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촉각 공감각
조엘 살리나스 지음, 정유선 옮김 / 성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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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주변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보이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을 들으면서 주변 상황을 인식한다. 하지만 어떤 뇌는 종종 이 같은 인지 과정에서 벗어난 특이한 기능을 활성화하기도 한다. ‘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퍽퍽한 식감의 삶은 닭고기 맛이 난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특정 글자나 숫자를 보면 색깔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통증을 느끼는 상대방을 보면 자신도 통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 세 사람의 반응은 마약에 취해서 나오는 환각 증상이 아니다. 거울-촉각 공감각(mirror-touch synesthesia)’ 능력자(줄여서 ‘공감각자’)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일이다.

 

공감각자들은 전쟁 영화를 보는 것이 고문이다. 이들은 상대방의 신체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을 보는 것만으로 그 자극이 마치 자신의 몸에 가해진 것처럼 감각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감각자들은 물건을 보면 맛을 느끼거나 이름에서 색깔을 보는 경험을 한다. 공감각자 중에는 비범한 예술적 감각을 가진 이들도 많다.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 그는 살아있었을 때 삼바 춤을 즐겼고 봉고라는 타악기를 수준급으로 연주했다), 가수 빌리 조엘(Billy Joel) 등이 있다.

 

신경과 의사인 조엘 살리나스(Joel Salinas)는 공감각자다. 그는 《거울 촉각 공감각》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각 능력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저자는 자신의 공감각 능력을 뇌과학의 관점으로 설명하면서 인간의 감각과 뇌의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다. 이 책 머리말의 첫 문장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공감각자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나를 배반한다.  (16쪽)

 

 

공감각자의 뇌는 상대방의 경험을 인식한다. 그 순간 공감각자의 몸은 ‘상대방의 몸’이 되고, 그 몸에 ‘내 감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공감각자는 ‘강제적으로’ 공감한다. 거울-촉각을 몸소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공감각자들이 평생 ‘나 자신과 싸움’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틀린 건 아니다. 실제로 저자는 공감각 능력으로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었다. 공감각자의 뇌는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다른 사람을 인식하면서 확인된 정보를 받아들인다. 저자는 자신의 뇌가 다른 사람의 경험과 감정에 지나치게 몰두하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외부 반응에 아주 예민한 공감각자는 늘 겪어야 하는 거울-촉각 경험을 피하고자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거울-촉각 공감각이 그 능력을 갖춘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저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거울-촉각 공감각은 병리적인 현상이나 장애가 아니다. 거울-촉각 공감각도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 중의 하나이다. 거울-촉각 공감각도 장점이 있다. 저자는 환자들의 정서적 · 신체적 경험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입체적인 의사’이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환자들의 진심을 확인하고, 그들이 느꼈을 통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다.

 

 

 눈앞에서 환자가 세상을 떠날 때마다 나도 죽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 느낌은 결코 약해지는 법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러 번 죽었다. 환자가 죽는 것을 볼 때, 죽음 속으로 사라지기 전 마지막 순간을 내 몸에서 체험했다. 헛된 공포의 마지막 순간, 또는 침묵의 특전이었다. 나는 이러한 순간마다 달갑지 않았고, 우발적이며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운 죽음을 막기 위해 항상 무언가,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환자의 마지막 순간의 의식을 존중하고, 그들 삶에서 마지막 순간의 증인이 되고 싶었다. 환자의 마지막 바람은 존중받아야 하고 아무 결함 없이 확실히 이행되어야 한다.  (194쪽)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들이 많다. 이런 의사들은 아프다고 칭얼대면서 찾아오는 환자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효과가 미미한 약을 처방한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이 없는 행동이다. 환자와의 정서적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의사들은 저자의 공감각 경험 사례를 참고했으면 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써 과학적인 진단과 분석, 즉 ‘의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아울러 환자의 통증과 고통 및 두려움까지 공감하며 귀담아 들어주는 ‘인술’이야말로 질병으로 고통받아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이다.

 

《거울 촉각 공감각》은 색다른 능력을 가진 신경과 의사의 자서전이 아니다. 이 책은 ‘공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공감. 얼핏 들으면 평범하고 쉬운 단어이지만 그 의미가 모호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동안 공감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좋은 말인데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누구나 공감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얼추 생각하는 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말하는 공감은 이러한 단순히 ‘생각하기’에만 있지는 않다.

 

 

 공감은 단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왜 그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할 정도로 신경 쓰는 것이다.  (386쪽)

 

 

정말로 진지하게 공감을 하려면 눈이라는 거울에 단순히 비친 상대방이 나 자신의 정신적 공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즉 ‘나’와 상대방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어떤 사람이 된다면 그 사람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고, 그 사람이 행동하는 이유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상대방에 향한 과도한 몰입은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사람에게 공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공감하지 못해도 괜찮다. 공감 능력이 남들보다 떨어졌다는 생각으로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방을 생각해주는 공감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내가 원하지 않은 공감’, ‘강제적인 공감’ 같은 억지스러운 공감은 진지한 공감을 위해 비워야 할 우리의 정신적 공간을 비좁게 만든다. 그런 공감은 ‘나’를 속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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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삶과 종교가 하나로 된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무슬림들의 일상생활과 그들의 종교 율법 간의 차이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정치,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영역에서 그들이 항상 이슬람의 전통과 가치관을 앞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슬람은 적어도 무슬림들에게는 삶 그 자체와 동일시된다. 이것이 정교분리의 세속적 가치관에 익숙한 서구인들이나 우리가 이슬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게 만든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게다가 2001년에 일어난 9.11 테러 이후 우리는 이슬람권과 첨예하게 대립해 온 미국 중심의 인식 틀을 통해 이슬람을 이해해 왔다.

 

그래도 9.11 테러를 기점으로 국내에 이슬람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관련 서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왜곡과 편견에 가깝다는 점을 알면서도 속 시원하게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은 없었다. 몇몇 책은 너무 학문적이거나 전문적이어서 일반 독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지 못했다. 지금부터 소개할 세 권의 책은 이슬람을 종교로서가 아닌 오랫동안 형성된 문화적 체계로 보고,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무슬림들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폭넓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싶다.

    

 

 

 

 

 

 

 

 

 

 

 

 

 

 

 

* 수 로이드 로버츠 여자 전쟁(, 2019)

* 캐런 엘리엇 하우스 사우디아라비아: 중동을 들여다보는 창(메디치미디어, 2016)

* 제럴딘 브룩스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뜨인돌, 2011)

    

 

 

여자 전쟁()30년 넘게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아일랜드, 코소보 등 전 대륙을 넘나들면서 여성 인권을 취재한 영국의 언론인 수 로이드 로버츠(Sue Lloyd-Roberts)가 쓴 유일한 책이자 유작이다. 그녀는 이 책을 여성의 날에 맞춰 공개하려고 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채 201510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딸이 저자가 쓰지 못한 마지막 장(12)을 마무리 지었다. 책의 마지막 장에 저자에게 보내는 딸의 진심 어린 메시지가 있다. 가슴 뭉클해지는 글이니 꼭 읽어보시길.

 

저자의 눈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은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들(감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파키스탄, 요르단)이다. 대부분 무슬림 여성은 여러 형태의 베일을 두르고 길을 나선다. 여성의 신체가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명예를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관에서 기인한 풍습이다. 감비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지금도 할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여성 성기 절제술(Female Genital Mutilation, FGM)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자 전쟁은 여성들의 인권 유린 사례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정권의 부도덕함과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들려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비가시화되기 쉬운 중동 · 아프리카 · 아시아 여성들의 투쟁과 연대 의식에 주목한다.

 

여자 전쟁4장 제목은 세계에서 가장 큰 여성 감옥: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제목만 보고도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무런 헌법적 견제도 없는 왕가의 통치를 받고 있다. 비록 사우디 정부는 약간의 제한적인 개혁을 발표했지만, 국민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들을 선출할 수 없고 종교나 언론 혹은 집회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사우디에서는 여성의 자동차 운전이 금지돼 있다. 사우디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사우디 사회 내부에 스며드는 서구식 문화 및 세속적 가치를 막기 위해 남편에 순종하는 무슬림 여성상을 강조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중동을 들여다보는 창(메디치미디어)은 사우디 내부에 작동하면서 유지되고 있는 사우디인 특유의 수동적인 성격을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의 언론인 캐런 앨리엇 하우스(Karen Elliott House)는 사우디 사람들의 내밀한 정서와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전통과 종교적 규범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그녀는 알라, , 이슬람 중심주의의 전통과 생활방식에 고분고분 따르는 사우디 사람들 대다수가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미로와 같은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미로를 허물어뜨리거나 탈출하려는 적극성과 진취성을 가진 사우디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저항 의지를 사라지게 만드는 미로가 더욱 견고해질수록 여성의 지위와 인권에 대한 여론은 반이슬람적인 서구식 가치로 규정 받으면서 외면 받는다. 아랍의 봄을 이끈 계층이 분노한 청년층이라면, 사우디 사회의 개혁 요구는 여성이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 변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근본주의적이며 보수적이기도 한 여성들 역시 존재한다. 서구 문화에 어느 정도 적응한 젊은 사우디 여성들도 남성우월주의(‘남성이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운전은 남성만 할 수 있다’)와 이슬람 중심주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뜨인돌)을 쓴 호주의 언론인 제럴딘 브룩스(Geraldine Brooks)는 앞서 소개한 두 명의 저자들과 다르게 무슬림 여성들을 억압하는 이슬람 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녀는 남성 중심의 권력체계가 이슬람 신앙을 왜곡해 여성들을 이용하고 억압하고 있다고 말한다. 남성 기득권층이 코란을 해석하는 권리를 독점하고, 종교적 규범을 지키기 위해 코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 진보적인 무슬림들의 소극적인 저항 방식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의 지적에 따르면 몇몇 진보적인 무슬림은 명예살인과 여성 성기 절제술과 같은 반인권적인 관습을 이슬람 신앙과 철저히 분리하려고 한다. 그들은 서구권 국가에 망명하여 반인권 · 반문화적이라는 오명이 씌워진 이슬람 신앙 자체를 보호하는 데 급급하다. 이로 인해 그들은 이슬람 사회에 만연된 현실적인 문제를 보지 못한다. 제럴딘 브룩스는 진보적 무슬림이 근본주의적 무슬림을 비판하는 내부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슬림 여성들의 몸과 삶을 짓밟는 잘못된 관행들을 타파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슬람권 국가에서도 작게나마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아랍의 봄이후, 무슬림 여성들의 권리 향상 열망도 높아지고 있다. 세상이 느리게 진보하는 게 사실이라면 언젠가 이들도 코란에 갇힌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여성 운동의 물결을 흠뻑 적신 미국과 유럽의 여성들도 어느 날 갑자기 자유를 만끽한 것은 아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크고 작은 여성 운동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새로운 문화와 삶의 방식을 만들려는 여성들의 여정을 계속될 것이다.

 

 

 

 

Trivia

 

 

* 엘 사와디FGM을 처녀막에 대한 집착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여자 전쟁, 36)

 

→ 이집트의 여성운동가 나왈 엘 사다위(Nawal El Saadawi)의 오자.

 

 

* 내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우울한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의 하마스(Hamas),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Mujahedin) 분파들, 이집트의 수많은 급진주의자들과 알제리의 이슬람구국전선(Islamic Salvation Front)이 자신의 조국과 이슬람 세계 전체의 모범이라고 주장하는, 남녀가 분리된 황막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237)

 

오류. 하마스는 이스라엘 정부와 대립하는 팔레스타인의 무장 단체이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집권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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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 - 털보 과학관장과 함께라면 온 세상이 과학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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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리뷰를 썼는데도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변명을 해보지만,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과학책을 읽고 있을 때, 그 책 속에 있는 과학 지식이 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자신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책을 덮고 난 후부터 문제가 생긴다. 과학책에 있는 내용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새하얘지고 말문이 막혀버린다. 누군가가 나에게 불쑥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차이가 뭐예요?”라든가 “이기적인 유전자가 무슨 뜻이에요?”라고 질문한다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히 똑똑한 애서가들이 있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나 같은 헛똑똑이는 책 읽는 것 자체를 즐기기만 하는 딜레탕트(dilettante, 호사가)에 가까운 독자이다. 즉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아는 게 많지 않은 사람이다. 이 말은 겸손의 표현이 절대 아니다.

 

최근에 책의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는 문제의 원인을 알아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칼럼 모음집인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에 첫 번째로 실린 글은 암기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독일에 유학 생활은 한 이정모 관장은 자신을 가르친 독일인 교수가 내는 구두시험에 어려움을 느낀다. 구두시험에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교수가 가르쳐준 내용을 암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암기를 잘하지 못한 이정모 관장, 아니 학생은 외워야만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시험 방식에 불만을 가진다. 이정모 학생은 교수에게 직접 찾아가 암기 중심의 교육에 문제 있다는 식으로 따진다. 그러자 교수는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대답한다.

 

 

 “아니,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는가! 학습은 암기일세. 자네 머릿속에 있어야지 책 속에 있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책이 아니라 자네 머리에서 나와야 하네. 그러니 열심히 암기하게나.”

그리고 덧붙였다.

“이해는 완전한 암기를 위한 준비과정이지.”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는가』 중에서, 13쪽)

 

 

이정모 학생은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과학관장이 된 이정모 학생은 교수의 죽비 소리를 들었던 그 날을 회고하면서 창의성보다 더 중요한 게 암기라고 강조한다. 혹시 지금까지 나온 내용만 보면서 이정모 관장이 주입식 암기교육을 옹호한다고 단정하지 마시길 바란다. 이 글의 전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정모 관장은 암기와 주입식 암기 교육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이정모 관장도 그렇고, 나도 주입식 암기교육을 반대한다. 이정모 관장이 말하는 ‘좋은 암기’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기본기다. 독일인 교수는 스무 번 외우고 스무 번 잊어버리면 저절로 외워진다고 말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 있는 내용을 확실하게 건져서 내 머릿속에 담으려면 일회성 독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외워야 할 내용은 무조건 외워야 한다. 그러려면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 꼭 위편삼절(책을 엮은 가죽끈이 3번씩이나 끊어질 정도로 읽어야 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잊을 때가 되었다 싶으면 책을 읽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외워진다.

 

이정모 관장이 말했듯이 과학은 어렵다. 그런데 과학이 어렵다는 이유로 과학 공부를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잖은가. 정말 재미있고, 쉽게 풀어쓴 과학책은 많다. 이정모 관장이 쓴 과학책이 재미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요즘에는 만화로 된 과학책이 나오고 있다. 읽을거리가 많다. 과학책을 반복해서 읽고, 알아야 할 내용을 암기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어렵게 느껴지던 과학이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포기하지 않고/그래도) 과학책을 읽어야겠습니다.

 

 

 

※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권이 전작과 다른 점: 부록으로 이정모 관장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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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3 0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23 12:38   좋아요 0 | URL
귀찮은 방식이지만, 책을 읽을 때도 정말 외워야 할 내용은 꼭 외워야겠어요.... ㅎㅎㅎㅎ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루 알베르트 라사르트(Lou Albert-Lasard)의 회고록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하늘연못)를 언급해보려고 한다. 내가 오늘 이 글에서 말하려는 내용은 김재혁 교수가 옮긴 라사르트의 회고록 번역본에 있는 오류다.

 

 

 

 

 

 

 

 

 

 

 

 

 

 

 

 

 

 

* [절판] 루 알버트 라사르트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 (하늘연못)

 

 

 

첫 번째 오류는 65쪽에 있다. 본문에 릴케와 친하게 지낸 독일의 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Paula Modersohn-Becker)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그런데 김재혁 교수는 화가의 이름을 잘못 썼다. ‘파울라 벡커 모더존’이라고 썼는데, 중간 이름(‘모더존’)과 성(姓, ‘베커’)이 뒤바뀌었다. 김재혁 교수의 주석에도 화가의 이름이 ‘파울라 벡커 모더존’이라고 되어 있다.

 

 

 

 

 

 

 

 

 

 

 

 

 

 

 

 

 

 

 

 

 

 

 

 

 

 

 

 

 

 

 

 

 

* 버나드 덴버 《툴루즈 로트레크》 (시공아트, 2014)

* 엔리카 크리스피노 《로트레크: 몽마르트르의 밤을 사랑한 화가》 (마로니에북스, 2009)

* 앙리 페뤼쇼 《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 (다빈치, 2009)

* 마티아스 아놀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마로니에북스, 2005)

* 클레르 프레셰 《툴루즈 로트레크》 (시공사, 1996)

 

 

 

 

두 번째 오류는 118쪽 본문에 있다. 본문에 적힌 문제의 문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한 번은 파리 근교의 한 장터에서 뚤루즈 로트렉이 공연하는 <식충이(La Goulue)>를 보았다. 는 한 마리의 호랑이와 함께 등장했다. 도 어느 사이에 이젠 늙은이가 되었다.

 

 

릴케는 파리의 몽마르트르 가(Montmartre)에 자주 갔는데, 이곳에 자유분방함을 즐기는 예술가들이 자주 모였다. 1870년대부터 몽마르트르 가에 술집과 카바레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에 들어서면서 몽마르트르 가는 ‘밤의 중심지’가 되었다. 몽마르트르 가에서 가장 유명한 카바레가 물랭루주(Moulin Rouge)이다. 물랭루주는 ‘빨간 풍차’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1889년에 개장했을 당시 물랭루주 건물 위에 거대하고 붉은 풍차 장식이 있었다. 물랭루주는 무도회장인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와 더불어 몽마르르트 가를 대표하는 ‘핫 스팟(hot spot)’이 되었다.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 Lautrec)도 몽마르트르의 화려한 분위기에 푹 빠진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몽마르트르의 카페, 술집, 카바레 등을 드나들면서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물랭루주의 개업은 로트레크가 ‘화가’로서 유명세를 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물랭루주는 로트레크에게 포스터 제작을 의뢰했다. 로트레크가 그린 포스터는 공개되자 곧바로 인기를 얻었다. 특히 물랭루주의 최고 인기 스타인 ‘라 굴뤼(La Goulue)’의 춤추는 모습이 그려진 포스터는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굴뤼(goulue)’는 ‘게걸스럽게 먹는’, ‘식충이’, ‘대식가’를 뜻하는 ‘goulu’의 여성형 명사이다. 라 굴뤼의 본명은 루이스 베버(Louise Weber)이다. 그녀는 캉캉 춤과 유사한 자신만의 춤을 유행시켜 물랭루주의 스타가 되었다. 로트레크는 라 굴뤼가 은퇴할 때까지 8년 동안 가까이서 지켜봤고, 그녀의 매력을 담은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다.

 

자, 이제 118쪽에 있는 문장의 오류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뚤루즈 로트렉이 공연하는 <식충이>’라는 문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 내용이다. 릴케가 본 것은 ‘식충이’라는 뜻의 별명으로 알려진 라 굴뤼의 공연이었고, 로트레크는 무대 위에 춤추는 라 굴뤼의 모습을 그렸다. 사실에 맞게 문장을 고치면 이렇다.

 

 

 한 번은 파리 근교의 한 장터에서 라 굴뤼(식충이)의 공연을 보았다. 그녀는 한 마리의 호랑이와 함께 등장했다. 그녀도 어느 사이에 이젠 늙은이가 되었다.

 

 

세 번째 오류는 160쪽, 김재혁 교수의 주석에 있다. 이 주석에 적힌 내용을 보면 독일의 화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의 사망 연도가 ‘1960년’으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란츠 마르크는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1916년에 전사했다.

 

이 글에서 파울러 모더존 베커와 프란츠 마르크에 대한 설명을 일부러 생략했다. 파울러 모더존 베커와 프란츠 마르크, 이 두 사람의 삶과 작품 세계를 주제로 한 글을 따로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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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여, , 순수한 모순이여,

그리고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 되고픈[1] 마음이여.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묘비명이다. 원래는 릴케가 쓴 시였는데, 그가 죽으면서 시는 묘비명이 되었다. 릴케는 장미를 좋아했고, 장미를 예찬하는 시를 썼다. 그가 쓴 수많은 시에 장미라는 단어가 250번이나 등장한다. 릴케가 장미의 시인으로 알려져서 그런지 몰라도 그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 친구에게 줄 장미를 꺾다가 손가락에 가시가 찔렸는데, 그 상처에 덧나서 생긴 패혈증에 걸려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 [절판] 루 알버트 라사르트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하늘연못, 1998)

* [절판] 볼프강 레프만 릴케: 영혼의 모험가(책세상, 1997)

* [절판] 미셸 슈나이더 죽음을 그리다(마음산책, 2006)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리는 바람에 한동안 통증에 시달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패혈증이 아니라 백혈병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유명한 작가들의 최후를 모아놓은 죽음을 그리다(마음산책)는 장미 가시 때문에 영면한 릴케의 낭만적인 최후가 와전된 신화임을 보여준다. 임종에 가까워진 릴케를 진찰한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릴케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는 유서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딱 한 번 썼다. 릴케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죽음의 순간을 언급했다.

 

 

나는 의사들에 의한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나는 나의 자유를 갖고 싶습니다.”

 

(구디 뇔케 여사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릴케: 영혼의 모험가에 인용됨, 610)

 

 

릴케가 말한 자유가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릴케는 젊은 시절에 쓴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자신이 죽으면 영광의 광채(The radiance of Glory)가 내리길 원했을지도 모른다.[2] 영광의 광채가 찬란하게 내려오는 곳은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천국이다. 릴케가 생각한 천국은 장미로 가득한 거대한 정원이 아니었을까.

    

 

 

 

 

 

 

 

 

 

 

 

 

 

 

  

 

* [절판] 루 살로메 선택된 자들의 소망(투영, 2000)

* [절판] 루 살로메 하얀 길 위의 릴케(모티브, 2003)

* [절판] 프랑수아즈 지루 루 살로메: 자유로운 여자 이야기(해냄, 2006)

    

 

 

 

 

 

 

 

 

 

 

 

 

 

 

 

* 릴케 릴케 시집(문예출판사, 2014)

* 릴케 기도 시집들(책세상, 2000)

    

 

 

릴케와 친하게 지낸(또는 연애한) 여성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Lou Andreas-Salomé)다. 루 살로메는 릴케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준다. 1899년에 릴케는 루 살로메 부부와 함께 처음으로 러시아를 여행한다. 이듬해에 릴케는 루와 단둘이서 다시 러시아를 여행한다. 릴케의 러시아 여행은 시인으로서의 릴케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선택된 자들의 소망(투영)에 수록된 나와 릴케라는 제목의 글은 릴케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시작해서 그와 함께한 러시아에서의 여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이 글에서 루는 러시아 여행의 여운이 반영된 릴케의 초기 시집 기도 시집을 분석한다. 이러한 릴케의 시 세계에 대한 루의 지대한 관심은 릴케가 죽은 후에 발표한 하얀 길 위의 릴케(모티브)로 이어진다. 루는 릴케가 자신에 보낸 편지글을 통해 그와의 추억을 되살리고, 정신분석학 관점으로 릴케의 중기 및 후기 시 작품들을 분석한다. 루는 프로이트(Freud)에게 배운 정신분석학을 동원하여 릴케의 시 세계에 반영된 어린 시절 릴케의 모습을 소환한다. 릴케의 어머니는 일찍 죽은 딸을 잊지 못해 어린 릴케를 딸의 대체물로 생각하면서 키웠다. 릴케는 일곱 살 때까지 여자아이처럼 인형을 갖고 놀거나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 이로 인해 릴케는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을 것이고, 어머니의 보살핌을 많이 받지 못한 어린 릴케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에 향한 불편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루는 릴케의 글에 어머니의 모습이 다양하게 변형되어 나타나 있다고 주장한다.

 

릴케는 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여성을 만났는데, 한 명이 앞서 언급한 루 살로메다. 또 한 사람은 릴케와 십여 년 동안 친하게 지낸 화가 루 알베르트 라사르트(Lou Albert-Lasard)이다. 릴케는 그녀를 룰루(Lulu)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룰루는 1952년에 릴케를 회고한 책 ‘Wege Mit Rlike(릴케와 함께 걸은 길)를 발표했는데, 이 책은 릴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재혁 교수의 번역본으로 나왔다. 1993년에 소유하지 않는 사랑(범조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처음 출간되었고, 1998년에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하늘연못)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룰루는 루와 릴케의 관계를 언급하는데, 그녀의 남자다운 기질과 활동적인 모습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듯한 어조로 묘사한다. 루 살로메가 악녀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그녀는 한 마디로 날카로운 오성과 활기찬 기질을 겸비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감성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딘가 지나치게 분석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루 살로메는 나이나 겉모습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음에도 그녀 특유의 타오르는 생동감 덕분에 여전히 그녀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루가 내뱉은 한 마디의 경멸조의 말에 눈물을 흘린 나머지 단안경을 땅바닥에 떨어뜨리던 한 사내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녀의 눈길은 엄청난 힘을 발하고 있었다.

    

 

(루 알베르트 라사르트,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중에서, 77쪽과 80)

 

 

김재혁 교수는 라사르트의 회고록이 릴케 연구서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볼프강 레프만(Wolfgang Rebmann)이 릴케 평전을 쓸 때 참고한 문헌 목록에 라사르트의 회고록이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루 살로메가 쓴 회고록도 참고 문헌 목록에 들어있다. 루 살로메와 루 알베르트 라사르트의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독자는 릴케라는 시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그의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권의 번역본 모두 구할 수 없게 됐다. 예전에 썼던 글에 한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절판된 책을 사람으로 비유하면 고인이나 다름없다. 릴케가 세상을 떠난 날 다음에 아침 신문에 실린 부고 한 줄 빌려 절판된 세 권의 책을 추도하는 짤막한 글을 남겨본다.

 

 

릴케 평전은 죽었고, 그가 쓴 시만 홀로 남아 있다! [3]

 

 

 

 

 

 

[1]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릴케: 영혼의 모험가를 번역한 김재혁 교수는 묘비명의 마지막 구절을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픈 마음이여라고 썼다. 잠이고픈이라는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져서 잠이 되고픈이라고 고쳐 써봤다.

    

 

[2]

늙은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도 쉬게 되리라, 이렇게 편안히

젊은이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죽을 때도 영광의 광채가 내리기를.

 

(해넘이의 마지막 인사중에서, 송영택 옮김, 릴케 시집, 19

 

 

[3] 원문: 릴케는 죽었고, 세상만이 홀로 남아 있다! (Rilke est mort, que le monde reste seul!,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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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2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서체로 물어보는 건데, 이 정도 함량의 글을 돈 한 푼 안 받고 쓰면 손해보는 기분 들고 그런 건 없어요??

cyrus 2019-05-21 19:44   좋아요 1 | URL
글 쓰는 재미로 하는 거죠. 예전에 저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무슨 대가나 인정을 바라면서 글을 쓰면 글 못 써요. 보상(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를 가지는 것도 좋긴 하지만, 너무 거기에 집착하면 번뇌가 되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해탈하기로 했습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