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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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쟁이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야 하는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됐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가 나온 해는 1953년으로 미국에서는 매카시 광풍이 일던 시절이었다. 사상에 대한 검열은 책을 불태워 버리는 세상과 등치되지 않았나 하는 상상이 되었다. 야만의 시절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권력이 무엇을 읽고, 또 읽지 말아야 한다는 걸 규제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지가 않을 지경이다.

 

소설 <화씨 451>의 주인공은 방화수 30세의 가이 몬태그다. 그가 사는 세상에서 책은 금기 중의 금기다. 어느 누구도 책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몬태그는 뛰어난 방화수로 복무해왔다. 그의 직업 방화수는 바로 책을 불태우는 일이다. 붉은색 샐라만더 모습의 차를 타고 다니면서 세상의 책들을 족족 불태우는 것이 바로 그의 일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어떤 종류의 책만 검열하듯이 안된다는 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책들은 허용되지 않는 그런 세상이라는 점이다. 아니 그렇다면 도대체 이번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독재자들이 즐겨 사용했다는 3S 정책 생각이 났다. 기술발전이 아직 현대의 그것을 따라올 수 없던 시절의 창작은 일반 대중이 이른바 "귀마개 라디오"와 벽면의 스크린에 의존하는 정도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은 대중의 우민화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단순하게 정보와 지식의 전달만 책이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디스토피아 소설 <화씨 451>은 확실하게 알려준다. 귀마개 라디오로 대변되는 우민화 정책의 무서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유 자체를 하지 않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 유명한 데카르트의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게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년 간 유능한 방화수로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온 몬태그는 우연한 기회에 소녀 클라리세를 만나게 되면서 운명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 보면 이 부분도 조금은 클리셰이로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누가 봐도 공고해 보이던 사회도 결국 아주 사소한 틈의 균열로 붕괴의 단초가 시작되지 않았던가.

 

동시에 몬태그는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인간 본연의 자세도 보여준다. 그는 도대체 자신이 그렇게 기를 쓰고 불태우는 책들이 무엇이기에 그런가 하는 마음으로 몰래 책 몇 권을 자신의 집에 감추어둔다. 귀마개 라디오에 중독되어 가는 자신의 밀드레드(밀리)는 심지어 몬태그와의 만남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밀리가 우민화된 대중을 대표한다면, 조금씩 자신이 믿어온 것들에 대해 회의하는 몬태그는 점점 깨어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파국은 오래 가지 않아 다가온다. 부인 밀리의 모임에서 숨겨둔 책을 공개한 몬태그는 파멸을 자초한다. 클라리세의 석연치 않은 실종 등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몬태는 점점 더 참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주변의 밀고로 결국 자신의 위법적인 행위가 발각된 가이 몬태그는 자신의 집을 방화하는 임무에 동원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던 방화서 서장 비티와 결판을 벌인다. 하지만 한 번 자각한 인간은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법, 결국 몬태그는 화염방사기를 비티 서장에게 발사하고 만다.

 

조직과 사회의 순응하는 유능한 직업인에서 순식간에 공개 수배된 범죄자 신세로 전락해 버린 몬태그는 로봇개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전에 자신에게 도움과 조언을 준 파버를 찾아간 몬태그는 그에게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다시 도피길에 나선다. 그런 와중에 전쟁이 터졌던가. 그리고 신출귀몰한 솜씨로 도주하던 몬태그를 도저히 잡을 수 없게 되자, 당국은 그를 대신할 대체 희생자를 골라 대중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사태를 마무리짓는다.

 

<화씨 451>는 도저히 72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검열과 밀고 그리고 배신이 일상화된 매카시 열풍이 불던 시절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빅 브라더가 사회의 모든 걸 감시하는 감시사회에 대한 묘사 그리고 책이라는 구체적인 물질을 불로 정화해서 세상에서 소각시켜 버리는 방법으로 정보와 지식의 전달 자체를 막아 버리겠다는 발상이 놀랍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타리크 알리의 책 <석류나무 그늘 아래>의 초반에 나오는 말처럼 책을 불태우는데 하물며 그들이 사람이라고 불태우지 말란 법이 있겠냐는 말은 묵시록적 예언처럼 다가온다. 결국 몬태그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비티 서장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물론 피해자의 입장에서 저항하다가 그런 결과를 초래하긴 했지만 말이다.

 

인터넷과 너튜브가 세상을 지배하는 현재에는 정보의 범람이라는 방식으로 대중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과거에는 검열이라는 무지막지한 방식으로 정보를 차단했다. 바로 그 극단에 소설 <화씨 451>에 나오는 것과 같은 방식의 책을 불사르는 것이었다. 책을 가지고 있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단순한 공포야말로 단순하지만 가장 효과가 강력한 방식이다. 나 또한 누구 못지 않은 책쟁이로 책의 수급은 물론이고 소장조차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일종의 금단 현상을 겪게 되지 않을까. 원하는 책은 마음껏 구해서 볼 수 있는 지금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검색해 보니 2018년에 HBO에서 만든 영화판 <화씨 451>가 있다고 한다. 트레일러를 살펴 보니, 몬태그가 비티 서장에게 책에 뭐가 있냐고 묻자 그는 "광기"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불로 정화해서 평등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비티의 말이 더 광기에 가깝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화씨 451> 영화도 찾아서 소설과 비교해 가면서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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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1-13 0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씨 451 과학 소설의 걸작중의 하나이지요.예전에는 구하기 어려운 책이지만 요즘은 다행히 과학소설들이 많이 출간되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참 책 좋안하는 사람들이라면 사진속처럼 멋진 서가를 가지는 것이 꿈이지만 현실은 박스안에 집어넣고 보관하다보니 어는 박스에 어떤 책이 들어 있는지 모를 지경이 되는 것이 안타깝네요ㅜ.ㅜ
 
자유의 여신상의 오른발 모두를 위한 그림책 22
데이브 에거스 지음, 숀 해리스 그림, 황연재 옮김 / 책빛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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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됐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어떤 인스타 피드에서 보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책의 이름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오늘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빌려왔다. 이 책은 아동도서로 분류가 되어 있어서, 어린이 자료실에서 빌려야 했다. 어른이는 대출이 안되나 싶었지만, 프리패스라 다행이었다. 다와다 요코의 <헌등사>와 무레 요코의 <버리지 못한 사람들>도 같이 빌렸다.

 

미국 뉴욕의 상징인 된 <자유의 여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미국 출신 작가 데이브 에거스가 들려준다. 누가 봐도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내용은 훨씬 더 심오하게 다가온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의 정치가 에두아르 드 라불레는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어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라는 조각가에게 이를 의뢰했다. 그리고 보니 미국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는 미국 편에 서서 압제자 영국과 싸우지 않았던가.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 2차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국이 노르망디에서 프랑스를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흘려가며 싸웠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프랑스는 혈맹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이미 1884년 한 해 동안 프랑스에 세워졌었다는 것은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885년에 214개의 상자로 분해가 되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해서 무려 17개월에 걸쳐 조립되었다. 그리고 1886년 완성된 자유의 여신상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자유의 여신상은 Land of Free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처음에 구리로 만들어진 자유의 여신상은 갈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20년대부터 갈색 구리가 산화되어 지금의 녹청색으로 변했다고.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책에는 미국이 독립한 177674일이 라틴어 명문으로 새겨져 있고, 그녀가 들고 있는 횃불은 자유와 해방의 길을 밝히는 희망의 빛을 의미한다고 한다.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 하나를 데이브 에거스 작가는 지적한다. 자유의 여신상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른발을 자세히 보면 걷고 있다고 한다. 높이 46미터 그리고 몸무게 225톤의 자유의 여신상이 어디로 가고 있다는 게 상상이 되는가 말이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그들이 들어오는 뉴욕 항구에서 그들을 가장 먼저 맞이해주는 인물이 바로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데이브 에거스는 자유의 땅을 찾아 오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자유의 여신상이 걷고 있다는 해석을 제공한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미국이 전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은 저물고, 자국 경제를 보호하겠다고 지난 70년간 주창해 왔던 자유무역주의를 포기하고 관세장벽을 세워 자국 산업을 지키는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강경한 이민 정책으로 더 이상의 이민을 막고, 이미 미국에 들어와 있는 불법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가 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공고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른바 건국의 아버지들이 간과한 게 있었다. 그들은 국가 지도자의 상식을 믿고 지도자가 해서는 안되는 일들에 대한 세부 사항에 대한 규제나 규정들을 정하지 않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비상식적인 지도자가 등장했을 때, 미국 시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지금 미국이 처한 현실이다.

 

8년 전에 데이브 에거스가 이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일들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서 과연 데이브 에거스는 어떤 진단을 내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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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1-02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면서 전 세계에 막대한 돈을 퍼 붓다시피 하면서 적자가 누적되니 이제 더 이상 맘씨 좋은 엉클 샘 노릇을 포기한 것이 제일 큰 이유죠.사실 제 2차 세계 대전이후 초 강대국이 역사적으로 타국들(주로 서방세계외 제 3세게 국가들)을 70년 이상 도왕준 모습이 오히려 의와라고 할 정도지요.지금 트럼프가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햍태들이 실제 역사상 강대국이 행했던 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레삭매냐 2025-11-02 09:16   좋아요 0 | URL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한 때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던 시절에는 가
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 다극
화 시대에는 세계경찰로서의 역할이 다
한 것 같습니다. 능력도 안되구요.

미국이 자랑하던 소프트파워가 사라지
고 이젠 힘으로 우격다짐하는 그런 나
라의 본색(?)을 드러내는 것 같아 걱정
입니다.

호시우행 2025-11-03 0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시의적절한 시기에 어울리는 도서 같네요. 현 트럼프 대통령 도한 독일 이민자 가정 출신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히틀러 흉내를 내고 있어요.ㅠㅠ 미국의 멸망을 점치는 이유는 이런 인물들이 나라를 이끌 수 있다는 점 때문 아닐까요? 지도자 한 사람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일은 역사적으로도 많은 사례들이 있으니까요.

페크pek0501 2025-11-09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이 겉보긴엔 자유분방한 국가 같지만 알고 보면 꽤 보수적인 국가더라고요.
대학에까지 독재 정치를 하는 트럼프의 등장 이후 더 보수적인 국가가 될 것 같아 아쉽습니다.^^

레삭매냐 2025-11-12 14:36   좋아요 0 | URL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대학 보조금을 끊는 방식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대안 없이 좌충우돌식 정책
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네요.

sunhee1295 2025-11-10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간이 흐르며 상황이 변하고 그 변화에 따른 자구책이지요. 우선 내 가정, 내 이웃, 내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가 지도자에게 있는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단 우리가 안전과 안정을 되찾고 주변을 돌보는 게 맞는 정책이라 생각하는데... 같이 침수할 수 없으니까요. 체면이나 위신을 생각해서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해결하자니 부작용이 있고 조금 참고 협조하면 다시 주변을 챙길수 있게되는 그날이 올것이라 믿어요.
 
라스트 울프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구소영 옮김 / 알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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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노벨문학상의 영예는 수년 전부터 수상이 예상되었던 헝가리 출신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에게 돌아갔다. 국내에서는 알마 출판사가 7년 전부터 <사탄탱고>를 필두로 해서 꾸준하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작가의 책들을 출간해 오고 있었다. 나도 수상전까지 모두 4(출간작은 6)을 사 모았지만 정작 완독한 책은 하나도 없었다. <사탄탱고>에 두 번 도전했지만 결국 다 읽지는 못했다. 그러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고,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수상 소식을 듣고 가장 최근에 수집한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을 호기롭게 펼쳐 들었지만 분량이 어마무시했다. 그래서 꼼수로 가장 만만해 보이는 <라스트 울프>를 골랐다. 생각 같아서는 반나절이면 다 읽을 줄 알았지만, 다 읽는데 보름이 걸렸다. <라스트 울프>는 두 개의 중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어쨌든 나도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책 하나는 읽었단 말이지. 뭐 이제 시작이니까. 참 지금의 책값은 내가 구매한 2021년보다 오른 모양이다. 그리고 새로 나온 친구들은 모두 페이퍼백으로 바뀌었다. 난 기존 스타일의 양장을 더 선호한다. 크러스너호르커이라는 이름은 외우기도 쉽지 않다.

 

소설집의 표제작이자 첫 꼭지인 <라스트 울프>는 베를린 카이저-빌헬름 광장의 어느 술집에서 화자가 들려주는 스페인 마지막 늑대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독자로서 여전히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만연체 서사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득 주제 사라마구의 문체가 생각나기도 했다. 구두점과 행이 바뀌면 좀 더 가독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 전, 인류가 가축화하는데 성공한 늑대 무리의 개와 달리 늑대는 여전히 야생성을 유지하고 그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육식성 포유동물인 늑대는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는 해수로 규정되어왔다. 아니 인간과 인간의 자산인 가축들을 공격하는데, 누가 늑대의 종보존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샬롯 맥커너히의 <늑대가 있었다>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도 늑대를 지키자는 환경보호론자들과 농장주들 간의 첨예한 대립이 있지 않았던가.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늑대와의 공존 대신 박멸이라는 손쉬운 방법이 채택됐다. 아무래도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오롯하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작가가 구사하는 서사에 올라타기가 쉽지 않다. 그저 낯선 이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늑대'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 다만, 우리 호모 파베르들이 사냥총을 가지고 늑대를 상대하는 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화자는 마지막 남은 늑대의 생존을 돕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추정을 내놓는다. 마지막 늑대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재산 손실이나 인명피해 감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도덕적 질문에 예의 조력자가 어떤 대답을 할지 나는 궁금하다. 세상에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달픈 마음과 자연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헤르먼>은 사냥터 지기에 대한 이야기다. 표제작 <라스트 울프>와 같은 결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래서 두 편이 엮여서 한 권의 책으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 헤르먼은 유능한 사냥터 지기로 야생의 정글처럼 변해 버린 사냥터를 정상적(?)으로 복원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자연을 인간의 노력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묻게 된다.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직접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인간이 팬데믹으로 대륙 간의 잦은 이동을 멈추자, 자연은 그 시간을 이용해서 훼손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연을 착취하고 이용할 줄만 알았지 그렇게 손상된 자연에게 스스로 복구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지 않았다.

 

사냥터 지기 헤르먼은 그런 점에서 자연복원의 선각자가 아니었나 싶다. 오로지 인간에게 이로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해수로 규정된 동물들을 사냥해서 구덩이를 죽은 동물들의 사체로 채우지 않았던가. 그런 무의미한 죽음을 경험하서 헤르먼의 심장은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사에게 검진을 받아 보니, 더 이상 건강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심장이 아닌 정신적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유능한 사냥터 지기였던 헤르먼은 자신의 본분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인간들을 상대로 일종의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가 사람들을 상대로 놓은 덫에 많은 이들이 부상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헤르먼은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어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어떤 점에서 동물들을 핍박하던 헤르먼은 어떤 자각의 과정을 거쳐 가해자의 입장에서 수호자로 변신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모 아니면 도라는 편집증적 이분법 논리에 익숙한 인간 세계에서 헤르먼이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가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반대로 우직하게 나간 그의 행동이 수용될 리도 없었겠지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라스트 울프>는 짧지만 강렬한 주제 의식과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얇다고 해서 만만하게 생각하고 도전했다가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게 하는 잔상의 연속이 매운맛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인간과 공존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계속해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제 한 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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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5-10-27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가지고 있는데...이 작가 더욱 부담이 가네요. 그래도 책이 참 멋져서 다 모으고 싶은데 페이퍼백으로 바뀌었다니...아쉽습니다.

레삭매냐 2025-10-27 21:54   좋아요 0 | URL
저도 기존의 구판 양장본을 더 좋아
합니다. 페이퍼백으로 바뀌고 가격
이 올라서...
이래서 책이 나오면 미리미리 사두
어야 한다는 말이,,, 쿨럭.

이제 읽기만 하면 되는 거죠.

그레이스 2025-10-27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건 번역이 어떤가요?
저항의 멜랑콜리 오늘 받아봤는데,,, 너무 긴 문장에다가 명확하게 내용이 들어오지 않아서 당황했습니다. 작가가 원래 그렇게 썼겠지 하고 일단 덮었습니다.

레삭매냐 2025-10-28 07:28   좋아요 1 | URL
써주신 글을 보니 문득 오래 전에
역시 같은 결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의 책들이 출간되었을
때가 생각이 나네요.

역자들이 다 달라서, 마치 다른
작가의 책들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장이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
는 그런 느낌이었달까요.
저도 <사탄탱코>를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못 다 읽었다는....

얄리얄리 2025-10-30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써주신 글 보면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ㅎㅎㅎ
저도 이 양반의 책을 중도포기한 아픈 기억이..
다시 도전해 보자는 마음은 있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네요.

한강 작가의 글도 비록 번역은 되었어도
외국인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데,
다른 언어를 쓰고,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지 않는 작가와 독자의 거리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듭니다.

레삭매냐 2025-10-31 07:42   좋아요 0 | URL
저는 두 번 읽다 실패한
<사탄탱고>에 다시 도전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의 리뷰도 참고하고,
벨타 타르 감독의 영화 <사탄
탱고>의 장면들도 참조하니
이해가 잘 되더라구요. 영화는
무려 7시간이나...

공가하는 바입니다.
동구 전체주의 정권들이 무너
지기 전인 1985년 헝가리를 배
경으로 하고 있다는 걸 사전에
알고 들어가니 진도가 쑥쑥 나
나네요.

세상에 못 읽을 책은 없다!!!
빠이팅입니다 고저.

페크pek0501 2025-11-09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점을 두 개나 빼셨네요. 저는 사탄탱고나 읽겠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가 궁금합니다. 번역이 잘 되어 있어야 할 텐데, 하는 바람으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구매 예정..^^

레삭매냐 2025-11-12 14:37   좋아요 0 | URL
크러스너호르커이 작가의 스타일이
일단 쉽지는 않더라구요.
<사탄탱고> 저도 꾸역꾸역 그렇게
읽고 있답니다.
 
정호기 - 일제강점기 한 일본인의 한국 호랑이 사냥기
야마모토 다다사부로 지음, 이은옥 옮김, 이항 외 / 에이도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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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역시나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가 아닐까 싶다. 수년간 독서를 하면서, 나름 책을 고르는 취향을 갖게 되다 보니 관심이 없는 분야의 책들에 대해서는 거의 읽지 않게 되었다. 그런 나의 독서 편식으로부터 아주 가끔 일탈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바로 도서관 방문이다. 지난주에 빌린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일본 자산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썼다는 <정호기>, 그러니까 한국 호랑이 사냥에 대한 기록한 책과 만나게 됐다.

 

1917, 한일병탄으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지 7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일본 출신 자산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이른바 정호군을 편성해서 한국에 있다는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야마모토는 인쇄업으로 돈을 번 자본가였다. 지금 기준에서 본다면, 아프리카로 사파리 사냥여행을 떠나는 제국주의 시절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역설적으로 야마모토가 편성한 8개 팀의 호랑이 사냥대, 이른바 정호군은 한국에서 환대를 받았다. 이유는 한국에서 호랑이와 표범(한반도에 표범이 살았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같은 맹수들이 해수로 규정되어 해수구제 정책의 타겟이 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반도 곳곳에서 맹수들이 민간인들을 공격해서 실제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 민생고를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호랑이 사냥은 피해가 발생하는 현지에서는 환영을 받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오락 내지는 여흥 혹은 그들이 숭상하는 무사도의 기상을 세우기 위해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분로쿠의 난이라 부르던 임진왜란 당시 2군을 책임진 가토 기요마사는 함경도까지 진출해서 호랑이 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그 당시에는 조선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의 식민지 일부가 된 함경도에서 호랑이 사냥을 시작한다고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대자본가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강용근, 이윤회, 백운학과 최순원 같은 명포수들을 고용해서 정호대를 조직했다. 일본 도쿄를 출발해서 시모노세키에서 배를 부산에 상륙해서 경성(당시 서울)에 도착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경성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 다음 코스였던 원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탄광 사업에도 많은 투자를 한 야마모토는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고, 심지어 헌병대까지 나서서 그의 호랑이 사냥을 도왔다.

 

야마모토가 기록한 정호기를 읽으면서 이게 호랑이 사냥인지 유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정호대가 잡은 두 마리 호랑이들은 모두 조선 포수들인 백운학과 최순원이 잡지 않았던가. 특히 최순원은 총에 맞고 굴로 피신한 호랑이를 끝까지 추적해서 잡는데 성공했다. 당시 일본 관헌들은 조선 사람들에게 무장반란을 두려워해서였는지 총기류 소지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정호대원들에게는 특별히 총기 사용을 허락했던 모양이다. 호랑이굴에 갇혀 결국 포수의 총에 맞아 죽은 불쌍한 호랑이 신세는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조선 민중의 신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함경도와 강원도 그리고 전라도 일대에서 수렵한 호랑이, 표범, 수호, 산양, 멧돼지 그리고 곰들을 잡아 개선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정호대는 경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제 고관들을 불러 호랑이 시식회를 가졌다고 한다. 남은 고기들은 또 일본으로 가지고 돌아가 그곳에서 시식회를 열고, 자신의 호랑이 사냥 무용담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시절도 오래 가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부를 축적했던 야마모토는 전후 불황으로 사업들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정호대를 이끌고 호랑이 사냥에 나선지 10년이 지나 사망했다.

 

그의 정호대가 잡은 호랑이는 시마즈 제작소에서 박제로 만들어져,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모교인 도시샤 고등학교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한국 호랑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저술과 다큐멘터리들이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정호기>를 읽으면서 들었다. 늦게나마 이런 기록들이 소개되어 반가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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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0-23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데헌 열풍으로 한국에서 호랑이 인기가 더욱 높아졌지만 실제 한국에서 호랑이가 사라진것은 벌써 100년전의 일이네요.
일부에선 호랑이 종의 복원을 꽤하자는 말도 있지만 그보단 야생동물은 한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기에 특히나 호랑이는 활동 영역(암컷 400km², 수컷 1000km² 이상)이 넓기에, (한국에 국한하지 말고) 좀 더 대의적인 관점에서 (동북아 지역에서) 러시아,ㅜㅇ국,북한과 협력하여호랑이가 멸종되지 않게 보전에 좀 더 힘을 쏟아야 된다고 여겨집니다.

레삭매냐 2025-10-27 21:56   좋아요 0 | URL
케데헌 열풍을 타고서라도 한국 호랭이
에 대한 재평가과 다양한 연구가 이루
어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호랭이들의 활동반경이 어마어마하네요.
사라진 녀석들보다 지금 생존해 있는
호랭이들의 보전에 힘을 써야 한다는
의견에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미우라 씨의 친구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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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작가의 심심한 글과 그림을 가끔 즐긴다. 아니 나도 마스다 미리 작가의 팬이라고 해야 하나. 도서관에 가서 우연히 얻어 걸리면 읽는다 정도로 해야 할까. 어제 <카모메 식당>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마스다 미리 작가의 <미우라 씨의 친구>를 빌려서 오늘 다 읽었다. 역시 금방 읽을 수가 있었다, 부담 없이.

 

2년 전에 나온 책이었는데, 미처 몰랐다. 잔잔한 그래픽 노블의 주인공은 역시 미우라 씨다. 최근 하우스 셰어를 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그 하우스 셰어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이지?

 

친구”(아마도 도모다찌?)란 이름의 로봇이라고 한다. 미우라 씨는 최근 오랜 친구인 지카 씨와의 시절인연이 다하여, 좀 외로운 상태다. 남자 친구도 없는 것 같고. 부동산에서 새로운 살 집을 구하면서 로봇 친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백만 엔이라는 거금을 들여 친구를 집에 들이게 되었다.

 

홀로 사는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로봇 친구라. 나도 꽤 오래 혼자 살아봐서 예의 미션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혼자 살기의 장점도 있지만, 역시 같이 살면서 부대끼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물론 괴로운 일들도 적지 않지만 말이지. 왠지 미우라 씨에게 로봇 친구는 숨기고 싶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게다가 몇 가지 대답 밖에 못하는 친구라니. “”, “그래정도. 원래 네 가지 대사를 할 수있다고 했었나. 그리고 예쁘다라는 말을 알려주는 미우라 씨. 같이 피크닉도 가고 그랬다지. 그랬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수리도 맡겨야 했지만 말이지.

 

지카 씨와 시절인연이 끝난 미우라 씨는 이번에는 직장에서 알게 된 카지 씨와 썸을 타기 시작한다. 미우라 씨는 직장 생활 6년 차라고 한다. 그리고 카지 씨는 스탠퍼드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한 수재란다. 사실, 로봇 친구는 카지 씨의 작품이고, 부동산 에이전트는 카지 씨의 형님이다. 이 정도의 우연은 소설적 상상으로 받아 들이자.

 

카지 씨와 관계가 발전하면서, 미우라 씨는 로봇 친구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하 그것 참. 새로운 관계는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새롭게 발전할 수 없단 그런 말일까. 미우라 씨에게 고향집에서 보내온 게를 그녀의 집에서 같이 먹자고 제안하는 카지 씨. 그리고 미우라 씨는 드디어 이름도 지어 주지 못한 로봇 친구를 떠나 보내야 할 시간이 왔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미우라 씨와 무명의 로봇 친구는 같이 바다로 짧은 여행에 나선다. 항상 그렇지만 이별은 쉽지 않는 법. 아무리 새로운 관계가 대신할 거라고 하지만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누구에게나 버겁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가 내린 뒤, 졸졸 흘러가는 그런 시냇물처럼 들리는 <미우라 씨의 친구> 서사는 뭐랄까 극적인 반전이나 클라이막스 없이 그렇게 진행된다. 아니 나는 어쩌면 이런 담백한 이야기의 흐름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일상이 하도 매운 맛이다 보니, 가끔은 이런 이야기를 섭취하는 것도 단조로운 일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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