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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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뒤에 달궁 독서 모임이 있다. 지난달에 동지들이 이달 독서모임 책으로 정한 책이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 지난주에는 날강두 스타일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었고, 오늘은 도서관 전자책 6순위로 신청해서 단숨에 다시 읽었다. 그리고 보니 1년 만에 다시 읽었다.

 

만날 삼천포로 빠지니 오늘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맡겨진 소녀>는 원래 201027, <뉴요커>에 단편으로 소개되었는데 8달 뒤에 정식 책으로 나왔다고 한다. 영어책, 뉴요커에 실린 단편 그리고 번역책에 등장하는 지명들을 번갈아 찾아가며 아일랜드 웩스포드 지방에서 19818월에 있었던 일을 되새겨 본다.

 

웩스포드, 클로너걸, 실레일리 그리고 카뉴라는 지명을 통해 이 동네가 아일랜드 동남부 지방이라는 걸 확인한다. 화자인 이른바 "맡겨진" 소녀인 나는 아버지 댄과 함께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비가 오지 않은 여름 가뭄의 시절에 맡겨진다. 왜 나는 존과 에드나에게 맡겨졌을까?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 보면, 무려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부양할 수 없는 아버지 댄의 무능력함 때문이다. 게다가 댄은 거짓말쟁이기도 하다. 성실하지 않는 건 불문가지일 것이고.

 

두 명의 언니들, 남동생 그리고 또 엄마 메리는 임신 중이다. 아버지 댄은 나를 부탁하는 처지에 미안한 마음이 들지도 않는 모양이다. 나의 짐도 내리지 않은 채 그렇게 황망하게 떠나가 버렸다. 상황이 참 그렇다.

 

에드나 아줌마는 나를 변신시키기 시작한다. 일단 무언가 좀 먹인 다음에, 목욕을 시켜 준다. 뜨거운 물이 참을 수 없지만, 괜찮아 질거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맡겨진 소녀는 그렇게 삶에서 참을 수 없는 것들도 때로는 참아야 한다는 걸 배운다. 그건 마치 우리가 가기 싫은 학교에 가거나, 일용한 양식을 사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출근해야 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일까. 에드나 아줌마는 목욕에 이어 피부관리 그리고 귀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주신다. 가난과 많은 아이들 시중 그리고 살림에 지친 나의 엄마 메리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존 킨셀라 아저씨는 무뚝뚝하지만, 지낼수록 진국이라는 느낌이 든다. 짧은 시간 동안에, 나는 킨셀라 집안의 유사 가족처럼 침투하는데 성공한다. 낯선 곳에서 첫날밤에 실례한 나에게 에드나 아줌마는 잠자리가 습기가 많다며 창피를 주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게 바로 성숙한 어른들의 방식이 아닌가. 나의 아버지 댄의 빈정대는 건 정말 듣기 싫더라. 타인의 호의를 이상하게 비꼬는 게 왜 이렇게 듣기 싫은지 모르겠다.

 

짧게나마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당시 IRA 출신 청년들이 벌이던 단식 투쟁이 소개된다. 5월 바비 샌즈를 필두로 해서 그동안 7명이 극한의 단식 끝에 사망했고, 19818월에 세 명이 더 죽었다. 존 아저씨는 어떤 남자는 굶어 죽었는데 자신은 풍족하게 먹고 있다는 자족적인 말을 한다. 이에 에드나 아줌마는 그래도 당신은 밥값은 하지 않냐고 말한다. 되짚어 보면 작년에 <맡겨진 소녀>를 처음 읽었을 때는 바로 이 극한의 정치투쟁에 대해 리뷰에서 상당 부분을 다루지 않았나 싶다. 아무래도 나와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 달라 기억이 휘발되어 버린 그런 느낌이랄까.

 

존 아저씨는 고리에 나가서는 나에게 주전부리라도 사 먹게 적은 돈이지만 일 파운드도 주고, 제법 괜찮은 드레스도 사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다 우연히 방문하게 된 이웃 마이클 레드먼드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킨셀라 부부에게 죽은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여튼 간에 어디서나 오지라퍼들이 문제다. 이웃 밀드러드 아줌마는 마치 무슨 밀정처럼, 장례식장에서 부유하는 나를 돌본다는 핑계를 대고 자기네 아이들과 어울리게 하겠다며 데려다가 갖은 질문 공세를 퍼붓고, 킨셀라 집안의 아이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그것 참, 꼭 그래야 했나.

 

적지 않은 시간을 살다 보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인간관계란 그런 것이다. '맡겨진 소녀'는 정말 빠른 시간에 아주 간단한 그런 사실을 배웠다. 좀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배워도 좋을 것을, 소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때문에 강제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엄마 메리를 필두로 해서, 소녀 주변에 있는 이들은 아이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캐내려 하고 이제 조금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게 된 소녀는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정황들이 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가 꼬마 킨셀라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날, 존 아저씨는 소녀를 데리고 바다에 간다. 바다에서 소녀는 현재 자신의 위치와 그리고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에 대한 고민을 필두로 한 생각에 잠긴다. 어떤 점에서 <맡겨진 소녀>는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 소녀의 압축적 성장과정을 다룬 성장소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복귀를 결정한 소녀에게 사소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풍족한 킨셀라 가정을 떠나 결핍으로 채워진 집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녀. 집에 가니 아버지 댄은 해서는 안될 말을 소녀를 진심으로 보살펴준 존과 에드나에게 서슴지 않는다. 그 장면에서는 정말 분노가 치밀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걸까? 댄은 상대방의 호의를 순수한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런 빌런이란 말인가. 엄마 메리는 무슨 일이 있었냐며 소녀를 추궁한다. 삶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음의 중요성을 깨달은 소녀가 굳게 입을 다무는 시퀀스는 정말 찬란하게 다가왔다. 바로 이거지.

 

<이처럼 사소한 것들>만큼이나 짧지만 강렬한 소설이었다. 클레어 키건 작가가 구사하는 서사의 밀도는 왠지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지만, 그만큼의 빈 공간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우라는 밀명을 받은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간 소녀는 과연 피할 수 없는 가난과 결핍에 잘 적응했을까? 언니들과 두 명의 남동생들 사이에서 제대로 밥은 먹었나 하는 실존적 질문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다시 포스터 차일드로 킨셀라 집에 가서 살게 되면 보다 더 행복했을 지에 대해서도. 그래서 삶이 미스터리라고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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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3-14 16: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실존적질문은
선한 이웃집 삼촌^^의 마음따뜻한 관심이네요.
독자에게 빈공간을 채우게 하는 서사! 뛰어난 재능이란 생각입니다.

레삭매냐 2024-03-14 21:02   좋아요 2 | URL
작년에는 리뷰 참전을 위해 흑심
가득으로... 그리고 올해는 독서
모임책으로 만나게 되었네요 :>

클레어 기건 작가의 다른 책 2권
도 만나 보고 싶습니다.

새파랑 2024-03-14 1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지 않았는데, <맡겨진 소녀>를 읽었을때 뭔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아서 안땡기더라구요 ㅋ

레삭매냐 2024-03-14 21:04   좋아요 2 | URL
저도 작년에 처음에 읽었을 적에는
어 이기 뭐야, 그런 마음이었더랬지요.

올해 다시 읽어 보니 또 다르게 다가
오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좀 더 나간
느낌이랄까요.

뉴요커에 실린 단편 스타일의 작품도
읽어 보고는 싶은데... 실력이 딸려서
걱정이네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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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날강도가 되었다. 지난달 독서모임에서 출판사 다니는 동지가 나를 그렇게 규정했다. 알라딘 동지들의 버프에 힘입어 내가 클레어 키건 작가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서점에 가서 읽겠다고 했더니, 그가 나에게 던진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생각을 실천에 옮겼고, 그의 말대로 나는 날강도가 되었다.

 

내가 클레어 키건을 만나게 된 건 작년 리뷰대회 참전 건이었다. 이 때도 나는 책이 사기 싫어서 부러 시간을 내서 먼 도서관까지 가서 대출해서 읽었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되짚어 보면 그 시절에는 상당히 정치적으로 접근했던 것 같은데, 아마 그게 패착이 아니었나 싶다. 아니 맥주 한 캔 한 김에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리뷰 대회 참전이라는 목적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암튼 이번에는 그런 특별한 목적성(?)이 없으니 좀 더 자유로운 글쓰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24년 동안 4편의 소설을 썼다는(대단하지 않은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들이 국내에서 무척이나 인기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사실 전작 <맡겨진 소녀>의 서사는 국내 독자들에게 어필할 만한 그런 요소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지. 참고로 우리 달궁인들은 이달 말에 <맡겨진 소녀>를 읽고 책에 대해 이바구를 털어볼 계획이다. 그전에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다시 읽어야 하나 어쩌나.

 

언제나처럼 서설이 길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알코올의 힘을 빌어, 그냥 글가는 대로 써볼 생각이다. 미혼모의 아들로 성공한 석탄 목재상인 빌 펄롱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는 성실한 가장이자, 아내 아일린과 다섯 딸들을 보살피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한다. 그의 일상은 아주 평범하기 짝이 없다. 그냥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남자다.

 

클레어 키건은 중년 아저씨 빌 펄롱의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일상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누구나 그런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나. 그리고 그는 어떤 사건을 목격하고 자각한다. 그리고 자각한 펄롱은 다시는 평범한 삶을 살 수가 없게 된다. 타인의 비참한 현실을 자각한 펄롱은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겼다. 바로 이 점이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비범하게 만드는 그런 요소라고 생각한다.

 

미혼모였던 빌의 어머니는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미혼모의 아들이었던 빌은 전쟁미망인 미시즈 윌슨의 도움과 그녀의 농장에서 일하던 네드 아저씨의 후원으로 성장해서 한 가족의 어엿한 가장이 되었다. 물론 그에게도 자신이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었던 직소 퍼즐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킨다. 그런 그가 자신보다 더 비참한 타인의 인생에 개입하게 되었을 때, 그냥 무시하거나 없었던 일로 처리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아내 아일린에게는 눈치껏 그녀가 가지고 싶어 하던 에나멜 구두를 그리고 다섯 딸들에게는 제각각 필요한 선물들을 준비하는 그런 멋진 성실한 가장이 바로 빌 펄롱이었다. 하지만 선한목자수녀회가 운영하는 수녀원에 평소처럼 석탄 배달을 하러 갔다가 자신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자기 딸 또래의 세라 레드먼드를 만나면서 빌의 운명은 거칠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누구는 크리스마스에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 바라던 선물을 받지만, 수녀원이 운영하는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착취당하던 소녀들은 탈출을 꿈꾸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성스러워야 할 수녀원에서 이런 불의와 부조리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펄롱 아저씨는 바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어쩌면 펄롱이 철저하게 기득권층에 속하는 캐릭터였다면 이런 고민이나 갈등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역시 한때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소녀 세라에게 닥친 불행이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그의 선택지는 이미 결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갈등하던 펄롱이 찾은 바의 여주인장은 그에게 경고한다. 모두가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가톨릭교회의 질서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던 아일랜드에서 다른 곳도 아닌 수녀원을 적으로 돌린다는 건, 어쩌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를 상대해야 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성가대에 몸담고 있는 자신의 딸들은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인질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펄롱이 고민하는 모든 것들의 복합적 요인들을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라고 규정하는 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의미의 자기 구원은 어쩌면 도탄에 빠진 타인을 구원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나에게 무언가 이익이 되는 걸 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 나의 구원에 무슨 도움이 될까? 단순하게 순간적 행복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정말 원하는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어떤 행동이 그 방향으로 인도하지 않을까. 펄롱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결국 엔딩에 가서 소녀 세라를 구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그전에 이틀 전에 읽은 책의 내용들을 메모하면서, 빌이 자신의 구원을 지향하는 공격수라면, 펄롱 가족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빌의 아내 아일린은 수비수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에게 아버지가 누군지 알려 주지 않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 세라의 부재를 아쉬워하던, 빌이 자신의 친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추론하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는 클레어 키건 작가의 실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소설의 엔딩에 나오는 빌 펄롱이 내린 결정은 자기 구원의 길인 동시에, 펄롱 가족에게는 어쩌면 고난의 시작일 지도 모르겠다. 저간의 서사보다도 어쩌면 그 다음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소설의 여백에서 이렇게 다양한 사유를 하게 만드는 서사의 힘이 클레어 키건 작가를 특별하게 만드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사람은 자신이 어디든 원하는 데로 가야 하는 법이지. 소설에서 빌이 자기 양심의 목소리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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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3-08 2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날강도 ㅋㅋ
그러다 좋으면 사는 거죠!
이 책은 워낙 인기있어서... 그래도 되지 싶네요 ;;
도서관에서 빌려읽는거나 서점에 비치된 책 읽는거나 같지 않나요?

레삭매냐 2024-03-09 09:3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도, 좋으면
사게 되더라구요.

너무 인기라, 제 순서까지 오지 않아
서 이런 고육책을 썼네요. 날강두 ㅋㅋ

페넬로페 2024-03-09 0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강도, ㅎㅎㅎ~~
저는 구매해서 읽었는데 그냥 책꽂이에 꽂아 두기는 그래서 얼른 지인에게 읽으라고 줬어요.
돌려받아도 되고 안줘도 되고요.

저는 그렇기에 펄롱이 대단하다고~~
그냥 이 소설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나 할 수는 없으니까요^^

레삭매냐 2024-03-09 09:39   좋아요 2 | URL
우와 멋지십니다 -
이거야말로 저희 책쟁이들의 로망
이 아닐까요. 진정 대인배십니다.

좋은 책의 선순환. 저도 어제 본가
에 갔다가 예전에 사둔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 보고 저희 동지들
에게 주까 싶더라구요 ^^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소설
이 되는 게 아닌가 싶기두 하구요.

hnine 2024-03-09 0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막 이 책을 읽고 난 참인데 레삭매냐님 리뷰를 읽으니 알콜 기운에 쓰셨다면서 어찌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내용 정리도 잘 하시고 요점을 잘 파악하여 짚어 주셨는지.

레삭매냐 2024-03-09 09:55   좋아요 1 | URL
원래는 읽고 나서 바로 리뷰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틀이나 밀렸다가 기억을 되살
리느라 고전했답니다.

에이치나인님이 최근에 읽으신 <맡겨진
소녀>도 다시 읽어 보려구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24-03-09 1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좋아서 저도 나중에 읽어 볼까 생각중이었는데 그런 내용이었군요. 약간 기독교적 세계관이 느껴지기도 하고.
암튼 이달 말 달궁모임 이바구 잘 터시기 바랍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4-03-09 10:01   좋아요 2 | URL
원래는 날강두 스타일로 두 번에
걸쳐 읽을 계획이었으나 엔딩이
너무 궁금해서 바로 한 방에 갔습
니다.

달궁 모임에서는 또 입에 모터싸이
클 달고 털어볼 생각입니다.
오래된 동지들과의 만남이 그렇죠.

고양이라디오 2024-03-12 1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이 인기던데 이런 소설이었군요!

한 번 보고 싶네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4-03-13 09:47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책의 정보를 살펴 보니
무려 20쇄를 돌파했더군요.
대단하더라구요.

다른 나머지 두 권도 어서 소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젤소민아 2024-03-16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격수와 수비수 개념, 좋습니다. 전 이분 소설을 일부러 읽지 않고 있어요. 너무 좋아서 싫어질까봐요..뭐래..ㅎㅎ 좋은 리뷰 늘 감사합니다!
 
120% Coool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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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 전, 독서 모임에서 야마다 에이미(이하 영미 씨로 표기)<소울뮤직 러버스 온리>를 읽었다. 하도 오래 전이라 기억이 다 가물가물하지만, 여튼 무척이나 도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주말, 종로로 달궁 모임을 출격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중고서점에 들러서 올랜도 파이지스 교수의 두툼한 역사책 하나 그리고 우리 영미 씨의 소설집 <120% COOOL>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스타의 <쏘 쿨>이란 노래가 생각나는 건지.

 

모두 9편의 소설이 담긴 이 책은 1994년에 발표되었다. 대략 영미 씨가 35살 정도에 쓴 책이 아닌가 싶다. 지난 이틀 동안, 그야말로 간만에 읽어 보는 독특한 스타일의 연애소설에 빠져 버렸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발칙하고 도발적인 콘텐츠의 가독성은 탁월했다고.

 

무려 30년이나 시간이 흘러 이제 그녀가 구사하던 도발적인 섹슈얼리티를 이제는 SNS나 너튜브를 통해 많이 접하게 되어 조금은 무덤덤했다고나 할까. 다만, 영상 콘텐츠가 아닌 문학 그러니까 글로 접하는 서사는 또다른 느낌이 들었다. 영상 콘텐츠가 자극적인 비주얼에 집착한다면, 역시 문자로 만들어진 책의 그것은 보다 심오한 차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나 할까.

 

사실 허겁지겁 콘텐츠를 소화하다 보니, 정확하게 어떤 에피소드에서 어떤 서사가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 좀 헷갈리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태생적 게으름으로 다시 찾아 보고 그런 것도 귀찮다. 게다가 또 바로 읽기 시작한 영미 씨의 다른 작품과도 헷갈린다고나 할까. 어쨌든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감상을 간단하게나마 써보고자 한다.

 

각 단편의 딸린 영어 제목에 대해서도 곱씹어 보게 된다.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는 정의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불가사의한 감정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시도한다. 가끔 그런 사랑은 어쩌면 광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지. 삼십대 중반의 영미 씨가 구사하는 사랑에 대한 언어는 상당 부분 몸의 대화에 치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뉴욕에서 만난 부잣집 도련님 가미가제 씨와 만나는 순간, 이 둘이 언제 관계를 하게 되나 하는 호기심에 사로잡힌다. 왜냐면, 영미 씨의 작품의 서사는 대개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 영미 씨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작가는 아니었지. 뉴욕이라는 밀레니엄 캐피탈에 이방인처럼 부유하는 주인공은 펜과 종이로 글을 끄적이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나 어쨌나. 루크라는 이름의 흑인도 만나고 또 벨기에 출신 색소폰을 들고 다니는 남자를 만난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진짜 영미 씨가 체험해 본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지. 이런 야릇한 상상력이야말로 30년 전에 영미 씨가 구사하던 발칙한 서사의 원형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한참 만나던 남자 친구(?)의 침대 맡에서 머리핀이나 립스틱을 발견하고 결국 관계를 정리하는 내용의 단편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렇지, 그건 하나의 메시지였지. 나라는 존재를 상대방 혹은 연적에게 알리는. 아마 이런 설정은 여성 작가가 아니라면 도저히 잡아내지 못하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멋지지 않은가? 아마 편지나 쪽지 같은 방식이었다면 좀 진부하게 느껴졌겠지. 하지만, 그런데 어쩌면 자신의 분신 같은 물건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참신하게 다가왔다. 그건 하나의 시그널이라는 거지. 내가 여기 버티고 있으니 너는 물러나라는. 그런 점에서 바로 ""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는 화자의 모습 역시 쿨했다.

 

입술이 나비로 변태하기 전의 애벌레라는 설정은 또 어떤가. 영미 씨, 단편의 상당 부분은 "우연"이라는 요소에 기대고 있다. 우리 삶에 진정한 우연이 존재했던가? 우연히 만난 사람과 갑자기 결혼에까지 도달하는 게 가능할까. 그런데 그런 과정들이 영미 씨 소설에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된다. 그리고 결혼의 주체인 둘은 서로 사랑하지도 않는단다. 그런 우리의 일상과 평범함을 거부하는 게 바로 영미 씨 소설들의 진정한 매력일 지도 모르겠다. 매일 벌어지는 일상에 종속된 우리야말로 그런 일탈이 주는 즐거움과 쾌락에 소설로나마 언제라도 경도될 수 있다는 준비태세, 아마 이런 재미에 계속해서 영미 씨의 소설에 빠져 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만화 작가로 등단하기 위해 준비하는 동거남을 위해 그가 쓴 원고를 들고 여성지 편집자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자신의 수입으로 도저히 주문하기 어려운 값비싼 음식을 직장 상사를 이용하는 주인공. 부유한 중년의 늙다리 아저씨는 노골적으로 밥값을 하라고 채근한다. 아이고 추잡스러워라. 그 다음 주자인 편집자에게 자신처럼 예쁜 여자를 만나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는 낯 뜨거운 자기 피알을 내던진다. 그리고 예의 편집자에게 한 수 배우고 돌아온 주인공은 남친에게서 드디어 자신의 만화가 연재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자신이 품고 있는 욕망의 정체를 타인의 통해 알게 되는 것 또한 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미 씨는 우리 독자에게 계속해서 "니가 사랑에 대해 뭘 아는데?"라고 서사의 변주를 통해 반복해서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내가 사랑에 대해 아는 게 뭔데. 영미 씨는 구사하는 평범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래서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우리 영미 씨가 창조해낸 소설의 주인공들은 일상의 금기나 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볍게 넘어 버린다. 두 번 생각하지 말고, 한 번 행동하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자신이 감정이 지시하는 대로, 그 다음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하고. 어제 도서관에서 영미 씨의 책을 세 권 빌려왔다. 당분간 영미 씨의 책들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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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2-26 1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온지가 꽤 되네요. 심지어 절판까지...?!
일본계 미국인인가요? 한국식 이름 좋네요. 영미.
암튼 이리 쓰시니 관심이 가네요.

달궁 모임 가시는군요.
카페엔 이렇다할 소식이 없어 안 모이는가 보다 했는데...

레삭매냐 2024-02-27 07:48   좋아요 2 | URL
야마다 에이미 작가의 판권이
다 소멸되었는지 모두 절판의
운명이...

한자로 詠美로 쓰더라구요.
아름다움을 노래하다, 예명인진
모르겠으나 작가답다는 생각이.

넵, 꾸역꾸역 모이고 있답니다 ^^
카페는 폐허가 되었다는.

그레이스 2024-02-28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미가제 ㅎㅎ
신의 바람?
이름이 재미있네요^^

레삭매냐 2024-02-29 15:08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아마 작가의 개인
적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재
구성한 것 같은데... 실명 대신
神風이라고 명명하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

자목련 2024-02-28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을 재밌게 읽고 놀라기도 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레삭매냐 2024-02-29 15:11   좋아요 0 | URL
무려 30년이나 지난 작품이지만
여전히 재밌고 놀랍기도 하고
그러네요.

서니데이 2024-03-07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마다 에이미 오랜만이네요. 요즘엔 몇년 전보다는 일본소설을 조금 덜 읽는 편이라서 그런지, 이전에 보던 이름들이 반가워요.
레삭매냐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4-03-09 09:37   좋아요 1 | URL
저도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영미 씨
책이었는데, 재밌었답니다. 매운맛은
여전했다는.

내친 김에 다른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
서 읽다 말았네요. 마저 읽어야 하는데
말이죠.

모쪼록 즐거운 주말 되시길.

moonnight 2024-03-09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 야마다 에이미의 전작주의자가 되어 출판된 건 다 읽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보니 잊고 있었던 작가네요@_@;; 요즘은 책 안 내시는가 궁금하군요. 레삭매냐님 덕분에 떠올립니다^^
 
타니오스의 바위
아민 말루프 지음, 이원희 옮김 / 교양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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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린 아민 말루프의 대표작 <타니오스의 바위>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 걸출한 소설에서 저자는 자신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아부 키크 말루프라는 사람의 실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어쩌면 소설 <타니오스의 바위>는 그를 위한 추모의 글일 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레바논의 산악 마을 크파리야브다라는 마을에 타니오스의 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었다. 이제는 거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타니오스 키크라는 인물이 어떻게 태어나서 무슨 일을 했는가가 바로 이 소설의 고갱이다. 크파리야브다 출신으로 보이는 화자는 세 가지 정도의 전거를 통해 근 200년 전의 일들을 추적한다. 하나는 마을의 게브라이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전승, 두 번째는 엘리아스라는 수도사가 남긴 <산악지대 연대기> 그리고 방랑장수 나데르의 <노새 몰이꾼의 잠언> 정도가 되겠다. 영국 출신 목사이자 교사 스톨튼이 남긴 서한들과 기록도 참고한 모양이다.

 

크파리야브다 마을의 지도자는 족장 프란시스다. 족장이라는 명칭부터 이미 전근대적이지 않은가. 3세기 가량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아온 크파리야브다 마론파 정교도 영주인 프란시스는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영주의 기본 임무인 세금 징수와 병력 동원에 있어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게 처신한 결과가 아닐까. 다만 한 가지 큰 흠은 그의 바람기이다. 나이 사십이 될 때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마을 여자들을 희롱하는 낙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그는 인근의 유력 집안인 그랑 조르드 가문의 아내를 들이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바람기가 죽은 건 아니다. 그렇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이 때 등장하는 여인이 하나 있었으니 절세미녀 라미아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의 주인공 타니오스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미 그 때 유부녀였는데 다른 사람이 아닌 프란시스 족장의 집사이자 심복 게리오스의 아내였다. 도무지 절제를 모르는 남자였던 족장은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틈을 타서 라미아와 사통했고, 그 결과 사생아인 타니오스가 태어났다. 아기의 이름을 족장이 아바스라고 지어주는 바람에 난 사단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소년 타니오스가 무럭무럭 자라나던 시절, 마을의 어느 미치광이 소년이 그를 키크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바람에 타니오스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문제가 된 것이다. 게다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영주의 아들 라드에게 자신의 아버지처럼 자신도 종복 노릇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뿔이 나버렸다. 그런데 어쩌면 족장 프란시스의 무분별한 방탕함이 서구 열강의 레반트 침략과 동일선상에 서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영국과 프랑스로 대변되는 서구 열강들은 근동 지방에 침투해서 유럽대륙에서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의 연장전을 치르고 있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라들이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감내라 대추 내라고 주장한단 말인가.

 

설상가상으로 오스만 터키의 이집트 총독 메흐메트 알리가 종주국에 반기를 들고 도전장을 내서 이집트-오스만 전쟁이 두 번이나 레반트 지역을 휩쓸기 시작했다. 영국 출신의 제레미 스톨튼 목사는 침략의 선봉에 서서 정교도 사회인 레바논의 산악지대에 학교를 열었다. 같은 신을 모시면서도 서로를 이교도 취급하는 장면이 참 낯설었다. 중동을 맡은 영국의 폰손비 경은 밀사 리처드 우드를 파견해서 족장의 아들 라드와 타니오스를 영국 학교에 의탁하게 하는 치밀한 전략을 개시한다. 제국주의자들은 확실히 자신들이 침략할 지방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그에 따른 세부지침의 실행까지도 거의 완벽했다. 그들이 파견한 밀사 리처드 우드는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로 족장과 나란히 미사에 참여했다. 리처드 우드는 훗날 불행의 씨앗이 되는 장총을 족장의 아들 라드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 그전에 바람난 사위 족장 프란시스를 징벌하기 그랑 조르드의 장인은 대부대를 이끌고 크파리야브다 마을을 방문해서 그야말로 메뚜기 떼처럼 마을의 양식과 가축들을 거덜냈다. 그러니 마을 사람들이 족장 아내의 친정에 대한 반감이 깊어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한편, 대주교의 사주를 받은 소년 라드는 스톨튼 목사의 아내에게 두 번이나 모욕을 주면서 결국 학교에서 퇴교 당하게 된다. 불똥이 튀어 타니오스도 같이 학교에서 잘리게 되었는데, 단식투쟁으로 영국 학교에 계속해서 다니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타니오스. 그의 반골 기질이 이때부터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레반트 산악지역은 중세 십자군 전쟁 때도 그랬지만, 1830년대에도 그 전략적 중요성은 대단했다. 이집트의 파샤 메흐메트 알리가 오스만 터키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을 수중에 넣을 필요가 있었다. 그 지역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대주교가 이집트 편에 서면서, 족장 프란시스의 호시절은 지나가 버렸다. 그동안 족장은 교묘하게 당국의 세금 징수와 병력 징발을 피해갔지만, 실제적인 병력을 동원한 압박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집사였다가 횡령으로 재산을 챙긴 루코즈가 족장의 자리를 차지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세월이 변했다는 반증이었다.

 

루코즈는 교활하게 타니오스에게 접근해서 자신의 딸인 아스마의 사위로 삼아,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감언이설로 소년을 미혹한다. 하지만 아스마에게 눈독을 들인 족장의 아들 라드가 청혼을 해오자 냉큼 그의 청혼을 허락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타니오스는 그야말로 눈이 뒤집혀서 사생결단에 나선다. 그동안 아버지로서 거의 존재가 희미했던 게리오스가 나서서 사태를 중재해 보려고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대주교는 루코즈의 딸 아스마를 라드도 타니오스도 아닌 자신의 조카와 결혼시키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게리오스는 족장에게 받은 영국 밀사가 준 장총을 가지고 대주교 저격에 나선다. 일격필살의 탄환 한 발로 대주교의 양미간을 꿰뚫은 게리오스는 아들 타니오스를 데리고 망명길에 나선다.

 

스포일러고 뭐고 모르겠다. 독자제현의 호기심 해소를 위해 나머지도 다 까발려야겠다. 망명지 사이프러스의 파마구스타에서 도주할 때 챙겨온 넉넉한 자금으로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내는 게리오스 부자. 타니오스는 거리에서 만난 여인 타마르(과일이라는 의미라고 한다)에게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 녀석, 남자가 된 건가? 하지만 아버지 게리오스는 수장(에미르)이 파견한 비밀정보원의 유혹에 빠져 고향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천우신조로 아버지와 같이 배에 오르지 못한 타니오스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교수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그렇게 사라져갔다.

 

예전에 그리스 기행문 <마니>에서 패트릭 리 퍼머 작가가 밝혔다시피,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역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피로 피를 씻는 복수극은 그 동네의 일상이었다. 이집트 점령군 아델 에펜디의 앞장이가 된 루코즈는 그의 명령으로 병력을 동원해서 이웃 사흘라인의 사이드 베이크를 공격해서 그를 죽였다. 사흘라인 사람들이 복수의 칼날을 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이프러스에서 여전히 망명 생활을 하던 타니오스에게도 복수의 기회가 찾아왔다. 영국은 함대를 동원해서 레바논 산악지대를 장악하고 있던 수장들을 정벌하러 나섰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국식 교육을 받은 타니오스는 유용한 길잡이였다. 아마 이런 때를 대비해서 그들은 현지의 유력한 자제들에게 영국식 교육을 시켜 제국주의 첨병으로 삼았던 게 아닐까. 수장에게 치욕적인 명령을 전달하고, 자신의 고향 마을로 돌아온 타니오스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대주교를 저격한 아버지와 함께 도망칠 적에는 그렇게 꼴사나웠는데, 증세와 병력 징발 그리고 무기 압수 정책 때문에 현지인들에게 신망을 잃은 이집트와 협력자들을 몰아낸 해방군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타니오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솔로몬의 그것과도 같은 현자의 재판이었다. 족장을 내쫓은 배신자 루코즈를 어떤 식으로 처벌 하냐가 문제였다. 사이드 베이크의 아들인 카흐탄은 당장 루코즈를 처형하라고 성화고, 그래도 그놈의 정 때문에 한 때나마 사랑했던 아스마를 생각해서라도 추방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들이 타니오스의 내부에서 격렬하게 충돌한다. 잠시 억류해둔 감옥에서 결국 비극이 발생하면서 영웅 타니오스는 종적을 감춘다.

 

아민 말루프는 소설 <타니오스의 바위>를 통해 놀라운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족장의 사생아라는 출생의 비밀을 가진 소년 타니오스가 치열한 삶의 투쟁과 고민 끝에 한 명의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도 녹록하지 않다. 하긴 우리네 삶이 언제 그렇게 만만했던 적이 있었던가. 저자의 고향인 레바논 산악지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전제적 통치 아래 살던 이들의 비합리적이지만, 현재 자신들의 삶만 영위해 준다면 작은 불편 따위는 감내할 수 있다는 지역공동체가 품은 고루한 인식에 대한 분석도 예리했다.

 

전 세계를 집어삼킬 듯한 제국주의 서세동점의 시대에 레반트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제국의 가장 중요한 식민지였던 인도의 안전확보를 위해 19세기 내내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고 있던 영국은 레반트 거점 확보가 중요했다.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레반트 지역에서 정치권력에 우선해서, 민중들의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종교의 중요성을 일찍이 파악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협력할 이들의 양성을 위해 서구식 교육과 사고를 이식할 현지 인재 발굴에 열심이었다. 당근과 채찍으로 현지 기득권층을 포섭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탁월했다. 산악지대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고, 이집트와 오스만 터키가 전쟁을 벌이면 궁극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이집트는 영국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영국은 프랑스 기술로 건설된 수에즈 운하로 지중해에서 인도로 가는 안전한 통행권을 확보하면서 제국의 영광을 한 세기 더 연장할 수 있었다.

 

이런 당대 레반트의 복잡한 상황을 중년의 노련한 아민 말루프는 신화와 전승을 이용한 연대기로 훌륭하게 풀어냈다. 다시 한 번 이 작가의 작품에 반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타니오스의 바위>는 지금까지 만난 아민 말루프의 작품 중의 최고다. 세상에 허명은 없다고 공쿠르 수상작의 위용일까. 이런 우수한 작품이 심지어 재밌기까지 하니 더 바랄 게 없었다. <타니오스의 바위> 재출간에 이어, 더 기쁜 소식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온 <레오 아프리카누스>가 조만간 나올 거라는 소식이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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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2-15 0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신간으로 떠서 호기심을 가지고 봤는데 재출간이군요. 재출간되자마자 바로 읽으셨네요. 작가 이름이 낯익었는데 매냐님한테 들었나보네요. 강추하시니 저도 찜합니다.

레삭매냐 2024-02-15 10:18   좋아요 1 | URL
아주우~ 오래 전에 나온 책인데
출판사에서 작가의 판권을 새로
계약한 모양입니다.

작년 가을에 <사마르칸트>에
이어 계속해서 작가의 책들이
나오고 있네요.

말미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레오 아프리카누스>가 가장
기대주입니다.
 
일상, 다 반사
키크니 지음 / 샘터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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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어딘가에 있는 쿠르초 말라파르테의 <망가진 세계>를 결국 찾지 못하고 도서관에 빌리러 갔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키크니 작가의 에세이집 <일상, 다 반사>와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이 반납 카트에 놓여 있는 걸 봤다. 명절에 에드워드 P. 존스의 <알려진 세계>를 사서 읽으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희망도서로 신청했더라. 뭐 그런 거지.

 

나에게 이제 인스타는 정보를 취득하는 하나의 창구가 되었다. 좀 더 스피디하게. 그리고 좀 더 깊은 정보가 알고 싶다면 너튜브를 뒤진다. 사실 키크니 작가도 인스타 피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양반, 갬성 넘치는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인가에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뽐내신 바 있다. 초반의 서너컷은 유머로 빌드업을 한 다음, 마지막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다. 그러니까 인스타 팔로우들의 갬성을 한껏 자극하는.

 

그냥 그런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에세이집을 통해 작가의 내면에 좀 더 도달하게 되었달까. 그러니까 5.3KG돼한의 건아의 태어나 농구를 좋아하고, 만창과에 진학한 살벌한 인상의 청년이 그림으로 세상고 맞짱을 뜨는 이야기가 <다 반사>의 주를 이룬다. 비즈니스 미팅의 긴장감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났다. 어라, 그리고 보니 연달아 읽고 있는 마스다 미리 작가의 <작가생활>에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것 같다.

 

어쨌든 프리한 고독랜서로서 고정적이지 않은 수입과 불안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장면 그리고 자신이 항상 부족한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항상 부족과 결핍 그리고 불안 속에서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보니 얼마 전, 인스타 피드에서 본 거창한 행복이라는 목표 대신 조금만 행복의 기준을 낮춘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어느 현자의 말이 기억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떤 행복을 추구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고. 행복조차 경쟁이 된 것 같아 보이는 SNS 월드에서 그런 소소한 행복은 피드로 올리기에 어쩌면 좀 쪽팔리는 그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암튼 그렇게 소소한 일상으로 빌드업을 마친 작가는 자신의 백그라운드를 조용하게 들려준다. IMF로 집이 망하고 언제나 건강하실 것 같았던 어머니가 뇌경색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시게 된 스토리는 참 그랬다. 아마 어쩌면 그 시절을 경험한 탓에 우리는 더 불안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정년이 보장된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 하루하루 일하다가 때가 되면 은퇴하는 게 꿈이었던 소시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이 문을 닫고 아무런 보호장치 하나 없이 그야말로 약육강식 자본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내던져지게 되었을 때의 그 막막함이란.

 

키크니 작가 역시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서 선배 네 명과 작은 월세집에서 살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큰형님은 호주로 도망치다시피 2년간 워홀을 가셨다고. , 듣기만해도 절로 한숨이 나오는 사정이지 싶다. 그래서 홀로 가정을 보살펴야 했던 무게감에 대해서도 키크니 작가는 그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다. 되짚어 보니 그가 구사하는 모두의 마음이 훈훈해지는 빌드업 서사가 어쩌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에세이의 어디선가 발견한 덤벼라 세상아라는 구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인스타 피드로 만나는 짤과 이렇게 나름 긴 호흡으로 가는 에세이집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느낌이다. 다음에 도서관에 다시 가게 되면, 그의 다른 책들도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다. 오늘 도서관에 가는 날인데 명절이라 휴관이다.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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