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을유세계문학전집 71
알라 알아스와니 지음, 김능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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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나라, 작가의 책도 국내에 출간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이집트 출신 알라 알아스와니의 책 <시카고>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에 출간될 정도의 필력 그리고 컨텐츠라면 믿고 한 번 도전해 봐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꼭 들어맞았다.

 

전작 <야쿠비얀 빌딩>으로 워밍업을 해서인지 이번에 <시카고>는 한층 더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심지어 재밌기까지 하다. <야쿠비얀 빌딩>에서 후진성, 군부독재에 대한 비판을 이집트 국내 실정을 들어 알아스와니가 비판했다면, 이번에는 무대를 미국의 인디언 말로 ‘강한 향기’라는 뜻을 가진 시카고로 옮겨 특유의 ‘썰’을 푼다.

 

이번 소설에서도 다양한 인물군들이 연달아 등장해서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든다. 9∙11 사태 이후, 보수반동화되어 가고 있던 미국 사회를 저격했다고 해야 할까. 1960년대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란 이들이 미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한 지금, 역설적으로 부르주아 특유의 위선으로 가득한 욕망을 억제하는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물론 그런 생각은 상대적이다, 이집트에 비해서. 미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조국을 떠나 유학 혹은 자발적 디아스포라를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는 독자의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전작 <야쿠비얀 빌딩>에서처럼 <시카고>에서도 다양한 군상들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우선 이집트 유학생 출신으로 일리노이 대학 의대에서 수학하게 된 네 명의 이집트 청년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타리크 하십과 샤이마 무함마디는 곧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고, 이집트 국가 보안국의 끄나풀이자 이집트 유학생 회장 아흐마드 다나나 그리고 반정부 성향으로 똘똘 뭉친 나지 압둘 사마드가 차례로 등장한다.

샤이마는 뛰어난 재원으로 독실한 이슬람 신자로 결혼 대신 유학을 선택했다. 공부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타리크는 유독 연애만큼은 젬병이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면, 애정공세랍시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니 누가 그를 좋아하겠는가. 그런데도 시골처녀 샤이마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니 인생사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너무 연애에 집중하다 결국 성적마저 떨어져 지도교수님에게 경고를 받고, 샤이마는 그에게 임신 소식을 알린다.

 

다른 상극에 있는 인물들로 다나나와 나지가 존재한다. 다나나는 국가 보안국의 끄나풀로 유학생의 동태를 파악해서 정부에 보고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한다. 오로지 출세에 눈이 먼 다나나는 돈을 보고 부유한 집 규수 마르와와 결혼해서 장인의 돈를 갈취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아내에 대한 성적 착취는 말할 것도 없다. 그가 이집트에서 취득한 박사 학위도 자기 실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보안국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는 국가 보안국이 만든 괴물이었다. 미국 지도교수인 ‘세포 촬영 기사’ 데니스 베이커에게 날조된 슬라이드를 제출했다가 봉변을 당하고 제적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집트 보안국 소장으로 주미 이집트 대사관 참사관으로 복무 중인 사프와트 샤키르 소장에게 달려가 SOS를 친다. 그런데 이 사프와트라는 자가 어떤 자인가 하면, 반정부 시위를 하던 인사들을 잡아다가 혹독한 고문은 물론이고 파렴치한 방법을 고안해 수감자들이 비밀을 누설하게 만드는 기술자였다. 다나나의 아내 마르와에게 눈독을 들인 사프와트는 “은밀한 유혹”을 다나나에게 던진다. 정말 이집트판 막장 드라마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그래서 더 재밌었는 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다 읽지 않고서는 책을 내려 놓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음 주자는 나지다. 이미 이집트에서 다나나와 악연으로 얽혔던 나지는 일리노이대 교수들의 호의로 미국 수학의 꿈을 이루게 된다. 문제는 이 청년이 미국에 도착한 날 바로, 매춘부를 학교 기숙사로 들였다는 점이다. 그렇게 짜잔 등장한 흑인 여성 도나는 나지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여성이었다. 서비스 대가로 약속한 돈 150달러 대신 100달러를 강탈당한시피 뺏긴 나지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호색한처럼 보이는 모습과 달리 나지는 조국 이집트를 사랑하는 애국청년이자 시인이다. 미국 유학도 사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의 일부였다. 조국의 후진성, 무지, 빈곤 그리고 조국의 발전을 가장 저해하는 요소로 군부독재를 꼽는 청년은 자신의 지도교수 존 그레이엄이 마련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 콥트교도 카람 도스와 주먹다짐에 가까운 논쟁을 벌인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제트엔진을 단 것처럼 소설을 달리기 시작한다.

 

알라 알아스와니의 자전적 소설 <시카고>의 한 축을 이렇게 네 명의 이집트 유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다면, 다른 한 축에는 그들을 지도하는 교수님들의 애환을 그린다. 가장 먼저 1960년대 자유로웠던 혁명 시절 투사였던 의사 존 그레이엄 교수는 자본주의 굴레라고 생각하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혁명과 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 60대 교수는 노년에 외로움을 벗으로 삼게 됐다.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싱글맘이자 흑인여성 캐럴 맥킨리와 그녀의 아들 마크와 살게 되면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구가한다. 문제는 경제적 이유에서 시작되었는데, 흑인이라는 이유로 캐럴은 어느 곳에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극심한 인종차별이라는 구조적 모순의 희생자였다. 존의 동료 교수 조지 마이클은 그녀에게 모욕을 서슴지 않는다. 그녀가 친구 에밀리의 도움으로 속옷 모델이 되면서 존과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어느 가정에나 문제는 있다는 톨스토이의 말이 왜 이렇게 와 닿는 걸까.

 

두 명의 이집트 출신 교수들 가운데 한 명인 라으파트 사비트는 미국인으로 성장한 딸 사라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조국 이집트를 잊고 완벽한 친미주의자로 변신한 라으파트는 사라가 왜 제프 같은 남자를 만나지는 알 수가 없다. 그를 따라 시카고의 악명 높은 우범지대 오클랜드로 가서 살겠다는 딸을 라으파트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사라는 결국 아버지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제프의 권유로 ‘행복클럽’에 가입했다가 마약중독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무함마드 살라흐 교수의 삶 역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인 아내 크리스와의 결혼 생활 중 아내를 성적으로 충족시킬 수 없었던 살라흐 박사는 정신과 치료가지 받게 된다. 치료상담 와중에 살라흐는 미국 여권을 얻기 위해 크리스와 결혼했다는 진실을 지적하고 불같은 화를 내뿜는다. 그는 왜 화를 냈을까? 그건 바로 상담의사가 진실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국 이집트를 떠나 미국 생활을 택한 것을 곧바로 후회하기 시작한다. 아내 크리스와의 별거는 시간문제였다. 아내 크리스는 ‘개량형 산토끼’라는 이름도 야릇한 기구를 이용하기 시작하고, 살라흐는 30년 전 연인이었던 카이로의 자이납에게 연락을 취한다. 카람 도스와 나지에게 설득당한 그는 후스니 무바라크의 미국 방문 중 그의 독재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해서 자신의 용기를 만방에 떨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오래된 베레타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콥트교도 출신 카람 도스 교수는 역시 자신의 석사 학위 취득을 방해하던 지도교수의 심장수술을 의뢰받는 드라마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시카고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신의 손에 원수의 운명이 달린 것이다.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자신의 앞길을 번번이 막아선 남자에게 복수를 할 것인가? 아니면 주님의 자비를 그에게 선사할 것인가. 작가가 마련한 이런 장치야말로 소설을 더욱 더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다.

 

카람 도스 교수와 격돌했던 나지는 그의 진심을 알게 된 후, 그와 협력해서 이집트 정부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선다. 한편 매력적인 미국 여성 웬디 쇼어 양을 만나 그야말로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그녀가 바로 유대인이라는 점이었다. 초반의 러브러브 모드는 좋았지만, 나지와 카람 도스 교수의 반정부 시위 계획을 알게 된 사프와트가 나지를 방문하면서 웬디와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자신 역시 사프와트의 농간으로 테러리스트 혐의자가 되어 미정보기관에게 잡혀 가는 신세가 된다.

 

치과 의사 출신 작가의 본업은 과연 의사인가 작가인지 궁금해졌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문인 출신이었다는데, 손자 대에서 가장 화려하게 그 실력이 발휘된 게 아닌가 싶다. 알라 알아스와니는 냉철한 시선으로 현대 이집트가 처한 상황을 비판한다. 이집트가 직면한 후진성, 무지 그리고 빈곤을 끝내기 위해선 무바라크 정권의 장기 독재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아랍의 봄’ 이후 민주주의가 아랍에서 꽃을 피웠던가? 사우디에서 적극 지원하는 보수적 와하비즘이 사방으로 수출되어 오히려 민주주의가 고사된 건 아닐까? 조국의 도움을 받아 성공을 이룬 지식인들이 이제는 조국에 보답할 때라는 나지의 주장이 남다르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도 한 때 국가에서 인적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비용을 들여 국비유학생들을 만들지 않았던가? 그들이 과연 국가에 얼마나 공헌을 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미국이라는 공간에 진출한 이집트 사람들이 보통 사람일 수는 없다. 모두가 일단 지식인이라는 계급성을 담보한다. 어떤 이들은 미국 사회를 칭송하면서 아예 조국을 잊고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자이납 같은 인사들은 조국에 남았지만,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책의 어디선가 읽은 자본주의가 지닌 자구력이 체제의 몰락을 막아냈다는 지적은 상당히 날카로운 분석이었다. 독재정권에 부역하는 이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실제적인 이집트의 지배자라며 전횡을 일삼는다. 그것을 참지 못하는 이들은 결연히 행동에 나서지만, 그것은 마치 부처님 손바닥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부역자들에게 사전에 감지되고 이집트의 동맹국 미국 정보기관원에게 잡혀간다. 그렇게 모든 것은 원점으로 회귀한다.

 

지금까지 알아스와니 작가는 모두 5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2002년에 발표한 <야쿠비얀 빌딩>이 두 번째 그리고 2007년에 나온 <시카고>가 그의 세 번째 소설이었다. 그 후에도 두 권의 소설을 더 발표했는데, 속히 그의 책들이 한국에 소개되길 바란다. 2013년 발표한 <자동차 클럽>을 기대해 본다. 일단 한 번 읽어 보시라, 알아스와니의 매력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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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9-02-19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아스와니의 매력에 대한 코멘트에 완전 동의합니다!

레삭매냐 2019-02-19 11:17   좋아요 1 | URL
알아스와니의 다른 책들도 출간
되면 얼매나 좋을까요...

이집트 상황도 80년대 한국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네요.

coolcat329 2019-02-19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스트에 추가 안 할 수가 없네요.

레삭매냐 2019-02-19 13:21   좋아요 1 | URL
후회하시지 않을 거라 믿슙니다 !!!
 
야쿠비얀 빌딩 을유세계문학전집 43
알라 알아스와니 지음, 김능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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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블로거님이 이 책을 읽었다는 글을 읽고서 부리나케 서가에서 알라 알아스와니의 <야쿠비얀 빌딩>을 찾았다. 4년 전에 5,200원 주고 산 책이었다. 그런데 알아스와니의 <시카고>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지 않았다면 당장 도서관에 가서 빌려 오거나 사던가 해야겠다. 그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는 말씀이다.

 

이집트 카이로 출신의 알라 알아스와니는 미국 유학파 출신 치과의사로 변호사집 아들이다. 이 작가는 이집트가 처해 있는 모든 만악의 근원을 군부독재에 있다고 진단한 모양이다. 1934년 부유한 아르메니아 사람이 파리의 어느 건물을 복사하다시피 해서 직은 야쿠비얀 빌딩에는 이집트의 복잡다단한 현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 자키 베 알두수키는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의 혁명 이전 시기를 기억하는 서구식 사고방식을 가진 신사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여자뿐이다. 어떻게 보면 호색한이라고 볼 정도로. 그렇다고 해서 무지막지한 방식으로 여자들을 취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신사다운 방식으로 그녀들에게 접근한다.

 

야쿠비얀 빌딩을 지키는 수위의 아들로 등장하는 타하 알샤들리의 경우는 이집트의 구조적 시스템 때문에 인생을 망친 경우다. 경찰 대학 진학을 꿈꾸던 청년은 자신이 문지기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신다. 그러니까 이집트 역시 기득권층의 나라였던 것이다. 경영 대학에 진학했지만, 더 이상 인생설계 따위는 그에게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신앙심 깊은 청년은 자연스레 이슬람주의로 경도되고, 때마침 시작된 걸프전에서 이라크의 동료 무슬림들을 핍박하는 데 동원된 이집트 정부를 비판하다가 보안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이제는 아예 지하드 전사가 되어 자신에게 모욕을 가한 이들에게 처절한 복수만을 꿈꾼다. 주인공 중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신하게 되는 캐릭터다.

 

타하의 여자친구로 등장하는 부사이나 알사이드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알아 버린 신여성이다. 상업학교를 졸업한 부사이나는 순수한 청년 타하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타하가 그녀의 경제적 곤란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녀가 취업하는 거의 모든 직장의 상사들을 그녀의 육체를 탐한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의 순결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어머니의 공모에 가까운 협박으로 치욕적인 돈벌이에 나서게 된다. 그러다가 만난 자키 베와 진정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키 베의 충실한 비서로 가장한 아바스카룬과 말라크 형제는 또 어떤가. 한 꺼풀만 벗겨 놓고 보면 거의 악당에 가까운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상대방의 호의를 이용해서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성공한 기업가 행세를 하다가 국회의원직을 돈 주고 사는 하즈 무함마드 앗잠도 마찬가지다. 이 파렴치한 노인네는 늘그막에 바람에 들어 넘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 번째 장가를 들게 된다. 그렇게 계약결혼한 매력적인 과부 수아드와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다. 그의 실체는 마약 암거래상이었는데, 계속되는 성공에 자신의 본분을 잊고 카이로의 진짜 실력자 어르신에게 도전했다가 봉변을 당한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풋내기 같은 실수였다.

 

마지막 퍼즐로 무슬림에서 엄격하게 금지된 동성애를 즐기는 하팀 라쉬드가 있다. 역시 부유하고 유력한 집안 출신의 중년 남자는 어린 시절 자신을 돌보지 않은 부모 덕분에, 자기 주변에 있던 동성애자 하인의 유혹으로 동성애자가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한탄한다. 중앙 보안군 소속 청년 압두 랍부흐의 야성적인 매력에 반해 그를 애인으로 삼고,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지속적인 쾌락을 추구한다. 멈출 수 없던 하팀의 욕망은 종말에 가서 파국으로 끝이 나게 되는데, 먹물의 속물근성을 알라 알아스와니는 정확하게 짚어낸다.

 

저자는 아랍의 봄시위로 30년 권좌에서 물러난 호스니 무바라크 시절을 관통하는 야만의 시대를 있는 그대로 비판한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민주주의가 그들의 종교와 상극이라고 선전한다. 현실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소수 지배계급의 엘리트가 좌지우지하는 이집트 국가의 모습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헬조선이라는 말 속에는 열심히 일해도 정당한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이 내재되어 있지 않은가. 부사이나와 타하로 대변되는 이집트 청년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가 그들의 욕망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데, 반대로 그들을 억압하고 옥죄는 장치로 작동한다. 도무지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은 자산가의 후취로 들어가거나 정부가 되고, 동성애자의 애인이 되어 삶을 영위한다. 이것은 비극의 연대기인가 아니면 너무나 리얼한 현실의 기술인가.

 

하팀과 자키 베로 대변되는 서구 문물을 추구하는 지식인 계급의 위선 역시 마찬가지다. 혁명 이전의 호시절을 떠올리며 상류 계층의 커넥션과 자산을 배경으로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하는 그들의 모습도 야쿠비얀 빌딩에 살면서 따뜻한 음식과 시샤 그리고 섹스를 탐닉하는 소시민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자고로 욕망이란 어느 지점에서 모두 만나기 마련이 아닌가. 그런 세기말적 에피쿠로스적인 쾌락지향주의가 가리키는 종착점은 언제나 허무가 아니었던가.

 

다수의 캐릭터들이 교차로 등장하면서 혼란스럽던 초반의 전개는 캐릭터들에 대한 적응이 끝나면서 흥미를 더해가기 시작한다. 중반을 지나자 걷잡을 수 없는 독서의 쾌락 레이스가 시작된다. 아니 그래서 타하는 과연 순교자의 길을 걷게 되는 걸까? 부사이나는 자키 베를 배신하고 말라크가 원하는 계약서를 수중에 넣을까? 아들을 잃고 상심한 압두는 하팀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자연스레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생전 처음 만나는 이집트 소설가의 이야기는 21세기 한국의 풍경과 매우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더더욱 구미가 동했는지도 모르겠다. 비극마저도 아우르는 소설의 재미와 리얼리티는 과연 압도적이었다. 서가에서 알라 알아스와니의 <시카고>를 찾지 못한다면 아마도 나는 다음 주에 그 책을 주문할 것 같다. 부디 내가 이전에 산 책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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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알파벳
시배스천 폭스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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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특별한 시기에 만나게 되는 책이 현재의 삶을 관통하기 마련이다. 나에게 지난주에 사서 읽게 된 시배스천 폭스의 책 <바보의 알파벳>이 그런 책이다. 가히 인생의 책이라 부를 만하지 싶다. 올해 <리옹 도르의 여인>으로 시배스천 폭스를 알게 되었는데 최애하는 작가로 삼아야지 싶다. <새의 노래>와 <초록 돌고래의 거리>도 속히 구해서 읽어야겠다. 다만 문제는 두 책 모두 절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원서로 폭스의 최신간 <파리 에코>도 주문해야겠다.

 

어찌해서 <바보의 알파벳>을 나의 인생책이라 부를 만한지 썰을 풀어 보도록 하자. 프랑스, 전쟁, 로맨스 그리고 멜로드라마라는 주제에 있어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저널리스트 출신 시배스천 폭스가 1992년에 세 번째로 발표한 소설에는 삶을 망라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생의 과정, 만남, 이별, 죽음, 사랑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주제들이 넘실거린다. 우리의 주인공 피에트로 토마스 러셀은 우선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의 아버지 레이먼드 러셀은 2차 세계대전이 종반으로 치닫던 1944년 이탈리아 안치오 해변에 상륙해서 독일군의 치열한 방어전 와중에 부상을 당하고 후방으로 이송된다. 이렇게 폭스의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전쟁 시퀀스로 소설은 시작된다. 시작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시작이 이 정도로 강렬해야지.

 

그렇게 후방에서 만난 19세 이탈리아 소녀 프란체스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요건 좀 클리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쟁 신부가 되어 러셀을 따라 영국으로 이주한 프란체스카는 아들 피에트로를 낳고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문제는 그녀가 암에 걸려 그 행복한 시절이 오래 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말할 점은 소설 <바보의 알파벳>은 모두 알파벳 자수대로 2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과 장소를 오가며 마치 한 편의 퍼즐 게임을 맞추는 듯한 전개가 이어진다. 지금 당장 내가 전혀 모르는 사건이 등장한다고 해서 긴장할 필요는 없다. 작가가 치밀하게 구성한 내러티브가 이어지니 말이다.

 

아버지의 곁을 떠나 엄격한 훈육이 시행되는 기숙학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평생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소녀 로라를 만나고, 평생지기 해리 프리먼을 만나기도 한다. 어여쁘고 재능도 출중한 로라와 사랑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였을까? 시간의 더께를 가지고 성장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벨기에 출신 부르주아 계급의 아가씨 한나와 결혼한 점도 삶의 아이러니를 반영하는 것일 게다.

 

피에트로는 자신의 정체성만큼이나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 러셀이 집착적으로 몰두하는 어원학에서 유래했을 지도 모를 A에서부터 시작해서 Z까지 이어지는 어떤 공간들이 순차적으로 배열되는 목차를 보고 나도 소설에 등장하는 도시들 가운데 몇 군데나 가보았는지 꼽아봤다. 로마, 파리, 뉴욕, 주룽 그리고 잠깐 거쳐 갔던 소렌토까지 하면 5곳이었다. 엑셀로 나도 한 번 소설의 궤적을 기록해보려고 했지만 어차피 다 완성하지 못할 바에야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그만둬 버렸다. 난 참 포기도 빠른 인간이다. 여하튼 간에 폭스가 그리는 기억의 연대기는 정말 흥미진진하고 내 삶을 대입해 봐도 유사한 궤적들을 찾을 수가 있어서 더욱 더 애착이 가지 않았나 싶다. 바로 이런 책이야말로 인생책이라 부를 만한 게 아닌가.

 

한국사람 가운데 과연 여행을 떠나면서 책을 챙겨 가는 이들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서구 작가들의 책을 읽다 보면 어디서고 책이 등장한다. 산책하지 않는 시간에는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 게 너무나 당연한 풍경 중의 하나다. 영국에 가서 찰스 디킨즈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아마 구입해서 다시 읽었지 싶다. 아니 여기서 또 포인트는 새로 읽은 것이 아니라 다시 읽었다는 점일 것이다. 나같은 책쟁이들이 절대 놓칠 수 없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도무지 평생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Q로 시작하는 과테말라의 케찰테낭고에는 왜 갔을까? 로라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해변에서 이별하고 그대로 차를 달려 멕시코 국경을 넘어 케찰테낭고에까지 간 것이다. 그곳에서 이탈리아계 영국인 피에트로는 현지 주민들에게 한낱 부유한 그링고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어느 궁금증에 대한 호기심을 살살 달래 주는 작가의 실력 역시 감탄할 만하다.

 

누구처럼 강박적인 독서가 아니라 때가 되어 읽고 싶다는 주인공 피에트로의 변명 아닌 변명도 마음에 든다. 교과서에 나오기 때문에 혹은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독서의 진정한 쾌락을 깨달은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지경에 도달했단 말인가. 내가 아마 이 책을 이십대에 읽었더라면 절대 인생책으로 치부할 수 없었으리라. 죽음이나 육아 혹은 친구를 배신하고 물질을 추구해야 하는 갈림길 같은 삶의 어느 지점에서만 고유하게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만 작가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게 됐다. 프랑스 휴가 중에 산악자전거를 타고 가족과 만났지만, 첫째 딸 메리가 없어져서 애타게 찾는 와중에 자신이 상상한 끔찍한 결말이 차라리 빨리 왔으면 하고 생각하는 고뇌를 애를 길러 보지 않은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공감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미국 에번스턴에서 만나 사진작가 피에트로에게 옵션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며 친구를 배신하라고 종용하는 어느새 상사가 된 폴 콜먼의 유혹은 또 어떤가. 아무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평생기지를 배신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자신을 유혹하는 맘몬을 밀쳐내고, 사표 받을 준비를 하라는 피에트로의 결기에 통쾌한 느낌이 절로 솟아났다. 해리 가족과 여행에서 마사의 질문에 피에트로가 머뭇거린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구나. 참으로 멋진 내러티브의 전개다.

 

분쟁의 코어 예루살렘을 방문한 피에트로와 해리가 현지 유대인들과 벌이는 정치적 대화도 작가의 저널리스트다운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현지 유대인의 의식을 대표하는 몇몇 이들이 원래 그곳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공존을 인정하지만, 그들은 요르단이나 시리아 같은 나라의 국적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자기 유대인들이 그곳을 그렇게 비옥한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펼친다. 천년 넘게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들이 그 옛날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받은 자신들의 땅이라며 영주권을 주장하는 게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까. 다시 한 번 그곳에서는 어떤 해결책도 쌍방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롬보에서 싱할라족과 타밀족이 겪는 갈등에 대해서는 예전에 송도에서 만난 국제기구에서 일한다는 스리랑카 아저씨와의 대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타밀 일람 호랑이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 아저씨는 무척이나 놀랐었지 아마.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는 데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피에트로의 할아버지 만한 끈이 없었으리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세계대전에 참전한 러셀 가문이라. 유럽의 18세에서 30세에 이르는 청년들의 30%가 전장에서 전몰되었다는 끔찍한 사실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한 세대의 1/3이 세계대전에서 아무런 의미 없는 보몽이나 티에프발 같은 참호전에서 사라져 갔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왜 우리 세대에 반전이 필요한 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고 시배스천 폭스가 삶이나 죽음 혹은 예루살렘의 정치적 문제 혹은 세계대전 같은 거창한 주제들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와 함께 한 이탈리아 소렌토 여행길에 식사를 하던 리스토란테에서 “엄청난 양의 밥이 실망스럽게도 일정한 색”을 띠고 있었다느니 “치즈가 거미줄처럼 숟가락에 달라붙어” 있었다는 디테일은 또 어떤가. 콜먼 휘하에서 일하는 각종 풍문과 스캔들이 난무하는 진원지에 대한 이야기나 매점에 팔리는 샌드위치의 푸르스름한 빛이 나는 “다진 정어리와 참치 마요네즈”나 재가공된 햄으로 보이는 푸석푸석한 살코기들을 나사못처럼 보이는 것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묘사는 정말 대단했다.

 

소설은 A 이탈리아의 안치오에서 시작해서 Z 이탈리아의 차니카에서 끝난다. 그것은 피에트로 인생의 기원이 되는 알파와 오메가였던 것이다. 처음에서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끝내는 종결은 작가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보다 더 멋진 결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이제 소설 속의 피에트로보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삶에 대한 욕심이 더 많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어디선가 만난 질문이 계속해서 뇌리를 때린다. 당신은 인생을 즐기고 있는가라는. 좀 더 많은 시배스천 폭스의 책을 읽어야겠다. 결론은 슈퍼그뤠잇!!!


[뱀다리] 너무 급하게 리뷰를 적다 보니 사진작가 피에트로의 사진 이야기를 빼먹었구나. 그의 행적을 쫓다 보니 예전 흑백필름 현상과 인화를 배우던 시절 생각이 문득 났다. 그전에도 무지 사진을 찍었었지만, 언제고 기회가 되면 현상/인화를 배우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시킬 수가 있었다. 첫 번째 유럽여행에 가서 찍은 흑백사진들을 현상액을 잘못 부어 망친 일들, 암실 대신 암실옷(?)을 입고 캐니스터에 필름을 감다가 그만 빛을 쬐어 날린 경험들이 <바보의 알파벳>을 읽는 동안 오롯이 피어올랐다. , 치열했던 나의 어느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 것만으로도 독서한 보람을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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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2019-02-12 1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때문에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의뢰로 번역되어 있는 책들이 좀 되는군요.
슈퍼그뤠잇인 이 소설은 절판이나 품절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입니다. ㅎㅎㅎㅎ

레삭매냐 2019-02-12 11:50   좋아요 2 | URL
폭스의 책이 무려 18권이나 되는데...
국내에 번역된 건 꼴랑 5권이랍니다.

그나마 두 권은 절판, 오늘 초록 돌고래
중고서적으로 주문 날렸습니다.
상태가 좋은 녀석으로 와야 할 텐디...

<파리 에코>도 읽어 보고 싶네요.

설해목 2019-02-12 11:57   좋아요 1 | URL
이 작가의 다른 책들에 대한 레삭매냐님 리뷰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서니데이 2019-02-13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있으면 조금 더 책을 읽고 싶을 때가 있어요.
여행을 떠날 때도 그렇고요. 재미있는 책으로 챙겨가지만, 많이 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가방속에 넣고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9-02-13 21:04   좋아요 1 | URL
저도 2013년 여름 캄보디아/태국 여행 길에
욕심에 책을 한껏 가져 갔었지요.

피피섬으로 가는 배 위에서 그 험한 풍랑이
넘실거리는 데도 눈이 빠져라 책을 읽어서
주변 사람들이 다 놀랐던 기억이...

그 책이 바로 정영문 작가의 <어떤 작위의
세계>였었는데 아직도 못 다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

뒷북소녀 2019-02-14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또 절판. 왜 레삭매냐님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작가들의 책은 모두 절판인거죠?ㅋㅋㅋ

레삭매냐 2019-02-14 13:4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책들
이 하나 없네요.

멤포 지아르디넬리의 책은 구할 수가 없어
서 결국 책바다 서비스를 신청했네요. 너무
읽고 싶어서요.

글구 오늘 시배스천 폭스의 <초록 돌고래
의 거리>도 도착했답니다. 물론 바로 읽기
시작했구요...

카알벨루치 2019-02-14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모르는 작가를 넘 많이 아셔서 ㅜㅜ쩝

레삭매냐 2019-02-14 13:41   좋아요 1 | URL
뭐 저도 올해 알게 되어 읽은 작가인
걸요.

<리옹 도르의 여인>, <바보의 알파벳>
그리고 오늘부터 <초록 돌고래의 거리>
를 읽습니다.

기회가 되면 원서로 <파리 에코>도 만
나 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답니다.
열린책들에서 도통 새로운 책 번역을
하지 않고 있네요.

카알벨루치 2019-02-14 13:49   좋아요 1 | URL
원서라....👍👍👍

레삭매냐 2019-02-14 14:03   좋아요 1 | URL
무언가 오해를 하심이...

원서는 모름지기 읽기용이 아니라
소장각으루다가 ㅋㅋㅋ
 
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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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역시 리디북스를 통해 알게 되어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책이다. 다시 한 번 리디북스 땡큐우~

 

소설에서 정말 얄미울 정도로 정의를 추구하는 실제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다가키 노리코는 이름에 들어간 한자 규범같은 인물이다. 노리코는 여고 시절 5총사를 이룬 가즈키, 유미코, 리호 그리고 레이카에게 한편으로는 도움을 주어서 은인 같은 존재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원수 같은 인물이다. 그녀에게 동정심 따위는 없다. 오로지 자신을 황홀하게 만드는 정의를 추구할 따름이다. 네 명의 친구들은 노리코가 자신들을 진심으로 도왔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드러나는 사실은 노리코는 자신만을 위한 정의를 따랐을 뿐이다.

 

전조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있었다. 수업 시간 도중에 쪽지돌리기를 선생님에게 고발하고, 단순한 경고 정도로 끝낼 학내 흡연문제를 공론화시켜 연루된 선생님의 은퇴와 경찰관의 징계도 불사할 정도로 슈퍼 히어로 같은 존재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희생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유미코 케이스에서도 두 명의 노숙자들이 동사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들이 타인의 이야기라면 모르겠지만 자신의 경우가 되면 다른 차원의 문제로 비화가 된다는 걸 아키요시 리카코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가즈키에게는 취재 대상에 대한 교묘한 설득 작업의 과정을 알게 된 노리코가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를 날릴 법한 폭로를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첫 번째 살인 동기가 부여된다. 아 그전에 경비 처리르 위해 영수증을 챙기겠다는 가즈키에게 탈세라며 몰아 붙이는 장면에서는 정말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버렸다. 네 명의 친구들 모두 노리코가 구사하는 논리에 맞대응하지 못한다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그녀의 주변을 떠날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을 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자인 무능력한 남편과의 이혼을 원하는 유미코에게는 자식들의 양육권과 위자료를 주어야 할 지도 모를 아동학대 건을 부각시킨다. 병주고 약주는 식으로 남편으로부터 탈출을 종용하기도 하다가 또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숨어사는 곳을 알려주니 친구라고 생각한 유미코로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의란 말인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영재교육 사업으로 성공한 리호에게는 불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난자를 제공하겠단다. 미치겠다 정말. 리호의 미국인 남편 조이 윌리엄스 씨는 그들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의 재정을 맡게 된 노리코의 헌신을 높이 평가하고, 나아가서는 가족으로까지 받아 들일 기세다. 이것을 리호가 용납할 수 있을까? 물론 절대 아니다. 마지막으로 삼십대 중반의 성공한 연기자 레이카의 어린 시절 문제를 해결해준 바 있는 노리코가 이번에는 자신의 커리어를 송두리째 날려 버릴 지도 모를 그런 스캔들을 폭로하겠다고 나선다. 이 친구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결국 네 명의 친구들은 의기투합해서 노리코를 살해한다. 모두들 노리코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동시에 그런 이유로 그녀를 증오하는 친구들이다. 노리코의 돌아가신 어머니도 자녀에 대한 콘트롤 매니악이었던가. 통금을 어긴 노리코를 데리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녀는 더더욱 정의 구현에 앞장 서는 것일까? 변호사 뺨치게 법조문을 줄줄 외우며 원리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 친구들은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원래 친구 사이라면 그 정도는 눈감아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작가가 후반에 준비한 결말을 대단하다. 어떻게 보면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절대정의>를 통해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한 우리들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크고 작은 잘못들을 수시로 저지르면서 합리화의 과정을 통해 반칙과 위반들을 사소하다고 폄하하는 나의 모습 말이다. 그리고 보니 나는 어제도 무단횡단을 했지 아마. 주변에 이런 친구가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마 나라도 노리코의 친구들처럼 소원해지지 않았을까. 그저 만나서 술 한 잔 하면서 그간의 회포를 나눌 수 있는 친구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나저나 요즘에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도통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구나. 서글픈 시절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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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2-10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친구’와 ‘책 안 읽는 친구’와 대화하는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죠. 저도 전자의 친구와 대화하는 게 편하고 즐거워요. 후자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대화 레퍼토리가 뻔해서 다시 만나고픈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

레삭매냐 2019-02-10 16:08   좋아요 0 | URL
공감하는 바입니다 -

다만 또 책읽지 않는 친구들과의 만남
역시 그만큼이나 즐거운 시간들이랍니다.
 

 


나는 언제부터 중고책만 사게 되었다.

새 책은 잘 안산다. 꼭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 신간 희망도서를 신청해서 읽는다. 잔뜩 사두기만 하고서 읽지 않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다. 신간도 제법 도서관에서 수급을 잘해줘서 읽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

 

오늘도 중고서점 원정가서 다섯 권을 데려왔다.

일단 로맹 가리의 <흰 개>는 작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긴 했지만 소장각으로 데려왔다.

왠지 올해 안으로 다시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재독이야말로 독서인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마음에 드는 책이어서 읽었지만 샀노라고 자위한다.

 

다음 주자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카사노바를 쓰다>. 이렇게 얇고 작은 책인 줄 미처 몰랐다. 판형도 아주 작고, 쪽수도 적다. 164쪽이란다. 올해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읽기로 했으니 기회가 될 때마다 걸리는 책은 살 것이다라고 핑계를 대본다.

 

그동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이언 뱅크스의 <말벌 공장>은 사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었다. 품절된 책이라 시중에서 구할 수도 없으니 기회가 되면 당근 사야 하지 않을까. 참 핑계도 다양하구나. 상태는 아주 좋다. 마음에 든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한 번 빌려다가 책을 펴기는 했으나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인지 어쨌는지 못다 읽고 반납한 기억이 난다.

 

시배스천 폭스의 <바보의 알파벳>도 당당하게 목록에 올랐다. <리옹 도르의 여인>을 읽고 나서 폭스 작가의 책을 모두 읽겠노라고 마음 먹었으니 당연 사야지. 일단 사두고 읽는 것은 나중에, 우리 독서인의 모토가 아닌가. 지난 명절 때 폭스의 책을 읽겠다고 도서관에서 자그마치 세 권이나 빌렸으나 결국 읽지 못하고 이번 주 내내 반납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비해 상태가 좋지 않지만 가격이 너무 착하다. 오늘 낮에 커피빈에서 마신 라떼 한 잔 값보다도 싸다. 라떼 5,800원 책 4,00010% 할인을 받았으니 더 저렴하겠지. 밑줄 좍좍 그으면서 한 번 읽어 보리라.

 

마지막 책은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미국은 섹스를 한다>라는 책이다. 이 책이 오늘 산 책 중에 가장 저렴한 레테르를 달고 있다. 단돈 2,600원 커피 한 잔 값도 짜장면 한 사발 값도 안되는 가격이다. 지난 번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테미오의 최후>를 비싸게 사서 읽다 말았지 아마. 멕시코를 대표하는 작가의 책으로 작년부터 읽기 시작한 푸엔테스 작가 읽기의 연장선이다.

 

자 이제 어떤 책부터 읽을까나. 행복한 고민의 시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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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2-08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벌 공장> 20대 초반에 저도 읽었는데, 겨우겨우 읽고 나니까 웬만큼 충격적인 작품들도 버틸 수 있게 되더라구요 ㅎㅎㅎㅎㅎ

레삭매냐 2019-02-08 21:20   좋아요 0 | URL
엽기적이라고 짜안!~ 하더군요.

당장 도전은 그렇고 봄이 오면
한 번 읽어 볼까요...

설해목 2019-02-09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쌓여가는 책을 보니 신간 사기가 주저되긴 하더라구요.
그래도 굿즈에 혹해서 가끔 신간을 왕창 사기는 합니다. ㅋㅋ
저도 어제 중고서점 가서 5권 데려왔어요! 낑낑거리며 걸어도 즐겁더라구요. ^^
사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었다는 레삭매냐님의 글도 그렇고 syo님 글도 보니 저도 <말벌 공장>에 혹합니다. 왜 충격적일까나....리뷰로 꼭 알려주세요! ^^

레삭매냐 2019-02-09 09:00   좋아요 0 | URL
굿즈... 독서정가제 실시 후에 기기
묘묘한 굿즈들이 등장해서 유혹하
더라구요. 전 최근에 예스24 중고매장
에서 산 고흐 책갈피를 아주 애정하고
있답니다. 넉넉해서 여기저기 꽂아도
남더라구요 :>

낑낑... 책쟁이들의 숙명입니다.

<말벌 공장> 대신 전 시배스천 폭스
의 <바보의 알파벳>을 집어 들었는
데 넘 재밌어서 100쪽을 순식간에
읽었네요.

<말벌 공장>은 고 다음에 읽고 리뷰
로 보답하겠습니다 ㅋㅋㅋ

coolcat329 2019-02-09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독이야말로 독서의 본질‘이란 생각에 정말 공감합니다. 그 진리를 40넘어 이제야 깨달았는데 시간과 체력이 안받쳐주니 마음만 조급해지네요ㅎㅎ 저도 사실은 레삭매냐님을 보고 중고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츠바이크 저 시리즈는 얇지만 내용은 강렬한거 같아요. 몰랐던 책 알게 되어 좋아요.

레삭매냐 2019-02-09 19:33   좋아요 1 | URL
일찍이 이탈로 칼비노가 그랬더랬답니다.

책은 다시 읽는 것이라구요.
새 책이 엄청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재독이야말로 우리 독서인들이 추구
해야 할 로망이 아닌가 사료해 봅니다.

말쌈 대로 츠바이크 짱입니다 !!!

가끔 사연이 있는 중고책을 만나게
되는 데 참 그렇더군요. 그전에 어느
분은 콜롬비아 갈 꿈에 마르케스의
책을 샀는데 꿈이 무산되어 책을 파노
라는 글을 써 두셨더라구요 ㅠㅠ

서니데이 2019-02-09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사진이 흑백같은 느낌이 들면서 예쁜데요.^^
전에 읽었던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개정판이 나오는 것처럼 다시 읽고 싶어져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표지도 새로 나오는 것처럼 다시 읽으면 조금은 새로운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요.
레삭매냐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9-02-09 21:11   좋아요 1 | URL
달아주신 덧글을 읽고 보니 그렇네요 :>

오래 전에 흑백사진 찍고 인화하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정말 오래 전
일이네요.

가끔은 흑백사진을 찍어 보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