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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을 공부하는 대부분 사람은 바뀐다. 우리 대부분은 가족과 친구, 일 같은 자신에게 익숙한 삶의 특성을 통해 세상을 파악한다. 하지만 사회학은 우리 행동 방식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삶에 대한 시각을 훨씬 더 많이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은 자연스럽다, 필수 불가결하다, 선하다 혹은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우리 삶에서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실은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인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사회학은 대부분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사회학은 우리 삶의 즉각적인 맥락을 넘어서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우리 자신 행동의 원인에 대한 더 큰 이해를 갖게 도와준다. 당신의 사적인 결정은 더 넓은 사회 속에서 당신 위치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사고는 우리 자신 경험을 더 넓은 사회적 배경에 놓이도록 도와서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자료가 된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이 사회적 경험의 맥락에 영향을 받는, 그 미묘하고도 복잡하고 근원적인 방식을 이해는 것이 사회학의 기본 관점이다.

 

 

우리 모두가 자신이 처해 있는 사회적 맥락에 영향을 받지만, 우리 행동은 사회적 배경에 의해 완전히 결정되지 않는다. 사회가 우리를 만드는 것과 우리가 우리 스스로와 사회를 만드는 것과의 연계를 탐구하는 것이 사회학의 일이다. 우리 행위는 우리를 둘러싼 사회를 구조화시키고, 동시에 사회에 의해 구조화된다. 우리 삶의 사회적 맥락은 사건이나 행위의 무작위적인 나열의 합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화되거나 유형화된다.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과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 속에는 규칙성이 있다.

 

 

비록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유 의지를 가진 개별적 존재라고 여기지만 그들 행위는 종종 사회적으로 유형화되고 구조화되며, 뒤르켐 연구는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보이는 자살과 같은 행위가 사회에서 나타나는 일들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 준다. 뒤르켐은 자살이 하나의 ‘사회적’ 사실이며, 이는 다른 사회적 사실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살률은 개인적 행위의 단순 총합이 아니다. 그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유형화된 특성을 갖는 현상이다.

 

 

뒤르켐은 특정 범주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비해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여성보다 남성이, 가톨릭 신자보다 개신교가,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가, 결혼한 사람보다 미혼인 사람 중에 자살한 사람이 더 많았다. 또한 자살률이 전쟁 시에 낮아지고 경제적 변화나 불안정한 시기에 높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러한 발견을 통해 그는 개인 외부에 존재하는 사회적 힘이 자살률에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에 강하게 통합되어 있고 사회 규범의 규제에 따라 자신 욕망과 야심을 조절하는 사람이 자살할 가능성이 더 낮다는 것이다. 그의 근본적 주장은 완전히 심지어 명백하게 지극히 개인적인 자살이라도 개인적 동기에 입각한 단순한 설명보다 사회학적 설명을 요구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비록 ‘구조’라는 발상이 건물을 떠올리게는 하지만, 사회 구조가 인간 행위와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적인 구조가 아니다. 인간 사회는 언제나 구조화의 과정에 있다. 인간 사회는 그것을 구성하는 축석 하나하나 – 당신과 나와 같은 인간들 –에 의해 매 순간 재편된다. 과거 혁명적 사건들은 우리에게 사회 구조가 항상 ‘과정 속’에 있고, 겉보기에는 단단하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는 사회에 대한 더 나은 이해로 되돌아가는 데 초점이 맞추어질 수 있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것은 상상력을 넓히고, 개인적인 행동 요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열고, 우리 자신과 다른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인식을 만든다. 사람과 집단, 제도의 관계로 형성되는 지속적인 패턴은 한 사회의 사회 구조를 형성한다. 사회와 제도, 사회 구조와 개념을 통해 사회적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사회적 상상력을 사용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택함으로써 우리는 단지 개인과 관련된 것처럼 보이는 많은 사건이 더 큰 문제를 반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현대 사회학>

 

 

 

 

 

 

 

 

 

 

 

 

 

 

 

 

 

“이성과 자유 같은 전승된 가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불안 그 자체가 개인 문제이며, 무관심 그 자체가 공공 문제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불안과 무관심이라는 상황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현저한 특징이다.

 

 

공공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된 그대로, 개인 문제를 개인적으로 느끼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많은 개인 문제는 그저 개인 문제로 해결될 수 없으며, 공적 문제와 ‘역사 형성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라. 한 개인의 생활은 일생을 형성하는 제도와 관련시키지 않고는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개인 일생은 여러 역할의 획득, 포기, 수정, 그리고 아주 은밀한 방식의 역할 전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사회학적 상상력>

 

 

 

 

"가치 있는 책의 많은 내용을 기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다른 사람의 저서를 자신의 지적인 영역으로 전환하는 첫 번째 방법은 그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 라이트 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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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6-17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회학은 범위가 넓은 학문인 것 같습니다. 경제학, 심리학, 정치학 등 인간 공동체가 관련된 모든 학문이 사회학인 것을 생각해보면 참 방대한 분야의 학문이라 여겨집니다.^^:)

2021-06-17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17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1년 상반기 읽은 책

 

역사 7, 철학 5, 사회 3, 경제 3, 종교 3, 물리 2, 글쓰기 2, 언어 2, 진화 1, 인류 1, 과학 1, 정치 1, 심리 1, 문화 1 (모두 33권)

 

 

●  2021년 상반기 단 한 글귀

 

"소크라테스 사유는 ‘좋음과 나쁨’을 사유하는 윤리학이지 ‘옳음과 그름’을 사유하는 도덕이 아니었다. 옳음과 그름, 선과 악, 의무 같은 가치는 기독교가 도입했다.” - 이정우

 

 

●  2021년 상반기  아쉽게 순위에 들지 못한 책 6권

 

<힘 있는 글쓰기> / 글쓰기,  <오래된 미래> / 사회,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 경제,  <리오리엔트> / 역사,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 / 역사, <세계철학사 1> / 철학

 

 

 

 

 

 

 

 

 

 

 

 

 

 

 

 

 

 

 

 

 

 

 

 

 

 

 

 

 

 

 

 

 

●  그럼, 2021년 상반기 읽은 책, 내 마음대로 Best Top 10

 

 

10.

 

 

 

 

 

 

 

 

 

 

 

 

 


<차가운 계산기>
필립 로스코 지음, 홍기빈 옮김
열린책들, 2017년 4월, 384쪽/ 경제

 

 

경제학은 사회'과학'이 아니다.

 

세상은 두 가지로 나뉜다. 우리가 만들어 냈기에 질서가 잡힌 세상과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칸트 말을 인용하면 물자체)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의 여러 규칙은 인간 이성의 결과물이기에 질서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실제’ 세상의 질서(그런 게 정말 있다면)를 지배하는 여러 법칙은 우리 이해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다.  경제학이 세상을 그렇게 잘 설명하는 이유는 경제라는 세계의 조직과 구조, 통치 자체가 바로 우리가 만든 경제학 규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이런 방식으로 보는 것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세상은 경제학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경제학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생각하는 데 더 익숙하다. 요컨대 우리는 경제학을 하나의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경제학이 묘사하는 대상은 인간 세상이다. 게다가 경제학이 초점을 두는 것은 모조리 가격과 가치라는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경제학이 내놓는 여러 묘사는 이 세상에 대한 묘사이면서 동시에 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9.

 

 

 

 

 

 

 

 

 

 

 

 

 

 


<세계의 역사 1>
윌리엄 맥닐 지음, 김우영 옮김
이산, 2007년 3월, 408쪽 /역사

 

 

인도를 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그리스인들은 폴리스를 형성하여 하나의 정치적 원형을 만들어냈는데, 정치조직을 영토로 규정하여 주권 단위 국가로 편성하려는 서양 세계의 경향이 나타났다. 영토권을 그 밖 모든 형태의 인간조직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는 것은 인도의 카스트 원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전쟁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다양한 관습에 대한 관용과 포용은 인도 특유의 종교 발전과 보조를 같이했다. 진리를 탐구하는 어떤 진지한 사람은 한 명 이상의 스승 앞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상이한 교의가 각양각색 혼합되고 교착되는 현상이 쉽게 일어났다. 그래서 복잡하게 엉킨 사상의 실타래를 푸는 일은 논리적인 작업이 되어야 했다. 따라서 인도 종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논리적이다.

 

 


8.

 

 

 

 

 

 

 

 

 

 

 

 

 

 


<나의 한국사 공부>
미야지마 히로시 지음
너머북스, 2013년 1월, 436쪽/ 역사

 

 

우리는 왜 일본처럼 오래된 장인이 없는지 의문이 풀리다: 조선은 신분제 사회가 아니었다.

 

당시 신분제  사회인 일본의 직역(職役)과 비교하면 조선 시대 직역은 매우 독특하다. 먼저 조선 시대는 직역을 부담하는 단위인 집단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같은 가족이면서도 구성원에게 서로 다른 직역이 부과되거나, 같은 인물이 다음 해에는 직역이 바뀌어 부과되는 등 개인 단위로 부여되었다.

 

 

농민이니 상인이니, 혹은 관료니 하는 사회 분업에 필수적인 직업이 신분 범주가 아니었다는 점도 조선왕조가 전형적인 의미에서 신분제 국가가 아니었다는 증거다.

 

 


7.

 

 

 

 

 

 

 

 

 

 

 

 

 


<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
제임스 버크 지음, 장석봉 옮김
궁리, 2010년 11월, 532쪽/ 과학

 

 

과학은 시대 정신이다.

 

과학은 객관적이라고 말한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탐구 방법과 증거에 기초한다. 과학자들은 이론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검증한다. 같은 결과가 반복되고 방법상 어떠한 오류도 없으면 이론은 살아남는다. 과학을 평가하는 기준에는 보편성이 있다. 진리를 찾는 데 특별한 변명거리가 필요치 않다.

 

 

하지만 어떤 진리를 말하는가? 같은 진리라도 시대에 따라 달라 보였다. 비트겐슈타인을 인용하면 ‘당신은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것’이다.  세계를 관찰하는 행위는 항상 이론 부가적이다. 가장 기초적인 것에서 가장 복잡한 단계까지 경험의 의미는 경험이 예상되는 기대 범위에 따라 관찰자에 의해 인식된다. 그렇지 않은 것은 의미 없거나 부적절한 것으로 거부된다.

 

 

구조는 가치를 결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도덕과 윤리, 목표, 목적을 결정한다. 이것은 외부 세계 실재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부여한다. 따라서 ‘과학이 찾는 진리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진리는 당시 구조에 의해 정의된다’라는 답밖에는 구할 수 없다.

 

 


6.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
김사업 지음
불광출판사, 2017년 12월, 364쪽/ 종교

 

 

희론(戱論),  말이 의미하는 그대로 실재도 그렇다고 오인하는 일

 

이것과 저것 차이점과 유사점을 구분하여 분류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와 무관하게 ‘말의 차이’ 또는 ‘개념 차이’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말에 따라 보이는 세상도 달라진다. 우리 현실에서 무엇인가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은 ‘이름’이 아니다. 이름 붙이기 이전과는 다른 확고부동한 ‘진실’로 탈바꿈되고 만다. 
 


세상은 말에 의해 움직이고 말에 의해 질서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말의 허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바로  말의 허구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 그것이 해탈이다.

 

 


5.

 

 

 

 

 

 

 

 

 

 

 

 

 

 


<오리진>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흐름출판, 2020년 9월, 392쪽/ 인류

 

 

지구 온난화는 우려만큼 나쁘지 않다.

 

기후 온난화 원인이 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앞으로 수만 년 동안 산업화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서로 겹치는 밀란코비치 주기 리듬 때문에 정상적으로는 약 5만 년 뒤 지구가 빙하기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우리가 이미 대기로 쏟아낸 온실가스 때문에 예정된 다음번 빙하기는 찾아오지 않을 게 확실하다. 
 


따라서 인류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지구 온난화 추세는 희망적인 측면이 있는데, 장기적으로 본다면 우리 문명은 북반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여 엄청나게 춥고 건조한 기후로 농업이 불가능한 것보다 뜨거운 세계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라깡의 인간학>
백상현 지음
위고, 2017년 6월, 396쪽/ 심리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은 남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무의식의 억압을 받는다. 무의식은 도덕 명령 형식으로 개인 행복을 강하게 억압한다. 특히 인간 문명이 만들어낸 이웃 사랑이라는 이타성 도덕 명령은 가장 보편적이라 반박 불가능하여 가장 가혹하게 잔혹한 억압자 역할을 한다. 프로이트는 문명의 중핵에 존재하는 무의식 억압이 문명 속에 불편함과 불안을 죄책감 형태로 각인시킨다고 주장한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고통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도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행복이란 도덕군자들이 말하듯 선을 추구할 때 동반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고통을 야기하는 역설적 만족의 대상이며, 무의식 억압에 노출되는, 그래서 선의 편이 아니라 악의 편에 위치하는 대상일 뿐이다.

 

 


3.

 

 

 

 

 

 

 

 

 

 

 

 

 


<인간의 내밀한 역사>
시어도어 젤딘 지음, 김태우 옮김
강, 2005년 2월, 640쪽/ 역사

 

 

사랑도 발명된다.

 

낭만주의자들이 새로운 사랑을 발명했다. 이것은 진정 혁명이다. 그들은 오직 남성 간에만 한정되던 두 영혼의 결합이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도 가능하다고 처음 주장했다. 그전에는 사랑에 빠진 남자가 여성을 부양할 만큼 부유하다는 사실만 진지하게 증명하면 되었다.  
 


이런 연유로 사랑 대상이 사랑 그 자체, 즉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되었다. 사랑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사랑받는 상대가 이상화되고, 누구하고든 사랑에 빠질 수 있게 되고, 또 사랑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부추겨져 사랑에 대한 모든 전제 조건이 철폐되었다. 이것은 인류의 가장 놀라운 발명 가운데 하나다.

 

 


2.

 

 

 

 

 

 

 

 

 

 

 

 

 

 


<불교를 철학하다>
이진경 지음
휴(休), 2016년 11월, 356쪽/ 종교

 

 

색즉시공

 

‘나’라는 존재가 ‘있고’ 그렇게 ‘있는’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소유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내’가 있게 되는 순간이 탄생이고, 그 ‘내’가 늙고 죽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사고는 ‘있음’에서 ‘생멸’로 진행한다. 하지만 실상 생멸하는 신체가 있고, 그 신체가 갖는 유사성이나 연속성을 통해 ‘나’라는 존재에 동일성이 부여된다.

 

 

유와 무는 생멸이라는 현상의 두 극단을 표시하는 개념일 뿐, 생멸과 무관하게 존재하지 못하는, 그저 운동을 서술하기 위한 ‘말’일 뿐이다. 따라서 생성의 논리란 헤겔 말처럼 ‘유→무→생멸’이 아니라 ‘생멸→유무’로 되돌려놓고 시작해야 한다. 아무런 규정을 갖지 않는 순수 유무는 없다. 생멸하는 것의 어떤 한 상태를 유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유란 이미 모두 생멸하는 것이고, 그 자체에 이미 유와 무를 비롯해 수많은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1.

 

 

 

 

 

 

 

 

 

 

 

 

 


<서양 윤리학사>
로버트 L. 애링턴 지음, 김성호 옮김
서광사, 2003년 8월, 608쪽/ 철학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定義)된 정의(正義)가 없는 이유

 

정의(正義)는 어떤 행위 유형을 통해서도 결코 정의(定義)될 수 없다. 어떤 유형에 속하던 모든 행위가 항상 정의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윤리학 영역에서 원리는 ‘기껏해야 많은 경우’에 참이 될 수 있는, 단지 대체적인 규칙이나 느슨한 지침 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도덕적 삶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때 정확한 목표를 지적하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며, 도덕적 삶의 본성이 지니는 다양성과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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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6-16 16: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북다이제스터님 반기 결산 글이 올라온 것을 보니, 2021년도 절반이 지나감을 느낍니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매번 느끼지만, 북다이제스터님의 결산 페이퍼는 참 대단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6-16 18:26   좋아요 2 | URL
항상 감사합니다. ㅎㅎ
보통 한 달 전부터 준비합니다. ㅋㅋ

mini74 2021-06-16 1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위 3위 찜 ㅎㅎㅎ 라깡, 친구랑 같이 읽자고 샀던 기억이 납니다.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읽다가 어디 슬며시 놔두고 와선, 아이고 한참 재미있었는데 책을 잃어버렸네! 하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는 개를 키우게 되면 라캉으로 짓겠다며 ㅎㅎㅎ 결국 책은 어디갔는지 모르겠지만 ㅎㅎ 상반기가 지나간다는게 북다이제스터님 글을 읽으니 실감납니다. 좋은 글 유익한 글 잘 읽고 갑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1-06-16 19:22   좋아요 1 | URL
친구 분이 라캉 팬이신 것 같습니다. ^^
라캉 책은 넘 어려운데요, 알듯말듯 한 바로 그점이 라캉 매력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붕붕툐툐 2021-06-16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거 넘나 좋네요!! 꾸준히 읽으시면서 페이퍼 쓰시는 모습도 너무 인상적이신데, 탑10까지 뽑으시고!!!
1등은 무조건 담아야죠~ㅎㅎ
2등은 북다님 덕분에 알게되어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하반기도 달려보아요!!🙆

북다이제스터 2021-06-17 15:14   좋아요 1 | URL
ㅎㅎ 감사합니다.^^
하반기에도 함께 달려보아요!!^^
 

 

 

 

 

 

 

 

 

 

 

 

 

 

 

 

"대한제국은 그냥 망해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백성 고혈을 빨고 죽어가고 있었다. 약을 안 쓰고 죽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독약이라도 써서 빨리 죽기를 재촉해야 했다. 대한제국 백성들 특히 지식인들은 대한제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이는 개화가 진행되며 언론 등을 통해서 더욱 뚜렸해졌다. 이제 괴로움을 벗어나자는 당시의 해결책은 제대로 된 강한 국가권력의 대안으로 이웃나라 일본의 국가권력을 초대하여 사회계약을 맺자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일본 힘에 의존해서 상황을 벗어나겠다는 판단은 철저하게 따지고 계산하는 이성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 이해관계에 대한 계약적 판단이지 ‘의(義)’에 따른 판단은 아니었다. 1904년 러시와의 전쟁을 위해 대규모 일본 군대가 한반도로 진주하자 그 기회에 대한제국에 저항하고자 모습을 나타낸 사람은 엄청난 숫자로 보였다.

 

 

이 시점에서 조선과 일본, 만주가 한 나라로 합쳐야 한다는 생각은 결코 민족주의적 사상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었다. 충분한 힘을 전제로 유럽의 민족 국가 체제를 생각하던 19세기 후반 마치니식 유럽의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사상을 연상시킨다. 모든 민족은 대소를 막론하고 국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1917년 발표한 민족자결주의 이후의 사상이었다.

 

 

이인직도 여러 곳에서 조선의 개화를 강하게 희구했지만, 여러 요인으로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입장이었다. 그는 지금 상태로는 조선 백성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진회와 진보회도 실제로는 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이웃나라 일본의 천황 주권을 들여와서, 또는 일본 정복(征服)을 초대하여 도탄에 빠져 하루하루 죽어가는 조선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이성에 근거한 사회계약적 발상의 정치적 표현이었다.

 

 

일진회와 진보회는 처음부터 반역 음모 집단이었다. 일진회 핵심 집단은 ‘동학 잔당’이었음은 알려진 일이었다. 그들은 동료 동학도를 수도 없이 학살했던 조선 정부에 복수를 노리는 집단이었고, 그들 목표는 조선의 멸망이었다. 그들은 1905년 11월 5일에 대한제국은 일본에 외교권을 위임해야 한다는 ‘선언서’를 발표하여 마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회원 비표를 갖고 다니며 회비를 납부하는 정식 회원만 14만 명이 넘었고, 주변에서 일진회 시위에 합류하고, 박수치고 성원하며 쫓아다니는 사람 수는 1백만 명을 헤아렸다.

 

 

무엇보다 그들은 독창적인 조세저항 운동을 벌였고 이는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일본군 보호를 받은 이상 대한제국의 자의적인 폭압에서 자유로웠고 그만큼 더 큰 것을 처음부터 원했다. 당시 ‘이 지옥 같은 나라’라는 표현이 누구나 수긍하는 말이었다면, 그 나라를 멸(滅)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명분에 타당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이용구, 송병준 등이 이끄는 일진회는 그들 내부에서 이해하기로 반역 집단이라는 점이 명백했을 것이다. 1906년 천도교를 창건한 손병희가 이용구를 비롯한 60여 명을 출교시켰을 때 공식적 명분은 그들은 조선에 복수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 핵심부는 복수를 원하는 동학 잔당이었고, 목표는 일본 정복을 초청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목표 아래 일본군 보호를 받으며 독립협회가 개발한 연설회, 시위운동과 여러 구경거리 등을 통해 대중을 동원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우찌다 료헤이를 비롯한 일본의 흑룡회 간부들이 일진회의 취지를 들었을 때 그들은 자신 귀를 의심했다. 조선 내에서 일본을 도와줄 세력을 기대하긴 했지만 막상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겠다는 말을 듣고서 말 그대로 믿을 수가 없어 여러 차례 확인 절차를 반복해야 했다.

 

 

사실 ‘민족’이라는 말이 <대한제일신보> 논설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08년 초였다. (이후 민족이라는 단어는 활발히 사용된다.) ‘민족’은 우리를 밖에서 보고 지칭하는 객관적인 보통 명사다. 결국 ‘민족’이라는 말을 선호하고 선택하게 된 것은 ‘민(民)’이라는 말로 정치적 의미를 부가한 종족의 뜻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때 정치적 종족으로 말했다는 것은 당시 우리 정체성을 어떤 국가에 대한 소속 의식을 떠나 규정했다는 의미이고, 이는 기존 국가 즉 대한제국의 존재를 정체성에서 지워버렸음을 뜻한다.

 

 

즉 민족은 특정한 국가와는 직접 관계를 부정하며 일반적인 국가, 말하자면 앞으로 만들 국가와의 관계를 긍정할 뿐이다. 우리 정체성이 적어도 언어 차원에서 현재와 같이 이렇게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1908년 초였다. 우리의 ‘친일파’들의 탄생은 조선 지배층이 야기한 사회 붕괴에서 연유한 것이었고, 우리 저항민족주의자들은 친일파들에 자극받아 우리 정체를 비로소 생각하고 배신자들과의 투쟁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근대 민족주의는 우리나라 대한제국의 망국이 눈앞에 불가피한 현실로 다가왔을 때 당분간 나라 없이 버틸 방편이기도 했다. 많은 민족의 경우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민족주의는 이러한 역사에서 태어나고 일제시대를 거쳐 성장해왔기에 나중에도 국가에 흡수되지 않고 국가주의와 합류를 거부하며 국가 밖에서 독자성을 유지해왔다.

 

 

신소설 내용은 당시 작가가 겪었던 현실에 뿌리박은 이야기이었다. 그런 이야기인 만큼 핍진한 이야기이며, 살벌하고 엽기적인 이야기였다. 이런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시대에 그토록 많던 친일파를 용서까지는 못해 주어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차피 우리 민족의 아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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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광수의 근대 소설 <무정> 이전의 이인직, 이해조 등의 소설은 ‘신소설’이라 칭한다. 이인직은 기존의 구소설과는 전혀 다른 소설을 연재하여 인기를 끌었고 이어 이해조도 뛰어난 작품을 발표했다. 이인직은 한일병합 이전까지 <혈의 누>, <귀의 성>, <치악산>, <은세계> 등 네 편을 발표하였고, 이해조는 <빈상설>, <구마검>, <원앙도>, <자유종>, <화세계> 등을 발표했다.

 

 

신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실로 희한한 소설임을 느낄 것이다. 우리의 공식적인 국문학사에서도 신소설은 묘한 역사적 단계로 이해되고 있다. 구소설과 구분되고 근대 소설과도 구분되는데, 보통은 문학적 수준이 결여된 수준이 낮은 작품으로 이해된다.

 

 

사건 진행이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우연한 사건이 수시로 끼어들며, 스토리는 복잡하고 정신없이 전개되고, 또 인물들 이야기를 표현함에 있어 ‘우여곡절’ ’기구한 운명‘이라는 말 이외 다른 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얼핏 개연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여성 인물들이 빈번하게 자살을 시도하는 등 과도한 흥미 위주의 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유로 신소설은 역사 발전에서 비정상적인 단계로 취급되어 왔다. 한마디로 신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든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기 어렵고, 따라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신소설의 이런 특징을 단순히 근대 이전이라 미발달 단계의 소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근대 이전 ‘구소설’ 작품의 경우에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인직, 이해조 등의 작가들이 지적 수준이 미흡했던 사람들인가? 도저히 소설가로서 적합하지 않은 인물들이었던가? 그렇지 않다면, 왜 이 시점에서 이런 작품이 나타나게 되었는가에 대해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단적으로 신소설이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은 공동체가 개인으로 분해되어 모든 사람이 각자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다투며 공포에 떠는,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범죄도 마다하지 않고 여유만 있으면 자신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그런 모습, 모든 사람이 아귀가 되어버린 그런 세상을 그리고 있다. 이인직 소설에 나타나는 조선 사회의 모습은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유대가 사라지고 각자 개인들로 흩어져 생존을 위해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하고 기회만 되면 누구에게 무엇이라도 빼앗으려 하고 자신 욕구를 채우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이다.

 

 

대개는 중심적인 악인이 악행을 음모하고 공모자를 끌어들이지만 이들도 모두 각자 목적을 위한 것이지 신뢰하는 관계는 아니다. 모든 가족 관계 특히 부모 자식 관계도 이해관계로 분해되고 모든 사람은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세상에 내팽겨진 채 살아남으려 애를 쓰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피해를 당한 인물은 나중에 똑같이 잔인한 피의 복수를 감행하고야 만다. 이인직 소설들은 당시 대한제국 사회 모습을 일종의 홉스적 ‘자연 상태’라고 의식하고 이야기를 전개했다.

 

 

홉스의 자연 상태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국가 이전의, 역사 이전의 모습이라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국가가 생긴 이후에 타락의 어떤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아마 당시 17세기 중반 이전 서구의 오랜 중세 봉건 사회가 붕괴되며 어디에선가 나타났던, 또는 청교도 혁명 전후의 혼란 상태에서 홉스가 영감을 얻을 것이라 판단된다. 어쨌든 홉스가 제시한 이런 식의 세상, 즉 사회가 붕괴되고 고독하고 불안에 떠는 개인들로 흩어진 그런 세상은 가능할 것이다. 신소설에 나타난 자연 상태는 – 선사 시대가 아니라 – 조선이 타락하고 붕괴되어 나타난 현실의 모습이었다.

 

 

신소설에서 최고 악인은 단연 하인들, 특히 영악한 하녀, ‘종년’들이었다. 그들은 속량(贖良, 종의 신분을 풀어 주어 양민이 되게 해 주던 일)을 목적으로 또는 한 밑천 얻기 위해 주인마님에게 접근하여 악행에 앞장설 것을 제의한다. 속량은 인간 해방과 계급 상승이라는 측면에서 당시에 공식적인 ‘개화’와 연관하여 이념적으로 정당한 욕망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당한 금전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고, 이는 다시 영악한 계교와 잔인성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그들은 속량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주인마님은 대개 ‘사이코’이며 약속을 지키지 않고 배신한다. 원래 처음부터 주인마님하고 종년 간에는 전혀 신뢰가 없었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잠시 참고 서로를 이용했을 뿐이다. 이 시대의 악은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利害)와 능력의 문제였다.

 

 

홉스적 자연 상태에서는 사회의 일관된 문화가 붕괴된 상태이며 따라서 개인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규정하는 문화의 핵심적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 선택은 한반도를 떠나는 것, 특히 유학이었고, 그 다음은 자신의 개화된 의지를 증명하는 자살이었다. 이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 중에서 약자야말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약자들은 피해자로서 인간 존엄성을 박탈당했다.

 

 

거의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든 그런 대로 살아 보겠다고 애쓰는 사람들이든 그들은 작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행에 서슴지 않고 가담해야 했다. 영악해야 했고 교활해야 했다. 자신 모습을 숨기기도 하고 상대를 기만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세상을 바꾸어보려는 사람은 우선 자기 자신에 집중해야 했고 그런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섞이지 않고, 그들 삶의 모습을 결코 따라하지 않고, 에고를 만들고 목숨을 걸고 지키기 위해 외롭게 싸워야 했다. 그런 삶이 긴 세월 동안 지속된 경우에는 비사회적 인물, 나아가 반사회적 인물이 되어갔다.

 

 

그들은 인간들이 함께 사는 사회, ‘공동체’라는 것을 거의 평생 겪어보지 못한 세대였다. 그들에게 공동체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 신화에 불과했다.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에고 과대증과 같은 괴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와 같은 사람의 문제는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능력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는 영웅, 주인공이 먼저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의 배경이 될 현실로서의 홉스적 자연 상태가 먼저 나타나 있었다. 근대 사회 또는 근대성이란 다양한 얼굴을 갖지만, 한반도에서는 중세가 망가지고 흩어진 파편들로서의 개인들이 근대로 나타났다. 그곳은 지옥 같은 ‘정글’이었으며 거기에서 처음 발견된 근대의 생명체는 속 빈 넝마 인형 같은, 인물성이 부정된 ‘피해자 여성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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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1-06-16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책인 것 같네요. 저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북다이제스터 2021-06-16 15:23   좋아요 1 | URL
정치외교학과 교수님이 쓰신 책이라는 점이 좀 의외이지만,
학교 다닐 때 이렇게 배웠으면,
국어 시간이 더 재미있고 귀에 쏙쏙 들어왔을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이나 관념을 가지고 있는 민족은 흔하지 않다. 흥미롭게도 우리를 제외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비슷한 말은 있지만 남자와 여자 간의 성관계를 포함하는 특별한 관계와 감정으로서 정확히 대응되는 개념은 거의 없다. 한자의 애(愛)도 원래 고전에서의 용례는 ‘아끼는 마음’, 예를 들어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었다. 일본어에서 근대 이전에 많이 등장하는 이로[色]라는 말은 게이샤나 유녀들과 관계를 이르는 말로 우리 문화의 ‘사랑’과는 아주 다른 뜻이었다.

 

 

우리 전통문화에서의 사랑과 서구 문화에서의 ‘love’도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특징, 즉 상대방에 대한 욕망, 각별한 감성, 상대에 대한 배타적 정의(定義)와 의리, 그리고 특정한 ‘사랑’의 관계에 대한 결의 등은 공통적이다. <춘향전>은 일차적으로 사랑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는 우리 전통의 사랑의 모든 측면을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이 시절의 사랑 개념은 근대 서구의 ‘순수한 사랑’과는 다른 것이었다. 서구 사랑은 육체관계에 탐닉하지 않는 절제하는 순수한 영혼의 사랑을 이상화하지만 춘향의 사랑은 근대 서구식의 이념적이고 금욕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근대 이전 우리의 전통적 사랑이랑 총체적인 삶으로서의 사랑이었고 따라서 성관계를 배제하고는 사랑일 수 없었다. (그래서 원작 <춘향전>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은 서로 처음 만난 날 관계를 갖는다.)“<한국인의 탄생>

 

 

 

 

 

 

 

 

 

 

 

 

 

 

 

 

 

“유럽 중세 아자그(Asag) 의식은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구애 의식 후 첫 키스 전에 사랑하는 여자의 나신을 보는 ‘시련’이다. 여성은 알몸인 남자 옆에 나신 상태로 눕는다. 남자는 이 의식 진행에 권한을 쥐고 있는 여성 의사에 반하는 어떠한 짓도 하지 않는다는 맹세한다.“

 

 

저자는 아자그가 정신적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세 의식이라고 말하며, "여성은 남자가 자신을 정신적으로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자신 육체를 원하는 것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연인 사이에서 감정의 합의를 전제로 하는 존경심이다. 감정의 합의 없는 모든 성적 관계는 노골적인 육욕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유럽 중세는 육체보다 영혼이나 정신을 더 가치있게 생각한 문화였기에 아자그 의식은 그 시대 의식을 반영한다고 말한다.<중세의 쾌락>

 

 

 

 

 

 

 

 

 

 

 

 

 

 

 

 


“12세기 유럽 기사들은 숭배하는 여인에게 헌신적이었지만 꼭 성적인 결합을 바라지 않았다. 17세기 영국에서 결혼은 이십대 후반까지 미뤄졌지만 사생아 출생률은 단 3%에 지나지 않았다. 이 비율은 피임이 보편화된 오늘날과 비교해볼 때 극히 적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번들(bunddle)이란 구애하는 남자가 여자 초대를 받아 여자 침대에서 함께하는 관례다. “번들은 옷을 입은 채로 껴안고 이야기하고 같이 잔다는 의미였다. 때때로 여자가 허리까지 옷을 벗는 경우도 있었고 신발과 양말을 벗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순수한 애정 표시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관습은 ‘응접실에서 둘이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지 않다’고 여겨졌고 따뜻하기 때문에 더 선호되었다.

 

 

번들링은 오직 겨울 동안에만 있는 일로 종종 일요일 예배 후에 이루어졌는데 약혼자들 사이로 제한되지 않았다. 남편은 자기 아내나 딸들과 ‘번들’ 하라고 손님을 청할 수도 있었다. 이는 영국과 미국, 네덜란드에서 흔했고, 외관상으로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그랬다.“<인간의 내밀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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