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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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같은 사람이 읽는데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을까.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이 책은 나에게 또 한번 그런 예가 되어 주었다. 스물 몇살,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끝까지 다 읽기는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명성만큼의 감흥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삼십 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 몰입하여 읽고 있었다. 


인생이라는 것은 내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는 하나의 실험이다. 선배들이 인생을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나한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내가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나는 인생 선배들이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16쪽)



자기가 한 일로 얻은 평판, 즉 자기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얽매여 있는 노예이자 포로일 뿐이다. 세간의 평판은 우리 자신의 사사로운 평가에 비하면 나약한 폭군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 아니 결정한다기보다 암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소위 체념이라는 것은 고착된 절망에 불과하다. 우리는 절망의 도시를 떠나 절망의 시골로 들어가서 밍크와 사향쥐의 용기*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진부하지만 무의식적인 절망은 인류의 경기와 오락이라고 불리는 것 밑에도 숨어 있다. 거기에 놀이는 전혀 없다. 놀이는 노동 뒤에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망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지혜의 한 특징이다. 


*밍크와 사향쥐는 덫에 걸리면 다리를 제 입으로 물어뜯어서라도 벗어난다고 한다. (책 속의 주석) (14쪽)


절망이 고착하여 체념이 되고 운명으로까지 받아들이면서 그 절망은 어디에 근거하는지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알게 된 본성에 근거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한 어떤 일로 얻은 세간의 평판에 의해서인지. 밍크와 사향쥐 조차도 위기의 순간에서 벗어나고자 다리를 입으로 물어뜯는 방법을 써가며 최선을 다하는데 우리는 절망에 절망을 더하여 고착화시킨 삶을 택하고 있지는 않는가. 

무의식적인 절망이 팽배한 그 절망의 도시를 떠나 시골로 들어가, 인간이 아닌 자연에서 발견하는 것이 있고, 절망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라고 했다. 숲속의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인간은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인간의 지혜란 동물의 본능일 뿐이다.


거짓투성이의 인간 사회여

세속적 위대함을 좇느라

천상의 온갖 안락이 허공에 흩어지는구나.

(46쪽, 조지 채프먼, 시인)


날마다 아침은 나에게 자연과 같이 소박하고 순결하게 살라고 권했다. 나는 그리스인들처럼 진지하게 새벽의 여신을 숭배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호수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것은 하나의 종교 의식이었고,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기도 했다. 

하루 중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시간인 아침은 각성의 시간이다. 

우리 자신의 타고난 천성 덕분에 잠을 깨는 게 아니라 하인이 기계적으로 흔들어주기 때문에 잠을 깬다면, 공장의 종소리 대신 천상의 음악이 보내오는 파동과 대기를 가득 채운 향기와 함께 우리가 새로 얻은 힘과 내면의 열망에 의해 깨어나 전날보다 더 고결한 삶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런 날을 과연 하루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날에 대해서는 별로 기대할 게 없다. 

하루하루는 어제 내가 더럽힌 시간보다 더 이르고 더 신성하고 더 찬란하게 빛나는 새벽의 한 시간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삶에 절망하여 어두운 내리막길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이다. (130쪽)


아침의 몇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고마운 사람으로서, 한번만 읽을 수 없는 구절이었다.

이쯤 읽었을 때 잠시 쉬면서 저자 소개를 다시 읽어보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이 책의 제목 '월든'은 콩코드의 숲 속에 있는 호수들 중 하나이며 소로가 손수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2일을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4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잠시 떠났던 때를 제외하고는 소로는 거의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 열여섯 살에 장학금을 받고 하버드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엔 콩코드로 돌아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학교 방침에 불응하여 3주 만에 그만 두었다. 다음 해에 사설 학교를 차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형과 함께 자신의 교육 이념에 따른 학교 운영에 집중하였으나 형이 병에 걸리는 바람에 2년 만에 학교를 문닫을 수 밖에 없었다. 소로는 랠프 월도 에머슨과 친분을 가지며 초월주의* 문학의 일원이기도 했고 초월주의 문학 기관지를 편집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초월주의, transcendentalism: 실재를 인식함에 있어서 객관적 경험보다 시적, 직관적 통찰력을 중시하는 태도)

28세 되던 해에 소로는 에머슨의 동의를 얻어 에머슨이 구입해놓은 월든 호수 주변의 땅에 손수 집을 짓고 숲속에서의 독거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이 곳에 머물면서 그는 <월든>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에만 직면해도 인생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고, 죽을 때 내가 인생을 헛산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념하고 싶지도 않았다. (132쪽)


그는 이 책에서 한번도 외롭다고 하지 않는다.


내 집에는 많은 친구가 있다. 특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아침에는 더욱 그렇다. 월든 호숫가에 살면서 떠들썩하게 웃어대는 물새나 월든 호수 자체가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저 외로운 호수가 도대체 어떤 친구를 갖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호수는 그 파란 물속에 푸른 악마가 아니라 푸른 천사들을 갖고 있다. 태양도 혼자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태양이 둘로 보일 때도 있지만, 하나는 가짜다. 하느님도 혼자다. 하지만 악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악마는 많은 패거리를 거느린 군단이다. 목초지의 현삼이나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호박벌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209쪽)


혼자일 망정 외롭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숲속 오두막에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고 살지 않았다. 날마다 또는 하루 걸러 마을로 걸어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적당량만' 받아들이면 나뭇잎의 흔들리는 소리나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처럼 나름대로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는 말 (253쪽) 에서, 적당량만 받아들임이 곧 소로 다움일 것이다. 관심을 넘은 간섭, 선을 넘는 관여를 피할 수 있을 때 기분이 상쾌한 소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전반에 숲 속 독거 생활에 대한 자기 소신과 자연에 대한 관찰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일반적으로 처음 이 책을 대할때 지루하게 느껴질 부분이라면 아마 자연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는 곳이 아닐까 싶은데, 이번에 읽을 때에는 새나 식물, 여우, 마멋 ,오리등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 집단으로 뭉뚱그려 읽히는 대신, 인간과 동등한 하나의 개체,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이 되다보니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는 인간 사회, 소신보다 남의 이목과 남의 기준에 휘둘리기 쉬운 사회에 나도 어지간히 물려 있나보다 생각했다. 본성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존이라는 순수한 목적에 따라 포기하지 않는 생을 이어가는 것은 인간 외의 모든 자연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소로는 자연을 관찰하고 느낀 점들을 얼마나 시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했는지 모른다.


언젠가 나는 우연히도 무지개의 한쪽 끝부분에 서본 적이 있다. 무지개는 아래쪽 대기층을 가득 채워 주위의 풀과 나뭇잎을 물들였고, 나는 마치 착색된 수정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처럼 눈이 부셨다. 세상을 무지갯빛 호수였고, 나는 잠깐이나마 그 호수에서 돌고래처럼 살았다. 그것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내 일과 삶까지도 무지갯빛으로 물들었을지 모른다. (309쪽)


곧 이어 내가 이 책에서 최고라고 꼽은 대목이 나온다. 


날마다 멀리까지 낚시와 사냥을 나가거라. 점점 더 널리 돌아다녀라. 많은 시냇가와 난롯가에서 불안해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젊은 날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새벽이 오기 전에 근심걱정에서 깨어나 모험을 찾아 떠나라. 낮에는 날마다 다른 호숫가에 있도록 하라. 그리고 밤에는 어디에 있든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도록 하라. 이곳보다 넓은 평야는 없고, 여기서 즐길 수 있는 놀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이 사초나 고사리처럼 너의 본성에 따라 마음껏 자라도록 하라. 천둥이 울리면 울리게 내버려둬라. 그것이 농부의 수확을 망치겠다고 한들 어쩌겠느냐? 그것은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수레와 헛간으로 달아날 때 너는 구름 아래로 피하라.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을 너의 직업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아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지 마라. 모험심과 신념이 모자라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언가를 사고팔면서 농노처럼 삶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것이다. (316쪽)


낚시, 사냥, 천둥, 도락 등의 말을 단어 뜻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마음에 담는다. 이 책의 주제가 잘 요약하여 드러난 부분이라고 내 맘대로 받아들인다.

소로는 세속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가 은자의 생활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소로 자신이 생각하는 삶다운 삶을 선택하여 실행에 옮긴 용기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기준과 가치보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것이 소로가 생각하는 삶이고 자유였다.


나는 언덕으로 에워싸인 풀밭에 서 있는 것처럼 이 눈 덮인 평원에 서서 우선 30센티미터 높이의 적설을 뚫은 다음 다시 30센티미터 두께의 얼음을 뚫어 내 발밑에 창문을 낸다. 그런 다음 물을 마시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 물고기들의 조용한 거실을 내려다본다. 호수 속은 마치 젖빛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듯한 부드러운 햇살로 가득 차 있고, 바닥에는 여름처럼 반짝이는 모래가 깔려 있다. 이곳도 해질녘의 호박색 하늘처럼 잔잔한 평온함이 지배하고 있어서, 호수 주민들의 차분하고 한결같은 기질과도 잘 어울린다. 천국은 우리의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우리의 발밑에도 있는 것이다. (438쪽)


이렇게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을 쓴 소로는 온순하고 순응적인 사람이었을까?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학 졸업후 처음 갖게 된 초등교사 자리를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가 마음에 안들어 3주 만에 박차고 나왔으며 월든 호숫가에서 지내는 동안 정부에 반항하여 투옥이 된 적도 있다. 노예제도를 허용했던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책 내용중에도 나오고 '시민 불복종'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한 바도 있는, 사회적 관심과 양심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많은 저서를 남기지도 않았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책으로 출간된 것은 이 책을 포함하여 두권에 불과하고 그 밖에 여기 저기 발표한 글과 평생동안 계속 써온 일기가 그가 죽은 후 뒤늦게 출간되었다고 한다.


소로의 월든은 자연과 함께 산 그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주요 목적은 무엇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산 기록이다. 

더 늦기 전에, 더 나이들기 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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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홀릭 2025-12-23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따라 해봤어요
재미있네요^^

hnine 2025-12-23 23:09   좋아요 1 | URL
딸기홀릭 님의 2025년 리포트 저도 궁금한데요.

잉크냄새 2025-12-2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도 이렇게 분석해 주었으면 재밌겠네요.

hnine 2025-12-23 23:11   좋아요 0 | URL
비슷한게 알라딘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주로 책과 관련된 사항으로 이루어져 있었지요.

카스피 2025-12-23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네이버가 사업다각화를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기존 가입자들을 계속 유시시키기 위해 열일읆하네요

hnine 2025-12-23 23:14   좋아요 1 | URL
네이버에선 매년 연례행사랍니다.
블로그로서의 기능은 네이버를 못따라가는 것 같아요 (주어가 빠진 문장이지요? ^^)
 
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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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남의 말이나 글의 의미를 따지며 곰곰히 생각하는 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나의 어떤 결정을 내가 내리고 있나, 아니면 주위에 의해 결정지어지는가.

이 책은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숲속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물질적 가치에서 벗어난 생활을 칭송하는 책도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든가, 저런 사고 방식이 부럽다고 생각할게 아니라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고 나에게 솔직해질 수 있으면 좋겠고, 작가도 아마 그런 의도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와 저자의 남편 모두 한국에서 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저자 먼저 직장을 그만 두고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를 하였고 곧 이어 남편도 직장을 그만 두고 미국 생활에 합류를 하였다. 한국에 있는 집을 팔았고, 그 돈으로 미국에서 땅을 구입, 집을 짓고 산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로 가는 대신 이 분의 경우 도시가 아니라는 것뿐, 특별할 것은 없다. 한국에서 직장을 그만 두고 왔으므로 생계수단이 있어야 했고, 저자가 시도한 것은 가지고 있는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한다. 당연한 일이다. 기자로 일하던 사람들이었으니 글을 써서 투고도 하고 책도 쓰면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살고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누구나 알만한 신문사 기자로 일하다가 도시를 벗어난 생활을 하게 된지라 적응이 필요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진게 많은 것이 부자인 것은 맞지만,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난한 지 부자인지 잘 모르겠다. 실제로 소득은 극히 적다. 그러나 그 돈으로 사는 데 어려움도 아쉬움도 없다. 돈으로 온갖 시도를 해보았다. 한동안은 '소확행'과 같은 사소한 사치가 좋아 보일 때도 있었고,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여 돈을 모으는 무한도전에 몰두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돈을 아끼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돈이 아껴야 할 그런 소중한 대상인가 싶어진다. (129쪽)


돈이 아껴야 할 그런 소중한 대상인가 싶어진다는 말이 새롭게 들린다. 저자는, 전반적인 소비를 최소화해서 무소유에 가까운 삶을 목표로 하지 않았고 좋게 보지도 않는다. 돈을 쓰며서 또는 쓰지 않고 아끼면서 얻는 것은 행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문제는 돈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필요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안에서 풍요자유를 구할 수 있다. 2달러짜리 물이 지금 이 순간 필요한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통해서 누리고 싶은 기분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131쪽)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필요한 일이고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이기도 하다. 다만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대개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규정되어 나는 정작 원하지도 않는데 그것을 가지기 위해 현재의 여러 가지를 희생하며 살고 있는 것이라면.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돈을 끝없이 가져서 나의 인간다운 특성으로부터 달아나 완벽한 권력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아예 버려서 내가 인간으로서 소비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다른 가치로 무한히 전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집 또한 부동산 가치 자체가 아니라 안전한 공간에서의 휴식,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같은 가치로 누리는 것처럼 말이다. (148쪽)


소비로 자신을 채우고 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는 그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 자기 삶의 철학을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건 자존감이 아니라 적극적인 탐구 끝에 얻은 나에 대한 이해다. 언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지, 무엇이 나를 채워주는지, 어떤 거리감이 좋은지, 나를 아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쫓아다니지 않을 수 있다. 시골에 오지 않아도 궁금해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다. (257)


우리 사회는 획일화된 패턴의 삶에서 조금 벗어나 사는 것 같은 사람을 가만 두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이 많이 읽힌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 아이러니 하기도 하지만, 이제 사회로부터의 그런 기준, 시선, 잣대로 인해 잊고 무시하고 살았을지 모를 나 자신을 들여다봐야 할 때이다. 그러한 사고,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우리는 도시에 살든, 숲속에 살든, 진정 나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신이 있다면 인간을 놀리는 걸까? 인간이 간절히 원할 때는 들어주지 않다가, 막상 그런 변화가 필요 없어지면, 변화가 찾아오는 게 얄궃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원인은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그만뒀다. 대신 나의 주인이 됐다. 지금을 나의 행동, 나의 책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불행이나 잘못의 원인과 책임을 나에게 돌리지 않고, 그 상황을 내 일부로 인정했다. 내 힘으로 잘못과 불행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내 것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그 상황의 중심에 선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보다 더 상위의 강력한 힘은 변화가 필요 없는 맥락와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 정도의 힘이 생기면, 변화가 드디어 저절로 찾아온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변화가 아니라 변화가 필요 없는 맥락에 모든 것이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102쪽)



저자가 책에서 자주 언급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뒤이어 읽고 있다. 오래 전에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몇 페이지 읽고 바로 접어두었던 책이 지금은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것은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일까, 내가 그때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현명한 사람, 존경할 만한 사람, 성공한 사람. 그들 조차도 무수한 가능성 중 단 하나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보지 않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그들은 할 말이 있을 수가 없다. 인생과 성공과 완벽에 대한 기준을 버리는 것이다. 인생은 그저 사는 것이지, '잘'살아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아무도 '잘' 살 수가 없다.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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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18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책 <도시인의 월든>도 읽어보면 소로의 <월든>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더군요.

hnine 2025-12-19 05:08   좋아요 0 | URL
이 책중에 인용도 자주 되어 있듯이 이 작가가 소로의 월든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서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 <도시인의 월든>도 읽으면 더 잘 이해가 되겠군요.
좋은 책을 한권 읽고 나면 이어서 읽고 싶은 책이 연달아 생겨서 숙제 같기도 하지만 즐겁습니다.
 


"샘 많고 욕심 있는 애들이 커서 잘 산다."

두살 아래 여동생과 다투게 되면 악착같이 이기려고 하기보다 눈물부터 흘리기 일쑤고, 통 뭘 사달라거나 해달라고 조르는 적이 없던 나를 보고 엄마는 종종 그런 말씀을 하셨다.

사실은 내가 착해서도, 동생이니까 양보하려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열살 전후때 그 정도로 마음이 넓은 아이가 아니었다. 눈물을 잘 흘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타고난 성향인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자기 주장 잘 하는 동생의 기세에 지레 눌려 눈물부터 났던 것일 것이다. 뭘 사달라고 하지 않은 것은 갖고 싶은게 없어서가 아니라 말해도 사주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엄마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자랐던 것을 떠올리며 나는 내가 별로 욕심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다.

하긴 지금도 나는 옷, 화장품, 악세사리 등 꾸미는 것을 잘 못하고, 그래서 그런지 그런 것들에 크게 욕심이 없다. 수도권도 아니고 작은 집이지만 늦게나마 내 집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넓고 좋은 집에 대한 욕망도 별로 없다. 

오늘 책을 읽다가 문득 되돌아보게 되었다.

세상에 욕망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욕망의 대상과 분야가 다를 뿐, 누구든 욕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욕망이라는 말을 욕심과 동급으로 보면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지만 욕망은 의욕이기도 하고 활력이기도 하다.

세속적인 욕망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는 다른 방면의 욕망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먹고 입는 것에 욕심이 없어도 책에 대한 욕심, 여행에 대한 욕심이 있을 수 있다.

욕망이 있는 삶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고 멀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도시를 피해서 전원에 들어가 사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도시가 아닌 전원생활에 대한 욕망이 있는 것이다.

큰 욕망, 작은 욕망, 따로 있지 않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들에 대한 욕망이 없는 것이지 나도 나름대로 욕망이 많은 사람이다. 더 나은 사람,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나이가 들어서도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큰 집은 아니어도 아늑하고 잘 정돈된 주거에 대한 욕망이 있어서 눈 여겨 보고 다닌다. 언어에 대한 욕망도 있고 더 잘 말하고 더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욕망도 크다.


욕망을 잠재우려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잘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남의 말이나 판단을 통해서 아니라 내가 스스로 알아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다가 생각 나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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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10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속의 자본주의자의 저자는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무엇을 욕망하지 않는지 알고 있더군요. 그것이 자기 삶을 살기로 결정한 용기의 원천이더군요.

hnine 2025-12-11 00:32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이 책 읽으셨군요. 자신을 아는데조차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의 가치 기준과 사회의 획일화된 기준에 휘둘렸던 것 같아요. 자신의 욕망을 알고 그대로 살기로 하는데 필요한 것은 ‘용기‘가 있어야 하고요. 이 책의 요점을 두줄로 짚어주셨네요.
 










잘 넘어진다면


잘 일어나기라도 하자









덕분에 지금 여기라도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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