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 공감의 두 얼굴
프리츠 브라이트하우프트 지음, 두행숙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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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나도 너처럼 그렇게 생각해라고 느끼는 감정이자 타자로 향하는 통로.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진화의 유산으로, 영장류의 공감 능력은 여타 포유류들을 압도할 만큼 뛰어나다고 한다. 특히 다수가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인 인간은 그중 가장 크고 깊은 공감 능력을 갖췄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공감이다. 공감은 인간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정서이다. 인간이 서로를 이해해주는 상호소통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기꺼이 도로 중앙을 비워주는 운전자의 행위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처한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꺼이 도와주는 것은 공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흔히 이타적 행동이라고 말하는 이 행동들은 공존의 토양이 되는 인간 특유의 도덕성이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도덕 감정론에서 도덕적 행위는 이해관계를 떠난 관찰자의 위치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의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타인의 행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먼저 그 처지를 공감(sympathy)하는 능력이 선행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책을 보자마자 처음으로 눈에 띄는 제목이나 부제는 책에 대해 강한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책의 부제는 공감의 두 얼굴이다. 책의 제목은 부제의 의미와 대비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이다. “생각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가 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데카르트(Descartes)의 말을 비틀어서 공감 능력이 있는 주체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공감(하면서 존재)한다.” 만일 라는 존재가 공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공감 능력과 도덕성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종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곤 하는 사이코패스는 타인의 감정을 잘 인식하지만, 타인의 고통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타인의 삶을 거리낌 없이 파괴해버리는 게 가능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이코패스를 (공감할 줄 아는)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이 책은 그저 좋은 것으로 생각해왔던 공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제공한다. 공감의 의미가 무엇이며 공감이 너무 많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공감을 과도하게 활용하면서 생긴 불행한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양한 사례와 저자의 경험에 근거해 설명한다. 우리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 친화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크고, 나아가 모두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책은 공감 능력을 지닌 인간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다시 데카르트의 명제를 비튼 다음, 여기에 말대꾸까지 하면 공감 능력을 지닌 인간의 한계를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공감한다. 그런데 널 도와주고 싶지 않아.”

 

이 책의 저자가 생각하는 공감의 의미는 함께 체험하는 것(co-experience)이다. 우리는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상상력이 가능하다.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태도는 좋은 일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만 그치고, 타인을 위해서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제대로 공감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감 능력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 되려면 자신을 타인의 삶에 대입한 뒤에 타인이 처한 상황을 체험해야 한다. 그러나 네 말에 공감해라고 말을 하기는 쉬워도 몸이 반응하여 그 사람을 위해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공감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위험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공감은 자아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공감을 너무 쉽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상황을 잘 수용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장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생각과 관점을 수용하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과 관점을 잃어버릴 수 있다.

 

공감은 이분법적 사고를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 누군가를 지지하면 그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그러면 지지하는 사람과 함께 행동하게 된다. 눈에 콩깍지가 씌면 남들이 볼 때 영 아니다 싶은 사람이 좋게 보인다. 특정 인물을 편애하는 공감은 특정 인물과 반대되는 사람의 생각과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공감에 너무 과도하게 몰입하면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의 결점까지 흡수해버리고, 그 결점을 비판하는 사람을 으로 인식한다.

 

공감 능력을 지닌 사람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잘 도와준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을 사회적 약자를 구원하는 영웅으로 생각하고, 그와 동일시한다. 이러면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공감 능력을 발휘하려면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부닥친 사람이 있어야 한다. 단지 공감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사람의 태도를 공감적인 사디즘(sadism)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남의 불행을 기뻐한다. 그래야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저자는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위험한 공감을 흡혈귀 행위(vampirism)에 비유한다.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는 마치 헬리콥터처럼 아이 주위를 빙빙 맴돌며 모든 일에 간섭하는 부모를 말한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식이 잘 커서 경제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부모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신의 소망을 자식에게 강제로 주입한다. 자식은 부모의 말에 순순히 따르게 되는데 부모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자식을 뿌듯하게 여긴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식이 자신의 소망에 공감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부모의 강압적인 권위에 의해서 강제로 작동하는 공감이다. 헬리콥터 부모 밑에 자란 자식은 앞서 공감의 첫 번째 위험으로 언급했던 자아 상실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는 공감의 위험성을 안고 가는 동시에 공감 능력을 함양하여서 사회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까. 공감의 위험성을 지적한다고 해서 저자가 공감 능력 자체를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공감 능력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감정이며 교육을 통해 장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공감 능력이 도덕성을 형성해주고 회복해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또 공감을 타인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 특정 인물 또는 특정 세력을 지지하도록 요구하는 공감은 소리만 요란한 공감(空感: 내실 없는 감정)이다. 그것은 공감(共感)이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공감(共感)공감(空感)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종종 살펴보자. 내가 정말 공감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Trivia

 

* 185쪽 오자: 루브비히 티크 루드비히 티크(Ludwig Ti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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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1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9-10-22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들은 팟캐스트에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사람을 정말 정말 골라서 잘 사귀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언급하신 자아상실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공감만 하고 행동할 줄 모르는 인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 생각났습니다. 언제나처럼 잘 읽었습니다 🙇🏻‍♀️

fledgling 2019-10-22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나네요. 평소에 제자신이 다른 능력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행동으로 옮긴 일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저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네요. 읽고 싶게 만드는 명품 리뷰 잘보고 갑니다.
 
자발적 고독
올리비에 르모 지음, 서희정 옮김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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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경우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혼밥혼술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혼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왜 늘고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는 있겠지만 우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연인들도 수시로 티격태격하고, 오래 산 부부나 친구 사이에도 다툼이 생긴다. 그럼에도 우리가 관계 맺기를 지속하는 이유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대로 생각한다. 온라인 관계 맺기에는 몰두하면서도 오프라인 관계 맺기는 어색하고 불편해한다.

 

그렇다면 혼자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관계 맺기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그들이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발적 고독은 이러한 현실적 고민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표제이자 주제인 자발적 고독은 스스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비혼의 의미와 다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비혼과 관련이 없다. 자발적 고독은 군중의 생각과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하지 않고,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관에 따르면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고독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가족이나 집단생활에 익숙한 인간에게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막상 혼자서 살게 되면 망설이게 되고 걱정이 많아진다. ‘고독이라는 단어는 외로움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어둡고 쓸쓸한 느낌이 묻어나 있다. 요즘 언론은 1인 가족의 삶에 조금씩 드리워지고 있는 어두운 그늘인 고독한 죽음을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독한 죽음이라는 신조어를 나이 들어서 쓸쓸하게 혼자서 죽음을 맞는 현상이라고 정의를 해왔다. 그러나 고독한 죽음이 노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해가 갈수록 혼자 사는 중장년층의 사망률은 증가하고 있다. 혼자 살고 싶은 사람은 있어도 외롭게 살다가 쓸쓸하게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발적 고독은 혼자 살기에 대한 과도한 낭만이나 오해 섞인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풍요로운 고독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짚어보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발적 고독을 선택한 사람들의 공통점에 주목하는데, 그들은 단절(혼자 살기)과 연결(관계 맺기)이 적절하게 양립된 삶을 살았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몽테뉴(Montaigne) 등이 있다. 소로는 월든(Walden)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2개월을 살았다. 우리는 그가 호숫가 주변에 있는 자연을 벗 삼아서 혼자만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누려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또 어떤 이는 소로를 사회와 군중을 냉소적으로 생각한 무책임한 인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발적 고독의 저자는 소로가 사회와 연을 완전히 끊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소로는 고독을 선택했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한 발짝 물러선 채로 정의롭지 못한 사회 문제를 주시하면서 비판 의식을 키워갔다. 소로가 쓴 산문 월든 타인과의 교류와 자기와의 교류를 번갈아 맺는 삶의 방식을 풀어 쓴 글로 읽을 수 있다. 소로보다 훨씬 먼저 자발적 고독을 실천한 몽테뉴는 자신의 저택에 은거하면서 사색하고 글을 썼지만, 사회와의 연을 끊으라고 강조하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가 점차 확대되고 존중받는 사회적 흐름과 더불어 나타나는 자발적 고독은 이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기계처럼 바쁘게 살아온 우리 삶에 잠시 쉼표를 찍은 다음에 차분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는 자발적 고독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발적 고독은 온전히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속도전에 지친 내 마음에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러나 혼자서 충분히 즐기고 만족할 만한 삶을 살려고 하면 설득이나 하려는 듯 주변 사람들의 질문이 들어온다. “네가 갑자기 몸이 아파서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즐거운 고독이 아닌 무서운 고독한 죽음이 불현 듯 스쳐 지나갈 것이다. 자발적 고독은 혼자 살기를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혼자 살기의 장점을 알려주면서도 고독의 한계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는 완벽한 고독은 환상이라고 강조한다. 인간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린 상태에 혼자서 생활하는 것은 고독이 아니라 고립이다. 고립된 삶은 즐겁기는커녕 외로움만 가중시킨다. 세상과 단절된 생활에 익숙한 개인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며 성찰 의식을 상실한다. 그런 사람은 독단적인 고집쟁이로 변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을 타인에게 표출한다.

 

고독으로 포장된 고립또는 고립으로 변질된 거짓된 고독은 개인과 타인 모두를 괴로워하게 만드는 고문이다. 자발적 고독은 개인뿐만 아니라 타인, 더 나아가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연대 방식이다. 자발적 고독을 선택한 사람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다. 그들도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하며 기꺼이 타인들과 연대한다. 상황에 따라 자기만의 안식처와 안식처 밖의 세상을 번갈아 드나들 필요가 있다. 외로움만 늘어나는 고독은 개인의 몸과 정신을 병들게 한다. 자발적 고독영원한 고독이 아니라 적당한 고독일시적인 고독에 가깝다. 관계 맺기에 능숙한 사람일수록 건강한 고독을 누릴 수 있다. 혼자 살고 싶은데 인간관계가 서툰 사람들은 과외를 받는다는 마음으로 자발적 고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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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2019-10-17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한 고독_ 좋아. 저도 적당하게 고독하게 살아볼래요!

cyrus 2019-10-17 18:39   좋아요 0 | URL
누님은 이미 ‘건강한 고독’을 실천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ㅎㅎㅎ

2019-10-17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0-21 18:05   좋아요 0 | URL
도서관이나 서점에 갈 때 혼자 가는 게 편해요. 저는 읽고(사고) 싶은 책 한 권을 고르는 데 적어도 30분 이상 걸려요.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책을 천천히 살펴보지 못했을 거예요. ^^;;
 

 

 

 

 

 

 

 

 

귀에 작은 구멍이 있습니다! 여러분, 귀에 작은 구멍이 있습니다!

저는 cyrus라고 하옵니다!

 

 

인간의 양쪽 귀에 구멍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귓구멍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하려는 것은 귓구멍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구멍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귓바퀴 앞에 있는 작은 구멍이다. 내 귀에 4개의 구멍이 있다. 귓구멍과 구분하기 위해 여기서는 작은 구멍이라고 부르겠다.

 

 

 

 

 

    

 

작은 구멍은 말 그대로 작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바늘에 살짝 찔려서 생긴 흉터처럼 생겼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귓바퀴 앞에 아주 미세한 구멍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도 작은 구멍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은 구멍에 대한 호기심을 느낀 그들은 내게 묻는다. 저 구멍은 뭐에요? 정말 신기하네요.”

 

특별한 구멍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그 작은 구멍에 향하는 시선들이 너무나도 불편하게 느꼈다. 사람들은 작은 구멍의 정체를 알려고 했다. 내가 그 구멍이 생긴 이유를 모른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어떤 사람은 작은 구멍에 대해 가벼운 농담을 했다. 귀에 구멍이 네 개나 있으니 남들보다 더 잘 들리겠네요.” 사람들은 작은 구멍을 뚫어지라 살펴본 다음에 소감을 밝혔다. 대부분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작은 구멍의 존재감을 드러내게 하는 또 다른 특별한 현상이 있다. 작은 구멍에서 누런 고름이 나온다. 이 고름이 갑자기 나오는 건 아니다. ‘작은 구멍이 있는 부위가 간지러울 때가 있는데, 그쪽을 손가락으로 누르거나 문지르면 구멍에 고름이 나온다. 고름은 아주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 초등학생 시절에 나는 이 고름 때문에 놀림을 받았다. ‘작은 구멍에 고름이 나오는 걸 어찌 알았는지 나를 놀리는 아이들은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장난이 심한 어떤 녀석은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는 척하다가 네 귀에 냄새나!”하고 큰 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그때 작은 구멍이 생긴 이유와 거기에서 고름이 생기는 원인을 알았더라면 그들에게 설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나는 작은 구멍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몰랐다. 너무나도 답답해서 부모님에게도 여쭤봤지만, 부모님의 대답도 내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지 못했다. 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작은 구멍이 있었다고 말할 뿐이었고, ‘작은 구멍에 고름이 나오니까 그 부위에 절대로 손으로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어머니의 충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작은 구멍이 있는 부위가 간지러운 것을 참을 수 없었고, 간지러움을 느낄 때마다 손으로 그 부위에 갖다 댔다. 결국, 왼쪽 작은 구멍에 문제가 발생했다. 작은 구멍이 있는 부위에 염증이 생긴 것이다. 염증이 생긴 부위는 점점 부풀어 올랐다. 귓바퀴 앞에 작은 혹이 생기고 말았다. 그 안에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고름이 생겼다. 그때 당시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할 수 있었지만, 수술이 두려운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혹이 생긴 부위에 고약을 붙여주었다. 고약을 붙이니까 고름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왔고 혹의 크기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고약을 붙이지 않으면 또 염증이 재발하면서 고름이 생겼다. 그러면서 혹도 다시 커졌다. 반년 동안 고약을 붙인 채 등교를 했다. 나를 만만하게 보던 아이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귀에 고약을 붙이고 다니는 나를 놀렸고, 부풀어 오른 귓바퀴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내 모습이 얼마나 특이했으면 초등학교 담임선생마저 농담할 정도였다. 나는 아직도 담임선생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귓바퀴에 고름이 생겨서 고약을 붙인다고 말하자 그는 회초리를 들면서 고약을 붙인 부위를 때리는 흉내를 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회초리로 거기) 때려도 돼? 그러면 덜 아플 텐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는 선을 넘는 말을 하고 말았다. 어린 제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주지 못했고, 그것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귓바퀴에 혹이 생기니까 나를 곤란하게 만든 상황이 생겼다. 귓바퀴에 난 혹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바늘을 찌르는 듯한 통증은 수면을 방해했다. 혹에 물이 들어갈까 봐 조심스럽게 머리를 감았다. 미용실에서 이발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나는 미용실 직원에게 혹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해야 했고, 직원은 최대한 혹을 건드리지 않은 채 구레나룻을 잘랐다. 사실 미용실에 가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서 혹을 가리고 싶다는 생각했다.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면 내 혹을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한마디씩 말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혹이 왜 생겨났는지 물어보는 건 당연했고, 내가 혹이 생긴 원인을 설명하면 불쌍하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너 정말 안 됐구나.” 나는 미용실에 갈 때마다 아주머니들의 구경거리가 되었고, 그녀들은 날 불쌍한 아이로 취급했다. 아주머니들은 자신들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불쌍한 아이의 엄마가 누군지 알고 싶어 했다.

 

이제 작은 구멍의 정체를 밝힐 때가 되었다. 이십여 년 만에 작은 구멍의 정체를 알았다. 작은 구멍의 정식 명칭은 선천성 이루공(congenital auricular fistula)이다. ‘이루공(耳瘻孔)귀 주위에 생긴 구멍에 의해 일어난 부스럼 또는 혹을 말한다. 귀 안쪽에 주머니처럼 생긴 빈 공간이 있다. 그래서 작은 구멍을 통해 침투한 세균에 의해서 주머니 같은 공간에 고름이 생기고 염증이 일어난다. 염증이 반복되면 그 부위를 적출하고 구멍을 피부로 메꾸는 수술을 한다.

 

선천성 이루공은 기형의 일종이다. 나처럼 태어날 때부터 귓바퀴에 작은 구멍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 100명 중 두세 명만이 선천성 이루공이 있다. 선천성 이루공은 엄마 뱃속에서 태아의 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귓바퀴의 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작은 구멍이 만들어진다. 선천성 이루공은 유전이 된다. 내 외가 쪽 사촌 동생도 선천성 이루공이 있다. 어머니와 고모는 선천성 이루공이 없다. 아마도 외가 쪽 조상 중에 선천성 이루공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기형을 유발하는 유전자는 바로 다음 대에 유전되기도 하지만 몇 대를 지나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격세유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내 자식의 귀에 선천성 이루공이 생길 확률은 반반이다.

 

 

 

 

 

 

 

 

 

 

 

 

 

 

 

     

 

* 닐 슈빈 내 안의 물고기(김영사, 2009)

 

 

 

선천성 이루공이 왜 아주 적은 사람들에게만 생기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 안의 물고기라는 책을 쓴 미국의 진화생물학자는 닐 슈빈(Neil Shubin)은 선천성 이루공을 인간 진화의 흔적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손, 머리 등 인간의 신체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오래전 멸종한 무악어류(턱이 없는 원시 어류)의 머리와 닮은 점이 많다. 실제로 인간의 해부 구조는 물고기와 매우 유사하다. 슈빈은 2004년에 틱타알릭(Tiktaalik)이라는 물고기 화석을 발견했다. 틱타일락의 해부 구조는 우리가 아는 물고기의 해부 구조와 다르다. 여느 물고기처럼 지느러미와 아가미가 있지만, 초기 육상동물의 팔과 손목에 해당하는 뼈와 관절도 있다. 틱타알릭은 물속에 살던 어류가 땅 위에 사는 양서류로 진화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됐고, 슈빈은 인간의 몸은 물고기가 진화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선천성 이루공은 인간이 가지고 있던 물고기 아가미가 퇴화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 보통이 아닌 몸(그린비, 2015)

 

    

기형의 몸은 흥미와 혐오를 동시에 유발하는 구경거리가 되기 쉽다.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Rosemarie Garland Thomson)보통이 아닌 몸(Extraordinary Bodies)에서 설명한 내용에 따르면 프릭 쇼(freak show)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기형 인간 쇼는 비정상이라고 규정된 장애 형상들을 보여 줌으로써, 구경꾼들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자신들은 정상이라는 우월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이제 나는 내 귀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다. 내 귀에 왜 작은 구멍이 있는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구멍이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신체 구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구멍이 있는 부위가 간지럽고 고름이 나오지만, 그것 외에는 불편함 없이 잘살고 있다. 나는 내 귀에 작은 구멍이 두 개나 있구나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앞으로 나를 만나게 되면 내 귀를 주의 깊게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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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15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게 있었군요. 너댓 번을 만나도 전혀 몰랐네요.

cyrus 2019-10-17 17:48   좋아요 0 | URL
구멍이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아요. 오래 만난 친구들도 모르는데요.. ㅎㅎㅎ

강나루 2019-10-15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당하게 밝히시다니
독서를 통해 당당하게 우뚝서셨군요
님을 응원합니다

cyrus 2019-10-17 17:4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제야 몸의 비밀을 알게 돼서 속이 시원합니다. ^^

카스피 2019-10-1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친척 형님도 cyrus님처럼 이루공이 있는데 주기적으로 고름을 짜내지 않으면 염증이 생겨서 아프다고 하시더군요.큰 병은 아니지만 생활에 불편함이 많으실것 같아요.

cyrus 2019-10-17 17:51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는 크게 한번 염증이 생긴 이후로는 재발하지 않았어요. 이루공을 건드리지 않고, 고름을 짜니까 염증이 생기지 않았어요. 고름 나오는 건 빼곤 불편한 점은 없어요. ^^;;

감은빛 2019-10-15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을 읽고 처음 알았어요.
어려서부터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게다가 놀림까지 받았다니!

유전이라는 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제 아이들이 정말 애들 엄마와 저를 적절하게 반반씩 닮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면,
그 생명의 신비에 정말 깜짝 놀라요.
내가 죽더라도 나를 닮은 내 자손이 이 세상을 살아갈 거라는 건 신기한 일인 것 같아요.

cyrus 2019-10-17 17:56   좋아요 0 | URL
유전 현상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해요. 특히 격세유전이요. 부모와 친자식의 유전은 문제없는데, 그 친자식의 자식이나 후손에게 유전 이상이 생길 수 있어요. 부모 조상이 가지고 있던 유전 문제가 후손에게 나타난 것이죠. 사실 제 친자식이 이루공을 가지고 태어날까봐 걱정됩니다.

2019-10-16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0-17 17:57   좋아요 0 | URL
구멍이 두 개 더 있다고 해서 청력이 좋은 건 아니에요.. ㅎㅎㅎㅎ

붕붕툐툐 2019-10-1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구멍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익히 알고 있는 저는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일까요? ㅎㅎ
저도 며칠 전 귀를 뚫어서 혹이 났을 때의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되었네요~~

cyrus 2019-10-17 17:59   좋아요 0 | URL
귀걸이를 하는 사람을 보면 대단해요. 바늘로 귀에 구멍을 뚫는 것만 봐도 아픔이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주사바늘은 무섭지 않아요.. ㅎㅎㅎㅎ
 
시민들의 생각법 - 대세를 따르지 않는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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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남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의미한다. 우리는 집단에 소속되려고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어서 무리 지어 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인간은 철저하게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으며 타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모방 본능은 사회적인 상호작용에서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만약 상대방의 표정, 행동, 자세, 말투를 모방하지 않는다면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남들같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본능은 큰 재앙을 불러오기도 한다. 조직이론에서 종종 사용되는 용어 중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집단의 의사 결정 상황에서 집단 구성원들이 집단의 응집력과 획일성을 강조하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여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왜곡된 의사결정 방식을 말한다. 폐쇄적인 집단이나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새로운 정보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게 되고, 다수의 결정에 대한 반대 의견은 설 자리를 잃는다. ‘우리가 옳다그들만의 신념은 거대한 오류를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다.

 

이를 막으려면 악마의 변호사(devil’s advocate)가 있어야 한다. 가톨릭에서 성인(聖人)을 추대할 때 해당 인물의 행적과 품성을 검증하기 위해 비판을 하도록 한 인물을 가리킨다. 선의와 확신, 만장일치가 결과의 성공이나 정의로움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만큼 건전한 공적 논의를 담보하기 위해 이런 의도적이고 의무적인 악역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대 의견은 다수 의견에 동조하는 군중에게는 성가시고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정의와 양심을 지키기 위해 악마의 변호사로 자처하여 나서게 된다면 군중으로부터 트집쟁이’, ‘악마의 선동꾼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비난을 덜 받으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잘 설명하는 방법이 있을까?

 

일본 사회 내에 확산되고 있는 반지성주의를 경계하고 비판해온 우치다 타츠루(內田樹)대시민이 되자고 제안한다. 이번에 나온 그의 책 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2008년부터 6년간 연재한 900자 칼럼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우치다 타츠루의 대시민 강좌이다. ‘대시민1966NHK 방송국에서 방영한 텔레비전 드라마의 제목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평소 정치나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샐러리맨인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사회에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게 된다.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고 안정적인 삶을 선호하는 사람을 소시민이라고 한다면, 대시민은 사회 문제의 옳고 그름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대시민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시사 쟁점에 대해 자기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다. /그녀는 다수 의견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사회의 위기 징후를 감지하고 군중의 각성을 촉구한다.

 

악마의 변호사대시민모두 사회나 집단에 향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인물이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악마의 변호사는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서 고의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라면, 대시민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표현력을 동원하여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사람이다. 우치다는 대시민을 설명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비록 나와 다른 생각을 드러내는 말이어도 그 말의 내용이 알차고 이해하기 쉽다면 경청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저는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에요. 대시민이 되려면 말을 잘해야 되는군요.”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상대에게 전달하는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치다는 그것을 의사소통 능력의 부차적인 일부로 보고 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자리를 마련하는 능력이다. 우치다는 진정한 의사소통 능력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우리가 알면서도 자꾸 잊는 경청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의사소통 능력이란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의 자리를 마련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자신과 타자를 맺어주는 통신의 회선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몇몇 방법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 내 목소리가 들립니까?” 이런 발화가 바로 그것이다. 또는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동안 귀를 기울일 만한 대목에 은근히 힘을 준 순간을 알아채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다.

 

(진정한 의사소통 능력중에서, 172)

 

 

성숙한 발신자는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며, 그 말속에 들어있는 동기(動機)나 정서까지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의사소통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상당히 어려워한다. 또는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간과하기도 한다. 말을 잘하든 못하든 간에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려고 한다. 지금도 익명의 수신자들은 자기 생각을 밝히면서 인터넷 공간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 남겨진 수많은 말들은 익명의 발신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 수많은 수신자가 발신자가 되지 않는 한 인터넷 공간에 남겨진 말들은 공적 논의를 위한 자원으로 사용해보지 못한 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침전물로 남게 된다.

 

설명을 잘하는 대시민은 듣는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 우치다는 듣기 좋은 말을 하는 능력을 대시민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로 보고 있지만, 나는 듣는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는 것은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상한 이야기에 귀담아 들어주는 자세를 의미한다. 그런 사람은 상대방과 대화를 나눌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시민이다.[]

 

 

      

[] 한국어판 서문의 8쪽에 있는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시민입니다.”라는 문장을 빌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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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4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4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4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5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9-10-16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치 제 이야기처럼 읽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편이었고,
심지어 선생님들 마저도 저 아이는 좀 이상한 아이,
너무 생각이 많은 아이 라는 얘길 했었거든요.

지금은 그런 저의 성향이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회의 자리 같은 곳에서 오히려 저를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보여주더라구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이
제가 남들에게 인정받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늘 한계는 존재하기 마련이죠.
아무리 제가 말을 잘하고, 아무리 논리적이라해도,
항상 제 의견이 존중 받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한 편으로는 그런 점 때문에 인정 받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런 점 때문에 상처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대세를 따르지 않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숙명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cyrus 2019-10-17 18:04   좋아요 0 | URL
우리 사회에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은데, 반대로 그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말을 낯설게 느끼거나 아예 듣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요즘 느끼는 게 뭐냐면 말 잘하는 사람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저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주고 싶어요. 이러면 서로 대화가 통하겠죠? ^^
 

 

 

 

지난달에 쓴 로드 던세이니(Lord Dunsany)의 작품에 관한 글을 정정한다. 글 제목은 리라젤과 운디네.

    

 

 

 

 

 

 

 

 

 

 

 

 

 

 

  

* [e-Book] 엘프랜드의 공주(페가나북스, 2019)

    

 

 

던세이니의 작품을 전자책으로 출간한 페가나북스공식 홈페이지에 보면 엘프랜드의 공주(The King of Elfland’s Daughter)던세이니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나는 이 작품을 두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주장하면서 홈페이지에 있는 작품 소개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던세이니의 작품들을 번역한 엄진 씨의 반박 의견에 따르면 1922년에 던세이니가 발표한 초기 작품인 Don Rodriguez: Chronicles of Shadow Valley는 장편이 아니라 연작 단편집으로 분류된다. 그렇게 되면 1924년에 발표된 엘프랜드의 공주던세이니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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