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은 그 나라를 대표한다. 요즘은 어떤 작품들이 실려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피천득의 < 인연 > 과 이효석의 < 낙엽을 태우며1) > 가 대표작이었다. 시험 문제로 자주 출제된 작품들이기도 하다. 내가 아직도 (피천득에게는 저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같은 ㅡ ) 아사코라는 일본 여인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어렸을 때에는 몰랐지만 지금 다시 읽어 보면 한심해서 웃으면서 코 파게 된다. 오고가다 우연히 세 번 만난 여인에 대한 추억을 담은 < 인연 > 은 마치 싸구려 하이틴 로맨스 소설 같아서 웃음이 났다. 와, 우연히 세 번 만난 게 인연이라면 박찬욱 감독과 나는 BL 소설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나 또한 극장에서 박찬욱 감독을 우연히 세 번 만났으니깐 말이다. 에세이가 아무리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는 장르라고는 하나 사유보다 사연이 앞서면 그것은 라디오 청취자 사연 소개 글에 불과하다. 이런 작품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세이라고 추켜세우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그래도 이 작품은 이효석의 < 낙엽을 태우며 > 에 비하면 양반이다. 읽다 보면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작가는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태우기 위해 갈퀴로 긁어모은다. 날마다 하는 일이란다. "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 라는 문장을 통해서 그가 살고 있는 집 마당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낙엽 타는 냄새를 통해서 갓 볶은 원두 커피를 낭만적으루다가 이야기한다, 진짜루. "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알을 찧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ㅡ " 그 당시 커피 한 잔 값이 하급 공무원 한 달 월급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귀족적 일상의 전시다. 한국인이 원두 커피의 맛을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20세기 인간 이효석은 이미 검은 유혹의 향에 환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던한 일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침대 생활을 하는 그는 겨울이 오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생각에 즐거워 하고, 눈이 내리면 스키를 탈 계획을 세운다. 너무 럭셔리한 생활이어서 글 말미에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는 에피소드가 나오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취향은 존중되어야 하기에 그의 소비 취향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효석을 비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비난하고 싶으니깐 말이다. 이 글이 작성된 시기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다. 대한 독립을 위해서 수많은 백성이 만세를 불렀다가 고초를 겪고 독립군이 만주 벌판에서 일본군에 의해 도륙당하던 시절, 이효석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서구의 럭셔리한 삶을 플렉스한다. 망국의 백성들아, 들어는 봤냐 ? 코오오피 ~
그의 에세이에서 발견하게 되는 서구 제국의 단어들 : 커피, 백화점, 크리스마스 트리, 목욕실, 스키1)를 보고 있노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효석과 동시대인이었던 김광균 시인이 낙엽을 "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 라는 표현으로 시대적 절망을 표현한 것과는 달리 이효석은 낙엽을 마르셀 프르스트의 마들렌 과자로 소비하고 있다. 그는 시대의 비극 앞에서 추억의 낙엽을 타고 소확행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럭셔리한 생활을 자랑하는 철딱서니없는 셀럽 같다. 어쩌면 그는 낙엽을 태웠다기보다는 양심을 태운 것이 아닐까 ?
1)
" 싸늘한 넓은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제까지 생각하는 것이 생활의 생각이다. 벌써 쓸모 적어진 침대에는 더운 물통을 여러 개 넣을 궁리를 하고, 방구석에는 올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색전등으로 장식할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를 시작해볼까 하고 계획도 해보곤 한다. 이런 공연한 생각을 할 때만은 근심과 걱정도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다. 책과 씨름하고, 원고지 앞에서 궁싯거리던 그 같은 서재에서 개운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에 잠기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 ㅡ 낙엽을 태우며 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