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들뢰즈, 바디우와 함께하는 도시의 정신분석 1 - 과잉 도시 현대 도시의 철학적 모험
장용순 지음 / 이학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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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세 권의 책을 빌려오며, 이 책은 다른 두 책 먼저 읽고난 후 여유가 되면 읽게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처음 몇장을 읽어보자 펼쳤다가 이 책을 가장 먼저 읽게 되었다. 

내게는 아직 낯설기만 한 철학자들. 그 중에서도 더 낯선 이름, 들뢰즈, 라캉, 바디우를 내세우는 책이라서, 그리고 얼마전에 읽은 비트겐슈타인은 그나마 관심을 갖고 있던 철학자임에도 읽는데 쉽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며 당연히 이 책도 읽기가 쉽지 않으려니 했는데, 그런 생각을 미리 하고 있어서 그런지, 워낙 잘 쓴 책이라서 그런지, 읽는데 생각만큼 어렵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지금까지 관심두지 않고 살던 분야를 처음으로 알아가는 맛까지 더해져 중간에 손놓지 않고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들뢰즈나 라캉, 바디우의 철학을 소개하는 것이 원래의 목적은 아니다. 건축과 교수가 도시의 정신 분석을 목적으로 쓴 세권의 시리즈 중 한 권이다. 도시를 정신 분석한다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내었고 갈수록 원하는, 또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팽창하고 있는 도시라는 체계를 정신분석과 철학의 관점에서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보겠다는 의미가 되겠다. 

문명과 함께 도시가 생겨나고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한한 혼돈 (chaos) 으로부어 유한한 질서 (cosmos) 가 발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여기부터 시작한다. 주로 등장하는 인물은 푸코, 한병철, 들뢰즈, 콜하스, 벤야민, 바타유, 맑스, 라캉, 바디우.

혼돈이 가지는 무규정적인 흐름을 한시적으로 고착화한 것이 정신, 도시, 사회, 문명이라고 본다. 이것이 이 책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12)

자연, 혼돈, 흐름, 에너지 --> 인공, 질서, 규제, 기계

왼쪽의 자연, 혼돈, 흐름, 에너지 상태에서 오른쪽의 인공, 질서, 규제, 기제 쪽으로 가는 것이 '문명화', 반대 방향을 '붕괴'라고 도식화하야 그려놓았다. 도시는 이렇게 문명화와 함께 생겨난 것이다.

도시는 무규정적 흐름으로부터 인간을 방어하고 자연을 조절해서 활용하는데에 매우 효과적인 거대한 기계였다. (25)

자연의 무한한 흐름을 채취하는 것에서 시작된 도시는 점차 커져서 자체적 흐름을 만들어냈고 그 흐름이 점점 가속화되어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유한한 도시는 그 안에 무한성을 담으려했다.

도시가 커지고 인구도 늘어나면서 국가는 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세밀한 규칙이 필요해지고 이것은 생산력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해진다. 그렇게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근대사회는 확장된 흐름을 법과 질서에 따라서 통제하는 사회가 된다. 근대 규율 사회의 탄생이다.


시대 연도 에피스테메 경제 사조 사회 구분 성격
르네상스 시대 1500-1650 유사성 대항해시대 봉건 해체기 종교개혁, 인쇄술의 보급
고전주의 시대 1650-1800 재현 상업자본주의 절대왕정 과학혁명의 시대
근대 1800-1950 역사 산업자본주의 규율사회 프랑스혁명 이후, 시공간적 확대
현대 1950- 흐름 신자유주의 성과사회 이동과 순환의 극대화

*에피스테메 epistime: 대화를 나누거나 어떤 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한 시대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


책에서 자주 언급이 되기 때문에 위의 표는 머리 속에 담고 읽는 것이 좋다.

근대 초기는 자본주의, 자유주의시대이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수정자본주의가 도입되어 정부의 개입이 시작된다. 현대에 오면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근대 규율사회에서 현대 성과사회로 진입한 시점과 같다.

푸코는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는데, 이것은 근대 규율사회의 규범과 질서로 시공간을 통제하는 방식을 넘어선 신자유주의 사회의 보다 미시적인 통제를 말한다.

들뢰즈는 현대사회가 근대 규율사회와는 다른 '통제사회'로 변해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근대의 규율사회가 닫힌 공간을 만드는 고정된 주형의 방식을 따르는 반면 현대의 통제사회 (성과사회)는 연속적이고 열린 공간을 만드는 변조의 방식을 따른다고 설며한다. 변조의 방식은 더 유연하고 촘촘하게 개인을 길들이면서 통제할 수 있다.

철학자 한병철은 규율사회와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성과사회, 피로사회를 제시한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는 흐름을 분절하고 통제하는 규율사회, 20세기 중후반부터는 흐름을 무한히 흘러가게 하는 성과사회이자 피로사회다. 

피로사회에서 개인은 외부에서 주어진 법이나 규율이 아닌, 개인에 내재화된 법에 의해서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노력하는 만큼 보상받는다는 성과주의에 사로잡혀서 과도하게 자기 자신을 혹사시킨다. 이렇게 우리는 긍정성 과잉의 소진증후군의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왜 중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생겨났을까? 왜 엄청난 인구와 잠재력을 가진 중국에서 더 일찍 자본주의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들뢰즈에 의하면 11세기 유럽은 봉건 체제의 위계 조직과 도시 간의 네트워크 조직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있었고 14세기에 이르러 네크워크의 핵심 도시들은 더욱 분화된 네트워크를 이루며 생산력을 발전시켜 상업 자본이 발달해나갔던 반면 이슬람이나 중국은 중앙집권체체로 거대 제국을 형성하는데 집중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유럽이 원시사회의 코드화 사회에서 탈코드화로 나가는 동안 중극은 초코드화로 나아가는 쪽을 선택하였다.


매끄러운 공간, 홈파인 공간

들뢰즈가 제시한 개념에 '매끄러운 공간(smooth space)'와 '홈파인 공간 (striated space)'가 있다. 생물학에서 수정란의 발생 단계를 연상해보면 쉬운데, 좌표를 표시하기 어려운 사막이나 바다는 '매끄러운 공간'이며 길과 필지로 구분된 도시는 '홈파인 공간', 즉 분화가 이루어진 공간이다. 매끄러운 공간은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는데 첫번째 의미는 바다, 사막, 수정란 같은 무한한 잠재성의 공간이다. 두번째로 매끄러운 공간은 자본에 의해 견고한 것들이 모두 녹아버린 세계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매끄러운 공간에 규범이나 규정성이 개입되면 그 공간은 홈파인 공간이 되는데, 홈파인 공간에서 흐름을 가르는 선들이 무수할 정도로 많아져서 경계가 점점 사라지면 그곳은 마치 매끄러운 공간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첫번째 의미의 매끄러운 공간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이지만 두 번째 의미의 매끄러운 공간은 새로운 억압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날 도시에 대입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오늘 날 도시에서는 마치 경계가 사라진 연속적이고 유연한 공간이 형성된 것 같지만 자유시장경제의 논리를 따라간 도시의 구조가 정말로 자유로운지는 의문이다. 신자유주의 성과사회는 개인이 억압을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환경 자체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94)


가속화된 흐름이 만드는 장소

편의점, 은행, 패스트푸드 식당, 쇼핑몰, 터미널, 공항, 호텔 등 요즘 건축물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람의 소비 동선을 따라 이어지는 기능을 하는 건물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택배를 보내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은행에서 업무를 본다. 고속터미널과 이어져 있는 대형 쇼핑몰과 호텔. 매우 실용적이니만 특별히 기억되지도 않고 정체성도 없는 장소를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대향소비사회에 나타나는 특이한 장소들이라고 해서 '비장소 (non-place)'라고 이름 붙였다. 장소성, 역사성, 관계성을 갖지 못하는 현대적인 장소들인데, 고속도로, 항공기 내부, 호텔, 공항, 철도역, 주유소, 편의점, 쇼핑몰, 아울렛 같은 장소들이다. 

이런 장소들의 특징은 흐름과 관련된다는 점, 그리고 소비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루이스 칸은 건축공간을 서비스하는 공간과 서비스 받는 공간으로 나누었다. 

현대에는 비장소에 대한 혐오와 열망이 공존한다. 자본주의 도시가 등장한 것은 물류와 자본의 흐름이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과시욕, 호기심과 결합하면서다.

비장소와 정크 스페이스 역시 유한의 공간에 무한의 흐름을 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한다. 도시의 많은 문제가 무한을 유한 안에 재현하려는 이런 욕망 때문에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117)


한병철의 피로사회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긍정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보지 못한다.

"안된다"는 억압이 신경증을 일으킨다면, "무엇이든 된다"는 과잉 긍정에 사로잡힌 정신병적 상태는 피로사회의 특징이다.

프로이드의 정신의학 관점에서, 리비도가 과도하게 억압되면 '강박증', 리비도가 억압을 뚫고 나와 신체의 증상으로 표현되면 '히스테리', 리비도가 대상에 투여되지 못하고 자아에 고착되는 것이 '우울증'인데, 한병철은 소진 증후군과 우울증을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질환들로 들었다.

과도하게 흘러가는 것과 과도하게 고착되는 것, 이런 대조적 현상은 도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고속도로, 기차역, 공항, 쇼핑몰 같은 흐름을 담당하는 시설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발생한 잉여가치가 축적된 사적영역인 초고급 주택, 빌라, 아파트, 클럽하우스가 건설된다. 전자의 시설들은 누구나 접근해 소비를 즐길 수 있지만 후자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즉 어디든 갈 수 있는 흐름의 과잉이 발생함과 동시에 흐름의 고착이 생긴다. 편집증적 장소의 나르시시즘적 리비도가 외부로 나오지 못하고 고착되는 것이다. (129)


좀비영화는왜 인기가 있을까?

영화속 타자의 유형 1단계는 밖에서 침략해온 외계인, 2단계는 에일리언. 내 몸속에 알을 낳고 몸속에서 자라다가 튀어나온다. 나와 타자의 경계가 애매하다. 세번째 유형은 좀비다. 좀비가 나를 물면 나는 좀비가 된다. 타자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한병철은 타자와 나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것을 '규율사회 vs 피로사회'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규율사회에서 인간은 법에 대항하며 타자와 맞서지만, 피로사회에서 인간 주체는 맞설 타자 없이 각자의 성과에 의해서 평가된다. 바로 공산권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의 모습이다.

들뢰즈는 "현대의 유일한 신화는 좀비 신화이고 이 살아 있는 죽은 자 (undead)의 신화는 노동의 신화이지 전쟁의 신화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노동을 하는 현대 성과 주체의 모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좀비 영화가 유행하는 원인이다. (145)

타자도 유토피아도 사라진 매끄러운 세계에서는 나 자신이 바로 잠재적 타자이다. (151)


들뢰즈는 자본주의가 흐름을 탈영토화, 탈코드화한 것은 긍정적으로 보았다. 다만, 흐름을 재영토화, 초코드화한 것은 부정적이라고 보면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재영토화, 초코드화에 의한 과잉 축적에 있다고 했다. 


이런 들뢰즈의 관점에 부응하며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흐름이 증가하는 것은 생물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보면서, 생명체에서 흐름의 확장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혈류가 고착될때 발생하듯이, 정신 병리에서 방어기제로서의 자아는 필요하지만 자아에 리비도가 지나치게 집중되어 과잉이 될 때 문제가 발생하듯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지점은 두 방식 사이의 중간이라고 했다. 적당한 규율과 억압은 정신을 안정시킬 수 있지만 과도한 초자아의 통제는 리비도가 지나치게 집중되어 과잉이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규제는 경제를 안정시키지만 경제의 흐름 자체를 막아버릴 수 있다.

규제가 최소화된 완전한 자유시장경제는 흐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경제, 사회, 도시에서 경계를 적절하게 구성하고 흐름을 원활하게 만드는 데 적용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생물학적이고 생태학적인 관점이다. 우리가 새롭게 상상해야 하는 체계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생태학적 체계인 것이다. (193)


결국 우리가 찾는 답은 자연 생태계 속에 있나보다. 


건축도 원래 나의 전공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읽어보자고 집어 든 책이었는데, 3권 시리즈 중 첫권이라서 그런지 배경이 되는 철학적 이야기가 잔뜩이었다. 저자가 한국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석, 박사도 여전히 건축 전공이며 현재도 건축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이렇게 자신의 전공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철학 이야기로 몇 권의 책을 내는 것을 보며 철학은 철학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이렇게 이해 가능한 언어로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을 써내다니.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지만 아예 소장용으로 한권 구입해서 맘껏 줄을 좍좍 쳐가면서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감히 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지 않던,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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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8-01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재밌겠어요. 좋은 리뷰 덕분에 좋은 책을 담아갑니다.

hnine 2026-08-01 15:04   좋아요 1 | URL
휴대폰 앱에서 열어보니 인용구 박스와 표가 제대로 나타나질 않는데, 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 좋아요. 그동안 저도 모르게 제 관심 분야의 책들만 읽어오다보니 읽는 책들만 읽는 것 같았는데 오랜만에 영역이 확장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제 경우엔 그랬는데, 바람돌이님은 친숙한 내용일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드립니다. ^^
 
몸이 마음을 만든다 - 무기력 시대, 몸과 마음의 역량을 높이는 회복의 과학
윤대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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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무기력 디톡스'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무기력해진 마음을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마음을 다잡을 생각하지 말고 우선 몸을 움직여보라는 내용의 책이었다. 





이번엔 아예 그걸 제목으로 하는 책이 나왔기에 비슷한 내용이려니 짐작하면서도 굳이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중학교때 선생님 한분은 일주일의 첫 수업시간엔 칠판에 꼭 한 문장씩 적어주고 시작하셨다. 그중 지금까지 기억나는 문장중 하나가 "땀을 많이 흘린 사람은 눈물을 적게 흘린다." 이다.

내 멋대로 해석인지 모르겠지만 땀을 많이 흘리는 노력을 한 사람이라면 마음이 쉽게 심약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며칠 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삶에 아무 의욕도 없고 먹는 것도 잠 자는 것도 다 부질없고 허무하다는 사람에게 스님은 스님이 운영하는 봉사단체에 들어와 그 일정대로 며칠만이라도 따라 하며 지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단체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루 종일 봉사 활동 하다보면 몸이 힘들어 밥 맛이 절로 생기고 밤에 자리에 눕자 마자 잠이 들것이며 삶의 의욕이 어떻고 하는 생각이 들 겨를 조차 없을 거라면서.

마음이 힘들 때 우리는 모든 정신력과 의지력을 총 동원하여 이겨내고 극복하려 애쓰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의외로 열쇠는 단순한데 있을 수 있고 이것을 의학적인 데이터로 설득해보이는 책이 이 책의 핵심이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그것을 주먹구구식으로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 환자를 진료해본 결과와 의학 논문에 발표된 결과를 가지고 얘기한다.

실제로 정신 신체 의학 (mind-body medicine) 이라는 분야가 있고 이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으며 최신 의학은 몸과 마음의 경계를 허무는 뱡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35년 가까이 정신과 교수로 지내면서 진료실에서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마음의 상태는 몸의 대사와 결코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정신의 문제로 찾아오는 환자에게 일단 몸의 상태가 어떤지, 치료가 필요한 곳이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정신의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체크한다는 것이다. 

무너진 몸은 마음의 문제를 악화시켜가고 회복 탄력성 (resilience)를 점점 더 떨어뜨리게 된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힘, 즉 회복탄력성이 있는 삶인 것이다.


몸과 마음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버티는 힘은 마음이 아니라 몸에서 나온다.

건강한 대사가 건강한 멘탈을 만든다. 회복탄력성은 거창한 결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행동에서 생겨난다. 의욕이 생겨나기를 기다리기 보다 몸을 움직이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하고 (행동 활성화), 이것은 단순히 심리적 자극 때문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근육을 활성화하고 혈당을 안정시키며 염증 수준을 낮추는 등 신체 회복 시스템을 직접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반추는 뇌를 쉬지 못하게 만든다.

반추란 과거의 경험과 생각을 계속 되짚으며 머무르는 상태를 말한다. 반추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게 어려운 이유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한번 익숙해진 생각의 흐름을 반복하려는 뇌의 특성때문이다. 이러한 뇌의 특성은 특별한 일에 집중하지 않을 때 활성화된다. 최악의 감정 독소는 반추다. (* 반추와 성찰의 차이)

감정이 지나가야 회복이 시작된다. 그러나 반추는 감정을 지나가게 두지 않는다. 이미 끝난 일을 다시 불러오고 아직 오지 않은 불안을 앞당겨 몸 안에 계속 머물게 만든다. 이때부터 감정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가 된다. 생각의 반복은 뇌의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몸의 긴장 반응을 지속시키며 결국 혈당과 염증, 호르몬, 면역 체계까지 흔든다. 

반추는 우울증의 핵심 증상이자 우울증을 유발하고 악화시키는 주요요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우울은 뇌를 어떻게 바꾸는가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매 발병 위험이 2.41배 높게 나타났다. 우울을 '마음이 힘든 상태'로만 볼게 아니라 뇌의 변화 과정에 직접 관여하는 생물학적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오래 유지되면 코티졸에 특히 민감한 뇌의 해마가 지속적인 부담을 받게 되고 이 영역의 신경세포를 손상시킨다.

감정은 그냥 느끼고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반복될수록 몸과 뇌를 바꾸는 힘이 된다. 몸 상태는 마음을 바꾸고 마음 상태 역시 뇌와 몸을 바꾼다.


기분이 아니라 몸의 패턴을 보고, 의지가 아니라 혈액검사를 기준으로 삼는다. 한번의 느낌이 아니라 반복되는 신호에 주목한다. 기분이 왜 이럴까 대신 언제부터 패턴이 바뀌었지 라고 묻는다. 문제를 마음의 탓으로 돌리는 순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지만 몸의 신호로 읽는 순간 관리 가능한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생각 비만

몸에 필요 이상으로 남은 열량이 지방으로 쌓이듯, 마음에도 소화되지 못한 생각이 쌓일 때가 있다. 반추, 미리 걱정, 자책과 분노가 계속 쌓이면 뇌는 쉬지 못하고 과부하 상태가 된다. 몸의 비만도가 있듯이 내 마음에 회복을 방해하는 생각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가늠해본다. 


왜 이럴까 대신 지금 무엇을 할까

'요즘 왜 이렇게 피곤하지? 몸이 망가진 건가?' 라는 생각이 들때 '어제 12시 넘어 잤으니 오늘은 11시에 잠자리에 들자.' 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꾸는 순간 반추에서 벗어나 나아갈 수 있다.

추상적 사고는 감정을 키우는 반면 구체적 사고는 행동을 만든다. 행동이 시작되면 시스템 전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뀐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행동이 먼저 바뀌면 생각이 따라 바뀐다. '올바른 생각'을 찾는 대신 지금 당장 실천 가능한 가장 작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반추를 멈추는 방법은 '생각을 끊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것', 추상적 사고에서 구체적 사고로 이동하는 것, 생각에서 행동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반추는 단순한 생각 습관이라기 보다 행동을 회피하는 아주 정교한 전략에 가깝다.


운동은 약물만큼 강력하다.

운동은 그 자체로 뇌의 회로를 조율하는 강력한 신체 개입이다.


마음을 히복하는 다섯 가지 인지 전략

1. 긍정적 재평가

이 상황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2. 관점 전환

지금 겪고 있는 일을 더 넓은 시간과 맥락으로 바라보는 전략

3. 수용

수용은 포기가 아니라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선택

4. 긍정적 재초점

억지로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

5. 계획 재초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무엇인가


회복 탄력성은 특정 시기의 기술이 아니라 평생 관리해야 할 생존 능력이다.

우리는 흔히 멘탈이 강한 사람은 잘 버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회복 탄력성은 버티는 힘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힘이다.

미니 브레이크, 선 행동 후 동기 부여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액션을 먼저 취해 의욕을 만들어내는 원리


이 책에 빈도수가 가장 많은 단어를 꼽자면 '반추', 그리고 '회복 탄력성'이다.


나의 서재 <내가 만든 생활백서>라는 카테고리에 언젠가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잘 넘어진다면 잘 일어나기라도 하자."

넘어지지 않는 방법보다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썼는데, 아마 이 책에서 말하는 회복탄력성과 통하는 말인 것 같다. 

반추. 나이가 먹어갈수록 앞날을 계획하기 보다 자꾸 지난 일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자책하고 후회하는 일이 늘어간다. 

이게 나의 마음뿐 아니라 뇌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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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5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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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평이하다. 시험을 앞두고 부모의 간섭과 참견에 시달리고 있던 주인공 '나' (비톨트) 는 집이 있는 바르샤바를 떠나 잠시 다른 곳에서 지내다 오고 싶은 마음에 길을 떠난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머물 곳을 찾던 중 아는 친구 푹스를 만나게 되고, 둘은 자코파네라는 작은 마을의 외딴 집에서 함께 하숙을 하기로 결정한다. 

첫날부터 이 집 식구들의 인상이 심상치 않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처음 문을 열어준 하녀 카타시아는 40대 정도 나이에 입술에 흉터가 두드러진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 그 흉터가 그녀의 전체 인상을 결정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렬했다. 땅딸막한 체구에 말이 많은 집주인 여자의 안내로 집을 둘러보던 중 임대용 방 침대에 집주인의 딸이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침대 난간 옆으로 늘어뜨린 그녀의 하얀 다리는 이후에도 계속 잔상으로 남는다. 저녁 식사 자리에 모습을 나타낸 집주인 남자 레온씨는 잘 갖춰 입은 복장에 화려한 언변을 뽐내지만 어딘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나'에게 이 모든 것들은 낯설고 새롭고 기이한 세계이다.

비톨트는 친구 푹스와 함께 집 주위를 산책하던 길에 목매달린 참새를 발견하고, 어떤 날은 실에 매달린 막대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참새-막대기-비뚤어진 입-하얀 다리, 이렇게 함께 묶어 이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모든 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물론이다 ...... 하지만 이 연쇄적인 사건들에서는 마치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고리처럼, 모든 것이 어떤 합일점을 향하고 있는 듯한 성향이 느껴진다. 이것들은 분명 일종의 제스처게임처럼, 어떤 의미를 획득하기 이해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57쪽)


이 책 속 이야기는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내가 인식하는 것들 사이의 연관성, 의미가 혹시 있지 않을까 끊임없는 의심과 탐구. 글쎄 이런 것을 탐구하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곳 전부가 암호로 채워져 있을 수도 있어. (83쪽)


이 정도면 망상의 확대가 아닐지. 

실제로 '나'는 자신과 친구 푹스를 두명의 정신이상자라고 하기도 한다. (100쪽)

문제는 주인공 비톨트는 자신이 찾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가운데, 계속 되풀이되는 억측과 추론. 

나중에 '나'는 고양이를 목졸라 죽여야 한다는 충동에 시달리고, 실제로 하숙집 근처에서 죽은 고양이가 발견되자 하숙집 식구들은 누가 고양이를 죽였는지 범인을 놓고 의심하게 된다. 

어느 날 집주인 레온은 모두 함께 소풍을 떠나자고 제안을 하는데 그것은 레온이 27년전의 어떤 일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고, 소풍을 간 그곳의 숲 속에서 나는 레나의 연인 루드빅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고양이를 죽였는가, 누가 참새를 죽였는가, 루드빅의 죽음이 자살인가 타살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핵심은 인간이 무질서 속에서 억지로 패턴과 의미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 책 제목 '코스모스'는 그런 의미에서 무질서와 대비되는 개념인 것이다. 사건 자체보다 인식의 작동 방식이 핵심으로서 주인공 '나'는 (혹은 작가는) 서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 표정, 사건들을 하나의 코스모스 (질서)로 엮으려 하지만 그 연결이 실제인지 상상인지 끝까지 불분명하다.


주인공 '나'의 이름이 비톨트. 이 책의 저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르트르, 까뮈와 더불어 소설에 실존적 고민과 철학적 성찰을 접목시키는 획기적인 시도로 20세기 유럽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선구자라고 해설 (295쬭)에 나와있다. 이 책 코스모스는 1965년 그의 마지막 작품이고 1968년엔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이 책을 내고 4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이런 소설의 가치는 무엇일까? 쓰는 사람의 의미와 가치가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아도 좋은 소설일 수 있는가?


읽고 나서 이런 의문이 생겼다. 읽으면서 재미, 전혀 없었고, 작가의 의도도 잘 와닿지 않았으며 (책 뒤의 해설을 읽고서 겨우 이해) 나중엔 작가 혼자 심취해서 쓰면 뭐하나, 읽는 사람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면,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좋은 소설이란 소수 몇몇 중요한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내가 알고 있는 소설의 기준에서 보면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책이 만약 소설이 아니라면,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작가의 사고의 실험을 써내려간 실험 노트 같은 것으로 본다면 달리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이란 아마도 다른 모든 예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열려 있고, 가장 자유로운 장르일 것이다. 문학 속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곰브로비치가 한 말이다.


그의 또다른 두 소설이 내 책꽂이에서 발견되었다. 

읽을 것인가 말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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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7-07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요즘은 글씨체가 작고 머리를 굴려야 되는 어려운 소설은 선뜻 손이 안가더군요.눈이 잘 안보이기도 하지만 복잡한 세상 어려운 소설보다는 맘 편히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더 읽기 편한것 같아요.

hnine 2026-07-07 23:51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카스피님 요즘 눈은 어떠세요? 좀 나아지셨나요?
저 책은 눈이 좋아도, 글씨체가 작지 않아도, 이해가 어려운 책이었어요.
뒤에 작품 해설도 분량이 꽤 되는데 한줄도 빼놓지 않고 다 읽고 나니 좀 이해가 되는 듯 했어요.
강약강약이랄까. 지금은 아주 페이지 쑥쑥 넘어가는 책 읽고 있습니다. ^^

페크pek0501 2026-07-22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카스피 님처럼 글자가 작거나 어려운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요. 쉬우면서도 깊은 깨달음을 주는 소설을 좋아하죠.^^

hnine 2026-08-01 15:05   좋아요 1 | URL
이런, 페크님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답이 늦었습니다.
저도 어려워보이는 책은 쉽게 읽을 엄두를 못내는데, 그래도 가끔 어렵게 한권을 마치게 되면 그만큼 성취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주 가끔 읽습니다 ^^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 - 아직 끝나지 않은 이론
브라이언 이노.베테 아드리안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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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는 대학 입학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보다 훨씬 먼저, 초등학교 5학년때 왔다. 초등학교 5학년때 예능계 학생들을 위한 예원 학교 시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단순히 취미로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우리 반 친구 하나가 예원 학교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말을 들으니 나도 준비해서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며칠 고민을 하다가 엄마에게 말씀드렸더니 엄마께서 하시는 말씀, '취미로만 하거라.' 그 말씀에 바로 주저앉음. 그러고도 마음 속에 남는 미련을 지우기 위해 나 자신을 설득시킨답시고 스스로에게 주입시킨 생각이, '음악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일이나 할 뿐,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면 되지.' 였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은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일은 아니며, 여유가 있을 때 즐기기 위한 것이다, (것이어야 한다 ) 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억지로) 한 것 같다. 

돌아보니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지도 못했지만, 여유있을때나 하는 잉여 활동으로 생각했던 음악을 떠나서 보낸 시간은 없었던 듯 하다. 지금까지 계속 듣고, 치고, 배우고. 여유 있을때가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외롭고 힘들고 팍팍하던 시기를 보낼때 더욱 가까이 하며 그 시기를 넘겼던 것 같다.


과연 예술은 인간에게 무엇일까. 있으면 좋고 없어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없는, 잉여 행위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가?

물론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물어보면 대신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예술은 인간이 삶을 '견디게' 해 준다고. 의식주에 직접 기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삶. 포기하고 싶고 그 자리에 멈추고만 싶을 때, 계속 go on 할 수 있도록 위안을 주고 감동을 주고 보이지 않는 힘을 주는 것이 예술이 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순전히 내 생각이다.









이 책 제목이 <예술이란 무엇인가> 만 되었어도 읽을 생각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What is the art  (예술의 본질) 가 아니고 What art does 즉 예술이 무엇을 하는가, '예술의 기능'에 대한 것이다. 뭔가 더 읽기 쉬울 것 같았다. 


"우리에게, 삶에게, 세계에게, 예술의 쓸모란 무엇인가"


이 책의 두명의 공동 저자중 한 사람인 Brian Eno는 영국 태생의 유명한 음악인으로 ambient music* 이라는 음악 장르를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이다. 스스로 음악가이기도 하지만 콜드 플레이, U2, 데이비드 보위 등 유명 가수들의 노래 프로듀서로도 활동하였다. 원래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 

(*ambient music: 공간의 분위기 (atmosphere)를 만드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하는 음악. 멜로디나 리듬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 소리의 질감과 공간감을 통해 듣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그는 예술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가. 예술이 왜 필요하다고 했는가.


1, 예술은 감정이 생겨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예술의 본질은 감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감정을 갖는다는 것. 감정 없는 상태로 생명의 상태만 유지하는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살아있는 동안 우리에겐 끊임없이 감정이 생겨난다. 


감정은 생각이나 표현보다 먼저 생겨난다. 

감정은 속도가 더 빠르다. 재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낯선 상황에 처했을떄 우리는 주로 속도가 빠른 감정에 의존해서 해결책을 찾는다.

감정은 모호하고 규정하기 힘들며 측정하기는 아예 불가능하고 계속 변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감정에 기초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방법들이 존재하긴 하다. 추론과 데이터에 기초한 결정들이다. 보통 그런 것들을모아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그런 식으로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상황,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욕망, 우리의 가치관 등이 모두 한데 엉켜있다. 그래서 우리는 직감, 추측, 본능에 의존해야 한다. (29~33쪽)


예술은 사람의 그런 감정을 풀어놓는 장이고, 예술가들은 감정을 파는 상인들이다. 예술 작품은 감정을 촉발하도록 만들어졌다.


2. 예술은 탈출이 가능하다.

한 번 사는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다 해 볼 수는 없고 시간이 허락한다 해도 결과가 두려워 직접 경험해보기 망설여지는 것들도 있는 법인데, 예술은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3. 예술의 사회적 기능

예술은 단순한 개인의 표현이 아니다.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만듦으로써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한다. 

에술은 우리가 꿈을 나누는 곳이다. 예술은 공동체를 완성한다.


4.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 (-->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상상을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위대한 기술. 예술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우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생각해 내고 현재엔 존재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시험해볼 수 있다. 현실 도피가 아닌 미래에 대한 실험이다. 

어떤 문제에 닥쳤을때 솔루션만 찾으려 하지 말고 상상을 해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미래로 향하는 여정으로 이끌 수 있다. 


저자는 또한 예술은 어떤 특정인만의 영역이 아니며 우린 이미 생활 속에서 예술 행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예술은 보편적인 인간 활동이라는 것이다.




생명 유지를 위해 해야하는 일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일들 외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수천 가지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옷에 수를 놓고, 음식에 장식을 하고, 시를 읽고, 악기를 연주하며 몸에 장식을 한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흥얼거리고, 글을 쓴다. 왜? 이런 활동을 하면서 얻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즐겁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 외에도 우리는 이런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래서 예술은 먹고 사는 일과 상관 없는 활동이어야 한다. 


양정무 교수의 책 <미술 이야기 1> 에 보면 원시인들은 왜 동굴에 벽화를 그리고, 토기에 빗살 무늬를 새겨 넣었을까 하는 내용이 나온다, 토기에 그려진 무늬는 토기의 본래 기능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미술은 삶의 부속이나 장식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미술은 두 발로 걷고 사냥을 하고 도구를 만드는 것 만큼이나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우리가 타고난 생존 본능이라는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감정을 탐험하고

공동체를 만들고

미래를 상상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예술이 밥 먹여 주나? 

예술이 밥이 될 수는 없지만, 밥을 먹는 수십 가지 방법이긴 하다.



 


망아 (忘我, surrender) 

제어를 멈추고 자신에게 뭔가가 벌어지게 허락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진해서 망아현상이 벌어지는 활동에 참여한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우리보다 더 큰 무언가에 이끌려 망아의 상태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참여한다.

망아는 능동적인 동사가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개인주의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잠시나마 '나'가 아닌 '우리'가 된 상황을 즐긴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제어를 유보함으로써 우리는 그때 감정과 경험을 갖게 된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학습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않는가?

인간은 제어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생물종이다. 그래서 모든 문제를 대할 때 제어야말로 올바른 접근법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새로운 상황에 대해서는 미리 준비된 제어 전략이 있을 수 없다. 그 상황을 이해하려면 직접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 만일 너무 위험하다면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시뮬레이션을 경험해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술을 통해 하는 일이다.


제어와 망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제어하는 방법밖에 알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제어할 수 있는 부분만으로 이루어진 훨씬 작은 세상만 남는다.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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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Certainty (Paperback)
Wittgenstein, Ludwig / HarperCollins / 197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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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이지만 다른 어떤 철학자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관심이 가게 된 것은 그의 유명한 문장들을 알게 되면서 부터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는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이다.", "철학의 목적은 언어에 의해 생긴 혼란을 푸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작정하고 읽어본 적이 없다가 우연히 이 책 On certainty>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죽기 전 마지막 18달 동안 쓴 메모들을 사후에 엮어 1969년에 출간한 책으로서, 한쪽 페이지엔 독일어 원본, 바로 옆 페이지엔 영어 번역본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어 문장 자체는 해석이 어려운 정도가 아니고 짧은 메모 형식이기 때문에 부담이 적어 보여 겁도 없이 덤벼들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영국의 분석 철학자 G. E. Moore의 "나는 여기 있는 것이 내 손이라는 것을 안다. " 라는 명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게 되면서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고 했을때 정말 우리가 그것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의심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까?


이 세상엔 증명이 필요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있고 이것은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지식 (knowledge)'과는 구별하여 '확실성 (certainty)' 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보았다. 

이 책 <On certainty>는 우리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지식의 토대가 되는가를 탐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구성이 메모 형식으로 되어 있고 각 메모마다 1번부터 676번까지 번호가 붙어 있다. 


책을 다 보긴 했으니 리뷰라고 올리고 있긴 하지만 이런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공부하는 책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냥 영어 문장 읽어서 페이지 넘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해를 위해 youtube에 올라와 있는 자료 영상들을 참고하기도 했고, chatGPT의 설명도 들어가며 이해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 리뷰는 다른 책의 리뷰와 달리 책을 읽으면서 필기해놓은 노트를 다시 정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노트를 나도 노트한 셈이다.

노트란 것이 주로 개념 정리 위주가 되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의미에 더해서 철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 많아서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의 번호는 책 속에 표시된 번호이다.


51. proposition (명제): 참 또는 거짓이 될수 있는 내용.

    문장 (sentence)이 언어적 표현이라면 명제 (proposition)는 그 표현이 전달하는 의미나 내용을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명제를 가리켜 세계의 사실을 그림처럼 묘사하는 것으로 보았다 (picture of a fact)


   language game (언어 게임): 말의 의미는 그 말이 사용되는 방식 속에서 결정된다. 

   단어자체에 고정된 의미가 있는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규칙에 따라 사용되는가가 의미를 만든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다양한 언어 사용 방식을 언어 게임이라고 불렀다.

   과학의 언어, 종교의 언어, 일상의 언어를 모두 같은 규칙으로 해석하려하면 철학적 혼란이 생긴다.

    "말의 의미는 그 사용 (use)에 있다."


92. simplicity (단순성) vs symmetry (대칭성)

   simplicity (단순성): 설명의 경제성

   -설명에 필요한 가정이 적다

   -복잡한 현상을 적은 원리로 설명한다

   symmetry (대칭성): 세계의 구조가 질서와 통일성을 가진다는 직관

   -어떤 변환을 해도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형태나 법칙이 균형을 이룬다. 

   예) 원은 회전해도 모습이 같다.

       물리 법칙은 보통 '오늘'이나 '내일'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 아름다운 이론은 단순하고 대칭적이다.

       simplicity=적은 원리로 많은 것을 설명하는 것

       symmetry=변화 속에서도 유지되는 질서와 불변성


96. Fluid proposition (유동적 명제)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믿음과 명제를 두 종류로 나누어 생각했다.

   1) 흐르는 물 같은 명제들 (Fluid propositions, 유동적 명제)

   2) 강바닥 같은 명제들 (River-bed propositions, 고정된 명제) 

   대부분의 명제는 물처럼 흐른다. 그러나 어떤 명제들은 우리의 사고 전체를 떠받치는 바닥 역할을 한다.

   Fluid proposition은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의미나 진위가 달라질 수 있는 명제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예) 이 음식은 맛있다/ 그는 부자다/ 오늘은 춥다

   Fluid proposition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단순히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문장이라기 보다 증거에 의해 비교적 쉽게 수정되는 경험적 명제라는 뜻에 가깝다. 


"왜 어떤 명제들은 증명도 하지 않으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가?"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을 지식 (knowledge)이라기 보다 확실성 (certainty)의 문제로 보았다. 

 그래서 <On certainty>의 핵심 질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의심과 증명이 가능하려면 의심하지 않는 어떤 배경이 먼저 있어야 하지 않는가?" 라는 것이다.


110. presupposition: 전제 또는 암묵적 전제

  어떤 문장이나 발언이 성립하기 위해 이미 참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내용

  -proposition: 명제

  -presupposition: 전제

  -implication: 함축, 귀결


  ground: 바탕, 배경 토대

  논증으로 증명된 근거라기보다 실천과 삶의 배경

  확실성의 토대/언어 게임의 바탕/ 의심이 멈추는 자리


  이것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Giving grounds, however, justifying the evidence comes to an end.'

 (근거를 대고 정당화를 하는 과정은 언젠가 끝에 이른다.) --> 204번 메모 


116. stand fast

 일상 영어에서는 '자리를 지키다, 물러서지 않다' 라는 뜻.

 비트겐슈타인의 <On certainty> 에서는 '확고하게 유지하다,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다' 라는 뜻

 Instead of " I know~" --> "It stands fast for me that~"


136. enumerate 나열하다

 -list: 단순히 나열하다

 -enumerate: 체계적으로 하나씩 열거하다

 -itemize: 항목별로 자세히 적다.


189. At some point, one has to pass from explanation to mere description.

   (어느 시점에 이르면 설명에서 단순한 기술로 넘어가야 한다.)

  전통 철학은 흔히 "왜?"를 끊임없이 묻는다.

  - 언어는 왜 의미를 갖는가? 우리는 왜 규칙을 따르는가? 이름은 왜 대상을 가리키는가?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질문들이 종종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고 보았다. 어떤 단계에 이르면 더 깊은 원인이나 본 질을 찾으려 하지 말고,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의 임무는 숨겨진 메커니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눈앞에 있는 언어 사용의 모습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

 

위의 말은 "언젠가는 '왜 그런가'를 묻는 일을 그만두고,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나 역시 철학은 끊임없이 "왜 그런가?"를 묻고, 숨겨진 메커니즘을 찾아가는 학문이라고 생각했었다.)


272. I know. = I am familiar with it as a certainty.


355. I know it's a chair. 의자의 이름과 기능을 알고 있을 때

     I believe it's a chair. 의자라고 알고 있지만 의자가 맞는지 검증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400. fight windmills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유래. 실체없는 적과 싸우다, 헛된 농쟁을 벌이다, 본질이 아닌 것과 씨름하다 


402. Empirical proposition (실험명제), logical proposition (논리명제), hinge proposition (힌지명제)

 -실험 명제: 경험을 통해 참, 거짓을 확인할 수 있는 명제

 -논리 명제: 경험과 무관하게 논리적 형식만으로 참이 결정되는 명제

 -힌지 명제: 겉으로는 실험명제처럼 보이나, 의심, 검증 없이 사용하는 명제. 증거를 요구하기 보다 증거 사용의 배경이 되는 명제.

 예) 지구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나는 두 손을 가지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명제들은 순수한 논리 명제도 아니고 평범한 실험 명제도 아닌, 힌지 명제로 보았다. <On certainty>의 핵심중 하나는 이 세번째 영역을 탐구하는 것.


424. surmise (충분한 증거 없이) 추측하다.


433. I know~ 라고 말할 때는 그것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어야 한다.


450. A doubt that doubted everything would not be a doubt.

   (모든 걸 다 의심하는 의심이라면 그건 의심이 아닐 것이다.)


452. doubt (의심) 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은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합리적인 의심과 비합리적인 의심 사이엔 확실한 경계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477. ostensive: 가리켜보임으로써 의미를 알려주는 것.

     ostensive definition: 지시적 정의

     예) 아이가 "사과가 뭐야?" 라고 물었을 때, 실제 사과를 가리키며 "이게 사과야." 라고 알려주는 것


484. I know ~ 를 쓰는 올바른 방법은 어떨게 아는지를 언급하는 것이다. (how I know~)

   예) 1. I know he was at home yesterday; I spoke to him.

       2. 시력이 안좋은 사람이 저기 보이는게 나무인지 물어봤을때. I know it is a tree; I can see it clearly and am familiar with it.


495. scold: 화를 내며 꾸짖다.

     rebuke: 공식적. 강하게 질책하다.

     admonish: 상대를 바로 잡기 위해 점잖지만 진지하게 타이르다.


534. pleonasm: 의미상 불필요한 중복 표현. 군더더기 표현


625. A doubt without an end is not even a doubt.

    (끝이 나지않는 의심은 의심이라고 조차 할 수 없다.)

    의심이란 원래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끝날 수 있어야 한다. 

    의심하려면 무엇이 의심을 해소해줄것인지도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의심이 아니라 단순한 끝없는 회의나 말장난이 된다.



훨씬 더 많은 메모를 하며 읽었으나 그중 간추려서 올려보았다.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매우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처음엔 철학이 아닌 공학을 공부하였다. 

공학을 공부하던 중 수학의 기초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철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케임브리지에서 버트란드 러셀을 찾아가 철학을 공부하였고 러셀로부터 천재라고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기도 했고 잠시 철학을 떠나있는 동안 초등학교 교사, 정원사 보조, 수도원 생활 등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철학으로 복위하여 언어의 의미에 대해 연구하였고, 언어 게임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러면서 철학은 이론 구축이 아니라 언어의 혼란을 해소하는 작업으로 보았다.

1951년 케임브리지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세상의 존재를 알게 된 느낌이다.

두껍지 않은 책이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원서라고 해도 해석 자체는 어렵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의 번역본이 나와있는지 조차 찾아보지 않았다. 번역본이라고 해서 더 쉬울 것 같지 않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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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6-26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걸 원서로 읽으신 엣지나인님!! 철학전공자들도 힘들어하는 비트겐슈타인 원서들입니다..^^;;
엔날에 전 번역본으로 읽었는데도 첨엔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부분이 많았는데...
핵심 질문...적어 주신 ˝의심과 증명이 가능하려면 의심하지 않는 어떤 배경이 먼저 있어야 하니 않는가?˝를 보니 읽었던 내용이 좀 기억이 납니다. 고생끝에 낙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요..ㅎㅎ

hnine 2026-06-27 07:47   좋아요 1 | URL
원서나 번역서나 어렵긴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그냥 읽어버렸습니다.
이런 책은 ‘읽는다‘는 것보다,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야할 것 같아요. 많은 과학 전문서들 역시 대중을 상대로 제목도 대중적으로 붙여서 나오지만 실제 내용은 그냥 ‘읽어넘어갈수있는‘ 정도가 아니듯이, 저 같은 사람이 철학서를 대할때도 그럴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답니다.
철학은 왜냐고 따지고 이해하려는 학문일 것이라고 생각해오고 있었는데,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저를 끌어들이고 말았습니다 ^^
yamoo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무조건 의심, 따지고 들기, 이것이 합리적인 의심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것도 그렇고요.
이미 옛날에 읽으셨다는 책을 기억속에서 소환해드리는데 일조를 해서 다행입니다.
더위에 건강하게, 전시회 준비 잘 해나가시리라 믿습니다.

Jeremy 2026-06-29 0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 한국어로 해석까지 해가면서
철학서적 읽는 건 굉장히 Impressive 합니다.
저는 이런 책들은 한국어로 생각하는 게 더 힘들어서.

제가 철학관련 서적 읽을 때 참고하는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rd.edu/entries/wittgenstein/

아니면,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iep.utm.edu/wittgens/

아들이 Under Double Majors: Economics & Philosophy 했는데.

‘어차피 궁극적으로 Lawyer 되려고 진로를 정했으면
아예 Practical Use 와는 백만광년 떨어진 Philosophy 에 초집중해서
온갖 Humanity 과목들과 고전을 파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난 이민자라서 이런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냥 Biomedical 쪽으로 갔지만
넌 이런 Luxurious Option을 선택할 수 있쟎아?‘

약간은 질투?와 선망이 깃든 조언을 했지만
결국 제 뜻대로 전공을 정한 아들이
최근에 엄마 말대로 대학교 다닐 때 실컷 이 쪽 공부와
책을 읽을 걸 그랬다고 자주 말합니다.

hnine 2026-06-29 07:12   좋아요 1 | URL
Jeremy님, 올려주신 두 사이트 들어가봤어요. 매우 유용한 참고서가 될 것 같아요. 비트겐슈타인의 개인적인 생애에 대한 것은 이 두곳 검색해보면서 자세히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저 이 책 사실 아들 덕분에 읽게 되었어요. 방학이라고 집에 온 아들 여행가방 속에 있던 책 중 하나인데, 아들 말로는 제가 비트겐슈타인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샀다나요? 저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그러니 어찌 안 읽어볼 수 있겠어요. 제 아들도 전공이 이쪽은 아닌데 지난 학기 철학 수업을 신청해서 들었는데 그러면서 관심이 생긴 모양이어요.
Jeremy님이 아드님에게 해주셨다는 조언 정말 공감하는데요. 갈수록 인문학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시대에, 오히려 집중해서 공부해보는 것, 아무나 못하는 Luxurious choice 가 될 수 있다는 것이요.
질투가 섞인 조언이었다니, 만약 다시 선택을 하셨다면 다른 분야를 전공으로 택하셨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99% 다른 전공을 선택했을겁니다.

건강이 좋아지셔서 한국 방문하실때 더욱 더 좋은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