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역사적 분기점의 순간마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해 온 시민들이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시국선언문‘이라는 텍스트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이제 시국 선언문을 다시 소환하여 포스터로 시각화 했다


우리는 이 순간을 목격했고, 그 자리에서 함께 했으며, 앞으로도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으며,
결코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수 없다.

어느 나라에서 법을 공부했길래 검사생활을 오래했다는 사람이 그런 무식한 발언을 감히 할 수 있는지

우리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무참히 짓밟히는 광경을 목도하였다.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

이를 모두 직시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르다.

감추려 했던 것은 드러나 버렸다!

역사란 그렇게 발전해 왔다. 잊으라 하는 사람들의 ˝가만히 있으라˝는 요구 앞에서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행동했다.


1960년 4·19부터 2025년까지 발표된 시국선언문에서 한 문장씩을 발췌한 포스터들은 그 자체가 시대정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깨끗이 존경하는 거예요. 저는 연민으로 잘
못 움직여요. 저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존경심이고 감탄이에요. 그들은 슬프기는 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저보다 훨씬 괜찮고 위대한 사람들이에요

영화 <벌새>에서 “함부로 동정하면 안 돼.
알 수 없으니까”라는 대사가 있다. 이는 동정이나 연민이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엔 나를 위한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이야기 한다

정혜윤 PD도 또한 누구도 동정하지 않고 함부로 연민을 가지지 않는다. 그는 슬픔의 힘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을 깨끗이 존경하며 그 힘으로 움직인다

정혜윤 PD는 세월호, 대구 지하철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수 많은 유가족 분들을 만나며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과 책을 써낸 인물이다. 그는 시선의 이동과 연대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자신의 시선이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향해 있는 것을 정혜윤 PD는 견디지 못한다. 그는 시선의 이동을 통해 연대를 이루어 낸다

‘깨끗한 존경’ 에서 정혜윤 PD는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포함해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들을 전달했다. 정혜윤 PD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 화성 씨랜드 화재 참사 유가족,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 이분들이 절대로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말이 있다고 한다

“너도 한번 당해 봐” 다
자신들이 겪은 그 상실감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알기 때문이란다

나는 이 대목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지옥 같은 그리움을 꽃처럼 들고 살아가는 유족들의 이야기가 지금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상실 이후에도 무엇이 가능한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결국 서로를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야제 2025-03-17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민이나 동정은 감정적으로만 충족되는 것이지만, 존경이나 지지는 나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 정말 공감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오랜만이네요ㅎㅎ
좋은 글 읽을 수 있어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 2025-03-18 16:29   좋아요 0 | URL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입장의 동일함 이란것이 있을 수있을까? 함께 비를 맞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슬픔과 고통앞에서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누군가의 손을 놓지않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합니다
 

소설가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평생 역사학을 공부한 처지에서 답하자면, 과거는 자기를 잊지 않고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현재만 도와준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격언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마자, 국회 앞으로 달려간 시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맨몸으로 장갑 군용차와 총 든 군인들을 막아서서 민주주의를 지켰다. 모두 군사 쿠테타와 군부 독재로 얼룩진 역사를 잊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 앞에서 머뭇거린 군인들도 5월 광주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를 불러내 현재를 돕게 만들었다. 역사는, 자기에게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만 가르침을 베푼다.

우리 뒤에 바위처럼 단단한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우리의 권리는 결코 침해받지 않을 것이다.

2025년 2월 14일

전우용



민주주의는 언덕길을 자전거로 타고 올라가듯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 하며, 자칫하면 뒤로 후퇴할 수 있기 때문에 지켜내기가 쉽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윤석열 같은 자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었는가?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는 왜 이토록 불안정한가? 이러한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몽령이 뭔 말이며, 호수에 비친 달빛은 뭔 비유법인가. 어디서 이런 게 튀어 나왔을까


왜 매번 법은 윤석열만을 비껴가는 것인가
왜 죄지은 윤석열은 떳떳하게 얼굴을 들고 인사하는데 시민들은 안녕하냐는 말조차 쉽게 꺼낼 수 없는 고통의 시간으로 몰고 가는가


나는 이 모든 것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로
이 책을 구입한다

나는 열심히 윤석열을 기억할 것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25-03-04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는 잊지 않기 위해 구매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잊지 않기 위해 분서하기도 하겠네요. 전 후자입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저런 책이 나오다니 나무한테 미안해집니다.

나와같다면 2025-03-04 22:47   좋아요 2 | URL
저도 어처구니 없고, 분서하고 싶고, 나무에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보다는 불편한 섶에 몸을 눕히고 쓸개를 맛보듯이 이 모든것을 각인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큰 것 같습니다

갱지 2025-03-05 14: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항마력이 모두 소진이 되어버리면 스트레스로 피가 마르실 수가 있으니, 건강 생각하셔서 적당한 선까지만 하셨으면...
어쨌거나 知彼知己 태도는 매우 훌륭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와같다면 2025-03-05 16:08   좋아요 3 | URL
세월호의 재판 기록을 다 읽어냈습니다. 저는 과정이 고통스러워도 진실에 다가가서 직시하는 방법을 선택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항마력이 소진되는지 스트레스로 피가 마르는 느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갱지님.

고양이라디오 2025-03-11 18:52   좋아요 1 | URL
갱지님 말씀대로 건강은 꼭 지키세요!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요ㅠ

고양이라디오 2025-03-11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와같다면님 정말 대단하세요. 어쩌면 가장 읽기 힘들고 읽기 싫은 책을 텐데 진짜 ‘와신상담‘ 이네요...

멋지고 존경스럽습니다.

나와같다면 2025-03-12 18:58   좋아요 1 | URL
쓴 쓸개를 핥는 시간이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2008년, 열두 살 아이의 조현병을 느닷없이 맞닥뜨린다. 어느 날 집에 도착하니 아이가 커튼과 블라인드를 모조리 내린 채 어둠 속에서 떨고 있었다. 나쁜 사람들이 아파트 상가에 모여 자신을 위협하고 있으며, 엄마 아빠를 해칠 거라고 울며 말했다

이비인후과, 정신분석 전문가, 최면술사, 한의사를 차례로 만난 끝에 방문한 소아정신과에서 ‘소아조현병’ 이란 병명을 처음 들었다. 의사는 “조현병은 100명 중 한 명꼴로 흔한 병이지만, 소아조현병은 1만 명에 한 명꼴” 이라고 했다. 부정하고 절망할 시간도 없었다. “아이가 시시각각 무너지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자신을 보며 말했다. “우리 엄마 내놔! 우리 엄마 어딨어!” 축구도 공부도 잘했던, 총명하고 다정한 아이.
그 소년이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아이는 나쁜 사람들이 아파트 상가 앞에 모여 있다고 했다. 자신을 위협한다고, 자꾸 나오라 한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엄마 아빠를 해칠 거라고 했다. 뛰어나갔다. 상가에 가보았다.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돌았다. 어디에도 아이를, 우리 가족을 위협할 만한 나쁜 사람은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우리에게 닥친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인가? 정신 차려야 한다,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 18쪽


아이의 소아정신병동 생활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입퇴원을 12회 반복하며 계속되었다. 나무에게 맞는 치료제를 찾는 데 꼬박 3년 6개월이 걸렸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매일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학교까지 통학했다. 의료진과 의논한 결과 병원에서 학교로 통학하기로 했다. 의료진은 알고 있었다, 이 병이 오래갈 것을. 그리고 특히 소아 환자에게는 학교 졸업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무는 병실에서 교복을 갈아입고 1시간 30분을 달려가 1시간 수업을 받고, 조퇴해 다시 병원에 돌아왔다. 그렇게 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 31~32쪽


나는 이 청년의 불안을 알지 못한다. 세상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 그것을 짐작조차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 말해야 한다. 이런 증상으로 힘든 사람도 있다고, 이 불안에 사로잡히는 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겉보기에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이런 증상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때가 있다고. (중략) 이 불안 안에서도 이 사람은 생을 꾸리고 자신을 돌보면서 살아간다
- 51쪽



나무는 자신을 사랑했고, 아프기 전의 자기 모습을 기억했다. 자존감이 그 어떤 치료제보다 가장 효과적이었는지 모른다

우리 관계는 병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세상이 소멸될것 같은 공포감에 떨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아이의 불안과 두려움이 얼마나 절망적인 것인지 알아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