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페이션트 을유세계문학전집 149
마이클 온다치 지음, 김영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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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시사회로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만났었다. 이 영화의 원작이 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사실 너무 오래 전에 본 영화라 주인공 알마시 백작 역의 랄프 파인즈가 화상을 입고 붕대 감은 모습만이 기억났다. 좀 더 기억을 되살려 보니 북 아프리카 사막에서 죽어가는 연인 캐서린을 안고 동굴로 가던 장면도 떠올랐다. 물론 원작 소설을 읽어 보니, 영화하고는 많이 달랐다.

 

스리랑카 출신 캐나다 시인 마이클 온다치가 1992년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로 맨부커상에 빛나는 작품이다. 영화는 4년 뒤에 고 앤소니 밍겔라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되었고, 아카데미상을 무려 9개나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소설은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로 지독한 화상을 입고 거의 빈사의 상태에서 베두인 족에게 발견된 영국인 환자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마이클 온다치는 실재했던 헝가리 탐험가 알마시라는 인물에게서 주인공 캐릭터의 모티프를 따왔다고 한다.

 

확실히 영화와 소설을 비교하면서 보니 영화보다 소설이 담아낸 이야기들이 더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영화는 소설에서 다룰 수 없는 비주얼적인 측면은 인정해야할 것 같다. 헝가리 출신으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삶의 나침반으로 삼아 사막을 누비는 자유인 라디슬라우 드 알마시, 사랑하는 이들을 전쟁에서 잃은 트라우마를 가진 간호병 해나, 도둑이자 스파이로 엄지손가락을 잃고 모르핀 중독에 빠진 도둑 데이비드 카라바지오 그리고 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공병 출신 폭탄 처리전문가 시크교도 키르팔 싱이 북쪽으로 퇴각하는 독일군과의 전투가 한창인 이탈리아의 파괴된 빌라 산 지롤라모 수도원에 모이면서 시공을 오가는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에서는 보다 극적으로 해나의 처지를 설명하기 위해 전장의 동료 잔 그리고 연인을 전쟁에서 잃은 것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상실한 스무살 내기 해나는 역시 과거의 기억과 이름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영국인 환자의 치료에 모든 것을 건다. 어쩌면 빌라 산 지롤라모 수도원은 상실의 시대를 직면한 이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영국인 환자 알마시의 지혜의 숲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거의 모든 문학을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 영화에서는 음악에 대해서도 깊은 조예가 있다는 것을 카라바지오와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베니 굿맨이 연주한 <왱 왱 블루스>를 맞추는 것을 보고 카라바지오는 감탄한다.

 

두 손가락을 잃은 카라바지오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보다 영화에서 더 극적으로 등장한다. “무스라는 암호명으로 암약하던 영국 스파이였던 카라바지오는 치열한 격전 끝에 영국군의 키레아니카 지역 중요기지였던 토브룩을 함락한 롬멜 아프리카 군단의 포로가 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두 엄지손가락을 잃는 장면이 나온다. 카라바지오 역할의 윌렘 데포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소설과 달리 알마시가 연인 캐서린을 살리기 위해 독일의 아프리카군단에게 넘긴 지도에 대한 정보 때문에 자신이 엄지를 잃게 되었다는 설정이 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서 책의 독자와는 다른 타겟 오디언스를 상대로 한 각색에 공감할 수가 있었다.

 

다른 주인공들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맡은 킵에 대해서 영화에서는 아쉽게도 잘 다루어주지 않은 느낌이다. 소설에서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 싱은 펀잡 출신으로 독일과의 전쟁에 동원된 식민지 백성의 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전쟁에 왜 그는 목숨을 걸게 된 걸까. 게다가 그에게 아버지 같았던 스승 서퍽 경도 폭발물 처리 과정에서 동료들과 함께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나치 독일과 싸우기 위해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식민제국 영국인들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피지배계급과의 동화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킵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연합군에게 밀리면서 북쪽으로 계속해서 퇴각 중인 독일군은 창의력 넘치는 부비트랩과 각종 지뢰로 북진하는 연합군의 진격을 효과적으로 늦추는데 성공했다. 사실 처칠이 구상한 유럽의 부드러운 아랫배를 공략해서 서진하는 스탈린의 공산주의 위성국가 건설을 최대한 막아 보겠다는 전략은 독일의 이탈리아 전선 사령관 알베르트 케셀링이 구축한 삼중 방어선으로 막아낸, 특히 고딕라인 앞의 지연전술로 무산되어 버렸다.

 

, 이제 알마시와 캐서린의 본격적인 로맨스에 대해 이야기해 볼 차례인가. 영화에서는 둘 사이의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 보이지 않는데 자그마치 15살 차이나 되는 남녀가 그야말로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런 장면은 역시 아무래도 소설보다는 영화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소설에서 보다 플라토닉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앤소니 밍겔라 감독은 처음의 냉랭한 사이였지만 점점 열정으로 바뀌어가는 알마시와 캐서린에 대한 관계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짚어냈다.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였던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사막의 캐러밴에서 탐험가들이 시구 대결을 하고,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유명한 연애 이야기를 낭송하면서 불쑥불쑥 등장하는 연애의 감정 표현은 정말 대단했다. 소설과 영화의 장면들을 대조해 보는 재미는 정말 대단했다. 캐서린의 남편 제프리 클리버튼 역을 30대의 콜린 퍼스가 맡았었다는 점도 미처 몰랐었다. 중년 넘어서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배우의 청년 시절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사막의 모래 폭풍처럼 알마시, 해나, 카라바지오와 킵이 휘말린 전쟁 역시 그들의 삶을 앗아가 버렸다. 폐허가 되어 버린 성과 속의 교집합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원에서 그들은 치유의 시간을 맞는다. 킵이 해나의 스무 번째 생일을 맞아 준비한 45개의 달팽이집에서 타오르는 불빛에 대한 묘사는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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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루이 스카의 탈출기 이야기
장 루이 스카 지음, 이인섭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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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의지에서 잇달아 신학과 성경에 대한 책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장 루이 스카 사제의 <구약성서 입문>에 이어 <출애굽기>에 해당하는 같은 저자의 <탈출기 이야기>를 다 읽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출애굽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성서 전문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차원이 달랐다.

 

저자 장 루이 스카 사제는 말미에 문학, 음악 그리고 영화로 변용된 <엑소더스>의 확장판들을 알려 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의 관심을 끈 작품은 바로 2014년에 발표된 리들리 스콧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었다. 영화 <엑소더스>는 화끈한 전투씬으로 시작해서 말미에 갈대 바다 대탈출로 마무리를 짓는다. 정말 스펙터클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탈출기 이야기>에서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의 근간이자 정체성을 이루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에 초점을 맞춘다. 70명 정도로 구성된 야곱 일가의 이집트 거주 이래, 400년이 지난 시점에서 히브리 사람들은 이집트 파라오의 종살이 신세가 됐다. 요셉이 총리로 이집트를 구원하기도 했지만, 그건 이마 정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의 파라오는 노동에 동원될 수 있는 장정만 60만에 달하는 히브리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거대한 토목사업들을 진행했다.

 

여호와는 바로 이런 상태에 놓인 히브리 사람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인도할 중심인물이 하나 필요했다. 한편, 파라오는 기하급수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히브리인들에게 위협을 느끼고 남자 아이들을 중심으로 영아살해를 계획했다. 이런 위기 가운데, 위대한 예언자이자 히브리인들의 민족 해방을 이끌 지도자로 레위 지파 출신의 모세가 등장한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신이 계획한 대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히브리 민족의 대탈출을 인도하게 된다. 저자는 바로 이 출생의 과정에서, 행위 중심으로 전개된 서사에 주목한다. 마치 해당 사건들을 바로 옆에서 관조하는 것처럼 서술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세는 이집트 공주의 양자로 변신한다.

 

우연한 기회에 같은 동포인 히브리인을 괴롭히는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정처 없는 방랑길에 오른다. 영화에서는 새로 파라오가 된 의형제 람세스에게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고, 수도멤피스에서 추방되는 설정이 등장한다. 그렇게 미디안 땅으로 간 모세는 그곳에서 미디안 여자 십보라와 결혼하게 된다.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여호와의 금기를 모세는 스스로 어겼다. 나중에 결국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되는데, 이런 문제 때문이 아닌가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불타는 떨기나무 사건으로 여호와를 직접 만난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구하라는 사명을 받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응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회피하지만, 신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영화에서는 아이의 모습으로 현현한 신이 호렙산에서 모세를 설득한다. 모세는 형 아론과 함께 완고한 파라오를 설득해서 히브리 민족 구원에 나선다.

 

한편, 권력의 정점에 선 파라오가 순순히 히브리 백성들을 풀어달라는 모세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영화에서는 파라오 휘하의 참모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현재 노예 노동에 동원된 히브리 사람들을 풀어준다면 어디서 대체 인력을 얻을 것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거야말로 정말 현실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결국 모세와 하나님은 완고한 파라오와 이집트인들에게 나일강이 피로 물드는 첫 번째 재앙부터 시작해서 모든 이집트의 인간과 동물들의 맏배가 죽는 마지막 재앙을 내린다. 이런 일련의 재앙들은 400년 동안 축적된 이집트인들과 히브리인들의 좋고 나쁜 관계들을 일거에 끊는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파라오는 결국 히브리인들의 이주를 허용하게 된다. 한편, 히브리인들은 문설주에 희생양의 피를 발라 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는데, 훗날에 이를 유월절(파스카)로 기념하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쉽게 탈출이 끝난다면 스펙터클한 이야기의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이집트와의 관계 단절에 결정타 한 가지가 더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 바로 갈대 바다 사건이었다. 히브리 사람들을 풀어 주고 난 다음, 파라오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그리고 무장한 병력들을 동원해서 히브리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는 4천의 병력과 1천의 전차로 장정만 60만 정도 되는 기존의 종들을 모두 죽이겠다며 광기에 사로잡혀 추적에 나섰다. 영화에서는 가히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들의 백성들을 간악한 파라오의 손에서 건져 내시기 위해 갈대 바다를 가르고 히브리 사람들이 모두 건너간 다음, 다시 바다의 운행을 되돌려서 이집트 군대를 휩쓸어 버렸다. 장 루이 스카 사제는 이 과정을 삼단계로 구분하면서 서사의 스펙터클한 시퀀스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갈대 바다를 건넌 히브리 백성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40년간 광야에서 도대체 뭘 먹고 지낼 수 있었을까.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만나와 메추라기로 약속의 백성들에게 걱정을 덜어 주셨다. 그 다음 시나이산의 신적 현현을 통해서는 비로소 영원히 이어질 이른바 계약법전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 저자는 사제계 저자가 <탈출기>를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며, 필요 이상의 의식과 규례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들어있다는 점을 꼬집는다.

 

나중에 구약성서를 통해 드러나게 되겠지만, 왕정이 무너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인 성전이 파괴되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이른바 모세오경(토라)에 근거한 율법을 근거로 자신들만의 고유한 민족성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물론 모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불만에 가득한 일부 백성들의 성화 때문에 금송아지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다. 여기서는 이후 계속되는 히브리인들의 지속적인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기원을 엿볼 수 있다.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끔찍했던 이집트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되었고, 자신들을 구원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민족해방을 영도한 모세에 대해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게 됐다.

 

그 외에도 장 루이 스카 사제는 탈출기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이 받아들이는 방식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예술 장르의 소재로 변용되고 재생산된 사례들을 보여준다. 물론 그 중에서 나의 픽은 아무래도 접근성이 가장 쉬운 편인 영화 <엑소더스>가 아니었을까.

 

저자는 역시 성서전문가답게 단선적인 차원의 <탈출기> 접근을 시도하지 않는다.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 이집트 탈출이라는 일대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고수한다. 모세오경(토라)에 등장하는 613가지 율법의 준수는 선택이 아닌, 그들을 억압과 착취해서 해방시킨 신과의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종의 계약이다. 그런 점에서 구원과 자유를 향한 사제적 백성들의 여정은, 신약시대에도 이어질 하나님에 대한 섬김이라는 사명으로 귀결된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다 읽는데 성공해서 뿌듯하다. 다음에는 좀 더 어려운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마르코 복음>을 읽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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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4-21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톨릭 교도이지만 사실 구약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성경 공부도 꾸준히 했지만 깊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어요.
저는 신약성서가 훨씬 더 와 닿았습니다.
저도 이런 성경 해설책을 읽으며 다시 성경 공부 하고 싶습니다.

레삭매냐 2026-04-22 08:24   좋아요 1 | URL
저도 오래 전부터 구약을 읽어 왔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최근 성경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왜 히브리어-헬라어 원어가 중요하다
고 했는지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조심스레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마르코 복음>과 <알렉산드리아의
사자>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구약성서 입문
장 루이 스카 지음, 박요한 영식 옮김 / 성서와함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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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루이 스카 신부님의 이 책 <구약성서 입문>의 표지는 자못 도발적이다. “조금 알거나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나는 조금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인가. 양심상 전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조금 안다고 말하기보다 거의 알지 못한다고 고백해야할 것 같다.

 

장 루이 스카는 이 책에서 다루는 구약성서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이라고 명명한다. 그에 따르면 모세오경으로 알려진 토라는 현대 이스라엘을 모든 것을 주관하는 모체가 아닐까 싶다. 중세 마이모니데스가 정리한 것으로 알려진 토라에 등장하는 총 613(해라 명령 248, 금지 명령 365)의 율법들을 지키면 그들은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1365일 매일 한 개씩 있는 셈이란 말인가.

 

구약성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보니, 깊이에 치중하기 보다는 문자 그대로 입문서적인 성격을 띠고 있고 더 알고 싶다면 당연히 추가적인 독서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결말 부분에 적은 대로 모든 책은 하나의 세계이고, 그 세계로 떠나는 탐험의 초대장이라는 점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른바 이스라엘 민족 믿음의 조상이라는 족장 아브라함의 일대기에 앞으로 유대 민족이 겪게 될 영광과 고난의 역사들이 응축되어 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갈대아 우르(메소포타미아)에서 출발한 아브라함의 100년에 걸친 여정은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정착한 뒤, 다시 75명의 일족들과 함께 파라오가 지배하는 이집트까지 가게 된다.

 

그후 400년간에 걸친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마치고, 모세에 이어 유대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끈 전투 지휘관이라기보다 오히려 율법학사에 가까운 여호수아의 인도로 마침내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된다. 그 과정 가운데, 시나이산에서의 신적 현현을 통한 계약 법전이야말로 토라의 핵심이다. 여호와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면, 계약 법전에 따라 영원무궁한 축복을 받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불순종하고 여호와의 뜻에 거스르는 범죄를 하게 된다면 결국에 가서는 망하게 된다는 간단한 진리다.

 

판관기(사사기) 시절을 거쳐 사울과 다윗 그리고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120년 정도의 통일왕국 시기를 거쳐 유대 왕국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역대 왕들의 계속되는 우상숭배와 다양한 방식의 범죄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각각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물론 여호와는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이사야와 호세아 같은 선지자들을 남북의 왕들에게 파견해서 무수한 경고를 보냈지만, 왕정의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유대 민족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던 성전 역시 파괴되고 말았다. 저자는 바로 그런 지점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유대 민족을 지지해주던 버팀목이었던 왕정 국가와 성전이 파괴되고, 바빌론으로 끌려가 무려 70년이나 포로생활을 하던 그들을 지탱해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율법이었다고 말이다.

 

그런 점을 볼 때, 지금도 중동에서 사방의 적대국들로 포위된 국가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을 유지시켜 주는 정신적 모체야말로 구약성서, 보다 협의적으로 표현하자면 토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율법에 근거한 굳건한 민족적 정체성이야말로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을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마카베오서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시작된 헬레니즘 문화의 확산은 유대인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위기였다. 헬라어가 고대 중근동의 공용어가 되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왕들이 강압적으로 헬레니즘 문화의 이식을 진행시키자 마카베오 트리오가 등장해서 무장항쟁을 개시했다. 고대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면서, 마카베오들은 하스몬 왕조를 개창하기에 이르렀다. 저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도 저항적인 성격의 문서들이 상당 부분 배제되었다고 한다. 구전 전승에 기반한 기록은 편집과 첨삭의 과정을 피할 수가 없다는 점도 수긍이 갔다.

 

바빌론의 포로가 끌려간 다니엘이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다니엘서에 대한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다니엘서는 바빌론 포로 생활을 하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수난사 정로만 알고 있었는데 후반부에 등장하는 다수의 예언들로 예언서로 분류된다고 했던가. 신약성서로 연결되는 마지막 파트라는 점도 기억할 만한 포인트였다.

 

새로운 지경을 탐험하기 위한 초대장으로 장 루이 스카 신부의 <구약성서 입문>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책을 통한 지적 탐구의 여정은 설레임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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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풀어쓴 성경 - 원문의 음성을 오늘날의 목소리로 살려낸 번역과 메시지 풀어쓴 성경
강산 지음 / 감은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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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학과 성경 관련 서적들을 읽고 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그동안 소설과 역사책들을 주로 읽어 왔는데 이 분야에는 도전한 적이 없어서 마치 신세계가 열린 듯한 느낌이다. 우선 아예 모르는 분야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선 접근성이 좋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모르고 있거나 미진했던 부분들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의식이 생긴다고나 할까. 어쨌든 새로운 영역을 만나 좋다는 이야기다.

 

4월초에 도서관에 갔다가 가벼운 기독교 관련 서적을 빌리는 김에 신약 가운데 하나인 <사도행전>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사도행전, 풀어쓴 성경>을 빌렸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 반납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책을 펼치게 됐다. 아니 근데 이건 진짜 쌩 <사도행전>이었다. 교회 사역도 하는 강산 저자가 헬라어 원전과 기타 자료들을 섭렵해 가면서 새로운 번역을 시도했다는 거다. 기존의 성경들은 헬라어 지명과 인명들을 이상하게 바뀌어놔서 도무지 알 수가 없게 만들어 놨다. 일단 그런 점에서 합격점을 주고 싶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로 알려져 있다. 원래 이 책은 공관복음 중의 하나인 <누가복음>과 한 권의 책이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행적을 다룬 역사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우선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죽은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새로운 사도로 맛디아를 제비뽑기로 선출한다. 그리고 사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앞서 세 번이나 배신했던 과거를 가진 베드로의 변신이 눈부시다. 나중에 바리새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말하는 것처럼, 갈릴래아 출신 어부 베드로가 성전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설교하는 장면은 배움 없는 이가 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간 순교 이후, 첫 순교자는 초대교회 7명의 사역자 가운데 한 명으로 임명된 스테판이었다. 그가 순교하던 곳에 사도행전의 후반부를 책임지게 될 사울(사도 바울)이 있었다. 타르수스 출신 바리새파 유대인이었던 사울은 태생부터 로마 시민권자였고, 유력한 유대지도자 가말리엘의 제자이기도 했다. 젊은 지식인이었던 사울은 기존의 유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서는 그런 인물이었다. 크리스천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에 사울은 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극적인 회심의 장면을 보여준다. 바리새파 지식인 사울이 그 누구보다 앞장 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 바울로 변신한다.

 

그 앞에서 초대 교회에 있던 헬라인(이방인) 신자들과 유대계 신자들의 갈등에 대해서도 사도행전은 언급하고 있다. 훗날,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두 집단은 격렬하게 충돌하게 된다.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기독교는 사도들을 중심으로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복음전파를 시작한다. 특히 사마리아에서 필립은 왕성한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가세해서 사마리이 선교에 나서기도 했다. 사도들의 기적과 이사를 곁에서 본 마술사 시몬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이들의 선교 활동 가운데, 마가복음의 저자로 알려진 마가 요한과 만나 같이 선교를 하다가, 갈등하고 결별하는 과정도 볼 수가 있었다. 얼마 전에 마가 요한을 주인공으로 한 <알렉산드리아의 사자>란 책도 알게 되었는데, 마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행전에는 몇몇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우선 초반 유대인 선교에서 이방인 선교로 전환하게 된 지점 그리고 바울이 성령님의 인도로 아시아가 아닌 서방의 마케도니아로 선교의 방향을 틀게 된 지점들이다. 이 두 가지 지점은 유럽 세계가 기독교화 그리고 기독교가 단지 유대 지방을 넘어선 세계종교화로 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1차 전도여행 가운데 킬리키아 지역의 뤼스트라 지역에서 걷지 못하던 이를 걷게 만든 이적을 바울과 그의 동역자 바나바가 보여주자, 사람들은 그들을 헤르메스와 제우스로 부르기도 했다. 선교에 있어,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 이런 기적과 이사야말로 가장 확실하면서 빠른 선교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한편, 이방인 선교 가운데 가장 문제로 대두된 것이 바로 유대인만들의 고유 의식이었던 할례였다. 유대계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도 반드시 할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서방의 우상숭배 문제와 제례 의식에 사용된 부정한 고기 섭취에 대한 문제가 핵심 논쟁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초대 인사들은 예루살렘 공의회(A.D. 48-50)를 개최해서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로 결정하고, 이방인 선교의 핵심이었던 바울과 바나바도 참석하기에 이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이자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던 야고보는 이 자리에서, 새로 기독교도가 된 이방인들의 할례를 면해주는 대신, 우상숭배의 금지와 제례에 사용된 고기의 섭취를 삼갈 것 그리고 음행들을 멀리할 것을 결의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이방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됐다. 유대인의 민족적 정체성이나 토라에서 규정한 율법을 따르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의회의 판단이었다. 이것은 초기 예수 운동에 날개를 달아 주는 획기적 결정이었다.

 

바울의 전도여행 파트너는 계속해서 바뀌었다. 1차 전도여행에서는 바나바가 동행했고, 2차 전도여행에서는 실라와 티모테가 함께 했다. 바울 선교의 가장 큰 적은 각처에 자리잡은 바리새파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바울 일행을 공격했고 물리적 위해를 가하기도 했다. 바울과 동역자들에게 매질과 투옥은 일상이었다. 어디서는 돌을 맞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사명을 붙들고 그들은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들을 반기지 않는 곳들에 대한 방문을 이어갔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은 먼저 그의 주장이 당시 그리스와 소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 제국의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혁명적 사상이라는 이유를 들어 바울을 로마 법정에 고소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두려움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기존 유대 율법으로 만들어진 그들만의 종교, 사회적 질서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를 들어 바울을 산헤드린과 로마 법정에 세웠지만,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바울은 기독교 변증의 과정을 피력하면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보였다. 카이사리아의 총독 펠릭스는 단지 종교적 신념의 차이였다며 바울이 죄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로마시민권자로 로마 황제의 최고 법정에 항소한 바울은 카이사리아에 투옥되어 있는 동안, 골로새서, 빌립보서, 에베소서와 빌레몬서 같은 각지의 기독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들을 작성했다. 나중에 몰타와 시칠리아를 거쳐 로마에 가서는 가택연금을 당해 있었다. 그동안에도 다양한 인사들을 만나 교류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다.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네로 황제 시대에 로마대화재 사건 이후, 서기 64년에 체포되어 64/65년에 처형되었다고 한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 그와 함께 선교 여행을 함께 하면서 기록한 누가가 기록한 '사도들의 행전'을 다시 읽으니, 그간에 알고 있는 부분들을 다시 확인하고 보정하는 그런 계기가 된 것 같다. 초기 기독교 발전에 있어 중요한 부분들ㄹ을 원전으로 만났으니 이제 다음 차례는 당시 기독교 복음의 전파 중심인물인 바울에 대한 책도 만나봐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 절판된다고 해서 얼마 전에 부랴부랴 마련해 둔 파울라 프레드릭슨의 <바울, 이교도의 사도>가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뱀다리] 성경의 기록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편집'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여러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강산 저자도 아마 예외는 아닌 듯 싶다. '공간 이동'이라는 해석에 대해 이해는 되지만, 헬라어 원문과도 많은 차이가 나지 않나. '성육신'이란 표현도 마찬가지고. 21세기도 이런 성경에 대한 '편집'이 시도되는데, 성경이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1세기 경에는 얼마나 많은 편집이 들어갔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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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5대 제국 - 통通박사 조병호의
조병호 지음 / 통독원(땅에쓰신글씨)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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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추천으로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최근 성경과 신학 관련 책들을 섭렵하고 있는데, 뭐랄까 아주 시기적절한 그런 타이밍에 만난 책이라고나 할까.

 

유대민족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 시대부터 저자가 5대 제국의 반열에 올리지는 않은 애굽, 이집트와의 불가분의 관계가 소개된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 바로의 꿈 해몽으로 일약 총리대신의 자리에 올랐다. 저자는 이집트식 농업이 당대 최첨단 산업이었다고 기술한다. 물론 어떤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찾아볼 수가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7년 대풍년에 이은 7년 대흉년으로 거의 굶어 죽게된 가나안 요셉의 형제들이 자신을 찾아와 구원을 얻는다.

 

70명의 가족으로 출발한 히브리인들은 4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무려 120만 명에 달하는 대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히브리 민족 해방 전사로도 볼 수 있는 모세가 등장해서, 야훼의 말씀에 따라 요셉의 바로와는 다른 바로(파라오)의 억압 아래 놓인 히브리 사람들을 구해낸다. 히브인들을 착취해서 공짜 노동력을 쓰던 바로는 홍해작전으로 정예 병사들을 잃고 제국 건설에 실패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집트를 5대 제국의 반열에 올려놓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유대민족이 40년에 걸친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율법공부에 매진했고 그 결과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나 연구 결과가 있었던가. 이런 직관적이거나 거의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는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첫 번째 제국이 바로 앗수르, 혹은 앗시리아로 알려진 국가다. 유대인들에게 앗수르는 그야말로 원수 같은 존재였다. 유대인들이 사는 팔레스타인은 예나 지금이나 지정학적 요충지다. 중근동을 제패하기 위해 강력한 앗수르 제국은 반드시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래 둘로 나뉜 북이스라엘-남유다를 제압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서쪽으로는 이집트를 그리고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야훼의 명령을 받은 선지자 요나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로 가지 않았다가 물고기 뱃속에 갇히는 낭패를 당한다. 요나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원수 같은 앗수르 사람들을 구원하라는 야훼의 말을 수용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뒤,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은 자그마치 185,000명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남유다 예루살렘 공략에 나선다. 아하스왕의 뒤를 이어 13대 남유다의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저자가 지적한 대로, 어쩌다 한 번씩 등장하는 그나마 괜찮은 왕 가운데 하나였다. 풍전등화 같았던 남유다 왕국의 운명은 여호와의 개입으로 단번에 역전되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산헤립의 18만 대군이 모두 죽어 버린 것이다. 강경일변도로 제국 경영에 나섰던 앗수르는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망해 버렸다.

 

저자는 헤로도토스가 저술한 <역사>에 산헤립의 남유다 침공과 불가사의한 침공군 전멸에 대한 기록으로 해당 사건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런데 과연 헤로도토스의 다른 기술에 대해서도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나는 궁금하다. 취사선택한 부분만 맹신하는 거라면, 그런 태도 역시 지양해야할 것이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뒤, 광범위한 통혼정책을 펴서 유대민족을 정체성을 일거에 파괴해 버렸다. 그 결과, 남유다에서는 형제국가였던 북이스라엘을 사마리아라고 부르면서 멸시하기 시작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나서 150년 정도 지나, 남유다 역시 신흥 제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해 버렸다. 분열 왕정 시대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등장해서 활약했는데, 그건 그만큼 양국의 지도자들이 여호와가 보기시에 다양한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이세벨 시절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그리고 히스기야 시절에는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맹활약을 펼쳤다.

 

바벨론의 네부갓네살왕은 세 차례에 걸쳐 다수의 유대인 포로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1차 포로시절에 대표적인 인물로 그 유명한 다니엘이 있다. 다니엘은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의 멸망을 넘어 바사(페르시아) 시절까지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의 조상 요셉처럼, 역시 제국의 최고권력자인 왕의 꿈 해몽에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다니엘서에서는 미래에 등장할 여러 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한 예언이 담겨 있다. 바벨론 제국은 앗수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태도로 피지배민족들을 대했다.

 

유대민족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70년의 바벨론 유수를 보내고 바사 고레스왕 시절에 비로소 포로귀환이 시작된다. 페르시아 고레스-아하수에로왕들은 이방신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전능한 여호와의 능력에도 공감했던 모양이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으로 70년간 포로생활하던 유대인들이 속속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동방을 제패했던 오리엔트를 대표하는 페르시아 제국 역시 서방(옥시덴트)에서 떠오르던 강자였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공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부왕 필리포스의 후원 아래,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로 성장한 알렉산드로스는 명목으로는 예전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에 대한 복수라고 하면서 4만 명의 용병들을 동원했다.

 

전광석화 같은 공격으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이수스 전투와 가우가멜라 전투 등으로 패퇴시키고 마침내 페르시아 전역을 점령하는데 성공한 알렉산드로스는 비록 요절하지만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접목시킨 이른바 헬레니즘 문화 시대를 열게 된다. 그리고 헬라 제국의 뒤를 이어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게 되는 로마 제국의 시대가 도래한다.

 

구약 말라기에서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400년간의 공백기가 존재한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기존의 헬라 제국이 네 개의 왕국으로 분열되고, 그 중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관장하던 셀레우코스 왕조 시절 문제적 군주 안티오코스 4세 시절에 강압적 헬레니즘 문화 전파에 반발한 유대인들의 마카베오 혁명이 성공하고, 잠시 동안 하스움 왕조가 지속되기도 했다. 이 부분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처음 접해보는 거라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사실 유대 지방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고대 오리엔트 제국사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낸다는 미션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 아무래도 너무 많은 내용들을 다루려다 보니, 깊이에 있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내 생각은 성경과 고대 유대에 대해 초보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에게 어울리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경을 자주 읽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의 재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사역자 출신 작가가 성경을 근간으로 해서 고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여담으로 많은 부분에서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와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가 인용되었는데, 원전으로 한 번 만나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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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4-1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경은 흔히 유대인 고유의 역사와 종교관을 가진 책으로 오해를 많이들 하고 있는데 고대 오리엔트 국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경속 창세기 신화는 바빌로니아의 창조 신화인 ‘에누마 엘리쉬와 노아의 대홍수는 길가메쉬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그리고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동태복수법은 함무라비 법전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언약은 종주-부용국 조약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하지요.
성경의 잠언의 일부는 이집트의 ‘아메네모페의 지혜와 문구 자체가 거의 일치할 정도로 유사핟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대 유대인이ㅡ 성경은 주변 대제국의 문화적 자산을 공유하되, 그 속에 유대들만의 고유한 신학적 가치(유일신 신앙, 윤리적 유일신론)를 담아 재해석한 창작물이라고 보심 될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6-04-17 13:35   좋아요 0 | URL
유사 이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격언
을 고려해 보자면 이해가 가는 지적
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