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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울프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구소영 옮김 / 알마 / 2021년 10월
평점 :

2025년 노벨문학상의 영예는 수년 전부터 수상이 예상되었던 헝가리 출신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에게 돌아갔다. 국내에서는 알마 출판사가 7년 전부터 <사탄탱고>를 필두로 해서 꾸준하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작가의 책들을 출간해 오고 있었다. 나도 수상전까지 모두 4권(출간작은 6권)을 사 모았지만 정작 완독한 책은 하나도 없었다. <사탄탱고>에 두 번 도전했지만 결국 다 읽지는 못했다. 그러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고,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수상 소식을 듣고 가장 최근에 수집한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을 호기롭게 펼쳐 들었지만 분량이 어마무시했다. 그래서 꼼수로 가장 만만해 보이는 <라스트 울프>를 골랐다. 생각 같아서는 반나절이면 다 읽을 줄 알았지만, 다 읽는데 보름이 걸렸다. <라스트 울프>는 두 개의 중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어쨌든 나도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책 하나는 읽었단 말이지. 뭐 이제 시작이니까. 참 지금의 책값은 내가 구매한 2021년보다 오른 모양이다. 그리고 새로 나온 친구들은 모두 페이퍼백으로 바뀌었다. 난 기존 스타일의 양장을 더 선호한다. 크러스너호르커이라는 이름은 외우기도 쉽지 않다.
소설집의 표제작이자 첫 꼭지인 <라스트 울프>는 베를린 카이저-빌헬름 광장의 어느 술집에서 화자가 들려주는 스페인 마지막 늑대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독자로서 여전히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만연체 서사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득 주제 사라마구의 문체가 생각나기도 했다. 구두점과 행이 바뀌면 좀 더 가독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 전, 인류가 가축화하는데 성공한 늑대 무리의 개와 달리 늑대는 여전히 야생성을 유지하고 그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육식성 포유동물인 늑대는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는 해수로 규정되어왔다. 아니 인간과 인간의 자산인 가축들을 공격하는데, 누가 늑대의 종보존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샬롯 맥커너히의 <늑대가 있었다>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도 늑대를 지키자는 환경보호론자들과 농장주들 간의 첨예한 대립이 있지 않았던가.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늑대와의 공존 대신 박멸이라는 손쉬운 방법이 채택됐다. 아무래도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오롯하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작가가 구사하는 서사에 올라타기가 쉽지 않다. 그저 낯선 이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늑대'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 다만, 우리 호모 파베르들이 사냥총을 가지고 늑대를 상대하는 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화자는 마지막 남은 늑대의 생존을 돕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추정을 내놓는다. 마지막 늑대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재산 손실이나 인명피해 감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도덕적 질문에 예의 조력자가 어떤 대답을 할지 나는 궁금하다. 세상에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달픈 마음과 자연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헤르먼>은 사냥터 지기에 대한 이야기다. 표제작 <라스트 울프>와 같은 결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래서 두 편이 엮여서 한 권의 책으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 헤르먼은 유능한 사냥터 지기로 야생의 정글처럼 변해 버린 사냥터를 정상적(?)으로 복원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자연을 인간의 노력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묻게 된다.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직접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인간이 팬데믹으로 대륙 간의 잦은 이동을 멈추자, 자연은 그 시간을 이용해서 훼손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연을 착취하고 이용할 줄만 알았지 그렇게 손상된 자연에게 스스로 복구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지 않았다.
사냥터 지기 헤르먼은 그런 점에서 자연복원의 선각자가 아니었나 싶다. 오로지 인간에게 이로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해수로 규정된 동물들을 사냥해서 구덩이를 죽은 동물들의 사체로 채우지 않았던가. 그런 무의미한 죽음을 경험하서 헤르먼의 심장은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사에게 검진을 받아 보니, 더 이상 건강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심장이 아닌 정신적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유능한 사냥터 지기였던 헤르먼은 자신의 본분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인간들을 상대로 일종의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가 사람들을 상대로 놓은 덫에 많은 이들이 부상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헤르먼은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어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어떤 점에서 동물들을 핍박하던 헤르먼은 어떤 자각의 과정을 거쳐 가해자의 입장에서 수호자로 변신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모 아니면 도라는 편집증적 이분법 논리에 익숙한 인간 세계에서 헤르먼이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가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반대로 우직하게 나간 그의 행동이 수용될 리도 없었겠지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라스트 울프>는 짧지만 강렬한 주제 의식과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얇다고 해서 만만하게 생각하고 도전했다가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게 하는 잔상의 연속이 매운맛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인간과 공존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계속해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제 한 권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