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매주 월요일(저녁 730분부터 930분 또는 10시까지)카페 스몰토크에서 (페미니스트) 회원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밖에도 레드스타킹은 명사 강연, 영화제 등 페미니즘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했습니다.

 

 

 

 

 

 

 

 

 

 

어제 스몰토크에서 레드스타킹 송년회가 열렸습니다. 작년에 페미 부흥회라는 이름으로 송년회가 열렸는데요, 회원이 아닌 분들도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송년회는 외부 인사를 받지 않고, 회원들과 함께 올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쁘셔서 한동안 보지 못했던 회원들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송년회인데 당연히 음식과 술이 빠질 수 없죠. 요즘 연말 모임 문화의 트렌드는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입니다. 포틀럭 파티는 여러 사람들이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 나눠 먹는 미국식 파티 문화입니다. 저는 닭강정을 사왔습니다. 맥주를 마시려면 닭고기가 없으면 안 되죠. 연어, 무침 회를 사 온 분도 있었습니다. 음식 사진에 안 나왔지만, 포도주와 위스키도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음식이 많았어요. 사진에 나온 음식들을 다 먹은 뒤에 달콤한 디저트를 먹었습니다.

      

동영상을 만들 줄 아는 회원이 올해 레드스타킹 활동을 담은 기록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이분 혼자서 몇 개월 동안 손수 촬영하고, 영상을 편집했습니다. 행사(8월에 있었던 정희진 님의 강연. 이 행사 하나만을 위해 회원들 모두 열심히 준비했고, 고생했습니다)를 열심히 준비하는 회원들이 나오는 영상을 보니 새삼 그분들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정말 잘 만들었는데, 여기 블로그에 공개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내년 119일 토요일에 레드스타킹 회원들과 함께 페미니즘 영화를 보기로 했어요. 회원들은 그날에 볼 영화를 고르기 위해 논의했습니다. 레드스타킹에는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영화를 즐겨 보는 회원들이 있어요. 저는 책 바보라서 영화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래서 저는 영화 마니아들의 안목을 믿습니다. 이분들의 안목이 얼마나 대단하냐면요, 독립영화를 즐겨 보는 것을 넘어서 독립영화 감독들의 필모그래피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로 남다른 내공이 있어요. 또 국내에 개봉하지 않은 외국 페미니즘 영화에 관심이 많아요. 자막 없이도 영화를 보는 분들입니다.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레드스타킹 회원들과 함께 책을 읽고,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행사에 참여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레드스타킹 회원들 덕분에 책 읽는 시야를 더 넓혔을 뿐만 아니라 책 밖에 있는 페미니즘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저의 페미니즘 공부는 레드스타킹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어요. 레드스타킹을 처음으로 알기 전에 했던 페미니즘 공부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제 페미니즘 공부를 제대로 시작한 지 일 년도 채 안 됐습니다. 올해 초에 시작한 레드스타킹 활동이 제겐 소중한 경험입니다. 평생 가슴속에 간직할 특별한 보물을 얻은 기분입니다.

 

 

 

 

 

 

내년 17일 월요일부터 레드스타킹은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성 정치학(이후) 번역본을 읽습니다(일정과 선정 도서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분량은 1장(~70쪽)까지입니다. 참석 신청은 @hippie_yolo 계정으로 DM 보내주세요.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는 분은 여기 댓글로 알려주셔도 됩니다.

 

 

 

 

 

 

 

 

[제목 주] 로버트 풀검의 책 제목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RHK)를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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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2-18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풍이라면서 그런 거 먹어도 되나?
하긴 한번쯤 먹었다고 크게 저어될 건 없겠지.
이럴 때 안 먹으면 언제 먹겠니?ㅎ
아무튼 모처럼 신나는 저녁이었겠구만.^^

아, 그런데 너는 뭐 입고 갔니?
저기 빨간 티셔츠 팔뚝 네거냐?ㅋ

2018-12-18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에크 vs 케인스 아이디어 전쟁 - 시대의 위기를 돌아보는 경제학사 두 거인의 날카로운 분석
토머스 호버 지음, 김효원 옮김, 이승환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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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가장 쉽고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학문의 이론이 만들어지게 된 전체 배경을 알아야 한다. 하나의 이론이 발전하면 수많은 분야로 갈라져서 나오기 때문에 전체를 보지 못하면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일이 된다. 특히 요즘같이 모든 면에서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자꾸 나오는 상황에서는 학문 전체를 보는 방식은 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경제학은 어렵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도 너무 많이 세분되어 발전한 각 경제학 분야들을 전체가 아닌 부분적으로 접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으로 불리는 시장의 기능과 ‘보이는 손’인 정부의 기능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논의는 경제학 역사만큼 오래됐다. 《하이에크 vs 케인스 아이디어 전쟁》은 경제학사의 두 거인이 걸어온 길, 그 과정의 대립 지점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케인스(Keynes)하이에크(Hayek)는 20세기 한복판에서 시장의 기능, 시장과 사회 그리고 경제와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이다. 그 고민을 많은 저작과 현실 참여를 통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구현했던 경제학자들이기도 하다.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시장의 자유를 옹호한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 이론에 의문이 생겼다. 주가는 하루아침에 40% 이상 폭락했다. 공장이 줄줄이 도산했고, 엄청난 수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생산은 많은데 사서 쓸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케인스는 시장이 저절로 최적의 상태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재정 지출을 늘리고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을 펴냈다. 미국은 케인스의 처방을 선택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에 케인스 이론에 기초한 것이다. 결국 케인스의 처방은 효과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정부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유럽에 ‘복지 국가’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정부의 역할이 비대해졌다.

 

케인스 이론에 따라 경제를 운영하던 세계 각국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위기를 만났다. 정부가 돈을 풀어도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물가만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하이에크의 이론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이에크는 시장의 자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케인스 이론을 반대하면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은 하이에크의 대표작이다. 이 책에서 하이에크는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사람들의 재능과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어 ‘노예의 길’로 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독일 나치, 이탈리아 파시즘의 전체주의에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사실, 하이에크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 나치의 만행을 폭로하기 위해 《노예의 길》을 썼다)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복지 국가도 위험한 것으로 봤다. ‘복지병’으로 알려진 정부 개입의 부작용이 생기면서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물결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정부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정부는 ‘작은 정부’와 시장 경쟁을 지향하는 정책을 폈다.

 

이 책의 일차적 목표는 누가 옳나 그르냐를 따지기보다는 서로 다른 주장을 선명하게 대비해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경제학의 이론적 지형을 드러내는 데 있다. 똑같이 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접점을 찾기 어려운 인식, 경제 대공황의 처방을 둘러싼 대립, 시장 기능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차를 보여준다. 저자는 두 경제학자를 가능한 한 공정하게 보여주기 위해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한계도 설명한다. 이 책의 이차적 목표는 ‘실생활과 동떨어진 경제학’이라는 편견을 깨는 일이다. 경제학은 학자들의 세계에서만 논의되는 어려운 학문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경제학만큼 세계를 움직이게 한 학문은 없다. 저자는 대중이 다가설 수 있는 경제학이 되려면, 경제학자들은 사회를 이해하고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해 설명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자유주의 사상을 다소 두루뭉술하게 설명했다.

 

 

 계속해서 부를 축적하려는 무한한 욕망은 자유주의의 반갑지 않는 측면으로 간주되어왔다. 물론 18세기라면 이러한 욕망은 여전히 환영할만했을 것이고, 애덤 스미스라면 틀림없이 강력하게 옹호했을 것이다.

 

(225~226쪽)

 

 

스미스는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의 창시자 또는 신자유주의의 조상(하이에크가 ‘신자유주의 아버지’라면 스미스는 ‘신자유주의의 할아버지[주]’ 정도?)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사상은 훨씬 복잡해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국부론》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면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의 동기를 풀어놓고 잘 활용하는 자유 방임 경제를 강조한다면, 《도덕감정론》에서는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사회적 이타심을 사회의 구성 원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이 책에서 절제없는 부의 추구는 정의와 도덕이라는 사회의 근본 원리를 무시함으로써 오히려 시장과 사회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도덕감정론》에 드러난 스미스의 견해를 생각하면 그가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을 강력하게 옹호했다고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국부론》만 본 채 스미스를 부와 탐욕의 화신인 것처럼 오해한다.

 

 

 

 

[주] ‘고전적 자유주의의 어머니’ 또는 ‘신자유주의의 어머니’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인물이 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자유지상주의자인 아인 랜드(Ayn Ran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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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8 17:06   좋아요 0 | URL
학자들이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연구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특정 세력의 하수인이 되는 게 문제죠. 물론 공적 지원금을 받는 학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또 어떤 경제 전문가들은 뻔뻔하게 자신의 분석과 예측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지 않아요. ^^;;
 
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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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포크로 비행기 안에서 콩을 찍어 먹으며 파시즘을 걱정하는 사람.” 영국의 신문사 <선데이 타임스>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에게 보낸 찬사이다. 이 문구는 에코의 산문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뒤표지에 있다. 유쾌한 성격의 에코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이 책에서 에코는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어리석은 세상을 비틀어 보고 있다. 그는 세상의 어리석음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그 모든 어리석음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음의 목록을 더 늘어나게 해줄 뿐이다. 짧은 글로 이런 얘기를 쉴 새 없이 풀어내는 에코이지만 그 안에는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웃음이 있다. 글 속에서 그는 여러 표정을 지닌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엉뚱한 질문을 던지다가 피식 웃음이 나오는 대답을 한다.

 

에코는 악의적인 일이나 잔혹함에 화가 난다면 웃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 요즘 들어 웃음을 줄어들게 만드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가짜 뉴스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공인의 사생활이나 민감한 정책 현안은 물론, 국가 안보나 국가 원수와 관련된 턱도 없는 가짜 뉴스까지 나온다. 요즘의 가짜 뉴스는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고 빠르게 퍼진다. 이른 시간 안에 불신과 분열을 조장한다. 또 꼼짝없이 가짜 뉴스의 덫에 걸린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가짜 뉴스는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살인자다. 우리는 악의적인 가짜 뉴스를 보고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주]

 

에코의 마지막 소설 《제0호》는 에코 특유의 웃음을 생각하면서 읽을 수 없다. 잘 드러나 있지 않다가 어느 순간 일상을 파멸시키는 가짜 뉴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짜 뉴스에 현혹되는 과정, 또 그 가짜 뉴스를 만든 인물이 몰락하는 과정을 신랄하게 묘사한다. 안정적인 직업이 없는 글쟁이 콜론나는 창간을 앞둔 신문사 <도마니(이탈리아어로 ‘내일’을 뜻함)> 주필 시메이를 만나게 되면서 창간되지 않을 신문 <제0호> 제작 과정에 투입된다. <제0호> 제작을 위해 자금을 대는 사람은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라는 세력가다. 세력가와 주필은 사회 거물들이 궁지로 몰 만한 가짜 뉴스를 만들려고 한다. 주필은 편집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기사 작성법을 알려준다. 에코는 이 소설에서 돈벌이나 정치적인 거래를 목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드는 황색 저널리즘의 실체를 해부한다.

 

에코는 20년 전부터 《제0호》을 구상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부패 정치 청산의 물결이 일던 1992년 이탈리아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 출간된 연도는 1992년이다. 재미있게도 이세욱 씨가 두 권의 책을 번역했다. 《제0호》를 읽으면서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제0호》에 콜론나는 신문을 함께 만드는 동료들에게 신문 기사를 반박하는 독자의 편지에 반박하는 기술을 알려준다. 그때 콜론나가 반박의 기술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편지글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반박을 반박하는 방법』에 나왔던 글이다. 서양 고전문학 작품과 에코 자신이 과거에 썼던 글 일부를 패러디한 묘사는 독자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죽음을 앞둔 에코는 《제0호》를 쓰면서 익살스럽게 웃어보지만, 그 웃음이 죽음의 두려움을 달래는 자기 위안이었는지, 아니면 소설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울까 봐 애써 웃어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소설에 간간이 나오는 에코의 유머를 보면 애잔한 마음마저 든다. 《제0호》는 에코의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세욱 씨는 《제0호》를 ‘음모론에 잘 빠지는 기자와 나쁜 저널리즘을 보여 주는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나는 소설에서 시도한 에코의 풍자를 웃으면서 볼 수가 없었다. 가짜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헛소리하면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지만, 가짜 뉴스로 인해 점점 더 파열음을 내는 현실을 보면 그저 화가 날 뿐이다. 가짜 뉴스가 지배하는 세상은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잔혹하고 야비한지 보여준다. 나는 그런 세상을 향해 정색하면서 화를 내는 방법을 선택하겠다. 웃으면서 화내는 에코의 방식으로 여태 즐겨왔으니 이제는 정공법으로 진지하게 정색할 때다.

 

 

 

 

[주] 이세욱 옮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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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2-1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 놓고 아직 읽지 못했어요. 저는 왜 딴 책만 보고 있을까요? ㅋ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무척 재밌게 읽어서 리뷰까지 썼었어요. 코믹한 글이 많지요. 그런 저자가 진지하게 소설을 쓰면 어떤 게 될까 궁금해서 구입했는데... 이 해가 가기 전에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내년으로 넘어갈 것 같은... 내년이 코 앞이네요.

cyrus 2018-12-17 13:19   좋아요 0 | URL
알라딘 시점에서는 지금이 2019년이에요. 일년치 알라딘 활동 통계를 낼 때 집계 기간은 12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거든거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ㅎㅎㅎ
 

 

 

몽테뉴(Montaigne)는 평생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 몽테뉴가 남긴 책이 우리에게 ‘수상록’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에세(Les Essais)>다. 1572년 공직에서 물러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 동안 집필한 방대한 기록이 이 책이다. 몽테뉴가 살았던 시기는 지리학, 지도제작술, 항해술이 발전하고 있었다. 값비싼 물건들이 무역 항로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지고, 상업에 종사하는 시민들의 부는 축적됐다. 그리고 종교 개혁에 따른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 양상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몽테뉴는 교회도, 이성적 학문도 신봉하는 태도를 멀리하고 세상의 온갖 문제에 찬찬히 생각하면서 글을 남겼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2016)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2007)

 

 

 

몽테뉴는 자신의 성에 은둔하면서 책을 읽거나 수상록을 쓰는 데 몰두했다. 그가 읽은 것 중에는 ‘미지의 땅’에 사는 원주민들과 그들의 풍습을 소개하는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책을 접하지 않고선 『식인종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쓸 수가 없다. 몽테뉴는 원주민들의 식인 풍습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풍습이 아니면 ‘야만적인 행위’로 규정한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을 지적한다.

 

 

 

 나는 이러한 행동이 흉측하고 야만적인 행위인 것을 주목하여 언짢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잘못은 잘 비판하면서, 우리의 야만스런 행위는 주목하지 못하는 일이 슬프다. 나는 산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사람을 죽여서 먹는 것보다 더 야만스럽다고 본다. 아직도 아픔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신체를 고문과 고통스러운 형벌로 찢고, 불에 달군 쇠로 지지고 개나 돼지에게 물어 뜯겨 죽게 하는 일이(우리는 이런 일을 글에서 읽었을 뿐 아니라 생생하게 우리 눈으로 보았고, 그것은 옛날이 아니라 우리 이웃 사람들, 같은 시민들 사이에서 일어났으며, 더 나쁜 일로는 종교의 경건한 신앙심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 뒤에 구워서 먹는 것보다 더 야만스런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식인종에 대하여』 중에서, 동서문화사, 2007년 판, 232쪽)

 

 

 

유럽인들은 변방에 있는 대륙에 식인종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Plinius)가 쓴 <박물지(Historia Naturalis)>에 식인종을 언급한 내용이 있다.

 

 

 

 

 

 

 

 

 

 

 

 

 

 

 

 

 

 

* 콜럼버스 《콜럼버스 항해록》 (서해문집, 2004)

* 콜럼버스 《콜럼버스 항해록》 (범우사, 2000)

 

 

 

 

콜럼버스(Columbus)는 항해일지에 카리브해 식인종의 존재를 언급했다. 그는 자신이 상륙한 땅을 인도라고 생각했고, 이곳 원주민들을 인도의 군주 칸(Grand Khan)의 지배를 받는 부족으로 오해해 카니바스(canibas)라고 불렀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식인종을 실제로 보지 못했다. 그에게 식인종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카리브해 원주민인 아라와크족(Arawak)이었다. 콜럼버스의 진술이 알려지면서 식인종을 뜻하는 ‘카니발(carnival)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원주민을 식인종으로 묘사하는 책들이 우후죽순 나왔다.

 

 

 

 

 

 

 

 

 

 

 

 

 

 

 

 

 

 

* 톰 닐론 《음식과 전쟁》 (루아크, 2018)

* [절판] 앤서니 그래프턴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일빛, 2000)

 

 

 

 

1557년에 독일의 군인 한스 슈타덴(Hans Staden)은 자신이 목격한 남아메리카 원주민 투피남바족(Tupinamba)의 식인 풍습을 <포로로 잡힌 진짜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했다[주1]. 이 책에 따르면 투피남바족은 인육을 구워 먹었는데 성대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삶아 먹는다. 또 투피남바족 어린이들은 인간의 내장으로 만든 스튜를 먹기도 했다. 원주민의 식인 풍습을 묘사한 책들은 ‘식인종은 야만인’이라는 관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자신을 ‘문명인’이라고 생각한 유럽인들은 식인종을 미개한 원주민으로 봤다.

 

 

 

 

 

 

 

 

 

 

 

 

 

 

 

 

 

 

 

*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 2017)

* 마빈 해리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 2018)

* [품절] 마빈 해리스 《식인과 제왕》(한길사, 2000)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음식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 《식인과 제왕》(한길사)에서 잔인해 보이는 식인 풍습을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가 쓴 ‘문화인류학 3부작’의 첫 번째 책 《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는 우리나라에서 문화인류학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가족제도와 재산, 정치 · 경제 제도, 종교와 음식 등의 진화 · 발전의 원인과 결과를 문화생태학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해리스가 바라보는 ‘문화’는 인류의 생존과 밀접하게 관련된 생활양식이다. 지역마다 인류의 생존방식이 다른 이유는 주어진 환경이나 물질적 조건 등이 문화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 3부작’을 관통하는 해리스의 관점은 ‘문화유물론’이라고 한다. 문화유물론은 모든 문화현상이 자연환경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따라서 한 지역의 문화적 전통은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서 효율적인 생존 전략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제각각 다른 삶이 서로 다른 문화의 결을 만들어 낸다. 문화에 대한 유물론적인 해석을 통해 해리스는 육식 금기, 성차별적 전통, 식인 풍습 등에 내재한 생태학적 원인을 파악하여 ‘문명-야만’의 이분법적 구도로 문화를 보는 서구중심주의의 허구와 한계를 비판한다. 인도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않고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러한 음식에 대한 종교적 금기는 그 땅의 기후와 생활 방식에 영향을 받으면서 생긴 것이다. 해리스는 무슬림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돼지를 사육하기 위해 곡식이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고, 인도인들이 소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소는 농사짓는 데 있어서 중요한 노동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해리스는 식인 풍습을 ‘문화’의 형태로 보면서 그것이 성행하거나 사라지게 된 원인을 환경적 · 경제적 이유에서 찾고 있다. 해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아메리카의 자연환경은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는 식용 동물들이 많이 살지 않을 정도로 척박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영양원이 필요했고, 다른 부족과 전쟁하면서 잡은 포로를 잡아먹었다. 그들은 단지 인육을 먹기 위해서 전쟁을 한 것이 아니다. 원주민들에게 인육은 생존에 필요한 식량인 동시에 자신들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농사짓는 법을 알기 시작한 원주민들은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식인 풍습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 임호준 《즐거운 식인》(민음사, 2017)

* 이상희, 윤신원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5)

* 프랜시스 바커 외 엮음 《식인문화의 풍속사》(이룸, 2005)

 

 

 

그런데 1979년에 미국의 인류학자 윌리엄 아렌스(William Arens)는 식인 풍습 분석에 반기를 드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그는 <식인 신화>라는 책에서 식인 풍습에 대한 유럽인들의 기록은 모두 날조된 것이며, 각종 문헌에 언급된 식인종과 식인 문화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주2]. 그에 따르면 식인종과 식인 문화는 ‘신화’에 불과하며 야만과 문명의 차이를 과장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당연하게도 마빈 해리스를 포함한 인류학자들은 식인 풍습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아렌스의 입장을 비판한다. 지금도 식인 풍습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은 아렌스의 입장을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여러 명의 학자가 식인종 담론을 분석한 글을 모은 《식인문화의 풍속사》(이룸)에 아렌스가 쓴 『카니발리즘을 재고하며』라는 글이 있다. 아렌스는 이 글에서 <식인 신화>를 공격한 인류학자들(마빈 해리스도 포함되어 있다)의 주장을 재반박한다.

 

물론 식인 풍습에 대한 문화유물론적 분석도 한계가 있으며 비판받고 있다. 생태학적 원인만으로는 문화가 발전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은 추천도서 목록에 심심찮게 들어있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1부, 2부(《음식문화의 수수께끼》) 개정판이 나왔다. 3부 《식인과 제왕》(한길사)만 개정판이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문화유물론은 유행이 지난 이론이 되었다. 마빈 해리스의 주장을 ‘확고한 정설’인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읽으면 문화 발전의 인과적 요인을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놓치게 된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의 역자 해설은 문화유물론의 특징뿐만 아니라 한계도 아주 잘 설명한 글인데, 우리나라에서 문화유물론의 한계에 주목한 글이나 문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인류학자들은 마빈 해리스의 식인 풍습 분석도 극단으로 보고 있다[주3]. 주류 학설이 아닌 셈이다. 아렌스의 입장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식인 풍습을 둘러싼 인류학자들의 간의 논쟁을 크게 보려면 서로 정반대인 ‘극’과 ‘극’ 모두를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마빈 해리스 신화’에 벗어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주1] 투피남바족의 식인 풍습을 증언한 한스 슈타덴의 저서와 여기에 실린 도판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책 :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일빛), 《음식과 전쟁》 (루아크),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한길사)

 

[주2] 윌리엄 아렌스의 주장을 소개한 책 :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즐거운 식인》(민음사)

 

[주3] 《즐거운 식인》,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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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12-1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교수님이 에세이가 몽테뉴의 에세에서 나온 거라고 강조하시던 게 생각나네요. 진짜 온통 밑줄 그어가며 읽었는데,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다시 펼쳐봐야겠어요 ㅎㅎ

cyrus 2018-12-14 18:12   좋아요 0 | URL
수상록이 워낙 많은 분량이라서 한 번에 다 못 읽고, 생각날 때마다 읽습니다. ^^

2018-12-14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4 18:16   좋아요 0 | URL
승자의 기록을 비판하려면 양심만 있어서는 안 될 거예요. 비판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심도 있어야 해요. 그래서 승자의 기록에 정면으로 맞서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

페크(pek0501) 2018-12-14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테뉴의 식인종에 대한 지적은 날카롭군요.

<수상록>을 두 권 가지고 있어요. 출판사가 다르죠. 예전에 산 책이 맘에 들지 않아 홍신문화사 걸로 다시 샀어요. 왠지 모르게 홍신문화사 책은 맘에 들어요. 글자가 짙고 종이가 넓어요. 사람으로 말하면 잘생겼어요.

cyrus 2018-12-17 13:21   좋아요 0 | URL
완역본으로는 동서문화사가 최고입니다. 그런데 번역문이 올드해서 잠 오게 하는 마취 성분이 있습니다.. ㅎㅎㅎ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10
노라 엘렌 그로스 지음, 박승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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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서스 비니어드(Martha’s Vineyard)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평온한 섬이다. 이 섬은 영화 <조스(Jaws)>의 촬영지였으며, 미국 대통령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외부인이 자주 드나드는 관광지가 되었으나 과거에 이곳은 청각장애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었다. 청각장애인들이 살았던 옛날 마서스 비니어드 섬의 공용어는 수화였다.

 

1640년대부터 영국의 켄트(Kent)라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 이주해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청각장애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고립된 이주민들은 불가피하게 근친결혼으로 인구를 늘려갔고, 이로 인해 청각장애인들이 많이 태어났다. 유전학적으로 보면 지속적인 근친결혼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열성인자가 출현돼 예상치 못한 장애나 질병과 관련된 면역성 약화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서스 비니어드섬에는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청각에 이상 없는 비장애인들도 살고 있었다. 이 섬에 사는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은 모두 수화를 사용했다. 섬사람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편한 장애로 인식하지 않았다. 또 그곳에서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줄여서 마서스 비니어드[])는 섬사람들이 장애를 수용하는 사회화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이 섬에 사는 75세 이상 노인들을 만나면서 얻은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장애의 정의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넓힌다. 19세기 말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은 섬사람들의 청각장애가 발생하는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직접 조사에 나섰지만, 확실한 결론을 얻는 데 실패했다. 벨은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전화를 발명하기 전 그는 청각 장애인 전문학교를 경영한 교사였다. 그는 수화 대신에 상대방 입술의 움직임과 표정을 보며 말의 맥락을 이해하는 독화(讀話)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마서스 비니어드 섬사람들처럼 수화를 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공동체가 많아질수록 청각장애 발병률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벨이 섬을 조사하던 당시에 학자들은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의 유전 법칙을 모르고 있었다. 20세기 초에 유전 법칙이 재조명받을 때까지 마서스 비니어드 섬사람들의 청각장애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었다.

 

벨은 섬사람들이 수화를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섬사람들은 외부인이 듣지 못하는 것을 장애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섬에서 청각장애는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특이한 질병이 아니었다.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청각장애를 불행한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외부인, 특히 비장애인들은 마서스 비니어드 섬을 청각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고립된 지역으로 본다. 그러나 이 섬에서 청각장애는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섬에 사는 비장애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와 수화를 같이 배우면서 자랐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한둘의 청각장애인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서스 비니어드 섬의 비장애인들은 수화를 평범한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 살았던 최후의 청각장애인은 1952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나이가 많은 섬사람들은 수화로 말했던 시절을 기억했다. 그들은 청각장애인을 특별한 장애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과거를 기억하는 섬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들[청각장애인-cyrus ]에 대해서 아무것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았어요. 당신이 그것을 생각한다면, 그 섬은 살기에 대단히 좋은 장소일 거예요.”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220)

 

 

비장애인은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이고, 무언가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장애인으로 성급하게 판단한다. 그래서 장애를 개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로 여긴다. 마서즈 비니어드는 장애란 결코 장애인 개인의 문제도,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님을 보여준다. 즉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며, 장애인은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차별받아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수화를 쓰지 않는 사회에 청각장애인은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다.

 

이 책의 역자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서스 비니어드 섬사람(원문은 'hearing people'이다)건청인(健聽人)이라고 옮겼다. 나는 이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청인이라는 표현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이해하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인가. 그냥 청인이라고 썼으면 어떨까 싶다.

 

126쪽 저자의 주석에 이런 내용이 있다.

 

 

 자신의 자녀가 청각장애인의 여부를 알기 원하는 사람들이 유능한 의학적인 유전학자를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야만 한다.

 

 

저자의 말에 동의하기 힘들다. 아직 태어나지 않는 자녀가 장애인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장애인을 아프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으로 타자화하는 인식이 생기기 쉽다. 래디컬 페미니즘 관점에서 볼 땐 장애 여성 또한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만약 장애인 태아를 양육할 수 없다면 임신 중지(낙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장애학을 공부한 여성주의 철학자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태아의 장애 여부를 알 수 있는 유전자 분석 기술이 도입된다면, 장애인은 태어나선 안 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존재라는 편견을 형성할 수 있다. 모든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유전자 분석을 통해 예상 수명과 장애 여부를 판정하여 태어나야 할 존재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로 분류하는 것은 우생학과 다를 바 없는 발상이다.

 

 

 

 

 

[리뷰 제목 주] 이 책의 8장 제목이다.

 

 

[]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마서스 비니어드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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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1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애와 비장애, 건강과 비건강, 그런 것들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는데도, 현실에서는 차별과 구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18-12-12 16:48   좋아요 0 | URL
상대방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편협한 기준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저도 이런 오류에 종종 빠지곤 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1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싸이러스 님 보면서 항상 알라딘계의 쓰는기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 한두 글을 올리는 게 쉬운 게 아니죠. 더군다나 꽤 공들인 글들인데 말이죠..

cyrus 2018-12-12 16:57   좋아요 1 | URL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책의 핵심 내용이라든가 관심 있는 내용을 한글 파일에 입력해서 저장해요. 보통 이런 작업을 평일에 퇴근하고 나서 하는 경우가 있지만, 시간이 많은 주말에 많이 하는 편입니다. 평일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밤 12시나 1시에 잠을 청합니다. 카프카처럼 생활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카프카는 낮에 보험회사 사무직에서 일하고, 밤에 글을 썼어요. 밤에 글 쓰는 데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죠. 카프카는 밤새면서 글을 쓰면 다음 날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해요. 결근하고 싶으면 회사에 몸이 아프다면서 핑계를 둘러댔어요. 사실 저도 카프카처럼 그런 거짓말을 한 적이 있어요.. ^^;;

雨香 2018-12-12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서즈 비니어드》는 장애란 결코 장애인 개인의 문제도,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님을 보여준다. 즉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며, 장애인은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차별받아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수화를 쓰지 않는 사회에 청각장애인은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다. ˝

예전에 장애운동에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하면서 많이 이야기한 부분이 바로 사회구조의 문제였습니다.

소개해주신 책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읽지는 않고, 읽어서 도움이 될 분들에게 선물할 것 같기는 합니다.)

cyrus 2018-12-12 16:59   좋아요 1 | URL
지난달에 페미니즘 독서모임 선정도서로 <거부당한 몸>을 읽었어요. 독서모임에 자주 참석하는 페미니스트들 멤버들이 아니었으면 이 좋은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이 책을 읽을 계기로 장애에 관한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장애학과 장애 운동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안 된 초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