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라 씨의 친구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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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작가의 심심한 글과 그림을 가끔 즐긴다. 아니 나도 마스다 미리 작가의 팬이라고 해야 하나. 도서관에 가서 우연히 얻어 걸리면 읽는다 정도로 해야 할까. 어제 <카모메 식당>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마스다 미리 작가의 <미우라 씨의 친구>를 빌려서 오늘 다 읽었다. 역시 금방 읽을 수가 있었다, 부담 없이.

 

2년 전에 나온 책이었는데, 미처 몰랐다. 잔잔한 그래픽 노블의 주인공은 역시 미우라 씨다. 최근 하우스 셰어를 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그 하우스 셰어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이지?

 

친구”(아마도 도모다찌?)란 이름의 로봇이라고 한다. 미우라 씨는 최근 오랜 친구인 지카 씨와의 시절인연이 다하여, 좀 외로운 상태다. 남자 친구도 없는 것 같고. 부동산에서 새로운 살 집을 구하면서 로봇 친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백만 엔이라는 거금을 들여 친구를 집에 들이게 되었다.

 

홀로 사는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로봇 친구라. 나도 꽤 오래 혼자 살아봐서 예의 미션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혼자 살기의 장점도 있지만, 역시 같이 살면서 부대끼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물론 괴로운 일들도 적지 않지만 말이지. 왠지 미우라 씨에게 로봇 친구는 숨기고 싶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게다가 몇 가지 대답 밖에 못하는 친구라니. “”, “그래정도. 원래 네 가지 대사를 할 수있다고 했었나. 그리고 예쁘다라는 말을 알려주는 미우라 씨. 같이 피크닉도 가고 그랬다지. 그랬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수리도 맡겨야 했지만 말이지.

 

지카 씨와 시절인연이 끝난 미우라 씨는 이번에는 직장에서 알게 된 카지 씨와 썸을 타기 시작한다. 미우라 씨는 직장 생활 6년 차라고 한다. 그리고 카지 씨는 스탠퍼드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한 수재란다. 사실, 로봇 친구는 카지 씨의 작품이고, 부동산 에이전트는 카지 씨의 형님이다. 이 정도의 우연은 소설적 상상으로 받아 들이자.

 

카지 씨와 관계가 발전하면서, 미우라 씨는 로봇 친구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하 그것 참. 새로운 관계는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새롭게 발전할 수 없단 그런 말일까. 미우라 씨에게 고향집에서 보내온 게를 그녀의 집에서 같이 먹자고 제안하는 카지 씨. 그리고 미우라 씨는 드디어 이름도 지어 주지 못한 로봇 친구를 떠나 보내야 할 시간이 왔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미우라 씨와 무명의 로봇 친구는 같이 바다로 짧은 여행에 나선다. 항상 그렇지만 이별은 쉽지 않는 법. 아무리 새로운 관계가 대신할 거라고 하지만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누구에게나 버겁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가 내린 뒤, 졸졸 흘러가는 그런 시냇물처럼 들리는 <미우라 씨의 친구> 서사는 뭐랄까 극적인 반전이나 클라이막스 없이 그렇게 진행된다. 아니 나는 어쩌면 이런 담백한 이야기의 흐름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일상이 하도 매운 맛이다 보니, 가끔은 이런 이야기를 섭취하는 것도 단조로운 일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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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 디 아더스 The Others 7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푸른숲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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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 소설도 읽게 됐다. 영화를 만들기 전에 영화 감독이 원작자인 무레 요코 씨에게 원작소설을 써달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소설은 영화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또 다른 그런 면모들을 보여 준다.

 

영화가 대뜸 독자들을 핀란드 헬싱키 모처에 있는 <카모메 식당>으로 초대했다면 소설은 일본에서 시작한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주인공 하야시 사치에(38)가 어떻게 해서 핀란드에 오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영화에서 알려 주지 않은 부분들을 소설에서는 아주 친절하게도 알려 주었다.

 

합기도 도장 사범을 하던 사치에 아버지의 인생 모토는 "인생은 모든 것이 수행"이었다. 사치에의 어머니가 트럭 교통사고로 돌아가셔도 그 말을 되뇌였다고 한다. 슬픔도 그렇게 인생의 모토로 갈음이 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어머니를 대신해서 자신과 아버지의 도시락까지 담당하게 된 사치에는 어려서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 졸업 후 식품회사에 취직해서 도시락 개발 업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그런 일에 싫증을 내고 탈출을 도모한다.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 아니었던가.

 

아버지 합기도 도장에서 인연이 있던 지인을 통해 핀란드행을 결심한다. 결심만으로는 세상 일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치에가 선택한 건 바로 복권이었다. , 소설적 상상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1억엔, 우리 돈 10억 복권에 당첨된 사치에는 드디어 꿈을 이루게 되었다. 허탈하구만 그래.

 

그런 사치에에 비하면 사에키 미도리나 마사코 씨의 사연들은 덜 극적이다. 촉탁 사원으로 이십 년을 일하다가 직장이 공중분해되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미도리 씨는 지도에서 아무 데나 찍어서 골라 여행길에 나선 곳이 바로 핀란드였다고 한다. 그리고 헬싱키의 <아카데미아> 서점에서 사치에를 만나 동거인이자 카모메 식당의 직원으로 새출발하게 된다.

 

마사코 씨가 숲에 가게 된 건, 영화와 달리(토미의 추천이었다) 사치에와 미도리의 추천으로 숲에 갔다. 그리고 거기서 딴 버섯을 먹었다가 안면마비가 왔다고 하던가. 그 레퍼토리는 영화에서 슬쩍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 버렸지만 말이다. 오히려 소설의 설정이 더 마음에 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이유 없이 등장해서 식당 내부를 째려 보던 리사 아주머니의 삶에 대해서도 소설에서는 아주 디테일하게 잡아내고 있다. 대머리 남편 아저씨의 외도로 가정이 파탄나고, 사랑하던 애견 쿠카까지 죽게 되면서 리사 아주머니는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별 것도 아닌 일로 시시덕거리고 좋아죽는 카메모 식당 사람들을 보면서 호기심 반 질투심 반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러다 갑자기 쳐들와서는 핀란드 소주라는 코스켄코르바를 냅다 마시고는 쓰러져 버리는 바람에 카모메 식당의 단골식객 노릇을 하던 토미 힐트넨 청년이 리사를 업고 집까지 배달하는데 한몫하지 않았던가.

 

영화만큼이나 소설도 잔잔바리 모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확실히 다른 건 몰라도 카모메 식당 식구들의 과거사에 대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런 설명들이 마음에 들었다. 영화에서는 절대 알려 주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어쩌면 그게 바로 핀란드식 사고방식의 원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봤다. 타인에게 절대로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추운날 버스를 기다리는 정거장에서도 멀찌기 떨어져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사진에서 보고 참, 기분이 그랬다. 반면 공동체의 누군가가 그렇게 위기에 처하게 되면 두 손 두 발 다 걷고 나서는 장면은 핀란드 사람들의 마음에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지.

 

문득 영화에 나오는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가 사용하는 일본 전통식 음식 도구들은 어디에서 왔는지가 궁금해졌다. 설마 핀란드에서 잘 만든 오니기리를 담는 대나무 소반을 판다는 말은 하지 말아 주시길. 그렇다면 사치에는 일본에서 핀란드에 일본 가정식 식당을 내겠다는 결심하고서 그런 도구들을 다 준비해서 공수해 왔단 말일까. 나는 그게 좀 궁금해졌다.

 

참 소설/영화에서 사치에는 오니기리는 남이 해주는게 맛있다고 했었지. 그렇다, 라면도 내가 끓이는 것보다 남이 끓여 준 라면에 맛있다. 그게 맞는 것 같다. 오래 전부터 한 번 보려고 했던 영화였는데 참 오래도 걸려서 보게 됐다. 그리고 동네 책방지기가 왜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려고 했는지 책을 보고 나니 알 수 있었다. 부담 없이 가볍게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서가 아니었나 추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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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10-02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너무 좋았어요.
일본 영화, 특히 이 영화의 감독이 만드는 영화에는 뭔가 사람을 차분하게 해주는 기운이 있더라고요.
한국 사람들 성향으로는 좀 힘든 것들요 ㅎㅎ 그래서 더 좋았던 것도 같아요.
영화가 좋아 저도 소설을 읽었는데
중간에 포기했어요.
영화로 그냥 됐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레삭매냐 2025-10-02 12:24   좋아요 1 | URL
전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책을
읽었는데...

뭐랄까 영화에서 알려주지 않는
그런 정보들을 책에서 전달해
주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

영화는 말씀해 주신 대로 삼삼하
지만 또 오묘한 맛이 있는 그런
느낌이었달까요.
 
비구름이 모일 때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베시 헤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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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번에도 역시 인스타 피드를 통해 남아프리카/보츠와나 출신 작가 베시 헤드를 알게 됐다. 국내에는 오늘 소개할 <비구름이 모일 때>, <마루> 그리고 <권력의 문제> 이렇게 세 권이 소개가 되었는제 앞선 두 책들은 절판이 되어 도서관을 이용해서 읽을 수가 있었다. 괜찮은 책들은 항상 구할 수가 없는 법이지.

 

남아프리카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보츠와나로 거의 강제추방하다시피 쫓겨난 베시 헤드의 데뷔작으로 자신과 비슷한 삶의 경로를 보여주는 마카야() 마세코를 작가는 주인공으로 삼았다. 소설은 1968년에 발표되었고, 시대적 배경은 1964년 정도라고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악명높은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피해, 마카야는 보츠와나 국경을 넘는다. 이미 그전에 투옥생활을 한바 있는 마카야는 절대 국경순찰대에게 잡히면 안되는 그런 상황이다.

 

보츠와나로 일종의 정치적 망명을 시도한 마카야는 이미 경찰의 정보망에 걸려 있는 상태다. 그리고 외국인 신분으로 골레마음미디 마을에 정착하게 된 마카야는 마을의 디노레고 노인을 만나 적극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한편, 골레마음미디에는 영국 출신 농업전문가 백인 길버트 밸푸어가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서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노력 중에 있다. 하지만, 전통과 부족주의에 물든 골레마음미디 사람들과 새로운 협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려는 길버트의 노력은 3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보츠와나 골레마음미디 마을의 남자들을 소를 치는 유목활동을 중시한다. 나머지 노동은 모두 여자들에게 맡겨졌다. 길버트와 마카야는 그들의 처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소들을 정리하고 터키 담배 같이 수익이 많이 나는 상품 작물을 재배해서 부를 축적하고, 축적한 부를 이용해서 마을을 발전시켜야 한다는데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건 왠지 오래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새마을운동을 연상시키는 그런 게 아닌가 말이다.

 

사실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앞두고 있던 보츠와나에는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식민 당국자들은 곧 자신의 손에서 벗어날 신생국가의 미래에 대해 무관심했다. 대추장 세코토는 여전히 기존의 권력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의 동생이자 소설에서 빌런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될 캐릭터이자 부족주의의 화신인 부추장 마텐지는 골레마음미디 마을의 모든 변화를 정면에서 거부한다. 기득권층에게 외지인에 불과한 길버트와 마카야가 시도하는 모든 일들은 부정적으로 보일 뿐이고, 자신의 권력을 붕괴시킬 위험 요소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사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길버트와 마카야의 노력에 의해 계몽된 골레마음미디 마을의 여성들은 실제로 행동에 나섰으니까 말이다.

 

이런 사회경제적 변화와 더불어, 디노레고 노인의 딸인 마리아와 과부 폴리나 세베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 역시 소설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폴리나는 마카야를 보는 순간, 반해 버렸다고 해야 할까. 그에게 마리아는 강력한 적수로 부상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마리아를 사랑해온 길버트가 마리아에게 청혼하고 결혼에 골인하면서, 폴리나가 빚어내던 긴장감을 자연스레 해소되어 버린다. 나고 자란 사랑하는 남아프리카를 떠나 이국땅에 정착하게 된 마카야에게 여인이나 가정은 당장의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진 청년이자 미래의 아프리카를 이끌어갈 그런 리더의 상징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부추장 마켄지나 조아스 체페 같이 음험한 정치인의 생각은 달랐다.

 

대추장 세코토의 절친한 지기인 영국 출신 경찰 조지 애플비스미스는 마카야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무고를 받지만, 그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정한다. 마카야가 영주권을 받고 그의 골레마음미디 마을 거주가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길버트-마카야의 터키 담배 농장 프로젝트는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폴리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대부분의 마을 여성들이 상품성 작물 재배를 위한 공동노동에 나서게 된다. 이런 작지만 유의미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결국 국가적 차원의 발전과 계몽을 이루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베시 헤드 작가는.

 

마음에 증오와 분노를 품고 고향 남아프리카를 탈출한 마카야는 보츠와나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간다. 그리고 사람에게 상처 받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람으로 치유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른자 '인간 종교(people religion)'라는 베시 헤드가 구사하는 방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자신의 주변을 맴돌던 폴리나를 받아들이고, 가뭄이라는 자연 재앙과 더불어 갑자기 들이닥친 아이작의 죽음이라는 위기 상황을 돌파해 나가면서 유토피아 건설의 희망을 제시한다.

 

사사건건 길버트-마카야들을 괴롭히던 마켄지 부추장은 폴리나를 재판에 소환하면서 새로운 갈등을 촉발한다. 하지만, 결국 자각한 골레마음미디 주민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황망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권선징악적 결말이 이어진다.

 

처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금방 다 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작가가 구사하는 1960년대 남아프리카/보츠와나의 사회경제적 요소들이 빚는 갈등들이 일단 소화하기에 좀 낯설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적당량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다음에, 계속해서 내부적으로 갈등하고 번뇌하는 영혼 마카야의 내면 세계 수용도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너무 여러 가지 형태로 벌어지는 복잡한 상황들이 독서의 진도를 수월하지 않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일체의 변화를 거부하고 전통을 고수하겠다는 마텐지로 대변되는 고집불통 부족주의자들은 변화와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구질서가 붕괴되고, 부족을 대신할 국가라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라는 이름의 아프리카 민족주의가 도래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세코토와 마텐지 같은 전통/부족주의자들은 그런 이상에 동참할 의향이 전혀 없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지금 이대로가 가장 좋은데 왜 굳이 삐걱대는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갈등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가 아닌가 싶다.

 

국가 발전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우리끼리' 부족주의를 대신하기 위해 베시 헤드 작가는 아예 부족을 넘어 타국 출신 망명객인 마카야 마세코를 주인공으로 기용한다. 그리고 마카야에 앞서, 백인 이상주의자 길버트를 미리 배치하는 더블캐스팅으로 유토피아 건설의 현현이라는 작가의 의중을 드러내 보인다. 과연 그런 유토피아가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생각 같아서는 <마루><권력의 문제>도 내친 김에 읽어 보고 싶지만, 다 읽고 나서 그전에 읽던 다른 책들부터 마무리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명절 전에 베시 헤드 작가의 다른 책들을 수배하게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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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볼트 이야기 쏜살 문고
로베르트 발저 지음, 최가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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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발저는 여전히 내가 어려운 작가로 인식되어 있다. 그의 이런저런 책들을 수집해 놓았지만, 정작 읽은 책은 <벤야멘타 하인학교>가 유일하다. 읽은 내용은, 언제나처럼 기억 속에서 휘발해 버렸다. 그래도 꾸역꾸역 도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제 오후 느즈막하게 도서관으로 <토볼트 이야기>를 빌리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날이 선선해져서 걷기에 너무 좋았다. 문득, 내 그런 모습이 단거리 산책에 특화된 "토볼트"와 유사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세기 초, 발저 작가에 의해 창조한 토볼트라는 문제적 인간에 대한 탐구를 시작해 본다. 우리는 왜 타인에게 먼저 다가서기 보다 그가 나에게 다가 오기를 기대하는가. 어쩌면 거절당하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 무언가에서 비롯된 심리가 아닐까. 청년 토볼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추정해 본다.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나의 적극적인 시도가 없다면 그 누구와의 관계도 진전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상대방의 어느 정도의 호응도 필요하겠지만.

 

짧은 다섯 편의 이야기를 통해 토볼트 청년에 대한 가늠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물론 실제적인 발저 작가의 체험에 의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실제로 상부 슐레지엔의 담브라우 성에서 190510월부터 12월까지 시종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실패한 시인이었던 유사 지식인 토볼트는 11월 사냥철을 맞아 30년 전쟁 당시 지어진 K백작의 성을 방문하는 귀족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고용된 임시 하인 신분으로 등장한다.

 

책을 읽다 보니 문득 그가 "빛의 마법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성의 곳곳에 비치된 램프를 도맡아서 관리했다. 심지어 그 일을 좋아했다. 노동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고 하더라도 노동의 고단함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어쩌면 토볼트/발저는 스스로에게 그런 주문을 걸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다음으로 그가 좋아하던 일은 난로 관리였다. 오래된 성의 난방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게 난로였으리라.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달하기 위해 벽난로 관리는 시종으로서 꼭 해야만 하는 그런 일이었다. 빛과 열을 전달하는 일종의 마법사 같은 일에 토볼트는 특별히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이 맡은 임무에 충실했다. 이런 걸 이른바 "하인 정신"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누군가에는 주인에게 충성하는 모습이 굴욕적이거나 혹은 아부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토볼트의 정신세계는 보통 사람의 그것과 많이 달랐던 게 아닌가 싶다.

 

토볼트는 방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거친 행동을 일삼는 폴란드 출신 청지기와 거칠게 충돌한다. 그리고 곧바로 시종장에게 가서 자신이 우락부락한 청지기에게 뺨을 맞을 뻔한 사건을 고자질한다. 백작의 시종장은 백작의 식사 시중을 들며 거의 곡예에 가까운 실력을 보이는 토볼트에게 '품위'를 지키라고 비난에 가까운 경고를 날린다. 성에서 토볼트에 대한 처우는 상당히 좋았지만, 시종장을 비롯한 고인물 인사들은 귀족이 지켜야 하는 품위에 좀 더 많은 방점을 찍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귀족들은 특권 계급으로서 보통 사람들이 지키기 어려운 예절과 관습 그리고 품위와 변별력을 강조했다.

 

한편 토볼트는 관찰을 통해, 귀족들의 세계를 <귀족에 대한 연구>라는 글에 담아냈다. 백작은 무엇을 먹고, 듣고 하는 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다. 토볼트의 관찰에 따르면 백작은 달걀을 곁들인 베이컨을 즐기며 다양한 종류의 잼들을 먹는다. 바그너를 들으며, 여가시간에 사냥을 한다. 정말 유한 계급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연 중에 독서를 즐기는 자신이야말로 귀족들보다 더 나은 지식인이라는 자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했다.

 

비서의 요청으로 미모의 남작 부인에게 레모네이드를 전달하면서는 무슨 일장 연설에 가까운 흠모의 언사를 자랑하기도 한다. 이게 근원을 알 수 없는 찬사인지 너무 처절한 아부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귀족들의 식사를 관찰하는 도중에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토볼트도 초보 하인이기 때문에 귀부인의 드레스에게 겨자 소스를 흘리거나 오래된 찻잔을 박살내는 실수도 저질렀다. 하지만, 자신의 상급자에게 신속한 보고를 통해, 관대한 조치를 받기도 했다.

 

청년 토볼트는 짧은 하인 생활은 마치고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타인을 위한 인내와 복종의 시간들이라는 역경을 극복한 토볼트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끝없이 변화하는 자신의 정체성의 변화를 담보로 한 성장소설의 성격도 <토볼트 이야기>는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로베르트 발저의 <토볼트 이야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유지되었던 귀족 계급 사회의 잔영들과 그에 매료된 어느 젊은이의 삶의 그림자를 엿볼 수가 있었다. 다음에는 로베르트 무질의 <세 여인>을 읽을 계획이다.

 

[뱀다리] 어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동네 새로 생긴 공원에 가서 <토볼트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해질 무렵,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와 이제 자신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고라도 하듯 풀숲에서 울고 있는 풀벌레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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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9-30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저! 좋아하는데 읽기 쉬운 작가는 아닌듯요. 그러고 보니 저도 읽어야겠네요 ^^

레삭매냐 2025-09-30 07:05   좋아요 1 | URL
어쩌면 이렇게 공감이 가는 말씀
을 해주셨는지요.

어렵지만 꾸역꾸역 읽어 보려고
하고 있답니다. 빠이팅.

자목련 2025-09-30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발저의 책을 읽고 있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멈출 것 같은 예감이 ㅎㅎ

레삭매냐 2025-09-30 11:04   좋아요 0 | URL
저도 발저의 <산책자>와 <장미> 쟁여
두었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고 있답니
다. 그래도 용기 내서 읽어봐야겠죠.
 
9시에서 9시 사이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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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은 레오 페루츠 작가의 달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이제 한 권(아니 두 권인가?) 더 읽으면 국내에 나온 페루츠 작가의 책은 다 읽게 된다.

 

<스웨덴 기사>로 출발한 나의 페루츠 읽기는 <심판의 날의 거장>을 거쳐 <9시에서 9시 사이>에 도달했다. 세 작품 모두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또 확실하게 다른 서사와 결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구별이 된다.

 

소설 <9시에서 9시 사이>의 문제적 주인공은 가난한 대학생 슈타니슬라우스 뎀바다. 역시 키워드는 뎀바의 가난이다. 그는 가난 때문에 자신이 애인이라고 생각했던 조냐 하르트만이 게오르크 바이너와 바람이 났다고 생각한다. 슈타니는 조냐가 바이너와 베네치아로 여행가는 걸 저지하기 위해 목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하룻밤 동안에 장기간 베네치아 여행을 위한 자금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대개의 경우, 이런 미션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배가 고픈 그는 가게에서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어처구니없는 행동들을 하다가 가게 주인에게 도둑으로 몰리기도 한다. 공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손이 없다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농락한다. 슈타니의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 그가 충분한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훔친 책을 골동품상에게 넘기려다가 경찰에게 잡혀 두 손에 수갑을 찬 채 도주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까 슈타니에게 수갑은 무언가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구할 수 없게 만드는 핸디캡이자, 그를 자꾸만 곤경에 빠뜨리는 하나의 장치인 셈이다.

 

수갑 찬 손을 내밀어서 돈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슈타니가 하는 시도마다 족족 실패한다. 우체부가 가져온 자신이 정당하게 번 우편환부터 시작해서, 어쩌면 그렇게 운수가 없는지 모르겠다. 빈의 마리아힐퍼 슈트라세를 비롯한 방방곳곳을 누비며 자신이야말로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에서 가장 운이 없는 사나이라고 떠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슈타니는 거들떠도 보지 않지만, 그런 그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슈테피라는 조력자가 있다.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가 떠나기 위해, 돈을 마련하다가 그야말로 은팔찌를 찬 셈인데 그런 남자의 은팔찌를 풀어 주겠다고 나섰다. 그녀의 시도는 참 좋았으나, 정말 운이 없는 사나이인 슈타니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돈이 주머니에 거의 들어올 것 같으면서도 또 마지막 순간에 손바닥 위의 모래처럼 스르르 사라지게 구성한 레오 페루츠 작가의 기법도 참 대단하다. 선의를 가지고 슈타니를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도움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과외비를 가불 받으려고 화상을 입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집 바깥어른이 치료해 주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슈타니는 어쩔 수 없이 줄행랑을 치고 만다. 그는 참 운도 지지리도 없는 남자다.

 

가장 안타까운 장면 중의 하나는 슈타니가 30크로네 빚을 받으러 도박판에 있던 친구를 찾아가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그는 초심자의 놀라운 운빨로 무려 270크로네나 되는 판돈을 따게 되는 행운을 거머쥘 뻔했다. 도박판에 있던 이가 자신의 시계를 분실했다며, 예의 시계를 찾기 위해 같이 도박을 하던 사람들의 몸수색을 하겠다며 나서면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이 수갑을 찬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던 슈타니는 결국 자신이 정당하게 딴 돈을 포기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기가 찰 노릇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슈타니에게 아주 운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엔딩은 예상대로 비극이었다. 이렇게 내내 운이 없다가 또 막판에 가서 인생한방 역전을 얻게 되는 설정도 어쩌면 그간의 서사에 대한 배신이라는 이유에서 처음부터 배제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1918년에 발표된 <9시에서 9시 사이>는 원래 프라하와 빈 그리고 베를린의 다양한 신문들에 연재되던 작품이었다. 당대에 이미 인기를 끌었고, 1922년에 MGM사에 영화화 판권이 팔렸지만 영화로 제작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책의 표지에 등장한 망토를 두른 슈타니슬라우스 뎀바의 이미지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두 개의 수갑이 그가 처한 모든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 기사>처럼 이번에도 역시나 페루츠 작가는 소설의 첫 부분부터 주인공의 기이한 행적을 설명하는 결정적 단서를 심어 놓았다. 그랬었군, 왠지 작가의 스타일을 좀 더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마지막 남은 책 <밤에 돌다리 밑에서>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지 한 번 테스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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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9-25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갑을 차고 애인과의 여행비를 벌기위해 12시간의 제한된 시간속에서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아이리쉬의 스릴러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고있네요.히치콕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책소개가 맞단 생각이 드네요.그런데 책분류가 오스트리아문학인데 왜 동유럽소설인지 살짝 이해가 안가네요.

레삭매냐 2025-09-27 19:26   좋아요 0 | URL
유럽에서는 독일의 동쪽에 있는
나라들부터 동유럽으로 생각하
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래서 동
유럽 소설로 분류가 된 게 아닌
가 추론해 봅니다.

아이리쉬 스릴러 소설 같다는
말씀에 적극 동의하는 바입니다.