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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자사고 왜 폐지했겠어요?
이 정부는 사다리 오로는 거 자체를 무척 싫어합니다.
원래 잘 사는 사람들이 자식들 해외유학 보내서
넘사벽 되는 건 상관 안 해요.
근데 애매한 사람들이 감히 사다리 오르려 하는 건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따뜻한 개천에서
‘사랑하는 내 새끼야 우리는 가재 붕어 개구리란다’
하면서 천년만년 살 생각 없으면
그 와중에라도 좋다는 학군으로
어떻게든 이 악물고 옮겨서 맹모노릇 하는 거죠.
그래서 주요 학군지 집값이 폭발할겁니다 앞으로 더.
물론 모두가 주요 학군지에 들어갈 돈이 있는 게 아니니까
한시라도 빨리 들어가지 않으면 사다리가 또 점점 끊기겠죠?
 


슬프지만 각자도생입니다.
눈치 빠른 사람만이 그 와중에 살아남는 거예요.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모두가 각자 눈치 챙기시기 바랍니다.
 


시장은 선의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
시장참여자 각자의 이기심으로 굴러가는 거예요.
그게 자유시장경제예요.
인간의 선의 따위에 기대서 정책을 펼치는 순간
거기가 바로 지옥이에요.
왜냐고요?
이 정권의 가장 신실한 옹호자조차도
[내가 춥고 배고프니까 당신 월급에서 매달 30만원만 좀 갈라 쓰자]
고 하면 눈알 뒤집는 진기명기 쇼를 선보일 테니까요.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입니다.
선의보다 내 이익이 먼저예요.
아프리카 애들 굶어 죽어가는 거 뻔히 알면서도
죄책감 하나 없이 떡볶이 사먹고 쿨피스 마시는 게
바로 여러분이라는 사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임대주택을 혐오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임대주택에 그대로 머물러 살 생각을 하는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는 얘기에요.

 


(이 정부가) 왜 이러냐고요?
모두가 평등해야 하니까
좋은 집으로 옮기려는 욕망 따위는 나쁜 거니까
모두가 자기 거 안 가지고
평등하게 임대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니까.
(*주의: 그 와중에 윗분들은 강남 집 한 채씩 다 있음)
 

 

뻑하면 ‘철 지난 이데올로기 타령한다’고
사람을 메카시로 모는데
우리 말은 똑바로 하도록 합시다.
철 지난 건 이데올로기 타령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철 지난 이데올로기를 여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에요.
 


2020년이에요 좀!
 

 

끝없는 욕심이라 비판하는 분이 있겠지만
바로 그 욕심이 개인 발전을 이끌어내는 힘이며
자본주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입니다.
누구나 대충 머리 위에 지붕만 있으면 만족하는 사회
아무도 집을 한 채 이상 사지 않는 사회
모두가 경차 한 대 사고 만족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과연 경제 발전이 있을까요?
누가 이런 사회에서 새 집을 짓고 새 차를 만들려 할까요?
움직이지 않는 사회는 발전하지도 못합니다.
 

 

사회는 좀 더 잘 살고 싶은 개인 욕심 덕분에 발전합니다.
결코 이타심이 발전시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정부가 집값을 안 잡는 이유>

 

 

 

 

 

 

 

 

 

 

 

 

 

 

 

 

 

 


"꽤 많은 종교의 중심 교리는 인간이 죄의 수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자본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의 동기를 이기심이라고 간주한다. 경제학자들은 우리 종을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정의했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로봇처럼 언제나 개인적 이익에 몰두하는 동물이라는 말이다. 이 같은 인간 본성의 개념에 따라 경제학자들은 이론과 모델의 성체를 세웠고, 이것은 수많은 법률의 기본 정신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여부를 조사한 사람은 지난 2000년 경제학자 조지프 헨락이 이끄는 팀이 연구를 착수할 때까지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5개 대륙의 12개 나라에 속한 공동체 15곳을 방문해 수십 년 동안 경제학의 대상이 된 인류를 찾기 위해 농부, 유목민, 수렵채집인을 조사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조사 결과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사람들이 너무 점잖고, 너무 친절했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교리는 서구에서 종교적으로 신성시되는 전통이다. 위대한 사상가들 목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투키디데스, 아우구스티누스, 마키아벨리, 홉스, 루터, 칼뱅, 버크, 벤담, 니체, 프로이트,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과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각각 문명의 껍데기 이론에 대한 그들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비판적인 견해는 기독교 초기부터 이미 스며들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처음부터 죄를 갖고 태어난다는 아이디어를 널리 알리는 데 공을 세웠다. 그는 ‘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심지어 태어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유아도 예외일 수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원죄 개념은 종교개혁이 일어나 신교도들이 로마 가톨릭교회와 결별한 뒤에도 계속 인기를 유지했다. 신학자이자 개혁가인 칼뱅에 따르면 ‘우리 본성은 가난하고 선함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악이 자라서 열매를 맺기에 너무나 좋은지라 쉴 틈이 없다’고 한다. 이 같은 믿음은 1563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비롯한 주요 개신교 문헌에 나타나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어떤 선도 전혀 행할 수 없으며 모든 악에 이끌리게 마련이다.’

 

 

불가사의한 일은 전통적 기독교뿐 아니라 신앙보다 이성을 우위에 두는 계몽주의 역시 성악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신앙인들이 확신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타락했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위에 신앙심을 얇게 바르는 것이다.’ 계몽주의 철학자들 역시 우리가 타락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들 처방은 타락 위에 이성을 입히는 것이었다.

 

 

많은 나라 대부분 사회구성원들을 이기적인 존재라고 간주한다. 그들은 인간이 자신 이익을 지나치게 추종하며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가정 하에 법과 제도, 규칙을 만들었다. 심지어 그 제도와 규칙마저도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한다고 간주해 디자인돼 있다. 자본주의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인간이 자신 욕구를 이기적으로 채우려는 동기를 기반으로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은 오늘도 작동한다.

 

 

체제와 권력 입장에서도 사회구성원들을 강력히 통제하려면 인간의 선한 면을 강조할 이유는 없다.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인간들로 이루어진 사회에 법과 권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으니 말이다. 홉스의 사상은 관리자와 독재자, 총독과 장군들에 의해 그 이후 수천 아니 수백만 번 되풀이될 논쟁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우리에게 권력을 달라.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리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가 받은 인상에 따르면 엘리트가 공황에 빠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모두의 인간 본성이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독재자와 전제군주, 주지사와 장군 모두 자신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시나리오가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너무 자주 무력에 의존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과 똑같이 이기심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고 가정하는 탓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믿는다면 진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믿음은 사회학자들이 일컫는 ‘자기충족적 예언’이 된다. 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우리가 예측하는 일은 일어나게 된다. 만일 우리가 대부분의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 견해만큼 세상을 만드는 커다란 힘을 가진 아이디어는 거의 없다.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이 기대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루소는 ‘인간이 본래 선하며 그가 사악해지는 것은 오로지 사회제도 탓’이라고 이해했다. 우리는 인간의 선함을 옹호해야 한다. 이는 존재하는 권력에 대항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권력자들에게 인간 본성에 대한 희망적인 견해는 곧바로 위험이 된다. 파괴적이고 선동적이다. 이는 우리가 속박하고 통제하며 규제할 필요가 있는 이기적인 짐승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우리에게 다른 종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동기가 부여된 직원이 있는 회사에는 관리자가 필요하지 않고, 참여하는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에는 직업 정치인이 필요하지 않다."<휴먼카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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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더스의 개>의 결말 부분은 무척 슬픈 장면이지만, 죽어가던 네로는 한편으로 루벤스 그림을 보고 행복을 느꼈을 것만 같다. 루벤스 그림을 보는 것은 예술가 지망생인 네로의 평생소원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플랜더스 지역의 건축과 미술은 귀족과 중산층 자본가들의 후원을 받아 눈부시게 발전했다. 미술사에서 ‘플랑드르 화파’라고 따로 묶어서 부르는 명칭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들 플랜더스 화가들 작품이 많이 창작된 이유는 뭘까?

 

 

이 시기는 많은 작품들을 계속 새로 주문해서 빈 공간에 다시 걸어야 할 정도로 전쟁으로 인한 파괴 행위가 빈번했다. 특히 1618년까지는 유럽에서 벌어진 종교 전쟁 중 가장 참혹했던 30년 전쟁이 벌어진 시기인데, 이 시기는 루벤 전성기와 거의 일치한다. 구교도와 신교도 국가 사이에 벌어진 이 종교 전쟁 시기에 우상 숭배를 엄격히 꺼리는 신교도 병사들은 북유럽 가톨릭교회의 미술품을 파괴하고 약탈한다.

 

 

한편 가톨릭 총본산인 로마 바티칸에서는 알프스 이북의 종교 개혁에 맞서 반종교 개혁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 시기 미술 분야서 반종교 개혁 운동은 바로크 미술을 성립시킨다. 로마 교황과 이탈리아 귀족들, 가톨릭 수호자를 자처했던 에스파나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는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웅대한 스케일과 구도, 화려한 장식과 과장된 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종교화와 인물화를 앞다투어 주문해 공개적으로 내걸어 가톨릭 세력의 건재를 만장에 알리려 한 것이다.

 

 

네로가 성당 안에서 죽어가면서 보던 그림인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와 <십자가에 세워지는 예수>는 바로 루벤스 그림이었다. 이 두 그림은 역동적인 사선 구도가 돋보이는 명작이다. 그런데 종교화치고는 이상한 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당해 사망한 비극적 장면을 그린 이 그림에서 예수 신체는 너무도 우람한 근육질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루벤스가 바로 과장과 위압감을 특징으로 하여 가톨릭 건재를 널이 알리려는 목적을 가진 바로크 미술의 대가였기 때문이다."<백마 탄 왕자는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루벤스 작품들은 지금도 벨기에 안트베그펜의 노트르담 성당에 있다. 성당 앞에는 루벤스 동상도 있다고 한다. 루벤스는 안트베르펜 저택에 작업장을 짓고 많은 조수를 고용하여 마치 공장처럼 주문받은 작품을 빠르게 대량생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루벤스는 유럽 종교 전쟁의 덕을 보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의 작품 자체가 예술적으로 훌륭하기는 하지만 말이다.“<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전통적으로 네덜란드 화가들은 “이탈리아 화가들이 신성시했던 아름다움 기준에 별로 개의치 않았으며, 품위 있는 주제에도 별로 큰 관심이 없었다. 루벤스는 이런 전통에서 성장하여 화가 임무는 자신이 좋아하는 주변을 생동감 넘치게 그리면, 보는 사람이 화가가 즐긴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신념을 평생 유지했다.” “루벤스는 자신 손길이 닿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당장 생기를 띠게 된다고 확신했는데 사실상 그의 생각이 옳았다. 그것이 루벤스 예술의 가장 큰 비밀이었다.”<서양 미술사>

 

 

 

 

 

 

 

 

 

 

 

 

 

 

 

 

"17세기 이르면 르네상스의 지나친 이성주의와 규칙성에 반발로 감성에 호소하는 바로크와 로코코 미술이 등장한다. 바로크는 유동적이고 강렬하며 장식적인 미를 추구한다. 대표 작품으로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심> 등이 있으며, 렘브란트, 벨라스케스도 같은 화풍 화가다. 프랑스 혁명 후 사회를 장악한 부르주아나 귀족의 주거 장식을 위해 바로크의 감성적 측면을 이어받았지만, 무게감과 강렬함에서 벗어나 섬세하고 부드럽고 에로틱한 로코코가 등장한다. 대표작은 부셰의 <비너스의 화장>이다.“<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너머 편>

 

 

 

 

 

 

 

 

 

 

 

 

 

 

 

 

 

 

바로크 시대는 “르네상스 후반 매너리즘에서 보여준 것과 유사한 기하학과 자유곡선, 장식성이 극대화되었다. 이 과정이 로마의 가톨릭에서 전개된 바로크 양식의 시작이었다. 로마 가톨릭의 불안감에서 출발한 바로크는 동시대 또 다른 권력의 축인 절대왕정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과한 장식은 종교성을 배제하면 군주의 절대성과 권위를 드러내기에 효과적이었다. 바로크 양식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자.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바로크 특징은 욕망과 비정형성, 두 단어로 함축할 수 있다. 먼저 욕망은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주요세력의 욕망을 살펴보자. 로마 가톨릭의 종교적 열망과 이를 선전하기 위한 욕망, 절대왕정의 독보적 권위를 표현하기 위한 욕망, 상업가문 또는 귀족들의 축적된 부를 표출하기 위한 욕망 등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욕망들이 바로크의 미학적 특징으로 발현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사각형과 원이 회화, 조각, 건축의 구도를 잡는 데 사용되었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사각형, 원, 타원, 동심원 등 보다 다양한 기하학 형태들이 겹쳐진 복합적인 작도를 통해 비정형의 미학을 찾았다.”<유럽의 시간을 걷다>

 

 

 

 

 

 

 

 

 

 

 

 

 

 

 

"1600년경과 1700년대 초 사이에 유럽 예술의 주된 양식은 바로크였다. 하지만 프랑스와 네덜란드, 영국 등 일부 국가들은 바로크의 지배적 영향력에 반기를 들었다. 프랑스 저항은 일차적으로 민족주의적 영감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바로크 양식은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 취향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17세기와 18세기 초 대부분 기간에 걸쳐 프랑스는 이들 국가와 계속적인 대립 상태에 있었다. 그렇기에 프랑스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들의 예술 양식을 모방하여 문화적 열등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따라서 프랑스의 예술가와 건축가들은 화려한 바로크 대신 정제된 고전주의를 추구했다.“<서양 문명의 역사 –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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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생각하는 대로 연금술은 단순히 납 같은 싸구려 금속을 황금으로 바꾸어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목적으로만 행해졌던 것은 아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사람들은 동식물뿐 아니라 광물과 금속도 계속 활동하며 성장한다는 자연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숯이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처럼 금속도 가장 완벽한 상태의 금속인 황금으로 스스로 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에 연금술의 실험 과정은 금속을 전혀 다른 금속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금속의 자연적 성장 과정을 촉진하여 스스로 가진 완전성에 이르게 하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연금술 과정을 우의적으로 그려놓은 그림들을 보면, 각각의 화학적 단계들이 인간의 탄생, 죽음, 부활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연금술은 인간의 영적인 변화와 성숙을 탐구하기도 하는 철학적 학문이기도 한 것이다. 한마디로 완전하지 못한 무언가를 화학적 변화가 상징하는 자기 시련과 고양 단계를 거쳐 완전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 연금술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점이었다. 그래서 진정한 연금술사는 황금을 만들어내는 데에만 혈안이 된 다른 연금술사를 ‘퍼퍼(puffer)’라고 불러 현자(Philosopher)인 자신들과 구별했다. 당시에는 실험 기구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를 본떠서 붙인 ‘퍼퍼’라는 단어가 현대에는 사기꾼이나 야바위꾼이라는 의미로 쓰인다는 점을 보아도 진정한 연금술은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황금 제조술’과 거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해리 포터> 시리즈 1편에서 해리가 완전한 금속인 황금을 만들게 하는 촉매인 ‘현자의 돌’을 이미 손에 넣었다는 것은 전체 시리즈의 나아갈 길을 알려준 것으로 보인다. <해리 포터>는 해리라는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해리는 볼드모트로 표현되는 자기 내부의 불순한 면, 어두운 면을 어떻게 변화시켜 완전한 어른으로 성장했던가? 납이 시련 과정을 거쳐 보다 높은 단계인 황금으로 변하는 연금술 원리가 시리즈 전체에서 느껴지지 않는가? 해리는 <해리 포터>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볼드모트에 의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끝내 그를 이겨 최후의 승리를 얻는다. 어딘지 연금술 이론과 닮아 있는 않은가?“<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르네상스 시대의 연금술사들은 ‘현자의 돌’이 있다고 믿었다. 평범한 물질을 금으로 바꾸어주고, 늙은이를 젊은이로 되돌려주는 이 돌을 찾아내는 것이 연금술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자의 돌’이 있다면, ‘우자의 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속설은 어쩌면 문학적 대구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우석의 제거>는 환자 머릿속에서 ‘바보의 돌’을 제거하여 환자의 광기를 치료하는 장면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광우라는 증상이 뇌 속에 박혀 있는 ‘어리석은 돌’에서 비롯되었다는 관념이 널리 퍼져 있었다.“<교수대 위의 까치>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우석의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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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는 독자에게 적당히,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수준의 독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더 큰 문제를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감히 이런 점을 <안네의 일기> 역기능이라고 생각해 본다.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만행, 학살에 대한 더 생생하고 충격적인 일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바로 <안네의 일기>를 읽는 주된 독자들인 것은 아닐까?

 

 

<안네의 일기>에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나치 치하 수용소 현실과 학살에 대해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고발은 없다. 나치 만행과 전쟁 상황은 은신처에서 몰래 듣는 영국 라디오와 어른들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진다. 안네가 발각되어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 그러니까 수용소를 직접 경험하기 직전에 일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독자들은 작가 지망생 소녀가 섬세하게 묘사한 은신처의 일상, 좁은 공간에 모여 살기에 갈등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인물 묘사의 탁월함, 사춘기의 설레는 첫사랑 감정과 약간의 전쟁 공포감까지만 읽는다. 언제나 수다스럽고 명랑한 그녀에게서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꺽이지 않는 삶의 희망을 느낀다. 그리고 왠지 그녀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았을 거라고 착각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 <안네의 일기>가 너무도 유명한 나머지, 우리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만 학살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정부가 없기에 자신들이 당한 일을 세계에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던 집시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도, 읽지도 못한 채 말이다. 정착하지 않는 민족이라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일설에 의하면 100만 명의 집시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1935년 뉘른베르크 법은 유대인뿐 아니라 집시에게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폴란드인이 겪은 일도 우리는 잘 모른다. 폴란드는 유럽 대륙의 철도 노선 정중앙에 있다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자신들의 땅이 죽음의 수용소로 이용당했으며, 유대인이 아님에도 200만 명이나 되는 폴란드인이 학살당했다.“<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서양’ 지식인들은 유독 히틀러 나치즘에 분노한다. 아프리카를 문명화하려 했던 무솔리니와 달리 나치는 유럽인을 문명화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에메 세제르의 촌철살인을 빌리면, 서양인들은 히틀러가 ‘인류’에 반하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백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기에 용서할 수 없었다. 양심적 백인 지식인 대부분이 홀로코스트 이전에 일어난 식민주의 제노사이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제르 비판은 설득력이 있다.

 

 

NBC 미니시리즈 <홀로코스트>를 보면 식민주의 제노사이드에 비해 홀로코스트가 유럽인들에게 유독 더 감정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킨 이유가 분명해진다. 제노사이드 희생자가 이국적인 식민지의 낯선 유색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이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가 독일에서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이미 독일인으로 동화된 중산층 유대인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대부분이 동유럽의 가난하고 무지한 하층 유대인들이라는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나치가 ‘백인에게 저지른 범죄’를 처음으로 생생하게 그렸다는 게 성공 비결이었다.

 

 

홀로코스트가 ‘야만적인’ 아프리카나 아시아가 아니라 ‘문명화된’ 유럽 한복판에서 일어났기에 유별나게 비판을 받는다는 사실은 지구촌이 기억하는 제노사이드가 서구중심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벨기에령 콩고에서 1885년부터 1920년까지 약 1000만 명의 원주민이 가혹한 노동에 탕진해 죽고 살해당한 아프리카 제노사이드, 글자 그대로 ‘절멸된’ 테즈메이니아 선주민 제노사이드, 많게는 18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미국 선주민 인디언 제노사이드보다 홀로코스트가 각별히 더 비극적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인디언 제노사이드와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나란히 놓고 보면 뜻밖의 결과를 얻게 된다. 미국 민주주의는 홀로코스트 대척점에 서 있는 게 아니라 홀로코스트 가능성을 내장한 체제라는 결론이 그것이다. 근대 문명은 홀로코스트를 내장하고 있다는 지그문트 바우만 지적은 미국 민주주의에도 해당된다. 홀로코스트를 ‘전근대적이고’ ‘반봉건적인’ 독일사의 특수성으로 국한시키려는 시도에는 정치적 알리바이 냄새가 짙다.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맥락에 홀로코스트를 배치하는 순간, 영미식 자유민주주의에 내장된 식민주의 제노사이드와 인디언 제노사이드의 원죄가 드러난다. 민주주의와 파시즘, 나치즘이 같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19세기와 20세기 민주주의가 저지른 학살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기억할 때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향한 21세기 고민이 길을 찾을 수 있다."<기억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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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에스파냐 제국 시기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였다. 이전 시대 유럽의 지배 계급이던 기사는 14~15세기 백년전쟁부터 장궁과 대포, 총포 발명과 중앙집권 국가 출현으로 인해 전쟁이 감소하여 서서히 예전 명성과 일자리를 잃고 몰락하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자국 내 전사 귀족 수가 줄었다. 하지만 에스파냐의 경우, 레콘키스타 과정을 거치면서 이슬람 세력과 잦은 전쟁 때문에 오히려 하급 기사 수가 지나치게 늘어나게 된다.

 

 

1492년, 그토록 꿈꿨던 통일은 이루었건만 그 많던 에스파냐의 기사들은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는 무장한 사회 불만 세력이 늘 폭력을 행사할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페르디난도와 이사벨라는 이들을 식민지 개척을 위해 아프리카와 남미로 보내버린다. 말하자면 왕과 여왕은 폭력을 수출했으며 기사들은 외화 획득을 위한 산업 전사가 된 셈이다. 이들 귀족 전사들은 레콘키스타의 경험과 기사도 영향으로 기독교 수호자라는 명분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해외로 진출한 이들 에스파냐의 기사들은 이슬람교도나 인디언들에 대한 학살을 신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이상한 기사도를 실천하게 된다. 약자에 대한 보호라는 기사도의 더 중요한 의무는 잊은 지 오래였다.

 

 

당시 하급 귀족들의 이러한 모습과 비교해 볼 때 돈 키호테는 달랐다. 그가 이미 몰락한 구시대의 계급인 기사가 되어 약자 편을 들고 정의를 수호하려는 꿈은 결코 시대착오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중해 너머 북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학살을 일삼으로며 자신을 십자군이라고 여긴 동시대 다른 기사들이 훨씬 시대착오적인 사고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부 문제를 외국으로 수출하여 자국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시에 실리를 얻으려 하며, 거기에다 터무니없이 종교적으로 선한 명분을 내건 세력은 역사 이래 언제나 있었다. 그 시절 에스파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돈 키호테는 자신이 발 디딘 에스파냐 현실을 보다 올바르고 정의롭게 고치려고 했다. 그는 주인에게 부당하게 매 맞는 어린 하인을 구해주고, 끌려가던 죄수들을 해방시켰으며 당시 악명 높던 에스파냐 종교 경찰을 노상 강도라고 꾸짖는다. 그는 끝까지 이상을 위해 행동하며 낡은 창을 들고 풍차로 돌진했다. 이렇게 볼 때 어느 편이 더 진정한 기사도의 실천이었을까?“<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에스파냐는 처음 남미 카리브 해 섬들에 도착했을 때부터 극도의 파괴성을 보였다. 이 단계에서 무식하고 절제력 없는 선원들은 주저하지 않고 살인과 약탈을 자행하여 서인도 제도 주민들을 거의 절멸 상태에 이르게 했다. 당시 사정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라스카사스의 기록이 증언한다.

 


‘기독교도[에스파냐 인]들은 말과 창을 사용해 학살을 시작했고 원주민들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잔혹성을 보였다. 마을을 공격하여 어린이, 노인, 임신부, 혹은 출산 중인 여인까지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다. 그들은 칼로 찌르거나 팔다리를 자르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마치 도살장에서 양을 잡는 것처럼 갈가리 찢었다. 그들은 한칼에 사람을 벨 수 있는가, 머리를 단번에 잘라낼 수 있는가, 혹은 칼이나 창을 한 번 휘둘러서 내장을 쏟아낼 수 있는가에 내기를 걸었다. 어머니 품안에 있던 아이를 낚아채 바위에 집어던져 머리를 부딪치게 하거나 강물에 집어던지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당시 에스파냐 인들의 심성은 군사적이었다. 당시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8세기에 이슬람 지배를 받게 된 이후 차차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레콩키스타‘의 문화와 심성이 강하게 되었다. 말과 칼, 살인의 스릴과 약탈의 즐거움을 맛본 이 ‘귀족 홀리건‘들은 무장해제가 쉽지 않은 형편이었고 중앙정부가 쉽게 통제할 수도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식은 이들을 국외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에스파냐뿐 아니라 당시 모든 유럽 군대의 군사력이 증대되었다. ˝모든 국가의 군사력이 증대함으로써 어느 한 국가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기가 힘들게 되었다. 대개 각국 군대는 전선에서 유착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전쟁은 지구전이 되기 쉬었다. 이렇게 여러 나라가 오랜 기간 팽팽히 맞서야 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군사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 시대 특징이었다. 쉽게 표현하자면, 유럽 내부에서 쌓여만 가고 소진되지 못한 힘이 외부를 향해 표출되었다. 그것이 곧 식민제국을 건설하는 ‘제국주의‘로 귀결되었다. 서구가 전 지구적 차원의 식민제국 건설에 승리하게 된 이면에는 유럽의 군사혁명이 있었다는 점이다. 크기도 작고 자원도 보잘것없는 유럽은 우월한 군사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충했다.˝

 

 

˝다른 지역의 전쟁 개념은 유럽과 다르다. 유럽과 다른 지역 사이의 전쟁 개념이 다르다는 사실로부터 매우 특이한 결과가 생겨난다. 유럽은 한 번 전쟁을 하게 되면 최대한의 군사력을 동원해서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총체전이 된다. 유럽의 적극적인 호전성, 더 나아가서 최대한의 무력을 집중시키면 전쟁 피해 역시 극대화된다. 이에 비해 다른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살상하는 전략을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멕시코 인디언 사례를 보면, 그들은 싸우는 양측이 동등한 출발점에 서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단순히 우리 편 수가 많아서 이기든지, 더 나쁘게는 속임수로 이기면 승리의 가치가 크게 훼손된다. 심지어 상대방이 너무 기운다고 생각하면 식량과 무기를 제공해 주고 싸우기도 한다. 약한 적을 이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서구 문명은 다른 문명에 비해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공할 정도로 공격적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강요되었다. 그 결과 서구 문명은 (우리와 같은) 고독하고 잔인한 괴물을 만들어 냈다.˝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 같은 가톨릭 국가의 해외 팽창 사업은 흔히 교황으로부터 면죄부 칙서를 받았다. 포르투갈 함대가 라고스 항을 떠날 때 국왕 고해 사제가 교황 칙서를 읽고 그에 따라 병사들 전체가 집단으로 죄의 사면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유럽인의 군사적 공격은 종교적 성격을 띠고 선교는 군사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포르투갈 인들에게는 자신들의 해외 사업이 이방인들을 올바른 신앙의 품으로 인도하리라는 의식이 강했다. 당시 교황청은 종교 개혁 시기인 이 당시 개신교 성장에 대응해야 하는 초미의 문제, 그리고 터키에 대항하는 문제 등에 주력하느라 해외 선교 사업은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에 거의 위임한 상채였다. 두 나라 국왕은 교황으로부터 위임받은 이런 미션을 대단히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 때문에 세속적인 힘, 다름 아닌 군사력과 선교가 맞물리는 경향이 더욱 강화되었다.˝

 

 

서구인들에게 ˝멕시코 개종은 세계사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비쳤다. 최종적으로 중국을 개종시켜 전 세계의 기독교화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인데, 멕시코의 기독교화는 그런 과정의 중간 단계라고 본 것이다. 멕시코는 고난 끝에 새로운 이스라엘이 될 것이며, 이런 점에서 코르테스는 모세와 같은 인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사람들과 영혼의 교감을 통해 전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예수회처럼 ‘식민지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가르침은 칼과 창을 통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제들은 남미의 기독교화를 ‘영혼의 정복‘이라는 관점에서 보았다. 사제들은 강압적인 방식을 사용하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으니 인디언 우상과 신전 때려 부수기, 매질, 감금, 추방 같은 야만적인 방식이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북미도 마찬가지였다.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공동체 전체 뿌리를 뒤덮는 일이다. 그럴진데 전도사들의 말 몇 마디로 북미 인디언들이 곧바로 자신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었다. 따라서 기독교 전도의 역사는 ‘설득‘ 과정이기보다는 강압적으로 상대방 문화를 패망시키고 정복해 버리든지 혹은 전도사 자신이 극단적으로 피학적인 ‘순교‘로 사회에 충격을 가하는 방식이 되기 십상이었다.˝

 

 

˝쿠바의 한 부족 추장이 기독교들을 피해 도망다니다 붙잡혀 사형에 처해지게 됐다. 사형 집행 직전 프란체스코 파 수도사가 그에게 천국, 지옥 등을 설명하고 회개하라고 말했다. 추장은 만일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지옥에 가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추장은 수사에게 모든 기독교들은 천국에 갔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자, 그는 차라리 지옥으로 가겠다고 말했다.˝<대항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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