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채택 70주년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이번 페이퍼에서는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을 맞아 인권(人權, Human Rights)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인류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인권의 표현을 찾기 위하여 유네스코(UNESCO)에 인권에 관해 전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견해를 조사해줄 것을 의뢰하였다. 이 요청을 받은 유네스코는 가맹국들의 사상가와 문필가들에게 설문을 돌려 각자의 종교적, 문화적, 지성적 배경에서 도출된 특유한 인권관을 조사하였다... 인권위원회는 선언문 기초 작업에 착수할 때부터 원칙을 세워 보편적 인권이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에서 기원한 서구의 발명품이라는 가정을 거부하였다. 그 대신 위원들은 계몽주의 인권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공동선에 대한 어떤 보편적 관념을 확인하기 위해 전세계의 위대한 종교, 문화 전통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오랜 토론의 결과가 1948년 12월 10일, 인류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세속적, 종교적 인권개념을 집대성한 최고의 인권문헌인 '세계인권선언'의 채택으로 이어졌다.(p56) <세계인권사상사> 中


  미셀린 이샤이(Micheline Ishay)가 저술한 <세계인권사상사>는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만들어진 세계인권선언에 담긴 세계 여러 문명권과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비교, 제시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짧은 페이퍼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과감히 생략하고, 세계인권선언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살펴보자.


 <세계인권선언>의 주요 성안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카생(Rene Cassin)은 <세계인권선언>을 사원 입구의 주랑으로 이루어진 현관에 비유하여 인권의 중심 사상을 선언했다. 카생은 <세계인권선언>이 프랑스 혁명 당시에 외쳤던 구호처럼 "존엄성, 자유, 평등, 박애"의 네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인권선언>의 전체 30개 조항 중 27개 조항이 4개의 기둥으로 각각 나뉘어 있으며, 이들 4개 기둥이 모여 주랑 현관의  천장에 해당하는 28~ 30조를 함께 떠받치고 있다.(p36) <세계인권사상사> 中


  비록, 유엔인권위원회가 서구 중심중의에서 탈피해서 세계인권선언서를 작성하려고 노력했다지만, 카생의 설명을 듣자면 세계인권선언이 유럽 중심주의라는 형식적인 틀까지 깨뜨리지는 못한 듯하다. 유럽 건축 양식을 빌려 카생이 설명한 유엔인권선언의 세부 구조는 다음과 같다.  


[사진] 주랑 현관(출처 : 위키백과)


 첫째 기둥은 인권의 일반 원칙과 개인의 자유를 의미하며 전문과 제1~11조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 기둥은 개인과 개인이 속한 사회집단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권리를 의미하며 제12~17조가 이에 해당한다. 셋째 기둥은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의미하며 제18~21조가 이에 해당한다. 넷째 기둥은 사회적, 경제적 영역의 권리를 의미하며 제22~27조가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천장은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국제적 질서 그리고 권리들을 서로 조화시키기 위한 원칙을 의미하며 제28~30조가 이에 해당한다.(p37) <세계인권사상사> 中


 위와 같이 개인과 집단 사이의 권리와 이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질서를 규정한 세계인권선언이지만, 우리 현실 속에서 유엔인권선언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 있어서 우리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가? 세계인권선언의 대상을 개인으로 한정해 살펴본다면,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경제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으로 크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문제를 바라보는 로버트 달(Robert Dahl, 1915 ~ 2014)의 입장은 다분히 비판적이다. 


 단순하게 요약해 보자면, 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 정치적 평등 그리고 정치적 기본권을 성취함으로써 미국인들의 이상은 실현된다. 두 번째 관점에서는 재산권을 보호받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부유해질 기회를 보장받음으로써 미국인들의 이상은 실현된다.(p172)... 이와 같은 상호 대립적인 이상들 가운데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 지를 두고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미국인들은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p173)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 中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완전한 정치적 평등이란 미국 시민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 소비주의 문화에 내재한 공허함을 자각하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권의 문화가 가져오는 보상과 도전의식의 가치를 깨닫게 될 때, 그들은 미국을 저 멀리 잘 잡히지 않는 목표에 훨씬 더 근접할 수 있도록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p133)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中


  로버트 달에 따르면 기존의 재산권, 경제적 불평등, 법인 기업의 비민주적인 권위가 지향하는 경제발전이 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 그리고 정치적 권리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권리는 침해받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산권보다 인권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의 확산만이 경제 민주화와 정치 평등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임을 그는 지적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개별 리뷰에서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고, 그렇다면 이번에는 현상황 아래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차례다. 이에 대해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쿠미 나이두(Kumi Naidoo)의 말을 옮겨본다.

 

 인권선언문은 시민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구별하지 않았다. 먹을 것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필요성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필요성을 구분짓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그 둘 사이가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 후 수십 년간, 각국 정부들은 그 두 종류의 권리 사이에 구별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그 권리들이 인식되고 보호되는 데 있어서 불균형이 생겨났다.(p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8년 12월호 : 유엔인권선언 70주년에 부쳐 > 中


 인권운동에 있어서 우리는 표현하고 시위할 수 있는 권리를 계속해서 주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시행하는 경제, 금융 정책과 그것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동료조직들과 협력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정부에 묻고 부패와 불법자금의 흐름과 취약한 국제적인 조세구조를 밝혀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친구, 동료들과 연합을 구성해야만 가능한 거대한 일이다. 인권운동가, 변호사, 노동조합, 사회운동가, 경제학자, 종교지도자 등 여러 조직에 걸친 협력이 필요하다.(p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8년 12월호 : 유엔인권선언 70주년에 부쳐> 中


  쿠미 나이두의 제언을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 ~1883)의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구절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Workers of the world, unite!'를 연상하게 된다. 또한, 연대와 단결의 근간이 타인에 대한 공감임을 생각해본다면,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강조한 '동감(同感, sympathy)' 문제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지난 250여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유엔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인권'에 대해 미처 정리되지 않은 여러 질문을 던져본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은 다음 독서 여정이 될 것임을 확인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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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12-22 1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노. 차별. 경멸이 가득한 세상
연대한 우리가 어떻게 사회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요즘 참 생각이 많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12-22 19:19   좋아요 2 | URL
비록 지금 많이 혼란스럽지만, 이러한 혼란도 일종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18-12-22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2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3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3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글을 쓸 무렵 나는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마을 근처에 있는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집 한 채를 손수 지어 홀로 살고 있었다. 그곳은 가장 가까운 이웃과도 1마일쯤 떨어진 곳이었으며, 나는 순전히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2년 2개월 동안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문명 생활의 일원으로 돌아와 있다.(p9) <월든> 中


 2015년 7월 25일부터 시작한 시골학교에서의 생활을 다음 주면 마무리하게 됩니다. 약 3년 5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니, 소로우의 월든 생활보다는 긴 시간을 보낸 셈입니다. <월든 walden>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ry David Thoreau, 1817 ~ 1862)는 다음과 같이 자신이 월든 호숫가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월든 호숫가에 간 목적은 그곳에서 생활비를 덜 들여가며 살거나 또는 호화롭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 개인적인 용무를 보자는 데 있었다.(p33) <월든> 中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관계의 무한한 범위를 깨닫기 시작한다.(p246) <월든> 中


  외부와 단절된 수도 생활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자 한 소로우와 달리 저희 가족의  시골생활의 목적은 연의 교육 문제였습니다. 아이가 어린 시절을 자연에서 보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교육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골학교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2년 2개월동안 월든 호숫가를 떠나지 않은 소로우와는 달리 저는 강남역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으니, 생각해보면 같은 시골 생활이었지만 소로우와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았던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계절은 바뀌었습니다.





[사진] 장평에서의 사계(by 겨울호랑이)


 이렇게 해서 내 숲 생활의 첫번째 해는 끝이 났다. 그다음 해도 첫해와 큰 차이는 없었다. 1847년 9월 6일 나는 드디어 월든을 떠났다.(p454) <월든> 中


 나는 숲에 들어갈 때나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이유 때문에 숲을 떠났다.(p460)... 나는 경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으로 자신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p461) <월든> 中


 소로우는 위와 같은 말로 <월든>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이 얻은 바를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제게 무엇을 얻었느냐고 물어본다면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까요. 시간이 흘러야 제대로 돌아보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 곳 생활을 통해 많은 책들을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는 대답을 할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월든>의 한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번 글을 갈무리 합니다. 


 나의 거처는 사색을 하기 위한 곳뿐만 아니라 진지한 독서를 하기 위한 곳으로도 그 어느 대학보다 나았다. 내가 사는 곳은 그 흔한 순회도서관도 찾아오지 않는 곳이었지만 나는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몇 권의 책들의 영향력 속에 과거 어느 때보다 깊이 젖어들게 되었다.(p144)... 때로는 사람들은 고전 연구가 더 현대적이고 더 실용적인 학문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탐구적인 학생은 그것이 어떤 언어로 쓰였고 얼마나 오래되었고 간에 항상 고전을 연구할 것이다.(p145) <월든> 中


PS. 다시 생각해보니, 독서보다는 운전 실력이 많이 좋아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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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09 23: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계...다시 도시로 가시는군요! 겨울호랑이님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합니다! 사진이 너무 정겹고 멋집니다!^^

겨울호랑이 2018-12-09 23:55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님^^:) 연말연시가 실감되는 요즘입니다. 잘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꾸준히 같은 지점에서 시차를 두고 찍었다는데 의의를 두고 올려봅니다. ㅋ

카알벨루치 2018-12-09 23:57   좋아요 2 | URL
사진에도 조예가 있으신가 봅니다 의도적인 시골생활이 너무 가슴에 다가옵니다 연의의 성장과 성숙에 부모님의 마음과 정성이 큰 자양분이 될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12-10 00:01   좋아요 2 | URL
카알벨루치님 칭찬에 감사합니다만, 요즘 핸드폰 카메라 성능이 좋은 덕인 듯 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12-10 00:03   좋아요 2 | URL
사진 찍으시는 분의 계획된 의도가 돋보입니다 휴대폰은 이차적인 것이고요 ㅎㅎㅎㅎ편한 밤 되십시오~

겨울호랑이 2018-12-10 00:05   좋아요 2 | URL
카알벨루치님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나와같다면 2018-12-10 00: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3년 넘는 기간동안 출퇴근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덕분에 인생에서 빛나고 아름다운 시기를 선물 받으신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작도 응원합니다. 진심을 담아서

겨울호랑이 2018-12-10 08:53   좋아요 3 | URL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출퇴근 거리가 조금 멀어지게 되니 아침에 서둘러 나올 수 있어 혼잡함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의 좋은 점이었다 생각합니다. 나와같다면님 말씀처럼 저희 가족에게 좋은 경험이었네요 응원에 감사드리며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2018-12-10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0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8-12-10 0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단 운전 실력뿐이었을까요?
얻어 가시는 것들이 더 많았으리라고 봅니다^^
사계 사진 모든 계절이 좋네요!
이렇게 좋은 풍경도 담아 가시는군요.ㅋㅋ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더 좋은 날들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8-12-10 08:5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님 말씀처럼 지금 당장은 몰라도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느낄 때가 오리라 기대해 봅니다. 오늘 행복한 하루 되세요!

목나무 2018-12-10 0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빠는 출퇴근하느라 좀 고생스러우셨겠지만 따님에게는 두고두고 오래 기억에 남을 시골생활이었을 것 같아요. ^^
새로운 보금자리에서도 바뀌는 계절 느끼고 즐기시며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

겨울호랑이 2018-12-10 08:53   좋아요 2 | URL
설해목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아빠 노릇을 한 것 같습니다. 작은 마음 하나로 좋은 추억을 줄 수 있었기에 저 역시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설해목님께서도 좋은 하루 되세요!

oren 2018-12-10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께서 기나긴 시간 동안 머나먼 통근길을 마다 않고 고달픈 시골 생활을 자청하신 데는 자식 교육을 위한 부모로서의 심모원려와 숭고한 희생 정신이 깔려있었군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정확하게 인용해 주셨듯이, 소로우가 월든 호수로 간 이유는 아주 시급하고도 중요한 ‘개인적인 용무‘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건 바로 파상풍으로 급작스레 사망한 형을 추모하기 위해 책을 쓰는 일이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책이 바로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국내에서는 『소로우의 강』으로 번역)이었고요. 그런데,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쓴 그 책이 참담한 실패를 겪고 난 뒤에야 『월든』이라는 걸작이 (비슷한 장소에서) 탄생한 사실이 재미있더군요.

오늘 문득 『주석 달린 월든』을 펼쳐 그 대목을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새롭고 흥미롭네요. 소로우의 처녀작은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결국 자비로(=빚을 내서) 1,000권을 출판했으나, 4년 동안에 팔린 책이 290여 권에 불과했고, 그 중에서도 75권은 기증한 거라고 하고요. ‘이제 나는 거의 900권에 달하는 책이 있는 서고를 갖게 됐지만, 그중 700권 이상이 내가 쓴 책이다.‘라고 일기에 쓴 것도 나중에 출판사로부터 되돌려받은 미판매 재고분 706권을 가리키는 것이었고요. 『주석 달린 월든』에서는 ‘개인적인 용무‘를 좀 더 익살스럽게(?) ‘개인 사업‘으로 표현해 놓은 점도 눈에 띄네요.

* * *

내가 월든 호수로 간 목적은 돈을 들이지 않고 살려는 것도 아니었고 거기에서 힘들게 살려는 것도 아니었다.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개인 사업을 하고, 상식도 없으며 계획을 해서 사업을 꾸려갈 만한 재능도 없어 어리석게는 보여도 그만큼 한심하게는 보이지 않을 일을 하는 데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였다.(『주석 달린 월든』)

겨울호랑이 2018-12-10 23:12   좋아요 1 | URL
에고. oren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쑥스럽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다만, 제가 나중에도 아이 앞에 작게나마 노력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됩니다. oren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월든」의 숨겨진 뒷이야기가 이해가 되네요. 저는 소로우가 ‘개인적인 사업‘으로 표현한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안개 걷힌 듯 이해가 되네요. 좋은 말씀에 감사드리며, 저 역시 「주석 달린 월든」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요즘 「소로우의 자연사 에세이」를 읽고 있습니다만, 끝나는대로 읽어야겠습니다. oren님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12-10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모두가 겨울호랑이 님처럼 실천으로 옮기진 못하죠. 대단하십니다. ^^

겨울호랑이 2018-12-11 00:22   좋아요 3 | URL
^^:)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이럴 줄은 처음에는 몰랐답니다 ㅋㅋ 알았다면, 아마도... ^^:)

2018-12-11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1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2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2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8-12-13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는 자연에서 자랄 수 있어서 정말 좋았겠지만,
강남까지의 출퇴근이라니! 겨울호랑이님은 정말 힘드셨겠어요.

좀 더 나이가 들면 혼자 어느 시골 집에 살며,
책 읽고, 글쓰고, 술 마시며 지내고 싶단 생각을 하긴 해요.
이 각박한 대도시를 벗어나고픈데, 아직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니 벗어날 수가 없네요.

겨울호랑이 2018-12-13 22:5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감은빛님^^:) 그래도 제가 조금 마음을 더 써서 아빠로서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감은빛님께서도 시골에서의 은퇴를 생각하시는군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하네요.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기다림이 큰 만큼 더 좋은 생활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 감은빛님 편한 밤 되세요!

서니데이 2018-12-19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2018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12-19 23:0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

302moon 2018-12-19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고맙습니다, 이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 저도 분발해야지, 생각하지만 그냥 말뿐ㅜㅜ 편안한 밤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12-20 06:2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이웃분들 덕분입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 연말이네요. 302moon님께서도 행복한 한 해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syo 2018-12-19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편안한 겨울 보내고 계신가요 ㅎㅎㅎ 2018도 어김없이 서재의 달인이 되셨어요. 같은 감투를 쓰고 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올해도 많이 배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12-20 06:32   좋아요 0 | URL
저 역시 syo님께 축하 말씀드립니다. 올 한 해 syo님의 유쾌한 글로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리며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

깐도리 2018-12-21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2018년 서재의 달인 되시 거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18-12-21 13:1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 역시 깐도리님께 2018년 서재의 달인 축하 말씀 드립니다. 평소 많은 책을 읽으시고 꾸준히 리뷰를 올리시는 깐도리님께는 당연하겠지만요. 내년에도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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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로 말하면 고양이다. 고양이 주제에 어찌하여 주인의 심중을 이같이 정밀하게 기술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나, 이 정도는 고양이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래봬도 독심술이라는 걸 터득하고 있다. 인간의 무릎 위에 타고 앉아 잠자고 있는 중에, 나는 나의 부드러운 털옷을 살그머니 인간의 배에다 비비댄다. 그러면 한가닥의 전기가 일어나 그의 마음속 생태(生態)가 손바닥 보듯 나의 심안(心眼)에 내비친다.(p388)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 ~ 1916)의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吾輩は猫である>의 주인공은 이름없는 고양이다. 이름은 없지만, 인간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고양이의 입을 빌려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작품 속에서 우리는 20세기 초 서구 유럽을 따라잡기 위해 그들의 과학(科學)과 사상(思想)을 받아들였던 당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뉴튼의 운동 제1법칙에 의하면, 가령 다른 힘을 가하지 않는다면 일단 움직이기 시작한 물체는 균일한 속도로써 직선으로 움직인다. 만약 이 법칙에 의해서만 물체의 운동이 지배된다면, 주인의 머리는 이때 에스킬루스와 운명을 같이했을 것이다. 요행히 뉴튼은 제1법칙을 정함과 동시에 제2법칙도 제도해주었으므로, 주인의 머리는 위태위태한 중에 일명(一命)을 건지게 되었다.(p329)... 라이프니츠의 정의에 의하면, 공간은 가능한 동재현상(同在現象)의 질서다.(p330)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고대의 신은 전지 전능하게 숭앙받아왔다. 더구나 예수교의 신은 20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이 전지 전능의 탈을 쓰고 있다. 그러나 속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전지 전능은, 때로는 무지 무능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함은 분명 패러독스다. 그런데 이 패러독스를 도파(道破)한 자는, 천지 개벽 이후로 나뿐일 것이라 생각한즉, 나 스스로도 대단한 고양이라는 허영심도 생기는 것이니...(p201)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그렇지만, 당대 유행한 서구사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긍정적이지 않다. 고양이 또는 다른 등장 인물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이성(理性)을 강조한 서구사상에 대한 비판과 전통사상에 대한 그리움, 향수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은 건방진 것 같아도 역시, 어딘가 얼빠진 데가 있다. 만물의 영장이니 어쩌니 하면서 아무데나 만물의 영장을 내세우고 나오지만, 실제로 요만한 사실마저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아무렇지도 않은 양 태연자약해하는 데는 한바탕 웃고 싶어진다. 인간, 그는 말물의 영장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나의 코는 어디있나 가르쳐 다오, 가르쳐 다오 하고 떠들어대고 있다.(p430)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나는 서양인보다, 옛날 일본인 쪽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해. 서양인이 하는 방식은 적극적이다, 적극적이다 하고 요즘 꽤나 유행하는데, 그건 커다란 결점을 갖고 있다고. .. 서양의 문명은 적극적이요, 진취적일지도 모르지만, 필경은 만족하지 못하고 일생을 사는 사람들이 만든 문명이건든. 일본의 문명은 자기 이외의 상태를 변화시켜서 만족을 얻으려는 게 아니지. 서양과 크게 다른 점은, 근본적으로 주위 환경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는 일대 가정(假定)하에서 발달했다는 것이야.(p346)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우리는 자유를 원하다가 자유를 얻었다. 자유를 얻은 결과, 부자유를 느끼고 난처해한다. 그러니까 서양 문명 따위는 얼핏 보기엔 좋은 것 같아도, 결국은 틀려먹은 걸세. 이에 반해서 동양에선, 옛부터 마음의 수양을 해왔다. 그쪽이 옳은 걸세.(p499)<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조금 나간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속에서 이루어지는 당대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과 과거 일본 전통에 대한 향수를 넘어선 감정을 느끼게 되어 불편함을 느낀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아래 대화 속에서 자위대 쿠데타를 외치다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三島 由紀夫, 1925 ~ 1970)의 군국주의 성향도 작품 내에서 느꼈다면 다소 지나친 것일까.


 얼마 전부터 일본은 러시아와 대전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일본의 고양이므로 물론 일본 편이다. 되도록이면 혼성 고양이 단체를 조직해 러시아 병정을 할퀴어주고 싶을 지경이다.(p222)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이러한 불편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작품 안에서 인간 삶의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기에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보편성은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인생을 말하는 고양이의 통찰이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일종의 개연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치 소설 <소나기>의  소녀의 죽음처럼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이성 친구의 죽음. 이러한 삶의 고통을 통해 고양이는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미케코는 이 근처에서 유명한 미모를 자랑한다. 나는 고양이임엔 틀림없지만 물정은 그런대로 대충 알고 있다. 집에서 주인의 씁스레한 얼굴을 보거나 오상에게 얻어맞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반드시 이 이성 친구를 방문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그러면 어느새 가슴이 후련해지며, 여태까지의 근심 걱정이나 고생살이도 모조리 잊어버리고, 새로 태어난 것 같은 심정이 된다.(p65)... "세상사는 내 맘대로 디지 않는 법이지, 미케 같은 잘난 고양이는 요절(夭折)하겠다, 못난 떠돌이 고양이는 건강하게 장난치고 있겠다......"(p105)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그리고, 이러한 아픔 속에서 얻은 혜안(慧眼) 때문일지는 몰라도, 고양이가 말하는 삶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결론적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느껴지는 군국주의(軍國主義)에 대해서는 한국인으로서 거북함을 느끼지만, 그 안에 인간 보편의 지혜 또한 발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작품이 지금껏 사랑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갈무리 한다.


 인생의 목적은 구설(口舌)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 자기 생각대로 착착 일이 진척된다면, 그것으로 인생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수고와 걱정과 입싸움이 없고서 일이 진척된다면, 인생의 목적은 극락(極樂)의 방법으로 달성되는 것이다.(p192)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세상을 살다보면 사리를 안다. 사리를 알게 되는 것은 기쁜 일이나, 그와 동시에 나날이 위험이 많아서 방심할 수가 없게 된다. 교활해지는 것도 비열해지는 것도, 표리(表裏) 두 겹으로 된 호신복을 걸치는 것도 모두 사리를 아는 결과이며, 사리를 안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죄다.(p215)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자신의 추함을 자백하는 것은 존경할 만하다. 모양새로 말하면, 분명 미친 놈의 짓이지만 말하는 것은 진리다. 이것이 진일보(進一步)하면, 자신의 추악함이 무서워진다. 인간은 내 몸이 가공할 악당이라는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느낀 자가 아니고선, 고생한 사람이라곤 할 수 없다. 고생한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해탈(解脫)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p355)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PS.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내 무릎 위에서 생각을 읽는 중이었군...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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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3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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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3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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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2-03 1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개화된 지식이라고 하더라도
자국 민족주의 정서로부터는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 병정을 할퀴어 주고 싶다라...

겨울호랑이 2018-12-03 11:27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파스퇴르의 말도 이의 연장선상인 듯합니다...

붉은돼지 2018-12-03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냥이가 많이 큰 거 같습니다. 고양이 처음 키워보는 저로서는 이 고양이들은 귀엽기는 엄청 귀여운데 도무지 소통이나 교감은 영 안되는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까운 마음도 있습니다....손가락 깨물고 발가락 깨물고 하는 거 아무리 겁주고 얼르고 심지어 조금 때리기까지 해도 영 알아먹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ㅜㅜ...

겨울호랑이 2018-12-03 11:31   좋아요 1 | URL
네, 한참 성장기에 있어서인지 사료도 엄청 먹고 움직임도 빨라졌네요. 아마 붉은돼지님 댁의 고양이도 많이 컸겠지요. 처음에는 아장아장 걸어 거의 줍다시피 들어올리곤 했는데, 이제는 제법 날쌔져서 손에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ㅜㅜ 저희 집 귀요미도 시도때도 없이 마냥 놀아달라고 울어대는데, 참 당황스럽습니다. 동물과 교감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초보 집사인 저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2018-12-03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03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5 0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1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1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백가쟁명 - 유가.묵가.도가.법가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선진제가의 백가쟁명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크게 세 가지 큰 논쟁으로 개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는 유가와 묵가의 논쟁이다. 그 논쟁의 초점은 '인애'인가 아닌가 '겸애'인가로 모아진다. 두 번째는 유가와 도가의 논쟁으로, 그 초점은 '유위'와 '무위'의 구별이다. 세 번째는 유가와 법가의 논쟁인데, 논쟁의 초점은 '덕치'와 '법치'의 문제다.(p128) <백가쟁명> 中


 이중톈(易中天, 1947 ~ ) 은 <백가쟁명 百家爭鳴>에서 유가 儒家, 묵가 墨家, 도가 道家, 법가 法家 사상을 비교, 대조하고 있다. 저자는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유가를 중심으로 이들의 사상이 어떻게 대립하고, 영향받았는지를 위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백가쟁명>에서는 여러 각도에서 이들 사상들의 영향관계와 차이점들을 제시하면서, 선진 先秦 시대 중국 사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를 다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리뷰에서는 짧게나마 핵심 쟁점을 '정명 正名'의 관점에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유가와 묵가의 논쟁이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언어가 순통하지 못하고, 말이 이치에 순통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합하지 못하며, 형벌이 적합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공자의 말은 아주 분명하다. '정명 正名'이 어찌 쉬운 일이겠느냐?(p53)  <백가쟁명> 中


 1. 유가와 묵가의 논쟁 : 인애 VS 겸애


 저자는 <백가쟁명>에서 유가와 묵가의 논쟁을 인애와 겸애로 요약한다. <백가쟁명>의 본문을 통해 인애는 가까운 것으로부터 먼 곳으로 나가는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겸애는 차별없는 사랑으로 대비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애 仁愛인가? 친정 親情, 즉 자신에게 가까운 신변에서 시작하여 점차 타인까지 미루어나가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먼저 자신과 자신 주변의 사람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친척과 마을 사람들까지 사랑하라는 것이다.(p182) <백가쟁명> 中 


 이른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마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를 자신의 나라처럼 보거나 다른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자신을 보는 것처럼 대하는 것이다. 이런 사랑이 바로 '겸상애 兼相愛' 또는 '겸애'이다.(p174) <백가쟁명> 中


 '사랑'에 대한 유가와 묵가의의 입장차이는 '정명론'에서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에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사랑을 가까운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유가의 입장은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종의 차선책인 반면, 묵가는 이를 '명분이 바르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차별없는 사랑을 주장한 것에 이들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어느 사상이 보다 현실적인지, 아니면 보다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답은 독자 자신들이 내려야 할 것이다.


2. 유가와 도가의 논쟁 : 유위 VS 무위


 공자에게 인간됨의 가장 높은 경계는 '인 仁'이고, 치학 治學에서 가장 높은 경계는 '락 樂'이다.(p100) <백가쟁명> 中


 "도 道를 잃은 후에 덕 德이 있게 되고, 덕을 잃은 후에 인 仁이 있게 되며, 인을 잃은 후에 의 義가 있게 되고, 의를 잃은 후에 예 禮가 있게 된다. 예는 충신이 부족한 것이며 어지러움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인이나 의를 강조하다 끝내 예를 말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면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다는 뜻이다.(p329)... 노자의 주장은 아득하게 먼 옛날 여전히 도가 존재했던 씨족사회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원시 씨족사회는 계급이나 모순, 투쟁은 물론이고 지혜나 도덕도 없고, 정부도 없는 '무'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도가가 말하는 '도', 즉 무 無 또는 무위 無爲이다.(p331)<백가쟁명> 中


  유가와 도가의 논쟁은 '유위'와 '무위'에 대한 논쟁이다. 이를 도가의 입장에서 치환 한다면, '하덕'과 '상덕'의 형태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덕과 상덕은 무엇일까? 유가에서 강조하는 '인', '의' 그리고 '예'는 도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하덕'에 속한다. 반면,  도가는 '상덕'에 속하는 '도'와 '덕'을 강조하는데, 이들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도덕경> 제 38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상덕 上德을 지닌 이는 스스로 덕이 있다고 여기지 않으니, 이로써 덕이 있고, 하덕 下德을 지닌 이는 스스로 덕을 잃지 않았다고 여기니, 이로 인해 덕이 없게 된다." 의미는 분명하다. 최고의 도덕은 도덕이 필요 없다. 필요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덕이 있게 된다.(p320) <백가쟁명> 中


 상덕을 지녔다면 생기지 않았을 혼란을  하덕의 강조를 통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주장을 통해 유가를 비판하는 도가의 사상은 '정명'에서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에 대한 다른 답이라 여겨진다. 문명 文明 이전으로 돌아가 도와 덕의 시대를 지향한 도가와 문명 이후 인간됨을 강조한 유가의 입장 중 어느 편을 더 중하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우리가 생각할 문제다. 


3. 유가와 법가의 논쟁 : 덕치 VS 법치


 저자는 <백가쟁명>을 통해 성현 聖賢의 질서를 강조한 유가 사상과 일반인들의 질서를 강조한 법가 사상을 비교하면서, 이상적인 면에서는 유가의 손을, 현실적인 면에서는 법가의 손을 들어준다. 그리고, 법가의 현실적인 면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바로 '양면삼도'다. 


 세 勢를 통해 위신을 세우고, 술 術을 통해 신하를 부릴 수 있으며, 법을 통해 백성을 제어할 수 있다. 이것들이 바로 군주의 수중에 있는 지휘도 指揮刀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법가의 '양면삼도 兩面三道'이다. 양면은 '이병 二柄', 즉 상과 벌, 포상과 징벌이고, 삼도는 세와 술, 법이니 권세를 통한 장악과 음모와 계략, 그리고 엄격한 형법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한비가 군주에게 바치고자 했던 핵심 내용이다.(p448)<백가쟁명> 中


 저자가 보다 현실적이라 말한 법가와 유가의 논쟁은 '정명'에서 어디에 해당할 것인가. 아마도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합하지 못하며' 대목이 아닐까. 전국 시대 戰國時代 말기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예악이 무너진 상황에서 법가는 형벌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손발이 향할 곳을 제시했기에 보다 현실성을 가졌음을 생각하게 된다. 개인들이 성현의 모습을 본받으면서 수양할 것을 강조한 유가와 현실의 제약조건을 인정하고 '제약조건 하의 최선'을 강조한 법가 중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과제다.


 이처럼 <백가쟁명>에서는 유가를 중심으로 다른 사상들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면에서 좋은 입문서라 여겨진다. 첫 번째는 이러한 사상의 차이와 더불어 현실적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저자가 이끌어준다는 점에서다. 두 번째는 균형잡힌 시각이다. 시기적으로 먼저 성립한 사상이 후대 사상들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반론할 수도 없기에 불리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유가의 불리함에 대해서는 저자 이중텐이 직접 나서서 설명하면서 균형을 잡아준다는 점은 쉬운 해설과 더불어 이 책의 다른 장점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볼 때, <백가쟁명>은 고대 중국 사상의 좋은 입문서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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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11-24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도 동양철학에 손이 많이 가네요.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님.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겨울호랑이 2018-11-24 10:37   좋아요 1 | URL
북프리쿠키님 감사합니다. 북프키쿠키님께서는 워낙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시니 어디 동양철학뿐이겠습니까? ^^:) 오늘도 즐거운 독서, 행복한 하루 되세요!

서니데이 2018-11-24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정명에 대한 설명을 읽었을 때, 의미를 알 것 같은데도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시대의 이론들이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것에서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11-24 21:18   좋아요 1 | URL
^^:) 정말 그렇네요. 당시 사상이 지금도 전해지는 것은 그 사상의 내용도 깊이가 있어서겠지만 동시에 기록했기에 기능했겠지요.. 매일 기록을 남기시는 서니데이님의 꾸준함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서니데이 2018-11-30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오늘은 11월 마지막 날입니다.
11월에는 좋은 일들 많으셨나요. 겨울호랑이님 댁에는 예쁜 고양이 귀요미가 찾아와서 더 좋은 11월이었을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12월에는 더 좋은 일들 가득한 연말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기분 좋은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11-30 21: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벌써 2018년도 마지막 달이네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즐거운 주말과 함께 행복한 12월을 여시기 바랍니다.!^^:)

2018-11-30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30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옮김 / 수오서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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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면 겨울이 옵니다. 매서운 날씨가 찾아오는 계절이고, 머리에 혹이 나고 코피가 터질 때까지 스케이트를 타는 재미를 놓칠 수 없는 계절이지요... 다 함께 모여 크리스마스에 쓸 나무를 구하러 갈 때면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몰라요.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밀 공상을 하며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올 때면 또 얼마나 설레였는지요. 참 그리운 날들입니다.(p97)

내 삶의 스케치를 매일 조금씩 그려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돌아보며 그저 생각나는 대로,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썼어요.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요. 다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일들입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하루 일과를 돌아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마쳤고 내가 이룬 것에 만족합니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p275)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지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p275)

나는 우리가 정말 발전하고 있는지 때로는 의문이 듭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여러모로 지금보다 느린 삶이었지만 그래도 좋은 시절이었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삶을 더 즐겼고, 더 행복해했어요. 요즘엔 다들 행복할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p202)

그림 그리는 일은 서두르지만 않는다면 아주 즐거운 취미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여유를 갖고 꼼꼼하게 그림을 완성하는 걸 좋아합니다.(p254)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농장에서는 늘 그날이 그날 같고, 달라지는 거라곤 계절밖에 없지요.(p189)... 이렇게 한 해, 또 한 해가 흘러갔습니다.(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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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1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1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1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11-25 16: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는 우리가 정말 발전하고 있는지 때로는 의문이 듭니다.˝
- 저도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향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행복을 느낄 여유가 없이 빨리빨리, 를 외치며 사는 것 같거든요.

좋은 글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11-25 18:24   좋아요 2 | URL
저 역시 좋은 글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페크님 편안한 일요일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