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비의 시간 - 생명 사랑으로 이어진 17년의 기록
김성호 지음 / 지성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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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생물학과 교수를 지내긴 했지만 새를 전공하진 않았다. 동고비라는 새를 관찰하게 된 것은 전공과 무관하게 개인적인 상황에서 비롯한 우연한 기회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기회에 대해 책의 들어가는 말과 처음 글 동고비를 만나야 했던 이유라는 제목으로 설명하고 있다.

처음 그는 큰오색딱다구리가 나무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키워내는 과정을 보았다. 그는 큰오색딱다구리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주어 어린 새끼새들을 키우고 마침내 새끼새들이 둥지를 떠나가는 것을 보고 울었다고 했다. 그런데 저자의 관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번식을 끝내고 비어 있는 딱다구리 둥지는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파낼 능력이 없는 다른 많은 생명체에게 더없이 귀한 선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중 하나라 동고비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새였다. 동고비는 딱다구리의 옛 둥지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제 몸에 맞게 다시 꾸며서 사용하는 재미있는 새였다. 이를테면 입주 전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동고비가 딱다구리의 둥지 입구를 좁히기 시작한 첫날부터 어린 새 여덟 마리를 잘 키워 둥지를 떠나기까지의 80일을 기록하였고 이것을 <동고비와 함께 한 80>이라는 책으로 발표한 것이 15년 전이다. 80일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동고비를 만난 시간을 2년이라고 한다. 이 책을 난 이후에도 더 알아야 할 것들이 남아있었고 다른 여러 마리의 동고비에서 다름과 차이를 확인하고 싶었고 그 내용을 보태어 15년 후 이 책 <동고비의 시간: 생명 사랑으로 이어진 17년의 기록>을 내게 되었다.

이 책에는 이전에 동고비와 함께 한 80일의 내용에 실렸던 동고비가 딱다구리의 빈 둥지에 자기들의 둥지를 짓는 과정에서부터 짝짓기, 알 낳기와 알 품기, 어린 새 키우기 (육추), 어린 새 둥지 떠나기 (이소) 과정과 함께, 둥지 전쟁이라고도 부르는 둥지 다툼 과정을 관찰한 내용이 들어있다. 둥지 다툼을 벌이는 생물에는 딱다구리, 다람쥐, 하늘다람쥐, 청설모, , 소쩍새, 찌르레기, 원앙, 큰소쩍새, 파랑새, 호반새 등이 있는데 벌이나 다람쥐 같은 것들도 딱다구리가 만들어 놓은 둥지를 탐낸다는 사실은 뜻밖이었다. 그만큼 딱다구리가 만들어 놓은 둥지는 쓸모가 있게 만들어져 있다는 뜻이다.

동고비가 딱다구리가 만들어놓을 둥지를 발견하고 차지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둥지의 청소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둥지를 이용할 지언 정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청소부터 하고나서, 비로소 진흙을 물어 날라 자기들의 둥지로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딱다구리가 주로 둥지를 짓는 나무 수종은 어떤 것인지, 둥지의 높이는 어떠한 지, 어느 방향으로, 어떤 방법으로 짓는지, 자세하게 관찰한 내용이 들어가 있고 그만큼 사진도 많이 실려 있어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동고비가 딱다구리의 둥지를 다시 수리하는 데 쓰는 재료는 진흙이 첫번째, 그 다음으로 쓰는 재료가 나뭇조각, 그리고 얇은 나무 껍질이었다. 이 얇은 나무 껍질이 알자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거의 한달에 걸쳐 둥지를 완성한다. 그리고 비로소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 놀라운 점은 동고비가 짝을 먼저 정하고 이들이 함께 둥지를 찾아 재보수를 하여 완성을 한 후에 짝짓기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새도 이런 순서를 따를 것이라고 생각 안 했다.

동고비를 관찰하며 가장 큰 기쁨의 순간을, 첫째, 어린 새의 첫 먹이를 가져와 먹일 때, 두 번쨰는 어린 새가 잘 커서 둥지 입구로 첫 고개를 내밀 때, 세 번쨰는 둥지의 모든 새가 아무 탈 없이 보금자리를 떠나 진정한 자연의 품에 안길 때라고 한다. 생각만 해도 뭉클해진다.

이런 과정들이 여러 장의 사진으로 실려 있다. 그 사진들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동고비 둥지 앞에서 보내야 했을까.

내가 제일 뭉클했던 순간은 어린 새의 둥지 떠나기, 즉 이소 과정을 보면서이다. 부모와 어린 새가 헤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미련 없이 떠나보내고 떠나 가는 과정. 사람은 잘 못하는 과정을 새들은 자연스럽게 해낸다.

새가 한번에 새끼를 여러 마리 낳는데 새끼들을 성장 차이가 거의 없이 골고루 키워내는 재주도 신기하다. 동시 부화와 균등한 배식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알이 나오는 순서가 있지만 그 알들을 순서대로 부화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번에 부화하기 때문에 성장 차이가 거의 없고 부화한 새끼새들을 어느 한 개체에게 치우치지 않게 균등하게 먹이는 재주가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니라 먹이를 가장 간절히 원하는 어린 새에게 먼저 주는 것이다. 고개를 가장 높이 드는 새이다.

딱다구리에 의해 한번 만들어진 둥지를 두고 여러 생물들에 의해 둥지 다툼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한 둥지를 오랫동안 관찰하여 둥지를 차지하는 생물들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보여주었다. 아홉 번 주인이 바뀌는 둥지도 있었다. 아마 수년에 걸쳐 일어난 둥지의 역사일 것이다. 동고비가 정신없이 진흙을 물어 나르고 있는 둥지가 있는 나무를, 시설을 마련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베어버려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날의 아픔도 있었다.

둥지를 짓고 있는 동안에 다른 새들에게 둥지를 점령당하여 둥지를 빼앗기기도 하고 짓던 둥지가 무너지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을 다시 짓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고 저자는 감동을 받고 동고비 정신이라고 부른다. 저자가 그랬다면 책을 읽는 사람도 그럴 것이다. 동고비의 번식 과정을 알게 되면서 생명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자식을 낳아 길러 내보내는 과정은 새라고 해서 사람보다 못할 게 없고 숭고함에 차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17년을 동고비에 관심을 두고 관찰해온 저자에게도 존경심이 든다. 그건 생명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이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혼자 날아서 둥지를 떠난 새는 처음 부터 먼거리를 날지 못하고 둥지에서 가까운 나무 가지까지 날아가 앉아 있으면, 부모 새가 먹이를 물어다 준다. 마지막 서비스이다. 오른 쪽의 튼실해보이는 새가 새끼새이고, 왼쪽의 헐벗은 듯 보이는 새가 부모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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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3-02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새나 짐승이 살던 곳에는 다른 새나 짐승이 살던 냄새가 뱄기에, 이 냄새를 안 없애면 다른 새나 짐승이 다시 그곳으로 와요. 그리고 곧 태어날 새끼새한테는 어미새 냄새를 알려주어야 하기에 반드시 싹싹 잘 치워야 하고요.

말씀처럼 둥지나기를 잡아채기란 가장 힘들어요. 어느 날 갑자기 한나절 만에 둥지나기를 하거든요.

새끼새한테 둥지나기는 마지막에 삶이냐 죽음이냐 하고 갈리는 길목이기도 합니다.
둥지나기를 못 하면 그만 둥지로 못 돌아와서 바닥에서 다른 짐승한테 잡혀먹거나, 시골이라 하더라도 자동차에 밟혀서 죽기 일쑤입니다.

hnine 2025-03-02 10:23   좋아요 0 | URL
청소부터 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저렇게 청소를 하고 둥지를 새로 고쳐 만드는 동안에도 다른 새들이 덤벼들지 않도록 계속 경계하고 지켜야 한대요. 둥지나기 하는 과정을 제가 자세히 쓰진 않았는데, 읽는 저도 뭉클하고 우리 인간들의 방식을 되돌아 보게 되었답니다. 자식을 계속 옆에 끼고 살고 싶어하는 것이 과연 자식을 위한 것일까 하고요. 둥지나기 실패하는 예들도 책에 나와있긴 한데, 태어나서 계속 생존할 수 있느냐 하는 첫 관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걸 지켜보는 부모새의 심정은 어떨까.
이 책 읽으며 생각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피아노 책 제본을 맡기고 기다리는 동안 시간 때우러 들어간 커피집에서, 들고간 책을 다 읽어버렸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으므로 반납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차, 책갈피를 꽂아둔 채 반납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제주도 김창열 미술관 갔을 때 사온 책갈피였는데.
도서관에 전화를 했다. 방금 반납한 책에 책갈피를 끼워둔 채 반납했는데 꺼내서 보관해주시면 찾으러 가겠다고.
그리고 다음 날 가서 찾아왔다. 바로 저 책갈피.







사놓은지 꽤 되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제대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제목만 보면 무슨 책인지 모를수도 있는데 '동고비'라는 새를 관찰하고 기록한 책이다.




작지만 똘망하게 생긴 이 새 '동고비'

나도 이 책때문에 처음 알게 된 새이다.





동고비라는 새에 대해 특별히 궁금해서라기 보다, 이런 책에서 얻는 것은 관찰기록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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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애하는 불면증 - 잠 못 이룬 날들에 대한 기록
마리나 벤저민 지음, 김나연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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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마자 시계를 본다. 숫자 4가 보이면 그래도 성공이다. 적어도 새벽 4시는 넘었다는 것이니까. 3이나 심지어 2가 보이면 낭패스럽다. 이미 깨어버린 잠을 억지로 다시 청해야 하니까. 그렇게 용을 쓰다가 포기하고 일어나는 날은 하루가 아주 길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흔히 말하는 갱년기 증상도 아니다.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나는 잠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정신의학 코너가 아니라 문학 코너에서 불면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 눈에 띄어 안 꺼내 볼 수가 없었다.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에게'

저자 마리나 벤저민은 주로 논픽션 분야의 글을 써오고 있는 작가이다. 이 책은 불면의 개인적인 경험담과 함께 거기서 나아가 잠에 대한 여러 이론과 기원, 잠에 대한 각종 이론과 가설 등, 폭 넓게 고찰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내가 새벽 4시를 기점으로 삼았듯이 저자는 새벽 4 15분을 들어 묘사하였다. 이 시간대의 어둠은 이전만큼 순결 무구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한밤중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건너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직 깜깜하지만 새 소리가 들리는 시간이며 밤의 가장자리 시간.

하루의 고된 노동 끝에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던 때가 있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불면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을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일환으로 파생되었다고 했다. 자본주의의 산물인 시계, 시장, 철도 (나중엔 고속도로)의 노예가 되었고 괴물 같은 기계의 윤활유로서 긴 하루를 보내야 하기에 설탕이나 담배, 커피를 이전보다 더 많이 소비하며 종일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불면으로 시달린다고 할 때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지 그러냐는 것이다. 약을 처방받기 전에도 우리는 안다. 그렇게 얻는 잠이 이전의 잠과 같지 않다는 것을. 수면보조제의 효과에 대해서 대부분은 잠시 효과를 보이며 나를 희망으로 부풀게 했다가 이내 납작하게 찌부러뜨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관성 있는 효과를 보이지도 않을 뿐 더러 잠을 잔 시간은 얻을 수 있어도 잠이 주는 활력의 효과는 기대 이해라는 것은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수면의사 루빈 나이먼의 권고에 의하면 수면제는 눈뜬 채 지새는 시간을 기억에서 지워버려 기억상실증을 유도하고 가짜 수면을 생산한다. 수면제는 불면증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증상을 억제할 뿐이라고 했다.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처럼 불면증을 즐기는 경지에 있던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는 완벽히 어두워지는 것을 두려워해 밤이면 침실 문을 살짝 열어두었고, 잠이 들면 암흑 속에서 영혼이 흩어져버리듯, 완벽한 어둠 속에서는 머리가 빙빙 돌며 현기증을 느끼기 때문에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희미한 한 줄기 불빛만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불면상태에 대한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가 저서 <공간의 시학>에서의 묘사는 불면상태 만큼이나 모호하게 들린다.

우리가 믿음을 바탕으로 영혼을 열어 보일 때 창의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 사이에도 신뢰를 기반으로 한 친밀한 관계가 성립된다. (92)

불면의 시간에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는 것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도취에 가까울 정도로 격앙된 불면 상태에서 그런 벅찬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다. 구멍이 송송 뚫린 밤의 모습처럼 내 앞에 벌어질 모든 일에 마음이 열리고 유연하게 흐르는 우주와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93)

저자는 아주 드물게 이런 벅찬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하면서 이건 그야말로 드문 경우이고 대부분은 이와 아주 반대되는 감정 상태라고 했다. 실로 불면의 세계는 끝이 없나 보다. 나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 앞으로 올지도 모를 경험이니 가능성을 열어두자.

여성의 지위에 대한 사회적 억압에 대해 여성은 불면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제시한다. 잠들기 거부하는 것은 나 자신의 소멸과 싸우고 있었던 것일지 모르고, 엄마와 가정주부라는 역할 외에는 어떤 선택도 용납하지 않았던 사회적 제약에 (나름대로 방식으로) 저항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잠으로만 가능한 꿈에 대한 여러 이론들, 가설들도 제시하였다. 잘 알고 있는 프로이트와 융 같은 정신의학자 외에도 나보코프, , 볼라뇨, 베라트 등 많은 작가, 철학자들이 꿈의 기능, 꿈의 의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불면은 과도한 소속감과 과도한 생각에서 오는 잉여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불면증을 잠재우는 방법으로서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쓰는 방법을 택한다. 밤이면 돌고 도는 생각을 종이 위에 옮기고 분석하여 정돈된 단어로 고쳐보는 것이다. 글쓰기는 나에게 나침반이자 닻이고, 내가 나를 초월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희귀한 의식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명상이 그런 의식이라면 저자에겐 글쓰기가 있다고 하였으니 작가 다운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꼭 작가라서일까? 작가 에게만 통하는 방법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불면증을 바라보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한 것에 나도 공감한다. 불면을 타파하기 위해 더 불면을 못 견디는 것으로 만들어보는 대신 감당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돌려보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조각 조각의 생각들을 콜라주의 재료로 삼아 무의식의 단편들을 창의력의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다. 내가 요즘 새벽 2시에 책상의 스탠드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새로 켜고 앉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한 불면증 경험담을 담은 에세이겠거니 예상하며 읽었는데 생각보다 다각적인 방면으로 분석하고 고찰한 내용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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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2-2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면증이 있으시군요. 저도 중간에 잠을 깨긴하지만 금방 잠이들긴 합니다. 물론 가끔 실패하는 경우도 있긴하지만. 어렸을 땐 잠이 너무 많아 불면증에 걸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럼 더 많이 책을 보고 글도 쓸텐데 하며. 지금은 참 철없는 생각을 한 거죠. ㅋ
저의 엄니도 오래 잠을 못 주무셨는데 점점 더 나이드시니까 지금은 비교적 잘 주무시더라구요. 불면증이라기 보단 그냥 잠이 없는 체질. 뭐 그렇게 봐야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실제로 4, 5 시간 자고도 건강하게 사는 사람도 있던데.

hnine 2025-02-22 14:22   좋아요 0 | URL
저는 좀 심각한데, 한숨도 못자고 아침을 맞는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을때라도 몇시에 잠이 들든 2시간 후면 깨서 다시 잠을 못잘때가 많아요. 원래 잠이 없는 편이긴 한데 그게 점점 더 심해져가네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리커버 특별판) -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카밀라 팡 지음, 김보은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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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책은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 이 책의 원제인 Explaining Humans 에 충실하게 번역한 제목을 붙여 내놓았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지금보다 덜 끌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것. 독특한 제목이면서도 무슨 뜻인지 알것 같기도 한, 매력적인 제목이다. 이럴 때를 위해 부제가 있는 것. 부제가 책 내용을 좀 더 솔직하게 설명해준다.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라고 (원서의 부제는 What science can teach us about life, love, and relationship).

저자 Dr Camillla Pang은 1992년생. 이제 갓 서른을 넘은 나이이다. 영국 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컴퓨터 과학을 이용해 생물학을 해석하는 일을 하고 있는 과학자이고 2020년 28살에 이 책을 펴냈다. 

어렸을 때 부터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8살에 처음 자폐증 판정을 받았고 이후 26살엔 ADHD판정을 받았다. 엄마 친구가 엄마 계시냐고 전화를 했는데 엄마 계시다고 대답하고 그냥 끊었다는 어렸을 때 일화이다. 어릴 때부터 소통과 관계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이 있는지, 그것을 위한 안내서 같은 것이라도 있는지 엄마에게 물었는데 엄마는 그런 것은 없다고 한마디로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설명서 '아웃사이더를 위한 삶의 가이드'를 내가 직접 쓰기로 했고 그것이 이 책이라고 소개한다. 

수많은 데이터를 입력하고 그것을 결과에 반영하는 방식의 머신러닝은 인공지능의 한 분야이고 이런 기술을 이용한 컴퓨터 정보과학을 공부하던 저자는 자연스럽게 이것을 인간 관계, 삶의 해결책을 얻는 방법에도 적용시켜본다.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그중 어떤 생각을 내세우고 어떤 것을 억눌러버리기보다는 생각들 나름 각각의 영역을 정리하고 서로의 관계를 설명하여 합리적인 결과를 내어놓는데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어느 한 생각으로만 결과가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군중 속에서 최종적인 결정은 다수의 의견대로 결정되거나 우세한 목소리를 따르고 소수의 의견은 아무 영향력을 내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영역을 차지하고 최종 결과에 작든 크든 영향력을 행사하여 최종 결과에 반영된다는 것은 에르고딕 이론을 반영한 것이다. 하나의 집단이 있을 때 그것은 결코 균일할 수 없고 크고 작은 여러개의 각각 역장 (forcing field)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구성원이 정상이고 비정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가 다른 역장을 가지고 다르게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다. 그 안에서 내 평균은 당신의 평균과 마찬가지 의미를 가진다. 집단 뿐 아니라 내 안에도 수많은 내가 있을 것이고 그것들의 총체적인 합이 나의 상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서로 다른 것들의 총합, 각각의 기여, 반영, 이런 것을 발견하고 기뻤을 것이다. 사람들이 평균적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시고가 다르다고 해서 비정상 취급을 해온 사람들도 엄연히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회에 반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에르고딕성은 외로움, 다름, 고립감, 비정상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위한 수학 이론이다. 통계학은 당신의 개성이 타인의 개성만큼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서 진화하고 생존하는 데 필요한 괴이하고도 경이로운 다양성의 일부다.

우리의 삶에서 개성순응은 대등한, 때로는 정반대의 힘을 행사한다. 주목받고 싶은 욕망과 소속되고 싶은 욕구는 우리 모두에게 공존하는 충동이다. 우리는 집단이라는 맥락에서만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개인이다. (173)


스티븐 호킹이 시공이라는 개념을 시각화하여 제시한 '광원뿔' 이미지에서, 우리가 현재 느낄 수 있고 조절 가능한 것들은 광원뿔 이미지로 표현된 차원 내에서 일어나는 것들이고, 광원뿔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다른 곳에 있다. 우리는 불완전하다. 우리는 우리가 배우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다음에 일어날 일을 바꿀 방법을 찾고, 확실성을 기대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광원뿔 밖). 여기서 모멘텀 사고 (momentum thinking)와 포지션 사고 (positional thinking)의 균형에 대한 것을 삶을 숙고하는 두 가지 사고 방식으로 적용해본다. 모멘텀 사고는 시간에 따라 살면서 한 시간에서 다른 시간으로 옮겨 가도록 하며, 이 사고에 따르면 행복은 우리가 성취하고 계획한 것으로 정의되는 반면 포지션 사고는 현재를 살면서 현재 순간과 현재가 주는 느낌에 사로잡혀 다른 모든 것을 차단하고 그저 존재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두가지 방식을 삶의 순간에 어떻게 적용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중요하다. 두 개의 안경을 손에 쥐고 선택하여 세상을 보는 것으로 비유하면 너무 요원한 비유일까?

머싱러닝의 기본적인 기술의 하나인 경사하강법에서 삶의 네트워크를 탐색하는 방식에 대한 교훈을 얻는다.

첫째, 우리는 경로 전체를 미리 볼수 없고 심지어 대부분은 볼 수도 없다는 것, 둘째, 현재의 전후 사정이 당신이 지금 당장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절대적인 기준과 가치가 있는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만의 기준에 따라 특정 경로의 가치를 판단해야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고 언제든 목표와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면 경로를 바꿔야 한다. 

곧고 완벽하고 유일한 길은 없으며 다만 발견해서 따라가기까지 기꺼움, 흥미,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길만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이 선택하는 최고의 경로는 항상 객관적인 완전성보다는 여러 요인에 좌우될 것이다.  (202)

여기서 파생된 네트워크식 사고도 유용한 방식이다. 네트워크란 역동적이고 적응력 있어 유용하기 때문이고, 한정되지 않고 사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투두 리스트 (to do list)'를 네트워크 다이어그램으로 바꾸어보는 것이다. 직선으로 형성된 투두 리스트보다 다이어그램으로 표현된 네트워크 속의 내 목표는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변수와 곁가지를 내다볼 수 있게 하는가.


불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 느끼고 살수는 없다.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불안감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경로를 수없이 모의실험하는 렌즈 역할을 하므로 유용하다. 나는 항상 불안감이 타인은 보지 못하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연결고리를 만드는 수퍼컴퓨터라고 생각해 왔다. 사람들은 내게 엉뚱한 짓은 그만두라고 혹은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는 불안감 없이 그리고 불안감이 제공하는 전체 풍경을 보는 능력 없이, 그리고 불안감이 만들어내는 더 배우려는 동기 없이 살고 싶지 않다. (205)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원자간 결합에 대한 것은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라도 날 것이다. 원자 결합 모델과 인간 관계를 연결지어 놓은 것도 그럴듯 하고 공감한다.

원자의 전자 배열 상태에 따라 나를 완성해줄 원자를 찾아간다. 원자의 배열 상태에 따라 다양한 결합을 형성하게 되는 것은 나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우리가 맺는 관계가 다양한 것과 같다. 공유 결합과 이온 결합은 가장 상호적인 형태의 화학결합이지만 이온 결합이 한쪽은 주고 다른 한쪽은 받는 결합인데 반해 공유 결합은 둘 이상의 원자가 껍질구조를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서로 전자를 공유하는 결합이다. 서로 밀고 당김이 최소화하는 거리에서 안전한 결합을 형성한다.

나는 한번도 이온결합과 공유결합을 보면서 인간 관계를 떠올려본적이 없는데. 책을 읽다보니 한번도 떠올려본적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 무릎을 치게 된다. 물론 우리 인간은 원자 화합물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자 화합물은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유용한 모델을 제시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글에 담은 저자의 한마디를 옮겨보자면,

과학과 삶의 위대한 공통점은 둘 다 같은 부분에서 좌절감을 안겨주며, 인내하는 사람에게는 보상을 준다는 점이다. 연구에서 돌파구를 찾았을 때 찾고 있던 해답으로 향하는 문이 마침내 열리는 그 순간만큼 내게 전율을 안겨주는 것도 없다. 아무리 작더라도 발견에서 신기함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내 일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뜻이다. 과학자라면 누구나 똑같이 말할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더 나은 삶을 살고 더 나은 역할을 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과학 연구와 똑같은 방법을 이용했다. (315)


과학을 연구하는 것이 쉽지 않듯이 인간을 알아가는 것도 쉽지 않고 인내심을 요하고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스물 여섯살에 벌써 이런 것을 알아버렸다니. 그것도 과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것 까지 알아버렸다니.


자폐, 주의력결핍 과잉 행동장애, 이런 것을 삶의 장애물로만 보지 않았고, 그것을 하나의 다양성으로 볼 수 있게 되기 까지 그녀의 노력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미 나와있는 것들에서 답을 찾지 못했을때 나만의 해결책을 찾아야겠다 생각했고 그 실마리를 자기가 연구하고 있는 과학에서 찾았다는 것은 그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자기의 일, 즉 과학분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현되지 않은 계획에, 이루지 못한 목표에, 실패한 관계에 절망하지 말 것.

결국 그것을 깨우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이런 저런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좌절하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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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터 피아노 레슨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레슨 받기로 한 첫 곡이 이 책에 있다.




두근 두근,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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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04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멋지십니다. 열심히 응원합니다.
저는 항상 뭔가를 새로 시작할 때의 그 설렘이 좋더라구요. ^^

hnine 2025-02-04 15:59   좋아요 0 | URL
뭔가 시작할때 저는 아주 오래 망설이는 편인데, 일단 시작하면 또 쉽게 그만두지를 못하는 편이랍니다.
설렘을 좋아하신다니, 바람돌이님 제가 부러워하는 것을 가지셨네요. 저는 막바지까지 ‘이걸 꼭 해야돼?‘ 이러면서 뒷걸음질치기 일수인데요.
피아노도 오래 망설였으니 오래 오래 배울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5-02-04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도 응원할께요.
피아노 학교 때 배우다 20대 때 다시 배웠는데 결국은 포기했어요.
차이코프스키로 레슨 시작하신거 보니 평소 실력이 좋으신 듯 합니다.
응원, 팍팍 실어 보내드려요!

hnine 2025-02-04 16:02   좋아요 0 | URL
20대면 인생이 분주하고 바쁠 때지요. 페넬로페님도 혹시 다시 배우고 싶으시다면 지금이 적기 아닐까요? 저 배우러 가기 전에 제가 제일 연장자일까봐 (선생님보다는 당연히 연장자일테고요.) 걱정했는데 아니라더군요. 어떤 곡을 처음 시작할까 선생님이랑 골라보다가 제가 저 차이코프스키 The Seasons 책에 있는 곡을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1월 부터 시작해서 12월까지, 12곡이 들어있는데 좀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고 그래요. 저는 좀 쉬운 것부터 시작했어요.

stella.K 2025-02-0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부럽습니다. 저도 응원합니다!♡

hnine 2025-02-04 16:07   좋아요 1 | URL
지금 막 레슨 받고 왔답니다. 피아노를 제대로 배워온게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였고 이후에는 시간있을때 혼자 예전에 배운 것을 쳐보는 정도였어요. 요즘 시간이 많아지기도 하고 다른 걸 배워보자니 용기가 안나고 그래서 오랫동안 제 친구가 되어주던 피아노를 더 배워보기로 한거지요.
선생님이 용기를 주셔서 첫 레슨은 잘 받고 왔어요. 새 곡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선생님과 음악에 대한 얘기를 잠깐씩 나누는 것도 재미있네요.

페크pek0501 2025-02-1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멋진 도전입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저는 친구들 결혼식에서 웨딩마치를 쳐 주었는데 이젠 피아노도 버려 제 손을 떠난 지가 오래입니다. 첼로를 배우고 싶단 생각을 잠깐 했어요. 들고 다니는 게 멋져 보이고 소리도 좋아서요. 으음... 저도 발레를 배우고 있잖아요. 발레를 할 때마다 너무 안 어울리는 동작을 하고 있구나, 하고 속으로 웃습니다. 우아한 동작을 배우거든요.ㅋㅋ 뭔가를 배운다는 건 좋은 일 같습니다.^^

hnine 2025-02-14 12:09   좋아요 1 | URL
배우는 동안은 늙지도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아요. 오히려 눈이 침침해서 악보 보는게 어려운데도 좋은 기분이 그 사실을 눌러버립니다.
첼로 소리 너무 좋지요. 몸으로 폭 싸안고 연주하는 것도 좋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