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의 세상 - ‘세상 끝’으로 내몰리는 고래와 그 고래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ink books 8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써네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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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다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다. 읽을 때마다 그전에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들을 새롭게 픽업할 수 있고, 또 예전에는 그렇게 읽었었지라는 추억과 만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어쨌든 좋단 말이겠지.

 

16살의 나이에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은 소년 세풀베다는 헤이허브 선장 그리고 포경사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지구끝 파타고니아로 향한다. 그 때가 아마 1965년 정도였을 것이다. 당시 국가 칠레는 살바도르 아옌데의 선거혁명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포경사에 대한 낭만적 꿈을 품고 고래 살육의 현장에 도달한 소년은 향유고래가 사냥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소설에서 읽은 것과 냉정한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선원에 대한 꿈을 접었다. 포획당한 고래가 해체되는 모습은 왠지 칠레에서 벌어진 선거에 의한 사회민주주의 실험이라는 고래가 피노체트가 주도한 군부 쿠데타로 일거에 압살당하는 장면과 겹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 2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독일 함부르크에 정착하게 된 그린피스 대원 세풀베다는 지구끝에서 일본 포경선 니신마루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피노체트 쿠데타 이후, 학생운동의 지도자 활동을 하다가 투옥과 수감생활 그리고 다시 재수감되어 종신형을 받았다가 독일 앰네스티의 지원을 조국 칠레를 탈출해서 독일에 정착하게 된 현재의 세풀베다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1979년에는 그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혁명에 가담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그는 단순한 저널리스트가 아닌 혁명가였구나.

 

망명 이래 처음으로 조국의 땅을 밟게 된 세풀베다는 만감이 교차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산티아고에 오래 머무를 틈도 없이 그는 자신에게 연락을 취한 호르헤 닐슨 선장을 만나러 지구끝으로 향한다. 호르헤 닐슨은 피니스테레 호의 선장으로 조수 페드로 치코와 더불어 동포를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세상의 끝, 피니스테레는 왠지 다른 지구끝보다도도 더 파타고니아에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라틴아메리카는 컬럼버스의 항해 이래, 서구세계의 약탈지였다. 서인도 제도의 금과 은을 찾아나선 스페인 탐험가들과 그들의 후예들은 막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자원들을 본국으로 반출했다. 세기가 바뀌어서는 그곳에 널린 다른 자원들에 눈독을 들였다. 자원 채취를 위한 환경파괴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조치였다. 그런 환경파괴로 인한 현지 인디오들의 삶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 파괴와 착취의 연대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게 세풀베다의 증언이다.

 

세풀베다들이 들른 어느 항궁에 산더미처럼 쌓인 톱밥들은 일본 제지공장으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하지만, 숲에서 베어진 나무들이 종이를 만들기 위한 톱밥으로 만들어지는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나무마저 이런대, 일본 포경선의 목표가 된 세계적 멸종위기종 참거두고래의 운명은 또 어떨까.

 

부유한 이들의 입맛을 돋우는 식도락 재료로 필요해서, 혹은 값비싼 화장품에 들어가는 유지로 사용되기 위해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고래들이 희생되어야 한단 말인가. 대양의 유령선으로 위장해서 고래사냥에 나선 니신마루 호의 선장 다니후지는 잠재울 수 없는 인간의 탐욕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아니 어쩌면 별미를 찾는 혹은 신비로운 향기를 내는 향수를 원하는 내 자신의 숨겨진 욕망의 발현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그런 욕망이 다니후지 같은 인물들을 위험한 난바다로 내모는 동인이라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 같다.

 

조그만 범선 피니스테레를 몰고 고래 학살의 현장에서 거대한 포경선 니신마루 호에 호르헤 닐슨과 바다에서 나고 자란 페드로 치코의 돌진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무모한 도전에 일단의 참거두고래들이 응답해왔다. 이거야말로 인간과 동물의 진정한 연대가 아닌가 말이다. 닐슨과 페드로 치코의 안내로 현장에 도착한 칠레인은 사진 촬영을 포기한다. 그 때 칠레인의 경험이 훗날 <세상 끝의 세상>의 땔감이 되었다.

 

표지에 실린 바다 위로 튀어 오르는 고래의 이미지는 아무런 제약 없이 대양을 누비며 사는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풀베다 선생이 묘사하는 파타고니아에 대한 글을 보면 언젠가 꼭 한 번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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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라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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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부터 극심한 독서 슬럼프에 빠져 있다. 연말에 무리(?)를 해서 연간 독서 100권을 채울 수도 있었으나, 어느 순간 그게 무슨 의미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뒀다. 대신 너튜브의 세계를 자유롭게 주유했다. 그조차도 또 무슨 의미겠는가만. 돌고 돌아 다시 루이스 세풀베다를 읽는다. 독서 슬럼프 탈출에 이제는 코로나로 하늘의 별이 된 세풀베다 작가의 책들만한 게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서가에서 <핫 라인>을 집어 들었다. 집중해서 읽으면 하루면 되지 않을까라는 얄팍한 생각으로. 하지만, 세풀베다의 책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파타고니아 아이센 출신의 마푸체 인디오 출신 조지 워싱턴 카우카만 형사가 인도하는 칠레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고향 아이센에서 거의 신기에 가까운 실력으로 사건을 처리해온 카우카만 형사는 일단의 소도둑을 상대하다가 곤경에 처한다. 우지 기관총을 들고 자신에게 덤벼드는 소도둑 우두머리의 엉덩이를 레밍턴 소총으로 무려 70%나 날려 버린 것이다. 좋지 않다. 결국 그는 칸테라스 장군의 미움을 받아 난폭하게 총기를 휘두르는 무식한 형사라는 낙인이 찍힌 채, 고향을 떠나 수도 산티아고의 한직으로 전보를 받는다.

 

피노체트의 악명 높은 17년 군사독재에서 세풀베다의 조국 칠레는 마침내 해방되었지만, 정재계를 장악한 장군들의 위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렇게 스모그로 오염된 수도 산티아고에 도착한 카우카만은 도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나게 된 택시 운전사 아니타 레데스마와 사랑에 빠진다.

 

나중에 밝혀지게 되지만, 1973911일의 쿠데타와 상관없이 멀리 떨어져 살던 카우카만과 달리 아니타는 이른바 패배자 집단의 일원이었다. 남자친구는 끌려 가서 실종이 되었고, 자신 역시 군부에 끌려가 고문당한 희생자였다. 이런 복잡한 칠레의 상황을 알게 된다면 <핫 라인>에 대한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나 역시 세풀베다를 읽으면서 칠레의 암울했던 현대사와 만나게 되었으니까.

 

칸테라스로 대변되는 기득권의 복수는 집요했다. 카우카만를 처리하기 위해 장군은 킬러를 파견해서 우악스러운 마푸체 인디오 출신 형사를 협박한다. 하지만 그들은 마푸체 인디오 전사의 후예였던 카우카만을 너무 쉽게 본 모양이다. 카우카만은 포크로 자신을 찾아온 킬러들을 응징한다. 다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구사하는 폭력을 뛰어넘는 거대한 폭력의 행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암시가 배어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자 이제, 망명했다가 귀국해서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핫 라인을 개설한 배우 부부가 등장할 차례다. 바로 지금부터 세풀베다 작가는 칠레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암울한 잔혹사를 배치한다. 민주화 이후 민중의 들끓는 욕망으로 대변되는 핫 라인과 과거 칠레 군부가 저질렀던 잔혹행위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결합되면서 우리의 히어로 카우카만을 위기로 몰고 간다.

 

과거의 악으로 상정된 빌런 칸테라스는 세 명의 전문 킬러들을 고용해서 카우카만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세력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없애 버리겠다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습관으로부터 칸테라스들은 벗어날 수가 없다. 과거에 그랬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군사독재 콜라보들에게 부여한 광범위한 사면권은 오히려 국가통합의 저해로 작동했다는 것을 세풀베다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직접적으로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과거에 당한 고문의 심각한 PTSD를 겪고 있던 연인 아니타를 카우카만은 우이냐라고 부른다. 자기보다 압도적인 무력과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에게 무소용이지만, 하다못해 단발마적인 저항을 보여 주었던 칠레 야생 고양이들의 비유라고나 할까. 카우카만 역시 우이냐답게 칸테라스로 대변되는 권위주의 권력집단에 대한 일견 무모해 보이는 저항정신의 화신으로 거듭나게 된다. 마지막 순간에, 아니타를 필두로 한 여성들의 연대가 보여주는 행진은 정말 압권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부지런히 산티아고 거리를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차의 등장하는 엔딩까지 완벽했다.

 

<핫 라인>에서 루이스 세풀베다는 간략하지만, 강렬한 메시지와 투박하지만 센스 만점의 파타고니아식 유머로 독자를 매료시킨다. 지금 한창 떠내 보내야할 책들과 소장할 책들 분류에 정신이 없는데 <핫 라인>은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책이다.

 

[뱀다리] 그나저나 왜 루이스 세풀베다 작가들의 많은 책들이 다 절판과 품절의 운명에 처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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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자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44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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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달부터 한창 책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읽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책들을 왜 그렇게 쌓아 두었는지 모르겠다. 강력한 외부 압력에 직면하고 나서, 드디어 책탑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사가 책정리의 강력한 동인이었지만 이사를 다니지 않게 되다 보니 스트레스는 준 대신 잠시 방심했던 모양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창조자>는 무려 6년 전에 사서 쟁여둔 책이었다. 그리고 읽지 않고 있다가 이번 책정리 주간에 발굴(?)해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무려 시집이었다! 내가 시집을 사서 쟁여 두었다고? 이거야말로 놀랄 노자가 아닌가 말이다. 난 시집을 잘 읽지 않거든.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산 시집이니 일단 한 번은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느낌 같아서는 어제 하루 동안에 바로 다 읽을 줄 알았지만,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읽게 되었다.

 

도서관 사서 출신으로 비록 시력을 잃었지만 국립도서관 관장을 할 정도로 책을 사랑했던 우리 책쟁이들의 영원한 우상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책은 이러저러한 경로로 많이 구비해 두었다. 문제는 읽지 않고 있다는 점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시집으로나마 위대한 선배와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시집 <창조자>에는 스페인 원어가 시집의 왼편에 그리고 한글 번역이 오른편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스페인어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대충 한글 번역과 궁금한 원어를 비교해 보는 맛이 있다. 왠지 "포에티카"라는 아마도 라틴어에서 유래했을 것 같은 스페인어는 멋져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보르헤스 작가의 마음을 오롯하게 알 수는 없지만 왠지 그가 구사하는 시들은 밤에 집필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사위에 어둠이 깔리고, 조용한 분위기에 달빛이라도 비춘다면 누구라도 가슴에서 피어오른 시상들을 글로 옮기고 싶지 않을까. 물론 나같은 소설이나 산문 그리고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글거릴 지도 모르겠지만. 데이빗 설로이 같은 외국 작가들 역시 시인을 꿈꾸다가 소설가로 전향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걸 보면 시는 어쩌면 작가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워낙에 방대한 독서를 통해 우리 같은 범인이 따라갈 수 없는 지혜와 지식을 쌓은 보르헤스 선생이 구사하는 시구들은 주석이나 해설이 없으면 따라가기조차 버겁다고 솔직히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책 뒤에 실린 주석이 많은 도움이 되었단 말이지. 잘 모르지만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알게 된 후안 파군토 키로가 같은 인사의 이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 예전에 사르미엔토의 <파쿤도>를 사서 읽다 만 기억이 났다. 그리고 율리시즈의 고향 이타카를 왜 "이타케"로 굳이 번역했는지 궁금했다. 이타카 정도는 알 수 있지 않나.

 

예전에 지인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했다고 하는데, 2<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 부분을 읽다 보니 과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기를 좋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이 들기도 했다. 우리가 접하는 문학은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게 만들어 주기에 더 흥미롭고 재밌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무려 80년 전에 <카몽이스>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15세기 전설적 인물인 포르투갈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에 대해서도 이 시집을 통해 알게 됐다. 그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해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의 일대기를 그린 대서사시 <루지아다스>의 저자라고 한다. 그의 일대기를 보니 어쩌면 포르투갈의 돈키호테 같은 모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보이지 않게 타오르는 불"이라는 시가 있는데, 제목 한 번 기가 막히지 않는가.

 

누가복음 23장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도둑에 대한 시도 인상적이었다.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 우리는 그의 정체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절망의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최후 심판의 날에 구원의 안식을 얻게 된 신화적 인물에 대해서도 호르헤스 선생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회개한 죄인이 가진 천진함을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마지막에 배치한 <골렘>은 짧지만 강렬한 시집의 대미를 장식한다. 유대교 신비주의 카르발라를 연상케 하는 이야기라니. 그저 단순하게 게임에 등장하는 돌로 만들어진 강력한 몬스터라고 생각했는데, 호르헤스 시집은 기존에 내가 품고 있던 사고를 단박에 혁파해 주었다. 히브리 신비주의자들은 아담이 최초의 골렘이라고 주장하고, 누군가 모세 5경에 나오는 네 단어를 찾아 발음하면 골렘(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시집의 제목도 '창조자'일까. 그리고 시인은 몇몇 단서들을 제공한다.

 


호르헤스 선생의 시들을 읽으면서 리뷰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들을 담을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것저것 쓰다 보니 오히려 빼야할 거리들을 걱정하게 되었다. 시집의 어디선가 읽었는데, 시인들의 업은 우리네 삶을 언어로 바꾸는 거라고 했던가.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자신의 임무를 묵묵하게 수행하고 있는 시인들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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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1-24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의 시집인가 보네요
이 글 읽으면서 책정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보르헤스의 창조자를 사고픈 욕망이 가득한 아이러니에 빠져있습니다,ㅎㅎ
,,,,, 절판이네요!
이 사실을 알고 아쉽기도, 안심이 되기도 한 이 모순은 참!ㅋㅋ

레삭매냐 2026-01-24 20:34   좋아요 1 | URL
책쟁이들의 숙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절판된 책에 대한
강렬한 소유욕이 말이지요.
절판된 책은 왠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라고나 할까요 ㅠㅠ
 
세상 끝의 기록
존 버거.장 모르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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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에 읽은 존 버저와 장 모르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 책이 <세상 끝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됐다. 난 그 시절에 중고서점에서 구한 책으로 읽었지 아마. 그리고 어제 이번에 새로 나왔다는 뉴스를 듣고 다시 한 번 읽게 됐다. 그렇지 클래식은 모름지기 다시 읽는 법이지.

 

물론 6년 전에 읽었던 기억은 모두 휘발해 버리고 새로운 느낌으로 장 모르의 사진과 글들을 만나게 됐다. 솔직하게 말해서 사진이 많아서 금방 읽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나도 한 때 사진을 찍어 보겠다고 해서 장 모르가 말하는 사진의 핵심이라는 우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됐다. 좋은 사진가라면 항상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고 언제라도 셔터를 누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찰나의 순간은 항상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또 전문 사진가도 아닌 사람에게 그런 일은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싶다.

 

대선배 장 모르에 의하면 사진에는 모름지기 즉흥적인 놀라움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뛰어난 관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찰라를 포착하는 것만큼, 그 이상의 관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지. 너무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필름으로 사진으로 찍을 수밖에 없던 시절의 아주 아련한 이야기들이다. 이제는 누구나 휴대폰에 부착한 카메라로 순간을, 찰나를 포착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어쩌면 기계의 성능보다 사진가의 의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진은 기록을 위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존 버저와 장 모르가 협업한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된 <세상 끝의 기록>은 참 클래식의 반열에 올릴 법한 그런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장 모르가 들고 다니던 카메라의 피사체가 된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왜 촬영을 허락했을까라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낯섬이 필요하지 않을까. 너무 익숙한 것들은 작가의 피사체로서 어떤 의미를 감소시키지 않나 싶다. 누구나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무엇을 건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장 모르는 세상의 곳곳을 주유하며 자신의 관찰에 기반한 사진들을 기록했다.

 


그가 방문한 곳 중에서 가장 이색적인 곳은 아마 북한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스위스 국적은 민주진영 뿐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들도 방문을 용이하게 만들어 주었다. 북한은 일단 아무나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냉전이 열전이던 시절인 1962년에 방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열심히 찍은 사진들은 북한 정권의 검열 아래 사라져 버렸다고. 체제 경쟁이 한참이던 시절,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현실을 담은 사진을 서방세계에 내보내고 싶지 않았겠지.

 

비슷한 일은 십년 정도 뒤인 1971년에도 소련에서 발생했다. 열심히 소련의 곳곳을 촬영했지만 서슬퍼런 KGB에게 기껏 찍은 필름들을 뺐겼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20년이란 시간이 지나, 개혁개방으로 서방세계로 대문이 열린 소련에 방문해서 당시 뺏긴 필름들을 찾아 보려고 했지만, 장 모르 작가의 노력을 실패했다고 한다. 그 때는 그런 야만의 시절이었다. 하긴 지금도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들이 그것을 원하지 이들에 의해 세련된 방식의 검열로 방해받고 있지만 말이다.

 

1980년대 미국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니카라과에서는 산디니스타 정권이 우익 콘트라 반군과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장 모르는 내전으로 파괴된 마나과에도 방문해서 기록을 남겼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의미 없는 사진들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귀중한 시대정신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아닐 수 없다.

 

장 모르가 이런 역사의 현장만 카메라에 담은 건 또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열린 자기 막내 아들의 결혼식장에 참석해서 보기만 해도 유쾌해지는 그런 사진들도 찍었다. 가족여행으로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을 방문해서 댄스파티가 열린 어느 시골 마을의 흥겨운 정경도 기록으로 남겼다. 이런 게 바로 사진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예전처럼 사진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버렸지만, 다시 한 번 장 모르의 사진들을 보다 보니 한컷의 마음에 드는 찰라의 순간을 포착해 보겠다고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누비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그 때는 문화유적에 대한 사진들을 열심히 찍었었지. 지금 다시 게으른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그 시절의 동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 끝의 기록>은 병오년 새해 내가 처음으로 다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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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은 배우지 않는 불편한 미국사
제임스 W. 로웬 지음, 김미선 옮김, 네이트 파월 각색 / 책과함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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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세 시간 정도 지나면 대망의 2025년도 지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된다. 마지막 날까지 나름 분주한 하루였다. 그 와중에 책도 꾸역꾸역 읽었다. 제임스 W 로웬과 네이트 파월 작가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미국인은 배우지 않는 불편한 미국사>는 내용이 내용인 만큼 여느 그래픽노블처럼 그렇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사실 조금 어렵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으로 넘쳐나는 그런 불안의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나라 미국이 누리던 패권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그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냉전이 끝나고,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 미국이 내부갈등과 자기모순으로 결국 쇠락해가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는 경제력과 군사력 혹은 유연한 문화주의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다면 이제는 유일하게 남은 군사력으로 거의 윽박지르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든다.

 

제임스 W 로웬는 그런 와중에 미국 역사 교육에서 가르치지 않고 있는 불편한 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건국 이전에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시작된 미국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고 해서 콜럼부스가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저자는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이미 유럽에서 출발한 바이킹들이 캐나다 연안에 상륙했었다는 건 정설이다. 그리고 심지어 서부 아프리카에서도 이주했었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다.

 

모름지기 공교육이라고 한다면, 빛나고 자랑스러운 자국의 역사들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이야기들도 자신 있게 후대에 전해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기본 생각이다. 하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필두로 한 세력들에게 미국은 반드시 강하고 오점이 없는 그런 국가여야만 했다. 바로 이런 역사적 시각이 오늘날의 역사의 문제와 왜곡을 만들어낸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들고 싶은 건 바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의 고질병인 인종주의다. 연방과 남부 연합의 무력 충돌로까지 비화된 격렬한 내전을 치렀지만, 여전히 미국의 인종주의 문제는 해결의 조짐이 보이고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다수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여전히 미국을 백인들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 인종들의 도전(?)이나 저자들이 계속해서 주창하는 다인종 민주주의를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1980년대를 장악한 미국의 보수정부들은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지지도 그리고 개선할 의지도 없었다. 그 무렵에 다시 폭발하기 시작한 경제적 불평등과 계층 간의 소득 격차는 이제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일론 머스크 같은 조만장자들이 등장하기에 이르렀고, 또 한편에서는 AI의 부상으로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푸드스탬프로 연명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도 경제위기에 몰린 트럼프 행정부에서 삭감하지 못해 안달이 난 판이다. 미국의 악명 높은 건강보험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세금 감세의 혜택은 역설적으로 부유 계층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거가 현재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꾸준하게 역사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저자 로웬 교수 역시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역사에 대해 무관심해져 버리는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역사 교과서에 실린 내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정확하게 누가 역사를 저술하는지 실명으로 명기가 되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자기 복제와 대필 작가들 그리고 정체를 숨긴 편집진이 저명한 학자들의 이름을 빌어 역사 교과서를 찍어내는 게 대세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해 지면을 많이 할애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만큼 국가 혹은 정부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람들은 미국의 국부라고 할 수 있는 조지 워싱턴이나 토머스 제퍼슨 같은 명사가 노예소유주였다는 사실을 듣고 놀란다고 한다. 심지어 조지 워싱턴의 벚꽃나무 사건은 만들어진 역사라고 한다.

 

미국 정부가 세계 각지에서 개입한 여러 사건들에 대해서는 저자는 명확하게 지적한다. 이란 모사데그 정권과 과테말라의 아르벤스 정권에 대한 공작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정권을 붕괴시켰다. 그나마 진보적인 대통령으로 알려진 JFK도 쿠바 피그스만 침공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가져온 통킹만 사건도 훗날 조작으로 밝혀졌다. 가장 최근에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원인이었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도 결국 없었던 것으로 판명되지 않았던가. 이외에도 숱하게 열거할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 정부는 미국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저자들은 묻는다.

 

결국 우리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 진실을 찾는 구도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역사라는 팩트는 변하지 않지만, 그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 식민지의 피지배 민족들의 가슴에 불을 당긴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우드로 윌슨이 알고 보면 백인우월주의 확산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할까. 한 때 미치광이 알려진 반인종주의 혁명가 존 브라운과 링컨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폭력이라는 방식으로 인종주의를 타파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분석이었다.

 

그냥 문득 아무리 열심히 현실 세계에 대한 역사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느끼는 불확실성과 불안이 잠재워지거나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런 힘겨운 여정이 우리의 몫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아디오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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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1-01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미국인은 실제 미국의 역사 뿐만이 아니라 학창 시절 공부(주로 공교육이 낙후됨)를 많이 하지 않아선지 의외로 무지한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이 들은 자신이 사는 곳(주로 주단위)에서 한 평생 떠나가 본 사람이 대다수 일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어요.그러니 미국 제일주의를 외치는 대통령이 최고이겠지요.
정말 미국은 상위 1%가 이끄는 나라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레샥매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