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ive Kitteridge (Paperback) - NYT 선정 "100 Best Books of the 21st Century"
Strout, Elizabeth 지음 / Random House Inc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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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아노 선생님은 30대 초반. 나이로는 나보다 한참 젊다.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중 무겁고 진지한 곡을 칠때 그런다. 살면서 어둡고 힘들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치면 좋은데 자기는 아직 그 정도로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올리브 키터리지 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했다. 인생의 밝고 즐거운 면 보다는 허망하고 쓸쓸하고 피할 수 없는 진실을, 겪은 듯 보여주는 책이라고. 선생님은 제목을 받아적었다.

그러고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두번씩 읽은 책이고 피아노 선생님을 비롯해서 몇몇 친구들에게 권하기도 한 책인데, 과연 누구에게나 권할만 한 책이었는가.

이 책의 문학성이나 가치를 폄하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보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어느 날 이해 못할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책, 사건보다는 내면, 쓸쓸함, 외로움, 분노, 체념으로 가득 찬 책. 다정한 면은 그저 간간히 표현되는 정도. 과장이 없어 더욱 몰입하게 되고 절절하게 느껴지는 책. 사람 사는게 이렇다고, 이런 진실을 꼭 책까지 읽으면서 알아야 할까. 읽어보라고 권할만 한가. 누구에게는 상처를 더 키우는 일은 아닐까.

안그래도 사는 건 만만치 않다. 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그걸 확인시켜 주는 어떤 것 보다 오히려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글의 필요성을 느낄 때가 많은데 말이다. 

저자에게 묻고 싶던 차에 이 책의 뒤에 보니 부록으로 출판사 독자 모임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미국 메인주의 크로스비 마을의 도넛 가게에서 가상으로 만나 나누는 좌담의 글이 실려 있어서 흥미있게 읽었다. 서로 묻고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게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중 어떠 인물이 가장 쓰기 쉬웠냐는 물음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바로 대답한다. 올리브 키터리지였다고. 그녀의 행보를 따라가는 과정에 확신이 있었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저자는 분명히 이 책을 쓰면서 올리브라는 인물에 대해 확실한 그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저자가 올리브의 입장에서만 쓰지 않았음을 알수 있다는 것이다. 헨리와 드니즈의 관계를 읽으면서는 ('Pharmacy') 올리브를 생각하면 안타까우면서도 헨리 마음의 움직임과 드니즈의 순수함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Starving'에서 하몬과 데이지를 볼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올리브라는 인물의 성격에 대해 적응이 되어있는 상태였음에도 아들 크리스토퍼가 지금까지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해 무서울정도로 침착하게, 두려움없이, 거의 고발하는 수준으로 쏟아낼때 ('Security') 놀라는 올리브도 눈 앞에 보는 듯 했지만 동시에 그동안 크리스토퍼가 어릴 때부터 엄마로부터 받고 싶었으나 받지 못했던 것들이 얼마나 절실했던가 이해가 되어 가슴 아팠다. 

제일 우울하고 어두웠던 느낌을 받은 것은 'Tulip'. 인물 이해가 좀 어려웠던 것은 'Criminal'의 레베카. 

슬픔은 개인적이지만 삶은 개인의 비극을 배려하지 않고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준 'Incoming tide'의 케빈이 마지막에 패티를 구해내는 대목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읽는 내내 절망과 회의를 주기만 한 것은 아닌가보다. 마지막 단편 'River'에서 70이 넘은 올리브가 아직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한 것 처럼.


이 책을 통해 냉기 뿐 아니라 온기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안전하게 읽어보라고 권할 것이다. 나는 아마도 냉기를 좀 더 많이 느꼈는지도 모르고, 책을 책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너무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나이에도.

이 책의 저자에게 감탄한다. 그래서 이 책을 누구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 전에 이젠 한번 더 생각할  것 같다. 읽는게 득이 될 사람인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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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5-25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생각입니다. 그러니깐, 이 책의 서늘한 문장들을 감당할만한 사람인가. 이런 경험이 없었는데, 이런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이리 예민해져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요.
그래서, 저도 이 책이 참 좋았고, 한편으로는 좀 불편하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오늘 올려주신 글, 너무 좋아서 꼼꼼하게 잘 읽고 갑니다. 좋은 날 되세요^^

hnine 2026-05-25 11:12   좋아요 3 | URL
단발머리님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 계시다니 더욱 반갑구요.
위에 말한 저의 피아노 선생님처럼, 아직 삶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이런 책이 간접 경험도 되고 삶에 대한 시선을 멀리 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저처럼 웬만큼 연식이 있는 사람 (^^)에게는, 안그래도 고달프로 회의가 늘어가는 인생의 시점에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고, 고개는 자꾸 아래로 수그러지게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저처럼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심각하게 보는건 아닐테고, 이런 책 쯤 읽어도 끄떡없이 자기가 살던대로 꿋꿋이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제가 또 너무 갔나요? ^^
분위기 전환겸, 지금 아주 다른 분위기의 책을 읽고 있어요. ‘나는 자유‘라는 제목의, 갈매기의 꿈을 쓴 작가 의 에세이인데, 분위기 전환이 되고 있네요.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벌써 더워 허덕거리고 있어요.
 

























Basket of Trips (여행 바구니)

 

 

간추린 내용:

 

남편과 함께 오랫동안 마을 식료품 가게를 하는 Marlene의 남편인 Ed의 장례식장에 Marlene을 도와주기 위해 참석한 OliveMolly는 아름답진 않지만 친절하고 잘 웃는 성격의 Marlene을 동정한다.

남편이 죽은 후 Marlene, 위층에 살며 가족처럼 지내던 세련되고 멋쟁이인 Kelly로부터 죽은 남편과 Kelly가 오랫동안 불륜 관계였음을 고백받는다. Kelly는 그 사실을 Marlene뿐 아니라 Marlene의 아들에게까지 털어놓았음을 알고 Marlene은 망연자실하고, Olive에게 남편 생전에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며 모아놓았던 여행 소책자들이 담긴 바구니를 가져가 없애 달라고 부탁한다.

Olive는 남편 Henry와 함께 아들 크리스토퍼와 며느리 사이에 손녀가 태어나기를 기대하며 즐거워하던 일을 회상하며, 한때 행복과 기대를 주던 꿈, 계획, 희망이 시간이 지나고 물거품이 되는 것에 대해 허망해한다. 이래도 되는지, 이게 옳은 일인지.

 

 

표현들:

 

slick as a whistle

- 아주 매끈하고 세련된

 

No frills

- 간소화된, 저가형 (=bare-bones, austere)

 

feigning nonchalance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You could laugh your head off.

- 그건 정말 배꼽 잡고 웃을 만한 일이야.

(* laugh one’s head off 아주 크게 웃다)

 

Put me to work

- 나에게 일을 시켜/나를 활용해/ 나 써먹어도 돼

 

terse

- 퉁명스러운

 

Hells bells

- 젠장/이런/아이고 (욕설을 직접적으로 안 쓰고 대신 쓰는 완곡한 표현)

 

He had his basket of trips.

- 그는 여행 갈 준비를 다 해둔 상태였다.

 

토하다

-throw up (가장 일반적)

-vomit (의학적, 공식적)

-puke (조금 거친 느낌)

 

Jesum Cow

- (감탄사)세상에/이런

 

 

 

 

Ship in a Bottle (병속의 배)


 

간추린 내용:


미인대회 출신의 엄마 Anita는 파혼하고 무기력해 있는 딸 Julie에게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여 평소의 루틴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You’ll have to organize your days.

너는 너의 하루하루를 스스로 정리하며 살아가야 해.

God has his hands full without you calling upon him in vain, Routine is what makes prisons and armies work.

이미 신에게는 이 세상 해결할 문제와 고통이 넘치는데 사소한 일로 신을 불러들이지 마. 규칙적인 반복과 일상이야말로 감옥도 군대도 돌아가게 만드는 힘이란다 (규칙적인 반복과 일상이야말로 사람을 통제 가능한 존재로 만든단다.).

Anita의 남편 Jim은 지하실에서 배를 만들고 있는데 매우 커서 지하실을 거의 다 차지할 정도로 보인다. 작은 딸 Winnie는 나중에 그걸 어떻게 꺼낼지 의아해한다.

Julie는 동생 Winnie에게 예전에 선생님이었던 Olive가 했던 말을 전해준다.

Don’t be scared of your hunger. If you’re scared of hunger, you’ll just be one more ninny like everyone else.

배고픈 걸 무서워하지 마. 배고픈 것을 무서워하면 결국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겁 많고 시시한 또 한 사람이 될 뿐이야.

이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JulieWinnie에게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간다.

배고픈 생활이 될지도 모르지만 병속에 갇힌 배가 되기를 거부하고 세상으로 나아간 언니를 보며 Winnie는 계속 배를 짓고 있는 아버지에게 배를 다 만들면 무얼 할 건지 묻는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배이지만 그 배는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채 병 속에 들어있는 배일 뿐이다.

 

 

 

Security (안심) --> (번역본의 제목은 불안’)


 

간추린 내용:

 

Olive의 아들 Christopher는 첫 결혼의 부인과 헤어지고 두 아이를 가진 여자 Ann과 재혼하여 뉴욕에 산다. Christopher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지게 되자 Christopher는 엄마인 Olive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Olive는 기쁜 마음에 기대를 가지고 처음 혼자 비행기를 타고 뉴욕의 아들 집에 간다.

보고 싶던 아들, 그리고 아들 가족과의 만남이었지만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 기대와 다른 아들의 사는 모습에 Olive의 마음은 편치 않고 아들 집에 와서까지도 아들과의 소통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으로 견디기 어려워지자 Olve는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고, Olive의 이런 결정에 Christopher는 일관성이 없고 극도로 변덕이 심한 엄마의 고약한 성격 때문에 힘들어 왔음을 다 쏟아낸다. 매우 놀라 상처를 입은 Olive는 멍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탄다.

 

표현들:

 

Olive Kitteridge had been swept off her feet.

올리브 키터리지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렸었다.

*sweep someone off their feet 푹 빠지게 만들다. 강하게 매혹시키다.

 

went berserk

완전히 이성을 잃고 폭발했다. 미친 듯이 날뛰었다.

 

accountability

책임성. * responsibility (맡은 일) 보다 강한 의미





Criminal (범죄자)


 

간추린 내용:

 

엄격하고 억제된 환경에서 자란 레베카는 성인이 되어서도 정신적으로 불안증을 가지고 있어 뜻대로 일자리도 얻지 못하며 지내고 있다. 억눌림과 불안증, 화를 억누르며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사소한 물건들을 훔치는 습관으로 힘들어하는 레베카는 어느 날 밤 집에서 바비큐 스타터, 라이터 등 불을 지르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가방에 챙겨서 그날 낮에 그녀에게 냉정하게 대했던 의사의 진료실로 향한다. 이 정도라면 범죄자로서 체포될 만하다고 생각하면서.

 


표현들: 


Confidence is the name of the game.

결국은 자신감이 전부다.

 

Rebecca felt a tiny smile inside her getting larger - how delicious it would be: that one moment of perfect joy, propped up and righteous with booze, to let that first punch fly. (복잡한 문장구조)

레베카는 마음속 작은 미소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술기운에 기대어 마치 정당한 듯 들뜬 상태에서, 완벽한 기쁨의 그 순간-그 첫 주먹을 날려버리는 장면이 얼마나 달콤할지 떠올렸다.

 

I bet legally that makes me some kind of criminal.

법적으로 따지면 내가 범죄자가 되는거 아냐?

 

It would be worth the arrest if they put it like that.

설령 체포될 수 있는 상황이라도, 그렇게 말할 정도로는 충분히 의미 있고 정당하다.

 

 

레베카의 복잡한 심리 상태 때문에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쏭달쏭한 문장들이 있다. 레베카는 무엇을 훔치거나 잘못하기 전부터 이미 자신을 범죄자로 보는 것 같다. 아버지로부터의 엄격한 훈육,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 편지를 보내도 한번도 답장을 하지 않는 엄마. 레베카는 자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죄악시하는 증세를 가지고 작은 절도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자기의 그런 망상을 확인하고 증명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River ()



(이 책의 마지막 단편이고 마지막에 어울리는 내용이었다.)

 

간추린 내용:

 

올리브는 남편 헨리가 세상을 떠나고 무의미하고 적막한 시간을 보내며 이런 상태라면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생각한다. 매일 하는 일과로 개를 데리고 강가를 산책하던 중 올리브는 예전에 안면은 있지만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또래 남자 잭이 강가 벤치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도움을 준다. 잭은 오래전에 마을을 떠났다가 다섯 달 전 아내가 죽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역시 혼자 공허하고 외롭게 지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동병상련을 느낀다. 올리브는 처음에 가지고 있던 불호감은 점차 호감으로 바뀌어 가며 잭과 만남을 계속하면서 젊었을 때 몰랐던 사랑이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바로 잡으며, 아직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자신을 발견한다.

 

 

표현들:

 

I’m not the least bit sophisticated.

나는 조금도 세련된 사람이 아니야. ‘

 

kitty-corner

대각선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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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25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완독하셨군요!

인용하신 부분중에 병속의 배 부분이요, 이 배를 다 완성하면 밖으로 어떻게 꺼낼지 묻는 장면, 그 장면 읽으면서 저도 ‘앗!‘ 했거든요. 아버지도 미처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저는 마지막 <강>에서 잭으로부터 전화가 왔을때 무지개같다고 표현한 그 부분을 정말 좋아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나인 님!

hnine 2026-05-25 22:00   좋아요 0 | URL
<병속의 배>는 특히 메타포가 뛰어난 단편이었어요. 배를 열심히 만들기만 할뿐 배의 앞날에 관심이 없는 아버지. 이런 집, 이런 환경에서 계속 있다가는 병속의 배가 될것임을 짐작한 큰딸 Julie.
인생에선 이렇게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데, 내 인생 어느 대목에서 용기를 가지고 결단을 내린 적이 있던가...또 이런 생각에 빠지기도 했지요.
마지막 단편 <강>이 갖는 이미지와 올리브의 생각의 변환, 흐름도 좋았고요.
이 책은 수작 (秀作) 맞아요. (그래서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요.)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읽었어요. 첫번 읽을때와 두번째 읽을때가 이렇게 다르게 읽힐수 있나, 놀랐답니다. 그동안 제가 많이 변한거죠.
두번 읽게 계기를 마련해주신 다락방님, 감사드려요.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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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름을 잘 기억못하는 편은 아닌데 일본 이름은 여전히 낯설다. 더구나 일본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 아니다보니 그나마 몇 권 읽었던 소설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와 미야모토 테루를 구별못하고 고른 책이 이 책 <환상의 빛>이다.

미야모토 테루. 1947년 일본 고베 출신으로 올해 79세,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중 한 사람이다. 서정시가 사라진 시대에 서정성이 두드러진 소설을 주로 써왔으며 <환상의 빛>은 1977년 그가 소설가로 데뷔하던 해에 발표한 소설이다.

"어제, 저는 서른두 살이 되었습니다." 주인공 여성 유미코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첫 페이지부터 확 빠져들 정도로 문장이 조용하면서도 매력있었다.

이렇게 이층 창가에 앉아 따스한 봄볕을 쬐면서 잔잔한 바다와 일하러 나가는 그 사람 차가 꼬불꼬불 구부러진 해안도로를 콩알만 하게 멀어져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몸이 다시 꽃봉오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삐걱삐걱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말하는 대로 눈 앞에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것 같았다.

바닷가 마을로 시집온 유미코는 올해 32살. 칠년 전에 남편이 아무 이유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고 결국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유미코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죽은 전남편의 환상을 보며 계속해서 한 가지 질문에 사로잡혀 사는데, "왜 그는 그날 떠났을까?" 하는 것이다.

하늘색 와이셔츠 위에 회색 블레이저 코트를 입고 약간 등을 구부린 특유의 모습으로 혼자 묵묵히 이슥한 밤의 선로 위를 걷고 있는 당신의 뒤를 좇으면서 저는 열심히 그 마음속을 알려고 기를 썼습니다. (23)

작품은 사건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는 대신 남겨진 사람이 느끼는 이해할 수 없는 상실과 질문을 따라간다. 남편이 왜 죽었는지를 밝혀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끝내 알수 없는 이유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혼을 빼가는 병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중요한 혼을 빼앗아가는 병을, 사람은 자신 안에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 , 보세요. 또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82)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유미코는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그 심상치 않은 기운이 누군가의 마음을, 혼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두번째 단편 <밤 벚꽃>에서도 비슷한 정서가 느껴진다.

주인공 아야코는 남편 유조의 외도로 이혼했고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일년 전 아들 슈이치마저 교통사고로 잃는다. 벚꽃이 한창이던 봄 날, 어떤 신혼 부부가  찾아와 아야코의 집 2층 방에서 하루만 자고 갈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해온다. 어떡해야 할지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가 마지못해 허락을 한 아야코는 그날 밤 활짝 핀 벚꽃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드는데, 이 순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정서가 있고 그 속에서라면 자기가 아닌 무엇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감상에 빠진다.

이 단편 역시 특별한 줄거리가 있다기 보다 서정적인 감정의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세번째 단편 <박쥐>에서 주인공 남자는 오래전 고등학교때 친구였던 란도의 소식을 듣는데, 란도가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야쿠자 조직에 들어갔다가 죽었다는 소식이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란도가 퇴학당하게 된 사건에 관련이 있던 주인공은 자신과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고 여겼던 친구 란도의 그 당시 상황과 자기의 현재 상황이 시간차가 있을 뿐 묘하게 닮아 있음을 발견 한다. 


마지막 작품 <침대차>에서는 주인공 남자가 출장을 가느라 타게 된 침대차에서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나게 되고 그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것을 계기로 어린 시절의 잊을 수 없는 한 사건을 떠올린다. 


이 책에 실린 네 작품은 공통적으로 상실, 외로움, 불안을 그리고 있다. 확실한 사건이나 기억 대신, 모호하고 뚜렷하지 않은 기억을 얘기한다. 줄거리보다는 분위기이며 해결되지 않는 물음이다.

이중 <환상의 빛>은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영화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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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두 작품은 앞의 것들보다 그래도 읽기 쉬웠다.

둘 중 Tulips는 너무나 쓸쓸하고 우울하고 감정이입이 되어서 남편에게도 읽어보기를 권하며 그의 의견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내가 읽은 책을 소개하고 의견을 말하는 적은 많아도 읽어보라고 권하는 적은 거의 없는데 이것은 그랬다. 모든 부부에게 올수 있는 일 같아서였다. 읽어보더니 남편은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속해서 읽지를 않고 가끔가다 읽다보니 속도가 영 지지부진하다. 그러면 어떤가. 시작했으니 끝내야지.




Winter Concert (겨울 콘서트)



 

내용과 주제:

 

중심 인물은 Bob Houlton (75)Jane Houlton (72) 부부.

부부가 함께 겨울 콘서트에 가는 상황이다.

갈등 없이 오랜 세월을 잘 살아내온 노부부의 분위기로 시작하나, 콘서트 장에서 만난 이웃으로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터져나온, 제인이 모르는 밥의 행적 하나 때문에 그동안 둘 사이에 내재해있던 거리감이 표면화된다.

앞서 올리브와 헨리 부부 사이를 그린 A Different Road 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수도 있겠는데, 차이점이라면 A Different Road에서 올리브와 헨리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각자의 방식을 그대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Winter Concert에서 제인과 밥 부부는 특별한 사건이 있지는 않으나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거리감, 관계의 공허함, 정서적 거리를 보여준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표현들:

 

I’m mental.

-나 좀 이상해. 나 요즘 정신적으로 힘들어.

 

squatty

-땅딸막한

 

a fleeting look

-잠깐 쳐다보기

 

That’s not my dish of ice cream, I can tell you.

-확실히 말하는데,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난 그런 사람 아니야.)

 

mirth

-유쾌한 웃음 소리, 즐거움

 

She saw him give a start.

-그녀는 그가 움찔하는 걸 봤다.

 

Because what they have now, except for each other, and what could you do if it was not even quite that?

-이제 그들에게 서로 밖에 뭐가 남았겠는가. 그런데 그것마저도 온전히 있는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Tulips (튤립)

 

 

내용과 주제:

 

이 작품은 Olive, Henry 부부와 한 동네 사는 RogerLouise 부부 이야기로 시작한다. 과거의 어떤 일이 있은 후로 이들 부부는 마을 사람들과 왕래를 끊고 빈 집처럼 보이는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한지 오래다. 이들 부부에게 아들과 딸이 있지만 딸은 결혼해서 따로 살면서 가끔씩만 들르고, 아들은 좀처럼 찾아오는 법이 없다.

은퇴한 노년 부부로서 소통과 교감이 부족한 채로 지루하고 쓸쓸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OliveHenry 부부. 어느 날 쇼핑을 다녀 오다가 갑자기 Henry가 쓰러진다. 뇌졸중 진단을 받고 식물인간이 되다시키한 Henry는 이후로 계속 요양병원에서 아무도 몰라보고 반응하지 않는 상태로, 간병인이나 Olive가 먹여주고 씻겨 주는 보호를 받으며 침대 생활을 하고 있다, 더욱 적적하고 무의미한 일상을 견뎌야 하는 올리브는 가끔 아들 크리스토퍼에게 전화를 하지만 무심하게 짧게 통화를 끝내는 아들는 올리브로 하여금 옛날을 회상하며 보내는 시간을 더해가며 더욱 외롭게 할 뿐이다.

정기적으로 우체국에 가서 우편물을 찾아오고 있는 Olive는 우편물 속에서 Henry의 상태와 안부를 묻는 Louise로부터의 우편물을 발견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어 인사차 Louise의 집을 방문하는데, 반갑게 맞이하여 대화를 이어나가는 듯 하던 LouiseOlive의 아들 크리스토퍼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서 Olive를 향하여 자기 아들의 불행을 고소하게 생각해서 왔냐는 폭언과 욕설을 하기 시작한다. 당황해서 서둘러 Louise의 집을 나온 Olive. 억울하고 속상한 심정을 털어놓을 데가 없어 더욱 공허하고 속상하다. 아무도 못 알아보고 누워만 있는 Henry를 찾아가서는 이제 내 걱정 말고 그만 죽어도 된다고 말하고

You can die now, Henry. Go ahead. I’m fine. You can go ahead. It’s all right. She did not look back as she left the room. (161)

집에 돌아와 한동안 웅크리고 있다가 알게 된다.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과거도 지나고 보면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고, 당시엔 결코 알지 못하는 그 시간의 귀중함을 지나고 나면알게 된다는 것,

People mostly did not know enough when they were living life that they were living it. (162)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부터 마당에 심고 가꾸어 온 튜울립. 올해도 다시 튜울립을 심을 것인지를 곧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땅이 얼어버리기 전에.

 


표현들:

 

pore over

- 자세히 조사하다.

 

Get yourself a schedule, and stick to it.

- 일정을 짜고, 철저히 지켜.

 

The tulips bloomed in ridiculous splendor.

- 튤립이 터무니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Arrangements get made in life. Accommodations get made.

- 인생에서는 조정이 이루어지고 서로 맞춰가게 된다.

(arrangements: 상황을 맞추는 것, accommodations: 서로 양보하고 적응하는 것)

 

modus operandi

- (특정 사람이 늘 쓰는) 행동 방식/수법/일처리 방식.

그 사람 특유의 방식

 

purse

- (불만 등의 표시로) 입술을 오므리다

 

shadenfreude

- 남의 불행을 고소하게 여김

 

pants on fire

- 꽁무니에 불이 붙어. , 당황해 어쩔 줄 몰라.

 

You couldn’t drag me in there to save my life.

나 죽어도 거기 안가.

*to save my life: 내 목숨이 걸려도. , 절대 안 한다.


It would hardly save your life.

- 그게 네 목숨을 구해줄 것도 거의 아니야.

 

chastisement

- 응징




우울하고 울적하기만 하다는 남편의 독후 소감이 이해되기도 한다. 몇십년 살아온 부부의 마지막, 나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키워온 자식과의 관계의 끝, 인생의 종착지가 이 작품과 같다면, 그걸 알고 있다면 누가 오늘을 견디고 버티며 내일을 향해 갈수 있을까.

그런데 내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Tulips의 마지막 문장. 즉, 올해도 땅이 얼기 전에 튤립을 다시 심을 것인지의 문제를 생각하는 Olive의 모습에서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까뮈는 그 책의 시작을 '결국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는 죽음'이라는 명제로 들어가지만, 결론을 회의적으로 맺지 않았듯이 Olive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살아가면서 집중할 것은 튤립 구근을 다시 심고 키우고, 더 잘 키우는 문제들, 그런 것들이 아닐까.

어찌보면 상당히 비논리적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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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ifferent Road  (다른 길) 


(결혼 생활은 사랑보다 패턴에 가까운 것일까?)


올리브와 헨리가 친구집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길.

갑자기 화장실 이용이 급했던 올리브는 어느 병원 응급실을 잠시 이용하기로 하고 차를 세워들어갔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무장강도를 만나 의사, 간호사와 함께 인질로 잡히게 된다.

급박하고 긴장된 시간을 보낸 끝에 경찰이 강도들을 체포하고 둘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병원에서 인질로 잡혀있던 위기의 순간에 서로에게 던진 말때문에 올리브와 헨리는 그동안의 서로의 결혼 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side with~

~ 편을 들다.

ex. Siding with the nurse like that.

저렇게 간호사 편을 들다니.


put down

깎아내리다.모욕하다.

ex. For putting down Pauline earlier,

아까 전에 폴린 (헨리의 엄마)을 깎아내린 것


nippiness

혹독함



제목 A different road의 의미와 연관지어 이 단편의 주제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1. 수십년 같이 산 부부이지만 서로 살아온 방식은 다르다.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다. 방향이 같았을 뿐.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를 걸어왔다고 해서 같은 방식으로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살고 있다가 극한 상황이나 위기 상황에서 갑자기 깨닫게 될 수 있다.


2. 한 사람의 생각이나 사는 방식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극한 상황에서도 결국 늘 하던 방식대고 반응한다.

간호사는 기도로 반응했고, 올리브는 공격성으로 반응했으며 헨리는 온순함으로 반응했다. 즉, 각자의 본성이 드러난다.


3. 사람은 늘 가던 길로 간다. 다른 길 (different road)이란 거의 없다.



전체 글을 통틀어 핵심이 되는 한 대목을 고르라면,


"You rode along in life a certain way, Olive thought. Just like she'd ridden home from Cook's Corner for years, past Taylor's field, before Christopher's house had ever been there; then his house was there, Christopher was there; and then after a while he wasn't. "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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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8 1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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