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사람이다 - 그 집이 품고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삶
한윤정 지음, 박기호 사진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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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었으니 리뷰를 써야 하는데 내용이 페이퍼에 가깝게 사적인 얘기로 흐를 것 같은 예감이 자꾸 들어 주저하다 시간을 끌었다.

우선 집이 사람이라는 책 제목에 공감한다. 의, 식, 주 중에 먹는 것, 입는 것도 그렇겠지만, 옷보다 음식보다 더 오랜 시간 계획하고 투자해야하고 가꾸어야 하는 집. 오랜 시간이 스며들어있고 앞으로도 오랜 시간 함께 할 집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선 책머리에서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정의를 가늠하여 네 가지를 들어보였다.

첫째, 좋은 집이란 소박한 집이다.

필요한 것은 있고 불필요한 것은 없는 집을 말한다. 상투적이고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물건이 배제된, 단순하고 잘 정리된 공간은 수행자의 거처를 연상하게 만든다고 했다.

둘째, 좋은 집이란 시간이 쌓인 집이다.

오래된 집엔 먼지가 쌓이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이사를 자주 다니느라 아직 오랜 시간 함께 한 집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집이라는 주제가 나오니 개인적으로 나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세째, 좋은 집이란 예술이 태어나는 집이다.

이게 아마 일반인에겐 가장 요원하게 들릴 수도 있는 항목일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예술이란 이전까지 없던 것, 감각을 일깨우는 것, 진선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그런 의미에서 집은 주인의 개성이 가장 잘 표현되는 공간이랄 수 있다. 집은 외부에 눈을 돌리지 않게 만드는 둥지의 역할을 한다는 대목에서는, 혼자 일을 하면서도 집보다 카페를 즐겨 찾는 시대에 살며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네째, 좋은 집이란 공동체를 향해 열린 집이다. 집이 크고 화려할 필요 없다. 이 책에 실린 작가 조은의 집이 그 예이다. 수많은 문인 친구들이 즐겨 찾고 편안해했다는 그 집은 사직동 좁은 골목길을 걸어올라가야 하는 열 몇 평의 집이었다.

 

저자는 이 네 항목에 따라 본문을 네 장으로 나누고 이것을 잘 보여주는 집들을 묶어 각 장 아래 실었다.

위에 말한 시인 조은의 집은 1장 소박한 집에 포함되어 있다. 이 집은 집에 대한 나의 다른 애서인 김서령의 <가 (家)> 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소개된 것을 본 적 있는, 나름 유명한 집이다. 환경운동가 차준엽이 손수 지은 토담집은 그의 인생을 보여주는 집 자체였는데 집주인이 세상을 떠난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소설가 조경란의 집은 사람이 아닌 책이 주인같은 집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담, 김근희 부부의 집을 이 책에서 다시 만났을땐 어찌나 반갑던지.  

 

 

 

수년 전 읽은 이 책은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던 부부가 사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아직도 내가 중고책으로 처분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몇 권 안되는 책 들 중의 한권이다. 유행에 맞게 새로 사서 꾸미는 재미가 아니라 고치고 만들고 가꾸는 재미로 소박하게 사는 부부의 집은 그야말로 부부의 가치관이고 철학이었다. 오랜만에 위의 책도 다시 꺼내 읽어보게 하였다.

 

2장, 시간이 쌓인 집에 실린 여섯 집 중 인상적인 집은 철물디자이너 최홍규와 이화동 성곽마을의 집이었다. 정식으로 디자인이나 건축 교육을 받은 바 없지만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면 된다는 신조로 철물점에서 시작하여 쇳대박물관으로, 이화동 마을박물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에 이른 최홍규씨. 동네가 좋아지면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주민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이화동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워낙 이 동네 집들이 작은 집들이어서 세입자 없이 대개 주인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집값 올라 이익 본 사람은 있어도 손해 본 사람인 아직 없다니 성공적인 사례 아닌가.

 

3장, 예술이 태어난 집에 가장 먼저 나온 집은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의 제주도 소길리 집. 레전드가 된 그녀의 노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때'를 오랜만에 들으며 이 부분을 읽노라니 얼마나 좋던지. 자기 가슴속에 아직 끌어낼 이야기가 남아 있고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리고 그 방법이 음악이라면 노래를 멈추지 말라는 그녀의 삶의 방식은 덜 먹고 덜 입는 대신 자신의 환경에서 좋은 소리와 말로 음악을 만들어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4장, 공동체를 향해 열린 집에서 처음 본 서울 필동 스트리트뮤지엄은 당장이라도 가서 눈으로 보고 싶은 곳이었다. 독특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글로 사진으로 읽고 보고 하여도 감이 잘 안왔기 때문이다. 스트리트뮤지엄이라는 말도 생소하고 남산한옥마을이 모여있던 골목에 박스 형태의 작은 미술관 8개가 들어서 있다니 어떤 분위기와 느낌일까 궁금하지 짝이 없다. 미술관 뿐 아니다. 도서관, 공연장, 레스토랑, 베이커리 카페가 문을 열었다고 하니 이곳은 앞에 든 집들과는 다른 복합문화공간인 셈이다. 한사람의 노력으로 될 일도 아닌 것 같으며 짧은 시간과 안목으로 될 일도 아님이 분명하다.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이 전부인 박동훈씨가 광고업계에서 일을 시작하여 모인 수익으로 동네에 환원하자는 마음에 작은 미술관을 짓겠다는 계획에서 출발했다가 일이 커졌다는 필동 타운 프로젝트. 2013년에 시작되었고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한다. 중학생 나이에 서울로 올라와 그가 한 고생과 여러 일 전전한 이야기는 간략한 소개로 다 모자랄 듯 싶었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듯이 똑같은 집은 없다.

내 집을 둘러보며 생각한다. '우리 집에 가자' 할 수 있는 집인지, 외부에 눈돌리지 않게 만드는 둥지 같은 집인지.

그게 꼭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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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7-0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은 시인의 <벼랑에서 살다>를 읽고 그 분의 집을 마음속에 그려보곤 했었어요. 집이 너무 유명해져서 관광객-_-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시다가 이사가게 되었다고 얘기 들었는데 책에 소개된 집은 그 다음 집일까요?@_@;; 하여간에 읽고 싶어서 보관함에 넣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hnine 2020-07-06 12:57   좋아요 0 | URL
<벼랑에서 살다> 저도 가지고 있는 시집이랍니다. 벼랑에서 사는 기분이 어떤걸까요.
집이 유명해질만도 해요. 조은 시인에 대한 소개글엔 꼭 집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이 책이 2017년에 나왔으니까 아마도 이사를 갔다면 그 후가 되겠네요. 그러고보니 이사갔다면 이사간 그 집은 어떻게 해놓고 살지 벌써 궁금해지네요 이런.

2020-07-06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06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0-07-06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희집은 아닌것 같아요. ㅎㅎ 어째 해당되는게 하나도 없는것 같다니... ㅠㅠ

hnine 2020-07-07 04:26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 ㅋㅋ
해당 안되는 집이 더 많겠지요. 그런데 그게 꼭 불가능한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에서 말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정성과 노력이면 내 집을 나 답게 가꾸고 사는 것이요. 저는 아직도 그런 로망을 버리지 못한답니다.
 
힘찬문고 55
이창숙 지음, 김호민 그림 / 우리교육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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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연령에 맞춰 책을 읽다보니 뒤늦게 동화와 그림책의 재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급기야 동화 창작 공부까지 해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아이가 이제 스무살이 넘었으니 오래 전 이야기이다. 공부해본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지만 아이가 다 자라 성인이 된 지금도 가끔 동화와 그림책을 일부러 구입해서 읽어보기도 한다. 이 책도 그렇게 오랫동안 보관함에 있던 책이다.

이창숙 작가는 동화를 공부하던 모임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었고 글 쓰는 저력이 있다고 느껴지는 작가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 <무옥이>를 읽으면서도 어른이 어설프게 아이의 마음을 겉돌며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한 티가 나지 않는, 작가의 뚝심이랄까 그런 진지함이 느껴지는게 마음에 들었었다.

첫 페이지의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를 읽으면서 이야기에 앞서 작가를 읽기 시작한다.

내가 자라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엄마가 물었어요.

"얘야, 그 일이 재미있니?"

"일을 무슨 재미로 해요?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거죠."

내 대답에 엄마는 실망한 얼굴로 작게 말했어요.

"무슨 일이든 신나고 재미있어야 하는데......"

내가 다른 일을 시작했을 때 또 물었어요.

"얘야, 일이 재미있니?"

"아, 그냥 하는 거예요. 직업이니까."

엄마는 또 실망한 것 같았어요.

나는 마흔 살이 넘어 우연히 동화를 쓰게 되었어요.

"얘야, 동화 쓰는 그 일이 재미있니?"

"응, 엄마, 엄청나게 재미있어요."

나는 큰 소리로 대답하고 깜짝 놀랐어요. 엄마도 빙그레 웃었고요.

아, 엄마가 말한 게 이거였구나.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따로 있었구나.

그 뒤로 열심히 동화를 쓰고 있다고 이어 말한다. 작가가 행복하게 동화를 쓰는 걸 보고 기뻐하셨지만 정식으로 동화 작가가 되는 건 보지 못하시고 엄마는 돌아가셨다면서 어린이 여러분도 정말 쫗아하는 일을 꼭 찾아서 누가 뭐래도 그 길을 당차게 걸어가길 바란다고.

 

이야기는 오빠의 대학 합격 잔치로 시작된다. 넉넉치 못한 농삿군집 장남인 오빠가 서울의 최고 대학 그것도 법대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는 시골의 잔치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나와 범이는 신나서 잔치 음식 집어먹는 재미를 만끽하고 내 일 처럼 기뻐하는 마을 사람들은 조금씩 돈을 모아 오빠의 등록금을 보태줄 정도로 훈훈한 인심의 마을 이다. 온 마을의 기대와 축하를 받으며 오빠는 서울로 공부하러 떠나고, 동생 범이는 어느 날 마을의 미루나무 새 둥지에서 새끼 새 두 마리를 꺼내와 키우기 시작한다. 나와 범이는 열심히 개구리를 잡아다 먹이며 새끼 새들을 키우는데, 노란 털이 꾀꼬리인줄 알고 키우던 새는 나중에 보니 매였다. 매는 한군데 얽매여 살지 못하는 습성이 있고 사람 손을 너무 타면 안되니 더 자라기 전에 그만 놓아주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범이는 개구리를 더욱 열심히 잡아다 먹이며 애지중지 매 두마리를 키운다.

한편 동네에서는 통일벼를 키우라는 국가 시책을 듣지 않는 농부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통일벼 외에 다른 품종을 심은 논을 면서기가 와서 일부러 망쳐놓는 일이 벌어진다. 보다못해 이에 항의하다가 동네 정식이 형이 붙잡혀 가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오빠가 연행되어 갔다는 소식까지, 마을 분위기는 흉흉해진다. 서울까지 부모님을 졸라 오빠의 재판에 참석하여 보고 온 나와 범이는 줄로 묶어 날라가지 못하게 키우고 있던 매를 놓아주기로 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를 쓸때 경계해야 하는 사항으로 무조건 미화 시키거나 동심을 천사처럼 그리는 주의이다. 어른이 된 사람들이 쓰다보니 고정관념과 편견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창숙의 <매>는 그런 의미에서 본보기가 될 만하다는 생각이다. 어린이들의 심리를 잘 묘사하면서 사회적인 문제와 무리없이 연결시켰다. 그것은 작가의 다른 작품 <무옥이> 에서도 느꼈던 것과 같다. 수의를 입고 재판장에 나와 자신의 생각을 또렷이 말하는 오빠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무엇을 느꼈기에, 묶인 줄을 끊고 날아가려 몸부림치는 매을 놓아줄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떤 때 아이들은 어른보다 오히려 더 결단력 있다. 이것 저것 계산이 없다. 높은 곳에 올라가 매를 놓아주며 높은 곳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매를 보고 서운함과 자랑스러움이 겹친 얼굴로 생각한다.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과연, 이 책 이 왜 동화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되고 있는지 알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그리고 동화 창작에 관심있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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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홀로 앉아
일운 지음 / 모과나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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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오래 동안 보관함에 있던 책들 중에서 몇권을 골라 읽고 있는 중이고 이 책도 그중 한권이다.

보관함에 넣을 당시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불교와 관련된 책들은 늘 마음을 끌고 있다가 가끔씩 이렇게 한권씩 사보게 된다. 이 책은 불교 관련된 책이랄 것도 없이 '청향헌에서 띄우는 마음 편지'라는 소개문처럼 짧고 가벼운 글들로 이루어져있다. 읽을라치면 하루면 쓱쓱 페이지 넘겨 다 읽을 수 있는 쉬운 문장들이고 이해가 어려운 내용도 아니다.

글을 쓰신 일운 스님은 1969년 경북 청도 운문사로 출가하셨다고 한다. 운문사라는 것을 보고 아마 여자 스님이신가보다 했다. 1991년부터 경북 울진 불영사에서 불교에 정진하는 생활과 함께 지역사회 포교 활동에도 활발하셨던 듯. 사찰음식대축제, 산사음악회, 울진군 청소년 백일장 등을 열었고 2011년에는 '만일결사회'를 결성하여 매일 3,000여 명에게 마음 편지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만일결사회란 만일(萬日) 동안 수행정진을 함께 하기로 하는 모임으로서, 이 책은 그 마음 편지 띄웠던 것을 모아서 엮은 책.

내용은 짐작하다시피 모두 좋은 말씀이다.

이 책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아마도 이게 아닌가 싶다.

'내려놓으라'

무엇을 내려놓는가? 묻는다면 무엇을 내려놓는가 하는 생각도 내려놓으라고 하실 것이다. 방하착 (放下着). 그냥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영어의 letting go 같은 것. 집착하지 말라는 뜻인데, 인간으로서 살아있는 동안 계속 정진해야할 목표이지 완전히 도달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니라고 본다.

불교라면 웬지 홀로 정진하는 것을 선호할 것 같지만 스님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소통'을 들었다. 소통이라하면 학생과 선생님, 자식과 부모,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등 인간 관계에서의 소통을 떠올리고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소통말고 스님이 지적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소통말고, 우리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한 소통입니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과 스스로 소통하는 것이지요. (115쪽)

자신의 삶과 소통한다는 생각은 여태까지 해본 적이 없다. 남과 소통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내면과 소통하는 일, 그래서 나 자신부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으면 과연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내려놓으라는 말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말은 '현재에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흘며 현재를 소모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보려한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 동안에는 휴식을 갈망하면서 정작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무료를 느끼며 외로와하고 우울에 빠진다.

어린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어른이 되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빨리 어른이 되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마음대로 살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면 어린시절을 그리워하며 되돌아가기를 갈망하거나 후회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놓으면 결국은 건강을 잃고 젊음을 잃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벌어놓은 돈을 다 써버리기도 합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여행도 다니고 편하게 살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일을 그만두고 여행도 다니고 편하게 살려고 하면 몸이 불편해서 다닐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 삶 속에서 내 안의 모순을 발견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탁 내려놓아야 합니다. (291쪽)

모르는 말 거의 없다. 처음 듣는 말보다 귀에 익숙한 말들이 더 많다. 몰라서 읽지 않는다. 모르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실천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읽게 되는 것 같다.

 

스님이 계시다는 천축산 불영사는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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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이라는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appletreeje님의 알라딘서재에서였다.

벌써 오래 전 일.

 

appletreeje님께서 서재에 올려주신 박제영 시인의 시 몇 편에

가슴 따땃해졌던 하루가 있었음을 문득 떠올린 며칠 전,

나도 시집을 구입하고 찬찬히 읽어보았다.

 

 

 

 

아내

 

 

 

 

다림질 하던 아내가 이야기 하나 해주겠단다

 

 

부부가 있었어. 아내가 사고로 눈이 멀었는데, 남편이 그러더래.

언제까지 당신을 돌봐줄 수는 없으니까 이제 당신 혼자 사는 법을 배우라고.

아내는 섭섭했지만 혼자 시장도 가고 버스도 타고 제법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대.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버스에서 마침 청취자 사연을 읽어주는 라디오 방송이 나온 거야.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그랬대. 저 여자 참 부럽다.

그 말을 들은 버스 기사가 그러는거야. 아줌마도 참 뭐가 부러워요.

아줌마 남편이 더 대단하지. 하루도 안 거르고 아줌마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구만.

아내의 뒷자리에 글쎄 남편이 앉아 있었던거야.

 

기운 내 여보

 

실업자 남편의 어깨를 빳빳이 다려주는 아내가 있다

영하의 겨울 아침이 따뜻하다

 

 

 

 

 

 

 

 

 

 

 

꽃무릇

 

 

 

 

여보 꽃구경 가요

잎 지면 잎 진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채로 오늘은 잎 없이 붉은 꽃 피고

꽃 지면 꽃 진 대로 서러우면 서러운 채로 내일은 꽃 없이 푸른 잎 돋네

 

 

백년해로 구억만리가 구비구비 고빗길 천야만야 벼랑길이니

그립다 서럽다, 천근만근 녹슨 쇳덩일랑 어여 내려놓아라

고빗길 구비치거든 따로 또 같이 구비쳐 오르고

벼랑길 휘돌거든 함께 또 홀로 휘돌아가라

백년해로 가는 걸음, 엇박걸음이 정박걸음이니

피고지고 오르고내리고 구비치고휘돌아

따로같이 함께홀로 엇박자로 흘러라

 

 

도솔천 그늘 속이 花륵화르륵 화르르륵

붉디붉은 꽃미륵부처들로 야단법석이로세

선운사 오르다 간밤의 다툼일랑 까마득히 잊었어라

花르르 사르르 꽃으로 풀렸어라

여보 꽃구경 가자

 

 

 

 

 

'엇박걸음이 정박걸음',

'피고지고 오르고내리고',

'따로같이 함께홀로'

부부사이 표현이 이리 재치있구나.

 

 

 

 

 

 

식구

 

 

 

 

사납다 사납다 이런 개 처음 본다는 유기견도

엄마가 데려다가 사흘 밥을 주면 순하디순한 양이 되었다

 

 

시들시들 죽었다 싶어 내다버린 화초도

아버지가 가져다가 사흘 물을 주면 활짝 꽃이 피었다

 

 

아무래도 남모르는 비결이 있을 줄 알았는데,

비결은 무슨, 짐승이고 식물이고 끼니 잘 챙겨 먹이면 돼 그러면 다 식구가 되는 겨

 

 

 

 

 

 

 

한글만 읽을 수 있으면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시,

이해보다 느낌이 먼저 오는 시를 쓰고 싶었다는 시인의 네번째 시집 《식구》 에 실린

<식구> 라는 시이다.

박제영 시인이 식구라는 제목의 위의 시를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진은영 시인의 <가족>이라는 시를 읽고 나서였다고 한다.

 

 

 

 

가족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 시인선) -


 

 

 

 

식구와 가족은 다른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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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0-06-30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른아침에 읽기 좋은 시인 것 같아요.
안녕히 잘 주무셨어요?
건강 하시죠?^^

hnine 2020-06-30 13:16   좋아요 0 | URL
책읽는나무님 이렇게 일찍 일어나세요?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 하루 중 제 컨디션이 가장 좋은 시간이지요.
우산 쓰고 산에도 다녀왔어요.
이제 점심까지 두끼 차리고 나니 저녁엔 뭘 해먹나 궁리하게되네요 ^^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 - 좋은 것들을 모으러 떠난 1년
조민진 지음 / 아트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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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직장인들에게 저자와 같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직장 생활 중 1년을 휴가로 얻을 수 있는 기회 말이다. 한달도 아닌 1년을 그녀 말대로 '삶의 쉼표' 찍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JTBC 방송국 기자인 저자가 2018년 7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서른 아홉살에서 마흔 살 절반까지 1년을 통째로 영국 런던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쓴 글 모음이다. 영국의 다른 도시와 다른 몇 나라를 방문하긴 했으나 본거지는 런던의 카나리워프의 아파트. 여기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좋은 것을 모으러 떠난 1년을 보냈다. 얼마나 좋았을까.

평소 기자라는 직업으로 인해 스트레스에 찌들어 살 던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기자라는 직업과 일을 사랑했고 열심히 일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직업에서 온전히 벗어나 누리는 시간은 금쪽 같았다. 평소에 좋아해오던 미술에 대한 흠모를 런던의 그 많은 미술관을 다니는 것으로도 성이 안차 아트 아카데미의 미술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미술에 대한 수업을 듣고 그림 수업을 받았다. 런던의 집값이 비싸지만 안전을 위해 런던 2존의 비교적 괜찮은 아파트를 선택하여 마음껏 음식을 해먹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살아야하는 불편을 피해갈 수 있었다. 소위 포시 잉글리시라는 억양을 배워보기 위한 시도로 발음 교정 강의 (Accent Softening) 를 들으러 다니기도 했다.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하여 개인 지도를 받는 기회도 만들어 탄탄한 건강 유지를 위해 아낌없는 투자도 하였다. 소더비 경매가 있던 날은 기자라고 밝히고 300~400억 예상 낙찰가인 그림의 경매가 이루어지는 현장의 프레스석에 앉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누렸다. 읽으면서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

내가 지금까지 읽은 런던 여행기만 해도 적지 않은데 굳이 이 책을 또 구입하여 읽게 된데는, 당분간 여행을 꿈꾸기 어렵다는 현재 상황이 부추킨 것도 있고, 저자가 런던에 있던 그 1년 속에 나 역시 혼자 런던을 다녀온 시기 (2018년) 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열흘에 불과했지만 시기적으로 그녀의 글에 더 공감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점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앞에서도 썼다시피 읽다보니 부러움이 조금씩 차올랐다. 2018년이 아니라 그보다 수십년 전 내가 혼자 영국에 더 오래 머물렀을 때의 생활과 너무나 대조적인 생활을 하다가 온 저자가 부러웠던 것이다. 비교할 것을 비교해야지, 곧 정신을 차렸다. 각자의 경험은 모두 그 나름대로 소중한 것이니까.

1년이라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그녀는 아주 꼼꼼히 계획을 세우고 성실하게 시간을 채워나가기 위한 노력을 했다. 혼자 하는 일의 서투름에 대해 털어놓는 솔직함도 보였다. 길 못 찾는 길치에, 기자이면서도 소셜 미디어에 대한 기피증, 영국식 영어의 낯섬, 그림을 좋아하고 좋아한 세월이 오래이지만 전문적인 단계는 전혀 아니라는 고백도 털어놓는다.

 

좋아하는 것과 직업은 일치해야하는가?

역설적이게도 내 전공이나 일이 그림과는 전혀 무관했기 때문에 마냥 그림을 좋아한 것이다. 그림 에세이를 읽고 화집을 보고 전시회를 가는 것은 모두 내가 힘든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을 쉬게 하는 방법이었다. 잘 몰라도 되고, 잘하지 못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영역이었다. 자기만족을 위한 순수한 관심사가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고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98쪽)

 

루틴의 중요성

살면서 좋은 루틴을 많이 만드는 건 좋은 취향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좋은 루틴과 좋은 취향을 차곡차곡 쌓아나갈 때 인생도 차츰차츰 더 좋아진다고 믿는다. 런던에서 새로 얻었던 일상의 루틴들은 참 좋았고 소중했다. 갈망하고 동경하는 데 그쳤던 좋은 것들을 모아 내 취향도 한층 견고해졌다. 덕분에 앞으로 더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는 힘이 생겼다. (190쪽)

 

그녀의 의견이지만 나도 공감한다. 나 역시 미술과 전공은 전혀 무관하지만, 그리고 미술에 대해서는 부족한 상식이지만 마음을 쉬게 하는 힘이 그림 속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림이 그냥 그림이 아니라 그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있음을 알게 되고 나서 더 좋아졌다. 잠 안오는 밤 조그만 화집을 이불속까지 가지고 들어가 펼쳐보다 잠드는 것이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루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루틴이라 하면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습관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런던으로 떠날 때부터 책을 쓰기로 계획을 했었던 것 같다. 그녀가 그림을 좋아했고 제목도 암시하고 있기에 그림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 차지할거라 기대했거나, 그녀가 기자라는 점을 생각해서 혹시 정치, 경제, 시사, 사회 문제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썼을거라 짐작했다면 오해. 오히려 런던에 머무는 동안의 소소한 일기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무리없이 줄줄 읽힌다는 장점이 있으나, 좀더 특별한 내용을 기대했다면 아쉬울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행을 할때마다 여기에 다시 오게 될까 생각해보게 된다고 했다. 그녀가 가본 여행지를 내가 다 가보진 않았지만 최소한 런던은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때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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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6-28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쯤 일을 쉬고 어딘가 좋아하는 곳에서 지내보는 것. 모든 사람의 로망이겠지요. 그래서 제 꿈은 연금받는 퇴직자입니다. ㅎㅎ

hnine 2020-06-29 05:03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연금받는 퇴직자 ^^
그런데 주위에서 보면 막상 연금받는 퇴직자가 되니까 그동안 하고 싶던 일을 하며 보내기 보다 늘어난 시간을 주체하기 부담스러워하며 심심하게 보내는 경우도 의외로 많더라고요.
이 책의 저자는 한창 나이때 일년 휴가를 낼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이, 남편, 직장, 모두 두고 혼자 떠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