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떠올리기 싫은 기사를 보았다. 공군 훈련기 비행 중에 군용기 2대가 충돌하여 조종사 모두 사망한 것을 말이다. 공군 제3훈련비행단은 사천공항 즉 사천시 사천읍에 위한 군용항공기지이다. 사천공항은 그저 빌려쓰는 존재이지 본래 군용항공기지 즉 공군의 영역이다. 여기서 공군조종사들은 모두 훈련을 받고, 전투기 조종사들은 다시 17전투비행단으로 간다. 조종사의 요람이 바로 여기다. 사천비행단, 여기는 조종특기 즉 공군에서 장교 중에 전투특기인 그들이 모인 곳이다. 물론 하사 내지 병사들은 사이트에서 방공포대가 전투특기라고 해도 본래 전투특기는 조종사이다.

그들은 조종특기가 바로 군대에서 핵심전력이고, 공군 현역과 예비역의 자존심이다. 바로 그들이 세상을 떠났다. 아마 학생 조종사면 소위 또는 중위일 것이다. 소위 중에 조종특기가 학생비행학교에 입교하여 비로소 조종사의 임무를 맡을 수 있는 빨간마후라는 받는다. 그때는 중위, 소위 임관후 1년 후이다. 비행학교는 1년 동안 장교를 교육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중위 임관후 전투기, 수송기, 헬리콥터 등 다양한 항공기를 만나게 된다. 내가 군에 있을 때 시설대대에 있었고, 시설대대 내 각종 업무가 있었다. 나는 시설사업업무를 맡았고, 주로 공사와 설계용역에 관한 관리를 했다. 이중에 중요한 업무가 활주로에 대한 장기계획이다. 활주로 보수와 공사 시 설계하고 관련 관계기관 협의이다. 한국공항공사와 항공청 그리고 행정기관 등등이다.

설대대 내 여러 임무부대 중 소방중대가 있다. 소방에서 하는 일은 불나면 진화하고 소방설비를 점검하지만 제일 중요업무는 항공기 사고 시 구조업무다. 김해공항에 착륙하려던 중국민간항공기가 신어산에 걸려 추락하여 전원 사망했다. 시체는 나무 가지와 바닥 그리고 여기저기 파편처럼 흩어져 신어산은 피냄새로 가득했다. 이때 사고 났때 내 고참은 소방구조대원으로 출동하여 사태를 수습했다.

항공기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부터 듣고, 공군 조종사의 죽음도 많이 들었다. 코피트에 앉아 낙하산 펼치면 사는데, 민가가 있어 일부로 산지나 인적 드문 곳에 충돌하여 죽거나, 또는 야간 수면 위에 비치는 반사영상에 착각하여 수면으로 충돌해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계기비행을 해도 장비수준이나 시각의 착각을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 후에 남은 건 조종화에 남은 인간의 신체뿐 나머지는 산화되었다고 한다.

오늘 사천비행단 조종학생의 죽음은 나에게 과거를 불러 왔다. 그들의 죽음은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국가의 손실이다. 학생조종사 대부분은 공군사관학교 생도출신이고, 그들이 4년동안 사관학교 학생으로 들어가는 국가적 손실, 조종학생을 가르치는 교관들은 영관급 장교이니 더욱 피해는 막심하다. 그런 그들의 죽음을 국각적 손실로 생각해야 하는 내 자신이 왠지 불쌍하다. 개인의 죽음을 국가적 차원을 봐야 하는 입장이 그런 것이다.

한국전쟁은 육군을 중심으로 편제된 근대적 전투라면 이제는 첨단무기가 좌우하는 새로운 전쟁체계로 돌입했다. 그들은 바로 그 새로운 시대에 편입되는 무장이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하늘을 방어하기 위해 존재하던 그들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4년 동안 공군에서 복무하던 이로서는 한탄스러울 뿐이다. 그들을 하늘로 보내기 위해 활주로를 개선하고, 비행시설 및 지원시설을 개선하던 업무를 맡은 자로서 아쉬울 뿐이다.

내가 공군 복무시절 조종사 1인 만드는데 50억이라 들었다. 그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 인건비, 식비 등 각종 경비가 그렇다고 들었다. 50억이라면 일반 직장인이 평생 벌기도 어려운 금액이다. 조종사 1인은 국민 1인과 비교되는 게 아니라 국민 수십 수백명을 넘는 존재이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안전한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슬픈 것이다.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조종사가 되기 전에 그들은 떠났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났다. 조종교관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젊은 2명의 청춘을 아무런 꿈을 펼치지도 못한 채 떠났다.

그들의 죽음은 허무한 게 아니다. 나비가 되기 전에 번데기로 사라져도 그래도 그들은 공군의 조종사로 특기를 부여받았다. 붉고 붉은 빨깐 마후라를 받지 못했을 뿐이지 그들도 우리의 공군조종사이다. 그들의 죽음은 언젠가 나와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게 정말 슬픈 것이다. 그들이 이루고자 한 그 마음을 잊게 될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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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군에 복무하던 시기, 나는 시설 즉 육군으로 따지면 공병대대에 있었다. 문제는 일반적인 삽질만 하고, 굴삭기만 몰고 가는 그런 단순 업무가 아니라 기지의 중장기적인 개발계획 수립과 더불어 기지 전반에 대한 관리를 하던 부서였다. 나는 이래 생각한다. 아마 군부대가 가장 먼저 생기면 어느 부대가 생기는 것인가? 나는 시설 또는 공병대대라고 생각한다. 공군에서 제일 1순위는 군용기와 조종사이지만, 그들은 결국 항공기를 이륙하기 위해서는 활주로 즉 Runway가 필요하고 그것을 컨트럴할 수 있는 관제타워가 필요하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처음부터 존재하는가? 아니다. 결국 시설사업으로 통해 이루어진다. 시설 또는 공병대대 소속인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어느 그 누구라도 시설이 없이 아무 것도 못한다. 특전사나 UDT도 처음에 맨땅에서 훈련하는 게 아니다. 군사학교와 군용시설 그 후에 자연적 조건에서 훈련한다. 심지어 총기를 다루는 사격장을 만드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

내가 군대를 제대할 때는 2008년 3월 31일이다. 참여정권에서 MB로 전환될 때 나는 충격적인 전화를 받는다. 서울공항에서 활주로를 공사하는데, 이게 법적으로 관련하여 어느 절차에 해당이 되는지이다. 활주로를 변경하는 게 충격인 이유는 활주로를 공사하는데 비용이 최소 수백억이 이상인점, 기간도 최소 3~4년 이상인 점이다. 활주로를 공사하기 위해서는 주변 건축물도 고민해야 하는데, 국방군사시설 관련 법규 및 항공관련 법규에서 고도제한이 걸리면 모든 건축물이 국방부장관(예바비행단장), 국토교통부장관(지바항공청장)과 협의를 통해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군용항공기지 주변으로 활주로 길이에 따라 고도제한이 달라지고, 건축물 건축 제한도 바뀐다. 문제는 이게 대통령령이나 총리령, 장관령이 아닌 국회에 의해 정해진 법률에 의해 정해진다. 결국 고도제한은 행정부에서 손을 댈수 없는 국민의 의지인 존재이다. 이걸 뛰어넘지 못해 활주로 각도를 변경하던 게 성남공항이다. 모든 게 롯데월드 고층빌딩인 이유이다. 보수라는 존재들이 이런 식으로 진행한 것을 보고 나는 충격을 먹었다. MB는 지면 위에서 삽질을 했다면 이제는 그런 식으로 국방행정을 해서는 안된다.

시설업무를 보던 나에게 단순히 공사나 설계는 건축, 토목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설행정을 하는 건 통신과 전기 더 나아가서는 주변 관공서와 민간공항, 항공청하고 업무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청와대 이전에서 국방부 청사로 간다는 말에 놀랐다. 내가 군복무 시절 국방부 청사에 갈일이 있었다. 환경공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군공항 소음문제에 대해 토론회가 있을 때 내가 대표로 갔다. 가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하사로 전역했는데 모든 참가자들이 예하기지의 장교만 모였다. 소령과 중령이 대부분이고, 대위도 있지만, 부사관은 거의 없었다. 환경공학 지식이 없지만, 작전부서와 관련한 그런 부류가 왔다. 와도 별로 소득이 없다. 어차피 군기지는 이동할 수 없고, 헬기나 비행기의 소음은 정해지고, 나머지는 얼마나 보상을 하고, 주변 시설을 보강할 수 있는가에 따라 민원을 정리할 수 있다.

아무튼 군부대 내 공사를 하여 시설물을 축조하면 어김없이 들어가는 게 토목과 건축이 아니다. 전기공사하면서 통신공사를 같이 이루어진다. 통신대대에서 기지 내 공사하면서 직접 오는 관리자는 없다, 왜냐하면 전기공사하는 시기에 통신이 이루이지고 전기전문기술자 군무원이 같이 감독한다. 통신대대는 전기전문군무원에게 공사에 대한 요구사항을 전달할 뿐이다.

어차피 통신체계가 전기가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전기관련 군무원이 통신공사에 대한 설계와 관리감독을 맡는 게 현실이다. 지금 국방부를 비워 청와대 행정시설을 옮기는 순간 문제는 많다. 하지만 군사시설을 담당한 입장에서 1번째 통신선로이다. 군부대의 통신선로가 국방부에 있어도 청와대는 그 이상의 회선이 존재한다. 그 공사를 어떻게 하고, 군부대 모든 통신선로를 청와대에서 관리할 수 없다.

2번째 국방부 인력의 이동이다. 이미 많은 지적이 나온 사항이나 국방부는 예하 부대로 이동한다면 거기에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군부대 특성상 예비 인프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군부대는 그 인프라에 맞추어 인력을 관리한다. 관사부터 시작하여 숙소, 식당 이 모든 게 문제이다. 당장 서울에 예하부대로 가도 그들을 맞이할 사무실과 숙소는 없고, 거기에 가면 기존인력은 다른 곳에 가도 그 곳조차도 받아줄 형편이 못된다.

3번째 군부대 특성상 국방부는 대부분 병사보다 장교와 고위 군무원이 많이 복무한다. 특히 영관급과 장관급 장교들은 일반 주택(공동, 단독 등)에 거취하는 게 아니라 군관사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한다. 그러면 관사 내 주민들은 어디로 가는 것이다. 국방부에 1,000명이 근무하면 정문 헌병과 관리하는 병사를 제외하면 대략 800명이 장교, 부사관, 군무원이고 이중 미혼자를 제외하면 500명 이상이 기혼자 또는 타 지역(전속을 고려, 고향을 고려)일 것이다.

그들이 관사를 비워야 하면 2달 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서울의 집값은 미쳤고, 특히 장교가 대부분인 국방부 및 합참본부는 전속기간을 고려하여 장기 전세를 구하기 어렵다. 예하부대를 가더라도 그곳에 복무하는 장교 및 부사관의 가족이 그들을 위해 집일 비울 수 없다. 괜히 이전비용이 수천억을 지난 조단위로 가는 것이 아니다. 서울경기권 집값은 엄청 비싸고, 전세와 월세도 비싼데,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또한 대통령의 중요업무는 외교문제이다. 대통령이 내정에 직접 손대는 것은 극히 일부이다. 일일이 다 다룰 수 없이 큰 정책만 다루고 나머지는 총리를 필두로 장관에게 위임한다. 이미 시스템을 갖추고 장관이 없어도 공무원 조직은 행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정책적 방향이 전환되도 업무적 방향이 전환되는 게 아니다. 서울공항이 존재하는 이유는 대통령의 외교와 관련하여 해외순방을 위한 기지이다.

대통령이 만일 내정 중심이라면 용산역 인근이라면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고도제한과 방위체계는 심각한 문제이다. 핵발전소와 군사중요 지휘부(삼군본부, 계룡대)는 보안과 관련하여 핵심시설이다. 그런 곳을 단순히 자신의 의지로 하겠다는 논리는 국방군사의 문제이고, 이것은 대한민국 안보와 연결된다. 나는 군복무 시기 3급 비밀까지 관여하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기지 내의 문제이고, 그 부분은 영원히 공개적으로 다룰 수 없다.

위에서 장교들은 2급 비밀을 다루고 장관급 이상 장교는 1급 비밀을 다루고 있었다. 2급은 현저하게 위험한 문제를 다루고, 1급은 치명적인 문제를 다룬다. 군사보안 관련 혹은 국가보안 관련하여 1급 보안에서 대통령을 1급 보안 취급인자이다. 2급과 3급과 다르다. 국방부는 1급 보안을 다루는 곳이고, 그곳을 이전할 경우 1급 보안에 대한 정보유지, 혹은 적의 타격(있을 수 없다. 미군이 있는데), 혹은 사이버테러 또는 첩보에 취약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지방에 사는 입장에서 서울시민이 아니니 용산구청과 종로구청 주민 입장은 내 알 바가 아니다. 내가 서울에 가서 그곳에 갈 일이 평생 몇 번이나 있을까?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자면 참으로 우려스럽다. 나보다 훨씬 군사에 대한 지식이 많은 전문가는 많다. 하지만 그들은 예하부대에서 밑 바닥을 보지 못했다. 어떻게 밑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말이다.

청와대를 옮겨도 기존 청와대 내 보안시설을 누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모두 이전해도 기존 선로는 남아있고, 그것을 우리 말고 다른 간섭자들이 어떻게 이용할지 모른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대통령이 도청에 분노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화의 배경으로 만든 영화에서 도청하던 자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우국이니 어느 정도 풀어갈 수 있지만, 북한과 러시아, 중국과 일본 등 수많은 장해물이 넘치는 현실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중국은 우리 역사를 조작하려고 한다.

일본은 이미 임진왜란을 두고 자신들이 침략전쟁이 아닌 일본이란 나라가 그동안 전쟁을 많이 했는데 전국시대 그 많고 많은 제후국가 중 하나가 조선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역사를 가르친다(나ㅁㅁ씨가 외교부 장관이 되면 곤란한 이유 중 하나). 우리나라가 일본의 역사에서 내전국가 중 하나라면 그들의 시선에서 우리는 그저 원래 하나의 제후국인데 거기에 있을뿐이고, 중국은 속국이 버릇이 없으니 우리가 점령하여 우리 뜻대로 하자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런 지정학적인 전략적 위치에서 국방부를 건드는 것은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안보의 위협은 장기간이 아니라 순식간이다. 전쟁의 역사에서 전략의 오점에서 모든 것을 좌우한다. 예전에 그렇게 만든 놈들은 전장에서 모두 죽거나 도망치지만, 지금은 그게 참 어렵다. 그들은 벙커 안에서 숨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지만, 국민 대부분은 벙커에 갈 수 없고 아파트에서 그저 공포에 떨어야 한다. 패트리어트와 사드가 국축되도 그것은 첨단정보 무기에 대한 대응이지, 일반적으로 장거리로 발상되는 곡사포는 막을 방도는 없다.

물론 바보는 아닌 이상 침공은 없지만, 러시아가 우크라니아를 침공할 때를 보자. 푸틴이 바보라서 침공했는가? 전혀 아니다. 전쟁은 단순히 기분으로 생기는 일이 아니다. 철저한 손해득실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의 생명은 손해득실에 포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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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2-03-20 00: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이 글은 정말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글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왜 국방부를 해체하면서까지 용산으로 옮겨야 하지 ???

나와같다면 2022-03-20 07: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윤당선인 집무실 이전 기자회견이 있어서인지 새벽에 눈이 번쩍 떠지네요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이러는걸 보니 앞으로 놀라움의 연속이 될꺼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 군에서는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에 대해서 문제점을 말하는 사람이 없을까요

만화애니비평 2022-03-20 14:08   좋아요 1 | URL
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니 모든 지휘권한이 당선자에게 배정되어 아무 말 못할 수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2-03-20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가 그러더군요. 용산 이전 시 발생하는 건설비용은 고스란히 윤석열이 건설 이익을 보기 위한 계획이라고. 어느 국방 전문가는 총 비용을 4조라고 하더군요. 일종의 국방 판 4대강 사업입니다. 관급공사 따내면 노다지죠. 비교 평가도 불가능하고, 이 공사로 인해 1조는 해먹을 듯..

만화애니비평 2022-03-20 14:08   좋아요 1 | URL
국방부 관련 기관을 보면 영관 장관급 장교가 많이 침투해있습니다. 특히 군인공제회, 저런 공사를 맡으면 누가 잡을까요? 의심이 갈 수 있겠지요
 



웹툰 <와이키키 뱀파이어>를 처음 제목을 봤을 때 문득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물론 영화와 웹툰은 서로 다른 내용이고, 추구하는 방향도 다르다. 하지만 와이키키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나에게 와이키키가 무엇인지 정확한 의미를 알게 해 준 것이 <와이키키 뱀파이어>이다. 와이키키는 미국 화와이를 가리키는 말이고, 하와이는 아름다운 섬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양지다. 미국 땅에 내가 가 본 곳은 군부대 내 미군이 주둔하던 곳을 지나간 것 밖에 없던 나에게 하와이는 머나먼 영토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를 위안은 있었다. 형님과 형수님이 결혼하고 허니문 여행지가 바로 하와이였다. 영화 <친구>에서 하와이로 가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막상 하와이 가는 길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웹툰에서 왜 와이키키를 두고 그 뒤에 명사를 붙인 것일까? 주인공은 김샛별과 최행복이다. 하지만 웹툰을 보면 진정한 주인공은 최행복이고, 김샛별은 최행복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서 큰 동기부여를 전달해준 인물이다.

 

그러나 <와이키키 뱀파이어>란 제목처럼, 하와이에 있는 흡혈귀이니, 제목적 의미로는 김샛별이 주인공처럼 보인다. 작품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흡혈귀 소년 김샛별은 어디에도 제대로 머물지 못한 사회적 외지인이고, 최행복은 주어진 환경에 좌절하고 자신을 책망하던 우울증 걸린 여성이다. 특히 공황장애라는 무서운 정신병에 시달렸고, 손목에 칼로 긋은 흔적이 보일 정도로 삶에 의미를 잃었다.

 

이 작품에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질문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많은 것들이 있다. 작품에서 김샛별과 최행복의 형편을 보듯이 돈이 필요하다. 따듯한 집에서 굶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생활 여건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표의식이 필요하다. 단순히 먹고 자는 것만으로 인간은 즐겁다고 생각할 수 없다. 물론 당장 생명의 위기가 닥친다면 오늘 하루밤도 먹고 자는 것조차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오늘 밤이 금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그 며칠이고 몇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육장에 갇힌 가축처럼 늘 비참한 삶이 될 것이다. <와이키키 뱀파이어>는 바로 그런 고통의 순간에 내몰린 김샛별과 최행복이 서로를 믿고, 주변에 있는 이웃의 도움으로 세상 앞에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모든 내러티브에서 갈등은 존재하고 그 갈등의 해결은 곧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이는 역경은 큰 고통이다.

 

TV에서 나온다. 연예인 누군가가 공황장애로 연예활동도 접고, 정신적 고통으로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과 친구조차 대하는 게 어려운 일도 많다. 그것을 극복하는 계기는 무엇인가? <와이키키 뱀파이어>에서 그 치료방법은 스스로에게 그 고통의 근원에 다가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한다. 상당히 정신분석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는데, 자기를 억눌린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통을 제공하는 시작점과 마주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행복에게 2가지를 정해 놓았다. 1가지는 가족이고, 다른 1가지는 선생이란 직원이다. 가족은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가지게 되는 존재이고,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존재이다. 선생이란 직업은 자신의 선택이 필요하고, 그 선택에 따라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선천적 고통과 후천적 고통이 이렇게 최행복에게 닥친 것이다. 선생이 되고 싶은 최행복은 자신이 존경하던 분이 선생이었고, 그분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현실이란 자신의 의지와 상황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운도 따르고, 심리적 상황도 따른다. 전반적으로 최행복에게 가족이란 큰 마음의 짐이 있었고, 시험 때마다 꼭 안 좋은 일들이 터졌다. 그런 최행복에게 불행을 안겨준 것은 가족이란 굴레이다. 가족은 혈연적으로 DNA를 후손에게 남겼지만, 가족의 기능과 역할에서 최근에 들어 생물학적으로 유지하기 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즉 가족관계에서 자녀에 대한 사랑은 부모와 자식 간의 순수한 마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이해득실로 가족관계를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성공은 무엇일까? 출세는 분명히 인간에게 성공하게 만드는 큰 발판 중에 하나이다. 자신이 출세해서 자식들도 출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자식이 성공하는데 있어 출세하는 일은 분명 좋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같을 수 없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최행복의 아버지는 대기업의 임원(부사장)이고, 어머니는 변호사였다. 사회적으로 큰 명성과 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만으로 최행복에게 상처를 주었다. 동생 최슬기는 똑똑하고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한다.

 

모든 게 기계처럼 완벽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로부터 해야 하는 것만 잘 하여도, 자신이 어떻게 해야 갈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즐거운 일이 모르고, 단지 누군가의 기대감을 맞추어 살아가는 몸집만 큰 어린아이였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가장 요구하고 원하는 인물은 최슬기이다. 자신의 개성이나 의견은 필요 없고, 사회적으로 원한 도구로써 완벽한 인간이다. 남매는 그렇게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최행복의 삶은 여기서부터 불행의 시작이다. 이름은 행복인데 삶은 불행이다. 이름과 삶의 대비되는 지점에서 작품은 최행복이 불행하여 자신의 이름처럼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김샛별은 밤하늘의 처음을 말한다. 밤이 오는 것은 외로움이지만, 샛별이 왔다가 밤이 온 것이 아니다. 샛별은 낮과 밤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양지를 꿈꾸는 인간이나 흡혈귀라는 속성 때문에 낮에 움직이지 못한 채 밤에만 살아간다.

 

그것도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아 배신당했다고 여긴다. 그래서 늘 그는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할 수 있다며, 절망한다. 절망에 빠진 김샛별과 최행복이 만나 서로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자신도 희망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물론 그 길을 쉽지는 않다. 주변의 반대와 음모가 늘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가는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기 힘들다. 자신이 원해도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사람들이 가진 편견은 더욱 그렇다. 가진 것이 없기에 몸부림치는 김샛별이나, 모르는 사람에게 보자면 학교도 안나오고 불량한 애처럼 보일 뿐이다. 막상 그를 대하면 착하고 순수한 영혼이나, 그곳까지 도달하기가 너무 힘든 점이다. <와이키키 뱀파이어>는 그런 사람들이 서로 모여 다독여주는 작품이다. 김샛별과 최행복만이 아니다. 국밥집하는 할머니는 자식들이 자신을 부모로 보기보단 돈줄로 보는 점, 윤성(김샛별을 도와주는 동네형)은 학창시절 부모님이 여의고 자퇴할 때 아무도 자신을 제대로 봐주지 않은 점, 치킨집 여사장님은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일 등 많은 상처들이 이 작품에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김샛별이 윤성과 대화에서 사람을 대할 때 아무 것도 모른 것까지 그렇지만 마치 낙관론을 말하면서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라는 부분이다. 아주 흔하고 많이 보는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최악의 상황에서 어려울 때 그 고충을 말하면 도와주지 못할망정, 상대방의 자존심을 뭉개거나, 아니면 꼰대처럼 말도 안 되는 충고를 해준다. 오히려 많이 힘들었겠구나하는 작은 위로를 해 주었다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힘들 때 받고 싶은 도움도 있지만, 더욱 절실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하는 작은 용기와 위로이다. 그 후로 작고 작은 도움이 모이고 모여 어려운 상황에서 비로소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 과정은 우리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마음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자만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하여 상처를 주게 된다. <와이키키 뱀파이어>에서 김샛별은 최행복에게 공부를 받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최행복은 김샛별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자신의 원하던 존재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선생이란 이름은 단순히 학교 안에서 학생만 가르치는 일만이 아니었다. 선생은 다른 누군가를 그 어떤 곳에서도 가르치고 다독거리는 것 역시 가능한 일이었다. 최행복이 원한 선생은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가능했고, 자신이 선생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선생이란 직업이 아니라 선생이란 역할을 통해 누군가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한 것이다.

 

<와이키키 뱀파이어>를 보면서 이제 아버지란 이름을 가진 게 2년도 안 되는 나에게 늘 내가 생각하는 내 아이다. 자식이 크면 어떤 어른이 되면 좋을지, 그럴 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말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최행복에게 지옥이 되었다는 점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감을 가져야 할 부분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최행복의 부모는 딸보고 행복하게 살아라고 하면서 이름을 지어 줬지만, 가족관계는 불행으로 이어진다.

 

행복의 기준을 자녀가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맞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작품 후반부에 가면 최행복은 아버지에게 가족관계를 단절하는 증명서를 3번이나 보낸다. 그 덕분에 자신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고, 무사히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는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상처가 가족이었고, 그 가족을 마주 보고 끊어낼 때 비로소 우울의 바다로 침수되지 않고, 바다 위의 파도에 몸을 맡기게 된다. 어린 시절 최행복은 하와이에서 길을 잃을 때 일몰의 바다를 본다. 하지만 바다를 보는 게 아니라 이제 큰 바다 위를 누비게 된 것이다.

 

작품을 보다시피 우리의 삶에서 행복을 찾는 일은 매우 쉽지만 어렵다. 우리는 무엇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지를 알지만, 그것을 넘는 것을 두려워한다. 혼자서 그 상처를 끌어안고 나가기가 너무 힘들다. 옆에서 그것을 알아주고 조금씩 같이 밀어준다면 극복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희망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은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야 하고, 같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려울 뿐이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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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부의 가장 큰 실수이면서 억울한 점은 아마 코로나일 것이다. 세계 각국을 보아도 코로나로 인한 영향은 심각하고, 전체인구 대비 확진 및 사망률을 보면 한국이 낮은 편이다. 그러나 수치가 그렇다고 하도 막상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를 것이다. 한국에서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 모두 힘들고 괴롭다고 한다. 솔직히 목숨을 걸어야 하는 특전사, CCT, UDT 등(부사관 이상만 해당)은 훈련하다 실제로 사망하는 일이 많다. 그래도 병사로 간 사람들도 무척이나 자신이 힘들었다고 한다.


남의 척도는 객관적일지라도 본인이 느낀 감정과 경험 역시 자신에게 최악인 것이다. 나 역시 군생활이 힘이 들었다. 육체적인 요소보다 정신적인 요소이다. 몇 천억짜리 국가사업을 두고 관공서에 협의다니면서 받은 압박이나, 일개 하사 주제에 공군본부에 가서 원스타에게 보고해야 할 상황도 있었다. 자대에서는 공군 감찰실장(대령)에게 독대로 보고한 적도 있다.


대위정도 되는 장교도 힘든 자리에 일개 하사가 보고해야할 일이 있던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주관과 객관이 입장과 처지에 따라 바뀐다. 이번 대선도 그런 것이다. 자영업중들에게 이번 대산은 보급로가 막힌 상황에서 정권 교체를 외쳤다. 민심은 천심이고, 천심은 민중의 소리이다. 문제는 민심이란 존재감은 바람이 오기 전에 부는 것처럼 그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떤 결과로 초래할지 알 수 없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최저임금제 제도를 손을 본다는 공약이 있지만,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뭔가 최저임금이 바뀌면 문제가 생긴다.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영업에 문제가 생겨 폐업이 늘어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영업을 연장하더라도 손님이 처음부터 가지 않으면 그 외침은 모순이다. 즉 사회적 현상에 따른 손해를 타인에게 전가하고, 그 모든 게 정부의 처사라고 보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정부만으로 보는 것도 한계점인 이유가 그래도 영업이 잘 되는 식당과 가게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경제구조에서 60~70년대를 찾는 것은 바보라고 생각든다. 그때는 1차와 2차 산업시스템이 전환되던 시기이고, 여전히 수공업에 머물다가 80년대 이르러 중공업이 발달한다.

90년대 말과 2000년에 이르러는 3차 산업이 우세한다. 4차 산업이 정보사회라고 해도 정보쪽 경제활동보다 여전히 서비스업종인 3차에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한다. 코로라로 식당과 관광업종이 타격이 큰 이유는 대부분 3차 서비스쪽에 많은 국민들이 생업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로 인한 노동자에 대한 월급에서 급여가 오를수록 자영업을 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적게 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게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이고, 그들 스스로 자충수 되게 하는 원인이다. 보급로와 퇴각로에서 보급이란 개념은 영업점을 찾아오는 손님이고, 퇴각로는 영업점이 폐업 후 생각해야 하는 지점이다.


만일 작은 식당과 가게를 운영하는 점주가 장사를 접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도 다시 누군가의 밑으로 가야 하고, 수많은 가게를 접었고, 그들은 누군가 밑에서 일을 해야 한다. 주말에 집근처에 있는 대학가 근처에 이삭토스트 가게로 갔다. 다행히도 토스트는 식당보다 테이크아웃 폼이 많으니 잘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양옆으로 가게들을 보니 반 정도가 다 문을 닫았다.

이들이 문을 닫으면 어디로 가는가? 과거 대기업과 정년이 끝이 나면 치킨가게 사장이 된다는 말이 있었다. 할 일이 없으면 치킨집이나 하자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도 옛날 말이 되었다. 아니라면 배달을 위주로 판매하는 가게로 노선을 정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배달위주 식당과 배달원, 그리고 택배운송원이 크게 늘었다.


일부 또는 처음 일을 접한 사람은 거기로 갈 확률이 높다. 하지만 식당을 다시 새로 연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모험이다. 그 모험자들이 보급로가 끊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뒤로 퇴각해야 하는데, 퇴각로는 다시 취직이다. 하지만 퇴각로마저 끊기면 어떻게 되는가? 직업이 없는 백수가 될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이렇게 아우성 치는 것은 어찌 되면 퇴각로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한국의 사회는 이미 1차와 2차 산업이 컴백할 수 없다. 식량안보라는 명제 아래 시골로 가서 농사짓는 일이 녹녹치 않다. 참 어려운 일이다. 정권을 바뀐다고 해도 코로나로 인한 문제는 여전히 난제다. 단지 그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날리고 싶었고, 그 화살들로 의해 다른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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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정말 오랜만에 글을 남긴다. 육아의 세계에서 취미생활을 고사하고, 허리디스크 증세로 계속 치료를 받고, 입원도 하고 했으니 그럴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적어보는 이유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다산 선생이 만일 21세기로 회귀하여 대통령이 되면 어떨까라는 책이 있었고, 그것이 영화드라마처럼 된다는 사실이다.



필자를 보니 윤종록 작가, 분명 나하고 같은 성씨는 분명하나, 반듯이 잡아 고친다면 그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외가라기보단 외가의 일족의 후예이다. 다산 선생의 어머니는 공재 윤두서의 손녀이고, 공재 선생은 고산 선생의 증손자이다. 고산 선생의 증조부는 귤정공 윤구이고, 윤구 선생의 동생인  행당공 윤복이란 분이 계시는데, 이분이 바로 윤종록 작가님의 직계조상일 것이다. 


윤복 선생은 안동도호부사로 있으면서 안동항교를 재건하고, 퇴게 이황 선생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게다가 아들과 사위를 문하생으로 들여 퇴계학을 전남에 뿌리게 된다. 해남윤씨 일족이 남인이 된 사유, 그리고 기축옥사에서 희생당한 뿌리는 여기다. 윤복 선생의 자제분은 임진왜란 당시 의용군으로 나서, 많은 문중 사람들이 의병으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군부를 보면 주로 이순신 장군이나 이억기 장군 수하에 많았다. 남인의 특성이 반영된 점이다. 아무튼 윤복선생이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 일원에 터를 잡고, 귤동마을의 윗산인 만덕산으로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초당의 주인은 윤복의 후손인 윤규로의 것이고, 윤규로의 아들들은 다산의 제자로 활동한다. 이책 소개에서 청년미래포럼 18인에 대한 거론인데, 이것은 다신계18제자를 따온 것이다. 다신계에 대해 논하자면 한국 최초의 차모임이고, 200년 넘게 활동한다. 


매년 다산선생 제삿날에 헌다례를 올리는데, 다산선생의 후손과 다산선생의 제자의 후손이 남양주 묘에 와서 제사를 올린다. 따님은 해남윤씨로 갔는데, 윤복선생의 사촌의 후손에게 갔다. 그리고 나도 그 사촌분의 후손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다산 선생의 외손자인 방산 선생님과 상당히 먼 가계이다. 


그래서 윤종록 작가님의 다산의 외가라고 하기엔 그렇다고 한 것이다. 나도 다산 선생의 외손자 일족이니 친척이라 엮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다산 선생이 해배되기 전 직계할아버지가 배를 타고 강진만을 건너 다산초당에 가서 학문을 같이 논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산계 찻집 주인인 전 강진군수도 우리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안다. 


잡담이기도 하나, 합수 윤한봉 선생의 일대기를 읽으면 그분이 강진에서 위대한 성인인 다산 선생이 계셨고, 그분의 사상에 엄청 흠모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518과 관련하여 합수 선생은 늘 마음의 빚을 졌고, 귀국해서는 결국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청년미래포럼 18인을 다신계에 배치한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게 그런 것이다. 


윤동환 강진군수는 학생시절 민주화운동을 할 때 수배가 걸려 도망칠 때 다산초당 안에 숨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청년미래포럼 18인 청년을 다산 선생 제자18인의 다신계에 비유하는 것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글을 자유이고, 의지이나,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산선생의 책은 일제시대에도 노론의 후예에게 박해받았다고 한다. 노론의 정신적 후예를 다신계18 제자로 배치하는 건 조금 그렇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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