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여신상의 오른발 모두를 위한 그림책 22
데이브 에거스 지음, 숀 해리스 그림, 황연재 옮김 / 책빛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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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됐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어떤 인스타 피드에서 보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책의 이름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오늘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빌려왔다. 이 책은 아동도서로 분류가 되어 있어서, 어린이 자료실에서 빌려야 했다. 어른이는 대출이 안되나 싶었지만, 프리패스라 다행이었다. 다와다 요코의 <헌등사>와 무레 요코의 <버리지 못한 사람들>도 같이 빌렸다.

 

미국 뉴욕의 상징인 된 <자유의 여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미국 출신 작가 데이브 에거스가 들려준다. 누가 봐도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내용은 훨씬 더 심오하게 다가온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의 정치가 에두아르 드 라불레는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어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라는 조각가에게 이를 의뢰했다. 그리고 보니 미국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는 미국 편에 서서 압제자 영국과 싸우지 않았던가.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 2차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국이 노르망디에서 프랑스를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흘려가며 싸웠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프랑스는 혈맹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이미 1884년 한 해 동안 프랑스에 세워졌었다는 것은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885년에 214개의 상자로 분해가 되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해서 무려 17개월에 걸쳐 조립되었다. 그리고 1886년 완성된 자유의 여신상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자유의 여신상은 Land of Free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처음에 구리로 만들어진 자유의 여신상은 갈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20년대부터 갈색 구리가 산화되어 지금의 녹청색으로 변했다고.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책에는 미국이 독립한 177674일이 라틴어 명문으로 새겨져 있고, 그녀가 들고 있는 횃불은 자유와 해방의 길을 밝히는 희망의 빛을 의미한다고 한다.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 하나를 데이브 에거스 작가는 지적한다. 자유의 여신상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른발을 자세히 보면 걷고 있다고 한다. 높이 46미터 그리고 몸무게 225톤의 자유의 여신상이 어디로 가고 있다는 게 상상이 되는가 말이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그들이 들어오는 뉴욕 항구에서 그들을 가장 먼저 맞이해주는 인물이 바로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데이브 에거스는 자유의 땅을 찾아 오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자유의 여신상이 걷고 있다는 해석을 제공한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미국이 전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은 저물고, 자국 경제를 보호하겠다고 지난 70년간 주창해 왔던 자유무역주의를 포기하고 관세장벽을 세워 자국 산업을 지키는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강경한 이민 정책으로 더 이상의 이민을 막고, 이미 미국에 들어와 있는 불법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가 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공고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른바 건국의 아버지들이 간과한 게 있었다. 그들은 국가 지도자의 상식을 믿고 지도자가 해서는 안되는 일들에 대한 세부 사항에 대한 규제나 규정들을 정하지 않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비상식적인 지도자가 등장했을 때, 미국 시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지금 미국이 처한 현실이다.

 

8년 전에 데이브 에거스가 이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일들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서 과연 데이브 에거스는 어떤 진단을 내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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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1-02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면서 전 세계에 막대한 돈을 퍼 붓다시피 하면서 적자가 누적되니 이제 더 이상 맘씨 좋은 엉클 샘 노릇을 포기한 것이 제일 큰 이유죠.사실 제 2차 세계 대전이후 초 강대국이 역사적으로 타국들(주로 서방세계외 제 3세게 국가들)을 70년 이상 도왕준 모습이 오히려 의와라고 할 정도지요.지금 트럼프가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햍태들이 실제 역사상 강대국이 행했던 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레삭매냐 2025-11-02 09:16   좋아요 0 | URL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한 때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던 시절에는 가
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 다극
화 시대에는 세계경찰로서의 역할이 다
한 것 같습니다. 능력도 안되구요.

미국이 자랑하던 소프트파워가 사라지
고 이젠 힘으로 우격다짐하는 그런 나
라의 본색(?)을 드러내는 것 같아 걱정
입니다.

호시우행 2025-11-03 0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시의적절한 시기에 어울리는 도서 같네요. 현 트럼프 대통령 도한 독일 이민자 가정 출신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히틀러 흉내를 내고 있어요.ㅠㅠ 미국의 멸망을 점치는 이유는 이런 인물들이 나라를 이끌 수 있다는 점 때문 아닐까요? 지도자 한 사람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일은 역사적으로도 많은 사례들이 있으니까요.
 
라스트 울프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구소영 옮김 / 알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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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노벨문학상의 영예는 수년 전부터 수상이 예상되었던 헝가리 출신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에게 돌아갔다. 국내에서는 알마 출판사가 7년 전부터 <사탄탱고>를 필두로 해서 꾸준하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작가의 책들을 출간해 오고 있었다. 나도 수상전까지 모두 4(출간작은 6)을 사 모았지만 정작 완독한 책은 하나도 없었다. <사탄탱고>에 두 번 도전했지만 결국 다 읽지는 못했다. 그러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고,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수상 소식을 듣고 가장 최근에 수집한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을 호기롭게 펼쳐 들었지만 분량이 어마무시했다. 그래서 꼼수로 가장 만만해 보이는 <라스트 울프>를 골랐다. 생각 같아서는 반나절이면 다 읽을 줄 알았지만, 다 읽는데 보름이 걸렸다. <라스트 울프>는 두 개의 중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어쨌든 나도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책 하나는 읽었단 말이지. 뭐 이제 시작이니까. 참 지금의 책값은 내가 구매한 2021년보다 오른 모양이다. 그리고 새로 나온 친구들은 모두 페이퍼백으로 바뀌었다. 난 기존 스타일의 양장을 더 선호한다. 크러스너호르커이라는 이름은 외우기도 쉽지 않다.

 

소설집의 표제작이자 첫 꼭지인 <라스트 울프>는 베를린 카이저-빌헬름 광장의 어느 술집에서 화자가 들려주는 스페인 마지막 늑대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독자로서 여전히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만연체 서사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득 주제 사라마구의 문체가 생각나기도 했다. 구두점과 행이 바뀌면 좀 더 가독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 전, 인류가 가축화하는데 성공한 늑대 무리의 개와 달리 늑대는 여전히 야생성을 유지하고 그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육식성 포유동물인 늑대는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는 해수로 규정되어왔다. 아니 인간과 인간의 자산인 가축들을 공격하는데, 누가 늑대의 종보존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샬롯 맥커너히의 <늑대가 있었다>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도 늑대를 지키자는 환경보호론자들과 농장주들 간의 첨예한 대립이 있지 않았던가.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늑대와의 공존 대신 박멸이라는 손쉬운 방법이 채택됐다. 아무래도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오롯하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작가가 구사하는 서사에 올라타기가 쉽지 않다. 그저 낯선 이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늑대'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 다만, 우리 호모 파베르들이 사냥총을 가지고 늑대를 상대하는 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화자는 마지막 남은 늑대의 생존을 돕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추정을 내놓는다. 마지막 늑대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재산 손실이나 인명피해 감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도덕적 질문에 예의 조력자가 어떤 대답을 할지 나는 궁금하다. 세상에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달픈 마음과 자연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헤르먼>은 사냥터 지기에 대한 이야기다. 표제작 <라스트 울프>와 같은 결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래서 두 편이 엮여서 한 권의 책으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 헤르먼은 유능한 사냥터 지기로 야생의 정글처럼 변해 버린 사냥터를 정상적(?)으로 복원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자연을 인간의 노력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묻게 된다.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직접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인간이 팬데믹으로 대륙 간의 잦은 이동을 멈추자, 자연은 그 시간을 이용해서 훼손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연을 착취하고 이용할 줄만 알았지 그렇게 손상된 자연에게 스스로 복구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지 않았다.

 

사냥터 지기 헤르먼은 그런 점에서 자연복원의 선각자가 아니었나 싶다. 오로지 인간에게 이로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해수로 규정된 동물들을 사냥해서 구덩이를 죽은 동물들의 사체로 채우지 않았던가. 그런 무의미한 죽음을 경험하서 헤르먼의 심장은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사에게 검진을 받아 보니, 더 이상 건강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심장이 아닌 정신적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유능한 사냥터 지기였던 헤르먼은 자신의 본분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인간들을 상대로 일종의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가 사람들을 상대로 놓은 덫에 많은 이들이 부상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헤르먼은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어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어떤 점에서 동물들을 핍박하던 헤르먼은 어떤 자각의 과정을 거쳐 가해자의 입장에서 수호자로 변신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모 아니면 도라는 편집증적 이분법 논리에 익숙한 인간 세계에서 헤르먼이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가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반대로 우직하게 나간 그의 행동이 수용될 리도 없었겠지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라스트 울프>는 짧지만 강렬한 주제 의식과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얇다고 해서 만만하게 생각하고 도전했다가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게 하는 잔상의 연속이 매운맛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인간과 공존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계속해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제 한 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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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5-10-27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가지고 있는데...이 작가 더욱 부담이 가네요. 그래도 책이 참 멋져서 다 모으고 싶은데 페이퍼백으로 바뀌었다니...아쉽습니다.

레삭매냐 2025-10-27 21:54   좋아요 0 | URL
저도 기존의 구판 양장본을 더 좋아
합니다. 페이퍼백으로 바뀌고 가격
이 올라서...
이래서 책이 나오면 미리미리 사두
어야 한다는 말이,,, 쿨럭.

이제 읽기만 하면 되는 거죠.

그레이스 2025-10-27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건 번역이 어떤가요?
저항의 멜랑콜리 오늘 받아봤는데,,, 너무 긴 문장에다가 명확하게 내용이 들어오지 않아서 당황했습니다. 작가가 원래 그렇게 썼겠지 하고 일단 덮었습니다.

레삭매냐 2025-10-28 07:28   좋아요 1 | URL
써주신 글을 보니 문득 오래 전에
역시 같은 결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의 책들이 출간되었을
때가 생각이 나네요.

역자들이 다 달라서, 마치 다른
작가의 책들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장이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
는 그런 느낌이었달까요.
저도 <사탄탱코>를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못 다 읽었다는....

얄리얄리 2025-10-30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써주신 글 보면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ㅎㅎㅎ
저도 이 양반의 책을 중도포기한 아픈 기억이..
다시 도전해 보자는 마음은 있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네요.

한강 작가의 글도 비록 번역은 되었어도
외국인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데,
다른 언어를 쓰고,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지 않는 작가와 독자의 거리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듭니다.

레삭매냐 2025-10-31 07:42   좋아요 0 | URL
저는 두 번 읽다 실패한
<사탄탱고>에 다시 도전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의 리뷰도 참고하고,
벨타 타르 감독의 영화 <사탄
탱고>의 장면들도 참조하니
이해가 잘 되더라구요. 영화는
무려 7시간이나...

공가하는 바입니다.
동구 전체주의 정권들이 무너
지기 전인 1985년 헝가리를 배
경으로 하고 있다는 걸 사전에
알고 들어가니 진도가 쑥쑥 나
나네요.

세상에 못 읽을 책은 없다!!!
빠이팅입니다 고저.
 
정호기 - 일제강점기 한 일본인의 한국 호랑이 사냥기
야마모토 다다사부로 지음, 이은옥 옮김, 이항 외 / 에이도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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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역시나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가 아닐까 싶다. 수년간 독서를 하면서, 나름 책을 고르는 취향을 갖게 되다 보니 관심이 없는 분야의 책들에 대해서는 거의 읽지 않게 되었다. 그런 나의 독서 편식으로부터 아주 가끔 일탈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바로 도서관 방문이다. 지난주에 빌린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일본 자산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썼다는 <정호기>, 그러니까 한국 호랑이 사냥에 대한 기록한 책과 만나게 됐다.

 

1917, 한일병탄으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지 7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일본 출신 자산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이른바 정호군을 편성해서 한국에 있다는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야마모토는 인쇄업으로 돈을 번 자본가였다. 지금 기준에서 본다면, 아프리카로 사파리 사냥여행을 떠나는 제국주의 시절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역설적으로 야마모토가 편성한 8개 팀의 호랑이 사냥대, 이른바 정호군은 한국에서 환대를 받았다. 이유는 한국에서 호랑이와 표범(한반도에 표범이 살았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같은 맹수들이 해수로 규정되어 해수구제 정책의 타겟이 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반도 곳곳에서 맹수들이 민간인들을 공격해서 실제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 민생고를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호랑이 사냥은 피해가 발생하는 현지에서는 환영을 받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오락 내지는 여흥 혹은 그들이 숭상하는 무사도의 기상을 세우기 위해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분로쿠의 난이라 부르던 임진왜란 당시 2군을 책임진 가토 기요마사는 함경도까지 진출해서 호랑이 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그 당시에는 조선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의 식민지 일부가 된 함경도에서 호랑이 사냥을 시작한다고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대자본가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강용근, 이윤회, 백운학과 최순원 같은 명포수들을 고용해서 정호대를 조직했다. 일본 도쿄를 출발해서 시모노세키에서 배를 부산에 상륙해서 경성(당시 서울)에 도착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경성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 다음 코스였던 원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탄광 사업에도 많은 투자를 한 야마모토는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고, 심지어 헌병대까지 나서서 그의 호랑이 사냥을 도왔다.

 

야마모토가 기록한 정호기를 읽으면서 이게 호랑이 사냥인지 유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정호대가 잡은 두 마리 호랑이들은 모두 조선 포수들인 백운학과 최순원이 잡지 않았던가. 특히 최순원은 총에 맞고 굴로 피신한 호랑이를 끝까지 추적해서 잡는데 성공했다. 당시 일본 관헌들은 조선 사람들에게 무장반란을 두려워해서였는지 총기류 소지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정호대원들에게는 특별히 총기 사용을 허락했던 모양이다. 호랑이굴에 갇혀 결국 포수의 총에 맞아 죽은 불쌍한 호랑이 신세는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조선 민중의 신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함경도와 강원도 그리고 전라도 일대에서 수렵한 호랑이, 표범, 수호, 산양, 멧돼지 그리고 곰들을 잡아 개선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정호대는 경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제 고관들을 불러 호랑이 시식회를 가졌다고 한다. 남은 고기들은 또 일본으로 가지고 돌아가 그곳에서 시식회를 열고, 자신의 호랑이 사냥 무용담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시절도 오래 가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부를 축적했던 야마모토는 전후 불황으로 사업들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정호대를 이끌고 호랑이 사냥에 나선지 10년이 지나 사망했다.

 

그의 정호대가 잡은 호랑이는 시마즈 제작소에서 박제로 만들어져,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모교인 도시샤 고등학교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한국 호랑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저술과 다큐멘터리들이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정호기>를 읽으면서 들었다. 늦게나마 이런 기록들이 소개되어 반가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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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0-23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데헌 열풍으로 한국에서 호랑이 인기가 더욱 높아졌지만 실제 한국에서 호랑이가 사라진것은 벌써 100년전의 일이네요.
일부에선 호랑이 종의 복원을 꽤하자는 말도 있지만 그보단 야생동물은 한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기에 특히나 호랑이는 활동 영역(암컷 400km², 수컷 1000km² 이상)이 넓기에, (한국에 국한하지 말고) 좀 더 대의적인 관점에서 (동북아 지역에서) 러시아,ㅜㅇ국,북한과 협력하여호랑이가 멸종되지 않게 보전에 좀 더 힘을 쏟아야 된다고 여겨집니다.

레삭매냐 2025-10-27 21:56   좋아요 0 | URL
케데헌 열풍을 타고서라도 한국 호랭이
에 대한 재평가과 다양한 연구가 이루
어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호랭이들의 활동반경이 어마어마하네요.
사라진 녀석들보다 지금 생존해 있는
호랭이들의 보전에 힘을 써야 한다는
의견에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미우라 씨의 친구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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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작가의 심심한 글과 그림을 가끔 즐긴다. 아니 나도 마스다 미리 작가의 팬이라고 해야 하나. 도서관에 가서 우연히 얻어 걸리면 읽는다 정도로 해야 할까. 어제 <카모메 식당>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마스다 미리 작가의 <미우라 씨의 친구>를 빌려서 오늘 다 읽었다. 역시 금방 읽을 수가 있었다, 부담 없이.

 

2년 전에 나온 책이었는데, 미처 몰랐다. 잔잔한 그래픽 노블의 주인공은 역시 미우라 씨다. 최근 하우스 셰어를 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그 하우스 셰어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이지?

 

친구”(아마도 도모다찌?)란 이름의 로봇이라고 한다. 미우라 씨는 최근 오랜 친구인 지카 씨와의 시절인연이 다하여, 좀 외로운 상태다. 남자 친구도 없는 것 같고. 부동산에서 새로운 살 집을 구하면서 로봇 친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백만 엔이라는 거금을 들여 친구를 집에 들이게 되었다.

 

홀로 사는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로봇 친구라. 나도 꽤 오래 혼자 살아봐서 예의 미션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혼자 살기의 장점도 있지만, 역시 같이 살면서 부대끼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물론 괴로운 일들도 적지 않지만 말이지. 왠지 미우라 씨에게 로봇 친구는 숨기고 싶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게다가 몇 가지 대답 밖에 못하는 친구라니. “”, “그래정도. 원래 네 가지 대사를 할 수있다고 했었나. 그리고 예쁘다라는 말을 알려주는 미우라 씨. 같이 피크닉도 가고 그랬다지. 그랬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수리도 맡겨야 했지만 말이지.

 

지카 씨와 시절인연이 끝난 미우라 씨는 이번에는 직장에서 알게 된 카지 씨와 썸을 타기 시작한다. 미우라 씨는 직장 생활 6년 차라고 한다. 그리고 카지 씨는 스탠퍼드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한 수재란다. 사실, 로봇 친구는 카지 씨의 작품이고, 부동산 에이전트는 카지 씨의 형님이다. 이 정도의 우연은 소설적 상상으로 받아 들이자.

 

카지 씨와 관계가 발전하면서, 미우라 씨는 로봇 친구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하 그것 참. 새로운 관계는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새롭게 발전할 수 없단 그런 말일까. 미우라 씨에게 고향집에서 보내온 게를 그녀의 집에서 같이 먹자고 제안하는 카지 씨. 그리고 미우라 씨는 드디어 이름도 지어 주지 못한 로봇 친구를 떠나 보내야 할 시간이 왔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미우라 씨와 무명의 로봇 친구는 같이 바다로 짧은 여행에 나선다. 항상 그렇지만 이별은 쉽지 않는 법. 아무리 새로운 관계가 대신할 거라고 하지만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누구에게나 버겁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가 내린 뒤, 졸졸 흘러가는 그런 시냇물처럼 들리는 <미우라 씨의 친구> 서사는 뭐랄까 극적인 반전이나 클라이막스 없이 그렇게 진행된다. 아니 나는 어쩌면 이런 담백한 이야기의 흐름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일상이 하도 매운 맛이다 보니, 가끔은 이런 이야기를 섭취하는 것도 단조로운 일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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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 디 아더스 The Others 7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푸른숲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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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 소설도 읽게 됐다. 영화를 만들기 전에 영화 감독이 원작자인 무레 요코 씨에게 원작소설을 써달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소설은 영화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또 다른 그런 면모들을 보여 준다.

 

영화가 대뜸 독자들을 핀란드 헬싱키 모처에 있는 <카모메 식당>으로 초대했다면 소설은 일본에서 시작한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주인공 하야시 사치에(38)가 어떻게 해서 핀란드에 오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영화에서 알려 주지 않은 부분들을 소설에서는 아주 친절하게도 알려 주었다.

 

합기도 도장 사범을 하던 사치에 아버지의 인생 모토는 "인생은 모든 것이 수행"이었다. 사치에의 어머니가 트럭 교통사고로 돌아가셔도 그 말을 되뇌였다고 한다. 슬픔도 그렇게 인생의 모토로 갈음이 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어머니를 대신해서 자신과 아버지의 도시락까지 담당하게 된 사치에는 어려서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 졸업 후 식품회사에 취직해서 도시락 개발 업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그런 일에 싫증을 내고 탈출을 도모한다.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 아니었던가.

 

아버지 합기도 도장에서 인연이 있던 지인을 통해 핀란드행을 결심한다. 결심만으로는 세상 일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치에가 선택한 건 바로 복권이었다. , 소설적 상상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1억엔, 우리 돈 10억 복권에 당첨된 사치에는 드디어 꿈을 이루게 되었다. 허탈하구만 그래.

 

그런 사치에에 비하면 사에키 미도리나 마사코 씨의 사연들은 덜 극적이다. 촉탁 사원으로 이십 년을 일하다가 직장이 공중분해되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미도리 씨는 지도에서 아무 데나 찍어서 골라 여행길에 나선 곳이 바로 핀란드였다고 한다. 그리고 헬싱키의 <아카데미아> 서점에서 사치에를 만나 동거인이자 카모메 식당의 직원으로 새출발하게 된다.

 

마사코 씨가 숲에 가게 된 건, 영화와 달리(토미의 추천이었다) 사치에와 미도리의 추천으로 숲에 갔다. 그리고 거기서 딴 버섯을 먹었다가 안면마비가 왔다고 하던가. 그 레퍼토리는 영화에서 슬쩍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 버렸지만 말이다. 오히려 소설의 설정이 더 마음에 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이유 없이 등장해서 식당 내부를 째려 보던 리사 아주머니의 삶에 대해서도 소설에서는 아주 디테일하게 잡아내고 있다. 대머리 남편 아저씨의 외도로 가정이 파탄나고, 사랑하던 애견 쿠카까지 죽게 되면서 리사 아주머니는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별 것도 아닌 일로 시시덕거리고 좋아죽는 카메모 식당 사람들을 보면서 호기심 반 질투심 반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러다 갑자기 쳐들와서는 핀란드 소주라는 코스켄코르바를 냅다 마시고는 쓰러져 버리는 바람에 카모메 식당의 단골식객 노릇을 하던 토미 힐트넨 청년이 리사를 업고 집까지 배달하는데 한몫하지 않았던가.

 

영화만큼이나 소설도 잔잔바리 모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확실히 다른 건 몰라도 카모메 식당 식구들의 과거사에 대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런 설명들이 마음에 들었다. 영화에서는 절대 알려 주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어쩌면 그게 바로 핀란드식 사고방식의 원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봤다. 타인에게 절대로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추운날 버스를 기다리는 정거장에서도 멀찌기 떨어져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사진에서 보고 참, 기분이 그랬다. 반면 공동체의 누군가가 그렇게 위기에 처하게 되면 두 손 두 발 다 걷고 나서는 장면은 핀란드 사람들의 마음에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지.

 

문득 영화에 나오는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가 사용하는 일본 전통식 음식 도구들은 어디에서 왔는지가 궁금해졌다. 설마 핀란드에서 잘 만든 오니기리를 담는 대나무 소반을 판다는 말은 하지 말아 주시길. 그렇다면 사치에는 일본에서 핀란드에 일본 가정식 식당을 내겠다는 결심하고서 그런 도구들을 다 준비해서 공수해 왔단 말일까. 나는 그게 좀 궁금해졌다.

 

참 소설/영화에서 사치에는 오니기리는 남이 해주는게 맛있다고 했었지. 그렇다, 라면도 내가 끓이는 것보다 남이 끓여 준 라면에 맛있다. 그게 맞는 것 같다. 오래 전부터 한 번 보려고 했던 영화였는데 참 오래도 걸려서 보게 됐다. 그리고 동네 책방지기가 왜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려고 했는지 책을 보고 나니 알 수 있었다. 부담 없이 가볍게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서가 아니었나 추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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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10-02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너무 좋았어요.
일본 영화, 특히 이 영화의 감독이 만드는 영화에는 뭔가 사람을 차분하게 해주는 기운이 있더라고요.
한국 사람들 성향으로는 좀 힘든 것들요 ㅎㅎ 그래서 더 좋았던 것도 같아요.
영화가 좋아 저도 소설을 읽었는데
중간에 포기했어요.
영화로 그냥 됐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레삭매냐 2025-10-02 12:24   좋아요 1 | URL
전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책을
읽었는데...

뭐랄까 영화에서 알려주지 않는
그런 정보들을 책에서 전달해
주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

영화는 말씀해 주신 대로 삼삼하
지만 또 오묘한 맛이 있는 그런
느낌이었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