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웨이에 영감을 준 글쓰기의 출발점

(feat. 세상 모든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원제: Writing without Teachers)

 

피터 엘보 지음 | 한진영 옮김 [페르아미카실렌티아루네] (2024)

 



피터 엘보(Peter Elbow)...


온라인 서점 앱을 보다가 만난 이름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곧바로 기억나지 않았다. 앱에서 저자의 다른 저서를 찾아보고서야 그가 글쓰기 책 힘 있는 글쓰기의 저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몇 년 전에 많은 관심을 받았던 글쓰기 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국내에서 출간(2014)된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기록을 남겨보기 시작했던 때가 2015년이었다. 당시에 난 아마도 글쓰기까지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누가 이렇게까지 9년 동안 틈틈이 블로그에 글을 남길 줄 알았나. 서점에서 이 책을 이따금씩 만나곤 했지만, 제대로 읽어볼 기회는 없었다. 내가 여전히 블로그에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고 있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힘 있는 글쓰기를 만났을 때 읽고 글쓰기를 시도해 보면 좋았겠다.

 

저자의 이름을 발견한 건, 이번 달에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가 새롭게 출간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국내에서 출간된 책과 더불어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의 첫인상은, 두 권 모두 글쓰기에 관한 실천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하고 있는 글쓰기 책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저자가 궁금해서 저자의 프로필 자리를 책에서 찾아보았는데, 저자의 이력을 찾을 수가 없었다. 책을 덮고 무심코 표지를 보았더니 이제야 저자와 간단한 책 소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책 내부에서 저자와 소개하는 공간을 새롭게 해석한 시도라고 여겨졌다. 저자의 이력을 찾다가 발견한 점이다.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표지다.

 

아무튼 표지에서부터 저자의 이력을 더 찾아보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저자가 글쓰기 관련 베스트셀러 아티스트웨이(줄리아 카메론)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에 큰 영감을 준 장본인이라는 점이었다. 이 글쓰기 관련 베스트셀러에서 적용하고 있는 방법론이 무작정 글쓰기(free writing)’였다. 그러니까 적어도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모닝페이지열풍을 일으켰던 인물이 바로 피터 엘보였다. 참고로 그가 제안한 글쓰기 방법론은 하버드 글쓰기 강의로 실용적인 글쓰기 가이드를 제시했던 저자 바버라 베이그에게도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피터 엘보가 제시한 이 글쓰기 방법이 도대체 어떤 방법이기에 이렇게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걸까, 더 궁금해졌다.

 

출판사 소개 글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저자가 제안한무작정 글쓰기(free writing)’가 글쓰기에 대한 본인의 불안과 좌절, 무력감의 경험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글쓰기에 대한 심리적 압박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글쓰기에 관한 자신의 실패를 분석하고 기록으로 남겨놓았던 것이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저자는 자신만의 글쓰기 방법을 추출해내었고 훗날 이를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라 할 수 있겠다. 서문에 따르면 저자는 자신의 무작정 글쓰기(free writing)’방법을 다른 작가의 글쓰기 책에서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문제 해결에 적용해보게 되었다. 저자는무작정 글쓰기를 때로는무의식적 글쓰기’,‘지껄이기’,‘수다떨기라고도 소개한다. 달리 말하면, ‘무작정 글쓰기는 우리 각자의 자각/이성/로고스가 개입하고 우리를 통제하지 않는 글쓰기라고 이해된다.

 

젊은 시절에 누구나 한번은 방황하고 좌절한 기억이 있을 테다. 나 역시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어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젊음이란 조건에도 정신적 피로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물론 프리라이팅(free writing) 기법을 알지 못한 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리걸패드(노란 종이 묶음으로 된 노트)에 내 모든 걸 쏟아내듯 끄적거려 본 경험이 있다. 나의 자괴감과 열등감, 원망과 고통의 기억 모두를 뱉어버리듯이 말이다. 떠오르는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고 휘갈기듯 계속 써본 후 더 뱉어낼 것이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해진 상태에서 뭔지 모를 심리적인 안도감 같은 것이 찾아왔음을 기억한다. 저자가 이렇게 글쓰기로 내뱉는 행위가 저자가 의도한 것에 부합하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이제 이 책에서 소개 된프리라이팅을 과거에 방황하며 뱉어내듯 무언가를 썼던 경험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서문에 언급된 프리라이팅 방식과 비교해보니 내가 적용했던 방식과 매우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난 기억을 되돌아보면, 나는 이미 피터 엘보의 글쓰기 방법을 이때 영접했던 것이 아닐까.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불안과 고통의 경험에서 나온무작정 글쓰기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얼핏 보기에 저자가 제안한 글쓰기 방식이 글 쓰는 이의 무의식과 접점을 만들어내는 훈련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이 방식으로부터 어떻게 내가 원하는 글, 보다 좋은 요건을 갖춘 글을 쓰는 데로 나아갈 수 있을지. 오랫동안 많은 창작자/작가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온 아티스트웨이에서 소개한 바로 그 글쓰기 방식 말이다! 그리고 이 방법을 제안하고 실천했던 저자의 책과 이제 만나게 된 셈이다. 최근 나의 글쓰기가 벽과 같이 무언가에 막혀버린 느낌을 종종 받았다. 글쓰기에 조금 소심해지고 의욕을 잃기도 했는데, 피터 엘보를 만난 것은 마치 일종의 계시(그냥 계속 쓸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글쓰기 연구의 대가가 50년에 걸쳐 축적한 성과를 아무리 많이 내게 보여주든, 이 책이 30년 넘게 옥스포드 대학에서 글쓰기 바이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든, 내가 직접 글을 써보고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저자는 나의 우려를 미리 알고 있다는 듯,‘교사 없는 글쓰기 모임에 관한 조언도 책에 담아놓았다. 저자가 제안하는 교사 없는 글쓰기 모임활동은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격려 속에서 자신의 글을 계속 써나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기존의 아티스트웨이를 좋아하는 작가들,‘모닝페이지를 시도해 본 열혈 독자들이 함께 글쓰기를 하고 격려해간다면 각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혼자 꾸준히 무언가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일주일에 세 번 이상 10분 정도 프리라이팅을 하라는 것도, 사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라기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마련하는 문제인 것 같다. 현대인들의 집중력을 훔쳐가는 도둑들이 주면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 매리언 울프가 프루스트와 오징어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인간에게 읽기와 쓰기 행위란 결코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함께 글쓰기 루틴을 꾸준히 지켜나가다 보면 서로에게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역시나 직접 시도해 보는 독자만이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

 

피터 엘보의 다른 책 일상어 문식성도 유명한 듯하고 관심이 가지만, 이 책의 분량과 가격의 압박이, 번역서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게 되었다. 두꺼운 교과서가 아닌 이상, 개인적으로 역자가 너무 많은 책은 잘 구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프리라이팅개념을 소개하고 있는 실천적인 가이드로서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부터 읽어보기로 한다. 서울대 나민애 교수가 2023년에 출간한 책 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다에서도 언급했듯이, 글쓰기 행위가 책읽기의 최종 목표 혹은 종착지는 아니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제대로 읽고 쓰는 능력을 매우 귀하게 여기고 책읽기에서 더 나아가 글을 잘 쓰게 되길 열망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한다.”(17) 진화상으로 볼 때, 인간에게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이 독특한 능력(읽기와 쓰기)이 왜 필요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그보다 애초에 우리는 왜 글을 쓰게 되었던 것일까? 저자 피터 엘보가 소개하는 프리라이팅이 우리의 글쓰기 향상에 어떤 토양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오래간만에 글쓰기에 관한 책으로 돌아왔다. 최근 나의 글쓰기가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무력감을 느끼던 차였다. 이제 이 책과 더불어 10년 전의 나와 조금은 달라진 원점에서 글쓰기를 다시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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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 미국 단편소설의 코드 - 예술 감상을 위한 미학 세미나
한동원 지음 / 미술문화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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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 규정되기 어려운, 그러나 시대와 함께 호흡해온 개념



그로테스크

: 예술 감상을 위한 미학 세미나

한동원 지음 [미술문화] (2024)

 



문학 혹은 보다 포괄적인 범주로서의 예술에서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을 말할 때 무엇을 먼저 떠올릴 수 있을까? 그로테스크를 읽기 전에는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뭔가 음침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정도 이해도 틀리진 않겠지만, 지극히 제한된 이미지만을 언급했을 뿐이다.


 

학술적이지 않은 일반 독자로서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을 거칠게 조사해본 바로는 우선 어떤 기준으로부터의 일탈에 해당하는 요소가 이 개념에 담겨 있다. 고대 로마의 네로 황제의 동굴 벽에 그려져 있던 기이한문양들은 해괴한 생물의 형태를 띠는 것이 많다. 사람 몸에 뱀이나 말이나 사자 다리와 같은 몸을 가진 존재, 혹은 기묘한 형태의 덩굴 식물처럼 보이는 대상들이 보는 이에게 무언지 모를 스산함을 일으킨다.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대상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고대의 그로테스크적인 것들은 무엇보다 자연 질서에서 벗어난 것 혹은 이 질서의 와해를 가져오는 요소를 지닌다. 곧 질서로부터의 일탈, 정상성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 개념에 더 가깝다고 이해된다. 결국 어떤 대비되는 요소들의 병치와 혼합이 가져오는 낯설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는 문학에서 대상과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하는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의 우스꽝스러움에도 적용될 수 있다. 특히 고전적인 그로테스크의 개념이 예술가들에게는 점차 뜻하지 않은 어떤 상황에서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경우가 등장할 때를 의미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웃음이라는 인간적인 행위를 천박하고 조야한 것으로 여겼던 귀족들의 절제되고 엄숙했던 규범을 조롱이라도 하듯, ‘귀족이 아닌 계층들의 웃음 코드는 기존의 질서를 와해하는 요소로서 그로테스크의 외연이 확장되어 온 정황으로 보인다. 따라서 과거의 귀족이나 식자층만이 향유하던 문학 혹은 예술 향유의 세계에 점차 민중이 침투하고 얽히면서 그로테스크 개념은 불가피하게 변형 혹은 확장의 단계를 거쳤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이런 맥락에서 그로테스크개념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섬뜩함을 여전히 함께 유지한 채 말이다.

 


그로테스크의 저자는 19세기 정도까지 형성되어 유지되어온 고전적인그로테스크의 개념 이후 변화 혹은 확장된 개념으로서 그로테스크를 추적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미국 근현대 단편소설로부터 보다 현대적인 그로테스크개념을 찾아내고 있어 내겐 신기하고 무척 흥미로웠다. 다시 말해, 저자는 미국 문학에서 미국적 그로테스크의 코드를 추적하고 있다. 미국 근대 단편소설의 전범이 되었던 에드가 앨런 포에서 출발하여 현대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까지, 10편의 대표 미국 단편을 뼈대로 두고, 문학에서의 그로테스크개념을 탐구하는 것이다.

 


우선 나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에 대한 논의다. 꽤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바로는, 미국의 서해안과 동해안 지역은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미국적인 정서를 찾아볼 수 없다. (물론 학술적으로 검증된 의견은 아니다) 대신 미국적인 정서를 들여다보려면 남부로 가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미국적 그로테스크개념을 추적하며 언급하는 작품 가운데 연작소설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언급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20세기에 들어 산업화되어가던 미국 남부의 정서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남부 그로테스크southern grotesque'라고 하는, 지극히 미국적인 그로테스크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이 특수한 개념은 미국 국토의 양쪽 해안가 주변의 대도시들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반면 깊숙한 미국 내륙, 흔히 남부라고 지칭되는 곳의 중소도시로 방향을 틀어, 이 시기 미국의 산업화 시대의 여파로 한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농촌 사회가 결국 붕괴되기 시작하는 시기의 인간 소외와 고립의 문제에 주목한 것이다. 특히 이전까지는 정상성으로부터 일탈한 존재, 규범적 질서로부터 벗어난 괴물 같은 그로테스크적 존재가 관심의 대상이었을지라도, 이제는 오히려 정상적으로 보이는 존재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무언가의 불일치’, ‘불편함’, ‘낯설음의 정서를 새롭게 주목하고 발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저자는 이 점에 대해 그로테스크한 특성은 더 이상 주로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소외와 고립이라는 정신적인 영역으로 올라왔다는 의미”(74)로 풀이한다. 그러니까 기존의 유럽 문화 및 예술에서 명맥을 유지해온 고전적인 그로테스크 개념은, 이제 신대륙의 내륙 깊은 곳에 자리 잡으며 삶에서 분리되어 파편화하는 개인들”(67)에 대한 개념으로 새롭게 확장되어 갔던 셈이다. 이러한 미국적 그로테스크가 개인의 내면을 비추고 탐험하기 시작하면서 자아 안에 동화되지 않은 타자로서 여성적인 것”(70)과 같은 퀴어성에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저자가 소개하는 셔우드 앤더슨의 연작소설 가운데 <>이라는 작품이 바로 이런 점들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러한 특징을 또 잘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인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남부의 전통적인 기독교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사실 한국 독자로서 이 작품의 그로테스크적 성격을 처음부터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까 탈옥수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이야기, 그리고 살해되는 가족과 살인자들이 나누는 종교와 구원에 대한 기이한 상황으로서 그로테스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때 고려해야할 부분이 남부 근본주의(종교적 극단 혹은 광신이라는 뉘앙스로서)이며 여기에 다크 유머가 추가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른바 총구 앞에서 남부적인 정서로 살인자와 미소지으며 대화하는 기이함에 주목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로테스크 문학에서는 희극적인 것과 비극적인 것이 뒤섞여 있고, 숭고함이 추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는 이러한 다크 유머가 아주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141)

 


남부의 그로테스크가 잘 드러나는 오코너의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물론 한국의 독자에게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다크 유머와 비극,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병치되고 얽혀 있는 상황에 주목해본다. 피 구덩이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을 한 할머니의 시체. 물론 이 장면 자체가 그로테스크하지만, 이 소설은 여기에 무언가 더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코너의 소설은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적 정신 혹은 교리로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특유한 정서와 같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곧 오코너의 단편이 그로테스크한 것은, 단순히 살인이라는 소재나 기독교적 소재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낯설음 그 자체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미국 남부의 정서에 익숙하지 않으므로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텍스트 너머의 뉘앙스를 파악하는 데 큰 제약을 느낀다. 하지만 저자의 언급대로 오코너의 1960년대 작품에서 드러나는 그로테스크 역시 소외되고 단절된 인간 내면의 풍경을 하나의 그로테스그적 요소로 제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저자는 이후의 미국 문학에 관한 논의에서 토니 모리슨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포스트모던 그로테스크나, 그로테스크 개념을 젠더화한 조이스 캐럴 오츠, 베트남 전쟁 시기 이후의 인간들의 내면과 감정, 불안 등에 주목하는 팀 오브라이언의 작품 속 그로테스크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고 있다. 각 작가와 작품에 대한 독서 역시 앞으로의 영미 문학 작품 감상에 좋은 참고가 되겠다.

 

저자가 제시하는 미국 단편 소설들에서 찾아본 그로테스크 개념은 결코 정의되지 못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이야말로 네로 황제의 동굴 벽에 그려진 자연 질서의 와해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문양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도록 멈추지 않고 그 의미를 재생산, 확장, 변형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은 마치 마르지 않는 찰흙처럼 문학 나아가 예술이 존재하는 한, 시대와 호흡하며 공진화해가는 개념으로 보인다. 나아가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은 규정되기 어렵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창작의 요소에서 발견될 수 있는 요소가 아닌가 자문해보기도 한다. 이를 테면, 음악에서의 어떤 일탈적인 시도(형식적이든 기교적이든) 역시 기존의 규범과 질서에 새로움 혹은 낯설음으로 다가와 그 순간의 그로테스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다시 이것이 반복되고 익숙해지면 더 이상 새로움이나 낯설음을 느끼지 않을 테고, 그러면 또다시 이 국면이 앞으로의 새로움, 혹은 파격을 예비하는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그로테스크는 결코 정의되지 않을 무언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은 어쩌면 창작하는 모든 존재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어떤 내적 충동의 결과일수도 있지 않을까. 진부함을 거부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욕구, 혹은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정신과 같은 것 말이다. 그로테스크를 읽고 나서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에 대해 정리해본 바는, 우선 이 개념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이것이 기존의 존재 혹은 진부함을 거부하는 예술가의 창작 충동과 더 관련이 있을 법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의 형식과 작품에서 우리는 그 시대와 호흡하며 작품에 입김을 불어 넣었던 그로테스크한 요소를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보편적인 창작 원리로서의 그로테스크개념을 이번 독서에서 발견한 것 같다.

 

 



#그로테스크 #한동원 #미술문화 #예술감상을위한미학세미나 #남부그로테스크 #미국식그로테스크 #남부근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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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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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모른다로부터 문학은 시작한다.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박희진 옮김, 솔출판사, 2019

 




마침내,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과 만났다. 쉽게 읽힌 책은 아니었다.

 

전체 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 가운데, 1부에서는 램지 씨네 가족이 주로 등장한다. 이들은 저명한 교수인 듯 보이지만 아내/여성으로부터 인정과 관심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램지 씨와 그의 부인 램지가 주로 등장한다. 이들은 매년 스코틀랜드의 서쪽에 있는 어느 섬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낸다.

 

램지 부인은 바다 건너에 외로이 서 있는 등대에 가보고 싶어 하는 아들을 세워두고, 등대에 갈 경우 등대지기 아들에게 줄 양말을 짜는 장면이 나온다. 부인은 아들을 모델로 양말 길이를 어림해 보는 중이다. 짜던 양말 길이를 꼼지락거리는 어린 아들의 몸에 대보는 잠깐의 시간 동안, 램지 부인의 의식은 확장되어 몇 페이지나 이어진다. 몇 페이지나 지났을까, 부인은 다시 생각에서 벗어나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들을 타박하고는, 다시 양말의 길이를 잰다. 소설의 화자는 독자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어느 순간 바뀌어 있다. 각 화자의 내밀한 의식이 제한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러니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특징은 타인들에 의해 파악된 일부 특징들이 단서가 될 뿐이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타인을 규정하는 방식이 늘 이렇지 않은가.

 

영문학 전공자들은 울프의 문장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울프 입문자가 처음부터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기회가 되면 원문으로도 도전해 보고 싶은 작품이다. 단 울프의 소설에 대한 첫인상은, 울프의 실험적인 문체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점이다. 램지 부인이 바라보는 풍경처럼 화자의 의식이 불현 듯 확장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의식이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런 의도를 염두에 둔다면 울프의 문체는 정말 탁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영어가 익숙해서 문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램지 부인은 가족을 위해 이타적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인간적인 내밀한 욕망과 소망을 간직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잊기 쉽다. 가족의 일을 정신없이 돌보는 가운데 내밀한 그녀의 바램이 스쳐지나간다.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혼자 남아 사색에 잠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작가는 램지 부인의 욕구와 자의식을 주목하고 있었다.

 

반면 소설에는 특별한 사건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더 놀라운 부분은, 램지 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한 문장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심지어 결혼한 딸이 출산에서 죽은 사건과 참전한 아들(작품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 소설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시기에 집필되었다.)이 전사한 사건도 한 문장으로 처리할 뿐이다. 작가에게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섭리였음에도, 그녀는 작품에서 아주 간결하게, 마치 일상의 루틴처럼 처리하고 있어 오히려 충격을 준다. 이에 비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면은 여러 인물의 내면이 파도 위의 돛단배처럼 표류하는 과정이 이루고 있다. 2부에서는 여러 등장 인물들의 죽음이 아주 간결하게 처리되며 축소되어 있다. 무엇보다 1부와 3부를 잇는 전환점으로서의 역할이 더 클 것 같다.

 

3부는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램지 가문의 지인인 화가 릴리 브리스코우는 이들 가족의 여름 별장에 초대받은 식객이기도 하다. 그녀는 마침내 등대를 향해 배를 타고 간 램지 씨와 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나간다. 중요한 건 인물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면의 스크린을 비추는 작업에 초점이 맞추어진 듯하다. 아이들과 함께 부산하던 램지 가족이 등대로 떠나고, 램지 씨로부터 무언의 청혼 압력을 받던 릴리는 비로소 혼자남게 된다. 이제 오래전 사망한 램지 부인의 초상화 작업을 다시 시도한다. 등대로 가는 배를 바라보던 릴리는 캔버스를 향해 돌아서서 자신이 무언가 시도한 흔적을 알아본다. 이 무언가를알아차린순간이 그녀에게는 삶의 전환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게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그녀는 그림의 한가운데에 선 하나를 그려 넣으며 나는 드디어 통찰력을 획득했어(I have had my vision)."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는 장면으로 작품은 끝난다. 우리는 릴리가 알아차린 통찰력 혹은 시각이 무엇인지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역자는 해설에서 이 소설의 서사가 이기적 세계에서 이타적 세계로의 여정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이타적 세계에서 이기적 세계로의 여정이 더 어울린다고 느꼈다. ‘개인의 발견과 자아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다. 단독자로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 무언가 되어가는 과정, 그 순간 순간의 표류하는 여정, 혹은 그 순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릴리가 마주하는 이 에피파니의 순간이 내게는 동시에 인간 존재가 헤쳐 나가야 하는 삶의 무목적성과 공허, 타자에 대한 이해불가능성을 거듭 확인하는 과정으로 다가온다. 홀로 고립되어 있고,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등대로 나아가는 램지와 아이들의 배를 보면서 우리는 모두 각자 삶의 여정을 주체적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듯 해서다. 아울러 램지 부인이 남편의 결핍과 단점을 알아보면서도 남편의 훌륭한 점들 또한 함께 생각해 보는 장면은, 모든 존재를 한 가지로 규정하지 않고 대상에 대한 관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는 물론 작가 울프의 인간에 대한 애틋한 시선이 이었기에 가능하지 않겠는가.

 

인적성 검사니, MBTI니 하면서 이런 잣대만으로 처음 보는 나를 함부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사람들의 이런 인식과 가벼움을 거부하고 싶다. 우리는 타인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은 나를 모른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우리는 이 모른다로 만나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울프가 창조한 인물들이 타자를 생각할 때, 이들의 의식이 끊임없이 표류하면서도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기도 하는 과정이, 마치 램지 씨와 아이들이 작은 배를 타고 등대로 나아가면서도 때론 조류에 떠밀리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런 존재임을 자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러나 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처음 만난 버지니아 울프가 내게 가르쳐준 바다.

 

 

#버지니아울프 #등대로 #박희진번역가 #솔출판사 #버지니아울프전집 #우리는타자를이해할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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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 1950-1955
카지이 노보루 지음, 정미영.박소영 옮김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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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인 교사가 남겨 놓은 희망의 씨앗

 


카지이 노보루, 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정미영/박소영 옮김, 몽당연필, 2023

 



코로나19가 급속하게 전파되던 20203월 즈음 읽었던 기사 한편이 기억난다. 일본에 있는 어느 중소도시에서 관내 유치원과 보육원에 코로나 감염 방지용 마스크를 배포하면서 조선학교 유치부를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내용이었다. 내 눈을 믿기 힘들었다. 이건 10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4년 전의 기사였다. 21세기에 공공기관이 솔선수범하여 배제와 차별에 앞장서는 졸렬함이라니! 심지어 기사는 시 직원이 ‘(조선인은) 마스크를 다른 곳에 팔아넘길지 모른다는 취지의 폭언도 스스럼없이 했음을 전하고 있었다.

 

이후 나는 관련 사건에 대한 사설을 읽어보았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정책은 이미 오랜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깝게는 2013년 아베 신조 정부의 고교무상화정책과 관련한 사례가 있었다. 이 정책은 고교수업료를 무료화 하겠다는 취지라 명목상 많은 일본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 정책에 조선학교만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데 있다. 나아가 이를 법으로까지 제정하여 차별을 제도화한 것은 우려스러웠다. 이 조치는 몇 년 전 조선학교 유치원 및 보육원에 인도적 차원에서 마스크를 배포하는 일에서 차별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한 근거가 되었다. 일본 사회에 염치란 이미 사라져버린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문제는 왜 지금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한 일본인 교사가 조선인학교에서 5년 간 근무한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 책 <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1950-1955>를 읽으며 내내 궁금했다. 저자 카지이 노보루는 일본이 패망한 후 재일조선인들이 교육 현장에서 겪었던 수난과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겼다. 귀한 기록물이다. 그가 조선인학생들과 함께 한 경험들은 단순히 교육 현장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2020년 당시 조선학교 유치원생들에게 공공기관이 주도한 합법적차별은 훨씬 복잡하고 광범위한 문제와 얽혀 있었던 것이다. 조선인학교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무엇보다 일본의 정치권과 공권력, 권력의 눈치를 보고 진실을 보도하지 않은 언론까지 가세하여 만든 총체적 결과물로 응어리진 결과다.

 

일본의 패망 후 연합군사령부(GHQ)의 교육담당 장교 듀렐이 도쿄의 조선인학교를 시찰하며 개 잡듯이 죽여야지.”(62)라고 했던 대상은 누구였던가. 그리고 조선인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조선인학교 문제를 치안 문제로 이야기하던 이들은 누구인가. 저자가 같은 일본인으로서 이러한 폭력을 행사하는 일본인들에 대해 수치스러움을 느낀다는 대목에 눈길이 멈추기도 했다. 나아가 일본 식민주의 지배세력의 조선인 혐오, 그리고 미국의 세계패권 야욕과 철저한 반공주의가 결합하며 찾은 희생양이 바로 조선인들이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1951228일 오전 630분에 무장한 경찰 예비대대 520명이 도립조선중고등학교 건물과 기숙사에 침입했다. 훗날 이 사건을 2·28사건이라고 불렀다. 도둑처럼 학교에 급습하여 학생들의 교과서나 숙제, 미술작품, 수첩까지 압수하며, “조선인은 싹 다 죽여야 해.”(75)라고 고함치고, 학생과 교사들에게 곤봉까지 휘둘렀던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저자가 당시의 광경을 묘사한 이미지를 군국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기의 일본의 모습과 겹쳐놓으면 아마도 어긋난 곳을 찾기 힘들 것”(77)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은 또다른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올해로 101주기를 맞은 간토대학살 사건(19239)이었다. 일본 군부의 주도하에 일본자경단들이 일본도뿐만 아니라 죽창으로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던 사건이 아니었나. ‘그들의 구호가 조선인을 다 죽여라!”였다는 사실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조선인학교의 폐교는 가장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현재 및 미래의 타자를 숙청하는 방법이었다.

 

엄혹했던 일본의 식민지 시절, 한인들은 일본의 강제 징용으로 일본에 건너갔던 사람들도 있지만, ‘힘든 식민지 생활을 견딜 수 없어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패전 후 조선인들에 대한 속죄는커녕, 보상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를 지우는 일에 몰두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흔적지우기를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 정황을 엿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대등한 대우를 말하며 동일한 책임을 요구했지만, 조선인들은 정작 받아야할 혜택에서 언제나 제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20대의 젊은 일본인 교사가 조선인중학교에 부임하여 마주했던 것은 학생들의 냉냉한 시선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재일 조선인들의 박탈감을 이해해야 넘을 수 있는 선이었다. 조선인학교에 온 신임 일본인 교사들은 달아매기라는, 학생들의 불신어린 심문을 받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 자신들의 학교를 망가뜨렸다는 반감으로 가득한 학생들로부터 일본의 문부성 및 교육위원회의 스파이로 간주된 것은 저자가 조선인학교에서 처음 마주한 현실이었다.

 

조선학교에 감염 방지용 마스크를 배포하지 않은 사례 역시 저자가 그토록 맞서 싸웠던 조선인학교 차별과 배제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일본 사회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인학교에 일어났던 일, 그리고 몇 년 전 조선학교의 현장에서 있었던 일은 단순하고 충동적인, 일탈적 사건이 아니었던 셈이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제국주의가 야만으로 치달은 전쟁의 최대 희생자였다. 이를테면 식민주의, 제국주의/군국주의, 반공주의 등의 이념이 인류에게 가한 폭력의 세계사적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주목하게 된 대목 하나는, 조선인학생들을 위한 민족교육에 대해 저자가 성찰한 대목들이었다. 조선인에게 올바른 민족교육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권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자는 조선인학교 문제가 곧 일본의 교육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119)을 간파하고 있던 소수의 지식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일본 정부가 재일조선인 아이들 12만 명의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한 사건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문제의 본질을 아래에서 엿볼 수 있다.

 

(재일조선인 교육 문제는) 피압박 민족의 해방 문제로서, 식민지로부터 해방이라는 문제로서, 일본의 평화와 독립의 문제와 관련되었음을 중요시 해야만 한다.”(138) [홋카이도에서 온 요시다 하츠미 씨의 언급 재인용]

 

여기에서 교사는 교육자로서 양심의 자유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는 문제부터, 가해국 국민으로서 피해국의 국민과 평화를 위한 화합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배경에 속한 집단의 친선을 도모하고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를 서로 존중하는 일이 우선 요구될 것이다. 물론 과거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치유될 수 있는 길은 없을 것이다. 흉터는 남아도 상처를 치유할 수는 있을 테니까. 그러나 저자가 책에서 줄곧 추구하던 민족교육의 문제는 양국의 건강한 평화와 독립을 위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았다. 가해국의 국민으로서 이런 지점까지 고민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같은 인간으로서 후손인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비춰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1950-1955>는 교육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섰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해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따라간 여러 일본인 교사,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한 조선인 교사와 조선인학생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도립조선학교는 결국 1955331일부로 폐쇄되었지만, 이 책이 남겨놓은 것은, 결국 희망의 씨앗이라 여긴다. 저자 카지이 노보루를 비롯한 여러 참여 지식인들의 존재 덕분이다. 그가 남겨 놓은 이 씨앗이 책이라는 이름으로 후대에 계속 전달되고 읽히고 기억된다면, 언젠가 새롭게 싹이 트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예감해본다.





[책 속으로]

[1] "새로 채용된 일본인 교사들은 조선인들의 분노와 슬픔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 한 학교에 교장이 둘이나 있는 이상한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된 것은 조선인학교에 근무하고 나서다."(24)

[2] "그 아이들이 일본에 영주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이미 역사를 통해 아시는 바와 같이 조선인이 원해서 조국을 버리고 일본에 온 것이 아닌, 힘든 식민지 생활을 견딜 수 없어 도일한 이가 많기에 조선이 평화롭고 완전한 독립국만 된다면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35) [도교육위원회에 제출한 청원서 재인용]

[3] "선생님! 우리는 조선인이에요.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 때문에 말도, 나라도 빼앗겼어요. 얼굴은 조선인이지만, 조선말도 역사도 모른 채 살아왔어요! 선생님, 누가 선생님에게 일본어를 써도 안 되고 배워도 안 된다면서 학교 문을 닫아버리고 감옥에 집어넣으면 화가 나지 않겠어요?"(41)[일본인 교사 S의 기록]

[4] 4·24 교육 투쟁-재일조선인연맹 강제해선-전국 조선학교 폐쇄-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필름 위에, 남북의 분단과 일본 국내에서 미 점령군의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비민주적 행태를 아무런 설명도 수식도 없이 겹쳐놓고 보았을 때, 내 나름대로 도립조선인학교의 위치에 대해 깨닫게 된 것 같다."(62)

"문부성이 ‘조선인학교는 학교교육법에 따라 사립학교로 취급할 것’(1948년 5월)이라는 통달을 발표한 직후, 도쿄도 내 조선인학교를 시찰하러 온 GHQ 도쿄군 교육담당 장교 듀펠은 군홧발로 교실에 들어와 김일성 초상화를 보며 "개 잡듯이 죽여야지."라고 중얼거렸다. 조선인에 대한 감정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낸 말도 드물 것이다. 그는 교원 가운데 공산주의자들의 숙청을 강하게 추진했던 자타공인 철저한 ‘빨갱이 혐오자’였다." (62)

[5] 아이들을 교실로 들여보내려 한 교사에게까지 "교사면 다야?", "감히 국가 권력에 불만을 품어?", "조선인은 싹 다 죽여야 해."라고 고함쳤습니다."(75) [3·7사건에 대한 기록 재인용]

[6] "수색 영장도 없이 3천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병력을 동원해 무기 하나 없는 학교에 쳐들어와 폭력을 저지르는 행위에 과연 어떤 이유를 댈 수 있을까. 게다가 무저항 상태의 학생들과 사태를 수습하려던 교사들까지 폭행한 것은 물론이며 신문사 카메라맨과 의사까지 폭행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폭력단이나 다름없었다."(77)

[7] "인식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가해자가 피해자의 마음속에 들어가려면 스스로 피해자라는 인식이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99)

[8] "지금까지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 아래 놓여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인식함과 동시에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과 겹쳐서 생각해보면 완전히 새로운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피압박 민족의 해방 문제로서, 식민지로부터 해방이라는 문제로서, 일본의 평화와 독립의 문제와 관련되었음을 중요시해야만 한다."(138)

[9] "내가 상당히 고심해서 완성한 구상은 두 가지 기둥으로 이뤄졌다. 첫째, 고교 이하는 의무교육으로 하고 운영도 공비로 하지만, 교육 내용은 재일조선인이 자주적으로 실시하는 것, 둘째는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을 지키는 일이 일본인의 민족교육을 확립하는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142)

[10]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시설 등 제반 운영에 필요한 조건 마련은 일본 정부가 하고, 교육 내용과 조직을 만드는 일은 조선인 스스로 책임지고 확립해 가는 체제를 만들지 않으면 재일조선인 교육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144)

[11] "일본의 아이들이 풍요로운 일본인으로 자라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인 아이들도 역시 풍요로운 조선인으로 자라나야 한다. 게다가 그것은 과거에 대한 속죄로서 일본인 자신이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토록 단순명료한 논리가 5년간에 걸친 조선인학교 생활을 지탱해준 논리다."(206)

[12]"언어가 가장 고도로 승화된 것이 문학작품이라 생각한 점과 난독 학습을 하다 보니 36년간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자마자 분단의 비극을 맞은 조선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확실한 실마리가 문학 속에 훨씬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 그 무렵부터 다시 20년이 지났다. 나의 공부는 마치 소걸음처럼 느릿느릿하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조선을 알아가는 일은 어쩌면 나에게 남겨진 반생의 과제로서 앞으로도 계속 나를 뒤따라올 것 같다."(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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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04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심이 살아있으면 일본인이든 누구든 정의는 지켜지는 법이죠!
 
[큰글자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지음, 김희봉 옮김 / Mid(엠아이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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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노안인 사람들을 주요 독자로 정하신 건지요^^;; 드넓은 행간을 쉬엄쉬엄 돌아가며, 생각하며 읽으라는 깊은 뜻으로 알겠습니다~ ㅋㅋ
오히려 글자가 컸던 중세의 책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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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11-02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책이 바로 중세를
깨뜨린 도끼 같은 그런
책인가요.

초란공 2024-11-02 11:13   좋아요 0 | URL
뭔가 수백년 된 금서를 받아본 느낌인데요? ㅋ 글자가 커서 안경을 벗고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