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반려동물로 토끼를 키우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래서 토끼를 키우는 사람에게 물어봤다. 토끼는 어떤 류로 분류되냐고?


그랬더니 설치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지인이 대뜸 무슨 설치류냐고, 포유동물이라고. 설치류는 쥐나 족제비라고 단언했다. (솔직히 나도 속으로 동의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좀 찾아봤다. 그 유명한 종-속-과-목-강-문-계. 알아보니, 조금 놀라웠다. 토끼는 토끼과, 토끼목, 포유강, 척사동물 문, 동물계의 분류 따랐다.


그리고 다음 정보가 부가된다.

설치류(쥐목)

중치류(토끼목)

모두 설치동물에 속한다나..


그니까 토끼는 설치류가 아닌 중치류에 속하는 동물이고, 설치동물이니 

설치류라고 불러도 충분히 헷갈릴만하다는 소지.


여기서 또 하나 배운 것이 척삭동물이라는 거.

척추동물의 오기인줄 알았는데 척추동물은 척삭동물의 일부라는 사실.


역시 무식하면 공부를 해야한다. 나는 토끼가 어떤 류에 속하는 동물인지 무지했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내가 알고 있는 동물은 단지 그 이름만 알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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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06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어렵네요. 토끼가 설치류라는 것도 잊고 살 때가 많은데
사실은 충치류고 척삭동물이라니? 이거 꼭 알아야 하는 건가요?
이래서 저는 과포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봅니다. ㅠㅠ

yamoo 2024-11-07 15:03   좋아요 1 | URL
저도 토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 때문에 토끼에 대해 알아보고 그 이름에 대한 분류가 참 심오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척삭동물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ㅎㅎ
과포자..라기 보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ㅎㅎ

그레이스 2024-11-06 2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종속과목강문계 ㅎㅎ

Falstaff 2024-11-06 20:44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는 계문강목과속종, 이렇게 외웠습니다.

그레이스 2024-11-07 08:35   좋아요 2 | URL
더 어려운데요?^^;;

yamoo 2024-11-07 15:04   좋아요 2 | URL
계묵강목과속종으로 외운 분들도 많아요..ㅎㅎ 누구는 큰것에서 작은 것으로..누구는 작은 것에서 큰것으로 암기..ㅎㅎ

hnine 2024-11-06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학교 다닐때는 ‘척색동물‘이라고 배웠는데 요즘은 척삭동물이라고 하나봐요? chordate라고 원어는 같은 것을 보니 동일한 명칭인건 맞는 것 같아요.
토끼 이빨을 보면 쥐 이빨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yamoo 2024-11-07 15:05   좋아요 0 | URL
오~~~척색동물이라는 개념을 배우셨군요!! 저는 배운 적이 없어서요..ㅎㅎ 생물 교과서에도 척삭이라는 용어는 없었습니다! 요즘 문학에서 잘 사용하는 핍진성이라는 개념도 교과서에는 없었다는!!
 













얼마 전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를 놀라게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소식. 예상했던 작가가 아니라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뭐, 노벨상이 언제 예상대로 수상작을 배출했던 적이 몇번이나 있었다고.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한강 작가가 수상했다는 게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사실 한강 작가 <채식주의자> 단편 1개 읽고 그냥 덮었기에. 당시 내 느낌에는 소재의 참신성은 좋았지만 그걸 천착해 들어가는 깊이가 좀 부족해 보였다.


처음 <채식주의자>를 읽고나서(소설집 <채식주의자>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3작품이 수록되어 있음) 주위에 한강 소설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떠벌이고 다녔다. 당시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공통된 점이 아이디어와 문체는 좋으나 소설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거였다.


물론 당시 지인들과 한강 작가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이 소설로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기에, 자연스럽게 한강 작가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놀랍게도 지인들은 한강 작가 주요 저작들을 다 읽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그들 역시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꽤 의외라는 의견을 피력했었더랬다. 뭐, 우리 문학이 세계문학계에 어필할 수 없다는 건 번역 장벽 때문이라는 오랜 통설(?)이 작용한 까닭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 소식은 놀라웠다.


헌데 이건 내가 이전 페이퍼에도 언급했지만, 영국 번역가 데보라 쓰미쓰 씨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이 번역이 없었더라면 한강 작가는 절대 맨부커 인터내셔날 상을 수상할 수 없었을 거다. 이건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어로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해 세계시장에 내놓은 실적에서 증명됐다고 본다.


주요 세계문학상 후보에 오른 우리나라 소설 해당 번역작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 이승우 작가의 작품은 불어로 번역되어 프랑스에 내놓았지만 반응이 미미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누가 번역했는지 잘 모르지만 데보라 씨만큼 작가 지향적 번역가가 아니었겠지)


단 하나의 예외가 데보라 쓰미쓰 씨가 번연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다. 영국 토박이가 자신이 한국어를 배워 영어로 이 작품을 번역했기에 심사위원들에게 한강 작가의 그 독특한 문체가 부커상 심사위원들에게 먹혔기 때문이다. 한 번도 이런 문체와 서사를 영어본으로 본적이 없었기에 그 새로움에 큰 점수가 주어졌다고 사료된다.


이를 통해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다수 영어본으로 번역됐다. 데보라 쓰미쓰 씨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이후 데보라 씨는 자신의 번역회사를 새운 모양이다. 여기서 한강 작가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한 듯하다. 영국인이 자신들의 언어로 한강 작품을 번역해서 영국 문단에 내놓으 거.


이번 노벨상 수상은 이 공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노벨상 심사위원들 손에 이 영어판본이 들려졌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 유일하게 한강 작가만 이런 행운을 누렸기에 그가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판단된다. 그 새로움에 맨부커 심사위원들이 느꼈던 그 강렬함을 노벨상 심사위원들도 느꼈을 거란 얘기다. 


어쨌거나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우리 번역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시금석을 보여준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외국인으로서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고 있는 아무계 씨의 발언, 즉 한국 문학은 아직 노벨상 깜이 아니라는 거는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빈말임이 드러났다.


우리나라 문학 작품도 이젠 노벨 문학상 근처에 가 있다는 반증. 근데 이 요체가 번역이라는 점. 이젠 더이상 번역이 창작이 아니라는 편견을 버릴 때다. 그리고 해당 언어를 전공한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작품을 해당 언어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해당 언어의 국민이 우리 작품을 자기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펼쳐야 할 때다. 


우리나라 사람이 평가하는 것과 외국이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를 수 있으니까. 드라마만 봐도 우리나라에서는 별로인 작품이 해외에서 대박난 작품들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 문학도 예외는 아니지 않을까.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니까.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우리 문학의 성과라기 보다는 데보라 쓰미쓰 씨의 공이 절반 이상이었다는 걸!!


참고로, 2020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맨부터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후 재독한 짧은 단상을 부가한다. 당시 채식주의자만 읽고 덮었기에 리뷰를 쓰지 않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한강 작가의 작품군은 나와 맞지 않아 그 불평을 좀 부가해 놓는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면, 이 작품이 육체에 대한 것임을 대번 알 수 있다. 고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육체를 거부한다는 건 타자성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한다. 자신의 육체를 거부한다는 건 어떤 삶을 지향하는 것일까? 식물이 된다는 건 삶에서 어떤 의미일까? 작가는 이런 문제 의식을 스케치만하다가 끝낸 느낌이다. 문체만 좋고 내러티브가 허술하다는 점이다. 물론 작가에게 철학적인 논증이나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가 어떻게 타자성을 극복하는지 그것이 식물이 된다는 거라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작가라면 비중있게 파고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게 없는 캐릭터 스케치는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2020, 어느 겨울날)


[덧] 

1. 참고로 노벨상이라고 다 재밌고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미 욘 포세 후기로 남긴 바 있다. 한강은 포세 포다는 훨씬 낫지만 사실 여전히 내겐 재미 없는 작품인건 변함 없다. 

2. 한강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서 내가 실망스러움을 느낄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작가는 항상 그렇게 쓴다고. 문제의식을 통한 주제의 천착은 하지 않는 작가라는 걸.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인데...나와 맞지 않는 작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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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4-11-02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이 몇 사람 모여서 결정하는 상보다는 수백년간의 독자들의 평가로 그 작품성을 인정 받는 것이죠 .참고로 똘스토이도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잖아요 ㅎ

yamoo 2024-11-04 17:24   좋아요 1 | URL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라도 출중한 작가들이 많다는 건 사실이죠. 사람이 모여 결정하는 문학상...이거 어쩔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긴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성향이 절대적이라 운빨이라 하겠습니다. 그 위대한 도스토옙스키도 아니었지요.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는 모두 1900년 이전 사람으로 노벨상 자체를 수상할 수 없었지요. 1901년에 1회 수상자를 배출한 노벨문학상이니..

stella.K 2024-11-02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한강이 번역자에게 적지 않은 상금을 나눴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당연하겠죠.
<채식주의자>는 호불호가 있는 것 같더군요. 저는 모셔만 두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 작가가 받은 건 기쁜 일이긴 하지만 원래 노벨문학상이
재밌는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 수여한 적이 있나요? 그냥 누가 받았나 보다하는 거죠 뭐.

yamoo 2024-11-04 17:27   좋아요 1 | URL
맨부커 인터네셔널상은 번역가에게도 상금을 반반씩 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채식주의자...호불호가 있는 작품이란 걸 들었지만...전 아주 안좋았습니다.
저도 한국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거에 대해 기뻤지만 그게 한강이라서...한강의 영역본이 훌륭해서 탔기에(여러 요소가 있지만) 번역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4-11-03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재미가 덜한 것이 채식주의자, 라고 알고 있어요.
소년이 온다, 를 읽고 울었다는 독자는 많더라고요. 5.18을 다룬 소설 중 최고로 찬사 받았음.
작가 한 사람만의 힘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기보다 다음의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걸로 짐작됩니다.
1) 말씀하신 번역의 문제
2) 한류 열풍과 케이팝의 영향력 : 이런 배경이 없었어도 심사위원들이 한국 작가의 작품에 주목하여 꼼꼼히 읽었을지 의문이 듦.
3) 한강 작가가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한국 작품들의 영향 : 이 토양 없이 오늘날의 수상은 없었을 걸로 생각. 그러므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대한민국의 쾌거!!!

yamoo 2024-11-04 17: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한국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쾌거, 맞고요..
저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의 결정적 계기로 데보라 쓰미쓰 씨의 번역을 꼽습니다. 한류 열풍과 케이팝의 영향력과 그밖의 한국 작품들의 해외 번역본들은 부차적이라고봅니다. 작년 재작년 한류 열풍과 케이팝 그리고 한국 작품들의 해외 판본은 꾸준했죠. 단 하나의 예외는 데보라 쓰미쓰 씨 같은 번역가가 한강 작품을 택해서 번역했다는 거였습니다. 만일 데보라 씨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나 전문 번역가가 번역했으면 절대 부커나 노벨상 후보에도 못올랐을 거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그 판본과 데보라씨가 번역한 한강 작품이 노벨상 선정 위원들에게 읽혀질 수 있었기에 수상은 가능했다고 보여지는데...이걸 한국 문학의 쾌거라고 자화자찬하는 게 주객이 전도된거 같아 이에 대해서 밝혀 보고자 쓴 페이퍼 였습니다~

yamoo 2024-11-04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쾌거는 맞지만, 이를 계기로 번역도 창작의 일환으로 받아들여 졌으면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우리 문학의 쾌거라는 식으로 말하곤 하는데, 말은 바로 하자. 순전히 데보라 쓰미쓰 씨의 영어 판본 때문에 수상의 영예가 있었던 거다. 그가 아니라 우리나라 작가나 전문 번역가가 한강 작품을 번역했다면, 수상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데보라 씨만큼 번역에 공을 들이는 사람은(창작하는 정도로) 우리나라에 없다시피하다.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번역을 제발 창작으로 인정해 주자. 이게 진정한 한국 문학의 세계화가 아닐까.

박균호 2024-11-04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똘스토이는 1910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ㅎㅎ

yamoo 2024-11-06 16:04   좋아요 0 | URL
음....그렇군요.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1 세계문학의 숲 21
헤르만 브로흐 지음, 김주연.신혜양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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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서양철학 원전 텍스트를 읽다가 보면 흐름을 놓쳐 텍스트를 다시 읽는 우를 범하곤 한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해당 부분을 돌아가 다시 읽고 한다. 그 이유는 번역이 이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장 속에 담긴 개념의 비유 또는 상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

 

헌데 소설 문학에도 이와 비슷한 난해한 작품들이 있다. 헤르만 브로흐의 <몽유병자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의 책들은 지루하고 난해한 문학의 대명사로 회자된다. 다른 작품을 읽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수고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이데거나 베르그손의 텍스트를 읽는 것과 견줄 수는 없다. 집중해서 철학 텍스트를 읽는다고 생각하면 이러한 난해성은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니까. 조이스, 무질, 푸르스트의 대표작들은 단지 분량이 많고 서사가 지루하다는 걸 제외하면 딱히 읽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바로 헤르만 브로흐다. 이 사람의 책은 문학임에도 철학 원전 텍스트를 읽는 느낌이 강하다. 올 초 <몽유병자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76페이지까지만 읽고 잠정 보류 상태에 빠졌다. 읽으면서 흐름을 놓치기 일수였고, 도대체 서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안보였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 무엇인지 여실히 깨닫긴 했지만, <율리시스>보다 더 읽기 힘들었다. 조이스의 책들도 100페이지를 넘기지는 못했지만 지루해서 그렇지 맥락을 놓쳐 이해가 안 되어 포기하지는 않았다. 프르스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마찬가지.

 

10월에 의미 있는 독서를 해 보자고 다시 시도한 책이 브로흐였다. <몽유병자들>에 데여서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을 펼쳤다. 지난한 과정이 읽는 내내 지속되었다. 어렵게 1부를 지났는데, 이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읽어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서 2페이지 단위로 끊어 3번씩 읽었다.

 

진짜 더디게 읽고 있지만 이 행위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브로흐만의 철학적 망상(내식으로 표현하면 그렇다는 거)’을 읽는 치명적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브로흐는 산문을 운문으로 참 잘도 표현하는데,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심오한 철학적 망상이다.

 

여기서 나는 망상을 내식으로 조금 그 정의를 비틀어 봤다. 네이버 사전에 나와 있는 망상과 비교해 보시라.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바로 떠올린 게 바로 망상에 닿아 있었기에.


망상(妄想, delusion) : 있지도 않은 것을 마치 사실인 양 믿거나, 논리에 맞지 않은, 논리를 초월한 생각을 하는 것. 근거가 없는 주관적 신념. 사실의 경험이나 논리를 확장하여 현실의 모순을 구현하는 믿음.

 

니체와는 다른 철학적 아포리즘이 시적 산문으로 표출된다. 논증이 필요 없는 비유와 상징이 현재의 시공간과 교차하면서 펼쳐진다. 망상이지만 결코 소설의 개연성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시공간의 상황은 단순하지만 그 찰나에 개입하는 소리에 망상의 미학이 시작된다. 시작과 끝은 항상 현재 시공간에 매인 주체로 계속 환기된다.

 

오오, 신들조차도 신성시하지 않음을 아는 신과 인간이 똑같이 품는 지각에서, 피안과 차안 사이에 팽팽히 쳐진, 불온한, 으스스하게 투명한 마령 같은 양자의 제휴에서 생겨나는 웃음, 그 제휴의 어렴풋한 마령의 영역에서 신과 인간은 만남을 이룩한다.” (p180)

 

부드러우면서도 오만하고, 마음을 녹일 듯하면서도 강압적이고, 밤의 광휘를 띠고 있으면서도 깊이 숨어 있는, 자연스럽게 울려 나오는 말과 자연스럽게 울려 나오는 영혼, 언어와 인간성의 통일그것은 마치 모든 지상의 나이를 모르는 과거의 청춘이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듯했고, 그러면서도 이미 영원히 종말을 모르는 고향으로부터의 인사였다.” (p283-284)

 

이게 알프레드 자리(또는 욘 포세)와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결코 망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망상은 미학적으로 전개되면서 철학적으로 심화된다. 개연성이 없는 헛소리의 망상 같지만 다음 페이지에 그 망상이 헛된 이유가 적시되면서 의식의 흐름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아름답고 치명적인 문장들이 모여 아포리즘을 만들고 바로 다음 순간 전혀 다른 관념이 끼어들어 사고의 흐름을 방해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주체의 상태(감정)를 말하는 바로 귀결된다. 귀결되는 순간 다시 의식은 다른 사고를 향해 달려간다. 이러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대구와 비유 그리고 상징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을 따라가다가 2-3번 읽고 음미하다 보면 경탄하게 된다. 이러한 문장들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브로흐의 관념, 이러한 작품을 쓸 수 있는 브로흐의 박학다식과 사색의 깊이에 빠져 같은 페이지를 반복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한 번에 읽어 알 수 없는 의식의 흐름과 관념의 흐름을 플롯 구조에 무지막지 흩어 놓아 반복해서 읽고 줄을 치게 만든다. 그렇지만 여전히 난해하여 앞의 부분을 잊어버리는 이 지난한 과정, 이 과정을 이겨내고 획득하는 문학적 과실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읽기를 지속할 수밖에.

 

사실 브로흐는 철학을 전공했다. 심지어 비엔나 학파에까지 가입되어 있었다니 실로 놀라웠다. 하지만 브로흐는 말할 수 없는 그 형이상학에 대한 끌림을 버릴 수 없어 문학으로 전향했고, 그 결과 우리는 철학적 망상을 집대성한 이 놀라운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문학적 경험을 일깨워 준 브로흐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말 읽듯이 읽을 수 있게, 이 난해한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해 주신 역자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

 

 

 

[]

1. 정말 술술 읽히는 번역본. 하지만 초집중하지 않으면 읽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희한할 정도로 난해한 문학 작품.

2. 책 좀 읽는 다는 사람들과 함께 오래 전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모인 사람들 모두가 이렇게 어려운 책은 자기 독서 인생사에서 처음이라고 했는데, 읽은 느낌상 이 책을 같이 읽으면 동일한 원성을 듣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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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25 1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야무님 리뷰 읽은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

Falstaff 2024-10-26 06:10   좋아요 2 | URL
난도가 좀 있지만 이 책은 읽을 만합니다. 몽유병자 생각하고 포기하지 마셔요!

yamoo 2024-10-27 17:04   좋아요 2 | URL
스탤라님, 뽈님의 댓글처럼 저도 조심스럽게 1권만이라도 권해 봅니다. 아님 2부만 읽어보심이..^^;

Falstaff 2024-10-26 07: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어려운 책들 ㅎㅎㅎ
몽유병자. 읽다가 때려 치웠습니다.
율리시스. 다 읽었습니다. 책 사놓고 17년인가 27년 만이었습니다. 금속활자본이더군요. ㅋㅋㅋ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 읽었습니다. 글자만 읽었다는 뜻입니다.
특성없는 남자. 안병률 북인더갭 사장의 번역으로 2부까지 읽었습니다. 지금 3부 완역했지만 절대 3부 안 읽을 겁니다.
이 네 작품 연속해서 읽으면 모르긴 해도 정신건강학과에 적지 않은 나날 동안 입원해야 할 거 같은데요.

yamoo 2024-10-27 17:08   좋아요 1 | URL
아마도 이 리스트를 거의 모두 읽어낸 분은 제가 알기론 뽈님밖에 없습니다. 암요! 율리시스 읽고 정신적인 방황을 하는 분들 많이 봤습니다.ㅎㅎ 근데 몽유병자들을 무조건 읽어야 갰어요! 뽈님이 포기한 유일한 작품이네요..ㅎㅎ
 

어제는 올 하반기 기대작이라고 회자되는 영화 <전란>을 봤다. 물론 넷플렉스로. 나는 네플 애청자다..ㅎㅎ 넷플은 끊임 없이 내 취향의 영화와 드라마를 추천해 준다. 넷플 켜고 플레이 누르면 가장 최근에 올라온 영화나 드라마를 보여준다.


뭐, 그렇게 본 영화나 드라마들이 다 재밌었던 건 아니다. 그냥 저냥 볼 만 했던 게 다수를 차지한다. 정말 재밌게 본 건 내가 찾아서 본 작품들. 유명한 작품들은 그만한 이유가 다 있었다. 


<이태원 클라쓰>, <그해 우리는>, <다음 생도 잘 부탁해>, <청춘기록> 등등. 모두 재밌게 본 드라마들이다. 영화는 재밌게 본 작품이 거의 없지만 최근에 본 <테넷>은 그나마 볼 만했다.


어쨌거나 어제 넷플이 내게 추천해 준 영화는 <전란>. 박찬욱 감독이 각본을 쓰고 김상만이 감독을 맡은 넷플 최신작이다. 이거 보기 전에 예고편을 보긴 했는데, 강동원, 정성일, 차승원 등 라인업을 보면서 기대는 했다.



아, 근데 막상 보니 영화는 '빛좋은 개살구'였다. 도대체 영화가 말하는 바가 뭔지 모르겠다. 도련님과 그의 몸종이 적이 되어 서로 싸우는, 그러다가 죽으면서 '우린 친구였나'하고 눈물을 흘리는...


7년 조일 전쟁의 배경은 분량이 상당하다. 제목이 전란이라서 임진왜란의 다른 버전인줄 알았는데, 왕의 호의무사인 이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인 천영(강동원)의 대결 구도를 그린 게 전부인 영화다. 왜란의 배경은 들러리였다.


거기다가 고니시의 선봉장인 겐신(정성일)은 그 역할이 애매하다 못해 헛웃음이 났다. 마지막에 종려, 천영, 겐신의 칼싸움 장면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개막장 싸움 같았다. 


그 싸움을 위한 선조의 결단은 짜맞추기식이라 개연성이 거의 없었다. 아니, 거의 모든 플롯이 개연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 이야기의 전개가 뚝뚝 끊겨 보는 내내 짜증이 났다.


세트장과 동원된 인력이 아까울 정도. 시나리오 자체는 나쁘지 않다. 조선 후기 두 소년이 신분의 차이를 넘어 서로 친구로 지내다가 장성하여 신분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양반과 천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전제.


그 와중에 7년 조일전쟁이 발발하여 하나는 왕실의 입장을 위해, 하나는 의병 입장을 위해 싸워 나가는 와중에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나리오의 구도는 괜찮았다는 말이다. 


헌데 이러한 류의 영화, 그러니까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신분을 대변하는 두 인물의 갈등이 영화의 주제가 되려면 연출을 잘해야 한다. 그래야 시대 속에서 두 인물의 갈등과 아픔이 잘 형상화 되는데, 이 영화는 모든 볼거리가 시대적 배경에 가 있다.


도대체 왜 정여립의 대동계로 영화를 시작했을까? 마지막에 대동계의 새로운 결사를 만들기 위해서? 조선 후기 두 인물을 통해 신분제 질서의 동요를 보여주기 위해서? 


조선 후기 정여립 모반 사건은 정말 큰 사건이었다. 이건 정말 한국 사상사적으로 혁명적 사상이었다. 반상의 구별이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왕과 천민이 다를 게 없다는 건 저 고려 무신정권이 외쳤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라는 것과 상통하는 거였다. 성리학의 세계에서 말이다.


그래서 내게 엄청난 기대를 갖게 했다. '아, 정여립이 나오는 구나. 이 신분제적 문제를 캐릭터에 어떻게 담아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봤다는 말이다. 러닝 타임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기대감은 실망감을 바뀌어 갔다.


차승원의 선조는 어울리지 않았고, 진선규의 김자령은 밋밋했다. 강동원은 보는 내내 맞지 않는 캐릭터를 입은 느낌이었다. 배우들 라인업에 비해서 캐릭터를 살리지 못한 느낌이랄까. 감독이 작품의 캐릭터 성격에 아무 관심이 없는 듯.


결국 영화는 많은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됐고, 캐릭터들은 생동감이 없었다. 분장과 미술 그리고 동원된 엑스트라를 볼 때 자본이 많이 투여된 영화인듯한데, 이런 게 바로 '돈으로 쳐바른 영화'이지 않을까. 김상만이 연출한 영화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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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12 16: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상만이 박찬욱 사단이겠군요. 박찬욱 전 별론데 김상만도 그러지 않을까 싶기도하네요. 전 요즘 영화보다 드라마를 더 보게되는 것 같아요. 오늘밤 정년이가 출격하는데 기대됩니다. ㅎ

yamoo 2024-10-15 11:34   좋아요 1 | URL
김상만이 박찬욱사단?....음..그럴수도 있겠네요. 저더 영화보단 드라마 뒷북을 많이 차고 있됴..ㅎㅎ 근데 정년이 나오는 드라마 제목이 뭔가요??

stella.K 2024-10-15 11:56   좋아요 0 | URL
ㅎㅎㅎ 드라마 이름이 <정년이>입니다. 김태리가 타이틀롤을 맡았습니다.

서곡 2024-10-20 13:22   좋아요 0 | URL
정년이 조금 봤는데요 저는 김태리 배우가 시장통에서 노래하는 장면에서 만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ㅎㅎㅎ 왜 천재가 뭐 하면 주변에서 와아아 하며 숨죽이고 감탄하는 거 있잖아요 배우가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소리를 오래 배웠다면서요 이 드라마 때문에)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ㅋㅋㅋ 볼 거면 그러려니 접어주며 봐야겠지요

stella.K 2024-10-20 17:05   좋아요 1 | URL
서곡님, 정년이 원래 만화잖아요. 김태리 만찢녀로 딱이던데요? 근데 본인 목소리 맞군요. 아주 잘 하려면 대역을 썼겠죠. 모나지 않게는 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소재주의죠. 국극을 소재로 했다는 건 좋은데 그 흐름은 별로 새롭지 않아 끝까지 볼지는 잘 모르겠어요. ㅋ

서곡 2024-10-20 18:37   좋아요 1 | URL
앗 원래 만화 원작이군요 몰랐습니다 ㅎㅎㅎ 네 소재가 참신해서 보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더군요 배우들도 좋은 배우들이죠

서곡 2024-10-20 18:37   좋아요 1 | URL
프레디 머큐리 전기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나 엘튼 존 전기영화 ‘로켓맨‘ 같은 것도 실존인들이 워낙 특출해서 배우임을 감안해도 미진해서 어쩔 수 없이 아쉽더라고요 ㅋㅋ

stella.K 2024-10-20 18:48   좋아요 1 | URL
ㅎㅎ 그건 그래요. 그러니까 드라마지 하면서 보는 거죠 뭐. ㅋ 근데 보헤미안 랩소디는 주인공 보다 그 옆에서 전기기타 치던 거 누구죠? 암튼 그 사람은 실제와 너무 똑같아서 오히려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ㅎ

잉크냄새 2024-10-12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상만이 연출한 영화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그 실망감이 피부로 와 닿는군요.^^

yamoo 2024-10-15 11:35   좋아요 0 | URL
넹~~ 너무 보기 거시기해요..타이틀 이름에 기상만 이름 보이면 걍 패쑤할 예정~~~ㅎㅎ

서곡 2024-10-20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전란 좀 보다 말았는데요 ㅋㅋㅋ 안 봐도 되겠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yamoo 2024-10-21 22:11   좋아요 1 | URL
그냥 끝까지 볼 수는 있어요..시간때우기로는 괜찮습니다..ㅎㅎ 안 보면 금상첨화지만서도..^^;;
 


그녀의 필모가 적은 관계로(신인급 이니까 당연?) 많은 지면이 필요치 않아 다행이다. 혹시 배우 지망생이 있다면 김다미 연기를 잘 참고해 보면 좋을 듯싶다. 드라마나 영화를 하드캐리하는 배우, 그 배우가 신인급이라면 이런 글은 진작에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시작한다. 서론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김다미는 이미 영화 <마녀>로 괴물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물론 그녀의 데뷔작이 <마녀>는 아니다. 제대로 된 상업영화(독립영화 제외) 데뷔작은 2018년 사회 고발성 영화인 <나를 기억해>. 


이 영화에서 김다미는 한서린의 고교 시절인 유민아 역을 맡았다. 마리오네뜨 피해자로 성인이 되어서는 개명을 한 인물. 김다미는 소심하면서도 풋풋한 여고생 역을 완벽히 연기하여 이미 연기파 배우의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후 영화 <마녀>의 구자윤 역으로 유민아 역을 아주 가뿐히 지웠다. 소심한 범죄 피해자 역에서 액션 배우로 변신을 했는데, 일반 고교생과 초능력을 갖고 살상을 일삼는 마녀를 완벽하게 넘나들며 영화를 하드 캐리했다는 평을 받았다.

 

상업 영화 2작품으로 이런 평가를 받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보통 대부분의 배우들은 여기서 한 번 주춤한다. 이전 캐릭터가 너무 강하여 뭘 해도 구자윤 역을 탈피하기가 힘들어서다. 엔간한 신인급 배우들이 격는 통과의례랄까.

 

그런데 김다미는 이런 침체기가 없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어 또 한번 완벽하게 그 캐릭터를 입는데 성공한다. 소위 탑 배우들이 하는 행보를 신인급이 보여주고 있다. 정말 놀라운 캐릭터 변신이다.

 

곰곰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김다미의 매력이 뭔지. 소위 이전 캐릭터들을 지워나가는 배우가 있다. 연기파 배우들로 회자되는 우리나라 대표 배우들을 생각하면 된다. 유재명, 이병헌, 윤여정, 송강호, 김윤석,  오정세, 이정재 등이 떠오른다.

 

이들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다.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뭘까? 내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한바, 결론은 배우의 딕션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딕션은 배우의 목소리 색깔과 톤 그리고 발음을 종합한, 그 캐릭터를 입체화 시켜주는 이미지의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를 낼 줄 알면 표현력과 해석력(편집력)은 반복을 통해 따라올 수 있는 부수적이 능력이라 생각한다. 배우가 캐릭터의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현실의 캐릭터처럼 보일 수 있다. 이게 TV나 영화 연기의 본질이지 않을까.

 

연극이 아니라 카메라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 현실을 훔쳐보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일이라고 한다. 실생활에서 살아 있는 누군가를 진짜로 본 것같은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이 핵심. 나는 이것을 가능케 하는 출발점이 딕션이라고 생각한다. 위에 열거된 배우들은 배역의 목소리를 만들어 낼 줄 아는 배우들이다.

 

이 능력, 결코 쉽지 않다. 연기 내공이 쌓여야 가능하다. 이병헌의 초기작 <달콤한 인생>을 보면 김영철과 황정민에 비해 캐릭터의 목소리를 완성도 있게 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병헌의 최근 작(미스터 션샤인 참고)들을 보면서 이런 느낌은 강해졌다.

 

이병헌 뿐이겠는가. 표현력 좋은 배우들도 배역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여 실패하는 배우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남궁민이나 장동건이 아닐까. (이들은 배역이 바뀌어도 언제나 목소리가 같다.) 자신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배역은 분명히 있다. 이 이미지를 통해 연출가는 배역을 캐스팅하니까.

 

하지만 전혀 그 캐릭터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배우가 그 역을 해 내면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며 명품 배우 반열에 오른다. 이건 당연하지 않을까. 20대 배우가 분장을 통해 70대 할머니처럼 보일 수는 있겠으나 연륜이 쌓인 목소리는 낼 수 없을 거다. 그런데 이걸 해낸다? 명품 배우가 되는 거지. 배역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뒤집어쓸 수 있어야 진정한 배우다.

 

그런 면에서 김다미의 딕션은 매우 놀랍다. <나를 기억해>의 유민아는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을 반영하듯 김다미 본인의 목소리에서 더 힘을 뺀다. 우물쭈물하며 말끝을 흐리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마녀>에서 구자윤은 여고생일 때와 마녀일 때의 딕션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일상에서 여고생이 내뱉는 목소리와 마녀로 각성한 이후 내뱉는 목소리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거. 기차 안 씬에서 고민시와 주고받는 말과 최우식과 싸우면서 여전히 느리네’, ‘넌 나하고 레벨이 달라라고 웃으면서 하는 말은 배우의 딕션이 왜 중요한지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귀여운 마스크에 반전이 있는 딕션은 이후 이클에서 이서로 캐스팅되는 주요 동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클의 조이서는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캐릭터다. 오수아와 다른 캐릭터를 대하는 말투와 새로이를 대하는 말투는 그 온도차가 크다. (내레이션 역시 그렇다.)

 

작품으로 배역을 확대해도 그렇다. 조이서 역의 김다미 딕션과 국연수 역의 김다미 딕션을 들어보면 조이서 역 딕션이 시종일관 톤을 강하게 구사함을 알 수 있다. 표정 연기도 잘하지만 김다미는 작품의 캐릭터가 지향하는 딕션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래서 캐릭터를 지우는 연기가 가능해지는 듯하다.

 

사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클 원작의 조이서는 차가운 도시녀에 가까운 캐릭터다. 장근수로부터 천사같은 미모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드라마의 조이서는 원작과 불협화음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권나라와 비교되는 위치라 미스캐스팅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그해 우리는>의 국연수 마스크에 헤어(은색으로 탈색)라면 좀더 수긍이 갔을 거다. 처음엔 너무도 어울리지 않은 단발이라 권나라에 비해 훨씬 못나 보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하면서 그 못나 보였던 조이서가(죄송하다, 순간 신봉선을 본듯하기도 했다) 사랑스러워졌다. 나중에는 권나라보다 훨씬 이뻐 보였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김다미가 딕션으로 새로운 캐릭터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기에 그렇다. 원작과 다른 자신만의 매력이 가미된 캐릭터를 드러내 보였다는 점이다. 10화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조이서만 보였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2018년 영화 <행복한 남자>에서 이미 경험했다. 여주인공인 자코벤 사로몬을 연기한 카트리네 그레이스-로젠탈은 정말 여배우 치고 외모가 형편없었다. 처음에 어떻게 저렇게 볼품없는 여자가 주연이지?’라는 생각 때문에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영화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여주인공의 미모에 반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연기의 힘이다.

 

김다미는 인터뷰에서 항상 자신만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한다. 아직도 보여줄 게 많다고. 자신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만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 여기에 걸맞게 그녀는 배우에 적합한 마스크를 갖고 있다. 헤어스타일에 따라 이미지가 확확 바뀌는 마스크.

(배우 김다미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들) 


정말 천의 얼굴이다. 이클에서 보면 신봉선의 얼굴이 보였다가 심상정의 얼굴이 보이는가 하면 김연아의 얼굴도 보인다. 이게 한 사람의 얼굴이라니. 입체적 캐릭터라서 얼굴의 변화로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마스크가 연출된 듯. 원작은 시종일관 은색의 긴 머리다.

 

이클을 보다가 <그해 우리는>의 국연수를 보면 조이서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풋풋하고 청순하며 약간 백치미 있는 마스크로 변한다. 김다미는 강한 캐릭터를 구축할 때와 멜로적 캐릭터를 소화할 때 내보이는 마스크가 어떤 것인지 잘 아는 듯하다.



그래서 그녀는 작품을 선택하고 해당 캐릭터를 받을 시, 그 캐릭터에 어울리는 마스크를 만들고 딕션을 완성하여 캐릭터를 입체화시키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이것이 전작의 캐릭터를 지우는 능력의 요체가 아닐까. 자신의 장점을 부각할 줄 아는 영리한 배우다.

 

귀여운 외모(마스크의 스펙트럼이 넓은)에 차분하고 나른하며 약간 혀짧은 목소리는 치명적인 매력의 근간(이 목소리 발음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이라 생각된다. 이 목소리의 근간에 배역에 어울리는 딕션을 완성하여 내면으로부터 캐릭터를 뽑아 올리는 김다미. 다양한 얼굴과 좋은 목소리를 가진 이 배우, 알면 알수록 덕질을 안할 수가 없다.

 

영화 <대홍수>와 드라마 <나인>에서 어떤 연기를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김다미를 보면서 여배우는 비주얼보다는 매력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비주얼이 조금 떨어져도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매력이 있다면 비주얼을 압살하고도 남음을, 김다미를 통해 깨닫는다. <>

 

 

[] 1. 김다미는 신인급 배우로 분류된다. 출연한 작품도 얼마 없다. 영화 4, 드라마 2. 배우 신혜선과 비교하면 그 출연작이 현저히 적다. 그럼에도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보여지는 캐릭터 창출 능력은 압도적이다. 헌데 평론가가 김다미를 평한 글이 거의 없는 형편. 기사 또한 영화 <마녀>나 드라마 이클이나 그우 방영 전후 가십성 기사나 캐스팅 기사가 전부다. 신인급 배우라서 그런가? 어쨌든 배우에 대한 이런 글이 없어 남겨 놓는다.

2. 김다미가 첩보 액션 활극물의 프런트 우먼역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니키타와 같은 배역을 맡으면 어떨지.

3. 이클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씬이 있다. 구청장 아내역을 맡은 차청화 배우(난 이 배우도 엄청 좋아함)가 조이서를 찾아가 이서가 올린 동영상을 문제 삼으며 이서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다. 이때 뺨을 맞은 이서가 자기가 동영상을 올린 건 팩트를 말함이라고 하고, 자기 뺨을 어루만지며 볼이 좀 따갑네독백하며 키득키득 웃는 장면은 압권. 진짜 소시오패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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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06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드라마는 두 번씩 보시는군요. 저는 아무리 좋아도 두 번은 못 보겠더라구요.
요즘은 14회나 12회하는 드라마도 있지만 보통 16회 정도하는데 그거 보는 것도 일이더군요. ㅎ
게다가 앞으로 봐야할 드라마도 찜해 놓은 것들도 있고.
다시 볼 것 같으면 책으로 봐야할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근데 두 번쯤 보면 김다미에 대해 이만큼 쓸 수 있는 거군요. 대단해요!
이클은 저 같은 경우 박서준이 좋아서 본 건데 김다미 연기가 눈에 들어오긴 했지요.
근데 대단한 배우긴하네요.

말씀하신 ˝딕션˝ 저도 동의합니다. 목소리는 그저 그래도 딕션만 좋아도 그 배역의 반은 먹고 들어가겠구나 싶더군요. .
장동건이 한창 샛별일 때 얼굴 잘 생긴 배우는 연기는 못한다는 인식이 많았죠.
근데 언젠가 <7년의 밤>을 봤는데 악역이었지만 나름 잘하더라구요.

yamoo 2024-10-07 17:34   좋아요 1 | URL
보통 2번씩 보는데, 이클은 연출이 잘 된 씬 위주로 10번 이상 보았습니다. 재밌지 않으면 바로 멈추고 더 이상 안봅니다. 그렇게 다 못본 드라마가 부지기수에요..ㅎㅎ

두 번 보고 이만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ㅎㅎ 김다미 나온 씬 10번 이상 봤어요..ㅎㅎ 박서준은 평면적인 캐릭터고 김다미는 입체적 캐릭터라 김다미 연기 난이도가 더 높아요..^^;; 물론 박서준 연기도 좋았지요. 하지만 이클에서 가장 눈에 띤 캐릭터는 유재명, 안보현, 김다미였습니다..

연기 연차가 늘어야 목소리를 만드는 능력이 생기는 편인데, 김다미가 괴물 신인인 이유가 있었더라구요...마녀 하나가 아닌 나온 드라마 2개에서 인기를 입증했으니..^^

카스피 2024-10-07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넵,저도 이태원 클라스를 보며서 김다미 배우님을 좋아하게 되었어요,김다미 배우님은 맡는 역활마다 느낌이 달라서 젊은 배우지만 연기력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yamoo 2024-10-08 19:01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두 이클 보셨군요! 아마도 20-21년에 가장 많이 본 드라마 같아요. 마녀로만 알고 있던 김다미가 여기서 조이서 역으로 나오더라구요. 첨엔 몰랐는데 보다보니 김다미 배우. 헤어스타일에 따라 느낌이 너무 다른 마스크라서 정말 놀랐다는..이클에서도 신봉선, 심상정, 김연아 등의 얼굴이 보이더라구요...ㅎㅎ 후반부 머리 길 때는 정말 많이 달랐고...어쨌거나 대단한 배우에요. 신인급인데 벌써부터 행보가 예사롭지 않아요. 거의 다 주연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