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2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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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한 권 읽었다. 우연히 스레드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 대한 소개 글을 읽었고, 그것을 계기로 읽다말다를 반복하던 <댈러웨이 부인>을 완독할 수가 있었다. 너튜브의 플롯 서머리 콘텐츠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초반에는 제법 도움을 받았는데, 책읽기가 본궤도에 오른 다음에는 그냥 내리 읽을 수가 있었다.

 

20세기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을 대표한다는 울프의 소설을 이제야 읽게 되다니. 역시 어느 책을 만나게 되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236월의 어느 날이다. 주인공은 오늘 파티를 열기로 한 댈러웨이 집안의 여주인 클래리사다. 과연 의식의 흐름대로,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사유와 시간을 넘나들며 그들이 펼쳐 보이는 서사가 잇달아 등장하기 시작한다. 현재는 1923년의 런던이지만, 모든 일의 시작은 33년 전 1890년대의 보턴이다.

 

당시 클래리사에게는 피터 월시라는 애인이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은 스스로를 사회의 낙오자라 생각하는 옥스퍼드 출신의 사회주의자 피터는 지금도 여전히 호주머니 속에서 주머니칼을 놀리는 중년의 남성이다. 클래리사는 매력적인 피터 대신, 재미는 없지만 미래의 안정과 경제력을 고려해서 리처드 댈러웨이를 선택했다. 과거의 그런 선택이 지금의 속물적인 성향의 클래리사를 탄생시킨 걸까. 아니면 소설을 따라 가다 보면 알게 되는 것처럼 원래부터 클래리사는 그런 인물이었던 걸까. 어디선가 들리는 피스톨 사운드. 그것을 계기로 또 다른 캐릭터가 등장한다.

 

소설의 또 한편에는 1차 세계대전 베테랑 출신의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가 있다. 전쟁영웅으로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청년이지만, 그는 5년 전에 끝난 전쟁의 심각한 PTSD 증상을 겪고 있다. 자신의 상관으로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사한 에번스의 환영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탈리아에서 만난 (루크)레치아와 결혼했지만, 이 결혼 또한 사랑 없는 결혼의 전형처럼 보인다. 사랑 없는 결혼에 그는 죄책감을 느낀다. 런던 상공에 비행기가 '스카이라이팅'이라는 기법으로 신박한 광고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11시 무렵에 클래리사는 단골 꽃집에서 웨스터민스터 저택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30년 전, 보턴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 샐리 시턴과의 우정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한 마디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종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고나 할까. 마성의 매력을 지닌 샐리는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다. 게다가 교양까지 있어서 플라톤도 읽었다고. 심지어 클래리사는 그녀와 키스까지 했다고 고백한다.

 

그 다음 주자는 클래리사의 옛 애인 피터 월시다. 그는 5년 만에 인도에서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만난 데이지와 결혼하기 위해 런던의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던가. 현실세계에 클래리사가 있다면, 그 반대편의 이상 혹은 판타지를 대표하는 인물로 버지니아 울프는 피터 월시를 배치했다는 느낌이 든다. 소설의 곳곳마다 부딪히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적 충돌이야말로 <댈러웨이 부인>을 이끌어 가는 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소설의 가장 비극적 인물은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가 있다. 저명한 신경과 의사인 윌리엄 브래드쇼는 셉티머스에게 중증 신경 쇠약 진단을 내린다. 그리고 그는 셉티머스에게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떨어진 시골 요양소에 가보라고 권고한다. 이미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져 버린 그에게 그런 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브래드쇼와의 진료는 왠지 신부님과의 고해성사를 연상시킨다. 그나저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가혹한 운명을 어쩌면 처음부터 지각하고 있어서 그런 진 몰라도 "그 사건"이 도대체 언제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댈러웨이 부인의 파티 시계는 가열차게 돌아간다. 누군가는 세상의 고통에 시달리고, 또 주류세계에서 낙오했다는 상실감이 넘실거리는 가운데서도 오늘 저녁 자신의 저택을 방문할 인사들에게 최상의 음식과 마실 것들 그리고 최상의 환대를 대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클래리사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클래리사는 언제나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파티는 그녀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직 버지니아 울프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 보지 못해서 작가의 작품에서 시간의 역할에 대해 공통적인 분석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댈러웨이 부인>에서는 역시나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누군가에게 시간은 치유를 위한 개념일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 시간은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시간은 즐거움과 쾌락을 위한 무엇이라면, 셉티머스처럼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에게는 결국 "엔딩", 그러니까 종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파티에 최선을 다하는 클래리사 댈러웨이가 정작 그 서커스처럼 돌아가는 파티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감정의 고백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런던 사교계의 파티라는 것이 나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고려한 의무에 가까운 게 아니었나 하는 심정이란 말이다. 게다가 무슨 절차와 과정 그리고 의례가 많이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쇼맨십에 가까운 과장된 다정함은 부담으로 작동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파티에 초대받지도 못한 클래리사의 옛 친구 샐리 시턴이 등장하면서 많은 주의를 기울여 준비한 파티에 균열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30년 전, 나체로 패리 하우스의 거실을 뛰어 다니며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샐리답게 이번에도 어김없이 무례를 반가움으로 눙치는 내공을 시전한다.

 

등장인물들의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의식의 교차 같은 흐름들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사는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증폭된 불확실성에 대한 근원이 어쩌면 과거의 어느 특정한 선택으로부터 유발된 게 아닌가라는 사유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아울러 작가가 소설의 곳곳에 배치한 시간의 설정은 내가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에 대한 가늠자 같은 은유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가끔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화자의 전환이나 혹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여행이라는 과정을 통해 마치 내 앞으로 달려오는 것 같은 맹렬한 시간의 분노를 마주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다. 그 시간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 같은 캐릭터는 결국 부서지고 만다. 스타일리스트 피터 월시는 자기 나름의 회피라는 방식으로, 그리고 주인공 클래리사는 런던의 명사들과 즐겁지도 않은 파티라는 도피처를 선택하는 것으로 시간에 맞선다.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책을 마저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급급해서 그런 사유들을 미처 기록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또 나중에라도 다시 읽게 된다면 어떤 다른 생각으로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이제 다음으로 울프의 16세기 로맨스물인 <올랜도>를 읽는다. 이 책도 역시나 재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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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비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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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작가 안드레 애시먼의 새로운 책들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격이 얼마든, 책의 두께가 얼마나 되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로 주문장을 날렸다. 그리고 책은 바로 다음날 도착했다. 마치 걸신 들린 독서가마냥, 애시먼 작가의 책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페루에서 온 신사> 그리고 <마리아나>가 그 주인공이었는데 나의 원픽은 <페루에서 온 신사>였다.

 

티레니아 바다가 보이는 이탈리아 남부의 어느 도시에 8명의 아메리카니들이 요트를 타고 방문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어떻게하는 즐거울까라는 고민 뿐이었다. 좋은 시절이지 않은가. 즐겁게 노는 것만이 관심이라면 말이지. 문득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었다.

 

그리고 그들을 유심하게 관찰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페루에서 온 신사 라울이었다. 관계의 출발은 어깨 통증에 시달리는 아메리카니 중의 한 명인 마크를 페루 신사가 단 5초만에 치료한 것이다. 어때 벌써부터 무언가 주술적 향기가 나지 않는가 말이다. 라울 아저씨는 정말 무슨 게임에 나오는 힐러 캐릭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뿐 아니었다. 그는 8명의 아메리카니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나라면 그 순간, 무섭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라울은 그들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보까지도 모두 알고 있었다. 자신에 대해 누군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면, 좀 소름이 끼치지 않을까. 심지어 뉴욕에서 리스본을 거쳐 이탈리아에 이르는 친구들의 모든 경비를 댄 뉴욕의 잘 나가는 트레이더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주기까지 한다.

 

모든 그룹에서 그렇지만, 낯선 사람과 대결구도를 만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마고였다. 마고는 낯선 라울과 대척점을 형성한다. 이고가 강한 성향이라고 해야 할까? Opposite Attract란 표현처럼 상극처럼 보이지만, 또 라울과 마고는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면서도 동시에 서로에게 이끌린다고 해야 할까.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한 여름의 이탈리아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또 하나의 색다른 서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안드레 애시먼 작가는 리얼리즘 대신, 전생이라는 이전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 구조를 독자에게 내던진다. 그렇지, 그 정도되는 설명이 아니라면 페루 출신 신사 라울이 마고를 필두로 한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 그렇게 잘 알 수 있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페루에서 온 신사>는 모든 것이 전적으로 허용되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아니었던가. 어쩌면 우리 독서모임의 누군가처럼 핍진성이나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나는 또 할 말이 없겠지. 나는 그런 것보다 전생에 그 누구보다 더 사납게 싸우고 그리고 격렬하게 사랑했던 라울과 마리아의 이야기에 그만 흠뻑 빠져 버렸다.

 

<페루에서 온 신사>는 노년에 도달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 작가 안드레 애시먼의 판타지에 가까운 연애소설이다. 분량 때문인지 몰라도 그야말로 물 흘러가듯 그런 전개에 빠져 페루 신사 라울의 궤적을 쫓다 보니 어느새 이야기가 끝나 있더라. 사실 엔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전생과 현생을 오가며 넋두리처럼 흐르는 서사의 바다에 빠졌다가 기슭으로 나와 이탈리아의 강렬한 태양 아래 몸을 말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렇지, 바로 내가 바로 이런 맛에 안드레 애시먼의 책들을 좋아하는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또 되짚어 보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간결하면서 강렬한 서사 말이지. 여름이 길목에서 만난 멋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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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테 안경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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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다시 조르조 바사니 작가의 <금테 안경>을 읽었다. 아마 그 때,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바사니 작가의 책들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 읽지 못했던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성벽 아래서>도 이번에는 읽었다. <왜가리><건초 냄새>까지 나왔다면 완벽했을 텐데, 그게 좀 아쉽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걸작은 다시 읽어도 항상 좋은 법이다. 소설 <금테 안경>의 화자는 바로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에서 내가 첼레스티노로 명명한 작가의 페르소나다. 그가 사는 페라라에는 베네치아 출신 아토스 파디가티 선생이라는 저명한 중년의 이비인후과 의사가 있었다. 그가 애용하는 "금테 안경"은 그의 분신 혹은 상징과도 같은 무엇이라고나 할까.

 

탁월한 의술과 친절함 그리고 세련된 진료로 파디가티 선생은 페라라 공동체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그런 인사였다. 그리고 재산은 자연스럽게 그의 노력에 응답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적어도 파디가티의 성적 취향에 대한 추문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편 페라라에서 볼로냐로 통학을 하던 첼레스티노와 친구들은 대학 강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볼로냐로 향하던 파디가티를 기차에서 종종 보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 델릴리에르스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지난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델릴리에르스는 노골적으로 파디가티의 성적 취향을 조롱하고 놀림감으로 사용한다. 내가 보기에 델릴리에르스는 순수 악 그 자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척에서 관찰한 나, 첼레스티노의 감상과 기록이 이어진다. 바사니는 실제 있을 법했던 사건에, 자신의 감정을 추가하고 혐오와 배제로 무장한 이탈리아 파시즘이 부상하던 시절의 광기를 적절하게 배합해서 <금테 안경>의 서사를 완성해간다.

 

파디가티와 델릴리에스가 빚어내는 볼썽사나운 추문의 절정은 19378월의 휴양지 리초네 부근에서 그야말로 폭발한다. 사실 그들의 기묘한 우정은 보수적인 페라라의 부르주아 사회에서 물의와 논란의 대상이었다. 가십 전문가 라베촐리 부인에게 이 커플은 좋은 먹잇감이기도 했다. 독설가였던 라베촐리 부인은 나치를 찬양하며 그들의 주장에 동조해서 타당성과 위대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리고 3년 전에 있었던 나치들의 오스트리아 총리 엥겔베르트 돌푸스 암살사건에 대한 언급도 살짝 등장하기도 했던가.

 

신혼부부라며 조롱을 받던 둘의 파국은 처음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그해 8월의 마지막 날, 언쟁으로 시작된 델릴리에르스와 파디가티의 다툼은 결국 청년의 주먹에 파디가티가 넉다운되고 기절하는 일대 소동으로 마무리된다. 현장을 목격한 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이야깃거리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델릴리에르스는 파디가티의 모든 것을 챙겨 도망가 버렸고, 쓸쓸하게 홀로 남은 파디가티 선생은 결국 가진 돈을 다 털어 페라라로 귀환하게 된다. 문득 여기에서 금이 간 파디가티의 금테 안경은 앞으로 다가올 어두운 미래에 대한 암시가 아니었을까.

 

1937년 리초네에서의 여름이 첼레스티노와 다른 이들에게 화양연화의 시절이었다면, 그 다음부터 비극의 연대기가 시작됐다. 리초네에서의 추문으로 페라라에서 존경 받던 파디가티 선생은 병원에서 해고됐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로 급속하게 늙어갔다. 그보다 큰 사건은 1년 뒤부터 유대인들을 겨냥한 엄격한 인종법이 실시된다는 소식이었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박해와 학살의 미래가 올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여기서 바사니 작가는 자신의 다른 작품들에서 어김없이 빌런으로 등장하는 파시스트 시아구라를 소개한다.

 

페라라 도시 곳곳에서 벌어진 배제와 혐오에 대한 전조는 주인공과 전도유망한 법학도 니노 보테키아리와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페라라 유대인 대다수가 지닌 도시 부르주아로서의 정체성을 자랑하고 심지어 자발적 파시스트였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인종적 배경 자체를 숨길 수가 없지 않았던가. 파시즘에 대해 아무리 완벽한 연대와 수용을 한다고 말해도, 그들의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이 나이든 성적소수자 아토스 파디가티의 극단적 선택에 소식을 신문에서 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전에 화자의 아버지는 잠시나마 페라라 유대인들에 대한 인종법이 절대 공포되지 않으리라는 유력자의 거짓말에 현혹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가짜뉴스는 현실을 잊기 위한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파디가티는 절망에 빠진 화자에게 저항이나 거부하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파디가티의 선택은 자신의 조언과 다른 결의 무엇이 아니었던가.

 

10년 만에 다시 <금테 안경>을 읽어 보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실현을 위해 질주하는 실존이 아닌가. 자신의 거친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환멸과 고독감에 대한 바사니 작가는 어쩌면 그렇게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바사니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처럼, <금테 안경>에서도 화자로 대변되는 청춘들이 미래가 너무 불투명해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극단적 절망감을 표출하는 서사도 과연 대단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서 조르조 바사니 작가의 소설들을 세 권을 섭렵했고, 이제 <문 뒤에서>만을 남겨 두고 있다. 남은 3일 동안 무리 없이 다 읽을 수 있겠지. 오래 전에 읽은 책들을 다시 읽고, 휘발해 버린 감상들을 되살리는 재미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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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06-11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금테 안경」 저도 다시 읽고 싶네요. 조르조 바사니의 책은 두 권 읽었는데, 생각하면 조금 쓸쓸해집니다. 슬픈데 아름답고... ‘페라라‘도 가보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6-06-11 22:33   좋아요 1 | URL
책을 다 읽고 나서,
제 심정이 딱 그랬습니다.

살면서 페라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3
조르조 바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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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부터 읽겠노라고 별러 오던 숙제를 이제야 다한 느낌이다. <금테 안경>으로 처음 만났던 조르조 바사니의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을 드디어 다 읽었다.

 

소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의 화자는 첼레스티노. 물론 소설에 그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첼레스티노(동명의 영화에서는 조르조)가 사랑해 마지 않던 소녀 미콜 핀치콘티니가 그를 부르던 애칭이다. 이탈리아 파시즘 시절,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모두 겪은 페라라 유대인 공동체 출신 첼레스티노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트루리아인의 묘지에서였던가. 과거의 죽음은 너무 멀기에 와 닿지 않지만, 최근의 죽음에 대해서는 애닲을 수 밖에 없다는 고백.

 

유럽 대륙에 두 번째 세계대전의 전운이 퍼지기 직전의 모습은 오래 전 벨에포크를 연상시킨다. 주인공 첼레스티노를 비롯한 일단의 유대인 청년들이 테니스클럽에서 축출되자, 페라라에 무려 3만평에 달하는 대영지(정원 포함)를 가진 핀치콘티니 가문이 기꺼이 그들에게 테니스장을 공개해준다.

 

파시스트들의 혐오와 배제가 넘실거렸지만, 아직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던 일단의 청년들은 핀치콘니키 가문이 제공하는 음식과 공간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유대인 공동체에서 미콜과 그의 오빠 알베르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첼레스티노는 자연스럽게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의 일부분이 되기 시작한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주류 사회에서 억울하게 배제된 유대인 청년들에게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수행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부족함 없이 먹고 마시고 수다를 즐기며, 테니스를 마음껏 칠 수가 있었다. 혈기방장한 이십대 청년 첼레스티노가 자기 집보다 핀치콘티니네 집을 더 가까워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38년 이탈리아에서 그 악명 높은 인종법이 공포되면서, 페라라에서 눈부시게 빛나던 시절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한 때 의사이자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첼레스티노의 아버지는 상인연합에서 퇴출되었고, 첼레스티노는 도서관 출입마저 금지당하게 된다. 당장 졸업논문 준비를 해야 하는 첼레스티노에게 그야말러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바사니의 페라라에 대한 당시의 기록들을 접하면서 놀라웠던 점 중의 하나는, 당시 이탈리아 유대인들 중에서 상당수가 파시즘에 동조하고 지지했고 심지어 파시스트당에 가입해서 당원증을 받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자신들의 인종적 배경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전쟁이 한참이던 1943년 대대적인 유대인 검거가 시행되면서 페라라에 살던 유대인 공동체도 독일 강제수용소 화장장의 비극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한편, 미콜의 아버지 에르만노 교수는 첼레스티노의 딱한 사정을 듣고 언제라도 자신의 서재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정말 대단한 특전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첼레스티노는 아름답고 베네치아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미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게 된다.

 

조르조 바사니는 페라라라는 유대인 공동체 속에서도 시기와 질투가 존재했으며, 상호간에 배제가 있었다는 점들을 솔직담백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이 경험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춘남녀들의 엇갈리는 사랑과 우정 이야기를 덧입힌다. 파시즘이라는 광기가 휘몰아치던 광기의 시대에도, 어디선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감정의 소용돌이가 피어났다는 점을 작가는 놓치지 말라고 주문한다.

 

개인적으로 페라라라는 오래된 르네상스 도시를 방문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오롯이 바사니의 묘사에만 의존해서는 작가가 의도하는 페라라 구석구석의 이모저모를 떠올리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안젤리 성벽 같이 소설에서 계속해서 언급되는 청춘들이 밀회를 즐기던 곳들에 대한 형상화는 난망했다. 아마 페라라 사람들이라면 바로 인사이트를 얻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같은 이방인에게는 불가능한 미션이 아니었을까.

 

결국 첼레스티노는 미콜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아버지의 충고를 따라 핀치콘티니 집안에 발길을 끊게 된다. 1942년 악성 림프육아종으로 미콜의 오빠 알베르토가 죽고, 나머지 가족들은 19439월에 검거되어 독일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연적이라고 생각한 잠피에로 말나테는 러시아 전선에서 전사했다. 이런 비극의 연대기는 어쩌면 프롤로그에서부터 예고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파시즘의 광기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던 암울한 시절을 직접 체험한 첼레스티노, 조르조 바사니 작가의 증언이 담긴 보고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미래가 허용되지 않는 그런 암담한 절망 속에서도 핀치콘티니 가문의 정원을 해방구로 삼아 잠시나마 정신적 탈출을 청춘들의 서사에 스며들어 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감정, 연적에 대한 공상과 시기, 밀고 당기는 미묘한 감정을 짚어낸 바사니 작가의 실력은 대단했다.

 

다시 100년이란 시간이 흘러,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를 배제와 혐오의 선동들이 난무하는 시절이 도래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에 대한 관용과 공감 형성은 과연 불가능한 미션인지 자문해본다. 아울러 순결하고 강인하게 아름다운 그 시절을 살아낸 바사니와 그의 동지들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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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하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녹색광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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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루이 말 감독이 연출을 맡고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엣 비노슈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 <데미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조세핀 하트의 원작 소설로 <데미지>를 만나게 됐다. 작가는 파멸의 에로티시즘과 채워지지 않은 갈망에 대한 서사의 파편들로 독자들에게 '데미지'를 선사한다.

 

소설 <데미지>의 줄거리는 정말 소설스럽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중산층 가장이자 의사, 국회의원인 스티븐 플레밍의 삶에 어느 날 재앙의 기운이 내뻗친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아들 마틴의 약혼녀 안나 바턴.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삶을 살아온 스티븐에게 안나는 파멸의 안내자였다. 이미 영화를 통해 알고 있던 이야기였지만, 조세핀 하트가 들려주는 소설의 플롯은 또 다른 차원의 충격이었다. 더 큰 문제는 스티븐이 안나와의 관계가 플레밍 집안에 돌이킬 수 없는 화근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안나에게 빨려 들어갔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재난에 가까운 결말이 예견된 그리스 비극의 재현이라고 해야 할까.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은 도덕의 굴레에서만 가능한 걸까?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와 관계를 갖는단 말인가. 도대체 이 스티븐이란 작자는 양심과 도덕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인가. 스티븐만큼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 인물이 바로 안나였다. 물론 어려서 사랑하는 오빠 애스턴의 비극적 죽음과 그에 따른 부모의 이혼 등 그녀가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가 남달랐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한 집안의 근간을 송두리째 무너뜨려 버리는 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스티븐과 안나는 만나는 순간부터 위선이라는 가면을 써야 했다. 사랑하는 아내 잉그리드, 전도유망한 청년 저널리스트 마틴, 역시 빼어난 재능의 샐리 등 삶의 오점 하나 보이지 않는 중산층 가정에 외도와 파격적 불륜의 그림자가 엄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종착역에는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관계의 파탄이 대기 중이다. 조세핀 하트는 여성 특유의 세심한 감성으로 일그러져 가는 부부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잡아낸다.

 

스티븐은 위선자다. 철저하게 사회에서 인정받는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로 위장한 스티븐은 아들의 연인을 탐하는 사악한 욕망에 사로잡혀 영원에 존재한 단 한 번의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에게 안나는 자기 욕망의 대상이고, 노예일 뿐이다. 일반적 상식의 사랑을 파괴하다 못해 일탈의 극치를 보여주는 소설 <데미지>를 읽으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사랑을 연민의 시선으로 보기엔 솔직히 말해서 역부족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기분이 얼떨떨하다. 조세핀 하트는 <데미지>로 충격적인 데뷔를 했다고 한다. 스티븐과 안나의 파멸적 사랑에 대한 평가만큼이나 작품 자체에 대해서도 평가를 유보해야 하는 게 아닌지 얼얼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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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bell 2026-06-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에는 화자의 이름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책 읽으신게 맞나요?

레삭매냐 2026-06-01 12:31   좋아요 0 | URL
무명의 화자라는 표현을 쓰기가
그래서 그냥 동명의 영화 주인공
의 이름을 빌어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