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단위는 단순한 약속일 뿐이야. 시간에는 눈금이 없지. 세기가 바뀔 때 총을 쏜다거나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야.

 - 토마스 만, 『마의 산』중에서

 

 * * *

 

알라딘에서 글을 쓴 세월이 어언 20년이 넘었다. 시간에는 눈금이 없다고 하지만 지니의 요술램프가 작동하는 알라딘에서만큼은 사정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알라딘에 들어오면 내가 쓴 글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연·월···분 단위까지 정확하게 박제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알라딘에서는 내가 해마다 얼마만큼의 글을 썼는지를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정확하게 세고 있다. 세상에 이토록 정확한 글쓰기 통계자료를 알려주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




문득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때때로 알라딘이 몹시 야속하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온갖 정성을 기울여 리뷰나 페이퍼를 폭풍처럼 작성해 올려봐도 땡전 한 푼 보상이 없을 때 서운한 감정이 더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한 때는 알라딘 서재지수를 끌어올리려고 글을 더 열심히 쓰기도 했었다. 일부러 태그도 더 열심히 달고. 그넘의 알라딘 서재지수가 뭐라고.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동그란 하늘이 세상의 전부로 보이는 것처럼 알라디너라면 누구나 일단 알라딘 서재지수부터 쳐다보기 마련이다. 마치 자동차를 아끼는 사람이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누적 주행거리를 힐끔힐끔 살펴보는 것처럼.


한때는 알라딘 서재 활동이 마치 퇴근 후의 필수적인 방과 활동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가 올린 글에 대한 반응도 궁금했고, 그에 못지 않게 다른 알라디너들이 무슨 새롭고 흥미로운 글들을 올렸는지도 몹시 궁금했다. 내 글에 달린 묵직한 댓글 때문에 답글을 어떻게 달아야 좋을까를 고민한 적도 많았고, 다른 알라디너의 글에 남긴 댓글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토록 심한 감정의 기복을 겪었던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다들 너무 젋어서(!) 그랬었나 싶기도 하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다.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아주 능숙하게 처리하는 일꾼 또한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든 게 잊혀지니까. 아주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시간'을 위대하다고 말했다. 애덤 스미스는 '저 위대한 판관'이라고까지 극찬할 정도였다. 시간이 결국 누가 옳고 그른지를 밝혀주니까. 

 

그렇지만 인간은 지나간 과거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오늘날과 같은 극히 복잡다단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만 '기록'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절해고도에서 홀로 십수 년을 살았던 로빈슨 크루소도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다. 무인도에서는 조금만 방심하더라도 날짜뿐 아니라 자신의 나이조차 잊어버리기 십상이니까.


섬에 온 지 열흘 내지 열이틀이 지났을 때 책과 펜, 잉크가 없으니 날짜 계산을 못하고 심지어 평일과 안식일도 구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을 방지하려고 나이프로 커다란 나무 기둥에 대문자로 도착한 날짜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 기둥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서 내가 처음 착륙했던 해변에 세워 놓았다. 나는 거기에 <1659년 9월 30일 처음 섬에 도착하다>라고 새겼다. 그리고 이 네모난 기둥 양 옆면에 매일 칼로 금을 새겨 날짜를 기록했다. 일주일때 되는 날은 다른 날보다 좀 더 길게 금을 새겼고, 매달 초하루도 그날만큼 길게 새겼다.

 

 -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중에서

  

(다니엘 디포)


월든 호숫가에서 몇 년 동안 홀로 살았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도 날짜와 시간을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도 로빈슨을 모방했다. 로빈슨 크루소야말로 '외딴 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그에게는 온갖 훌륭한 지침을 제공해줄 '인생 선배'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씨에나, 낮이나 밤 어떤 시간에나 나는 시간의 홈을 활용하고 그 순간을 내 지팡이86에도 표시해두고 싶었다. 달리 말하면,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이 만나는 점, 요컨대 현재의 순간에 서고 싶었고, 현재라는 출발선에 발끝을 대고 서고 싶었다. (52쪽)

주석

86. 소로는 측량하기 위해 눈금이 새겨진 막대를 갖고 다녔지만, 여기에서는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를 빗댄 표현이다. 크루소는 나무 기둥에 눈금을 새겨 시간을 기록했다. 소로는 일기에서도 "로빈슨 크루소가 막대기에 매일 표식을 했듯이, 우리는 매일 우리의 품성에 눈금을 매겨야 한다"(일기 1:220)라고 썼다. 소로는 자급자족하며 독립된 삶을 살았던 크루소에게 매력을 느꼈던지 「커타딘 산」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에서 거듭 크루소에 대해 언급했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 중에서



알라딘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독서생활에 필요한 눈금들'을 너무나 정확하게 알려준다는 점을 확인할 때다.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까마득한 옛시절의 통계까지도 따박따박 알려준다. 심지어는 내가 해마다 작성한 글자수까지도 빼놓지 않고 알려준다. 그 글자를 소설책으로 환산하면 몇 권의 책이 되는지까지도. 이토록 친절한 알라딘이 아니라면 과연 어디서 이런 정직한 통계를 구할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알라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03년 무렵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쯤 전이다. 20년쯤 전에... 맨처음 내가 알라딘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때는 모든 게 두렵고 낯설었었지...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연간통계는 아쉽게도 2011년부터 제공된다. 알라딘에서 글을 쓴 지 21년차인데 통계는 최근 12년치밖에 알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어쨌든 지난 12년 동안 내가 무슨 내용으로 글을 썼던지에 상관없이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단행본으로 197.73권을 썼다는 사실이 내겐 중요하다. 21년째 글을 써왔다는 사실, 최근 12년 동안에만 소설책 200권에 가까운 글을 끄적거려왔다는 사실은 그저 누구라도 쉽게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닐 테니까. 더군다나 2019년부터는 유튜브 채널 운영 을 시작했기 때문에 예전 같은 서재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던 사정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알라딘으로부터 뚜렷하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 건 2019년 가을쯤이었다. 그 무렵에 탐독했던 책이 하필이면 사마천의 『사기』였다.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극한의 대립으로 몰아넣은 '조국 사태'가 마침 그때 터져나왔다. 나는 『사기』에 담긴 빛나는 문장들을 인용하면서까지 조국 사태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진영간의 갈등이 그토록 심한 줄도 모른 채. 그런 글들을 여럿 쓴 덕분에 상상 이상으로 거친 댓글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런 모진 댓글들을 마주하면서부터 알라딘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그런 날선 공격을 받으면서까지 소신껏 글을 쓸 이유도 없었다. 요즘의 언어로 말하자면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했다고나 할까. 나는 그 모진 댓글들을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서서히 알라딘을 벗어났고, 또다른 우연한 기회에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북튜버로 변신했다.




유튜버 생활에 몰두한 세월도 어느새 3년 반쯤 지났다. 영상을 만드는 작업이 너무 힘에 겨워 중도에 1년 정도 쉰 적도 있었다. 유튜브 채널 운영과 알라딘 서재 활동은 <책 읽기와 글쓰기>라는 공통 분모만 제외하면 실로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궁금한 분들이 계실까봐 이번 기회에 조금만 소개하면 이렇다.


<유튜브 채널 운영의 장점>


 - 알라딘 서재활동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폭넓은 구독자들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해당 작품의 번역자나 권위자들이 직접 만들거나 해설하는 영상들을 통해 직접 소통하는 기회도 많다.)

 - 독서계의 특출난 유튜버들과도 쉽게 교류할 수 있고, 그들의 독서 세계를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다.

 - 영상을 만드는 동안 <알라딘 서재 글쓰기>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깊이 있게 작가와 작품을 공부한다.

 - 영상 기획 / 대본 작성 / 영상 제작 / 마케팅 등 <책 읽기와 글 쓰기> 말고도 다양한 능력을 계발할 수 있다.

 - 영상 조회수와 유튜브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채널 성장에 가속이 붙고 채널 수익도 뒤따른다.

 - 1인 크리에이터로서 다양한 활동 기회가 생긴다. 책 광고도 맡을 수 있고, 강연 기회도 얻을 수 있다.


대략 이 정도만 언급해도 충분할 듯하다. 유튜브 플랫폼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내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가장 후회하는 건 2,3년만 빨리 유튜브에 발을 들여놨더라면 하는 점이다. 무릇 그 어떤 세계든 새로운 장이 펼쳐지면 재빨리 뛰어드는 개척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남들보다 그리 늦지 않게 그 세계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낡은 세계에 고집스럽게 머무는 사람들도 있다. 선점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일찍 자리잡은 채널일수록 손쉽게 구독자를 끌어모으던 시절도 있었다. 날이 갈수록 텍스트보다는 영상이 각광받는 시대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집집마다 TV가 대형으로 변했고 OTT 플랫폼이 급부상했지만 유튜브 플랫폼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온갖 영역에서 유튜브 채널을 만드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나이, 직업, 학력 등등을 불문하고.


유튜브는 간단히 말해서 1인이 제작하고 운영하는 TV 방송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방송국에서 영상을 만들어 송출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장비와 시간과 비용이 드는가. 그 모든 걸 1인이 혼자서 하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가. 그러나 대규모 자본이나 설비 투자가 없어도 나홀로 <방송 영상>을 만들어 순식간에 전세계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강력한 <1인 미디어 채널>을 상상할 수 있을까? 잘 만든 동영상들은 시간이 지나도 끊임없이 재생된다. 멋진 작품을 소개하는 동영상 하나가 수십 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경우도 매우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알라딘에서는 지니의 요술램프가 아무리 막강한 요술을 부려도 그런 경지를 꿈꿀 순 없지 싶다.


알라딘 서재 활동과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덧붙일 얘기는 <글쓰기의 확장>에 관한 문제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라딘 서재 글쓰기 활동 등을 바탕으로 작가로 변신했다.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유튜버들도 마찬가지다. 책을 소개하는 영상들을 자꾸만 만들다 보니 결국 책까지 쓰게 되는 경우를 참 많이 봐왔다. 나도 책을 써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모 인터넷 신문으로부터 칼럼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영상들과 알라딘 서재 활동 등이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음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알라딘에서 <이달의 당선작>에 선정된 횟수를 대충 세어보니 누적으로 85회 정도다. 오랫동안 적용되었던 적립금 2만 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70만 원을 보상 받은 셈인데, 3년 반 동안의 유튜브 채널 운영에 따른 수입보다 훨씬 적고, 칼럼 기고를 통해 받은 원고료로 따져도 두 달치에 못 미치는 소액이다. 이러니 양질의 컨텐츠를 거의 무한대로 제공하는 알라디너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열정적인 글쓰기 활동에 스스로 회의감을 품을 수밖에.


21년차 알라디너로서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알라딘이라는 매력적인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운영하는 측에서 다른 수많은 플랫폼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문제인 <컨텐츠 제공자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 체계>를 좀 더 진지하게 연구해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마냥 좋아서 일편단심으로 알라딘만을 애용하는 사람들도 결코 적지 않다. 최소한도의 보상체계만 갖춰지더라도 감지덕지 하면서 예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할 의향이 있는 독자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알라디너분들께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비록 알라딘 서재 활동으로부터 얻는 경제적인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충성스런 회원으로 넘쳐나는 알라딘 서재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여 <보다 나은 글쓰기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중요한 토대로 삼으라는 것이다.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 환경도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숱한 알라디너들이 떠나가고 새로 들어왔다. 오래 전에는 댓글이 달리면 이메일로 연락이 오던 시절도 있었다. 실로 다양한 새로운 제도들이 생겨났다가 또 없어졌다. 그러나 책 읽기와 글쓰기라는 공통분모만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 두 기둥만큼은 크게 변하지 않을 듯하다. 이곳에서 오랜 세월 풍파를 겪어온 경험에 비춰보면 결론은 결국 하나다. 열심히 좋은 책을 많이 읽고 배우면서 좋은 글을 계속 쓰라는 것이다. 그게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결국 <보다 나은 글쓰기>로 나아갈 테니. 글을 쓰기 위한 재료들을 모아 두는 창고로는 이곳만큼 아늑한 장소도 찾기 어렵다. 그러니 리뷰든 페이퍼든 서재 태그든 온갖 잡동사니들을 부지런히 모으고 쌓아 놓으라.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 날이 기필코 찾아올 테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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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6-06 23: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 달에 한 번 정도 올려주시는 페이퍼와 페이퍼 안의 동영상을 통해, oren님께서 글을 쓰기 위해 여러 면에서 많은 준비를 하시고, 그 준비를 통해 알찬 성과물을 확인하게 됩니다. 장문의 페이퍼를 영상 대본으로 바꾸더라도 5분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10~20분이 소요되는 동영상의 대본 작업과 녹음 작업 그리고 자막 처리와 관련 영상 준비가 상상 이상의 노력이 들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준비 과정이 또 다른 독서가 되겠구요. 유튜브 콘텐츠 제작이 수십 번의 재독과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알라딘에서 oren님의 고전과 관련한 묵직하고 좋은 페이퍼를 예전처럼 자주 읽을 수 없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지만, 또 다른 길을 힘들지만 만족하시면서 개척하시는 모습이 참 멋지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북튜버로서 oren님께서 보다 만족하시고 노력하신만큼 좋을 결실 맺으시길 기원합니다! ^^:)

oren 2023-06-07 00:20   좋아요 3 | URL
유튜브 영상을 만들 때마다 <알라딘 서재 글쓰기>가 너무너무 쉬웠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토록 쉬운 작업을 제쳐두고 왜 이토록 힘든 작업을 계속할까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고생고생해서 한 편의 영상을 완성하고 나면 그 성취감이라는 게 결코 적지 않답니다. 알라딘에 올리는 서재글들은 쌓이면 쌓일수록 점점 더 수면 아래로 가라앉거나 숨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유튜브 영상은 아직까지는 그런 느낌이 훨씬 덜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영상들도 자꾸만 쌓이다 보면 점점 더 좋은 자리에서는 밀려날 개연성이 있습니다만, 구글 검색이나 유튜브 검색 등을 통해 생각보다 훨씬 쉽게 동영상에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겨울호랑이 님께서 자세히 말씀해 주신 것처럼, 러닝타임이 20분을 훌쩍 넘어가는 영상 한 편을 만들자면, 오디오 작업(영상 대본 작성과 내레이션) 말고도 비디오 작업(스틸컷 이미지와 동영상 자료 편집)이 정말 장난이 아니랍니다. 복잡한 도식관계를 설명해야 할 때는 별도의 그래픽 자료도 만들어야 하고요. 그러한 작업 과정에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저절로 깊어지는 경우도 많고, 힘든 제작과정을 거칠수록 그 영상에 담긴 내용들을 거의 외우다시피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답니다. 그런 생생한 기억들이 다른 글을 쓸 때 저절로 도움이 되기도 하고, 현실세계에서 남들한테 이야기로 전달해야 할 경우에도 ‘비디오를 재생하는 것처럼‘ 펼쳐놓을 수도 있게 되더라구요.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언제 한번 유튜버에 도전해보시길 적극 추천드립니다. 언제나 힘이 되는 응원의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2024-01-26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은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저는 이번에 이 작품을 세 번째로 읽었는데도 여전히 새롭게 다가오는 대목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토록 다채로웠던가 싶었습니다. 마치 『어린 왕자』를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의미들을 끊임없이 더 발견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라는 책에서 무려 14 가지에 달하는 고전의 정의를 소개한 바 있는데, 과연 『이방인』도 여러 항목에서 칼비노의 정의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방인』을 세 번째로 읽고 난 뒤에 특히 공감했던 칼비노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전이란,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더욱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 창의적인 것들을 발견하게 해 주는 책이다.

이와 같은 칼비노의 고전에 관한 정의가 왜 『이방인』에게 잘 어울리는가에 대해서는 차차 소개하기로 하고, 먼저 이 작품이 프랑스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부터 간략하게 살펴보고 넘어가지요. 사실 프랑스 문학에서 『이방인』이 차지하는 위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듯합니다. 갈리마르 출판사가 설립된 이후 무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방인』의 프랑스어판은 지금껏(2011년 기준) 733만부가 팔렸고, 연평균 판매부수만 하더라도 19만 부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작품을 뛰어넘는 판매부수를 기록한 책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유일하며, 이웃나라 일본에서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4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전세계적으로는 지금까지 무려 101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이 과연 얼마나 팔렸을까요? 정확한 통계수치가 발표된 게 없어 안타깝지만, 그보다 훨씬 더 안타까웠던 일은 뜬금없는 '번역 오류 논란' 때문에 이 작품을 둘러싸고 한바탕 대소동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부조리 소설을 대표하는 『이방인』이 그야말로 문학작품으로서는 유례가 드문 부조리를 몸소 겪은 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을 건너뛰면 작가를 설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러면 이 작품을 구체적으로 해설하기에 앞서 작가 소개부터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가지요.

그는1913년 알제리의 몽도비(Mondovi)에서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포도 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1차 대전에 참전한 직후 전사했고, 어머니는 가정부로 일하면서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몹시 가난하게 자란 카뮈는 다행히 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좋은 스승들을 잇따라 만나고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알제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지요. 거기서 그는 평생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습니다. 카뮈는 한때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노선 갈등을 겪은 끝에 탈퇴합니다. 철학 석사학위 논문이 통과한 뒤에는 교수 자격 심사에 지원하고 싶었으나 결핵이 재발한 탓에 응시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이후 중등학교 교사로 정식 발령이 나지만 고착화된 안정적 삶에 얽매이기 싫어 스스로 포기하고 진보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합니다.

알베르 카뮈는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립니다. 같은 해엔 『이방인』과 깊은 연관을 지닌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출간하여 철학적 작가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극작가 겸 연출가 겸 연극배우로도 활동했던 그는 《오해》, 《칼리굴라》 등의 희곡을 발표했고, 1947년에는 오랜 시간 매달렸던 작품 《페스트》를 출간해 즉각적인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1957년에 카뮈는 불과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프랑스인으로서는 최연소이자 아홉 번째 수상자였습니다. 작가로서는 창창한 나이에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던 그는 노벨상을 탄 지 불과 3년도 지나지 않아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알베르 카뮈 작품에서 늘 따라다닌 평생의 화두가 죽음이었는데 정작 작가 자신이 너무나도 어이없는 죽음을 맞고 말았던 셈이었습니다. 그가 너무 일찍 노벨상을 타지만 않았어도, 거액의 상금으로 프로방스 지방의 루르마랭에 근사한 주택을 사지만 않았어도, 사고 전날 친구가 찾아와 기차 대신 자동차로 이동하자는 권유에 응하지만 않았어도, 카뮈는 어쩌면 80년대 혹은 90년대까지도 여전히 살아남아 지금보다 훨씬 더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있었을 지도 모를 인물이었습니다.

작가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부터는 이 작품이 탄생한 배경을 살펴보지요. 그는 1957년 스톡홀롬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기념 연설에서도 자세히 밝혔듯이, 20대의 젊은 나이에 이미 자신만의 원대한 작품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 가지 층위에서 작품을 구상했는데, 첫 번째로는 부정(否定)을 표현하는 세 가지 형식이었고, 소설로는 『이방인』 , 극으로는 『칼리굴라』와 『오해』, 사상적으로는 『시지프 신화』였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긍정을 표현하는 세 가지 형식으로, 소설로는 『페스트』, 극으로는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 사상적으로는 『반항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정(부조리), 긍정(반항), 사랑의 발전 단계를 전제로 작품 체계를 구상한 걸 보면 발자크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작품을 쓰다가 과로사로 일찍 사망한 그 작가는 "나폴레옹이 칼로 할 수 없었던 것을 나는 펜으로 정복하겠다."면서 『인간 희극』을 통해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상을 거대한 벽화로 남기고자 했던 인물이었지요. 그처럼 알베르 카뮈도 문학에 대한 포부가 대단했던 작가였습니다.



카뮈가 20대 중반에 일찌감치 삶의 부정적인 측면인 부조리에 대한 소설과 에세이를 구상하게 된 건 그의 삶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습니다. 스무 살에 너무 일찍 결혼했다가 파혼한 일, 공산당원에서 제명된 일, 결핵의 재발로 대학교수 자격시험에 응시하지 못한 일, 폐결핵 치료와 요양을 위해 프랑스의 고산 지대인 앙브렁에 체류하면서 겪은 고독 등등이 그로 하여금 일반적인 삶과 무관한 존재, 즉 이방인의 느낌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결혼, 출세 등"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삶과 "무관한" 당시의 작가 모습이야말로 『이방인』 속의 주인공 뫼르소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소설 속에서 뫼르소는 파리 출장소로 가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는 사장의 물음에 별 고민도 없이 단박에 거절하지요. "사실 이러나저러나 내게는 마찬가지"며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이방인』의 탄생 과정

카뮈의 『이방인』은 지극히 간결한 문체로 쓰여진 소설의 첫 문장이 너무나 인상 깊은 작품이지요.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가장 말이 적은 절제된 톤이야말로 『이방인』을 상징하는 중요한 문학 장치인데, 카뮈 소설 미학의 핵심을 이루는  생각들이 작가 나이 불과 스물다섯 살이던 1938년에 쓰여진 작가노트에서 일찌감치 발견됩니다.

진정한 예술 작품은 가장 말이 적은 작품이다. 한 예술가의 총체적 경험, 그의 생각 + 삶과 그의 경험을 반영하는 작품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다. 예술작품이 그 경험을 문학적 장식으로 포장하여 모조리 다 보여 준다면 그 관계는 좋지 못한 것이다. 예술 작품이 경험 속에서 다듬어 낸 어떤 부분, 내적인 광채가 제한되지 않은 채 요약되는 다이아몬드의 면 같은 것일 때 그 관계는 좋은 것이다.

이리하여 카뮈를 상징하는 이 작품은 심리 분석이나 설명은 피하고 오직 겉으로 보이는 구체적인 대상들만을 묘사하는 중성적인 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가로놓인 침묵 등을 통해 "겉보기에 아무 의식이 없는 한 인간"을 가장 적게 말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인물로 느끼게 만듭니다.



한편, 소설의 제목이 된 '이방인'은 1940년의 작가 노트에서 발견됩니다.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다. ㅡ 다른 곳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세계는 내 마음이 기댈 곳을 찾지 못하는 알지 못할 풍경에 불과하다. …… 이방인. 내게 모든 것이 낯설다는 것을 고백할 것."



가난한 신문사의 젊은 기자, 극단의 연극 배우, 문학 지망생이자 철학도, 그러면서도 수시로 직장을 잃고 마는 카뮈는 자신이 문득 낯선 세계에 던져진 이방인 같은 심경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이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사실도 더 자주 느꼈습니다. 이방인의 부조리한 존재 방식! 이걸 최대한으로 '적게 말하는' 표현 방식으로 창조하느냐가 카뮈에게 보다 분명하게 감지될 무렵, 실업자 신세였던 카뮈에게 <파리 수아르> 편집 사원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고, 햇빛 찬란한 알제리의 바닷가로부터 음울한 잿빛 도시 파리로 '던져진' 카뮈는 끔찍한 고독을 느끼며 말 그대로 이방인이 되고 맙니다. 카뮈는 파리의 허름한 호텔들을 전전하면서 낮에는 편집 일을 하고 밤에는 '침묵과 고독' 속에서 소설 집필에  매달린 끝에 불과 두 달만에 『이방인』 쓰기를 끝내고, 그때부터 곧바로 에세이를 쓰는 일에 착수합니다. 카뮈의 부조리 문학의 또다른 한 축을 이루는 『시지프 신화』가 쓰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시지프 신화』는 왜 『이방인』과 짝을 이루는가

작가는 일찍부터 삶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어둡고 비극적인 면을 뚜렷하게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는 삶의 절망적이고 부조리한 면을 떨치지 못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답하려는 시도가 담긴 책이 바로 『시지프 신화』였습니다.

무대장치들이 문득 붕괴되는 일이 있다. 아침에 기상, 전차를 타고 출근, 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보내는 네 시간, 식사, 전차, 네 시간의 노동, 식사, 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이 행로는 대개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다만 어느 날 문득, '왜?' 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 『시지프 신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보다는 『오뒷세이아』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된 시지프(그리스어 시쉬포스)는 인간들 중에서 가장 꾀가 많은 인물인데, 오뒷세우스의 친부일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도 자주 묘사됩니다. 그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해 요정 아이기나를 데려가는 걸 엿보고 있다가 코린토스 성채에 맑은 샘물이 솟아나게 해주는 조건으로 그녀의 아버지인 하신 아소포스에게 고해바칩니다. 이때문에 제우스가 화가 나서 그에게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보냈으나 시지프는 도리어 죽음의 신을 동굴에 가둬버려 한때 죽는 이가 없었다고 하지요. 나중에 죽음의 신이 풀려나 그에게 다시 찾아가자 그는 아내 메로페에게 자기 시신을 묻지도 말고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일러놓고 저승에 가서 또다시 꾀를 냅니다. 아내를 벌주고 자기 자신을 매장하게 한 뒤 다시 돌아오겠다며 저승의 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속이고는 지상으로 되돌아옵니다. 이승에서 다시 살만큼 살다가 헤르메스가 그를 저승으로 데려가자 마침내 그는 지하 세계에 영원히 머물면서 무거운 돌덩이를 산꼭대기로 영원히 굴려 올리는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되지요.



이토록 부조리한 형벌을 받는 시지프를 바라보는 카뮈의 시선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는 시지프를 도리어 영웅으로 바라봅니다. 신들에 대한 멸시, 죽음에 대한 증오,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 때문에 형용할 수 없는 형벌을 받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땅에 대한 정열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댓가라는 게 카뮈의 생각이었습니다. 

경련하는 얼굴, 바위에 밀착한 뺨, 진흙에 덮인 돌덩어리를 떠받치는 어깨와 그것을 고여 버티는 한쪽 다리, 돌을 되받아 안은 팔끝, 흙투성이가 된 두 손 등 온통 인간적인 확신이 보인다. 하늘 없는 공간과 깊이 없는 시간으로나 헤아릴 수 있는 이 기나긴 노력 끝에 목표는 달성된다. 그때 시지프는 돌이 순식간에 저 아래 세계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 아래로부터 정점을 향해 이제 다시 돌을 끌어올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또다시 들판으로 내려간다.
 - 『시지프 신화』

카뮈는 시지프 신화의 주인공이 의식이 깨어 있기 때문에 비극적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의 희망이 그를 떠받쳐준다면 무엇 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워하겠는가! 오늘날의 노동자는 그 생애의 그날 그날을 똑같은 일에 종사하며 산다. 그 운명도 시지프 못지않게 부조리하다. 그러나 운명은 오직 의식이 깨어 있는 드문 순간들에 있어서만 비극적이다. ……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시지프 신화』



이처럼 카뮈는 우리의 삶이 시지프 못지 않게 부조리하지만, 그 사실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의식이 깨어 있는 드문 순간은 도리어 비극적이 되고 마는데, 이런 운명은 오이디푸스 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문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자신이 그토록 불행한 인간인 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그가 알게 되는 순간부터 엄청난 비극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를 끝내 긍정하는데, 그가 신들을 부정하며 바위를 들어올리는 한 차원 높은 성실성을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카뮈의 말 속에는 부조리에 반항하는 인간 정신에 대한 긍정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카뮈와 죽음

카뮈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언제나 '죽음'이었습니다. 소설『이방인』도 죽음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는데,『이방인』에 담긴 죽음은 세 가지 형식으로 구분됩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된 자연적인 죽음, 주인공 뫼르소가 저지른 뜬금없는 살인, 가해자가 재판 끝에 사형선고를 받고 기다리는 죽음이 그것입니다. 도대체 카뮈는 왜 이토록 '죽음'에 진지하게 매달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죽음을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어머니의 죽음은 사회통념상 큰 슬픔에 빠져야 할 것 같지만, 주인공은 남의 일처럼 무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사장에게 휴가를 청해야 하는 난처한 입장,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 밤샘 등만 걱정할 뿐이지요. 그는 심지어 '엄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합니다. 두 번째 죽음인 살인에는 아예 피해자가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재판정에는 많은 증인들이 실명으로 불려나오지만 정작 피해자는 끝내 그 이름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법정의 재판관, 검사, 변호사에게는 피고인 뫼르소 역시 실질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각자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서만 집줄할 뿐이지요. 법정에 출입하는 기자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법정이 일종의 연극무대일 뿐임을 강조하는 건 삶에 내재된 연극적인 성질을 드러내는 문학적 장치로 보여집니다. 세 번째 죽음인 사형은 정작 소설 밖에서 이뤄질 예정이지만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소설에서 관심의 대상은 '과거'의 죽음이 아니라 '미래'에 닥쳐올 죽음이고, '남'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임이기 때문이지요.

이방인의 구조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를 둘러싼 세 가지 형식의 죽음을 다루는 극히 간결한 소설입니다. 소설은 1부와 2부 사이의  극명한 대조와 현격한 차이가 돋보입니다. 1부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이 환각이나 꿈속처럼 나른하게 흘러갑니다. 엄마의 죽음과 장례식조차 따분한 일상처럼 묘사됩니다. 뫼르소는 엄마가 죽었는데도 장례식 내내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 여자친구 마리와 만나 수영을 즐기고 영화를 구경하고 난 뒤 애인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면서도 아무런 반성적 의식을 갖지 않습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인식 없이 오로지 현재적인 삶만 영위할 뿐이지요. 특별한 고민도 하지 않습니다. 같은 층에 사는 레몽이 (행실이 나쁘다고 소문이 나 있음에도) 부탁하면 거절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서 편지를 대필해 주고, 사랑이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면서 마리가 원하면 결혼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주인공 뫼르소의 하루하루의 삶은 자유롭고 무반성한 삶,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영원히 망각한 채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의식 없이 '현재'에만 몰두하는 삶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우발적인 살인이 일어납니다. 뫼르소와 마리와 레몽이 바닷가에 있는 레몽의 친구 마송의 별장으로 함께 놀러 갔다가, 우연히 레몽의 여자친구 오빠 일행과 시비가 붙어 칼부림이 일어나고, 다친 레몽을 치료하는 틈에 홀로 해변가 샘물이 있는 바위쪽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던 뫼르소는 칼을 휘두른 아랍인과 다시 마주치고, 뫼로스는 그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죽입니다. 그저 강렬한 태양이 아랍인의 칼날에 번쩍였고 그 태양빛 때문에 그 아랍인을 죽이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두 번째 죽음과 함께 1부가 끝나면 감옥과 법정이라는 극히 한정된 공간에서 제2부가 펼쳐집니다. 무반성한 주인공이 감옥에 갇힌 이후 마침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되돌아볼까요?

감옥에 갇힌 뫼르소

엄마의 죽음조차 주인공에게는 특별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킬 수 없을 만큼 그날그날의 공허하고도 따분한 일상을 이어가던 뫼르소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신의 삶에 초래된 심각한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변호사가 주인공의 사생활을 조사했다면서, 최근에 어머니 장례식이 있었는데 그날 '내가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날 '마음이 아팠느냐'고 물어도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는 습관 같은 건 별로 없기 때문에 알려주기는 어렵다'고 대답합니다. 변호사는 흥분해서 법정에서든 예심 판사의 방에서든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다그치지만 뫼르소는 자신의 천성이 그렇다는 식으로 대답할 뿐입니다. 변호사는 '그날 내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다시 묻지만, 주인공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거든요."

이처럼 재판의 모든 과정은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진행되지만 뫼르소는 굳이 반박하거나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도 없고 무엇보다 귀찮게 생각되기도 해서였지요. 뫼르소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그저 막연히 뭔가 새로운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무덤덤한 태도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마리가 더 이상 면회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편지를 보내오자 그제서야 '내 삶이 그 속에서 멈추어 버렸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자신의 운명에 무심하면 할수록, 자신의 처지에서 소외되면 될수록 독자들은 피해자보다는 살인자 뫼르소를 편들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법정은 한사코 그의 인간성을 규정하기 위해 모든 행동의 동기를 찾아내는데 골몰합니다. 어느새 장례식에서 보여준 뫼로소의 일거수일투족이 재판에서 문제시됩니다. 담배를 피우고 밀크커피를 마신 것까지도 말이지요. 주인공은 어느새 희대의 살인마로 변질됩니다. 증인 심문과정을 보다 못한 변호사가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고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을 했다고 기소된 겁니까?"라고 외칩니다. 이 말에 방청객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리지요. 이처럼 뫼르소의 재판과정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사회 체제의 견고한 부조리들은 삶에 대한 또다른 은유를 드러냅니다. 작가가 『시지프 신화』에서 말한 다음 문장은 뫼르소의 재판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력의 단계에서 인간은 비합리와 마주서게 된다. 부조리는 인간의 호소와 세계의 비합리적 침묵 사이의 대면에서 생겨난다. 바로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여기에 꼭 매달려야 한다. 한 일생의 모든 귀결이 송두리째 그것으로부터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비합리, 인간의 열망, 그리고 양자의 대면에서 솟아나는 부조리, 이것이 바로 드라마의 세 등장인물이다.
 - 『시지프 신화』

죽음과 대면한 뫼르소

소설의 막바지에는 말수가 극히 적었던 주인공 뫼르소가 마침내 울부짖다시피 절규하는 대목이 이어집니다. 계속 거절했음에도 기어코 면회를 온 신부가 기도하겠다고 하자 뫼르소는 격렬한 반응을 보이지요.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 속에서 뭔가가 폭발해 버렸다. 나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기도하지 말라고 했다." 뫼르소는 죽음 앞에서 삶의 모든 가능성들이 무화(無化)되는 저 기막힌 '등가성()'을 확인합니다. 소설 전편에 걸쳐 주인공이 되풀이했던 말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라는 표현은 삶의 가치를 평준화하는 죽음의 어둡고 가차 없는 속성을 여과없이 드러내 보여줍니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어.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야.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거야?



죽음을 목전에 둔 사형수의 마지막 독백은 필멸의 인간을 감옥에 갇힌 사형수에 비유했던 파스칼의 『팡세』를 떠올립니다. “쇠사슬에 묶인 한 무리의 사람들을 상상해 보라. 모두가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매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중 몇몇이 교수형에 처해진다.”(『팡세』) 카뮈는 인간에게 내재된 필멸의 운명 때문에 삶이 의미가 없으므로 죽어야 하는 게 아니라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오늘날 부조리 소설의 상징적인 작품이 된 『이방인』의 마지막 문장은 곱씹어 읽을수록 긴 여운을 남깁니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이것으로 『이방인』에 대한 소개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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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5-14 1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적어주신 글 가운데 칼비노 님의 고전에 대한 정의가 저 또한 굉장히 공감되었습니다. 이 정의가 고전을 읽고 또 읽어봐야 할 명확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oren 2023-05-14 14:41   좋아요 2 | URL
고전을 읽고 나면 고전만이 안겨줄 수 있는 독특한 느낌들을 받게 되는데, 그럴 때 이탈로 칼비노의 <고전의 정의>를 자주 펼쳐보게 됩니다. 웬만한 고전들은 칼비노의 정의에서 벗어나기 힘든데, 어떤 고전들은 14 가지 정의를 거의 대부분 만족시키는 경우까지 있어서 칼비노의 통찰에 놀랄 때도 자주 있습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님의 댓글을 읽으니 다시금 <이방인>에 해당하는 고전의 정의를 쭈욱 나열해 보고 싶습니다.^^(연관성이 약간 떨어지는 항목만 일부러 생략했습니다.)

1.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

2. 고전이란 그것을 읽고 좋아하게 된 독자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조건에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사람들만이 그런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3. 고전이란 특별한 영향을 미치는 책들이다. 그러한 작품들은 우리의 상상력 속에 잊을 수 없는 것으로 각인될 때나, 개인의 무의식이나 집단의 무의식이라는 가면을 쓴 채 기억의 지층 안에 숨어 있을 때 그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4. 고전이란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책이다.

5.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6. 고전이란 독자에게 들려줄 것이 무궁무진한 책이다.

7. (생략)

8. 고전이란 그것을 둘러싼 비평 담론이라는 구름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평의 구름들은 언제나 스스로 소멸한다.

9. 고전이란,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더욱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 창의적인 것들을 발견하게 해 주는 책이다.

10. (생략)

11. 고전이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작품과 맺는 관계 안에서, 마침내는 그 작품과 대결하는 관계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12. 고전이란 그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련의 위계 속에 속하는 작품이다. 다른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은 고전의 계보에서 하나의 작품이 차지하는 지위를 쉽게 알아차린다.

13. 고전이란 현실을 다루는 모든 글을 배경 소음(잡음)으로 물러나게 만드는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이 이 소음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4. 고전이란 배경 소음처럼 존속해서 남는 작품이며, 이는 고전과 가장 거리가 먼 현재에 대한 글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2023-05-14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23-05-14 14:45   좋아요 1 | URL
문학동네 버전에서는 이방인을 ‘이인‘으로 번역했군요. 그런 번역도 흥미롭습니다. 이방인이라는 말은 카뮈의 작품으로 인해서 문학적인 뉘앙스가 듬뿍 가미된, 특유의 느낌을 안겨주는 단어로 변한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5-14 14: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칼비노 님의 책을 아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만, 댓글로 남겨주신 고전의 정의와 관련된 14가지 문장들만 읽어보았는데도 한 문장 한 문장이 정말 너무나도 귀하디 귀한 문장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와닿았습니다. 좋은 가르침을 배운것 같아서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oren 2023-05-14 15:04   좋아요 2 | URL
칼비노의 그 책은 정곡을 찌르는 얘기들이 참 많습니다. 칼비노의 독서 이력이 너무 풍성해서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의 제목조차 생경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도 심심찮게 등장하기 때문에 독서에 대한 자극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책이기도 합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로빈슨 크루소, 발자크, 찰스 디킨스, 플로베르, 톨스토이, 마크 트웨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헤밍웨이 등등의 작품 해설은 매우 깊이있고 풍성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서론 부분(12쪽)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만하고요.^^ 댓글만으로도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5-14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역시 독서의 깊이가 사고의 깊이와 정비례하는가 봅니다. 저도 관련서적들을 한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샘솟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남은 주말도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oren 2023-05-14 15:34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님께서도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요.^^
 





옛 고전들에 담긴 '여자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겐 언제나 독특한 즐거움을 안겨 줍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요즘 사람들에겐 도저히 일어나기 어려운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현대인들에게는 '불가사의한 일'로 보이는 여러 사건들이 과거엔 도리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뒤바뀌어 나타납니다. 그런 일들이 주로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에 일어났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제우스의 숱한 애정 행각이 바로 '불가능을 모르는 신의 무한 능력'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요? 


따지고 보면 저 유명한 트로이아 전쟁도 바로 '단 한 명의 여자' 때문에 당대 최고의 권력자가 일으킨 전쟁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담긴 숱한 영웅들의 '전기'에서도 여자 이야기가 빠질 리는 없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상 최고의 권력자가 온갖 절세의 미녀들을 탐내어 벌였던 엽색행각이 여기저기 난무할 테니까요. 그러나 영웅전은 모름지기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쓰여진 작품이다 보니 그런 내용들이 언제나 맛뵈기로만 다루어진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마치 중국집에서 '육해공'으로부터 날라온 온갖 재료를 다 써서 만든 다양한 코스 요리를 실컷 맛보고 난 뒤에 마지막으로 '약간의 허기'를 채울 때 시키는 '맛뵈기 기스면' 정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지요. 만약에 플루타르코스가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정식으로 공부했던 철학자도 아니었고, 방대한 분량의『윤리론집』을 쓸 만큼 그리스인 특유의 높은 '윤리와 도덕의식'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그가 쓴 고대인들의 전기에 담긴 '여자 이야기'가 얼마나 더 풍성하고 다채로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저만의 생각은 아닐테지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담긴 50명이 모두 '본받을 만한 걸출한 영웅들'로만 구성된 게 아니라는 점은 '흥미진진한 여자 이야기'에 목말라 하는 독자들에겐 그래도 한가닥의 희망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루타르코스가 '파렴치한 악인이 저지른 일이라도 모른 체 지나가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들은 훌륭한 사람들에 대해 더 열심히 배우고 깨달으며 본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쓴 전기도 있기 때문입니다.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매우 지탄받을 못된 짓을 숱하게 저지른 인물로 그려진 그리스의 장군 알키비아데스, 로마를 끔찍한 내전으로 몰아넣었던 악명높은 인물인 술라, 독재자 카이사르를 암살한 로마 공화정의 수호자 브루투스를 추격하는데 앞장섰고 끝내 클레오파트라의 치맛자락에 빠져 자신의 군대마저 내팽개치고 이집트로 도망가 자살하고 말았던 안토니우스와 같은 인물이『영웅전』에 당당히 '자신의 전기'를 갖추고 있는 사실을 봐도 그렇습니다.



로마가 인정했던 세계적인 미남이자 바람둥이였던 안토니우스에 '대비'되는 인물은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군림했던 데메트리우스였습니다. 그 또한 당대의 호사가들이 널리 인정할 만큼 뛰어난 용모를 갖췄던 데다가 그가 지닌 권력과 방탕한 성격 때문에 평생 동안 숱한 여자들을 빼앗고 또 거느렸습니다. 이쯤에서 그 두 사람의 행적을 비교한 플루타르코스의 얘기 한 대목만 들어 보고 넘어가지요.

두 사람 모두 권력을 누리는 동안 교만한 모습을 보였으며, 사치와 쾌락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데메트리우스는 그런 와중에도 행동해야 할 때를 놓친 적이 없었다. 그는 한가하고 무료한 시간에만 쾌락에 빠졌고, 그가 사랑했던 라미아도 꿈처럼 살면서 놀 때에만 가까이했을 뿐이었다. …… 저 유명한 시인 에우리피데스 시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바쿠스의 지팡이를 내려놓고 금세 무섭고 용맹한 전쟁 신 마르스의 사자가 되어 달려나갔다. 데메트리우스는 게으르고 방탕한 생활 때문에 싸움에 진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와 달리 안토니우스는 옴팔레에게 곤봉을 빼앗기고 몸에 걸친 사자 가죽이 벗겨진 헤라클레스처럼 언제나 클레오파트라에게 무장해제를 당했으며, 그녀와 함께 카노푸스나 오시리스 무덤이 있는 타포시리스 해안으로 놀러 다니느라 대정복 계획을 모두 놓쳐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파리스처럼 전쟁에서 달아나 클레오파트라 치맛자락에 파묻혔다. 파리스는 그래도 전쟁에 져서 달아났지만, 안토니우스는 승부가 결정 나기도 전에 비겁하게도 클레오파트라 뒤를 쫓아 달아난 것이었다.(1723∼1724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데메트리우스와 안토니우스의 비교> 중에서

데메트리우스의 '전기'에서 '애정 행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인물들의 전기와는 비교하기가 힘들 정도이지요. 사실 '대비 열전'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도덕적으로 몹시 탁월한 면모를 보여준 인물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전기에서 흥미진진한 여자 이야기를 발견하기란 연목구어 격이나 마찬가지일 정도인데, 그런 점에서라도 데메트리우스의 전기는 다른 인물들의 전기에 비해 일부 독자들로부터 특별한 흥미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전기를 바탕으로 탄생한 예술품들이 다른 인물들에 비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지요.



또한 데메트리우스의 '전기' 자체도 다른 인물들의 전기에 비해서 내용이 제법 풍성한 편입니다.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전3권에 총 2,015쪽에 이르지만 '작품 해설' 등을 제외하고 순수한 전기 부분만 따진다면 대략 1,870쪽 분량입니다. 1인당 평균 37쪽 정도인데, 데메트리우스 편은 무려 51쪽이나 되지요. 20쪽 남짓으로 다뤄진 인물들도 꽤 여러 명인데, 전기의 분량이 특히 방대한 인물들로는 알렉산드로스 75쪽, 폼페이우스 73쪽, 안토니우스 73쪽, 카이사르 56쪽 등을 꼽을 수 있는데, 데메트리우스가 Top 7에 꼽힐 만큼 분량이 많은 셈이지요.



여기서 데메트리우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중언부언 더 소개하자면 이야기가 너무나 지루해 질 게 뻔합니다. 그래도 '명함 한 장'에 담을 정도의 최소한의 프로필마저 아예 빼놓고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마케도니아를 대제국으로 만들었던 알렉산드로스가 급작스레 죽고 난 이후의 소위 '디아도코이(후계자) 전쟁' 틈바구니에서 탄생한 안티고노스 왕조의 두 번째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동시대에 활약한 인물들은 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하들이었던 안티파트로스, 안티고노스, 리시마쿠스, 셀레우코스, 프톨레마이오스 등이었고, 그들의 자식들인 카산드로스, 안티오쿠스와 같은 인물들도 데메트리우스와 활동이 겹쳤으며, 에피루스의 지배자로 유명한 피로스도 데메트리우스와 여러 번 전쟁터에서 맞닥뜨렸지요.



이제 그만 각설하고 본론인 데메트리우스의 여자 이야기로 들어가 보지요. 그의 숱한 아내들 가운데 비교적 젊은 시절의 아내들은 주로 '과부'였습니다. 다음의 이야기를 살펴 보면 그 당시에 패권을 노리던 인물들 사이에 '혼인 동맹'이 얼마나 성행했는지도 엿보여 몹시 흥미롭습니다.

데메트리우스는 아테나이에 잠시 머무는 동안 에우리디케와 결혼했다. 영웅 밀티아데스의 후손인 에우리디케는 키레네의 오펠타스 왕의 아내가 되었으나,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아테나이로 돌아와 혼자 살고 있었다. 아테나이 시민들은 이 결혼을 아테나이 시의 영광이라고 여기며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데메트리우스는 이미 많은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기에, 이 결혼을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데메트리우스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아내는 필라였다. 그녀는 안티파트로스의 딸로서 이미 크라테루스와 결혼했었는데, 크라테루스는 그 무렵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들 가운데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크라테루스가 죽고 필라가 과부가 되자, 안티고노스는 아들 데메트리우스를 그보다 훨씬 나이 많은 필라와 결혼시키려 했었다. 데메트리우스가 처음에 이 결혼 제의를 받고 매우 못마땅해하자, 귀에 대고 다음과 같이 에우리피데스의 시를 속삭였다.

행운을 얻을 수 있다면
결혼도 할 수 있지.

시에는 본디 '복종'으로 되어 있는데, 안티고노스가 '결혼'으로 고쳐 말했다. 데메트리우스는 필라를 비롯해 여러 아내를 두었지만, 기생이나 첩들을 두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그는 같은 시대 어느 왕보다도 좋지 않은 평판을 들었다.(1610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데메트리우스 편> 중에서

데메트리우스가 가장 오래 탐닉한 여자는 '라미아'였습니다. 그녀는 데메트리우스가 프톨레마이오스 군대와 치열하게 싸워 승리한 끝에 자연스레 딸려온 전리품 목록 속에 포함된 여자였습니다.



포로들 가운데 라미아라는, 이름이 꽤 알려진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플루트를 매우 잘 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음악적 재능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아름다운 외모와 연애 사건으로 점차 더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즈음 그녀는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었고, 나이도 데메트리우스보다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데메트리우스는 라미아의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그녀만을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여자들은 그녀를 너무나 부러워했다.(1611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데메트리우스 편> 중에서

젊어서부터 전쟁에서 거듭 승리한 데메트리우스는 어느새 헬라스의 '최고 사령관'이란 이름이 붙었고, 곧이어 자신의 아버지 안티고노스와 함께 '왕'으로까지 격상되어 불리게 되지요. 그가 라미아 때문에 욕을 먹은 일화들은 널리 해외에서도 곧잘 화제가 될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아테나이에 돌아온 데메트리우스가 시민들을 가장 화나게 한 것은, 자신의 공적에 대한 보답으로 250탈란톤이나 되는 큰돈을 즉시 바치라는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린 일이다. 관리들은 온갖 수단을 다 써서 시민들의 돈을 긁어모았다. 게다가 이렇게 거두어들인 돈을 마치 푼돈밖에 안 된다는 듯 라미아를 비롯한 여자들 화장품 값으로 내어주게 했다. 아테나이 시민들은 데메트리우스가 자신들의 귀한 돈을 이렇게 써버리자, 돈을 잃은 것 이상으로 심한 굴욕감을 느꼈다.

이 일 말고도 라미아는 데메트리우스 왕 환영 연회 비용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시민들에게 다시 한 번 돈을 거두어들이게 했다. 이 호화로운 잔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사모스 사람 린케우스는 이 일에 대해 쓴 역사책까지 따로 남겼다. 이즈음 어느 풍자 시인은 라미아를 '도시점령자'라 불렀고, 솔리 사람 데모카레스는 데메트리우스를 '미투스'라 불렀다. 데메트리우스 곁에 라미아가 늘 붙어다니는 것에 대해, 미투스 전설에 나오는 괴물 라미아에 빗대어 한 말이다.

실제로 데메트리우스가 라미아에게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게 되자 그의 다른 아내들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신하들마저도 그녀를 미워하고 질투했다.

데메트리우스의 신하들 몇 명이 리시마쿠스 사절로 갔을 때 일이다. 리시마쿠스는 마침 한가로운 때에 자신의 허벅지와 팔에 난 상처들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 상처들은 언젠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자기를 사자 우리 속에 처넣었을 때 사자와 싸우면서 생긴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자 사절들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자기들 왕의 목에도 사자만큼 사나온 짐승에게 할퀸 상처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사나운 짐승이란 데메트리우스의 아내 라미아를 빗대어 한 말이었다.

놀라운 것은 데메트리우스가 시든 꽃이라며 필라를 거부하면서도, 그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라미아에게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다.(1621∼1622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데메트리우스 편> 중에서

데메트리우스의 엽색 행각이 얼마나 심했던지, 그의 추행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 남자들도 있었습니다.

데메트리우스는 아테나 여신을 자신의 누님이라 불렀으나 조금도 여신을 존경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명문 집안의 미소년들과 아테나이 여자들을 아크로폴리스로 불러들여 온갖 추한 행동을 했다. 차라리 크리시스, 라미아, 데모, 안티키라 같은 창부들을 상대했을 때가 이곳을 더 깨끗하게 유지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테나이 시의 명예를 생각해서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이제는 젊은 다모클레스가 보여준 훌륭한 미덕과 정조에 대해 말해보겠다. 다모클레스는 '아름다운 다모클레스'라 불릴 만큼 외모가 아름다운 젊은이로, 데메트리우스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데메트리우스가 이 젊은이에게 빠져서 온갖 선물로, 때로는 위협까지 하며 꾀어내려 했지만 젊은이는 계속 거절하기만 했다. 마침내 다모클레스는 사람들이 모이는 경기장 같은 곳에 가지 않고 목욕도 집에서만 했다. 하지만 기회만 노리고 있던 데메트리우스는 그가 혼자 목욕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들이닥쳐서 그를 붙잡았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음을 알아차린 다모클레스는 끓는 물 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 젊은이가 이렇게 삶을 마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모클레스의 행동은 그의 나라와 그의 아름다움을 더 가치 있게 드높여 주었다.(1618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Ⅲ』, <데메트리우스 편> 중에서



플루타르코스가 <데메트리우스 편>에서 들려주는 숱한 '여자 이야기'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도 기이한 이야기는 그녀의 딸 스트라토니케에 얽힌 이야기이지요.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은 데메트리우스의 사위의 아들이었는데, 후세 사람들로부터 '병든 왕자'라는 별명을 얻은 안티오코스였습니다. 그 왕자가 자신의 계모를 사랑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일견 에우리피데스의 비극『힙폴뤼토스』를 연상시킵니다. 테세우스의 후처 파이드라가 전처 소생의 아들 힙폴뤼토스에게 반해 상사병에 걸리고, 그녀의 애정 고백이 거절당하자 도리어 휩폴뤼토스가 자기를 유혹하려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편에게 남기고 목매달아 죽는다는 얘기 말이지요.




데메트리우스의 딸 스트라토니케는 이미 셀레우쿠스와 결혼하여 둘 사이에 아들까지 두었으나,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런데 왕자 안티오코스가 계모 스트라토니케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고 처음부터 자기 감정을 억누르려고 온갖 노력을 했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그의 열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마침내 그는 자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서서히 죽어가기 위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의사 에라시스트라투스는 안티오코스가 점점 야위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것이 상사병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안티오코스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의사는 하루 종일 안티오코스 곁에서 그를 지켜보면서, 젊은 여인들이 문병을 올 때마다 안티오코스의 태도와 몸 상태를 빈틈없이 살폈다. 그런데 스트라토니케가 자기 의붓아들을 만나러 올 때마다, 혼자서 오든지 남편 셀레우쿠스와 함께 오든지 관계없이, 저 유명한 사포가 발견해 낸 병증이 그의 몸에서 나타났다.

안티오코스는 스트라토니케 앞에서 늘 말을 더듬고 얼굴이 심하게 붉어지면서, 그녀의 눈길을 애써 피하려 했다. 게다가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빨라지고 식은땀까지 흘리다가, 마침내 감정이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되면서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지고 의식이 흐려졌다. 이제 의사 에라시스트라투스는 왕자가 열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조용히 굶어 죽기로 결심하게 된 원인이 바로 왕비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진실을 말했다가는 왕자가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차마 왕에게 알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셀레우쿠스가 자기 아들을 매우 사랑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어느 날 그는 용기를 내어 셀레우쿠스에게 아들의 병에 대해 말했다. 의사는 젊은 왕자를 혼돈에 빠뜨리는 병이 다름 아닌 상사병이며, 이 사랑이 희망도 없고 치료도 불가능한 상태임을 덧붙여 말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셀레우쿠스는 의사에게 물었다.

"어째서 치료할 수 없다는 건가?"

의사가 대답했다.

"왜냐하면 왕자님은 제 아내를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그러자 셀레우쿠스가 말했다.

"그래? 에라시스트라투스! 그렇다면 그대가 아내를 포기하고 나의 아들에게 보내주면 안 되겠는가? 왕자는 그대의 친구이며, 왕자를 살릴 방법은 그것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나?"

"안 됩니다. 전하께서는 만일 왕자님이 스트라토니케 왕비님을 사랑한다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하시겠습니까?"

에라시스트라투스의 말을 듣고 셀레우쿠스가 대답했다.

"이보게. 하늘과 땅에 맹세하지, 나는 사람에게나 신에게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여, 왕자가 스트라토니케를 사랑하게 만들겠네. 안티오코스를 살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내 왕관마저 내려놓을 수 있네."

셀레우쿠스의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 있었으며, 그의 두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러자 에라시스트라투스가 셀레우쿠스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말하기를, 자신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며 셀레우쿠스야말로 가정에서 일어난 아픔을 고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의사라고 말했다.

셀레우쿠스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신하들을 모두 모이게 한 다음, 안티오코스를 아시아 지역에 왕으로 보내고 스트라토니케를 그의 왕비가 되도록 허락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신하들에게 왕자는 이제까지 자신에게 순종해 왔으므로 이 결혼 또한 반대하지 않으리라 믿지만 스트라토니케는 도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자기 말을 따르려 하지 않을 것이니, 왕이 내리는 명령은 모두 옳고 명예로운 일이라고 그녀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안티오코스는 계모 스트라토니케와 결혼하게 되었다.(1632∼1633쪽)



이토록 놀라운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에 제가 찾아낸 그림은 아래의 석 점이었습니다. 세 번째 그림을 그린 앵그르는 알고보니 마침 두 번째 그림을 그린 다비드를 사사한 화가였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 가운데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호메로스 예찬> 등은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품들이지요.

이 이야기와 관련된 그림을 찾다가 우연히 덩달아 발견한 짧은 텍스트 하나도 그냥 지나치기엔 조금 아쉽습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카셀의 회화박물관에 들러 벨루치의 그림을 직접 봤으며, 이 '병든 왕자' 이야기를 자신의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도 풍성하게 담아냈다고 하니 말이지요.




이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앞으로도 여러 번 나오는 이 <병든 왕자 der kranke Koenigssohn>의 모티프는 원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데메트리우스편 제38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조인 셀레우코스 1세Seleukos I(B.C. 312-280)의 아들 안티오쿠스Antiochus는 젊고 아름다운 계모 스트라토니케Stratonike를 사모하여 시름시름 앓는다. 계모가 방에 들어올 때 왕자의 맥박이 빠르게 뛰는 것을 발견하고 병인(病因)을 알게 된 의사는 왕에게 우선 거짓으로 말하기를, 왕자가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고 하고,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지 묻는다. 이에 왕은 왕국을 위해 부디 그의 결혼생활을 희생하고 왕자가 동경하고 있는 사랑을 성취시켜 주기를 간청한다. 이때 의사가 왕자의 진짜 병인을 밝히니, 왕은 스트라토니케를 단념하고 안티오쿠스를 스트라토니케와 결혼하도록 한다. 왕과 의사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에 스트라토니케가 왕자의 병석으로 다가서는 결정적 순간의 장면이 에로부터 많은 회화의 소재가 되었다. 일찍이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도 <병든 왕자>의 그림을 논의한 바 있다. 또한 카셀Kassel의 회화박물관에는 벨루치Antonio Belucci의 그림 「병든 왕자」가 괴테 시대에 이미 전시되어 있었는데, 1779년 9월에 괴테가 그곳을 방문한 것이 입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스바덴Wiesbaden의 박물관에도 치크Januarius Zick의 「병든 왕자」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괴테는 1774년경에 이 화가와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p. 106, 각주)


이것으로 병든 왕자와 스트라토니케에 얽힌 이야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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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23-04-02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어제 저는 힙폴리토스 이야기 썼는데....비극은 왠지 그럴듯한 느낌이 들지만...... 안티오코스와 스타라토니케 이야기는 어째 거부감이 있습니다.... 두어달 전에 빌헬름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읽었는데 병든왕자 이야기가 나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ㅜㅜ.....제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어서 그 이야기를 알고 괴테 작품을 읽었다면 기억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만...전혀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어 기억에 안 남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oren 2023-04-02 20:49   좋아요 1 | URL
걸작들 사이엔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훨신 더 많은 ‘관계‘들이 숨어 있는 듯합니다. 힙폴리토스 이야기든, 안티오코스 이야기든, 그 스토리를 배경으로 만든 예술작품들이 과연 얼마나 많을지, 우리나라처럼 서양 고전에 대한 깊이가 부족한 나라의 독자들은 가늠조차 하기가 쉽지 않겠지요. 괴테의 작품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저도 여태 못 읽어봤는데, 나중에 그 책 읽을 땐 아무쪼록 ‘병든 왕자 모티프‘를 잊지 말고 챙겨봐야겠습니다.^^
 



기린의 목이 오늘날처럼 길어진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 대답은 너무나 뻔합니다. 높은 나뭇가지에 달린 잎을 따먹기 위해 자꾸만 목을 길게 뻗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답을 겁도 없이 덜컥 내놓는 사람은 은연중에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마는데, 주지하다시피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천재가 저지른 희귀한 오류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입니다. 도대체 그의 주장이 왜 틀렸으며, 용불용설이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킨 배경은 무엇일까요?



라마르크는 인류 역사상 거의 최초로 진화론을 체계적으로 주장한 탁월한 박물학자였습니다.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1859)보다 무려 50년이나 앞서 진화의 개념을 체계화한 『동물철학』(1809)을 발표했는데, 일부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탄생하는데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음은 틀림없었습니다. 그가 끼친 영향을 『생각의 역사』 속에 담긴 문장을 통해 간단하게나마 살펴보고 넘어가지요.



라마르크는 진보주의를 열렬히 옹호했다. 화석의 생물종이 지금도 살고 있는 생물과 유사하다는 것을 관찰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여기에 착안한 그는 어떤 종의 경우 멸종한 게 아니라 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졌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생물은 아마 "우리가 식별하지 못할 만큼 크게 변했을 것"이다. 이것은 다윈 이전에 나온 적응의 개념이다. 라마르크는 지구의 나이가 무척 오래며, 생명 형태도 오랜 기간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했다고 확신했다. 또한 그는 인간이 이 진보의 최종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라마르크의 진화 관념은 두 가지다. 첫째, 그는 자연이 복합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믿었다. 둘째, 그는 생물체의 기관이 사용할수록 강해지고 강화되며, 이 획득형질은 후대에 전해진다고 믿었다. "획득된 변화는 양성에 공통적이며, 자식에게도 상속된다."

이런 요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19세기 중반 다윈의 자연선택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914∼915쪽)


 -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라마르크의 주장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된 건 후천적인 노력으로 획득한 형질이 자식에게도 유전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유전학에 대한 연구가 전무했던 시절이어서 라마르크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증명하거나 반박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였던 에라스무스 다윈과 괴테 등이 일찌감치 라마르크의 주장이 틀렸음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다윈이 쓴 『종의 기원』의 머릿말 앞에도 그 내용이 비교적 자세하게 담겨 있는데,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대한 찰스 다윈의 입장까지도 엿볼 수 있는 만큼 자세히 살펴보고 넘어가지요.


 

나는 종(種)의 기원에 관한 학설 진보에 대해 그 개요를 쓰고자 한다. 최근까지 박물학자들이 종은 불변하는 것이며 저마다 각각 창조된 것으로 믿어왔다. 이 견해는 여러 학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왔다. 한편 몇몇 박물학자들은 종은 변화하는 것이고, 현존하는 생물의 종류는 이전에 존재했던 것으로부터 진정한 생식에 의해 태어난 자손이라 믿고 있었다. ······

라마르크는 이 문제에 대해 주목을 끄는 결론을 내린 최초의 사람이었다. 탁월한 박물학자로서 1801년 자신의 견해를 처음 발표했다. 그는 1809년 《동물철학》에서, 그 뒤 1815년에는 《무척추동물지》 서론에서 좀 더 폭넓게 이 문제를 다루었다. 이들 저서에서 라마르크는 인류를 포함한 모든 종은 다른 종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을 주장했다. 그는 최초로 생물계는 물론 무생물계에 있어서도 모든 변화는 법칙의 결과이며, 결코 기적적인 어떤 개입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헌을 했다.

라마르크가 종은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주로 종과 변종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어떤 유(類)에 속하는 여러 종류는 거의 완전한 단계성을 보여준다는 것, 또 사육하고 재배하는 생물의 상이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변화의 방법에 대해서도, 그는 어떤 것은 생활의 물리적 조건에, 어떤 것은 기존 종류의 교잡에, 그리고 대부분의 것은 쓰임과 쓰이지 않음, 즉 습성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연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훌륭한 적응-이를테면 나뭇가지에 난 연한 나뭇잎을 먹고 사는 기린의 긴 목-을 이 마지막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2

*2 나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 박사가 1794년에 간행한 《동물생태론》에서 라마르크의 견해 및 그의 의견이 틀린 근거를, 그(이시도르 조프루아 생틸레르)보다 먼저 대폭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시도르 조프루아에 의하면 괴테(Goehte)도 1794년과 1795년에 써 두었으나, 훨씬 뒤에 이르기까지 간행하지 않았던 저작의 서론을 통해 똑같은 견해를 가지고 열심히 주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예건대 소는 무엇 때문에 뿔을 사용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 뿔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박물학자에게 있어서 장래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적확하게 지적했다. 독일에서는 괴테, 영국에서는 다윈 박사, 프랑스에서는 조프루아 생틸레르가 1794∼95년에 종의 기원에 대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은, 대체로 유사한 학설이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난 매우 드문 예라고 할 수 있다.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종의 기원에 대한 학설 진보의 역사적 개요> 中에서




이처럼 라마르크의 학설은 18세기말부터 이미 당대의 몇몇 저명한 인물들에 의해 반대에 부딪혔는데, 이 정도의 반대는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용불용설의 슬픈 전주곡>일 뿐이었습니다. 진화론의 끝판왕인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물종 진화의 원인으로 『자연선택 이론』을 내세웠는데, 같은 생물종 내에서도 유리한 변이를 지닌 개체는 환경에 보다 쉽게 적응하고 마치 자연이 선택한 것처럼 살아남아 번성하고 진화한다는 이론이었습니다. 이른바 적자생존의 논리인데 라마르크의 용불용설과는 명백히 다른 주장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윈이 라마르크의 주장을 완전히 배척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유전에 관한 메커니즘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사용과 불용에 관한 찰스 다윈의 주장은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지요.



가축의 경우 사용하는 부분은 강하고 커진다는 것,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작아진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유전한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유로운 자연 상태에서는 우리는 조상의 형태를 모르는 까닭에, 오래 계속된 사용 또는 불사용의 작용을 판정할 수 있는 비교기준을 세울 수가 없다. 많은 동물들은 불사용의 작용으로서 설명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언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자연계에는 날지 못하는 새만큼 기이한 것은 없는데, 실제로 날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새가 많이 있다. ……(148쪽)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제5장 변이의 법칙」 중에서



카르니올라와 켄터키의 동굴에 서식하는 매우 다양한 강(鋼)에 속하는 많은 동물들이 장님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게는 눈은 없어졌지만 눈자루는 남아 있는데, 이것은 렌즈가 달린 망원경은 없어지고 망원경의 대만 남아 있는 것과 같다. 어둠 속에서 서식하는 동물의 경우, 눈은 쓸모없는 것이지만 어떤 점에서 유해하다고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눈이 없어진 것은 불용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151쪽)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제5장 변이의 법칙」 중에서



이처럼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나름대로의 지지를 확보한 채 다윈의 생존경쟁 이론과도 양립할 수 있다고 여겨지면서 《멘델의 유전법칙》이 재발견된 1900년 이후까지도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20세기 초반에는 '생명의 진화'에 관한 또다른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평가받는 『창조적 진화』라는 작품이 발표되는데, 과학서적으로는 유례가 없을 만큼 아름다운 문장 덕분에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그 책 속에서도 '획득형질의 유전'은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철학자이면서도 과학자의 면모가 엿보이는 앙리 베르그송의 얘기를 들어보지요.



 

변이의 원인은 심리적 질서에 속한다면 그 말의 의미를 매우 확장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여전히 노력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사실인즉 노력 자체를 파고들어가 더 심층적인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 생각으로 이러한 태도가 특히 요구되는 경우는 규칙적으로 유전되는 변이들의 원인에 도달하고자 할 때이다. 우리는 여기서 획득형질의 유전 가능성에 관한 세부 논쟁으로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우리의 역량에 속하지 않는 문제에서 명백한 입장을 취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할 수는 없다. 이 문제만큼 오늘날 철학자들이 애매한 일반성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고, 과학자들의 뒤를 따라 세부 실험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결과를 논의해야 할 의무를 느끼는 것도 없다.(131쪽)

 - 앙리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이렇게 시작해서 앙리 베르그송은 진화론을 둘러싼 오랜 화두인 '획득형질의 유전 문제'를 검토하는데, 『동물철학』(1809) 출간 100주년을 코앞에 두고 죽은 라마르크가 또다시 불려나온 셈이었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은 끝에 사망했고,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치된 뒤에도 이듬해 7월 혁명의 와중에 묘소가 사라지는 불운까지 겪은 인물이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라마르크는 생명체에게 기관의 용불용(用不用)에 의해 변화하는 능력과 이렇게 획득된 변이를 후손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부여한 바 있다. 이와 유사한 종류의 학설에 오늘날에도 일정수의 생물학자들이 합류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신종을 산출하기에 이르는 변이는 배 자체에 내재하는 우연변이가 아닐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유용성에 대해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고 일정한 방향으로 결정된 특성들을 전개시키는 고유한 결정론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존 조건에 적응하려는 생명체의 노력 자체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이러한 노력은 외적 환경의 압력에 의해 기계적으로 야기된, 특정한 기관의 기계적 훈련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의식과 의지를 내포할 수도 있는데, 이 학설의 가장 탁월한 대표자의 한 사람인 미국의 자연학자 코프Cope는 노력을 바로 그런 의미로 이해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신라마르크주의는 비록 거기에 필연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화론의 현재적 형태들 전체에서 유일하게 진화과정의 내적이고 심리학적인 원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서로 독립적인 발달선상에서 동일한 복잡한 기관들의 형성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진화론이기도 하다.(130쪽)

 

앙리 베르그송의 설명을 들으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이 떠오를 정도로, 같은 프랑스 국적의 생물학자인 라마르크를 왠지 감싸고 도는 듯한 느낌도 없진 않지요. 아무튼 그의 설명을 조금만 더 들어보지요.




사람들이 말하는 획득형질은 종종 습관이거나 습관의 결과이다. 그리고 길들여진 습관의 기초에 자연적 성향이 없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유전된 것이 개체의 soma이 획득한 습관인지 아니면 차라리 길들여진 습관에 앞서 있는 자연적 성향은 아닌지 항상 자문할 수가 있다. 이 성향은 개체가 자신 안에 보유하고 있는 germen에 내재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그것이 개체에, 즉 배에 이미 내재적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두더지가 앞을 못 보게 된 것은 그것이 땅 밑에서 사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전혀 증명되지 않는다. 아마도 두더지가 지하 생활을 할 운명에 처한 것은 그것의 눈이 쇠약해지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경우 시력을 잃는 경향은 두더지 자체의 신체에 의해 획득된 것도 잃은 것도 없이 배에서 배로 전달될 것이다. 검술 사범의 아들이 아버지보다 훨씬 더 빨리 탁월한 검술사가 되었다고 해서 부모의 습관이 아이에게 전달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증가하는 도상에 있는 어떤 자연적 성향들이 아버지를 낳은 배에서 아들을 낳은 배로 넘어가 원초적 약동의 결과로 도중에서 커지고 아버지가 했던 것과는 상관없이 아들에게 아버지의 것보다 더 큰 유연성을 확보해 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의 점진적 길들이기에서 나오는 많은 예들에 대해서도 그와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되는 것이 길들여진 습관인지 아니면 오히려 어떤 자연적 성향이 아닌지는 알기 어렵다. 이러한 성향이야말로 길들이기 위해 이러저러한 특수한 종이나 그것의 어떤 대표자들을 선택하게끔 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132∼134쪽)

* (역주) 획득형질의 유전이 완전히 부정된 것은 20세기 중반 무렵이다. 여기서 베르그송은 아직 논쟁 중인 당대의 모든 실험과 가설을 검토함으로써 획득형질의 유전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에 서고 있다.


방금 살펴본 것처럼,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부정된 건 20세기 중반이었습니다. 라마르크의 『동물철학』(1809)이 출간된 후 무려 1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 학설은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 일으킨 셈인데, 정말 놀랍게도(!) <기린의 목이 왜 늘어났는가>에 대한 원인 분석을 둘러싼 논쟁은 최근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앙리 베르그송이 지적했던 애매한 일반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탓이겠지요.


이쯤에서 우리는 이토록 애매한 문제에 대해 뭔가 결정적인 한방을 터트려줄 인물은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게 됩니다. 제가 찾은 인물은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입니다. 그는 하필이면 1860년에 사망했는데, 『종의 기원』이 출간된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가 다윈의 책을 읽어봤는지 여부와는 별도로, 그는 다윈 못지 않게 해박한 생물학 지식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죽기 훨씬 이전에 <라마르크의 오류>를 너무나 정확하게 짚어낸 인물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 독일 철학자가 1936년에 발표한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라는 책에 담긴 내용을 중심으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 합니다. 쇼펜하우어의 작품들은 그의 철학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문장들이 적지 많지만 조금만 인내하고 들어보시면 차츰 이해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우선 쇼펜하우어 특유의 <의지의 형이상학>이 뚜렷이 드러나는 다음 문장부터 살펴보지요.

 

자연에 질서와 무늬를 넣은 것은 지성이어야 한다는 사상은 완전히 잘못

자연에 질서와 무늬를 넣은 것은 지성이어야 한다는 자연신학적 사상은, 단순한 오성에 의해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진다 해도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지성은 우리에게 동물적 자연에서만 알려져 있으며, 그래서 전적으로 세계의 이차적이고 종속적인 원리로서, 즉 가장 늦은 근원의 산물로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성은 결코 세계 현존의 조건이었을 수 없으며 지성계(mundus intellegibilis)가 감성계(mundus sensibilis)에 선행할 수도 없다. 지성계는 감성계로부터만 재료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지성이 자연을 산출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지성을 산출했다."(94쪽∼95쪽)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1836년),〈비교해부학> 中에서


어떻습니까? 참으로 명쾌한 논리이지요.
 

'자연의 절약 법칙'은 어떤 여분의 기관도 허용하지 않는다.

'자연의 절약 법칙'은 어떤 여분의 기관도 허용하지 않는다. 바로 이 법칙은, 다른 한편으로 어떤 동물에게도 지금까지 자신의 생활방식이 요구하는 기관이 부족하지 않았고, 모든 기관은 가장 다양한 기관들조차 조화를 이루며 전적으로 특별히 규정된 생활방식을, 그 동물의 노획물이 있는 영역을, 추적을, 승리를, 그 노획물을 분쇄하고 소화시키는 것을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두 합쳐져서, 동물이 자신의 생계를 위해 영위하려는 생활방식이 그 동물의 구조를 결정한 것이었으며 그 반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 법칙은, 그 상황이 바로, 생활방식과 그 외적 조건에 대한 인식이 구조에 선행하고 그에 맞게 모든 동물이 형체를 얻기 전에 자신의 도구를 선택하는 식으로 되었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이는 마치 사냥꾼이 사냥 전에 자신의 모든 도구, 즉 산탄총, 산탄, 화약, 사냥 포대, 사냥칼, 의류를 그가 죽이려는 사냥감에 적합하게 고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는 엽총을 갖고 있으므로 야생 암퇘지를 쏘는 것이 아니라, 야생 암퇘지를 잡으러 나섰으므로 새총이 아니라 엽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러나, 그 증명을 보충하기 위해 다음의 사실이 부가된다. 즉 많은 동물에게서 그것들이 아직 성장하는 동안에는 의지의 지향이 그 지향에 필요한 신체 부분이 있기도 전에 표현되며, 따라서 그 신체 부분의 사용이 그 현존에 선행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린 숫염소, 숫양, 송아지는 아직 뿔을 갖기도 전에 맨머리로 들이받는다. 어린 수퇘지는 자신의 행위가 의도하는 결과에 상응할 어금니가 아직 나지 않았는데도 자신을 둘러싼 측면을 들이받는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침으로 무장한 곤충들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이 점을 표명했다. "그것들이 투지를 가지므로 무기를 갖는다"(『동물의 부분에 관하여(de partibus animalium)』, 제4권, 6장). 나아가 그는 (12장에서) 대체로 "자연은 그것의 활동을 위해 기관들을 만들지만 기관들로 인해 활동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 결과는, 모든 동물의 구조는 그 의지에 따른다는 것이다. (98쪽∼100쪽)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1836년),〈비교해부학> 中에서


쇼펜하우어가 이 대목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불러낸 건 참으로 탁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찰스 다윈도 훗날 『종의 기원』에서 이와 똑같은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하니 말이지요. 바로 뒤이어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라마르크의 오류의 본질>을 여지없이 강타합니다.



 

희귀한 오류에 빠진 라마르크

이 진리는 사려 깊은 동물학자와 동물해부학자에게 명백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그의 정신이 더 심오한 철학을 통해 정화되지 않는다면 그는 그 진리로 인해 희귀한 오류에 빠지게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일은 잊히지 않는 일류 동물학자인 라마르크에게서 실제로 일어났다. 그는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이라는, 동물에 대한 심오한 이해에 따른 구분을 발견함으로써 불멸의 공적을 세웠다. 말하자면 『동물 철학』제1권 7장과 『무척추동물의 자연사』제1권 서문에서 그는 모든 류(類), 모든 동물종의 형태, 고유한 무기, 외부로 작용하는 기관은 결코 이 종들의 원천에서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 아니고, 동물들의 위치와 환경의 성질을 불러일으킨 동물들의 의지 지향에 따라 자신의 고유한 반복적 노력과 그것에서 나오는 습관을 통해 시간의 과정에서 서서히, 그리고 계승되는 세대를 통해 비로소 발생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주장하고 상세히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물새와 포유류는 헤엄치면서 발가락을 따로따로 뻗음으로써 서서히 물갈퀴를 획득했고, 붉은 뇌조는 물 위를 걸어서 건넘으로써 긴 다리와 긴 목을 얻었다. 뿔 달린 가축은 쓸모 있는 치아 없이 머리로만 싸웠고 이 투지가 서서히 뿔을 만들었으므로 비로소 서서히 뿔을 얻었다. 달팽이는 처음에는 다른 연체동물과 같이 더듬이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 앞에 놓인 대상을 만져야 하는 필요성에서 그와 같은 것이 서서히 발생했다. 모든 고양이과 동물은 노획물을 갈기갈기 찢어야 하는 필요성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비로소 발톱을 획득했고, 이 발톱을 걸을 때 보호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방해받지 않아야 하는 필요성에서 발톱 집과 민첩성을 획득했다. 기린은 건조한 풀 없는 아프리카에서 높은 나무의 잎을 얻기 위해 앞다리와 목을 길게 뻗어서 20피트 높이의 놀라운 키를 획득했다. (100쪽∼102쪽)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1836년),〈비교해부학> 中에서


여기까지의 설명만으로도 라마르크가 왜 틀렸는지 대략이나마 감이 잡히시지요? 아직도 뭐가 뭔지 아리송할 뿐이라고요? 지극히 당연합니다. 생물학의 창시자인 라마르크도 아무런 의심없이 덜컥 저지른 실수였으니까요. 그런데 라마르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걸까요? 여기서부터는 조금 더 집중해서 쇼펜하우어의 설명을 들어보지요.

 

매우 정확하고 심오한 이해를 통해 성립한 천재적인 오류

그리고 그렇게 라마르크는 많은 동물종을 동일한 원리에 따라 발생하게 하여 검토한다. 여기서 그는 사실상, 동물종이 그러한 노력으로 인하여 무수한 세대의 과정에서 자신의 보존에 필수적인 기관을 서서히 산출하기 이전에 그 기관이 없어서 그동안 죽고 멸종했어야 한다는, 눈에 띄는 반론을 주목하지 않았다. 받아들여진 하나의 가설은 그렇게 통찰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기서의 이 가설은 자연에 대한 매우 정확하고 심오한 이해를 통해 성립한 천재적인 오류다. 이 오류는 그 안에 놓인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라마르크에게 여전히 명예로운 일이다. 그 안에 있는 참된 것은 자연 탐구자인 그에게 귀속된다. 그는 동물의 의지가 근원적인 것이며 그 조직체를 결정한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보았다. 반면에 틀린 것은 프랑스에서 형이상학의 낙후된 상황에 짐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원래 여전히 로크와 그의 나약한 추종자 콩디야크가 대세를 이루었고, 그래서 물체가 사물 자체이고 시간과 공간이 사물 자체의 성질이어서, 그곳에는 아직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안에 나타나는 모든 것의 관념성에 대한 그렇게 매우 중요한 위대한 학설이 들어가지 않았다. 따라서 라마르크는 존재에 대한 해석을 시간 안에서, 즉 계열을 통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102쪽∼103쪽)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1836년),〈비교해부학> 中에서


쇼펜하우어의 천재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런 설명을 듣고 나면 누구나 '라마르크의 천재적 오류'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테지요. 계속해서 쇼펜하우어의 심오한 설명들을 더 살펴보지요.

 

라마르크가 이 생각을 끝까지 전개시킬 용기를 가졌더라면

독일에서 유래한 칸트의 깊은 영향은 프랑스 인들의 부조리한 극단적 원자론과 영국인들의 감동적인 자연신학적 고찰을 그렇게 했듯이 이런 종류의 오류들을 영원히 추방했다. 위대한 정신의 영향은, 허풍선이와 사기꾼을 추종하기 위해 그 정신을 떠날 수 없었던 국가에서조차 유익하고 영속적이다. 그러나 라마르크는 동물의 의지가 사물 자체로서 시간 밖에 놓이고 그런 의미에서 동물 자체보다 더 근원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 결코 이를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결정적인 기관 없이, 또한 결정적인 지향도 없이 지각으로만 무장된 동물을 가장 먼저 설정한다. 이 지각이 그 동물에게 살아야 하는 상황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이 인식으로부터 그 동물의 지향, 즉 그 동물의 의지가 발생하고, 이 의지로부터 최종적으로 그 동물의 기관이나 특정한 체현(體現, Korporisation)이, 게다가 세대의 도움으로 그래서 무한한 시간 안에서 발생한다. 라마르크가 이 생각을 끝까지 전개시킬 용기를 가졌더라면, 그는 어떤 형상도 기관도 갖지 않아야 할, 그리고 이제 기후와 지역적 상황 및 그에 대한 인식에 따라 모기에서 코끼리에 이르는 모든 종류의 무수한 동물 형태로 변화했을 어떤 원초동물을 가정했어야 할 것이다. 사실상 이 원초동물이 생명에의 의지이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서 이 의지는 형이상학적인 것이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분명히 모든 동물종은 자신의 고유한 의지를 통해, 그러나 시간 속에 있는 물리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시간 밖에 있는 형이상학적인 것으로서, 그리고 그것이 살려고 하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형태와 조직을 결정했다. 의지는 인식으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인식은 의지가 단순히 우연적이고 이차적인 것으로서, 심지어 제3의 것으로서 나타나기 전에 동물과 함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지가 최초의 것이고 본질 자체다. 의지의 현상(인식하는 지성과 그 형식인 공간과 시간에 있는 단순한 표상)은 이 특별한 상황에서 살려는 의지를 표현하는 모든 기관들로 무장된 동물이다. 이 기관에는 지성 즉 인식 자체도 속한다. 그리고 이 지성은 나머지 것들과 같이 모든 동물의 생활방식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반면에 라마르크는 인식으로부터 비로소 의지가 형성되도록 했다. (103∼104쪽)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1836년),〈비교해부학> 中에서


이렇게 해서 라마르크의 오류에 대한 설명을 끝낸 쇼펜하우어는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의 생물학 강의를 마음껏 펼쳐놓습니다. 그의 설명을 듣노라면 찰스 다윈도 울고 갈 정도입니다. 계속 들어보지요.



 

의지의 모든 특별한 노력은 형태의 특별한 변이 속에서 나타난다

동물의 무수한 형태를 고찰해보라. 그 모든 형태가 철두철미 그 동물이 의욕하는 것에 대한 모사일 뿐임을, 그 동물의 특성을 만드는 의지 지향의 가시적인 표현일 뿐임을 보라. 형태의 다양성은 특성들의 이 다양성에 대한 그림일 뿐이다. 싸움과 약탈에 주의를 기울이는 맹수들은 무서운 이빨과 발톱 그리고 강한 근육을 갖고 있다. 맹수들의 시력은, 특히 독수리나 콘도르 같이 현기증 나는 높이에서 자신의 노획물을 정찰해야 할 때 먼 곳까지 이른다. 싸움에서가 아니라 도피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의지를 갖는 겁 많은 동물들은 무기 대신 가볍고 빠른 다리와 예민한 청각을 갖고 나타난다. 그들 중 가장 겁 많은 토끼에게서 청각은 심지어 귀가 눈에 띄게 늘어날 것을 요구했다. 내부는 외부에 상응한다. 육식동물은 짦은 내장을, 초식동물은 더 긴 동화과정을 위해 긴 내장을 갖는다. 강한 호흡과 빠른 혈액 순환은 적합한 기관을 통해 표현되어, 더 큰 근력과 자극성의 필연적 조건으로서 제공되면, 어디에서도 모순은 가능하지 않다. 의지의 모든 특별한 노력은 형태의 특별한 변이 속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노획물이 있는 곳이 추적자의 형태를 결정했다. 노획물이 접근하기 어려운 활동 영역, 먼 은신처, 밤이거나 어두운 곳에 들어가 있다면, 추적자는 그곳에 맞는 형태를 갖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생명에의 의지가 자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그 안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만큼 기이한 일은 없을 것이다.(104쪽∼105쪽)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1836년),〈비교해부학> 中에서


쇼펜하우어의 생물학 특강은 계속 이어집니다~
 

솔잣새, 붉은 뇌조, 개미귀신, 펠레컨, 부엉이, 큰 메기, 전기뱀장어, 전기메기, 맵시벌

전나무 열매의 표피에서 정충(精蟲)을 끄집어내기 위해 솔잣새(Loxia curvirostra)는 비정상적 형태의 먹이 섭취 기관을 갖고 있다. 습지에서 파충류를 찾기 위해 붉은 뇌조는 너무 긴 다리, 너무 긴 목, 너무 긴 부리를 갖는 가장 놀라운 형태로 나타난다. 흰개미를 파내기 위해 네 발의 긴 개미귀신은 짧은 다리와 강한 발톱, 그리고 실 모양의 끈적끈적한 혀를 지닌, 길고 좁고 치아 없는 주둥이를 갖고 나타난다. 펠리컨은 상당히 많은 물고기를 담기 위해 기괴한 주머니를 갖고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 부엉이는 밤에 자는 것들을 기습하려고 어둠 속에서 보기 위해 굉장히 큰 동공을 가지며, 날 때 나는 소리가 자는 것들을 깨우지 않도록 매우 부드러운 깃털을 갖고 날아간다. 큰 메기, 전기뱀장어, 전기메기는 노획물에 도달할 수 있기 전에 그것을 마비시키기 위해, 또한 자신들의 추적자에 대해 방어하기 위해 완벽한 전기기구까지 갖고 있다. 왜냐하면 생명 있는 것이 숨 쉬는 곳에는 그것을 삼키기 위해 다른 것이 동시에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예측되고 계산되었듯이, 심지어 가장 상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다른 것을 제거하려고 든다. 예를 들어 곤충 중에서 맵시벌은 나중에 자신의 알이 먹잇감을 갖도록 특정한 나비 유충이나 그에 유사한 애벌레의 몸에 침으로 구멍을 뚫고 알을 낳는다. 자유롭게 기어 돌아다니는 애벌레에 의존하는 맵시벌은 1/8인치쯤 되는 매우 짧은 침을 갖고 있다. 반면에 애벌레를 고목 깊숙이 숨겨두는 벌에 의존하는 맵시벌은 고목 안에 닿기 위해 2인치 길이의 침을 갖는다. 전나무 열매에 사는 애벌레에 알을 낳는 맵시벌도 거의 마찬가지로 긴 침을 갖는다. 이로써 그 맵시벌들은 애벌레에까지 파고들어서 찌른 후 그 상처에 알을 둔다. 그 알에서 나온 것이 나중에 이 애벌레를 갉아먹는다(커비와 스펜스, 『곤충학 입문』). (105쪽∼107쪽)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1836년),〈비교해부학> 中에서



 

고슴도치, 아르마딜로, 천산갑, 거북이, 오징어, 나무늘보, 청개구리, 벼룩

마찬가지로 추적당하는 것에게서도 그 적을 피하려는 의지가 방어적인 장치에서 명백히 표현된다. 고슴도치와 호저(豪猪)는 빽빽한 창을 공중에 내민다. 아르마딜로, 천산갑(穿山甲), 거북이는 이빨도 부리도 발톱도 접근할 수 없도록 머리에서 발까지 털로 뒤덮여서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작은 것들 중에는 가재의 모든 종이 그렇다. 다른 것들은 물리적 저항을 통해 방어하지 않고 추적자를 속임으로써 방어한다. 그래서 오징어는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주변에 퍼뜨릴 먹구름을 만드는 재료를 지니고 있다. 나무늘보는 자신을 이끼 낀 큰 가지로, 청개구리는 자신을 나뭇잎으로 보이게 하는 것처럼 무수한 곤충들이 자신들을 그 거주지로 보이게 한다. 흑인의 머릿니는 까맣다. 백인의 벼룩도 까맣지만, 그것은 유례없이 강력한 장치인 자신의 폭넓고 불규칙적인 뛰기를 믿는다. 그러나 이 모든 준비들에서 예견되는 것을 우리는 예술적 충동에 나타나는 것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어린 거미와 거미귀신은 자신들이 처음으로 덫을 놓은 노획물을 아직 알지 못한다. 그리고 방어하는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피에르 당드레 라트라일에 따르면, 누에나방은 전갈파리를 침으로 죽인다. 누에나방을 먹지도 않고 그것으로부터 공격받지도 않지만 그것이 나중에 자신의 둥지에 알을 낳아서 자신의 알이 크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에나방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은 예견에서 시간의 관념성이 다시 입증된다. 이것은 대체로 물자체로서의 의지가 언급되는 즉시 언제나 나타난다. 여기서 다루어진 관점에서는 다른 많은 관점에서와 같이 동물의 예술적 충동과 생리학적 기능들이 설명을 위해서 서로 도움이 된다. 이 둘에서 의지는 인식 없이 작용하기 때문이다.(107쪽∼108쪽)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1836년),〈비교해부학> 中에서


쇼펜하우어의 탁월한 설명은 이후로도 코끼리, 말, 원숭이, 오랑우탄, 뱀, 여우 도도새에 관한 기가 막힌 설명들로 이어집니다. 동물 이야기는 대략 이쯤에서 그치고 쇼펜하우어가 들려주는 인간의 지적 능력에 대한 설명으로 살짝 건너가 보지요.



 

유기체는 그야말로 가시적으로 된 의지일 뿐

인간에게서 다른 동물들을 매우 능가하는 오성은 부가되는 이성(비직관적 표상 능력, 즉 개념 능력인 반성과 사유능력)에 의해 지원된다. 그렇지만 그 지원은 오직, 한편으로는 동물의 욕구를 훨씬 넘어서고 무한히 증가하는 인간의 욕구에 비례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적 무기와 자연적 엄호의 전적인 결여와 크기가 같은 원숭이의 근력보다 뒤지는, 비교적 약한 인간의 근력에 비례한다. 동시에 그 지원은 도피에서 인간의 무능함에 비례한다. 인간은 달리기에서 모든 네 발의 포유동물보다 뒤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 지원은 또한 인간의 느린 번식, 긴 유아기, 긴 수명에 비례한다. 이것들이 개별자의 확실한 보존을 요구한 것이다. 이 모든 큰 요구들은 지적 능력을 통해 충족되어야 했다. 그래서 이 능력이 인간에게 그렇게 뛰어난 것이다. (112∼113쪽)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1836년),〈비교해부학> 中에서


이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얽힌 기나긴 여정을 서서히 마무리할 시간이군요. 결론으로 향하는 쇼펜하우어의 설명을 조금만 더 들어보지요.
 

경탄할 만한 합목적성과 조화

따라서 우리는, 이 해부학적 요소가 한편으로는 동물의 원형들이 다른 원형에서 불러일으켜졌으며, 따라서 종족 전체의 기본 유형이 보존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해부학적 요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필연적 자연성질"로서 이해하는 그것이다. 그리고 그 요소 형태의 변화가능성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의 목적에 따라 "목적에 맞는 자연성질"이라고 부르며, 이로부터 뿔 달린 가축에게서 위 앞니의 재료가 뿔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이 설명은 매우 정확하다. 왜냐하면 낙타와 사향노루처럼 뿔 없는 반추동물만이 뿔 있는 것들에서는 없는 위 앞니를 갖기 때문이다.  여기 골격에서 설명된, 동물의 목적과 외적 생활 관계들에 대한 그 구조의 정확한 적합성뿐 아니라 동물의 내부 작용에 있는 경탄할 만한 합목적성과 조화는 다른 어떤 설명이나 전제를 통해서보다, 동물의 신체는 표상으로서 직관된, 따라서 뇌에 있는 공간, 시간, 인과성의 형식에서 직관된 자신의 의지 자체일 뿐이라는, 그래서 의지의 단순한 가시성, 객체성일 뿐이라는, 내가 이미 다른 곳에서 확인한 진리를 통해서 불분명할지라도 가장 잘 이해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가정 아래에서는 신체에 종속되었거나 신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최종 목적을 위해, 즉 그 동물의 생명을 위해 공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체 안에서는 어떤 불필요한 것, 과도한 것, 결여된 것, 목적에 모순되는 것, 불충분한 것, 그 방식이 불완전한 것도 발견될 수 없고, 필요한 모든 것은 그 필요한 만큼 정확히 그곳에 있어야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여기서는 장인, 작품, 재료가 하나이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유기체는 극도로 완벽한 걸작이다. 여기서는 의지가 먼저 의도를 갖고 목적을 인식하고 그 다음에 수단을 목적에 맞추고 물질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의욕이 직접적으로 목적이고 또한 직접적으로 성취다. 그래서 먼저 억제되어야 할 이질적인 어떤 수단도 요구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의욕, 행위, 성취가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유기체는 기적으로서 거기에 서 있으며 인식의 등잔 불빛에서 꾸며진 인간의 작품과 비교될 수 없다.(116∼117쪽)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1836년),〈비교해부학> 中에서


이제 쇼펜하우어의 강의를 마무리할 때입니다. 

 

모든 존재가 자신의 작품이라는 사실

나의 학설로부터 당연히, 모든 존재가 자신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도출된다. 자연, 즉 결코 속일 수 없고 천재처럼 순진한 자연은 자신을 꾸밈없이 표명한다. 모든 존재는 자신과 정확히 같은 다른 어떤 것에 생명의 불을 점화할 뿐이며, 그 다음에 그것의 재료는 밖에서, 형식과 운동은 자신으로부터 조달하여 우리 눈앞에서 자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성장과 발전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경험적으로도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작품으로서 우리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너무 간단하기 때문이다.(122쪽)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1836년),〈비교해부학> 中에서




「라마르크의 천재적 오류」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명쾌한 설명을 듣고 나면 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했던 앙리 베르그송과 같은 철학자가 왜 그토록 '획득형질의 유전 문제'를 두고 전전긍긍했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 문제야말로 과학과 철학의 애매한 경계에 걸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관한 소개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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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중에는 독서가로 유명한 알베르토 망겔도 있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대작가로 명망이 높았던 눈 먼 보르헤스의 부탁으로 여러 해 동안 그에게 책을 읽어주었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알고 만난 사이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서점에서 우연히 만났던 장면 속으로 들어가 보지요.


어느 날 오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여든여덟 살 된 노모의 손에 이끌려 그 서점을 찾아왔다. 당시 그는 이미 유명한 인물이었는데도 나는 그의 시 몇 편과 소설을 읽었을 뿐 아직 그의 문학에 압도감을 느끼지는 않던 때였다. 그는 거의 맹인이나 다름없었지만 지팡이를 들고 다니기를 거부했으며 서점에 들르면 마치 손가락으로도 제목을 볼 수 있다는 듯이 손으로 서가를 훑곤 했다. 보르헤스는 당시 자신이 막 열정을 쏟고 있던 영어를 연마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고 있었는데, 그를 위해 우리는 월터 윌리엄 스키트의 사전과 주해가 붙은 『몰던의 전투Battle of Malden』를 주문해 주었다. ······ 마침내 그는 몸을 돌려 나에게 책 몇 권을 주문했다. 나는 그 중 몇 권을 찾아 줬고 나머지 책은 서지 사항 등을 적어 두었는데, 그는 서점을 떠날 때쯤 나에게 저녁 시간에 바쁜지 물어 왔다. ······

 

그 후 2년 동안 나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다른 우연한 만남이 그러하듯, 저녁 시간이나 또 학교가 허락할 때는 아침 시간에도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31∼32쪽)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 중에서

 


고작 열여섯 나이의 학생 신분이었던 알베르토 망겔에게 보르헤스는 분명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는 인물이었을 테지요. 망겔에게는 비록 보르헤스에게 읽어 줄 책을 직접 선택할 자유까지는 주어지지 않았을 지 모르나, 대작가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부지불식간에 얻게 된 소득만큼은 두둑했음에 틀림없었을 테지요.


보르헤스에게 글을 읽어 주는 일을 두고 나는 그저 하루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만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그 경험은 일종의 행복한 포로처럼 느끼게 했다.


그런데 망겔이 보르헤스로부터 배운 책 읽기 방법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그건 바로 '간통 같은 독서'였습니다.

  

그의 반응에 자극을 받아 나는 나 혼자 읽었을 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까지도 이제는 마치 이미 오래 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을 회상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아르헨티나의 작가인 에세키엘 마르티네스 에스트라다는 촌평했다. "이런 독서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다." 보르헤스는 체계적인 도서 목록을 불신하고 그런 간통 같은 독서를 권장했다.(37쪽)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중에서

  

그런데 보르헤스가 권장했던 '간통 같은 독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적거려 봐도 별다른 소득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데로 눈길을 돌려 진화심리학자들은 도대체 '간통의 심리'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스티븐 핑커는 과연 그다운 재치있는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간통 파트너와 결혼 파트너

이 모든 이야기는 단 하나의 성차이, 즉 남자들이 다수의 파트너를 더 많이 원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남자라고 해서 완전히 무차별적인 것은 아니고, 제아무리 독재적인 사회라도 여성의 발언권을 완전히 억압하지는 못한다. 양성은 각자 간통 파트너와 결혼 파트너를 고르는 기준을 갖고 있다. 인간의 다른 견고한 취향들처럼 그 기준들도 적응특성일 것이다.

양성은 모두 배우자를 원하고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간통을 더 많이 원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들이 간통을 전혀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일 여자들이 간통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면, 여자를 희롱하는 남성 충동은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고(혼인을 빙자하는 경우에는 보상을 받겠지만, 그렇다 해도 결혼한 여자는 남자를 희롱하거나 희롱의 목표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진화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자의 정액은 수적으로 불리해질 위험을 겪지 않을 것이므로, 고환은 고릴라의 신체 대비 크기보다 더 크게 진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를 향한 질투 감정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뒤에서 보겠지만 남편들의 질투심은 분명히 존재한다. 민족지학의 기록을 보면 모든 사회에서 양성 모두 간통을 저지르고, 그때마다 여자들이 항상 비소를 먹거나 상트페테르부르크 5시 2분발 열차에 몸을 던지지도 않는다.(735쪽)
 


 -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중에서

 

문학적 소양이 남달랐던 스티븐 핑커답게 그는 진화심리학 측면에서 간통의 심리를 설명하면서도 그걸 문학작품과  절묘하게 연결지어 설명하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간통을 저지른 여자들이 비소를 먹는다거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기차역에서 몸을 던지는 경우는 (소위 『간통 소설』의 대명사격인)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나 감행할 만한 일이지 결코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걸 스티븐 핑커는 소설 속의 여주인공 이름을 1도 꺼내지 않고 저토록 재치있게 설명한 셈이었습니다. 이왕 스티븐 핑커를 끌여들였으니 그의 얘기를 조금만 더 들어보지요.




여자들은 남편보다 애인을 고를 때 외모와 힘을 더 중시한다고 보고한다. 뒤에서 보겠지만 외모는 유전자의 품질을 보여 주는 지표다. 그리고 여자들은 불륜 관계를 맺을 때 일반적으로 남편보다 지위가 높은 남자를 고르는데, 지위를 뒷받침해 주는 자질들은 거의 틀림없이 유전이 되는 것들이다.(명망 있는 애인에 대한 안목은 첫 번째 동기인 자원 얻어내기에도 도움이 된다.) 우수한 남자와 성관계를 하면 여자는 또한 결혼 시장에서의 거래 능력을 테스트할 수도 있다. 이것은 차후에 직면할 그런 거래의 전주곡이 되거나, 결혼 생활에서 자신의 입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사이먼은 성관계와 관련된 성차이에 대해, 여자는 남자가 어떤 면에서 우수하거나 남편을 보완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성관계를 하고, 남자는 여자가 자신의 아내가 아니기 때문에 간통을 한다고 요약한다.(737쪽)

 

 -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중에서

 

스티븐 핑커의 지나치게 과학적인(?) 주장으로부터 '간통 같은 독서'와 관련해서 무슨 좋은 시사점을 얻으려는 자체가 다소 무리한 시도이긴 합니다. 그러나 소득이 전혀 없지는 않지요. 그의 말에 따르면 '불륜 관계'를 맺을 때 '명망 있는 애인에 대한 안목'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말이지요.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어디선가 분명히 읽은 듯한' 대목들을 가끔씩 마주치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늘 먼저 읽었던 책의 '바로 그 대목'을 기필코 찾아내고픈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히고 마는데, 바로 그 '은밀한 간통 현장'을 찾아내지 못할 때마다 느끼는 억누르기 힘든 안타까움의 정체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궁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더랬습니다.




무릇 어떤 책을 읽든지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겹쳐 떠올리는 경험들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들게 마련인데, 아무래도 문학작품을 읽을 때 보다는 철학책이나 역사책을 읽는 동안에 좀 더 자주 발생하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문학작품에서는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다른 작품과의 교감의 증거를 일부러 교묘하게 숨기는 반면, 역사책이나 철학책은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지금부터는 몇몇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름난 작가들이 얼마나 자주 다른 작가들로부터 얻어낸 이야기를 자기 자신의 이야기인 양 자신의 책을 장식하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제게 가장 알맞은 재료를 보여주는 작가는 몽테뉴입니다. 이 인물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법관 생활에서 은퇴한 후 몽테뉴 성에 틀어박혀 죽을 때까지 책에 파묻혀 지낸 덕분에 책에 담긴 별의별 세상 이야기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재치 넘치는 탁월한 문장력까지 겸비한 덕분에 『수상록』이라는 멋진 책까지 썼습니다.




그의 책 속에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온갖 흥미진진한 이야기뿐 아니라 가끔씩은 자신이 살던 시대에 직접 보고 겪었던 이야기들까지 맛깔스럽게 버무려놓았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까지가 전해 들은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자신의 창작품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남의 얘기를 자신의 것인 양 몰래 훔쳐오는 게 아니라 '인용의 대가' 답게 적재적소에 고대의 이름난 시인들이나 철학자들의 문장들을 원문 그대로 옮겨와 자신의 이야기에 꼭 들어맞게 재배치하는 기가 막힌 재주를 보여줍니다.


그가 좋아했던 고대의 작가와 작품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단 한 사람만 꼽으라면 단연 플루타르코스였습니다. 그 역사가가 쓴 『영웅전』과 『윤리론집』 은 몽테뉴가 가장 즐겨 읽는 애독서였습니다. 몽테뉴는『 수상록』 곳곳에서 플루타르코스를 거듭 칭송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별도의 장을 마련해서 그를 칭송할 정도였습니다.

 

내가 이 인물들에 대해서 품는 친밀감과, 그들이 내 노령기에 그리고 순수히 그들에게서 약탈해 온 재료로 엮어 내는 내 작품에게 주는 도움 때문에 , 나는 그들의 영광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세네카와 플루타르코스의 변호> 중에서

 

몽테뉴는 다른 책들로부터 얻은 지식이 아무리 많더라도 결국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얘기를 중세말의 시대 상황에 딱 들어맞는 '불씨 이야기'를 통해 후세 사람들에게 들려줍니다. 현대의 독자들은 그의 비유만 들어봐도 전기가 없던 암흑 같은 중세말의 사회상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참으로 몽테뉴 다운 절묘한 비유라는 생각부터 듭니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지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지식을 받아 담는다. 그것뿐이다. 지식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불이 필요해서 이웃집에 불을 얻으러 가서는, 거기서 따뜻하게 피어오르는 불을 보고 멈춰서 쬐다가 얻어 온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자와 같다. 배 속에 음식을 잔뜩 채워 보았자, 그것이 소화가 안 되고 우리 속에서 변화되지 않으면, 또 우리들을 더 키워 주고 힘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학식이 많아서 경험이 없이도 그렇게 위대한 장수가 되었던 루쿨루스는 우리들의 방식으로 지식을 섭취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너무 심하게 남의 팔에 매달려 다니다가 결국 우리 자신의 힘마저 없애고 만다. 내가 죽음의 공포에 대비할 생각을 가지면? 나는 겨우 세네카의 사상에서 꺼내올 뿐이다. 내가 자신이나 또는 남을 위해서 위안의 말을 찾아보고 싶으면? 나는 그 말을 키케로에게서 빌려온다. 사람들이 나를 그 지식으로 단련시켜 주었던들, 나는 그것을 자신에게서 찾아 가졌을 것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학식이 있음을 자랑함에 대하여> 중에서

 

방금 몽테뉴가 들려주었던 '불씨 이야기'가 몽테뉴로부터 처음으로 탄생한 재치 있는 비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기까지는 결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몽테뉴 수상록』보다 무려 1,500년 전쯤에 쓰여진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이라는 책이 일부나마 발췌 번역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력(智力)은 병처럼 채울 필요가 없는 것이 오히려 목재와 같다고나 할까. 그것은 단지 나무에 불을 붙여 독립적으로 생각하도록 자극을 주고 진리를 탐구하려는 열망을 창출하면 되는 것이기에 말이네. 어떤 사람이 이웃에게서 불씨를 얻어 큰불을 지피고 계속해서 자신의 몸을 따뜻하게 하며 머무른다고 상상해 보게. 그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강의를 듣고 이득을 얻으려고 왔는데, 그가 강의에서 그 자신과 그의 사고를 계발하기 위해 불씨를 지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 강의 내용을 즐기며 황홀경에 빠져 앉아 있는 거나 같은 것이지. 말하자면 그는 강의 내용으로 그에게 전달된 의견의 형태로 밝고 벌겋게 달아오른 불을 얻지만, 그의 마음속 깊이 도사리고 있는 곰팡냄새와 암흑을 뜨거운 철학의 열기로 없애거나 추방하지는 못하는 것이네.(241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 <철학자들의 강의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중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대표적인 저작 가운데 하나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에도 몽테뉴의 『수상록』에 담긴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는데, 만약에 어떤 독자가 『몽테뉴 수상록』 하나만 읽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건너뛰고 말았다면, 그 사람은 필시 몽테뉴의 책에 담긴 이야기가 오롯이 몽테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해도 결코 그를 탓할 순 없을 테지요. 그럼 먼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속 문장부터 살펴볼까요?



분노에 대한 자제력 없음이 욕망에 대한 자제력 없음보다 덜 창피하다는 사실

 

이제 분노(thymos)에 대한 자제력 없음이 욕망(epithymia)에 대한 자제력 없음보다 덜 창피하다는 사실에 대해 살펴보자. 분노는 어느 정도 이성에 귀를 기울이긴 하지만 그것을 잘못 알아듣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달려 나가 지시와는 다르게 행하는 실수를 범하는 성급한 하인들처럼. 혹은 개들이 친한 사람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소리만 나면 짖는 것처럼 말이다. ……  결국 분노는 어떤 의미에서 이성을 따르지만 욕망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욕망에 대한 자제력 없음이 더 창피한 것이다. 분노에 대해 자제력 없는 사람은 욕망에 지는 것이지 이성에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본성적인 욕구를 따르는 것을 보다 쉽게 용서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욕망들에 따르는 것은 더 쉽게, 또 공통적일수록 더 쉽게 용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노와 화를 잘 내는 성질은 지나침에 대한 욕망, 필수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욕망보다 더 본성적이다. 마치 자기 아버지를 때린 것에 대해 이렇게 변명하는 사람, 즉 "이 사람도 자기 아버지를 때렸고, 그렇게 맞은 사람도 그의 아버지를 때렸으니까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자식을 가리키면서 "얘도 어른이 되면 나를 때릴 겁니다. 우리 집안 내력이니까요"라고 변명하는 사람의 경우가 보여 주는 것처럼 말이다. 또 아들에 의해 끌려 나가다 문간에서 자신도 자기 아버지를 거기까지만 끌고 갔으니 거기에서 멈추라고 명하는 사람의 경우처럼. (251∼252쪽)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7권 제6장 「자제력 없음의 종류들」 중에서


  자, 이제 다시 몽테뉴의 책으로 건너가 볼까요?


여기까지가 아비들에게 모욕적인 취급을 하던 한계

 

제 아비를 때리고 있던 자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자기 집 습관이라고 하였다. 그 아비는 그 조부를 그렇게 때렸고, 그 조부는 그 증조부를 때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을 가리키며, 이 애도 내 나이쯤 되면 나를 때릴 것이라고 하였다. 아들이 거리에서 아비를 잡아당기며 끌고 돌아다니다가, 어느 문 앞에 와서는 아비가 아들에게 멈추라고 명령했다. 왜냐하면 그는 아비를 거기까지밖에는 끌고 가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아들들이 습관적으로 버릇이 되어서, 그 가정에서 아비들에게 모욕적인 취급을 하던 한계였다.(127쪽)

 

 - 몽테뉴,『몽테뉴 수상록』「습관에 대하여, 그리고 이어받은 법을 쉽사리 변경하지 않음에 대하여」중에서


몽테뉴의 책 속에 담긴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들 가운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발이 아픈 구두 이야기' 입니다. 몽테뉴가 들려주는 이야기부터 먼저 들어보지요.


옛말에 나오듯, 예쁜 구두에 발 벗겨진 것⑵은 남이 보지 못한다는 식으로, 그대 가정의 평화로운 질서를 꾸며 보이느라고 얼마나 힘이 드는가. 아마도 그 살림을 유지하기에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⑵ 플루타르코스의 이야기, 한 로마인이 예쁜 아이까지 낳아 준 미모의 아내를 내쫓았다고 친구들이 책망하자 "이 구두는 새롭고 예쁘지 않은가? 그러나 그 때문에 내 발이 벗겨진 것을 그대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네"라고 대답하였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허영에 대하여> 중에서

『몽테뉴 수상록』에 딸린 간단한 주석만 살펴보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로마인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평범한 인물인 것처럼 여겨지는데, 좀 더 알고나면 고대 로마의 영웅들 가운데 한 사람이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로마인의 이름은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였으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담긴 50인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의 개선)


아이밀리우스의 첫 번째 아내는 집정관을 지냈던 마소의 딸 파피리아였다. 아이밀리우스는 파피리아와 꽤 오랫동안 살다가 이혼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아이밀리우스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바로 그 유명한 스키피오와 파비우스 막시무스였다. 파울루스가 무엇 때문에 이혼을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내와 이혼한 다른 로마인들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로마인이 이혼한 사람에게 물었다.

"부인이 정숙하지 않아서요? 아름답지 않아서? 아니면 자식을 못 낳았소?"

그러자 이혼한 로마인은 자신의 신발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이 신발은 멋지지 않소? 새것 아니오? 그러나 이것이 내 발 어디를 아프게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단 말이오. 뚜렷한 허물이 있어도 이혼하지 않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남들은 알 수 없는 성격과 습관 차이가 쌓이고 쌓여 이혼하는 부부들도 있는 법이오."

아이밀리우스는 파피리아와 이혼한 뒤 두 번째 아내를 맞았다. 그리고 전처가 낳은 두 아들은 로마에서 가장 귀하고 훌륭한 가문에 양자로 보냈다. 큰아들은 다섯 번이나 집정관을 지냈던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문에 양자로 들어갔고, 둘째 아들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집안 양자가 되어 스키피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Ⅰ』,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의 둘째 아들은 소(소) 스키피오라고 불리는 인물인데 제3차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카르타고를 최종적으로 멸망시킨 인물이지요. 그는 키케로가 쓴 『우정에 대하여』와 『노년에 대하여』라는 책에도 주연급으로 등장할 만큼 유명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문학 작품의 사례를 통해 '간통 같은 독서'의 일면을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앞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플로베르와 톨스토이는 '간통 문학'의 대표작을 쓴 작가라는 점에서도 남다른 문학적 연관성을 갖는 작가이지요. 많은 문학 전공자들이『마담 보바리』(1857년)와 『안나 카레니나』(1873년)를 두고 숱한 비교 분석을 했을 테고요. 그렇다면 혹시 톨스토이가 쓴『전쟁과 평화』(1869년) 속에도『마담 보바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요? 톨스토이가 워낙에 플로베르의 작품을 좋아했다고 하니까 말이지요. 작가들 사이에 일어났던 '내밀한 교감'을 어찌 일반 독자가 시시콜콜 다 알아챌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마담 보바리』의 다음 대목을 읽으면 두 작가 사이의 '간통 현장'을 목격한 듯한 짜릿한 흥분을 억누르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톨스토이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그 유명한 '마차 장면'에 영향을 받아서 『전쟁과 평화』의 일부를 썼을까요?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구상한 것은 1856년이었습니다. 플로베르가 5년 동안의 분투 끝에 마침내 『마담 보바리』를 탈고한 게 그해 봄이었습니다. 그러니 두 작가가 교감했을 개연성은 그만큼 컸던 셈이지요. 이쯤에서 『마담 보바리』의 명장면 속으로 곧장 들어가 보지요.



(영화 『마담 보바리』의 한 장면)


 

파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 걸요


성당 앞 광장에는 어린애가 하나 놀고 있었다.

 

「마차 한 대만 불러다오!」

 

어린애는 카트르 방 거리로 총알처럼 뛰어갔다. 그러자 그들은 한동안 얼굴을 마주한 채 어색한 기분이 되어 서 있었다.

 

「아, ……레옹! ……. 정말 …… 몰라요 …… 어쩌면 좋아요 ……!」

 

그녀는 선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건 아주 못할 짓이에요, 알아요?」

 

「뭐가 어때서요?」하고 서기는 되물었다. 「파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 걸요!」

 

그러자 이 한마디 말이 거역할 수 없는 논거인 양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353∼354쪽)



뒤이어 마차가 나타나고, 레옹과 엠마는 그 유명한 '마차 안에서의 한낮의 질주'를 벌이지요. 사실 방금 인용한 문장 보다는 곧이어 이어지는 장면이 훨씬 더 압권입니다. 

 

「가시더라도 북쪽 문으로 나가주세요!」하고 아직도 문간에 서 있던 성당지기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부활, 최후의 심판, 낙원, 다윗왕, 그리고 지옥불 속의 저주받은 자들을 보실 수 있으니까요」

 

「나리, 어디로 모실깝쇼?」하고 마부가 물었다.

 

「아무데라도 좋아!」하고 레옹은 엠마를 마차 안에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355쪽)

 

 * 강조한 부분은 번역문을 따랐다. 곧 있을 '엠마와 레옹의 마차 안에서의 정사(情事)'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그리고 마차는 달리기 시작하지요. '그후로도 오랫동안' 계속 달리지요. 마부가 멈출 때마다, 마차 안에서는 "계속 가요!" 라는 대답만 들려옵니다. 마차가 세 번째로 멈추었을 때도 마부는 "그냥 가라니까! 라는 더 거센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마부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목마름과 피로와 근심으로 거의 울상이 되어' 마차를 몰았습니다. 마차의 질주 장면을 원문 그대로 설명하자면 아마도 이 영상이 5분 이상은 넉넉하게 늘어날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마차는 이쯤에서 세우고 다시 『전쟁과 평화』의 배경인 러시아의 어느 한적한 시골로 옮겨가보지요.

 

여기서 등장하는 니꼴라이는 여주인공 나탸샤의 오빠이자 '로스토프 노백작 집안'의 맏아들이지요. 그는 순박한 다혈질의 청년인데, 군대에 입대한 뒤 '도시 생활'을 겪고 나서는 차츰 '도회지 사람'으로 변모합니다. 심지어 그는 '유부녀'를 능수능란하게 유혹할 정도로 점점 더 까진(?) 모습을 보여주지요. 이 점이 바로 '파리 물을 먹은 레옹'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레옹 또한 엠마를 처음 만났을 땐 순진하기 그지 없었으나 '파리 생활'을 겪은 뒤 3년 만에 나타난 모습에선 어느새 '선수'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시골마을 용빌로 돌아가야 할 유부녀인 보바리 부인을 한낮에 '마차'에 태울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지요.

 

이제부턴 톨스토이가 묘사하는 '니콜라이의 유부녀 유혹 장면'으로 시선을 옮겨 보지요.

 

서울에서는 보통인데...

 

까쩨리나 뻬뜨로브나가 왈츠와 에꼬쎄즈를 타기 시작하고 댄스가 시작되자 니꼴라이는 그의 민첩한 동작으로 더욱더 이곳의 상류 사회를 매료시키고 말았다. 그는 독특하고 분방한 댄스로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니꼴라이 자신도 이날 밤의 자기 춤솜씨에 약간 놀랐다. 그는 모스크바에서는 이렇게 추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이와 같이 너무나 분방한 춤 태도는 버릇없는 악취미라고까지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모든 사람을 무엇인가 기발한 것으로, 서울에서는 보통인데 시골에 사는 자기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밤새도록 니꼴라이는 현의 어느 관리의 아내이자 파란 눈의 살이 찐 귀여운 금발 미인에게 가장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남의 아내는 자기를 위해서 만들어져 있다는 신멋이 든 젊은이들의 순진한 신념으로, 니꼴라이는 이 부인으로부터 떠나지 않고 남편에 대해서도 마음을 터놓고, 그러면서도 속에 무엇인가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 즉 니꼴라이와 그 남편의 아내는 서로 마음이 잘 맞을 것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말로는 하지 않지만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 그러나 파티가 끝날 무렵에 아내 얼굴이 점점 빨갛게 상기되어 생기를 띠어 가자 남편의 얼굴은 더욱더 침울하고 창백해졌다.(1293-1294쪽)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독서를 통해 많은 작가들이 서로 몰래 주고받은 교감의 현장들을 발견하는 일은 놀랍도록 짜릿한 쾌감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때때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책들 사이에 벌어졌을 간통에 대한 의심이 구체적인 물증 확보로까지 연결되지 않을 땐 아쉬움을 달래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경험들이 자꾸만 새로운 책을 찾아 읽도록 부추기는 원동력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영상을 시청하시는 독자들께서도 눈 먼 보르헤스가 적극 권장했다는 '간통 같은 독서'를 자주 체험해 보시길 바라며 이번 영상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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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2-27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들로부터 얻은 지식이 아무리 많더라도 결국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몽테뉴의 말이 특별히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앞뒤에 있는 다른 글들도 흥미진진해서 끝까지 정독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oren 2023-02-27 18:44   좋아요 1 | URL
남의 지식을 내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를 <불씨 이야기>를 통해 설명한 건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대목이었습니다. 저는 그 얘기가 몽테뉴가 맨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인 줄로만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몽테뉴 수상록』을 세 번 읽었을 때까지도요!) 나중에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를 읽다가 그 대목이 툭 튀어나오길래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답니다. 사실 그 책은 책값이 무려 43,000원이나 하길래 살까 말까를 무척이나 망설이다가 가까스로 구입한 책이었는데, 나중에 그 책을 번역한 분(허승일 교수)한테 강의를 들었음직한 친구 녀석한데 물어봤더랬습니다. ˝그분 어떤 분이셔?˝ 했더니, 한 마디로 ‘꼴통 보수지‘라는 대답을 들려주더군요. 저 책을 볼 때마다 저는 비싼 책값과 친구의 대답이 떠오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