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무서운 그림 - 명화 속 숨겨진 어둠을 읽다 무서운 그림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이 색깔 있는 텍스트(text)라면 그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작품이 어느 시대에 그려졌고, 화가가 어떤 기법을 사용했는지 알아보는 일은 그림을 보는 감상자에게 의미가 없다. 물론 작품과 관련된 지식은 그림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림을 읽기 위한 열쇠가 단 한 개만 있는 게 아니다. 미술관의 큐레이터(curator)는 그림을 어려워하는 감상자에 다가가 그림의 열쇠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미술 지식을 공부하지 않고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그림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해설 방식에 동조하지 말고 자신만의 느낌과 감각으로 그림을 읽으면 된다. 그러면 큐레이터가 미처 알지 못한 그림의 열쇠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그림 읽기라면 그것이 오독과 편견에 물들어 있어도 괜찮다. 오히려 오독과 편견 없이는 그림을 보는 행위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림을 보려는 감상자를 방해하는 것은 감상자의 편견이 아니라 상식이 돼버린 그림의 해설이다.

 

신 무서운 그림 명화 속에 숨어 있는 으스스한 진실을 들려준 무서운 그림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전문적인 미술 해설서가 아니다. 저자가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그림 저편에 숨어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머리와 마음으로 읽어내는 미술 에세이다. 머리로 그림을 읽는 일은 작품에 담긴 의도, 작가의 삶, 시대 배경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으로 그림을 읽는 일은 감상자의 속내 깊은 시선을 그림에 투영하는 것이다. 저자가 그림 속에 발견한 무서운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틀렸다고 비난할 수 없다. 미술 전문가도 편견으로 그림을 볼 수 있으며 언제든지 오독할 수도 있다.

 

워낙 유명한 책이니 책 소개는 여기까지만 하고, 이 책에 고쳐야 할 내용과 새로 덧붙이고 싶은 내용(이 책에 대한 나만의 주석)을 언급하겠다.

 

다음 인용문은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가 학창 시절에 겪은 교통사고에 대한 상황을 설명한 내용이다.

 

 

 인생을 바꿀 만큼 큰 사고를 겪었다. 열여덟 살 때였다. 젊은 연인들이 탄 버스가 노면 전차와 충돌해 찌부러졌던 것이다. 뒷날 그녀는 이렇게 썼다. “기묘한 충격이었다. 둔하고 완만한.” 하지만 그때 부러진 버스의 손잡이 기둥은 의자에서 내팽개쳐진 프라다의 몸을 황소를 찌르는 투우사의 검처럼꿰뚫어, 그녀의 옷은 마치 파도에라도 휩쓸린 것처럼 벗겨졌다. 목격했던 연인은 이렇게 썼다. “프리다는 알몸이었다. (‥…)아마도 도장공이었던 것 같은데 (‥…) 한 승객이 갖고 있던 금가루가 든 자루가 찢어지면서 프리다의 피투성이 몸에 금가루가 흩뿌려졌다.”

  금가루에 덮여 번쩍이는 나체의 이미지는 얼마나 강렬한가!

 

(110)

 

 

칼로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프리다에 칼로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장면이 슬로모션 기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영화에서도 크게 다친 칼로의 모습이 나오는데, 상의가 약간 위로 올라갔을 뿐 칼로는 알몸 상태가 아니었다. 연인의 목격담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조금 과장되었거나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면서 일어난 진동의 힘이 토네이도에 맞먹는 정도가 아닌 이상 옷이 완전히 벗겨지진 않는다.

 

 

 나치즘이라는 괴물이 유럽을 덮쳤다. 히틀러가 프랑스를 침공한 것이다. 샤갈은 옷만 겨우 챙겨서 아슬아슬하게 뉴욕으로 도망쳤다. 그의 나이 쉰네 살 때였다. [중략]

 종전 후 몇 년이 지나 파리로 돌아간 샤갈은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661)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러시아 유대인 출신의 화가이다. 그는 1910년에 프랑스에 갔다가 러시아로 돌아왔고, 1922년에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화가 활동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37년에 인민전선[]은 샤갈에게 프랑스 국적을 부여했다. 따라서 종전 후에 프랑스로 돌아온 그가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맞지 않다.

 

 

 단테의 유려한 운문 묘사는 누구나 짐작하듯 연옥과 천국보다 지옥 편이 압도적으로 생생하고 풍성하다. 덕분에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978~1827),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1832~1883),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 같은 후세 화가까지 모두 지옥 편을 그렸고, 입구의 지옥문(“이 문을 지나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은 오귀스트 로댕의 청동 작품으로 결실을 맺었다. (우에노의 일본 국립 서양 미술관 앞에 전시되어 친숙하다.)

 

 

(767)

 

 

내가 읽은 책은 초판 1쇄다. 책에 들라크루아가 태어난 연도가 잘못 표기되어 있다. ‘1978’ ‘1798’의 오자다. 이 문장에 내 주석을 덧붙이자면, 사실 우리나라에도 로댕의 지옥문진품이 있다. 전 세계에 있는 지옥문은 프랑스 로댕미술관 앞에 있는 작품을 포함해서 모두 7점이다. 그중 한 점은 한국에 있는데 1999년에 개관한 플라토 미술관(구 로댕 갤러리)에 상설 전시되었다. 그러나 미술관이 2016년에 폐관되면서 현재 해당 작품은 호암미술관으로 이전되어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라파엘 전파는 아카데미에 반대하며 라파엘로 이전의 초기 르네상스 예술을 이상으로 삼았다.

 

(13130)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난 예술 운동으로 중세 예술과 초기 르네상스 예술을 이상으로 삼았다.

 

 

 이 그림이 주는 충격은 강렬한 건지도 모른다. 일견 단순한 구도 속에 헤로인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다.

 

(19182)

 

 

여주인공을 뜻하는 ‘heroine’헤로인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헤로인히로인둘 다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약을 뜻하는 헤로인(heroin)과 혼동하기 쉽다. 국립국어원은 이와 같은 문제점을 반영해 2016년 외래어 심의회를 통해 ‘heroine’히로인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 1930년대 후반 파시즘과 전쟁의 위기에 처하여 결성된 반파시즘 세력의 연합 전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0-01-2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그림이 새로운 버전으로 나왔나 보네요.

서구의 옛날 동화나 그림들이 가진 상징들은
살벌하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헤로인은 대박이네요 :>

moonnight 2020-01-21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예전에 읽은 책인 줄 알았더니 새롭게 나왔나보네요@_@; 꼼꼼한 주석 감사합니다^^ 제가 읽었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거에요 분명 ㅎㅎ;;;;;
 
포스트휴먼 오디세이 - 휴머니즘에서 포스트휴머니즘까지, 인류의 미래를 향한 지적 모험들
홍성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겨울은 겨울 같지 않았다. 정말로 춥다고 느껴진 날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전혀 춥지 않은 겨울을 이상기후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들이 저지른 업보는 생각 못 하면서 예전과 다른 날씨를 이상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이 초래한 환경 변화를 돌아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현상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연현상을 이상기후또는 기상 이변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만약 지구가 가이아(Gaia)처럼 살아있는 존재라면[] 자연을 착취하면서 파괴하는 인간들을 한심하게 바라볼 것이다.

 

과학자들은 현생 인류가 인류세(Anthropocene) 시대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인류의 시기()라니. 이름만 보면 인간이 지구의 중심에 당당히 우뚝 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이 용어를 언급하면서 자랑스러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인류세는 인류의 자연 파괴로 인해 지구 환경 체제가 급변한 시대를 뜻한다. 인류세의 특징은 이산화탄소와 메탄 같은 기체의 대기 중 농도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지구의 기후 변화는 대기 중 극히 미량으로 존재하는 기체들에 의해 좌우된다. 특히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는 온실 효과를 초래한다. 온실 효과의 영향으로 양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증가한다. 그 결과로 섬과 해안 지역에 잦은 홍수가 일어나면서 수억 명의 삶의 터전이 바다에 잠긴다. 인류세는 인류의 탐욕이 만들어낸 것이다.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교란해온 인류의 역사에 대자연은 그렇게 앙갚음하고 있다.

 

폭설과 집중호우, 가뭄과 홍수, 예측 불허의 태풍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도 예외가 없다. 대자연의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파괴적인 욕심은 그칠 줄 모른다. 이 위기의 본질을 통찰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려면 지구를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한 인류에 대한 자성이 깔린 감수성이 필요하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포스트휴먼 오디세이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필요한 감수성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감수성은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의 핵심 정신이다. 대부분 사람은 휴머니즘을 선호한다. 그 사람들은 휴머니즘을 따뜻한 인류애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휴머니즘은 생각보다 따뜻하지 않다. 휴머니즘은 말 그대로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상이다. 휴머니즘은 인간 중심주의라서 다른 생태계의 생명체를 도구화하고 정복하는 어두운 면을 지닌다. 근대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자연 정복 욕망과 제국주의적 야심을 휴머니즘으로 포장했다. 서구 근대에 완성된 휴머니즘이 제시하는 인간상은 정복 지향적인 남성에 가깝다.

 

포스트휴먼 오디세이는 시대별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감수성의 역사를 보여준다. 저자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 발표 이후를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시점으로 본다. 다윈은 진화론을 통해 인간이 온갖 위기에도 끝없이 진화하고 생존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의 경이로움을 강조했다.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진화해온 인간은 트랜스휴먼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수명, 지능, 감각 등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신념을 가리킨다. 기술의 힘으로 인간의 능력을 무한대로 계발한다는 의미다. 트랜스휴머니스트는 과학기술이 발전되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종종 트랜스휴머니즘과 겹친다. 그러나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 이후의 감수성이다.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지금 우리가 포스트휴머니즘에 주목해야 할 이유를 알 수 있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찬양하는 트랜스휴머니스트는 인간이 신이 되려는 욕망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공장기로 교체하거나 유전자 조작 기술 등을 통해 신처럼 오랫동안 살거나 고통받지 않고 사는 미래의 삶은 트랜스휴머니스트의 욕망을 대변한다. 그런데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인류의 정신적 · 육체적 능력을 개선하자는 욕망은 정복적인 인간중심주의에 가까운 휴머니즘의 연장선에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또 다른 인간과 생명체는 실험대상이 되어 착취된다. 과학기술은 효용도 있지만, 위험과 문제점도 뒤따른다. 이를 무시한 채 자연과 동물이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욕망에 희생되어야 하는 미래가 찾아온다면 과연 그것은 장밋빛 미래라 볼 수 있을까.

 

포스트휴머니즘은 장밋빛 미래만 내다보는 트랜스휴머니즘에 제동을 건다. 포스트휴머니스트도 트랜스휴머니스트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의 발전을 부정하지 않으며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적응해나가며 인간의 존재와 그 삶의 의미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포스트휴머니스트는 인간과 과학기술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미래에 회의적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 인간과 로봇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동반자 관계임을 강조한다. 포스트휴머니스트가 지향관계는 인간을 위한 일방적인 관계와 거리가 멀다.

 

포스트휴먼은 인간과 과학기술, 인간과 자연, 인간과 과학기술(기계, 로봇, 인공지능)이 어떻게 공생해 가야 하는지 고민한다. 홍 교수가 생각하는 감수성은 외부 세상을 받아들여서 인지하고 느끼는 정신적 능력이다. 그리고 단순히 아는 것만이 아니라 몸으로 행동하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머리로 느낀 감수성을 몸으로 행동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알려주지 않는다. 2% 부족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단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책에서 보여주지 못한 2%는 독자들이 찾아서 채워야 한다. 포스트휴먼 감수성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일은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공통 과제이다. 우리가 짊어져야 할 과제를 다른 사람에게 떠맡을 순 없다.

 

 

 

[]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다. 1972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입장인 가이아 가설을 제시했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지구는 생명이 번성하는 데 완벽하게 알맞은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온 노력을 기울이는 살아있는 존재이다. 대부분 사람(전문가 및 학자들도 포함된다)은 러브록의 주장을 가이아 이론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잘못된 명칭이다. 가이아 가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이론은 논리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것이다. 러브록의 주장에는 지구가 살아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실제로 러브록은 자신의 주장을 가이아 가설이라고 불렀다. 제임스 러브록은 1919년생이며 올해로 100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1-22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플레시아(rafflesia)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이다. 이 식물은 독특한 외양을 자랑한다. 줄기도, 잎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뿌리도 없다. 우리 눈에 보이는 건 5개의 잎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적갈색의 꽃뿐이다. 이 거대한 꽃을 피우기 위해 다른 식물의 줄기나 뿌리에 기생하면서 자란다. 꽃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난다. 이 꽃이 내뿜는 고약한 냄새는 파리를 불러들인다. 파리가 수컷의 꽃가루를 암컷에게로 옮겨 수분이 이뤄진다.

 

 

 

 

 

 

그러나 개화 기간이 많아야 한 달 정도 걸리며 완전히 피어나도 일주일도 못 버티고 진다. 꽃이 지면 불에 타버린 것처럼 시커멓게 변한다.

    

 

 

 

 

 

 

 

 

 

 

 

 

 

 

 

 

 

 

 

 

 

 

 

 

 

 

 

  

* 샤를 보들레르, 김인환 옮김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문예출판사, 2018)

* 샤를 보들레르, 황현산 옮김 악의 꽃(민음사, 2016)

* 샤를 보들레르, 공진호 옮김 악의 꽃(아티초크, 2015)

* 샤를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라플레시아다. 보들레르는 1857년 시집 악의 꽃을 발표한다. 그러나 이 시집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된다. 결국 여섯 편의 시를 삭제한 채 시집을 출판하라는 명령과 함께 보들레르는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자연이나 사랑, 예술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에서 시상을 찾던 당대 시인들과 달리 보들레르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추악한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했다. 보들레르는 작가 겸 비평가인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에게 보내는 악의 꽃헌사에서 지극히 겸허한 마음으로 이 병든 꽃을 바친다라고 쓴다. 그는 자본의 시궁창인 파리 한복판에 병든 꽃을 키우는 데 성공한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열린책들, 2009)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소설 향수(열린책들, 2009)의 주인공 그르누이(Grenouille)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고픈 욕망에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향기를 탐한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을 위한 양분을 얻기 위해 파리 구석구석을 산책하면서 음산하고 퀴퀴한 냄새들을 모은다. 도시인들의 물질적 욕망에서 뿜어 나오는 꺼림칙하고 불쾌한 냄새. 보들레르가 형제라고 말한 도시인들, 즉 위선적인 독자[1]들은 문제작이 된 악의 꽃에 흥미를 느낀다. 독자들은 도덕적으로 해로운 냄새가 나는 줄 알면서도 그의 시에 호기심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시집을 통해서 그동안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추악한 욕망의 냄새를 맡는다. 악의 꽃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라플레시아의 악취에 홀린 파리와 같다. 오늘도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도시에서 붕붕 날아다니는 파리들은 18세기 중반 파리의 악취를 간직한 보들레르의 시를 읽는다.

 

   

 

 

[1]

 

제일 흉하고 악랄하고 추잡한 놈 있으니!

놈은 야단스런 몸짓도 큰 소리도 없지만

지구를 거뜬히 박살내고

하품 한 번으로 온 세계인들 집어삼키리.

 

그놈은 바로 권태! 눈에는 무심코 흘린 눈물 고인 채

담뱃대 빨아대며 단두대를 꿈꾼다.

그대는 안다,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자 독자여, 내 동류, 내 형제여!

 

(독자에게중에서, 윤영애 옮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0-01-09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cyrus 2020-01-20 08:22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카스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페크(pek0501) 2020-01-12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 악의 꽃, 시집에 반했었죠. ㅋ

cyrus 님, 새해에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건필을 기원합니다.

cyrus 2020-01-20 08:19   좋아요 0 | URL
답글과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중국 선불교의 큰 스승인 임제(臨濟) 선사의 말이다. 듣기에 따라 살벌하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해탈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라도 말이다. 불교는 해탈을 목표로 한다. 해탈이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속박이나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고통이 집착에서 생긴다고 한다. 욕망에 대한 집착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집착을 벗어버리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곧 극락이다. 해탈에 벗어나서 깨달은 사람은 자유를 얻은 자인 것이다. 깨달음과 자유를 위한 살생은 말 그대로 죽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극복하라는 뜻이다. 경전에 있는 기존의 지식의 틀에 의존하게 되면 새로운 생각을 하는 데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 임제는 부처, 스승, 경전을 최고의 가치로 삼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임제가 보기에 공경의 대상이 되는 부처, 스승, 경전은 모두 사람을 결박하는 것이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수행과 고전 공부가 비슷한 과정일 리는 없다. 그러나 기존의 지식에 벗어나 새로움을 얻으라는 건 오늘날 고전에 접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유효한 얘기일 것이다. 진정한 깨달음과 자유의 경지인 해탈을 추구하는 수행자가 경전을 공부하면서 경전에 있는 지식은 옳다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을 진정한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없다. 수행자가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일이고, 고정된 지식의 틀에서 갇혀 있을 때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고전의 가치에 매료되어 그것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 고전을 많이 읽었을 정도로 똑똑하나 고전의 틀에 갇힌 사람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이미 알려진 고전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을 미리 공부해오거나 그 내용을 A4 용지에 가득 채워서 정리해온다. 분명 부탁한 적이 없는데도 고전을 해설한 내용(일반인이 읽기 힘든 학술논문의 내용을 인용한 경우도 있다)으로 채워진 인쇄물을 나눠주기도 한다. 독서 토론을 하다가 인쇄물에 없는 고전에 대한 독창적 해석이라든가 고전을 비판하는 입장이 나오면 고전을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태클을 건다. “당신의 주장은 금시초문인데요.” “제가 아는 내용과는 완전 다르군요.” 그 사람은 에둘러서 다르다고 말하지만, 고전에 대한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것을 ‘틀렸’라고 생각한다. 또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고전을 읽고 해석한 사람들의 생각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나오는 아마추어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속으로 상대방을 깔보는 사람은 양반이다. 고전을 너무 많이 공부해서 고전과 한 몸이 되어버린 사람은 독창적인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걸 가루가 될 때까지 지적하고 비난한다. 대놓고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면박을 준다. 저기요, 당신이 고전을 직접 쓴 작가예요? 흥분한 당신의 모습을 보면 작가에 빙의한 줄 알겠어요.

 

 

 

    

 

 

 

그 사람은 독서 모임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아주 다르다면서 다음 모임에 불참할 거라고 선언한다. 그래, 잘 가라. 멀리 안 나간다. 고전을 읽는 데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 다시는 모임에 나온다고 하지 않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아무튼 딱딱하게 굳은 머리를 내리치는 죽비와 같은 임제의 말은 고전에 대한 과거의 해석이 아닌 현재의 해석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해도 어색하지 않다. 어제 누군가가 고전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지 말고, ‘지금우리가 고전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뜻이다. 논어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린 김영민 교수의 신작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생각의 시체에 불과한 고전에 너무 사랑에 빠지면 지적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가 될 수밖에 없음을 일깨워준다. 이 책에서 김 교수는 텍스트(text)생각의 무덤이라고 비유한다. 논어는 죽어서 글이 된 공자(孔子)의 생각들이 안치된 무덤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죽은 공자를 기리는 공자의 제자들이 아닌데도 논어텍스트를 곧이곧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중국 명대의 학자 왕양명(王陽明)이 말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따르는 건 아니다. 그들이 논어를 읽으면서 주로 하는 일은 제자 앞에서 가르치려는 공자처럼 행세하는 것이다. 그들은 논어에 있는 구절 몇 개를 인용하면서 그 구절을 약처럼 곱씹으면 사회의 모든 병폐를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전을 읽으면 모든 사회 문제(특히, 민주주의의 병폐)가 해결될 것이며 고전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길을 터줄 것이라고. 김 교수는 논어를 포함한 고전을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세태를 경계한다. 고전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독자는 고전에 갇혀버려 옴짝달싹도 못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런 독자는 고전의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해석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게 된다.

 

 

 

 

 

 

 

 

이미 알려진 논어독법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김 교수의 매니페스토(manifesto)는 앞서 언급한 임제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공자를 만나면 공자를 죽여라. 공자의 제자들을 만나면 그들도 죽여라.” 여기서 말하는 공자논어를, 공자의 제자들논어를 신줏단지 모시듯이 읽는 독자들을 뜻한다. 공자와 논어는 복잡다단한 문제에 마주친 우리에게 희망적인 해법을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전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독자들이 공자를 죽일 방법은 있을까. 걱정하시 마시라. 방법이 있다. 김 교수는 논어에 드러나지 않는 공자의 속 깊은 생각들과 공자의 사상에 영향을 준 역사적 조건과 각종 담론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고전을 제대로 읽으려면 텍스트가 아닌 콘텍스트(context)를 잘 봐야 한다. 콘텍스트의 의미는 무척 다양한데, 나는 콘텍스트를 텍스트 뒤에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김 교수는 콘텍스트를 텍스트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즉 고전을 읽을 때 우리 눈에 보이는 문자 그대로 따라 읽지 말고, 문자 속에 숨어 있는 맥락을 봐야 한다. 텍스트를 꼼꼼하게 읽되, 콘텍스트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읽어야 한다.

 

공자를 죽여야 한다고 해서 공자와 논어고리타분한 사상으로 알려진 유교와 연결 지어 비판하자는 게 아니다. 김 교수는 유교가 폐쇄적인 학문’, ‘전통을 답습하는 공자의 사상’, ‘동아시아 특유의 보수적인 종교로 너무 쉽게 오해받는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논어가 우리나라의 발전을 막은 폐단의 근원으로 간주하면서 읽는 것도 경계한다. 논어를 지나치게 숭배하는 것도 문제고, 너무 기피하는 것도 문제다. 논어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이러한 태도를 낳게 한 원인은 피차일반이다. 둘 다 논어를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 교수는 공자가 정확하게 미워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미워하는 일이란 말 그대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판하는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정확하게 미워하고 비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전을 정확하게 비판하면서 읽는 일 또한 쉽지 않다. 따라서 고전을 제대로 좋아하고, 정확하게 비판하려면 고전 텍스트를 공들여 읽고 스스로 생각하는 독자가 되어야 한다.

 

이 논어 에세이는 김 교수가 구상하고 있는 논어 프로젝트의 시작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초대장이다. 그의 프로젝트에 흥미 있는 독자라면 이 초대장을 잊지 말고 잘 간수하길 바란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1-06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1-07 19:31   좋아요 0 | URL
나쁜 의도로 책의 지식이나 문학 작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텍스트를 자유롭게 해석할 자유가 있어요. 기존에 알려진 텍스트 해석을 따르기만 하면 텍스트 읽는 재미가 반감돼요.

Comandante 2020-01-06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에 그런 사람들이 출몰하는군요. 전 독서모임엔 참여해본적이 없어서 그런 사람이 있을줄 상상도 못했는데... 그런식의 읽기가 제일 게으르고 불성실한 읽기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20-01-07 19:35   좋아요 0 | URL
여러 독서 모임을 참석하면서 별 희한한 사람들을 만나봤어요. 독서 모임을 스터디 모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요. 물론 독서 모임도 약간의 공부도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일반인들의 독서 모임은 스터디보다는 책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말하는 분위기로 진행해요. 그래서 텍스트의 해설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 해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서니데이 2020-01-06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에서는 서로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다는 건 좋아보이는데, 그러려면 미리 준비를 많이 해야겠네요. 저도 독서모임에 참여해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20-01-07 19:37   좋아요 1 | URL
독서 모임에 참석하기 전에 많이 준비할 필요는 없어요. 책 다 못 읽어도 뭐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독서 모임 때 말하고 싶은 내용을 열심히 준비해도 그거 다 얘기 못해요.. ㅎㅎㅎㅎ 그냥 마음 편하게 책에 대한 느낌이라든가 인상 깊은 책의 구절 등을 말하면 돼요. ^^

페넬로페 2020-01-06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을 읽으며 그것이 고전이니까 저도 미리 존경과 무비판의 태도로 접할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도 고전이니깐
여지껏 살아남았잖아^^
이런 생각과 더불어 뭘 비판해야 할지 모르는 저의 식견도 아쉽구요~~
그래도 고전이 나쁘지는 않더라구요^^

cyrus 2020-01-07 19:40   좋아요 1 | URL
고전을 쓴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니까 우리가 자유롭게 해석하는 것에 태클 걸지 못해요.. ㅎㅎㅎㅎ 그래서 고전을 비판적으로 읽기에 딱 좋은 텍스트에요. 읽기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읽고 나면 자유롭게 해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만만한 텍스트가 고전이에요. ^^

페크(pek0501) 2020-01-12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제가 ‘확신을 경계하라‘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어요. 확신의 위험성에 대해 쓴 글이에요.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지식인이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타당한 논거를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교조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독서 모임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어떤 틀에 갇히지 말고 (남의 생각을 들어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시간을 갖자, 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군요. 고전이란 시대에 따라 또 독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음을 간과한 분인 것 같아요. 안타깝군요.

cyrus 2020-01-20 08:21   좋아요 0 | URL
독서모임에는 정말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모이듯이 다양한 방식으로 책에 접근하고 읽는 사람들이 모여요. 그래서 독서모임이 있는 날은 늘 기대가 돼요. ^^

Angela 2020-01-17 0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text 보다는 context 입니다.
 

 

 

 

 

 

 

 

 

레드스타킹은 2019년 1122일에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빌러비드(Beloved)(문학동네)를 읽기 시작했어요. 그날부터 시범적으로 매월 둘째, 넷째 주 금요일에 모임이 이루어졌는데요, 2019년 1227일을 마지막으로 총 3회에 걸친 빌러비드읽기 모임이 완료되었습니다.

 

 

 

 

 

 

 

 

 

 

 

 

 

 

 

 

 

 

*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문학동네, 2019)

*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문학동네, 2014)

* [레드스타킹 일곱 번째 책]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이연, 2009)

 

    

 

마고 님이 빌러비드를 추천했습니다. 마고 님은 2018년 레드스타킹 모임 필독 도서인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이연, 2009)을 읽었을 때부터 빌러비드가 좋은 책이라면서 몇 차례 강조했어요. 흑인 페미니즘 사상빌러비드를 언급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마고 님의 말씀을 듣고 빌러비드를 꼭 읽어봐야지하고 생각했었는데 올해 연말에 드디어 책을 읽게 되었어요.

 

빌러비드1987년에 발표된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입니다. 모리슨은 흑인 노예라는 아주 긴 운명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딸을 죽인 흑인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흑인들의 아픈 역사를 보여줍니다. 세서(Sethe)는 노예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임신한 몸으로 네 명의 자식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뒤따라온 노예 사냥꾼들의 추격에 체포될 위기에 처합니다. 세서는 자식을 노예로 살게 하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결심합니다. 당시 두 살이었던 딸을 죽인 살인범이 된 세서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덮어둔 채 자신의 유일한 핏줄인 덴버(Denver)와 함께 124번지의 집에 살아갑니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죽은 아기의 유령은 모녀를 괴롭힙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아기 빌러비드가 어른의 모습을 한 채 세서 앞에 나타납니다. 세서는 끔찍한 과거를 떠올리는 일에 고통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세서는 빌러비드에게 왜 자신이 그녀를 죽여야 했는지 설명하고, 마침내 자신을 괴롭히던 과거와 결별하는 데 성공합니다.

 

사실 빌러비드는 쉽게 읽히는 편안한 책은 아니에요. 소설이 노예제도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인 데다가 난해한 기법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았어요. 집에 아기 유령이 등장하는 소설의 초반부를 보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하신 분이 있었어요. 소설 중반부에 빌러비드, 세스, 덴버의 목소리가 뒤섞이면서 진행되는 장()이 나옵니다. 이 장을 인상 깊게 봤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마고 님은 토니 모리슨의 문학을 흑인의 오랜 아픔을 치유해주는 위령제라고 평가했습니다. 토니 모리슨은 빌러비드를 통해 노예제도의 고통 속에 살다간 모든 흑인들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작업을 시도하고, 과거를 극복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가도록 해주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 박민정 아내들의 학교(문학동네, 2017)

 

    

 

올해도 레드스타킹은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멤버들 덕분에 즐겁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20110일 금요일부터 박민정 작가의 아내들의 학교(문학동네, 2017)를 읽습니다. 내년에 어떤 책들을 만나게 되고, 재미난 일들을 하게 될지 벌써 기대됩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1-03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1-06 18:27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절필하는 건 아니니 크게 걱정하시 않으셔도 됩니다. ^^

Angela 2020-01-17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죽은 아기유령이 세서 어린시절 모습, 즉 자신의 모습으로 투영되는 것으로 읽었어요.

cyrus 2020-01-20 08:18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빌러비드>를 처음 읽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