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예측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과잉 적합성(Overfiting) 문제 때문이다. 과잉 적합성이란 예측 모델에 팩트(과거의 관찰 또는 관측 사실)을 지나치게 많이 반영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2011년에 일본 후쿠시마 핵원자로의 붕괴 사고다. 후쿠시마 원자로는 지진 8.6 규모까지 견디도록 설계되었다. 물론, 일본에 지진이 아무리 많이 발생한다고 하지만, 8.6 규모의 지진은 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2011년 훨씬 강력한 9.1 규모의 지진이 후쿠시마를 강타하여 원자로가 붕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9.1 규모 지진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 우선 우리는 복잡 학계 및 지진 학계 등에 널리 알려진 멱함수(거듭제곱법칙 분포)를 알 필요가 있다. 멱함수는 지진 빈도와 규모 사이의 관계를 일반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진도가 1씩 커질 때마다 지진 발생 건수는 10분의 1씩 줄어든다. 이를테면 진도 6의 지진은 진도 7의 지진보다 10배 더 발생한다. 이러한 일반적이고 단순한 로그 함수를 계산하면 일본 후쿠시마에 진도 9.1 지진은 약 300년마다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발생 빈도가 충분히 많다고 볼 수 있고 적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일본의 안전 성향과 경제 수준을 고려하면 충분히 사전 조처를 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런 단순한 멱함수 계산에 후쿠시마 원자로의 위치 등 개별 특성(팩트)을 반영하여 보정 작업을 하였다. 이럴 경우 지진 발생은 1만3천 년에 한 번 발생하는 것으로 계산된다. 우리는 예측을 위한 변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예측 정확도가 올라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모델에 팩트를 추가했는데 이런 잘못된 결과가 발생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다시 언급하지만, 우리는 지진 발생 가능성의 전체 변수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단편적으로 (우연히) 알게 된 추가적인 팩트가 멱함수 여타 변수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알 수 없으며, 또한 추가적인 팩트가 예측을 위한 중요 인과관계 변수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우리는 지진 전체의 구조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과잉적합 예측 모델이 복잡할수록 신호가 아닌 알려지지 않은 소음에 더 적합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예측에 도움이 되는 변수(신호)가 빠졌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회귀분석 등 외삽(Extrapolation : 데이터가 없는 부분을 가깝다고 생각하는 데이터로 미루어 추정하는 것)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거나(인구 증가, 전염병 확산), 구조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는 대상을 예측할 때 발생한다. 예로써, 1849년 마차가 증가하기 시작한 런던에서 예측한 자료에는 1940년대가 되면 런던 모든 거리에 말똥이 거의 3미터 높이로 쌓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1908년 포드 T-모델 자동차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구조적인 변혁이 있었고 말똥이 쌓이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신호와 소음>



















"1872년에 프랑스의 경제학자 레옹 발라는 미분 방정식을 이용하여 경제학을 최초로 수학화한 인물이다. 레옹 발라는 경제 시스템의 균형점과 자연에서의 균형점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자연계를 보면 작용하는 모든 힘이 서로 상쇄돼 시스템이 균형 상태에 놓을 때, 비로소 균형이 이루어진다. 한 행성이 궤도에서 별 주위를 돌 때 행성을 안으로 끌어당기는 별의 중력과 그것을 밖으로 밀어내는 원심력이 서로 만나면서 균형을 이루는 것과 같다. 레옹 발라가 경제학에 수학을 끌어드린 이유는 경제 시스템, 특히 가격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예측을 위한 안정적인 균형점만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 시스템을 포함하여 세상에는 불안한 균형(Dynamic Equilibrium)도 있고 균형점이 여러 가지인 시스템도 많다.



아무튼 이 책의 저자인 마크 뷰케넌이 현대 경제학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복잡계 물리학은 지진, 기상, 세포분열 등 자연계에 폭넓게 나타난다. 이는 규모와 빈도 관계를 멱함수(Power Function: 거듭제곱법칙 분포)로 나타낸 학문이다. 지진에서 진도 규모가 2배가 되면 지진 빈도가 4배 덜 일어난다는 것이며, 경제의 대폭락도 지진의 멱함수 법칙을 거의 유사하게 따른다는 것이다. 자연계뿐만 아니라 경제학이 멱함수를 따르는 이유는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며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기하급수적 증가)을 하기 때문이다.



양의 되먹임이 중요한 점은 우리 인간들이 상상하기 매우 힘든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와 같은 겉잡을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종이 한 장을 꺼내 30번 접어 보자. 접을 수도 없겠지만 접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 그 종이의 높이가 대략 얼마가 될지 상상할 수 있는가? 약 113km로 서울 강남에서 충북 세종시까지 거리다. 이를 상상할 수 있었는가? 이것이 양의 되먹임이 지닌 힘이다. 각 단계는 일을 더 크게 만들 뿐만 아니라 커지는 값 자체를 증가시켜 우리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결과를 낳는다.



복잡계 학문은 세상의 인과 관계를 우리의 상식과 다르게 보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극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극적이고 중대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으로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특별한 이유를 찾게 만든다. 그러나 복잡계 학문은 작은 사건과 큰 사건의 발생 원인이 동일하다고 보고 있다. 단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작은 사건이 누적되어 있다가 임계값을 넘게 되면 큰 사건으로 폭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복잡계의 불안정성(Metastability) 이론이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시스템도 실제로 매우 불안정하며 작은 사건 하나가 임계 단계에 덧붙여지면 큰 사건으로 변화한다. 내재적으로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황은 매우 오랜 기간 동안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지속될 수 있지만 반드시 궁극적으로 재앙을 부른다.“<내일의 경제학>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실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깨달았던 경제학자 하이만 민스키는 다음과 같이 정확한 지적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경제적 사건은 발생하지 않은 일, 즉 장기에 걸친 깊은 불황이 없었다는 점이다.’ ‘검은 요일들(Black Days, 주가가 대폭락한 날)’이 없던 것도 아니었기에 이는 더욱 놀라운 일이다.



주가지수 동형이 사람 신장처럼 통계적으로 분포[정규분포]한다고 가정했을 때, 검은 요일은 매우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대부분 평균 근처에 모여 있고, 극단적으로 오르내리는 경우는 극히 적기 때문이다. 즉 우리 중 키가 120센터미터를 밑돌거나 240센티미터를 넘는 사람이 드문 것과 같다. 만약 내 금융사 수업을 듣는 남학생들 신장 히스토그램을 빈도수에 따라 그려보면 전통적인 종 모양의 곡선이 나올 것이고, 거의 대부분이 미국인 평균 키인 178센티미터에서 표준편자 플러스, 마이너스 12센티미터 범주 안에 모여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금융 시장은 이러한 모양새가 아니다. 다우지수 동향을 도표로 매달 빠짐없이 그려 보면, 큰 폭 오름세나 내림세 때문에 평균보다는 양끝을 중심으로 분포한 모양이 나올 것이다. 이를 통계학에서 ‘두꺼운 꼬리(fat tails)’라고 부른다. 만약 주식시장 동향이 사람 키처럼 ‘정규분포’나 종 모양을 따른다면, 연간 10퍼센트 이상 주가하락은 500년마다 한 번 꼴로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다우존스에서는 5년마다 한 번씩 터진다. 더구나 주가폭락 20퍼센트 이상도 전례 없는 경우인데 (키가 30센티미터인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현실에서는 지난 세기에만 해도 아홉 번이나 이런 붕괴를 겪어야 했다.“<금융의 지배>



















“멱함수 분포의 특징은 그 꼬리가 적어도 정규분포의 미약한 꼬리에 비해 두껍다(무겁다 또는 길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주 큰 이상치는 비록 여전히 드물긴 하지만, 정규분포 종형 곡선에 나타나는 것보다는 훨씬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다우존스 지수가 단 하루 22%나 폭락하는 것은 주식 시장의 통상적 변동성 수준과 비교 시 표준편차보다 20배 이상 떨어진 것에 해당한다. 전통적인 종형 곡선에 따르면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확률은 10^50분의 1보다 낮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은 바로 주가 요동은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주가 요동은 꼬리가 두꺼운 분포로 훨씬 잘 설명할 수 있다.



지진이나 산불, 홍수도 마찬가지인데, 전쟁이나 테러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수에도 똑 같은 수학적 패턴이 적용되며, 소설에 쓰인 단어 빈도와 평생 동안 한 사람이 관계하는 섹스 파트너 수처럼 비교적 온건한 사건에도 적용된다. 두드러진 꼬리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형용사들은 원래 칭찬 의미로 붙인 것이 아니지만, 그러한 분포들은 그런 칭호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두껍고, 무겁고, 긴? 그렇다. 자, 그렇다면 이제 누가 정상일까? (정규분포는 영어로 normal distribution이라 하는데, normal은 정상이란 뜻이다 – 옮긴이)“<x의 즐거움>



















“어린 아이의 기대 수명은 79세다. 이 아이가 건강한 상태로 79세가 되었다면, 남은 기대 수명은 10년이 된다. 다시 90세가 되면, 이 사람에게 4.7년이 더 주어진다. 100세가 된다면 기대 수명은 2.5년이다. 119세까지 사는 기적 같은 일이 생긴다면, 남은 기대 수명은 9개월이다. 이처럼 멱함수가 아닌 종 모양의 정규분포를 따르는 생물학적 변수의 기대 수명에서 남은 시간은 차츰 줄어든다.



반면 물리적 현상이 아닌 멱함수를 따르는 사회 현상은 다르다. 사람이 수행하는 프로젝트 종료 소요일이 79일인 경우를 보자. 프로젝트가 79일째 되었을 때 끝나지 않았다면 완성을 위해서는 추가로 25일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90일째가 되었을, 프로젝트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면 앞으로 58일이 더 필요하게 된다. 100일째에는 89일을 더 필요로 하고, 119일째에는 앞으로 149일이 더 필요하다고 계산되었으며, 이렇게 해서 600일이 되도록 끝맺지 못했다면, 이번에는 앞으로 1590일이 더 있어야 한다. 이처럼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길어질수록 앞으로 더 기다려야 할 시간은 더욱 길어진다. 인간사에 전쟁 평균 기간이 6개월인데 어떤 분쟁이 2년 동안 계속되었다면 이 분쟁은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서야 끝날 수 있게 된다.



사회 현상 이해에 더 많은 정보는 오히려 해가 된다. 정보 잡음(이야기)을 더 많이 접한 사람들은 더 많은 가설을 생성하기에 그 효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그만큼 더 느려진다. 불필요한 요소를 더 많이 볼 뿐 아니라, 그것도 정보로 착각한다. 정보 잡음을 더 많이 눈여겨보게 되며 이것을 실제 정보라고 착각한다. 인간 사고방식은 매우 경직되어 있기에 우리는 한번 이론을 만들어 내면 좀처럼 마음을 바꿔 생각하지 못한다. 따라서 때때로 주간지를 읽는 것보다 라디오 뉴스를 매시간 듣는 것이 더 나쁘다. 외부 정보가 주어지는 간격이 짧을수록 이를 걸러 내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정보 잡음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은 자신 무능함을 깨닫지 못한다. 이들의 무능함에는 일정한 논리가 내재해 있는데, 대부분 신념이라는 형식을 취하거나 자부심이라는 방어기제로 나타난다.



경제학은 합리성을 추구한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 대신 다른 것을 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무시해 버린다. 이리하여 폴 새뮤얼슨이 그의 경제학 책에서 즐겨 구사한 ‘최대화’ ‘최적화’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다. 예컨대 자산 중에서 주식 투자로 돌릴 ‘최적의 양’은 얼마일까? 이 최적화 기법이 오히려 사회학을 지적이고 성찰적인 학문 분야[정치경제학]에서 ‘정밀 과학’을 추구하는 사회과학으로 퇴보시켰다는 지적은 나만의 평가가 아니다. 여기서 ‘정밀 과학’이란 이른바 ‘물리학을 시기하는’ 즉 자신이 물리학과 소속인 듯 흉내 내는 사람들을 위한 이류 공학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지적 사기다.



폴 새뮤얼슨은 명민한 사람이지만, 그가 당대 최고의 석학이라 불리는 것은 비극이다. 인간 지성을 헛되이 투자한 정형이라고나 할까. 수학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과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어떤 정신분석가가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부친과의 사이에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책망해서 잠잠하게 만들었다는 일화를 생각나게 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합리적 행동 모델이란 부정확한 정도가 아니라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안티프래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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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주식거래가 등장한 이후 400년 동안, 금융 거품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주가가 지탱하기 힘들 만큼 상종가를 치다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영악한 내부 거래자가 순진한 초심자를 먹이 삼아 이윤을 취하는 사기 행각도 반복됐다. 이 익숙한 양상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변위요인(變位要因): 경제 여건에 변화가 생기면서 특정 기업에게 새로운 이윤창출 기회가 열린다.

2. 지나친 낙관 혹은 과잉거래: 높은 기대수익이 피드백 과정을 거쳐 주가를 급등시킨다.

3. 열광 상태 혹은 거품: 자본소득을 손쉽게 얻으려는 초기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사기꾼들은 이들 돈을 사취하려 든다.

4. 불안감: 내부 거래자들이 기대이윤으로 터무니없이 높아진 주식가격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주식을 팔아 이윤을 챙기기 시작한다.

5. 급변: 주식가격이 떨어지고 외부자들이 앞다투어 빠져나가면서, 거품도 모두 꺼져버린다.



또한 주식시장 거품에는 되풀이되는 세 가지 속성이 있다. 첫 번째, 보통 비대칭 정보라고 불리는 상황이다. 외부자보다 월등히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내부 거래자(거품 기업 경영에 관계하는 자들)는 외부자 돈을 노린다. 물론 이러한 비대칭 상황은 모든 사업에 잠재하기 마련이지만, 특히 거품 시기에 내부거래자들이 이를 부당하게 이용한다.



두 번째,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 역할이다. 거품은 나라 사이 자본 이동이 자유로울 때 쉽게 생긴다. 주요 금융 중심지에 둥지를 튼 노련한 투기꾼은 내부자끼리 공유하는 정보는 사실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경험이 부족한 초기 투자자보다 시기(초반에 사서 거품이 터지기 전에 파는 시점)를 훨씬 잘 타는 경향이 있다. 바꿔 말해 거품 시기라고 모두가 이성을 잃지는 않는다. 열광자 무리 중 적어도 남들보다는 제정신인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속성은, 은행 문턱이 높으면 거품이 실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상당수 거품은 중앙은행이 태만했거나 직권을 남용한 탓에 생겨난다.“<금융의 지배>



















“다음과 같은 거품 현상이 불안의 원인이자 또 그 증상이다. 자본시장 일부 또는 모든 영역에서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한다. 우량 등급의 차입자가 지불하는 금리에 비해 우량 등급 이하 차입자가 지불하는 차등금리가 상승한다. 외환시장에서 통화가치가 급락한다. 파산 건수가 증가한다. 상품과 부동산, 유가증권의 가격 상승이 멈춘다. 이런 상황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전개되는 경우가 많으며, 대여자들의 여신이 이미 과도하게 확장된 상태여서, 대여자들이 위험의 노출, 특히 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상당수 투자자들이 자산가격 상승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에 근거해 자산을 매수하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자산가격 상승 국면이 끝남과 동시에 불안 국면이 시작된다. 투자자들 가운데는 자산 매수를 위해 끌어 쓴 차입금 금리가 매수한 자산에서 나오는 현금 소득을 상회하기에, ‘네거티브 캐리’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들 당초 예상은 매수한 자산 가치 상승분을 추가 담보로 제공해 신규 대출을 받으면 대출잔고 이자 지불에 필요한 현금 일부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산가격 상승이 멈추면, 투자자들은 채무잔고의 이자 지불에 필요한 현금을 확보할 만한 방법이 달리 없어, 이들 투자 입지는 불안 기조로 바뀐다.



‘훌륭한 상인들이 최적의 사업 추진에 실패하고는 궁지에 몰린 채 절망적인 분위기에 빠질 때 은행 관리자들이 항상 위험 신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시장에 감도는 일촉즉발 위험을 알고 있다. 신용은 엄청나게 확장됐고, 일반 대중의 흥분은 매우 팽팽한 긴장 상태에 접근해 있기에, ’큰 회사‘의 파산 단 한 건이면 이 ’거대한 거품‘이 터지기 충분한 상태다.’



금융 불안에 뒤따르는 붕괴나 패닉은 곧바로 일어날 수도 있고, 수주 혹은 수 년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어떤 위기라도 그 원인(遠因)은 신용 팽창과 투기인 반면, 근원(近圓)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려 투자자들이 상품이나 주식, 부동산, 환어음, 또는 약속어음 등을 매도하고 현금 보유액을 확대하도록 유인하는 어떤 사건이다. 파산과 자살, 도주, 사기의 폭로, 특정 차입자에 대한 여신 거부, 혹은 거액의 포지션을 보유한 시장 참여자의 매도를 부추기는 모종의 관점 변화 등 근원은 사소한 것일 수 있다.



가격이 떨어진다. 기대가 반전된다. 가격 하락 움직임이 빨라진다. 투자자들이 주식과 부동산 매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차입 자금을 끌어다 쓴 만큼, 가격 하락은 추가 증거금이나 부족한 현금 청구를 유발하게 되고, 더 많은 주식과 부동산 처분을 야기하기 쉽다. 가격 하락이 더욱 진행되면, 은행 대출손실이 증가하고, 하나 또는 다수의 상사, 은행, 어음할인회사, 거래중개회사가 파산한다. 신용 시스템이 흔들리는 양상을 보이면서 유동성 확보를 향한 경주가 벌어진다.



주식시장의 패닉은 큰돈을 움직이는 내부 투기세력이나 뮤추얼펀드, 연금기금, 보험회사 같은 기관투자자들 – 아마도 이들 가운데 여럿은 유사한 프로그램 매매 모델을 따를 것이다 – 의 매도로 유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87년 10월 19일 주식시장이 붕괴했을 때 보스톤 뮤추얼펀드 그룹인 피델리티는 뉴욕증권거래소가 개장하기 직전, 런던 주식시장에서 거액 주식을 매도했다. 이 매도 소식이 뉴욕에 전해지자 주식시장 개장을 앞두고 이미 산더미 갗은 매도주문이 쌓였다. 피델리티가 앞으로 닥칠 환매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주가가 더 하락하기 전에) 현금을 확보해 두려는 시도였을지라도 피델리티의 엄청난 매도주문은 자신의 자산운용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뮤추얼펀드 가입자들의 환매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광기, 패닉, 붕괴 – 금융위기의 역사>



















“경제학은 오랫동안 균형이라는 잘못된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시장은 균형 상태 쪽으로 자연스럽게 가는 경향이 있다는 잘못된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어떤 동요나 충격도 그 시스템이 균형을 잡도록 되돌려 놓는다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것이라 믿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정책적 조언을 위해 분석하는 것도 새로운 정책이 균형에 빨리 적응할지에 대한 것뿐이다. 예를 들면 정부가 세금을 올리면 예상되는 시장의 균형 상태가 어떻게 바뀌는지 분석할 따름이다. 하지만 균형 상태로 돌아가지 않고 혼돈 상태로 시장이 변화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학자들이 흔하게 하는 모든 분석에는 그것을 설명할 방법이 전혀 없다. 균형 상태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믿음은 불안정성과 양의 되먹임을 소홀히 하고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자주 일어나는 예외적 현상의 원인을 알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현대 경제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복잡계 물리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복잡계 물리학은 물리적인 대상만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질서와 조직화,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학이다. 상호 작용하는 부분들이나 요소들이 전체 시스템에서 집단적 패턴이나 행동을 왜 초래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이다. 이런 학문적 특징 때문에 복잡계 물리학은 시장이 왜 그렇게 자주 위기에 빠지는지를 분석하고 위기를 예측하기 위해 연구되고 있다. 물론 복잡계 물리학으로 경제 거품이 언제 붕괴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불안정성과 극적인 변화를 이끄는 되먹임에 초점을 맞추어 경제 거품이 왜 예측하기 어려운지를 시장의 역동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다음 번 금융위기의 시발점은 어느 곳이 될까? 복잡계 물리학 개념으로 보면 다른 다수의 기관들과 서로 연결된 거대하고 복잡한 금융기관이 금융위기 촉발의 중심점이 될 것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가 아니라 바로 그 ‘대마’가 금융위기의 역할을 한다.“<내일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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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정부는 자국 시민의 주요 재산 일부를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압수할 수 있다. 정부는 이 방법으로 단순한 압수뿐 아니라 독단적인 압수도 감행한다. 이 과정에서 다수는 궁핍해지고 일부는 사실상 부유해진다. 이렇게 부를 임의로 재조정하면 기존에 분배받은 부가 안전하고 확실하다는 믿음이 깨진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대중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통화가 발행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을 크게 왜곡할 우려가 있다. 폴라니가 지적했듯이 생존을 시장 메커니즘에 의존해야 하는 사회에서만 어떤 불편,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공포가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생산수단을 박탈당하고 오직 노동력을 팔아서 받은 화폐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만 화폐가 요구된다.



특히, 국가의 은행권 발행은 조세 성격을 갖고 있다. 국가가 공공지출을 위해 직접 화폐를 발행하거나 공공은행을 통해 대부하는 경우, 그만큼 인플레이션 효과가 생겨나는데, 인플레이션은 민간 부분의 구매력을 감소시켜 정부가 그만큼 돈을 징수하는 효과를 낸다. 은행권 발행은 국가 조세 징집과 서로 맞물려 있어, 화폐는 상인들의 필요보다 국가의 필요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화폐는 국가가 자신 지출을 위해, 그리고 상업과 무역 더 나아가 국가 경제 일반을 장악하기 위해 만든 포획장치다. 근본적으로 화폐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은 상업이 아니라 국가장치의 유지비, 바로 세금이다.



화폐로 세금을 걷는 제도는 '재화(혹은 서비스)=화폐'라는 화폐경제의 일반 도식을 만들어내고 국가권력의 중앙집권화를 가능케 한다. 화폐를 '일반화된 등가물'로 만든 것은 상업적 교환이 아니라 조세다. 화폐 조세는 평민들이 화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팔 것을 요구한다. 이런 식으로 부자들의 금속(화폐)에 특권이 부여되는 것이다.



로마 귀족들이 화폐 유통을 창안해 평민들을 노예로 전락시킨 것이 예이다. 귀족은 평민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곡물, 말, 가축 등)을 직접 제공하는 대신 (귀족에게는 별 소용없었던) 구리를 평민들에게 대부했고, 그 구리로 필요 물건을 사게 했다. 이들은 구리를 나누어 주면서 이자까지 받아 평민들을 채무 노예로 전락시켰다. 전쟁에 동원되느라 생산 활동을 벌일 수 없었던 평민들에게 재화를 직접 나눠주지 않고 화폐인 구리를 나눠 줌으로써, 구리에 일반적인 등가물 지위를 부여하고, 일반 대중을 구리 흐름에 예속시킨 것이다. 민중은 구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재화와 노동력을 저렴하게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안 되면 뭔가를 저당 잡히거나, 어떤 더 큰 예속을 감수하는 형태로 구리를 빌렸다. 민중은 일종의 대부를 받은 것이다. 또한, 정해진 기일 안에 화폐로 세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화폐 조세 때문에, 장터를 일반적인 물물교환의 장으로 활용하던 민중들도 '물건'이 아닌 '화폐'를 구하기 위해 시장에 물건을 들고 나왔다.



이처럼 화폐를 확보하는 것이 모두에게 관건이 되면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와 화폐 형태로 부를 축적한 자산가들은 곧바로 경제 전반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화폐, 마법의 사중주>



















“16세기 스페인 군주 카를로스 5세와 필리페 2세는 풍부한 귀금속이 축복이자 동시에 재앙이라고 느꼈다. 이들은 정복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해 상당한 양의 은을 캐야 했고, 이는 귀금속 자체 가치를 현저하게 낮추었다. 1540년대부터 1640년대까지 유럽을 휩쓴 소위 ‘가격 혁명’ 시기 동안, 300년 간 상승세를 보이지 않던 식품 가격이 두드러지게 올랐다. 영국의 경우 생계비가 같은 기간 7배 증가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높은 물가 상승률은 아니어도(요즘은 한 해 평균 2퍼센트 정도다), 중세에 이 만큼의 빵 가격 상승은 큰 타격이었다. 스페인 내부적으로도 풍부한 은은 오늘날 아라비아, 나이지리아, 페르시아, 러시아, 베네수엘라에 있는 풍부한 석유처럼 ‘재앙의 씨앗’이었다. 은이 생산적인 경제 활동을 자극하기는커녕, 대표회의체(스페인의 경우 코르테스 의회)를 희생시켜 가며 지대 추구(rent-seeking)적인 전제 통치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귀금속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통화는 다른 사람이 이를 대신해 무언가를 내줄 때 의미가 있다. 화폐 공급량 증가는 화폐 발행을 독점하는 정부를 부유하게 해 줄지 몰라도, 사회를 유복하게 해 주지는 않는다. 다른 여건에 변화가 없다면, 통화 팽창은 단지 가격만 높일 뿐이다.



현재 금융 역사가에게 주어진 난제 중 하나는 가계 빚이 폭증하는 원인과 더불어, 만약 파산률 증대가 불가피할 경우 그 파장이 무엇인지 밝히는 작업일 것이다. 근본 원인은 분명 화폐와 은행의 진화에 있으며, 핵심 요인은 은행의 부채다. 화폐 창출과 금속 간 연관 고리를 끊어낸 것은 불가피한 현실로, 이는 전례 없는 통화 팽창을 유도했다. 동시에 전 세계가 여태껏 경험한 적 없는 신용 팽창을 안겨 주었다. 산출 대비 광의의 통화 비율로 유동성을 측정했을 때, 1970년대 이후 그 비율은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선진 경제권에서 광의의 통화 비중은 금 창구가 폐쇄되기 전 70퍼센트에서 2005년 무렵 100퍼센트 이상 뛰어올랐다. 유로화 지역은 특히 증가세가 가팔라서, 1990년만 해도 60퍼센트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가 현재는 90퍼센트를 약간 밑돌고 있다. 



동시에 선진국에서 은행의 적정 자본 수준은 느리지만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유럽 은행의 자본금은 현재 자산 대비 10퍼센트 미만인데, 20세기 초에는 25퍼센트 정도였다. 다시 말해, 은행들이 예금을 더 많이 받을 뿐 아니라 이 예금을 더욱 많이 대출하면서 자본금을 최소화한다는 뜻이다. 현재 주요 경제권의 은행 자산(즉, 대출)은 이들 국가의 결합 국내 총생산 대비 150퍼센트 수준이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국제적인 은행 업무 자산 총액은 2006년 12월 약 29조 달러로, 세계 국내 총생산의 63퍼센트가량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금 본위제 시기처럼 화폐 가치가 불안정하다는 불안감은 없을까? 지금 쓰는 달러 지폐 도안은 1957년에 탄생했다. 그때 이후 달러 구매력은 소비자 물가 지수에 비해 놀랍게도 8퍼센트 하락했다. 이 기간 연평균 인플레이션은 4퍼센트 이상으로, 포토시 은 유입이 촉발한 이른바 가격 혁명기에 유럽이 겪은 인플레이션의 2배였다. 1970년에 예금 1000달러를 금과 바꾼 사람은 금 창구가 열려 있는 한, 26.6온스 조금 넘게 받았다. 2008년 금 거래 가격은 1온스에 1000달러 정도로, 앞서 말한 사람이 2만 6596달러에 금을 팔 수 있는 상황이다.“<금융의 지배>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이 점점 더 비싸지는 현상의 배후를 캐묻지 않는다. 이미 이런 현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런 거야. 모든 것은 언제나 점점 더 비싸지기 마련이야. 당신도 알고 있잖아. 옛날에는 아이스크림 하나 가격이 10원밖에 하지 않았다는 걸.’ 종종 듣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인플레이션 정의는 원래 양적 완화나 통화팽창이다. 그런데 인플레이션 개념을 물가상승으로 정의함으로써 사람들 관심은 인플레이션 진짜 원인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한다. 이렇게 되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훨씬 쉬워진다. 요컨대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이유는 바로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가격을 올린 자본주의에 물든 사악한 아이스크림 판매상이나 탐욕스런 석유산업 때문이 것이다. 중앙은행은 왜 물가하락을 막는가? 우리는 물가하락에 전혀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어딘가 모르게 물가하락을 막는 것처럼 보인다. 왜일까? 그 이유는 지폐 중심의 화폐 시스템에서는 물가하락이 파괴적인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화팽창은 생산성 향상에 따른 물가하락 효과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저지한다. 지난 30년 동안 IT업계 등에서 이뤄진 기술 혁신 혹은 중국과 인도가 저렴한 인건비로 국제 분업체제에 편입한 점을 감안한다면 상품 가격은 30~40퍼센트 혹은 그 이상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상품 가격은 오히려 상승했다. 당신은 이를 상쇄하는 엄청난 규모의 통화량 증대와 그 배후에 숨겨져 있는 어마어마한 부의 불균형 분배를 상상할 수 있는가? 통화량이 확장되어 물가상승을 유발할 때뿐 아니라, 새로 돈을 찍어내지 않으면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떨어질 우려가 있는 시기에 통화량 확장 시 사회 내부에서 수입과 자산의 재분배가 이뤄진다. 그것도 대체로 저소득자 쪽에서 고소득자 쪽으로 재분배가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통화량 확장과 세금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간접세, 즉 부가세부터 얘기해보자. 당신이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계산서에는 언제나 부가세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화폐 생산으로 물가가 인상되면 당연히 국가의 부가세 수입 또한 상승한다. 또한 소득세를 통해 세금은 자동적으로 지나치게 큰 폭으로 늘어난다. 물가상승을 통해 ‘콜드 프로그레션’(세금 추가 부담 혹은 은밀한 세금 인상)에 덜미를 잡힌다. 임금이 상승할 때마다 당신의 세금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



인플레이션은 부의 재분배를 초래한다. 인플레이션은 새로 만들어진 돈을 제일 먼저 확보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제일 먼저 그 돈을 손에 넣는 사람은 큰 이익을 본다. 그들은 아직 오르지 않은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 반면 뒤늦게 그 돈을 손에 넣는 사람들은 또는 아예 그 돈을 손에 넣을 수 없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된다. 그들이 추가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시점이 되면 물건과 서비스 가격은 올라버린다. 제일 먼저 돈을 손에 넣는 사람들은 국가와 그 추종자들 및 은행, 대기업 관계자들이다. 제일 마지막으로 돈을 손에 넣는 사람들은 봉급생활자와 연금 수급자들이다. 인플레이션은 빈곤을 야기하는 한편 은행 시스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슈퍼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준다. 다수 희생을 대가로 그들만이 이익을 보는 것이다.



그럼 국가가 물가하락을 내버려두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순수한 화폐 시스템에서는 물가하락이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을 작동시킨다. 디플레이션은 과거에 인위적인 대출 확대를 통해 이뤄졌던 투자들이 실제로는 수익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폭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없는 수많은 투자들의 실체가 폭로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많은 부채를 안게 된 기업들과 개인들은 물가가 하락할수록 이자 갚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부채가 많은 기업가들과 개인들이 대규모로 파산하면 국민경제 최대 채무자인 국가도 무사할 수 없다. 또한 이들 채무자들이 더 이상 부채를 상환하지 않으면 은행 시스템도 결국 붕괴될 것이다.“<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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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는 금융 활동이 국민소득 계정에 포함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GDP에 명함도 내밀지 못했죠. 생산적인 활동이 아닌 단순한 거래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금융이란 단순한 거래이자 유통이기에 무엇 하나 직접 생산하지 못한다는 거죠. 하지만 금융 힘이 점점 커지자 금융가들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1947년 미국 금융의 부가가치는 국내 총생산 대비 2.3퍼센트였다. 2005년 무렵이 되자 이 수치는 국내 총생산의 7.7퍼센트로 커졌다. 다시 말해, 미국 고용인에게 지급하는 13달러 중 1달러가 금융권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영국의 경우 2006년 국내 총생산의 9.4퍼센트를 금융이 차지하는 등 그 중요도가 더욱 높아졌다.



2006년 전 세계 경제 산출량은 약 47조 달러였다. 그렇지만 전 세계 주식시장 시가 총액은 51조 달러로 경제 산출량보다 10퍼센트 더 많았다. 국내 채권과 국제 채권의 총 가치는 68조 달러로 경제 산출량보다 50퍼센트 더 컸고, 파생상품 거래 잔액도 473조 달러로 10배 이상 높았다. 게다가 매일 2조 달러가 외환거래 시장에서 새 주인을 만난다. 매달 7조 달러가 세계 주식시장에서 주인이 바뀐다. 



특히 금융 생명체는 늘 진화 중이다. 일례로 2006년 차입 매수거래(차입 자금으로 기업을 사들이는 것)는 7530억 달러로 치솟았다. 모기지 같은 개별 부채를 조각조각 나눈 후 재구성한 자산을 한데 묶어 판매하는 ‘증권화’가 폭발하면서 모기지 담보부 증권, 자산 담보부 증권, 부채 담보부 증권의 연간 총 발행액이 3조 달러를 넘어섰다. 파생 상품, 즉 금리 스왑(거래 당사자끼리 원금에 대한 이자를 상호 맞교환하여 부담하는 거래)이나 신용 디폴트 스왑(CDS, 신용자산 가치를 감소시키는 신용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손실 일부 또는 전부를 보전해 주는 계약) 규모는 훨씬 빠르게 성장하여, 2007년 말 모든 ‘장외 시장’ 파생 상품의 명목 가치(공공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상품은 제외)가 600조 달러 가까이 이르렀다. 1980년대 이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상품이었다.



그렇다면 이 경이로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학파의 견해에 따르면 최근 금융 혁신으로 세계 자본시장의 효율성이 근본적으로 향상되면서, 위험 감당 능력이 가장 뛰어난 대상에게 위험 전가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변동성이 종말을 고했다고 보는 열성론자도 있다. 2년 전(2005년) 나는 머지않아 유동성이 급락하여 세계 금융제도에 단계적으로 영향을 미칠 터이니, 호시절이 영원하리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고 연설했다. 내 얘기를 들은 청중들은 전혀 감화받은 눈치가 아니었다. 내 주장을 기우론자 견해 정도로 치부했다. 어느 연륜 높은 투자자는 주최측에 ‘내년부터 외부 연사 없이 진행하고 메리 포핀스나 감상하자’라는 제안을 했다. 이 영화 팬들이라면 고전 뮤지컬에 나오는 금융사건 하나가 떠오를 것이다. 바로 예금인출 사태(bank run)다.



메리 포핀스는 뱅크스(Banks) 가족의 유모로 들어간다. 이 이름이 우연이 아닌 것이 뱅크스는 실제 은행가로 어느 투자은행의 중역이다. 하루는 뱅크스의 고집으로 아이들을 그의 직장인 은행에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은행 회장 도스 씨는 뱅크스 아들 마이클에게 용돈 2펜스를 예금하라고 강권한다. 그렇지만 그 돈으로 은행 밖 비둘기에게 모이를 사 주고 싶었던 어린 마이클은 도스 씨에게 ‘돌려주세요! 내 돈 돌려주세요!’라고 외친다. 안타깝게도 은행에 있던 일부 고객이 마이클 외침을 듣고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한다. 곧바로 다수 예금자가 똑같은 일을 벌이자, 은행은 예금 지불을 중단한다. 뱅크스는 당연히 해고되고 ‘인생 전성기에 터무니없는 일이 터졌다’라며 한탄한다. 



2007년 여름 서구 세계를 강타한 금융 위기는 반복되는 금융사의 진실을 알려 주었다. 바로 모든 거품은 조만간 터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시일이 지나면 강세장 매도자보다 약세장 매도자 수가 넘쳐나는 법이다. 탐욕도 재빨리 공포로 뒤바뀐다. 2008년 초반부터, 미국 경기 후퇴 조짐은 확연해 보였다. 미국 기업이 신제품 개발을 전보다 게을리 한 탓일까? 기술 혁신이 갑자기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나? 아니었다. 2008년 경제 불안정의 근인은 금융에 있었다. 정확히 말해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라고 에둘러 표현하는, 일종의 채무를 되갚지 못한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생긴 신용시장 경색 때문이었다.



우리의 세계적 금융 시스템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탓에, 앨러배마부터 위스콘신에 이르기까지 상대적으로 가난한 지역의 가구들도 복잡한 대출구조를 타고 주택을 사거나 2차 담보 설정을 하는 일이 가능했다. 어떤 대출은 (대출자 모르게) 비슷한 대출끼리 한데 묶여 부채 담보부 증권으로 재구성된 다음, 뉴욕과 런던에 있는 은행을 거쳐 독일 지역 은행과 노르웨이 시의회로 팔리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 지역 은행과 시의회가 사실상 모기지 대출업자로 탈바꿈했다. 이 잘게 나뉜 부채 담보부 증권은, 10년 만기 미 재무부 증권처럼 원 차입자의 이자 지급이 꾸준한 수입을 낳는 믿음직한 자산이며, 따라서 트리플 A 등급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 정교한 금융 연금술 뒤에는 납을 금으로 바꾼다는 논리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원 모기지에서 1~2년의 ‘티저(teaser, 낮은 금리를 미끼로 대출을 유도)’ 기간이 끝나고 금리가 인상되자, 차입자들은 채무를 갚지 못했다. 이는 다시 미국 부동산 거품이 꺼진다는 신호로 돌변해, 1930년대 이후 가장 큰 주택가격 폭락을 일으켰다. 이후 상황은 느리면서도 파멸적인 연쇄 반응이었다. 사실상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담보되지 않는 숱한 증권들을 포함해 온갖 종류의 자산 담보 증권들 가치가 폭락했다. 



앞의 얘기를 읽으면서 아무런 근심도 생기지 않는 독자가 있다면, 아마도 금융사에 밝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어쨌든 영어권 나라 일반인 상당수가 금융에 무지하다. 2007년 어느 조사에 따르면 신용카드를 소지한 미국인 10명 중 4명은, 신용카드 회사가 높은 이자율로 불이익을 주는데도 자주 쓰는 신용카드 청구액을 다달이 지불하지 않는다고 한다. 29퍼센트는 자기 카드의 이자율도 몰랐다. 또 다른 30퍼센트는 이자율을 10퍼센트 미만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 대다수 카드 회사들은 10퍼센트를 훨씬 웃도는 이자율을 부과한다. 2008년 조사에서도 전체 미국인 중 3분의 2가 복리 이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금 이자가 일정 수준이면 소득세가 붙는다는 사실을 하는 이도 23퍼센트 미만이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2006년 영국 재정청이 대중의 금융 지식을 파악해 본 결과, 5명 중 1명은 인플레이션 5퍼센트와 이자율 3퍼센트가 본인들 저축 구매력에 미치는 영향을 알지 못했다. 10명 중 1명은 원래 가격이 250파운드인 텔레비전을 각각 30파운드와 10퍼센트를 할인했을 때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예시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연구 조사에서 나온 질문은 가장 기초적인 내용이었다. 따라서 조사 대상자 중 ‘풋’옵션과 ‘콜’옵션 차리를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은 분명 소수일 테고, 자산 담보부 증권과 신용 디폴트 스왑을 구분하는 이들은 더욱 적었으리라 추측해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사회가 지출과 세후 소득 관리를 개인에게 맡기고, 성인들이 저마다 주택을 소유한다고 가정하며, 은퇴 대비 저축액 산정이나 보험가입 여부도 개인에게 일임해 버리면, 결국 역량 부족한 시민이 금융과 관련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는 장차 불거질 문제의 씨앗을 뿌리는 격이다.“<금융의 지배>



















“미국의 주택 위기 때 자신이 사는 집이 압류되어 자산가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압류 과정이 불법적이었던 경우도 있었죠. 주택 소유자들 중 담보 대출금을 내지 못해 싼 가격으로 집을 팔 수밖에 없는 이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러자 블랙스톤 같은 사모펀드 회사가 단계적으로 그 압류된 주택을 헐값에 사들였습니다. 블랙스톤은 단숨에, 전 세계 제일은 아닐지라도, 미국에서 제일 큰 임대회사가 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현재 수많은 주택을 임대해서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죠. 주택시장이 회복되자 이 주택들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생산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자본을 축적하는 분야가 경제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자산가치를 교환하면서 생기는 이익을 챙기는 것이죠. 하지만 이 경우 자산가치 교환이란 것은 어느 시점에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상황을 수반합니다. 그 자신은 결국에는 가치가 재평가되는데, 이 재평가된 가치 때문에 이익을 보는 것은 바로 사모펀드 회사죠.



이런 자본 축적은 생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 과정을 아주 세심히 살펴보면, 우리 사회 부(富)란 것이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탈취되어 교환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본 축적이 자산가치를 계속 올리는 재평가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본 축적은 이제 생산에 얽매여 있지 않습니다. 자산가치를 조작해서 교환하는 것에 기대고 있죠. 비슷한 과정이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도시의 어떤 지역 질이 좋아지면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납니다. 저소득층은 그 지역에서 축출되는 것이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 수단 중 일부는 합법적인 것이지만 어떤 것은 수상한 면이 있고 또 어떤 것은 완전히 불법입니다. 물론 집주인들은 기가 막힌 방법으로 건물에서 세입자들을 쫒아냅니다. 1970년대에는 건물에 불을 질러 보험료를 타내고선 고급 지역으로 재개발하는 터전을 닦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밤 뉴욕의 한 라디오방송에서 나왔던 유명한 멘트가 바로 ‘브롱스가 불타고 있다(the Bronx is burning)’이었죠. 이렇게 사람들을 쫒아내는 방법은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도시 지역에 널리 퍼졌습니다. 쫓겨난 사람들은 보통 머리 도시 변두리로 나가서 살게 되죠.“<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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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에게는 타인 멍청함을 포착하는 [잘못된] 레이더가 있다. 바로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이다. 우리 인간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주목하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부정 편향은 인간의 의견이나 편견, 낙인, 차별, 미신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집안일을 할 때조차 끝마친 일보다는 아직 마치지 못한 일이 먼저 눈에 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복잡한 사회에서도 우리는 천재보다는 멍청이를 더 빨리 알아본다.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사건보다 부정적인 사건을 더 먼저 알아본다. 집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내가 물건을 잃어버린 게 아니고 누군가 물건을 치웠다고 생각한다. ‘누가 내 물건에 손을 댄 거지?’ 그리고 일이 제대로 안 풀리면 누군가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 멍청한 누구 때문이라며 외부 탓을 할 때가 많다.



두 번째는 ‘귀인(attribution)’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관찰할 때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원인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타고난 성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례에서 결론이 무척 명확해 보인다. 멍청이 때문인 것이다. 자동차 한 대가 우리 곁을 위험할 정도로 빠르게 앞질러 지나가면, 우리는 운전자 아이가 학교에서 부상을 입어 서두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운전자가 멍청이라서 저런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두 시간이 지나도 메신저에 답장을 하지 않으면 인터넷 연결에 문제가 있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친구가 속이 좁은 멍청이라 삐졌나 보다고 생각한다. 동료가 서류를 돌려주지 않으면 그가 바빠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동료가 게으른 멍청이라 그렇다고 생각한다. 교수가 무뚝뚝하게 대답하면, 내가 바보 같은 질문을 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교수가 멍청해서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멍청한 인간으로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교양 있고 비판 정신이 있는 사람도 비합리적인 믿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 번째 이유는 우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 성향 때문이다. 운명을 찾으려는 태도, 음모론을 믿으려는 태도, 선의든 악의든 특정 의도를 찾는 태도가 자칫 비합리적인 믿음으로 이어지기 쉽다. ‘셋이 없이는 절대로 둘도 없다.’ ‘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금요일에 웃는 사람은 일요일이 되면 운다’ 등 인과관계와 의미를 찾으려는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학자라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실제로 2010년 11월 6일,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의 가든인 호텔에서는 ‘갈릴레이는 틀렸다. 교회가 옳았다(Galileo was wrong: The church was right)’라는 제목의 과학 세미나가 열렸다. 연사 열 명은 자신들을 ‘전문가’라고 소개하며,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는 천동설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이후로 지동설이 옳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음에도 연사들은 이를 부인했다.



세미나 부제는 의미심장했다. ‘천동설에 대한 최초의 가톨릭 연례회의.’ 가톨릭교도인 로버트 선지니스 박사는 ‘천동설: 알고도 숨기는 진실’이라는 발표로 세미나를 시작하며 음모론이라는 식상한 테마를 끌어들였다. 다른 연사들도 상당히 놀라운 테마로 발표를 했다. ‘과학적 증거: 지구는 우주 중심에 있다.’ ‘천동설 구조 입문’ ‘과학 실험 결과 지구는 우주 중심에 고정되어 있다.’



이번 세미나를 공동 개최한 로버트 베넷은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선지니스는 국제가톨릭우주학회 회장이며 신학과 과학, 문학, 정치에 관한 여러 저서와 기고문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수년간 다양한 기관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태양을 비롯한 모든 행성이 고정된 지구 주변을 돌고 있다는 내용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에른스트 마흐, 에드윈 허블, 프레드 호일 같은 물리학자들과 ‘그 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조만간 성경의 진실을 믿고 과학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면 희망을 품었다. 완고하고 비합리적인 맹신자들은 황당한 이론이 맞는다고 우기기 위해 사람들 정신을 조종하려고 한다. 여전히 반계몽주의와 진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비합리적인 네 번째 이유는 무지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인간이 수세기 동안 아무렇지 않게 동물들을 가둬놓고 길들인 것은 동물들에게도 인지능력, 생각,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명을 지르지만 느끼지는 못한다.’ 철학자 말브랑슈가 기르던 개를 때리면서 내뱉은 말이다. 몰상식함은 시대를 초월한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2017년 6월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인 대상으로 온라인 여론조사를 벌였다. 응답자 가운데 7퍼센트(1600만 명 이상)가 카카오 밀크가 갈색 암소 젖에서 나온 것이라고 대답했다. 미국 농업부 여론조사에서는 더욱 황당한 결과가 나왔다. 성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햄버거 패티가 어떤 동물의 고기인지 모른다고 한 것이다.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원으로 있는 알렉산더 헤스와 캐리 트렉슬러는 11, 12살 어린이들을 상대로 조사했는데, 응답한 어린이들 가운데 40퍼센트가 햄버거 고기가 쇠고기인지 몰랐다고 했고, 30퍼센트는 치즈가 우유로 만들어지는지 몰랐다고 답했다.



식품에 대해 무지한 것은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8~12살을 대상으로 한 프랑스의 어느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40퍼센트가 햄과 같은 가공식품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른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꽤 많은 저학년 학생들이 생선에는 가시가 없다고 대답했다. 젖을 먹일 송아지가 없어도 암소 젖에서 즉각 우유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금발머리 여자들 비율은 어떻게 될까? 답은 직접 상상하기 바란다.



인간은 동물의 인지 능력에 대해 여러모로 무지했기에 동물을 아래로 보고 지배하려고 했다. 인지윤리학과 신경과학이 발달했음에도 동물을 바라보는 인간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전문가들은 ‘동물들도 의식이 있고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2012년 캠브리지 선언). 동물들이 생각만큼 멍청하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책들도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동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부조리한 인식을 고치려면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목축업을 하고 육류 제품을 파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미소 짓는 암소들과 식탁으로 가고 싶어 안달하는 암탉들의 목가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려고 애쓴다. 철학가 플로랑스 뷔르가가 관찰한 것처럼 동물을 죽여 고기로 만드는 과정이 미화되고 있는 것이다. 축산 산업에서 발생하는 목축과 도축 현실이 묻히고 있다.



철학가 마르탱 지베르는 2013년에 잡지 <브르타뉴 농부 주간지>가 목축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소개했다. ‘제품에서 동물이 드러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동물에 연민을 느끼지 못하도록 과정을 보여주지 말고 완제품만 내세워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육류 전문가 잡지도 ‘소비자는 자신이 구입한 양갈비가 봄날 풀밭에서 깡충 뛰어놀던 귀여운 어린 양을 죽인 고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 확실히 채식주의자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멍청함은 잘도 보면서 정작 자신 멍청함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 똑똑하고 교양 있는 척 하는 멍청이는 더 답이 없다. 이런 종류 멍청이는 책은 열심히 읽는데 작가들 사상이나 대가들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멍청한 인간은 책으로 읽은 내용이 전부인 줄 알며 마치 책이 새장인 양 그 속에 갇혀버리는 재주가 있다. 



멍청한 인간은 자신이 멍청한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이 멍청하다고 비난한다. 당신도 자신이 보통 사람보다 똑똑하고 모범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진단은 정해져 있다. 당신도 자기 자신을 모르는 멍청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당신도 멍청함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이 책은 당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당신이 아직 눈치를 못 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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