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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칸트 이름 앞에 ‘모범 답안’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다. 칸트는 서양철학이 다루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자신 입장을 개진했는데, 그 분석이나 결론이 비록 정답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모범 답안이라고 부르기에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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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윤리는 구성원들 사이 종교적, 문화적 공통분모가 큰 사회에서 성립했다. 구성원들이 이상적 가치(선)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므로 덕 윤리는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공동체주의와 함께 간다. 공동체주의 관점에서 개인은 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태어나고 양육된다. 개인 정체성은 공동체 규범을 자발적으로 내면화하고 수호하는 데 있다.

 

 

반면 근대 사회에 부합하는 법 중심의 윤리, 의무 윤리는 개인주의와 함께 간다. 개인주의는 일반적으로 공동체 규범보다 개인 자유를 더 중시한다. 개인 존엄성보다 더 우월한 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칸트 윤리학에서 중심을 차지한 도덕법칙은 공동체에 의해 주입된 규범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개인이 자신 양심 속에서, 자유 체험 속에서 스스로 깨닫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칸트가 생각하는 법칙은 개인 자율적인 의지와 분리할 수 없다.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사용과 결정에서 나온 것이 도덕법칙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법칙은 보편적일수록 자율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실천적 자유를 입증한다. ‘인간은 곧 그의 자유가 지닌 자율 힘에 의해 신성한 도덕법칙의 주체다.’ 신성불가침이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도구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목적 그 자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그 인격성에 힘입어 존재자 질서에서 그보다 상위 목적을 상상할 수 없는 위치에 자리할 권리를 얻는다. 윤리학은 그런 인간의 인격적 존엄성에 대한 증명이다.

 

 

칸트 윤리학은 인격성이라는 특정한 인간 개념을 예상하는 동시에 전제한다. 인격성은 자유와 도덕법칙의 상호 맞물림에 의해 정의된다. 칸트는 이것을 상호 지시 관계로 부연한다. 즉 자유와 도덕법칙은 서로를 개시, 입증하는 관계에 있다. 법칙은 신성한 어떤 것이되 의지에 소환한 외적 강제력이 아니다. 법칙은 의지 자율성에, 다시 말해서 실천적 자유에 기원을 둘 때만 진정한 법칙으로 승인된다.

 

 

이때 칸트는 자유란 직접적으로 체험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자유는 그것에 의해 산출된 도덕법칙을 통해 비로소 체험된다. 인격적 주체는 자신 양심 속에서 명령하는 도덕법칙에서 자신 자유를 확신할 증거를 본다. 자유(의지의 자율성)가 아니라면 그 법칙은 존재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인격적 주체는 그런 자신 자유를 확신하는 가운데 마침내 이념의 세계 전체를 의미로 가득한 체계로 바라보는 관점을 획득한다. 그런 점에서 자유는 순수 이성 체계 전체의 구심점에 해당한다.

 

 

도덕법칙에 의해 개시되는 자유가 단지 윤리학 중심일 뿐 아니라 순수 이성 체계 전체 중심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자유는 모든 이념 가운데 우리가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유일한 이념이기 때문이다. 사변 이성에 남아 있는 여타 모든 이념은 이런 자유 이념에 연결될 때만 비로소 구체적으로 이해 가능해지고 비로소 객관적 실재성을 얻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자유는 예지계(인간 주관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감성적 경험으로는 인식할 수 없으며, 순수하게 사유할 수만 있는 이념적 존재의 세계. 예를 들면 플라톤의 이데아계)에 속하는 이념 중에서 대단히 독특하고 특권적인 위치에 있다. 자유는 예지계로 가는 출구에 해당한다.

 

 

자유와 도덕법칙 관계에 대한 칸트 생각을 좀 더 조사해 보자. <실천이성비판> 이전 출간된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자유와 도덕법칙은 악순환 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자유는 도덕법칙에 의해 개시되는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도덕법칙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도덕법칙 근거인 동시에 도덕법칙에 의해 근거 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천이성비판>에서 자유와 도덕법칙은 합리적인 파악을 넘어서는 어떤 것으로 언명된다. 불가해한 가운데 그 자체로 자명한 사실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순수 이성의 사실’로 선언되는 것이다. 특히 단순한 경험적 사실이 아닌 이성의 ‘유일한’ 선험적 사실로 선언된다는 것이 주목을 끈다. 윤리학이 가능하기 위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하지만 더 이상 배후로 소급할 수 없는 어떤 원천적이고 근원적인 사실이 있다는 것이고, 이 사실을 구성하는 두 측면이 바로 도덕법칙과 자유라는 것이다. 칸트는 자유를 도덕법칙의 존대근거로, 도덕법칙을 자유의 인식근거로 간주한다. 자유와 도덕법칙은 동전 양면처럼 하나의 동일한 사실의 두 측면, 다시 말해서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자유란 무엇인지, 어떻게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윤리학의 일차적 과제가 된다. 하지만 이 과제와 씨름하던 칸트의 모든 노력은 미궁에 빠지고 만다. 자유라는 것이 이성의 필연적인 전제임에는 틀림없으나 결국 구체적인 사례를 들 수도, 개념적으로 파악될 수도, 이성적으로 통찰할 수도 없는 불가해한 사태라는 결론에 이른다. 신비한 자유 이념 앞에서 이성은 전적인 무능력과 유한성을 경험한다.

 

 

칸트는 이성 체계의 중심에 자유를 놓고 그 자유의 객관적 실재성을 입증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최후에 깨달은 것은 자유 이념의 불가해성이다. 자유를 이론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성의 선험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자유는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무조건 닥치는 주관적 사실로서, 혹은 윤리학의 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어떤 요청으로 언명하는 것이다.

 

 

칸트 윤리학은 현상계 저편 예지계에서 펼쳐진다. 지성이 범주들을 통해 현상계를 조직한다면, 이성은 이념들을 통해 예지계를 구축해간다. 이런 예지계는 초-감성적인 세계이므로 여기에는 어떠한 감정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칸트는 예외를 둔다. 존경이라는 유일한 선험적 정서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커다란 모순인 것처럼 보인다. 윤리 도덕 세계를 모든 감정의 저편에 설정했으나 그 중심에 다시 감정이 자리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감정은 육체를 통해 발생하므로 후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만은 선험의 세계, 초월론적인 차원에 성립하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칸트가 이처럼 모순되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서적인 것 없이는 도덕적 판단이 실제로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장이 없으면 피가 순환되지 못하듯이 감정이 없다면 의지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감정은 도덕법칙에 따른 실천의 원동력이다.“<왜 칸트인가>

 

 

 

 

 

 

 

 

 

 

 

 

 

 

 

 

 


“니체는 칸트가 도덕을 증명하려 한 야망을 가리켜 ‘영혼의 은밀한 농담’이라고 불렀다. 도덕 논쟁이 제1원리를 기초로 증명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다. 자명한 전제가 없기에 순수이성이 우리 물음에 답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감정없이 이성 혼자서는 경합하는 가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지 못한다.”<옳고 그름>

 

 

 

 

 

 

 

 

 

 

 

 

 

 

 


“오늘날 (뇌)과학 기술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아는 없고 자아는 허구”라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 정신은 조작된 산물이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는 없다. 우리 판단은 욕망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생화학 과정 산물이다. 우리 정신 안에 스토리텔러가 있어서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바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왜곡하여) 설명한다.˝<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자유의지를 둘러싼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다.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도덕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이론을 전개했다. 칸트는 어떠한 인과법칙과 관계없이 순수한 선(善)의지에 기초한 도덕 명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고 싶다면, 너는 ~해야 한다’라는 가언(假言) 명령이 아니라, 무조건 ‘너는 ~해야 한다’라고는 정언(定言) 명령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과법칙에 따른 필연 세계에서 자유의지가 실재한다고 해도, 그때 나는 무엇을 근거로 자신 의지를 결정했는지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자유의지는 모든 물리 인과법칙에서 벗어날 테지만, 내가 어떤 행위를 하려고 할 때 내 안에 떠오르는 이유 대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물리 인과법칙에 기인한다. 내가 지금 품고 있는 의지가 모든 외적 인과법칙에서 자유롭고 어떠한 현실적 원인이나 이유에도 의거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때 내 의지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내 의지가 어떤 원인도 이유도 없이 생겨난다면, 내 의지는 완전히 우연에 따라 정해졌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우연에 따라 정해진다면 내 자유의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유의지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도, 실재한다고 생각할 때도, 의지 주체인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무엇에 따라 내 의지를 정하고 있을까? 그것이 바로 ‘자유의지라는 심연’이다.
 


게다가 선한 자유의지가 진정 무조건, 즉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내 마음속에서 생겨난다면, 타자가 들어올 여지가 어디 있을까? 타인 사정을 생각하여 타인이 기뻐하도록 그리고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선을 행한다면, 그 의지는 외적 조건에 제약받기에 자유의지로서 선의지가 아닌 것이 된다. 내 자유의지 안으로 외부에 존재하는 타자가 들어올 여지는 원래부터 없는 것이다. 타자 존재 없이 도덕이 있을 수나 있을까? 과연 그것을 도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할까?>

 

 

 

 

 

 

 

 

 

 

 

 

 

 

 

 


“오늘날 문명 담론 속에서, 자유주의적 개인은 관용 능력을 갖춘 유일한 주체로 제시되며, 관용은 문명과 동일시된다. 이는 역으로 비자유주의 사회, 특히 근본주의로 낙인이 찍힌 사회는 불관용적인 사회이며, 자율적인 개인이 아닌 문화와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이기에 관용할 수 없는 대상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리는 도덕적 자율성에 대한 칸트의 논의, 그리고 집단의 병리적 성격에 대한 프로이트의 설명과 일련의 전제를 공유한다. 이에 따르면 자유주의 질서에서 주체는 문화로부터 자율성을 가진다. 주체는 문화에 선행하며 문화를 선택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문화를 정치적 권력과 분리된 영역으로 만드는 동시에, 정치를 탈문화적인 영역으로 구성한다. 이러한 이중 움직임은, 자유주의 법질서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 문화를 특수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특수한 것이 보편적인 것에 종속되어야 하는 원칙에 따라, 이제 정치에 대한 문화의 종속적 지위가 정당화된다.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 원칙은, 특정한 문화를 ‘존중할 수 있고’ ‘관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가 고급 예술, 지적 발전, 삶의 방식 중 어떤 것을 의미하든지 간에, 자유주의 사회에서 문화는 대체로 개인이 선택하고 사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하나의 객관화된 재화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문화의 식습관이나 전통 의상을 존중하는 것이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다문화주의 교육은, 문화에 대한 이러한 자유주의적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유주의는 문화를 공공재나 공적 유대의 문제로 파악하지 못한다. 관용의 태도가 뿌리 깊은 개인화의 전통을 가진 사회는 문화가 개인성과 자율성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공적 합리성에 대한 추구를 방해해 문화적 특수성을 넘어 공정함과 정의라는 초문화적 관점으로의 발전하지 못한다.“<관용>

 

 

 

 

 

 

 

 

 

 

 

 

 

 

 

 


“칸트는 도덕으로부터 감정 영향을 배제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아예 도덕성의 질료적 근거 자체를 형식적 의지에 두려 하였다. 즉 그는 ‘순수한 실천 이성의 동기’로부터 사랑의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법칙에 대한 존경심 곧 의지의 보편성 그 자체에 대한 지향만을 도덕의 주관적 근거로 삼으려 했다. 이것이 이른바 법칙에 대한 존경심으로서의 의무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시도다. 감정 없는 의지는 내용 없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논리적으로는 분리 가능하지만 우리 실제 삶에서는 결코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적 법칙은 단순히 칸트가 생각한 합법칙성만으로 정당성을 얻는 것이 아니다. 도덕 법칙은 보편적 만남의 형식적 규정일 뿐 질료적 근거는 아니다. 그런즉 법칙의 효력은 법칙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속에서 일어나는 보편적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살인하지 말라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명령은 전쟁터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사정은 법칙을 절대시했던 칸트 경우조차 다르지 않은데, 전쟁터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의 대상으로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도덕 법칙도 있을 수 없다. 오직 사랑이 있는 곳에서만, 그것도 보편적 사랑 이념이 효력을 갖는 곳에서만 그 이념의 구체적 규정으로서 당위규범이 효력을 가질 수 있다. 모든 당위규범의 질료적 뿌리는 나 자신이 강요없이 느끼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의 감정이다. 구체적 규범과 법칙이란 보편적 사랑의 감정이라는 거대한 대리석 위에 드러나는 무늬와 결이다.“<도덕교육의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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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비아



철학이란

“철학은 우리가 일상적 삶에서 당연하고 자명한 것으로 믿고 있는 전제들과 각 분과 학문에서 사용되는 기본 개념 및 원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우리 삶과 학문 토대에 반성을 추구한다. 철학이 ‘근본학’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철학은 각 학문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세계 전체 모습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모색한다.


모든 철학의 의미

나로서는 칸트 이름 앞에 ‘모범 답안’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다. 칸트는 서양철학이 다루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자신 입장을 개진했는데, 그 분석이나 결론이 비록 정답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모범 답안이라고 부르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칸트를 포함하여 과거 어떤 철학도 오늘의 우리에게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정답이라는 것은 그때그때 상황이나 문맥에 부합해야 하므로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칸트도 이런 사정에서 예외일 수 없다.


정언명령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덕’ 윤리를 ‘의무’ 윤리로 전도시킨다. 덕 윤리 중심에는 선(善) 개념이 있고 그 둘레를 도덕법칙이 회전한다. 반면 의무 윤리에서는 도덕법칙이 중심을 차지하고 그 둘레를 선 개념이 회전한다. 덕 윤리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의해 주도된다. 반면 의무 윤리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근본으로 한다. 덕 윤리는 고대 윤리를, 의무 윤리는 근대 윤리를 대변한다. 덕 윤리는 종교에 한없이 가까워지지만, 의무 윤리는 법적 추론과 유사해진다.


칸트 목적론 배경

<판단력비판> 후반부는 유기체가 요구하는 목적론 판단을 분석한다.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에 의해 확립된 근대 과학은 자연 현상이 모두 기계론적 법칙에 따른다고 본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자연은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생각이 대두되었다. 칸트는 기계론적 자연관이 지배하던 시대에 유기체적 자연관 가능성을 정초하여 이후 도래할 낭만주의 자연관에 길을 열어주었다.


물자체와 선험적(아프리오리)

현상의 내용은 어디서 오는가? 현상계 배후에 있는 물자체에서 온다. 물자체는 대상이 주체에게 나타나기 이전 사물 자체를 말한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미지다. 물자체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가령 거기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 우리가 현상계에서 발견하는 어떤 규칙이나 질서도 없다. 물자체는 현상계에 있는 주체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영역이다.


그럼 현상계에서 경험된 형식적 질서는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주체 마음에서 온다. 3차원적인 공간이나 시간적인 질서, 인과적 질서나 그 밖의 합리적 질서는 모두 주체 안에 있는 인식능력들에 의해 부과된 어떤 형식들이다. 시간과 공간은 의식과 독립적으로 의식 외부에 실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은 다만 의식이 감성적으로 직관하는 형식, 다시 말해서 물자체에 의해 영향을 받아 잡다한 내용을 수용하는 형식에 불과하다. 세상이 인간에게 현상하고 개별적인 대상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형식은 의식 내부에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


따라서 앎이란 무엇이며 경험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길은 여기서 분명해진다. 현상계의 형식적 원리들, 그것이 곧 경험(인식)의 선험적 원리들이다. 그리고 그 원리들이 선험적으로 의식에 내재한다면, 경험의 기원이나 본성에 대한 물음은 의식의 선험적 원리들을 하나하나 밝혀가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인식론은 의식의 해부학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상상력

하지만 문제는 감성과 지성은 원래 물과 기름처럼 상극이라는 데 있다. 그렇기에 두 능력 사이 협동 작업이라는 것은 말처럼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배타적인 두 능력을 화해시키는 제3의 매개자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없다면 감성과 지성, 직관과 개념의 협동은 공염불에 불과하고, 따라서 인식은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상상력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되 두 가지 방향에서 이야기한다. 먼저 상상력이 감성에 출발해서 그 직관 내용을 지성에 전달해줄 때다. 이 경우 상상력이 하는 일을 ‘종합(synthesis)’이라 한다. 반대로 상상력은 지성 개념에서 출발해서 감성적 직관 내용을 그것에 부합하도록 가공해주기도 한다. 이 경우 상상력이 하는 일을 ‘도식화(schematize)’라고 한다. 종합과 도식에 대한 칸트 서술은 대단히 독창적이고 심오해서 <순수이성비판>을 깊이 알고 있는지 여부는 이 부분에 대한 이해 정도로 판단할 수 있을 정도다. 헤겔, 하이데거,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이 칸트를 창조적으로 전유하는 것도 언제나 이 부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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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년 전 사막 위 초원지대에서 농경문화 시작되었을까?

 

"약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인류에게 위기가 닥쳤다. 바로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사막이 형성된 것이다. 지구는 빠른 속도로 자전하면서 거대한 공기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이로 말미암아 광대한 사막 지대가 형성되었다.

 

 

기온이 높은 적도 부군에서 강항 상승기류가 발생하면 공기가 상공 10킬로미터 정도까지 상승한다. 그런데 이 공기는 높은 곳에서 냉각되는 동시에 수분을 잃어버리고, 지구의 자전을 따라 남북으로 이동하다가 남회귀선과 북회귀선 부근으로 내려온다. 이 차갑고 건조해진 공기가 다시 지상에 있는 수분을 흡수하게 되고, 이 때문에 남회귀선과 북회귀선을 따라 광대한 사막이 생성된다. 즉 대류권에서 공기 순환으로 인해 광대한 사막 지대가 형성된 것이다.

 


알파벳의 기원, 페니키아어

 

지도에서 페니키아어로 된 지명을 쫒아가다 보면 페니키아인이 개척한 지중해 항로를 알 수 있다. 먼저 ‘사이프러스(Cypress: 편백과의 상록침엽수, 노송나무)’를 의미하는 키프로스(Cyprus) 섬이 있다. 키프로스 섬은 유명한 동(銅) 산출지였기에 ‘동’을 의미하는 쿠처(copper)라는 명칭도 키프로스에서 유래했다. 또 ‘농민의 토지’를 뜻하는 시칠리아 섬은 페니키아가 농업 이민을 보낸 섬이었다. 그 남쪽에 위치한 작은 몰타 섬은 ‘대피소;라는 뜻이다.

 

 

이탈리아 반도 서쪽에 위치한 사르데냐(Sardegna) 섬은 ‘신의 발자취’라는 뜻으로, 신이 처음 발을 내디뎠다는 전설이 있다. 사르데냐 섬 주변은 정어리 어장으로 사딘(sardine: 정어리) 어원이 바로 사르데냐이다. 페니키아인은 이집트 상형문자를 이용해 편리한 문자를 만들어 지중해 연안에 보급했다. 페니키아 알파벳에 모음을 추가해 그리스 문자가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로마로 전해져(라틴 문자) 서유럽 여러 문자의 근원이 되었다. 또 그리스 문자에서 여러 슬라브 문자가 탄생했다.

 

 

지중해는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에게는 하나의 큰 세계로서 여기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하는 호칭이 생겼다. 아시아라는 말은 아시리아제국(일설에는 페니키아)에서 만들어졌다. 소아시아(현재 터키)에서 광산 자원을 구한 아시리아는 에게 해 동쪽을 ‘아수(acu: 동방)’라고 불렀고, 서쪽을 ‘에레브(ereb: 해가 지는 땅, 어둠의 땅)’라고 명명했다. 이 ‘아수’하는 지명은 주로 현재의 터키공화국(소아시아)을 가리켰는데, 기원전 133년 페르가몬을 중심으로 터키 지방을 지배한 오마제국 ‘acu’에 지명 접미사 ‘ia’를 붙여 ‘아시아’라 불렀다. 또 터키 지방을 그리스어로 ‘아나톨리아’(태양이 뜨는 동쪽 지방)라고 부르는데, 아시아와 아나톨리아는 같은 뜻이다.

 

 

아프리카(africa)라는 말은 페니키아인이 사용한 ‘북아프리카 선주민의 땅’을 의미하는 ‘아프리(afri)인의 땅’에서 왔다. 또 ‘아프리카’는 카르타고를 건설한 토지와 그 주변을 의미하며, 페니키아어로 ‘식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현지 아랍인은 튀니지를 ‘아프리키아’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페니키아어의 ‘Afryguah(식민)’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아프리카’는 아랍어로 ‘먼지’를 의미하는데,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하라 사막의 모래를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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