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의미 - The Meaning of Art
허버트 리드 지음, 임산 옮김 / 에코리브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허버트 리드의 《예술의 의미》(에코리브르, 2006)를 다시 읽었다. 10여 년 전 책읽기 모임에서 처음 접한 후 까맣게 잊고 있다가 꺼내 들었는데, 마치 처음 읽는 책처럼 새로웠다. 전에는 문예출판사 번역본으로 읽었으나 가독성이 더 좋다는 소문에 에코리브르판으로 재독을 시도했다. 결국 정독과 원문 비교를 거치며 도합 네 번을 읽은 셈이다.

 

​처음 얼마간은 문예본보다 확실히 술술 읽히는 듯했다. 하지만 재독, 삼독을 거듭할수록 1부와 3부의 번역이 엉망이라는 사실이 눈에 걸렸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검색으로 영문 원문(The Meaning of Art)을 쉽게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원문과 대조해 본 1부와 3부의 번역 상태는 가히 처참했다. 기본적인 영어 문장 구조조차 잘못 짚은 오역이 심각한 수준으로 산재해 있었다.

 

​처음 가볍게 읽을 때는 오역인 줄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1부에서 리드가 논하는 예술과 미(美)의 관계가 앞뒤가 맞지 않고 자꾸 꼬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구절구절 원문과 비교해 보고 챗GPT 등 번역 AI까지 동원해 검증해 보니, 번역자가 저자의 의도를 완전히 오독하여 발생한 오류들이 너무나 도드라졌다.

 

​개개의 세부적인 오역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진 않겠다. 직접 읽어보시라. 1부를 읽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매끄럽지 않은 구절이 수두룩한데, 이는 단순히 한국어 문맥의 어색함을 넘어 순전히 오역 때문에 논리가 깨진 탓이다. 그나마 2부는 사정이 좀 낫다. 어쨌든 잘못 옮겨진 영어 문장들 속에서 행간을 읽어내고 진짜 의미를 추라하려면 독자 입장에서 꽤나 고역스러운 수고를 들여야만 한다.

 

​만약 번역이 제대로만 정교하게 다듬어졌다면 참으로 쉽고 매력적인 한국어판이 되었을 것이다. 미학의 고전으로서 두고두고 길게 회자되는 명저가 되지 않았을까. 뭐, 원래 원작 자체가 서양 미학사의 명저이긴 하지만 말이다. 미학 개론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이처럼 엄격한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도 간결하게 스케치하여, 입문자에게 미학이 다루는 주제와 범위를 직관적이고 쉽게 일깨워주는 책도 드물다.

 

​이 책이 지닌 진짜 가치는 완독 후에 증명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눈앞의 그림을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이전에 미술을 감상하면서 무엇을 놓치고 지나쳤는지를 명확히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숱한 오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우 유익한 책이다. 사실 오역이 적고 읽을 만한 2부의 미술사 스케치만 제대로 섭취해도 이미 이 책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예술과 미의 관계를 정립하고 그림을 읽어내는 기본 개념적 도구들을 소개하며, 2부에서는 동서양 미술사를 개괄적으로 스케치한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 이르러 예술이 지닌 진정한 기능이 무엇인지를 개진한다. 비록 구성상 완전히 엄밀하고 체계적인 논문 형식은 아닐지라도, 리드가 이 책 전체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그러나 분명하게 감잡을 수 있다.

 

​이 책을 핵심만 간략히 요약하자면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움(美)과 동의어가 아니며, 진정한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형식(감정의 조형)과 내용(정신의 표현)이 정교하게 일치해야 한다'는 점을 1부에서 논한다. 그리고 이 틀을 바탕으로 미술사의 흐름을 짚어낸다. 리드가 스케치하는 미술사는 결국 조형적 형식과 인간 정신의 내용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이어져 왔는지를 밝히는 과정이다.

 

​헌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은 내용보다 ‘형식’에 있다. 이 '형식'이라는 키워드는 책 전체를 관통하며 계속 등장한다. 리드가 정의하는 예술의 본질이란 바로 '지각하는 이에게 감정을 유발하기 위해 창조된 유쾌한 형식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술가는 단순한 재현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의 감정과 직관을 가시적인 시각적 형태로 조직화(조형)하는 존재다.

 

​요컨대 1부와 2부를 통틀어 리드가 피력하는 '예술의 의미'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감정을 전달하는 유기적 형식의 창조이고, 둘째, 인간 정신의 직관적 인식이며, 셋째, 인간적 유대 및 자아의 확장이다. 결국 리드가 동서양의 방대한 예술사를 통틀어 밝히고자 했던 핵심은 '예술의 의미'가 지닌 시대적·지역적 상대성이었다. 시각적 형식과 이를 받치는 인간의 정신은 언제나 자신이 속한 시대와 공간이라는 양식의 산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부는 1부와 2부에서 다룬 예술과 미의 관계, 그리고 수많은 미술 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압축적인 비평을 바탕으로 리드가 제시하는 일종의 최종 결론이다. 그 결론이 바로 '예술의 기능'이다. 리드에 따르면 예술의 진정한 기능이란 개인적 차원의 심리적 기능과 사회적 차원의 사회적 기능을 긴밀하게 매개하고 연결하는 시도에 있다.

 

​전자가 무의식의 억압을 정화하고 파편화된 자아를 통합하는 일이라면, 후자는 타자와의 깊은 공감을 형성하고 공동체의 영적 유대를 회복하는 일이다. 리드는 이를 통해 예술이야말로 한 문명이 얼마나 건전한가를 가늠하는 척도이자,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열쇠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다소 추상적이고 이상주의적인 논의라 선뜻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예술의 역할을 개인의 내면과 사회적 확장성을 잇는 매개체로 바라본 그의 시각만큼은 매우 탁월하고 훌륭하다.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운 번역 탓에 평가가 좀 박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번역만 제대로 매끄럽게 다듬어졌다면 한국 독자들에게 훨씬 더 많이, 더 널리 읽혔을 것이라 확신한다. 번역의 아쉬움을 뚫고 들어갈 가치가 있을 만큼, 텍스트 자체가 품은 묵직한 진가와 울림은 여전히 눈부신 좋은 책임에 틀림없으니까!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은 헌책방이나 서점에서 발견하는 족족 한 권씩 그러모으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다. 그 결과 그의 작품들을 상당수 소장하게 되었다. 영화나 여타 매체에서 느낄 수 없는 고유의 쓸쓸하고 안개 낀 듯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그 매력의 뿌리를 찾아보고 싶었다. 이번에 독서모임을 계기로 대표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문학동네)를 다시 읽게 되었는데, 이번엔 아주 색다른 경험을 했다. 예전에 읽었을 때의 감상과는 전혀 다른 깊이가 느껴진 것이다. 역시 서평을 남겨 놓지 않으면 그 당시의 미세한 감흥은 금방 잊혀지고 만다.

 

​주인공 '기 로랑'이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기본 줄거리는 알고 있었지만, 베르그손의 철학적 프레임으로 다시 읽어본 소설의 구조는 정말 처음 보는 것처럼 놀라웠다. 앙리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 제2장과 제3장을 곁들여 읽으니, 이 소설이 단순한 기억상실증 환자의 추적극을 넘어 '시간과 존재'에 대한 엄청난 철학적 탐구라는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

 

 

​운동적 기억과 순수 기억, 그리고 시간의 흔적들

 

 

​베르그손은 <물질과 기억> 제2장에서 기억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뇌에 습관이나 행동으로 각인된 '운동적 기억(mémoire-habitude)'과, 과거 그 자체를 온전히 담고 있으며 이미지 형태로 떠오르는 '순수 기억(mémoire pure)'이다. 주인공 기 로랑은 과거를 잃어버렸지만 일상적인 행동이나 언어, 타인을 대하는 방식 같은 운동적 기억은 여전히 유지한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가 담긴 '순수 기억'이다. 그는 탐정 사무소의 흗어진 단서들, 낡은 사진, 낯선 이들의 증언 등 외부의 '물질'을 매개로 과거의 이미지들을 하나씩 되살려낸다. 자신이 '페드로 맥케부아'였는지, 아니면 지미 페드로와 함께 살던 인물이었는지 추적하는 과정은, 베르그손이 말한 '물질을 통해 잠재된 순수 기억을 현실화(actualisation)하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낡은 흑백 사진 속 인물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기 로랑의 뇌리에서 꿈틀거리는 아련한 환영들은 잊혀진 시간의 실타래가 풀어지는 순간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지각과 기억의 원뿔구조, 시간에 내던져진 존재

 

 

​베르그손은 제3장에서 '뒤집힌 원뿔형(Cone) 모델'을 통해 과거 전체가 현재의 지각 표면과 어떻게 만나는지 설명한다. 거꾸로 선 원뿔의 뾰족한 끝은 현재의 행동 지점이고, 넓은 밑면은 과거의 전체 기억 저장소다. 기 로랑은 현재라는 뾰족한 칼날 위에 서서, 과거라는 거대한 깔때기 속을 끊임없이 들여다본다.

 

​그는 파리의 어두운 거리와 잊혀진 상점들, 그리고 데니즈와의 추억이 서린 보라빛 밤을 헤맨다. 이 여정은 단순히 팩트를 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다. 현재의 지각과 과거의 순수 기억이 만나는 접점을 찾아 자신이라는 존재의 깊이를 복원하려는 서글픈 시도다. 소설 속 파리의 안개 낀 거리는 바로 베르그손이 말한, 현재와 과거가 모호하게 얽혀드는 시간의 지층 그 자체다. 그는 타인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자신의 파편화된 과거 속에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기억의 실체를 감각한다.

 

 

​실종된 정체성, 그리움이 남긴 미학적 카타르시스

 

 

​이 소설의 비극적이면서도 아련한 결말은 기존 탐정/추리 소설의 전형적 구도를 전복시킨다. 보통의 추리물은 모든 단서가 조합되어 단 하나의 완벽한 진실로 귀결되지만, 모디아노의 세계는 다르다. 기 로랑이 자신의 이름이 '페드로'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도달하고, 그가 살았던 옛 집과 흔적들을 찾아내지만, 그것이 완전한 과거의 복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기억을 찾으면 찾을수록 자신이 영원히 잃어버린 시간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깨닫는다.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그가 어린 시절의 우는 아이를 떠올리며 던지는 독백은 이 소설의 문학적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우리들의 삶은 이 아이의 울음소리만큼이나 쉽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는 깨달았다. 삶이란 베르그손의 말처럼 연속적인 흐름(지속, Durée)이며, 우리가 고정된 정체성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안개와 같다는 사실을.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이 헛헛한 그리움과 아쉬움이야말로 모디아노 문학의 정수다.

 

​앙리 베르그손의 치밀한 기억 이론과 파트릭 모디아노의 시적이고 몽환적인 문체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 멜랑콜리는 독자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안개 속을 헤매듯 신중하게 서사가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삶의 허무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일깨우는 구조는 참으로 독보적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나는 이 헛되고도 고귀한 방황이야말로 좋은 소설이 가져야 할 최고 수준의 미덕이지 않을까?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끝)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6-09-18 16: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괴테가 한 말,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yamoo 2026-09-21 12:35   좋아요 0 | URL
괴테의 말이 인상깊네요. 저는 괴테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몰랐는데, 좋습니다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26-09-19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아. 역시 야무 님의 범우주적 교양 글은 일품이네요.
맞아요. 읽고 나서 바로 서평을 써야 내용이 오래 남습니다. 신기하더라고요. 서평 안 쓰면 1년 지나면 내용을 전혀 몰겠어요. 서평을 써야 몇 년 지나도 서평 글 읽으면 세세하게 내용이 다 기억 나더라고요. 서평은 써야 합니다.

yamoo 2026-09-21 12:36   좋아요 1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곰발님 아니십니까!! 너무 뜸하시네요..얼른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맞아요. 서평을 안쓰면 그냥 잊혀져요...아주 큰 문제입니다요!!ㅎ

고양이라디오 2026-09-29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서 서평에 기록을 남겨야겠습니다!

저는 이 책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읽었었는데 별 재미를 못 느겼었습니다. 야무님의 글을 보니 제가 느끼지 못한 부분들이 있을 거 같아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yamoo 2026-10-01 13:22   좋아요 1 | URL
정말 리뷰 안 남기면 읽은 책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하나두 기억이 안나요...ㅎㅎ

재미보다는 의미에 방점이 찍히는 작품이죠. 사람과의 기억을 통해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분위기와 감성으로 읽는 작품 같습니다..^^
 



스페이스 템포럴 <구조의 시간> 전경


천정 층고가 아주 높아 전시에 그만이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Structure of Time', 시간과 경험의 흔적을 구조로 읽어내다

[아트코리아방송 = 최윤영 기자] 제5회 아트코리아국제미술대전 수상전이 2026년 8월 19일부터 8월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2층과 3층 전관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우수상을 수상한 이승배 작가와 8월 19일 오후 전시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승배 작가는 이번 미술대전에 'Structure of Time'을 출품해 우수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작가가 올해부터 집중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구조 중심 연작 가운데 하나로, 화면 속에 두드러지는 구조를 통해 시간의 축적과 기억의 질서를 탐구한 작업이다.


우수상 이승배 작가 인터뷰-제5회 아트코리아국제미술대전-사진촬영 최윤영 기자

이 작가는 “이번 작품은 구조 중심의 연작 중 하나”라며 “화면 속 구조는 단순한 조형적 구성을 넘어, 축적된 시간의 기억이 만들어낸 일종의 질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상의 사물, 인쇄물, 기록 등 시간의 흔적을 품은 요소들에 주목했고, 그것들이 서로 충돌하고 중첩되면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를 화면에 담고자 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시간의 경험, 시간과 경험이 남긴 흔적을 구조로 읽어내는 회화”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를 배열하는 작업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과 사회적 흔적, 사물의 물성과 시간의 층위를 하나의 화면 안에서 구조화하는 과정이다.



이번 작품에서 이승배 작가가 특별히 고민한 지점은 서로 다른 이미지와 물성을 하나의 화면 안에서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가였다. 그는 단순한 콜라주에 머무르지 않고, 중첩과 덮음의 과정을 통해 각각의 요소가 지닌 시간성을 살리고자 했다.

특히 작품에는 X 형태의 커다란 구조적 틀이 중심을 이루고, 그 안에 다양한 색과 물성이 배치되어 있다. 작가는 이전의 흔적을 어디까지 보여주고, 어디까지 감출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에게 재료와 기법은 화면을 장식하는 수단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과 구조를 드러내기 위한 중요한 장치다.

이번 수상에 대해 이승배 작가는 놀라움과 기쁨을 전했다. 그는 앞서 아트코리아국제미술대전에 출품해 특선을 수상한 경험이 있으며, 올해는 새롭게 전개하고 있는 구조 중심 작업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해 다시 출품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이전에는 '아비투스' 연작 중 하나로 특선을 받았고, 올해는 그것과 다른 구조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평가를 받아보고 싶었다”며 “의외로 큰 상을 받게 되어 정말 놀랍고 기뻤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승배 작가의 작업 세계는 개인의 기억과 사회적 시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이미지와 사물, 기록들은 개인적 경험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흔적을 담고 있는 단면이라고 본다. 개인과 사회는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사람의 감각과 기억 속에 축적된다.

작가는 “개인의 기억 속 이미지와 사물은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흔적이기도 하다”며 “개인과 사회는 부지불식간에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유는 그의 화면에서 중첩된 이미지, 감춰진 흔적, 드러나는 구조로 구체화된다.

그가 언급한 ‘아비투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개인의 특이한 경험은 사회와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고, 사회적 조건과 시대의 분위기는 개인 안에 자연스럽게 흡수된다. 이승배 작가는 이 관계를 회화의 구조 안에서 드러내며, 관람객이 작품 속에서 자신의 기억과 시간의 흔적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 이승배 작가는 시간과 구조에 대한 탐구를 더욱 심화하고 싶다고 밝혔다. 올해 예정된 개인전 '구조의 시간'을 통해 시간의 구조와 시간의 층위를 관객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큰 작품에서는 구조의 힘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작은 작품에서는 매체 실험을 병행하며 작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 작가는 “작품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관객 누구나 자신의 특정한 경험이나 기억을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회화는 작가 개인의 기억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관람객 각자의 시간과 경험을 불러내는 열린 구조로 확장된다.

수상작 'Structure of Time'은 시간의 흔적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조로 읽어내고 다시 화면 안에 조직한 작품이다. 충돌하고 중첩되는 이미지와 물성, 드러남과 감춤 사이의 긴장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층위를 떠올리게 한다. 이승배 작가의 화면은 개인과 사회, 기억과 사물, 경험과 구조가 만나는 회화적 장소다.

이번 제5회 아트코리아국제미술대전 우수상 수상은 이승배 작가가 구조 중심의 새로운 작업 방향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작가가 시간과 구조,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더 깊이 확장해 나갈지 기대된다.

[덧]
 미술 전문 방송 매체 '아트코리아 방송'에서 한 인터뷰 기사입니다. 

운이 좋아서 우수상 수상자 중 초대 개인전 대상이 되었어요. 아마도 9월 이후 하반기에 할 듯합니다. 내년엔 점수를 채워 협회 초대 작가가 됐습니다. 인터뷰도 해 보네요..ㅎㅎ


최근에 읽고 있는 책 중 괜찮은 책인 거 같아 소개해 봅니다. ^^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비의식 2026-08-24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분이 좋네요. 축하드려도 되는 것이겠지요. 협회 초대작가가 꼭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

yamoo 2026-08-25 09:5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초대작가 작가 자격은 이미 획득했고 내년에 초대 작가로 전시에 참여할 예정입니다..ㅎㅎ

곰돌이 2026-08-24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yamoo님!! 축하 크게 드립니다!! 그동안 작품 준비하시느라 바쁘셨겠어요, 그 노력이 이렇게 결실로 ㅎㅎ

yamoo 2026-08-25 09:57   좋아요 0 | URL
특선만 2번 하다가 올 해 운좋게 기획초대전 대상인 우수상에 선정됐습니다. 공모전 참가하다 보니 참 심사위원들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걸 알아가네요..ㅎㅎ 워쨌든 감사합니다!^^

오후즈음 2026-08-24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멋지십니다! 축하드립니다

yamoo 2026-08-25 09:5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오후즈음님~^^

카스피 2026-08-24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드디어 인터뷰를 하실 정도로 화가로 인정받으셨네요.축하드리며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시길 기원합니다^^

yamoo 2026-08-25 10:00   좋아요 0 | URL
여기 공모전 특색이 우수상 이상 본상을 받으면 인터뷰를 해 주더이다. 유명한 방송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작업 세계를 소개할 루트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26-08-25 0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얼굴이 가려져 있어서 인터넷에 기사 찾아서 확인했습니다.. ㅎㅎㅎ yamoo님, 잘 생기셨는데요. ^^

yamoo 2026-08-25 10:00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찾아보시기까지!! 어이구, 감사합니다!!

stella.K 2026-08-25 14: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합니다! 잘됐네요. 야무님 그림 시작하실 때부터 잘되실 줄 알았습니다! 근데 그때 저한테 선물해 주신다고 했을 때 제가 무슨 정신으로 왜 괜찮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잘 되실 줄 알았으면 선물 받고 두고두고 자랑하는 건데. 흐흑~ 암튼 다시한번 축하드리고, 승승장구하십시오. 또 좋은 소식 전해 주시고요!^^

yamoo 2026-08-25 16:49   좋아요 1 | URL
엇! 스텔라님이시다!! 아주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그러게나 말입니다. 영~ 사양하셔서 좀 뻘줌했다는..^^;;
어쨌거나 감사합니다!

마힐 2026-08-25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축드립니다. yamoo 님! 무더운 여름 날을 식히는 단비같은 소식이네요. 저도 기사 찾아서 얼굴 뵈었네요. 멋지시네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작품 속의 고문들은 무슨 의미인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yamoo 2026-08-26 12:53   좋아요 1 | URL
와~~ 기사까지 찾아보실줄이야!!
작품 속 고서는 1890년대 서당에서 배웠던 사서삼경의 해설서 같은 걸로 보입니다. 구한말 서당에서 배웠던 맹자본을 구해서 붙인 작품도 있어요. 이런 고서는 시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지요. 서로 다른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고 중첩되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저는 고서와 60년대 미국 광고 이미지 등을 주로 사용하고 있어요. 제 작품은 시간과 경험이 남긴 흔적을 구조로 읽어내는 회화이기에 고서는 그래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설명이 잘 됐는지 모르겠어요~~~

페크pek0501 2026-08-30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그 사람의 일부이다˝라고 말한 니체가 떠오르네요.(책에서 읽음.)
가령 같은 풍경을 봐도 어떤 것에 집중해 보느냐, 무엇을 편집해 보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 있지요. 본인의 경험, 생각, 떠오른 이미지 등이 영향을 미친 각자 본인의 렌즈를 통해 보는 거지요. 그러니 어떤 풍경을 보든 자신을 빼고 전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풍경만을 본다는 건 불가능.
날로 발전해 가는 점, 축하드립니다. 재능과 노력의 결과겠지요.^^

yamoo 2026-08-31 09: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니체가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제 작업과 상통하는 면도 있구요~~

건수하 2026-09-02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우수상에 인터뷰, 개인전까지! yamoo님 축하드립니다~!!

yamoo 2026-09-02 16: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건수하님~~

고양이라디오 2026-09-02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yamoo님 기쁜 소식 축하드립니다^^! 개인전까지 승승장구하시길 기원합니다^^

yamoo 2026-09-14 13:2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댄스는 맨홀 2026-09-16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yamoo님 대단하시고 멋지십니다. 쭉~쭉~앞으로 나아가시길 바래요. 축하드립니다.

yamoo 2026-09-17 16: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맨홀님^^
 


나의 작업은 내가 살아온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시작되었다. 지난해 개인전의 제목을 「세계는 나의 아비투스다」라고 정한 것은 내가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축적해온 세계의 영향을 받으며 동시에 그 세계를 다시 구성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는 오래된 문서와 인쇄물, 책의 일부, 화폐, 문자와 광고 이미지들은 특정한 사건이나 기억을 재현하기 위한 소재가 아니다. 그것들은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접하고 지나온 것들의 흔적이며, 나에게 내면화된 세계의 파편이다. 나는 이 파편들을 화면 위에 다시 배열하고 겹쳐 놓으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그것은 실제 풍경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세계가 기억과 습관을 통해 변형된 내면의 풍경에 가깝다.

 

특히 아비투스 콜라주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붙였는가보다 서로 다른 것들이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였다. 오래된 종이 위에 이미지가 겹쳐지고, 문자가 일부 가려지며, 서로 다른 시간의 흔적들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한다. 처음에는 각각의 이미지가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화면 안에서 그것들은 더 이상 독립적인 대상으로 남지 않는다. 잘려지고, 중첩되고, 가려지고, 다시 드러나면서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또한 하나의 구조라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기억은 모든 것을 그대로 보존하지 않는다. 어떤 것은 남고 어떤 것은 사라지며, 어떤 것은 다른 기억 위에 포개진다. 현재의 경험은 과거의 기억을 다시 해석하고, 이미 지나간 시간은 현재의 시선 속에서 새로운 형태를 갖는다. 내가 화면 위에 파편을 쌓아 올리는 행위는 결국 이러한 기억의 작동 방식과 닮아 있었다.

 

따라서 아비투스는 나에게 단순히 사회적 환경이 남긴 습관이나 성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세계를 보고 선택하고 배열하는 하나의 감각적 구조이기도 하다. 내가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화면에 남기는가, 어떤 이미지를 선택하고 어떤 것을 지우는가, 무엇을 겹치게 하고 무엇을 비워두는가 역시 내가 축적해온 시간과 경험의 결과다.

 

지난해의 「세계는 나의 아비투스다」는 그런 의미에서 나의 작업에 대한 하나의 출사표였다. 나는 세계를 재현하려 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내 안에 축적된 방식 자체를 화면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그때 시작된 질문은 이후 작업에서 점차 이미지의 문제를 넘어 구조의 문제로 이동하게 된다.

 

지금의 작업에서 내가 말하는 ‘구조’ 역시 결국 그 아비투스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남긴 흔적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충돌하고, 겹쳐지면서 하나의 화면을 이루듯이, 나의 작업 역시 그렇게 축적되어 왔다.

 

그러므로 지난해의 아비투스 콜라주는 끝난 작업이 아니라 지금의 작업이 시작된 자리다. 내가 남기는 모든 작품은 결국 내가 살아온 세계가 나에게 남긴 흔적이며, 동시에 그 흔적을 다시 바라보고 재구성한 나 자신의 기록이다. 세계가 나의 아비투스라면, 내가 만드는 화면 역시 나의 아비투스가 된다.



[덧] 개인전 포스터가 나왔습니다. 5월부터 8월까지 쉬지 않고 달렸네요. 올해는 8월 개인전 이후 9월 이후 초대전이 한 번 더 잡혀 있습니다. 올해는 제 조형언어를 발견한 기념비적인 해입니다. 그래서 올 개인전과 도록은 제게 무척 중요한 사안이 됐네요. 모처럼 근황을 전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최근 읽고 있는 유익한 현대미술사 책이 있어 부가해 봅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8-12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대단하시네요.개인전이 성공하시길 기원합니다^^

yamoo 2026-08-13 11: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대단할 정도는 아닙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할 수 있어요~~ㅎㅎ

cyrus 2026-08-12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월 28일에 하루 연차 신청했어요. 그날 저녁 독서 모임이 있어서 연차 신청을 한 건데, 마침, 잘됐네요. 개인전 보러 서울에 가야겠군요. ^^

2026-08-13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리얄리 2026-08-14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yamoo님. 원하시는 결과 얻으시길 기원드리고 응원드립니다!

yamoo 2026-08-21 07:55   좋아요 0 | URL
응원 감사합니다! 원하는 결과는 이미 얻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