 책에도 더 이상 적혀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이제 책들을 위해 기록하려 한다. 한계영역까지 내몰린 낡은 매체들 또한 이러한 상황의 기호와 단서 들을 기록하기에 이제 충분히 민감해졌다. 따라서 마치 마주보는 두 개의 광학 매체의 단면에서처럼 패턴과 무아레가 나타난다. 신화, 과학 소설, 신탁과 같은.....
이 책은 그 이야기들 중 하나를 담고 있다. 이 책은 기술적 매체들의 새로움에 대해 예전 종이책이 기록하고 있는 구절과 텍스트 들을 모으고, 논평을 달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시킨다. 종이들중 많은 것들은 오래되거나 벌써 잊히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적 매체들의 태동기에 그것이 야기한 충격은 너무도 굉장했기 때문에,
문학은 그것을 오늘날의 그럴듯한 매체 다원주의에서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기록해 놓았다. 오늘날의 매체다원주의란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 같지만, 실상 세계 지배를 상속하는 과정에서 실리콘 밸리의 집적회로를 방해하지 않는 경우에 한에서만 그렇다. 그에 반해 이제야 그 독점적 지배가 끝나가고 있는 정보기술 중 하나는 이러한 정보를 정확하게 기록한다. 경악의 미학. 1880년에서 1920년사이에 축음기, 영화, 타자기라는 최초의 기술 매체들에 대하여 경악했던 작가들이 썼던 것들은, 그렇기 때문에 미래로서의 우리들의 현재를 보여주는 유령 사진들로서 기능한다. 소리, 시각, 문자를 저장하고 분리할 수 있었던, 처음에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던장치Gerit들과 더불어 정보의 기술화가 시작되었는데, 앞서 언급했던 이야기들에서 회고해보자면 그것은 오늘닐의 자기회귀적인 숫자들의 흐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기술의 역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분 명한 사실이다. 이 이야기들은 셀 수 없이 많을지리도eahllus, 정작숫자는 빠져 있기zahlenlos 때문이다. 여기에는 모든 혁신이 기반하고 있는 실재적인 것이 결여되어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수의 연쇄, 설계도, 회로도로부터는 절대 다시 문자가 생겨날 수 없으며,
생겨 나올 수 있는 것은 기계뿐이다. 기술 자체가 기술의 본질에대한 경험을 방해한다는 하이데거의 멋진 문장은 바로 이런 사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와 경험에 대한 하이데거의교과서적 혼동은 불필요한 것이다. 철학적인 본질에 대한 질문 대신 단순한 지식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서는 매체에 대해 서술한 작가들의 텍스트가 기반하고 인는 기술적, 역사적 데이터들이 함께 제시될 것이다. 그래야 낡은 건과 새로운 것이, 책과 그 책을 대신한 기술적 매체들이 실제 그들의모습인 정보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매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라는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책 제목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때마다의 지배적인정보기술이 모든 이해를 원격 조종하면서 자신에 대한 환상을 불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계도와 회로도에서는, 그것들이지금 인쇄기술을 통제하고 있는 아니면 전자계산기를 통제하고 있든 간에, 인간의 몸이라는 저 미지의 것에 대한 역사적 형상을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은 매체가 저장하고유통시킬 수 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메시지나 내용이 아니다. 어떤 기술의 시대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 정보기술이 소위 영혼들을 메시지와 내용으로 장식했을 뿐이며, 정작중요한 것은 (매클루언을 엄격하게 따르자면) 단지 회로들과 그 지각 가능성의 도식뿐이다.
(중략)
(헤라클레이토스를 자유롭게 인용하자면) 대부분의 기술적 고안물들을 만들어낸 것은 전쟁이다. 그리고 늦어도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의 『중력의 무지개Gravity‘sRainbow가 출간된 1973년 이래로, 진짜 전쟁은 사람이나 조국을둘러싸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들, 정보기술, 데이터흐름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우리 인간들을 생략해버린, 상황의 패턴과 무아레…..

오늘날의 상태는 부분적으로만 매체연합 체계이며, 모두 아직 매클루언으로 소급된다. 그가 기술했듯이, 하나의 매체의 내용은 언제나 다른 매체이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연합 안에는 영화와 라디오가 있고, 라디오라는 매체연합에는 레코드판과 테이프레코더가 있다. 영화에는 무성영화와 자기 녹음Magnetton이 있으며, 텍스트, 전화, 전보는 우편이라는 매체의 절반을 독점한다. 새로운 세기의 초반, 독일의 폰 리벤Robert von Lieben과 캘리포니아의 디 포리스트Lee De Forest가 제어 가능한 진공관을 발전시킨 후, 시그널을 증폭하고 전송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1930년대 이후 존재하는거대한 매체연합 체계는 이제 문자, 영화, 녹음기라는 세 저장 매체 모두를 장악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그널을 연결하고 전송할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 체계들 사이에는 호환되지 않는 데이터채널과 상이한 데이터 포맷이 존재한다. 전기Elektrik는 아직 전자Elektronik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데이터 흐름의 스펙트럼 안에서 텔레비전과 라디오, 영화와 우편은 사람들의 감각에 다가 가기 위해 각각 제한된 개별 창문을 형성한다. 접근해 오는 미사일을 감지하는 적외선이나 레이더 음향은ㅡ미래의 광섬유와는 달리ㅡ아직 서로 다른 채널을 사용한다. 우리의 매체연합 체계들이유통시키는 것은 사람들이 전송하고 수신할 수 있는 단어와 소음,
이미지 들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 데이터들을 산출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컴퓨터를 조정하여 임의의 알고리듬을 임의의 인터페이스 효과로 바꾸는, 그것도 사람들에게서 감각이 사라져버릴 때까지 그렇게 바꾸어버리는 아웃풋을 생산하지 않는다. 계산되는 것은단지 연합 체계 안에서 내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저장 매체가 가진 송신의 질質뿐이다. 텔레비전의 음질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극장 화면이 얼마나 자주 깜빡거리는지, 혹은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사랑스런 목소리가 어떤 주파수 대역에서 줄어드는지는, 기술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각각의 타협에 의해 규제된다. 우리의 감각은 이러한 규제들에 좌우되는 종속변수들이다.

 축음기 Phonograph와 영상기록기Kinematograph – 그 이름이 문자에서 기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 에 이르러 비로소 저장할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시간은 청각적인 것에서는 소음의 주파수 혼합체로, 광학적인 것에서는 연속되는 단일 이미지들의 운동으로 저장되었다. 모든 예술은 시간에서 그 한계를 갖는다. 일상의 데이터 흐름이 이미지나 기호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술이 그 흐름을 정지시켜야 한다. 예술에서 스타일이라 불리는 것은 이러한 탐색과 선택의 접속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문자를 사용하 여 연속적인, 즉 시간적으로 배열한 데이터 흐름을 운영하는 예술들도 이러한 접속 작업의 지배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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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0-16 0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AgalmA님의 글을 북플에서 못봐서 바쁘신가 했는데, 제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네요. 과거보다 기술이 발전해 매체들의 음질과 화질이 개선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보다 분명한 화질과 음질이 우리의 감각을 더 자극하면서 실재계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상징계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상징계의 암호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이들 우 힘이 모두 작동하게 되는 것인지 물음을 던져 봅니다.^^:)

AgalmA 2019-10-16 01:06   좋아요 1 | URL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나꼼수 등을 필두로 팟캐스트가 한참 붐이다가 요즘은 유튜브가 압도적이 되었잖아요? 예전 팟캐스트가 페이스북 같은 문자 체계 서브 수단을 짝으로 했다면 요즘은 영상 체계의 유튜브로 아예 다 넘어가려고 하죠. 이건 단순히 유튜브라는 매체의 성질 때문만은 아니죠. 우리는 되도록이면 좀더 쉬우면서 즉각적인 매체를 더 선호하는 거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더 강력한 ‘통합매체‘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도 매체의 분화라기보다 통합의 성질이라 봐야겠죠.
아마 우리는 상징계와 실재계의 통합을 바라는 게 아닐까요.
이 세계를 신이 만든 아름다운 세계로 본 것처럼, 내가 사는 이 세계를 그리 만들고 싶은 지도요. 지상에서 (나의) 천국을.
 
[eBook]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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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가 키케로를 인용하고, 키케로가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하고, 줄리언 반스가 그들을 인용하고, 그렇게 한없이 우리는 삶과 이야기와 죽음의 공동체.


옥스퍼드 재학 시절에 처음 몽테뉴를 읽었다. 죽음에 관한 우리의 현대적 사유가 시작되는 지점에 그가 있다. 그는 고대 세계의 현명한 본보기들과 우리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종말을 현대적으로, 원숙하게, 종교를 초월해 받아들이고자 하는 노력을 하나로 이어준다.

“Philosopher, c’est apprendre à mourir.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몽테뉴는 키케로를 인용하고, 키케로는 이어서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한다. 죽음에 관한 그의 박학한 면모를 드러내는 유명한 저서들은 금욕주의적이고 문학적이며 일화가 많고 경구적이고 (어쨌거나 그가 의도한 바대로) 위안을 준다.

(중략)

몽테뉴는 죽음을 물리칠 수 없는 우리가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너의 말이 넘어지거나 지붕에서 타일 한 장이 떨어질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라. 네 입안에선 언제나 죽음의 맛이, 네 혀끝에선 언제나 죽음의 이름이 감돌아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죽음을 예견할 때 죽음의 예속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이에게 죽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기실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다.


(중략)

몽테뉴는 “종교의 가장 확실한 토대는 삶에 대한 경멸이다”라고 말했다. 잠시 빌려 사는 이 세계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기독교도에게는 논리적이며 실로 본질적인 것이었다. 현세에의 과도한 애착(말고도 죽지 않는 몇몇 육생의 형태를 욕망하는 것까지)은 신에 대한 무례였을 것이다. 영국의 몽테뉴라고 할 수 있는 토마스 브라운 경84은 이렇게 썼다.
“이교도에게도 삶을 사랑하게 될 동기들이 있겠지만, 기독교도에겐 죽음을 외경하는 (즉, 두려워하는) 동기들이 있다. 기독교도가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형은 세포 재생에 관한 첫 번째 농담이 기원전 5세기에 생긴 것임을 지적하며 ‘자신은 예전에 돈을 빌렸었던 놈과는 다른 인간이 됐기 때문에 빚을 갚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놈’도 관련이 있다는 말을 했다. 그는 나아가 내가 몽테뉴의 표어 ‘philosopher, c’est apprendre à mourir’를 잘못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키케로의 그 말은 꼬박꼬박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을 덜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철학자는 철학적 사색을 통해 죽음을 연습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신의 정신으로 소일하고 있으며 죽음이 제거할 육체는 무시하고 있다.nn플라톤학파는 죽은 후 인간은 순수한 영혼이 되어 육신의 장애를 벗어나기 때문에 더 자유롭고 명징하게 사유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는 살아 있는 동안 죽음 이후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단식과 자학과 같은 기술을 연마해야 했다. 플라톤학파는 죽은 후에 모든 것이 좋아지기 시작한다고 믿었다. 반면에 에피쿠로스학파는 죽은 후엔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다. 듣자 하니(여기서 ‘듣자 하니’란 말은 ‘형이 말해준 또 한 가지는’을 의미한다) 이 두 개의 전통을 조합해 스스럼없는 고대인 특유의 ‘이것 아니면 저것’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즉 ‘죽은 후 우리는 더 낫다고 느끼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라는.

플로베르와 모파상과 공쿠르와 졸라가 마치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듯 묘사와 분석을 통해 이 세계를 전부 소진시켜 더는 픽션 장르가 할 수 있는 게 남지 않게 된 시점에, 즉 소설의 시대가 막을 내릴지도 모르게 되었을 때 르나르는 산문을 쓰기에 이르렀다. 돌파구는 오로지 요약, 주석, 점묘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사르트르는 『일기』를 거창하지만 다소 마지못한 태도로 상찬하는 글에서, 르나르가 제시한 해결책보다 그 딜레마에 더 큰 갈채를 보냈다.
“한 가지 것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수많은, 더 현대적인 시도는 그 기원을 쥘 르나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이런 말도 했다.
“그를 현대문학의 시작점으로 본다면, 그 이유는 그가 스스로 들어가길 금했던 영역에 대해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기』를 썼고 시기상 르나르의 『일기』와 몇 년이 겹쳤던 지드는 (아마도 경쟁심에) 르나르의 『일기』는 ‘강이 아니라 증류주 공장’이라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뒤이어 ‘열광하며’ 읽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양조장을 원하는가? 아니면 강을 원하는가? 삶이 독주에서 걸러낸 몇 방울 같기를 바라거나 노르망디 사과주 1리터 같기를 바라는가? 이는 독자들이 선택할 몫이다. 작가는 개인의 기질은 물론, 역사적 순간도 통제할 수 있는 바가 거의 없으며, 다만 작가 본인의 미학에 얼마간의 책임을 질 뿐이다. 증류주 같은 르나르의 글은 이미 사라진 문학에 대한 그 자신의 응답이자 거리낌 없는 본성의 표출이었다. 1898년에 그는 이렇게 썼다.
“거의 모든 문학작품에 대해서 지나치게 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평은 천 페이지 분량의 『일기』에서 4백 페이지째에 등장하는데, 르나르가 사망한 후 그의 부인이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길 바라는 페이지들을 골라 태워버리지 않았다면 『일기』는 천오백 페이지에 달했을 것이다.
『일기』에서 르나르는 고도의 정확성을 기해 자연계를 살피면서, 감정을 배제한 찬탄을 곁들여 묘사한다. 그리고 똑같은 정확성을 기해 인간계를 살피면서, 회의적인 태도와 아이러니를 곁들여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숱한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과 달리 자연과 아이러니의 기능을 이해한다. 1899년 12월 26일, 아이러니라는 게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해진 새로운 세기가 막 도래할 즈음 그는 이렇게 썼다.
“아이러니는 잔디를 시들게 하지 않는다. 다만 잡초를 태워 없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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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나르의 친구 중, 희곡작가이자 재담꾼이었던 트리스탕 베르나르는 지나가던 영구차를 보고 마치 택시나 되는 것처럼 멈춰 세운 적이 있었다. 영구차가 멈춰 서자 그는 쾌활하게 물었다.
“타도 돼요?”
마흔여섯 살의 나이로 죽기 전에, 르나르는 지척에서 죽음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다음은 그가 여느 때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죽음을 수습한 사례들이다.

진지함이라. 예컨대 1840년대까지의 교황령에서 태어난다는 건 나로선 바라는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는 교육 수준이 지독히도 낙후돼 있어서 전체 인구의 불과 2퍼센트만 문맹을 면했다. 사제와 비밀경찰이 모든 걸 주관했다. ‘사상가들’은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불온한 부류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런 가운데 그레고리 16세는 ‘중세에 어울리지 않는 건 무조건 불신했기 때문에 철도와 전신이 자신의 통치권 안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금했다’. 이것이 진지하냐고? 천만에. 철저히 잘못된 방향에서 ‘진지하다’면 모를까. 이후 피우스 11세가 1864년에 제정한 ‘금서 목록’의 칙령으로 갈무리되는 세계가 있다. 그 세계에서 왕은 교회가 과학, 문화, 교육 전반을 통제할 것을 주장했고, 다른 종교를 숭배할 자유를 배척했다. 천만에, 내가 이런 것에 끌릴 리 없다. 그들은 처음엔 종파분리론자를 추적할 것이고, 그다음엔 다른 종교들을, 그런 후 나 같은 사람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럴진대, 거의 대부분 종교 체제하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독점을 좋아하는 것처럼, 종교는 권위주의를 좋아한다. 혹여 지금 이 말을 듣고 자동적으로 권위의 상징 같은 저 바티칸에 있던(‘보좌에 앉아 계시던’이라고 해야 하나?) 교황들이 떠오른다면, 그러지 말고 교황의 역사에선 악명 높은 적과 같았던 반가톨릭교도를 떠올려보라. 바로 로베스피에르 말이다. 이 ‘청렴결백한 자’는 1789년 가톨릭교회의 사치와 세속성을 공격하며 국가적 명사로 떠올랐다. 삼부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그는 사제들에게 투명한 수단을 동원해 모든 자산을 팔아 그 수익을 빈자들에게 분배하는 것으로 초기 기독교의 금욕과 미덕을 다시 배우라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교회가 저어한다면 혁명은 기꺼이 도울 것임을 넌지시 시사했다.
대부분의 혁명 지도자들은 무신론자이거나 진지한 불가지론자였고, 새 정부는 수립되기 무섭게 가톨릭 신과 그의 지방 대표들을 제거했다.

서머싯 몸의 명언이 두 개 있는데, 내 딴엔 그 두 명제와 줄기차게 논쟁을 했기 때문인지 몇 년 동안 내게 울림을 주었다. 첫 번째는 ‘아름다움이란 따분한 것’이란 주장이다. 두 번째는 (초록색 색인 카드가 일러주기를) 『서밍 업』의 제77장에 나온다.
“인생의 크나큰 비극은 사람이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당시 내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건 영감님한테나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서머싯 몸은 삶을 이끌 최상의 정신 상태는 ‘유머를 간직한 체념’이라고 생각했던 불가지론자였다. 『서밍 업』에서 그는 그때까지 사람들에게 신의 실재를 믿게 했던 온갖 미흡한 주장들을 (주요 원인부터, 설계부터, 완성부터) 숨 가쁘게 검토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주장들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은 길고 유행에 뒤지는 주장인 ‘e consensu gentium’, 즉 ‘만민의 합의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곧 인간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천차만별의 문화가 배출한 최고의 위인들과 최고의 현자들까지 포함된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신에 대한 모종의 신념을 품어왔으니 신은 실재한다는 의미다. 그토록 광범한 본능이 충족될 가능성 없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세계에 대한 실질적인 지혜와 지식, 그리고 명예와 부를 갖춘 것이 무색하게 서머싯 몸은 ‘유머를 간직한 체념’의 정신을 고수하지는 못했다. 그의 노년은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든 것이 앙심, 멍키 글랜드,적의에 찬 유서 작성으로 점철돼 있었다. 그의 육신은 정력과 정욕 속으로 잠겨 들어가면서 심장은 더욱 딱딱해지고 정신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날이 공허한 부자로 전락했다. 행여 그가 자신의 (쌀쌀맞고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조언을 포함한 유언장에 내용을 추가하고자 했었다면 ‘인생의 또 다른 비극은 우리가 제때에 죽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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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에세이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데이비드 실즈『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보다 줄리언 반스의 이 책이 훨씬 풍부하고 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줄리언 반스에게 더 호감을 갖게 되었다. 신랄하기론 둘다 막상막하겠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무신론 책보다 대중에겐 불가지론자 줄리언 반스의 이 책이 더 호응이 높을 수도 있겠다.
그는 이 책이 자서전이 아니라고 했지만 예순 둘 나이에 죽음에 대한 책을 쓴다면 그 의미가 없을 수 없다. 그가 처음 본 (닭의) 죽음, 가족과 주변인의 죽음, 많은 철학자와 문인의 죽음, 자신에게 닥칠 죽음을 살펴보고 있으니 말이다.
반스는 서머싯 몸의 박학다식에 매우 존경을 표했는데, 이 책을 읽는 우리로서는 반스에게 그와 같다 하겠다. 삶과 죽음, 문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위트 넘치는 강의 같으니까.
아, 이 책 읽고 나면 서머싯 몸 『서밍 업』을 또 안 볼 수가 없다. 미뤄뒀던 그 책도 이제 읽을 때가 도래했다.








첫 번째 짐을 끌고 거대한 노란색 운반용 바구니 속에 넣을 즈음에야 (전에 없이 그 어머니의 그 아들답게) 나는 그 물건들이 내버리기엔 너무도 아깝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부모의 살림살이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들을 남몰래 비닐봉지에 넣어 방치하는 대신, 유품 정리업자가 탈락시킨 물건들을 운반용 바구니에 넣고, 비닐봉지들은 보관해두었다. (어머니라면 이렇게 하길 바랐을까?) 마지막 물품 중 하나는 형이 실망스러운 햄샌드위치에 대해 썼던 여행지인 샹페리에서 아버지가 산 시시한 철제 카우벨이었다. 카우벨은 바구니 밑으로 덜커덕 떨어지면서 딩동, 소리를 냈다. 나는 내 밑에 펼쳐진 물건들을 바라보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조금이라도 켕길 만한 게 없었음에도 왠지 저열해진 기분이었다. 마치 부모를 관에 안장하지 않고 종이 봉지에 담아 묻기라도 한 것처럼.

각설하고. 이것은 나의 ‘자서전’이 아니다. 그렇다고 ‘잃어버린 부모님을 찾아서’ 따위의 이야기도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사실엔 핏줄이기 때문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스스럼없이 굴게 되는 점과,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될 거대한 무지의 영역이 공존함을 안다. 그리고 그 푸프가 품은 기록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부모에게 대단한 비밀이 있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불필요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헤아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아버지도 여든두 살에 죽었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 거라고 늘 생각했었다. 아버지를 더 사랑했고, 어머니에겐 기껏해야 짜증 섞인 정을 느꼈을 뿐이니까. 정작 실상은 정반대였다. 여파가 덜할 거라고 예상했었던 어머니의 죽음은 더 복잡하고 더 위태롭게 다가왔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냥 아버지가 죽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죽자 둘 다 죽은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집 정리 과정은 예전에 우리가 한 가족이었던 시기를 발굴하는 작업이 되었다.

창조자에 대한 믿음보다는 죄의식과 심판에 대한 욕망에 더 기울어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삶은 인간에게 신을 믿도록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쪽지 중 하나에서 그가 한 말이다.
또, “당신은 죽은 후에도 살아 있게 될 것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는 자신을 상상했고, 이에 “나는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하는 것을 상상했다. “당신이나 내가 제시할 만한 이유들 때문이 아니라, ‘나는 소멸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때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확히 안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하기야 우리 중에서도 저런 식의 말을 할 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아주 특별한 보상을 바라고 자신을 공양하는 근본주의자 말고. 하지만 우리는 그 말이 암시하는 게 뭔지는 몰라도, 그 말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하고 무거운지는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 친구 R이 내게 얼마나 자주, 어떤 상황에서 죽음을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잠에서 깨어 있는 하루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후 간간이 일어나는 야간 침입들이 있다고도 했다. 외부 세계가 뚜렷한 평행선을 그릴 때, 저녁으로 접어드는 시간, 낮이 짧아질 때, 혹은 긴 하루 동안의 하이킹이 끝나갈 때, 자주 죽음의 필연성이 불청객처럼 내 의식을 비집고 들어온다.
좀 더 참신하게 말해보면 나의 모닝콜은 텔레비전에서 스포츠 경기가 시작될 때 성가시게 울어대는 때가 많은 것 같고,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5개국(이젠 6개국이 됐다) 럭비 경기 대회 때 유독 심한 것 같다. 나는 R에게 낱낱이 털어놓으며 행여 이 주제를 내 멋대로 곱씹는 것으로 비쳐질까봐 해명했다. 내 말에 그가 대답했다.
“죽음에 대한 네 생각은 ‘건강한’ 것 같은데. (우리 둘 모두의 친구인) G처럼 미친놈 같진 않잖아. 나도 미친놈인 건 마찬가지지. 언제나 ‘당장 저질러’ 유형이었거든. 이를테면 입에 권총을 집어넣는 것이지. 템스 밸리 경찰이 와서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에서 내가 그 말을 한 걸 들었다면서 내 12구경 산탄총을 압수한 이후론 장족의 발전을 했어. 이제 가진 총은 (아들 소유가 된) 공기총뿐이야. 무용지물이야. 쏴지지도 않거든. 그러니 난 너와 ‘함께 늙어갈 거야.’”

만약 내가 러시아 작곡가를 내세워 G와 맞붙어야 한다면 나는 라흐마니노프보다 더 뛰어난 작곡가이며 그 못지않게 죽음에 천착했던 쇼스타코비치에 그와 똑같은 액수의 판돈을 걸겠다. (더 큰 돈을 걸 수도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쇼스타코비치가 말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습관화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예기치 못한 때에 엄습해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과 친해져야 하며, 그 한 가지 방법은 글로 쓰는 것이다. 난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생각하는 게 나이 든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사람들이 좀 더 빨리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어리석은 실수를 할 확률도 줄어들 것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강렬한 감정일 것이다. 그보다 더 깊은 느낌은 없을 거란 생각도 가끔 든다.”
이는 공언된 견해가 아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죽음이 (영웅적 순교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면) 구소련의 예술에선 적절한 주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훌쩍이며 소매로 코를 훔치는 것과 다름없는’ 것임을 알았다. 그의 악보에서 〈디에스이라이〉를 불타오르게 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음악적인 위장술을 펼쳐야 했다. 그러나 이 신중한 작곡가는 점차로 자신의 내면에서 소매로 콧구멍을 슥 닦는 용기를 발견했고, 이는 그의 실내악에서 빛을 발했다. 그의 말년의 작품들엔 죽음의 숙명을 향한 느리고 명상적인 기도가 자주 등장한다. 베토벤 사중주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이 작곡가에게서 제15번의 첫 번째 악장에 관해 이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음악을 들은 파리가 허공에 뜬 채 죽을 수 있을 만한 연주를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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