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밤‘을 겪고 <자유론>을 읽는데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 같았다

우리 인간 사회에는 왜 합리적 의견과 행동이 전반적으로 우세한가? 그것은 인간 정신의 한 특성, 잘못을 고칠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 자유론 51쪽

변변치 않은 우리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 능력이다. 시민들은 계엄의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무장 군인들을 맨몸으로 막았다. 시민들만이 아니었다. 어떤 지휘관은 자신의 부대에 한강을 건너지 말라고 했다. 어떤 경찰 간부는 계엄사의 정치인 체포조 파견 요청을 거절했다. 그랬기에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회의 담을 넘어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일부 여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신속하게 의결할 수 있었다

계엄의 밤 이후도 그랬다. 수십만 시민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고 집결한 가운데 국회는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시민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헌법재판소 근처에서 집회를 열어 대통령 파면을 요구했다. 그 ‘덕분에‘ 헌법재판관들은 완벽한 전원일치 평결로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었다

밀은 1859년 그 옛날에 쓴 책에서 그런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어리석은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후 화나고 어이없는 일들을 견디고 이겨낸 이들에게, 계엄의 밤 국회에서 계엄군을 막아섰던 시민들에게, 남태령의 기적을 만든 젊은이들에게, 눈보라를 맞으며 헌법재판소 앞에서 밤을 지새웠던 남녀노소에게, 무한히 큰 감사의 마음을 얹어 그 말을 전하고 싶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오늘 우리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들은 인간의 모든 자랑스러운 것의 근원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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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자료를 읽지 않아도 된다. 검색창에 ‘학살‘이란 단어를 넣지 않아도 된다. 구덩이 안쪽을 느끼려고 책상 아래 모로 누워 있지 않아도 된다. 매일 지나치는 도로변 동산의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떨어지고 녹음 아래 그늘이 유난히 캄깜할 때, 거기 시체들이 썩어가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울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눈물로 세수하지 않아도 된다.

바람 부는 자정에 천변 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

산 사람들보다 죽은 사람들을 더 가깝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이 소설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써 내려갔는지 알아졌다. 그렇게 힘들면서도 그 시대의 죽은 자들을 위해 기어코 완성하였다.
이로써, 80년 5.18 광주의 역사는 인류가 망하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도, 빼앗길 수도, 왜곡할 수도 없는 절대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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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나는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것을
봐 버렸다. 이젠 확실히 알아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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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저는 정치를 왜 하는가를 가끔씩 생각합니다.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제가 탈출해버렸던 그 웅덩이 속에서 지금도 여전히 좌절받고 고통받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국민이 하는 것입니다. 국민의 충직한 도구로서 국민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머슴으로서 국민의 주권 의지가 일상적으로 관철되는 진정한 민주국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우리는 이재명을 대통령이라는 도구로 쓰고자 한다. 지금은 이재명이 절실하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분노하며 주문합니다

추천인 조희대 대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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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대학 4학년 때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찾았다. 광주에 도착하였지만 망월동 묘지 가는 길을 물을 수가 없었다. 망월동 묘지
가는 길을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광주 시민에게 상처가 될까 봐서. 마침 대학 동기를 만나서 길을 안내받고 묘지를 찾았다. 처연하였다. 2년 뒤 망월동 묘지를 다시 찾았지만 여전히 처연하였다”

2018년 9월 13일 문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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