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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ㅣ 페이지터너스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이광윤 옮김 / 빛소굴 / 2023년 11월
평점 :

빛소굴에서 꾸준하게 출간되고 있는 페이지터너 시리즈를 응원한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발굴해서 소개하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 기획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페이지터너가 없었다면, 내가 언제 브라질 출신 작가 마샤두 지 아시스의 책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겠는가 말이다.
<정신과 의사>는 네 편의 단편들과 하나의 중편이자 문제작 <정신과 의사>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처음의 네 편은 후반에 배치된 걸작 <정신과 의사>를 위한 빌드업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해서 가치나 흥미가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고.
점성술과 불륜에 대한 의혹으로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일련의 과정을 그린 <점쟁이>는 비극이다. 세상에 사랑의 종류는 참으로 많다고 하지만, 세 명의 남녀가 연루된 연애사는 어쩔 수 없이 비극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마샤두 지 아시스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버지가 부여한 신부의 길을 거부하고 도망친 다미앙의 비겁한 행동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회초리>는 또 어떤가. 도대체 신학교에서 무얼 배웠단 말인가? 자신이 신학교의 엄격한 교육 시스템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한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자신의 신학교 탈출 사유를 구명하러 간 집에서 일하는 하녀가 부당한 일을 당하게 되었을 때, 그녀를 변호해 주지는 못할망정 그녀를 체벌하겠다는 여주인에게 회초리를 가져다 주는 행동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유사 지식인의 이중적인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작품이 바로 <회초리>였다. 내 생각에 회초리는 하녀가 아닌 다미앙이란 녀석이 맞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저명한 폴카 작곡가 페스타나 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명인>에서는 요즘으로 치면 당시 인기가요 정도인 폴카 작곡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예나 지금이나 무언가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상투적이긴 하지만, 그야말로 뼈를 깎는 그런 노력이 필요한 모양이다. 아니 그런데 세상 아래 그런 획기적이로 참신한 아이디어가 남아 있었던가. 결국 우리 인간은 기존의 창작 질서 아래서 만들어진 예술을 바탕으로 해서 그나마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기 마련이 아니던가.
기껏 정성을 들여 만든 곡을 아내는 쇼팽의 야상곡이 아니냐고 묻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아내의 지적이기 때문에 미스터 페스타나는 죽을 지경이다. 모름지기 가까운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이 더더욱 힘들게 다가오지 않던가. 페스타나는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는 것으로 남은 여생을 보낸다. 누구나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쇼팽처럼 이른바 '불멸의 작품'을 만들 수는 없는 거니까 말이다.
자, 이제 문제의 작품 <정신과 의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 작품에서 작가는 과학에 기반한 이성이 알고 보면, 광기의 다름이 아니다라는 주제를 독자에게 제시한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브라질의 이타구아이시(市)다. 그리고 이타구아이시에 정신병원을 개설해서, 사회에서 소외된 정신병자들을 수용하고, 정신병의 근원을 연구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밝혀내겠다는 역사적 소명을 가진 인물로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에서 수학한 시망 바카마르치(포르투갈 어로 '낡은 산탄총'이란 뜻이라고 한다) 박사가 등장한다.
지금은 덜 그렇지만,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정신병은 사탄의 저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정신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정신병 역시 치유가 가능한 병이 되었다. 서구에서 공부한 바카마르치 박사는 브라질 땅 이타구아이에 이런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정신병원을 열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정신병 환자들이 쇄도하기 시작한다. 물론 개설 전까지만 하더라도, 카자 베르지(녹색의 집) 병원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위용을 자랑하는 과학의 힘 앞에 사람들은 굴복했다.
초기의 선한 의도와 달리 카자 베르지 병원의 운영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바카마르치 박사는 자신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이들은 광인으로 몰아 병원에 가두기 시작했다. 그나마 처음에는 이런 수용이 선별적으로 행해졌지만, 나중에 가서는 거의 무차별적으로 정신의 균형을 바로 맞추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실시되었다. 바카마르치 박사는 전면에 내세운 그렇다면 선진 과학에 반대하냐는 말에 이타구아이 시민들은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상황이 파시즘의 부상과 아주 유사하지 않은가? 이타구아이에서 정신병 환자 지목과 잇달은 정신병원 수용으로 바카마르치 박사는 누구도 견줄 수 없는 권력자가 되었다. 이런 시스템의 지속이 과연 가능할까? 거의 4/5에 달하는 시민들이 정신병원에 갇힐 신세가 되자 결국 이발사 포르피리우스를 중심으로 해서 칸지카스 폭동이 발생하고, 11명의 사망자와 25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충돌이 발생한다. 결국 군대까지 동원해서 가까스로 사태는 수습되지만, 포르피리우스는 천하는 며칠 가지 못하고 주동자들은 자연스럽게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소설의 서사는 그렇게 희비극으로 다가온다.
미치광이들을 연구하던 바카마르치 박사마저 광기에 물들었는지 자신의 아내 에바리스타 부인도 희생시키고, 마지막에 가서는 가장 완벽한 정신의 소유자인 스스로를 병원에 수용해 버린다. 어쩌면 바카마르치 박사가 광기의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건 예견된 사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성으로 무장된 지식인 행세를 하는 전체주의자에게 권력을 내주었을 때, 해당 주체가 서서히 광인이 되어 가는 과정은 어느 현실과 너무 유사해서 책을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미치광이 바카마르치 박사는 궁예의 관심법을 능가하는 실력으로, 다양한 이유를 들어 자신의 적들을 광인으로 낙인찍어 카자 베르지 병원에 수용한다. 독재를 추구하는 박사는 자신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거부한다. 현실계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 이게 과연 1881년에 쓰인 책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정신과 의사>에서 총기라는 물리적 폭력의 은유를 상징하는 바카마르치는 선과 악을 주관하는 절대자로 등장한다. 누가 그에게 그런 권력을 주었던가. 그는 주권자인 이타구아이 시민들을 무시하고, 카자 베르지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이런 바카마르치 박사의 행태에 분노한 시민들을 폭동을 일으켜서 잘못된 질서를 바로 잡으려고 하지만, 동원된 군대라는 상위의 폭력 앞에 다시 한 번 좌절한다. 마샤두 지 아시스는 작가는 어쩌면 앞으로 다가올 전체주의 혹은 파시즘의 위협에 대한 경고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가볍게 시작한 <정신과 의사>가 가벼운 단편들을 지나, 후반에 가서 이런 화끈한 마무리로 귀결될 줄 누가 알았을까.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블랙 유머 그리고 재치 넘치는 전개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짧지만 강렬한 한 방을 담은 수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