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은의 가게
이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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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아쉽다. '마은'이라는, 아무것도 연상되지 않는 애매한 이름을 내세운 것이그렇고, 더 독창적인 제목이었으면 좋았을걸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나 수기 제목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쉽다. 이렇게 아쉬움부터 얘기한다는 것은 아마 내가 이서수라는 작가에 대해 이미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2014년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이서수 작가가 2024년 4월, 비교적 최근에 출간한 장편소설 제목 '마은의 가게'는 주인공 공마은이 차린 카페 이름이다..

서른 일곱살 여자 공마은이 먹고 살기 위한 일로 이번엔 장사를 해보겠다고 엄마에게 전화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생활력 없는 남편과 이혼하고 울산에 내려가 반찬가게를 꾸려가고 있는 엄마는 여자 혼자 장사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녹녹치 않음을 알고 딸을 말리지만, 연극판과 학원 강사를 거쳐 오며 이제는 누구 밑에서 하는 일이 아닌, 자신만의 가게를 시작한다는 희망으로 마은은 부족한 자금으로 점포를 구하여 까페를 연다. 번듯한 간판 대신 나무 팻말을 세우고, 점원 없이 혼자서 커피를 내리고 스콘을 굽는다. 부족한 경비를 아끼기 위해 고시원을 나와 숙식도 까페에서 하기로 한다.

열심히 장사를 하지만 손님은 많지 않고 많지 않은 손님 중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속을 알 수 없는 접근을 해오는 사람, 까페 문을 닫고 혼자 잠을 자는 동안에는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두려움을 느끼는 불안한 생활이다. 

마은 외에 또다른 인물로, 자영업은 아니고 회사에 다니지만 역시 만족보다는 불안을 더 크게 느끼고 사는 보영이 등장한다. 승진이 보장되지 않는 회사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도 고단한데, 새로 들어온 후배를 경쟁 상대로 의식하자니 그나마 승진에 대한 희망도 불투명하다. 보영이 어쩌다 들른 마은의 가게에서 마은과 이야기를 트게 되고 서로 은근히 공감대를 느낀 둘은 서서히 친분을 쌓아간다. 

딸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엄마의 결의, 임신을 하고 결혼을 앞둔 여자 선배로부터,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인내심과 책임이라는 고백, 이 세상에 대해 적대적이고 투쟁적인 이모, 이웃에서 역시 작은 카페를 하는 솔이 등, 등장하는 여자들 그 누구도 안정적이기 보다는 불안한 현실을 인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결국 솔이가 하고 있던 이웃 카페도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마은의 카페도 문을 연지 일년 만에 문을 닫아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에 이른다. 

손익을 따지자면 하루라도 빨리 문을 닫는게 순리인 상황에서 마은은 우연히 카페에 온 손님들이 카페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의 의견을 듣는 순간 마은은 손님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수동적으로 운영하던 카페에 개선해볼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문을 닫기로 결정하기 전에 아직 해볼 것들이 남아 있음을, 자신에게 그럴 의욕이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카페를 실제로 운영했던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소설이라는 것을, 그녀의 이력을 아는 사람이면 다 짐작할 것이다. 결말도 실제 경험대로 마무리 했다가 주위의 조언을 받아들여 희망적으로 맺었다는 작가 후기가 있었다. 독자들에 대한 배려이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마음으로도 읽힌다.

이전에 읽은 이서수의 다른 책들이 그러했듯이 이 작품 역시 조용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분명히 전해진다. 삶의 어느 시기가 되어야, 어떤 모양새를 갖추어야 우리는 불안하지 않고 내 자리를 찾았다는 안정감에 이를 수 있는 것일까.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 있는 시절도 있을 것이고, 불안의 끝이 안보이는 가운데 억지로 살아지는 시절도 있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나와는 다르다고 보는 대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위로를 받고, 힘을 낸다.

자잘한 에피소드로 엮어나가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장편으로 끌고 가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라고 본다. 

마지막에 주인공 마은이 아닌 길고양이 삼색이를 화자로 하여 마은의 심리를 대변하는 방식은, 이 작가를 다른 어느 작가와도 다르게 봐야할 이유를 만들고 말았다. 

이것으로 이서수 작가의 장편소설 세편을 다 읽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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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1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서수 전작 읽기 하시는가 봅니다. 이번에도 작가가 h님을 실망시키지 않았나 봅니다.^^

hnine 2024-10-19 11:46   좋아요 0 | URL
이름 보면 주저없이 읽게 되는 작가가 몇 있는데, 이서수 작가는 가장 최근에 그런 대열에 들어온 작가랍니다. 아직은 실망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길 바라고 있지요. 앞서 읽은 ‘당신의 4분 33초‘, ‘헬프미 시스터‘가 조금 더 좋았어요.
 
새벽의 복사꽃
김단비 지음 / 팩토리나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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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책 내용에 대해서도, 전혀 사전 지식 없이 읽게 된 책이다.

예전과 달리 정석대로 등단해야만 작가가 되고 책을 내는 시대가 아니라고들 하니, 그렇지 않은 경로로 출판된 소설을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K-스토리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소개글이 있기에 골라보았다. K-스토리 공모전은 아이디어와 스토리가 뛰어난 작품과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하여 쌤앤파커스, 리디북스, 쇼박스, 아크미디어가 함께 개최하는 공모전이라고 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1957년. 지금 세대들은 물론이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분류하자면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한 역사 로맨스라고 할까. 정치적 격변 속에서 만난 두 청춘의 사랑과 갈등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인 백도야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친일파인 아버지와 뜻이 맞지 않아 집에서 나와버렸고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국숫집 종업원으로 일하며 학생 운동 모임에 참여한다. 또다른 주인공 이한이는 가난과 폭력 속에서 정치 깡패가 되지만 우연히 백도야를 만나고부터 단순한 깡패 생활을 청산하고 도야에게 잘 보이기 위해 빨갱이를 탄압하는 일에 가담하지만 도야와의  관계는 오히려 어긋나기만 한다. 이들의 엇갈림과 복잡한 감정은 복사꽃 언덕에서의 재회를 상징적인 목표로 삼으며 시대의 상처를 극복하고자 하는 희망을 암시한다.

어떻게 보면 줄거리가 다소 익숙한 전형적인 서사로 느껴질 수 있다. 1950년대 혼란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정치적 신념이 다른 두 인물이 사랑하지만 결국 비극적으로 엇갈리는 이야기는 역사 로맨스 장르에서 자주 사용되는 플롯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가진 장점이라면 1950년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소외된 이면을 잘 조명하고 있다는 점,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주제나 설정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으나, 문장이 서정적이고 매끄러워서 읽어나가는데 부자연스럽거나 어려움이 없었다.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을 확실한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K-스토리 공모전 취지에 부합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다른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나보는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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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때 어쩌다가 월간 샘터를 정기 구독 했던 시절이 있었다. 왜 하필 샘터였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학생이던 때 내 용돈으로 정기구독할 수 있는 범위의 가격대이기도 하고, 거기 실리는 정채봉 시인, 최인호 작가의 연재, 이해인 수녀의 글, 법정 스님의 글을 매월 읽을 수 있는 것이 좋았고, 화려하지 않아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었던 것 같다.

얄팍한 책의 처음 부터 끝까지, 광고, 목차, 맨 뒤의 기자, 편집자의 한마디까지, 거의 빼놓지 않고 다 읽는 것은 버릇이었다.

내가 '한강'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바로 그 샘터지의 맨 마지막 페이지, 편집 후기 에서였다. 한강이라는 이름이 특이해서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는데, 다른 기자들의 몇 줄 소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의 글들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한달에 한번씩 읽던 한강 기자의 편집 후기를 어느 호부터인가 읽을 수 없게 되었다. 다른 기자 이름이 올라오고 한강 기자의 이름은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출판사를 그만 두었나보다 했다. 

나의 샘터 구독은 계속 되어 책꽂이의 한 줄을 다 차지하기에 이르렀는데 친구 중 하나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집에 있느라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있는 샘터를 다 싸다가 친구에게 가져다 주었다. 부담없이 읽기에 좋을 거라면서. 

"다 읽고 나서도 버리지는 말아줘. 내가 한권도 안 빼놓고 모아놓고 있거든."

친구에게 당부했다.

그런데, 나중에 친구에게 돌려받은 샘터 꾸러미에는 듬성듬성 빠진 호가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하고, 그 후부터는 열심히 모으기를 그만 두었던 것 같다.


몇 년 후 한강이라는 이름을 서저의 신간 코너에서 보게 되었다. 

'아, 예전의 그 기자! 작가로 데뷔했구나.'

알고 보니 나의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작가 한승원 소설가의 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의 책 꽂이에 있던 한승원 작가의 책이 '앞산도 첩첩하고'였던가.


Youtube도 없던 시절, 팟캐스트로 열심히 듣던 <문장의 소리>라는 방송이 있었고 (지금은 Youtube로 들을 수 있다), 한강이 사회자로 진행했던 때가 있었다. 나즈막하고 톤이 없는 목소리로 그날 초대받은 작가와 조곤조곤 나누는 대화를 듣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몇년 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사회자로 진행하던 때에는 한강이 초대작가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신형철이 한강 작가를 얼마나 좋아하고 높이 보는지 들으면서도 여실히 느껴졌었다.


적어도, 노벨상을 받았다는 소식으로 한강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이 아니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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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10-1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샘터하면 오래전 집에 있던 조그만 잡지로만 기억하는데 최인호 작가님의 가족이란 연재소설이 기억나네요^^

hnine 2024-10-16 19: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조그만 잡지로 나오던 시절 이야기랍니다. 지금은 전자책으로도 나오고 판형도 커졌더라고요.
최인호 작가님의 ‘가족‘ 저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딸 아들 이름이 다혜와 도단이라는 것은 지금도 기억나요.
법정 스님도 샘터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지요.
 
깨끗하고 밝은 곳 쏜살 문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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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알려진 가장 짧은 소설은 헤밍웨이가 쓴 여섯 단어 짜리 다음 글이라고 알려져 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단 한 번도 신지 않았음)


여섯 단어로도 읽는 순간 바로 뭔가 분명히 전달되는 것이 느껴지는 글이다.

그에게 노벨상과 풀리처 상을 안겨준 작품들은 모두 장편. 그가 쓴 단편은 나로선 이 책으로 처음 읽어보는 것 같다.

얇고 자그마한 책 속에 다섯 편의 짧은 소설이 들어 있다.


깨끗하고 밝은 곳 (A clean, well-lighted place)

다 읽고도 주제가 무엇인지 금방 감이 안 와서 두어번 다시 읽어도 시간이 별로 안 걸릴 정도로 짧다. 겨우 네 장.

늦은 밤까지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노인, 그리고 어서 카페 문 닫고 집에 갈 시간을 기다리는 카페의 두 웨이터가 등장인물이다. 노인은 돈이 많지만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두 웨이터는 노인이 왜 자살을 하려했을까 추측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고독과 절망에 빠져있는 노인에게 카페는 잠시나마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깨끗하고 밝은 곳'이다. 하지만 이 고독은 두 웨이터에게도 존재하며, 젊은 웨이터 보다는 나이가 많은 웨이터에게 깊어서, 카페를 나와 젊은 웨이터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나이 많은 웨이터는 다른 술집을 찾아 들어간다. 늦은 밤이 되어도 여전히 깨끗하고 밝은 곳으로 남아 있는 곳을 찾아가며 웨이터는 허무함을 잊고 싶어하는 노인을 이해하게 된다.


살인자들 (The killers)

조지는 카운터 일을 하고 있는 식당에 두 명의 살인청부업자 맥스와 알이 찾아와 스웨덴 출신의 과거 권투선수 올레 안드레슨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들은 식당 주인과 다른 손님인 닉 애덤스를 협박하며 기다리지만 결국 안드레슨이 나타나지 않자 식당을 떠난다. 이후 닉 애덤스는 이 사실을 전하러 가지만 안드레슨은 이미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듯 아무런 저항 없이 체념한 상태이다. 올레 안드레슨의 이런 태도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인간의 비관적인 시각을 반영한다. 살인자들은 단순히 임무를 수행할 뿐이고 폭력은 그들에게 아무런 감정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 사회의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면, 그리고 도덕적 무력감을 상징한다.


병사의 집 (Soldier's home)

전쟁에 참전했다가 고향인 오클라호마로 돌아온 해럴드 크레브스는 전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고향 사람들은 이미 전쟁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갔고 크레브스의 전쟁 경험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려 하지만 사람들은 전쟁 이야기에 피로감을 느낀 상태. 결국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된 전쟁 이야기를 하게 된다. 집에선 가족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감정 표현 하는 것이 힘들어져가서 다시 일을 하는 것, 여자를 사귀는 것 등, 새로운 관계를 맺는 어떤 일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싶지 않다.

전쟁이 인간의 정신과 이후 삶의 방향에 끼친 영향을 헤밍웨이는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s of Kilimanjaro)

해리는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 근처의 사파리에서 감염된 상처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아내 헬렌과 함께 있지만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는 젊었을때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지만 부유한 여성과 결혼해 안락한 삶에 안주하여 글쓰기에 열정을 쏟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후회한다. 킬리만자로 산 정상의 녹지 않는 하얀 눈은 도달할 수 없었던 예술적 열망을 상징한다. 삶의 허무감을 절감하면서 죽어가는 해리가 킬리만자로 산의 눈 덮인 정상으로 올라가는 환상을 보는 것은 마지막 순간에라도 내면의 정화나 구원을 찾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 (The short happy life of Francis Macomber)

주인공 프랜시스 매코머와 아내 마거릿은 사냥 가이드 로버트 윌슨과 함께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사냥을 즐긴다. 매코머는 처음 사냥에 나섰을 때 사자와 마주하자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실수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 자신이 비겁하다는 수치심과 아내가 자신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남편의 나약함에 실망한 아내 마거릿은 그날 밤 사냥 가이드 윌슨과 불륜의 관계를 맺는다. 다음 날 매코머는 물소 사냥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발휘한다. 자신이 공포를 이겨냈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회복하여 마침내 내면의 변화를 겪으며 이전과 다른 자존감을 가진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데, 그의 아내가 실수로 그를 쏘아 죽이게 된다. 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는 갑작스런 비극으로 끝나버리며 결말을 맺는다. 인간 본성과 두려움, 권력 관계를 극복하여 어렵게 행복을 느끼는 때가 오지만 곧 비극적으로 끝나고 마는,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를 통해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젊어서 부터 세계 여기 저기를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헤밍웨이의 작품의 스타일은 뚜렷하다. 간결하고 정제된 문장으로 삶과 죽음, 허무와 절망, 고독을 담아낸다. 시종일관.

모든 작품 속 인물에 헤밍웨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 읽힌다. 



"킬리만자로는 해발 6000미터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서쪽 정상은 마사이어로 '응가예 응가이', 즉 신(神)의 집이라고 부른다. 이 서쪽 봉우리 가까이에는 바짝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하나 있다.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이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다."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의 첫 문단)



킬리만자로 산 봉우리까지 올라가서 바짝 말라 얼어 죽은 표범 역시, 그냥 올라간 것이 아니라 무엇을 찾아 올라갔다고 본 작가의 또다른 분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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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지음, 이진경 옮김 / 상상의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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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loved.'

'너는 사랑받고 있다'라는 말로 해석하지만 어쩐지 우리 말로서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아 더 좋은 표현이 없을까 한참 생각했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책의 메인캐릭터는 넷.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다.

소년이 케이크를 사랑하는 두더지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년은 두더지와 대화를 나누며 함께 걷는다.

걷던 길에 덫에 걸려 곤궁에 처한 여우를 발견하고, 두더지는 덫을 갉아 여우를 덫에서 풀어준다.

이제 소년은 두더지, 여우와 함께 걷는다. 그리고 말을 만난다.  

넷은 서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어주기도 하며 걷고 또 걷는다.




찰리 맥커시. 1962년 영국 출생,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개인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려놓는 일을 하고 있던 중 올려놓은 그림 아래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댓글에 찰리는 친절하게 다시 댓글을 달면서 '대화 (conversation)'로 이어나간다. 그러다가 출판사로부터 책으로 만ㅁ들어보자는 제의를 받게 된다. 그렇게 그는 그림 그리는 화가에서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그림은 '용기'에 대한 것.





"네가 했던 말 중 가장 용감했던 말은 뭐니?" 소년이 묻자 말이 대답한다.

" '도와줘'라는 말."






















Life is difficult.

But you are loved.


삶은 힘겹지만 넌 사랑받고 있어.




삶이 힘겨울때 우리를 일으켜세우는 것은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 속에 생겨났고 사랑으로 키워졌고 사랑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사랑으로 계속 갈 수 있다는 것.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필요하고 그런 상대가 되어주는 것, 나는 그것을 덧붙이고 싶다.

찰리가 자기의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답장을 달아주었듯이, 책에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 그러했듯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가능할 것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을 선 채로 그 자리에서 다 봐버렸다. 멈출 수가 없어서 빨려 들어가 한장 한장 넘기다 보니 마지막 장.

그런데 놓고 나오고 싶지가 않았다. 대출해서 다시 읽고, 사진도 찍고,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서 한참을 끼고 있었다.

찰리 맥커시는 "The Spectator"의 만화가로 시작하여 Oxford University Press의 북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하였다. 모노톤의 단순화된 선으로 사랑과 우정, 친절, 연약함 같은 섬세한 감정을 그려내는 그의 그림은, 전통적 일러스트레이션과 현대적 스케치를 융합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간단하지만 지혜로운 충고 (simple but saged advice).

아래 동영상에서 인터뷰어가 성인을 대상으로 하고 그렸냐고 묻자, 누구든지 (anyone)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답한다.

이 책은 12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고, BBC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찰리의 목소리로 오디오북으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따뜻한 목소리로 정신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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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24-10-08 0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좋아하는 책이예요. 두번째, 일곱번째 그림은 다시 봐도 울컥합니다.

hnine 2024-10-08 03:25   좋아요 1 | URL
예, 잘잘라님 서재에서 봤어요 ^^
이런 책 한권 남길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는 동안 이런 것 직접 깨우치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