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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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은 얼굴의 집이다










< 장소 : 場所> 와 < 공간 : 空間  > 은 동의어처럼 보이지만 형질이 서로 다른 낱말에 가깝다. 공간이 비움이라면 장소는 채움이다. 여기서 채운다는 행위는 기억, 추억, 경험, 시간 따위'다. 그렇기에 장소는 공간보다 사적이며 은밀하다. 그런 점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장소에 대한 기억을 다룬 소설이다. 한때를 기억한다는 것은 곧 장소를 추모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場所(장소)에서 場은 때(시기)를 뜻하는 한자이다. 장소는 시간성이 지배하는 곳이다(공간은 말 그대로 공간성을 대표하는 곳이다). 


영화 << 노매드 랜드 >> 는 장소와 공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처럼 보인다. 주인공 펀(fern, 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은 " home ㅡ" 과 " house ㅡ" 의 차이를 강조한다. 친구 딸이 펀에게 홈리스냐고 묻자 펀은 자신이 home/less가 아니라 house/less라고 대답한다. 홈과 하우스의 차이는 분명하다. house는 텅빈 구멍이 크면 클수록 값이 비싼 상품이 되지만 home은 좋은 기억과 추억을 많이 채울수록 좋은 곳이 된다. 전자는 결핍과 여백(구멍)의 사이즈가 클수록 상품 가치가 높은 유형 자산에 속하지만 후자는 물물거래가 불가능한 무형 자산에 속한다. 


영화 << 노매드 랜드 >> 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유랑민은 매매할 수 있는 주택이 없을 뿐이지 가정이 해체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폭정 아래에서 소외된 그들은 새로운 방식의 삶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것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생존의 방식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은 정당한 것이다. 이 영화는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유랑인을 " 자발적 낭만 " 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 비참한 노숙 " 이라고 비하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미덕이다. 이 영화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 앞에서는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도, 자꾸 눈물이 난다.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를 감상했을 때 느꼈던 그런 슬픔이다1). 릴케는 노래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아름다움을 그토록 찬미함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이다. 무엇보다도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얼굴은 압도적이다. 화장을 지운 얼굴에서 드러난 주름 하나는 뛰어난 각본가가 공들여 작성한 훌륭한 대사보다 명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주름이야말로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집대성한 장소다. 실력이 뛰어난 목수가 좋은 집을 짓듯이 좋은 사람은 멋진 주름을 만든다. 주름은 얼굴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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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05-07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우스는 텅빈 구멍이 크면 클수록 값이 비싼 상품이 되지만 홈은 좋은 기억과 추억을 많이 채울수록 좋은 곳이 된다.˝ 와!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이 한문장만으로도!!!! 감이 확

얄라알라북사랑 2021-05-07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우스는 텅빈 구멍이 크면 클수록 값이 비싼 상품이 되지만 홈은 좋은 기억과 추억을 많이 채울수록 좋은 곳이 된다.˝ 와!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이 한문장만으로도!!!! 감이 확
 

















                                            


낙수효과를 맹신하는 어느 청맹과니에게 : 













곱창과 포도주










부잣집 " 자제 분 ㅡ " 이 가난한 집 " 여식 놈 ㅡ " 과 만나 사랑을 나누는 드라마에서 끌리쒜처럼 등장하는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돼지 곱창이다.  평창동 힐'에서 귀하게 자란 남자에게는 혐오 음식이지만 가난한 집 여식에게는 최애 음식인 곱창. 여자는 남자에게 곱창을 권한다. 어느 짐승의 똥오줌이 흘렀을, 곱창을 먹기에는 비위가 상하지만 재벌가 남자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똥이라도 씹어주마 _ 라는 정신으로 삼킨다. 


여자는 비로소 그 남자가 내 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연다. 씹던 껌을 마다하지 않고 서로 나눠 씹을 때 비로소 진정한 여고 동창생의 씨스터후드가 완성되듯이 말이다. 타인의 아밀라아제를 뒤섞는다는 점에서 씹던 껌을 나눠 씹는 행위는 일종의 " 우정의 딥키스 " 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 음식 섭취를 통한 계급적 동질감 " 이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가들이 시장에서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을 먹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경원이 재래시장에서 내장을 제거하지도 않은 개불을 씹었던 그 유명한 사건을 떠올려보라.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에서 국밥과 함께 욕을 먹는 장면을 연출했던 정치 광고는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정치 광고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광고였다.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은 물론이요, 욕까지 먹으니 얼마나 맛있게요 ?  수많은 유권자는 하다하다 욕까지 처먹는 이명박을 보면서 계급적 동질감을 느꼈다. 좋다, 시부랄놈 !  한 표 찍어주마 ~  뭐, 그 후의 결과는 다들 아시리라. 먹방으로 떼돈을 번 각하는 취향도 독특하셔서 이제는 콩밥 먹으로 감방에 가셨다. 각하, 교도소에서 삶은 콩밥 맛있습니껴 ? 


백만장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에서 곱창을 먹는 재벌 남자는 대부분 좋은 사람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돼지 곱창을 즐겨 먹는 재벌은 없다. 이건희가 자식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면서 내게 되는 상속세 13조 때문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이가 있었다. 삼성이 그 돈을 일자리 창출 비용으로 사용했다면 많은 이가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데 국가가 훼방을 놓았다는 것이다. 낙수효과가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최근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석학들이 수없이 증명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낙수효과를 맹신하다 보니 블로그에 낙서나 끄적이고 있다. 


버나드 쇼는 낙수효과를 종교적 신앙으로 믿고 있는 또라이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 부자들이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은 그런 사태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그런 식의 고용은 의미가 없다. 그렇게 따지자면 살인자도 교수형을 집행하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어린아이를 친 자동차 운전사도 앰뷸런스 운전사, 의사, 장의사, 성직자, 상복 제조사, 영구차 운전사, 묘지를 파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게 해주므로 자살한 사람에게는 의인으로 동상이라도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지적인 여성을 위한 사회주의 안내서 中 ) " . 


한심이 극심하여 그가 작성한 몇몇 글을 살펴보다가 3800원짜리 포도주를 마시며 소확행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달달해서 좋댄다. 그가 마신 3800원짜리 포도주는 백만장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돼지 곱창을 닮았다. 그가 그토록 애통하게 생각하는 삼성의 자제 분들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3800원짜리 포도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모르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 싸구려 포도주를 마셔본 적도 없을 것이다. 설령, 마신다 한들 인상을 찡그리며 뱉지 않았을까 ? 그리고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어머머, 이런 싸구려 포도주를 마시는 인간도 있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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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5-02 1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국민 통합을 위해 죄를 지은 전직 대통령들과 백신 확보를 위해 죄를 저지른 경영자의 사면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과거 대통령들의 사면과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한 원포인트 사면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일들의 결과가 과연 우리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를 물어보고 오늘의 문제를 바라본다면, 그 답은 분명할 것 같네요. 마찬가지로, 1980년대 레이건 시대에 나온 ‘낙수효과‘라는 용어가 과연 21세기 우리에게 적용되는가를 묻는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진부한 물음이라 생각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1-05-03 16:20   좋아요 1 | URL
모든 소비 행위는 세금 납부 행위이기도 합니다. 1000원 과자를 사도 10%의 세금을 내는 것이고, 분식집에서 라면 한 그릇 사 먹어도 마찬가지이고... 그렇다면 이건희가 모은 미술품은 ? 세금 냈나요 ? 세금 한 푼도 안 내고 수집한 거 아닙니까. 엄연히 탈세한 거죠. 이런 불법 수집 미술품을 상속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기부 형식으로 기부하는 것이 차라리 이득이 된다고 합니다. 글구 항상 똑같이 반복하는 말이지만.. 아니 30조 재산을 가진 갑부의 세금 문제를 가지고 왜 3000원짜리 포도주 먹는 인간이 그 집안 재산을 걱정합니까. 정말 이해가 완전 불가합니다. 또라이 가틈..

han22598 2021-05-04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의합니다! 아주 속이 다 시원하네요! 저도 저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지적인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근처에라도 가려면 ㅎ 책 소개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1-05-07 15:21   좋아요 0 | URL
네에. 책 좋아요. 버나드 쇼가 워낙 시니컬한 인물이기도 하고. 글 잘 쓰는 인간이기도 하고..ㅋㅋ

수다맨 2021-05-04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법에 따라서 국가가 삼성 일가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인데 이게 과연 ‘환원‘이나 ‘기부‘ 같은 말로 포장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굳이 환원이라고 부를 법한 부분이 있다면 ‘미술품 기증‘과 ‘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약 1조원)‘인데 미술품 기증은 곰곰발님께서 잘 지적(불법 수집 및 세금 탈루)해 주셨고 후자는 기부라고 말하기도 사실은 민망합니다.
이건희는 2007년 약 4조 5천억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하고 약 1100억의 탈세 정황이 밝혀져서 콩밥 먹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조준웅 특검이 이건희를 사실상 풀어주었고 그때 삼성도 여론 악화를 우려해서 이 비자금의 사회환원을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희 생전에 비자금 사회환원 같은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고 결국 죽어서야 겨우 1조원(!)을 토해낸 것인데 이게 과연 상찬받아야 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국가한테 과징금으로 뜯겨 마땅한 돈을 이제서야 찔끔 내놓은 셈인데 언론은 ‘삼성 찬가‘ 부르기에 여념이 없더군요. 꼭 북한 방송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1-05-07 15:21   좋아요 0 | URL
하이 ~ 반갑군요. 수다맨 님. 언론이 쓰레기인 줄은 알았지만 정말 이번 삼성 언론 보도 보고 진짜 상종도 하면 안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기자 새끼들은 정말 역대급 쓰레기란 생각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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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과 중간이 없는 집구석  :










빵꾸똥꾸 해리를 위한 변명






일일 시트콤 드라마 << 지붕 뚫고 하이킥 >> 에서 버릇 없는 악동으로 등장하는 해리 때문에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나이와 서열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빵꾸똥꾸라고 독설을 날리다 보니 듣는 이 민망하다나 ?  해리 나이가 아홉 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으로부터 모욕을 당하니 배리올드ㅡ맨이 참다 참다 결국에는 참치가 될 것 같아서 그만 방송에서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최고 구식 사고를 해서 이름조차 구식인 한나라당 최구식 국회으원 나리 님께서 이 시트콤의 존망을 논해야 한다며 해리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아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최고 구식 으원은 “ 욕설로 일관되고 비정상적인 아이를 가지고 하는 것이 어떻게 방송을 완성시킨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어린 놈이 싸가지가 없다는 말. 시트콤을 다큐로 받아치시며 존망을 논하는 어르신 나리의 잔망에 모두 다 경악했지만 결국 이 명랑 시트콤 드라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빵꾸똥꾸를 자제하라는 해리 함구령이 떨어졌다(권고 조치). 최고 구식인 으원님이 " 욕설로 일관되고 비정상적인 ㅡ "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때 내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떠오른 인물이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이명박이었다. 그가 누구인가 ?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로부터 " 처먹어, 이눔의 새꺄 ! " 라는 욕을 처먹고 대통령이 된 인물이 아니었던가.  내돈내산 국밥인데 욕을 먹고도 좋다고 해맑게 웃으니 쥐새끼 눈깔이 더욱 사악해 보인다.  그래도 땀 뻘뻘 흘리며 처드시는 대통령. 얼씨구, 좋단다.  최고 구식 으원 나리 말 대로라면 욕 처먹고 대통령이 된 인물이 어떻게 바른 정치를 완성시킨다는 것일까(국밥을 말아먹었던 그는 결국 나라를 말아먹은 전과 14범이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국회의원이 연극한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육시헐 놈, 개잡놈, 불알 값 운운한 정당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은가. 


빵꾸똥꾸 때문에 피를 본 어른은 또 있다. 뉴스에서 남자 앵커가 빵꾸똥꾸로 방심위로부터 권고 조치를 당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가 웃음이 터져서 방송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웃음이란 참다 참다 참다 참치 못하면 결국에는 울먹이게 되는 법.  옆에 있던 여자 앵커도 웃음을 참다가 결국에는 울먹이는 소리로 변했다. 참고 참고 또 참치 울긴 왜 울어라는 만화 노랫말이 설득력을 가지는 순간이었다. 아, 이 모든 것이 해리의 빵꾸똥꾸 발언 탓인 것이다. 시대마다 유행어가 발생하지만 이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대사'는 찾기 어렵다.  한마디로 명대사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빵꾸똥꾸 해리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하려 한다.  독자여, 웃지 마시라. 나..... 진지하다 !  우선 빵꾸똥꾸에 대한 정의부터 내리자. " 빵꾸 ㅡ " 는 "puncture " 의 일본식 발음으로 " 구멍 " 이라는 뜻이지만 일이 잘못되거나 낙제에 해당하는 학점을 받아 유급되는 상황을 뜻하기도 한다 : 빵꾸를 방구로 해석하는 이도 있으나 그것을 경음화 현상(된소리 되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여기에 똥구멍을 뜻하는 " ㅡ 똥꾸 " 가 결합된 구조로,  똥구멍을 프로이트 언어로 해석하면 항문기를 뜻한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지식이 쌀 한 톨만큼이라도 있다면 < 빵꾸똥꾸 > 는 " 항문기에서 남근기로 성장하지 못하고 유급된 상태 " 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해리가 어른을 향해 " 야, 이 빵꾸똥꾸야 ! " 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은 " 어른인 척하지만 알고 보면 항문기 고착 상태인 얼라 " 라는 의미이다. 사실, 해리가 네 가지가 없는 이유는 이 집구석이 크게 두 가지가 없다는 데 있다. 하나는 " 적당히 ㅡ " 가 없고 또 다른 하나는 " 중간이 ㅡ "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서로 각자도생하는 미성숙한 어른이'일 뿐이다.


최고 구식 으원 나리가 빵꾸똥꾸에 대한 내 해석을 읽는다면 노발대발할 것이 분명하다. 어른에게 얼라'라고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해리는 왜 어른을 향해 빵꾸똥꾸라고 하는 것일까 ?  항문기 고착 상태인 어른의 성격을 보면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프로이트는 항문기 고착 상태인 성인의 공통된 성격으로 고집불통, 구두쇠, 수집벽을 뽑았다. 그렇다면 항문기 고착의 대표적인 인물은 누가 있을까 ?  빙고. 그래요. 이명박과 박근혜. 두 어르신 모두 불통의 아이콘이자 구두쇠요, 돈에 대한 집요한 집착(수집벽)으로 깜빵 가셨던 분이 아니었던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빵꾸똥꾸를 외쳤던 해리는 이명박과 박근혜에게도 빵꾸똥꾸를 외쳤을 것이다. " 야, 이명박과 박근혜. 이 빵꾸똥꾸야 !!! " 내가 빵꾸똥꾸를 항문기 고착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해리의 캐릭터를 삼파장 발광 다이오드 현미경으로 초정밀 분석한 후 내린 결론이라는 데 있다. 모든 것을 자기 멋대로 하는 해리에게는 큰 곤경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변비다. 해리는 항상 변기 앞에서 똥과 씨름한다(몇 편의 에피소드에서 해리는 변비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화장실에서 엄마가 해리에게 배변 훈련(toilet training)을 가르치는 에피소드는 꽤 많이 등장한다. 


항문기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정의가 부모의 배변 훈련이 필요한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해리는 항문기 캐릭터다. 해리는 인간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친구이고 나머지는 모두 다 빵꾸똥꾸다. 해리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해리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괴랄한 3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 1단계 > 도전자는 해리가 자신의 빠진 이빨을 친구 손에 쥐여 주었을 때 인상을 쓰면 안된다. 인상을 쓰면 탈락. 응, 바로 빵꾸똥꾸 ! < 2단계 > 는 해리가 싼 똥을 보며 인상을 찡그려도 응, 바로 빵꾸똥꾸. 


3단계 > 는 해리가 초코아몬드을 입에 넣고 초콜릿만 살살 녹여 먹고 나서 아몬드 알맹이만 친구에게 주었을 때 그것을 먹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마 주름을 三자로 만드느냐 川자로 만드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그럴 용기 있는가 ?  해리에게 친구란 빠진 이빨과 싼 똥과 아밀라아제를 공유할 수 있는 사이'다. 허무맹랑한 요구처럼 보이지만 해리의 3단계는 심오하다. 이 에피소드를 접했을 때 나는 감동의 도가니가 되어서 삼삼칠 박수를 쳤다. " 빠진 이빨 " 과 " 싼 똥 " 에 대한 집착은 해리가 구강기를 벗어나서 항문기에 진입한 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항문기인 해리는 항문기 고착인 어르신보다 고상하다. 해리의 막무가내는 지위 고하를 막론한다. 그러니까 해리의 막무가내는 특정한 세대나 권력 서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별 없는 아이이자 공평한 아이인 셈이다. 적어도 막무가내 해리는 어르신처럼 강자에게는 약하지만 약자에게만 막가는 인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 막가내 " 보다 " 막무가내 " 인 해리를 좋아한다. 이런 막무가내라면 기꺼이 응원하련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해리가 집을 떠나는 신애를 껴안고 목놓아 울었을 때, 나는 관악산 소쩍새처럼 소리 없이 울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속삭였다. 


" 해리야, 행복하렴.... 흙흙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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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범인은 잡혔다. 형사는 묻는다. 왜 죽였어?  살인자는 why 라는 의문문에 대하여 because가 포함된 문장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이 진술을 토대로 기자는 기사를 작성한다. 강력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언론 기사는 대부분 가해자의 진술에 의존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언론에 공개된 서사는 대부분 가해자 중심으로 작성된 것이라는 점이다. 과연 이 서사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 


죽은 자는 진실을 말할 수 없고 산 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변명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다면  :  언론에 유포된 가해자 중심의 서사는 믿을 것이 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악한 영혼을 가진 범죄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강간 살해)라고 진술하거나, 아내가 시부모 욕을 해서 욱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가정폭력 살해)고 진술하거나,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피해자가 반항을 해서 죽였다(강도 살해)는 진술은 믿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모든 진술은 감형을 염두에 둔 변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에게 덧씌워진 서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부분 어릴 적에 강간을 당한 경험이 있고 어렸을 때 성질이 사나운 엄마와 아빠의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고 고백하지만 이 연쇄살인범들의 고백 또한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강간을 당한 피해자였기에 나중에 강간 살해를 했고, 어릴 때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범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자기 내부의 사악한 본성보다는 외부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범죄자의 고백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고백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묻고 싶다.  정말 그럴까 ? 


영화 << 케빈에 대하여,2012 >> 는 가해자 케빈이 진술한 드라마를 재현하지 않고 철저하게 피해자(케빈의 어머니)의 시선으로 재현한 드라마'다. 영화는 관객에게 이제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라고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에바에 대한 이야기다.  집단 학살 가해자의 어머니이기에 겪어야 하는 수난극은 성서의 욥 이야기를 닮았다.  신이 욥에게 내리는 "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불행 " 에는 이유가 없다.  케빈은 신의 명령으로 욥에게 온갖 종류의 고통을 주는 사탄을 닮았다.  이 사탄은 신의 대리자라는 점에서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 


케빈도 그렇다. 그는 에바에게 고통을 선사하는 신의 대리자'이다. 관객은 끊임없이 케빈이 대량 학살을 저지는 이유를 밝히려고 노력한다. 한쪽은 케빈의 본성 탓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에바의 잘못된 양육 탓이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관객의 포지션이다. 케빈이 신의 대리자(사탄)이고 에바가 욥이라면 관객은 욥의 세 친구 역할을 한다.  빌닷, 엘리바스, 소발은 욥을 위로하기 위해 그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욥의 고통은 커진다.  결국 세 친구가 내린 결론은 이 고통은 그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  신이 내린 형벌에는 나름의 논리와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럴수록 욥은 자신의 무죄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 "  이때 신이 나타난다. 욥은 신에게 자신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묻지만 신은 선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에바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케빈에게 찾아가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왜, 그랬니 ?  이제는 말할 수 있잖아(" I want you to tell me, why? ") ? " 하지만 케빈은 끝끝내 그 의문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I used to think I knew, but now I’m not so sure ")


케빈은 신의 대리자일 뿐이고 에바는 신에 의해 선택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케빈의 본성 탓도 아니고 에바의 양육 탓도 아니다. 누군가가 겪는 고통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고 믿는 관객은 진짜 가해자를 찾기 위해 설왕설래하지만 어쩌면 에바를 정말 힘들게 하는 가해자는 관객일지도 모른다. 고통의 책임 사유를 욥에게 전가하는 세 친구에게 신은 이 우주가 얼마나 경이롭고 복잡하냐고 꾸짖는다. 이와 똑같은 대답을 나도 관객들에게 되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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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3-26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동안 정말 멍~ 해지는 영화입니다.
계속 생각나는 불편한 영화, 그래서 잘 만든 영화라고 기억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1-04-02 19:27   좋아요 0 | URL
불편한 영화가 좋은 영화죠...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는 증거이니 말입니다.
 

















                                


너 를   기 다 리 는   동 안  :












수고대하던 날1)



                                                                                                                                                                                                         영화에서 장소 선정은 중요하다. 특히 멜로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와 같이 " 사랑 " 이 주제인 경우는 장소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화양연화 >> 라는 영화도 보고 나면 남는 것은 비좁은 골목길이거나 비좁은 건물 복도 이미지'이다. 이 공간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충분한 넓이가 아니어서 가는 길과 오는 길의 교차점에서는 서로 어깨를 사선으로 틀어야 부딪히지 않을 수 있다.  닿을 듯 말 듯,  카메라는 이 미묘한 어긋남을 느린 화면으로 잡는다. 이 영화에서 " 좁은 골목, 좁은 복도, 좁은 자리, 좁은 틈 " 은 두 여남의 사회적 거리를 강제로(운명적으로) 개인적 거리로 만든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이자 멜로 드라마의 클리셰이기도 하다. 

사랑은 곧 장소애( TOPOPHILLIA ) 이다. 멜로 영화가 만날 듯 만날 듯 하다가 어긋나는 관계 설정이 주를 이룬다면 로맨틱 영화에서 남자와 여자는 주로 우연히 혹은 어쩌다 자주 마주친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걸작 <<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 에서 앙숙인 두 사람은 우연히, 어쩌다, 자주 마주치게 된다.  세상 참..... 좁다 _ 란 말이 나올 만하다.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 싸우지만 결국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선호하는 로케이션은 텔레토비 마을이다. 우연한 만남을 관객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텔레토비 마을은 동네가 워낙 작아서 오고가다 다 만난다. 지금껏 보라돌이, 나나, 뚜비, 뽀가 서로 약속을 정하고서 약속 장소에서 상대방을 기다린다는 상황극을 본 적이 없다. 꼬꼬마 들은 항상 우연히 만나거나 어쩌다 마주친다. 텔레토비 동산은 약속이 필요 없는 곳이다.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만들어야 하는 감독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좋은 로케이션은 없다. 꼬꼬마-들이 다 큰 성인이 된다면 꽤 밝고 명랑한 로맨틱 코미디 걸작을 생산했을 것이다. 이처럼 로맨틱은 오고다가 다 만나는 서사가 핵심이다. 반면에 멜로는 어긋남의 서사이다.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 " 멜로는 엇갈림의 서사다. 엇갈리지 않고 오다가다 다 만나면 그건 텔레토비지 멜로가 아니다. 멜로는 시간, 공간, 벡터,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물리적으로 달라야만 성립한다......멜로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만날 듯 만날 듯하면서도 만나지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빠르거나 느리다. "     많은 사람들이 멜로에 대한 정의를 내렸지만 김영하보다 명쾌한 해답을 내놓은 이는 없다. 그렇다. 그렇다 !  멜로란 시간, 공간, 벡터가 서로 물리적으로 달라야만 성립한다. 또한 멜로의 격정은 시간과 공간과 벡터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애절하다. 


이와지 순지 감독이 연출한 << 러브 레터 >> 가 멜로의 걸작인 이유는 하늘에 있는 그 남자와 땅 위에 선 그 여자의, 가닿을 수 없는 멀고 먼 거리감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의 간극보다 먼 거리가 또 있을까 ? 종로 3가에 사는 그 여자가 을지로 3가에 사는 그 남자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는 될 수 있어도 멜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채플린의 그 유명한 명언을 빌리자면 로맨틱 코미디는 클로즈업이고 멜로 드라마는 익스트림 롱쇼트'이다.  황지우의 시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은 사랑에 대한 감각이 거리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시집 『게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0)



 

시인은 말한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공간),  너는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나에게 온다(시간)고. 너에게 가기 위해 기다린다고. < 아주 먼 데 ㅡ > 라는 공간의 벡터 x좌표와 < 아주 오랜 세월 ㅡ > 이라는 시간의 벡터 y좌표는 어느 세월에 만날까. 살아생전에 어느 한 지점에서 랑데뷰할 수 있을까 ?  시인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간극을 최대한 확장함으로써 애끓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다. 날마다 살 부대끼고 살면 때론 환멸을 느끼지만 멀리 떨어지면 환상이 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동명항 방파제 포장마차에서 한 여자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 적이 있다. 약속을 정한 것이 아니었으니 그녀가 올 리 만무했지만 나는 그녀가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낙담을 했고 술에 취했다. 그해. 노무현이 죽던 날에 애인은 내 기억에서 자신을 지워달라고 애원했다. 그녀가 기억에서 나를 지워갈 수록 내 생은 지옥같았다. 나는 눈이 내리지 않는 따스한 봄밤의 방파제에 앉아서 하염없이 울었다. 찰싹 찰싹, 따스하고 부드러운 파도가 내 뺨을 때렸다. 




​                   

1) 백현진 ㅣ 학수고대하던 날   막창 2인분에 병맥주 13병 대신 봉골레 파스타에 와인이라고 했으면 이 맛이 안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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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21-03-16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텔레토비. 역시 김영하다운 발상이네요. 김영하의 창의성은 정말 감탄하게 돼요. 김영하의 번뜩이는 기발함이란.

곰곰생각하는발 2021-03-17 12:44   좋아요 0 | URL
김영하가 정말 글은 잘 쓰죠. 인정인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