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를 소개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거기서 삶을 마감한 피렌체 토박이였습니다. 그래서 피렌체의 역사는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사상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지요.

 

피렌체는 봄의 도시이자 꽃의 도시입니다. 토스카나 주의 북방에 위치하여 북으로는 알바노 산맥을 끼고, 서쪽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아르노 강이 피렌체를 적시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고대 로마 시대에는 에트루리아가 세력을 떨치던 곳인데, 수세기 동안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대한 도시국가였던 그들도 결국 BC 4세기 무렵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말지요.

 

피렌체는 흔히 '세계 최초의 근대국가'라는 이름이 따라붙습니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시절은 인간의 정신이 바야흐로 '중세의 미망'에서 막 깨어나던 시기였습니다. 고대 로마가 멸망하고 난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확고하게 다져 놓은 '그리스도교가 모든 삶을 지배하는 세계관'에 비로소 사람들이 질문을 품고 강력하게 반기를 들던 때였습니다. 르네상스에 도화선을 붙인 건 페트라르카였습니다. 그가 나타나기 전에 단테가 마중물을 부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지요. 단테는 처음으로 '고대'를 문화생활의 전면에 힘차게 밀어넣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페트라르카는 고전들을 예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중세 학자들이 고전들을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통합하려 애썼지만, 그는 고대의 시나 역사, 철학 등을 그 자체로 고대 문명의 '빛나는 본보기'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보는 그리스와 로마의 세계관이 '1천 년 동안이나' 맥이 끊겨 있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도 페트라르카였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그런 시대적 분위기를 이어받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니 온갖 고전 작가와 작품들이 그를 자극했음은 당연했습니다. 1486년 그의 나이 열일곱이던 때, 그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제본했는데, 그 우연한 일 때문에 그는 리비우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또한 그는 뛰어난 문헌학자였던 포조 브라치올리니가 1417년에 발견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직접 필사할 정도로 고대 로마의 철학에 매료되었습니다. 바티칸 국립 도서관에 지금도 남아 있는 그 책의 필사본이 바로 마키아벨리가 쓴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었으니 말이지요.

 

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쓸 때만 하더라도 이탈리아는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피렌체 공국도 공화정에서 메디치 가문의 지배로, 다시 소델리니 정권에서 메디치 가문의 재집권으로 여러 차례 정치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주변의 강대국들인 프랑스, 에스파냐,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침입도 잦았습니다. 복잡하게 전개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동향을 예민한 감각으로 살필 수 있게 만든 건 그가 피렌체 정청에서 내정과 군사를 담당하는 서기관으로 일하게 되면서 '정치 현장'을 몸소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직접 외교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 로마 교황청 등으로 동분서주했으며, 14년 동안 공화정부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체사레 보르자와 만나기도 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궁정에서 머물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가 열정을 쏟은 분야는 '군사위원회'의 사무였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피렌체는 군사력을 '용병부대'에 의존했는데, 그는 언제나 '자국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창설할 것을 끊임없이 주창했습니다.

 

그가 『군주론』을 집필한 동기는 소델리니 정권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자신의 면직이었습니다. 18년 만에 메디치가가 정권을 되찾게 되자 새 정부는 마키아벨리를 모든 직위에서 해임하고 피렌체로부터 추방시켰습니다. 로마 근교의 허름한 집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서재 책상 앞에서 고대 로마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직접 겪고 관찰해 왔던 현실 정치와 접목시키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지리멸렬한 조국의 현실과 찬란했던 고대 로마 공화정과의 간극이 너무나 컸고,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구체화함으로써 국가를 위해 훌륭한 타개책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여 쓴 책은 『로마사론』, 일명『리비우스에 관한 담론』이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그는 로마 공화정의 온갖 훌륭한 법률과 제도와 군대와 인물들을 무수히 살폈습니다. 또한 로마가 멸망한 이후 여러 나라로 쪼개진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현실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깊이 생각한 온갖 책략들을 현실에 투영시키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활약할 무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군주론』이라는 더없이 솔직하고도 대담한 책을 써서 권력을 잡고 있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 전하를 위해 바쳤습니다. 그 짧은 책에는 국가의 성격, 그 종류, 유지 방법, 상실 이유 등에 대해 전례가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지요. '권력'이라는 마신(魔神)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 책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합리주의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 정치가의 냉혹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이 탄생했던 것이지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국가'의 개념이나 '정치학'의 원리는 상당 부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철학에 뿌리를 둔 것이었지만, '근대 국가의 탄생'을 재촉시킨 마키아벨리즘이 오래된 전통적 국가관을 한 순간에 쓸데 없는 소리에 가깝도록 몰아부친 셈이었습니다. 이 책은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죽은 지 5년이 지난 1532년에 인쇄된 이 책은 로마 교황청이 서둘러 금서에 올릴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했습니다. 혹자가 말한 대로,『군주론』이 겪은 역사가 그대로 유럽 정치의 역사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자국 군대'를 강화하고, 무력을 앞세워 이웃 약소국가들을 강제로 삼키기 시작하였고, 서유럽 열강들은 멀리 아프리카와 아시아에까지 손길을 뻗쳐 식민지 확대에 열을 올렸습니다. 모스크바까지 점령했던 나폴레옹에 뒤이어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 정권이 등장하기에 이르렀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까지 겪었던 것도 마키아벨리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마키아벨리의 영향은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군비 경쟁과 군사력의 극대화에 기반한 열강들의 세력 다툼은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지나친 확대 해석'일 뿐입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는 얘기이지요. 『군주론』의 끝부분만 보더라도 그런 증거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야만적 지배는 누구든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명예 높은 당신 일가가 정의의 싸움을 일으킬 때의 그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이 책무를 담당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당신이 내건 기치 아래서 조국이 고귀하게 빛을 발하고, 당신의 편달 아래서 페트라르카의 그 말이 현실이 될 수 있기를. 미덕은 광포에 대하여 무기로써 맞서지 않느니. 싸움은 조용히 그만두라."고 썼으니 말이지요.

 

『군주론』과 그 책의 저자인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는 수많은 학자들 사이에는 오랫동안 논쟁 거리였습니다. 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들까지 일반 독자들이 살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평범한 독자들이 마키아벨리와『군주론』을 둘러싼 오해를 쉽게(?)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쓴『로마사론』을『군주론』과 함께 읽는 일입니다. 오랜 시간의 연구와 노력끝에 완성한 『로마사론』을 읽어보면 마키아벨리의 참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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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놀랄만큼 성실하게 티투스 리비우스의『로마사』를 공부했습니다. 아쉽게도 리비우스의 방대하고도 탁월한 역사서인『로마사』는 지금 온전히 전해지지 않습니다. 마키아벨리와 리비우스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서로 직접 비교할 수 없는 아쉬움은 있지만, 마키아벨리의『로마사론』만 읽어도 그의 진면목은 물론 리비우스의 위대함을 동시에 느끼기에 별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로마제국쇠망사』라는 불후의 대작을 남긴 에드워드 기번이 마키아벨리를 그토록 칭송했던 이유 또한 그가 남긴『로마사론』때문이었지요.

 

마키아벨리가 쓴『로마사론』은 전3권(제1권 60장, 제2권 33장, 제3권 49장)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입니다. 그 책의 핵심 주제는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화정 체제의 수립 및 발전 전략'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 『군주론』에서 군주정 체제에 관한 이론과 책략들을 충분히 서술했기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전공 분야인 '로마 공화정'을 바탕으로 '공화정 체제의 우수성'과 '저해 요인 및 발전 전략'을 더없이 치밀하고도 풍성하게 펼쳐놓을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역사를 이끈 숱한 인물들에 대해서라면 마치 그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훤히 꿰뚫는 듯한 마키아벨리의 명민(明敏)한 관찰은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숱한 장(章)에서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인용하는 대목들은 마키아벨리의 칼날처럼 예리한 분석 포인트와 절묘하게 결합됩니다. 수많은 군대지휘관들의 촌철살인과 같은 '명연설'은 전장의 생생한 현실로 다시금 독자들을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지요.

 

명성을 얻는 법, 평판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법, 위험에 대처하는 법,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법, 상황에 대한 오판이 초래하는 영향 등은 훌륭한 처세술을 전수받는 느낌도 갖게 만듭니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긴 장인 <음모에 대하여>를 읽으면 마치 제갈공명을 앞에 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군대의 규율과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군주 자신의 태만과 통찰력 부족을 한탄해야 할 때는 언제인지, 나가서 싸울 것이냐 적을 끌어들여서 싸울 것이냐의 선택 문제, 진지의 구축과 요새의 필요성, 대포의 효용 등등은『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를 훨씬 더 능가할 정도여서, 그가 얼마나 탁월한 전술가요 책략가인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로마사론』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핵심은 '공화정에 대한 뜨거운 옹호'와 '민중의 자유 수호'였습니다. <민중의 잘못은 군주의 잘못에서 생긴다>는 주장이나, '백성의 소리가 곧 하늘의 소리'라는 표현을 마주하면 그가 과연 『군주론』을 쓴 그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로마가 발전을 거듭했던 이유도 훌륭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 집정관으로 뽑히는 구조와 민중의 권리를 강력하게 보호할 수 있었던 호민관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보았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사령관의 지휘권 연장'을 로마 공화정 붕괴의 '시발점'으로 보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탁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기 1년의 두 집정관 체제가 '현장의 필요성' 때문에 '지휘권 연장'을 편법으로 용인함으로써 그 지휘관에게 맹목적 충성을 다짐하는 장교들이 등장하게 되고, 결국 군대의 사병화가 시작되었다고 본 것이지요. 마리우스와 술라가 집정관을 맡게 된 이후에 나타난 결과는 결국 참혹한 내전이었습니다.

 

그 이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경쟁하게 되었고, 소(小) 카토나 브루투스와 같은 고결한 인물들이 나타나 '공화정 수호'를 위해 분기했지만, 끝내 카이사르에게 무너지고 만 것도 결국 시대가 너무 타락했기 때문이었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진단이었습니다. 카이사르야말로 마키아벨리에게는 '로마 인민의 자유'를 끝장내고 로마를 '노예 상태'로 전락시킨 원흉이었던 셈이었지요.

 

"이 카이사르가 로마에서 첫 번째 참주가 되고, 그에 따라 로마의 자유는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게 되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어찌보면 '권력의 진실'을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합리적이고 덕성 높은 사람이었으며, 인간을 미워하지도 않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낸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권모술수와 음모와 책략의 대가로만 인식되는 게 현실이지요. 마키아벨리의 참모습을 발견한 많은 전공자들이 그 점에 대해 억울해 해도 충분한, 그런 인물이 바로 마키아벨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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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TV를 별로 시청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미스터 트롯 열풍이 대단한 듯하다.

 

나와 거의 똑같은 날에 구독자 1,000명을 돌파한 어떤 유튜버 분은 <정동원의 인기 비결 3가지> 영상 하나가 대히트를 치는 바람에 순식간에 구독자 8,000명을 돌파했다. 요즘 그 유튜버 분을 흉내내는 사람들이 참 많아졌다. <신라의 달밤>을 부른 조명섭 씨를 소개하는 유튜버 분들도 부쩍 늘어났다. 고민고민 끝에 나도 하나 만들어봤다.

 

<막걸리 한 잔>, <찐이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노래로 오랜 세월 동안 겪었던 무명 가수의 설움을 단번에 날려버린 가수 영탁이 마침 고교 후배여서, 그런 인연에 기대어 만들어본 영상이다.

 

이 영상이 업로드 하루 만에 조회수 1,000회를 가뿐하게 넘기는 걸 보면, 대중들의 인기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걸 절감한다. 동영상 내용 중에 모교를 너무 미화하는 듯한 내용이 담기는 바람에 '자뻑이 흠'이라는 댓글도 받았는데, 기분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내가 봐도 조금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게 보는 사물들도 남들이 보면 도리어 기분 나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그 댓글에 공감한다는 댓글을 달아드렸다. 진짜로 공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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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6-25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영상을 재밌게 봤습니다. 이렇게 안동과 영탁 가수를 연결해서 잘 설명해 주신 오렌 님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싶네요.
굿 아이디어였어요. 안동의 자랑은 곧 우리나라의 자랑으로 들었습니다. 베리 굿!!! 입니당~~

oren 2020-06-29 16:37   좋아요 1 | URL
영상 재미있게 보셨나요?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에 비해 이런 영상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어요. 뜻밖에도,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 만들기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네요. 지금도 조지 오웰의 <1984>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드는데, 힘들어 죽을 지경입니다요. ㅎㅎ
 

 

4년 전쯤에 우연히 발견한 글 한 편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붉은돼지 님께서 올리신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에 관한 글이었다. 그 글을 읽고 불현듯 아토스에 대한 기억들이 몇몇 떠올라, 아토스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이 책 저 책을 마구 뒤져봤더니 놀랍게도 무려 일곱 권에서 '아토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한 때는 그저 아토스가 무슨 자동차 이름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플루타르코스가 쓴 『수다에 관하여』라는 책에도 아토스가 언급되어 있다. 사진에서는 그 책이 빠져있다.)

 

그 때 쓴 글을 바탕으로 아토스에 대한 영상을 하나 만들어봤다. 그런데 그 영상을 악전고투 끝에 다 만들고 나서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난 뒤 영상 공개 시간까지 예약해 둔 사이에, 저작권 침해 경고가 날라왔다. 자세히 알고 보니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주제가인 '조르바의 춤'이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기껏 만들어 놓은 영상을 다시 해체하고 수정하는데 꼬박 하루가 더 걸렸다. 영화 《300》과 《제국의 부활》에 이어 《그리스인 조르바》로 영상의 대미를 장식하려던 내 야무진 꿈은 저작권이라는 드높은 장벽 앞에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아직도 남아 있다. 유튜브 영상들을 조회해 보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그 멋진 장면과 음악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왜 하필 내가 만든 영상에 담은 2분 남짓한 영상만이 문제라는 것인가. 아무튼 그 영상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담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 여기서라도 다시 올려놓아야 겠다.

 

 

맨 처음 영상은 이렇다. 그 멋진 《조르바의 춤》과 음악이 등장해야 할 대목에 그게 안 나온다!

https://youtu.be/u-U19KvREPw

 

 

두 번째 영상은 '아토스'를 담은 수많은 영상 중에 하나 골라본 것이다.

 

세 번째 영상은 흑백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하이라이트다.

이토록 멋진 영상과 음악을 내 영상에 담지 못한 아쉬움이 참으로 크다.

 

 

네 번째 영상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소개하는 어느 북튜버의 최신 영상이다.

아직은 채널의 구독자수도 얼마 되지 않고 영상도 몇 개 없지만,

꼼꼼한 영상 제작과 똑 부러지는 나래이션 때문에 즐겨 찾는 채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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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필사하기'가 유행처럼 번지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필사하기 좋은 책들이 필사 노트와 함께 팔리기도 했었다. 나도 이미 오래 전부터 필사의 유익함을 체험한 터여서 내심 그런 분위기가 반가웠더랬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밑줄 하나 긋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게으른 태도인가. 또한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도 그 책 속에 담긴 문장들을 단 한 줄도 옮겨 쓰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무심한 태도인가.

 

나는 책을 읽는 동안에 노트에 뭐라도 좀 끄적거려야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근사한 대학 노트를 마련하는 걸 무슨 낙으로 삼을 정도였다. 아래 사진만 봐도 그렇다. 이 노트는 군복무 시절에 PX에서 구입했는데, 합성수지 커버에 중간 중간에 색깔이 다른 컬러 내지도 딸려 있는 걸 보면 (병사 월급에) 돈푼깨나 줬던 듯하다.



이 노트를 보노라면 무슨 습작이라도 한 권 쓸 것처럼 자못 거창하게 어쩌구 저쩌구 장식을 해 놓았지만, 사실 그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면 별다른 건 없다. 그저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남긴 잡다한 흔적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게 어디랴 싶긴 하다. 만약에 내가 이런 독서 노트조차 남겨 놓지 않았더라면 내가 까뮈를 1984년 9월 15일에 만났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또한 그해 9월에 읽었던 몽테뉴의 수상록이 내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알라딘 서재에 터를 잡고 이런 저런 리뷰나 페이퍼를 쓰기 시작했을 때에도 당연히(!) '독서 노트'를 새로 마련했었다. 그런데 그 때는 독서노트를 한꺼번에 좀 많이 샀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책을 읽겠노라 다짐했기 때문에 독서노트 몇 권쯤은 금방 채울 듯했고, 여러 해 동안 책을 읽자면 다량의 독서노트가 필요할 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한꺼번에 왕창 구입한 독서 노트를 쓴 지 여러 해가 지나자 차츰 독서 노트에 책 속의 내용을 옮겨쓰는 분량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헀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독서 노트를 디지털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독서 노트도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불편해졌다. 책 속의 문장들을 독서 노트에 옮겨 적고, 그 문장들 사이로 내 생각을 마음껏 적어 넣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어느 정도 분량이 쌓이기 시작하니 도무지 '검색'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간신히 내가 원하는 문장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일일이 다시 타이핑을 해야 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습관화되었던 '아날로그 필사'도 차츰 '디지털 필사'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제서야 겨우 깨달은 사실이지만, 아날로그 독서 노트는 어느덧 구시대의 유물로 변했다. 한때는 이 노트 속에 담긴 내용들까지 몽땅 디지털화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분량이 너무 많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새로운 책들도 읽어야 했고, 새롭게 읽은 책 속에 담긴 좋은 문장들도 부지런히 타이핑해서 갈무리하기 벅찼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해 왔던 독서 노트들도 차츰 내게서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말기를! 또한 너희들을 불구덩이에 던져 넣을 일은 결코 없을 테니 너무 겁먹지도 말기를.





지난 연휴 동안에 <밑줄긋기와 필사에 대하여>라는 동영상을 하나 만들면서 그 동안 내가 필사에 힘을 기울였던 책들을 한꺼번에 불러 내서 책장 앞에 쌓아 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발췌 필사를 마무리한 책이 대략 서른 여섯 권이고, 필사를 절반 혹은 1/3쯤 진행했던 책들도 열 권 남짓 되었다. 이 책들의 쪽수를 다 더해봤더니 무려 29,341쪽이나 되었다!(필사를 마친 책이 22,222쪽, 필사를 중도 포기한 책이 7,119쪽이었다.)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고 난 뒤에 유튜브 검색창에서 '필사'를 검색해 봤더니 의외로 필사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깜짝 놀랐다. 감성이 중요시되는 흐름 때문인지 펜으로 또박또박 써나가는 필사 영상이 의외로 어필하는 듯하다. 내가 독서 노트를 버리고 디지털 필사로 갈아탄 것이 도리어 시대 흐름에 역행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는 더이상 아날로그 필사로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을.



동영상 링크 주소는 https://youtu.be/PGOAnsodd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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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5-05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사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되는지는 몰라도 그래도 뭔가를 적으며 읽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은 벌써 제 기억에서 차이가 나더라구요^^
그 많은 기록의 산물이 oren님을 유투버로 이끌지않았나 생각됩니다^^
다시 한번 감탄합니다**

oren 2020-05-05 13:51   좋아요 1 | URL
필사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다기 보다는 아날로그 필사에서 디지털 필사로 ‘진화‘했다고 보는 게 더 좋을 듯해요. 물론 ‘필사‘라는 말 그대로, 펜을 들고 종이에 꾹꾹 눌러 쓰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필사가 맞겠지만, 베껴쓰기에 방점을 찍게 되면 타이핑해서 옮겨 적는 행위도 필사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지요. 이 시대 최고의 독서가인 알베르토 망겔 역시 ‘디지털 필사‘를 강조했고요.

저는 오늘에서야 문득 ‘필사의 놀라운 힘‘을 새삼 깨닫게 되었답니다. 필사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표현력, 어휘력, 설득력‘ 등이 향상되었다는 걸 알았거든요. <필사 인생 12년>이라는 타이틀로 영상을 만든 김시현 작가님의 영상을 보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저는 필사 경력이 17년씩이나 되니, 그 세월 동안 천재 작가들의 문장을 끊임없이 베끼고, 교정하면서 다시 읽고, 갈무리한 필사 내용을 수시로 꺼내 반복해서 읽고 하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그런 능력들이 향상된 것일 테지요. 몽테뉴, 헨리 데이빗 소로우, 쇼펜하우어, 니체, 호메로스, 플루타르코스, 오비디우스, 키케로, 애덤 스미스, 세르반테스, 톨스토이, 베르그송 등등을 만난 것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인데, 그들의 문장을 베끼고 다시 읽고 하는 사이에 그들의 멋진 문장력까지도 알게 모르게 모방하게 되니, 필사만큼 좋은 독서법도 드물지 않나 생각합니다.

참고로, 김시현 작가님의 <필사 인생 12년> 동영상도 한번 살펴보세요~
https://youtu.be/G3WYhlO5_Bs

막시무스 2020-05-05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첩과 함께 백두산, 이집트 여행!
너무 인상적입니다! 이번 영상도 잘 보았고 많이 배웠어요!ㅎ 감사합니다!

oren 2020-05-05 13:48   좋아요 0 | URL
산행수첩에는 정말 많은 땀이 베어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는 순간을 넘어 탁 트인 능선의 바위 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행수첩‘을 꺼내 자그마한 기록을 남기는 기쁨을 쉽게 포기하진 못하겠더라구요.^^ 제 영상 애시청해 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0-05-06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뛰는 놈 위에 날으시는 분이십니당~~
저도 한때 노트에 열심히 필사했었는데... 요즘은 가끔 노트북으로 좋은 글을 옮겨 적습니다.
볼펜보다 자판이 편해서요. 그리고 오디오북을 애용하고 있어요.
오렌 님의 유튜브를 들을 때도 있어요. 눈이 피로하니 귀를 사용하게 되네요.
의외로 듣는 재미가 있어요. 여전히 종이책을 좋아합니다만...

오렌 님의 글씨체를 보니 주관이 뚜렷하고 의지가 강하고 바른생활 아저씨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봤는지 모르겠네요.
느낌이 그렇습니다. ㅋ

oren 2020-05-09 15:28   좋아요 1 | URL
페크 님께서도 필사를 좋아하시는 줄은 예전부터 잘 알고 았었지요.^^
책 속의 좋은 문장들을 정말 많이 알고 계시는 분 가운데 한 분이 페크 님이셨으니까요.
밑줄긋기와 필사는 어쩌면 <능동적인 독서>의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늘 해 왔던 숙제가 바로 ‘어디서 어디까지 베껴 오라‘는 거였으니까 말이지요.
제 글씨체는 정성들여 쓸 때는 봐줄 만하다 싶어도, 바쁘게 대충 쓰면 이내 흐트러지고 마는 듯해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답니다. 잘 차려 입었던 옷도 벗어놓으면 꼴사납게 변하듯,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아무튼 제 글씨체도 좋게 봐주시고, 제 영상까지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페크 님~~

초록별 2020-05-10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유튜브 시청 잘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블로그도 하시나요?

oren 2020-05-10 22: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초록별 님~
블로그는 알라딘 서재 블로그가 메인입니다.^^
네이버 블로그도 있긴 하지만, 최소한으로 이용하고 있답니다.
https://blog.naver.com/ojcojj
유튜브에 올리는 제 영상 봐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marine 2020-06-15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씨를 잘 못 써서 필사 대신 자판으로 치는데 문제는 손가락이 아프고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점입니다.
어려운 책도 옮겨 적다 보면 이해가 확실히 잘 되는 것 같긴 한데 중요한 부분만 옮기는데도 시간이 너무 걸려 그 시간에 책을 더 읽는 게 나은가 늘 고민이 됩니다.

oren 2020-06-20 00:21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그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필사‘는 예로부터 아주 고된 작업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그 고된 일을 통해서 뛰어난 작가의 문장들이 내 몸 속으로 조금씩 들어와 앉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 https://youtu.be/8-5vQ5yl3CU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 ☞ https://youtu.be/vKy0n0XDJMM

마담 보바리, 플로베르 ☞ https://youtu.be/awC0tN9mWuU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 https://youtu.be/MTUYTbjXDbA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700명을 넘었는데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내 시야에는 어느새 스타트업 유튜버들이 차츰 사라지고, 구독자 7,000명 혹은 70,000명을 거느린 대형 유튜버들이 더 자주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한때는 구독자가 100명만 되었으면, 혹은 500명만 되었으면 했는데...

 

유튜브 동영상 하나에 좋아요, 댓글이 순식간에 100개 혹은 200개씩 달리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댓글 다는 일이 어느새 밀린 숙제하듯 일과가 되고 있다. 그래도 구독자 한 사람 늘리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어려운 시절'을 생각해서 댓글 하나 소홀히 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다.

 

유튜브 이용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급증세를 이어갈 듯하다. 비대면 활동이 어느새 일상화된 탓도 그런 추세에 일조하는 듯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1인 1채널 시대가 도래할 듯한 분위기마저 감지된다.(1인 다채널 소유자도 많기 때문에 결국에는 인구수 만큼 유튜브 채널이 만들어질 듯하다.)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지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았지만, 초보 유튜버가 어설픈 눈으로 바라보더라도 신생 유튜버들은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고 있는 게 확실하다. 특히나 직장에서 막 은퇴하기 시작한 50대, 60대의 활동이 유독 도드라지는 느낌도 받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이어지는 유튜브 진입 행렬을 보노라면 마치 노아의 방주를 보는 듯하다. 이 거대한 배에 올라타지 않으면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다.

 

유튜브 동영상을 올리고 나면 잠깐씩 짬을 내서 최신 동영상에 대한 홍보를 하러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게 하나 있다. 알라딘 서재는 어느새 왜소해도 너무 왜소해졌구나, 하는 느낌이다. 가령, 네이버 검색창에서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를 입력하고 '블로그'를 선택해서 검색하면, 네이버 블로그 글이 100개 정도 나올 때, 알라딘 서재글이 겨우 한둘 정도가 검색된다. 다른 검색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내가 최근에 동영상으로 만들었던 작품들을 홍보하기 위해 [마담 보바리, 플로베르]를 검색하거나,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을 검색했을 때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극히 단편적인 일면만 보고 <알라딘 서재>가 너무 왜소해 졌다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업로드한 '고전 명작들'을 네이버에서 검색했을 때의 결과가 이상하게도 알라딘에 불리한 쪽으로 왜곡되어 나타났다고 믿고 싶은 생각마저 없어졌다. 똑같은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네이버 블로그 글이 100건 정도 검색될 때 알라딘 서재글이 겨우 한둘 정도로 검색되는데, 거기에 무슨 검색 과정의 왜곡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더군다나 내가 예전에 올렸던 알라딘 서재글은 어김없이(!) 또박또박 검색되어 올라왔었다.

 

물론 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알라딘이 망하는 거다. 지난 17년 동안 내가 써 왔던 글은 대부분 알라딘에 저장해 놓고 있는데, 이 글들이 통째로 날아간다면 그보다 더 억울한 일도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계속 만들어 올릴 것 같다. 독자들의 반응조차 희미할 정도로 외진 플랫폼에서 계속 글을 쓰는 것보다는 세계 최고의 플랫폼에 이미 읽은 책들을 영상으로 소개하는 일이 훨씬 더 보람있고 유익할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뒤따른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고...

 

아이러니하게도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나서 내 서재 방문자수가 도리어 늘어나기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에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올릴 때마다 '알라딘 서재 링크글'을 달기 때문일까? 아무튼 알라딘 서재가 오래 오래 살아남아서 내가 이 공간에 끄적거려 놓았던 글마저 유튜브라는 대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나는 유튜브라는 새로운 '노아의 방주'에 부지런히 내 글을 옮겨 실어야겠다. 텍스트로 만들어 놓은 컨텐츠를 옮겨 싣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인 '영상화 작업'이 여전히 힘들긴 하겠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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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3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20-04-23 15:11   좋아요 1 | URL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1,000명 이상 & 최근 1년 누적 시청시간 4,000시간 이상>이 되어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답니다. 수익 창출은 반드시 구독자 수와 연동되는 게 아니라, 내 채널의 영상에 달린 광고 시청 시간이 좌우하는데, 구독자수가 적어도 헤비 유저들이 자주 & 오래 시청해 주면 꽤 쏠쏠한 수익이 나기도 하고, 뜨네기 구독자들이 많은 채널인 데다가 짧은 영상들이 많으면 예상밖으로 저조한 수익이 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까지는 <채널 승인 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단계라서 ‘수익‘을 생각할 때는 아닙니다만, 중장기적으로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 하게 되면, 구독자 수, 시청 시간, 수익 창출 등이 자연스레 따라오리라 믿고(!), 최대한 양질의 영상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답니다.. 대략 매주 1편씩만 올리더라도, 1년이면 40개 이상은 올릴 수 있고, 이런 식으로 5년 내지 10년 쌓이면 수백 개의 책 소개 동영상을 만들 수 있을 테니,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책을 읽은 보람과 책을 소개하는 보람을 동시에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답니다.

알라딘은 제게는 늘 고향 같은 아늑함이 느껴지는 공간이라, 여기에 글을 올리는 걸 소홀히 한다는 건 마치 고향에서 멀어지는 듯한 기분까지 드는데, 바쁜 도시 생활을 하다가도 문득 고향이 그리우면 언제든 달려가듯이, 언제라도 맘 속에 담아 놓고, 수시로 들락거릴 껍니다.!! 애정이 담뿍 담긴 댓글과 응원, 정말 고맙습니다.^^


stella.K 2020-04-23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합니다. 사람의 욕심이란 게 끝이 없긴하죠.
뭐 조만간 거대 유투버되실 것 같은데요 뭐.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오렌님 걱정 하시는 거 저도 동감입니다만
알라딘에서 책 사 보는 사람이 없어지면 모를까
쉽게 사이트가 없어질까 싶기도 하네요.
단지 서재가 좀 활성화가 됐으면 좋겠는데
저부터도 드문드문 글을 올리는지라...ㅠ

지난 번에 가르쳐 주셨던 로맹가리 부분 잘 들었습니다.
소설 책 잘 안 읽는 오렌님이 전작하실 정도면 로맹 가리는 정말 대단한 소설가죠.
로맹 가리의 오렌님이 분석은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렌님의 유튜브가 번창하실기 빌겠습니다.^^

oren 2020-04-23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 플랫폼이 너무 고색창연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마치 고향의 마을 입구를 오래도록 지키고 서 있는 느티나무를 닮았다고나 할까요? 사시사철, 여름이나 겨울이나 한결같이 제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조금씩 늙어가면서 나뭇가지가 차츰 성기고, 여기저기 부러진 가지들도 엿보이고, 보기에 안쓰러울 때가 많은, 그런 느낌이 자꾸만 듭니다.

알라딘이 기본적으로는 ‘책을 파는 인터넷 서점‘이긴 하지만, 다양한 아이디어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꽉 붙들어 매어둘 수도 있는 멋진 공간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이제는 날이 갈수록 <알라딘 서재>는 그냥 방치하는 듯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조차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TV 등을 만들어 발빠르게 광고 수익을 쉐어하는데, 알라딘은 양질의 컨텐츠를 무한정 제공하는 헤비 유저들에게조차 일말의 동기부여가 되는 정책들을 거의 만들어내지 못한 채 그저 무신경한 듯합니다. 아무쪼록 알라딘이 꿋꿋이 살아 남아서, 아무 때라도 만나보고픈 이웃들과 온갖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님의 응원과 격려, 잊지 않을께요.^^

CREBBP 2020-05-31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곧 1000 명 돌파하면 적지만 광고수입도 들어오겠네요. 아무리 수익 구조가 적다 고 해도 애드온 수입 100 원 200원규모 보다는 크지 않을까 싶어요. 30원 같은 애드온 으로도 기쁜 걸 생각하면 첫 광고 수입이 생기는 시점도 역사적으로 중요기점이 될 듯해요.

oren 2020-05-31 18:41   좋아요 0 | URL
CREBBP 님, 반갑습니다. 대망의(?) 구독자 1,000명 돌파는 지난주에 이뤄졌고요, 광고 수입까지 얻기 위해서는 ‘최근 1년 누적 시청시간 4,000시간‘도 충족시켜야 한답니다. 아직은 누적시청시간이 2,000 시간 남짓밖에 되지 않아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해요. 꾸준히 좋은 영상을 만들어 올리다 보면 구독자와 시청시간은 계속 늘어나리라 믿고 있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