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마음에 드는 일만큼이나 많이 생긴다. 특히 내 마음에 상처를 줄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느낀다. 화 anger다. 그럴때 되도록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는 편인데, 오늘따라 '화'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화에 대하여>와 관련 책들을 를 펼쳐들고 화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다. 오늘 페이퍼는 <화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다른 현인 賢人들의 '화'에 대한 단상 短想 들이다.


 <화에 대하여 on anger>는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 4 ~ AD 65)가 저술한 '화'에 대한 책이다. 세네카는 이 책에서 먼저 화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다. 세네카에게 있어 화는 '이성 理性'의 적이다. 그리고, 플루타르코스(Ploutarchos, AD 50? ~ 120?) 에 따르면 화는 '고통'과 '쾌락'과 '오만'의 씨앗이다.


 '화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우리 스토아 철학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화는 "고통을 고통으로 갚아주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라고 그는 말한다... 화는 이성의 적이지만, 오직 이성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생겨난다.'(p35) 

'제논은 씨앗이 혼의 모든 능력에서 추출한 혼합물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분노는 모든 감정에서 추출한 씨앗의 혼합물인 것 같네. 분노는 고통과 쾌락과 오만에서 추출되었기 때문일세.'(p93)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플루타르코스 中 


 다른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322)는 '온유'를 '성마름'과  '성깔 없음'의 중용이라고 파악하고, 어느 정도의 분노는 우리 삶에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적당한 화는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세네카에 의해 논파된다.

 

  '온유함은 분노 憤怒 와 관련된 중용 中庸 이다... 분노가 지나침은 성마름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원인은 많고 다양하지만 여기서 느끼는 감정은 분노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화낼 일로, 당연히 화내야 할 사람들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만큼, 적당할 때에, 적당한 기간 동안 분노하는 사람은 칭찬받는다. 그런 사람은 온유한 사람일 것이다.'(p161)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中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를 적당하게 표현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세네카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화를 내는 것이 유리하지 않음을 주장하면서 신중하게 살피고 자제심을 발휘할 것을 요청한다. 세네카에게 진중함은 선 善인 반면, 화는 악 惡이다.


'우리는 전투와 전쟁에서조차 화가 유리한 수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화는  조급함을 부르고, 적을 위험에 빠뜨리고자 하는 욕망은 경솔함을 불러들여 오히려 우리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 가장 믿을 만한 지혜는 상황을 오랫동안 신중하게 살피고, 끝까지 자제심을 발휘하고, 정해진 목표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다.'(p54)


 <화에 대하여>에서 세네카는 화를 내는 대상에 따라 화의 종류를 구분하고 있다. 먼저,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놓은 이들(부하 직원, 어린 자녀 등)의 잘못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세네카의 조언은  '꾸짖되, 화내지 말라' 는 말로 요약된다.


  '잘못을 저지른 자는 훈계를 통해서든 강제력을 동원해서든 부드럽게 때로는 엄격하게 그 행동을 교정해주어야 한다. 남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는 그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꾸짖되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치유의 대상인 환자에게 화를 내는 의사가 어디 있는가?'(p60)


 '우리는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대상에게 화를 내지만, 심지어 그런 능력이 없는 대상에게도 화를 낸다.(p127)... 아이들에게 혹은 분별력에서 아이보다 나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공정한 심판관의 눈으로 보면, 그런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무지함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무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p128)


 어린아이들에 대한 체벌 문제에 대해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 ~ 1592) 역시 세네카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어째서 부친들과 교사들이 분노해 어린아이들을 때리고 벌 주는 것이 허용된단 말인가? 그것은 이미 징계가 아니다. 그것은 보복이다. 징계는 어린아이에게는 약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의사가 그의 환자에게 흥분해서 화를 낸다면, 그대로 참고 볼 일인가? 우리 자신도 올바르게 처신하려면, 분노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동안 결코 하인들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될 일이다.'(p785) <몽테뉴 수상록> 몽테뉴 中


  또한 자연 재해 등 어쩔 수 없는 재난에 대해 우리는 애써 의미를 부여하거나 화를 낼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이런 불가항력적인 것에 대해 우리는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다의 야만성에 대해, 가혹한 홍수에 대해, 좀처럼 물러가지 않는 동장군에 대해 신들을 탓하며 화를 내는 것은 미치거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의 행동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고 혜택을 주기도 하는 이런 자연 현상들은 특별히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자신의 법칙대로 움직일 뿐이며, 그것을 통해서 신의 의지가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런 엄청난 일들을 불러일으킬 만큼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들은 우리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이런 일들은 우리의 행복에 이바지한다.'(p129)


  이처럼 우리는 여하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지금 당장 화가 났을 때 우리는 화에 대한 반응을 최대한 늦추거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을 통해 보다 신중하게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면서, 화의 폐해를 직접 깨닫는 것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줄 것이다. 


  '화에 대한 최고의 대책은 그것을 늦추는 것이다. 처음부터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사숙고하기 위해 화의 유예를 요구하라. 화가 처음에 맹렬한 기세로 습격할 때는 타격이 크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뒤로 물러선다. 한꺼번에 화의 뿌리를 뽑으려고 애쓰지 마라. 하나씩 하나씩 조금씩 뽑아서 버리면 언젠가는 화를 전부 없앨 수 있을 것이다.'(p134)


 '섹스티우스가 말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화가 날 때 화난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데에 충격을 받았다... 화보다 빨리 우리를 광기로 이끄는 길은 없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화의 발작을 수습하지 못하고 한 번 놓아버린 정신을 다시는 되찾지 못하기도 한다. 광란이 아이아스를 자살로 내몰았고 화가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p153)


 [그림] 오딧세우스(왼편)과 절망하는 아이아스(오른편) (출처 : 중앙시사매거진)


 그리고, 매일 자신의 성찰 省察하면서 자신의 감각을 강하게 단련시킬 것을 권고한다. 분노의 원인에 대해서 플루타르코스 역시 세네카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플루타르코스와 몽테뉴는 자신의 조절을 통해 화를 억제할 것을 제안한다. 

마치 은나라를 세운 탕왕 湯王이 세숫대야에 '구일신일일신우일신(苟日新日日新又日新)' 아홉 글자를 새겨 세수할 때마다 스스로를 반성하고 새롭게 변화하려는 다짐을 늘 일깨웠던 것처럼 매일 새롭게 변화하려는 노력은 보다 우리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수행하고 있는 일들 중에 심각하거나 중요한 일은 하나도 없다. 이는 화가 광기의 한 형태이며, 네가 하찮은 일에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네가탐하는 것이 하찮은 것이기에, 남에게서 빼앗지 못하면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네가 추구하는 것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내분과 증오가 일어난다.(p233)... 네 감각 또한 강해져야 한다. 마음이 감각을 타락시키는 일을 그만두기만 하면 감각이란 원래 참을성이 있고 무던하다. 그러므로 너는 매일 마음을 점검하고 다스려야 한다.'(p235)


 '마치 살이 심하게 가격당하면 부어오르듯, 허약한 혼일수록 남에게 고통주기를 좋아한다네. 그래서 그들은 혼이 허약한 만큼 더 심한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이지... 이렇듯 분노는 무엇보다도 허약함 탓에 혼의 괴로움과 고통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네.'(p75)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플루타르코스 中


 '분노를 조절하려면 잔혹하게 자기를 억제해야만 한다. 나로서는 격정치고, 그것을 덮어가며 버티어 나가는 데 이렇게 힘든 것을 알지 못한다.(p789)... 분노라는 무기가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이 무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p792)  <몽테뉴 수상록> 몽테뉴 中


 '그러니까 친구여, 분노의 폭정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방법은, 분노가 우리더러 고함을 지르고 노려보고 가슴을 치라고 명령을 하더라도, 말을 듣지 않거나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네. 오히려 우리는 평정을 유지하고 마치 정염이 질병인 양 격렬한 동작과 고함 소리로 정염을 악화시켜서는 안 되네.'(p68)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플루타르코스 中


 <화에 대하여>,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수상록>에서 저자들은 화에 대해서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수천 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현인들의 화에 대한 관점이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화에 대한 이들의 말이 진리라는 반증이라 생각된다. 


  요즘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 화를 가슴에 쌓아두면 병이 된다고 하면서 이를 밖으로 표출시키라는 말이 참으라는 말보다 많이 들린다. 홧병이 생길수 있기에, 이 역시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화를 밖으로 버리고 나면 내 마음은 평화로울 수 있을까? 내 마음이 화가 생기기 쉬운 상태라면 결국 나는 자주 화를 내서 평안을 얻을 수 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화를 내는 주기는 조금씩 더 짧아지고, 나중에는 내 자신이 화 그자체가 될 것이다.  그전에 자신을 스스로 단련해가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옛 현인들은 말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분노 대신 선인 善人들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세네카의 조언을 마지막으로 '화'에 대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반론 : "선한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아들이 칼에 찔리는 것을 보고도 울거나 실신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선한 사람은 흔들리거나 주저함 없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것이며 선한 사람으로서 합당히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만일 나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는 순간이라면, 나는 그를 지킬 것이다.'(p55)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촌구석시골총각 2017-06-16 22: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같은 저자의 화 다스리기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당시 원했던 부분보다는 학문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실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은 어떨지 또 궁금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17-06-16 22:26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저는 촌구석시골총각님과 반대로 「화 다스리기」를 읽지 못했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네요^^: 촌구석시골총각님 감사합니다.

oren 2017-06-17 0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노‘만큼 흥미로운 격정도 드문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소개해 주셨듯이,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플루타르코스, 몽테뉴 등 숱한 철학자들이 이 주제로 수많은 이야기들을 쏟아 놓았고, 나중에 애덤 스미스도 <도덕감정론>을 통해 ‘분노의 감정 연구‘에 한몫 단단히 거들었던 듯합니다.

철학과는 별도로 이름난 문학작품에서 자주 다뤘던 주제 또한 ‘분노‘였던 건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듯싶은데, 따져 보니 희랍 고전들 가운데서도 ‘분노‘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정말 많네요.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휩폴리토스>, <엘렉트라>, <오레스테스> 등이 모두 분노와 복수를 다루고 있고,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나 <코리올라누스>도 마찬가지고요.(<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50명의 인물 가운데 ‘분노‘로 가장 명성을 떨친 인물이 아마도 코리올라누스가 아닐까 싶은데, 셰익스피어도 ‘그의 분노‘에 깊은 감명(?)을 받은 끝에 기어이 자신의 ‘마지막 사극 작품‘으로 연극무대에 올렸더군요.) 2,800년 전에 쓰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도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핵심 주제였으니 달리 무슨 긴 말이 더 필요할까 싶기도 합니다. 저도 한때 ‘분노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글을 끄적거리다 (머리에 떠오르는 작품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만 둔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겨울호랑이 님의 글 덕분에 그 흥미로운 주제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어 새삼 반갑네요. 제게 낯익은 책들도 반갑고요^^

겨울호랑이 2017-06-17 07:23   좋아요 2 | URL
^^: 분노를 다룬 작품이 정말 많군요. 특히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평소에도 관심있었는데 oren님께서 말씀하시니 더욱 관심이 갑니다... 분노라는 소재는 특히 고대 그리스에서 주목받던 소재였던 것 같습니다. 아직 oren님께서 언급하신 작품 다수를 읽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야겠습니다. 항상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님 행복한 주말 되세요^^:

서니데이 2017-06-17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를 참는 것도 좋지 않지만 화를 내는 것도 좋지 않다는, 전에 읽었던 내용이 생각났어요. 어느 쪽도 쉽진 않지만 화를 많이 내면서 사는 것도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밤이 되어도 덥네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좋은밤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06-17 07:25   좋아요 2 | URL
어느 정도는 여유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길이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겠지만요.ㅜㅜ 서니데이님 더운 날 오늘도 건강하게 보내세요^^:

2017-06-17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7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7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를 분출하여 해소할 수 있는 취미가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없으면 세상 사는 재미가 느껴지지 않아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여러가지 불만이 생길 겁니다. 그래서 안 좋은 방향으로 화를 표출하는 일이 생겨요.

겨울호랑이 2017-06-17 08:41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그래서 ‘놀이하는 인간‘ 이 되어야할 것 같네요. cyrus님께서 요즘 작성하고 계신 ‘셜록 홈즈‘ 페이퍼도 진중한 놀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