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복지국가 - 약탈, 인종 학살, 공범들
괴츠 알리 지음, 최준영 옮김 / 생각의힘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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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입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철도와 도로를 깔아준 덕분에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내 목구멍에서 좆같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지만 어쩌랴. 누런 강냉이를 털고 싶었으나 그의 우람한 이두박근을 보며 간신히 참았다. 몸에 남아 있는 근육이라고는 남근밖에 없는 나는 몸을 사려야 했으니까. 크아아아. " 현실 속에서 뉴라이트 열혈 당원을 만나다니, 헐 ! "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칼 든 강도가 남의 집에 침입해서 집수리하고 나왔다는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선량한 강도는 없다. 제국의 점령지 정책에 있어서 핵심은 " 수탈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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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의 복지국가 >> 에서 저자는 히틀러 정권 시절 독일 국민의 정치적 충성심은 사상보다는 사심(이념보다는 이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은 홀로코스트 문제를 인종 이데올로기 문제로만 접근했었지만 저자는 홀로코스트를 국가 재정 문제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유대인 정책의 핵심은 국가가 유대인 재산을 빼앗아 국가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소유했던 기업, 주택, 토지, 귀금속은 물론이거니와 가구, 식기, 침대, 옷 같은 생활용품도 경매를 통해 국가 금고로 환원되었다. 그 규모는 150억~ 200억 마르크.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60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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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돈은 고스란히 병사 급여와 독일 국민의 사회 복지 재원으로 사용되었다. 역설적이지만 독일 사회 복지의 황금기는 히틀러 정권 때였다(동물 복지도 히틀러가 만든 걸작품이다). 홀로코스트 문제를 다룬 21세기 걸작 영화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도 이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독일 나치 간부였던 회스 가족은 유대인에게서 빼앗은 고급 가구와 보석으로 집과 가족을 꾸민다. 그리고 영화 제목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는 " 금전적 이익 "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금전적 이득에 눈이 먼 독일 국민의 도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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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넉넉한 사회 복지를 위해 유럽 전체를 거대한 은행 ATM 기기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한 풍경이지만 독일 국민이 누린, 사치에 가까운 풍요는 히틀러 시대 때 완성되었던 것이다( 낮은 세금, 안정적 물가, 풍족한 급여 ). 당시 독일 병사였던, 나중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하인리히 뵐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 25마르크라는 엄청난 병사 급여 " 를 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독일 국민에게는 히틀러 시대야말로 황금시대였던 것이다. 어쩌면 독일 국민은 히틀러의 말빨에 세뇌당한 것이 아니라 복지 정책에 만족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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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대인 재산을 약탈해서 사회 복지 재원으로 사용하던 히틀러는 범위를 확대하여 유럽으로 확장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점령지에 대한 수탈의 양도 많아지고 그만큼 독일 국민은 풍요로웠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홀로코스트와 독일 전쟁을 단순히 인종 혐오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히틀러의 죽음으로 모든 죄는 히틀러와 나치에게 돌아갔지만 따지고 보면 독일 국민은 공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히틀러와 나치는 전쟁범죄자였고, 독일 국민은 장물아비였다. 그들은 자신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가 어디에서 왔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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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 패망한 독일에 입성한 한 영국군 장교는 이렇게 회고했다. “...... 사람들은 그 폐허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혈색이 좋았고, 행복해 보였으며, 깔끔하고 옷도 잘 갖춰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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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10-06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오브 인터레스트....찾아보겠습니다!
간만에 좋은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
 


​비록, 어쩌다가 노래방에 가면( : 이번 명절에도 가족들이 모여 노래방에 갔다. 그곳에서 나는 박상철의 무조건과 태진아의 옥경이를 불렀다. 수치스러워서 몸이 떨렸다. 다음 생에서는 악기로 태어나리라 ) 트로트를 부르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악 장르는 트로트다. 더군다나 아이가 화장을 하고 트로트 흉내를 내면 광기에 사로잡힌다. 아, 제발 ! 또한 신파를 싫어해서 질질 짜는 트로트 노래는 더더욱 질색이다. 친구가 이 동영상을 추천했을 때 나는 광안리 쭈꾸미처럼 째려보았다. 왜냐하면 내가 싫어하는 모든 요소를 갖췄기 때문이었다. 몇 번을 사양했지만 친구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국밥을 씹으며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신안 기거도 우럭처럼 울컥했다. 노래 가사 중에서 " 꿈에 한 번 오세요. " 라고 부를 때 그만 눈물이 주르르르륵. 아, 이 어린 소녀는 누구란 말인가. 아이야, 울지 마라.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우주가 돕는단다. 늘 하는 말이지만 러브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거리 " 1)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 멀리 있으면 보다 애틋해지는 법이다. 꿈이란 공간이야말로 인간이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다. 소녀가 죽은 아빠에게 꿈에 한 번 오세요 _ 라고 간청할 때 이보다 더 애틋한 초청은 없다. 우느라 밥알 몇 개 쏟았다. 

https://youtu.be/IamJ5OoIEho?si=26YL2983-zRYSEJ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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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되 작별하지 않는다




https://youtu.be/OczdD6-qqAs?si=qfWVRN1bUgeRI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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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작별 인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표현은 " 다녀오다(갔다가 오다) ! " 다. GO AND COME BACK ! 발화자가 학생인 경우는 학교 갔다가 집에 오겠다는 약속이고, 직장인 경우는 직장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면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오겠다고 다짐을 말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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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듣다 보면 " 다녀오다 " 는 단어는 매우 숭고한 낱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발화자는 수신자에게 " 나는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곁으로 돌아올거야 " 라는 약속을 당신에게 하고 떠나는 것이다. 작별이기는 하나 동시에 작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 작별인데 작별하지 않겠다니. 이 얼마나 멜랑꼴리하며 달콤한 속삭임인가. 이 낭만적 다짐을 날마다 약속한다. 한국인은 사랑에 대한 표현이 서툴다고 말하자면 사랑한다는 표현보다 다녀오다는 표현이 더 비장하고 웅장하다. 애정의 깊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의 깊이다. 서사의 깊이로 따지자면 사랑한다는 형이하학이고 다녀오다는 형이상학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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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어는 매우 정교하며 깊이 있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언어다. 내 비록 화장실에서 국어사전을 펼쳐 읽으며 한글 공부를 하지만 읽을수록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 안녕하세요 >> 로 기억한다. 학교 수업을 끝내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오후 늦게 집에 온 아이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다녀왔습니다 _ 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다( :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도 아이가 집에 왔을 때 부모는 잠시 외출을 했던 모양이다). 인사란 인사를 하는 사람과 인사를 받는 사람이 있을 때 발생하기에 아이의 다녀왔습니다_ 라는 인삿말은 하나 마나 한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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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의 효율성만 놓고 따지자면 이 장면은 쓸모없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오즈 야스지로는 왜 이 장면을 삽입했을까 ? 숭고하기 때문이다. 朝花夕拾(조화석습)이란 루쉰의 산문 제목이 있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뜻이다. 오즈의 아이는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에 줍는 마음으로 아침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늦은 오후 집으로 돌아와 인사를 한다. 다녀왔습니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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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우의 연기를 평가할 때 유심히 보는 것 중 하나가 " 걸음걸이 " 다. 대사 연기와 표정 연기는 어느 정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 사람들은 배우들이 오열하는 장면을 명연기라고 칭찬하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서 제일 하기 쉬운 연기가 바로 눈물 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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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정치인들도 타이밍에 맞춰 눈물을 흘린다(정청래 이 새끼의 눈물 연기는 압권이다). 훌륭한 배우는 대사와 표정 연기는 물론이고 걸음걸이도 캐릭터에 맞춰 연기한다. 사람들이 걷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단순히 다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몸통 움직임도 동반이 되고 팔도 움직인다. 종합하면 걸음은 전신 운동이다. 그렇기에 걸음을 연기한다는 것은 온몸 연기인 셈이다. 걸음걸이야말로 고난이도 연기다. 걸음걸이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인장이 있다. 타고난 성격, 사회적 지위, 계급적 특징 그리고 그날의 마음이 뒤섞여서 다양한 걸음걸이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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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펠레니 감독의 영화 << 길 >> 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짐파노(안소니 퀸 분)가 어두운 밤 바닷가를 걷는 장면이었다. 성큼성큼 걷던 걸음이 휘청거리며 무너질 때 관객은 그의 비통한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본 것이나 다름없다. 휘청거리는 걸음이 무너진 마음의 환유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자전거 도둑 >> 을 만든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에게 어느 영화 담당 기자가 물었다. " 왜 전문 배우 대신 비전문 배우'를 영화 주인공으로 발탁하셨습니까 ? " 그 질문에 대하여 감독은 그 사람의 걸음걸이가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연기를 전문으로 배운 배우가 특정 계급의 삶을 연기한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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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걸이만큼은 연기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는 걸음이 마음의 환유라는 사실을 아는 감독이었다(마르크스였다면 계급의 환유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또한 브르디외였다면 몸짓의 아비투스 ?!).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대답에 나는 감동했다. 내가 < 자전거 도둑 > 을 보면서 정말 좋아했던 것은 그 가난한 아버지를 연기했던 배우의 걸음걸이였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울림은 그가 걸을 때 보여지는 몸의 움직임에서 파생된다. 배우 김윤석이 연출한 영화 << 미성년 >> 에서 이정은이 등장하는 짧은 장면은 이 배우가 얼마나 뛰어난 연기자인지를 보여준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오직 걸음걸이 하나로 모든 것을 증명한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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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장면을 보다가 너무 흥분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던 이유는 이 짧은 등장 장면만으로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10초짜리 약사로 요약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로우 앵글로 방파제를 걸어오는 여성의 걸음을 비춘다. 이 여성의 걸음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고된 노동으로 인해 무너진 무릎 관절과 허리 디스크 그리고 술독에 빠진 걸음. 균형을 잃고 절뚝거리는 삶을 살아온 여성 캐릭터를 이정은 배우는 정교하게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효율적인 연출이 또 있을까 ? 어쩌면 연기력만으로 전도연과 대결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배우는 이정은이라는 생각이 든다. 탁월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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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shorts/UuRGzsm3FJU?si=WdsUmpoNizqn0G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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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6-09-29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곰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사부터 드렸어야 되는데 그간 잘 지내셨죠?

걸음걸이는 생각 못 해봤었는데 앞으로 연기를 볼 때 걸음걸이를 유심히 보게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예시로 올려주신 영상 너무 감사합니다. 이정은 배우 연기가 진짜 너무너무 좋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6-09-29 20:36   좋아요 1 | URL
요즘 슬슬 알리딘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ㅎㅎㅎ
사람들이 연기 하면 대본 연기와 얼굴 표정 연기가 다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연기는 몸 연기예요. 걸음걸이는 온몸 연기 중 하나거든요. 연기 잘하는 사람들은 캐릭터에 맞는 걸음 연기를 합니다. 대표적인 배우가 송강호..
 





내가 처음 배운 주종(酒種)은 맥주였다. 도수가 높지 않은 데다가 목넘김이 부드러워 마시기에 좋았다. 크아, 그래 이 맛이야. 그 당시에 옛 애인은 맥주만 마셨던지라 그 시절 내 몸에 흐르는 피의 팔 할은 맥아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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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이를 먹고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고 나서부터는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싸구려 공업용 알콜 냄새와 기분 나쁜 쓴 맛이 개 같은 내 인생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쓴 맛을 모르면 그게 인간이냐 인삼이지, 끄어억. 무엇보다도 소줏집의 풍경을 사랑했다(맥주를 마실 때는 맥줏집 풍경을 사랑했다).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소맥을 마시기 시작하면서였다. 소맥 맛에 눈이 돌아가 소맥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쇼잉, 그래 쇼잉. 소맥 잔에 젓가락 넣고 흔들면 맥주 거품이 마술처럼 생성되는 그 쇼잉. 처음에는 재미로 소맥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소맥 이외의 술은 마시지 못하고 있다. 어즈버.... 소맥 10년 외길 인생이시다.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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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맥줏집에 가면 혼자 소주 한 병 시켜 혼자서 소맥을 말고, 소줏집에 가면 혼자서 맥주 한 병 시켜 혼자서 소맥을 만다. 친구들이 늘 하는 말. 너 참 유별나다. 이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이제는 소주를 마시면 소주가 너무 쓰고, 맥주만 마시면 맥주가 너무 싱겁다. 소맥이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맛이다. 섞어 마시면 인생 꼬인다. 한식의 세계화 전략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랍시고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현지인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멍청한 소리다. 한식은 한식일 때 성공할 수 있다. 카레는 인도의 음식이지만 그 어느 누구도 카레를 먹으면서 인도 문화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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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카레는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조된 영국 커리일 뿐이고, 일본 카레는 일본인 입맛에 맞게 개조된 카레라이스일 뿐이다(또한 아프리카 카레는 아프리카 사람 입맛에 맞는 카레일 뿐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카레는 이것과 저것이 섞인 소맥인 셈이다. 엉터리 같지만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A급 실력을 갖췄지만 B급 감성으로 노래하는 노라조의 << 카레 >> 에서 지적했듯이 "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이 맛은.... 순한 맛 매콤한 맛 인도에도 없는 맛 " 이다. 인도 요리가 인도에는 없는 맛이니 무국적 요리인 셈이다. 인도인 입장에서 보면 음식의 현지화 전략은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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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한국인 미슐렝 셰프들이 한식이랍시고 현지인 입맛에 맞는 한식을 선보이고는 하는데 그들이 내놓은 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맛에 불과하다. 내 경험을 통해 그들에게 충고 한 마디 하자면 : 섞어 만들면 인생 꼬입니다요. 셰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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